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니 토핀

이름버나드 존 토핀 (Bernard John Taupin)
국적영국
출생일1950년 5월 22일, 영국 링컨셔 주 슬리퍼드
직업작사가, 가수, 시인
배우자맥신 파이벨만 (1971~1976), 토니 린 루소 (1979~1991),
스테파니 헤임즈 (1993~1998), 헤더 린 하진스 키드 (2004~)
자녀장녀 찰리 인디애나 토핀, 차녀 조지 데본 토핀
활동1967년~
데뷔1971년 1집 Taupin
악기보컬
장르,
별명The Brown Dirt Cowboy
레이블Elektra
링크berniejtaupin.com

1 개요

Brown Dirt Cowboy

영국의 작사가, 가수, 시인. 1950년 5월 22일 출생. 출생지는 영국 링컨셔 주 슬리퍼드이다.

1967년부터 작사가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대부분 엘튼 존의 음악의 가사를 작사해왔다. 엘튼 존과 50년 동안 장기간의 협업을 이루는 사이로 유명하다. 엘튼 존의 대부분 곡들은 버니 토핀이 작사를 맡았으며 이젠 떨어질 수도 없을 정도로 깊은 협업을 보여준다. 이 둘의 콤비는 록 음악 계에서 레논-매카트니, 재거-리처드처럼 손꼽히는 콤비들 중 하나이다.

1992년 엘튼 존과 함께 작곡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으며, 2013년에는 작곡가 명예의 전당에서 시상하는 특별상 중 가장 권위가 높은 조니 머서 어워드(Johnny Mercer Award)를 엘튼 존과 함께 받았다.

대부분의 작사 활동은 엘튼 존과 함께했지만, 앨리스 쿠퍼, 하트, 윌리 닐슨 등의 뮤지션들과 작사, 가수 활동으로 작업한 바 있다.

엘튼 존처럼 정규 앨범들 발매하거나 가수로 잠시 활동하기도 했었다.[1] 본인의 솔로 앨범들에서도 작사만 맡았고, 작곡은 다른 뮤지션들이 맡았다. 1971년에 솔로 1집 Taupin은 읆조린 시들로 수록된 구어(口語) 앨범이고, 1980년에 2집 He Who Rides The Tiger부터 팝 음악을 해왔다. 1996년에는 Farm Dog이라는 밴드와 작업하기도 했었지만, 1998년 이후로 본인 명의로 앨범을 작업하지도 않았고, 엘튼 존과의 작업을 제외하면 다른 이들과 작업이 없다.

현재 버니 토핀은 엘튼 존과의 협업을 제외하면 화가로 활동 중이다.

2 경력

2.1 어린 시절

1950년 5월 22일 영국 링컨셔 주 슬리퍼드 근처 앤윅에서 농장 관리인 로버트와 가정주부 대프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버니 토핀은 가족에서 둘째였고, 형 토니 토핀[2]과 11살 아래의 동생 키트 토핀이 있다.​ 링컨셔는 영국에선 시골 지역이었고, 버니 토핀은 전원 생활을 하면서 지냈으며 유년을 풍족하고 행복하게 보냈다. 그에게 고전을 가르친 외할아버지 덕분에 판타지문학에 대해 커다란 관심을 가졌다. ​특히 그가 어린 시절부터 접하던 매체들 중 하나가 미국의 서부 문화였으며, 특히 미국 문화에 대해 큰 영향을 받았다.

그가 가장 큰 관심을 가지던 종목 중 하나인 문학에 푹 빠졌으며, 십대 시절부터 시를 쓰는걸 좋아했다. 또한 당시 어느 십대들처럼 팝 음악에도 크게 몰두해 그에게 큰 영향을 끼쳤었다. 버니 토핀은 1966년 학교 졸업 이후, 지역 신문사의 기계실에서 잠시 일했지만, 본인과 전혀 맞지 않다는걸 알게되고, 슬롯머신 정비공, 앙계장 등 일거리를 찾는데 헤매었다.

2.2 엘튼 존과의 협업

1971년
2013년

버니 토핀은 엘튼 존과 50년 간의 협업으로 유명하다. 버니 토핀이 먼저 가사를 쓰고나서 엘튼 존이 가사를 보면서 피아노에 앉아 곡을 작곡하는 방식으로 곡을 완성시켰다. 엘튼 존은 버니 토핀의 가사를 보면서 곡을 작곡하는 것도 무척이나 빠르고, 한곡당 작곡하는데 20분도 걸리지 않는다. 놀라운 것은 이런 형식으로 20분 안에 곡을 쓰는 것은 50년 동안 유효한 것.

학교 졸업하고 1년 뒤 1967년 6월 17일에 ​<뉴 뮤지컬 익스프레스>에 실렸던 신인 작곡가/작사가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응하게 되었고, 그가 쓴 시들을 가져가서 레이 윌리엄스를 만나 그에게 보여주었고, 같은 날에 광고에 응했던 신인 가수 엘튼 존의 오디션만큼 레이 윌리엄스는 큰 인상을 받아 이 둘에게 큰 잠재력을 가졌다고 확인했고, 버니 토핀이 쓴 가사들을 엘튼 존에게 넘기는 식으로 자연스레 이 둘의 협업을 키우기 시작했다. 1967년 6월에 버니 토핀이 쓴 "Scarecrow"를 레이 윌리엄스가 엘튼 존에게 주고 그걸 우편으로 부쳐서 작곡했다. 이어서 버니 토핀이 쓴 가사들 "​A Dandelion Dies In The Wind", "Velvet Fountain"를 엘튼 존이 작곡했고, 이 곡들은 서로가 작업한 첫번째 곡들이 되었다. 이후로 서로는 딕 제임스 스튜디오에서 처음 만나게 되었고, 얘기를 주고 받으면서 친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약 20곡 정도를 쓰면서 곡을 작곡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엘튼과 버니는 서로 만나지 않고, 얼굴도 몰랐다고 한다. 서로 처음으로 만나게 된건 1967년 가을이고, ​서로 DJM 스튜디오에서 처음 만났다. 처음 만나고 나서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곧 파트너 사이로 가까워지게 되었다. 엘튼 존이 1968년 3월 1일에 발매된 싱글 I've Been Loving You로 솔로 뮤지션으로 데뷔하고, 1967년 11월에 영국 런던에 위치했던 레이블 사 DJM과 계약을 하고 나서 버니 토핀과 수많은 곡들을 쓰며 스튜디오 작사작곡가로 활동했다.[3] 1968년 12월에 발매된 싱글 Lady Samantha로 스튜디오 작사작곡가 생활에서 벗어난 엘튼과 버니는 밋밋하고 사랑 타령으로 가득했던 곡들에서 한층 수준을 높인 본인들 만의 음악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1969년부터 1971년까지 곡들을 작곡할때 사용된 1910년형 흰색 업라이트 피아노

1969년 1집 Empty Sky로 데뷔 앨범을 발표했지만, 상업적으로 실패했다. 1969년 봄부터 가을까지 엘튼 존의 부모님 아파트에서 둘이서 약 40곡에 달하는 수많은 곡들을 쓰기 시작하면서 이 시기부터 서로의 음악적인 역량이 더욱 세밀해지기 시작했다. 또한 이 시기부터 본인들은 서로가 곡을 쓰는 방식도 자세하게 알게 되었다고 한다. 버니 토핀이 먼저 가사를 쓰고, 엘튼 존이 가사를 보면서 거기다 멜로디를 덧붙여 곡을 작곡했고, 이러한 본인들의 방식을 더욱 확실하게 알게 된 것.

당시 버니 토핀은 안방에서 가사를 썼었고, 엘튼 존은 거실에 있는 업라이트 피아노에 앉아 있었고, 버니 토핀이 가사를 써서 거실에 있는 엘튼 존한테 가사를 전달하고나서 엘튼 존이 곡을 작곡했고, 다시 안방으로 들어가 다른 가사들을 더 쓰는 방식으로 수많은 곡들을 썼다.[4][5] 이로써 서로의 협업을 더욱 확연히 느끼게 된 곡이 바로 Your Song.

1969년 내내 작업된 곡들 중 퀄리티가 높은 다수의 곡들로 수록되어 1970년에 2집 Elton John이 발매되었고, 음악적인 역량이 더욱 높아졌을 뿐더러 큰 반응을 모아 상업적으로 성공했고, 무명에서 벗어나 슈퍼 스타에 첫 발을 디딛게 되었다. 이후 버니 토핀은 엘튼 존의 작사가로 활동하면서 수많은 가사들을 쓰기 시작해 오랫동안 깊은 협업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대중에게 알려진 Your Song, Tiny Dancer, Rocket Man, Daniel, Crocodile Rock, Candle In The Wind, Bennie And The Jets, Goodbye Yellow Brick Road,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 I'm Still Standing, Nikita, Sacrifice, The One, Believe, Original Sin 등 엘튼 존의 대부분의 히트곡들의 가사는 전부 버니 토핀이 작사한 것이고, 엘튼 존 음악의 구성을 이루는 대표적인 요소 중 하나이다.

1967~1969년까지 본인들의 무명 시절의 비화를 삼아서 작업된 자서전 식의 앨범이자 1975년 9집 Captain Fantastic And The Brown Dirt Cowboy로 서로의 역량과 음악적인 협업을 절정에 찍었고, 이 앨범으로 통해서 엘튼 존은 Captain Fantastic, 버니 토핀은 The Brown Dirt Cowboy의 닉네임을 주어지게 되었다.

물론 50년 동안 협업이 변함없이 이어진 것은 아니었고, 협업이 잠시 느슨해진 시기도 있었다. 1967년 이후., 10년 동안 협업을 맺었으니 자연스레 헤어질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었다. 1977년부터 1979년까지 약 2년 간 서로 작업을 하지 않았으며, 이 시기 버니 토핀은 앨리스 쿠퍼와 작업했고, 엘튼 존은 개리 오스본, 톰 로빈슨 등의 일부 작사가들과 협업을 이루었다.[6][7] 앨범의 14집 21 AT 33를 작업하던 시기인 1979년 8월에 프랑스에서 재회하게 되어 다시 협업을 이루었지만, 1982년 16집 Jump Up!까지 1970년대 말~1980년대 초에는 둘의 협업이 느슨했었다. 개리 오스본과 협업을 맺었던 엘튼 존의 달라진 작곡 방식으로 인해[8] Jump Up!을 작업했을땐 엘튼 존이 먼저 곡을 작곡하고나서 버니 토핀이 가사를 써 붙여 주었다.[9] 하지만, 1983년 17집 Too Low For Zero로 통해 1976년 11집 Blue Moves 이후 7년 만에 작사작곡에 둘이서만 참여한 앨범이 되었고, 이 앨범을 시점으로 다시 예전같은 협업으로 돌아갔다.[10]

1997년 26집 The Big Picture다이애나비 추모곡 Candle In The Wind 1997 이후, 4년 동안 협업이 줄어지기도 했었는데, 엘튼 존이 1998~99년에 팀 라이스AidaThe Road To El Dorado(Ost)를 작업했고, 이는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이어졌다. 이 시기 버니 토핀은 Farm Dogs라는 밴드와 작업했었다. 이후 이 둘은 다시 정규 앨범 작업으로 돌아왔고, 2001년 27집 Songs From The West Coast로 다시 컴백했고, 이후 현재까지 변함없는 협업을 보여주고 있다.

둘은 오랜 시간동안 찰떡 콤비로 지냈지만, 젊은 시절에는 개인적으로는 아주 친밀한 관계는 아니었다. 둘은 서로의 가사와 멜로디를 그저 존중해줄 뿐.[11] 그래도 1967년부터 50년 간 함께 해왔기 때문에 그 이상의 관계 일듯 하다. 거기다 엘튼 존은 버니 토핀을 "가지지 못한 친동생"으로 표현하기도 했다.[12]

또한 버니 토핀의 경우는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 성품이기도 하다. 1994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서 엘튼 존은 헌액소감을 마치고 버니 토핀을 무대로 불러 올려 마무리를 맡겼는데, 버니 토핀이 올라와서 한 말은 딱 한마디. "One Word, Music!" 둘의 협업 관계를 상징적으로 설명해 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영상

둘이 한때 연인 사이였다는 설도 있는데, 연인 사이였다는 설은 앞에 설명한 둘의 협업 관계를 생각해 볼 때 신빙성이 떨어지며, 무엇보다 버니 토핀은 여성과 결혼만 4번이나 했을 정도의 이성애자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명확한 근거도 전혀 없다는 점, 버니 토핀은 2004년 결혼 이후, 두명의 딸을 얻어 엘튼 존처럼 늦게 차린 가정에 헌신해 행복한 삶을 보내고 있다는 점에서 악성 루머로 볼 수 있다.

2.3 작사 실력

버니 토핀의 작사 실력은 이미 10대부터 증명되어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 어린 시절부터 온갖 매체와 문학에 수많은 영향을 많이 받아 그의 가사를 보면 시적인 면이 돋보였다. 특히 그에게 고전을 가르쳐 매체에 빠지게한 계기를 심어준 케임브리지 대학의 교수였던 어머니와 할아버지 덕분에 작사가로서 면모를 갖출수 있었다. 특히 미국의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쳐 개척시대, 금주령 시대 등의 주제가 그에게 크게 매혹했으며 그가 쓴 1970년대 초의 가사들 절반 정도가 미국 문화에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13] 1970년대 이후에도 미국 문화를 기반한 내용의 가사를 즐겨 썼으며, 이는 2010년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미국 문화를 기반하여 쓴 곡들을 예를 들어보자면 Country Comfort, My Father's Gun, The Ballad Of Danny Bailey (1909-34), The Retreat, Gone To Shiloh 등이 있다. 자신의 어린 시절 첫번째 우상이 1950년대 유명 배우 로이 로저스였고, 그를 헌정하는 Roy Rogers를 썼다.

버니 토핀이 가장 즐겨 썼던 주제들은 대표적으로 미국 문화, 고향에 대한 애정, 악화된 사랑, 자전적인 내용이고, 주로 본인이나 엘튼 존의 개인적인 삶에 관한 내용들을 많이 썼다. 시골 지역인 링컨셔 출신이라서 런던으로 이주한 도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던 시절, 소위 말하는 촌놈 기질을 보이는 식의 내용을 담은 곡들도 다수 있는데 Lady What's Tomorrow, Border Song, Honky Cat, Tell Me When The Whistle Blows가 그것.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본인의 십대 시절의 온갖 경험들을 바탕한 내용들도 잠시 주를 이루고 있었고, 연애나 여성 관계에 대해 순진했던 십대 시절때의 경험을 바탕한 First Episode At Hienton, Your Song, 펍의 폭동이나 싸움을 즐겨했던 훌리건에 대한 Bad Side Of The Moon, Saturday Night's Alright For Fighting을 예를 들 수 있다. 1972년부터 본격적인 전성기를 보내던 엘튼 존은 온갖 화려함을 즐기고 있었지만, 버니 토핀에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부와 명성에 부담을 느껴 이에 대한 관점으로 쓴 대표적인 곡이 바로 Goodbye Yellow Brick Road이다.

보통 본인이나 엘튼 존의 개인적인 삶에 관한 자전적인 내용을 담은 내용들로 즐겨 썼지,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메세지를 노골적으로 담은 식의 가사는 잘 쓰지 않았지만, 이러한 내용을 담은 곡들도 찾아보면 꽤 된다. 찰스 휘트먼 사건을 모티브해 총기 난사 사건에 관해서 씁쓸한 메세지를 담은 Ticking, 반공 히스테리에 대한 Fascist Faces, 1980년대 후반의 세계적인 사건들이나 정치적으로 상당히 비판적이고 거친 내용을 담은 Sweat It Out,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무참하게 살해당한 오하이오 대학교의 학생 매튜 셰퍼드를 추모하는 American Triangle, 에이즈의 존재를 부정하고 연구를 지원하지 않은 로널드 레이건 정부의 병크를 비판하는 Ballad Of The Boy In The Red Shoes가 그것이다.

버니 토핀의 작사 실력은 이미 10대 시절부터 검증된 것이지만, 그는 1970년대에도 꾸준히 실력을 닦고 있었다. 1970년대 초, 엘튼 존이 한창 전성기를 구사하던 시기에도 솜씨를 많이 배우는 중이었고, 그는 곡의 전체적인 구성에 대해 초보적으로만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간혹 가사와 곡의 전체적인 형식이 묘한 경우가 있었다. 버니 토핀은 곡의 선율을 생각해서 가사를 쓴다기 보단 그저 본인의 마음대로 알아서 가사를 썼다고 보는 것이 쉽다. 비록 가사를 쓰지 않았지만, 편집자와 감독 역할을 맡아 되도록 손질을 가한 엘튼 존의 기여 또한 큰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엘튼 존이 이 부분에서 거의 편집자 형식으로 기여를 한 것.

다양한 갖가지의 주제들의 가사들을 즐겨 썼고, 이중 절반 정도는 곡의 분위기와 상당히 상반되는 내용을 담은 경우이다. 1960년대 말부터 추상적이면서 난해한 내용을 담아 단면적으로 보이는 내용으로 인해 전반적인 의미를 파악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그래서 대부분의 엘튼 존 곡들의 가사가 곡 분위기에 비해 어둡고 진지한 내용을 담은 경우가 크다.[14][15] 칼립소 풍의 밝고 푸근한 선율의 Daniel은 눈이 먼 베트남 전쟁의 참전용사의 슬픔에 대한 내용이고, High Flying Bird는 남녀의 관계가 악화되자 결국 여성이 자살했다는 묘사가 간접적으로 나오고, All The Girls Love Alice는 한 16살의 레즈비언의 삶이 위험한 방향으로 가자 결국 지하철 역에서 살해된 채로 발견되는 내용.

다양한 주제의 가사들로 곡의 분위기와 상반되는 내용을 가지고 있음에도 버니 토핀이 엘튼 존의 멜로디를 존중한 것처럼 엘튼 존도 버니 토핀의 가사를 존중해왔으며, 커다란 의견 차이는 없었다.[16]

2.4 기타 뮤지션들과의 협업

엘튼 존과 협업이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1970년대부터 다른 뮤지션들과 협업도 꽤 이루어지기도 했다. 1972년에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데이비드 애클스의 3집 American Gothic의 프로듀싱을 맡았고,[17] 1977년에 앨리스 쿠퍼의 11집 From The Inside에 참여해서 각 수록곡들의 가사를 썼다. 1980년대에 버니 토핀은 본인의 솔로 앨범들에 참여한 영국의 뮤지션 마틴 페이지와 같이 1985년, 록 밴드 스타쉽(Starship)의 빌보드 1위 히트곡 We Built This City를 작사작곡했고, 하트의 빌보드 1위 히트곡 These Dreams를 작사작곡한 바 있다.

2002년에 윌리 닐슨의 합동 앨범 The Great Divide에 참여했고, 버니 토핀의 4집 Last Stand In Open Country의 타이틀 트랙 Last Stand In Open Country를 윌리 닐슨이 커버한 버전으로 수록하기도 했다. 2005년 브라이언 윌슨의 7집 What I Really Want For Christmas의 타이틀 트랙 What I Really Want For Christmas의 가사를 작사하는 등, 2000년대에도 다양한 뮤지션들과 협업이 있다.

2.5 솔로 활동

1987년 싱글 Citizen Jane

엘튼 존처럼 정규 앨범들 발매하거나 가수로 잠시 활동하기도 했었다.[18] 본인의 솔로 앨범들에서도 작사만 맡았고, 작곡은 뮤지션들 '데니스 투파노', '마틴 페이지'가 맡았다. 1971년에 솔로 1집이자 구어(口語) 앨범 Taupin을 발매했고, 당시 엘튼 존 정규 앨범들에 참여한 세션들이 참여했다. Taupin 발매 이후로 9년 뒤인 1980년에 2집 He Who Rides The Tiger를 발매했고, 읆조리는 시들로 수록된 1집과 달리 2집은 팝 음악으로 수록되었다. 비록 차트 진입에 실패되어 성공하지 않았지만, 평론가들과 팬들에게 상당한 완성도를 가진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1987년에 발매된 3집 Tribe에선 수록곡 'Citizen Jane', 'Friend Of The Flag'가 싱글로 발매, 뮤직비디오로도 제작되었다.

그리고 1996년에는 'Farm Dog'이라는 밴드와 작업하기도 했었고, 1996년 Last Stand In Open Country, 1998년 Immigrant Sons를 발매했었다. 1998년 이후로 버니 토핀은 본인 명의로 앨범을 제작하지도 않았고, 엘튼 존과의 작업을 제외하면 다른 이들과 작업이 없다. 이후 버니 토핀은 개인적으로 솔로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 별 흥미를 끼치지 않는다고 했을 정도였고, 1998년 이후로 솔로 활동을 하지 않았다.

3 기타

버니 토핀은 엘튼 존과 50년 동안 협업을 이루었지만, 정작 엘튼 존의 정규 앨범의 메인 표지에 출연한 경우는 2006년 29집 The Captain & The Kid 뿐이다. 유일하게 엘튼 존과 버니 토핀이 표지에 둘이서 나온 경우.

영국인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미국 문화를 접한데다 오랜 세월동안 미국에서 지낸 덕에 1980년대에 이렀을 땐 억양이나 전반적인 스타일이 전형적인 미국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19] 잘 모르는 사람이 얼핏 봤을땐 미국인으로 착각할 수 있을 정도.

1970년대 초부터 한동안 알코올에 의존했었다. 1976년 11집 Blue Moves 발매 이후,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 요양원에서 입원하기도 했었다. 엘튼 존 만큼은 아니었지만, 마약 복용도 일삼았고, 이에 대한 내용을 담은 가사도 여러개 작사한 바 있다.

2013년 5월 5일, 캘리포니아 남부에서 음주운전 혐의로 체포되기도 했다. 고속도로에서 2010년형 포드 픽업트럭을 몰다가 운전 미숙으로 울타리에 박아 차가 대파되었다. 버니 토핀을 포함한 부상자는 없었지만, 경찰은 버니 토핀이 음주운전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해[20] 그를 체포했지만,[21] 정확한 알콜농도 수치에 관한 정보도 없는데다 버니 토핀의 변호인은 그는 음주운전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오인 체포일 가능성이 높다.

버니 토핀은 본인의 아버지 로버트 토핀에 대한 가사를 여러개 작사한 바 있고, 1983년 "One More Arrow"에서 본인 아버지에 대한 헌정을 담았다. 이후 1995년 "Believe"는 당시 죽기 직전의 상태에 놓였던 아버지에 관한 내용을 담았고, 1997년 "Live Like Horses"는 아버지를 추모하는 내용을 담았다. 2013년 Oceans Away는 "One More Arrow"와 유사한 주제를 가진 내용.

버니 토핀과 그의 4번째 부인 헤더 린 하진스 키드. 2011년 4월

버니 토핀은 결혼 생활이 평탄하지 않았다. 결혼과 이혼만 4번이나 반복했고, 한동안 자녀도 두지 않았었다. 버니 토핀의 첫 아내 "맥신 파이벨만"(1971~1976)은 1970년 8월 25일 로스앤젤레스의 Troubadour 극장에서 열린 역사적인 엘튼 존의 첫번째 미국 공연이 진행되기 그 전날에 당시 엘튼 존의 매니저 레이 윌리암스에게 소개 받았다. 그 시기부터 버니와 맥신은 교제를 하기 시작했고, 맥신은 당시 밴드 멤버들의 의상을 담당하는 제봉사로 일했다. 1971년 말, 버니 토핀의 고향 영국의 링컨셔에서 결혼을 해 하와이에서 신혼여행을 보내었다.

하지만 이후 사이가 악화되어 1975년에 버니 토핀의 집을 떠나 당시 엘튼 존 밴드의 베이시스트인 케니 파사렐리와 교제해 바람을 폈고, 결국 4년 간의 결혼 생활 끝으로 1976년 11집 Blue Moves이 작업되던 시기에 이혼했다.[22][23] 1979년에 모델 "토니 린 루소"(1979~1991)[24]와 결혼했지만, 12년의 결혼 생활 끝으로 이혼했다.[25][26] 1993년에 "스테파니 헤임즈"(1993~1998)[27]와 5년 간의 결혼 생활을 유지했다.[28] 3명의 전 부인 사이에 자녀가 없었지만, 2004년에 부인 헤더 린 하진스 키드라는 여성과 결혼해 2명의 딸 "찰리 인디애나 토핀", "조지 데본 토핀"을 두었다. 엘튼 존처럼 비로서 말년에 가정을 늦게 차렸지만, 행복한 삶을 보낸다고 밝혔다.

버니 토핀의 딸들과 엘튼 존의 아들들에 대한 내용을 담은 노래 Children's Song과 말년의 아버지임과 배우자들을 위한 사랑과 헌신에 대한 내용을 담은 The Open Chord가 있다.

4 디스코그래피

5 참고 문서

  1. 투어 활동은 하지 않았다.
  2. 형에 대한 내용을 담은 곡이 The Greatest Discovery이다.
  3. 하지만 3년 간 한해에 18곡 이상을 작곡하라는 계약 상 내용과 DJM 레이블 사의 압력으로 틴 팬 엘리라는 가명으로 본인이 원하지도 않는 특징도 없는 전형적인 곡들을 억지로 쓰게 되어 커다란 부담감과 피로를 가지며 지냈었다. 약 1년 간 그러한 생활을 보냈지만, 동료들이 큰 도움을 주게 되어 이러한 생활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4. 이에 대한 내용으로 쓴 곡이 1975년 9집 Captain Fantastic And The Brown Dirt Cowboy의 8번 트랙 Writing.
  5. 1969년 봄부터 적어도 가을까지 작곡된 곡들만 해도 40곡이나 될 정도였다.
  6. 엘튼 존의 1978년 12집 A Single Man은 개리 오스본과 작업한 앨범이고, 버니 토핀이 유일하게 참여하지 않은 엘튼 존의 앨범이다. 대신 1978년 3월에 발매된 싱글 Ego, 앨범의 보너스 트랙으로 수록된 I Cry At Night, Lovesick은 버니 토핀 작사이고, 이 곡들의 가사는 1976년에 Blue Moves를 작업하면서 남겨진 가사들이고, 엘튼 존이 1978년에 마저 작곡한 것이다.
  7. 1979년 13집 Victim Of Love도 버니 토핀이 참여하지 않은 앨범이지만, 이 앨범은 엘튼 존의 팀원이 한명도 참여하지 않은, 외부 세션들과 작업한 앨범이다. 자세한 건 해당 문서 참고.
  8. 개리 오스본과 작업했을 땐 엘튼 존이 먼저 곡을 작곡하고나서 개리 오스본이 가사를 쓰는 방식이었다. 버니 토핀과 정반대의 작업.
  9. 존 레논 추모곡 Empty Garden은 예외이다.
  10. 1986년 20집 Leather Jackets에선 개리 오스본이 4년 만에 참여하기도 했다.
  11. 1976년부터 엘튼 존과 버니 토핀은 서로 다른 지역에서 곡을 썼었다. 버니 토핀이 로스앤젤레스에서 가사를 쓰고 그걸 런던에 있는 엘튼 존에게 팩스로 보내주던 식이었다. 이런 식의 협업에 관한 곡이 1980년작 Two Rooms At The End Of The World.
  12. 2006년에 29집이자 Captain Fantastic And The Brown Dirt Cowboy의 후속 앨범 The Captain & The Kid의 곡들을 작업하러 프랑스 남부로 갔을때 서로 진솔한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1967년 첫 만남 이후로 그런 식의 대화는 처음이었다고.
  13. 1970년 3집 Tumbleweed Connection에서 확연히 알 수 있다.
  14. 이로 인해서 충격받거나 상당히 의외로 여긴 팬들도 적지 않다. 이는 가사가 시궁창에도 서술되어 있다.
  15. 리처드 닉슨의 사임에 관한 것이라고 오해받은 Madman Across The Water나 동성연인에 관한 오해를 받은 Daniel이 대표 예.
  16. 예외가 있다면 Blue Moves를 작업하면서 버니 토핀은 망가진 남녀의 관계에 관해서 노골적으로 드러낸 가사들을 썼었고, 엘튼 존도 일부 가사를 보면서 이건 아니라고 곡을 쓰는 것을 거부했다고 한다.
  17. 버니 토핀이 다른 뮤지션과 처음으로 작업한 경우이다.
  18. 투어 활동은 하지 않았다.
  19. 본인 스스로도 그렇게 말한다.
  20. 심지어 그가 마약도 복용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마약 끊은지 오래된 사람을
  21. 머그샷도 촬영되었다.
  22. 당시 이혼에 대한 심경으로 인해 큰 영향을 끼쳐 한동안 우울하고 어두운 가사만 썼다. Blue Moves의 주를 이루고 있는 것.
  23. 밴드의 기타리스트 케일럽 퀘이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버니 토핀은 평소보다 말수가 좀 줄었고, 술도 더욱 많이 마셨다고 했다.
  24. 유명 배우 르네 르소와 자매이다.
  25. 이미 사이가 악화된 상태인 1980년대 말에 이에 대한 내용을 담아서 쓴 곡이 Sacrifice이다.
  26. 참고로 토니 린 루소는 버니 토핀의 2집 He Who Rides The Tiger의 표지에 출연한 바 있다.
  27. 미국에서 활동한 아르헨티나 배우 딕 헤임즈의 딸이다.
  28. 3번째 부인과의 악화된 사이에 대한 곡이 Mansfield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