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매일 | 1988년 6월 24일 |
녹음일 | 1987년 가을 ~ 1988년 봄 |
녹음 스튜디오 | 영국 북런던 햄프셔의 AIR, Westside 스튜디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Circle Seven, The Record Plant 스튜디오 |
장르 | 록, 팝 록, 뉴웨이브 |
러닝 타임 | 42:06[1], 62:06[2] |
프로듀서 | 크리스 토머스 |
발매사 | MCA (US), Rocket/Mercury (재발행) |
엘튼 존/음반 목록 | ||||
Leather Jackets (1986) | Reg Strikes Back (1988) | Sleeping With The Past (1989) |
목차
- 1 개요
- 2 더 선과 악연
- 3 녹음
- 4 발매
- 5 여담
- 6 트랙 리스트
- 6.1 Town Of Plenty - 3:40
- 6.2 A Word In Spanish - 4:39
- 6.3 Mona Lisas And Mad Hatters Part 2 - 4:12
- 6.4 I Don't Wanna Go On With You Like That - 4:35
- 6.5 Japanese Hands - 4:40
- 6.6 Goodbye Marlon Brando - 3:30
- 6.7 The Camera Never Lies - 4:36
- 6.8 Heavy Traffic - 3:30
- 6.9 Poor Cow - 3:50
- 6.10 Since God Invented Girls - 4:54
- 7 1998년 리마스터링 CD 앨범의 보너스 트랙 (폴리그램 인터네셔널 레이블)
- 8 미 수록곡
- 9 세션
- 10 차트 성적 (1988~1989년)
- 11 판매량
- 12 싱글
Town Of Plenty 뮤직 비디오.
A Word In Spanish 뮤직 비디오.
I Don't Wanna Go On With You Like You That 뮤직 비디오.
I Don't Wanna Go On With You Like You That 리믹스 확장판 뮤직 비디오.
1 개요
엘튼 존의 21번째 정규 앨범. 자칭 다시 컴백한다는 의미를 가졌고, 레지(Reg)는 엘튼 존의 본명 레지널드 케네스 드와이트의 애칭이다.
2 더 선과 악연
엘튼 존에겐 1987년은 최악의 해가 되었다. 1986년 11~12월 호주에서 진행된 Tour De Force 투어 이후로 봄까지 호주에서 지내던 시기인 1987년 2월 25일에 악명 높은 찌라시 집단 더 선에서 엘튼 존이 뉴욕에서 십대 남창들과 마약, 섹스 파티를 즐겼다는 헤드라인으로 장식한 것으로 시작되었다. 발행 다음 날인 26일에는 변태적인 슈퍼스타 엘튼 존 100달러 지폐로 코카인을 흡입하는걸 좋아한다라고 보도를 했고, 엘튼 존 본인은 이 두 얘기를 부정하고, 문서 비방죄 영장을 가져왔다고 했지만, 다음날 선 지에선 당신은 거짓말쟁이라고 헤드라인으로 크게 장식했고, 몇개월 동안 근거없는 악성 루머들로 계속해서 보도 해서 엘튼 존을 공격해서 엘튼 존의 경력과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혔고, 기자들은 취재를 할려고 엘튼 존의 집 주변에 침입하는 등 엘튼 존은 당시 대인기피증과 불안증으로 인해서 한동안 집에서 나오지 못했었고, 정상적인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었다.[3] 그렇게 선 지의 마지막 공격인 1987년 9월 28일 엘튼 존의 비밀스러운 조용한 개들 보도 이후로 결국 엘튼 존 측에선 명예훼손 죄로 더 선 지를 고소하게 되어 소송으로 이어졌고, 1년이 지난 1988년 10월에 엘튼 존 측이 승소를 하게 되어 피해 보상은 100만 파운드, 한화로 18억 3천만원정도 받게 되었다.[4]
그렇게 1988년 10월 더 선에선 SORRY ELTON이라고 헤드라인에 표기해 사과의 표시를 보였고, 엘튼 존과 더 선의 악연이 끝났다.물론 더 선은 이후에도 엘튼 존에 대한 조롱이 끝난건 아니었다. 명불허전 더 선 하지만 1개월 뒤인 1988년 11월 18일에 엘튼 존의 아내였던 '르나타 블로엘'과 4년 간의 결혼 생활 끝으로 이혼을 하게 되었고, 이 결혼은 엘튼 존의 성적 논란에 대해서 잠재우기 위한 일종의 위장 결혼이었다고 밝혀지게 되었다. 이혼 이후로 1988년 12월에 다시 한번 커밍아웃을 했었고, 본인이 동성애자라고 제대로 밝히게 되었다.[5] 비록 엘튼 존은 르나타는 서로 좋은 사이를 유지했던 친구였지만, 위장결혼이라는 시대 상으로 저질렀던 과오로 그저 씁쓸하게 막을 내렸고,[6] 1년간 타블로이드 지에게 받은 정신적인 피해와 이혼, 거기다 과도한 약물 중독으로 인해서 본인의 모습은 중노년으로 보일 정도로 큰 노안이었고,[7] 음악적으로도 모든게 침체기였다. 당시 상황들이 엘튼 존 본인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더 선과의 악연으로 인해서 악성 기자와 파파라치를 혐오하게된 계기가 되었다.
3 녹음
그렇게 약간의 안정을 찾은 1987년 12월부터 1988년 봄까지 다시 앨범 작업에 들어갔고, 다시 가수로써 복귀를 했다. 이 앨범에선 1981년 15집 The Fox부터 1984년 18집 Breaking Hearts까지 맡은 프로듀서 크리스 토머스가 다시 맡았고, 세션들의 라인업은 전작들과 별 다를바 없다. Breaking Hearts 이후로 팀에서 나가 있던 오리지널 엘튼 존 밴드의 맴버 드러머 나이젤 올슨, 베이시스트 디 머레이가 다시 합류했고, 디 머레이가 참여해서 백보컬을 맡았기 때문에 사실상 엘튼 존의 1972~4년 투어 밴드의 라인업이 다시 모여서 작업된 앨범이고, 디 머레이가 마지막으로 참여해서 엘튼 존과 작업된 앨범이 되었다.[8] 그리고 재즈 트럼펫 계의 전설인 '프레디 허바드'가 3번 트랙 Mona Lisas And Mad Hatters Part 2에서 멋진 색소폰 연주를 보여주었고, 비치 보이스의 칼 윌슨, 브루스 존스턴이 참여해서 마지막 트랙 Since God Invented Girls에서 백보컬, 더 후의 피트 타운센드가 1번 트랙 Town Of Plenty에서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했다.[9]
앨범 커버는 엘튼 존의 온갖 화려한 복장들과 모자들로 가득 체운 사진이고, 1987년의 스캔 이후로 다시 자신을 돌아보고 새출발을 결심한 엘튼 존의 자전적인 의미로 볼 수 있다.[10] 그리고 이 앨범부터 엘튼 존의 음악적 역량이 다시 크게 살아나기 시작했다. 엘튼 존은 1980년대에 약물 중독으로 인한 매너리즘과 계약 이행을 위해서 대부분 같은 완성도의 범작들을 발매했었고, 비록 전성기 시절의 역량을 가진 걸작 1983년 17집 Too Low For Zero과 꾸준히 히트 싱글들도 발매되었지만, 1970년대처럼 제대로 포텐을 터트리지 못한 시기였다. 특히 1986년 전작 Leather Jackets처럼 망했어요 수준의 완성도를 가진 망작 중 하나라서 충분히 수긍이 가지만, 이 앨범부터 Too Low For Zero 이후로 다시 음악적인 역량을 높히기 시작했고, 마치 1970년대 전성기 시절을 연상시키는 요소들을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1987년 스캔들 이후로 다시 작업된 앨범이라 자전적인 요소를 많이 담았기 때문에 1970~80년대 시절에 대한 자전적인 내용과 1970년대 본인의 음악에 대한 헌정을 담았다고 볼 수 있다. 비록 음악성은 상당히 예전으로 돌아간 모습이 보여도 전체적으로 보면 전작들처럼 별 다를바 없이 신디사이저가 큰 비중을 가졌고, 뉴웨이브의 모습이 꽤 차용된 넘버들로 수록되어 음악적으로 아주 커다란 변화성을 보이지 않고, 멜로디적인 부분에서도 그리 돋보이지 않고, 세월이 흘러 어덜트 컨템포러리로 많이 움직인 엘튼 존의 음악적인 취향으로 인해서 전반적인 곡들의 분위기는 비슷하지만, 그래도 전작들에 비해선 꽤 수려한 완성도와 엘튼 존으로써의 충분한 역량을 보이는 수작이라는 평.
4 발매
미국 빌보드 앨범 차트 16위, 영국 앨범 차트 18위, 캐나다 앨범 차트 6위, 호주 앨범 차트 12위로 기록되어 여러 국가에서 20~30위 안에 진입되어 3위로 기록된 이탈리아를 제외하면 상업적으로 그리 크게 성공하지 않았다. 당시 영국에선 스캔들의 악 영향으로 앨범과 발매된 싱글들의 판매량과 차트 성적이 좀 처졌다.[11] 싱글로 발매된 곡들은 I Don't Wanna Go On With You Like That, Mona Lisas And Mad Hatters Part 2, Town Of Plenty, A Word In Spanish 총 4곡이고 앨범의 Side 1에 있는 모든 곡들이 발매되었다. 가장 크게 히트를 친 곡은 빌보드 차트 2위, 캐나다 싱글 차트 1위로 기록된 I Don't Wanna Go On With You Like That, 캐나다 싱글 차트 10위, 빌보드 차트 19위로 기록된 A Word In Spanish. Mona Lisas And Mad Hatters Part 2는 차트 진입에 실패되었고, Town Of Plenty는 호주 싱글 차트 95위, 영국 싱글 차트 74위로 저조하게 기록되었다.
싱글들 중에서 I Don't Wanna Go On With You Like That, Mona Lisas And Mad Hatters Part 2에선 각종 리믹스 버전들로 싱글로 발매, B면에 수록되었고, 1998년 폴리그램 레이블에서 재발행된 리마스터링 앨범에선 I Don't Wanna Go On With You Like That B면에 수록된 Rope Around A Fool와 리믹스 버전들이 수록되었다.
5 여담
당시 앨범을 작업하면서 엘튼 존은 그랜드 피아노 대신에 롤랜드 RD-1000 디지털 피아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라이브 공연에선 여러 기술적인 문제로 인해서 1993년 9월부터 다시 그랜드 피아노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1993년 12월까지 스타인웨이를 사용하다가 1994년부터 야마하 Disklavier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성대 결절 이후로 처음으로 녹음된 엘튼 존의 앨범이기도 해서 엘튼 존은 하이톤이 아닌 바리톤의 창법으로 부르기 시작했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약간의 가성이 남아있긴 했었다. 그리고 앨범 작업 중에 작곡된 'Love Is Worth Waiting For'는 어디에나 수록되지 못한 미 발매 곡이고, 1988년 7월 8일 LA 공연에서만 불렀고, 존 레논의 'Give Peace A Chance'를 유쾌한 버전으로 녹음하기도 했다.
6 트랙 리스트
6.1 Town Of Plenty - 3:40
앨범의 오프닝 트랙은 경쾌하고 리드미컬한 선율로 진행되는 팝 록 넘버. 곡은 Bb으로 구성되었고, 피아노 대신에 키보드가 큰 비중을 가지고 있다. 이 곡에선 더 후의 피트 타운센드가 1982년 16집 Jump Up!의 3번 트랙 Ball And Chain 이후로 다시 참여해서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했다. 가사는 밝은 곡 분위기와 좀 상반되는 내용을 담았고,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정책에 대해서 비난하는 내용을 담았다. 드물게도 정치적인 요소를 가사에 사용된 버니 토핀의 가사들 중 하나이자 엘튼 존의 곡들 중 하나. 1988년 초반에 뮤직비디오로 제작되었고, 잡동사니들이 많은 대형 격납고에서 아이들이 도시 그림을 그리는 장면을 담았고, 회색 코트를 입고, 엘튼 존의 어린 시절로 분장한 꼬마가 마지막에 본인의 옛 이름 "Reg"라고 쓰는걸로 끝난다.
이 곡은 1988년 9월에 싱글로 발매되었지만, 미국 빌보드 차트 진입에 실패되었고, 호주 싱글 차트 95위, 영국 싱글 차트 74위로 저조하게 기록되었다. 당시 싱글로 발매된 곡들 중에서 Mona Lisas And Mad Hatters Part 2와 같이 히트를 치지 못한 곡. 싱글 B면에는 1983년 17집 Too Low For Zero의 7번 트랙 Whipping Boy가 수록되었고, CD 싱글에선 B면에 Too Low For Zero의 5번 트랙 I Guess That's Why They Call It The Blues, 8번 트랙 Saint가수록되었다.[12] 라이브 공연에선 1988년 7월 3일 영국 런던 소더비에서 열린 사적인 공연과 1988년 7월 8일 LA에서만 불렀고, 1989년 4월 3일 독일의 TV 프로그램에서 립싱크로 부른게 전부이다.
6.2 A Word In Spanish - 4:39
푸근하고 차분한 선율로 진행되는 발라드. 곡에선 키보드 선율과 잔잔한 어쿠스틱 기타 선율로 상당히 라틴 풍이 나고, 전체적으로 마치 1985년 19집 Ice On Fire의 4번 트랙 Nikita의 연장 선상으로 보이기도 한다. 가사는 남녀의 관계에 대한 내용을 담았고, 가사에서 그가 자신이 느끼는 마음을 전하는지 몰랐지만, 영화의 한 장면에서 떠오르게 되었고, 비록 상대방의 스페인어를 이해를 하지 못했음에 불구하고 자신의 마음을 표출해서 연인의 사이로 발전한다는 로맨틱한 내용이다. 엘튼 존과 버니 토핀은 이 곡을 1988년 1~2월에 작곡했었고, 미국 LA에 위치해 있던 엘튼 존의 키보드리스트이자 지휘자 제임스 뉴튼 하워드의 집에서 녹음되었다고 한다. 1988년 초~중순에 뮤직비디오로 제작되었고, 곡의 가사와 별 다를바 없는 내용으로 제작되었다.
그리고 간주에는 원곡처럼 데이비 존스톤이 출연해서 기타를 연주하는 장면을 담았다. 1988년 9월에 싱글로 발매되었고, 미국 빌보드 차트 19위, 캐나다 싱글 차트 10위, 미국 빌보드 어덜트 컨템포러리 4위로 기록되어 꽤 히트쳤다. 당시 싱글로 발매된 I Don't Wanna Go On With You Like That와 같이 가장 크게 히트친 곡인 셈. 라이브 공연에선 1988년 9월~1989년 6월 Reg Strikes Back 투어에서 레파토리로 분류되어 자주 불렀다가 1989년 이후로 한번도 부르지 않았고, 뜬금없이 2007년 9월 23일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부쿠에 위치한 'Tofiq Bahramov' 스타디움에서 이 곡을 부르기도 했다.
6.3 Mona Lisas And Mad Hatters Part 2 - 4:12
이 곡은 리드미컬하고 훵키한 사운드로 진행되는 업템포 록 넘버이고, 말그대로 1972년 5집 Honky Château의 9번 트랙 Mona Lisas And Mad Hatters의 파트 2, 즉 후속곡이다. 파트 1인 Mona Lisas And Mad Hatters는 C코드로 구성된 잔잔한 선율로 진행되는 발라드이고, 가사는 최악의 치안을 가졌던 1970년대 뉴욕의 어두운 면들에 대한 내용을 담은 곡이다. 엘튼 존과 버니 토핀 본인들도 상당히 애착하는 곡이라서 베스트들 중 하나로 꼽는 경우도 있었고, Honky Château가 발매된지 16년뒤인 1987년 12월~1988년 1월에 이 곡의 파트 2를 쓰게 되었다. 버니 토핀은 당시 후속곡의 가사를 썼을때 엘튼 존은 파트 1과 달리 밝고 경쾌한 분위기의 완전히 상반되는 곡으로 작곡되었다. 파트 2의 가사는 파트 1과 마찬가지로 뉴욕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들에 관한 내용을 담았다. 브로드웨이, 링컨 터널, 5번가, 스윙 거리 등의 뉴욕의 여러 거리들을 돌아다니면서 뉴욕의 여러 상황들을 버니 토핀의 시각으로 반영된 듯한 내용. 곡은 Gm으로 구성되었고, 전반적으로 갖가지 코드들로 구성되어 진행되고, 곡들과 따로 노는듯한 기계적인 배열로 이루어져 상당히 복합적인 형식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기존의 엘튼 존 곡들에 비해서 독특한 구성을 가졌다.[13] 엘튼 존은 이 곡을 재즈 풍의 곡으로 작곡했고, 곡에선 호른 세션이 크게 돋보이기 때문에 재즈의 분위기가 크고, 재즈 트럼펫의 거장 '프레드 허바드'가 색소폰을 연주했기 때문에 뉴욕의 분위기가 크게 보인다.
엘튼 존 본인이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이고, 뉴욕의 분위기가 멋지게 보인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 곡은 1988년 9월에 싱글로 발매되었지만, 싱글 차트 진입에 실패되어 히트 치지 않았고, 파트 1처럼 대중적으로 그다지 인기가 많은 곡은 아니지만 당시 평론가들한테 앨범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들 중 하나라고 호의적인 평가를 내렸다. 라이브 공연에선 1988년 9월~1993년 6월 투어의 레파토리였기 때문에 자주 불렀었고, 파트 1과 메들리로 연결되어 진행되었다. 앞서 1분 정도 파트 1을 짧게 부르고 나서 파트 2로 넘어가는 형식으로 진행되었고, 원곡보다 더 빠른 템포로 진행되었다. 특히 파트 2는 8~10분이나 더욱 길게 진행되었고, 파트 1과 합치면 12~13분이나 길게 진행되었고, 그루브하고 수려한 피아노 솔로를 보여주었다. 1993년 6월 이후로 1993년 9월부터 파트 2와 연결된 메들리가 아닌 파트 1만 부르기 시작했고, 1993년 이후로 이렇게 메들리로 연결되어 부른적 없고, 이후에 파트 2는 한번도 부르지 않았다.
6.4 I Don't Wanna Go On With You Like That - 4:35
앨범의 대표적인 트랙이자 최대 히트 곡. 이 곡은 Am으로 구성된 업템포 댄스 록 넘버이고, 곡 전체적으로 비트 넘치는 스냅과 같이 동반하고 강력한 사운드로 진행된다. 아웃트로는 피아노 솔로로 진행되다가 페이드아웃. 가사는 연인의 깨져버린 관계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이 곡은 전반적으로 그다지 크게 돋보이는 부분은 없다 싶지만, 최악의 기간을 보냈던 1987년의 어두운 기간 이후로 다시 컴백을 선언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는 추측도 있다. 이 곡은 1988년 6월에 싱글로 발매되어 미국 빌보드 차트 2위, 캐나다 싱글 차트 10위, 미국 빌보드 어덜트 컨템포러리 차트 1위로 기록되어 크게 히트쳤다. 북미에선 크게 히트를 쳤고, 특히 미국에선 엘튼 존의 가장 큰 1980년대 히트곡이 되었다. 좋은 성적을 보인 북미와 달리 다른 국가에선 20~30위 안에 진입되었고, 영국에선 30위로 기록되어 크게 히트치지 않았다.
싱글 발매 당시, 갖가지 리믹스 버전들로 7/12인치 싱글들로 발매되었고, B면에도 리믹스 버전들이 수록되었다.[14] 라이브 공연에선 1988년부터 부르기 시작했고, 1988~1990년 투어, 1992~1999년 투어, 2000년 투어의 레파토리로 분류되어 자주 불렀고, 2000년 이후로 한번도 부르지 않았다. 1993년 9~12월 투어, 1999년 투어에선 피아노 솔로로 불렀었고, 즉흥적인 피아노 솔로를 보여주었다.
6.5 Japanese Hands - 4:40
앨범의 몇 안되는 발라드들 중 하나이자 공허하고 조용한 분위기로 진행되는 발라드. 곡은 Bb으로 구성되었고, 신디사이저로 연주되어 공허한 분위기로 진행되고, 마치 1985년 19집 Ice On Fire때 녹음된 연주곡 Highlander와 유사한 사운드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엘튼 존은 공허한 느낌을 살리기위해서 이 곡을 피아노 대신에 신디사이저로 작곡,연주했다고 한다. 가사는 꽤 추상적인 내용을 담은걸로 보이고, 마치 버니 토핀의 1970년대 초기 작품들의 가사들을 연상시키는 평도 있다. 라이브 공연에선 1988년 7월 3일 영국 런던 소더비에서 진행된 이 앨범의 사적인 공연과 TV 쇼에서만 불렀고, 그 후로 한번도 부르지 않았다
6.6 Goodbye Marlon Brando - 3:30
E코드로 구성된 경쾌하고 리드미컬한 업템포 록 넘버. 작은 소리로 들리는 기타 선율로 시작해서 리드미컬하게 진행된다. 단순히 제목만 보면 말론 브란도에 대한 헌정으로 보이지만, 가사는 엘튼 존 본인의 1970~1980년대 생활에 관해서 간략하게 말하고 있는 내용으로 보인다. 1980년대에 기억하고 있는 많은것들과 작별 인사를 하라는 내용인데 1987년 스캔들 이후의 엘튼 존 본인에 관해서 자전적으로 나타낸 내용이라는 추측. 라이브 공연에선 1988년 투어에서만 불렀고, 그 후로 한번도 부르지 않았다.
6.7 The Camera Never Lies - 4:36
F코드로 구성되었고, 경쾌한 선율로 진행되는 전형적인 엘튼 존 스타일의 업템포 록 넘버. 앨범의 대부분 곡들처럼 신디사이저와 같이 동반하는 사운드를 가졌고, 인상적인 피아노 솔로와 같이 진행된다. 가사는 일생에서 일어나는 나쁜 일에 대한 내용을 담았고, 특히 남녀의 불륜 관계에 관한 내용으로 보인다. 라이브 공연에선 한번도 부르지 않았다.
6.8 Heavy Traffic - 3:30
A코드로 구성되었고, 시원하고 리드미컬한 선율로 진행되는 어쿠스틱 넘버. 전체적으로 컨트리/웨스턴 분위기가 꽤 보이고, 기타와 피아노가 같이 동반한다. 곡에선 피아노가 곡과 따로 놀면서 진행되고 상당히 인상적인 솔로를 보여주고, 중간에 끊다가 다시 진행되는 식의 인상적인 구성. 곡에선 데이비 존스톤이 작사 작곡에 공동으로 참여했다. 가사는 캘리포니아 고속도로에서 차량을 훔쳐 타서 질주하는 내용을 담았고, 밝은 곡의 분위기와 상반되는 내용. 이 곡은 1988년 9월에 발매된 A Word In Spanish 싱글 B면에 수록되었고, 라이브 공연에선 한번도 부르지 않았다.
6.9 Poor Cow - 3:50
Cm로 구성되었고, 그루브하고 리드미컬한 선율로 진행되는 업템포 록 넘버. 전체적인 곡의 분위기는 마치 1985년 Ice On Fire의 1번 트랙 This Town과 크게 유사하다. 가사는 남녀의 악화된 관계에 대한 내용으로 보이고, The Camera Never Lies와 유사한 주제를 가졌다. 라이브 공연에선 한번도 부르지 않았다.
6.10 Since God Invented Girls - 4:54
앨범의 마무리를 웅장하게 짓는 발라드. 이 곡은 C로 진행되다가 코러스와 아웃트로는 Db로 변환되어 진행된다, 곡에선 디 머레이, 나이젤 올슨와 비치 보이스의 브루스 존스턴과 칼 윌슨이 백보컬을 맡았다. 가사는 비치 보이스와 브라이언 윌슨을 헌정하는 내용을 담았다. 사실 백보컬을 맡은 뮤지션들과 가사에서 그대로 언급된 브라이언 윌슨, 전체적인 곡의 구성과 비치 보이스 특유의 조화로운 백보컬 구성을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곡은 앨범을 작업하면서 가장 먼저 작곡, 녹음되었고, 당시 엘튼 존의 심경에 크게 반영되어 작곡된 곡이기도 하다.
1987년 한해동안 더 선과의 싸움으로 치욕적이고 어두운 기간을 보내고 있었고, 안정을 좀 찾기 시작한 1987년 12월부터 거의 1년간 내팽겨 치우고 있던 음악과 앨범 작업을 다시 시작 했었고, 당시 치욕적이고 어두운 심경에 반영되어 가장 먼저 작곡된 곡이라고 1988년 9월 인터뷰에서 설명했다.[15]
7 1998년 리마스터링 CD 앨범의 보너스 트랙 (폴리그램 인터네셔널 레이블)
7.1 Rope Around A Fool - 3:48
앨범을 작업하면서 녹음된 미 수록곡. A코드로 구성된 리드미컬한 곡이고, 상당히 블루스의 분위기가 보인다. 이 곡은 1988년 6월에 발매된 I Don't Wanna Go On With You Like That 싱글 B면에 수록되었고, 리마스터링 앨범의 보너스 트랙으로 수록되었다. 라이브 공연에선 한번도 부르지 않았다.
7.2 I Don't Wanna Go On With You Like That (Shep Pettibone Mix) - 7:16
프로듀서 'Shep Pettibone', 'Steve Peck'가 리믹스했고, 7분으로 늘린 버전. 좀 더 댄스 분위기로 편곡했고, 피치를 한키 올렸다. 이 리믹스 버전은 1988년 6월 영국과 미국에서 12인치/CD 싱글로 발매되었다.
7.3 I Don't Wanna Go On With You Like That (Just Elton And His Piano Mix) - 4:37
엘튼 존의 보컬과 백보컬, 피아노 트랙만 있는 버전. 엘튼 존이 1993년, 1999년 투어에서 불렀던 이 곡의 피아노 솔로 라이브 버전과 별 차이가 없고, 오히려 이 버전이 더욱 낫다는 평도 있다. 이 피아노 솔로 버전은 1988년 6월 미국에서 12인치/CD 싱글로 발매되었다.
7.4 Mona Lisas And Mad Hatters Part 2 (The Renaissance Mix) - 6:19
프로듀서 'Shep Pettibone'가 6분으로 늘린 리믹스 버전. 이 리믹스 버전은 1988년 9월 미국에서 12인치/CD 싱글로 발매되었다.
8 미 수록곡
8.1 Love Is Worth Waiting For
어디에나 수록되지 않은 미 발매곡. 곡은 Bb로 구성된 전형적인 엘튼 존 스타일의 발라드이다. 라이브 공연에선 1988년 7월 6일 LA에서 진행된 공연에서만 불렀고, 엘튼 존의 대부분 싱글 B면 곡들과 수많은 미 발매곡들과 달리 라이브 공연에서 직접 부른 몇 안되는 곡이기도 하다.
8.2 Give Peace A Chance - 3:52
존 레논의 곡을 유쾌하고 녹음된 커버작이자 엘튼 존이 녹음한 가장 괴상한 곡들 중 하나. 곡은 어쿠스틱 기타와 드럼 비트로 쿵짝 거리면서 진행되고, 곡에서 엘튼 존은 온갖 유쾌하고 익살맞은 목소리들로 녹음되었는데 이는 만약 엘튼 존이 몬티 파이톤의 맴버가 된다면 어떨까라고 생각해서 녹음했다고 한다. 그래서 엘튼 존은 곡을 제대로 부르지 않고 그저 웅얼거리는거 밖에 없고, 사실상 원곡의 남아있는 유일한 부분은 코러스밖에 없다고 무방.[16]
이 커버작은 앨범을 작업하면서 녹음되었지만, 1990년 5월에 싱글로 발매된 곡이자 1989년 22집 Sleeping With The Past의 4번 트랙 Club At The End Of The Street 싱글 B면에 수록되었고, 1990/1991년에 발매된 박스 세트 To Be Continued...에 수록되었다. 사실 엘튼 존은 이 곡을 1970년 미국 투어에서 경쾌한 컨트리 넘버로 편곡해서 피아노를 신나게 두들기면서 부르기도 했고, 당시 투어에서 꽤 자주 부르기도 했었다.
9 세션
보컬, 작곡, 키보드, 백보컬 - 엘튼 존
작사 - 버니 토핀
기타, 백보컬, 공동 작곡 - 데이비 존스톤
베이스 - 데이비드 판톤
드럼 - 찰리 모르건
탬버린, 마라카스, 팀바레스 - 레이 쿠퍼
신디사이저 - 프레드 만델
트럼펫, 플뢰겐호른 (Mona Lisas And Mad Hatters Part 2) - 프레디 허바드
기타 (Town Of Plenty) - 피트 타운센드
백보컬 - 디 머레이, 나이젤 올슨, 어드리언 배커, 브루스 존스턴, 칼 윌슨
레코딩, 엔지니어 - 마이클 맨슨, 피터 뮤, 빌 프라이스
보조 엔지니어 - 칼 리버
부 엔지니어 - 폴 베르트하이머
마스터링 - 팀 영
아트 디렉터 - 데이비드 코스타
사진 촬영 - Gered Mankowitz
의상 - 밥 스테이시
프로듀서 - 크리스 토머스
녹음 - 영국 런던의 AIR 스튜디오, 영국 런던의 Westside 스튜디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Circle Seven 레코딩 스튜디오, The Record Plant 스튜디오. 1987년 12월~1988년 봄
10 차트 성적 (1988~1989년)
호주 | 12위 |
오스트리아 | 13위 |
캐나다 | 6위 |
프랑스 | 30위 |
이탈리아 | 3위 |
뉴질랜드 | 26위 |
노르웨이 | 8위 |
스웨덴 | 18위 |
스위스 | 5위 |
영국 | 18위 |
미국 빌보드 200 | 16위 |
서 독일 | 18위 |
10.1 연말 차트 (1989년)
이탈리아 | 18위 |
프랑스 | 39위 |
11 판매량
호주 (ARIA) | 골드 (35,000장) |
캐나다 (Music Canada) | 플래티넘 2장 (200,000장) |
프랑스 (SNEP) | 골드 (100,000장) |
이탈리아 (FIMI) | 플래티넘 3장 (300,000장) |
영국 (BPI) | 실버 (60,000장) |
미국 (RIAA) | 골드 (500,000장) |
12 싱글
I Don't Wanna Go On With You Like That [7인치 US,UK], [12인치/CD 싱글 UK] / Rope Around A Fool | 1988년 6월 |
I Don't Wanna Go On With You Like That (Shep Pettibone Mix) [12인치/CD 싱글 US,UK] | 1988년 6월 |
I Don't Wanna Go On With You Like That (The Pub Dub) [12인치/CD 싱글 US,UK] | 1988년 6월 |
I Don't Wanna Go On With You Like That (Just Elton And His Piano Mix) [12인치/CD 싱글 US] | 1988년 6월 |
I Don't Wanna Go On With You Like That (Just For Radio Mix) [12인치 싱글 US] | 1988년 6월 |
I Don't Wanna Go On With You Like That (The Renaissance Mix) [12인치 싱글 US] | 1988년 6월 |
Mona Lisas And Mad Hatters Part 2 (The Renaissance Mix) [12인치 싱글 US] | 1988년 8월 |
Mona Lisas And Mad Hatters Part 2 (The Da Vinci Version) [12인치 싱글 US] | 1988년 8월 |
Mona Lisas And Mad Hatters Part 2 (Self Portrait Instrumental) [12인치 싱글 US] | 1988년 8월 |
Town Of Plenty / Whipping Boy [US] / Saint, I Guess That's Why They Call It The Blues [CD] | 1988년 9월 |
A Word In Spanish / Heavy Traffic | 1988년 9월 |
12.1 싱글 성적
1988년 | I Don't Wanna Go On With You Like That |
영국 | 30위 |
호주 | 24위 |
캐나다 | 1위 |
독일 | 22위 |
아일랜드 | 25위 |
뉴질랜드 | 21위 |
스위스 | 10위 |
미국 빌보드 | 2위 |
빌보드 AC | 1위 |
빌보드 댄스 | 13위 |
1988년 | Town Of Plenty |
영국 | 74위 |
호주 | 95위 |
1988년 | A Word In Spanish |
캐나다 | 10위 |
독일 | 43위 |
스위스 | 27위 |
미국 빌보드 | 19위 |
빌보드 AC | 4위 |
1988년 | Mona Lisas And Mad Hatters Part II |
싱글 차트 | 진입 실패 |
- ↑ 오리지널
- ↑ 1998년 재발행
- ↑ 1987년 초반에 여성 가수 '제니퍼 러쉬'와 듀엣 싱글 'Flames Of Paradise', 자선 공연에 두번정도 참석 했었다. 그리고 1976년부터 이어지던 왓포드 FC의 구단주 자리에서 물러나가기도 했었다.
- ↑ 당시 영국 역사상 가장 커다란 피해 보상이었다고 한다.
- ↑ 본인이 오랫동안 숨겨왔던 성 정체성에 대해서 제대로 밝힌게 편하다고.
- ↑ 이혼 후에도 우호적인 관계를 가졌다고 한다.
- ↑ 마약의 영향으로 인해서 1990년까지 3번이나 머리가 하얗게 셌었다.
- ↑ 디 머레이는 1992년 1월에 피부암으로 사망했고, 나이젤 올슨은 1992년 23집 The One에서 백보컬을 맡았다가 2000~2001년 27집 Songs From The West Coast에 다시 드러머로 제대로 합류.
- ↑ 키보드리스트 프레드 만델은 1988년 11~12월에 작업된 다음작 Sleeping With The Past까지 참여했고, 당시 앨범과 1989년 4월 Sleeping With The Past 투어에선 다른 키보드리스트 '가이 바빌론'이 2009년까지 맡았다.
- ↑ 앨범이 발매되고 3개월 뒤인 1988년 9월 영국 런던 소더비에서 본인의 2,000여점이나 되는 물건들을 경매로 내놨었다.
- ↑ 하지만 다음작 Sleeping With The Past는 영국 앨범 차트 1위로 기록되었고, 1990년에 재발매되었고, 더블 A면으로 발매된 Healing Hands/Sacrifice가 영국 싱글 차트 1위로 기록되어 고국에서도 원상태로 돌아오게 되었다.
- ↑ Saint는 My Baby's A Saint로 표기되었다.
- ↑ 또한 드럼과 호른 사운드, 백보컬의 코러스 "beep beep, beep beep, yeah!"는 비틀즈의 Drive My Car의 헌정이자 오마쥬이기도 하다.
- ↑ 1998년 리마스터링 앨범에선 이 곡의 리믹스 버전들과 엘튼 존의 보컬과 피아노 트랙만 따로 있는 버전이 보너스 트랙들로 수록되었다.
- ↑ 앨범과 곡들을 작업하러 스튜디오로 들어갔을때 당시 심경에 벅차서 허공에 주먹을 쳤다고.
- ↑ 2분 48초에 I Don't Wanna Go On with You Like That를 오버 더빙해서 살짝 집어넣기도 했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