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전능

한자: 全知全能
영어: Omniscient and Omnipotent, Almighty

매직 더 개더링에 대해서는 전지전능함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1 개요

쉽게 설명하자면,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뭐든지 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렇기 때문에 전지전능보다 강한 능력이 있다는 말은 언어적으로 모순이 된다. 즉, 아무리 인간이 온갖 머리를 쥐어짜고 여러가지 괴랄한 능력들을 만들어낸다고 하더라도 그 능력들은 전부 전지전능의 밑바닥일 뿐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전지전능인 존재는 보여주거나 사용하지 않을 뿐, 그 존재도 앞서 설명한 괴랄한 능력들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으며, 그것을 파훼할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1][2]

그리고 인간은 논리적 존재[3]이기 때문에 모순을 가능하게 하는 전지전능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전지전능은 모든 것을 포괄하거나 그 이상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또한 전지전능에 관한 서술에 '불가능'이란 단어는 쓰일 수가 없다. 왜냐하면 아무렇게나 묘사를 해도 전지전능하기에 합당한 묘사가 될 수도 있기 때문. 그래서 진짜 전지전능한 존재가 행동하는 방식은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것을 바탕으로 창작된 작품 속 존재는 크툴루 신화아자토스.

한편, 전지와 전능은 서로간의 한계를 어디까지로 보느냐에 따라 동일할 수도, 다를 수도 있다. 전지전능에서 전(全)의 범위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이나 지식에 한정되고, 전지한 자를 전능하게 만들 수 있는 지식은 존재하지 않으며 전능한 자를 전지하게 만들 수 있는 능력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전지(전능) 하나만 가진 존재를 가정했을 때, 전능(전지)해질 지식(능력)이 없으니 그 전지(전능)한 존재는 이 세상에서는 결코 전지전능해질 수 없다.

반면에, 이런식으로 제약을 걸지 않고, 전지는 말 그대로 전지하며 전능 역시 마찬가지라면 전지자는 식탁에 앉아 커피를 마시듯 자연스레 아무런 시련도 없이 스스로가 즉시 전능해지는 방법을 알 것이며 전능자는 어떠한 패널티도 없이 스스로를 전지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전지전능은 일종의 능력이라기 보다는 개념이 성립된 모든 능력과 지식을 아우르는 거대한 카테고리와 같은 개념으로 볼 수도 있다. 문자 그대로 뭐든지 할 수 있고 뭐든지 알고 있다는 것은 어찌보면 지금까지 인간의 지적능력에 의해 구상된 능력에 대한 집합과도 같은 개념인 동시에 이런 능력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100%의 가능성에 가깝기 때문.

2 창작물에서의 전지전능

이런 무지막지한 특성 때문에 모든 능력의 끝판왕으로 불리며, 몇몇 악역 캐릭터들이 노리는 목표가 되기도 한다.[4] 비슷한 능력으로 현실 조작이 있지만, 엄격하게 따지면 현실조작 또한 전지전능의 아래에 있다. 현실조작은 보통 강력한 능력으로 서술되기는 하지만, 분명 한계는 존재하고 완벽하지는 않은 편이다. 그러나 전지전능은 말 그대로 한계도 없고, 불가능이 없다는 커다란 차이점이 있다. 다만 위에 서술은 전지전능에 대한 의견들 중 하나이며, 작중에서의 캐릭터가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작가의 의도에 따라 다르다.

그리고 전지전능한 캐릭터가 작중에서 주인공이나 비중있는 캐릭터, 악역으로 나오면 밸런스가 붕괴하기 때문에 거의 안 나온다. 그 이유는 기습공격이나 음모를 꾸미려고 해도, 어떤 짓을 꾸미고 있는지 이미 다 알고 있으며, 어떠한 힘이나 능력을 갖고 덤벼봤자 힘이나 능력을 없애거나, 그냥 당해줘도 아무 피해도 입지 않거나, 아니면 그 힘이나 능력을 갖기 전 약할 때로 시간을 거슬러가 없애거나, 간단하게 생각만으로 존재를 지워버리거나, 완전히 소멸시키는 등 그야말로 파고들 구석이 없다. 말 그대로 무적 그 자체라 무슨 짓을 해도 이길 방법이 없다.

양판소 따위에서 전지전능한 신보다 더 강한 이고깽 같은 존재가 나오기도 하는데, 전능의 의미를 조금이라도 고려하면 이고깽의 강함을 과장하기 위해 앞뒤가 안맞는 설정을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다만, 신이 논리에 제약을 받는 전능이고 이고깽이 논리를 초월하는 전능이라는 설정이라면 가능하다. 헌데 보통 창작물에 나오는 전능자들은 등장하는 세계에 한해서 전능한 경우가 많고 가끔 논리를 초월하는 전능이 나오기도 하지만 묘사가 아주 억지스럽고 대다수 사람들은 전지전능은 논리적 제약을 가볍게 씹어먹는 능력이라고 알기 때문에 이런 유형을 인정하지 않는다. 애당초 창작물 특성상 사람이 살아가면서 얻은 수 많은 지식을 가공하며 그것을 어떤 방식이든 논리적으로 서술하여 만든 것인데, 이야기가 논리를 초월해버리면 이에 대한 지식을 습득할 방법이 전혀 없어서 제대로 묘사할 방법이 없고 억지로 논리를 초월한 전능자를 등장시키면 작품의 개연성과 논리가 망가지면서 순식간에 불쏘시개로 전락한다.

그나마 개연성을 유지하면서 납득이 갈 전개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관찰자나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같은 역할만 수행하던가, 아니면 전지전능한 존재가 자신에게 도전하는 피조물을 불쌍하게 여기거나 막강한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용기를 보고 감동받아 일부로 진 척을 하는 것 밖에는 없을 것이다.[5]

한마디로 전지전능한 캐릭터가 주인공이면 재미가 없다.[6][7]

그리고 최강 논쟁에서 이런 전지전능한 캐릭터가 뜨면 전지전능하지 않은 캐릭터들은 무조건 그 아래로 버로우 당하고, 전지전능한 캐릭터들끼리 싸우면 천일수가 일어나며 논쟁이 끝나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편, 유일신 종교권이 강한 곳에서 이런 캐릭터를 만들 시에는 신성모독이라고 거센 항의가 올 수도 있기에, 가급적이면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이런 캐릭터가 성격이 악하다면 더욱 더 반발이 드세다.[8] 역설적이게도 이 캐릭터가 선하다면 전개가 무척이나 꼬인다. 자세한 설명은 악의 문제 항목을 참고.

창작물에서 가장 전지전능을 피부에 와 닿게 표사한 것은 존 카펜터 감독의 《In The Mouth Of Madness》가 있다. 이 작품에서 전지전능자가 주인공을 이리저리 굴리며 자기 뜻대로 움직이도록 데리고 노는데, 주인공이 계속 거부하자 현재의 주인공을 제외한, 과거의 주인공을 포함한 모든 세상을 다 바꿔버린다. 결국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그저 웃지요. 그나마 전지전능자가 그 꼴을 보고 웃고 즐기기에 웃을 수나 있는 것이다.

인터넷에선 어떤 요인으로 전지전능의 자리로 올라간 캐릭터는 완전한 전지전능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오로지 처음부터 전지전능의 존재여야만 인정 받는다. 카더라[9][10]

그런데 이 전지전능이란 설정은 그냥 "픽션 이니까" 받아들이는 것이 더 편하다. 실제로 여기에 태클을 걸면 무지하게 골치 아프다. 만일 엑스트라 캐릭터가 전지전능한 캐릭터에게 가상이 아닌 현실 속 인류의 먼 미래를 100% 정확하며, 이 시점에서 약 1시간 동안 전부 다 설명해라고 해도 이미 정답은 나와 있다. 애초에 만든 존재 부터가 신이 아닌 엄연히 한계가 존재하는 인간인데 어떻게 신처럼 다 알 수 있겠는가? 작가가 진짜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닌 다음에야(...) 취미로 작가를 하는 신이다.

사실 창작물 속에서 전지전능한 개념은 겉보기에는 매우 다루기 힘들 것 같은 개념이지만 전지전능의 본질을 이해하면 그 무엇보다도 묘사하기 쉽고 너무나도 다루기 쉬운 개념이기도 하다. 독자들이 전지전능한 등장인물에 관련된 설정이나 스토리에 항의를 한다 하더라도 전지전능하니까라고 답해버리면 끝이다. 하지만 작가 본인이 다루기 쉬운 것과는 별개로, 이러한 사실을 작품 속에 명확히 암시하고 독자들을 납득시키지 못 한다면 그 작품은 불쏘시개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으며 버려질 가능성이 높다.

다만 다방면으로 해석하기를 좋아하는 독자들은 전지전능한 캐릭터가 등장하자마자 불쏘시개로 취급할 가능성이 있는데 전지전능이 워낙 초월적인 능력이라 작품에서 짤막하게 언급된 정도에 지나지 않아도 등장인물들이 펼치는 이야기가 결국은 전지전능이 의도한 바에 불과하다는 해석도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 그리고 데우스 엑스 마키나 캐릭터가 모든 것을 해결하는 전개를 싫어하는 독자, 성장형이나 인간 찬가 형태의 창작물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겐 매우 비호감인 캐릭터다.

3 전능 역설

일단 전지와는 상관 없지만 전능에 한해서 아래의 논리적 역설에 해당하는 질문이 매우 유명하다.

전능한 자는 자신의 전능성을 버릴 수 있는가?

예를 들어, 전능한 자는 자신이 들 수 없는 바위를 창조할 수 있는가?

만약 '예'라고 대답한다면 그 바위를 창조한 순간부터 바위를 들 수 없으므로 전능하지 않아지며, '아니오'라고 대답한다면 질문에서 제시한 행위가 불가능하므로 전능하지 않다. 따라서 전능자는 어떤 경우에도 전능하지 않다는 패러독스가 발생한다. 다시 말하자면 '전능자는 불가능이 가능해도 전능하지 않고 불가능이 불가능해도 전능하지 않다'라는 말이다.

사실 두 번째 줄의 부연 질문은 질문 자체가 모순인데 '자신이 들 수 없는 바위'라는 존재부터가 '불능'의 영역이고, 전능한 존재라면 '불능'의 영역이 존재해서는 안된다. 전능자가 들 수 없는 바위를 만들 수 있는 지 묻기 위해서는 전능자가 들 수 없는 바위의 존재 가능성을 가정하여야 하는데 이 가정 자체가 전능자의 전능성을 부정하므로, 전능자가 그 바위를 만들 수 있든 없든 '전능자는 자신이 들 수 없는 바위를...'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논리적 오류이다.

때문에 엄밀하게는 첫 번째 줄의 질문만이 논리적으로 제대로 성립되며, 두 번째 줄의 질문은 윗 줄의 질문을 좀 더 이해하기 쉽도록 무리하게 예시를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혹자는 전능자는 '전능하기 때문에' 자신이 들 수 없는 바위를 창조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는 전능성을 논리를 초월해서 '뭐든지 가능하다'라고 정의했기 때문이다. 어떤 체계에서 불가능이 존재할 때에도 이러한 방식으로 전능성을 부정할 수 있다. 가령

1+1=3을 증명할 수 있는가?

실수를 0으로 나누었을 때 그 유일한 해를 찾을 수 있는가?
페아노 공리계에서, 현대 수학적 체계를 따르며 1과 2 사이의 자연수를 찾아낼 수 있는가?

와 같은 질문이 제시되었을 때 질문에 답을 할 수 없다면 불능의 영역이 생긴 것이고, 답을 할 수 있다면 이는 각각의 정의를 위반한 것이다. 따라서 위의 질문에 "있다."라고 대답할 수 없어 역시 불능이다. 만약 초논리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1과 2 사이의 자연수를 찾아냈다고 하더라도 그게 과연 현대수학적 체계를 따른걸까? 간단하게 보자면 초논리에서 논리를 뺀 영역은 수학적으로 '비논리'에 속한다. 논리적으로 1과 2 사이의 자연수를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결국 비논리적인 방법을 사용해서 찾아냈다는 의미가 되는데, 이 역시 위의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므로 불가능하다.

쉽게 말해, 가능하다 해도 틀린거고, 불가능하다고 해도 틀리는 데다가, 초논리, 논리 이상을 운운하며 가능하다고 해도 조건이 충족되지 못하므로 틀린다.라는 사면초가스러운 결론이 도출된다. [11]

전능성의 정의에서 발생하는 이러한 논리적 허점 때문에, 그 정의와 범위에 대한 여러 논의가 촉발되기도 했다. 예를 들자면 '논리적으로 가능한 모든 것이 가능'이라든가 '스스로 만든 법칙을 스스로 어기지 않는 한도 내에서의 모든 것 가능' '논리에 속박되지 않고 모든 것 가능'이라는 식으로 전능성을 정의하기도 한다. 아니면 아예 '인간의 이해 범주를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논리로 따질 수 없다'라는 식으로 말하기도 한다. [12] C.S.루이스는 그의 저서인 '고통의 문제'에서, "논리적으로 말도 안되는 소리를 조합하고 '신은 할 수 있다'라는 말을 덧붙인다고 갑자기 그게 말이 되는 건 아니다"고 주장했다. 단, 전능한 존재가 말이 되는 것만 할 수 있다고 신이 전능하지 않는 건 아니라고 말을 덧붙인다.

아우구스티노는 "전지전능하다 함은 논리적으로 가능한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면 성립한다"라고 주장했다. '전지전능하니까 만들 수 있다고 치고, 만들고 나면 더이상 전능하지 않은 것이다.'란 농담도 있지만 '능력'의 측면에서 보면 이런 해석도 충분히 가능하다. 위에서 나온 "들수 없는 돌을 만드는 것"을 예로 들면 전능한 자는 모든 능력을 갖고 있지만 이 돌을 만드는 순간 하나의 능력 (방금 만든 돌을 드는 능력)이 없어지는 셈이므로 전능하지 않게 되는 셈이다. 중요한 것은 전능해지지 않게 된게 본인의 선택에 따른 것이라는 점이다. 결국 전능한 자는 "본인의 선택에 따라 전능해지지 않을수도 있다"는 것인데 전능하다는 것이 반드시 가능한 모든 것을 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지 않기 때문에 모순이라고 하기는 힘들다. 들 수 없는 돌을 만들수 있다고 해서 반드시 그 돌을 만들어야 하는건 아니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 대부분의 사람은 스스로 목숨을 끊을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을 죽은 사람 취급하지는 않는다. 전능한 자 역시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선택이 가능한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능력이 있어도 하지 않는다면 그만이다.

다만 이렇게 해도 또 다른 문제가 생기는데, 질문을 좀 바꿔서 '자신의 전능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자신이 들 수 없는 돌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는가'라고 묻는다면 문제는 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전능성을 잃지 않고 전능성을 잃을 수 있는가'라는 형태가 되므로 문제에 내포된 논리적 모순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이런 물음도 가능하다.

무능도 전능의 영역에 포함되는가?

 
기교동자 울티모에선 무능이야말로 정점이자 궁극의 악이며 이 무능의 속성을 가진 바이스가 악의 동자 중 최강이다. 아무 것도 낳지 못하고 소비할 뿐인 무능이야말로 궁극의 악의 힘이며 째째한 '능력'에 기대는 약해빠진 놈들은 무능에게 이기지 못한다고 한다. 흠좀무.

그런데 여러 서브컬처물에서 전지전능 혹은 그에 준하는 존재들을 쓰러뜨리는 것은 실제로 무능력자인 경우가 많다. 전지전능 앞에선 당연히 어떤 능력을 써도 통하지 않지만 있는 거라곤 오로지 근성과 의지뿐인 주인공이 그것만 가지고 닥돌해 결국 기적을 일으켜 전지전능한 존재를 쓰러뜨리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세인트 세이야가 있는데 무력한 인간(세인트)들은 항상 의지의 힘으로 코스모를 증폭시켜 전능한 신들을 쓰러뜨린다. 하지만 그런 신들이 전능이라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다.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무지무능 = 전지전능이란, 그야말로 상식을 벗어난 개념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크툴루 신화의 절대신 아자토스. 이 절대자는 지능이 없는 백치이자 신을 초월한 무언가이기도 하다.

다만 이 물음에 대해서는 결국 말장난일 뿐이라는 반론도 가능하다. 특정한 작품의 무능이 아니라 일반적인 무능의 경우, 무능 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능력이 아니라 능력의 부재를 뜻하는 것이기 때문. 전능이란 쉽게 말해 모든 능력인데, 무라는 이름의 능력이 아니라 그냥 능력이 없는 상태 자체를 전능에 포함시킬 수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이다.

한편으로, 전능에 더하여 전지까지 포괄하는 전지전능에 관해서도 아래처럼 논리적 역설인 질문을 만들 수 있다.

전지전능한 자는 자신이 미래에 무언가를 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걸 하지 않도록 바꾸면...


사실 이 부분은 엄밀히 말하면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는데, 현재의 관점에서 결국 미래란 아직 결과로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단순히 그 행동을 하지 않게 되면 그 행동으로 인해, 혹은 기존에 자신이 할 예정인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 인해 초래될 새로운 결과와 그에 관련된 인과를 새롭게 알 뿐인 것일 수도 있다. 여러 창작물에서도 자신의 행동으로 상황을 완벽하게 주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님에도 미래를 미리 알고서 그 미래를 바꾸는 데 성공한 예시들도 결코 적지 않은데, 하물며 전능한데다가 상황이 자기 의지로 조정 가능한 상황인데 그러한 미래를 바꿀 수 없다는 쪽이 어불성설이다. 만약 여기서 인과율을 운운한다 해도 의미가 없는게, 인과율이라는 개념은 전능이라는 개념 자체와는 특별한 모순이 없는데다가 미래를 바꾼 모든 경우에도 적용할 수 있는 문제이므로 이미 전지전능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위의 문제들에 대한 의외로 간단한 해결 방법이 있으니 바로 전지전능하니까 위의 모든 조건을 만족시키면서 할 수 있다는 것. 그 이유는 전지전능하기 때문. 이걸 봐도 알 수 있듯이 단어 자체가 마스터피스라서 모순이 발생해도 그냥 전지전능하니 가능하다고 얼버무리면 그만이다. 간단히 말해, 전능 하니 바위를 못드는 것도 가능하다는 소리. 물론 전능하니까 자신이 못드는 바위를 드는 것도 가능하다.

사실 이 순환오류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전지전능이라는 '전체'를 수렴한 형태를 하나의 개별 '상태'로 인식하기 때문에 나오는 모순이다. 하나의 상태가 아닌 전체가 되는 것이란 수학의 예로 들자면 수직선의 수 전체를 수렴한 x다. 만약 들 수 없는 바위를 100으로 가정할 때 x는 이 바위보다 낮을 수 있고(불능), 같은 수 있고, 또한 동시에 높을 수 있다. 이는 하나의 상태가 아닌 전체의 이념으로써 생각하면 이 순환오류는 되려 인간의 인식적 확증편향의 문제점 및 개인의 인식적 한계점을 잘 드러낸다. 다시 말해, 전지전능의 순환오류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반대로 이 모순을 인식하는 인간의 정의에 한계점이 없어야 한다. 1 + 1 = 2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1, 2, 그리고 +의 정의와 관계성이 확증이 되어야 하는데, 인간은 인간이 정의하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확증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13]. 이는 '소설에 쓰여지는 인물들은 자신들이 소설의 인물이라 인식할 수 없음'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상 신의 존재 여부, 전지전능의 여부는 상관 없이 인간이 정의한 상대성 전지전능에 대한 순환오류라고 볼 수 있다[14]. 이는 헴펠의 까마귀슈뢰딩거의 고양이를 통해 알 수 있는 부문이다. 헌데 이러한 사유는 전지전능이 인간의 인식을 벗어난 개념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기독교와 관련되는 경우가 많다. 가령 요한 계시록 19장 6절.[15] 또한 비슷하게 보이는 악의 문제와 함께 다루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전능자' 자체는 비종교적이고 도덕과 관련 없는 개념일 수 있으므로 굳이 이들 사이에 연관성을 찾지 않아도 된다.

'신은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같은 예처럼 의외로 신이 못하는 일이 많다.[16] 보통 전지전능은 신을 찬양할 때 쓰이는 수사 같은 것으로, 신을 바라보는 인간의 입장에서 그렇게 여겨지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17]에서 보이듯이, 전능함을 언제나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정의하지는 않는다.[18] 이는 대표적인 딜레마인 신정론 등과 관련해서 고찰해 볼 부분이 많은데, 완벽한 전지전능함을 논한다면 모든 인간의 고통은 신의 계획대로이고 신의 잘못이 되지만,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고 그 결과와 고통을 끌어안는 것을 신의 전능함이라 한다면 좀 다르게 볼 수 있다. 하튼 생각보다 복잡한 논제.

물론 기독교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고등종교의 경우 그 신이 열라 짱세서 믿으라고 하지는 않지만, 현실적으로는 종교단체 입장에서 자신들의 신이야말로 다른 신들과 차원이 다르게 우월하다는 것을 내세우는 것이 포교에 중요한 역할을하기 때문에 오랜 세월동안 강조되온 것이기도 하다. 사실 완벽한 전지전능함은 기독교 등의 현실 종교들보다는 철학[19]이나, 신비주의 계통, 혹은 SF적 상상력의 사유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다.

그렇지만 만화처럼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굳이 우리가 사는 차원에 국한되지 아니하고, 전지전능한 존재가 자기의 의지대로 세계의 축을 새로이 삽입하거나 평행우주를 만들어버린다면 들어올리면서 들어올리지 못하는 결과를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헌데 이건 전지전능은 논리를 초월한다와 다를 바가 없다. 게다가 이런 저런 편법을 동원해 해낸다고 해도 평행세계 금지, 새로운 축 금지 등등 더더욱 자세한 제약을 넣으면 그만이다. 전지전능하다면 무슨 제약이 있어도 성공할 수 있을 테니까.

사이코패스에선 츠네모리 아카네의 사고실험 중 전지전능이라는 걸 꼭 언제나 충족할 필요는 없다는 식으로 이 모순을 회피한다. 즉 자신도 들 수 없는 바위를 만드는 순간은 전지전능하지 않지만 바위가 창조된 뒤엔 그 바위도 들 수 있을 정도로 전지전능해진다는 식인데 들 수 없는 바위를 영원히 들 수 없는 바위로 바꾸기만 해도 다시 모순이 생긴다. [20]

결국 '전지전능'과 같은 것은 (굳이 따지자면)추상적인 관념 안에서만 존재하는[21] 것이지,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누구에게나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이런 애매한 관념에 대해 지나치게 따지고 드는 것은 찬성하든 반대하든 그다지 건설적인 접근방법이 아닐 것이다.

여담으로 서양의 과학계와 기술계에서도 오메가 포인트라는 과학적 이론을 통해 전지전능을 추구하는 주장도 있다 .쉽게 말해 기술적 특이점양자 역학 그리고 종교인 기독교를 혼합적으로 만든 이론인데 SF적 황당함에도 서구에서는 제법 많이 언급되는 이론이다.

덧붙여 전지전능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세상의 모든 존재는 그저 전지전능의 일부에 불과하며 이미 모든 운명이 결정되어 있다는 주장도 가능한데 이 논리를 공포물로 가공한 유형이 바로 코즈믹 호러다.[22]

이나 사후세계 떡밥 만큼이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철학이나 종교를 다루는 커뮤니티에서 전지전능이 주제로 올라오면 옹호와 반박의 천일수가 벌어지면서 난장판으로 변한다.

덧붙여서 창작물의 최강자끼리 싸우면 누가 이기냐는 VS놀이에서도 전능의 역설을 볼 수가 있는데 위에서 언급한 서로 다른 세계의 전능자끼리 싸우면 결판이 나지 않고 천일수가 벌어진다는 말이 그것이다. 그냥 보기에는 무한대와 무한대가 싸우니 천일수가 벌어지는 것이 맞는 결과가 아니냐고 물을 텐데 전능의 정의를 잘 생각해보면 이건 말이 안된다. 전능의 정의는 모든 것이 가능한 불가능이 없는 궁극의 권능인데 천일수가 벌어진다는 얘기는 다른 세계의 존재에 의해 자신의 전능이 제한되어 승리가 불가능해졌다는 얘기라 둘 다 전능자에서 비전능자가 돼버린다. 게다가 이걸 심화시켜서 모든 창작물에 등장하는 전능한 존재들을 가지고 싸움을 붙여보면 결국 모든 창작물에 등장하는 전능한 존재들은 세계관 최강자는 맞아도 전능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23]

다만 창작물이 아니더라도 복수의 전능자가 존재하는 경우에 발생하는 모순에 대해 전능은 유일한가?라는 물음이 이미 존재하기는 한다. 전능자가 자신이 들 수 없는 바위를 만들 수가 있는가?라는 물음이 너무 유명해서 상대적으로 묻히다보니 모르는 사람들이 많지만.

4 각 세계관의 전지전능

실제로 작중에 전지전능한 존재라고 단정지어진 경우만. 완전히 전지전능하지 않으면서[24] 전지전능이라고 불리기만 하거나, 능력명만 전지전능인 경우는 포함하지 않는다. 다만 그러한 경우는 현실 조작과 겹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해당 항목을 참고하는 것이 좋다.

기독교의 세계적 영향력에 힘입어 전지전능의 아이콘이 되었다. 기독교가 성립되기 이전에는 전지전능에 해당하는 말은 '엘 샤다이'였는데, 막강한 신, 벼락의 신, 젖가슴 신 등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 '엘 샤다이'가 후대에 라틴어로 번역되면서 omnipotent(전능)가 되었다. 다만 공식적으로는 전지전능이라 하고 있으나 신학계 내부에서는 전지전능과 그냥 전능 사이에서 해석 차이가 발생하곤 한다.
우주의 모든 에너지가 사라지고 암흑만 남은 후에, 그동안 모았던 정보를 종합하고 가공하여 무한한 간격이 흐른 후, 빛이 있으라라는 말과 함께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유니크론프라이머스의 창조자 모티브가 야훼(하느님) 외국 위키에서도 전지전능한 존재로 표현됐다.
다만 포가튼 렐름 세계관 전반적으로는 AO가 전지전능한 절대적 존재임을 강조하고 있지만,AO보다 위의 존재가 있음이 암시된 바 있다. 다만 그 AO보다 위에 있다는 존재는 그야말로 딱 한번 있다고만 암시된 것 뿐이라, "AO의 아바타가 AO 자신에게 말을 건 것", 즉 AO 자체는 그대로 전지전능한 것이 맞다고 볼 여지도 있다. 또 AO는 어디까지나 '포가튼렐름'의 전지전능이니 그 위에 진짜 여러 겁나 많은 평행세계와 함께 우주를 아우르는 더욱 상위의 개체예를 들어 돈법사가 있을수도 있다.

5 별명으로서의 전지전능

간혹 현실에서나 창작물에서나 진짜로 전지전능한 것은 아니지만, 엄청 놀라운 성과를 거두거나 계획이 아주 척척 들이맞거나 하는 인물이나 캐릭터를 보고 전지전능하다고 찬사(?)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한니발이랑 마블 시네마틱의 제모. 둘다 실제로는 전지전능이랑은 거리가 한참 멀지만, 작중에서 보여준 엄청난 포스와 거기에 걸맞는 행적과 성과로 인해 팬들이 전지전능하다고 칭히는 경우이다.
  1. 다만 전지전능에 대한 정의가 사람마다 다르다. 자신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논리적인 모든 일이 가능하면 전지전능에 부합한다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자신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논리적인 일뿐만 아니라 논리를 초월한 일까지 가능해야 전지전능에 부합한다는 사람들도 있고 아예 자신이 존재하는 세계를 넘어 다른 세계에서도 논리를 초월한 일이 가능해야 전지전능이라는 사람들까지 있다.
  2. 예를 들면 수능을 만점 받은 사람보다 수능 문제를 많이 맞춘 사람이 있다는 말과 똑같기에 성립되지 않는다. (이 경우는 가능하기 때문에, 지운다. 수능은 과목을 선택하여 추가적으로 더 문제를 많이 풀수 있으므로, 과목 신청을 적게 하여, 만점을 받은사람보다 과목을 추가로 신청하여, 한문제 틀린사람이 더 문제를 맞출수 있기 때문이다.
  3. 예를 들면 논리와 거리와 먼 모순의 일화처럼 둘 중 하나는 성립이 안되는 것이 공존하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
  4. 다만 악역이 전지전능해지면 전지전능해지기 전의 목표대로 행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남에게 피해줘서 쾌락을 얻는다는 목표가 아닌 이상은 쌍방으로 이득이 되는 것으로 조정하거나 그냥 자신이 원하는 대로 조작하면 끝이다. 헌데 이런 식으로 조작을 할 가능성도 낮아 보이는 것이 전지전능은 말그대로 뭐든지 알고 뭐든지 가능하기 때문에 이 일을 벌이고 질려서 다른 일을 벌이고 질려서 또 다른 일을 벌이는 식의 무한반복을 이미 알텐데 이러면 되려 전지전능이 너무 재미없어서 스스로 전지전능을 포기하는 쪽이 더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5. 하지만 이래도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다. 전지전능이 워낙 초월적이라 그러한 존재가 관찰자나 데우스 엑스 마키나만 수행한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이야기 전체에 개입하고 있었다는 해석이 충분히 가능하고 자신에게 도전하거나 반기하는 피조물을 정말로 갸륵하게 여긴다면 그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피조물이 그런 무모한 일을 벌이지 않도록 역사를 바꿔버릴 가능성이 크다.
  6. 대개 전지전능한 캐릭터가 주역일 경우 일상물, 혹은 배틀물이 살짝 가미된 일상물일 확률이 높다. 그리고 진짜로 전지전능하거나 그에 준하는 주인공들은 염세주의, 성격파탄자, 사디스트에 가깝거나 자신만의 신념이나 계획을 위해서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7. 물론 먼치킨 항목에 등장하는 몇몇 캐릭터들처럼 스토리가 자연스럽게 흘러간다면 아무리 전지전능이라도 문제는 없다. 하지만 먼치킨 캐릭터들과는 능력의 차이가 차원이 다르기에 개연성 있게 풀어나가는 것은 매우 어렵다.
  8. 특히 근본주의 성향의 종파들은 더더욱 싫어한다.
  9. 이것은 무의미할 정도의 주장인데, 전지전능이 된 시점에선 시공간의 영향이 무의미해진다. 그 시점에서 자신의 과거를 바꿔버리면 자신은 원래부터 전지전능한 신으로 될 수 있기 때문이며 애초에 전지전능이 시공간의 영향으로 자신의 능력이 한번에 무너지면 그것은 전지전능이라고 할 수 없다. 물론 이런 식으로 가면 전개가 매우 꼬인다.
  10. 하지만 변하기 전의 자신과 변한 후의 자신을 별개의 인물로 바꿔버리면 어느 정도 개연성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이 개연성 문제를 완화하는 수준이지 완벽하게 해결하는 수준은 절대 아니라서 독자들이 개연성에서 느끼는 찝찝함을 완전히 해결하진 못한다.
  11. 뭐든지 가능한 전능자가 못하는 것은 없다. 인간은 모순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에, 보통 논리적 난제를 제시하며 전지전능을 시험할 때는 평행우주니 확률이니 말해서 어떻게든 아귀에 맞추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뭐든지 되기 때문에 그런 빙글빙글 회피하지 않고도, 논리적으로 1과 2 사이의 자연수를 찾을 수 있으며 그 방법은 현대수학적 체계조차 만족할 수 있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쨋든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두면 전능함이 최우선 명제가 되고 의미가 없기 때문에, 어떻게든 조건을 달아보는 게 위와 같은 것이다.
  12. 하지만 여기서 자신을 인간이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능력을 쓸 수 있는가?라고 할 수 있고 만약 여기서 할 수 있지만 안쓰면 된다고하면 자동적으로 발동하는 능력이라고 하면된다. (여기서 자동발동형은 뺀다하면 모든 능력을 쓸 수 있다는 원칙에 위배된다.)그리고 그게 언제 발동할지는 모르는거아니냐고 하면 모든 능력을 쓸 수 있으니 지금발동형,1초후발동형,1일후발동형 같이 시간에 제약을 걸면된다. (여기서 전지전능이니 제약도 없애버린다고하면 역시나 모든 능력을 쓸 수 있다에 위배된다.
  13. 더 명확히 하자면 확증성을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 조차 모르지만;
  14. 예를 들자면 가정법 측면에서 생각한다면 심장에 칼이 박히면 가능성은 죽지 않는 것과 죽는 것으로 나뉜다. 다만 보편적으로 대부분 심장에 칼에 찔리면 죽는다라고 생각하는 것일 뿐이다. 이는 지속적인 경험과 관찰을 통한 인식이라고 볼 수 있다.
  15.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과도 같고 많은 물 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 소리로 이르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헬라어로는 παντοκράτωρ(전능함)라고 써있다. 고로 오역도 아님.
  16. 정확히는 '하지 않는다'가 맞다. 하지 않는게 불가능한 거 아니냐는 지적도 할 수 있지만 그런 논리는 기계의 행동을 두고 판단할 때는 맞는 말이 될 수 있지만, 자유의지를 가진 인격적 존재(신과 인간 모두 포함)의 행동을 지적할 때는 들어맞지 않는다.
  17. "전능하다고 함은 그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져서지, 그가 원하지 않는 바로 고통받는 것 때문이 아니다; 그에게 그런 일이 닥친다면, 전능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런고로, 그가 전능하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할 수 없다."
  18. 기독교의 신관 자체가 무제한적인 전능이 아닌, 신이 만든 세계 안에서의 한정적인 전능만을 논한다. 즉 자기 룰 안에서 밸런스를 맞추는 하느님이란 것이다. '신은 자살이 가능한가?'라든가 '신은 자기가 들지 못하는 돌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같은 지적을 위한 지적이 무의미한 이유.
  19. 특히 형이상학.
  20. 이는 조건 성립의 동시 만족성을 무시했기 때문에 생기는 모순이다. 즉 이런 명제는 누군가가 "나는 지금 미성년자라서 청소년보호법의 보호를 받지만, 얼마 후면 성년이 되어 투표권이 생긴다. 그러므로 결국 난 청소년보호법의 보호도 받고 투표권도 있는 초법적인 존재다"라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시간의 흐름, 엔트로피의 증가, 벡터의 변화 등에 따라 조건이 A에서 B로 변할 수 있다고 해서 A와 B를 동시에 전부 충족시키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우리 모두는 전지전능할 수 있다.
  21. 그것도 불확실하고 애매하게 존재하는
  22. 대표적인 예로 크툴루 신화아자토스.
  23. 아니면 세계관의 벽을 허물어 다 같은 존재라던가 예를 들어 절대자 하나가 있는데 그는 A에서는 야훼라 불리고 B에서는 원 어보브 올이라 불리며 C에서는 아자토스, D에서는 THE ONE 등등. 하지만 이 경우에 동일 존재의 행태가 세계별로 너무나도 달라서 모두가 동일 존재라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게다가 전능자가 심심풀이로 각자 개별적인 전능자로 만들어 버린다면 문제는 또 다시 생긴며 그러지 못한다면 전능자에게 불가능한 일이 생겨버린다. 그런고로 이런 문제는 그냥 픽션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좋다.
  24. 알지 못하고 할 수 없는 한계가 작중에 직접 묘사되는 등.
  25. 하지만 몇몇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의 설정을 까먹어 실수하거나, 전개가 어수선해져 뜬금없는 설정을 도입하여 땜빵처리 하는 점을 보면 모든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에서 전지전능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거리가 멀다.
  26. 일부 게임을 제외한 나머지 게임들은 예외다. RPG계열 게임들은 전부 한계점이 명확하며 성장한다고 해도 똑같다. 그리고 연애 시뮬레이션 계열도 엄연히 선택지 외에는 다른 선택이 불가능하며 게임을 클리어하기 전에 어떤 엔딩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배드 엔딩이 결과인 경우나 서술 트릭이 이용되는 게임일 경우에는 플레이하는 동안은 오히려 무지 혹은 무능하다고 볼 수도 있다.
  27. 다만 1대 프레젠스가 스스로 "나는 누군가로 부터 창조되었다."라는 말과 루시퍼가 1대 프레젠스가 죽었다는 언급이 나오면서 팬들 사이에서 정말로 프레젠스가 전지전능한 가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의견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28. 하지만 최근에 프레젠스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전지전능에 대한 논란은 사그러들었다.
  29. 단 이는 SCP-001의 제안이므로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