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디미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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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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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1 개요

위 표지의 한자는 '규곤시의방(閨壼是議方)'이며 후손들이 덧붙여 적은 것으로 추정된다.[1] 책의 내용 첫머리에는 한글로 '음식디미방'이라 쓰여 있으니 이 책의 본래 이름은 '음식디미방'이 맞다. 제목을 풀이하면 '음식의 맛을 아는 방법(飮食知味方)'.

1670년경 조선 시대 안동 지역에서 살았던 석계부인 안동 장씨 정부인(貞夫人) 장계향(張桂香)이 75세 때 며느리들과 들에게 전래의 음식 조리법을 물려주기 위해 저술한 요리책.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여성이 쓴 요리책이며, 최초의 한글 요리책이다. 현재 경북대학교 도서관에서 소장 중. 뒷표지 후기에는 "이 책을 눈이 어두운데도 간신히 썼으니, 그 뜻을 알고 그대로 시행하며 잘 간수하라"라고 쓰여 있다. 다른 가문으로 시집 가는 딸들은 원본을 가져가지 못하게 하고, 필사하여 가져가게 했다고 한다.

국수, 밀가루 종류가 18가지, 어류나 고기류 음식이 44가지, 그 밖에 술, 한과, 식초 등의 종류를 합쳐 총 146가지의 음식이 기록되어 있다.

2 내용

역사스페셜에서도 저자인 장계향의 일대기와 함께 소개된 적이 있는 책으로, 조선시대에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에 대해 상당히 구체적으로 쓰여 있다. 그 영향력이 워낙 막강하다 보니, 지금도 전통 음식을 재현하려는 분들이 참조하는 책이기도 하다.[2]

<음식디미방>의 음식은 고춧가루가 전혀 들어가지 않아 자극적이지 않다. 음식디미방이 쓰인 시기는 17세기 후기지만 고추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는 것은, 당시의 경상북도 지방에 고추가 전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추는 임진왜란을 통해 전해졌다고 하지만, 기록상으로 1613년의 『지봉유설(芝峰類說)』에야 비로소 등장하여 그 무렵 겨우 재배되기 시작했으며, 1766년의 『증보산림경제』에 고추가 본격적으로 김치 조리에 이용되고 있다. 대부분 찌고 굽는 방법을 사용해 담백하다. 양념으로 전초, 후추, 마늘, 가 들어간다. 육류 요리가 많은데 재료는 주로 의 위나 개고기, 고기다. 특이하게 발바닥 조리법도 나와 있다.

꿩고기의 경우 꿩의 껍질과 뼈는 남겨두고 살코기만 발라내어 잘게 다진 후 양념하여 다시 껍질 속에 채우고 찌거나 굽는 봉총찜이나, 쇠고기의 경우 양념하여 구운 고기를 찬물에 담궈 수축시킨 후 다시 굽는 설야적, 요리의 경우 다리살과 속살을 따로 발라내고 양념하여 게 등껍질에 채워 굽거나 찌는 요리 등이 나오는 걸 보면, 음식을 손으로 들고 먹을 수 없는 양반들의 식생활을 반영한 요리였던 듯. 그리고 상류층 음식답게 손이 많이 가는 요리가 자주 나온다.

이름이 비슷해도 지금 우리가 먹는 요리와는 다른 요리인 경우도 있다. 순대의 경우 음식디미방에서는 개고기를 이용해 만든다고 되어 있으며 빈대떡의 경우엔 속에 을 넣어 지지는 화전, 혹은 부꾸미[3] 비슷한 요리로 나온다. 오늘날 과자 굽는 것과 비슷한 방식도 있는데, 2장의 기왓장을 붙여 불에 데워 만드는 다식이 그렇다.

왠지 한국 요리의 비전서 같지만, 음식디미방의 원문을 바탕으로 당시의 요리를 재현하려면 많은 해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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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미 1말이면 찹쌀 2되를 한 군데에 담갔다가 가루(로) 만들고 석이 1말을 데운 물에 깨끗이 씻어 다듬어 썰어 섞어 넣어서 시루떡같이 안치되 백자(柏子, )를 쪼개어 잘라 놓아 찌라. 이 떡이 최고의 별미니라.[4]

- '석이편법'(석이[5]떡을 만드는 방법)

자 이걸 이렇게 착착착 해서 탁탁탁 한 다음에 닯닯닯 끓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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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 문장을 가지고 위 그림의 석이떡을 만들어 보시라. 밥 로스는 매우 친절한 화가였습니다. 음식디미방은 누구나 보고 따라할 수 있는 친절한 (현대적 의미에서의) 요리책이라기보다는,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에게서 많은 갈굼과 가르침을 받으며 수련을 거듭한 며느리나 딸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 요리의 종류나 방법을 잊지 않을 정도의 내용이다. 사실 그 당시의 책들이 다 그렇다. 검술서나 점성술 서적, 한의학 서적 등도 그것만 가지고 독학하라고 만든 책들은 거의 없다시피 하고, 스승에게 지도를 받으면서 참고로 보는 용도로 쓰였으니 말이다. 손으로 자세하게 쓰고 필사까지 하려면 얼마나 힘들겠나 종이도 비싼데

현대인은 그 생략된 요소를 알 수 없으니[6] 적당히 해석을 가해야 뭔가를 만들 수 있는데, 이 해석이 잘못된다면 고증 따위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린 음식이 나오게 된다. 지금 영양군에서 운영하고 있는 음식디미방 체험관에서는 시럽을 뿌린 화전(花煎)을 전통요리랍시고 내놓고 있다. 도 조청도 쓰기 싫은가 보다. 아니 뭐 궁중요리연구소의 책에도 재료 목록에 설탕이 들어가긴 했지만, 1인분에 3만원짜리 밥상에 올리는 화전에 시럽 뿌리는 건 좀 너무하잖아?

하지만 흥미롭게도 경험이 많은 주부에게 음식디미방의 내용을 알려주면 일반인과 같은 당황을 보이는 경우가 드물다. 예컨데, 위키니트들은 석이편을 얼마나 익혀야 하는지 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고 하지만, 경험 많은 주부들에게 이 부분을 물어보면 당연하다는 듯 잘 익을 때까지 익히면 된다는 대답이 돌아오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이런 주부들이 놀라는 부분은 오히려 '지금도 석이는 싼 재료가 아니고, 조선시대라면 더 귀한 식재료였을 텐데 그걸 한 말이나 넣냐' 는 부분이다.[7] 전문 요리사들 역시 '레시피는 지침 정도일 뿐이고, 구체적인 요리를 만드는 요령은 몸으로 익히는 수 밖에 없다' 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음을 생각해 보면, 위에 서술된 것처럼 <음식디미방>의 내용 자체는 뭔가 잠깐 깜빡했을 때 찾아보고 떠올리는 정도의 용도이고, 경험적으로 요리 기술을 충실하게 익힌 사람이라면 저 정도의 설명으로도 대강 감은 잡을 수 있다는 것.

3 기타

저자인 장계향은 시서화에 능했으며 맏며느리[8] 역할과 남편 내조에 충실했다. 슬하에 7명의 아들[9]과 3명의 딸을 두었는데, 이중 아들 모두를 훌륭한 학자로 키워냈다. 사람을 아끼는 마음도 남달라, 대문 밖에 큰 솥을 걸고 을 쒀 300명이나 되는 걸인들을 먹였다고 한다. 퇴계 학파의 숨은 공신이라거나 맹자의 어머니에 뒤지지 않는다는 후세의 평가가 나올 정도. 결국 불천위로 모셔져 지금도 자손들이 제사를 지낸다.

이렇듯 장계향의 생애가 꽤 드라마틱해서, 이문열이 그녀의 일대기를 바탕으로 <선택>이라는 소설을 쓰기도 했다. 그 내용은 장계향의 입을 빌어 현대 여성들을 비판하는 것이다. 비판적으로 보면 일과 가정 중 가정을 선택하라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고, 긍정적으로 보면 잃어버린 전통적인 여인상을 찬미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경상북도에서는 수운잡방과 함께 세계기록유산에 등재 추진 중이다.#

4 기타 조선시대 요리책

  1. '규곤(閨壼)'은 여성들이 거처하는 공간인 '안방과 안뜰'을 뜻하고, '시의방(是議方)'은 '올바르게 풀이한 처방문'이라는 뜻이다. '부녀자에게 필요한 것을 올바르게 풀이한 처방문' 정도의 뜻. 당대 윤리의식이 반영된, 한문 문어체로 좀 더 격식을 차린 표현이다.
  2. 하지만 시대가 변하다 보니 지금은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좀 있다. 예를 들어 밀가루가 귀했던 그 시절에는 귀한 음식을 만든 후에 밀가루로 쑨 소스를 부었는데, 밀가루가 흔한 지금은 잘 안 쓰는 것처럼 말이다. 아니, 와 무슨 차인데?
  3. 이것. '부꾸미'라는 이름은 점점 잊히는 듯하다.
  4. 'ᄀᆞ자ᇰᄒᆞ다'는 '끝까지 하다[究]'의 의미. 즉 'ᄀᆞ자ᇰᄒᆞᆫ 별미'는 '(갈 데까지 간) 궁극의 별미' 정도의 의미가 된다.
  5. '石栮' 또는 '石耳'. 버섯의 일종이다.
  6. 당장 저 석이편법만 해도 얼마나 떡을 쪄야 하는지 적어놓고 있지 않다.
  7. 석이는 100g에 1~2만원 정도 하는 재료로, 표고버섯보다 10배 정도 비싸다.
  8. 본래 셋째 며느리이지만, 위의 두 형님이 죽은 남편을 따라 순절(殉節)하는 바람에 사실상 맏며느리 역할을 떠맡게 되었다. 이문열은 소설 《선택》에서 '순절'을 미화하기도 했다. 참…
  9. 첫째 아들은 장계향이 낳은 아들이 아니라, 죽은 전처의 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