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화에서는 이렇게 생겼으나
실제로는 이렇게 서구적인 외모를 지니셨다. 게다가 키도 6척(180cm)이었다고 한다. 1946년 사진.
1 개요
趙東祜. 한국의 독립운동가, 민족운동가, 언론인, 정치인이다. 풍양 조씨이고 호는 유정(榴亭). 충청북도 옥천군 청산면 출신.
사회주의 계열이라는 이유로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가 2005년 3월 1일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서훈되었다.
공식 홈페이지로는 유정 조동호 선생 기념사업회가 있다.
1.1 이름의 혼동
조동우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이는 메이지 유신 이후로 일본에서 '복호(祜)'자를 글자로 사용하지 않고 고어(古語)로 취급하고 祐(우)를 사용했기 때문. 이에 더해 독립운동사 연구를 일본 문헌에 의존하다 보니 근래까지 이름을 "조동우"라고 표기했다고 한다. 사실은 조동호가 맞다.[1]
1.2 여운형과의 우애
그는 거의 평생 여운형과 함께 했다. 중국 유학가기 전에 이만규의 집에서 여운형,이만규와 함께 우애를 다짐하였고,[2] 조동호는 여운형과 함께난징의 금릉대학[3]에 진학하였고 신한청년당-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한중호조사-한국노병회-고려공산당-조선중앙일보-건국동맹-건국준비위원회-근로인민당에서 활동하였다. 여운형이 암살되자 장례식에 참여하기도 하였다.하관식을 지켜보는 조동호(왼쪽에서 세번째)
여운형 암살 이후 정계에서 은퇴하고 낙향하여 큰누나의 집에 살면서 종종 신문에 사설을 기고 하였으며 [4],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다가 1954년 9월 11일, 생을 마감하였다. 향년 63세. 여담으로, 그는 여운형처럼 사회주의자였으나 독실한 기독교(개신교) 신자였다고 한다.
2 기타
3.1 운동 후에 독립신문에 이런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평양에서는 요새 매일 아침마다 집 앞의 전봇대에 태극기와 독립만세 4글자를 붙이는 사람이 있다. 두 길이나 높이 붙여서 그것을 올라가 떼느라고 고생이 막심한 순사가 혼자 말로 “제길할 놈들 만세나 부를 것이지. 이것은 왜 붙여 사람을 고생시키는 거야...” 둘러서서 구경하던 아이들이 한꺼번에 “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불렀다. 파출소에 잡혀가서는 하는 말이 “순사가 부르라고 하기에 불렀오.” 라고 했다더라.그 외 선생의 장남 조윤구 선생이 블로그 활동을 했던적이 있었다.# 현재는 작고하신 상태..- 독립신문 1919년 10월 11일 19호 <哭中笑(곡중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