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스 레이바

리버풀 FC 2016-17 시즌 스쿼드
1 카리우스 · 2 클라인 · 5 베이날뒴 · 6 로브렌 · 7 밀너 · 10 코치뉴 · 11 피르미누 · 12 고메즈
13 마닝거 · 14 헨더슨 · 15 스터리지 · 16 그루이치 · 17 클라반 · 18 알베르토.M · 19 마네 · 20 랄라나 · 21 루카스
22 미뇰레 · 23 엠레 찬 · 27 오리기 · 28 잉스 · 32 마티프 · 35 스튜어트 · 54 오조 · 56 랜들
* 이 표는 간소화된 버전입니다. 스쿼드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여기를 참고해주세요. * 본래 스쿼드에서 타 팀으로 임대간 선수는 제외되었습니다.
리버풀 FC No. 21
루카스 페치니 레이바[1] (Lucas Pezzini Leiva)
국적30px 브라질
생년월일1987년 1월 9일
출생브라질 도라두스
포지션수비형 미드필더, 센터백[2]
신체조건179cm,73kg
주로 쓰는 발오른발
유스팀그레미우 (~2005)
소속팀그레미우(2005~2007)
리버풀 FC(2007~)
국가대표24경기

1 소개

브라질 출신의 축구 선수.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리버풀 FC에서 수비형 미드필더와 센터백으로 뛰고 있다. 리버풀 이적 이전에는 제 2의 호나우지뉴라는 평가까지 받던 공격형 미드필더였지만 라파 베니테즈스티븐 제라드, 사비 알론소, 하비에르 마스체라노의 백업으로 루카스를 놓으면서 여러 포지션에 놓다가 결국 수비형 미드필더로 정착했다. 물론 그 때까지 리버풀 팬들은 이 녀석이 언제 포텐이 터지나 생각하며 그를 매우 욕했다

2 클럽

2004년 그레미우 유스에 소속된 이후 2005년 프로 무대에 데뷔했으며, 그 해 팀이 2부 리그에서 승격에 성공해 1부 리그에서 뛰게 되었다. 2006년부터 주전으로 활약하면서 팀의 리그 4위 및 주 리그 우승에 기여했으며, 이러한 활약으로 '브라질 세리 A 올해의 팀'에 뽑힌 것과 동시에 '볼라 데 오우루(골든볼이라는 의미)'에 역대 최연소의 나이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이러한 활약으로 인터 밀란유럽 빅클럽들의 구애대상에 올랐으며, 루카스는 그 중 자신에게 가장 많은 관심을 보였던 리버풀 FC를 택했다. 하지만 당시 진행중이었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결승전까지는 그레미우 소속으로 뛰었으며, 결승전 이후 500만 파운드의 이적료에 리버풀로의 이적을 마무리지었다. 리버풀 입단 이후 가진 첫 경기는 홍콩에서 벌어진 '바클레이 아시아 트로피'에 참가했던 포츠머스 FC와의 결승전 경기였으며, 후반전에 모하메드 시소코와 교체 투입되며 데뷔전을 가졌으나 팀은 0:0으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3:4로 패했다. 하지만 프리미어 리그 데뷔전은 2007년 10월 20일 10라운드 에버튼 FC와의 머지사이드 더비로 다소 늦었는데, 이 경기에서 경기 종료 직전 에버튼의 골문 앞에서 필 네빌핸드볼 반칙을 유도해 페널티킥을 얻어내어 팀의 2:1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사비 알론소의 존재로 인해 다소 제한된 기회를 부여받았으며, 2007/08 시즌 겨울 이적시장에서 이탈리아 세리에 AUS 팔레르모스페인과 이탈리아의 10여 개의 팀에서 관심을 보였으나 팀의 감독인 라파엘 베니테스가 이러한 제안을 모두 거절했다. 이후 알론소와의 주전 경쟁에서 살아남으며 첼시 FC아스날 FC와의 경기 및 인터 밀란과 아스날과의 UEFA 챔피언스 리그 경기 등에 출전했으며, 하반트 & 워터루빌과의 FA컵 경기에서 데뷔골을 넣어 리버풀에서 골을 넣은 첫 브라질 선수가 되었다.

이후 2008/09 시즌 시작 전 FC 루체른과의 프리 시즌 경기에서 선제골을 득점하며 팀의 2:1 승리를 견인했지만, 2008 베이징 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해 시즌 초반부에 결장하게 되었다. 올림픽 이후 팀에 복귀했지만 알론소와 마스체라노에게 밀려 경기에 많이 출전하지 못했으며, 풀럼 FC와의 경기에서 부진한 활약을 보인 이후 팬들로부터 비난을 받게 되었다.[3] 하지만 베니테스는 "루카스는 여전히 발전하고 있는 선수"라면서 루카스를 변호했고, 루카스는 12월 28일 뉴캐슬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스티븐 제라드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팀의 5:1 승리에 일조해 이러한 기대에 보답했다. 하지만 2009년 1월 28일 위건 애슬레틱과의 경기에서 후반 38분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 반칙을 범해 페널티킥을 내주어 팀은 1:1 무승부를 기록했으며, 얼마 뒤 2월 4일 에버튼과의 FA컵 32강전 경기에서 후반 31분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해 팀의 0:1 패배의 원흉이 되어 서포터들로부터 다시 비난을 받게 되었다. 이후 3월 14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원정 경기를 앞두고 부상당한 알론소를 대신해 선발 출장해 팀의 4:1 승리에 공헌했으며, 4월 14일 첼시와의 UEFA 챔피언스 리그 8강 2차전 경기에서 제라드 대신 선발 출장해 득점에 성공하며 팀의 4:4 무승부에 기여했다. 하지만 팀은 1차전에서 1:3으로 패한 상황이었으며, 결국 팀은 1, 2차전 합계 5:7로 준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그 뒤 5월 3일 뉴캐슬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프리킥으로 골을 넣어 팀의 3:0 승리에 일조했으며, 팀은 시즌 내내 좋은 흐름을 보이며 리그 준우승을 차지했다. 시즌 종료 이후 더 많은 기회를 잡기 위해 리버풀을 떠날 것이라는 루머가 있었으나, 루카스 본인은 리버풀을 떠나지 않겠다고 해명했다.

2009/10 시즌을 앞두고 펼쳐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친선경기에서 득점에 성공하며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팀은 2:1로 패했다. 이후 여름 이적시장에서 알론소가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자 주전 자리를 차지했으며, 8월 16일 토트넘 핫스퍼와의 개막전에 출장했으나 팀은 1:2로 패했다. 그 뒤 10월 25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다비드 은곡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팀의 2:0 승리에 공헌했으며, 2010년 4월 10일 벤피카와의 UEFA 유로파 리그 경기에서 1골 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4:1 대승을 견인했다. 시즌 종료때까지 리그 35경기(선발 32경기)에 출장했으며, UEFA 챔피언스리그와 UEFA 유로파 리그에서 13경기에 출전하며 주전 자리를 확고히 했다.

이후 2010/11 시즌 시작 전 그라스호퍼 클럽 취리히와의 프리 시즌 경기에서 주장 완장을 차고 경기에서 활약했으며, 여름 이적시장에서 하비에르 마스체라노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하자 더욱 중용되었다. 미드필더에서 제라드와 호흡을 맞추어 활약했으며, 제라드의 부재시에는 크리스티안 폴센이나 하울 메이렐레스, 제이 스피어링 등과 파트너를 이루었다. 9월 16일 슈테아우아 부쿠레슈티와의 UEFA 유로파 리그 경기에서 리안 바벨과 교체 투입된 뒤 골을 넣어 팀의 4:1 승리에 일조했으나, 11월 13일 스토크 시티와의 경기에서 경고 누적으로 후반 추가시간에 퇴장당했고 팀은 0:2 패배했다. 12월 6일 아스톤 빌라와의 경기에서 바벨의 골을 어시스트해 팀의 3:0 승리에 공헌했으며, 경기가 끝난 이후 공식 홈페이지에서 팬들의 투표로 진행된 '맨 오브 더 매치'에 선정되었다. 2011년 2월 12일 위건 애슬레틱과의 경기에서 본인의 통산 100번째 프리미어 리그 출장을 달성하기도 했으며, 이러한 활약으로 자신의 목표였던 브라질 국가대표팀에 승선할 수 있었다. 그 해 3월 30일 구단과 장기 계약에 합의했으며, 4월 17일 아스날과의 경기에서 후반 종료 직전 페널티킥을 얻어내어 팀의 1:1 무승부에 크게 기여했다. 5월 24일 약 40%의 지지를 얻어 스탠다드 차타드 주관 '팬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으며, 시즌 종료 이후 2010/11 시즌 유럽 리그에서 가장 높은 태클 성공률을 보인 선수 중 한 명으로 기록되었다.

2011/12 시즌에서도 스토크 시티와의 풋볼 리그 컵 16강전에서 어시스트을 기록해 팀의 2:1 승리를 견인하는 등 좋은 활약이 기대되었으나, 11월 30일 첼시와의 풋볼 리그 컵 8강전에서 라이언 벨트런태클무릎 부상을 입어 시즌 아웃 상태가 되었다.

2012/13 시즌 이후에도 리버풀에 남아있지만, 자신을 잘 써먹은 케니 달글리시는 시즌이 끝나고 경질되었고, 브렌던 로저스 감독 체제에서는 부상 여파와 그 뒤에도 이은 잦은 부상을 이전보다는 못한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조던 헨더슨이 로저스 체제에서 엄청난 성장을 하고 엠레 찬까지 리버풀에 오면서 로저스 체제에서는 조 앨런과 함께 로테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위치에 놓였다. 그나마 엠레 찬이 스리백의 스토퍼 자리에 놓이면서 출전이 줄지는 않았다. 그러나 결국 백업 신세를 면하지 못 하고 2015/16 시즌 베식타스와 강하게 링크가 뜨며 리버풀을 떠나나 싶었으나, 헨더슨의 부상으로 급하게 출전한 아스널 전에서 메수트 외질을 틀어막고 나다니엘 클라인과의 여러 차례 협력 수비로 알렉시스 산체스도 막으면서 어떻게 잔류는 했다.

그리고 자신을 다소 어중간하게 기용하던 로저스가 경질되고, 후임인 위르겐 클롭 감독 부임 이후 잠시 주전으로 뛰었다. 클롭감독의 게겐 프레싱 전술의 특징 중 하나가, 양쪽 풀백의 오버래핑으로 생긴 수비 공백을 전문적인 볼위닝 미드필더가 채우는 것인데 이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미드필더가 리버풀에는 엠레 찬 외에는 딱히 없다[4]. 부상을 당한 사이 기동력 부족을 이유로 주전을 빼앗겼고, 이후에는 센터백으로 보직을 변경해서 나오는 경기가 많아졌다. 맨체스터 시티와의 리그컵 결승에서도 센터백으로 풀타임을 뛰어 괜찮은 수비력을 보여줬다. 다만 완전한 포지션 변경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게, 4-0 대승을 거둔 마원장을 보내버린 머지사이드 더비에서 중앙미드필더로 출전해 여러 차례 키패스를 찔러주고 위협적인 중거리슛을 보여주는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16-17 시즌 개막 직전에도 언제나 그랬듯 이적 링크가 떴지만 잔류하였고, 디펜딩 챔피언 레스터 시티와의 경기에 센터백으로 선발 출전했다. 제이미 바디의 골을 어시스트(...)하긴 했지만[5] 바디와 무사를 틀어막았고, 여러 차례 빌드업에 관여하면서 뛰어난 경기력을 보였다.

3 국가대표

2007년 U-20 브라질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었으며, 팀의 주장에 선임되었다. 이후 2007년 남아메리카 유소년 챔피언쉽 당시 국가대표팀 명단에 포함되었으며, 대회에서 네 골을 득점하며 팀의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이후 같은 해에 열린 FIFA 청소년 월드컵에서도 좋은 활약을 이어갈 것이 기대되었으나, 다리 부상으로 대회 직전 최종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그 당시 우리로서는 다행이었지만

이후 2005년 10월 쿠웨이트 리그 클럽인 알 쿠웨이트와의 친선경기에서 후반 교체 투입되며 성인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으나 국가대표팀간의 경기가 아니었던 관계로 FIFA로부터 공식 A매치로 인정받지 못했고, 2007년 8월 22일 알제리와의 친선경기에서 교체 투입되어 활약한 것이 공식 데뷔전으로 기록되었다. 그 뒤 2008 베이징 올림픽 당시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참가했으나, 아르헨티나와의 준결승전에서 후반전에 퇴장을 당했고 팀은 0:3으로 패해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이후 2009년 8월 주제 클레베르손이 부상으로 성인 국가대표팀에서 낙마하자, 그 대체자로 발탁되었다. 하지만 2010 FIFA 월드컵 당시에는 국가대표팀 명단에 소집되지 못했으며, 월드컵 이후인 2010년 8월 10일 미국과의 친선경기에서 다시 국가대표팀에 뽑혔다. 그 뒤 2011년 코파 아메리카에도 출전했지만, 파라과이와의 8강전에서 퇴장을 당했고 팀은 0:0으로 무승부를 이룬 뒤 승부차기에서 0:2로 패배해 탈락했다.

4 여담

참고로 삼촌레이비냐는 1974 FIFA 월드컵에 출전했던 유명 선수이며, 이탈리아 시민권을 갖고 있기도 하다.

리버풀 이적 초창기에는 같은 브라질 출신인 파비우 아우렐리우가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어리버리한 플레이를 일삼던 입단 초창기의 선배들이 하나 둘 팀을 떠나더니 2015년 여름 스티븐 제라드마저 떠나자 리버풀 최고참[6]이 되었다. 주장인 헨더슨과 밀너가 부상으로 결장하게 되었을 때 주장완장을 찬 것도 루카스 레이바.
  1. 선수의 성인 Pezzini에는 이탈리아어 표기 규정을 적용한다.
  2. 커리어를 시작할 때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시작했다가 안정적인 수비력을 바탕으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고, 로브렌, 사코, 스크르텔, 투레 모두 부상으로 쓰러진 2016년 초부터 센터백으로 출전하는 경기가 많아졌다. 여러 번의 장기부상으로 발이 느려져 수비 전역을 커버하기는 어려운 이제는 미드필더보다 수비수로서의 루카스를 더 많이 볼 수 있을듯.
  3. 국내 한정으로, 이름을 불릴 가치가 없다며 루카스의 등번호인 21번으로 불리기도 했었다.
  4. 클롭의 첫 풀타임 시즌인 16-17 시즌에는 헨더슨이 홀딩 자리에서 뛰긴 하지만 여전히 포백보호라는 역할을 맡는 데에는 의문부호가 남으며, 알렌은 공격적인 재능이 더 특출나지 수비력이 좋은 편은 아니다. 그나마 찬이 비슷한 역할을 소화할 수 있지만 찬은 이 당시 루카스의 파트너였고, 박스와 박스를 오가는 전천후 미드필더로 성장하고 있었다.
  5. 다만 미뇰레의 골킥이 박스를 나가기 전에 오카자키가 이미 박스 안으로 들어와 있었으므로, 반칙이 선언됐어야 했다.
  6. 정확히는 리버풀 생활 짬밥 기준. 연배로 따지면 마르틴 스크르텔이나 콜로 투레, 제임스 밀너 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