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相龍
1858∼1932.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다. 자는 만초(萬初), 호는 석주(石洲)이다. 경상북도 안동시 출신이다.
1911년 서간도(西間島)로 망명 후 초명 상희(象羲)에서 계원(啓元)으로, 이어서 상룡(相龍)으로 개명하였다.
을미사변 다음 해인 1896년 박경종(朴慶鍾)과 함께 가야산에 군사 진지를 구축하고 의병 항전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의 근대적 군사력에 대항하는 국내에서의 의병 항쟁은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그 뒤 류인식, 김동삼 등과 애국계몽운동을 전개, 1907년 협동학교(協東學校)를 설립하였다.
한일합방 다음 해인 1911년 1월 양기탁(梁起鐸)과 협의한 뒤 2월 서간도에 도착하여 한만관계사를 연구, 집필하였다.
1919년 3.1운동 후 신흥강습소(新興講習所)를 신흥무관학교로 개칭해 독립운동 간부를 양성하였다.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지하였다.
1922년 8월 환인현에서 남만한족통일회를 개최해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를 수립하고, 그 산하에 의용군을 조직하였다. 1924년 10월 정의부가 발족되자 독판(督辦)에 선출되었다.
1925년 9월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령에 취임하였다. 그러나 임시정부 내의 사상적 대립과 파쟁으로 정치적 경륜을 발휘할 수 없게 되자 국무령을 사임하였다.
1932년 5월 병으로 지린 성에서 죽었다.
한편 선생이 태어나서 자란 임청각의 경우 일제가 고의로 중앙선 철로를 건설하면서 훼손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철도는 아직도 그대로이니 참으로 통탄할 노릇이다.
선생은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되었으나 위키의 틀에는 포함이 되어있지 않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