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매일 | 1971년 11월 5일 |
녹음일 | 1971년 2월 27일, 8월 9일 ~ 8월 14일 |
녹음 스튜디오 | 영국 런던의 Trident 스튜디오 |
장르 | 심포니 록, 프로그레시브 록, 바로크 팝, 소프트 록, 포크 록 |
러닝 타임 | 45:17 |
프로듀서 | 거스 더전 |
발매사 | DJM (UK), Uni (US) |
엘튼 존/음반 목록 | ||||
Tumbleweed Connection (1970) | Madman Across The Water (1971) | Honky Château (1972) |
지금도 그 앨범은 차 안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LA 고속도로를 질주하던 때를 생각나게 한다.- 버니 토핀, 1992년 인터뷰
목차
1 개요
Elton John, Tumbleweed Connection과 더불어 엘튼 존의 대표적인 초기 명반
엘튼 존의 4번째 정규 앨범.
2 신인 스타
1970년 2집 Elton John, 3집 Tumbleweed Connection의 성공으로 인해 무명에서 벗어나 스타의 발에 디딛게 되어 한창 주목받던 신인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1965년 데뷔, 5년 간의 무명 이후로 드디어 본격적으로 본인의 입지도를 넓히기 시작했고, 전성기를 조금씩 구사하기 시작했다. 1970년 5월부터 순회 공연을 진행하도록 투어 밴드를 결성했고, 앨범에 참여한 베이시스트 디 머레이, 드러머 나이젤 올슨, 이렇게 3명으로 구성되어 투어 활동 또한 아주 왕성하게 진행되었다.
북미와 유럽에 투어를 진행하면서 1년에 무려 200여 개의 수많은 공연을 진행했었다. 1970년 11월 17일 뉴욕의 A&R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공연이 1971년 4월에 라이브 앨범으로 발매되었고, 1970년 9월에 작업된 사운드트랙 Friends가 1971년 3월에 발매되었다. 당시 미국에서 데뷔 한지 1년 밖에 되지 않았던 신인이었지만, 1년 안에 무려 5장의 앨범을 발매해 신인 뮤지션에서 점차 벗어나는 듯 했다. 본인의 음악성에 깊게 몰두한 것도 있었고, 레이블 사와 계약에 헌신한 것도 있었지만, 이러한 왕성한 활동은 본인의 입지도를 계속해서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엘튼 존은 전담 매니저가 필요한 이유로 1970년 8월 미국 데뷔 시기부터 알던 동료이자 EMI에서 일하고 있던 존 리드(John Reid)와 친한 사이로 크게 번졌고, 이후 그를 매니저로 삼았다.[1] 이후 존 리드를 매니저로 삼게 되어 사업 동료이든 개인적으로 친한 사이를 오랫동안 유지했다.
버니 토핀 또한 작사만 했던 것은 아니었으므로,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데이비드 애클스의 3집 "American Gothic"의 프로듀싱을 맡았고, DJM 레이블의 권유로 1971년 말에 본인의 1집이자 시들로 수록한 구어 앨범 Taupin을 발매하기도 했다. 하지만, 반응을 얻지 못해 묻혀져 버렸다.
3 녹음
한창 투어 활동을 진행하던 시기이자 Friends와 17-11-70이 발매되기 전인 1971년 2월부터 앨범 작업에 들어갔다. 앨범에 참여한 세션은 2집 Elton John부터 거의 동일했고, 엘튼 존의 팀원 케일럽 퀘이, 디 머레이, 나이젤 올슨, 로저 포프, 폴 벅마스터, 클라이브 프랭크스, 거스 더전 등 대부분이 참여했다. 그리고 기타리스트 데이비 존스턴, 퍼쿠션 레이 쿠퍼가 영입되었다.
여러 포크 밴드에서 활동하던 기타리스트 데이비 존스턴은 거스 더전과 우연히 작업하게 되었고, 거스 더전은 데이비 존스턴에게 혹시 엘튼 존이 작업하자고 연락해오면 꼭 기회를 잡으라고 말했다. 그렇게 이 앨범에서 어쿠스틱 기타, 만돌린, 시타르를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아 앨범에 참여했다.
거스 더전은 밴드의 멤버들로 녹음을 진행하긴 어렵다고 생각해 2~3집과 마찬가지로 전문 세션 연주자들을 영입해서 각각 곡들의 연주를 맡았고, 그런 이유로 인해서 기타와 베이스를 2~3명이나 맡았고, 특정 악기에서 디 머레이와 나이젤 올슨만 참여한 경우는 8번 트랙 All The Nasties 뿐이다. 1971년 2월 27일에 첫 녹음을 진행했다가 6개월 뒤인 1971년 8월 9일부터 14일까지 런던의 트라이던드 스튜디오에서 겨우 5일 동안 모든 작업을 끝냈다. 모든 곡들은 1970년 8월~1971년 초에 먼저 작곡된 상태였기 때문에 작업이 매우 신속했다.
4 음악
역대 엘튼 존 앨범들 중에서 가장 실험적인 분위기와 무게감을 크게 보이는 앨범 중 하나이다. 2집 Elton John처럼 현악이 주를 이루고 있는 심포닉 성 음악으로 돌아왔고, 대부분 현악에 겉들어진 분위기로 웅장하면서 깊은 매력을 보이는 곡들로 수록되었다. 현악이 주를 이루는 무거운 곡들과 로큰롤, 블루스 풍의 리드미컬한 곡들로 적절히 공돈하여 2집 Elton John과 유사한 분위기를 보이면서도 사뭇 다른 무게감과 거친 면을 보여준다는 평.
기본적으로 록을 바탕하고 있지만, 현악이 앨범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다 드라마틱한 구성을 보이고, 자연스럽게 녹아내려 커다란 매력을 보이는게 인상적이다. 가장 눈에 띄는 현악 편곡을 담은 앨범이라는 평도 있을 정도.
타이틀 트랙 Madman Across The Water는 전작 Tumbleweed Connection을 작업하면서 9분이나 되는 대곡으로 녹음되었지만, 앨범에 수록되지 못하고 이 버전은 폐기되었다. 결국 이 곡을 재녹음해 미국 록 적인 사운드의 곡에서 현악이 겉들여진 더욱 실험적인 구성의 곡으로 편곡해서 타이틀 트랙으로 수록했다. 리드미컬한 선율로 진행하는 록 넘버는 Razor Face, Rotten Peaches 두 곡 뿐이고, 완전히 업템포로 강력한 선율로 진행하는 곡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다고 모든 곡들이 조용하고 지극히 조용한 곡들로 수록한 정도까진 아니다. 특히 현악으로 겉들어져 각 곡들의 무게감을 크게 느낄수 있는데다 심포닉 록의 기초 구성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을 정도의 실험적인 대곡도 일부 수록되었기 때문에 꽤 묘하면서 독특한 구성의 음악을 담았다는 평.
버니 토핀의 가사 또한 추상적이면서 다양한 주제의 의미를 담은 내용을 크게 담았다. 어느때보다 추상적인 내용이 상당히 많은 편이고, 내면적인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내용으로 인해서 대부분 수록곡의 의미를 파악하기 쉽지 않고, 더군다나 Madman Across The Water의 의미심장한 가사가 리처드 닉슨에 대한 내용이나 정치적인 비유를 담았다는 오해를 받았지만, 버니 토핀은 이를 부정했다. 인디언 전쟁에 대한 Indian Sunset, 신의 대답을 받고 탈출한 도망자 혹은 노예에 대한 Rotten Peaches, 물질만능주의에 대해 심오하게 표현한 Levon 등으로 다양한 주제가 보인다. 이전보다 통합적이면서 추상적이게 한층 변화한 작사 실력을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다.
비록 가사를 쓰지 않았지만, 편집자와 감독 역할을 맡아 되도록 손질을 가한 엘튼 존의 기여 또한 큰 도움이 되었다. 버니 토핀의 작사 실력은 이미 10대부터 확연히 증명되었지만, 엘튼 존이 한창 전성기를 구사하던 시기에도 여전히 솜씨를 많이 배우는 중이었고, 그는 곡의 전체적인 구성에 대해 초보적으로만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간혹 가사와 곡의 전체적인 형식이 묘한 경우가 있었다.
버니 토핀은 곡의 선율을 생각해서 가사를 쓴다기 보단 그저 본인의 마음대로 알아서 가사를 썼다고 보는 것이 쉽다. 그래서 엘튼 존이 이 부분에서 거의 편집자 형식으로 기여를 한 것.
엘튼 존의 초기 앨범들과 같이 수려하면서 깔끔한 완성도와 구성으로 인해서 초기 명반 대열에 꼽히게 되었고, 초기 앨범들 중에서 듣기 가장 무난한 앨범이라서 입문 용이나 추천 앨범으로 많이 꼽힌다.
5 발매
북미에선 앨범 차트 10위 안에 진입해 캐나다 9위, 미국 빌보드 팝 앨범 차트 8위로 기록되었다. 1972년 1월 미국에선 백만장이나 팔렸고, 1972년 연말 차트에서 10위로 기록, 골드를 받는 등 특히 미국에서 커다란 사랑을 받은 앨범이고, 전작들처럼 큰 인기를 모았지만, 영국에선 당시 가장 인기가 없었던 앨범들 중 하나였고, 영국에서 41위로 저조하게 기록되었다. 미국적인 취향을 크게 입혔기 때문에 영국에선 비교적 고전한걸로 추측.
Empty Sky 이후로 처음으로 10위 안에 진입하지 못한 엘튼 존 앨범이고, 이 앨범까지 엘튼 존은 영국에서 별다른 히트곡을 내지 않았다. 1971년 11월~1972년 2월에 싱글로 발매된 Tiny Dancer와 Levon는 꽤 히트쳤다. Levon은 빌보드 24위, 캐나다 6위로 기록되어 양호한 성적을 보였고, Tiny Dancer는 호주 13위, 캐나다 19위로 양호하게 기록되었지만, 영국 싱글 차트 진입 실패, 빌보드 차트 41위로 비교적 낮게 기록되었다.
그럼에도 여타 엘튼 존 곡들처럼 큰 반응을 모은건 여전했지만, 1970년 Your Song 이후로 뚜렷한 히트곡이 없었다.[2] 대중들에게 마찬가지로 큰 사랑을 받았지만, 평론가에겐 극도로 난해하고 까다로운 앨범이라는 평가를 내려 평이 약간 갈렸다. 결국 엘튼 존이 좀 더 밝고, 가벼우면서 대중적인 음악을 하게된 계기가 되긴 했다.
리마스터링되어 재발행된 초기 앨범 중에서 유일하게 보너스 트랙이 없는 앨범이다. 당시 녹음된 Rock Me When He's Gone도 수록하지 않았다.
6 여담
다음작 1972년 5집 Honky Chateau부터 엘튼 존의 음악은 팝과 로큰롤, 즉 대중적으로 크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현악이 주를 이루고 있는 심포닉 성 곡들을 찾기 힘들 정도로 팝 적으로 많이 진입했기 때문에 어찌 보면 이 앨범은 엘튼 존의 초기 시절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앨범이라고 볼 수 있다. 2집 Elton John부터 이 앨범까지 런던의 트라이던트 스튜디오에서 작업했지만, Honky Chateau, 1973년 6집 Don't Shoot Me I'm Only The Piano Player, 7집 Goodbye Yellow Brick Road까지 잠시 남프랑스에 위치한 샤토 에루빌 성의 Strawberry 스튜디오에서 작업되었다.
앨범 커버는 청바지 면으로 만든 것이다. 뒷면 커버에서 더욱 확연히 알 수 있다.
기타, 만돌린을 맡은 데이비 존스턴은 1972년부터 투어 밴드의 멤버로 영입되었고, 50년 가까이 함께해 엘튼 존 곁에 가장 오랫동안 함께하는 멤버 중 한명이 되었다. 레이 쿠퍼는 Honky Chateau에도 참여했지만, Don't Shoot Me I'm Only The Piano Player에선 참여하지 않았고, Goodbye Yellow Brick Road부터 다시 참여, 1973년 11월부터 밴드의 퍼쿠션으로 영입되어 현재까지 함께하고 있다. 1967~68년부터 함께한 케일럽 퀘이, 로저 포프는 이 앨범 이후로 한동안 참여하지 않았지만, 1975년 10집 Rock Of The Westies에 다시 함께하기 시작해 밴드의 멤버로 1977년까지 함께했다.
Tiny Dancer와 Levon은 당시 큰 히트를 거두지 않았지만, 이후 인기곡 반열에 들었고, 가장 커다란 사랑을 받는 엘튼 존의 초기 곡들 중 하나가 되었다. 특히 Tiny Dancer는 30년도 지나서 2000년 영화 "Almost Famous"에 사용되어 더욱 큰 사랑을 받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고, 미국에서 가장 커다란 사랑을 받는 엘튼 존 곡 중 하나이다. 또한 Indian Sunset은 에미넴이 2004년에 이 곡과 투팍의 미공개 곡을 서로 합쳐서 프로듀싱해서 나온 곡이 "Ghetto Gospel"이다.
앨범을 작업하면서 사이먼 앤 가펑클의 "America"를 커버했다.
엘튼 존이 가장 애착하는 본인의 앨범 중 하나이기도 하다. 앨범 커버가 그려진 자켓을 공연에서 여러차례 입기도 했다.
이 앨범은 당시 동료 뮤지션에게 커다란 칭찬을 받았고, 이후 이 앨범으로 인해 큰 영향을 받아 유명 가수가 된 사람들도 여러명 있다. 그 중 케이트 부시는 10대 시절때 굉장한 엘튼 존 팬이었고, 이 앨범이 발매된 시기부터 그에게 푹 빠졌다고 했다.
엘튼 존이 2015년에 뒤늦게 밝힌 사실인데, 이 앨범의 일본 발매 당시, 제목이 "Madman Across The Water"(물을 건너는 미치광이)에서 "Madam Across The Water"(물을 건너는 아주머니)로 잘못 표기되어 발매되었다고 밝혔다.
7 라이브
가장 많이 부른 수록곡은 앨범의 대표곡인 Tiny Dancer와 Levon이다. 1971년 이후로 일부 투어를 제외한 대부분의 투어에서 40년 넘게 자주 불렀고, 현재 빠지지 않는 대표 레파토리 중 하나이다. Indian Sunset는 1970년부터 부르기 시작하여 1972년까지 불렀지만, 이후로 거의 부르지 않다가 1993년 레이 쿠퍼와 진행하는 2인조 투어의 레파토리로 분류해 자주 부르기 시작했다. 이후 2011년부터 라스베가스에서 진행하는 Million Dollor Piano에서도 한번도 빠짐없이 자주 부른다.
Madman Across The Water, Holiday Inn는 1970년대 초 이후로 거의 부르지 않다가, 2000년대부터 자주 불렀고, 나머지 수록곡들은 1971~1972년 이후로 한번도 부르지 않았다. 엘튼 존 앨범들 중에서 상당히 드물게도 라이브에서 단 한번도 부르지 않은 수록곡이 없고, 대부분의 곡들을 상당히 자주 불렀다는 점.
심지어 미발매곡인 Rock Me When He's Gone도 1972년까지 불렀다.
8 트랙 리스트
트랙 리스트 |
1. Tiny Dancer - 6:15 |
2. Levon - 5:22 |
3. Razor Face - 4:44 |
4. Madman Across The Water - 5:56 |
5. Indian Sunset - 6:46 |
6. Holiday Inn - 4:17 |
7. Rotten Peaches - 4:56 |
8. All The Nasties - 5:08 |
9. Goodbye - 1:48 |
8.1 미 수록곡
- Rock Me When He's Gone - 5:04
9 세션
보컬, 작곡, 피아노 - 엘튼 존
작사 - 버니 토핀
일렉트릭, 어쿠스틱 기타 - 케일럽 퀘이
어쿠스틱 기타, 만돌린, 시타르 - 데이비 존스턴
일렉트릭, 슬라이드 기타 - 크리스 스피딩
베이스 - 데이비드 글로버, 브라이언 오저스
베이스, 백보컬 - 디 머레이
드럼, 백보컬 - 나이젤 올슨
드럼 - 로저 포프, 배리 모르건, 테리 콕스
퍼쿠션 - 레이 쿠퍼
스틸 기타 - BJ 콜
백보컬 - 레슬리 던컨, 슈 & 서니, 배리 세인트 존, 리자 스트라이크, 토니 버로스, 테리 스틸
하모니움 - 브라이언 디
오르간 - 릭 웨이크먼
아코디언 - 잭 엠블로우
ARP 신시사이저 - 다이애나 루이스
더블 베이스 - 크리스 러우랜스
백보컬 - 교회 성가대
현악 편성 - 폴 벅마스터
프로듀서 - 거스 더전
엔지니어 - 로빈 케이블
리마스터링 - 토니 커슨
편집 - 거스 스키너
디지털 변환 - 릭 그레이엄
서라운드 사운드 - 그레그 페니
보조좌 - 그리스핀 머레이
오케스트라 지휘자 - 데이비드 캣
성가대 지휘자 - 로버트 커비
앨범 디자인, 삭화 - 데이비드 락암
사진 촬영 - 밥 거른, 데이비드 락암
라이너 노트 - 존 토블러, 거스 더전
10 차트 성적
차트 (1971년) | 기록 |
호주 | 8위 |
캐나다 | 9위 |
이탈리아 | 14위 |
일본 | 13위 |
영국 | 41위 |
미국 빌보드 200 | 8위 |
10.1 연말 차트
차트 (1972년) | 기록 |
미국 | 10위 |
이탈리아 | 54위 |
11 판매량
국가 | 증명 |
미국 (RIAA) | 플래티넘 2장 (2,000,000장) |
12 싱글
Levon / Goodbye | 1971년 11월 29일 |
Tiny Dancer / Razor Face | 1972년 2월 7일 |
12.1 싱글 성적
차트 (1972년) | Tiny Dancer |
호주 | 13위 |
캐나다 | 19위 |
캐나다 AC | 20위 |
미국 빌보드 | 41위 |
빌보드 캐시 박스 | 29위 |
차트 (1972년) | Levon |
호주 | 94위 |
캐나다 | 6위 |
미국 빌보드 | 24위 |
- ↑ 전 매니저이자 엘튼 존을 솔로 가수로 활동한 계기를 심어준 출판업자 레이 윌리암스와 1970년 9월부터 서로의 사이가 소원해졌고, 이후로 엘튼 존과 40년 넘게 일하지 않게 되었다.
- ↑ 1972년 Rocket Man이 여러 국가에서 싱글 차트 10위 안에 진입해 큰 히트를 친걸로 시작해 히트곡의 행진이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