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리시아

1 스페인 서북부의 자치 지역

스페인 자치 지방
자치 지방
안달루시아아라곤아스투리아스발레아레스 제도
바스크카나리아 제도칸타브리아카스티야 라 만차
카스티야 이 레온카탈루냐에스트레마두라갈리시아
라 리오하마드리드나바라발렌시아
무르시아
자치 도시
세우타멜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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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리시아의 주기. 갈리시아에서 가장 존경받는 성인 중 하나인 성 안드레아의 십자가[1]가 배경에 있고, 간략화한 주기에는 너무 복잡해서 안의 문장이 없는 경우도 있다. 안의 문장은 성작 위의 성체를 나타내며, 주변에는 7개의 은색 십자가가 나타나 있는 형태. 13세기부터 갈리시아의 국기에는 성작이 나와 있는데, 중세 스페인어로 성작의 Calice라는 발음이 갈리시아의 Galice와 발음이 유사해서 상징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라임 드립[2]

1.1 개요

스페인 서북단에 위치한 스페인의 자치지방. 남쪽은 포르투갈과의 국경에 맞닿아 있고 동쪽에는 아스투리아스카스티야 이 레온과 맞닿아 있다. 해안선이 포르투갈보다는 구불구불한 편인데 여기서 리아스(Rías)식 해안이란 말이 유래했다.

전체적으로 덥고 건조한 이미지를 가진 스페인이지만 이 지역은 스페인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서늘하고 습한 곳들 중 하나이다.(나머지는 칸타브리아, 아스투리아스) 최대 도시인 비고(Vigo)의 경우 연강수량 1,909mm에 12월 강수량만 300mm에 달한다(...) 다만 으로 오는 경우는 드물다. 연교차도 적고 타 지방보다 전체적으로 서늘한 편(8월 최고기온 +23℃, 2월 최저기온 +4.3℃) 사실 이 때문에 무어인들이 건드리지 못했고, 후에 레콘키스타를 일으킨 지역들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추우니까.[3]

320px-Camino_de_Santiago_-_Oct_15%2C_09.jpg 이 지역의 특징 중 하나로 옥수수를 저장하는 '오레오(Hórreo)'(이게 아니다)라는 특이한 건물이 존재한다. 저렇게 높이 지은 이유는 가 올라오지 못할 뿐 아니라 습도로 인해 옥수수가 썩는걸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또한 위 사진처럼 간혹 지붕에 십자가를 붙이는 관습이 있어서 멀리서 보면 조그만 성당으로 착각하기 쉽다(...)

1.2 역사

1.2.1 고대~서고트 왕국

최초에는 히스파니아를 정벌한 카르타고하밀카르 바르카에 의해 복속되었으나, 포에니 전쟁으로 히스파니아가 로마 제국의 세력권에 들어온 이후, 로마 제국의 영향권에 들어있었다. 그러나 서로마 제국의 몰락기 전후 수에비 족의 공격으로 수에비 왕국의 근거지가 되었으며, 이후 수에비 왕국이 히스파니아에서 영향력을 확장시키는데 탄탄한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이후 서고트 왕국이 침략해오며 히스파니아 대부분 지역에서 세력 기반을 잃으며 수에비 왕국의 세력은 갈리시아와 포르투갈 일대로 축소되었으며, 종래에는 결국 서고트 왕국의 류비글리트 왕에 의해 멸망하게 된다. 이 전후 시기에 가톨릭이 수용되었으며, 잉글랜드, 웨일스 지방의 켈트족이 앵글로 색슨 족으로부터 피해 브르타뉴 등으로 도피한 끝에 갈리시아 북부에 상륙하여 갈리시아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이후 갈리시아는 서고트 왕국의 종속된 왕국으로써 잠깐 부활하기도 한다.

1.2.2 아스투리아스 왕국~레온 왕국

스페인의 역사
Historia de España

고대 - 레콘키스타 - 스페인 제국 - 현대
레콘키스타스페인 제국현대
아스투리아스갈리시아 왕국카스티야 연합왕국




1






2









레온 왕국
카스티야 왕국
우마이야나바라 왕국
아라곤 왕국아라곤 연합왕국
바르셀로나 백작령
후우마이야무라비트무와히드나스르
718년 ~ 1492년1492년 ~ 1931년1931년~
포르투갈의 역사
História de Portugal

선사 - 로마 - 게르만족의 대이동 - 헤콩키스타 - 포르투갈 제국 - 현대
헤콩키스타포르투갈 제국현대



아스투리아스
왕국
갈리시아
왕국
레온
왕국
포르투갈 왕국포르투갈 왕국이베리아 연합포르투갈 왕국
1



2



3


포르투갈 백작령
우마이야후우마이야무라비트
무와히드

서고트 왕국이 이슬람 세력에 의해서 멸망한 뒤, 무슬림에게서 가톨릭 세력을 수호하려는 운동인 레콘키스타가 일어나게 되고, 이후 이 레콘키스타의 중심이 된 아스투리아스 왕국 건립 이후, 아스투리아스 인근에 있었던 갈리시아는 아스투리아스 왕국에 종속된다. 이런 과정에서 알폰소 3세 대왕의 세 아들에게 갈리시아, 아스투리아스, 레온으로 분할 상속되는 과정에서 독립된 왕국이 되기도 하나, 이는 오르도뇨 2세부터 알폰소 4세까지의 20여년에 그쳤으며, 이후 갈리시아를 기반으로 베르무도 2세에 의해서 잠시 독립국이 되기도 하나, 베르무도 2세 자신이 갈리시아, 아스투리아스, 레온을 통합하자 다시 레온 왕국의 유지로 가닥을 잡았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다.

1.2.3 갈리시아 왕국~카스티야 왕국 시대

레온 왕국이 페르난도 1세 이후 카스티야와 공동 정권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페르난도 1세의 상속과정에서 갈리시아와 포르투갈은 가르시아 2세의 지배를 받게 되나, 페르난도 1세가 죽자, 포르투갈 공작 누누 멘데스는 갈리시아의 왕을 칭하며 반란을 일으킨다. 그러나 이 반란은 진압되었으나, 이 과정에서 국력을 소진한 갈리시아는 가르시아 2세의 큰 형인 카스티야 왕 산초 2세에게 공격을 받아 카스티야에 흡수당한다. 이 때 카스티야 측에서 활약한 영웅이 그 유명한 엘 시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산초 2세가 암살당하고 원래 레온의 왕이었던 둘째 알폰소 6세가 즉위하게 된다.

그러나 이 전후에 포르투갈의 독립 여론은 점점 강해져갔고, 결국 알폰소 6세 사후 포르투갈은 갈리시아에서 떨어져 나가 반란을 일으키게 되고, 이 과정에서 결국 영원히 독립하게 된다. 이후 갈리시아는 카스티야 왕국의 일부로써 완전히 확정되었으며, 갈리시아 왕 작위는 카스티야 왕에게 대대로 계승되는 명예직에 가까운 왕이 되었다. 1833년에 갈리시아 왕 작위는 완전히 폐지된다.

1.3 지리 및 행정구역, 인구

갈리시아 지역은 크게 네 지역으로 나누는데 서북의 라 코루냐, 동북의 루고, 동남의 오렌세, 서남의 폰테베드라로 나뉜다. 지역의 주도는 갈리시아 왕국 시대의 중심도시였던 라 코루냐의 산티아고이며, 가장 큰 도시는 폰테베드라의 비고이다. 인구의 대다수는 서부의 라 코루냐와 폰테베드라에 몰려 있는 편이며, 이 중에 특히 라 코루냐와 비고는 가장 큰 도시로 서로에 경쟁 의식을 가지고 있다. 갈리시아 지역은 특히 이민자들이 많은 지역 중 하나로 아르헨티나 출신이 상당히 많은 편.

1.4 스포츠

가장 유명한 것은 축구. 특히 라 코루냐의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와 비고의 셀타 비고는 매우 강렬한 경쟁으로 갈리시아 더비라고 불린다. 과거에는 산티아고의 SD 콤포스텔라와 라 코루냐의 페롤을 연고지로 두는 라싱 데 페롤 팀도 지역 인기 구단이었으나, 현재는 4부 리그까지 추락하며 짜게 식은 상태. 오히려 최근에는 세군다 리가에서 성장한 CD 루고가 이 지역의 3번째 팀으로 지지를 얻고 있다. 잘 알려져있지는 않지만, 카탈루냐와 바스크 지역과 더불어 갈리시아 지역도 지역 협회가 존재하며, 지역 대표팀을 선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1.5 경제 및 산업

프란시스코 프랑코 독재 기간 동안 큰 피해를 입은 지역 중 하나. 산업 기반이 전부 프랑코에게 털렸다. 고향털이 쩌네요 프랑코 사후에야 자동차 산업이 조금씩 발달하여, 비고는 현재 스페인에서 가장 자동차가 많이 생산 되는 지역 중 하나다. 이외에는 목재, 어업 등이 주요 산업인 상황.

1.6 언어

스페인어와 갈리시아어가 함께 사용되고 있다. 갈리시아 어에 대해서는 해당 항목 참조.

2 폴란드 동남부,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을 말하는 역사적 명칭

영어 : Galicia / Halychyna
우크라이나어 : Галичина 할리치나
폴란드어 : Galicja 갈리치아
독일어 : Galizien

640px-Ukraine-Halychyna.png
영문명은 동일하나 이쪽은 갈리치아로 읽는다.

중심도시는 오늘날 우크라이나의 주요 도시 중 하나인 리비우. 폴란드어로는 르부프, 러시아어로는 리보프로 읽는다.

이 지역은 중세까지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지배를 받았으나 1772년 폴란드 1차 분할 때 오스트리아로 넘어갔다. 이후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분열되면서 다시 폴란드 제 2공화국의 영토가 되었다. 갈리치아 지역의 우크라이나인들은 폴란드 제 2공화국 최대의 소수민족이었다(인구의 12%).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제2차 세계대전이 터졌고, 나치 독일소비에트 연방폴란드 침공으로 폴란드를 다시 갈라먹으면서 소련의 지배를 받았다. 소련 치하로 들어가면서 갈리치아 지역의 폴란드인들은[4] 새로 설정된 폴란드 영토로 추방되었다.

소련의 해체 후 우크라이나의 영토로 확정되었다. 이 지역은 소련의 다른 지역보다 러시아 세력과 가장 낯선 지역이다. 하다못해 발트 3국도 양차대전 사이 독립국이긴 했어도 그 이전에 제정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지만, 갈리치아 지역은 그 이전까지 줄곧 중부유럽 가톨릭 세력의 지배만 받아오다 소련에 편입된 것이었다.

가톨릭 국가인 폴란드-리투아니아, 오스트리아, 폴란드 제2공화국의 지배를 받아서 동방 가톨릭 교회 신자가 많다. 이 점은 우크라이나 타지역에서 주로 정교회를 믿는 것과는 대조된다. 오늘날 이 지역은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민족주의 열풍이 심한 지역으로[5] 유로마이단 때의 핵심 지지 지역이었다. 참고로 폴란드도 옛 갈리치아에 속하는 동남부 지역이 가장 보수적인 지역이다. 역설적이라면 역설적이지만 비교적 자유주의적이고 관용적이었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이 일대를 다스렸던 시절 폴란드인들이나 우크라이나인들이나 어느 정도 자치를 누리고, 자체적인 민족주의적 정당 밑 단체 설립과 민족주의적 언어, 문화적 교육 같은 것에 크게 간섭하지 않으면서 19세기 후반에 들어서는 폴란드 민족주의자들과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 양쪽 모두 이 일대를 근거지로 하며 활동했기 때문이다.

2.1 주요지역

  • 리비우(Львів) - 오늘날 우크라이나 서부의 주요 도시이다. 폴란드어로는 르부프(Lwów), 러시아어로는 리보프(Львов), 독일어로는 렘베르크(Lemberg)로 읽는다.
  • 테르노필(Тернопіль) - 폴란드어로는 타르노폴(Tarnopol). 러시아어로는 테르노폴(Тернополь)이다.
  • 이바노프란키우시크(Івано-Франківськ) - 원래 이름은 폴란드어인 스타니스와부프(Stanisławów)로, 17세기 폴란드의 헤트만이었던 스타니스와프 포토츠키(Stanisław "Rewera" Potocki, 혹은 그의 손자)의 이름을 따 건설되었다. 독일어로는 스타니슬라우(Stanislau). 1962년부터 우크라이나 작가 이반 프란코의 이름을 따 현재 이름으로 바뀌었다.
  1. 배경의 파란 대각선을 말한다.
  2. 물론 현대어로도 각각 'Cáliz'와 'Galicia'로 번데기 발음 부분이 들어맞긴 하다.
  3. 실제로도 북한의 중강진(1월 최저기온-22℃)과 비슷한 위도대이다. 당연히 스페인의 타 지방보다 서늘한 기후가 될 수밖에 없는 것.
  4. 전쟁 전에는 르부프 주 인구의 57%, 타르노폴 주 인구의 50%, 스타니스와부프 주 인구의 23%를 차지했다.
  5. 주로 반러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그러나 반폴란드 감정도 만만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