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태인

(채럼버스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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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끝홈의 시초가 된 2013년 6월 7일 홍상삼을 상대로 끝내기 홈런을 친 이후. 정우영 : 채태인이 퍼올린 타구는 경기를 끝내러 갑니다

그리고 추억이 되어버린 삼성 라이온즈 시절 모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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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넥센의 일원으로 새롭게 도약한다.
역시 삼적화의 후폭풍은 유니폼도 안 어울리게 만든다. 옆모습을 보니 약간 이택근과 닮은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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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상고 시절에는 윤성환과 원투펀치를 이뤘다.

넥센 히어로즈 No.17
채태인(蔡泰認 / Tae-in Chae)
생년월일1982년 10월 11일
신체187cm, 94kg
출신지부산광역시 서구
학력부산대신초 - 부산대동중 - 부산상고
포지션투수1루수
투타좌투좌타
프로입단2001년 2차지명 10라운드 (전체 74번, 두산)
2000년 아마추어 자유계약 (보스턴 레드삭스)
2007년 해외진출선수 특별지명 (삼성 라이온즈)
소속팀보스턴 레드삭스 (2001~2002)[1]
삼성 라이온즈 (2007~2016.3.22)
넥센 히어로즈 (2016.3.23~)
응원가삼성 시절
등장시: Jessy Matador - Bomba[2]
타격시: 노래를 찾는 사람들 - 일요일이 다 가는 소리[3]
현재
등장시: Jessy Matador - Bomba
타격시: T-MAX - 파라다이스 (꽃보다 남자 OST)[4]
2007년 한국프로야구 퓨처스리그 올스타전 MVP
2007년 첫 제정채태인(삼성 라이온즈)전준우(롯데 자이언츠)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64번
임익준(2007)[5]채태인(2007~2008)[6]김건필(2009)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7번
전병호(2000~2008)채태인(2009~2015)김대우(2016~ )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65번
김대우(2014~2015)채태인(2016~2016.4.7)강윤구(2016.9.24~)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17번
서동욱(2016~2016.4.6)채태인(2016.4.8~)현재

1 개요

삼성의 채흐였던 자, 이제는 넥센의 채흐.[7]
채천재

삼성 라이온즈, 현 넥센 히어로즈의 1루수이자 모험가.[8] 도박사 퓨처스 올스타전 초대 MVP.

입단 초기에는 64번을 달고 뛰었으나, 2008 시즌 후 전병호가 은퇴하자 2009년부터 17번으로 변경했다. 여담이지만 17번은 삼성 마운드의 상징이었는데 그 전에는 원년 멤버인 송진호는 투타를 겸했고, 부시맨 김성길도 17번을 달았던 때가 있었으며, 심지어는 원조 라이언킹이자 잠수함 에이스 투수 박충식까지 적용한 바 있기에 타석으로 들어선 적이 있어서 타자로도 그리 어색하지 않다.

2 선수 생활

2.1 MLB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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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레드삭스 입단 당시 시절 (출처 : 포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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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속 오른쪽 인물이 동갑내기 친구 추신수였다. (출처 : 포토로)

신문에 '강수지 결혼'이라는 제목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면 기분탓이다.

부산상고를 졸업한 후 2001년 두산 베어스의 2차 10순위 지명[9]을 받았으나 보스턴 레드삭스가 계약금 80만 달러의 조건으로 스카웃, 미국으로 진출했다.[10] 당시 포지션은 투수.[11] 하지만 부산상고 시절 입은 어깨 부상으로 인해 수술을 받아 재활하게 되어 단 한 경기도 등판하지 못했다. 계속되는 재활과 향수병 때문에 결국 보스턴에서 임의탈퇴된 후 귀국하고 2002년 말부터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한 후 2005년에 보스턴에서 공식적으로 방출되었다.

사실 여기에는 뒷사연이 있다. 지명 당시부터 정상이 아니었던 채태인의 어깨를 보스턴이 어떻게 판단하고 지명했느냐는 것. 여기에는 채태인의 은사인 김응용 감독의 공이 컸다. 김 감독은 채태인의 부산상고 선배이자 고교 시절부터 후견인이기도 했는데 보스턴 측에 채태인의 호투 영상만을 모아 보낸 것. 한국의 고교야구 3학년의 투구 영상까지 일일이 챙기지 않았던 것인지 보스턴은 그 영상을 보고 메디컬 테스트도 생략한 채 80만달러에 채태인을 미국으로 불렀다.

그러나 보스턴의 기대는 빗나갔다. 채태인은 두 번째 불펜 투구 만에 어깨 통증을 호소했고 관절 와순 손상 진단을 받았으며 왼 어깨 수술을 받아 기나긴 재활 장정에 올라야 했다. 한국에서 재활하던 채태인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 건 2002년이지만 어깨 부상은 재발했고, 채태인과 구단은 별다른 절차없이 이별하게 됐다. 그리고 상기한 대로 한국에서 공익복무요원으로 군복무를 마쳤다.

그렇다면 채태인은 왜 한국으로 돌아와 군 문제부터 해결하려고 했던 것일까? 뒤에도 나올 내용이지만 해외 진출 선수에 대한 유예 규정 때문이었다. 2002년 이별 후 보스턴에서 완전 방출된 것으로 생각했던 채태인은 공익 복무 후 2년 유예 기간을 채우고 프로에 복귀할 계산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채태인의 생각과 다르게 그는 아직 서류상으로 보스턴 소속 선수였다. 2005년 공익에서 소집 해제된 그에게 보스턴은 "넌 아직 우리 선수다, 오스트레일리아로 날아가서 극동지역 스카우트존 디블[12]을 만나라"고 통첩했다. 그러나 오랜 부상과 재활로 투수로 뛰기엔 채태인의 어깨가 멀쩡할 리 없었을 터, 디블은 채태인에게 "타자로 전향하지 않겠느냐"는 제안까지 하며 미국행을 재제안한다. 그러나 미국 생활에 질렸던 채태인은 존의 제안을 거절하고 보스턴과 완전히 계약을 해지하며 공식적으로 국내로 돌아오게 된다. 기나긴 방황 속, 그는 결국 미국 프로 무대에서 단 1경기도 뛰지 못한 채 맨몸으로 돌아온 것이다.[13]

하지만 그는 야구선수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모교인 개성고에서 후배들과 계속 몸을 만든 것. 프리 배팅을 하면 10개 가운데 9개를 넘기는 등 좋은 타격감을 보이자, 프로 스카우트들 사이에 그의 이름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해외파 선수 특별지명에 대한 논의가 나오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2007년)이었는데, 1999년 이후 국외리그 진출자 중 5년이 넘은 선수들을 대상으로 8개 구단이 한 명씩 국외파 선수들을 지명을 하기로 한 것. 8개 구단 스카우트들이 일제히 부산 개성고 채태인을 찾았다.

그러나 삼성을 제외한 7개 구단 스카우트들의 눈앞에서 채태인은 특별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훈련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고의 태업을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산 것, 이미 김응용 사장과 삼성이 지명하기로 모의가 돼 있어서 저러는 거라는 루머까지 나왔다.

이에 대해 김응용 사장은 훗날 “우연히 부산상고에 갔더니 채태인이 타격 훈련을 하고 있더라고. 보니까 괜찮게 치는 거 같아. 그래 당시 삼성 스카우트였던 장효조(작고)한테 ‘저거 놀고 있으니까 경산 2군 훈련장으로 불러와서 훈련 좀 시켜보라’고 했지. 삼성에 오든 다른 팀으로 가든 아까운 인재니까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고."라고 이야기했다. 또 경산에서 며칠 훈련시킨 다음에 삼성 스카우트들에게 다 물어봤어. ‘채태인이 어떠냐’고. 내가 독단적으로 결정하면 스카우트들이 속으로 ‘자기 고교 후배라고 억수로 챙기네’ 할 거 아니야. 그런데 스카우트 중에 한 사람도 ‘나쁘다’는 사람이 없었어. 다들 ‘적응 기간만 잘 거치면 꽤 좋은 타자가 될 거 같다’고 하더라고. 그래 해외파 특별지명 때 우리(삼성)가 채태인을 지명한 거라고.”라는 말도 함께. 어쨌든 그렇게 채태인은 삼성의 유니폼을 입었다(이상 박동희의 네이버 스포츠 칼럼, '박동희의 야구인'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천재' 채태인 기사 참고).

어쨌든 이런 과정을 통해 모교를 찾은 김응용 사장의 눈에 띄어[14][15]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기로 합의했다.[16]

하지만 '1999년 이후 한국프로야구를 거치지 않고 해외로 진출한 선수는 2년 간[17] 국내에 복귀할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해외파 특별 지명 제도로 구제받은 2007년까지 한국프로야구에서 뛰지 못했다.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한 것도 그 때쯤이지만, 그를 기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이종두 타격코치가 그의 타격 재능을 읽고 있었던 것. 부산상고 시절 화랑대기 우승 때 채태인이 타점상을 받은 적이 있었고, 어깨 부상도 있고 해서 타자로 전향하는 것이 더 좋다고 본 이종두 코치가 그를 타자로 전향시켰다. 그리고 이종두 코치의 예상은 잘 맞았다.

2.2 2007~2009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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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로 복귀한 후 2007년의 삼적화 되기전 모습
구자욱??????

2군에서 애초엔 외야수로 시즌을 시작했지만, 뜬공을 놓치는 일이 잦아1루수로 전향했다.[18] 2군에서 중심 타자로 활약하며 시즌 중반 잠시 1군에 올라왔지만 삼진만 당하고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반전의 계기가 되었던 것은 2007년에 처음 열린 2군 올스타전에서 MVP를 받게 된 것. 그 뒤 시즌 후반 1군에 다시 올라와 8월 2일 대구 LG전 8회에 대타출전해 우규민에게 띵하는 소리와 함께1군 데뷔 첫 홈런을 때렸다.[19] 이전까지 1승 0패 24세이브, ERA 1.20에 WHIP가 1도 되지 않는, 오승환과 세이브왕 경쟁을 하고 있던 우규민이 이 한 방 이후 블론 세이브의 왕이 되었다. 영상 참고로 이때의 우규민은 세이브만 오승환에게 1개 차로 뒤지고 있었지... 세이브를 제외한 대부분의 기록을 앞서고 있었다. 이후 그는 조영훈을 밀어내고 삼성의 중심 타선이 되었다. 부상과 맹장 수술로 인해 빠진 적은 있지만, 그래도 2008 시즌에는 두 자리수 홈런을 기록한 적이 있으며 최형우, 박석민과 함께 삼성 타선에서 세대교체의 한 축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사실은 방망이를 본격적으로 잡은 지 3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그 전에는 군 복무와 유예기간 공백으로 3년 이상 제대로 된 프로 무대를 밟아보지 못한 선수였다는 것. 그럼에도 1루 수비 능력은 이미 리그 최고 수준인데다 타격도 준수했다.[20] 그래서 채천재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2008년 시즌 종료 후 도박 사건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 2009 시즌을 앞두고 5경기 출장정지 처분을 받은 후, 2009년 4월 10일 KIA전에 복귀했다. 참고로 100이면 99가 잃는다는 인터넷 도박에서 땄다고 한다. 그 때 딴 돈이 5,000만원이라고 하는데, 5,000만원이면 채태인의 2008 시즌 연봉이다(…). 천재 맞네 흠좀무.

검찰이 그 당시 인터넷 불법 도박을 매의 눈으로 주시하고 있던 상태였다. 이 사건 전에 이미 강병규 사건이 터졌다는 점을 떠올려 보자.

그럼에도 2009년에는 첫 규정 타석을 채움과 동시에 풀타임 주전 1루수로 활약하면서 좋은 수비와 함께 0.293의 타율과 17홈런, 72개의 타점을 기록하면서 최형우, 박석민과 더불어 작년에 비해 더 성장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삼성 팬들은 채태인이 앞으로도 삼성의 중심 타선으로 맹활약해 줄 것이라 기대하였으나...

2.3 2010 시즌

2010년 4월 15일 LG전에서 2회 이병규의 1루수 직선타를 다이빙캐치로 잡아낸 후 착지하다가 왼손목을 접질리는 부상을 당했다. 5월 7일 대구 SK전에서는 4-3으로 역전한 5회 말 2사 뒤 타석에서 1루 땅볼을 친 뒤 1루를 밟는 과정에서 오른쪽 발목을 접질렸다. 1루수 박정권의 토스를 받기 위해 달려온 투수 게리 글로버와의 충돌을 피하다가 베이스의 가장자리를 밟다가 부상당했다...라고 하는데 끝까지 긴장 안하고 별생각없이 1루로 뛰어간 채태인도 문제지만 글로버가 1루 커버한 후 주자선상에서 비켜주지 않은 것은 비매너에다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채태인이 온몸으로 글로버를 들이받아 날려버렸어도 할 말 없을 플레이였다.

채태인이 부상당해서 이탈하면 팀이 지고, 복귀하면 이기고, 또 부상으로 이탈하면 지고, 돌아오면 이기고 하는 기현상이 벌어진 탓에 승리의 요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2010 시즌 초, 장타보다 단타 위주의 타격을 해서 채똑딱이라는 굴욕적인 별명을 얻었으나 이후 홈런포를 자주 쏘아 올리면서 거포 이미지를 되찾는 듯 하다 결국 시즌 끝나고 타점개수가 신명철에게도 뒤지는 우스운 결과를 만들어냈다.[21]

2010년 7월 7일, 문학 야구장에서 SK 와이번스를 상대로 3연타석 연속 홈런을 때려내며 이 부분 기록을 가지고 있던 박경완 당시 SK와이번스 포수의 기록과 타이를 노릴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다. 그것도 송은범정우람에게... 다만 삼성 라이온즈가 1점 차이로 앞서던 7회 2, 3루에서 벤치 싸인으로 고의사구를 기록하며 1루로 나갔다.## 이것에 대해 김성근 감독의 자기 선수 기록에 대한 보호였다, 아니다로 말들이 많았으나... 판단은 각자 알아서.

10월 7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2010년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는 팀이 스코어 0:1로 앞선 2사 2루 상황에서 볼넷을 얻어 1루로 출루한 뒤 다음 타자이자 5번타자인 최형우의 2루타가 나왔을 때 홈으로 뛰는 무리한 주루 플레이를 하다가 부상을 당하면서 페이스가 떨어져버렸고, 결국 5경기 내내 부진한 타격감을 보이며 14타수 2안타 1볼넷 1타점, 타율&장타율 .143, 출루율 .200에 그치고 말았다. 하지만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SK 와이번스와의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도 부진은 계속되어 5타수 무안타, 출루율 0에 그쳤다. 무엇보다도 택도 없는 공에 따라나가 헛스윙(!)으로 삼진되는 경우가 많았을 뿐더러 삼구 삼진의 비율이 높았다. 상대팀은 대놓고 위기상황에서 앞타자 거르고 채태인을 상대하기도 했다. 삼성팬에게는 양심도 없는 새끼, 배알도 없는 새끼라고 가열차게 까였다. 한편 '김현수의 심정을 이해한다.'라는 발언으로 자신과 김현수를 동등한 위치에 올려놓았다고 하여 역시 채천재라고 칭찬(을 가장한 쌍욕)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채태인은 2010년 포스트시즌에서 19타수 2안타 1볼넷 1타점, 타율&장타율 .105, 출루율 .150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2.4 201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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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시즌 채태인의 새 타법
시즌 시작전 새로운 짤방을 제조했다. 이 사람이 정녕 예능인이 아닌 야구선수란 말인가? 이승엽, 오승환, 박석민, 안지만, 양준혁 등 같은 팀에 비슷한 선수들 많다 하지만 이승엽 빼고 모조리 팀을 떠나버렸다.[22]

2011년 광주구장에서 열린 개막전에서 3삼진 후 극적인 역전 만루홈런을 터뜨리며 단기까방권을 받았다. 이어서 다음 경기에서도 솔로 홈런을 터뜨리며 시즌 이틀째긴 하지만 홈런 공동 1위였다. 이러다 또 내려오겠지 그리고 정말로 내려왔다. 그 후에는 5경기 동안 16타수 1안타를 기록하며 매우 부진하다가, 4월 13일 경기 전 훈련 도중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채태인은 2010년 8월 뇌진탕 부상을 당한 적이 있었는데, 아직 그 후유증이 남아 있을 가능성도 있다. 다행히 CT 촬영 결과 별 이상은 없었지만, 정밀검사를 더 해보기 위해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된 후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기사에 따르면 알려진 것과 달리 정말 의식을 잃었다고 한다. 목욕 도중에도 반쯤 의식이 나갈 뻔한 적도 있었다고 하는데 확실치는 않다. 다만 뇌진탕이 얼마나 위험하고 무서운 증세인지를 보여주는 대목. 4월 29일 1군으로 복귀했다.

2011년 5월 3일 사직에서 펼쳐진 롯데와의 주중 3연전 첫 경기에서 신항로를 개척하여 경제적인 주루플레이(…)[23]를 보여주고 아웃처리되었다.[24] 이 병맛 플레이를 본 디씨 갤러들은 그에게 '채름길', '채단횡단', '채단횡단보도', '채럼버스', '채단거리', '3루급행(열차)', 채수작 등의 별명을 붙였다. 당시 상황 캡처[25]

얼마 못 가 이런 짤방이 나와버렸다. 흠좀무 사진 속 열차가 중저항인 것은 일단 넘어가자[26]

그후 2군으로 떨어졌는데, 뇌진탕 후유증으로 추정된다. 최희섭 & 김태균의 예에서 보듯 긴 휴식이 필요할 수 있다.

8월 초쯤 1군에 복귀하였고 이후로는 평균은 했다. 다만 특기할 만한 사항으로는 8월 18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승부를 결정짓는 투런홈런을 한 방 쳐서[27] 이겼다는 것이 있다. 그리고 그 경기가 끝난 후, 문학구장은 무법지대가 되었다.

그후 시즌이 끝날 때까지 류중일 감독의 변함없는 신뢰를 바탕으로 출전하여 꾸준히 삽을 펐고(…), SK 와이번스와의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는 20타석 15타수 2안타 4볼넷 1사구(死球) 9삼진 1득점 타율 .133, 장타율 .133, 출루율 .350을 기록하며 12타수 무안타를 기록한 박한이와 함께 쌍으로 나노 단위로 까였지만, 출루율 .350이 까이다니 하지만 2년 후 이 두 사람이 한 일은... 팀은 시리즈 전적 4승 2패로 우승하였다.

2.5 2012 시즌

이승엽의 국내 복귀로 백업이나 2군으로 밀려날 것이라 예상되었지만, 류중일 감독이 양아들로 밀어주면서 시즌 초반부터 꾸준히 삽질출장했다. 하지만 부진을 털어내지 못했고, 결정적으로 5월 6일의 뇌수비[28]로 역적 등극(...).

여름이 된 후로도 계속 삽질하다가 결국 2군으로 내려간 후 그대로 시즌을 마쳤으며, 2012년 한국시리즈에도 출전하지 못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채태인에게는 더 이상 희망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였으나….

2012 시즌이 끝난 후 류중일 감독은 구단 프런트에 "채태인의 연봉을 5,000만 원으로 삭감해라. 대신 태인이도 가족이 있는 선수니까, 나머지 분은 경기에 출장하면 다 받아갈 수 있도록 옵션으로 처리해 달라"고 강수를 두게 된다. 이 결정이 신의 한 수가 되었는지, 2013년에 채태인은 맹구에서 천재로 거듭나는 저력을 보이게 된다.주자가 돈으로 보여요 (박동희의 네이버 스포츠 칼럼, '박동희의 야구인'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천재' 채태인 기사 참고)

자세한 사항은 해당 문서를 참조.

2.6 2013 시즌

천재다! 천재가 돌아왔다!
비록 어깨 부상으로 규정타석을 채우진 못하였으나, 0.381의 높은 타율과 함께 OPS 1.001을 기록, 수많은 삼성 팬들을 반성하게 하고, 동시에 기쁘게 해준 시즌이었다. 이승엽이 당해 커리어 로우를 기록했고 노화로 지명타자밖에 못뛸 때 부활해 주었으니... 얼마나 고마운 시즌인가.

자세한 사항은 해당 문서를 참조.

2.7 2014 시즌

갓바로와 최주장, 밴덴헐크와 더불어 통합우승의 1등공신

타율은 그런대로 찍어주고 있지만 작년과 달리 볼넷이 크게 줄어들었다. 5월 19일 기준으로 볼넷은 고작 8개인데 삼진은 28개로 비율이 많이 좋지않다. 타격감이 좋은상태라 공을 다 보지않고 휘두르는 것 같은데 팬들은 좋지 않게 보는중.

5월 29일. 임창용이 흔들리고 있던 2:4 2점차 1사 만루에서 조쉬 벨의 1루쪽 강습 타구를 하이점프캐치로 잡아내고 더블아웃을 잡아내서 경기를 끝냄으로써 과 임창용을 구해냈다.역시 채흐.

2013년의 괴물같은 타율만큼은 못하지만, 후반기에 대폭발하면서 연일 자신의 한 경기 최다 안타[29], 타점[30]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7월 25일 기준 타점은 69타점으로 전체 5위이자, 이승엽의 71타점에 이은 팀내 2위 성적. 타율도 3할을 훌쩍 넘기고 있다. 작년[31]에 비해서 BABIP은 0.350으로 정상 범위 안으로 돌아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채태인은 2013년을 기점으로 한 단계 높은 타자가 되었다고 보여진다.

최형우가 부상으로 빠지고 박석민도 제 컨디션이 아닌 후반기에는 4번 타자로 출전하여 끝내기 안타만 2번을 기록하는 등 선전하고 있다. 박석민이 선발 라인업에 재합류하고 나서도 5번으로 밀리고 채태인이 4번을 계속 치는 중.

2014년 8월 12일 기준 이승엽과 팀내 타점 1위 경쟁을 할 정도로 타점 생산 능력이 매우 좋다. 특히나 득점권 타율은 무려 .372. 이에 대해 채태인은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주자는 다 연봉으로 보인다. 이ㅅ...

흠좀무...#

10월 14일에도 타점을 기록하며 기어이 시즌 97타점을 기록. 3경기 남은 시점이라 경기당 1타점만 적립해도 100타점 기록이 가능한 상황이다. 시즌 최종전에 주자 2루 상황에서 안타를 때려냈으나 박해민이 들어오지 못하는 바람에 결국 99타점으로 시즌을 마감하게 되었다.까방권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던 박해민도 대차게 까였다

2.8 2015 시즌

부상으로 인한 불운의 시즌.

무릎 부상으로 개막전에 합류하지 못했다. 승짱은 이제 불혹을 넘겼고 잔부상도 있기에 수비까지 맡기에는 무리고, 때문에 신인인 구자욱이 개막부터 1루를 맡게 되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내야가 흔들리는 상황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구자욱이 거의 1경기 1실책의 페이스로 구더기수비 불안을 나타내면서 잠실 LG 3연전을 계기로 팬들은 채태인의 1군 복귀를 갈망하기 시작했다. 수비의 사람들에 익숙해져있던 삼갤러들이 이번이 되어서야 1루 수비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카더라

4월 10일 KIA 타이거즈전을 앞두고 1군에 합류하였다. 하지만 당일 경기 도중 옆구리에 통증을 호소했고, 결국 하루 만에 다시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류중일 감독에 의하면 왼쪽 옆구리 근육이 6cm 정도 찢어졌으며 3~4일정도 휴식을 취한 후 일본[32]에서 치료를 받을 예정이고, 복귀에는 한 달 이상 소요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당초 예상과 달리 치료 경과가 좋아 5월 7일 2군 경기에 출장하기 시작해, 5월 12일 김태완과 함께 1군에 복귀했다. 복귀 첫 날에 3번타자 겸 1루수로 선발 출장, 홈런 1개를 포함해 5타수 3안타 2타점 1득점으로 맹활약했으나 팀은 졌다. 수비는 여전히 건재하다. 하지만 무릎에 물이 차는 증상이 있어 이젠 풀타임 1루 출장은 힘들고 수비가 개선중인 구자욱이 주로 1루 백업을 보고 있다. 그리고 삼적화도 진행 중이다

6월 19일 SK전에서 팀이 3대 2로 뒤지고 있던 8회 초 무사 만루 상황에서 김정혁의 대타로 나와 3타점 결승 적시 2루타를 쳐내고 대주자 김재현으로 교체되었다. 팀은 7대 3으로 승리해 시리즈 첫 경기를 가져갔다.

7월 23일 기준으로 49경기에 나와서 타율 0.349에 출루율 0.417, 장타율 0.474, 3홈런, 22타점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7월 들어서 부진하다는 지적이 있다. 게다가 몸이 안 좋은지 1루 수비도 별로라는 지적이 있다.

9월 18일 두산과의 경기에서 4타수 3안타 1홈런으로 맹활약. 그 외에도 베이스에서 발을 뗀 상태로 장비를 벗고 있던 오재원을 몰래 태그아웃시켰다. 영상PC 힐끗 보더니 공을 빨리 달라고 제스처를 취하는 모습이 인상적 양준혁: 왜 채태인 선수가 야구천재라 불리는지 알겠네요

2.9 2016 시즌

무릎이 안 좋아서 재활하면서 시범경기 중 1군 선수단에 합류할 예정이었으나, 1군 선수단 합류를 앞두고 3월 22일 넥센 히어로즈의 점타나베김대우와 1:1 트레이드되었다. 롯데 김대우인줄 알고 놀란 사람도 있다[33] 기자도 있다 2009년부터 등번호 17번을 써왔으나 넥센에서는 서동욱이 17번을 쓰고 있어 김대우가 쓰던 65번을 그대로 쓰게 됐다. 그런데 서동욱이 정규시즌 개막 6일만에 트레이드되면서 채태인이 4월 8일부터 17번을 쓰게 되었다. 설마 이러려고 서동욱을 트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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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초반엔 타격 부진, 그리고 부상 때문에 말도 많았지만 복귀 이후엔 나름대로 팀에 힘을 보태고 있는 시즌.

자세한 사항은 해당 문서를 참조.

3 이야깃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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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를 닮았다고 한다(...).[34] 작은 하마 이야기

별명으로는 채맹구, 채띵, 채타짜(위에서 설명), 채천재 등이 유명하다. 그리고 2011년 5월 3일 롯데와의 경기에서 보여준 천재적인 주루센스 덕분에 채럼버스, 채름길, 채단거리, 3루급행(열차) 등 수많은 별명이 붙어버렸다.

2011 시즌 이전에 '맹구'라는 자신의 별명이 별로 맘에 들지 않은 듯 스프링캠프 인터뷰에서 "별명이나 좀 지어주세요. 친화적인 걸로. 잘생겼다 뭐 이런걸로."라는 애절한 부탁을 남겼다. 하지만 이미 채태인의 아이덴티티는 맹구로 굳어져버렸으니... 그리고 설령 맹구에서 벗어나도 그에게는 채띵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포기하면 편하다... 확실히 2011 시즌 맹구라는 별명에서는 벗어났다. 대신 채름길, 채럼버스로 불리고 있다 별명이 마음에 안 들어 일부러 그런 짓을 한 건가

직접 보자. 채럼버스다.

2012 시즌에는 채르노빌이라는 적절한 별명이 생겼다.

좋은 모습을 보일 때 디시 갤러리 등에서 채장군[35]이라는 별명으로 불렸고, 2013년에 들어서 대활약을 하면서 일반 유저들도 이 별명으로 부르고 있다.

2013년 페넌트 최종 성적으로 타율 0.381(규타 미달) OPS 1.001의 기록을 내면서 진짜 '장군님' 대접을 받고 있다. 7월 타율 0.412 8월 0.271 9월 0.524 10월 잔여경기 타율 0.875(2경기 8타수 5안타)라는 미친 기록을 보라.

4 플레이 스타일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스윙하는 스타일이고 발이 느림에도 불구하고 통산 BABIP가 0.366이나 되는 극단적인 라인드라이브형 타자. 체구가 크고 타자 전환 이래 중심 타선에 꾸준히 배치되어 왔기에 거포로 보는 경향이 있으나 실제로는 20홈런조차 쳐 본적이 없고 2루타가 많은 중장거리형 타자이다. 수비포지션이 1루인 것을 감안하면 교타력은 뛰어나지만 장타력은 조금 아쉬운 편. 실제로 리그 1루수들의 OPS를 비교하면 채태인은 하위권에 들어간다.

다만 이건 워낙 괴물들이 1루에 포진해 있어서 그런 것이고, 기존 1루수 이승엽이 나이 때문에 지명타자로 주로 출전했던 삼성 라이온즈 시절이나 박병호가 메이저로 떠나 1루에 큰 구멍이 생긴 넥센 히어로즈에서는 충분히 1루수에 고정될 수 있는 수준급의 타자다.

특히 채태인이 주목받는 것은 수비력. 현대 야구에서 좌타자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좌타자의 라인드라이브가 자주 향하는 1루수의 수비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데, 채태인의 1루 수비력은 KBO 역대 최고라고 해도 무방하다. 특히 포구 능력은 따라잡을 자가 없다. 키가 커서 높은 볼도 무리없이 처리하며, 유연성이 뛰어나 바운드되는 낮은 볼도 가랑이를 희생하면서 너끈히 잡아낸다. 그 결과 탄생한 짤, 上태인. 오죽하면 데뷔 초기 수비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던 김상수와 박석민의 수비력을 키운 건 채태인이 8할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존재한다. 뿐만 아니라 강습타구를 받아내는 능력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뜬공 처리 능력도 부족하지 않다. 그야말로 수비에 있어서는 모든 것을 갖춘 완벽한 야수. 하지만 30년 경력의 해설위원도 본 적 없는 본헤드 플레이를 펼치는데... 한창 부진하던 중에도 이 수비력은 건재하여 채태인을 '지명수비'로 넣자는 드립이 성행했는데, 당시 1루수 주전을 맡고 있던 선수는 일본에서 연속이닝 무실책 기록을 세운 선수였다. 2014년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는 넥센이 채태인 한 명을 뚫지 못해 번번히 공격 기회가 무산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넥센은 이날 공격 기회를 모두 날리고 1득점에 그치는 바람에 미네이랑 스코어 7:1로 패배하였다.그랬던 채태인이 2016년 넥센으로 트레이드 되서 왔다.

사실 다른 팀들의 1루수에 비하면 채태인은 날렵하고 가벼운 축에 속한다. 다른 팀이라고 다 거구 거포들만 1루에 배치하는 건 아니지만, 유격수나 3루수나 할법한 점프 캐치를 1년에 몇 번씩은 찍어낸다. 이 무지막지한 수비능력 덕에 붙은 별명이 채흐##

아쉬운 점은 잔부상이 많아 풀타임 출전을 한 적이 별로 없다는 것. 특히 바빕신의 가호를 받은 2013년에 규정타석을 채우지 못한 것이 본인에게나 팬에게나 가장 아쉬울 듯 하다. 이런 상태에서 몸을 아끼지 않고 수비를 하니 지켜보던 팬들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는 장면도 많다. 예를 들면 그냥 빨리 뛰어가면 충분히 캐치할 수 있는 공을 한두걸음 뒤에서 부웅 날아 캐치한 후 땅과 수평으로 철퍼덕 떨어진다든가(…).

5 기타 이야기

고등학생 시절 좌완이라면 사족을 못쓰던 김응용 감독 눈에 띄어 강영식과 둘이 코감독 집에 합숙하곤 했다. #

결혼을 굉장히 일찍한 편이다. 16년 기준 9살,6살인 딸과 아들이 있는데 특히 딸 예빈이가 굉장히 귀여워서 덩달아 채태인도 예빈애비라 불리며 추앙을 받는다. 참고로 가족들은 아직 대구에 거주하는 듯. 대구에서 열린 예빈이네 학교 운동회에 참가한 채태인 선수.


2005년 공익 복무 시절에 하던 사회인 야구 당시 기록. 이때는 심지어 본격적으로 타자 전향을 하기도 전이었다. 사회인 야구에 선출이 가면 어떤 깡패가 되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 유일한 삼진을 잡은 사람에 의하면 초저속 아리랑볼을 던져서 삼진을 잡았다고 한다. 그런데 2013년 타격왕을 먹을 기세의 활약을 보여주는 덕에 이 짤방이 재평가되고 있다(...).

뱀발로 큰할아버지가 조계종 총무원장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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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으로 LA 갈비를 매우 좋아한다고 한다. 모 기사에 따르면 경산볼파크에서 LA 갈비가 나올 때 회식하듯이 먹는다는 내용이 있다. 참고로 저 사진이 발굴될 때는 한창 삽 푸던 시절이라 욕을 많이 먹었지만, 환골탈태한 2013 시즌 이후로 저 사진을 올리면 고기 한 그릇은 더 얹어야지 그거 가지고 부족하지 않냐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2015 시즌에 부진하면서 다시 까이고 있다

고교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가 야구를 해서인지 영어를 잘 하는 편이다. 공익 복무 시절에도 틈틈히 영어 공부를 많이 했었고, 외국인 선수(특히 미국인 선수)들이 일이 생기면 통역을 부르지만, 급한 경우에는 채태인을 찾기도 한다. 외국인 선수들하고도 잘 어울리는 편이다. 관련 기사

트레이드 떡밥이 터지면 장원삼과 함께 이상할 정도로 많이 언급되는 선수다. 타격재능이 만발한 13~14시즌부터는 별로 그런 얘기가 안 나왔었지만 15시즌부터는 여러가지 부상에 시달리기도 했고 1루/외야에 포지션 중복되는 같은 팀 동료들이 많아서 16시즌 시작 전부터 얘기가 많이 오르내리는 중... 이었는데, 드디어 트레이드가 성사 되었다. 돌려줘ㅠㅠ

넥센에 와서 선수들이 하는 훈련을 보고 이렇게 훈련이 적어도 되나?와 여기 야구 안 하냐고 물었을 정도.# 배지헌 기자가 쓴 기사에서도 언급된 다른 팀에서 온 선수의 정체는 아마도 채태인 본인이 맞는 듯.문제의 기사

5.1 응원가와 관련된 트리비아

이래저래 응원가로 마음 고생 가장 많이 했을 선수가 바로 채태인일 것이다. 누구는 응원가 만나 선수 생활 내내 쓰는데 2012년까지 한 시즌 동안 응원가가 고정된 적이 없으니 말 다했다. 2010년에는 4minute의 Hot Issue를 개사, 머리부터 발끝까지 채.태.인! 최강 삼성 라이온즈 채.태.인 모두 다 채태인~ 난 항상 태인태인태인태인 채채채채채 채태인!으로 불렀고, 6월부터는 현아의 Change를 개사해 오오오오오오 오오오오 태인! (X3) 오오오오오오 채, 채, 채, 채태인!이라는 전설의 막장 응원가가 탄생했다. 채미닛 채태인 장송곡으로 유명한 응원가는 말할 것도 없다. 자세한 것은 네이버 검색창에 채태인 장송곡을 쳐볼 것.

2011시즌 초부터 민요 아리랑을 썼으나 팬들의 강렬한 항의에 부딪혀 얼마 못 가 사장되었다. 이 때문에 '채리랑'이라는 별명까지 생겼다. 지못미. 그 후로 첫 응원가였던 최강 삼성 채, 채태인 최강 삼성 채, 채, 채태인을 다시 썼다. 채태인이 훅 가는 소리 덕아웃이 달아오르는 소리 삼성 감독 화내는 소리 싫어싫어싫어싫어 채태인이 병살타 치는 소리 채태인이 실책하는 소리 삼성 감독 대타 내는 소리(...)

2012년 새로 바꾼 응원가(오~ 오~ 오오오오~ 채~태인 ~ 삼 ~ 성의 채 ~ 태 ~ 인 ~)는 응원가계에서 금기시되는 ABBA의 노래를 사용(조인성 응원가로 쓰였던 댄싱퀸은 제외, 이후 민병헌이 활약하며 민병헌의 응원가인 허니허니도 제외.)하여, 마치 장송곡을 연상시키는 어두운 분위기로 좋지 않은 성적과 같이 삼팬들에게 까이고 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다시 일요일이 다가는 소리를 응원가로 쓰고 있다(...). 정확히는 2012 시즌 시범경기에 새 응원가가 나와 개막전에 나왔으나...반응이 좋지 않자 그 다음날 바로 원래 응원가로 돌아갔고, 5월 4일 경기부터 다시 새 응원가를 쓰다가 7월부터 또 원래 응원가로 바뀐 것이다. 무슨 응원가가 이렇게 자주 바뀌냐? 응원가가 자주 바뀌는만큼 좀처럼 오르지 않는 성적과 부상 때문에 팀내 입지가 이래저래 흔들리는 채태인의 처지를 대변해 준다고 봐야겠다.

그리고 2013년 새로 부임한 응원단장 김상헌이 기존 응원가를 새로운 스타일로 재녹음한 영향 때문이었을까[36], 2년간의 부진을 씻는 맹활약을 보여줌과 동시에, 삼성 경기가 있을 때마다 채태인의 응원가는 크게 불리우고 있다.

넥센 이적후 응원가는 대구 옆동네 배구단얼짱 스타가 쓰던 곡이라 생뚱맞은 듯. 2010년까지 박용택의 등장 음악으로 쓰인 적도 있고... NC로 이적한 박석민처럼 응원가를 달라고 하면 가져올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딱히 그런 요청을 하지 않은듯.

6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수타수 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2007삼성 라이온즈3177.2211750110606.325.277
200868248.26666121104232121.444.322
2009118368.293108262177258054.514.382
2010102356.292104130145448035.447.353
201153182.220407152825134.352.339
201254135.20728701915123.281.321
201394299.381114150115352443.542.459
2014124492.31715638
(2위)
1149969143.484.368
2015104333.34811619084935036.477.408
KBO 통산
(9시즌)
7482490.3017491425814163408295.459.372
  1. 공식적으로는 2005년에 방출되었다.
  2. 대구 구장에선 등장곡 전주에 가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자 가자 가자 가자 가자! 어디 어디 어디 어디 어디! 여기 여기 여기 여기 여기! 우리집에 와 라면묵고 가~!
  3. 최강삼성 채 채 태인 최강삼성 채 채 태인 최강삼성 채 채 채 태인 (좋아좋아좋아좋아) 최강삼성 채 채 태인 최강삼성 채 채 태인 최강삼성 채 채 채 태인~
  4. 워어 채태인~ 히어로즈 채태인~ 승리를 위하여 저 끝까지 날려버려 채태인~ 히어로즈 채태인~ 승리를 위해 저 끝까지 날려버려라 히어로즈 채태인~
  5. 시즌 개막 하루 후 상무 입대
  6. 임익준이 시즌 개막 후 입대하고 빈 번호를 채태인이 이어받음
  7. 실제로도 두 선수는 공통점이 많다. 환상적인 수비력은 물론이거니와, 둘 다 1982년생이며, 삼성그룹 계열의 구단에서 큰 족적을 남긴 뒤 수도권 팀으로 이적했고, 초특급 신인과 같은 자리를 놓고 경쟁한 것,머리 부상으로 후유증을 겪은 것도 같다!
  8. 특히 2011년 5월에 있었던 신항로 개척(...)은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9. 이미 미국 진출이 거의 확정적인 상황이어서 두산에서 도박으로 픽한 것으로, 실제 미국 진출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훨씬 상위 순번에서 뽑혔을 것이라고 한다. 사실 140km/h대를 던지는 좌완 투수가 흔한 것도 아니었고.
  10. 입단식 때 뉴욕 양키스 모자를 쓰고 갔다고 한다. 채태인의 개그 포텐셜은 이때부터
  11. 여담으로 채태인과 동갑인 1982년생 야구선수들이 바로 추신수-김태균-이대호-오승환-정근우…. 참고로 추신수 역시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할 때 투수로 계약했지만 정작 구단은 타자로 전향시켰다.
  12. 오스트레일리아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이기도 하다.
  13. 훗날 비슷한 사례가 두차례나 더 등장하게 된다. 시카고 컵스 산하 마이너리거였던 김진영은 2013년 4월에 퇴단해 귀국했으나 마이너리그 홈페이지의 선수 정보에는 한동안 Active(활동 중)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2014년으로 해가 바뀐 뒤에야 김진영은 공식적으로 홈페이지에서 정보가 삭제됐다. 김진영은 당초 2015년 4월로 유예 기간이 끝나는 것으로 알고 2015년 8월 24일 시행되는 2016년도 신인 2차지명에 응할 계획이었으나 이런 연유로 무산되었고 1년 뒤를 기약하게 됐다. 그리고 2014년 4월 방출된 것으로 알려졌던 전 캔자스시티 로열즈 산하 마이너리거 신진호도 실은 임의탈퇴 상태로 있다가 2년이 지난 2016년 4월에야 계약 관계가 해지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2018년 8월 신인 2차지명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됐다. 결국 법원까지 가서 해석을 의뢰한 끝에 조건부로 트라이아웃에 참가했고 MLB 측에 계약 해지 시점을 문의해서 지명 대상이 되는 지의 여부를 가리게 됐다.
  14. 2005년 1월에 공식 방출되어 이미 2년 유예 기간을 채운 그가 해외파 특별 지명 대상에 뒤늦게 들어간 이유도 이 때문이다. 유예 기간은 임의탈퇴 공시가 아닌 진짜 방출됐을 때가 기산점이다.
  15. 갓끼리와 채장군은 부산상고 직속 선후배관계이기도 하다.
  16. 2007년 초 경찰청 훈련에 합류해 운동했는데 그 때 사진들을 보면 삼성 라이온즈 언더셔츠를 입고 있는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최형우와 이때 알게 되어 친해진 모양.
  17. 최종 소속 팀과의 계약이 완전히 종료된 시점으로부터 2년이다. 김선기의 상무 입대로 군경 팀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리기는 했지만 김선기만이 예외일 뿐 이후에 입대하게 되는 대상 선수들은 퓨처스리그 출전이 불가능하며 군경 팀에 소속된 기간 동안에 유예 기간은 그대로 유지된다.
  18. 본인의 어깨 사정도 한 몫했는데, 류중일 감독 부임 후 채태인을 멀티 포지션으로 외야수 수비를 시도한 적이 있으나, 어깨 부상으로 인해 송구가 도저히 안 된다고 판단하여, 다 멀티 포지션 훈련하는데 혼자 1루 수비만 연습하고 있었던 적이 있다.
  19. 채태인은 시즌 후 인터뷰에서 "노리고 들어간것이 아니라 그냥 나다가가 띵~ 하고 맞은거라 맞는 순간 평범한 플라이겠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상대 우익수 정의윤이 계속 뒤로 가길래 설마설마 했는데 넘어가더라"라고 밝혔다
  20. 본래 1루수로는 아쉬운 수준이라 외야수로의 컨버전 이야기가 나왔으나 2010 시즌 이후 채태인이 없는 1루는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참고로 팬들 사이에서는 채태인을 최고의 1루수로 키운건 9할9푼이 3루를 보고 있는 박석민의 개발송구라는 설이 매우 큰 설득력을 얻고 있다. 2012년 이후로는 박석민의 송구는 상당히 나아졌지만, 이번엔 유격수 김상수가 일렉트로닉 클럽 개발 송구를 남발하는지라...
  21. 신명철 57타점, 채태인 54타점.
  22. 오승환: 한신에서 STL로 이적 박석민: 4년 96억이라는 감당못할 거액으로 NC 이적 안지만: 도박때문에 계약해지 양준혁: 2010년 은퇴.
  23. 전에도 선행 주자를 앞질러 아웃된 적이 있다. 주루플레이는 정말 병맛.
  24. 사실 이 타석 바로 전 1루 주자였던 라이언 가코가 채태인이 친 2루수 직선 타구로 날라가는 공을 2루수 조성환이 당연히 잡을 거라고 생각하고 1루로 뒤돌아갔는데 조성환은 그 공을 놓쳤다(!). 그런데 가코는 그걸 제대로 보지 못하고 그대로 1루를 향해 헤드퍼스트 슬라이딩 시전(!!). 뒤늦게 1루 주루코치의 손짓을 보고 2루로 갔지만 이미 아웃. 디씨 야갤은 가코의 환상적인 플레이에 다들 뒤집어졌으나, 이것이 바로 다음 타자였던 신명철이 타석에 들어선 지 몇 분(!!!)도 안 되어서 벌어질 일의 예고편이 될 줄은...
  25. 여담으로 2루를 밟지 않은 것은 아니다. 1루에서 2루 베이스를 밟고 1루로 되돌아 가다가 3루로 가로질러 간 것. 플라이도 아니고 2루를 밟았는데 왜 돌아간 건지는 확실치 않으나 공을 보면서 돌아가다가 잡지 못한걸 보고 다시 뛴걸 보면 플라이일줄알고 1루로 가다가 급하게 다시 진루했을 가능성도 있다. 2루를 밟았는데 3루로 갔다고 누의 공과가 된 이유는 야구규칙상 베이스를 밟았다 해도 돌아갈 행동을 취한 순간 루의 점유권이 소멸되며, 즉, 2루를 밟지 않은 것과 같이 되므로 추가진루를 하고자 한다면 2루를 다시 밟은 뒤 3루로 진루해야 한다.
  26. 채태인과 나이대가 가장 비슷해서 그렇다. 중저항 차량은 1986년부터 생산되었다.
  27. 채태인의 투런홈런은 이날, 이 경기에서 유일한 득점이다.
  28. 공을 받고 느긋하게 1루 베이스로 향했는데, 김경언이 방심한 틈을 타 재빨리 1루 베이스를 먼저 밟았다. 자세한 사항은 시즌 문서를 참조.
  29. 5안타, 7월 23일 부산 롯데전
  30. 6타점, 7월 25일 포항 NC전
  31. 0.472. KBO 리그 역사상 최고치이며 100년 역사의 MLB에서도 2위의 기록이다. 그야말로 우주의 기운이 채태인의 방망이에 몰빵된 시즌이라는 소리.
  32. 요코하마의 이지마 치료원이라는 곳에서 치료를 받는다. 2013 시즌 중 늑골 골절 부상 때도 요코하마로 갔으며 배영섭, 박석민, 최형우도 부상치료를 위해 이곳에 갔다와서 빠르게 복귀하였다.
  33. 여담으로 이 트레이드 소식에서 가장 뒷목을 잡은 것은 롯데 팬들. 이대호가 해외에 진출한 시점부터 2016년 현재까지 롯데가 심각한 1루수 난에 시달리고 있는 점을 생각하면, "이장석이 김대우 한 명으로 채태인을 얻어오는 동안 우리 프런트는 그 동안 뭐하고 있었냐" 라는 반응이 안 나오는 게 이상하다.
  34. 박한이하마라는 별명이 있다. 박한이에게 하마라는 별명을 붙여준건 류중일.
  35. 다만 이 별명은 광주 경기에서 만루홈런을 치자 모 전 대통령을 비유해서 생긴 별명이다. 기원이 패드립인만큼 사용하지 말자는 의견이 야구팬들 사이에 모이고 있다.
  36. 비단 채태인 뿐만 아니라, 이승엽과 박석민 등 몇몇 선수를 제외하고는 모든 삼성 선수의 기존 응원가를 새로운 스타일로 재녹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