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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하계올림픽 (Citius, Altius, Fortius) | ||||
28회 | → | 29회 | → | 30회 |
2004 아테네 올림픽 | → | 2008 베이징 올림픽 | → | 2012 런던 올림픽 |
第二十九届夏季奥林匹克运动会 Games of the XXIX Olympiad In Beijing | ||
대회기간 | 2008년 8월 8일 ~ 8월 24일 | |
개최국가/도시 | 중화인민공화국/베이징 | |
대회 이념 | 同一个世界 同一个梦想 One World, One Dream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 | |
공식 주제가 | You And Me | |
마스코트 | 베이베이, 징징, 환환, 잉잉, 니니 | |
참가국 | 204개국 | |
참가선수 | 11,028명 (남자: 6,305명, 여자: 4,637명) | |
경기종목 | 28개 종목 - 302개 세부 종목 | |
개회 선언자 | 후진타오 | |
선수 선서 | 장이닝 | |
심판 선서 | 황리핑 | |
성화 점화 | 리닝 | |
주경기장 | 베이징국가체육장 |
1 개요
아시아에서 도쿄-서울[1]에 이어 세 번째로 개최된 하계 올림픽 대회이다. 개최전부터 중국 개최라서 말이 많았던 대회이다. 중국이 그간 죽의 장막 아래 있는 낙후된 국가, 20년 전의 천안문 6.4 항쟁(천안문 사태)로 인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씻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인 대회이기도 하며, 세계 강국으로 부상했음을 전 세계에 과시하려는 대회이기도 하다.
2 유치전
2008년 올림픽 유치 투표 과정 | ||||||
국가 | 도시 | 1차투표 | 2차투표 | 결과 | ||
중국 | 베이징 | 44 | 56 | 유치 선정 | ||
캐나다 | 토론토 | 20 | 22 | 유치 탈락 | ||
프랑스 | 파리 | 15 | 18 | 유치 탈락 | ||
터키 | 이스탄불 | 17 | 9 | 유치 탈락 | ||
일본 | 오사카 | 6 | 유치 탈락 |
21세기의 첫 올림픽 유치전인 만큼, 이번에는 제3세계에서 올림픽을 유치해야 한다는 여론이 강했다. 타이의 방콕, 이집트의 카이로, 스페인의 세비야, 쿠바의 아바나,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도 유치전에 뛰어들었으나, 이들은 유치 과정 중 정식 개최후보도시로 선정되지 못했다. 유치전은 2000년대 이후 올림픽 유치전에서 가장 쓸 말이 없는 유치전이다. 그냥 중국이 압도적인 물량을 바탕으로 밀어붙였고, 2차 투표에서 과반수인 56표를 획득해 베이징이 개최지로 확정되면서 그대로 끝났다. 일본은 오사카의 광탈 이후, 전략을 바꿔서 다시 수도 도쿄의 올림픽 개최를 노리게 되었고, 다들 안될거야 아마...라고 생각했지만,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3 준비 및 사건
대회 주제는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One world, One dream)'[2]이다. 여기에는 평화와 진보, 조화로운 발전, 우호적 생활, 협력, 상호 이익, 행복한 삶의 향유 등 전세계 모든 나라의 시민들이 공통적으로 꿈꾸는 이상을 실현하고 평화롭고 밝은 세계를 건설하는 데 이바지하고자 하는 13억 중국인들의 염원이 담겨 있다고 한다.
중국은 이 베이징 올림픽에 건 기대가 굉장히 컸던 지라 개최 확정 이후 시민 의식 상승 운동 및 시설 재정비에 들어갔다. 베이징 서우두 공항 등 주요 인프라가 보수되고, 국제화 규격과 맞지 않은 게시판들도 교체가 있었다. [3]
성화 봉송 와중에도 티베트 독립운동 문제와 겹치면서 한국에 온 성화 봉송 도중에 중국 유학생들이 대거 난동을 부린 일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반중 정서가 격화되기도 했다.
올림픽 개막식 날 러시아와 조지아의 전쟁이 터지면서, 원래 올림픽의 취지였던 부디 이 시기만큼은 싸우지 말자는 것이 무색하게 되었다.
4 간체 순서 올림픽
개막식에서 입장순서는 중국어 간체자의 획수 순서였다. 그래서 그리스 다음의 첫 입장은 기니(几内亚 지네이야, 첫글자 2획).[4] 가나다순으로도 제법 앞인 편이다
그 다음이 기니비사우(几内亚比绍 지네이야비사오), 터키(土耳其 투얼치, 3획) 순으로, 우선 첫획의 수를 따지고 글자가 많을 경우엔 뒤에 배치하는 식이었다. 글자를 쓰는 순서는 가로(一) → 세로 (丨) → 삐침 (丿) → 파임 (丶) → 꺾임 (乛) 순으로 배치되었다. 그렇지만 그리스와 중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의 입장 순서가 간체자 순서와는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았다.
- 마케도니아(马其顿 마치둔)는 마케도니아 구 유고슬라비아 공화국(前南斯拉夫马其顿共和国 첸난스라푸마치둔궁허궈)라는 이름으로 입장했지만 획수가 9획인 전(前)이 아닌 3획인 마(马)를 기준으로 입장했다.[5]
- 이스라엘(以色列 이써례)은 원래대로라면 팔레스타인(巴勒斯坦 바러쓰탄)과 쿠바(古巴 구바) 사이에 입장해야 했지만, 국가 관계를 고려하여 실제로는 바누아투(瓦努阿图 와누아투)와 일본(日本 르번) 사이에 입장했다.
- 홍콩 뒤에는 베냉(贝宁 베이닝) → 감비아(冈比亚 강비야) → 모리셔스(毛里求斯 마오리추쓰) 순으로 입장해야 했지만 실제로는 감비아 → 베냉 → 모리셔스 순으로 입장했다.
- 괌(关岛 관다오) 뒤에는 통가(汤加 탕자) → 앙골라(安哥拉 안거라) → 앤티가 바부다(安提瓜和巴布达 안티과허바부다) → 안도라(安道尔 안다오얼) → 요르단(约旦 위에단) 순으로 입장해야 했지만 실제로는 앙골라 → 앤티가 바부다 → 안도라 → 통가 → 요르단 순으로 입장했다.
- 미국(美国 메이궈) 뒤에는 미국령 사모아(美属萨摩亚 메이수싸모야) → 미국령 버진아일랜드(美属维尔京群岛 메이수웨이얼징췬다오) → 온두라스(洪都拉斯 훙두라쓰) 순으로 입장해야 했지만 실제로는 미국령 버진아일랜드 → 미국령 사모아 → 온두라스 순으로 입장했다.
- 포르투갈(葡萄牙 푸타오야) 뒤에는 대한민국(韩国 한궈) → 북한(朝鲜 차오셴) → 피지(斐济 페이지) → 카메룬(喀麦隆 카마이룽) → 몬테네그로(黑山 헤이산) → 칠레(智利 즈리) 순으로 입장해야 했지만 실제로는 대한민국 → 피지 → 카메룬 → 몬테네그로 → 북한 → 칠레 순으로 입장했다.
여기에 우리로서는 웃지못할 일화가 있다. 당시 남북한은 정권교체 이후 박왕자 씨 피살사건으로 갈등이 심화되면서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잠시 거론되었던 단일팀은 물론이고, 계획된 단일 개회식 입장과 경의선을 통한 단일 응원단까지 취소되었다. 그래서 한국(韩国, 각각 12획, 8획)은 176번째, 북한(조선(朝鲜), 각각 12획, 14획)은 177번째로 따로 입장해야 했으나[6], 한국 뒤에 입장해야 한다는 점에 자존심이 상한 북한의 반발로[7] IOC의 배려에 따라 북한은 피지(斐济 페이지, 각각 12획, 17획), 카메룬(喀麦隆 카마이룽, 12획), 몬테네그로(黑山 헤이산), 12획)에 이어 180번째로 입장했는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朝鲜民主主义人民共和国 차오셴민주주이런민궁허궈)으로 입장했다. 나라 이름 긴 게 자랑 먼저 입장하면 뿌듯한가??
한편 한국측에서는 맞불 처음에 대한민국(大韩民国)으로 표기해줄 것을 요청했으나[8] 끝내 중국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덕분에 우리는 한국 대표팀이 나올 때까지 죽치고 앉아 기다려야 했고 북한이 동시 입장을 막기 위해 원칙을 깨는 웃지 못할 현상이 벌어지고야 말았다.[9] 그리고 2012년 김정일이 죽은 현재도 동시 입장은 이야기도 안 나오고 있다. 결국 또 각자 입장.
더 전에 열렸던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에서도 간체자의 획수에 따라 입장 순서를 정했는데, 첫 글자의 획수가 같은 경우 순서를 정하는 방법이 서로 달랐다. 따라서 2008 올림픽과 1990년 아시안 게임에 모두 참가한 아시아 나라들의 입장 순서는 일치하지 않는다. 또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는 따질 필요가 없다. 영어 순서대로 입장했기 때문에.
여담으로 마지막 국가는 중국이고[10], 마지막 바로 앞 국가(203번째)는 공교롭게도 라틴 문자 체계에서도 가장 마지막인 Z로 시작하는 잠비아(赞比亚)였다. 획수의 위엄[11][12]
한편 타이완은 중국 타이베이 대신 중화 타이베이(中华台北-4획, 6획)를 쓸 수 있도록 허가받아 24번째로 나왔고,(미묘하게 일본(4획, 5획)이 23번째다.) 홍콩은 중국홍콩(中國香港)으로 26번째로 나왔다.[13]
우즈베키스탄(乌兹别克斯坦 우쯔비에커쓰탄)과 바베이도스(巴巴多斯 바바둬쓰) 사이에 입장할 예정이었던 브루나이(文莱 원라이)가 불참하면서 입장 순서가 하나씩 상승했다.
개회식에 참여한 국가 중 가장 선수가 많았던 국가는 637명 규모의 미국으로, 628명 규모의 중국을 9명 앞섰다. 러시아가 459명, 독일이 458명, 호주가 439명으로 뒤를 이었다. 남한은 280명, 북한은 63명 규모.
5 대회 내용
올림픽 개막식 |
곳곳에 미숙한 대회 운영이 보였다. 올림픽의 시작을 알리는 개막식에만 3연벙 3개의 짝퉁이 등장하였다. 오오 이거슨 대륙의 기상.
1. 개막송 립싱크: 린먀오커(林妙可)라는 9살(1999년생) 여자아이가 개막송 <歌唱祖國>을 불렀다(18분 9초부터 등장). 중국을 상징하는 빨간색의 원피스를 입고 등장한 린먀오커는, 귀엽고 깜찍한 모습과 노래 실력으로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린먀오커는 립싱크를 했으며, 실제로 노래를 부른 사람은 양페이이(楊沛宜)라는 7살(2001년생) 여자아이인 것으로 밝혀졌다. 양페이이보다 린먀오커의 모습이 더 귀엽고 깜찍하다는 이유로 꾸며진 일이었다. 이 일로 양페이이는 큰 충격과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반면 본래 아역배우 출신이었던 린먀오커는, 개막식 출연으로 더욱 유명해지고 여러 활동을 하면서 스타덤에 올랐다.[14]
2. 가짜 소수민족 어린이들: 린먀오커가 립싱크를 하는 동안,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소수민족 어린이들이 오성홍기(중국 국기)를 국기게양대까지 운반했다. 그러나 이 어린이들은 실제 소수민족이 아니라 한족이라고 한다.
3. 가짜 불꽃놀이: 개막식 화면에 등장하는 불꽃놀이 영상도, 실제 불꽃놀이가 아니라 사전에 컴퓨터그래픽 등으로 미리 만들어 둔 영상이라고 한다.
그리고 개막식 도중에 블루스크린이 나오면서 제대로 중국 정부를 굴욕먹였다.(...) 빌 게이츠 : 계획대로
블루스크린이 나오긴 했지만 워낙 개막식의 스케일도 크고 웅장하다보니 해외에서는 호평들이 많다.
개막식 말미에 그라운드가 반으로 갈라지며 지하로부터 거대한 지구본이 천천히 솟아오르고 지구본 꼭대기에서 영국(서양) 출신의 소프라노 사라 브라이트만과 자국 출신 중국인 가수 류환이 "너와 나, 우리 그리고 세계는 하나"라는 올림픽의 주제를 담은 메인 테마송 "You & Me"를 열창하는 가운데 주경기장을 배경으로 베이징 시내 전역에 거대 불꽃놀이와 폭죽이 터지는 장면은 특히 찬사를 받았다.
화려만 하지 무엇을 전달하는지는 잘 모르겠다는 의견도 있으나 스케일만큼은 역대급이라는건 인정해야할 것 같다
여기에 은근히 소수민족의 화합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통해 하나의 중국이라는 이념을 더 알리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중국 관중들의 매너도 썩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는 것이 중평.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 오랜만에 기인에 가까운 선수들이 제법 많이 나왔던 올림픽으로써 숱한 명승부와 명장면들이 펼쳐진 대회였음은 부정할 수 없다. 마이클 펠프스는 금메달을 무려 8개나 따내며 마크 스피츠를 넘어 역사상 한 대회 최다 금메달리스트라는 기록을 세웠고 육상에서는 우사인 볼트가 100m, 200m, 4x100m에서 3번 연속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미국 육상을 압도했다. 반대로 미국 육상계는 단거리 부분에서 남자나 여자나 모두 털리면서 제대로 망했다. 장미란은 다른 선수들이 모두 메달을 가린 후에 혼자 역기를 들며 '세계신기록'을 갱신하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하였다.
야구에서는 한국 야구 국가대표팀이 올림픽 참가하면서 처음으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또한 금메달 뿐만 아니라 전승으로 우승한 기록을 세우게 되었는데 이것은 야구가 올림픽 종목으로 진입한 후 최초의 기록이였다.
펜싱에서는 여자 플뢰레 개인전에서 발렌티나 베찰리가 한국의 남현희를 상대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며 펜싱 역사상 유일하게 단일 종목 3연패를 기록한 유일한 선수가 되었다. 남자 사브르 개인전에서도 명승부가 나왔다. 결승전은 한국의 오은석을 이기고 올라간 니콜라 로페즈와 홈팀 중국의 중만간의 대결이었다. 초반에 먼저 8득점을 올리며 전반전을 리드로 끝낸 쪽은 로페즈였으나, 중만은 단 1점만 실점하고 무려 9득점을 올리며 15-9의 완승을 거두고 중국의 역대 2번째 올림픽 펜싱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첫 금메달은 이보다 24년전에 여자 플뢰레 개인전에서 우승한 루안지제였다. 그러나 중만의 전성기는 대한민국이 남자 사브르에서 구본길을 발굴하면서 금새 끝났다.
남자 축구의 경우 리오넬 메시가 출전해서 화제가 되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만나는 팀마다 죄다 쳐발라버리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무시무시한 당시 아르헨티나 스쿼드를 처음 접한 축구 커뮤니티는 모두 "이새키들 월드컵 나가냐?"며 경악(...) 후안 로만 리켈메, 하비에르 마스체라노가 중원을 지키고 세르히오 아구에로, 앙헬 디 마리아, 에세키엘 라베시, 리오넬 메시 등이 골문을 두들긴다. 정말 월드컵 도전할 기세 참고로 아르헨티나는 결승전에서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승리를 거둬 이전 대회에 이어 올림픽 본선 12연승을 기록했다. 이 올림픽 축구종목은 앙헬 디 마리아라는 새로운 스타 플레이어를 발굴했다.
이 당시 아르헨티나의 무시무시한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다.
- 조별리그
- VS 코트디부아르 2-1 승
- VS 호주 1-0 승
- VS 세르비아 2-0 승
- 8강 VS 네덜란드 2-1(연장) 승
- 4강 VS 브라질 3-0 승
- 결승 VS 나이지리아 1-0 승
1실점 이상 기록하지 않았고 전승 금메달도 기록이지만 브라질을 일방적으로 쳐발라버린 것이 압권이었다.
특히 이 대회에서 세계적 스타인 메시가 금메달을 딴 이후 올림픽 축구는 2년 후에 있을 월드컵 전초전 성격을 띠게 되며 23세 미만이지만 세계적으로 이름을 널리 알린 선수들이 더 많이 나오게 된다. 특히 브라질은 월드컵 5회 우승에 빛나지만 올림픽 금메달이 없다보니 엄청난 투자를 감행하기도 한다. 이 대회 이후 올림픽 축구는 전력 상향평준화에 이어 FIFA 월드컵, 유럽선수권, 코파 아메리카(남미선수권) 못지않은 제 4의 메이저대회로 성장하였다.[15]
한편, 한국은 전번에 이어 2연속 2라운드 진출을 노렸으나 하위팀인 온두라스를 이긴 뒤 빼고 조 3위로 탈락했다. 일본은 3전 전패로 탈락하고 개최국 중국은 사상 첫 축구 메달을 노리겠다고 했지만 약체 뉴질랜드와 사이좋은 1무 2패를 거두고 골득실 차로 3위를 차지하며 탈락. 처음으로 아시아 예선을 거쳐 올라온 호주도 1무 2패로 탈락하며 아시아 4개 국 모두가 탈락하고 한국이 그나마 1승이라도 거뒀다.
양궁은 중국인들의 시민의식이 아직 갈 길이 얼마나 미개한지 먼지 보여주었다. 특히 악천후 속에서 치러진 여자 개인전에서 중국의 장쥐안쥐안은 8강에서 주현정, 4강에서 윤옥희, 결승에서 박성현마저 이겨 한국인 올킬을 달성했는데, 무개념 중국관종새끼중들은 장쥐안쥐안의 경기에서 한국 선수들이 조준할 때마다 호루라기를 불고 페트병까지 두드리며 경기를 방해했다. 아무리 국내에서 이런 상황에 대비한 훈련을 했다고 하지만, 한발 한발 집중해서 쏘아도 10점에 들어갈까 말까인데 잡다한 소음이 들리니, 아무리 담이 큰 한국 선수들이라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웃기는 것은 2004 아테네 올림픽 단체전 결승에서 박성현이 26번째 화살을 실수했을 때 옆에서 이겼다는 착각 속에 촐랑댄스를 추던 중국 선수가 바로 장쥐안쥐안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박성현은 베이징에서 장쥐안쥐안이 홈 텃세를 등에 업고 금메달을 가져가자 오히려
중국관종관중들의 무개념 응원으로 한국 여자양궁이 개인전 7연속 우승에 실패했다. 한편 몇몇의 멍청한 누리꾼들은 1988 서울 올림픽에서의 복싱 박시헌과 2002 한일 월드컵의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응원을 생각하면, "우리가 무슨 자격으로 중국 관중들과 장쥐안쥐안을 욕할 수 있겠느냐"라는 주장을 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이건 경기 종목상 잘못된 비교이다. 애초에 축구와 복싱은 떠들썩하게 응원해도 충분히 치룰 수 있는 경기고, 양궁은 떠들면 집중력의 떨어져 선수들에게 큰 불이익이 돌아오는 경기다. 실제로 축구의 경우 자기편이 공을 잡고 있을 때도 미친 듯이 소리지르며 응원한다. 하지만 양궁은 자기 편이 공격할 차례엔 응원단이 조용해진다. 즉 크게 응원해도 되는 경기와 응원을 조용히 해야 하는 경기를 똑같이 비교한 것이다. 바둑 두는 사람 옆에서 큰 소리로 응원하는 것과 학교운동장에서 축구팀 응원하는 것, 둘 중 어느 쪽이 비매너일까? 따라서 중국팀이 비매너로 욕 먹는 건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헤르초크 & 드 뫼롱이 설계한 '새둥지' 주 경기장 등 걸작 건축들도 한몫 했다. 운영자체는 막장이었어도 볼 건 많았다고 해야되나...이런 말 저런 말이 나왔지만 그래도 큰 사고는 없이 끝난 대회였다.
베이징올림픽 종합 우승은 중국으로 중국은 개최국의 이점으로 금 51개 은 21개 동 28개로 종합순위 1위에 랭크되며 중국은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대회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종합 메달에선 미국이 1위)
6 한국 대표팀
한국은 이 올림픽에서 금 13개 은 10개 동 8개로 원정올림픽 사상 역대 최다 메달 내지 사상 최다 금메달을 따내어 종합 7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근데 당시 여자 역도에서 장미란 선수가 금메달을 따고 임정화 선수가 4위를 차지했는데 그 당시 은메달을 차지했던 터키의 시벨 오스칸이란 선수의 소변에서 금지약물 반응이 나와 차지했던 은메달이 박탈 당하면서 당시 동메달을 딴 선수는 은메달로 승격되어 4위였던 임정화 역시 8년이나 지난 지금에 3위로 올라섬으로써 늦게나마 동메달을 획득하게 되었다. 따라서 대한민국에 메달이 총 32개로 하나가 더 늘었지만 순위는 변동이 없다. 남자 단체 종목으로는 사상 최초로 구기 종목에서 금메달이 나왔다. 자세한 사항은 2008 베이징 올림픽/야구 항목 참조.
그리고 한국에서는 물론 아시아에서도 메달이 나오기 힘든 자유형 수영에서 박태환이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한국 사상 최초로 금메달을 딴 기적을 연출했다. 또한 장미란은 상대 선수들과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며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한국은 메달 종합순위 7위를 차지하여 아테네 올림픽에서의 부진을 만회했다. 아무래도 이웃나라에서 열린 올림픽이다보니 현지적응 부분에서는 다른 나라에 비해 유리했기 때문에 호성적을 거뒀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선수들의 귀국 문제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 모든 경기가 끝나서 더 이상 중국에 남아있을 필요없는 선수들의 귀국을 대한체육회가 막아버렸다. 이를 두고 정권의 홍보를 위하여 선수들의 단체 귀국 차량 퍼레이드에 동원하기 위하여 막은 거 아니냐는 비난이 속출하자[16] 선수들의 상업적 이용을 막기 위해서라는 개드립 변명을 했고, 결국 차량 퍼레이드가 아닌 선수들의 단체 귀국 걷기 퍼레이드를 보였으나 몇몇 선수들은 불쾌한 얼굴을 보이며 걷기도 했다.[17] 중계도 당연히 되지 않았고 중앙일보 계열인 일간스포츠는 1면으로 시대를 역행한 국제적 망신거리라고 비판했다.[18]
그리고 이런 계획은 2012 런던 올림픽때에도 쭉 써먹으려다가 호된 비난을 받고 강제적인 면을 없애 몇몇 선수가 한국에 먼저 왔는데 (양학선같은 경우) 그래도 말이 많았었다.
7 이모저모
- 한국의 프로게이머 장재호가 성화봉송을 하기도 했다.
- 이 베이징 올림픽 때 세계급 스포츠마다 꼭 털리는 세븐 갤러리의 사망전대 전설이 시작되었다.
- 중국에서는 이 올림픽을 앞두고 천안문 광장 등에 일반 경찰 및 사복경찰을 배치하는 등 치안에 엄청나게 신경을 썼다. 짐을 많이 들고 있는 등 수상해 보이는 경우 불심검문을 당할 수도 있었으며, 위구르족이나 티베트인 등 분쟁 지역에서 온 사람으로 보일 경우에도 불심검문 대상이었다.
- 올림픽 이전 베이징에는 큰 비가 왔으나 대회일에는 쭉 맑은 날씨를 유지했는데, 이에 대해서 중국 정부에서 기술을 동원하여 인공강우를 유도하였다는 말이 퍼지기도 했다. 쉽게 말해서 미리 비를 다 내려버려 대회일 중에 비가 내리는 것을 방지했다는 것.
댄스 파우더?베이징 현지인들 사이에서는 꽤 퍼졌던 이야기이지만 공식적으로는 인정되지 않았다. 베이징은 원래부터 건조한 도시라 큰 걱정은 없었지만 개최 시기가 여름이다 보니 비가 내리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 개최 시기는 정확히 2008년 8월 8일 오후 8시 8분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이는 중국에서는 8을 길한 숫자로 여기기 때문.[20] 실제로는 운영 사정 때문에 8시 정각에 시작하는 것으로 변경.[21] 또한 이 시기를 기념하여 베이징 지하철에 올림픽 경기장 쪽으로 이어지는 8호선을 개통했다. 마찬가지 이유로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또한 8시 정각에 국기가 입장하며 시작된다.
- 1956 멜버른 올림픽과 비슷하게, 승마는 중국 본토가 아닌 홍콩에서 열렸다. 홍콩도 중화인민공화국 땅이 맞긴 맞으나 별개의 국가올림픽위원회로 올림픽에 별개로 참가하고 있기 때문에 타국이라고 봐야 한다.[22]
- 카리브해 섬나라인 네덜란드령 안틸레스가 이번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참가하게 된 올림픽이기도 하다. 2년 후인 2010년에 안틸레스는 네덜란드령의 분할 국가가 되어서 국가가 해체되었으며 당시 국가선수들은 차기 올림픽 때 무소속 선수단으로 출전한다.
- 당시 "베이징 올림픽 5대신"이란 농담이 유행했다. 문자 그대로 초인적인 기록을 보여준 다섯 선수를 기리는 말로서 전승마다 내용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보통은 다음 5명을 의미한다.
물의 신 | 마이클 펠프스 |
바람의 신(혹은 번개의 신) | 우사인 볼트 |
하늘의 신 | 옐레나 이신바예바 |
대지의 신(혹은 힘의 신) | 장미란 |
불의 신 | 한기주(...) |
- 많은 나라들이 올림픽 전 훈련 베이스 캠프를 대한민국에 차렸다. 이유는 지리ㆍ기후상 이점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을 개최 하면서 구축한 뛰어난 체육 시설에 수준급 훈련 파트너까지 갖추고 있고 각 지자체들의 협조가 있었다. 미국 같은 경우는 베이징의 공해 때문에 우리나라에 베이스 캠프를 차렸다.베이징 올림픽, 한국 어부지리 현실화되나,한국은 베이징올림픽 '베이스캠프',
2020년에 개최하는 어느 대회에서도 이런 상황이 나왔으면 좋겠다.#
- 어처구니 없게도 올림픽 개회식 및 폐회식 영상이 유튜브에 올려져 있지 않는 올림픽이다. 엄밀히 따지면 10분 이상의 분량을 가진 개회식 영상은 존재하는데 폐회식 영상은 10분에도 미치지 않는 분량의 영상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것도 개회식 영상의 경우에도 CCTV 중계영상 및 호주 7 중계 영상을 제외하면 해설 없는 영상은 없다. 다른 해에 개최된 올림픽은 엄연히 존재하는데? 아무래도 아시아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 ↑ 공교롭게도 2008년은 서울올림픽이 열린지 20주년이다.
노렸다! - ↑ 이 주제에서 중국의 본심이 보이기도 한다. 자세한 건 하나의 중국 참조.
- ↑ 이는 1988 서울 올림픽도 마찬가지였다.
- ↑ 간체자 획수를 기준으로 할 경우 첫 글자 획수가 7획인 그리스(希腊 시라)는 카보베르데(佛得角 포더자오)와 쿡 제도(库克群岛 쿠커췬다오) 사이에 위치하게 된다.
- ↑ 첫 글자가 9획인 전(前)을 기준으로 할 경우 마케도니아는 미국령 버진아일랜드(美属维尔京群岛 메이수웨이얼징췬다오)와 온두라스(洪都拉斯 훙두라쓰) 사이에 위치하게 된다.
- ↑ 순전히 우연의 일치로 순차입장을 지지하던 IOC와 중국의 입장에 맞아떨어졌다.
- ↑ 뒤에도 나오지만 북한은 항상 한국 앞에서 입장했다.
- ↑ 이렇게 되면 무려 투르크메니스탄(土库曼斯坦), 예멘(也门)과 몰디브(马尔代夫) 사이로 6번째가 된다.
- ↑ 사실 이 문제의 기원은 1960년대쯤에는 스스로 국제대회에서 대한민국(Republic of Korea)란 호칭을 거부한 데까지 올라간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동등한 위치로 호칭되는 것에 대한 반감이었는데, 한반도의 합법 정부는 한국 뿐이라는 입장 때문이다. 그래서 대한민국(ROK)이라고 주최측에서 호칭하면 한국(Korea)으로 바로잡아 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아무튼 현재 올림픽과 아시안 게임에서 사용되는 공식적인 영어 호칭은 선점 효과와 힘의 논리에 의해 남쪽은 Korea, 북쪽은 DPRK이다.
- ↑ 개최국이니까 당연히 마지막 입장이다.
- ↑ 굳이 딴죽을 걸면 올림픽에서 라틴 문자순의 마지막은 짐바브웨다. 여기선 143위. 그 앞은 오스트레일리아(澳大利亚 아오다리아)였고, 198번째인 독일(德国 더궈)도 상당히 늦게 나왔다.
- ↑ 물론 순전한 우연이다. 예를 들자면 1988 서울올림픽 때는 잠비아, 짐바브웨의 경우 ㅈ 자로 시작하였기 때문에 맨끝에 나오지 않았고, ㅎ으로 시작하는 헝가리, 홍콩 등이 마지막을 장식했다.(물론 맨 마지막은 개최국 대한민국)
- ↑ 마카오는 NOC(정부 올림픽 위원회)가 없기 때문에 올림픽에 출전하지 않는다. IOC에 가입 안한 케이스.
- ↑ CF, 드라마, 영화 등에 출연하고, 가수로도 활동하며, 거물급 성인 연예인들 못지않게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고 한다.
- ↑ 사실 축구계 트렌드가 어린 선수라도 능력만 검증되면 바로 바로 프로 데뷔를 시키는 것으로 바뀌었고 그만큼 어린 나이에도 괴물급 기량을 보유한 선수가 늘고, 그 결과로 예전에 비해 프로에서도 주전 선수인 경우에도 와일드 카드가 아니라 U-23 선수로 올림픽에 출전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리고 아무리 축구계에서 올림픽이 언더 타이틀 붙은 대회라고 해도 올림픽이라는 이름값이 어디가서 빠질만한 대회가 아니므로 정말로 올림픽 메달을 원해서 출전을 감행하는 경우도 많이 늘어난 편.
- ↑ 선수 몇몇은 '한국에 가서 부모님 보고 싶은데...'라며 불쾌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결국 이런 반응을 보이던 박태환은 4년 뒤 런던에선 아예 부모님이 런던에 머물렀다.
- ↑ 여자 태권도 67kg급 금메달리스트 황경선은 당시 8강전에서 왼쪽 무릎 연골 파열, 전방 내측 십자인대 파열 부상을 당해 급히 귀국해야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기어코 높으신 분의 입김 때문에 선수단 전체가 귀국할 때 같이 귀국해야 했으며, 퍼레이드에서도 어쩔수 없이 절뚝거리며 걸을 수 밖에 없었다.
- ↑ 여담으로 최후의 올림픽 대표 차량 퍼레이드는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였다. 당시 노태우 정권이었다는 점, 손기정 이후 56년만에 황영조의 마라톤 금메달 획득 등 호성적을 냈다는 점, 그리고 당시 차량 퍼레이드를 할 때 오늘날에 비해 차량 통제가 비교적 쉬웠다는 점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
- ↑ 티베트 사태 등 여러가지 불안요소들이 많아 개최되지 않으리라는 관측도 있긴 했다.
따라서 베이징 올림픽이 개최될 수 있었던 것은 존 티토가 세계선을 바꿨기 때문이라 카더라. - ↑ 중국어로 8(ba)이 돈을 번다는 뜻의 發財(fa cai)와 비슷하다는 이유.
- ↑ 중국 CCTV는 매 30분마다 디지털 시보를 내보내는데 당시 영상을 유튜브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 ↑ 올림픽 이외에도 행정, 경제 면에서 홍콩과 본토는 별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