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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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본관은 파주. 두번 본관을 옮긴 경력이 있다. 고려 개국 당시 당나라의 교목세가의 후손이자 개국 공신인 염형명(廉邢明)[1]이 시조이며 고려 충렬왕 때 곡성부원군에 봉해진 염제신(廉悌臣)을 기세조로 한다. 이렇듯 염廉씨의 기원은 중국 땅을 거쳐 신라-고려땅에서 시작되었으니 한반도의 혈통과 중국 대륙의 혈통이 섞여있다고 볼 수 있다.

파주 염씨는 고려시대에 문과 급제자 7명을 배출하였다.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세워지는 과도기 시기, 고려에 대한 충정을 버리지 않아 이후 조선 조정 내의 입지가 좁아져 조선사 전반부에는 고려때와는 달리 왕실 문서에서 파주 염씨 인물을 찾기 힘들다. 다시 조선 정부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이는 건 임진왜란 당시 평민 의병장으로 활동한 염걸과 염서등이 그 공훈을 조정에서 인정 받아 활로가 트였을 때부터이다.

국내 인구는 약 65, 000명[2]으로 국내 유명 인사로는 다음과 같다.

2

원래 주나라 계통 성씨라고 한다. 마을 염자를 쓰는 염씨 인물로는 문헌에 신라 신무왕 때 장수 염장(閻長)[3]과 고려 태조 원년에 의형대령(義刑臺令)을 지낸 동명이인 염장(閻長)이 기록되어 있다. 구체적인 출신은 확실하지 않다. 1925년 총독부 관리하에 이루어진 호구조사에서는 약 5백여 호가 남아있었고 1930년1960년에 전북 옥구군의 염공술이라는 사람 한명만 응답했으나, 1975년, 1985년, 2000년에 실시된 조사에서는 응답자가 없었다. 이는 일제강점기를 친 근대이후에 마을 염씨를 성으로 쓰는 염씨 가문은 멸문한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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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려 개국 공신 중 일인으로 그 공적을 인정받아 정식으로 성과 본관을 받은 인물 중 한명이다. 이때 봉해진 자리는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
  2. 2000년 통계청 기준.
  3. 장보고를 암살한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