일본군 해군의 무기체계에 대해서 설명한 항목이다.
1 시작하며
일본군 해군은 여러가지로 육군보다 활약을 하고 개념은 있었다. 일본 육군은 2차대전 내내 주요 교전국 중 최하위 수준이었던 반면, 해군은 이래뵈도 평상시에는 3위, 리즈 시절에는 1위를 했으니 당연하다. 그러나 기술력만 놓고 볼 경우 산소어뢰를 제외한 기술에 있어서 일본 해군이 자랑한다는 항공모함이나 전함 역시 미국에 비교해 확실한 열세를 보였다. 그나마 산소어뢰는 태평양 전쟁 중반까지는 제법 활약했지만 나중에 가면 제공권이 완전히 미국에게 넘어가면서 애물단지로 전락하게 된다. 개전 이전엔 전력이 미국 영국에 밀리고 돈도 훨씬 적어서 일반적인 함종 외의 것으로 승부하려는 경향과, 전쟁 말의 상황이 막장이 되어 제대로 개장을 못하는 등의 이유로 타국에 없는 특이한 함종을 많이 개발한 편이다. 덕분에 칸코레에선 그야말로 마개조가 들어간 함종이 나온다 카더라
다만, 상대가 그 미국이라 그런 것이지 사실 일본군 해군은 그래도 다른 추축국이나 프랑스 등에 비하면 훨씬 나았다고 볼 수 있다. 일단, 건조기술 노하우나 이런 것은 독일에도 전수를 할 정도였으니... 그러나 항공기 기술력이나 철강 등 보다 기초적인 영역은 어느 정도 열세다. 특히 미국의 우수한 전함들한테 밀리는건 물론이고, 프랑스 또한 수십년동안 전함을 안만들다가 됭케르크급 전함을 만든 다음 만든게 리슐리외급인걸 생각하면 사실 일본의 건조기술이나 건조사상도 상위급으로 쳐주기 어렵다. 애초에 독일에게 건조 기술 전수해준 건 일본이 배를 잘 만들어서가 아니라 독일이 배를 너무 못 만들어서다.[1] 다만, 리슐리외급 정도 되는 전함은 미국이나 영국[2]도 많지는 않았고, 일본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대략 야마토나 아이오와급 이상은 되어야 싸움이 된다고 하고 얘들은 죄다 리슐리외보다 뒤에 나온 놈들이다. 그리고 파고다형 함교가 흔히들 레이더와 비교해 까이는데, 세계 5위 해군인 이탈리아는 그나마도 못했다. 더 크게 2차대전 당시의 해전사를 볼 때, 프랑스 해군은 빠른 항복으로 제대로 활약을 못했고, 이탈리아는 대체로 영국에게 압도당하기만 했다. 반면, 일본은 그래도 43년까지는 그럭저럭 설쳐댔다. 그 영국도 본토 일이 바쁘고 거리가 멀어서 일본을 크게 제지하지 못한 점을 본다면,[3] 그나마 해군 정도는 상대가 안 좋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일본 해군의 병크는 무기체계도 무기체계지만, 전략, 행정, 교육, 인사 등 관리 및 운영 시스템에서 두드러진다.
2 제로센[4]
성능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A6M[5] 항목을 참조.더 자세히 깔 수 있다
전투기 총 생산수는 Bf109와 엇비슷한 정도였지만, 전체적인 성능은 비교할 수준이 절대 아니다. 아니 Bf109같은 명기를 제로센 따위와 비교하는 건 독일 공군에 대한 모욕이다(...).[6]
남방작전 기간 대활약을 했던 제로센 즉 A6M은 그 화려한 기동성을 위해 내구력과 방어력을 포기한 설계다.[7] 그리고 무전기의 성능이 형편없었는데 이는 후기형에서도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제로센의 모든 문제점의 근원은 일본의 낮은 공업기술로 만들어진 엔진이다. 당장 엔진 출력이 높아져도 부족한 실정에서 가장 출력이 낮은 엔진은 치명타라고 보면 된다. 스핏파이어나 Bf109가 어떻게든 1000마력이 넘는 엔진을 달려고 고심할때 제로의 초기형 21형은 고작 900마력을 겨우 넘는 정도였고 미국이 2000마력 더블 와스프 엔진을 달던 전쟁 말기에 이르러선 후기형 52형의 엔진은 이제야 겨우 1000마력을 좀 넘는데 그쳤다. 이로 인해 어떻게든 타국 기준에 맞추기 위해 기체의 자중을 상당수 포기하면서[8]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그나마 제로센보다 하위로 평가되는 와일드캣[9]과의 교전은 전초반까지 우수한 파일럿들로 인해 제로센이 선전했었다. 물론 압도적인 격추비도 아니고 그나마도 와일드캣이 근소하게 우위에 있었다. 후일처럼 일방적으로 학살당하지 않았다는 정도의 의미다. 후기에 가서는 기어코 교환비를 역전해버리며 와일드캣이 우위에 선다. 개전 당시 일본 조종사는 중일전쟁으로 실전경험까지 갖춘 베테랑인 반면[10] 미군은 태평양 전선 자체가 2선급 전장이라서 이른바 엘리트들은 거의 없었고 그나마 조금 있던 대부분의 고참 파일럿은 일단 교육 요원으로 투입해 전선 대부분이 신병 투성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타치 위브라든지, 붐앤줌 같은 전술을 확립해가며 대응해가는 와일드캣에게 어느새 입장이 반대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사실 이미 개전하고 1942년부터 와일드캣과 제로센 간의 교전비는 와일드캣의 희생이 제로센보다 덜했으므로 일본 우익이 항상 주장하는 전초반의 미군 와일드캣을 상대로 학살했다라는 주장은 완벽한 뻥카.
사실 고참 파일럿을 교육 요원으로 투입하는 로테이션 제도는 대전 중기 이후 여유가 있었던 그래봤자 모두 연합국들이지만 모든 나라가 실행했었다. 그로 인해서 독일처럼 백여 기 넘게 격추시키고 가끔 와서 신병들 잠깐 교육시키고 바로 출격한 슈퍼 에이스는 없지만 5기 이상을 격추시킨 일반 에이스는 압도적으로 많아지며 조종사들의 실력이 평균적으로 향상되었다.
조종사의 숫자 자체도 부족했고[11] 전투로 인해 지속적으로 숙련된 파일럿이 사라져가고 신병의 숫자도 부족했던 일본의 입장에서 미국의 로테이션 시스템은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거기다 미국은 이미 제로센 언더테이커인 F6F 헬캣으로의 기체변경이 거의 이루어진 상황에도, 심지어 전쟁 말기에는 F6F 헬캣과 비슷한 시기에 함재기로 개발됐으나, 함재기의 영역조차 아득히 초월해버린 F4U 콜세어를 들이미는 판국인데도[12] 일본은 신형 기체의 개발이나 기존 기체의 성능 개량은 지지부진하기만 했다. 제로센의 후계기로 준비되던건 A7M 렛푸라는 물건인데, 시제기 몇 기만 나오고 끝났다. 왜 이리 됐는지 하면 본토의 그 개판을 달리던 공업능력 때문.[13] 그래서 기존 기체인 제로센을 써먹다 못해, 흐물흐물해질때까지 우려먹는다. 그런데다가 렛푸 자체의 성능은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엔터프라이즈와 호넷을 대파시켰던 일본군 파일럿 시가 요시오가 렛푸의 테스트 파일럿으로 참여하고 나서 내린 결론이 "이따위 물건을 만들려는 놈들의 머릿속이 궁금하다."였으니 뭐...
운영 면에서도 최악의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목숨은 내다 버리는 것" 정신을 훈련, 교육만 감안하더라도 육성에 상당한 시간이 드는 귀중한 병력인 파일럿에게도 그대로 적용했다. 남태평양에서 상당한 위협이 되었던 대남항공대의 궤멸의 가장 큰 원인은 인간의 한계를 고려하지 않고 그저 기체 스펙에만 관심있던 대본영의 삽질이었다. 에이스인 사카이 사부로도 누적된 피로에 의해 후방기총을 가진 어벤저 뇌격기를 헬캣으로 착각하고 덤볐다가 간신히 죽다 살아났을 정도니 말 다했다.
또한 파일럿의 계급을 조종사 지원전의 계급으로 유지하는 병크를 터트렸는데 이로 인해 병 계급의 조종사[14]가 탄생하였고, 파일럿의 진급에도 엄청나게 인색했다. 그래서 파일럿 개인의 발언권이 제한당하는 문제가 생겼다. 타국의 파일럿만 봐도 대개 장교나 고위급 부사관이므로 작전 수립 단계에 직접 개입해서 의견을 개진할 수 있었지만, 일본의 파일럿은 심지어 정비부서보다도 계급이 낮은 경우가 압도적이라 자신의 비행기가 어디에 이상이 있으니 고쳐달라는 부탁도 제대로 못했다. 반대로 연합군과 나치 독일은 조종사가 되면 일단 닥치고 소위로 진급시켜줬다. 계급에 밀려서 자기 할 말도 못하고 찌그러져 있지 말고 요구사항을 제대로 전달하라고 하기 위해서였다.
이것도 모자라 일본 육군과 해군을 막론하고, 지상에 배치된 항공기와 항공대가 전황이 좋지 않아 비행장을 포기하고 퇴각하려고 하면, 꼭 정비병같은 지원 인원을 끝까지 퇴각시키지 않고 파일럿들만 쏙 빼낸뒤 그냥 내버려두고 떠나거나 육군 알보병으로 징집해버리는 정신 나간 짓거리를 저질렀다. 이런 뻘짓으로 인해 얼마 가지도 않아서 숙련된 정비 인원의 부족으로 안 그래도 부족한 부품에 정비도 못하고 그에 따라 출격 시간은 물론 기체 개개의 신뢰성조차 나락으로 굴러떨어지는 막장 테크를 탔다. 그나마 이와모토 테츠조같은 개념인이 소수나마 있었다는 게 위안.
그렇게 날이 갈수록 빨라지고 튼튼해지는 미국 항공기들과 가면 갈수록 실력이 상향 평준화되고 동료기와의 연합 전술 능력도 향상돼 가는 미군 파일럿과의 공중전은 점점 힘들어졌다. 결국 한번의 전투에 미군 항공기에게 30대의 피해를 안겨주고 '순수 함재기만' 239대가 격추당하는 대굴욕을[15] 겪으며 날아다니는 잡몹이 된 끝에 결국 카미카제 공격의 상징물로 변해버리거나 전후에 거의 모든 기종이 고철 처분되어버리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다.[16]
사실상 육군의 Ki-43 하야부사보다 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 병기이며 이는 스펙만을 달성할것만을 요구한 일본군의 한심한 사고가 그 근본적인 원인이니만큼 이는 자업자득이라고 볼 수 있다. 거기다 병맛넘치는 운용까지 겹쳤으니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게 이상할게 없는 셈.
3 XXX 전용기
일본 해군은 특수한 용도의 함재기들을 많이 개발했는데, XXX 전용기가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XXX에 들어가는 것들은 사카이 사부로 같은 파일럿이 아니라 해당 기체를 운용하는 항공전함, 잠수항모, 항공순양함 등의 배다. 그들 생각으로는 상대적으로 비좁은 갑판에서 이착함을 해야 하므로, 그에 걸맞은 전용기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런데 이 당시의 기술로는 수직이착륙기를 만들 수가 없었으므로, XXX 전용기들은 모두 수상기로 만들어졌다. 항공전함 같은 배들이라도 캐터펄트를 실으면 함재기의 이함이 가능하지만, 태생이 전함인 탓에 함재기가 여유롭게 착함할 공간이 없으므로 물 위에 착수시키고 크레인으로 건져내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이런 비행기들은 정찰기로 사용되었으나, 1930년대의 물건을 1940년대에 사용하는 것은 성능 면에서 문제가 있으므로 일본군은 새로운 수상정찰기를 개발하게 된다.
그래서 일본군은 E15K 시운이라는 수상정찰기를 만들어냈다. 전투기보다 빠른 수상정찰기가 있으면 제공권을 빼앗긴 상태에서도 정찰이 가능할 거라는 논리로 만든 것인데, 이건 오요도급 경순양함 전용기다. 뭐라고요? 시험제작기를 포함해서 15기가 생산되었으며, 자세한 건 오요도급 경순양함 일본 위키피디아와 시운 일본 위키피디아를 참조하자.
그것만이 아니다. 일본군은 정찰과 폭격을 모두 할 수 있는 다목적 수상정찰기도 만들어냈다. E16A 즈이운이 바로 그것으로, 순양함에 탑재해서 정찰과 폭격을 병행함으로서 부족한 함재기 전력을 보충하려고 했으며 이세급 전함에 탑재될 예정이었다. 220기가 생산되었으며, 일본인들은 이걸 걸작이라고 칭했다. 자세한 건 즈이운 일본 위키피디아를 참조하자.
그러나 압권은 단연 M6A 세이란이다. 잠수 항모에 탑재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신형 수상정찰기 겸 폭격기로, 플로트 대신 바퀴를 붙인 육상 운용형 개량기 난잔까지 합쳐서 28기가 생산되었다. 이 수상정찰기는 비좁은 잠수함 격납고에 격납하기위해 주익이 뿌리부터 접혀 밀착되고 꼬리날개까지 접혀지며 플로트 역시 평소엔 분리하여 함내에 보관하다 출격시 기체에 장착하는 상당히 독특한 구조로 제작되었다. 그리고 극지방의 운용까지 상정해서 자이로스코프를 설치하는 등 세계 어디서나 이용 가능하도록 특수하게 제작되어 대당 단가가 제로센 50대와 맞먹는 굉장히 비싼 가격을 자랑했다. 세이란 일본 위키피디아 참조.
그런데 위에 소개된 XXX 전용기들의 생산량은 적다. 220기라면 많아보이지만, 2차대전 당시의 전투기들 중에는 1만 기를 넘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즈이운은 많은 편이고, 시운이나 세이란은 시험제작기나 바퀴 달린 개량기들을 합해도 채 30기 조차도 안 된다. 이래가지고는 규모의 경제를 이루지 못하니 대량 생산을 통해 가격을 떨어뜨릴 수가 없으며, 전용 부품을 사용하므로 보급에도 혼란을 초래한다. 따라서 안 그래도 개발비가 비싼 물건이 제작비도 비싼데다 다른 무기 체계랑 사소한 부품조차 공유하지 않는다. 많이 찍어서 가격을 낮추면 된다고? 말은 쉽지. 위에 있는 세 기종 모두 특수한 배에 전용 함재기로서 실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비행기들이므로 그럴 수가 없다. 즉 세이란이나 시운, 즈이운등을 충분히 양산해서 가격을 내리려면 그만큼 해당 함재기를 요구하는 전용 모함인 센토쿠급 잠수 항모나 오요도급 항공순양함을 양산해야 한다. 일본군에게 과연 그것이 가능한 지에 대해선 더 이상 말이 필요한가?(...)[17]
그래도 갑판이 좁은 특수한 배에서 이착륙을 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만들어야 하지 않느냐는 주장도 나올 수 있지만, 미군에는 그런 거 없다. 미군이 60m짜리 비행갑판을 가진 미니 항공모함을 만들었을 때, 여기에 실린 것은 육군 관측기였지 새롭게 만들어진 전용 함재기가 아니었다. 호위항공모함에 실린 함재기들도 이미 만들어진 해군의 함재기들을 그냥 갖다 놓았을 뿐이고,[18] 전용 함재기 같은 건 개발할 생각조차 안 했다. 호위항공모함이 무려 100척이 넘었는데도 말이다. 미국의 미니 항모에 대한 내용은 항공모함 항목에 소개되어 있으니 참조하자.
그리고 굳이 순양함에 탑재할 수상정찰기를 개발하고 싶다면 그냥 한 가지로 통일하면 된다. 오요도급 순양함에는 시운, 항공전함에는 즈이운, 잠수항모에는 세이란. 이런 식으로 개발하는 건 낭비다. 게다가 적어도 세이란은 그나마 모함인 센토쿠급 자체가 잠수함이라 격납고를 충분히 확보하는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격납고가 너무 좁았고, 다른 배와는 아예 개념 자체가 전혀 다른 잠수 항모라는 특성상 격납고 크기에 맞춘 별도의 전용기가 필요했다고 변명이라도 할 수 있지만, E15K 시운 같은 건 변명 자체가 불가능하다. 오로지 오요도급 경순양함에만 실을 전용 함재기를 개발하고, 실패작으로 판명되었는데도 양산하다니 무슨 지거리야!
그래도 XXX 전용기니까 성능은 괜찮지 않았냐고? 그런 거 없다. 위에 소개된 XXX 전용기들은 모두 수상기라서 플로트를 달고 있는데, 이러면 공기 저항을 심하게 받으므로 어설프게 설계하면 다른 비행기보다 시속이 100km 이상 느려진다. 가장 빠른 세이란조차 최고시속이 474km다. 수상기는 원래 그렇다고 변명하고 싶어도, 이탈리아가 1931년에 개발한 경주용 수상기인 마키 MC. 72는 최고시속이 709km다. 이탈리아의 항공기술은 세계 제이이이이이이일!! 물론 이 경우는 마키 MC. 72가 경주용으로 속력을 매우 강조한 경우임은 감안할 필요는 있다. 플로트가 없는 육상기인 독일의 Bf109나 영국의 스핏파이어의 후기형도 최고속력이 650km/h전후였고[19] 대전기 가장 빠른 기체중 하나라는 미국의 F4U 코르세어도 초기형은 700km/h가 안되는 속력이었다. 전투기들 보다도 빠른 기체를 세이란과 비교하니 당연히 느릴 수 밖에 없다. 세이란도 당시 미국이 운용한 OS2U 킹피셔같은 수상기보다는 빠른 편이라는점을 생각하면 어디까지나 수상기 치고는 빠른편이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성능보다는 각 배에서 운용할 전용기를 개발해서 운용하겠다고 전용기를 개발했다는 쪽이다.
그래도 제대로 써먹었다면 나름대로 괜찮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거 없다. E15K 시운은 원래 목표에 크게 못 미치는 속도를 내는 실패작이고, E16A 즈이운도 일본인들의 주장대로라면 성능은 괜찮았지만 제대로 활약하지 못했으며, 그들 모두 본래의 목적인 함재기로서의 활용은 전혀 되지 못했다. 그나마 M6A 세이란은 잠수 항모에 탑재되었지만, 실전 투입 직전에 전쟁이 끝났다. 한술 더 떠 이쪽은 미군기 도색으로 위장 도색을 입혀서 작전에 나갈 계획도 세워뒀다가 걸리기 전에 죄다 바다에 버렸다!
애니메이션이라면 이런 XXX 전용기들이 큰 위력을 발휘했겠지만, 현실에선 그런 거 없다. 성능도 모자란 한 줌의 XXX 전용기로 전세를 뒤집을 수 있을 정도로 미군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일본군의 개전 직후부터 패전까지 잠시라도 보유했던 경항모, 정규항모 등을 전부 포함한 항공모함 총 생산량이 26척인데, 태평양 전쟁 말기 미해군은 정규항모만 따져도 28척에 달했다.(...) 한마디로 일본군이 전쟁 시작부터 끝까지 보유했던 모든 항공모함 숫자보다 미해군의 급조 정규항모 숫자가 더 많다는 소리다.[20] 게다가 정규항모 개개의 성능 역시 비교를 불허하는데다 미국의 100척이 넘는 호위항모 숫자는 제외했는데도 저렇다. 그 뿐 아니라 대전후반기에는 MXY-7 오카라든지, Ki-115 츠루기 같은, 이른바 특공기라고 하는 것도 있는데, 이게 알고 보면 카미카제만을 위해 만들어진 자폭전용기다.
XXX 전용기를 탑재하는 모함에 대해서는 아래에 있는 '나도 항공모함이다' 항목을 참조하자.
4 항공모함
이렇게나 허접한 일본의 병기지만, 항공모함에 있어서는 그나마 나은 평가를 받고 있다.
상당히 빠른 시간내에 항공모함을 군에 도입했다는 점, 그 배경이 어떻든 간에 타국은 연구조차 미미하던 항공모함 전술을 연구하고 성공적으로 시행했다는 점이 그러하다. 사실 항공모함 전술에 있어선 영국이 선구자였고 진주만 공습은 타란토 공습을 참고하여 계획된 것이긴 하지만, 일단 타인이 이룬 성과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서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도 능력은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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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의 항공모함의 예시와, 아카기의 측면단면도 |
그러나 사실 탄생 비화와 설계사상, 성능 등 모든 면을 놓고 봤을 때 이 역시 마냥 좋다고 말할 수 없었다.
4.1 3단 갑판
사실 일본은 당대 다른 열강들과 비교해서 항공모함에 딱히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일본 해군의 수뇌부 역시 타국과 마찬가지로 함대결전사상이 뿌리깊게 박혀있었기 때문. 이런 일본이 해군력 증강의 방향을 항공모함으로 선회하게 한 계기는 바로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이었다. 이 해군조약에서 일본해군의 88함대 계획(8척의 전함과 8척의 순양전함의 함대를 건설해 자신들의 입지를 분명히 하고 영미 해군을 압도하려는 계획)이 파토났고, 수많은 일본의 거함거포주의자들이 비명을 질렀다.
여튼 조약을 어길 수는 없었으니 기존의 건조중인 순양전함을 설계 변경하여 아카기와 카가급[21]을 건조하려고 시도했다. 그런데 기존에 실험 목적으로 운용중이었던 유일한 항공모함 호쇼는 둘째치더라도 자기네들끼리 컨셉을 어떻게 정해야 할지 몰라서 난관에 부딪혔다. 결국 영국해군의 커레이저스급 항공모함을 그대로 베껴서 3층의 항공갑판을 가진 항공모함이 탄생했으나 결론적으로 실패라는 것이 드러나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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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장 전 3단갑판의 아카기와 카가 |
동시에 3대를 날릴 수 있다는 것은 좋았으나 착함할 때에는 상부 1층갑판만 쓸 수 있었고, 격납고가 없어서 항공기 운영에 큰 차질을 빚었다. 항공기용 엘리베이터도 1, 2, 3층이 모두 공용하다보니 효율은 이미 안드로메다로 가버렸다. 결국 이렇게 삽질을 저지른 결과 일본도 이건 글러먹었다고 판단하고 3단 갑판을 포기했다. 결국 미국의 렉싱턴급 항공모함의 구조를 차용하여 아카기와 카가를 쓸 만하게 개장하는 데에는 성공했다.그래도 배운게 어디야
4.2 폐쇄식 2층 격납고
미군의 항모가 개방식 1층 격납고가 있었던 반면, 일본군의 항모는 폐쇄식 2층 격납고를 가지고 있었다.
개장된 아카기와 카가는 2층 격납고를 보유하여, 표면적으로는 수용 면적이 넓어져 많은 양의 항공기를 보유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 이유는 함재기들의 내구성이 연약한데다가[22] 항속거리 확보를 위해서 날개 안까지 연료탱크를 무식한 방법으로 넣어놨기 때문이다.[23] 덕분에 항공기 자체가 격납고 용적을 많이 차지해버렸고, 격납고 높이가 낮아서 가면 갈수록 대형화되는 함재기를 수용하기가 힘들어졌으며 무게중심이 올라가버려 항행성능과 밸런스가 개판이 되고 데미지 컨트롤 능력이 심각하게 뒤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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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기의 격납고 단면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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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카쿠의 격납고 단면도 |
A6M이 날개가 안 접혀서. 일본 항공모함 설계의 정수인 쇼카쿠급 항공모함에서도 저런다. 주차장에서 이따위로 주차하면 귓방맹이 얻어맞는 거 안 배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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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넷의 개방식 격납고와 셔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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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식스의 단면도 (5번이 개방식 격납고와 셔터) |
미해군 항공모함 설계의 뛰어난 점은 무기를 장착하는 격납고나 정비고를 개방형으로 만들어 유사시 폭발물이나 항공기를 바다에 투척해 연쇄폭발을 막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숙련된 선원들의 데미지 컨트롤까지 겹쳐져서 요크타운 같은 좀비항모(?)나 엔터프라이즈같은 불침항모가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면에서 일본군은 엄청나게 뒤떨어진 상태였다. 예를 들면 일본군 해군에서 응급 복구 훈련은 아예 주요 업무로 치지도 않았다. 따라서 함선에 사고가 발생하면 대응 수위에서 엄청난 차이가 발생하게 되는데 미군은 이산화탄소를 이용한 소화시스템을 구축했으나, 일본군은 물을 들이붓고 있었다. 항공유와 폭탄들이 굴러다니는 격납고에 물을 들이부으면 어찌될지 생각을 안 해봤나 보다. 다행히도 구 일본군이 믿기지 않는 멍청이긴 하지만 이 설계는 쇼카쿠급에 이르러선 개선되어 포말식 소화장치를 장착하게 된다. 그런데 쇼카쿠급을 빼면 그 이후로 뽑아서 실전에 쓴 정규항모가 다이호 한 척뿐이다. 마지막으로 만든 정규항공모함이자 야마토급 전함 3번함의 함체를 유용해서 나온 시나노는 실전 투입은커녕 완공도 안된 상태에서 꼬르륵 해버렸으니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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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항공모함인 즈이카쿠의 단면도[24] |
설상가상으로 일본군 항공모함은 격납고 벽에 불이 붙어서 파손되면 응급 복구는 물건너갔다고 보면 된다. 당시 일본군 항공모함은 함재기용 연료탱크를 함체에 붙여놨기 때문에, 함체가 충격을 받을 때 같이 충격을 받아 연료가 유출이 될 확률이 컸고, 이 질질 샌 기름에 불이 붙는 경우가 많았다. 덤으로 함선 자체를 움직이는 연료도 나중에 가면, 정유시설 부족과 함께 본토의 정유시설과 점령지의 유정을 연결하는 해상 수송로에 대타격을 입으면서, 함선은 저질중유로도 일단 돌아간다는 점에 착안해서 타라칸[25] 정유같이 원유에 가까운 물건을 썼기 때문에 함선 연료배관이 파손되더라도 일반적인 중유를 사용하는 연합군의 함선과는 달리 함선 연료배관에서도 휘발성 발화가스가 누출된다. 여기에 폐쇄식 격납고를 채용하면서 환기장치를 적게 설치하는 바람에 격납고에서 나오는 발화가스가 제대로 외부로 배출되지 못했고, 여기에 앞서 말한 승무원 (정확히는 승무원을 지휘하는 장교)의 실수까지 겹치면 시밤쾅!!!! 다이호가 이런 식으로 폭침했다.[26]
거기다 일본 항공모함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2층 폐쇄식 격납고는 피격시에 엄청난 문제를 일으켰다. 갑판에 있으라는 갑판장갑은 없는데다가[27], 층수가 2층이니 입는 피해는 2배이며, 폭탄이 격납고에서 폭발할 경우 그 폭압과 파편 피해는 폐쇄식 설계 때문에 고스란히 데미지를 100% 받아버리며, 설령 화재진압을 한다 하더라도 불 붙은 항공기나 기자재, 탄약, 항공유 등을 버릴 수가 없어 화재는 미칠듯이 번져나갔다. 또한 운 더럽게 엘리베이터가 고장날 경우 각종 기자재를 못 치워서 일어날 카오스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28]
4.2.1 그런 폐쇄식 2층 격납고를 채택한 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이 이런 단점들을 가진 폐쇄식 격납고를 고집한데는 이유가 있는데, 폐쇄식 격납고는 대양항해시 안전하다는 점과 격한 파도에도 내부의 함재기들을 잘 보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특히 내구성이 약하고 염분에 약한 마그네슘 부품[29]이 곳곳에 사용된 제로센[30]에게 파도가 높고 강한 일본 근해에서 개방형 격납고를 사용하는 항공모함에 탑재된다는 것은 내구도가 대폭 깎이는 일이다.
염분이 쌓여봤자 얼마나 쌓이는가 궁금할지 모르겠지만... 이 정도다. 원자력염전 제로센 소금에 찌들어 주거욧!! 그야말로 소금에 절여지다시피 하니 내구성이 약한 A6M 같은 전투기가 주를 이루던 일본군은 폐쇄식 격납고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31] 똑같이 폐쇄식 격납고를 항공모함에 채택한 영국 역시 주무대이자 홈그라운드인 북대서양은 파도도 험하고 바람도 많이 부는 곳이기에 폐쇄식 격납고형 항공모함을 운용했었고, 만일 영국이 개방형 격납고를 택했다면 함재기 관리부터 관리요원들의 작업환경 등의 문제로 한 고생 했을 것이다. 실전에서도 개방형 격납고를 채택한 미군 소속의 주력 항공모함들 대부분은 태평양 위주로 운용되었다. 유보트와 독일 수상함들을 잡기 위해 대서양에서 운용되던 처칠의 마지막 희망이던 레인저 정도가 예외.[32]
2층 격납고도 마찬가지로 단점이 많으나 한가지 아주 명확한 장점이 있는데, 탑재량이 뻥튀기 된다는 것이다. 단층 격납고에 비해 복층 격납고는 당연히 탑재량이 많을 수밖에 없고 실제로 일러스트리어스급 항공모함의 경우는 기준 배수량 23,000t으로 일본군의 쇼카쿠급 항공모함보다 3,000t 정도 적을 뿐이지만 탑재량은 개량을 가한 후기형 기준으로도 55기 대 72기로 훨씬 적고 쇼카쿠급의 경우 저기에다가 12기의 보충기까지 추가로 운용할 수 있었다. 미군은 단층 격납고임에도 탑재량이 우월한 것이 의아할 수 있으나 미군은 격납고를 1층으로 만드는 대신 천장에 함재기를 메다는 식으로 2층 격납고와 유사하게 탑재량을 뻥튀기 했으나 이 방식은 항모가 어뢰 등에 피격당했을 때 천장에 있던 함재기가 떨어지며 대형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는 약점이 있고 실제로 와스프급 항공모함 와스프가 이 방법으로 피해가 번져 침몰하고 말았다. 게다가 단층격납고의 약점인 탑재량이 적다는 점은 어쩔 수가 없어서 날개를 전혀 접지 못하는 F4F-3을 운용하던 당시에는 렉싱턴급 항공모함에 함재기가 66기가 들어갔다. 이후 날개를 컴팩트하게 접는 F4F-4가 탑재되면서 그제야 탑재량은 80기 이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미군 항모의 사기 캐릭터급의 탑재량은 항모 구조보다는 모든 종류의 함재기가 날개가 접힌다는 강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요크타운급보다 쇼카쿠급이 기준배수량 6,000t이 더 뚱뚱한건 어디에 그 배수량 팔아먹었던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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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리어스의 단면도 |
하지만 이 두 조합은 서로 안좋은 시너지를 일으켜 데미지 컨트롤 능력을 굉장히 악화시켰는데, 위의 단면도에서 나타나듯이 영국 항공모함은 탑재량을 희생해서까지 최소 3인치의 갑판장갑을 두르고 있었으며 폐쇄식 격납고의 단점을 메꾸기 위해 데미지 컨트롤에도 크게 신경을 썼다. 일단 데미지 컨트롤이 몇 배나 더 힘든 폐쇄식 항공모함을 운영하려면 함선 자체의 구조와 시설도 충실해야 하며, 함내에 숙달된 정비인원을 필수적으로 갖춰야 하는데, 앞서 말했듯이 일본군은 함선의 정비, 유지에 신경을 안썼다. 귀축영미의 군기빠진 파일럿들이 천황폐하의 정강인 항모를 손상시킨다고??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33]
결국 문제의 원인은 일본의 근해에서 운용하기 좋게 디자인해놓고 보니 정작 일본군 해군의 주 무대가 파도가 잔잔한 중~남태평양이었다는 것. 최적화된 디자인을 한 지역과 다른 곳에서 사용하다보니 발생한 추가적인 문제. 본토 방위에 썼으면 칭찬받았을지 모를 설계로 남을 공격하니 이꼴이 난다 즉, 폐쇄식 격납고와 2층 격납고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지만 데미지 컨트롤 능력을 확보하는 걸 등한시한 결과 폐쇄식 2층 격납고의 단점이 극대화되었다고 보면 된다.[34]
4.3 미니 함교
앞에서 언급된 무게중심 문제로 내내 소형 함교만 설치하거나 아예 함교가 없는 항공모함도 있었다.항공기 운영과 조타, 데미지 컨트롤 및 각종 명령을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해서 함교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소형 함교에서는 좋은 대책도, 능동적인 대처도 있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함교가 없으면 항공모함에 반드시 필요한 작업에 대한 지시를 어떻게 한단 말인가?(...)
일단 공간부터 좁아서 장교들이 모여서 회의하기에도 불편하며, 간단히 휴식을 할 수 있는 편의시설조차 없어서 제독이나 고급 장교가 비상시에 함교에 장기간 체류하면 쉽게 피로해진다. 물론 비전투시에 사용할 수 있도록 제독과 고급장교에게 각자 편히 쉴 수 있는 개인공간과 복지시설이 갖추어진 것은 모든 국가의 함선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사항이지만, 당시의 일본의 함선은 일부의 경우[35]를 제외하고는 제독과 고급장교의 개인실이 함교에서 좀 멀리 떨어진 상태였다.
즉 비상시에 피로를 못 이기고 자기 방에 돌아갔다가 큰일이 터지면 함교로 복귀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이야기다. 이런 점에서 함교에 편의시설을 만들어놓아서 비상상황에서도 제독과 고급장교가 잠깐 휴식을 취하다가 일이 터지면 1-2초안에 현업에 복귀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작전지시 등을 위해 관련자료가 필요할 때 이를 준비하는 준비실도 없다시피하므로 회의시간이 길어지는 등 평시의 부작용도 상당했다.
이렇게 평상시에도 불편을 초래하는데, 비상시는 더 심각한 상황이 펼쳐진다. 심지어 항공모함이 피격을 당했을 때에도 무선으로 어딘가가 피격당했다, 화재, 침수가 발생했다 하더라도 피해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현재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려웠고 아예 일부 구획은 시야로 피해상황을 확인조차 못 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격침당한 대표적인 항공모함이 다이호.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다이호는 시나노와 함께 일본군의 모든 항공모함을 통틀어서 가장 큰 함교를 가졌다는 것이다.
게다가 워낙 함교가 작으니 장갑은 커녕 파편을 막을 최소한의 방어능력도 매우 부족하므로 함교에 직격탄을 맞는 경우는 물론, 지근탄이나 근처에서 폭발로 인한 파편이 날아와도 함장 이하 주요 고급장교가 한꺼번에 살처분 몰살당하기 때문에 안 그래도 혼란의 도가니탕이 된 함선에서 명령권자가 없어지는 사태가 발생한다. 그리고 그런 혼란은 충분히 화재를 진압하고 다시 전투능력을 회복할 수준의 피해만 입은 항공모함도 화재나 침수를 적시에 막아내지 못해서 침몰당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 된다.
혹시, 그 소형 함교의 사이즈가 궁금한가?[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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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기의 함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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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가의 함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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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류의 함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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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카쿠급 항공모함인 즈이카쿠의 함교 |
이게 항공모함 함교야, 구축함 함교야? 잠수함 함교도 저것보다는 있어보이겠다.
쇼카쿠급은 2만톤급 중형 항모이고 소류는 그보다 작은 경항모니까 넘어간다 치더라도(이마저도 문제지만), 아카기와 카가는 각각 배수량 4만톤/3만 8천톤급 대형함인데도 연합군 항공모함에 비해선 함교가 심각하게 작다는걸 알수있다.
그나마 이건 나은 경우로, 호쇼와 류조, 타이요, 쇼호와 같은 일부 항모의 경우에는 함교 자체가 없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축소 지향의 일본군
항공모함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파악하기 위해 처음으로 만들어본 호쇼는, 전쟁 중에는 연습항모로 쓰인 탓에 실제 전투에는 참가하지 않았으므로 그나마 함교가 없다는 핸디캡은 줄어들었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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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쇼의 함교 |
이거야 뭐 연습용이니 그렇다 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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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조의 함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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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요의 함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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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호의 함교 |
류조의 경우에는 엄연하게 항공모함으로 전투에 투입되었지만 제대로 생겨먹은 함교 같은 건 없고, 항공갑판 밑의 창문(!?)들이 함교라고 한다. 이렇게 함교를 설치하면 항공기 통제는 물론 항해지시에도 심각한 지장을 가져오므로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다. 그나마 류조는 좀 나은 경우로, 타이요와 쇼호는 아예 항공갑판이 함교를 가리고 있다. 애초에 선폭이 고작 20미터 남짓한 이들 경함모들은 함재기가 지나다니기도 벅찬 마당에 갑판 위에 함교를 세워놓을 자리 따위 어디에도 없었다.[37]
그리고 소규모이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 함교에서의 항공기 운영은 대응능력이나 편대 구성시간, 전술 면에서 일본 항모가 미국 항공모함에게 뒤떨어지는 원인을 제공했다. 비단 함재기 운영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항해 지시면에서도 영향을 미친다. 결국 이 문제는 전략, 전술적 차질을 빚어서 태평양 전쟁 내내 미 해군에게 각개격파를 당하거나 일격을 맞게 되는 원인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위의 2층 격납고와 소규모 함교 두 가지 문제점은 결국 안 좋은 방향으로 시너지를 일으켜 비능률적인 함재기 운영능력과 최악의 데미지 컨트롤 능력이라는 결과물로 다가왔다. 그런데 당시 미국의 호위 항공모함도 함교만큼은 제대로 갖추고 있다는 게 함정
하나 더, 항공모함의 함교와 전함의 함교는 사실상 동일하거나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는 곳인데, 전함의 마스트는 마천루(...)처럼 높이 쌓아올리면서 항공모함의 함교는 축소지향(...)이거나 아예 없는 걸 보면 일본 해군의 함선 설계사상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것이다. 물론 이건 설계사상의 문제라기 보다는 기술의 부족이 원인인데 3연장화[38]를 못시키지만 포문을 늘려야하니 주포탑을 6기씩 올렸고 그 결과 함교에 이것저것 올리다보니 저런 괴상한 형태가 나온 것이다. 주포탑보다 더 큰 문제는 없느니만 못한 레이더였지만... 물론 이건 회로가 간단하면서 겹겹이 쌓아올리는 다이폴 안테나가 원인이다. 자기 나라 사람이 좋은 걸 발명하니 그건 안써먹고 구식 방식만 외곬수로 밀고 나간 일본군의 병맛이 철철 넘치는 사상도 한 몫 했다. 이것에 대해서는 이 문서의 상위 문서인 일본군/무기체계 문서에 있는 레이더 항목을 참고하자.
4.4 하향식 연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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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기와 즈이카쿠의 하향식 연돌 |
초창기 일본 항공모함들의 공통적 문제인, 측면에 부착되어 아래로 향하고 있는, 연돌 역시 문제가 되었다. 연돌에서 나오는 뜨거운 매연이 난기류를 일으켜 항공기의 착함을 방해했는데, 일본 해군 기술진들은 연돌을 아래로 향해서 뜨거운 공기가 바닷물에 식으면 난기류가 해결될 것이다라고 생각했다.뜨거운 공기는 무조건 위로 올라간다라는 기본적인 상식도 몰랐나?! 하지만 아래로 향한 연돌로 인해 연돌 주위의 선실은 미친듯이 온도가 올라갔고 연돌에서 빠져나온 열기는 식기는 커녕 여전히 뜨거워서 심지어 항공갑판 바로 위에서 난기류가 형성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말았다. 결국 착함도중에 난기류로 수시로 기체들은 전복되거나 착함방향이 틀어져버려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다.
게다가 아카기를 설계한 바보는 연돌에서 나오는 연기가 날아오는 구역의 선실을 거주구역으로 정했고, 선원들은 연기 때문에 창문도 못 열고 고생해야 했으며 덤으로 배에는 각종 질병까지 유행했다.[39] 그래서 아카기의 별명은 살인주택 아카기였고, 카가의 별명은 바다 독수리 꼬치구이 제조기였다. 이 배는 카가입니다. 40도의 따스한 선실을 즐기세요
이 문제는 항공모함 류조를 건조하고서도 개선은 커녕 오히려 너무 비대하게 큰 격납고 때문에 최악의 능파성과 수밀성, 데미지 컨트롤이라는 삽질만 저질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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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호의 연돌 | 준요, 히요의 상향 대각선 연돌 |
위에 서술된 문제들은 전부까지는 아니더라도 소류급을 건조하면서 슬슬 개선이 되기 시작하였으며 궁극적 설계의 완성은 히류급에서 이루어졌다. 일단 소류급 전의 일본 항공모함들은 일반적인 선체 위에 복층식 격납고를 그대로 올려두는 설계를 가지고 있으나 소류 이후의 설계는 함체 내에 하층 격납고를 설치하고 그 위에 상층 격납고를 설치해 무게중심을 낮춘 설계였다. 연돌도 히요급부터는 종래의 하향이 아닌, 상향 대각선으로 수정된다.
4.5 캐터펄트가 없다!
일본군 항공모함은 캐터펄트가 없고, 함재기가 자력으로 이함하는 방식을 사용했으므로 함재기의 대형화에 한계가 있었다. 오요도와 센토쿠급에 쓰인 공기식 캐터펄트, 전함이나 순양함 등에 쓰인 화약식 캐터펄트 등이 있었지만 결함투성이인데다가 구조상 소형 함재기만 발진이 가능하거나 출격시마다 레일등의 중요 부품을 교환해야 하는 등의 단점이 있어서 항상 무거운 함재기를 대량으로 날려야 하는 항공모함에는 채용될 수 없었다. 일본도 캐터펄트를 개발하려고 하였으나 성과가 없었다고 한다.
물론 함대형 항공모함에서는 이게 큰 문제가 되는건 아니었는데 대전 당시만 해도 기본적인 함재기의 이함은 자력으로 이함하는 방식이었다. 함대형 항공모함에서 운용하는 경우라면 대전 말에 투입된 미 해군의 대형 함재기들도 캐터펄트 없이 얼마든지 이함이 가능했다. 어지간한 육상 단발전투기보다 무거운 F4U의 경우 25노트의 바람을 맞을 경우 66m의 이함거리를 가지고 F6F도 같은 조건에서 73m면 충분히 이함이 가능했으며 항공모함들이 30노트 내외의(빠른놈들은 34노트까지도 찍기도 한다.) 최고속력을 가지므로 25노트라는 조건을 달성하는데 어려움은 없다.[40] 이런 캐터펄트가 필수적인 장비가 된것은 함재기의 제트기화 이후의 이야기이다. 물론 저 당시 기준으로도 일단 있으면 없는것 보다는 도움이 되는건 사실이기는 하지만.
문제는 히요처럼 상선을 개조해서 만든 항공모함들은 속력이 느리다보니 함대형 항공모함처럼 함재기에게 충분한 바람을 맞게하는게 불가능했다. 함재기의 성능이 좋아질수록 크고 무거워지는데 일본군의 경우 이런 무거운(그래서 고성능인) 함재기를 운용할 수 있는 항공모함이 그만큼 제한된다는 이야기이다. 반면에 미국의 호위항공모함들은 캐터펄트가 있으므로 어떻게든 함재기를 띄울 수 있었다. 그나마 히요는 나은 편으로, 다이요 같은 소형 항공모함은 느린 속도에 짧은 갑판 탓에 제대로 된 항공기를 운용하는 게 아예 불가능했다.
4.6 개선은 해봤지만...
일본군도 설계 수정을 통해 문제점을 개선하려고 노력했지만, 중량배분 문제와 노천계지 문제는 늘 일본 항공모함을 괴롭혔다. 안습. 또한 설계의 정점은 쇼카쿠급에서 이루어졌지만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는 이미 위의 뻘짓을 전간기에 레인저 1척으로 실험해본 다음, 바로 희대의 명작[41] 항공모함인 요크타운급 항공모함을 건조해냄으로써 여전히 설계사상 및 스펙 등은 미국 항공모함을 뛰어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요크타운급 이후에 등장하게 되는 항공모함은 2차대전기 최강의 항공모함이라 불리던 에식스급 항공모함.. 망했어요.
대공포의 문제점은 이 문서의 상위 문서인 일본군/무기체계 문서에 있는 거지 같은 대공포(...) 항목을 참조하자.(...)
그래도 쇼카쿠급에서 진보한 정규 항공모함 결정체인 다이호가 나오긴 했으나, 일본군에서만 결정체였던 터였고 게다가 타국항모에 비해 문제점이 많았으며 무엇보다 너무 허무하게 날아갔다.
바다 건너 라이벌을 뛰어넘지 못했고 그 라이벌들이 소속된 바다 건너의 미국이 재미없게 나오는 것도 암울한데 데미지 컨트롤 문제는 끝끝내 해결하지 못하였다.[42] 이뭐병... 물론 건조수량에 비해서 미국과 비교하자면 그야말로 처참한 수준이었고,[43] 결국 상선이나 각종 잡배들을 항모로 개조시키면서[44] 항공모함 보유수를 늘리려고 했지만 상대인 미국이 어떤 나라인가 잘 생각해보자... 구체적인 예로는 전쟁 중에 100척 넘게 건조한 호위항공모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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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게 얻어터지는 일본군 항모들 관련 그림들 |
출처 : http://ww2db.com/image.php?image_id=5049 |
1946년, 구레 군항에서 폐함처리되는 아마기 |
전쟁 중 누적된 데미지 때문에 일찍 퇴역하였음에도[45] 영국 항공모함은 현대 항공모함의 기본적 특징인 항공갑판의 장갑화와 전쟁 이후에 쓰일 경사갑판, 증기 캐터펄트, 착함 시스템 등 현대 항공모함의 기초를 닦았다. 미국 항공모함은 이를 계승/발전시켜 현대 항공모함 그 자체로 남게 되는 등, 해전사에 큰 의미를 남겼다. 전술적인 면에서도 영국 항공모함은 타란토 공습을 통해 항공모함의 활용법을 개척했고, 미국 항공모함은 이를 계승/발전시켰다.
하지만 일본 항공모함은 덩치만 클 뿐 단점만 많고 장점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두부살'이라 결국 도태되고 후세에 자신들의 특징을 남기지 못해 영영 멸종하고 말았다. 그나마 이들이 전쟁사에 남긴 족적은 영국군의 타란토 공습과 함께 진주만 공습으로 항공모함을 전함의 들러리가 아닌 해군의 당당한 전략병기로 만들어줬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단지 그것 뿐이라 문제지 근데 그것도 영국군이 먼저잖아[46] 거기까지 까면 불쌍하니까 그만하자. 그런데, 나중엔 항공모함을 몸빵 혹은 미끼로 내던진다. 바로 아래 항목을 보자
4.7 항공모함은 내다 버리는 것
일본군의 항공모함은 실전에선 나름대로 활약한 편이다. 진주만 공습을 훌륭하게 성공시켜 미국의 주력 함대를 문자 그대로 개박살내놓아 미국이 복구에 전념하던 6개월 동안 태평양과 인도양을 마음껏 휘젓고 다녔기에, 일본군은 잠시나마 무적황군의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물론 진주만 공습도 정치적, 전략적으로는 완전한 실패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공식적으로는 중립을 유지하던 미국이 아주 제대로 빡쳐서[47] 프랭클린 델러노 루스벨트의 유명한 치욕의 날 연설과 함께 연합군 측에서 대일선전포고를 했고[48] 공습으로 주력함들의 상당수를 이탈시켰지만 전함만 몇 척 건드렸을 뿐, 유류저장고라든지 잠수함 기지, 함선 수리용 드라이독 같은 시설을 위시한 전쟁수행 역량 자체는 건드리지도 못한데다가[49] 저렇게 격침시킨 전함들은 2척을 제외하면 인양된후 수리받아서 복귀했다.
그 이후, 산호해 해전에서부터 운용의 문제점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포트 모르즈비 침공부대를 호위하기 위해 경항공모함 쇼호를 파견했는데, 쇼카쿠와 즈이카쿠로 구성된 주력부대가 유조선 한 척을 공습하러 간 사이에 미군의 집중공격을 받고 침몰해버린 것. 경항공모함은 혼자서 제공권을 장악하기 힘들기에 정규항모와의 연계를 잘해야 했는데, 손발이 안 맞아서 쇼호를 내다버린 꼴이 되었다.
미드웨이 해전에서도 삽질은 반복된다. 사실 미드웨이 해전 당시 일본군 연합함대는 야마토를 위시한 전함도 투입할 예정이었고 전함 부대는 11척이나 되는 대 부대(!)가 제1, 제2 항공함대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50] 그러나 전함 부대를 앞서 간 항공 함대 역시, 함재기 다수를 잃기는 했어도 배 자체는 멀쩡했던 즈이카쿠를, 항공대를 보충한다며 일본으로 후퇴시킨 것이다. 이렇게 삽질을 한 이유 역시 일본군의 병맛나는 사상이 원인으로 당시 일본군에서는 항공모함 항공대와 항공모함을 세트로 묶어서 봤기 때문에 항공모함 항공대가 배를 옮겨다니며 작전한다는 개념도 없었다. 같은 시각 미국이 대파된 요크타운을 어떻게든 살리려고 밤을 새서 수리하고[51], 다른 데서 항공대를 끌고 와서 보충한 것과는 천지차이. 게다가 AL작전을 실행한다며 류조와 준요를 알류산 열도로 보내버렸고, 이는 나구모 함대가 항공모함 4척만으로 미드웨이로 진격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52] 이후 나구모 함대는 항공모함 4척을 모두 잃는 참패를 당했고, 태평양 전쟁의 주도권은 일본에서 미국으로 넘어간다.
과달카날 전투에서는 항공모함 세력이 모자란다면서 류조를 미끼로 내다 버리고, 산타크루즈 해전으로 함재기를 대거 상실한 즈이카쿠의 항공대를 보충한다며 일본으로 또 돌려보낸다! 결국 과달카날에 남겨진 건 준요 한 척이었고, 그나마도 함재기를 제대로 보충해주지 않아서 제대로 된 활약을 못하게 만들었다. 결국 일본군은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싸운 엔터프라이즈에게 패배했고, 결국 과달카날에서 철수해야 했다.
필리핀 해 해전에서는 경항모를 대놓고 몸빵으로 내세웠다. 당시 일 해군을 지휘했던 오자와 지사부로의 생각은 미 해군이 자신이 지휘하는 본대를 떄리고자 한다면 경항모로 구성된 함대의 상공을 통과해야하므로 상당한 피해를 강요할 수 있고 미끼를 문다면 역시 본대는 안전하다는 계산이었다. 즉, 치토세, 치요다, 즈이호가 탱킹을 하거나 미끼가 되고[53], 그동안 후방에 있는 다이호, 쇼카쿠, 즈이카쿠, 히요, 준요, 류호의 함재기들이 미군을 유린하기 위한 술책이었다. 그러나 미군은 잠수함으로 선제공격을 걸어왔고, 함대가 분산된 탓에 대잠능력도 떨어진 일본군은 핵심전력인 다이호와 쇼카쿠를 잃는다. 이후 미군은 대대적인 칠면조 사냥을 감행, 히요를 침몰시키고 수백 대의 일본기를 떨어뜨렸으며 괌을 초토화시켰다. 이외에도 즈이카쿠와 준요, 전함 하루나가 큰 피해를 입었고, 경항모 치요다와 중순양함 마야도 폭탄을 맞았다. 분대와 본대 모두 미군에게 털렸으니 대실패.
레이테 만 해전에서는 결국 정규항모까지 미끼로 써버렸다. 항공대가 괴멸되어 빈 깡통이 된 항공모함들을 미끼로 사용해서 미국 함대를 꾀어낸 것이다. 미끼 작전 자체는 성공했지만 항공모함 즈이카쿠, 치토세, 치요다, 즈이호는 모조리 격침되었고, 이걸로 일본 항모전단은 사실상 괴멸된다. 항공대의 재건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에 항모를 미끼로 사용한 거지만, 구리다 턴으로 구리다 함대가 철수하면서 미군 상륙부대의 격멸에 실패했고 일본군은 귀중한 항모 4척을 내다 버린 꼴이 되었다.
개장되기 전에 야마토급 전함 3번함이었다가 개장 후 항공모함으로 함종이 바뀐 세계 최대의 항공모함 시나노는 2차 대전 최대의 경험치 셔틀만 되었다. 시나노는 설계상으로는 위에서 언급된 기존 일본 항모의 문제점 대다수가 개선된[54] 이론상 일본 최강의 항모이자 2차대전기 최대의 군함이었다. 그러나 일본군은 이 귀중한 항공모함이 마무리 공사를 위해 구레로 이동할 때 구축함 3척만 달랑 붙여주는 삽질을 저질렀고, 비행기의 엄호를 받지 못한 시나노는 공습을 피하기 위해 밤에 이동했지만 보일러가 제대로 준비되지 않아서 속도도 설계의 60%정도밖에 못내다가 울프팩도 아닌 레이더가 고장나서 그냥 떠 있던 단 한 척의 잠수함[55]에게 따라잡혀서 어뢰 4발을 맞고 도망친답시고 무리하게 속도를 올리고 대미지 컨트롤도 제대로 못하다가 부실공사로 제 기능도 못하는 격벽이 무너져서 물이 쏟아져 들어와서 침몰했다. 시나노에 실려있던 카미카제용 미사일(?!)이 구명도구 역할을 해서 승조원들을 조금이나마 살려줬다는 게 그나마 다행. 일본의 막장 상황을 엄청나게 잘 보여주는 사례다.[56]
5 나도 항공모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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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급 항공전함 |
일본군은 특이한 항공모함을 여러 척 건조했다. 항공전함, 항공순양함, 그리고 잠수 항모가 그것들이다. 이런 배들이 탑재하는 함재기에 대해서는 위에 있는 'XXX 전용기' 항목을 참조하자.
그러나 성능은 일본군의 무기답게 문제가 있었다. 애니메이션에서는 항공전함이 전쟁의 주역으로 활약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건 만화니까 가능한거고,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전함으로서의 능력도 뒤떨어지고 항공모함으로서의 능력도 뒤떨어졌으니,[57]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한 마리도 못 잡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5.1 성능
항공전함과 항공순양함, 잠수항모 등은 항공모함과 다른 배의 기능을 합친 것이므로 항공모함으로서의 기능이 심하게 제약을 받는다. 항공전함만 봐도 절반은 전함이고 나머지 절반은 항공모함이니 공간이 그만큼 모자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항공모함에 쓰이는 일반적인 함재기를 탑재하면 이함은 가능해도 착함은 불가능했다. 갑판이 좁아서 착함을 위한 공간이 없었던 것이다. 수상기를 싣는다면 바다에 착수시켜서 회수할 수 있지만, 역시 회수시간이 만만치 않게 걸리는데다가 그 수상기의 생산이 늦어져서 제대로 써먹지 못했다.
탑재량도 문제가 되었다. 잠수항모의 함재기 탑재량은 3대밖에 안 되며, 가장 거대한 이세급 항공전함도 22대가 한계였다. 치토세급 경항공모함의 함재기가 30대이고, 그쪽은 그나마 정상적인 함재기를 탑재하므로 경항공모함보다도 열세인 셈이다.
문제점을 더 보고 싶으면 항공전함과 잠수 항모 항목 참조.
5.2 개발 원인
이런 어정쩡한 개조 항공모함들이 나온 이유는 전황이 나빠져 항공모함 댓수가 부족해 빵꾸난 전력을 메꾸려는 의도도 있었고, 항모가 아닌 다른 배가 정찰기 운용을 전담하게끔 하려는 목적도 있었으나 결정적으로 공업력이 후달려서(...) 항공모함의 대량건조가 불가능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58] 그것 때문에 일본 해군은 이상할 정도로 항공모함 급이 많은데... 기본적으로 만들어둔 항공모함들이란 것들이 뭔가가 어정쩡하거나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기에(위의 일본 항공모함 항목 참조) 그걸 개량하느라(...) 삽질을 한 것도 있으며 애초에 후달리는 공업력 덕분에 상선이고 순양함이고 온갖 잡배들을 항공모함으로 개조한 것. 위의 항공전함이나 항공순양함도 위의 이유 때문에 탄생한 망작들.
5.3 실전에서의 전과
모가미급 중순양함 모가미
- 중순양함 시절에는 남방작전에 참가, 일본 육군의 강습상륙함 신슈마루와 육군 수송선 다수를 격침시키는 전과(?)를 올렸다. 이후 미드웨이 해전에서 자매함 미쿠마와 충돌해서 대파되었고, 항공순양함으로 개장된 후에는 함재기가 없어서 그냥 순양함으로 활동하다가 레이테 만 해전에서 중순양함 나치의 충각공격으로 대파되어 처분되었다. 전과? 그런 거 없다.
- 울리시 환초 공격을 위해 출격했으나, 공습을 시작하기도 전에 전쟁이 끝났다. 이후 미군에게 조사를 받고 침몰 처분되었다. 전과? 그런 거 없다.
오요도급 경순양함 오요도
- 함재기 자체도 문제가 있었거니와 전용 함재기의 생산댓수가 12대뿐이라 항공순양함으로는 별다른 활약상이 없다. 이후 대형 사출기를 제거하고 사령부 시설을 설치해서 연합함대 기함으로 개장되었으나 레이테 만 해전에서는 "기함으로 쓰기엔 너무 좁다"는 이유로 예비 기함으로 참가했다.
기함으로 개장되었다면서요?이후에는 레호 작전에서 활약했으며, 최후에는 구레 군항 공습에서 미군의 공격으로 자빠져서 격침.
이세급 전함 이세, 휴가
- 레이테 만 해전에 미끼 역할로 참전했지만, 함재기가 없어서 그냥 전함으로 출격했다. 이세와 휴가는 살아남았지만 레이테 만 해전은 일본군의 참패로 끝났다. 이후에는 북호작전에 참가, 중형 화물선 1척 만큼의 물자를 일본에 실어오는 데 성공했다.
작전에 참가한 배들이 적재한 물자를 다 합쳐야 중형 화물선 1척 뿐이라는 게 안습이후에는 구레 군항 공습으로 두 척 모두 격침되었으나, 일본에서는 전후생존함이라고 우기고 있다.
토네급 중순양함 토네, 치쿠마
- 일본군 항모전단의 눈 역할을 하는 수상정찰기의 운용 플랫폼으로서 전쟁기간 내내 활약했다. 그러나 포격전 능력은 별로 좋지 않았고, 미드웨이 해전에서 정찰에 실패했으며 토네가 베허호 사건을 일으켜 민간인을 학살했고, 치쿠마가 함대 사령관의 명령을 무시하고 기함의 머리 위로 포격을 가하는 등 막장 행각을 보여줬다. 이후 치쿠마는 레이테 만 해전에서 호위구축함에게 얻어터지는 등의 추태를 보이며 가라앉았고, 토네는 살아서 일본에 돌아왔지만 구레 군항 공습에서 미군에게 격침되었다. 일본에서는 토네가 전후생존함이라고 우기고 있으나,[59] 미군에선 격침으로 판정.
6 전함
전함의 경우 영국의 영향을 크게 받았는데, 라이온급 순양전함을 개량한 공고급 순양전함을 도입하는 것으로 인해 설계 사상은 일부 분야에 있어서는 상당히 발전된 편이었다. 그러나 일부만 그렇다는 게 안습.
6.1 내 마스트는 하늘을 뚫을 마스트다!
일본군은 기본적으로 레이더의 성능이 떨어져서[60] 전투시 적함을 견시, 즉 정찰병의 육안으로 확인해야 했다.[61] 이 문서의 상위 문서인 일본군/무기체계 문서의 레이더 항목에도 보면 나오지만, 태평양 전쟁 초반에 활약한 아카기, 카가 같은 항공모함들에도 레이더가 없었다. 그래서 이런 배들은 견시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으니 저고도, 중고도에서 기동하는 전투기들은 알 수 있지만 이들보다 고고도에서 기동하는 급강하 폭격기들은 감지할 방법도 없었다. 미드웨이 해전에서의 대역전극인 운명의 5분을 알린 "敵機直上、急降下! (적기가 바로 위에 있다, 급강하 중!)"도 항공모함 카가의 견시원이 고고도에서 급강하중인 엔터프라이즈 소속 급강하폭격기들을 발견하고 뒤늦게 외친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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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소급 전함의 파고다 마스트와 2연장 주포탑 6기를 탑재한 모습 |
이러한 일본군 전함 특유의 높디높은 함상 구조물을 파고다 마스트(Pagoda Mast)라고 부른다. 말 그대로 탑 같은 함교라는 소리인데, 이게 좋은 소리는 결코 아니다. 특히 후소의 경우 이 파고다 마스트가 수면에서 40미터 넘게 올라가기도 할 정도니 말 다한 셈. 그런데 이런 현상이 항공모함에서는 정반대로 일어났다. 이 문서의 항공모함 부분에 있는 미니 함교 문단을 읽어보자.
이런 문제가 생긴 것은 일본군이 레이더 기술이 뒤쳐진 것과 함께 함포의 3연장화 기술의 실용화가 늦어졌기 때문이다. 야마토급 전함 이전까지 일본군 전함은 2연장 주포탑을 채용할 수 밖에 없었고, 이 때문에 같은 화력(주포 수)을 얻기 위해서 3, 4연장 주포탑이면 3-4기로 충분할 것을 2연장 포탑을 쓰다보니 주포탑을 6기까지 탑재해야 했다. 결국 함선 전체에서 주포탑을 설치할 곳과, 주포의 사격 및 회전을 위해 비워놓아야 할 공간을 빼고 나면 다른 시설을 설치할 공간이 없었다. 결국 개량을 위해 뭔가 추가시설을 설치하자니 그나마 장착할 위치가 함교밖에 없어서 이것저것 덕지덕지 붙이다보니 마스트가 석탑같이 변해버린 것이다. 이런 높다란 마스트 때문에 무게중심이 너무 높아져 악천후시 배가 좌초할 가능성이 커지고, 함교가 포탄이나 폭탄 등에 피격당하면 함교의 시설이 전부 개발살나서 손상 범위에 비해 피해규모가 커지는 등의 문제점이 산적했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반영해 건조한 야마토급 전함에서는 드디어 자체적인 3연장 주포탑 제조 기술이 적용되었고, 그로 인해 9문의 주포를 가지면서도 주포탑을 3기만 탑재하게 되어 함체 배수량에 넉넉한 여유가 생겼고, 이로 인해 함교에 꼭 필요한 시설물 이외의 공간은 함체로 분산 배치하고 대공포를 다수 증설하며 기타 시설을 증강하는 등 혁신이 이루어졌다. 다만 고질적인 레이더 문제로 인해 파고다 마스트 문제는 여전했으며, 애초에 야마토급 전함들은 덩치부터가 이전까지의 일본군 함종을 막론하고 가장 컸기에 마스트의 높이는 상대적으로 낮아졌지만, 절대적인 높이로는 가장 높았다.
하지만 이런 야마토가 전장에 나섰을 때에는 이미 전함의 시대, 거함거포주의의 시대는 일본군 자신들의 손에 의해 끝이 도래하고 있었다. 그리고 전장에 나선 야마토급 자매를 기다렸던 건 미국 해군의 최신형 전함이 아닌, 항공모함 전단의 대규모 함재기 편대였다.
그리고 항공모함 함교 항목을 보면 나오듯 항모의 함교가 있어도 없다시피 할 정도로 작거나, 아예 비행갑판 아래의 창문을 함교로 삼으니 일본군은 항공모함과 전함의 개념 자체부터 단단히 잘못 생각한 게 틀림없다.
6.2 화력
함포의 공격력과 명중률이 평균 미달이라 이런 점을 최우선으로 개선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62] 지나칠 정도로 수중탄의 개념에 병적으로 집착했다.
수중탄이란 것은 적함에 착탄하는 게 아닌 바다에 착탄된 포탄이 어뢰의 효과를 내는 것처럼 물속을 파고들어 흘수선 밑을 공격한다는 개념으로 만들어진 포탄이다. 당연히 물 속에 들어가서 흘수선을 타격해야 하니 신관의 민감도를 줄여서 최대한 둔감하게 만들어야 했지만... 이와 반대급부로 지나치게 둔감한 신관은 적함에 직접 명중할 경우 현측장갑 등 제대로 방어장갑을 두른 부위에는 신관이 작동하기도 전에 포탄이 착탄의 충격으로 부서져서 불발되었고, 비장갑구획이나 구축함같이 장갑이 빈약한 목표에는 신관이 작동하기도 전에 포탄이 함선을 완전 관통한 후 밖으로 빠져나가서 바람구멍 두 개만 뚫어놓는 등 엄청난 위력 저하가 일어난다. 안 그래도 포탄을 정확하게 함선에 명중시키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명중한 포탄이 터지지도 않는 바람에 적 함선이 멀쩡하다면...
무엇보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는 전함이란 물건은 대응방어개념과 집중방어 개념이 확실해져서 더더욱 침몰시키기 힘들어졌고 전투 교리도 적함의 격침보단 주요 무장의 무력화가 우선시되는 교리로 바뀌는 판국에, 대갑판 타격능력이 아닌 흘수선 타격을 극대화한 나치 독일 해군 전함들처럼 일본군 전함도 시대에 뒤떨어진 망상의 결과물이 되어 버렸다.
또 다른 문제로 타국에 비해서 주포의 3연장화가 늦었다는 점도 있다. 미국이 1916년에(네바다급) 영국이 1927년에(넬슨급) 3연장포를 탑재한 전함을 배치한것에 비해서 일본은 1941년에 야마토급 전함으로 와서야 3연장 주포를 탑재한 전함을 배치하였다. 미국과 비교하면 25년이고 영국과 비교해도 14년 이상 늦은 셈이다. 해군 조약으로 1936년 까지 신조 전함이 없었던 시기가 중간에 들어가있지 않는가 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겠지만 영국은 1922년에 넬슨급을 주문하였고 이때 3연장포를 탑재하는것을 요구하였다. 반면 일본이 해군조약으로 1922년에 취소한 전함의[63] 경우 2연장포탑 4기를 탑재하고 있다. 한마디로 3연장 주포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 자체가 타국에 비해서 늦었다는 말이다. 이것 때문에 나온 문제가 바로 위에도 나온 파고다 마스트.
6.3 방어력
방어력 또한 문제인데 일본 해군 군함은 장갑의 재질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있다. 물론 신규공업국으로서 개도국 강재에 대한 열처리나 침탄처리 등에 미숙한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며, 이 때문에 미국의 함선용 장갑보다 13% 정도 약했다는 문제점이 존재한다.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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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인치 Mark 6으로 쏜 철갑탄에 관통된 야마토급 전함[64]의 660mm 주포탑 전면장갑 |
이 약한 장갑재는 중순양함의 사격에 측면이 꿰뚫리는 공고급 순양전함 히에이 등의 사례를 제하더라도,[66] 실제 전후의 실험에서 야마토급 전함의 포탑 전면장갑 660mm를 16인치 Mark 6으로 관통한 사례까지 나왔다.### 그러나 이 실험은 0도 각도로 실험한 것이라서 실제로는 야마토급 전함의 주포탑 전면장갑은 관통하는 것이 어렵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야마토급 전함의 장갑 중 두번째로 두꺼운 측면장갑은 주포탑 전면장갑보다 한참 앏은 410mm로, 일본 강판의 기술력 부족으로 인한 재질 저하 및 13,716m에서 미국제 측면장갑 520mm를 관통하는 Mark 6의 위력을 생각하면 경사장갑을 적용하더라도 충분하게 사우스다코타급 전함이 야마토급 전함의 측면장갑을 뚫을 수 있다.[67] 따라서 충분히 18인치급 철갑탄을 막아야 할 야마토급 전함의 측면 주장갑을 구경이 2인치나 작은 사우스다코타의 16인치 함포에서 발사된 철갑탄이 관통해버리므로 자신이 쏜 포탄과 동급의 포탄을 맞으며 버텨야 할 전함의 기본 능력조차 보장하지도 못하는 수준이었다. 이건 매우 심각한 문제인데 전함은 적어도 2인치나 작은 주포의 사격 정도는 영거리 사격 수준의 근거리에서도 어느 정도는 막아내야 진정한 전함으로 활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68]
물론 선체 내의 방어력을 위한 방어 구조등은 영국의 라이온급 순양전함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많이 참고를 했으니 상당히 뛰어난 면모를 보이긴 했다. 하지만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리벳접합 방식을 고수한 결과 같은 규모의 선체에 같은 두께의 장갑을 쳐발랐다면 일본쪽의 선체가 더 무겁다라는 등식은 거의 참이 되어 버린다.
다만 종종 거론되는 리벳접합의 경우에는 다소 애매하다. 일단 당시 대부분의 전함들은 리벳접합방식을 사용한 경우가 많은데 킹 조지 5세급 전함이나 아이오와급 전함들도 리벳접합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즉, 리벳접합방식 자체가 뒤떨어진 방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일본 전함들은 야마토급 이전의 전함들은 대미지 컨트롤에 대한 정성이 심히 부족했는데, 심지어 준수한 성능이라는 공고급 순양전함과 나가토급 전함에 함선 측면에 케이스메이트 포곽식 함포가 존재했을 정도다. 이런 포곽식 측면함포는 대포의 상하좌우각도에 심각한 제한을 가져오고, 현측장갑에 구멍을 뚫고 만들어지므로 취약점을 늘리는데다가, 전열함처럼 후방을 측면에 배치된 모든 부포가 공유하므로 단 1곳만 전함의 포탄이 관통해서 폭발하면 연쇄폭발이 일어난다. 그렇다고 장갑이 두꺼운 것도 아니라서 부포곽이 있는 부위의 측면장갑은 고작 152mm 수준인데다가 포곽의 포방패는 51mm 수준이다. 그래서 타국에서는 나중에 함선을 개장할 때 포곽식 측면함포는 모두 제거하고 선회포탑식으로 따로 만드는데, 일본만은 함선을 개장하더라도 부포의 포문이 감소해서 전투능력이 저하된다는 이유로 인해 포곽식 함포를 고수한 것이다. 따라서 일부 구획에 있어선 그야말로 종잇장같은 장갑을 가지고 있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으며 그만큼 위험피격구획이 많으니 탄약고가 터져 화재가 발생할 확률은 극도로 높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문제에 대해 일본에서도 할 말은 있긴 했다. 일단 공고급은 1차대전 전에 영국에 주문하여 설계/건조된 배이다. 당시 공고와 같은 시기에 건조된 대부분의 배들도 저런 방식이었다. 다만 공고급 1번함은 영국에서 건조되었고 2번함 부터는 일본에서 건조되었다. 후에 개장할때 2번함 3번함에 사용한 드릴을 1번함에 사용하려고 하니 구멍이 안 나서 영국에서 공구를 수입해서 개장했다는 일화가 있다.[69] 나가토 역시 1차대전 중에 설계/건조된 배고 2차대전 전까지 미친듯이 개조해 장갑을 강화하고 화력은 처음부터 410mm 주포를 장비해 강력했고 기동성도 처음부터 매우 뛰어나 미친듯이 장갑을 처발라 배수량이 늘어났는 데도 동시기 건조된 영/미의 동급함보다도 여전히 빨랐다. 데미지 컨트롤에 대한 정성이 부족한 건 맞지만 적어도 2차대전시기의 신전함과 비교해 설계면에서 떨어지는 부분을 까는 건 이들 전함들이 1차대전형 전함이라는걸 어느 정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변명을 감안하더라도 2차대전 전까지 수차례나 함 전체를 뒤집어엎는 수준의 대규모 개장공사를 했음에도 장갑을 덧붙이는 데만 신경썼지 이런 취약점을 개선하지 않은 것은 확실한 문제다. 한마디로 일본 해군은 이런 문제를 알아챌 개념이 없었다는 이야기다.[70]
거기에 일본 전함의 주포 탄약보관 방식으로 영국의 코다이트식 장약과 영국식 보관법을 그대로 베껴버리는 삽질을 저질렀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해군 순양전함의 폭침에 대해 코다이트식 장약과 보관법이 큰 문제가 되었다고 하는데, 이걸 일본이 멋모르고 베껴버린 것. 이렇게 되어버리니 탄약고 유폭은 피할 수가 없었고 데미지 컨트롤 능력은 바닥을 기었다. 또한 함상구조물이 쌓아놓은 게 많으니 조금만 경사를 줘도 배가 뒤엎어졌다. 이 때문에 뻑하면 탄약고에 불이 붙어서 펑, 혹은 제풀에 못 이겨 펑 해버리는 것은 일본 전함의 종족 특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 일류수준의 산소어뢰를 개발했던 국가치고 어뢰 방어력도 한심할 수준으로 낮았다는 것 또한 큰 문제였다. 일본 전함의 최종지표였던 야마토급 전함도 미국 잠수함이 날린 어뢰 한 발 맞고 3천톤의 침수를 당해 긴급회항했다는 사실과, 야마토급 3번함의 함체를 그대로 유용했던 시나노의 어이없는 최후를 보면 문제가 무엇인지 명확해진다. 만일 일본 전함들이 함대결전을 위해 일제히 출항하고, 그것들을 미국 잠수함대가 일제히 기습했다면 잠수함의 역사에 남을 기록적인 대전과가 나왔을 지도 모른다(...). 이미 실전에서 그렇게 될 뻔한 적이 있다는 게 함정[71]
또한 자기네들이 진주만 공습 때처럼 항공모함을 굴리는데도 야마토급 전함을 제외하면 방공에 대한 개념 자체가 존재하질 않아 항공기만 오면 알아서 기어야 했다. 일본군의 대공포 자체가 막장이기 때문이다. 이 문서의 상위 문서인 일본군/무기체계 문서에 있는 거지같은 대공포 항목(...)을 참고하자(...).
6.4 전술교리의 문제
일본군의 전함에 대한 전술교리는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함대결전사상에 끝까지 집착해 전함을 써먹질 않은 것. 2차대전은 전함의 황혼기로, 훨씬 먼 거리에서 피해를 줄 수 있는 항공모함이 실전적인걸 넘어 항공기의 발전에 힘입어 최주력함이 되면서 전함은 최주력함에서는 밀려났다고 할 수 있다. 그 시대를 직접 연 장본인인 일본해군은 항모기동부대보다 전함간의 함대결전을 마지막까지도 신봉했고, 그래서 노령함인 공고급 순양전함을 제외한 나머지 전함은 제대로 일도 안 하고 놀다가 다들 불행한 최후를 맞이했다. 뭐 항모기동부대를 중심으로 꾸리고싶어도 항공기술이 그 꼬라지여서야 불가능하겠지만 그렇다고 전함들을 항구에 처박아놓은것에 대한 변명은 안 된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항공모함을 신봉했다. 그러나 미드웨이에서 주력항모들을 모두 잃게 된다.
둘째로는 대지상포격을 거의 하지 않은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허리가 나가도록 구르는 공고급을 제외한 모든 일본전함은 대지상포격에 신경도 안 썼다. 일제가 그렇게 혐오하던 귀축영미의 전함들은 수상전투가 없을 때 대지상지원에 집중했으며 소련전함 마라는 아예 레닌그라드의 수호신이 된 마당에 이 짓거리는 전쟁에서 이길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원인은 크게 두가지로, 함대결전사상에 집착하느라 전함을 그런 사소한임무에 보내지 않은 것이라는 것과 육해군이 아예 견원지간이라는것이 환상적인 시너지를 낸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6.5 실전에서의 전과
그래도 전장에서 고군분투했다면, 94식 산포처럼 성능에 비해 적절히 활약했다는 평가라도 받을 수 있었겠지만, 사실상 제대로 싸운 건 공고급 순양전함 정도다. 그럼 나머지 전함들은 뭐하고 있었냐고? 미 해군과의 결전을 대비한답시고 항구에 정박해서 놀고 있었다![72] 야마토 같은 경우엔 '야마토 호텔'이라는 별명까지 붙었을 정도이고, 일본 해군의 항공모함이 전멸한 이후에는 미군의 밥이 되어 전과다운 전과도 세우지 못한 채 침몰해갔다.
- 태생 자체가 순양전함이라 제대로된 전함과 맞짱 뜰 스펙도 아니거니와 태평양 전쟁 당시에는 이미 함령이 30년이 넘은 노령이었기에 제대로된 함대결전에서는 쓸모가 없다는 이유로 주력에서 제외되었다. 이때문에 전함이 필요한 임무에 이리저리 굴러다녔고 공고를 포함한 4척 모두 태평양을 바쁘게 내달리며 미군과 싸우다가 최후를 맞이했다. 하지만 그런 개고생이 무색하지 않게 일본군 전함 중에서는 가장 많은 전공을 세운 최고의 수훈함이 되었고 쇼카쿠급 항공모함과 함께 일본군에서 가장 빛나는 전공을 가졌다. 특히 자매함중에서는 1번함 공고가 가장 높게 평가받는다.
공고가 영국제라는 게 함정
후소급 전함 후소, 야마시로
- 레이테 만 해전에서 두 척 모두 침몰했다. 전과? 그런 거 없다.
- 두 척 모두 항공전함으로 개장되었다. '나도 항공모함이다' 문단 참조. 전함 시절의 전과는 그런 거 없다.
나가토급 전함 나가토, 무츠
- 나가토는 레이테 만 해전에서 미군 구축함 USS 히어만에게 쫓겨 달아났고, 무츠는 동부 솔로몬 해전에서 순양함들을 쫓아가지 못하고 낙오되었다. 둘의 최후는 더더욱 안습해서 전후 생존함으로서 미국이 접수한 나가토는 비키니섬 핵실험의 희생양이 되었고 무츠는 항구에 계류중인 상태에서 원인 불명의 이유로 발생한 주포탑 탄약고의 화재에 의한 유폭 때문에 폭침당했다. 특히 핵실험의 희생양이 된 나가토는 비키니섬 핵실험 당시 핵을 한번 맞은 게 아니라 두 번 맞았다. 전과? 그런 거 없다.
- 야마토는 레이테 만 해전에서 미군 구축함 USS 히어만에게 쫓겨 달아나는 굴욕을 맛보았고, 이후 오키나와에서 일본 수뇌부의 체면을 세우기 위해 마지막 출격에 나서 개죽음을 당했다. 무사시는 레이테 만 해전에서 탱커 역할을 수행한 후 침몰했고, 시나노는 항공모함으로 개장되었지만 작전에 나가기도 전에 미군 잠수함에게 걸려 침몰했다.[73] 그나마 언급할 수훈은 무사시의 탱커 노릇 정도.
7 중순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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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순양함에서 변신한 토네급 중순양함 | 아오바급 중순양함 |
일본군의 중순양함은 일본 해군이 만든 함선중에서 가장 전투력이 높고 성능이 뛰어난 함선들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그리고 실제로도 일본군의 중순양함은 일본군의 다른 함선에 비해서는 훌륭한 점이 많다. 하지만 아래에 언급되는 각종 이유로 인해 잘해봐야 뛰어난 구식으로 전락해버리는 수모를 겪게 된다.
7.1 컨셉 실패
가장 중요한 문제는 컨셉을 잘못 잡았고, 그 컨셉에 올인했다는 것이다. 원래 중순양함은 전함의 대역인 성격이 짙다. 그래서 함대결전에서 전함을 보조하는 것은 기본이고, 순양함답게 장거리 항속성능을 살려서 구축함과 같이 통상파괴작전을 하거나, 대공방어를 전담하는 등 다방면으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하지만 일본군은 중순양함을 함대결전시 산소어뢰를 가지고 야간에 미국의 전함전대를 습격하는 용도로만 쓸 생각으로 건조했으며, 해당 컨셉에 맞게 특화시켰다. 이런 점은 구축함 등 일본의 다른 함선들도 마찬가지였으나, 중순양함에서 특히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다.
- 과무장과 무게중심 상승 - 경순양함을 제외한 순양함 이하급의 함선이 모두 가진 약점이다. 이는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과 런던 해군 군축조약으로 인해 보조함선의 수량과 배수량이 제한을 받자, 개별 함선의 전투력을 너무 심하게 강화시키려는 조치에서 온 것이다. 그 결과 일본군의 중순양함도 배수량에 비해서 과무장을 하고, 함선의 출력을 크게 늘려서 고속을 내도록 만들어졌다. 따라서 무게중심이 크게 상승했으며, 이런 문제는 우학 사건과 제4함대 사건을 겪고 나서야 함체를 강화하고 무게중심을 조절하는 후속조치가 진행되면서 해결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배수량에 비해서는 과무장이었고, 무게중심도 높은 편이었다.
- 종이장갑 - 앞의 문단에서 언급되었지만, 과무장을 하게 되었는데 속도가 빨라야 하므로, 배수량이 제한된 상태에서는 어딘가 희생해야 할 항목이 발생했다. 여기서 일본군은 장갑을 크게 줄이는 선택을 하고 만다. 그래서 타국의 중순양함에 비해 현측장갑등 모든 면에서 장갑이 부족하며, 이는 조약 탈퇴 후에도 별로 변하지 않았다. 특히 이런 문제가 심한 곳은 주포탑과 바벳이었다. 미국의 중순양함이 포탑에는 적어도 5인치(=약 127mm)의 장갑을 설치한 데 반해, 일본군의 중순양함의 포탑은 고작 파편방어수준인 25mm의 경장갑을 달며, 바벳도 평균 33mm라는 엽기적인 두께를 자랑한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일 해군만의 문제가 아니라 조약형 중순양함 자체의 한계에 가깝다. 영국의 카운티급 중순양함이나 요크급 중순양함도 포탑 장갑이 1인치(이정도면 25mm보다 조금 두꺼운 수준밖에 안된다.) 수준이며 미국의 중순양함들은 그래도 사정이 양호했지만 뉴올리언스급에 가서야 제대로된 대응방어를 갖추었다.[74] 그 이전의 순양함들은 일 해군보다 사정이 좀 낮기는 하지만 포탑 장갑이 부실한건 마찬가지였다. 어디의 조약위반함처럼 하지 않는 이상 조약형 중순양함으로 대응방어를 충실하 갖추기는 애초에 무리가 있다. 미국이야 3연장포를 달았기에 뉴올리언스급에서는 어찌저찌 달성했지만 다른 나라들은 애초에 3연장포도 없는 상태였고 일본은 주포탑을 5개씩 올려서 이런 문제가 타국에 비해서 더 심각했던것은 사실이나 애초에 조약형 중순양함중 이런 조건을 달성한것은 미 해군 순양함중 일부라는것을 감안할 필요는 있다.[75]
- 그래도 기관총 사격으로 격침된 중순양함이 없다는 게 위안인데, 그럴 뻔한 중순양함이 있긴 했다. 사연의 주인공은 아오바로, 사보섬 해전에서 기관총탄에 어뢰발사관이 피격되면서 거기에 있던 산소어뢰에 불이 난 적이 있다. 그러나 아오바는
일본군답지 않게재빠른 대처로 불을 껐기에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 짧은 항속거리 - 순양함은 그 이름처럼 장거리 순찰을 위해서라도 항속거리가 길어야 한다. 하지만 타국의 중순양함이 10,000해리 이상의 항속거리를 가진 데 비해 일본군의 중순양함은 항속거리가 8,000해리 이하인 경우가 대다수다. 이렇게 항속거리가 짧아진 이유는 앞서 말한 컨셉의 실수로 인해 굳이 원거리까지 항해할 필요가 적다는 것도 있지만, 연료를 많이 잡아먹는다고 연료탱크를 줄이라는 뻘짓 지시가 더 큰 원인이었다. 심지어 묘코급 중순양함이나 타카오급 중순양함은 대개장시 연료 탑재량을 일부러 축소하는 짓거리까지 했다. 애초에 연료에 그렇게 신경을 썼다면 큰 연료탱크에 작은 양의 연료만 넣으면 될 것이지 굳이 연료탱크를 줄일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 삽질은 전함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는데 전함은 그 특성상 항공모함 같은 다른 주력함이나 보조함들의 연료탱크 역할도 할수 있는데 이걸 무시한 것.
근데 항공기는 왜 항속거리를 그렇게 늘린건지 모르겠다.[76]
- 주포탑에 얽힌 슬픈 전설 - 일본 해군은 타국보다 가장 먼저 8인치급의 주포를 순양함에 장착하려고 노력했으며, 나름대로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벌어진 일은 슬픈 전설에 가깝다. 최초의 중순양함인 후루타카급 중순양함의 경우, 8인치급 주포를 장착하는데 성공했지만, 포신이 포탑당 1개인 단장 주포탑인데다가 제대로 된 바벳 시설도 없이 110kg의 중량을 자랑하는 8인치급 포탄을 인력으로 운반, 장전하는 엽기적인 구조를 가졌다. 덕분에 장전 속도가 시망급이었으며, 전투 효율도 크게 떨어지는 개뻘짓이 돼버렸다. 결국 아오바급 중순양함에서 기계장치의 도움을 받아 장전하는 2연장 주포탑을 채용했고, 후루타카급도 나중에 2연장 주포탑을 탑재한다. 그 다음에 등장한 3년식 8인치 50구경 2연장 주포탑의 경우, 앞서 말한 종이장갑 문제뿐 아니라, 전함에서 설명한 것처럼, 인접한 포신에서 발사된 포탄이 간섭현상을 일으켜서 영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는 증상이 발생해버렸다. 이는 포신중 하나를 0.3초 정도 지연발사하는 능력 추가로 해결했지만, 이미 러일전쟁에서 전함의 2연장 주포탑을 운용해본 일본 해군이 더 큰 대포도 아니고 보조함의 소형 주포에서 이런 어이없는 실수를 경험했다는 것 자체가 더 신기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이미 미국은 전간기에 8인치 주포의 3연장화에 성공한지 오래였다. 하지만 일본군은 패전할 때까지 8인치 주포탑의 3연장화를 시도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들은 2연장 주포탑의 포 한문만 사격하고 조준을 수정해서 다른 1문을 사격한다는 교대사격을 하므로 다연장 포탑이 필요없다는 자기합리화까지 시전한다. 덕분에 미국이 8인치 주포를 9문 탑재할 경우에는 주포탑이 3기만 필요하지만, 일본군은 2연장 주포탑밖에 없어서 10문을 탑재하기 위해 주포탑을 5기나 배치해야 했으며, 덕분에 특유의 구조인 3번 포탑의 역행배치가 나오게 된다. 이런 식으로 공간을 낭비하면서 동시에 일부 주포의 사계를 제한하게 되는 비효율성은 다른 것에도 큰 영향을 준다. 물론 8인치 주포의 3연장화를 성공한건 미국이 유일하기는 했고 다른 나라들도 전부 2연장에서 만족하기는 했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은 2연장 포탑 4기로 8기의 주포를 올리는데 만족했지만 일본은 다소 무리를 해가면서까지 10문을 확보하려고 했으면서도 끝까지 3연장 포탑을 개발하지 않았다.
- 부족한 부포와 대공포 - 앞서 언급되었듯 8인치 주포를 최대 10문이나 장착해야 했고, 주포탑이 2연장밖에 없으므로 부포나 대공포를 설치할 공간과 배수량이 매우 부족해졌다. 안 그래도 전함이나 항공모함에 비해 제대로 된 지원을 못받는 상황에서 이런 문제까지 겹치니 부포와 대공포는 그냥 약방의 감초식으로 조금 달아주는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덕분에 적군의 경순양함이나 구축함처럼 빠르게 접근하는 물건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고, 항공기만 만나면 그냥 표적으로 전락해버린다. 물론 다른 함선들에 비해서는 속도가 빠르지만, 구축함처럼 민첩한 것도 아니니 적의 폭격에 매우 취약했다.
- 산소어뢰 탑재 - 그야말로 양날의 검인 항목이다. 원래 일본군의 중순양함은 산소어뢰를 탑재하기 때문에 뇌격능력을 크게 평가받았으며, 실제 성과도 있었다. 그래서 산소어뢰를 탑재한 것 자체가 함선의 평가를 상승시키기도 했다. 문제는 산소어뢰는 그야말로 순산소 + 가연물질 + 화약인 물건이고, 어뢰발사관이 그렇게 중장갑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초기의 중순양함은 제대로 된 장갑도 안 붙이고 함체 중앙에 어뢰발사관을 위치시켰으며, 나중의 함선들도 함체 후부에 놓긴 했으나 주포탑에도 장갑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어뢰발사관 따위에 장갑을 충실하게 붙일 이유가 없으므로 별로 장갑을 추가한 것도 아니라서 비행기가 기총소사를 제대로 갈기면 어뢰발사관이 대폭발하면서 중순양함이 굉침한다.[77] 게다가 이건 항공기뿐 아니라 구축함이나 어뢰정의 소형 함포로도 가능한 일이라서 큰 약점으로 작용한다. 결국 레이테 만 해전의 사미르 해전에서 긴급출격하느라고 미처 무장을 제대로 못갖춘 함재기에게조차 중순양함이 맥없이 당하게 된다. 그리고 다카오급 중순 4번함 초카이는 호위항모에서 날린 5인치포에 산소어뢰가 유폭하는 바람에 엔진과 방향타가 맛이 가서 기동불능이 되었고, 함재기의 500파운드 폭탄을 맞고 대화제가 발생해서 후지나미에게 처분당했다. 아오바처럼 산소어뢰가 유폭하고도 살아남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건 해안가에 전력으로 돌진해서 좌초하는데 성공했기에 그런 거고, 바다 위에서 피격을 당하면 그냥 망했어요.
- 거지같은 주거 및 복지시설 - 원래 일본군의 함선이 승무원에게 거지같은 환경을 제공한다는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일본군의 중순양함은 특히 이런 증상이 심해서 묘코급 중순양함 3번함 아시가라가 관함식에 참석하러 갔다가 영국 기자에게서 "나는 오늘 처음으로 진정한 군함을 보았다. 지금까지 본 것은 전부 여객선이었다"는 찬사(?)를 들을 지경이었다. 문제는 순양함은 다른 함선과는 달리 긴 항해를 하는 경우가 많아서 승무원들이 느끼는 고충이 상당했으며, 전투효율에도 매우 안 좋은 영향을 주었다는 점이다. 타국이 순양함의 주거 및 복지시설에 괜히 신경을 쓰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일본군은 끝까지 인식하지 못했다.
- 꼼수의 말로 - 모가미급 중순양함처럼 경순양함을 제조하는 척 하다가 주포만 빼면 중순양함을 만드는 등 조약의 헛점을 이용한 꼼수를 부리다가 이걸 적발해낸 미국과 영국이 맞불 작전에 들어가면서 숫자면에서도 크게 밀리게 되는 악수를 두었다. 게다가 모가미급은 경순양함을 제조하는 척하느라 본격적인 중순양함보다 배수량이 약간 적었기에, 위의 문제가 증폭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7.2 실전에서의 전과
위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의 중순양함은 나름대로 활약했다. 공고급을 제외한 전함들은 놀고 있으니 중순양함이 개고생을 할 수 밖에 없어서였으나, 혹사의 대가로 일본군 군함 중에서도 최대의 손실을 기록했다. 모가미급과 토네급은 일본군의 공식적인 분류에 따르면 경순양함이지만, 중순양함을 건조하기 위해 일본이 꼼수를 쓴 것이므로 연합군에서는 중순양함으로 간주하며, 전후 일본에서도 중순양함으로 보고 있다.
- 제 6전대의 일원으로 괌 전투부터 과달카날 전투까지 많은 활약을 했으나, 2번함 카코는 사보섬 해전 이후 귀환하다가 미군 잠수함에게 격침되었고 1번함 후루타카는 에스페란스 곶 해전에서 기함 아오바를 보호하는 임무를 완수한 후 침몰했다.
- 후루타카급 중순양함들과 제6전대에 소속되어 많은 활약을 했으며, 특히 1번함 아오바는 제6전대 기함으로서 과달카날에서 미 해군 역사상 최악의 참패라는 사보섬 해전의 주역이 되는 등 대활약했고, 3번이나 침몰 수준의 대파를 당하고도 살아남았으며, 일본군이 공식적으로 중순양함으로 기록된 군함 중에서는 유일하게 일본에 귀환했다. 이후 구레 군항 공습에서 대공포대로 활동하다가 미 해군과 육군 항공대의 협공으로 격침되었으나, 일본 최고의 중순양함으로 이름을 남겼다. 2번함 키누가사도 과달카날 전투에서 핸더슨 비행장을 불바다로 만드는 등의 활약을 하다가 과달카날 해전에서 엔터프라이즈에게 격침되었다.
- 아오바는 이 항목에서 자주 거론되는데, 일본군의 무기체계가 가진 결점들을 승조원들의 노력과 행운으로 극복한 케이스라서 그렇다.
묘코급 중순양함 묘코, 나치, 아시가라, 하구로
- 전쟁기간 내내 많은 활약을 했지만, 자바해 해전을 비롯한 많은 해전에서 포격전 능력이 부족함을 드러냈다. 얼마나 부족한지는 항목 참조. 전후생존함은 싱가포르에서 대공포대가 되었던 묘코밖에 없으며, 이후 영국에 배상함으로 넘겨진 후 표적함이 되어 타카오와 함께 침몰 처분되었다.
타카오급 중순양함 타카오, 아타고, 마야, 초카이
- 과달카날에서 제8함대 기함으로 제6전대와 함께 많은 수훈을 세운 초카이를 제외하면 전공 면에서는 평범한 편으로, 레이테 만 해전에서 아타고와 마야가 미군 잠수함에게 격침되었고, 초카이가 미군의 카사블랑카급 호위항공모함 화이트 플레인즈의 포탄에 맞아 대파(...)된 후 공습을 당해 침몰했다. 타카오는 싱가포르로 돌아가서 대공포대로 개장된 후 전후생존함이 되었으나, 묘코와 함께 영국군에 넘겨진 후 표적함이 되어 침몰했다.
모가미급 중순양함 모가미, 미쿠마, 스즈야, 쿠마노
- 모가미는 일본군 강습상륙함과 수송선 다수를 격침시켜 팀킬 순양함으로 명성을 날렸고, 미쿠마는 모가미와 충돌사고를 일으킨 후 공습으로 침몰했으며, 스즈야는 미군 구축함에게 얻어터져 속도가 느려진 쿠마노를 피하다가 공습을 당해 침몰했고, 쿠마노는 지휘를 개판으로 해서 모가미와 미쿠마의 충돌사고를 야기한 후 사마르 해전에서 미군 구축함 존스턴에게 얻어터져 대파되고 이후 미군의 잠수함과 함재기들에게 얻어터져 침몰했다. 전과? 그런 거 없다.
토네급 중순양함 토네, 치쿠마
- '나도 항공모함이다' 항목 참조.
8 경순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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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노급 경순양함 |
그나마 일본군의 중순양함은 전간기의 주요 개발 품목으로 큰 관심을 받았으며, 경순양함의 배수량 배정 분량까지 뽑아내서 경순양함인척 하는 중순양함을 만들 정도로 세심한 주의와 손길이 닿았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경순양함은 버려졌다는 것이다. 원래 다이쇼시대에 만들어진 5,500톤급의 경순양함은 그 시기에는 훌륭한 군함이었지만, 그 이후 후계자가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태평양 전쟁이 벌어진 뒤인 1942년까지 경순양함이 건조되지 않았다.
이렇게 된 이유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조약의 헛점을 이용해서 경순양함에 배정된 배수톤으로 중순양함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모가미급 중순양함 같은 물건은 서류상에서는 경순양함이었지만, 외국의 평가는 물론이고 자국 내에서도 중순양함이었다. 이런 이유로 인해 기존의 폐물을 제외하고 실제로 건조된 경순양함은 아가노급 4척에 오요도급 1척밖에 안 된다.
그런 아가노급 경순양함의 전과도 역시 처참해서, 2번함 노시로가 미군의 호위항공모함 갬비어 베이를 공동격침했고, 3번함 야하기가 레이테 만 해전에서 구축함 1척을 공동격침한 게 끝.
오요도급도 마찬가지로 오요도 1척만 만들어진데다가, 트러블이 속출했고 앞서 항공전함에서 설명했듯이 함재기도 거의 없어서 사실상 전투력은 제로에 가까웠다.
그리고 일본군이 개발한 가장 강력한 경순양함용 무장인 3년식 60구경장 3연장 155mm 주포탑은 오로지 요요도급 1척만 탑재가 가능했다. 애초에 이 물건은 성능은 뛰어났으나 2연장 8인치 주포탑과 환장이 가능할 정도로 크기가 크기 때문에 기존의 경순양함에는 장착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모가미급 중순양함이 주포탑을 환장하면서 남은 주포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요요도급 1척용을 제외한 나머지는 야마토급 전함의 부포탑용으로 사용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기존의 경순양함을 개조해서 뇌격능력을 높인 중뇌장순양함이 등장하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산소어뢰 40발을 일제사격할 수 있는 쿠마改급 키타카미다. 하지만 하늘에는 미국의 함재기가 제공권을 잡았고, 야간에도 레이더로 정확하게 적함의 위치를 파악하는 미국 앞에서 전쟁 후반기에 등장한 이런 물건은 전장에 도달하는 것부터가 큰 문제였다. 결국 제대로 사용도 못하고 고속 수송함으로 개장되었으며, 나중에는 카미카제용 가이텐을 발사하는 모함으로 개장되었지만 가이텐 자체가 무용지물인데다 그나마 빨랐던 속도까지 느려지면서 완벽한 고철덩어리로 전락했다. 후대의 평가는 전쟁 내내 아무것도 한 게 없는 군함.
설상가상으로 상대방이 너무 강력했다. 모가미급 중순양함을 건조하는 일본의 꼼수에 대항하는 방편으로 미국과 영국은 경순양함의 배수량을 늘렸고, 이는 큰 성공을 거둔다. 6인치 주포를 12문에서 15문까지 탑재하는 것은 기본이거니와 부포로 5인치 양용포도 12문 정도를 탑재하고 다수의 대공포도 추가되는 등 압도적인 화력을 자랑하는데다가 방어력도 높고 속도도 더 빠르거나 최소한 동등할 지경이었다. 여기에 더해서 숫자까지 우월했으므로 모든 면에서 일본군의 경순양함이 대적할 상대가 아니었다.
덕분에 일본군의 경순양함이 빈약한 것에 대해 일본 내에서 옹호론이 나오기도 했다. 해당 이론에 따르면 일본군의 경순양함은 구축함의 뇌격이 끝날 때까지 적의 시선을 유인하는 미끼였고, 미국의 경순양함은 이를 막기 위한 것이므로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비겁한 변명에 불과하다. 모든 무기는 동급의 무기와 싸울 때 최소한 동등한 성능을 가져야 제대로 된 물건이지, 명칭만 동급이고 성능이 열세하면 잘 해봐야 대량의 숫자로만 승부가 가능한 과부제조기 취급을 받는 것이 일반적인데, 특히 대량생산이 어려운 함선급은 성능을 숫자로 메꾸기가 어려우므로 각 함의 성능 열세가 전투시 상당한 열세로 작용하기 때문에 일본 스스로도 개함성능의 향상에 매우 힘썼다. 이런 상황에서도 적군의 경순양함을 상대하지 못하는 일본군의 경순양함은 일본의 입장에서도 쓰레기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 구축함보다 비싼 경순양함을 소모품이나 미끼로 적에게 던진다는 발상은 미국의 입장에서도 낭비인데, 안 그래도 전력이 열세가 된 일본에게는 더 큰 타격으로 돌아오는 뻘짓이었다. 그리고 점감요격작전이나 야간뇌격작전같은 일본군의 작전 자체가 원래부터 쓰레기거나 개전 초반에 준비가 안된 연합군을 상대할 때나 먹히는 편법에 불과했다. 또한, 경순양함의 특성상 위에 언급된 작전 외에도 할 업무가 많은데, 그 과정에서 맞딱뜨릴 적 경순양함에 대해서 대응이 불가능하므로 업무 수행이 어렵거나 불가능해진다는 점까지 고려한다면 그냥 답이 없었다.
그나마 미끼 역할을 제대로 해낸 경순양함은 센다이급 2번함 진츠밖에 없으며, 나머지는 위에 기술한대로 불리한 싸움을 강요당하다가 침몰해갔다. 전후까지 살아남은 경순양함은 카토리급 연습순양함 2번함 카시마, 전쟁에 나갈 기회도 없었던 아가노급 경순양함 사카와,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키타카미 정도다.
9 구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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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메급 어뢰정과 무츠키급 구축함 | 유기리급 구축함 | 카게로급 구축함 8번함 유키카제 |
일본군 구축함 손실원인 1941-1945 | |||||
함급(척) | 수상함 | 잠수함 | 항공기 | 기타[78] | 생존 |
미네카제급(13)[79] | 0 | 7 | 1 | 0 | 5 |
카미카제급(9) | 0 | 4 | 2 | 1 | 2 |
무츠키급(12) | 1 | 1 | 10 | 0 | 0 |
후부키급(23)[80] | 4 | 8 | 7 | 2 | 2 |
하츠하루급(6) | 0 | 1 | 4 | 1 | 0 |
시라츠유급(10) | 3 | 5 | 1 | 1 | 0 |
아사시오급(10) | 4 | 2 | 4 | 0 | 0 |
가게로급(19) | 5 | 4 | 6 | 3 | 1 |
유구모급(19) | 4 | 4 | 9 | 2 | 0 |
시마카제급(1) | 0 | 0 | 1 | 0 | 0 |
아키즈키급(12) | 3 | 1 | 1 | 0 | 7 |
마츠급(18) | 2 | 2 | 1 | 2 | 11 |
타치바나급(14) | 0 | 0 | 2 | 1 | 11 |
합계 | 26 | 39 | 49 | 13 | 39 |
일본군은 함대결전에 대비하여 구축함을 보조전력으로 육성했고, 덕분에 적함에 대한 어뢰공격 능력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고 전쟁 초중반기 연합군 해군을 상대로 위협적인 전투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반대급부로 대잠능력과 대공능력은 크게 떨어졌다.
그런데 전쟁이 일어나자 미군은 항공모함에서 함재기를 출격시켜 일본군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일본군의 구축함은 여기에 제대로 대항할 수가 없었다. 원래 구축함처럼 작은 함선은 주포도 대공용으로 사용하도록 양용포를 탑재하는 것이 좋은데 일본은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양용포로 하면 대함공격력이 약화될 것 같지만 구축함 이하의 함선들은 목적과 기술력, 자금의 한계상 대응방어를 포기했으므로 5인치급 함포면 평사포건 양용포건 간에 철갑탄만 쓴다면 모든 구축함의 장갑을 뚫을 수 있었다. 그리고 관통력이 높은 5인치 장포신 평사포라도 대형 경순양함 이상의 함선에게는 이빨이 박히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고, 설령 천운으로 장갑을 관통해도 상대방에게 피해를 제대로 주지 못한다. 게다가 구축함 이하의 함선들이 서로 전투를 벌일 경우에는 서로 고속으로 근접하면서 동시에 회피운동을 전개함과 동시에 포탄과 어뢰를 난사하게 되는데, 이런 전투에서는 발사 속도가 빠르고 화기관제가 우세한 쪽이 전투에서 유리하다. 그러므로 구축함의 5인치급 함포에 한해서는 양용포가 평사포보다 더 유용하다.
그러나 일본은 이런 점을 무시했다. 특히 도쿄제국대학 총장이기도 했던 히라가 유즈루 중장이 1930년대 초에 구축함의 주포를 대공-대수상 양용포로 하는 것에 반대하는 보고서를 낸 것이 결정타였다. 일본의 함대형 구축함들이 사용한 5인치 포들은 앙각이 75도로 높긴 했지만 대함(大艦)공격만 생각하고 주퇴기의 거리가 긴 평사포(캐논)를 채택하고 장전 방식도 인력 위주라서 장전시마다 포신을 다시 수평에 가깝게 내려야 하는 등 방공전에 필요한 대량의 포탄을 고속으로 사격하는 것이 상당히 어려웠다.[81]
게다가 이 보고서가 나온 얼마 후에 5인치 대공포를 전함과 항공모함의 대공포로 장비하기 시작했는데 해당 대공포를 약간 개수해서 구축함에 달아주면 위에 언급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함공격력이 약화된다고 계속 튕기다가 전쟁 말엽에 가서야 마츠급에 5인치 대공포를 주포로 달아주기 시작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설상가상으로 일본군의 대공포도 심각하게 수준미달이었고, 구축함 같은 보조함선에는 중요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일본군 기준에서도 엿같은 구식 대공포를 수량도 부족하게 배치하는 바람에 대공능력은 국제적인 기준에서는 사실상 없다시피했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아키즈키급 구축함을 만들었으나 일반적인 일본의 구축함보다 큰 녀석을 전시에 양산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고, 주포겸 대공포인 98식 10cm 65구경장 2연장 고각 포탑은### 비싸고 제조하기 어려운데다가 포신 수명도 짧고 대공전용이라 철갑탄이 없어서 대함공격에 큰 지장이 온다. 대공사격의 경우 다른 일본군의 함선보다는 양호했으나 레이더 성능도 낮고 레이더 연동 사격관제도 불가능하므로 객관적인 효율성은 떨어졌다.
물론 미군 잠수함의 공격에도 제대로 대항할 수 없었다. 대잠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소나같은 잠수중인 잠수함을 찾아내는 물건도 수량이 부족한데다가 성능이 떨어지고, 간신히 잠수함을 찾아내더라도 폭뢰 같은 공격무기의 성능과 수량이 모두 부족한 상태라서 제대로 잠수함을 공격하지 못한다. 따라서 일본군의 귀중한 배를 호위해야 할 구축함이 자기 임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다. 결국 함대결전을 위한 대형 수상함 확보와 보조함 숫자 불리기에만 집착했던 일본 해군은 기초적인 잠수함 탐지도 못해내고 미국의 잠수함들에게 불시의 습격을 당해 차례차례 가라앉기 시작했다.
위의 문제 때문에 더 끔찍한 사태가 벌어지는데 구축함이 잠수함에게 사냥당한다. 이건 사냥꾼이 사냥감에게 잡아먹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데, 상기 서술된 대잠능력 부족 때문에 이게 현실화된 것이다. 심하면 일본의 항구까지 귀환한 후, 잠수함에게 공격받은 부위를 수리한 다음에 다시 출항한 일본군 구축함이 바로 항구 앞바다에서 매복한 미국 잠수함에게 어뢰공격을 받고 개발살난 후 간신히 살아서 항구로 귀환한 후에 다시 도크에 처박히는 사태가 발생했고, 가토급 잠수함들 중 그라울러[82], 가드피쉬[83], 하더[84]같은 구축함 때려잡는 변태 잠수함들이 등장하게 된다(...). 심한 경우 일본 구축함이 미국 잠수함을 선제 탐지하여 어뢰를 쏘거나 폭뢰를 투하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잠수함이 이를 유유히 피하고 오히려 역으로 구축함을 격침시킨 사례도 발생했다.
10 잠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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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19 잠수함 | 대서양의 늑대와의 만남 |
일본군 잠수함들은 이 항목에서 예외적으로 굉장히 괜찮은 성능을 가지고 있다고 일본에서는 자화자찬했다. 일본군이 잠수함은 물론 유보트와 비교할 만큼은 아니지만 일본군의 히든카드 산소어뢰로 무장한데다가 태평양에서 사용하기 적절한 매우 긴 항속거리, 항해 안정성을 높여주는 덩치,[85] 깊은 물 속에서도 안전하게 작동하는 어뢰발사관, 매우 훌륭한 승무원 복지 등 성능으로는 결코 타국의 잠수함에 비해 떨어지지 않았으며 자동현적장치[86]라 하여 잠항심도 유지를 가능케 하는 장치도 있는 등 거의 모든 측면에서 다른 잠수함보다 위에 있었다.
일본군이 잠수함을 보는 시선은 러일전쟁 당시의 어뢰정의 연장선이었는데, 당시 어뢰정들이 적 전함에 대한 기습 공격에서 상당히 활약했기 때문에 잠수함 역시 적 전함을 직접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하려 한 것이다. 한 줄로 요약하면 대함 전투력에 몰빵한 잠수함. 저 거대한 선체는 원양으로 나가서 적 전함을 수색하고 직접 공격하기 위한 충분한 물자 탑재를 목적으로 설계되고 제작된 것이었다.
그러나 시초부터 단추를 잘못 꿰었다. 이미 제1차 세계대전부터 유보트가 잠수함은 통상파괴작전에 적합하다라는 이론을 실증까지 했기 때문에 이론의 창시자인 독일은 물론, 독일에게 잠수함 공격을 당해서 괴로워하던 영국과 미국도 잠수함의 제1 목표를 통상파괴작전으로 했고, 부수적으로 군함도 공격할 수 있게 잠수함을 만들었다. 그러나 함대결전사상과 점감요격작전에 심취한 일본군 해군은 이런 점을 무시했다.
10.1 잠수를 못 한다
일본 잠수함은 완전 잠항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순잠형 기준 70~90초, 해대형 기준 70~80여초, 로급 기준 60~65초정도로 매우 길고, 크기와 무게 중심 때문에 급격히 잠항하려 하면 재수 없을 경우 그대로 회복력을 잃고 지옥까지 다이빙 해버릴 수도 있었다.
현대의 잠수함들에게 큰 중요성을 차지하지는 않으나 2차대전기 잠수함들이 왜 잠수완료시간을 중요하게 여겼느냐면, 우선 2차대전기 잠수함들은 현대의 잠수함들 마냥 항상 물 속으로 잠수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닌, 사실상 가잠함이라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하며 배터리 충전 등을 위해서 상당시간을 부상한 상태로 작전을 수행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 갑작스레 구축함이나 대잠 초계함 등의 기습공격을 받으면 거진 신나게 두들겨맞거나, 심하면 들이받힐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잠수함 입장에서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대잠초계기라도 날아드는 순간 데꿀멍을 시전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 역시 감안해야 했다.
실제로 독일이 전쟁 초반에 700톤급 잠수함을 주로 사용한 이유가 잠항 속도나 수중에서의 균형 회복 등을 따져봤을 때 저 정도 잠수함이 가장 적절했고, 개전 이전에 조약으로 배수량 제한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이유들 덕분에 VII형 유보트의 경우 실전에서 급속잠항시 17초가 걸릴 정도로 무시무시한 잠항능력을 기록했으며 그 위의 체급을 지닌 잠수함은 소수의 원거리 작전용 잠수함 및 대양에 나간 다른 유보트에게 물자 보급을 담당하는 보급선이었다.
미군 잠수함 역시 덩치가 크고 잠항 속도가 다소 둔한 단점이 있지만, 광대한 태평양에서 활동해야 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대형화는 불가피했다. 그리고 기본적인 기술력은 충분했기에 개량을 거치고 승조원의 훈련을 강화하여 가토급 잠수함 기준으로 급속 잠항에 걸리는 최소 시간이 30여초[87]여서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미국 잠수함들의 큼직큼직한 덩치를 생각해보면 상당히 빠른 속도인데 애당초 가토급을 위시한 미국 잠수함들은 대공레이더와 수상레이더를 탑재해 조기에 일본군 항공기나 군함을 탐지하고 미리 잠수해버리는 경우가 많아 그나마 있는 단점들도 묻혀버렸다(...).
일본 잠수함의 형편없는 잠수완료시간의 원인은 잠수함의 덩치에서 오는 무식하게 큰 용량의 밸러스트 탱크와, 덩치에 비해 형편없을 정도로 작게 뚫어놓은 자유충수구역 배수구였다. 본디 배수량이 다소 큰 잠수함의 경우에는 덩치에 걸맞게 밸러스트 탱크 역시도 덩치가 커지게 마련이었고, 그에 따라 잠수시에 유입을 시키는 해수가 밸러스트 탱크 안에 차는 시간이 덩치가 다소 작은 잠수함들에 비해 늦기 때문이다.
즉, 덩치에서 오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는 것이고 일본 잠수함은 타국 잠수함들에 비해 훨씬 더 용적이 넓은 밸러스트 탱크로 인해 그만큼 충수완료가 늦어지게 되고, 또한 쬐끄만하고 그닥 효율적이지 않은 배수구와 그 위치까지 더해진데다가 타국 잠수함에 비해 상수까지 커져서 잠수완료시간은 시궁창으로 빠져버리고 말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어뢰나 기관등의 중량물 배치, 효율적인 밸러스트 탱크 설계가 뒷받침되어야 했고 물론 이 문제를 모르는 것은 아니라 복층식으로 배수구를 뚫어보는 시도도 해봤지만 잠수하면서 가장 먼저 물속으로 들어가야 할 선수 부력 탱크의 배수구 크기는 제일 쬐끄만하다. 아니, 없는 경우도 있다.
덩치에 의해서 오는 단점들중 다른 하나로는 잠수완료 후에도 잠항이나 부상각 등에서 제한이 온다는 것인데, 전후 미 해군 보고서에 따르면 안정적인 심도 도달을 위한 잠항각은 좋아봐야 15도 정도가 한계라고 보고하고 있었다. U보트가 보통 25도는 우습게 내려가고, 실전 기록에 따르면 56도[88]라는 제정신나간 잠항각 기록을 가지고 있었던 판국.
진정 이게 2차대전 잠수함의 디자인이란 말인가
일본의 적국인 영국, 미국, 소련의 사례를 잠깐 들자면, 윗 사진에 나온 영국 해군 T급 잠수함의 경우에는 극한의 잠수완료시간을 얻어내기 위해서 선체 측면의 배수구를 아예 일렬로 큼직큼직하게 뚫어버렸고[89], 선수 부분의 필요없는 자유충수구역에 외부 어뢰발사관을 추가해버려 자체적인 화력강화도 꾀함과 동시에 전방 상부갑판을 상당수 절단[90]해버리고 폭 역시도 좁혀버려 실질적인 자유충수구역의 용적을 줄여버리는 노력을 기울인 결과 근 20~25초 사이의 신속한 잠수완료시간을 손에 얻어냈다. 아쉬운 점이라면 외부 어뢰발사관의 형태가 문제인데, 빨리 잠수할수는 있어도 수중 저항을 상당히 만들기 때문에 수중속력에서는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한다.
미국의 가토급 잠수함의 경우 역시도 초창기에는 단일 배수구로 뚫어놓고 있었지만 오버홀 작업을 거치거나 태평양 전쟁 중반기에 건조된 잠수함들의 경우에는 배수구를 아예 선체 상부갑판의 선미까지 대놓고 일렬로 뚫어버렸고 발라오급 잠수함의 경우에는 복층으로 배수구를 많이 뚫어버리기도 했다. 선수 부력 탱크 배수구 역시도 적절한 위치에 큼직큼직하게 잘 뚫어놨으며 함교 내의 여분 공기가 남아 잠수완료시간이 늦어지는것을 감안해 함교 양 측면에 승무원 통행로 겸 함교 배수구를 뻥 뚫어버리는 노력을 기울였고 심할경우 일부는 아예 함교 바로 앞에 이런 출입구를 내버리는 비범함을 선보였다. 또한 상대적으로 선수 방향으로 상당히 몰려있는 밸러스트 탱크 위치로 인해 그 큼직한 덩치에도 불구하고 최단 30초라는 놀라운 기록을 남길수 있었다. 덩치 자체에서 오는 한계를 각종 꼼수로 해결한 셈.
소련의 실질적 주력인 S급의 경우 본래 설계자체가 독일 U보트의 배다른 자매다. 그래서 U보트에서 흔히 볼수 있는 옆으로 늘려진 형태의 배수구를 가지고 있는데, 선수 부분부터 선미까지 쭈욱 잘 뚫어놓은데다가 간격이 매우 촘촘하다. 거기에 잠수함 자체의 비교적 작은 덩치까지 합해졌고 밸러스트 탱크가 압력선체 쪽으로 많이 파묻혀버린 형태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인지 실질적인 밸러스트 탱크의 용적 자체도 줄은 편이고 상부갑판의 넓이 역시도 좁은 편이기에 S급 역시도 25초 정도의 괜찮은 잠수완료시간을 기록해내고 있는 판국.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선수 배수구가 뚫려있지 않다는 것이 아쉬운 점이나 애당초 갑판의 넓이가 저렇게 좁으니 개선을 하면 더 좋은 결과를 얻었을 테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까지는 못 느꼈을 듯 하다.
이렇듯 일본의 적국이 누가 더 빨리 대가리를 박느냐를 가지고 미친듯이 짱구를 굴리고 있을 동안, 일본은 정말이지 엉뚱한 구석에서 투자를 하고 있었다고밖에는 할 말이 없다.
물론 일본군도 눈이 없는건 아니고 머리가 없는 것은 아니기에 순잠형 잠수함들의 경우에도 영국의 T급 잠수함이나 미국의 가토급과 유사한 일직선의 배수구를 화끈하게 뚫어버리고 배수구 역시도 복층으로 뚫은 과감함은 선보였으나 여전히 먼저 물속으로 들어가야 할 선수 부분의 배수구는 쬐끄만하거나 아예 안 뚫려있다! 센토쿠급의 경우 이런 한심했던 잠수완료시간에 대한 반성이 반영되었던지 40초라는 대기록[91]을 세우긴 했으나... 센토쿠급이 언제 실전배치되었는지 잘 생각해보자.
잠항 심도는 유보트보다 크게 떨어져서, 저 덩치에도 불구하고 안전심도는 100m 정도다. 일본군은 양호한 잠수심도라고 했지만 손바닥으로 태양을 가리는 셈이다. 심지어 몇몇 함선(로급(이(1등)로(2등)하(3등) 잠수함)은 75m 미만이라는 기가 막힌 잠항심도를 자랑했다.
낮은 심도의 원인으로 꼽히는 것 중 하나는 선체 접합의 상당수가 리벳 접합식이라는 것이 원흉이 되었고 일부 구획에서나 제한적으로 용접 접합이 이루어졌기 때문[92]인데, 그 당시에 활약했던 독일군 유보트 중에서 가장 많이 쓰인 7형은 230미터까지 잠수 테스트를 했고, 설계 상으로는 최대 250 ~ 295m까지 버틸 수 있으리라 예상되었다. U-boat가 나오는 영화에서 위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더 잠수한다'라며 최대 잠항심도 이하로 내려가는 장면이 괜히 나온 게 아니며, 실제로 비상잠수를 통해 적의 폭뢰공격을 피한 사례가 많다. RO-11역시 유보트와 동급의 700톤급 잠수함이라는걸 생각하면 기술력의 차이가 엄청난 셈이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깊게 잠수할 수 있는 유보트도 대잠세력에게 집중공격을 받아 손실이 많았는데, 그보다 더 느리게 잠수하고, 얕은 심도만 유지가능한 일본군 잠수함이 문제가 없다는 말은 한마디로 말해서 모순이다. 그나마 일본군의 2등 잠수함들은 유보트와 비슷한 중~소형 체급에 잠항속도 하나만큼은 빨라서 이들을 추적하던 영국군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물론 잠항심도가 저 꼴이었기 때문에 폭뢰에 극도로 취약해서 결국 생존률은 거기서 거기였다. 더더욱 끔찍한 것은 수중항해시의 선회력이 정말 형편없었다는 점이었는데 VII형 유보트 기준으로 7노트 속력으로 항해시 360도 선회하는데에 280초가 소요되어 대전기 잠수함들중 가장 민첩한 편이었으나 그나마 작은 편인 로급의 경우 비슷한 조건에서 '10분이 소요되었고, 순잠형들은 12분을 초과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주적인 미군의 주력 잠수함 살몬급 잠수함의 경우도 75m를 기록했으며 가토급 잠수함도 안전심도가 90m였다는 점이지만, 실전에서는 살몬급의 경우 폭뢰로 손상을 입고 176m까지 가라앉았다가 다시 떠오른 기록이 남아있으며 가토급의 경우 120미터까지 내려가서 폭뢰를 피한 사례가 있는데다 복원성이 좋아서 잠수하다가 회복력을 잃고 지옥으로 다이빙한 일은 없었다. 또한 신뢰성과 정비성도 매우 좋다는 장점도 있다. 믿고 쓰는 미제 그리고 미군은 여기에도 만족을 못했는지 안전심도 120m를 찍는 발라오급 잠수함 128척을 찍어냈다. 일본군 잠수함도 안전심도가 100m니까 겨우 20m만 차이난다고 할지 모르지만, 발라오급 잠수함 USS 탱은 첫 번째 출격에서 일본군에게 쫓길 때 612피트(약 187m)의 심도까지 잠수해서 탈출했다.
10.2 금방 들킨다
커다란 덩치로 인한 정숙성 저하가 이호 잠수함들의 약점이었는데 안습한 급속잠항 능력, 그리고 초기형 이호들의 별로 깊지 않은 잠항심도와 안좋은 시너지를 일으켜 조용하고 은밀하게 적을 괴롭혀야할 잠수함이 타국의 것에 비해 쉽게 위치가 들통나버렸다. 이는 정말 큰 문제였는데 왜냐면 수상전투력이 형편없는 잠수함은 수상주행중에 적함이나 적 공군기에 발견 되면 최대한 빨리 깊이 잠수해야 한다. 그런데 긴급잠수 시간도 한세월 걸리고, 기껏 잠수해 봤자 잠항심도가 뻔한 관계로 폭뢰공격을 피해 도망치기도 쉽지 않은 일본군 잠수함은 전쟁 말기엔 대부분이 격침당해 주력 잠수함이던 순잠 을형의 경우 단 두 척만 살아남을 정도였다.
그럼 미군 잠수함의 정숙성은? 아래로 내려가면 미군의 격침전과가 나오니 그걸 참고하자. 그만해! 이미 일본군 잠수함의 체면은 0이야!
10.3 어뢰가 모자란다
일본군 잠수함은 어뢰 탑재량이 많아봤자 12~20발 정도로 덩치에 비해 굉장히 모자랐단 것도 단점이다. 동시기 미국의 주력 잠수함인 가토급은 일본의 1등 잠수함보다 한 체급 낮은(2,424t) 잠수함이면서도 24발.
품질 면에서는 일본군의 어뢰가 미군 어뢰보다 뛰어났다.[93] 미군의 어뢰가 워낙 형편없는 성능을 자랑했기에 탑재량 부족을 충분히 상쇄할 수 있었던 것. 그러나 미군도 어뢰의 문제점을 알고 성능을 개량했고, 전쟁 후반기에는 상당히 우수한 성능의 어뢰를 보유하게 되었다.
10.4 수송선을 공격하라
일본해군은 잠수함 어뢰에 함급 할당량이 있었다. 10개의 어뢰가 있으면 6개는 전함에, 3개는 순양함이나 구축함에, 남은 1발은 수송선에 사용하도록 규정해둔 것인데... 당시의 어뢰는 직진어뢰가 대부분이고 유도어뢰도 개발단계인지라 현대와 같은 정밀한 유도어뢰가 아니므로 동일목표에 2-3발 사격은 기본인데다가 아무리 수송선이라도 단 1발의 어뢰만 맞았다고 격침되는 확률은 그렇게 높지 않으므로 사실상 수송선에 대한 공격은 안중에도 없는 셈이다. 이건 순양함이나 구축함을 대상으로도 적용할 수 있는데, 어뢰 3발로 순양함 한 척을 끝장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일본군의 묘코급 중순양함 묘코는 USS 데이스가 쏜 6발의 어뢰를 모두 피했고, 중순양함 아오바는 대파 상태에서 7발의 어뢰를 모두 피했다.[94] 일본군이 할 수 있다면 미군도 해낼 수 있다는 뜻이므로, 함급 할당량을 정한 건 일본군의 큰 실수였다. 유도어뢰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사실상 2차대전기에 유도어뢰를 실전배치한 국가라 해봐야 독일과 미국뿐이었으므로... 아 가만... 비슷한게 있었구나 헤헿 그런데 이거 비슷한 게 몇개는 더 있는 듯 한데?
반면 미군은 어뢰가 거지같았기 때문에[95] 일본 군함보다는 수송함을 집중적으로 공격했고, 그 결과 일본의 수송라인은 완전히 끊어졌다.
이런 꼴을 보다 못한 독일군은 "미군의 수송선을 공격하라"는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지극히 합리적인 충고를 해줬지만 멍청한 일본군은 그 충고를 듣지 않았고 미군 잠수함을 막지도 못했다. 게다가 대본영이나 군령부, 연합함대만 그랬으면 이해를 하겠는데, 일선에서 군함을 이끌고 싸우는 장교들도 이런 개념을 전혀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단 널리 알려진 것과 다르게 일본군 잠수함이 수송함을 기피하진 않았다고 일본은 주장한다. 순잠 을형 에이스인 기니시 타카이시 중좌만 해도 12척의 수송선을 격침시켰고 과달카날에서도 급유함들이 격침당해 미군의 해상작전이 중지되는 일도 있는 등 결코 그 잠수함을 다루는 이들이 수송함의 위험성을 모른 건 아니었다. 오히려 유보트들과 다르게 전쟁 후기에도 자신들의 장점을 살려 연합군 함선들을 격침시키는 활약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핵심적인 문제는 이 위키를 읽는 이들이 짐작했듯이 무능한 수뇌부였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표 하나로 개발살난다. 아래의 표를 잘 보자.[96]
국가 | 잠수함 보유수 | 잠수함 상실수 | 손실률 | 잠수함 격침전과척수 | 잠수함 격침전과톤수 |
독일 | 1,210 | 752 | 62.14% | 2,000 | 14,500,000 |
미국 | 298 | 47 | 15.77% | 1,150 | 4,860,000 |
영국 | 228 | 71 | 31.14% | 493 | 1,500,000 |
일본 | 182 | 130 | 71.42% | 170 | 1,000,000 |
척 보면 알 수 있듯이, 일본은 잠수함 손실률이 가장 높은 주제에 전과가 가장 적다. 제대로 된 해군도 없고 공군의 지원도 없다시피 한 상황에서 연합군의 대잠전력에게 잠수함만으로 부딪치는 계란으로 바위깨기를 한 유보트보다도 손실률이 더 높다는 것은 한마디로 답이 없다는 것. 다만 유보트의 경우에도 대전 중반까지는 항공전력의 위협이 적은 지역을 골라서 작전하기는 했고 격침 시킬 표적이 넘쳐나기도 했지만 영국과 미국의 격침전과와 비교해도 초라한 수준이라 변명의 여지는 없다.
게다가 일본이 잠수함의 주 목적으로 삼았던 군함을 대상으로 하면 더 안습해지는데, 일본군 잠수함이 올린 전과란 것이 항공모함 2척, 호위항공모함 1척, 중순양함 1척, 구축함 1척에 불과하다.[97] 적 군함을 노리는 잠수함을 건조했다면서? 이에 비해 통상파괴작전에 주 목적을 둔 미군 잠수함은 일본 상선을 격침하면서 짬짬히 군함도 때리면서 전함 1척, 항공모함 4척[98], 경항공모함 4척, 중순양함 3척, 경순양함 8척, 구축함 35척, 잠수함 26척 (이중 1척은 유보트)라는 전과를 기록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일본군 잠수함은 원래 목적도 제대로 달성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통상파괴작전도 잘 수행하지 못하는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게다가 잠수함은 다른 함선과는 달리 함장의 지휘하에 독자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여지가 가장 많은데도 불구하고 전과가 저 따위인 것을 보면, 윗선 뿐 아니라 아래도 별 차이가 없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잠수함의 성능이 워낙 딸리다보니 유능한 함장과 승무원들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얼마나 전과를 더 올렸을지는 미지수.
그리고 위에서 나름대로 잠수함 에이스와 통상파괴작전 사례를 늘어놓았는데, 딱 자랑할만한 것이 저 정도밖엔 안되는데다가 유보트와 비교하면 태양 앞의 촛불처럼 매우 빈약한 전과다. 게다가 일본군이 미국 수송라인을 괴롭힌 적은 딱 저 시기, 과달카날 전역 전기 빼고는 없다. 얼마나 자랑할 것이 없기에 일본 국내에서는 타국에서는 격침 전과로 넣지도 않는 항공모함 1척, 전함 1척의 손상도 당당하게 전과랍시고 자랑하는 안습한 경우까지 나온다.
설상가상으로 저런 말도 안되는 대본영의 제약 덕분에 미군은 아무 제약없이 마음껏 상륙전과 물자수송을 할 수 있었으며, 일본군 잠수함들은 자신들에게 할당된 어뢰 한발을 수송선에 날린 이후에는 미군 수송선을 봐도 소 닭보듯 하며(...) 공격할만한 미군 전투함들을 찾아 하릴없이 떠돌다가 구축함 등 대잠 세력에게 걸려서 허무하게 격침되었다. 전쟁에는 전혀 재능이 없는 대본영 수뇌부로부터 주먹구구식 전술을 강요받은 일본 잠수함들은 누워서 떡먹기인 수송선 격침조차도 수행 못하고 함대 총톤수만 낭비하는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대본영은 리스크가 큰 잠수함 진영들을 고집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산개선이다. 산개선은 적 함대의 손쉬운 포착을 위해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잠수함들이 1열 횡대로 줄을 지어 배치를 시키는 진형인데나란히~나란히~ 나~란히~ 한번 잠수함의 위치가 발각되면 나머지 잠수함들의 대강의 위치들을 그대로 파악당하게 된다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이 상태에서 암호가 뚫리면서 지옥도가 펼쳐지게 되는데 당장 그 성능 좋다던 유보트들도 암호가 뚫리자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암호 뚫린 것을 깨닫고 온갖 트릭을 써서 살아남으려 했는데 대본영은 암호가 뚫린 것도 모르고 그런 진영들을 고집했다. 덕분에 아무리 구축함이 잠수함을 잡기 위한 함이라고 하지만 호위구축함인 DE-635 잉글랜드 단 1척이 12일만에 6척의 일본군 잠수함을 혼자서 잡는 위업을 세우게 되었다. 출처. 이후 저 구축함은 플래그쉽 이급으로 환생합니다
결국 내놓은 해결책이라는것이 산개선의 개량 진형인 산개면이다. 물론 이 산개면의 효과에 대해서는 "산개선이나 산개면이나 그게 그거..."라는 일본 잠수함장과 승무원들의 증언으로 대신한다.
10.5 그러라고 만든 잠수함이 아닐텐데
일본 해군 잠수함은 육군 부대에 대한 수송작전도 담당을 하게 되었는데 육군 소속 군함 항목에도 나와있듯 사실 이는 처음엔 포위된 육군 부대에 대해 좀 더 안전한 방법으로 보급물품을 전달하는 잔머리를 굴리다 생긴 것이다. 문제는 이걸 가면 갈수록 정식작전으로 편입시켜댄것... 물론 이런 짓이 힘들고 어차피 전쟁이 진행되면서 미군에게 하도 쳐발리다보니 어디 보급해줄 데도 없어서 삽질해대는 육군이 아니꼬와서 이런 수송작전을 중단하긴 했다만..[99]
미군의 경우에도 잠수함이 태평양 각지에 널려 있는 게릴라에게 무기 및 보급품을 전달하는데 잠수함을 애용했고 격추된 파일럿 구출 등에 투입했으니 이 사실 자체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미국은 잠수함이 적격인 임무에 잠수함을 제대로 투입 한 것이고, 일본은 수상함대가 개판이 되면서 잠수함을 주력부대의 물자 수송용 작전에 투입한게 문제다. 속도도 물자 탑재량도 변변찮은 잠수함을 수백, 수천명의 부대가 있는 섬에 한줌도 안 되는 물자를 보내려고 몰아붙이는 상황이 된 거다.
미국 잠수함대는 좀 더 나아가서 대범한 작전을 다수 시행했는데, 중요 타격점에 로켓탄이나 덱건을 쏴갈기거나 일본의 주요 항구에 기뢰를 부설하기도 했다. 심지어 USS 바브는 일본군 점령지인 사할린에 로켓탄을 퍼붓고, 수병들을 상륙시켜 철도를 폭파해버리기까지 했다. 이 수병들은 코만도 같은 특수부대원이 아닌 평범한 수병들이었지만, 현대적인 특수부대 작전에서 특수부대를 잠수함으로 투입하는 작전의 시초가 되었다. 거기다 애초에 일본 수송라인의 대부분을 끊어버린 것이 미국 잠수함으로서 승자와 패자의 차이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한가? 1944년 말에 도달하면 미국 잠수함이 너무 많은 일본 선박을 잡은 덕분에 일본 내에서 선박 공급량이 소모량도 충족하지 못해서 바다 위에 일본 선박이 없어지는 결과가 나오자 정크선 같은 소형 목재 선박까지 어뢰로 격침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일본군은 이것도 모자라 역사상 최초이자 최후로 함재기를 탐재한 잠수항공모함[100]을 미국 서해안에 투입시켜 미국 본토나 파나마 운하에 대한 함재기 폭격이나 덱건을 이용한 포격을 한다는 둥 가이텐 모함으로 카미카제 작전에 투입한다는 둥 미국 서해안에서 폭탄 단 열기구를 보내겠다는 둥 본래 자기들의 장점을 살릴 생각은 못하고 주먹구구식 전쟁놀이만 하고있었다.
참고로 잠수 항모가 공격 준비를 완료한 시점이 1945년 4월... 독일이 패배한게 같은 해 5월이고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진게 4개월후인 8월이므로 시점에서 파나마 운하의 파괴와는 관계없이 이미 일본은 끝장날 기세였다. 그나마 1942년에 잠수함 I-25에서 출격한 수상기가 오리건 주의 삼림에 소이탄을 투하했으나, 나무 몇 그루를 태우는 업적(?)을 달성하는 게 전부였다. 그나마도 미국 산림청 소속 소방관들이 출동하여 금세 화재를 진압했다. 일본 해군보다 유능한 미 산림청
10.6 승조원 배려가 부족하다
좋은 편이었다는 승조원 배려에도 구멍이 있었다.전함만 승조원 배려가 좋았나보다. 항공모함도 승조원 배려가 그리 좋다고만 할 수 없으니..
일단 타국 해군은 잠수함 근무가 워낙 열악한 점을 인정하여 하다 못해서 식사라도 풍족하게 해주려고 배식을 많이 해줬는데, 일본 해군은 잠수함 승조원은 운동부족에 햇빛을 제대로 쬐지 못하는 상황에서 식사를 많이 하면 비만 및 피부병이 생길 수도 있다는(?) 이상한 이유로 도리어 배식량을 줄였다고 한다. 이건 사실 해군에서 일본군답지 않게 승조원들을 배려한답시고 한 거지 정신력 드립치며 한 짓은 아니라 마냥 까긴 그렇지만 딱히 좋은 소리를 못 듣긴 했다. 대신 식사의 질 자체는 굉장히 좋은 축에 들었다. 보통 승조원들이 케찹이 가장 기억에 남는 반찬이었다는 얘기를 가지고 그게 제일 고급 반찬(?)이라 다른 부식은 션찮았다고 많이 여기지만, 이건 케찹이 당시 일본 사정에선 고급 식재료에 속했던데다, 잠수함의 좁은 함내 특성상 부피를 줄여 보관을 용이케 하려고 건조시켜 지급한 고형이었기 때문에 인상깊었다고 여기는 것일 뿐이다.
나름 승조원의 복지를 챙겨준다고 잠수함마다 군의관을 태우고는, "잠수함에 의무부사관조차 없는[101] 다른 나라들보다 낫다!"라고 이야기한 것도 호불호가 갈린다. 이들 군의관이 대부분 피부과나 정신과 전공자였던 점 때문인데, 보통 잠수함은 포격 등에 노출되는 외상보다는 좁고 햇볕이 거의 안 들고 불결한 환경에 노출되며 생기는 각종 피부질환과 폐쇄공포증 치료를 위해 이들이 선발된 것이다. 보통 일선 전투함이나 육상 야전부대의 경우 외상을 입은 승조원을 응급처치 해줄 외과 군의관을 선호하긴 하나, 피부과나 정신과 군의관이라고 해서 응급처치를 못 하는 건 아니고 전공과가 뭐든 간에 일단 의대 졸업한 의사라는 면에서[102] 오히려 의무부사관이나 약식으로 의무교육을 수료한 땜빵다른 승조원들보다 응급처치도 잘 했을 듯 하지만, 그냥 외과의를 태우는게 더 나았을 것임은 변하지 않는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진 못했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도 이들 비외과 군의관이 쓰잘데기 없었다고 하는 경우는 별로 없고, 단지 외과의를 태웠으면 효과가 훨씬 좋았을 것이라는 정도이다. 실제로 함내에서 정신적인 문제로 패닉 상태에 빠진 함장을 정신과 군의관이 진정시켜 무사히 귀환시키는 데 성공한 사례도 있었으며, 무엇보다 일본 잠수함은 실용성 문제는 둘째치더라도 덩치가 어느 정도 있는 배들이었기에 군의관과 의무실 등을 둘 충분한 여건이 보장되었음을 생각해야 한다.
기자재의 보호를 위해 에어컨을 설치해서 냉각을 하는 미군 잠수함도 열대지방에서는 실내온도가 40도에 육박해서 고통에 시달려야 했는데, 센토쿠급 같은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아예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거나, 있더라도 에어컨 용량이 약했다는 점이 단점으로 지적된다. 대부분의 일본 해군 잠수함은 더위로 승조원이 쓰러지기도 했고, 선내의 각종 기기에 이슬이 맺혀서 오동작을 일으킬 확률이 엄청나게 증가하므로 전투효율이 떨어졌다. 그리고 냉각장치가 있더라도 가동 소음이 워낙 커서 적에게 탐지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있어도 사용을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10.7 망했어요
고대 시절부터 해군이 있는 이유가 자국 해역과 수송라인을 지키는 것인데, 일본군의 경우 함대결전사상을 채택한 덕에 시대에 뒤떨어져 잘못된 방식으로 잠수함을 발전시켰으니 전쟁에서 져도 이상할 게 하나도 없었다.
일본군의 가장 큰 적은 언제나 멍청한 수뇌부였고 당연히 그 책임도 매우 크지만, 위에서 멍청한 전략전술을 현장에서 나름대로 상황에 맞춰서 변화시키지 않고 그대로 따른 일본군 장교와 사병도 그 책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특히 잠수함처럼 독자 행동이 가능한 함선의 경우에는 변명의 여지도 없다.
일본 해군이 군항을 폭격했다면 미군은 도시를 폭격했다. 아, 물론 군항도 폭격하긴 했고.그런데 군항을 공습할 때 일본의 잔존 군함들은 일부만 빼고 완전 격멸해 버렸다는 거.[103]
11 지상기지에서 운용된 항공기
일본 해군은 육상기지에서 운용해야하는 중형 폭격기를 대량으로 운용했다.[104] 그러나 해군에서 저런 항공기를 운용하는 자체가 일본군의 육해군 대립 때문인건 아니다. 저 사례로 든 폭격기들은 지상폭격 임무도 수행했지만 대함임무 또한 수행하였으므로 해군에 소속된게 영 터무니없는 행위는 아니다. 멀리갈것도 없이 당시 미 해군도 비슷한 목적으로 4발 중폭격기를 운용했었다.[105] 게다가 일본은 공군이 따로 있는것도 아니니 해군 항공대에서 대함임무로 대형폭격기를 운용하는것 자체는 별로 이상한 문제가 아니다. 이는 소련 해군에서도 항공대를 운용했던 방식이며 현대에도 P-3같은 대잠초계기는 해군 지상기지에서 운용한다.
문제는 해군에 소속된 중(中)형 이상의 폭격기들이 태평양 전쟁 중, 후기에 맡은 임무가 병맛이 넘친다는 것인데, 크기로 보나, 운용 목적으로 보나, 전투기라기보다는 카미카제용 유인 유도[106] 대함 순항미사일인 MXY-7 오카를 운반, 발사하는 것이었다. 그나마 같은 목적으로 만든 Ki-115 츠루기의 경우는 자력으로 이륙이나 이함이 가능한 프로펠러 엔진이라도 달려 있지, MXY-7 오카는 그런 것도 없이 로캣 엔진이어서 자력으로 이륙이나 이함이 불가능하다. 대신 오카가 훨씬 빠르긴 하지만 그 이전에 자폭병기라는 시점에서 이미 문제가 많다. 자폭병기에 대해서는 일본군/무기체계 문서의 자살특공 문단을 참고.
또 다른 문제점이라면 해군이 운용한 항공기들은 대부분 자동 방루 연료 탱크라던지, 조종석에 방탄 설비같은 방어수단이 없다시피 했고 이는 지상기지에서 운용한 항공기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죽하면 미 해군 항공대의 일본 해군 항공대 항공기에 대한 평가가 원샷 라이터였겠나? 그나마 대전말에는 조금씩 도입되기는 하지만 육군이 하야부사에서부터 일찌감치 방탄판과 방루탱크를 도입한것에 비하면 해군은 훨씬 늦게 도입한 셈이다.
그리고 일본 해군이 발주한 중(重)폭격기로는 G10N 후가쿠가 있는데, 이건 육군 항목의 실패한 초중전차인 100식 전차 일명 오이차의 후계인 Dae-i 거대 이동 요새와 비슷한 궤를 갖고 있다. 쉽게 말해 프로토타입도 제대로 만들어지지 못한 페이퍼 플랜.[107] 그리고 이놈이 실제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문제가 되는데, 당장 미 육군항공대의 B-29만 해도 당대의 어느 항공기보다 덩치가 큰 항공기인데, 이건 그 B-29조차 능가하는 덩치로 만들 예정이었다는 것.[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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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차 대전시의 독일은 영국에 이은 해양강국이었으나 스캐퍼플로 독일 대양함대 자침 사건으로 빡친 영국이 강경세로 돌아서면서 1만톤 이상의 전투함을 보유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대양함대의 전투함들은 승전국에게 배상으로 분배될 예정이었고 영국은 독일에게 8척의 드레드노트급 전함 보유를 인정할 생각이었으나 저 사건으로 기존의 입장을 철회하게된다.) 독일은 전투력 유지를 위해서, 자동차를 통해서 전차 훈련을 시키고, 글라이더로 전투기 조종사를 양성했지만, 덩치도 크고 국력소모도 큰 전투함만은 무리였다. 재무장을 시작한 이후에는 필사적으로 회복을 시작했지만, 전쟁이 너무 빨리 터지면서 수포로 돌아갔다. 괜히 에리히 레더 제독이 이제 크릭스마리네는 장렬히 죽는 일만 남았다고 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독일은 더더욱 유보트에 집중하게 된다.
- ↑ 영국의 경우에는 2차 대전무렵 새로이 건조한 전함이 킹 조지 5세급 전함이 전부인데 상당한 활약을 하기는 했지만 조약등의 제한으로 성능이 적당하다고는 해도 우수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 ↑ 오히려 말레이 해전과 실론 해전에서 일본한테 지는 바람에 일본이 더 기고만장해졌다.
- ↑ 왜 제로센이라 불리는가 하면, 영식함상전투기(零式艦上戦闘機/れいしきかんじょうせんとうき)에서 れい를 ゼロ로 바꿔 표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 ↑ 제로센이 아니라 A6M을 쓰는 이유는 A: 전투기, 6: 여섯번째 모델, M: 기체를 처음 설계한 회사인 미쓰비시에서 나온 것이다. 참고로 제로센의 수상기 버전인 2식 수상기는 N이 붙어 있는데, N은 루페를 제작한 나카지마에서 온 명칭.
- ↑ 이쪽은 대전 말까지도 미국의 P-51 머스탱과 호각으로 싸울 수 있는 성능을 가지고 있었고 최후기형은 머스탱 D형보다 우세한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머스탱이 다른 연합군기에 비해서 전투시 안정감이 좀 떨어지는 편이기는 했지만 이건 중폭격기에 대한 호위기로 만들어진 머스탱의 역할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수랭식엔진+익내연료탱크. 익내연료탱크문제는 그래도 떡장+소화/방루장치 다 갖추고있어서 제로센따위와는 비교가 불가능하다. 그래도 저 둘 때문에 바이탈파트가 늘어나는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하지만말이다.) 그리고 저렇게 대조를 해도 미 해군 항공대에는 최강의 전투기 F4U-4가 있으니...
- ↑ 문제는 저 화려한 기동성도 알고 보면 여타 항공기들이라면, 연합군기는 물론 루프트바페의 항공기라도 실속에 빠져서 추락하기 딱 좋은 저속에서의 선회전을 중심으로 한 기동성이란 거다. 저속 선회전이 언제 유행한 전술인지를 생각해보면 역시 시대에 뒤처진 전술교리가 만들어낸 것이다. 특히 본문에 나오는대로 엔진 기술부터 떨어지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비행성을 끌어올리는 설계를 하다 보니 기체를 만든 재료부터 경량화에만 올인하며, 경량화 기법을 너무 남용해서 A6M 문서에 들어가서 보면 한계속도가 629km/h남짓이던 21형의 경우 시험 모델이던 12시(試) 전투기의 급강하 기동 테스트시 매스밸런스가 무너지면서 공중분해(!)됐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테스트 파일럿은 탈출을 못해서 순직.
- ↑ 자중을 포기하면서 포기한 게 하나 더 있다. 바로 기체의 구조 강도. 그래서 P-40 워호크의 주익을 이용한 육탄공격을 받고 꼬리날개가 잘려서 격추된 사례도 있으며, 제로센 21형의 경우 급강하 속도가 629km/h 정도로 제한되면서 이 속도를 넘어가면 심할 경우 기체의 매스밸런스가 버티지 못하고 붕괴하면서 비유적인 의미로서가 아닌 실제로 공중분해 당한다. 이 항목의 제목인 종이비행기라는 말이 헛소리가 아니란 뜻이다! 자세한 사항은 항목 참고.
- ↑ 물론 일반적인 인식이 그렇다는 거지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와일드캣과 제로센의 손실비는 1:1.5로 제로센이 오히려 열세다. 특히 와일드캣이 전쟁 후반기에도 FM-1 & FM-2로 이름을 바꿔서 호위함공모함의 함재기 용으로 개량된 후 계속 쓰였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참고로 호위항공모함용 와일드캣의 이름이 바뀐 이유는 제조사가 그루먼에서 제너럴 모터스로 바뀌었기 때문이지 기본적으로 같은 기종이다. 엔진이 F4F시절에 쓰던 1200마력에서 1300마력대의 엔진으로 업그레이드 되고 기총 수가 F4F-4 형태에서 F4F-3 형태로 돌아간 걸 제외하면 말이다.
- ↑ 일본의 내노라하는 에이스들은 거진 중일전쟁에서 양민학살하며 배출된 에이스들이며, 대부분의 격추숫자도 중일전쟁에서 격추한 중국군 기체가 대다수다. 그때문에 이와모토 테츠조처럼 전쟁 중후반까지 활약한 에이스가 아니라면 실력이 상당부분 과장됐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
- ↑ 조종사 양성 과정도 폐쇄적이었을 뿐 아니라, 사소한 일에도 조종사 후보생에서 퇴출시키기도 했다.
- ↑ 함재기는 육상기에 비해서 성능의 페널티가 심한데 저건 어지간한 육상기보다 더 좋은 물건이었다.
그래서 항모에서 운용하는데 어려움을 많이 겪었지만 - ↑ 렛푸의 경우에는 뒤떨어진 설계사상도 한몫 한다.
- ↑ 저 유명한 사카이 사부로, 이와모토 테츠조도 병계급이었다!
그러니 사카이 사부로가 전후 대본영을 개객기라고 욕하지.. - ↑ 386대라고 적혀있었지만 교차검증 결과 밝혀진 실제 격추수는 정찰기를 포함해서 239대다. 필리핀 해 해전 항목 참고. 그래도 단 하루 공중전에서의 단순 교환비만 여덟 배 차이라는 게 함정. 저기서 지상기지에 있던 기체들을 포함하면 단 하루 공중전에서 290대가 격추당했다.
- ↑ 사실 카미카제 항목에도 나오지만 제로센은 그 허약한 내구도 때문에 카미카제에도 쓰이지 못했다. 카미카제가 속도 무시하고 달려드는 자살 돌격인데 제로센은 항목에 들어가서 제원표를 보면 나오지만 후기형인 52형으로 따져도 최대 속도 제한이 약 670km/h밖에 되지 않았다! 전기형인 21형의 경우 최대 제한 속도가 629km/h 정도. 이 속도를 넘어가면 비행 중에 산산조각 난다. 대공포를 맞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물론 극후기형은 700km/h를 넘어가는 기체도 나오지만 그거 나올 때쯤이면 그나마 에이스 파일럿이라 할 만한 파일럿들은 거의 죄다 야스쿠니 신사로 영구재배치 되던 무렵이라....
- ↑ 애초에 일본이 항공전함, 항공순양함같은 걸 만든 이유가 항공모함을 건조할 재료와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야마토급 전함 3번함인 시나노도 건선거를 비울 정도까지만 건조하다가 중단된 것을 항공모함으로 개장한 것이니...
- ↑ 이 당시 미 해군 호위항공모함에 쓰인 함재기는 F6F 헬캣의 직전 함재기인 F4F 와일드캣을 호위항공모함 용도로 소폭개량한 FM-1, FM-2이다. 그런데 이거... 원래의 와일드캣 개발사인 그루먼에서 만든 게 아니라 자동차 회사인 제너럴 모터스에서 만든 거다!
- ↑ 물론 둘 다 나중에는 700km/h를 넘기는 버전까지 나온다.
- ↑ 왜 급조인가 하면 에식스급 항공모함들이 건조된 연도가 진주만 공습으로 시작된 태평양 전쟁 직전인 1941년부터였기 때문.(에식스급의 전 함급이자, Big E가 포함된 함급인 요크타운급 항공모함과 와스프는 제2차 세계대전도 개전되기 전인 1931년부터 건조된 것이다.)
- ↑ 카가는 아마기급 순양전함이었던 아카기와 달리 태생부터 전함이었다. 카가급 전함 항목을 참고할 것. 카가(加賀) 라는 이름에서 번국이라는 느낌이 오지 않는가? 일본에서 전함의 함명을 번국의 이름으로 붙였다는 것을 감안하자.
- ↑ 어느 정도로 약한지 하면 A6M의 경우 급강하 속도 제한이 초, 중기형 기준 630km/h 정도 될까말까 한 629km/h 정도였고, 그 이상으로 속도가 붙으면... 공중분해된다.(이 당시 미군의 함재기는 F4F 와일드캣인데, 이 녀석은 아예 기체강도를 믿고 급강하 속도 제한이란 걸 걸어놓지도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 ↑ 일본군 아니랄까 여기서도 병크가 터지는데, 정작 전함부터 시작한 배들은 -항공모함도 포함해서- 오히려 연료탱크를 축소시키면서 항속거리를 줄이고 있었다.
- ↑ 그림을 자세히 보면, 격납고 바닥에 흰 줄이 비행기 모양으로 그어져 있는데, 일본군 항모에서 함재기들을 최대한 탑재하기 위해 그은 '주기선'이다. 바로 위에 있는 에식스의 단면도와 대조해 보자.
주기선이 문제가 아니라, 제로센 같은 함재기가 병맛이라는 게 우선같지만, 넘어가자 - ↑ 인도네시아 보르네오 섬 북부에 있는 도시.
- ↑ 사실 다이호의 침몰 원인은 함정 연료로 쓰던 타라칸 정유가 아니라 어뢰 충격으로 새어나와서 기화한 항공유다. 필리핀 해 해전 문서를 참고하자.
- ↑ 물론 이 당시 비행갑판에 장갑을 갖춘건 영국의 항공모함 정도이며 이로인한 무게중심의 상승등이 문제가 되어 함재기 탑재수가 경항모 수준이었다는 문제가 있기는 했다.
- ↑ 쉽게 생각해서, 집에 가스가 터져 불이 났을 때, 창문이 있는 집과, 없는 집을 생각해보면 된다. 개방식이라면 창문이라도 깨고 탈출하기나 하지, 폐쇄식은 긴급 탈출하기도 곤란한 데다가 환풍기도 개판이라 시밤쾅!!!이라...(...)
- ↑ 게다가 제로센의 기체 재료는 무게를 가볍게 한답시고 알루미늄 합금을 썼는데 여기까지는 괜찮다. 그러나 문제는 부식이 잘 되고 취성이 강해서 잘 깨지는 초초두랄루민(Extra Super Duralumin. 약칭 ESD.)을 썼다는 것. 그것 때문에 급강하 속도도 제로센 초-중기형 기준 630km/h보다 조금 못미치는 629km/h 정도였다.(즉 1km/h 만 더 올라가도 동체와 날개 연결 부위에 금이 간다는 뜻이다.) 제로센의 기체 강도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제로센의 원래 이름인 A6M 항목을 참고하자.
- ↑ 실제로 좀 더 해상에서의 운용이 긴 수상기형 제로센인 2식 수상전투기 루페(Rufe)는 마그네슘 부품을 다수 제거하는 통에 기체 설계가 상당히 변경되어 생산하는 회사마저 나카지마로 바뀌었을 정도였다.
- ↑ 저 위에 제로센과 소금 이야기가 취소선 개그로 써져있는데, 제로센을 만든 재료가 뭔지를 생각하면 저거 절대 개그가 아니다. 제로센의 허약한 구조강도와 제로센의 기체를 제작한 재료를 정말 적절하게 표현한 거다.(미쓰비시에서 만든 원형 제로센은 염분에 취약한 마그네슘 합금을 기체 구석구석에 써서 함재기로서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했다.)
- ↑ 태평양 함대 소속이던 요크타운도 가끔씩 대서양에서 유보트 사냥을 하긴 했다. 진주만 공습 당시 진주만에 항공모함이 한 척도 없던 이유는 이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진주만 공습 이후 대서양에 배치된 함정들은 태평양으로 차출된다.
- ↑ 그런데 일본군의 항모도 태평양 전쟁초기에만 반짝했지, 후기로 가면 갈수록 항공모함을 경시하게 된다.(애당초, 전쟁 전에도 전함 중심의 함대결전사상에 심취해 있었을 뿐 아니라, 전쟁 중후기에는 경항모도 몸빵으로 내세울 정도니 뭐....)
- ↑ 오죽하면 전후 미군의 보고서에서 일본의 군함에는 데미지 컨트롤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고 깠다고 한다.
- ↑ 이 일부의 경우도 야마토급 전함을 위시한 극소수 전함들이다.
- ↑ 아래의 이미지들 출처는 http://blogs.yahoo.co.jp/kenchick07
- ↑ 참고로 류조는 류조 문서에 있는 사진을 보면 알다시피 배의 상단이 하단보다 훨씬 크다는 치명적인 문제로 인해 일반적인 항공모함 함교인 아일랜드 형 함교를 설치할 경우, 균형을 못잡아서 변침시에 넘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 ↑ 당시 연합군측 전함들 중에는 3연장 주포탑도 아니고 4연장 주포탑을 단 것도 있었다.
- ↑ 실제로 카가에서 이질이 유행했다는 기록도 있다. 아카기는 한 술 더 떠서 결핵까지 유행했다는 기록이 있다..
- ↑ [1], F6F, F4F.
- ↑ 왜 희대의 명작이라 불리는가 하면 이 함급에 지금도 이름이 회자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미 해군이 최고의 배에만 그 이름을 대물림한다는 전설적인 항공모함이 들어가있기 때문이다.
- ↑ 데미지 컨트롤 문제 때문에 격침당한 대표적인 항공모함이 위에서 언급된 다이호다. 그 뒤에 나올 시나노의 경우는 데미지 컨트롤 문제 이전에 부실공사가 원인.
- ↑ 이건 미국의 역량이 넘사벽이었던 것도 있지만...
- ↑ 일례로 항모인 히요급만 해도 원래는 크루즈선(...)으로 건조될 예정이었던 배였다. 다만 히요급은 일제 정부에서 전시에 항공모함으로 개조할 것을 전제로 지원받아 건조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전장에 나가 보지도 못하고 개장 후 함재기 인수 겸 마지막 작업하러 가다가(...) 레이더가 고장난 단 한 척의 잠수함에게 걸려서(...) 단 네 발의 어뢰를 맞고 격침당해서(...) 최단명 항공모함(...)으로 이름이 알려진 시나노는 야마토급 전함 3번함이었다(...).
- ↑ 다만 여기에 대해서는 전후 영국 경제가 더 큰 이유라고 보기도 한다. 미국이었으면 수리해서 사용할만한 상태이나 영국의 경제는 그야말로 개판이었기에 정말로 괜찮은게 아닌 이상은 그냥 스크랩처리했다는것.
- ↑ 사실 진주만 공습도 영국 해군이 이탈리아를 때린 타란토 공습을 참고한 것이다.
- ↑ 제대로 빡친 거 맞다. 오죽했으면 행정명령 9066호를 통해 당시 미국에 거주하던 일본계를 포함한 모든 아시아계 사람들에 대한 강제수용조치를 취했겠나?
- ↑ 그리고 독일이
기쁜 마음으로미국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추축국 전체가 미국과 전쟁상태로 돌입하게 된다. - ↑ 심지어 전함 바로 옆에 항공유를 만재한 유조선이 있었는데도 그건 그냥 건너뛰었다.
- ↑ 이거.. 말하자면 '항공모함으로 탱킹을 시킨 것인데, 이런 진형부터 문제가 된다. 왜냐 하면 항공모함은 주 목적이 함재기로 공격하는 것이므로 적의 항공기를 상대하는 대공포를 제외하면 자체 방어가 안되다시피 하기에 상대방이 만약 항공모함을 어뢰나 포로 정면 공격하면 그냥 격침된다. 함재기들 입장에서는 착함을 해야 하는 항공모함이 먼저 사라지는 셈이니... 이 상황을 알기 쉽게 설명하면, 공항을 이륙한 항공기가 착륙을 해야 하는데, 착륙할 공항 자체가 사라져버리는 셈. 차라리 자체 방어가 되는 전함이나 다른 수상함들을 앞으로 내세우고 항공모함 항공대가 뒤에서 공격하는 방법으로 진형을 짰어야 했다. 실제로 미드웨이 해전과 필리핀 해 해전 당시 미군은 일본군 연합함대의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항공모함 기동부대 앞에 잠수함들을 깔아놨다. 미드웨이 해전에서는 일본 해군 연합함대의 정보수집을 우선으로 하고 있었기에 나왈급 잠수함 SS-168 노틸러스가 아라시를 유인하면서 본의 아니게 '운명의 5분'을 열었지만... 필리핀 해 해전에서는 가토급 잠수함 두 척이 정규 항공모함 두 척을 각각 사냥했다!
- ↑ 심지어 요크타운은 최소 3달의 수리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내려졌지만 당장 작전에 투입할 배가 없기 때문에 진주만에서 3일 동안 응급수리만 받은 채로 곧장 미드웨이 해전에 투입되었다. 그래서 내부는 아직도 만신창이라 기술자들이 연신 수리를 계속하고 있던 상태. 역으로 이 덕분에 미드웨이 해전에서 받은 파손 역시 비교적 빠른 시간내에 수습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미드웨이 해전에서 요크타운은 일본 해군 연합 함대를 두번이나 속여먹는다.
- ↑ 사실 미드웨이 해전 항목에도 있지만 전함이 주축이 된 본대는 항공모함이 주가 된 제1, 제2 항공함대와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미 해군은 일본 해군 연합함대의 항공모함만 탈탈 털어먹고는 재빨리 퇴각해버린다.(이 때 미 해군에는 전함이 없었으므로 포격전이 되면 기껏 이겨놓고 역전당할 게 뻔했다.) 실제로 미드웨이 해전에서의 미군의 목표는 '일본군의 항공모함만 골라서 격멸한다.'였다. 잠수함과 뇌격기들의 무장인 어뢰의 신뢰도 문제만 일찍 해결됐으면 미 해군은 일본군 항공모함 항공대와 항공모함들을 따라오는 전함 부대(본문에도 서술되어 있지만 일본군 해군은 미드웨이 공략을 위해 전함만 11척을 투입할 예정이었다!)를 함재기로 공격할 필요도 없이 잠수함으로 공격해서 잠수함 역사에 남을 기록적인 대전과를 썼을지도 모른다!
- ↑ 위의 미드웨이 해전 문단에도 있지만, 항공모함으로 탱킹을 시킨다는 것부터 에러다.
- ↑ 셔터가 달린 개방식 격납고 채택, 정상적인 사이즈가 된 함교 등
- ↑ 이로 인해 발라오급 잠수함 SS-311 아처피시는 어뢰 단 여섯발로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모든 미해군 잠수함 중 최대 실적을 올렸다.
- ↑ 오카가 물위에 뜬 건 연료와 탄두가 채워지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시나노의 승조원들이 나중에 오카 설계자들을 만나 "덕분에 살았다. 고맙다"고 하자 오카 설계자들의 표정이 복잡해졌다고.
그러라고 만든 오카가 아니었는데 - ↑ 이렇게 하면 함선의 길이가 길지 않으면 밑의 전함 부분에 있는 대로 파고다 마스트(...)가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이 항목의 이세급 항공전함의 사진을 보자.
안그래도 공간이 좁은데 뭘 더 넣으려고? - ↑ 이 당시 항공모함은 대형 엘리베이터 정도를 제외하면 기술적으로 아주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전투함을 중간에 항공모함으로 개수한 이유도 이대로 만들어 봤자 전투함에 들어갈 포나 장비가 부족해서 제대로 전투에 써먹을 수가 없으니 항공모함 개수해서 써먹으려고 한 것.
상선이나 여객선을 항공모함으로 개수한 건 어째서일까나? 전쟁은 계속 해야겠고~ 배는 없고~ - ↑ 솔직히 세토 내해의 얕은 수심을 고려해보면 구레 군항 공습에서 착저라고 적힌 군함들은 말로만 착저지 사실상 격침이다.
- ↑ 사실 2차대전 이전 일본에서 고성능 안테나가 개발된 적이 있으나, 이를 이용해 레이더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킨 것은 연합군 측이었고, 정작 개발국인 일본은 이를 아예 무시해 버렸다. 이에 대해서는 이 문서의 상위 문서인 일본군/무기체계 문서의 야기 우다 안테나 항목을 참고할 것.
- ↑ 여담으로 이 견시원들 중에서 초기형 레이더에 필적하는 탐지범위(...)를 보이는 비범한 시력을 지닌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고 한다. 견시원들을 두고 제식병기마냥 MK1. Eyeballs라 부르는 우스갯소리가 있었을 정도.
- ↑ 이 문제점은 사우스다코다를 집중사격한 키리시마의 사례에서 제대로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사우스다코타가 16인치 대응방어를 갖춘 전함인 반면에 키리시마의 주포가 14인치라서 통상적인 상황에서는 관통이 안 되는 게 맞다. 문제는 키리시마가 사격한 거리가 5km도 안되는 근거리였는데도 이렇다할 피해를 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 ↑ Number 12 Class Battleship.
- ↑ 야마토급 전함 항목에서 보면 3번함인 시나노의 주포탑 전면장갑으로 나온다.
- ↑ 이렇게 된 원인은 위에 서술된 대로 일본의 철강 산업기술부터가 뒤떨어졌기 때문이다.
- ↑ 단지 히에이가 싸운 그 전투는 불꺼진 술집의 난타전이라 불릴정도의 개판에 옆에 보이면 쏘는 초 근접전이었다
- ↑ 전함의 측면 주장갑 경사도는 잘 해봐야 20도 수준이기 때문에 45도 경사장갑을 채용한 T-34처럼 방어력이 크게 늘지 않는다. 여기에 더해서 경사장갑으로 늘어난 방어도는 스펙과는 달리 실전에서는 많이 깎인다. T-34의 45mm 전면장갑은 45도 경사장갑을 채용해서 스펙상 90mm의 방어력을 자랑해야 하지만 실전의 결과로는 60mm-70mm 수준의 방어력만 보였다.
- ↑ 당장 사우스다코타의 경우 전기고장으로 인해 공격은 커녕 이동도 불가능한 표적 상태에서 5km 이라는 초근접거리에서 자신의 주포보다 2인치나 작은 14인치 주포를 보유한 공고급 순양전함 키리시마가 1식 철갑탄까지 사용하면서 발사하는 집중 공격을 맞고도 집중방어구획은 전혀 관통되지 않았다. 다만, 미국이 운용한 16인치 SHS는 상황에 따라서는 18인치와 맞먹는 위력을 발휘하기도 했고 이 포탄을 사용하는 전함들은 일반적인 16인치는 막아냈어도 SHS에 대한 대응방어는 불가능하기는 했다.
- ↑ 그런데 2번함 히에이도 일단 부품은 전부 영국에서 들여와서 일본에서 만들었으므로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커보인다.
3번함 장비를 1, 2번함에 쓰려다가 그렇게 되었나보다 - ↑ 당장 영국의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들만 봐도 알 수 있다.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들은 1차대전 이전에 취역해서 1차대전에 참전하였으며 개장을 받을때 포곽식 부포를 제거했다. 물론 같은 QE급이라도 워스파이트는 그대로 포곽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 ↑ 실전에서 그렇게 될 뻔 한 사례가 몇개 있는데 대표적인 게 미드웨이 해전이다. 물론 미드웨이 해전 당시만 해도 Mark. 14 어뢰의 신뢰도 문제가 심각했던 미군이었으니... 자세한 내용은 가토급 잠수함의 문제점 항목에서 어뢰 대목을 참고할 것. 아니면 어뢰 스캔들 문서로 들어가서 보면 훨씬 빠르게 이해할 수 있다.
- ↑ 사실 미드웨이 해전 당시에는 항공모함이 주축이 된 제1, 제2 항공함대 뒤를 따라오고 있긴 했다. 그런데.. 간격이 너무 멀었다.(항공모함의 방어력은 의도해서 집어넣지 않고는 순양함과 구축함 같은 다른 수상함들에 비해 거의 0에 수렴한다는 걸 생각하면 이것 역시 멍청한 짓이다.) 그래서 일본군 연합함대 진로에 깔아둔 잠수함대로부터 이걸 보고받은 미군은 일본군의 항공모함만 골라서 탈탈 털어먹고는, 전함끼리의 포격전이 될 미드웨이 해전 2차전을 회피해버렸다.(이걸로 인해 미드웨이 해전을 프랭크 플레처 제독에 이어 지휘한 레이먼드 스프루언스 제독은 까임권을 얻었으나, 훗날 밝혀진 기록으로는 이 판단이 정확했다. 이때 미군은 전함이 없다.) 문제는 이때 Mark.14 어뢰의 문제가 해결됐으면, 잠수함대가 항공모함이 주축인 제1, 2 항공함대와 전함이 주축인 본대를 기습해서 잠수함 역사에 남을 기록적인 대전과를 만들 뻔했다는 거.
그래서 잠수함대 사령관이 병기국에 "만일 병기국에서 어뢰를 똑바로 안 만들어줄것 같으면 우리 잠수함대는 함선국에 요청해서 어뢰 대신에 함선을 잡아 끌어당겨 구멍을 낼 갈고리 장대를 내놓으라고 할 수밖에 없다!" 라고 돌직구를 날린 거다. - ↑ 잠수함들이 아니란 것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단 한 척의 잠수함이다. 그래서 시나노는 항목에 들어가서 보면 알겠지만, 단 한척의 잠수함이 격침시킨 역대 최대의 군함이라는 기록만 조공했다.(더 안습은 이 기록이 대규모 세계대전이 다시 발발해서 니미츠급 항공모함 중 한척이라도 격침당하지 않는 한 영원히 남을 기록이라는 거.)
- ↑ 펜사콜라급, 노샘프턴급의 포탑 장갑이 19~64mm, 포틀랜드급은 34~64mm이다.
- ↑ 그런데 이게 나중에 야마토급에서 문제를 터뜨리는데 모가미의 주포탑을 거의 그대로 야마토에 가져다 올리는 삽질을 했다. 당연히 해당 부포탑은 물장갑이었다.
- ↑ 항공기의 항속거리를 늘린 이유는 엔진출력의 부족으로 인해 순항속도 자체가 느렸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경량화에만 올인한 것.(사실 이렇게 하면 고출력엔진이 나와도 악순환의 반복이 될 수 밖에 없는데, 출력이 부족한 기존 기체를 이용한 에이스 파일럿들은 고출력 엔진을 단 항공기를 몰 경우 출력이 부족한 시절의 전술교리를 계속 쓸 수 밖에 없는 거다. 여기서 정비 문제까지 겹치면... 더는 설명하지 않아도...)
- ↑ 어뢰의 앞부분이 어뢰발사관 밖에 노출되어 있다. 그러니 뭐...
- ↑ 해안포, 기뢰, 자침, 충돌등
- ↑ 시마카제, 나다카제 제외
- ↑ 미유키 제외
- ↑ 그리고 75도가 높기는 하지만 대공용으로 쓰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운 각도기도 하다.
- ↑ 가토급 잠수함 4번함. 첫 초계항해부터 혼자서 제18 구축대를 조져버린 잠수함. 그 외에도 구축함 시키나미, 해방함 히라도를 격침시키는 공적을 세웠으나, 최후에는 구축함 시구레, 해방함 치부리 및 제19호 해방함으로 구성된 호위함대의 대잠공격으로 추정되는 공격에 의해 격침되었다.
- ↑ 역시 같은 가토급. 밑에 서술한 역관광의 주인공.
- ↑ 가토급 잠수함 46번함. 하야나미, 미나즈키, 타니카제, 마츠를 격침시켜 구축함 킬러로 악명을 떨치던 잠수함이었다. 구축함 외에도 자매함 하도(SS-255, Haddo)와의 공동전과이긴 하지만 대잠 해방함 3척을 동시에 격침시켰고 그로 인해 한때 일본군의 대잠초계전력에 큰 구멍이 생겼을 정도로 맹활약했다. 다만 이 하더도 최후에는 다른 해방함인 제22호 해방함에 의해 격침당했는데 얄궂게도 그 자리에 제22호 해방함과 함께했던 배가 일본군에 의해 노획된 미 구축함 스튜어트(제102호 초계함)였다.
- ↑ 일단 여기까지는 과장은 있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 이외의 요소에서 문제가 많이 있었다. 가령 태평양의 수온은 대서양과 인도양의 수온과 비교해도 가장 높았다. 그런 상황에 에어컨을 달지도 않거나, 달아놔도 풍량이 너무 약해서 잠수함 내 장비들이 고장을 일으켜대는 사태까지 왔을 정도니...
- ↑ 일종의 중량 보상탱크. 잠수함이 항해를 하면서 소모하는 연료 등으로 손실된 중량을 해수로 대신 채워넣어 일정심도를 유지하게 한다.
- ↑ 참고로 프랑스 해군의 르두터블급이 35초, 소련의 S급 잠수함이 20초, K급 잠수함이 65초다.
- ↑ 하지만 이러면 배터리의 유산이 흘러 유독가스가 발생하게 된다. 유산이 흐르지 않는 최대 한계는 보통 45도.
- ↑ 이런 배수구의 형태는 현대 서방권 잠수함들은 기본사양으로 가지고 있는 형태이다.
- ↑ 하지만 이러면 수상항해시 갑판 위는 수시로 물바다가 되고 수상항해시의 안정성이 떨어진다. U보트 역시도 자주 이랬다.
- ↑ 사실상 일본 잠수함들중 제일 빠른 기록이다.
- ↑ 이 문제 때문에 전후 미 해군이 노획한 일본 잠수함에 대한 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합판 이탈 및 누수가 수시로 기록되었다고 평가했다.
- ↑ 그런데 이 산소어뢰의 품질이 너무 좋아서 어뢰를 무장으로 실은 수상함에게는 독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 ↑ 아오바가 세 번째로 대파된 후, 수리를 위해 일본으로 돌아가던 중에 벌어진 일이다. 아오바가 7발의 어뢰를 피했다는 것은 일본측 주장이지만, 아오바가 속한 수송선단에 23발의 어뢰가 날아왔고 아오바가 한 방도 안 맞은 건 사실이다.
- ↑ 이 거지같은 Mark-14 어뢰때문에 한동안 잠수함이건, 뇌격기건, 급강하 폭격건 일본 해군 군함만 만났다 하면 어뢰는 일단 뒤로 미루고 잠수함은 덱건, 뇌격기와 급강하폭격기는 수평폭격으로만 일본 해군 군함들을 상대했을 정도다! 당시 미 해군 잠수함대의 "만일 병기국에서 어뢰를 똑바로 안 만들어줄것 같으면 우리 잠수함대는 함선국에 요청해서 어뢰 대신에 함선을 잡아 끌어당겨 구멍을 낼 갈고리 장대를 내놓으라고 할 수밖에 없다!"라는 말이나, 뇌격기 조종사들의 "효과도 없는 어뢰 쓰느니 차라리 철갑탄이나 쓰련다." 같은 불평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 ↑ 군함의 역사. James L. George. p289와 Evans, David C; Peattie, Mark R (1997). Kaigun: strategy, tactics, and technology in the Imperial Japanese Navy, 1887–1941. Annapolis, Maryland: Naval Institute Press. p497.
- ↑ 이 전과에 불명확한 군함격침전과를 추가해도 구축함 2-3척에 어뢰정이나 기타 보조함 몇 척이 추가되는 것 뿐이다. 그뿐 아니라 항공모함 한 척도 사실상 빼야 한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요크타운을 I-168이 어뢰로 잡았다고 해서 저렇게 집어넣은 건데, 사실 요크타운은 이미 미드웨이 해전 도중에 일본의 공격을 레이더로 미리 감지하고 항공대를 엔터프라이즈와 호넷으로 보내버리면서 함생을 사실상 끝냈다. 그리고 어뢰에 맞았어도 침몰될 때까지 엄청나게 오래 버티면서 떠 있었다.
- ↑ 미군 잠수함이 잡은 네 척의 항공모함 중에는 원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전함이었던 항공모함도 있다! 그리고 저 미군 잠수함이 잡은 정규항공모함 네 척 중 두 척이 단 한 번의 해전에서 당한 거다.
- ↑ 이것 때문에 육군이 만든 게 삼식잠항수송정이다. 물론 해군의 G4M 일명 불타는 낙엽과는 달리 나름대로 잘 써먹었다.
- ↑ 이 센토쿠급 역시 2차대전 최대크기의 덩치를 지닌 잠수함이였지만, 함재기 M6A 세이란을 탑재해야한다는 근본적인 문제 때문에 정작 잠수 성능은 개떡같았다.
- ↑ 미국 및 독일 해군 등 당시 대부분 국가의 해군에선 의무부사관이나 병조차 태우지 않았다. 함장이나 다른 승조원 중 지정된 인원이 소정의 의무 교육을 받고 입항시까지 환자를 돌보도록 했다. 예외적으로 독일 해군에는 군의관이 타는 잠수함이 소수 있었는데, 젖소라 불린 천톤급 보급잠수함이었다. 이들은 군수지원 업무를 하는 만큼, 보급도 하면서 겸사겸사 보급받는 잠수함의 환자들에 대한 처치 및 후송 업무도 맡을 수 있었으므로 군의관을 태웠다.
- ↑ 전공과는 의과대학 졸업 및 의사면허 취득 후 정하는거라 전공과가 무엇이든 일단 기본적인 내용은 다 배운 상태다. 실습도 당시 의대 교육과정이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지금과 똑같다고 보면 2년간 병원 실습도 했을테니, 전문의가 해야하는 전문적인 치료는 힘들겠지만 일단 경험도 충분히 있다.
- ↑ 일단 저 진주만 공습과 구레 군항 공습은 폭격 규모부터 엄청난 차이가 난다. 진주만 공습에서 일본군 항공기 투입 수: 360대, 구레 군항 공습에서 미군의 항공기 투입 소티 수: 1,747소티
- ↑ 1,048대의 G3M과 2,435대의 G4M을 운용하여 총3,483대를 운용했다.
- ↑ B-24리버레이터의 해군버전인 PB4Y-2를 운용했다.
- ↑ 즉 사람을 유도장치 삼은 것이다.
- ↑ 특히 G10N 후가쿠의 경우는 기체는 제대로 되지도 못한 설계도로만 있었고 엔진만 몇기 만들어지고 끝났다. 그래서 일본 내에서 게임이나 플라스틱 모델로 나오는 G10N들은 완성된 모델을 상상해서 만들어낸 거다.
- ↑ 텍싱으로 이착륙하는 항공기들은 헬리콥터 같은 수직이착륙기가 아닌 이상 덩치가 커질수록 이착륙시에 요구하는 활주거리도 길어진다. 즉 그 당시 일본의 내부 사정을 감안했을 때 이놈이 만들어졌다고 해도 이륙을 위한 텍싱을 하다가 폭탄 맞고 펑~ 할 운명이라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