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부

1 師父

스승을 높여 부르는 말로 주로 무술 계통의 스승에게 자주 쓰는 말이며, 의외로 가톨릭 수도회에서도 쓰는 말이다.[1] 무협소설에서는 사부란 곧 아버지와 같이 여겨진다.

배틀물에서는 주인공보다는 강한 캐릭터라는 전개가 많은 편이며 청출어람의 경지는 예의상 잘 안 보여주는 편이다. 보여주는 경우가 있더라도 어지간히 패도적인 인물이 아니면 스승을 떡실신시켰다는 전개는 안 보인다. 주인공의 경우 스승이 봐줘서 겨우 이겼다거나 하는 전개가 많은 편. 물론 제자가 스승에게 정말로 승리했을 경우 '더 이상 가르칠게 없다' 면서 독립시키는 것도 유명한 클리셰.

보통은 좀 건성으로 가르치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특히 중국 무술 영화에서 그런 장면이 자주 나오는 편인데 제대로 된 기술 하나 안 보여주면서 장작패기나 물동이 나르기 등의 잡일을 자주 시키는 편이다. 게다가 제자가 뼈 빠지게 잡일하는 동안 사부는 쉬면서 제자를 갈군다.

이 때문에 그냥 보기에는 가르쳐주려고 제자로 삼은 게 아니라 그냥 부려먹으려고 데려온 종자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제대로 배운 제자들은 쓸데없이 부려먹은 듯했던 일들이 나중에 가서는 전부 의미 있는 일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쩌다가 좀 더 강한 기술을 가르쳐준다는 식으로 낚을 때, 자주 내거는 조건이 '한 대라도 때려봐라'. 이런 말을 하는 사부 캐릭터를 상대로 하면 주인공은 상처 입히는 건 고사하고 옷깃조차 스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혼신의 힘을 실은 공격에 옷깃이나 살짝 상처 입은 것을 넓은 도량으로 한 대 때린 걸로 인정해주는 게 대표적인 클리셰.

1.1 사부님 캐릭터

2 師夫

여자 스승의 남편을 가리키는 말. 과거에는 여자 스승이 거의 없었으므로, 여스승의 남편을 부르는 이렇다 할 호칭이 없었다. 사부는 국립국어원의 표준화법에서 제시한 호칭이다.# 그러나 아직 대중에 의해 널리 쓰이고 있지는 않은 듯.

3 四部

동양의 고전적인 서적분류법으로 크게 네가지로 나누어 분류하였기 때문에 사부라 부른다.

  • 경부(經部) - 사서오경을 포함한 유교 경전 및 교육용 교재류
  • 사부(史部) - 역사서, 지리서, 전기류 등. 족보도 사부에 들어간다.
  • 자부(子部) - 제자백가 등 각종 사상가의 저서와 농업서, 의서, 기술서 등.
  • 집부(集部) - 시문집, 문학서 등

4 辭賦

중국 춘추전국시대 초나라#s-1 때 등장했고 한나라#s-1.2 때 궁중 등의 상류 사회에서 유행한 문학 장르. 보통 초나라 때 지어진 것들을 사(辭)라고 하고 한나라 때 지어진 것들을 부(賦)라고 부르며, 둘을 각각 초사(楚辭)와 한부(漢賦)라고도 부르나, 학계에서는 이 둘을 딱히 구분하려 하지 않는다. 사실 굳이 사와 부로 구분하려 하면 송대에 유행한 문학 장르인 사(詞)와 헷갈리게 되기도 한다.

초사는 한나라 때 편찬된 <초사>라는 책[7]을 통해 전해졌다. 대부분의 작품을 굴원이 지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초나라 때 지어진 것으로 밝혀진 것 중에 그가 지은 것이 아닌 경우에는 그의 제자 송옥(宋玉)과 경차(景差)가 지은 것이고, 한대의 작가들의 작품도 들어있다. 중국 북부에 성행하던 민요풍의 고시(古詩)와 달리 초사는 개인의 감정을 서정적으로 표현하고 싶어했던 귀족들의 문학이었으며, 노래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읊기 위한 문학이었다. <초사>에 기록된 작품들은 각각 '이소(離騷)', '구가(九歌)' 11편, '천문(天問)', '구장(九章)' 9편 등 초나라 때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것들과 '원유(遠遊)', '복거(卜居)', '어부(漁父)' 등 한나라 때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것들 총 28개의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초나라 때 지어진 것들로 추정되는 것들은 보통 각 구가 6~7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구의 중간이나 끝 부분에 兮(어조사 혜, 뜻 없이 글자수와 박자만 맞춤)가 들어 있는 경우가 있고, 한나라 때 지어진 것들로 추정되는 것들 중에서는 각 구가 8자로 이루어진 것이 등장하고 그들 중에는 끝부분에 些(어조사 사, 兮와 비슷한 용도)가 있는 구가 있는 경우도 있다.

이후 진(통일왕조)을 거쳐 한나라가 등장하는데, 한나라를 세운 한고제와 그의 신하들 대다수는 북방인 장안에 진출하였음에도 본래 초나라 땅 출신이었기 때문에 평소에 초사를 즐겼다. 이리하여 고대 중국 남부의 문학을 대표하던 초사가 북방의 시경과도 큰 영향을 주고받았으니, 한시 중에 각 구가 7개 글자로 이루어진 칠언시(七言詩)와 구가 8개인 율시(律詩), 12개 이상인 배율(倍律)이 생겨난 것이 초사의 영향을 받은 것이고, 초사 중 각 구 중에 8개 글자로 이루어진 구가 있는 초사는 북방의 시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한무제 집권기에는 사마상여(司馬相如)라는 문인이 기존 초사의 형식과 성격을 약간 바꾸고 그 명칭을 시경의 분류법인 육의(六義) 중 하나인 부(賦)라고 하여 한부를 만들어 낸다.

한부는 초사와 같이 엮여 사부라고 불리지만, 다른 점이 꽤 많다. 우선 초사는 문인들이 자신의 서정을 글과 말로 표현하여 읊기 위해 만든 것으로 그 내용은 서정적이었고 때로는 이상적인 세상을 노래하였다. 하지만 한부는 권력이 안정된 환경에서 문인들이 단순히 자기 글재주를 뽐내거나 황제와 같이 자기보다 높으신 분들에게 아첨하기 위해 읊은 것으로서 주로 영물적, 서사적 내용을 담고 있었다. 또한 이 때문에 한부는 작가들이 더욱 아름다운 표현을 사용하는 데 집중하여 자연스럽게 미사여구가 많아져 초사에 비해 운율감이 떨어져 후대로 갈수록 산문에 가까워지게 된다. 그리고 한부는 위진남북조시대부터 지어진 산문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사부 중 초사는 굴원이소(離騷)가, 한부는 두보적벽부(赤壁賦)가 유명하다.

5 ECW에서 활동했던 프로레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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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Terry Michael Brunk
별칭The Homicidal, Suicidal, Brunkacidal, Genocidal, Death–Defying Man
생년월일1964년 12월 12일
신장183cm (6'0")
체중100kg (220 lbs)
출생지미국 뉴욕주 스태튼아일랜드
피니쉬 무브아라비안 페이스버스터/아라비안 스컬크러셔
아라비안 클러치

보통 인도사우디 아라비아 출신으로 소개되지만 실제로는 레바논계 미국인이다. 삼촌에게서 프로레슬링을 배웠는데, 그의 삼촌은 다름 아닌 전설적인 레슬러 더 쉬크(The Sheik)[8]다.

1985년 더 쉬크가 운영하는 단체에서 사우디 아라비아 출신 '사부 디 엘리펀트 보이'란 링네임으로 데뷔했다. 이 링네임은 인도 출신 배우 사부 다스타기르에게서 따온 것으로, 다스타기르의 첫 영화 데뷔작이 엘리펀트 보이였다. 더 쉬크가 다스타기르의 팬이었다고. 얼마 후 뒤에 디 엘리펀트 보이는 뺐다. 사부는 한 번도 본명으로 활동한 적이 없는데, 테리 펑크와 이름이 비슷해 혼동을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1991년 삼촌과 함께 일본의 FMW(Frontier Martial-Arts Wrestling)에서 활동했는데, 테이블이나 의자 등을 활용해 몸을 사리지 않는 과격한 공중살법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또한 수 차례 데스매치 경기를 가지면서 몸 여기저기에 긁힌 상처가 생겼고, 이는 사부의 또다른 상징이 됐다.

FMW를 통해 인지도를 얻었고, 이를 계기로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 후에는 ECW에서 활동하면서 레이븐, 샌드맨 등과 함께 ECW의 하드코어 레슬링을 대표하는 선수가 됐다. E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을 2번, 텔레비전 챔피언 타이틀을 1번 따냈다. 랍 밴 댐이나 태즈와 태그팀을 이뤄 태그팀 챔피언도 3차례 지냈다. 하드코어 레슬링이 점점 인기를 잃으면서 랍 밴 댐이나 등 ECW 출신 레슬러들이 WWFWCW 등으로 옮겼지만 사부는 WCW에서 2달 가량 활동했을 뿐 ECW가 파산할 때까지 ECW에 남았다.

ECW가 파산하면서 JCW(Juggalo Championship Wrestling)에서 활동하다가 2002년 신생단체 TNA로 옮겼다. 2004년 레이븐과 대립하다가 경기 중 등 부상을 당했는데, 설상가상으로 치료 중 바이러스에 감염되면서 10달 가량을 결장했다. 2005년 복귀해 이전의 대립 상대였던 레이븐과 팀을 이뤄 제프 제럿라이노와 대립했다. 이후에는 어비스와 대립했는데 대립이 끝난 후에는 또다시 몇 달간 결장했다. 2006년 4월 락다운에서 복귀해 사모아 조TNA X 디비전 챔피언쉽 타이틀을 두고 경기를 가졌지만 패했고, 얼마 후 사부는 TNA에서 방출됐다.

방출 직후 사부는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에 WWE와 1년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당시 WWE는 ECW를 부활시킬 계획을 갖고 있었고, 2006년 6월 원 나잇 스탠드를 통해 WWE에 데뷔했다. 그러나 7월에 랍 밴 댐과 함께 대마초 소지 혐의로 체포돼 근신 처분을 받았다. 복귀 후에는 ECW 오리지널 멤버로 활동했고, 2007년 계약이 끝나면서 그대로 방출됐다.[9]

이후로 멕시코의 AAA를 비롯해 세계 각지를 전전했고, 2010년에 ECW 부활 떡밥을 꺼내든 TNA로 돌아왔다. 토미 드리머, 믹 폴리, 랍 밴 댐 등 과거 ECW 출신 레슬러들이 결성한 EV 2.0(Extreme, Version 2.0)에 가입해 릭 플레어의 포춘과 대립하지만 AJ 스타일스와의 경기에서 지면서 플레어가 사부를 각본상 방출시켰고, 얼마 후 실제로도 방출됐다.

사부는 그의 별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몸을 사리지 않는 스타일로 인기를 끌었는데 도리어 이러한 스타일이 그의 상징이 돼버렸고 결국 그러한 레슬링 스타일을 바꾸지 못하면서 WWE나 TNA 같은 하드코어 레슬링이 비주류인 단체에서는 적응하지 못했다. 게다가 WWE와 계약했을 때 이미 그의 나이는 40을 넘겼고, 아라비아나 인도 출신 기믹 때문에 영어를 잘 못한다는 설정이 붙어 마이크워크를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10] 그를 모르는 WWE 팬들에게는 제대로 어필하지 못했다.

아내는 일본인으로, 1997년 결혼했는데 이듬해 도쿄에서 일본 전통식으로 결혼식을 했다.
  1. 이를테면 도미니코회에서는 "사부 성 도미니코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등의 기도를 한다. 당연히 프란치스코회에서는 성 프란치스코가 사부로 불린다.
  2. 야부키 신고가 제자를 자칭하고 있기는 하지만 본인은 정작 자신을 신고의 스승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별다른 관심이 없다.
  3. 아들빼고 이진주채림, 앨리스 크라이슬러, 장거한, 최번개가 있다.끝에 두명은 강제로 당하는 중이지만...
  4. 랄프 존스클락 스틸의 훈련을 담당했었고, 양딸인 레오나 하이데른을 군인으로 키운 사람이기도 하다.
  5. 제자인 아소카 타노갈렌 마렉이 다소 급조된 감이 있지만....
  6. 스토리상 로저와 에게 레슬링을 가르쳤다.
  7. 현존 최고(最古) 판본은 후한#s-1대에 왕일(王逸, 89?~158?)에 의해 지어진 초사장구(楚辭章句)이나 초사 자체는 전한#s-1의 유향(劉向, B.C.77~B.C.6)이 엮었다.
  8. 아이언 쉬크(The Iron Sheik)와는 다른 인물로, 아이언 쉬크와의 구분을 위해 '오리지널 쉬크'로도 불린다. 아이언 쉬크는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초까지 WWF에서 활동했는데, 더 쉬크는 WWE가 WWWF(World Wide Wrestling Federation)이던 1960년대 말 활동했다. 프로레슬러로서 데뷔도 1949년으로 아이언 쉬크보다 무려 23년 더 빨랐다. 하드코어 레슬링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인물.
  9. 원래는 2006 벤젼스에서 존 시나를 꺾고 이어서 빅 쇼를 쓰러뜨리고 사부를 ECW 챔피언에 등극시키려는 각본을 폴 헤이먼이 추진했었다. 하지만 사부가 백스테이지에서 TV쇼 도중에 낮잠을 자는 등 태도가 불량했고 2006 섬머슬램 ECW 챔피언쉽 매치 등 여러 경기에서 실수가 잦아 무산되었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징계로 RAW에서 우마가에게 무력하게 당하거나, 디셈버 투 디스멤버 PPV 일리미네이션챔버 경기 정식 멤버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선수로 대체되어 PPV자체를 출전하지못했다.
  10. 이는 그의 삼촌 더 쉬크도 마찬가지로 마이크워크를 잘 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