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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9이닝 이상 안타는 물론이고, 노히트 노런에서 허용하는 볼넷, 몸에 맞는 공, 야수들의 실책으로 인한 출루를 포함해 어떤 이유든지 모든 타자를 1루로 내보내지 않고 승리한, 말 그대로 '완벽하게 끝낸 게임'을 말한다. 단 파울플라이 실책은 나오더라도 이후 타자를 잡아냈다면 퍼펙트 게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1루로 내보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투구교체는 MLB에서는 허용하지만[1], 한국이나 일본은 이러면 퍼펙트 게임으로 인정을 안 한다.
9이닝을 단 한명의 주자를 출루시키지 않았더라도 팀이 이기지 못하면 아무것도 없다. 페드로 마르티네즈의 경우 9이닝을 퍼펙트 게임으로 막았으나, 10회에 2루타를 맞아서 퍼펙트 게임이 깨진적도 있다.(다행히도 게임은 이겼다.) 하비 해딕스는 12이닝을 퍼펙트로 막았으나 진짜 재수 없게도 13회에 들어서 실책으로 인한 출루→끝내기 안타[2]를 맞고 패전투수가 됐다. 다만 하비 해딕스가 기록한 한 게임에서 세운 36타자 연속 아웃은 아직까지 기록으로 남아있다.게임 로그 타선이 얼마나 물타선이길래 1점을 못내지[3]
야구에서 가장 이루기 힘든 일 중 하나로 꼽힌다. 메이저리그에도 이 기록을 가지고 있는 선수의 수는 겨우 두 자리를 넘었을 뿐이며, 일본에서도 15명에 불과하다. 한국프로야구에선 리그가 시작된지 30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기록이 나오지 않고 있다. 딱 한 번, 2군 리그인 퓨처스리그에서 롯데 자이언츠 소속 이용훈이 한화 이글스 2군을 상대로 달성한 적은 있다.
한국 고교야구에서는 2016년 7월 14일 기준으로 정확히 10명이 기록했다. 1958년 휘문고의 강남규 선수가 서울공고를 상대로 13-0 퍼펙트게임을 기록한 것이 최초.
이것을 달성한 투수는 그야말로 레전드. 유명한 투수들도 평생에 한번 할까 말까하는데, 가끔 뜬금없이 듣보잡 투수가 성공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월드시리즈에서 퍼펙트 게임을 기록한 돈 라슨과 2012년의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필립 험버. 험버는 2011년을 제외하면 야구 인생에서 단 한번도 쓸만하거나 주전급 성적을 내 본적이 없는 투수인데, 2011년 잠시 기량이 향상된 모습을 보여주더니 2012년 4월 뜬금없이 퍼펙트 게임을 달성했다. 그리고 그 뒤 2012시즌에 102이닝 동안 92자책점을 기록하는 사회인 야구급 성적(…)을 찍더니 방출됐다. 저 막장 성적을 찍으면서도 팀에서는 퍼펙트 게임도 달성했고 일말의 희망 때문에 102이닝이나 기회를 줬으나 반등에 실패했다. 그 후 휴스턴 애스트로스로 가서도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이더니, 결국 2015년 시즌 KIA 타이거즈에 와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며 방출.
볼넷으로 타자를 출루시키는 것도 안 되니 투구 수도 적어야 유리하며, 야수들의 집중력 있는 완벽한 수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에서 훨씬 더 성립하기 어렵다. 특히 퍼펙트 게임을 복기하다 보면 꼭 아크로바틱한 호수비가 한두 개 껴 있기 마련. 그만큼 매우 가치 있는 기록이라 하겠다.
평소에 아무리 시끌벅적한 팀의 덕아웃이라도 소속팀 투수가 퍼팩트 게임 분위기를 슬슬 풍기기기 시작하면 초상집마냥 조용해진다. 또 감독을 포함해 선수 누구도 절대 투수에게 말을 걸지 않으며 가까이 다가가지도 않는다. 집중력이 최고조에 달해 있을 투수의 긴장감과 리듬이 깨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려.
퍼펙트 오브 퍼펙트 게임이란 것도 있다. 이쪽은 절대적으로 투수와 포수가 만드는 기록으로 한 경기에서 9이닝 27개의 아웃카운트를 전부 탈삼진으로 잡으면서 퍼펙트 게임을 성립시켜야 성립되는 대기록. 아직까진 기록된 바는 없지만, 비슷한 기록까진 나온 바 있다. 때는 1952년, 현재의 루키리그에 해당하는 클래스 D에서 Ron Necciai라는 선수의 이름으로 기록되었다. 땅볼이 하나 포함된 기록인데, 25삼진 상황에서 27번째 타자가 스트라이크아웃 낫아웃으로 출루해서 퍼펙트는 깨진 노히트, 이 상황에서 결국 마지막 타자까지 삼진으로 처리하며 9이닝 27k 노히트라는 괴상한(?) 기록이 탄생한 바 있다.기사 물론 투수 혼자 이룰 순 없다. 포수가 세 번째 스트라이크를 잡아줘야 하니. 한국고교야구에서는 2013년에 대구 상원고등학교의 이수민이 9이닝 27탈삼진 퍼펙트까진 아니더라도 10이닝 26탈삼진 1실점을 기록한 적이 있다. #관련기사 9이닝은 아니지만, 커쇼는 고교시절 5이닝 15타자 전원 삼진 퍼펙트 게임을 기록한 적이 있다. 해당 게임은 10:0 콜드게임이어서 5이닝까지만 치러진 것. 동영상도 올라와 있다. 커쇼의 '퍼펙트 오브 퍼펙트'
국제대회 등에서 시행하는 승부치기에서 연장 11회 이후 무사 1,2루 세팅이 퍼펙트 게임의 기록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방침이 없다. 만약 이런 사례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흠좀무한 충공깽 센세이션을 몰고 올 것이다. 게다가 페드로 마르티네즈처럼 연장이닝에 본인이 안타 맞고 기록이 날아간거라면 차라리 '내가 못던져서 깨진거'라 생각하니 홀가분하지, 그냥 앞에서 그랬듯이 다시 올라와서 삼자범퇴하려는데 갑자기 자기가 내보내지도 않은 주자가 두 명이나 올라와 있고 타자는 희생번트를 들이대면 투수가 얼마나 혼란스럽겠는가? 하지만 이 경우는 이미 보통의 야구 규정에 없는 경우이므로 승부치기 전까지만을 기록으로 평가하는게 맞는 듯 하다.
2 KBO
상술한 대로, 2024-12-11 06:54:35 현재까지 KBO 리그에서 퍼펙트 게임은 단 한 차례도 나오지 않았으며, 퍼펙트 근처까지 간 적은 8번 있었다.
- 첫 번째로 원년인 1982년 8월 15일 삼미 슈퍼스타즈 對 삼성 라이온즈 대구 경기에서 당시 삼성의 에이스 황규봉이 9회 1사까지 퍼펙트 상황을 이어왔으나 삼미의 강타자 양승관에게 안타를 내주며 첫 해에 일어날 뻔 했던 대기록이 수포로 돌아갔다.
- 두 번째는 1991년 10월 13일, 한국 시리즈 3차전 해태 타이거즈 對 빙그레 이글스 대전 경기. 당시 빙그레의 투수 송진우가 8회 2사까지 퍼펙트를 기록하고 있었지만 대타 정회열의 쉬운 파울 타구를 우익수가 놓친 이후 볼넷을 허용하는 바람에 깨졌었다. 그 이후 송진우는 심리적으로 흔들리면서 연속안타[4] 를 맞고 4실점, 결국 패전투수가 된다.
- 세 번째는 1997년 5월 23일 OB 베어스 對 한화 이글스, 역시 대전 경기. 정민철이 8회 원아웃에서 당시 한화의 포수였던 강인권의 포일로 낫아웃을 허용하는 바람에 타자였던 심정수가 1루로 진루, 후속타자를 침착하게 처리했으나 무사사구 노히트 노런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기록을 보면 알 수 있듯, 무안타, 무볼넷에 포일 출루 1회뿐으로 KBO 역사상 가장 퍼펙트 게임에 가까웠던 경기였다.
- 네 번째는 그 유명한 2004년 한국시리즈 4차전 현대 유니콘스 對 삼성 라이온즈 배영수. 8회 2사까지 23타자를 모두 잡아냈지만 박진만에게 볼넷을 내주며 퍼펙트게임이 무산되었다. 물건너 야구에서도 월드시리즈 퍼펙트게임은 단 한 번뿐이었음을 생각하면 크보 역대 최초의 퍼펙트게임이 한국시리즈에서 나온다는 것이 굉장한 것이었기에 참으로 안타까운 일. 게다가 10회까지 노히트를 이어갔음에도 삼성이 한 점도 내지 못하며 노히트 노런도 인정받지 못했다. 안습...
- 다섯 번째로 2007년 10월 3일 현대 유니콘스 對 두산 베어스 잠실 경기에서
약물다니엘 리오스 선생이 9회 원아웃까지 잡고 8번 타자 강귀태한테 안타를 맞고 마운드를 내려오는 일도 있었다. 얼마 뒤 리오스가 일본프로야구로 가서 약물을 투약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한국에서의 이 경기도 약물을 복용한 게 아닌가 의심하게 되었으며, 리오스의 퍼펙트를 응원했던 많은 팬들은 엄청나게 실망했었다. 만약 리오스의 약물이 사실이라면 강귀태는 한국 최초의 퍼팩트게임기록이 약물에 얼룩지는 일은 막은 셈이 된다. 다만 리오스가 한국 프로야구에서 뛰고 있을 때도 약물을 했는지 여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모든 야구선수들의 약물 복용 여부를 조사하는 제도가 꼭 필요한 이유.
- 여섯 번째로 2011년 8월 5일 한화 이글스 對 LG 트윈스 게임에서는 벤자민 주키치가 8회 원아웃 카림 가르시아 타석에서의 이대형의 펜스 앞 캐치 등 멋진 분위기가 형성되었지만, 8회 2아웃에 이양기에게 좌전 안타를 맞으면서 실패했다.
- 일곱 번째로 2012년 6월 24일 롯데 자이언츠 對 LG 트윈스 잠실 경기에서는 이용훈이 8회 1사까지 퍼펙트로 막았으나 최동수에게 안타를 맞고 퍼펙트 게임이 무산됐다. 이용훈은 1, 2군에서 모두 퍼펙트 게임을 기록한 투수라는 대기록을 달성할 뻔 했으나 아쉽게도 무산됐다.
- 여덟 번째로 2016년 6월 21일 두산 베어스 對 kt 위즈 잠실 경기에서는 더스틴 니퍼트가 6회까지 퍼펙트로 막았으나 7회 이현호로 교체되면서 개인 퍼팩트 기록이 무산되었다[5] 팀퍼팩트 기록은 7회 이현호가 삼자범퇴로 막으면서 이어갔으나 8회 올라온 안규영이 김상현에게 홈런을 허용하면서 팀퍼펙트기록도 무산됐다.
한국 야구에서 왜 퍼펙트 게임이 안 나오는지 분석한 글#
한명의 투수는 아니지만 여담으로 2015년 10월 3일에 넥센이 삼성에게 팀 퍼펙트를 당할뻔도 했다. 이택근의 안타가 유일한 출루... 그 여파로 팀타율 0.300에서 0.298로 하락(...)
2.1 한국야구사(史) 역대 퍼펙트 게임
달성 일지 |
달성자들 |
출처 |
KBO 역사상 퍼펙트 게임은 없지만 한국 야구사에서 퍼펙트게임이 없지는 않았다.
기록으로 남아있는 최초의 퍼펙트게임은 부산 대신중의 김삼용[6]이 1957년 동인천중을 상대로 거둔 것이 기록상으로 남아있다. 이후 중등부에서는 경상중 한장철[7](1964, 성동중 상대), 선린중 이창호(1972, 성남중 상대), 선린중 이길환(1973, 배명중 상대), 배재중 윤혁(1982, 충장중 상대)[8] 경상중 김호은(2008, 경운중 상대)[9], 동인천중 윤대경(2009, 상인천중 상대)[10]가 퍼펙트게임을 기록했다.
고교부에서는 휘문고의 강남규[11]가 1958년 서울공고를 상대로 거둔 것이 최초였다. 당시 한국에 퍼펙트 게임이라는 용어가 알려져있지 않아 노히트노런으로 알려졌다가 이후 퍼펙트게임으로 정정되어 발표되기도 했다. 이후 인천고 김영찬(1967, 남인천고 상대), 성남고 한장철(1967, 서울상고 상대), 휘문고 송범섭(1972, 경동고 상대), 배명고 김정남(1973, 배재고 상대), 대건고 권영호(1973, 경북고 상대), 광주일고 강만식(1975, 광주진흥고 상대), 선린상고 이길환(1975, 상문고 상대), 유한공고 황기선(1975, 성동고 상대)[12], 구리인창고 김태훈(2008, 부경고 상대)[13]이 기록했다.
대학부에서는 한양대 정기혁이 1971년 동국대를 상대로 거둔 것이 최초이자 마지막 기록이다.
실업야구에서는 크라운맥주 고순선이 1964년 철도청을 상대로 거둔 것이 최초이다. 그로부터 바로 이틀 뒤에는 해운공사의 김영덕이 조흥은행을 상대로 거두기도 했다. 이후 제일은행 김병우(1971, 철도청 상대), 상업은행 백창현(1972, 철도청 상대), 한전 강용수(1975, 중앙대 상대)가 거두었다.
초등부에서는 대전 유천초 김선창[14]이 2008년 우암초를 상대로 거둔 것이 최초이자 마지막이다.
2군인 퓨처스리그에서 이용훈이 2011년 9월 17일 프로 선수로서는 최초로 달성했다.
가장 많은 퍼펙트게임 달성자는 이길환과 한장철이며 각각 총 2회 달성했다. 가장 많은 퍼펙트게임 달성 팀은 선린중과 경상중, 휘문고(각 2회), 가장 많이 당한 팀은 철도청이다.
더불어 한국야구에만 있는 관련 최고의 진기록으로 1964년 고순선(크라운맥주)-한장철(경상중)-김영덕(해운공사)의 3일 연속 퍼펙트게임이 있다. 팀과 리그는 다르지만 그야말로 진기록.
3 메이저리그
메이저리그에서는 총 23회 달성되었으며, 가장 최근 기록은 2012년 8월 15일 시애틀 매리너스의 우완 투수 펠릭스 에르난데스가 탬파베이 레이스와의 경기에서 달성했다. 일본에서는 15회 달성되었다고 한다.[15] 로이 할러데이가 통산 20번째 퍼펙트 게임을 기록한 2010년에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아르만도 갈러라가가 26번의 타석을 모두 막고 마지막 아웃 1개가 남은 상황에서 오심으로 퍼펙트 게임을 눈앞에서 놓쳐 논란이 되었다. 이 일은 결국 메이저리그에서의 비디오 판독 도입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
21세기 들어 MLB에서는 퍼펙트를 달성한 투수들은 그 후 피칭이 부진하다. 랜디 존슨은 2004년 이후 전성기 포스를 잃어버렸으며, 마크 벌리는 예전만하지 못하다. 댈러스 브레이든의 경우에는 퍼펙트 직후에 DL을 다녀오는 안습한 상황을 맞이하기도 했다. 물론 그 뒤에는 호투 중이긴 하지만. 로이는 잘 던지기는 하는데 그 이후로 타선이 단체로 침묵해서 패가 늘고 있는 상황. 지못미. 게다가 아르만도 갈라라가는 퍼펙트 게임을 놓친 후 마이너리그로 강등되었다. 필립 험버 역시 다음 선발 등판 경기였던 레드삭스와의 경기에서 5이닝 9실점으로 대차게 털렸고 몇년간 부진을 거듭하다 KIA 타이거즈에 입단했다가 그마저도 실망스러운 모습만 보여주며 방출당했다.(…) 그러므로 투수들은 퍼펙트 게임을 멀리하고 적당한 노히트를 던지는 것이 낫습니다.
하지만 맷 케인은 다음 경기인 LAA전에서 5이닝 3실점 하며 승리투수가 됐고, 킹 펠릭스는 다음 경기인 클리블랜드와의 홈경기에서 7이닝 1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됐다.
그러나 2013 시즌에서는 맷 케인은 지난 해 에이스라는 성적에 걸맞지 않는 최악의 피칭을 했다. 반면에 킹 펠릭스는 여전히 시애틀의 에이스로서 좋은 모습을 보였다.
3.1 달성 선수
- 이름 옆에 L은 좌완 투수.RS는 우완 사이드암. LS는 좌완 사이드암. LU는 좌완 언더핸드. RU는 우완 언더핸드를 의미하며 스코어는 전자가 원정 팀, 후자가 홈 팀이다. 투구수가 없는 게임은 당시에 투구수를 세지 않아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사이드나 언더는 아직 기록이 없지만 언젠가는 생길지도 모르니까스위치 투수도 언젠가 생길수도 있지 않을까?
투수 | 나이 | 스코어 | 달성일 | 투구수 | 탈삼진 |
리 리치먼드(L) | 23 | 신시내티 블루스 0-1 워체스터 루비 렉스 | 1880년 6월 12일 | 5 | |
존 몽고메리 워드 | 20 | 프로비던스 그레이스 5-0 버팔로 바이슨스 | 1880년 6월 17일 | 2 | |
사이 영 | 37 |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0-3 보스턴 아메리칸스 | 1904년 5월 5일 | 8 | |
에디 조스 | 28 | 시카고 화이트삭스 0-1 클리블랜드 냅스 | 1908년 10월 2일 | 74 | 3 |
찰리 로버트슨 | 26 | 시카고 화이트삭스 2-0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 1922년 4월 30일 | 90 | 6 |
돈 라슨 | 27 | 브루클린 다저스 0-2 뉴욕 양키스(in WS)[16] | 1956년 10월 8일 | 97 | 7 |
짐 버닝 | 32 | 필라델피아 필리스 6-0 뉴욕 메츠 | 1964년 6월 21일 | 90 | 10 |
샌디 쿠팩스(L) | 29 | 시카고 컵스 0-1 LA 다저스 | 1965년 9월 9일 | 113 | 14 |
캣피시 헌터 | 22 | 미네소타 트윈스 0-4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 1968년 5월 8일 | 107 | 11 |
리 바커 | 25 | 토론토 블루제이스 0-3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 1981년 5월 15일 | 103 | 11 |
마이크 위트 | 24 |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1-0 텍사스 레인저스 | 1984년 9월 30일 | 94 | 10 |
톰 브라우닝(L) | 28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0-1 신시내티 레즈 | 1988년 9월 16일 | 102 | 7 |
데니스 마르티네즈 | 36 | 몬트리올 엑스포스 2-0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 1991년 7월 28일 | 95 | 5 |
케니 로저스(L) | 29 |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0-4 텍사스 레인저스 | 1994년 7월 28일 | 98 | 8 |
데이비드 웰스(L) | 34 | 미네소타 트윈스 0-4 뉴욕 양키스 | 1998년 5월 17일 | 120 | 11 |
데이비드 콘 | 36 | 몬트리올 엑스포스 0-6 뉴욕 양키스 [17] | 1999년 7월 18일 | 88 | 10 |
랜디 존슨(L) | 40 |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2-0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 2004년 5월 18일 | 117 | 13 |
마크 벌리(L) | 30 | 탬파베이 레이스 0-5 시카고 화이트삭스 | 2009년 7월 23일 | 116 | 6 |
댈러스 브레이든(L) | 26 | 탬파베이 레이스 0-4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 2010년 5월 9일 | 109 | 6 |
로이 할러데이 | 33 | 필라델피아 필리스 1-0 플로리다 말린스 | 2010년 5월 29일 | 115 | 11 |
필립 험버 | 30 | 시카고 화이트삭스 4-0 시애틀 매리너스 | 2012년 4월 21일 | 95 | 9 |
맷 케인 | 29 | 휴스턴 애스트로스 0-10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2012년 6월 13일 | 125 | 14 |
펠릭스 에르난데스 | 26 | 탬파베이 레이스 0-1 시애틀 매리너스 | 2012년 8월 15일 | 113 | 12 |
3.1.1 9회에 무산된 퍼펙트 게임
- 2015년 6월 20일 맥스 슈어저
- 워싱턴 내셔널스 소속인 맥스 슈어저는 9회말 2아웃까지 퍼펙트 게임을 기록하였으나, 마지막 타자인 호세 타바타에게 몸에 맞는 공을 허용하는 바람에 퍼펙트 게임을 놓치고 말았다. 그래도 후속 타자인 조시 해리슨을 좌익수 뜬공으로 잡으며 퍼펙트 게임 대신 노히트 노런을 달성하는 데 성공한다.
- 2013년 4월 3일 다르빗슈 유
- 텍사스 레인저스 소속인 다르빗슈 유는 4월 3일 휴스턴 애스트로스 상대로 팀이 7-0으로 앞선 상황에서 9회말 2아웃까지 퍼펙트 게임을 기록하였으나, 마윈 곤잘레스에게 안타를 맞고 퍼펙트 게임을 놓쳤으며, 노히트 노런도 깨졌다. 특히 다르빗슈 유는 아시아 선수 최초 메이저리그에서 퍼펙트게임을 노렸기에 아쉬움이 남을 수 밖에 없는 경기였다. 결국 론 워싱턴 감독은 한 타자를 남겨놓고 다르빗슈를 마운드에서 내려오게 해 퍼펙트 게임은 물론이고 완투도 달성하지 못하였다.
- 2010년 6월 2일 아르만도 갈라라가
- 당시 디트로이트 소속이었던 아르만도 갈라라가는 9회말 2아웃까지 퍼펙트 게임을 기록했다. 마지막 타자 역시 평범한 땅볼이었으며, 1루에서 아웃되고 대기록이 작성되나 싶었다. 선수들과 관중 모두 대기록 달성에 환호하는 사이, 짐 조이스 1루심의 늦은 '세이프'선언이 나온다. 그것도 명명백백하게 오심판정이었다. 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퍼펙트라는 대기록이 날아간다.
그리고, 이 오심은 MLB 역사상 최악의 오심으로 기록된다.버락 후세인 오바마 대통령까지 나서서 판정 번복을 호소했지만, 오심이 번복되지는 않았다. 참고로, 갈러라가는 오심에 잠시 흔들렸지만, 땅볼로 마지막 1아웃을 잡아 내며 1피안타 완봉승을 기록하였다.[18] 경기가 끝나자 디트로이트 선수들은 심판에게 삿대질과 욕설을 퍼부으며 분노를 표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이 그저 더욱 허망할 뿐이었다. 하필 다음날 주심은 짐 조이스. 하지만 갈라라가가 감독 대신 라인업 카드를 교환하러 나가면서 화해의 제스쳐를 취했다.
- 2001년 9월 3일 마이크 무시나
- 당시 뉴욕 양키스 소속이었던 마이크 무시나는 적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펜웨이파크에서 9회말 2아웃까지 퍼펙트 게임을 기록하고 있었고, 마지막 타자였던 칼 에버렛을 상대로 볼 카운트 1볼 2스트라이크까지 끌고가 퍼펙트 게임에 스트라이크 하나만을 남겨놓은 상태에서 안타를 맞고 퍼펙트 경기를 놓치게 된다. 무시나는 마지막 타자를 땅볼로 잡아내며 완투승으로 경기를 정리하였다.
- 1989년 8월 4일 데이브 스티브
- 토론토 블루제이스 역대 최고투수중 한명으로 꼽히는[19] 데이브 스티브도
그 당시 역대 최악의 흑역사 시기를 보내고 있던뉴욕 양키즈를 상대로 역시 9회말 2아웃까지 퍼펙트 게임을 기록하고 있다가 로베르토 켈리가 2루타를 치는 바람에 퍼펙트게임이 무산됐다. 그 후 안타를 더 맞고 스코어가 2-1되자 스티브는 승리마저 날라갈 위기까지 가게 됐는데 구원투수가 틀어막는데 성공하며 다행이 승수는 챙겼다. 스티브는 이 경기 이전부터 총 세번씩이나 9회말에 노히트 노런을 날린거로 유명한데, 그와중 두번은 심지어 두 스타트 연속으로 무산된것이다... 흠좀무. 다행히 스티브는 1990년에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상대로 그나마 노히트 노런에라도 성공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3.2 비공식 기록
- 9이닝 퍼펙트를 기록하였으나, 0:0 으로 경기가 연장전으로 이어지고, 연장전에서 퍼펙트가 무산된 경우가 2번 있었다.
- 1995년 6월 3일 페드로 마르티네즈
- 당시 몬트리올 엑스포스 소속이었던 페드로 마르티네즈는 9이닝동안 단 한명의 타자도 내보내지 않으며, 완벽한 투구를 펼쳤다. 하지만, 상대 투수 조이 해밀턴도 역시 9회까지 3피안타 2볼넷 무실점의 완봉투로 맞서며, 결국 연장에 돌입한다. 몬트리올이 연장 10회초 1점을 내어, 연장 퍼펙트 게임이라는 대기록이 달성되나 싶었지만, 10회말 선두타자에게 2루타를 맞으며, 기록이 무산된다. 여기서 마르티네즈는 교체되었고, 불펜이 잘 막으면서 페드로 마르티네즈는 1피안타 무실점 승리를 챙기는데 만족해야 했다.
- 1959년 5월 26일 하비 해딕스
- 당시 피츠버그 파이리츠 소속이었던 하비 해딕스는 9이닝 동안 단 한명도 내보내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 투수 류 버뎃 역시 산발 8안타를 맞으면서도 단 1점도 내주지 않으며, 경기는 연장으로 돌입한다. 연장에 돌입한 이후로도 하비 해딕스는 무려 12이닝까지 퍼펙트 게임을 이어 간다. 하지만, 상대 투수 류 버뎃 역시 연장 13회초까지 총 12개의 안타를 맞으면서도, 1점도 안내주는 '꾸역 모드'로 맞불을 놓았다. 운명의 13회말, 3루수 실책으로 주자가 2루에 나가면서, 퍼펙트 게임이라는 대기록은 허무하게 실패한다. 퍼펙트는 깨졌지만, 노히트 노런이라도 달성하기 위해서 계속 던졌는데, 일단 '홈런왕' 행크 아론을 고의사구로 거른다. 그리고, 다음 타자 조 해드콕을 상대하였으나, 3점 홈런을 맞으며, 퍼펙트 게임, 노히트 노런을 포함한 모든 기록이 무산되고, 패전이란 기록만 남게 되었다.[20] 참고로, 이유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행크 아론은 홈을 밟지 않고 덕아웃으로 들어 가 버리며, 누의 공과로 인해서 조 해드콕의 끝내기 홈런은 끝내기 안타로 조정되었고, 1-0 으로 기록이 정정되었다.
하비 해딕스에 대한 경의의 표현이었을지도..(베이스볼 레퍼런스의 기록에 따르면 행크 아론은 타구가 담장을 넘지 않은 줄 알고, 그냥 끝내기 안타로 생각했다고 한다)
3.3 그 외의 이야기
- 최연소로 퍼펙트 게임을 달성한 투수는 존 몽고메리 워드(20), 최고령은 랜디 존슨(40).
- 최소 탈삼진 퍼펙트 게임을 달성한 투수는 존 몽고메리 워드(2), 최다는 샌디 쿠팩스, 맷 케인(14).
- 투구수가 기록되지 않은 세번째까지의 퍼펙트 게임을 제외한 최소 투구수를 달성한 투수는 에디 조스(74), 최다 투구수는 맷 케인(125).
- 돈 라슨의 퍼펙트 게임은 현재까지 유일의 포스트시즌&월드시리즈 퍼펙트게임, 포스트 시즌 노히트 노런을 달성한 투수는 돈 라슨과 2010년 NLDS에서 노히트 노런을 달성한 로이 할러데이 둘 뿐이다.
- 다저스의 목소리 빈 스컬리 옹은 무려 4번의 퍼펙트 게임을 중계했다(달성자 : 돈 라슨, 샌디 쿠팩스, 톰 브라우닝, 데니스 마르티네스). 그 중 월드 시리즈 유일의 퍼펙트 게임인 돈 라슨의 퍼펙트 게임을 중계했다.
그런데 정작 스컬리 옹 본인이 중계했던 경기의 전적은 1승 3패 - 1998년 뉴욕 양키스 소속으로 퍼펙트 게임을 달성한 부머 데이비드 웰스는 훗날 인터뷰에서 전날 음주를 하고 술이 덜 깬 상태에서 투구했다고 밝혔다. 일명 음주 퍼펙트. 몰라 뭐야 그거 무서워
- 1998년 데이비드 웰스는 양키스 소속. 99년의 데이비드 콘도 양키스 소속. 뉴욕 양키스는 사상 최초로 2년 연속 퍼펙트 게임 투수 배출팀이 되었다. 특히 99년 데이비드 콘의 퍼펙트 게임은 인터리그 간의 경기였고, 유일한 월드시리즈 퍼펙트 게임의 주인공인 돈 라슨과 요기 베라가 오프닝 이벤트를 하고 경기를 관전했다.
- 위와 반대로 탬파베이 레이스는 2009년 마크 벌리에게, 2010년 댈러스 브레이든에게 퍼펙트 게임을 당해, 2년 연속으로 퍼펙트 게임을 당한 첫 팀이 되었다.(...)
대기록 셔틀 레이스(...)1년 쉬고 결국 2012년 펠릭스 에르난데스에게 퍼펙트 게임을 당하면서 역시 대기록 제조기 레이스의 면모를 다시금 확인시켜줬다(...) - 2010년 5월, 로이 할러데이가 퍼펙트 게임을 달성함에 따라 1880년에 이어서 두번째로 같은 해, 같은 달에 퍼펙트 게임이 나왔다. 그리고 2012년에도 양대리그에서 퍼펙트 게임이 나오고 한 시즌에 벌써 세 번이나 퍼펙트 게임이 나온 상황.
- 출루를 허용한 노히트 게임과 아무도 1루를 밟지 못한 퍼펙트 게임을 모두 달성한 투수는 7명이다.[21] 이들은 사이 영, 에디 조스, 샌디 쿠팩스, 짐 버닝, (마이크 위트[22]), 랜디 존슨, 마크 벌리, 로이 할러데이.
- 퍼펙트 게임을 달성한 우투수는 15명, 좌투수는 8명이나 1990년 이후로 본다면 우투수는 6명으로 좌투수 5명과 비슷하다. MLB에서 투수 우:좌 비가 3:1이지만 퍼펙트 게임은 그 비가 1:1에 가까운 걸 보면 역시 좌완이 유리하다는걸 알 수 있다. 아마 좌타자가 늘면서 좌상바가 많아진 영향인 듯...
- 퍼펙트 게임이 달성된 달은 5월이 7번으로 가장 많다. 4월에 시즌이 시작된 이후 투수들의 몸이 슬슬 풀리기 시작하는 5월이 가장 높다는 분석이다. 반면 더위 때문에 체력이 떨어지기 쉬운 8월은 한번도 없었는데... 2012년 8월 15일에 펠릭스 에르난데스가 달성했다.
- 상식적으로 생각해본다면 타격이 만만한 투수가 타석에 나오는 내셔널리그가 퍼펙트 게임을 달성하기 쉽다고 생각하겠지만 지명타자가 도입된 1973년 이후로는 아메리칸리그 구장에서 9개[23], 내셔널리그에서 5개가 나왔다. 오히려 투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아메리칸리그가 퍼펙트 게임의 달성에는 유리하다는 분석. 실제로 1880년에서 1980년까지 100년간 퍼펙트 게임은 9번 달성되었으나 이후 30여년 동안 14번
이나달성되었다. 역시 지명타자제의 영향이 크다. - 댈러스 브레이든의 퍼펙트 게임에서 2루심은 짐 조이스였다.
- 시애틀 매리너스의 홈구장 세이프코 필드는 1년에 두 번의 퍼펙트 게임을 치른 최초의 구장이 되었다. 또한 2012년 4월 21일 경기에서는 폭스 전국 중계방송에서 매리너스의 전담 캐스터인 데이브 심스가 마이크를 잡았는데, 2012년 8월 15일 경기에서는 시애틀 지역 방송에서 다시 마이크를 잡고 퍼펙트게임을 중계했다. 이로서 퍼펙트 게임을 한 시즌에 한 구장에서 원정/홈팀 각각 한 차례씩 두 번 중계한 역대 최초의 캐스터로 기록되었다(...)
- 아깝게 날아간 퍼펙트 게임들에 대한 김형준 기자의 칼럼이다. 관련기사
위 기사에 덧붙혀 송구실책 하나로 노히트 노런을 달성한 클레이튼 커쇼도 추가되야 겠지. 헨리 라미레즈 ㅆㅂㄹㅁ - 2016년에는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데이브 로버츠 감독이 7이닝 퍼펙트 도중이던 리치 힐을 퍼펙트 도중에 강판시키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이 퍼펙트는 조 블랜튼이 8회 2사에서 제프 프랑코어에게 적시타를 맞으며 깨진 것은 덤. 물론 이것은 선수의 부상 이슈가 가장 큰 이유이긴 했지만 현지에서의 반응은 굉장히 호불호가 심각하게 갈리는 편. 이 사건에 대해 C.J. 니코스키는 야구가 거세된 날 이라면서 대차게 깠고, 테리 콜린스 뉴욕 메츠 감독과 다저스 소속으로도 뛴 적이 있는 투수 댄 해런은 이를 옹호하는 의견을 보이는 등 전문가로부터도 입장이 엇갈리는 사건이다.
- 미국은 퍼펙트 게임과 노히트노런(or 노히트 게임)은 중요한 기록으로 생각하지만, 완봉이나 완투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퍼펙트 게임이나 노히트노런을 이어가고 있다면 투구수가 한도를 넘기더라도 일단은 기록 달성을 위해서 계속 던지게 한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볼넷, 몸에 맞는 공, 실책 등의 이유로 출루를 하게 되면, 퍼펙트 게임은 깨지더라도 노히트노런은 여전히 유효하기에 계속 던지게 한다. 하지만, 안타를 맞는 경우에는 퍼펙트 게임과 노히트노런이 둘다 실패하게 되는데, 이 경우는 투수를 교체하는 경우가 많다. 굳이 완봉/완투 정도를 위해서 무리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4 NPB
일본에서는 퍼펙트 게임을 직역한 완전시합(完全試合)이라는 용어를 쓴다. 현재까지 공식으로 15번, 비공식으로 1번이 달성됐는데, 대부분은 양대리그 초창기에 작성됐다. 달성자 표에는 비공식 기록도 같이 기재를 했다.
4.1 달성자
투수 이름 | 나이 | 스코어[24] | 달성일 | 비고 | ||||
나카가미 히데오[25] | 32 | 요미우리 자이언츠 4-0 니시닛폰 파이어리츠 (아오모리 시영 구장) | 1950년 6월 28일 | 최초 달성, 최고령 달성(32세 41일) | ||||
다케치 후미오 | 28 | 킨테츠 펄스 1-0 다이에이 유니온즈 (오사카 구장) | 1955년 6월 19일 | |||||
미야지 요시토모 | 24 | 고쿠테츠 스왈로즈 6-0 히로시마 카프 (이시카와 현영 켄로쿠엔 구장) | 1956년 9월 19일 | 최소 투구수(79구)로 달성 | ||||
가네다 마사이치(L) | 24 | 고쿠테츠 스왈로즈 1-0 주니치 드래곤즈 (나고야 구장) | 1957년 8월 21일 | |||||
니시무라 사다오 | 23 | 니시테츠 라이온즈 1-0 토에이 플라이어즈 (고마자와 구장) | 1958년 7월 19일 | |||||
시마다 겐타로 | 20 | 다이요 훼일즈 1-0 한신 타이거즈 (카와사키 구장) | 1960년 8월 11일 | 최연소 달성(20세 351일) | ||||
모리타키 요시미 | 23 | 고쿠테츠 스왈로즈 1-0 주니치 드래곤즈 (코라쿠엔 구장) | 1961년 6월 20일 | |||||
사사키 요시로 | 26 | 다이요 훼일즈 1-0 히로시마 카프 (히로시마 시민 구장) | 1966년 5월 1일 | |||||
26 | 니시테츠 라이온즈 2-0 난카이 호크스 (오사카 구장) | 1966년 5월 12일 | ||||||
소토코바 요시로 | 23 | 히로시마 카프 2-0 다이요 훼일즈 (히로시마 시민 구장) | 1968년 9월 14일 | 센트럴리그 한 경기 최다 탈삼진(16삼진)도 같이 기록 | ||||
사사키 코이치로 | 27 | 킨테츠 버팔로즈 3-0 난카이 호크스 (오사카 구장) | 1970년 10월 6일 | |||||
다카하시 요시마사 | 27 | 토에이 플라이어즈 4-0 니시테츠 라이온즈 | 1971년 8월 21일 | |||||
야기사와 소로쿠 | 28 | 롯데 오리온즈 1-0 다이헤이요 라이온즈 (미야기 구장) | 1973년 10월 10일 | |||||
이마이 유타로 | 29 | 한큐 브레이브스 5-0 롯데 오리온즈 (미야기 구장) | 1978년 8월 31일 | 퍼시픽리그 지명타자제 도입 후 최초 달성 | ||||
마키하라 히로미 | 28 | 요미우리 자이언츠 6-0 히로시마 카프 (후쿠오카 돔) | 1994년 5월 18일 | 돔구장 및 인조잔디 구장에서 최초 달성 | ||||
야마이 다이스케 이와세 히토키(L) | 주니치 드래곤즈 1-0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나고야 돔) | 2007년 11월 1일 | 일본시리즈 최초 완전시합 및 합작 완전시합[27] |
달성자 명단을 보면 알겠지만, 퍼펙트게임 달성자 중에서 좌완투수는 가네다 마사이치 단 한 명이다.[28] 흠좀무...
2012년 5월 30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스기우치 토시야가 9회 2사까지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를 상대로 퍼펙트 피칭을 했으나 마지막 타자 나카시마 도시야에게 볼넷을 주며 결국 노히트 노런으로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마지막 타자 4구는 삼진을 줘도 되는 공이였는데 심판이 기록을 의식한듯
4.2 비공식 기록 - 2007년 일본시리즈 5차전
비공식기록은 2007년 11월1일 일본시리즈 5차전, 시리즈 우승을 결정짓는 경기에서 주니치 드래곤즈의 야마이 다이스케와 이와세 히토키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를 상대[29]로 합작 퍼펙트게임(1-0 승)을 기록했다. 비공식 기록인 이유는 첫째로 정규시즌이 아닌 포스트시즌(일본시리즈)에서 기록했다는 점, 둘째로 일본프로야구는 합작 퍼펙트게임이나 합작 노히터를 인정않는다는 점이다.어?
이 경기 선발투수였던 야마이는 단 86개 공을 던지며 8회까지 완벽하게 막았다. 하지만 오치아이 히로미츠 주니치 감독은 우승을 결정짓는 투수[30]로 이와세를 낙점했고, 결국 9회에 등장한 이와세는 삼자범퇴로 무사히 막아내고 일본시리즈 우승의 마지막 장면을 장식했다.불을 안 지른 것만도 어디야!
그러나 시리즈가 끝난 이후 오치아이 감독의 이 결정에 대해서 뜨거운 찬반양론이 벌어졌는데, 퍼펙트 게임이라는 대기록이 보고 싶었던 타구단 팬들이나 야구계의 OB들은 승리에 눈이 먼 투수교체라고 맹렬히 깠으나, 드래곤즈 팬들은 오히려 당시 감독이였던 오치아이 히로미츠를 옹호했다. 이유는 간단한데, 주니치의 마지막 일본시리즈 우승이 무려 53년 전이라는 점. 그리고 만에 하나 경기가 뒤집히게 되면 6, 7차전은 적지인 삿포로 돔에서 치러야 한다는 점. 마지막으로 당시 선발이었던 야마이의 손가락 물집이 6회부터 터져 있었고, 야마이의 공이 좋아서 퍼펙트를 기록하고 있었다기보다는 주니치 야수들의 호수비와 닛폰햄 타선의 삽질 등 각종 운이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어쨌든 주니치 팬들 외에도 개인의 기록보다는 팀을 우선시하는 야구관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기에 시간이 지나면서 여론은 오치아이의 선택을 수긍 내지 이해하는 쪽으로 기울어지긴 했다. 물론 이 게임을 계기로 오치아이의 안티도 상당히 늘어났는데, 여기서 다른 팀도 아닌 주니치의 구단주가 그렇게 오치아이의 안티가 되었고(...) 2011년에 이 사건을 좋지 않게 보던 OB들을 규합해서 프론트 내 여론을 오치아이 해임 쪽으로 모았다는 카더라가 생기기도 했다.
밑에 링크된 베이스볼 레퍼런스 불펜에 나와있는 내용이기도 한데, 이 퍼펙트게임 중 교체에 대해 닛칸스포츠가 여론조사를 한 결과, 교체에 찬성하는 사람이 53%, 반대하는 사람이 37%로 교체에 대해 찬성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베이스볼 레퍼런스 불펜에 올라온 해당 게임 소개글 : Game 5. 그리고 야마이의 24-down까지의 동영상 장면
여담이지만 해당 경기의 주인공이었던 야마이는 2013년 6월 28일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전에서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며 조금이나마 한을 풀었다(...).
4.3 이모저모
- 니시구치 후미야(세이부)는 2005년 8월 27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의 홈경기(세이부돔)에서 9회까지 퍼펙트로 막아냈지만 팀 타선이 한 점도 뽑지 못하면서 경기는 연장으로 접어들었고, 결국 연장 10회 무사에서 오키하라 요시노리에게 그 경기 첫 안타를 내주면서 퍼펙트가 무산된다. 이후 볼넷을 하나 더 내주긴 했지만 후속타자를 무사히 막아 1-0 완봉승을 기록했다.
외계인과 배영구의 경우하고 흡사한데?다만 저 '9회까지 퍼펙트'라는 대목 때문에 니시구치가 퍼펙트 게임을 달성한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고 한다.
- 여담으로 니시구치는 2002년과 2005년에 9회 2사까지 사사구만 내주고 잘 막아내다 그놈의 안타 때문에 노히터를 놓친 경험이 있다.
여기서 이 사람이 생각나면 지는 거다.
- 야마모토 마사히로(주니치)는 2006년 9월16일 한신 타이거즈와의 홈경기(나고야돔) 경기에서 무사사구 노히터를 기록했다. 이유는 모리노 마사히코가 저지른 실책 때문. 그래서 준완전시합으로 인정한다.
- NPB 1호 퍼펙트게임의 주인공인 후지모토 히데오(한국명 이팔용)는 가네다 마사이치에 비해 덜 알려졌지만 NPB에 굵직한 흔적을 남긴 재일교포 출신이다. 가네다 마사이치가 엄청난 누적스탯으로 유명하다면 후지모토 히데오는 살벌한 비율 스탯으로 유명하다. NPB 통산 평균자책율(통산 2천 이닝 이상 기준) 1위, 승률 1위. 200승인 다승도 결코 적지 않은 기록. 위키피디아 참조
- ↑ 그러나 합작 퍼펙트 게임 기록은 미국에도 없다. 즉, 선발 투수가 퍼펙트로 막았는데 다음 투수가 항상 출루시켰다는 말.
- ↑ 타자는 홈런을 쳤지만, 고의사구로 1루 주자로 있던 행크 애런은 공이 구장 밖으로 넘어가지 않은 줄 알았고, 타자 주자가 2루와 3루 사이에서 행크 애런을 앞지르는 바람에 둘 모두 아웃이 되고 홈런 대신 끝내기 안타로 기록되었다.
- ↑ 59년 밀워키 브레이브스는 리그 득점 2위, 홈런 1위인 강타선이었다.
- ↑ 홍현우에게 좌전안타를 맞고 노히트 노런 실패, 장채근에게 2루타를 맞고 동점 허용, 윤재호에게 3루타를 맞고 3실점째. 강판 후 구원 투수인 장정순이 이건열한테 안타를 맞으며 윤재호마저 홈으로 들어오면서 4실점.
안 내려갔으면 이건열한테는 그라운드 홈런? - ↑ 감기증상으로 인해 니퍼트 본인이 교체를 요구했다
- ↑ 프로 출범 이후 삼성 라이온즈 이사가 되었으며, 당시 감독이던 서영무 감독의 작전권을 빼앗고 이충남 조감독에게 이양하는 등의 월권행위를 저지르기도 했다.
- ↑ 양준혁의 삼촌으로 양준혁이 야구를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 ↑ 이후 배재고-고려대를 거치며 외야수로 전향한 뒤 90년 쌍방울에 특별지명되었으나, 고질적인 허리 부상으로 별 활약을 못 보이다가 김현욱 트레이드 때 최한림과 함께 삼성으로 이적하여 은퇴한다. 이후 두산 베어스 프런트에서 활동 중.
- ↑ 현재 LG 트윈스 소속 외야수.
- ↑ 재미있게도 첫 퍼펙트게임을 당한 동인천중 출신이다. 현재 삼성 라이온즈 투수.
- ↑ 프로 출범 이후 OB 베어스의 수석코치를 지냈다.
- ↑ 해태 타이거스에 지명외 입단한 뒤 양승호와 함께 OB 베어스로 트레이드되는데 그 반대급부가 한대화였다. 결국 ob에서 별 활약을 못 보이고 은퇴하면서 조공 트레이드로 기록에 남았다.
- ↑ 현재 SK 와이번스 소속으로 고교전국대회 본선으로는 최초의 퍼펙트게임이다.
- ↑ 이후 천안북일고에서 2학년 때 새로 창단된 소래고로 전학가는 우여곡절을 거쳐 2016년 현재 동아대 재학중.
- ↑ 일본시리즈 및 합작 퍼펙트게임 불포함이다. 자세한 내용은 하술되어 있다.
- ↑ 우리나라 KBO의 경우 포스트시즌에서의 퍼펙트와 노히트는 번외로 취급한다.
아직 퍼펙트는 포스트시즌은커녕 정규시즌에도 나온 적이 없지만정명원의 한국시리즈 노히트가 비공식 노히트로 취급되는 것도 이 때문. 그러나 메이저리그는 포스트시즌에서의 퍼펙트와 노히트도 엄연히 공식 기록으로 취급한다. 이에 의거하여 돈 라슨의 유일무이 월드시리즈 퍼펙트도 메이저리그 사무국에 의해 '공식 퍼펙트'로 공인되어 있으며, 홈페이지의 역대 퍼펙트 명단에도 라슨의 이름이 자랑스럽게 내걸려 있다. - ↑ 1956년 월드시리즈 퍼펙트게임 달성자인 돈 라슨이 시구를 하고 돈 라슨이 관전하는 경기에서 퍼펙트게임을 달성한다.
- ↑ 저 오심이 안타로 기록되면서 퍼펙트 게임을 날려 먹었을 뿐만 아니라 노히트 노런마저 날려 먹었다.
- ↑ 토론토 팬들에게 프랜차이스 역대 최고의 투수가 누군지 물어보면 할교수와 함께 스티브가 꼭 언급된다.
- ↑ 일단 경기 끝까지 던졌으므로 '완투패'로 기록된다.
- ↑ 합작 노히트 게임을 달성한 마이크 위트를 포함한다면 8명인데 일반적으로 동시 달성으로 인정해 주지 않는다.
- ↑ 위트의 경우 출루 허용 노히터에서는 2번째 투수로 출전하여 합작 노히트게임 으로서 마무리하였다.
- ↑ 데이비드 콘의 퍼펙트 게임은 유일무이한 인터리그에서 나온 경기이지만 양키스 홈게임이므로 지명타자제로 치뤄졌다.
- ↑ 전자는 달성자 소속팀, 후자는 상대팀
- ↑ 한국이름 이팔룡, 광복 이전에 일본 프로야구 무대를 밟은 한국인투수
- ↑ 검은 안개 사건에 가담하여 영구제명
- ↑ 하지만 공식기록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다. 자세한 내용은 '비공식 기록' 항목 참조.
물론 노히터를 세웠으니 인정해줘야 한다. - ↑ 야마이-이와세 합작 완전시합의 경우 이와세가 좌완이긴 하나 한 이닝만 막았음으로 큰 의미는 없다.
- ↑ 이 경기 상대 선발은 다르빗슈 유였다. 일본야구에 대해 모르는 해외 팬들은 영어권 웹에서 이 사건에 대해 접하다가 다르빗슈의 이름을 보고 깜놀하는 경우가 있다(...)
- ↑ 이런 투수를 일본에서는 '헹가래 투수'(胴上げ投手)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