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논란/과학과의 모순

< 성경‎ | 논란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성경/비판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div></div>

이 문서는 종교에 관한 내용을 다룹니다.

이 문서가 다루는 종교, 종교인에 대한 내용은 읽는 이에 따라 민감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잘못된 요소가 있을 수 있으므로 이 문서에 쓰여진 내용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마십시오. 편집할 시에는 문화상대주의를 기반으로 객관적으로 작성하고, 논란이 될 수 있는 내용은 신중히 검토한 뒤 작성하십시오. 또한 문서의 사실에 관한 내용을 수정할 때에는 신뢰가 가능한 출처를 기입하시거나, 토론 과정을 거치신 뒤 하시고, 다른 종교를 비방하거나 비하하는 내용을 넣지 마십시오.

이 틀을 적용할 경우, 문서 최하단에 혹은 분류:종교의 하위 분류를 함께 달아 주시기 바랍니다.
나무위키는 규정상 비(非) 종교위키이며, 따라서 세속적 관점에서 쓰여지도록 규정되어 있으며, 특정 항목에서 세속적 관점과 종교적 관점이 충돌할 경우, 세속적 관점을 위주로 해당 항목을 작성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용에 참고 바랍니다.

1 개요

이 문서는 성경과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내용들과 과학적 발견이나 이론들이 충돌하는 것에 대해서 설명하기 위해서 생겨났다. 다만 최근의 기독교계는(한국 쪽은 아직 덜한 것 같지만) 과학 이론들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기 때문에 아래에서 설명하는 것들은 현재의 기독교계의 주장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이를 참고하면서 읽기 바람.

2 우주의 나이

성경에 따르면 우주와 지구는 단 6일만에 창조됐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빅뱅이론에 의한 팽창속도를 기반으로 우주의 나이를 계산하면 약 137억 9800만 년(±3700만 년) 정도이며 지질학자들이 밝혀낸 지구의 나이만 해도 45억년이다. 다만 이부분은 신학계에서도 일부를 제외하면 거의 받아들이지 않는 추세이다. 6일이 진짜 6일이 아니라는 평가가 우세한 상황으로 근본주의 성향이 강한 한국에서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3 진화론과의 모순

성경에 따르면 지구가 창조되고 나서 하느님이 여러 동물들을 창조한 다음 자신의 모습을 본따 인간을 창조하였다고 나온다.[1] 하지만 진화론에 따를경우 인류는 지구가 탄생한지 몇억년 후에 생겼다. 그마저도 원시세포에서 부터 시작하여 진화의 진화를 거듭하여 양서류가 되고 거기서 더 진화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진화한 것이다. 한마디로 '자신의 모습을 본따 바로 인간을 창조했다'라는 성경의 내용과 모순된 셈. 심지어 성경에서는 인류 이전에 지구에 존재했던 공룡의 존재도 스킵해버린다(…).[2][3]

기독교 측에서는 진화론을 부정할때 우려먹는 사골중 하나로 헥켈의 배아사진 조작사건이 있다. 독일의 생물학자 '헥켈'이 배아의 사진을 조작한 것을 근거로 창조론지지자들은 진화론은 과학계의 조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헥켈이 배아 사진을 조작한 것 자체는 사실이지만 헥켈의 배아 문제의 초점은 사진위조에만 맞춰져있을 뿐 헥켈의 실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사진이 아닌 헥켈의 이론 자체가 맞는지 틀리는지는 관심없이 무작정 진화론을 부정하고 있다.[4]

창조론지지자들은 헥켈의 '사진조작'을 '실험조작'으로 확대해석하고 진화론을 교과서에서 빼야한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헥켈의 실험과는 별도로 진화론을 입증할만한 화석을 포함한 과학적 물적 증거들과 실험 증거들이 수도 없이 많은데도 창조론지지자들은 '아몰랑 헥켈도 주작했으니 다른 과학자들도 주작했을거 아냐'라면서 진화론을 부정중이다.[5] 그러면서 정작 본인들은 창조론을 입증할 과학적 근거나 증거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 웃긴 점.

창조론자들이 진화론에 대해서 비방한 것에 대한 반박은 진화론/비방에 대한 반박 참고.어딜가나 근본주의자들이 문제다

4 공룡의 존재

파일:WbzCwg6.jpg
모 영국인의 일침

성경에서는 지구가 창조되고 난 후에 동물들이 창조되고 난 다음에 인간이 생겼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인류가 생기기 이전에 지구에 존재했던 공룡의 존재와 K-T 멸종의 사실과도 모순되며 성경 어디에도 공룡에 대한 묘사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애초에 성경이 써질 시점에 인류는 공룡의 존재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으니 당연하다. 왜냐하면 성경은 신이 말한걸 적은게 아니라 저자들이 고증 내다버리고 서술한 소설이기 때문. 신이 말한걸 적은거라면 결국 해당 종교인들이 주장한 신의 전지전능성이 부정되는 꼴밖에 안된다. 왜냐하면 신도 몰랐다는거니까. 만물을 신이 창조했다는 주장도 개박살난다. 그야말로 외통수. 공룡의 실존 사실이 과학적으로 확인된 것이 200년 전이지만 성경이 지금으로 부터 수천년 전에 기록된 것 이다.

사실 꼭 공룡뿐만이 아니라 인간이 생기기 전에 탄생한 동물과 생물은 수 없이 많이 있다. 이는 화석을 포함한 수많은 과학적 증거들이 존재하고 있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심지어 바퀴벌레만 하더라도 인류 이전에 생겼으나 현재까지 존재하고 있는 살아있는 화석중 하나이다. 따라서 성경에 적혀있는 내용은 공룡을 포함하여 모든 인간 이전에 존재했던 생물들에 대한 물적 증거에 대한 모순인 셈이다.

사실 성경은 '공룡을 표기하지 않았다'라는 것 하나만 문제인게 아니라, 원시 시대, 선캄브리아대, 고생대를 포함한 공룡시대에 해당하는 중생대시대(약 2.25억~0.65억년전까지의 1억 8천년간)를 전부 다 스킵해버렸다. 따라서 성경이 주장하고 있는 바는 공룡의 존재는 둘째치고 애초에 지질시대 자체가 통째로 잘못되었다. 또한 대멸종이나 K-T 멸종등의 지구 역사상의 사건들도 그에 따라서 통째로 스킵되었다. 애초에 성경은 지구의 역사를 인류가 탄생하기 이전에 시간대는 모두 스킵하고 인류가 탄생한 시점으로 부터 계산하고 끼워맞췄으니 과학적 모순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성경의 공룡 존재 여부 논란에 대해선 기독교 측도 아직 통일된 주장은 나오지 않고 있다.다른 주장들도 대부분 그렇다는게 함정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지 동물의 종류를 설명하는 책이 아니기에 굳이 공룡을 언급할 필요가 없으며, 공룡 뿐만 아니라 고릴라, 코끼리, 기린, 코뿔소, 순록, 오리등 성경에서 묘사되지 않은 동물도 적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성경이 공룡을 묘사하지 않은것이 논란이 된 이유는, 바로 '지구가 생기자마자 인간이 창조되었다'는 성경에 기록된 내용이 '공룡이 인류가 탄생하기 이전에 지구에 존재했던 종족'이라는 과학적 사실과 모순된다는 것이 요점이다. 따라서 성경이 공룡을 묘사하지 않은게 성경이 고릴라, 코끼리등 묘사하지 않은 동물도 적지 않다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대입하는 것은 그야말로 요점을 파악하지 못한 개소리

이 외에도 기독교측에서는 성경에서 묘사된 일부 짐승들이 공룡이라고 주장하나 이 마저도 기독교측마다 서로 말이 다르다(…). 대표적으로 '베헤모스#'[6], '가돌 타닌', '리워야단(리브야탄)' 등등이 공룡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베헤모스에 대해서 먼저 말해보자면, 성경에서 묘사된 바에 의하면 베헤모스는 초식동물 인데다가 물속에서 살면서 꼬리는 삼나무 줄기처럼 길게 뻗어있는 공룡이다. 하지만 초식공룡 중에서 물속에 살면서 꼬리는 삼나무 줄기처럼 길게 뻗어있는 공룡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와 반대로 하마는 초식동물인데다가 물속에서 살며 꼬리가 삼나무 잎같다는 베헤모스에 대한 묘사와 딱 들어받는다. 따라서 베헤모스는 공룡이 아닌 하마를 뜻하는 것이며 실제로 수많은 번역에서 베헤모트를 하마로 번역하였다.

그리고 사실 성경에서는 존재하지도 않는 판타지 동물들도 막 지어낸다(…). 이를테면 상술했던 '리워야단(리브야탄)'의 경우는 '입에서 불을 뿜는 짐승'이라고 나오는데 공룡은 입에서 불같은 거 안뿜는다(…).[7]

또한 성경에서 말하는 '가돌 타닌'이 공룡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그걸 입증할 만할 근거가 전혀 없다. '가돌 타닌'에 대해서 종족이나 정체를 특정할 만한 묘사가 없었으며, 공룡이라고 볼 수 있을 만한 묘사는 존재하지 않았다. 참고로 '타닌'이라는 단어는 욥7:12, 시74:13, 시148:17, 사27:1, 사51:9에서는 용(dragon)으로 번역되어 있으며, 겔29:3과 겔32:2에서는 큰 악어로 번역되어 있어서 '타닌'은 무언가의 큰 파충류였을 것으로 추정될 뿐 공룡이라는 근거는 하나도 없다. 가돌 타닌에 대한 번역은 다 각기 다르다. 국내에서는 '큰 물고기'로 번역되었고 NIV영어 성경에서는 '바다의 큰 피조물 (the great creatures of the sea)'로 RSV영어성경은 '큰 바다 괴물 (great sea monster)'로 번역하였다. 가돌 타닌이 공룡이라는 근거가 없기에 공룡이라는 설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따라서 어느 언어에서도 공룡이라 번역되지 않았다.

이사야27:1에 따르면 “그 날에 여호와께서 그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로 날랜 뱀 리워야단 곧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리브야탄)을 벌하시며 바다에 있는 용(타닌)을 죽이시리라”(사27:1) 라고 적혀있는데 사실 가돌 타닌 자체가 무엇을 뜻하는 동물인지조차 명확하지 않아서 리워야단과 마찬가지로 성경이 지어낸 가공의 존재라는 설도 많다.

결국 기독교측에서 성경에서 공룡이 기록되어있다고 주장하는 것들은 전부 다른 동물을 말하는 걸 공룡이라고 끼워맞추거나 애초에 성경에서 '지어낸 존재'를 공룡으로 끼워맞춘거다. 이 '지어낸 존재' 마저도 실제 공룡이랑 일치하는 서술은 하나도 없다.

외국 유명일화로 과학자가 공룡화석을 내밀면서 "기독교님들 그럼 공룡화석은 도대체 왜 있는 거에여?" 이랬더니 기독교님들이 "신이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시려고여"라는 개드립을 했다고 한다(…). 어떤 기독교인들은 아예 공룡이 인류 이후에 생겼을 수도 있다거나, 공룡의 존재 자체도 설에 불과하다고 부정하기까지 하며 그야말로 현실도피를 시전중(…). 그럼 박물관에 있는 화석은 다 조작이냐? 종의 기원을 쓴 찰스 다윈께서 피꺼솟 하는 소리 하고있네 성경 번역과정에서 랩터으로 잘못 번역한거라고 카더라

다만 위의 주장들은 현대 기독교와는 모순되는 비판들이 많다. 최근에는 기독교 역시 과학의 이론들을 다수 인정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고 이를 위해서 기존의 성서무오설과 같은 입장을 버리고 있다. 대표적인게 계속 나오는 6'일'이 144시간이 아니라는 주장.

근데 생각해보면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나오기 전에 공룡들이 다 끝장났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애초에 선악과 먹은 시점이 창조된 지 얼마나 시간이 흐른 후인지도 모르고

5 시간을 초월하지 못하는 신

성경에서 말하는 창조주 신은 전지전능 한 것처럼 묘사되지만 사실 시간을 지배하고 다루는 능력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성경 내에서 단 한번도 신이 시간을 초월하는 듯한 묘사는 다뤄지지 않았고 또한 인간을 만들려고 마음먹었을때 카인의 후예들과 경건한 셋의 후손들이 결합하면서 극도의 타락할 것이라는 '미래'를 예상하지 못하였고, 결국 인간들이 타락하자 인간을 만든것을 후회하며 노아의 일가족과 동물들을 방주에 태우고 대홍수를 일으켜 인간을 쓸어버리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 점으로 알 수 있는건 신은 미래를 미리 알지 못하며, 시간의 역사가 어떻게 어떻게 흘러갈지를 미리 정해놓는 것 역시 불가능 한데다 인간들이 타락했을때 역시 과거로 돌아가서 시간의 역사를 바꾼다던가 하는 식의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대홍수를 일으켜 인간을 쓸어버리는 방법을 사용한걸 보면 과거나 혹은 미래로의 시간 여행은 불가능 한 듯 보인다. 성경에서 말하는 바에 의하면 본인이 직접 현실, 우주, 시공간의 차원을 창조한 신인데 시간을 초월하지 못한다는 건 다소 아이러니한 부분, 혹은 시간이란걸 설계했을때 부터 바꿀 수 없게 설계했다고 하면 애초에 '전지전능'이라던 신의 능력과 모순된다.[8][9]

물론 시간여행이라는 소재는 과학이 발달하고 그로인한 인류의 상상력의 폭도 넓혀져 현재에는 대중화 된 소재라 여러 창작물에 등장한다지만 당시 고대인들의 시점에서 시간여행이란 개념이 없기에 고대인들이 서술한 서적내에서 등장하지 않는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렇다는건 그 서술속의 신 또한 고대인들의 창작물이란 소리랑 다를게 없다. 고대인들의 지식 한도 내의 존재란 이야기니[10]

그리고 사실 신이 인간의 후예들이 타락할거란 '미래'를 예상하지 못하고 인간을 만들었으나 자신의 '실패'를 깨닫고 결국 인간들을 물로 싹 갈아엎었다는 점은 명백하게 신이 저지른 '실수'에 해당하며 이는 '전지전능'하고 '완벽한 존재'라는 것에 모순된다. 전지라는 말 뜻이 '모든 것을 안다'라는 말인데 '미래'를 알지 못한것을 보면 일단 '전지'에 해당되지 않는다.

만약 신이 시간을 초월할 수 있을 만큼의 능력은 존재했지만 시간은 절대적인 것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시간을 초월'한다는 발상이나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한 것이라면 오늘날 '시간 여행'이라는 발상을 고안해낸 인류와 상대성 이론을 생각해낸 아인슈타인의 지능이 신보다 높다는 소리가 된다.(…) 거기다 인류는 현재 성경에선 한번도 묘사되지 않았던 초끈이론, 다중우주이론, 다세계 해석, 양자 역학등의 이론까지 고안해냈는데 만약 신이 지금 언급한 이론들, 즉 우주의 모든 법칙들을 모두 간파하고 말 그대로 '완벽한 존재'였다면 최소한 미래를 예상하지 못하는 실수는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지만 그렇지 못한걸 보면 최소한 신이 가진 지식과 지능으로는 지금까지 인류가 고안해논 이론들을 뛰어넘을 만큼은 못된다는 말이다. 즉 능력은 신이 더 뛰어난데 이론을 몰라서 못했고 인류는 이론을 고안할 지능은 뛰어난데 능력이 안되서 못한다.

또한 신이 시간을 초월할 수도 없고 미래도 알 수 없다는 말은 신도 '현재'를 살아갈 뿐이라는 소리인데 이는 신이라는 존재도 결국 시간이라는 차원에 존속된 존재란 것이다. 즉 신도 계속해서 세상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기억을 얻어가고 있고, 그로인한 마음이나 감정이나 사고관념도 가치관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게 될 것 이다. 기독교 측에선 신이 한번도 변하지 않고 일관된 사고관념과 가치관을 가지고 계신다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인간을 창조하고 죄인마저도 갱생의 기회를 줄 정도로 모든 인간을 사랑한다 하시던 분이 홍수를 일으켜서 인류를 쓸어버린 것만 봐도 가치관 변화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하느님은 모두를 사랑하신다더니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 존재 안믿는다고 지옥불에 태워죽이는건 또 어떻고

그로인해서 시간 여행이 가능해도 그것도 그것대로 문제, 신은 전지전능 하지만 신의 의지와 의도는 어떤 식으로든 시간의 영향을 받는다. 인간을 만들때만 하더라도 희망과 기대를 품고 있었지만 인간들이 타락하자 홍수로 쓸어버리려고 마음을 바꾼것이 대표적인 예. 즉 신의 의도와 마음은 모든 시간을 통틀어 일관적이진 못하다는 소리이다. 따라서 신이 시간여행을 했다면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또다른 시간대의 자신과 의견 충돌이 발생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성경이 타임 패러독스 SF물 소설로 장르탈바꿈 하는 관경을 볼 수 있다.

6 노아의 방주

파일:Ghnj4fA.png

영화 노아에서 묘사된 전 지구적 홍수

노아의 방주와 전 지구적 홍수에 대한 과학적 모순들

노아의 홍수는 창세기에서 분명히 전 지구적인 사건이라고 언급되나 지질학적 연대기에서 전 지구적 규모의 홍수 사건의 증거는 단 하나도 발견되지 않는다. 창조과학회 같은 단체에서는 고지대에 위치한 소금 호수, 산 정상에서 발굴되는 조개 화석, 어느 민족에서나 볼 수 있는 홍수 설화 등이 노아의 홍수의 증거라고 우기고 있으나, 이것들은 각 지역에서 국지적인 홍수, 혹은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는 증거는 될 수 있어도 전 지구적인 홍수의 증거라고는 볼 수 없다. 가령, 산 정상에 위치한 소금 호수가 노아의 홍수 때 생긴 것이라면, 전 세계의 모든 산 정상에 위치한 소금 호수의 생성 시기는 동일한 시기, 그것도 40일 이내로 일치해야 한다.[11] 그러나 짧게는 수백만 년, 길게는 억 년 단위로 차이가 나는 것이 현실. 성경 속의 자연과학적 오류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오류로 손꼽히는데, 기록된 사건의 규모가 천지창조 다음으로 가장 거대하고, 성경 내에서 사건의 중요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12]

무신론 측에서 비판한 영상이 있는데(위에 삽입한 링크) 이 영상에선 과학과의 충돌로만 까는게 아닌 도덕적으로 봐도 큰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과학적으로 봤을때 실제로 있었을리는 만무하고[13], 도덕적으로 봤을때 모든 인간이 악해졌다고 단정짓는 것부터 해서 그렇다고 전부다 익사시키는것으로 해결하는 것에 대해서 도덕적으로 좋은 방법이라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차라리 신의 능력으로 인간들의 마음을 강제로 마인드 컨트롤하여 고쳐버리거나, 만약 이런 방법이 내기치 않는다 싶으면 그냥 자신의 능력으로 타락한 인간들을 공중에서 사라지게 하는게 더 나앗을 것이다.) 거기다 노아의 가족 외의 다른 인간들 혹은 방주에 있던 동물 한쌍 빼면 모두 사망했으므로 근친상간 외엔 번식할 방법도 없다(...)정도로 요약할수 있다.

자세한 것은 노아의 홍수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 항목 참조.

7 노아의 방주 이후

노아 방주 사건 이후에 살아 남은 사람들은 노아 식구들 뿐인데, 이들로서는 지금의 황인종 흑인종 백인종이 존재할 수 없다.셈과 함과 야벳이라던데.. 노아 시대 때는 아직 유전자 풀이 다양하지 못했는데 분화되었다면서 창조설로 모순을 해결궤변하려는 사람들도 있지만 진화론은 단순한 이론이 아닌 생물학으로만 끝나는 것도 아닌 진화사회학론 같은 인문학적으로도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과학'이니 창조설같은 유사과학으로는 모순을 설명할 수 없다. 일각에선 노아의 세 아들이 세 인종의 조상이 됐다는 드립을 치기도 하는데, 결국 이것도 말이 안되는 소리다.

노아의 방주는 이후 아라랏산에 도착한 후로 방치되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여태까지 수많은 탐사팀이 아라랏산의 온갖 곳을 뒤져봤는데도 노아의 방주에 대한 물적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여러번 아라랏산에서 노아의 방주의 증거를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사실 전혀 아닌 것 혹은 우연한 것 등 그럴싸해 보이게 억지로 끼워맞춘 경우거나 조작한 경우가 전부이다.)

자세한 것은 노아의 홍수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 항목 참조.

8 탈출기의 장대한 행렬

탈출기의 40년 방황은 있을 수가 없다.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은 라므세스를 떠나 수꼿으로 향했는데, 딸린 식구를 빼고 장정만도 60만 가량이 되었다. 그 밖에도 많은 잡식구들이 따라 나섰고 등 가축들도 떼지어 따랐다. (탈출기 12:37~38)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인들이 야훼의 인도를 받아 탈출할 때, 첫날은 라암셋에서 출발하여 숙곳이란 곳까지 행군했다고 한다. 이집트 탈출에 동참한 사람은 유아와 여자 및 잡족을 제외하고, 장정만 헤아려도 60만 가량이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장정이란 가나안 노략질전투에 참가할 수 있는 군인을 지칭하는 말이다.
따라서, 이집트 탈출 때의 히브리인은 줄잡아도 300만 이상은 됐을 것이다. 젊은 장정에게는 부모가 있었을 것이고, 늙은 장정에게는 자식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각종 가축들까지 포함하면 생명체가 적어도 1,000만 이상은 됐을 것이다. 이집트 탈출은 히브리인의 생활 자체였으므로, 거기에는 가재 도구를 비롯한 생활 필수품 일체가 함께 움직이는 거대한 집단이었을 것이다.
실제 라암셋과 숙곳의 거리는 약 40km 쯤 된다. 행군할 때의 앞뒤 사람(생명체)의 거리를 1m로 가정하면, 60만 명 항오(行伍)[14]의 길이는 600km가 되며, 300만 명 항오의 길이는 3,000km가 된다. 가축까지 포함된 생명체가 1,000만이라면, 그 항오의 길이는 자그마치 10,000km가 된다. 여기서는 간단히 계산하기 위하여 60만과 1,000만을 빼고 가장 그럴싸한 300만명으로 생각하기로 한다. 다시 말해서, 히브리인 300만명의 항오 행렬의 길이가 3,000km라는 말이다. 그러면, 라암셋과 숙곳 사이(40km)에는 75열 종대로 늘어서야 된다.
이렇게 75열 종대로 서고도, 맨 앞사람은 숙곳에 이르렀으나 맨 뒤의 사람은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당시 이집트 탈출 사건이 있을 법했던 시절에는 이집트팔레스타인 지방 사이에는 좁은 길 하나밖에 없었으므로 75열 종대는 불가능하다.
게다가 남녀노소, 병자, 임산부, 가축 및 가재도구 등 일체가 포함된 사람과 가축과 가재 도구 등 일체를 계산에 넣으면, 적어도 2,000만 생명체의 움직임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집트의 라암셋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약 400km 쯤 된다. 따라서, 여기에다 300만 명을 늘어 세워도 7~8열의 종대가 된다. 2,000만 명을 400km 거리에 늘어 세우면 50열 종대가 된다. 맨 앞의 50명이 예루살렘에 도착했다고 해도, 맨 뒤의 50명은 아직 이집트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게 된다. 이집트인들은 자기 노예들이 살림살이 다 털어서 튀는걸 몇년동안에 걸쳐서 두 눈 뜨고 지켜봐준 천사들이다. 너 이 자식들 회이팅

참고로 실제 전근대 역사상 그나마 비슷해보이는 규모의 기록을 찾자면, 수양제고구려 원정에 대한 기록을 들 수 있다.[15] 제 1차 세계대전 이전 기록된 재래식 전쟁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출병이며, 출병 규모가 무려 100만명이 넘는 대군이었으며, 행렬의 길이만 자그마치 1천여 리(약 400km)에 달했다고 한다. 이 전쟁으로 인해 국력을 엄청나게 소진하고, 결국 수나라는 멸망하게 된다. 하물며 전근대 국가 중에서 로마 제국정도를 제외하면 대대로 세계 최강의 국력을 자랑하던 중국 통일왕조마저국가 주도로 출병까지 해도 이 지경인데, 위에서 설명한 대로 출애굽기의 서술을 그대로 믿는다면 수백만 명의 난민이 피난행렬을 잇는 상황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굉장히 어렵다. 백보 양보해서 상식적으로 이 정도 대규모 유민의 이동이 있었다면 아무리 고대라지만 역사 기록이든 고고학적 근거든 뭐든 안 남아있는 게 이상한데, 알다시피 출애굽기 이외의 위 사건을 뒷받침해줄 뚜렷한 근거는 아직까지 나오고 있지 않다.

이에 대한 구약성경 내부 묘사와 기독교계의 해석은, 금송아지 우상숭배 사건에 대한 벌로 하느님이 죄악을 저지른 세대에게 징벌을 내렸기 때문이라고 본다. 원래대로라면 금방 갈 수 있었던 광야에서 40년동안 계속 해매게 된 것도 우상숭배에 대한 벌이라는 해석.[16] 다만, 이런 식의 초자연적 해석으로는 여전히 과학과의 모순 해결엔 도움이 안될 수 밖엔 없다.

또 탈출기에 나오는 수치는 당대의 서사시들과 역사기록들이 상당수 그러하듯이 서사시적으로 과장된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대단히 많다. 즉 문자 그대로 믿는 일부 신자들을 제외한 나머지 신자들 입장에서는 그냥 수사적 과장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볼 수 있긴 하다. 문제는 반대로 이런 식으로 과장이라고 보는 견해가 꼭 맞다고 볼 수 있는 근거도 딱히 없다는 것이다. 앞에서는 당대의 역사 기록들을 예로 들었지만 이런 것들과 똑같이 논할 수는 없는 것이, 애초에 그렇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경우가 나오면 당연히 과장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화된 역사 기록들과는 달리, 성경은 비상식적인 내용들 -천지창조나 노아의 홍수 같은 초자연적 내용조차 사실이라고 주장되어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즉, 처음부터 비상식적, 비과학적인 내용들을 사실로 주장하는 성경 내에서 불리한 내용들만 과장이라고 봐야 할 이유나 근거가 없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9 생물 분류

레위기 11장에 보면 야훼가 직접 내리는 명령에서, '낙타토끼는 되새김질을 하지만 굽이 갈라져 있지 않으므로 먹지 말라'는 말이 있다.

새김질하는 짐승이나 굽이 갈라진 짐승이라도 다음과 같은 것은 먹지 못한다. 낙타는 새김질은 하지만 굽이 갈라지지 않았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한 것이다. 사반도 새김질은 하지만 굽이 갈라지지 않았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한 것이다. 토끼도 새김질은 하지만 굽이 갈라지지 않았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한 것이다. (레위기 11:4~6)

그런데 낙타는 굽이 갈라졌으며, 토끼는 발가락이 갈라져 있는데다 그 전에 아예 굽이라는 것이 없으며, 토끼는 되새김질을 하는 동물이 아니다. 히브리어 원어 단어를 살펴보면 '찢어지다'란 뜻을 가지고 있으므로 문제 없다는 말도 있지만 이것도 성립이 안되는게, 토끼의 발은 찢어져(갈라져)있다.
'토끼가 자기 똥을 먹는 행위를 되새김질로 봐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지만, 생물학의 기본만 알아도 이런 말은 못한다. 혹시나 해서 설명하자면 되새김질을 하는 동물은 반추 위(ruminant stomach) 또는 되새김위를 가진 포유류 소목(偶蹄目)의 일부(기린 · ·사슴 등)에서 볼 수 있는, 특수한 소화관(위)을 가지고 있는 동물에서만 이루어진다.
토끼는 초식동물이기는 하지만, 초식 동물 모두가 되새김질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목의 일부 동물만이 되새김질을 한다. 토끼는 토끼목 토끼과에 속하는 동물로써 되새김위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따라서 토끼는 되새김질을 하는 동물이 아니다. 이런 논리면 동네 똥개도 되새김질 동물
이처럼 고대의 문헌에서 생물을 관찰하고 묘사한 글들은 현대에 와서는 대단히 모호하고 부정확해 보이는데, 이는 당연하게도 현대의 과학적 방법론이 없을 때 작성된 문헌이라, 당대의 지식이 반영되기 때문이다.[17]
현대 생물학에서 쓰이는 '종(種, Species)'의 분류는 17~18세기에 대략적으로 나타났으나, 이후로도 지속적인 연구를 거치면서 새로운 지식을 쌓으며 세부적인 변화를 거쳤다. 그나마 기반이 잡혀 있던 17~18세기와 현대를 비교해도 종의 정의와 개념, 분류에 차이가 있는데, 생물학이라는 학문이 아예 없었던 고대의 지식은 현대의 지식과는 차이가 많이 날 수밖에 없다.
뜬금없이 박쥐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 그냥 '날개 달리면 다 '라고 생각하던 시절이라서 그렇다는 것. 근데 사실 현대인들도 크릴새우인 줄 안다. 아니었어?![18]

10 곤충의 다리가 4개?

네 발로 걸으며 날개가 돋은 곤충은 다 너희에게 더러운 것이다. 그러나 네 발로 걸으며 날개가 돋은 곤충 가운데서도 발뿐 아니라 다리도 있어서 땅에서 뛰어 오를 수 있는 것들은 먹을 수 있다. 그러니 곤충 가운데서 너희가 먹을 수 있는 것은 각종 메뚜기, 각종 방아깨비, 각종 누리, 각종 귀뚜라미이다. (레위기 11:20-23, 공동번역성서)

All fowls that creep, going upon all four, shall be an abomination unto you. Yet these may ye eat of every flying creeping thing that goeth upon all four, which have legs above their feet, to leap withal upon the earth ; Even these of them ye may eat; the locust after his kind, and the bald locust after his kind, and the beetle after his kind, and the grasshopper after his kind. But all other flying creeping things, which have four feet, shall be an abomination unto you. (Lev. 11:20-23)

일단 이 구절에서, 한글 성경에 곤충으로 번역된 단어가 20절과 21절의 원래 단어로 살필 때도 날개가 있는 생명체를 가리키는 말로서 곤충이나 벌레 등속을 총칭하는 것이 옳다고 기독교인들과 창조과학자, 주류 신학자들은 인정하고 있다.

이 구절에 대해, 왜 곤충의 다리가 4개라고 기술되었느냐고 따지면, 창조과학자들을 비롯한 기독교인들은 그것은 곤충의 다리가 4개라는 것이 아니라, 4개의 발로만 기어다니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해명한다.

문제는 날개가 있는데 기어다닐 때 뒤의 3번째 1쌍을 쓰지 않고 4개의 다리로만 기어다니는, 그러한 곤충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19] 그리고 거기에 앞서 발만 있고 다리가 없는 생물은 존재하지 않는다.레이맨?

이에 대해 창조 과학자들은 먹을 것이 허가된 메뚜기와 베짱이, 귀뚜라미 같이 뛰는 다리가 있는 곤충들의 경우, 그 뛰는 다리를 별도로 취급하는 것이라는 변명을 한다. 다리이긴 하지만 단지 '발'의 기능만 하는 '4개의' 다리와는 다른 의미의 다리라는 것이다. 즉, 2가지 종류의 다리가 있는데, 네 발로 기어 다니는 데 이용되는 다리와 '뛰는 다리(21절)'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메뚜기과 곤충들은 기어다닐 때도 3번째 다리를 같이 사용한다(…). 메뚜기가 기어다닐 때 3번째 다리 1쌍을 땅에 안 닿게 치켜들고 앞의 네 다리로만 기어다닐 리가 없다. 게다가 먹는 것이 허가되지 않은,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 다니는 곤충이 대체 어떤 곤충이나 벌레를 의미한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창조과학자들은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20] 이에 대해 창조과학자들은, 위의 질문에 하라는 대답은 안 하고 뜬금없이 꿀벌의 3번째 다리의 해부학적 구조가 앞의 4개의 다리와는 다르다는 이야기를 꺼내지만, 그렇다면 꿀벌이 기어다닐 때 3번째 다리는 땅에 닿지 않게, 앞의 2쌍으로만 기어 다니느냐고 물어보면 또 다시 데꿀멍을 시전한다(…). 그리고 날개가 없는 곤충(대표적으로 개미류), 곤충이 아닌 절지류(거미, 전갈, 등)은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이러한 문제에 대해 창조 과학이나 성서 무오설을 제외한 종교계에서는 성경은 과학 서적이 아니며 이런 것은 성경의 구원논리로서의 권위에 하등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11 원주율이 3?

그 다음 그는 바다 모형을 둥글게 만들었다. 한 가장자리에서 다른 가장자리에까지 직경이 10척, 높이가 5척, 둘레가 30척 되었다. (열왕기 상권 7장 23절, 공동번역성서)

바퀴 몇 번 돌려 봤으면 나오지 않았을 오류. 초월수라서 성경이 만들어진 당시에도 그랬듯 정확한 값을 구하지 못하더라도, 3보다는 오묘하게 큰 값이라는 것만 서술했어도[21] 논란의 여지는 없었을 것이다. 성경 이전에도 아르키메데스를 필두로 원주율의 근사값을 제시했었는데, 이를 활용하지 못한 것.

참고로 둘레가 지름의 3배인 것은 원이 아닌 그 원에 접하는 정육각형의 둘레다. 원에서 정육각형을 뺀 부분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놋두멍의 모양이 완전히 둥근 원이 아닐수도 있으므로 모순이 있다고는 단정지을수 없다.

12 야훼의 살인 사건 수사법

타살된 시체만 있을 뿐 살인범을 알 수 없을 때, 야훼가 진두 지휘한 재판이 성경에 있다.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너희에게 주시어 차지하게 하신 땅에서 누구에게 살해되었는지 알 수 없는 사람의 시체가 발견될 경우에는, 너희를 대표하는 장로들과 재판관들이 나가서 그 시체가 있는 곳에서 주변 성읍들에 이르는 거리를 재어라. 그리하여 그 시체에서 가장 가까운 성읍이 어느 성읍이든, 그 성읍의 장로들이 아직 멍에를 메고 일한 적이 없는 어린 암송아지를 끌어와 (신명기 21:1~3)

전지 전능한 신 야훼는 살인범을 체포할 방법을 제시하지는 않고, 엉뚱하게도 시체가 있는 곳으로부터 제일 가까운 동네 장로들로 하여금 송아지를 가져오라고 한다.

물이 늘 흐르는 골짜기로 끌고 내려가서, 보습을 대본 적이 없는 곳을 찾아 거기 물가에서 그 암송아지의 목을 찍어라. (신명기 21:4)

사람 죽고 다시 애매한 송아지가 죽는다.(...) 계속 살펴보자.

그 시체에서 가장 가까운 성읍의 장로들은, 모두 그 골짜기에서 목 찍힌 암송아지에 대고 손을 씻으며 이렇게 말하여라. '우리의 손은 이 사람의 피를 흘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현장을 목격하지도 못했습니다.' (신명기 21:6~7)

시체가 있는 곳에서 제일 가까운 동네의 모든 장로들은 죽은 송아지의 피로 손을 씻으며, "우리는 죽이지도 않았고 보지도 못했습니다." 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다음을 보면,

'야훼여, 주께서 구해 내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벗겨주소서. 주의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서 죄없는 피가 흐르지 않게 하소서.' 이렇게 하면 그들은 그 피의 책임을 벗게 된다. (신명기 21:8)

사람을 죽이지도 않았고 죽이는 것을 보지도 못한 사람이, 송아지의 피로 손을 씻으며 "죄없는 피가 흐르지 않게 하소서." 라고 해야 살인죄를 용서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너희는 너희 가운데서, 죄없는 자의 피를 흘리는 일을 송두리째 뿌리뽑아야 한다. 야훼께서 보시기에 옳은 일을 해야 한다. (신명기 21:9)

여기서 나온 것은 살인 사건과는 관계 없는 동물 희생을 통한 종교적 속죄 행위라고 보는게 기독교 종파들의 입장이다. 신학적으로는, 신정정치 체제였던 유대 시기 보편적이었던 구약식 동물 대속으로 공동체의 죄를 씻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살인범을 잡은 것도 아니고, 피살자를 되살려 준 것도 아니며, 애매한 송아지만 하나 죽인 셈이다. 무엇이 정직한 행동이고 무엇이 무죄한 자(죄 없는 자)를 죽인 죄를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일까? 종교적 권위를 앞세워 진상을 덮어버린 셈이다.

13 땅의 네 모퉁이

요한의 묵시록 7장 1절[22]과 이사야서 11장 12절[23] 등에도 지구가 평평한 것처럼 묘사된 구절들이 있지만, 해석하기 애매해지거거나 번역에서 원래 의미가 희미해진 것들이 많다.[24]
사실 중세의 모든 학자들이 이 구절을 곧이 곧대로 믿을 정도로 관찰력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재판 당시의 학계의 주류 견해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이론을 근거로 한 천동설이 대세였고, 이는 당연히 둥근 대지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플랫 에러 참조. 다만 이 구절들을 곧이 곧대로 믿어서 탄생한 것이 평평한 지구 학회이다.

14 관련 문서

  1. 성경책을 읽어보면 사람은 동물, 새 등이 만들어지고 난 이 후 맨 마지막에 창조된 존재이다. 이런 점에 착안해서 탈무드 등에서는 아무리 미물이라 할지라도 사람보다 우선되어 지어졌으니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한다.
  2. 다만 전체가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분파는 하나님이 자신의 모습 그대로 인간을 창조했다는 것을 영적인 의미로 받아들인다. 성경의 다른 구절에 의하면 형체가 없다고 묘사하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게 삼위일체론에서 예수의 정체성을 설명할 때 인간의 모습으로 내려온 하나님을 강조하는데, 이 말은 성부와 성령 하나님은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는 뜻이기 때문. 따라서 성경이 인간이 본래 그대로의 모습 그대로 존재해 왔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
  3. 물론 창조론 지지자들은 하나님께서 공룡도 함께 창조하셨다고 주장한다. 즉, 성경에서 공룡이 단지 언급된게 아닐 수도 있는 셈.
  4. 헥켈의 배아 실험의 의의는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인간의 배아를 관찰해 보면 아가미줄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꼬리가 나타났다 사라지는, 어류->포유류->인간으로의 계통발생을 반복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헥켈이 증거 자체는 조작했지만 헥켈이 주장한 이론 자체는 틀리지 않았으며, 따라서 헥켈이 조작했던 사진만 원래 사진으로 바꾸어 놓으면 헥켈의 이론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또한 헥켈의 실험과는 별개로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반복한다는 것은 추후에 여러번 과학적 실험으로도 이미 증명되었고, 따라서 헥켈의 이론은 교과서에서 퇴출당하지 않은 것이다. 말하자면 헥켈은 100점짜리 이론을 가지고 보너스를 더 받겠다고 사진을 조작한 것을 보너스는 커녕 오명만 뒤집어 쓴 것. 그리고 헥켈의 사진이 조작이라는 것을 밝혀낸 것도 진화론자들이 밝힌거지 창조론자들이 밝힌게 아니다. 따라서 헥켈이 조작했던 사진만 되돌려놓는다면 100점짜리 이론이 맞다.
  5. 반대로 기독교측에서 성경을 사실로 꾸미기 위해 조작한 사실이야 말로 한두가지가 아니다. 가령 아라랏산에서 노아의 방주의 파편중 일부를 찾았다는 조작질을 하다 댐통 비웃음만 산 사건도 있었다.
  6. 베헤모트, 베헤못 이라고도 표기한다.
  7. 여러 매체에서 만들어진 의 이미지 때문에 착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공룡은 불같은 거 안 뿜는다. 아니 그냥 입에서 불을 뿜는 동물같은건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한 적도 없다.
  8. 전지전능 항목에도 나와있지만 전지전능한 능력으로 자신이 하지 못하는 것을 창조해버리면 더이상 전지전능한게 아니고, 그렇다고 자신이 하지 못하는걸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면 그것도 그것대로 전지전능이 아니기에 전지전능이라는 말 자체가 모순이다. "과연 전지전능한 자는 자신이 들 수 없는 바위를 창조할 수 있는가?"가 대표적인 예시
  9. 그러나 혹자는 하나님이 스스로 만든 질서와 규칙들을 지키길원하거나 어길 수 없다고 보기도 한다.
  10. 그러나, 그 개념 자체가 없었고 몰랐기 때문에 알고있는 개념 안에서 서술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특히 시간에 관한 한, 인간들에게 기억되는 특정 시간에 대한 기억은 언제나 하나의 한 순간 일테니.
  11. 노아의 홍수 때 40일 동안 격변이 일어났으므로
  12. 예수의 사도 베드로가 노아의 홍수는 장래 있을 최후 심판의 예표라고 못박아두었다. 베드로후서 3장에 언급된다.
  13. 모든 동물의 종을 모은다던가, 전 지구적인 홍수에 대한 아무런 지질학적 근거가 없다던가 등
  14. 1줄에 5명씩 세우는 방식
  15.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으로 유명한 그 전쟁이다.
  16. 때문에 이 40이라는 숫자는 기독교 신학 내에서 신앙과 희생이라는 의미로 대단히 중요한 숫자이다.(사순절 등)
  17. 그닥 중요한건 아닌것같지만.. KJV성경에선 산토끼라고 표기되어있다.
  18. 크릴은 동물성 플랑크톤의 일종이다.
  19. 네발나비라고 다리가 넷 달린 나비는 있다. 근데 나비가 날아다니지 걸어다니나? 무엇보다도 다른 곤충들은 전부 다리가 6개다. 그나마 사마귀는 앞다리를 걷는 데 쓰지 않아서(낫처럼 되어 있다) 네 발로 걷는다고 볼 수는 있겠지만...
  20. 네발나비사마귀류가 여기에 속하긴 하다. 먹을 수 있는가는 차치하자
  21. 둘레가 30척 되었다. -> 둘레가 31척 반이 조금 안 되었다.
  22. 그 뒤에 내가 보니 땅 네 모퉁이에 천사가 하나씩 서서 땅의 네 바람을 제지하여 땅에나 바다에나 어떤 나무에도 불지 못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23. And He will lift up a standard for the nations And assemble the banished ones of Israel, And will gather the dispersed of Judah From the four corners of the earth.(NASB)
  24. 혹자는 네 모퉁이가 방향을 뜻한다고 보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