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대한민국의 전 · 현직 정치인을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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咸台永
1873년 ~ 1964년
1873년 함경북도 무산군에서 태어났다. 1895년 법관양성소(法官養成所)에 입학,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이듬해 법관양성소 동기였던 이준(李儁)의 뒤를 이어 한성재판소(漢城裁判所) 검사시보로 임명되면서 법관생활을 시작하였다.
1898년 10월 고종이 독립협회에 혁파령을 내리고 이상재 등 중심인물 17인을 검거하여 재판에 회부하였다. 당시 함태영은 한성재판소 검사로 이 사건을 담당하였는데 내란죄를 적용할 수 없으니 경미한 처벌을 받도록 하였다가 파면당하였다. 이후로도 당시 집권층의 미움을 받아 면직, 복직되기를 여러 차례 거듭하였다.
이후, 개신교에 귀의하면서 독립운동에도 힘썼다. 개신교 세력을 이끌고 3.1 운동에 참여하였다가 3.1 운동의 주동인물로 잡혀, 이듬해 10월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출옥 후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었다.
8.15 광복 후에는 대한독립촉성국민회(大韓獨立促成國民會)의 고문을 지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인 1949년 제2대 심계원(현 감사원)장을 역임하였다. 1952년 제3대 부통령에 당선되어 1956년까지 재임하였다.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로 순직한 함병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그의 막내아들이다.
손녀가 되는 이화여대 함정혜 교수는 최순실 게이트 특혜 논란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정유라(승마선수)에게 학사경고, 제적을 공지했다가 압력으로 지도교수 자리에서 밀려난 상태다. 그 사촌들이 현대가 또는 현대와 관련된 인물이고, 물론 이대와도 연관된 연대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말이다. 자세한 내용은 정유라(승마선수)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