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씨)

한국의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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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중기 정유재란명나라에서 귀화하여 화(化)씨로 하사 받았다고 한다.

본관은 진양(晋陽), 나주(羅州) 등이 있다.

2 역사

진양 화씨(晋陽化氏)의 시조 화명신(化明臣)은 중국 명나라 사람으로 정유재란때 조선에 귀화했다. 화명신의 본래의 성은 화(花)씨이며 본래의 이름은 화광신(花光新) 였다고 한다. 그는 명나라 중엽 이부상서를 지냈다. 만주의 여진족이 강성해지면서 북경을 점령한 청군이 낭야에까지 밀려들자 화명신(化明臣)은 "어진 사람은 기회를 알고 행한다"며 '예의의 나라' 조선으로 일가를 이끌고 망명하여 광주 교외의 소영대에 터를 잡고 정착, 이름도 성도 숨기고 살았다고 한다.

조선 성종이 "중국의 화(花)씨가 조선에 귀화한 것은 향화(向化)의 의리"라며 화(化)씨를 성으로 내리고 경성에 봉하였다고 한다. 그는 도승지에 기용됐다. 그러나 득성(得姓) 시조 화명신 이후 사성보첩을 잃었다. 헌종 때 후손들이 안동에 보존돼 있는 족보를 가까스로 찾아냈으나 원본이 크게 훼손돼 정확한 선계(先系)를 밝히지는 못하고 화명신(化明臣)의 6대손 화섭(化燮)을 1세조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화섭은 영월에서 진주로 이주하여 진양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3 인구

화(化)씨는 2000년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286가구, 945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순위 176위이다.

1930년도 국세조사 당시 모두 39가구가 있었는데, 그 중 진주에 23가구, 의령에 3가구 등 모두 경상남도에만 살고 있었다. 1960년도 조사에서는 인구 246명이었고, 1985년 조사에서는 495가구, 1,990명으로 성씨 인구 144위였다. 2000년에는 진양 화씨 252가구, 824명, 나주 화씨 29가구, 101명, 복룡 화씨 4가구, 11명, 여황 화씨 7명 등 286가구, 945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