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매일 | 1978년 10월 16일 |
녹음일 | 1978년 3월 ~ 9월 |
녹음 스튜디오 | 영국 버크셔의 The Mill 스튜디오 |
장르 | 록, 팝, 디스코 |
러닝 타임 | 48:46 |
프로듀서 | 클라이브 프랭크스, 엘튼 존 |
발매사 | Rocket (UK), MCA (US) |
엘튼 존/음반 목록 | ||||
Blue Moves (1976) | A Single Man (1978) | The Thom Bell Sessions (1979) |
목차
Ego 뮤직 비디오.
Part-Time Love 프로모 비디오.
1 개요
엘튼 존의 12번째 정규 앨범.
2 하락기
전작 Blue Moves 이후로, 심적으로 별로 좋은 시기를 보내지 않았었고, 꾸준히 이어온 왕성한 활동들로 번아웃 증후군을 앓았던 엘튼 존은 1976년 10월 7일 롤링 스톤에서 양성애자로 커밍아웃을 하게 되었고, 1977년이 되어 음악 활동이 크게 줄어지게 되었다.[1] 그러다가 1977년 5월 2~7일 런던의 Rainbow 극장에서 다시 투어를 진행했었고, 몇 공연에서 찬조출연으로 모습을 드러냈지만, 이전 년도에 비하면 활동이 크게 줄어졌다. 1977년 9월에 R&B, 소울 전문 프로듀서 '톰 벨'과 같이 The Thom Bell Sessions을 작업하기 시작했지만, 여러 사정들로 인해서 1977년에 발매되지 못했다. 자세한건 항목 참조.
그렇게 엘튼 존은 1977년 11월 3일 웸블리 아레나에서 열린 공연에서 은퇴 선언을 하게 되었다.[2] 하지만 당시 바쁘게 이어온 활동으로 인한 번아웃 증후군으로 잠시 쉬었다가 돌아온다는 의미에 다른 활동에 집념한다는 뜻으로 보는 경우가 더 많다. 그렇게 잠시동안 음악 활동을 멈추게 되었고, 작사가 버니 토핀을 포함한 중요한 동료들 대부분 떠나게 되었고, 1983년 17집 Too Low For Zero로 재기를 하기 전까진 5년 간의 슬럼프를 보내게 되었다.
3 녹음
그러다가 은퇴 선언 공연을 진행한지 4개월뒤인 1978년 3월에 싱글 'Ego'가 발매되었고, 싱글이 발매된 시기부터 새 앨범 작업에 들어갔다. 앨범은 그해 9월까지 영국 버크셔 주에서 작업되었다. 버니 토핀은 1977년에 팀에서 떠났었기 때문에 다른 작사가 '개리 오스본'을 영입하게 되었다.[3] 이미 엘튼 존은 1977년 9월 The Thom Bell Sessions을 작업하면서 1976년 11집 Blue Moves 작업 도중 멜로디만 작곡된 'Shine On Through'의 가사를 마저 쓴걸로 시작해서 친분을 쌓게 되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이 앨범부터 참여해서 1980년 21 AT 33, 1981년 The Fox, 1982년 Jump Up!까지 엘튼 존의 작사가로 활동하게 되었다. 당시 남아 있던 기존의 동료들은 투어 밴드의 기타리스트 데이비 존스톤, 퍼쿠션 레이 쿠퍼, 현악 편곡자 폴 벅마스터, 1969년부터 함께 해온 사운드 엔지니어 클리브 프랭크뿐이었다.[4] 버니 토핀이 처음으로 참여하지 않은 앨범이고, 당시 새로 영입된 개리 오스본은 무명이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앨범 제목의 의미처럼 모든 수록곡들을 엘튼 존 본인이 혼자서 작사 작곡했다고 오해하기도 했다.
앨범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독신 남성'을 의미하는 앨범 제목처럼 전체적으로 좀 황량하고, 우울하다. 업템포 넘버들은 단 3곡밖에 없고 대부분 조용하고 곡들로 수록되었다. 슬럼프때 발매된 앨범이라는 점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에 일종의 시대상으로 인해서 앨범의 분위기가 더욱 차갑게 느껴진다는 평도 있다. 전작들에 비해서 앨범의 완성도와 곡들의 스타일이 꽤 다르고, 대부분의 수록곡들도 비교적 평범하고 무난한 편이라 기존의 엘튼 존에 비해선 좀 처졌다는 평.
원래 엘튼 존은 버니 토핀과 작업했을땐 버니 토핀이 먼저 가사를 쓰고 나서 엘튼 존이 멜로디를 작곡해서 붙히는 식으로 작업되었지만, 개리 오스본과 작업되었을땐 엘튼 존이 먼저 멜로디와 곡의 전체적인 구성을 작곡하고나서 개리 오스본이 가사를 쓰는 식으로 작업되었다. 둘의 작업 방식과 스타일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개리 오스본과 작업된 곡들은 버니 토핀과 작업된 곡들에 비해 확연히 달라 보인건 확실하다.
4 발매
빌보드 앨범 차트 15위, 영국 앨범 차트 8위로 기록되었고, 처음으로 각국 나라에서 5위 아래로 기록된 앨범이 되었고, 판매량도 전작들에 비해서 꽤 크게 줄어졌다. 하지만 프랑스 앨범 차트에선 2위로 기록되었고, 오히려 프랑스에선 전성기 시절보다 인지도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는 1976년에 발매된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의 히트 덕분. 1979년 봄에 발매된 Return To Paradise 싱글이 프랑스 싱글 차트 2위로 기록되었고, 1980년 후반에 프랑스 여가수 '프랑스 갈'과 듀엣으로 부른 Les Aveux (Reach Out To Me)가 프랑스 싱글 차트 1위로 기록되었고, 600,000장이나 팔려 크게 히트치기도 했다.
그리고 1979년 5월 말 소련에서도 이 앨범이 발매되었고, 처음으로 소련에서 발매된 서양 뮤지션의 앨범이 되기도 했었다. 당시 엘튼 존은 1979년 2월에 다시 투어를 진행하기 시작했었고, 퍼쿠션 레이 쿠퍼와 같이 둘이서만 진행된 투어이고, 투어의 제목은 앨범의 제목을 따온 A Single Man 투어이다. 당시 엘튼 존은 5월 21~28일까지 구 소련 모스코, 레닌그라드에서 일주일 동안 순회 공연을 돌았었고, 공연을 진행하던 시기에 앨범이 발매된 것. 당시 앨범의 제목은 Elton John Sings' in Russian로 수정되었고, Big Dipper와 Part-Time Love가 동성애, 간통에 관련된 가사로 인해서 금지곡으로 처리되었다.[5]
전작들만큼 크게 성공하지 않았고, 기존의 엘튼 존 스타일과 상당히 이질적인 분위기에 좀 처진 완성도로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5 여담
이 앨범은 당시 왓포드 FC의 구단주였던 엘튼 존이 매니저 '그레이엄 테일러'한테 헌정하는 의미를 담았고, 당시 왓포드 FC의 선수들이 Big Dipper, Gerogia에 백보컬로 참여하기도 했다. 앨범 커버는 영국 버크셔 주의 윈저 그레이트 파크에서 촬영되었고, 앨범에는 당시 촬영된 여러 사진들이 수록되었다.[6] 그리고 이 앨범부터 엘튼 존의 보컬 창법을 살짝 바꿔지기 시작했다. The Thom Bell Sessions을 작업하면서 프로듀서 '톰 벨'이 엘튼 존에게 너무 창법이 높다는 이유로 좀 낮추라는 조언을 해주었고, 이로 인해서 본인의 보컬이 너무 높다고 생각한 엘튼 존은 1977년에 살짝 창법을 변화하기 시작했지만, 1978년부터 본격적으로 바꿔지기 시작했다.
특유의 가성은 여전했지만, 1976년에 비하면 약간 낮고 톤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전에 사용할 일이 거의 없었던 중후한 보컬을 이 앨범부터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해서 1980년대부터 제대로 적용되기 시작했다.또한 엘튼 존의 피아노 연주가 조금씩 향상되기 시작했고, 1979년 투어부터 이전 년도에 비해서 피아노 연주가 더욱 즉흥적이게 변화 되었고, 세월이 흐르면서 오히려 전성기 시절보다 더욱 탄탄하고 수려한 피아노 연주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앨범을 작업하면서 여러 Outtake들이 나왔는데, 싱글들 B면에 수록된 Lovesick과 I Cry At Night은 버니 토핀 작사이다. 이 앨범에 참여해서 작업했을리는 없을테니, 전작 Blue Moves때 작곡되었거나, 1977년 당시 버니 토핀이 가사만 써놨다가 엘튼 존이 1978년에 마저 작곡되었다는 추측이 있다. 1978년 초에 녹음된 Flintstone Boy는 그 해 3월에 발매된 싱글 Ego B면에 수록되었고, Strangers는 1979년 13집 Victim Of Love의 타이틀 트랙, 싱글로 발매된 Victim Of Love B면과 1979년 8월에 발매된 Mama Can't Buy You Love 싱글 B면에 수록되었다.[7]
Dreamboat, Earn While You Learn은 당시 어디에나 수록되지 못했다가 1983년 17집 Too Low For Zero 싱글들에 수록되었고, Too Low For Zero의 리마스터링 앨범의 보너스 트랙으로 수록되었다. 그리고 1976~1977년에 가사만 남겨졌다가, 1978년에 작곡된 Remember는 프랭크 시나트라에게 주었고, 여러 뮤지션들이 커버 하기도 했다. Indian Madian은 어디에나 수록되지 못했고, 데모 밖에 남아있지 않은 미발매 곡이다. 상당히 존 레논의 모습이 크게 보이는 곡.
이 시기부터 엘튼 존은 잠시동안 화려한 복장과 선글라스를 착용하지 않았고, 칙칙한 옷에 베레모를 착용 했었다. 기존의 이미지 탈피를 위해서 한 시도였다고. 하지만 가끔씩 안경을 착용한 경우도 있었고, 1985년부터 다시 안경을 착용해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앨범의 수록곡들 중에서 라이브 공연에서 부른 곡들은 Shine On Through, Return To Paradise, Part-Time Love, Shooting Star, Song For Guy가 있다. Song For Guy를 제외한 나머지 곡들은 1977~1979년까지 불렀으며, 그 후로 다시 부르지 않았다. 단 연주곡인 Song For Guy는 예외.[8]
6 트랙 리스트
6.1 Shine On Through - 3:45
앨범의 오프닝 트랙은 Eb코드로 구성된 잔잔한 발라드. 마치 사이먼 앤 가펑클의 Bridge Over The Troubled Water가 연상되는 비슷한 분위기의 곡이다. 이 곡은 원래 전작 Blue Moves 작업 중 작곡되었고, 엘튼 존이 먼저 곡의 구성을 작곡했지만, 버니 토핀은 이 곡의 작사를 거절했기 때문에 잠시 동안 보류해두었다가, 1977년 The Thom Bell Sessions에서 개리 오스본이 이 곡의 가사를 쓰게 되면서 곡이 완성되었다. 1977년에 녹음된 오리지널 버전은 당시에 같이 작업된 2곡 Nice And Slow, Country Love Song와 같이 1989년 2월에 발매된 CD 확장판에 수록되기 전까진 12년동안 보류해 두었다.[9]
1977년 11월 3일, 1977년 12월 15일 BBC 스튜디오에서 불러서 먼저 모습을 보였었고, 이 앨범의 오프닝 트랙으로 수록 된 것. The Thom Bell Sessions때 녹음된 원곡 버전은 7분이나 되는 러닝타임을 가졌고, 좀 더 소울풍에 후반부에 코러스를 반복해서 합창하는 부분이 들어있는 대곡이지만, 조용한 피아노 발라드로 재녹음되었고, 7분에서 3분으로 짧게 편집되었다. 이 앨범 수록 이후로 1977년 11월 3일 웸블리 공연 이후로 다시 진행된 라이브 공연인 1978년 10월 14일 뉴욕에서 진행된 공연에서 불렀었고, 그 후로 한번도 부르지 않았다.
6.2 Return To Paradise - 4:15
캐러비안 뮤직 사운드가 크게 가미된 시원하고 푸근한 분위기의 곡. 맑은 피아노 선율과 보컬, 레이 쿠퍼의 마림바 연주와 트럼펫 솔로등의 여러 구성들로 인해서 휴양지 분위기가 물씬 난다. 캐러비안 뮤직에 영감을 얻어서 작곡된 곡이라서 기존의 엘튼 존 스타일과 이질감이 느껴지는 곡이라는 평. 가사는 카리브 해에 놀러간 한 영국인 도박꾼에 대해서 풍자하는듯한 내용을 담았다. 이 곡은 1979년 초반에 싱글로 발매되어 여러 국가의 싱글 차트 진입에 실패 되었지만, 프랑스 싱글 차트에서 2위로 기록되어 히트쳤다. 라이브 공연에선 1978년 10월 14일 뉴욕에서 진행된 작은 공연에서 다른 수록곡들과 같이 피아노 솔로로 불렀었고, 그 후로 한번도 부르지 않았다.
6.3 I Don't Care - 4:23
앨범의 몇 안되는 업템포 넘버들 중 하나이자 가장 밝은 분위기를 가진 곡. 블루지한 피아노 인트로로 시작하고 전체적으로 꽤 펑키하고 리드미컬하게 진행된다. 전체적인 선율과 분위기는 마치 1975년 9집 Captain Fantastic And The Brown Dirt Cowboy의 6번 트랙 (Gotta Get A) Meal Ticket과 흡사하다는 평. 곡에는 여러가지 구성들이 사용되었는데, 꽤 짙게 사용된 클라비넷의 페이저 효과와 폴 벅마스터의 현악 편곡, 여성 백보컬이 참여해서 꽤 가스펠적인 분위기와 디스코적인 요소도 보인다.
6.4 Big Dipper - 4:04
딕시랜드 재즈 스타일로 익살맞은 구성으로 진행하는 곡. 곡에는 트럼펫 솔로와 당시 왓포드 FC의 축구 선수들이 백보컬로 참여했고, 후반부의 라인은 1920년대 재즈 넘버 Makin' Whoopie의 가사를 변형시켰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재즈의 요소가 상당하다. 가사는 드물게 동성애에 대한 내용을 담았고, 게이에 대해서 공연히 털어놓는 듯한 내용을 담았다. 그래서 1979년 소련에서 이 앨범이 발매되었을때 간통에 대한 내용이 담겨진 Part-Time Love와 금지곡으로 처리되기도 했었다.
6.5 It Ain't Gonna Be Easy - 8:27
8분이나 되는 긴 러닝타임을 가진 대곡. 인트로는 블루지한 일렉트릭 기타와 피아노 선율이 같이 동반한다. 블루지한 기타, 피아노 선율과 레이 쿠퍼의 타악기 연주로 진행되고, 중간부터 현악도 추가되면서 더욱 공허하고 블루지하게 진행된다. 똑같은 리듬과 구성으로 진행되고, 코러스를 계속 질질 끌고, 반복하면서 페이드아웃된다. 가사는 한 여성이 다른 남성과 불륜을 저지르고, 남자친구를 배신하게되어 관계가 끝나게 되는 내용을 담았다. 전체적으로 블루지한 분위기가 크고 음악적인 구성도 꽤 인상적이긴하지만, 너무 길게 이어지다 보니 지루하다는 평이 적지 않다. 각자 5~7분 곡들로 연결된 Funeral For A Friend/Love Lies Bleeding 같은 10분이 넘는 메들리를 제외하면 가장 긴 엘튼 존 곡으로 볼 수 있다.
6.6 Part-Time Love - 3:16
디스코 풍의 경쾌한 곡. 데이비 존스톤의 기타와 레이 쿠퍼의 타악기 연주, 곡 중간에 사용된 현악으로 인해서 전체적으로 디스코 분위기가 강하다. 그리고 곡의 브릿지는 꽤 거칠게 진행된다. 밝고 경쾌한 분위기와 달리 가사는 간통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이 곡은 1978년 10월 4일 (영국), 11월 11일 (미국)에 싱글로 발매되었고, 빌보드 차트 21위, 영국 싱글 차트 15위로 기록되었다. 당시 발매된 곡들 중에서 Song For Guy와 같이 앨범의 히트 곡. 라이브 공연에선 1978년 스튜디오 공연, 1979년 투어의 셋리스트로 수록되었다. 곡 분위기와 상반되는 가사로 인한 이유로 인해서 그런지 1979년 5월 소련에서 이 앨범이 발매되었을때, 동성애적인 요소가 들어간 Big Dipper와 같이 금지곡으로 처리되었다. 그리고 스티비 원더의 Part-Time Lover와 아무런 관계 없다.
6.7 Georgia - 4:50
감성적인 선율로 진행되는 사우던 블루스 풍의 멋진 발라드. 이 곡은 엘튼 존이 한때 거주했던 미국의 애틀란타 조지아 주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이 곡은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광고에서 배경 음악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척 베리의 대표곡 'Johnny B. Goode'를 디스코로 리메이크해서 13집 Victim Of Love의 오프닝 트랙으로 수록되었고, 1979년 12월에 싱글로 발매되었는데 싱글 B면에 이 곡이 수록되었다.
6.8 Shooting Star - 2:44
로즈 피아노로 연주된 잔잔한 발라드. 일렉트릭 피아노로 연주된 선율에 색소폰 솔로까지 합쳐져서 잔잔하고 푸근한 분위기로 진행된다. 혹자는 가장 감미로운 엘튼 존의 보컬들 중 하나로 꼽기도 한다. 가사는 한 남성과 그의 전 여자친구와 함께한 옛날 관계에 대해서 설명하는 내용을 담았다. 라이브 공연에선 1978년 스튜디오 공연에서만 불렀고, 그 후로 한번도 부르지 않았다. 당시 공연에선 피아노로 연주되었고, Song For Guy와 메들리로 연결되어서 진행되었다. 이 곡은 C로 끝나고, Song For Guy는 C로 구성된 곡이기 때문에 서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6.9 Madness - 5:53
Dm으로 진행되는 어두운 분위기에 디스코적인 요소가 들어간 경쾌한 업템포 넘버. 처음에 조용하게 시작하다가 사운드가 커져가는 구성이다. 엘튼 존의 화려한 피아노 연주와 레이 쿠퍼의 타악기, 현악까지 합쳐져서 웅장하고, 곡의 주제에 어울리게 혼란스러운 분위기로 진행된다. 후반부에는 Em으로 2키 올라가고 진행되면서 천천히 페이드아웃된다. 가사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는 추측이 있다. 상당히 많은 대참사들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는 피의 일요일ㅇ[ 관한 언급.
6.10 Reverie - 0:53
50초밖에 안되는 아주 짧은 연주곡. 곡에선 엘튼 존이 피아노를 연주했고, 폴 벅마스터가 ARP 신디사이저를 연주했다. 곡은 말그대로 제목처럼 꽤 몽환적인 분위기의 연주곡. 곡이 끝나고 나서, 다음 트랙 Song For Guy에 메들리 접속곡으로 이어진다.
6.11 Song For Guy - 6:35
6분정도 되는 러닝타임을 가졌고, 잔잔한 선율로 진행되는 피아노 연주곡. 곡은 C코드로 구성되었고, 블루지한 피아노 리프, 어두운 단조의 코드와 밝은 코드가 서로 공돈하면서 진행된다. 처음엔 피아노 한대로 조용히 진행되다가 신디사이저와 풍경이 같이 어우러져 잔잔하게 진행된다. 후반부에 딱 한 소절 'Life isn't everything'라고 반복하면서 천천히 페이드아웃된다. 엘튼 존은 이 곡을 1978년 8월 13일[10] 일요일 오후에 작곡했었고, 당시 엘튼 존의 기분이 아주 우울했다고 한다. 하루종일 죽음에 관한 생각을 잊을수 없었기때문에 본인의 죽음에 대해 상상해서 작곡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곡을 작곡하고 나서 다음 날에 지인한테서 Rocket 레이블에서 일하고 있었던 17살의 사환 소년 '가이 바쳇'(Gut Burchett)이 오토바이 사고로 전날에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되었고, 그가 사망한 전날에 이 곡을 썼기 때문에 그를 추모하는 내용을 담게 되었다.[11]
이 곡도 싱글로 발매될 예정이었지만, 당시 로켓 레이블에선 이런 조용한 연주곡이 히트를 치기엔 어렵다고 여겼지만, 엘튼 존은 본인의 주장을 크게 요구했고, 강하게 밀어넣어 결국 싱글로 발매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5분정도 편집해서 1978년 11월 28일(영국), 1979년 3월(미국)에 싱글로 발매되어 영국 싱글 차트 4위로 기록되어서 영국에서 가장 크게 히트친 엘튼 존 곡들 중 하나가 되었고, 특히 유럽에서도 크게 성공했다. 하지만 미국 빌보드 차트에선 110위로 아주 저조하게 기록되었다.[12] 당시 싱글 차트 100위 안에 진입하지 못하고 커다란 실패를 거두게되었기 때문에 당시 엘튼 존의 미국 레이블 MCA에선 이 곡의 미국 차트 성적과 이후에 발매된 앨범과 싱글들의 차트 기록때문에 엘튼 존을 버리게된 계기가 되었고, 엘튼 존은 1981년에 다른 레이블 게펜(Geffen)으로 옮기게 되었다는 후문이 있고, 이에 관해서 2013년 롤링 스톤에서 설명했다.[13]
미국의 차트 성적을 제외하면 유럽에선 특히 커다란 반응을 모았기때문에 슬럼프 기간때 가장 커다란 히트를 친 곡들 중 하나가 되었다. 라이브 공연에선 꽤 자주 연주 되었는데, 1978년부터 연주되기 시작해서 1979년 투어의 셋리스트가 되었고, 1982년, 1984년, 1986년 유럽 투어, 1989년, 1992년, 1999년, 2000년대 투어에서 자주 연주되었고, 그 후로 가끔씩 연주되었다.[14] 그리고 1990년 베스트 앨범 Very Best Of Elton John에 수록되었을땐 편집된 싱글 버전이 아닌 원곡 버전으로 잘못 수록되기도 했었다.
7 1998년 리마스터링 앨범의 보너스 트랙 (머큐리, 로켓)
7.1 Ego - 4:00
마치 기차가 돌진하는듯한 느낌의 인트로와 빠른 업템포 넘버. 인트로엔 기차 경적 효과를 집어넣었기 때문에 기차가 달려오는 느낌이 확연하다. 곡은 전체적으로 빠른 템포로 진행되고, 브릿지에 잠시 느려졌다가 다시 빨라지는 식으로 진행된다. 전반적으로 신디사이저와 오르간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기존의 엘튼 존 스타일과 거리가 꽤 되는 곡으로 볼 수 있다. 이 곡은 1978년 3월에 싱글로 발매되었지만, 사실 전작 Blue Moves를 작업하면서 작곡된 곡이다. 버니 토핀 작사인걸 보면 더더욱. 당시에 완성된 곡이지만, 아직 발매될 시기가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에 약 2년정도 보류해둔것. 이 곡은 잘나가던 록 뮤지션들의 어리석은 행동으로 이어지던 명성이 금방 시들어버리는 내용이다. 아이러니하게도, 1976년 아후의 상황들을 보면 이 곡은 엘튼 존 본인에 대해서 선견지명을 하게 된 곡이 되어버렸다. 당시엔 그냥 비판적인 내용으로 쓴 곡이지만, 결국 본인에 대한 자전적인 곡이 되었자는 사실에 엘튼 존과 버니 토핀은 본인들에 대한 자전적인 곡이 될지 몰랐다고 했다.[15]
그렇게 약 2년간 보류해 두었다가 1978년 3월에 싱글로 발매되었지만, 미국 빌보드 차트, 영국 싱글 차트 34위로 저조하게 기록되었고, 캐나다에선 조금 나은 21위로 기록되었다. 또한 이 곡은 첫번째 뮤직비디오로 제작된 엘튼 존 곡이기도 하고,[16] 가장 많은 제작비를 사용한 엘튼 존의 뮤직 비디오이기도 하다. 영상의 어린 소년은 엘튼 존 본인을 표현한 자전적인 내용을 담았더. 라이브 공연에선 1978년 10월부터 부르기 시작했고, 1979년~1980년 투어에서 레파토리로 분류되어 자주 불렀지만, 그 후로 한번도 부르지 않았다.[17] 이 앨범에 정식으로 수록되지 않았고, 리마스터링 CD 앨범의 보너스 트랙으로 수록되었다.
7.2 Flinstone Boy - 4:13
Ego 싱글 B면 수록, 느긋한 컨트리 풍의 선율을 가진 곡. 별 다른 변화없이 4분 동안 비슷한 멜로디로 진행되는 무난한 곡이다. 이 곡은 아주 드물게도 엘튼 존 작사 작곡이다. 심지어 개리 오스본도 가사를 쓰지 않았는데, 개리 오스본이 정식으로 영입되기 전인 그 사이에 엘튼 존이 싱글 B면에 수록할려고 급조한 곡이라는 추측이 있다. 그러다보니 기존의 엘튼 존 곡들에 비해서 상당히 부족한 완성도를 보이고 있으며, 일부 팬들에겐 최악의 엘튼 존 곡들 중 하나라고 평가한다.
7.3 I Cry At Night - 3:16
황량하고 우울한 분위기로 진행되는 발라드. 곡의 분위기처럼 가사도 희망이 없고 황량한 내용을 담았다. 이 곡은 Lovesick처럼 버니 토핀이 가사를 썼는데, 1976~1977년 사이에 가사만 남겼다가 엘튼 존이 1978년에 마저 작곡한것이다. 이 곡은 1978년 10~11월에 발매된 Part-Time Love 싱글 B면에 수록되었다.
7.4 Lovesick - 4:00
I Cry At Night처럼 1976~1977년에 버니 토핀이 가사만 남겨 두었다가 엘튼 존이 1978년에 마저 작곡된 곡이다. 황량한 분위기와 우울한 I Cry At Night과 달리 이 곡은 좀 더 꽉찬 사운드와 구성을 가진 활발하고 경쾌한 업템포 넘버. 곡에서 포함된 레이 쿠퍼의 타악기, 폴 벅마스터의 현악 편곡과 데이비 존스톤의 기타 솔로를 보면 Part-Time Love와 같은 라인업으로 녹음되었다는 추측이 있다. 가사는 제목 그대로 상사병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이 곡은 1978년 11월, 1979년 3월에 발매된 Song For Guy 싱글 B면에 수록되었다.
7.5 Strangers - 4:46
이 곡은 사랑에 대한 내용과 잔잔하게 진행되는 사운드를 가진 전형적인 팝 발라드. 이 곡은 1979년 11월에 발매된 Victim Of Love 싱글 B면과 1979년 8월에 발매된 Mama Can't Buy You Love 싱글 B면에 수록되었고, 후에 다른 레이블에서 리마스터링된 1980년 14집 21 AT 33의 보너스 트랙으로 수록되기도 했었다. 그리고 1982년에는 이글스 맴버 랜디 마이너즈와 그룹 하트의 앤 윌슨이 듀엣으로 부르기도 했다.
8 앨범 미 수록곡들
8.1 Earn While You Learn - 6:46
6분이나 되는 러닝타임, 각종 악기 편성들로 구성된 연주된 정신없고 산만한 연주곡. 이 곡은 당시 녹음된 Dreamboat와 같이 앨범과 싱글 B면에 수록되지 못했고, 5년뒤 1983년 I'm Still Standing 영국판 7/12인치 싱글 B면과 1983년 17집 Too Low For Zero 리마스터링 CD 앨범의 보너스 트랙으로 수록되었다. 그리고 이 곡에선 작곡가가 엘튼 존이 아니고 Lord Choc Ice로 표기되었는데, Lord Choc Ice은 Rocket Man, Captain Fantastic And The Brown Dirt Cowboy처럼 엘튼 존의 별명들 중 하나이다. 1982년 9월 Too Low For Zero 작업 중에 본인의 별명을 따와서 Lord Choc Ice Goes Mental이라는 연주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8.2 Dreamboat - 7:34
개리 오스본, 팀 렌윅 작사. 7분이나 되는 러닝타임을 가진 이 곡은 펑키하고 시원한 선율로 진행되는 곡. 곡에선 가벼운 기타와 일렉트릭 피아노 선율, 그리고 필라델피아 소울 풍의 현악 배치가 인상적. 1978년 초반에 녹음되었지만, 당시 작곡된 연주곡 Earn While You Learn처럼 앨범이나 당시 싱글 B면에 수록되지 못했고, 5년뒤 1983년 Kiss The Bride 싱글 B면과 1983년 17집 Too Low For Zero의 리마스터링 CD 앨범의 보너스 트랙으로 수록되었다. 원래 러닝타임은 3~4분정도 되는 버전도 있지만, 일반 러닝타임은 Kiss The Bride 싱글 B면에만 수록되었고, 7분으로 확장된 버전만 보너스 트랙으로 수록하게 된 것. 1978년 초반에 녹음된 데모도 있다.
8.3 Indian Madian - 3:54
개리 오스본 작사, 전형적인 엘튼 존 스타일의 곡. 이 곡의 보컬이 상당히 존 레논의 영향이 보인다. 이 곡은 어디에나 수록되지 못한 미 발매곡이고, 데모만 존재한다.
8.4 Remember - 1:57
잔잔한 발라드. 이 곡은 버니 토핀 작사이고, 1976~1977년에 가사만 따로 작사되었다가 남겨진채 1978년에 마저 작곡된걸로 보인다. 작곡되고 나서 프랭크 시나트라에게 주었고, 프랭크 시나트라는 1978년에 몇차례 불렀지만, 따로 발매되지 않았고 공연에서만 불렀다. 엘튼 존의 데모 버전도 존재하지만, 1분밖에 안되는 미완성 데모.
9 세션
보컬, 작곡, 피아노, 팬더 로즈, 하모니움, 교회 오르간, 백보컬, 클라비넷, 멜로트론, 폴리무그 신디사이저, ARP 신디사이저 - 엘튼 존
작사, 백보컬 - 개리 오스본
리드 기타, 백보컬 - 데이비 존스톤
어쿠스틱 기타, 만돌린, 일렉트릭 기타, 레슬리 기타 - 팀 렌윅
스틸 기타 - B.J. 콜
베이스 - 클라이브 프랭크
어쿠스틱 베이스 - 허비 플라워스
드럼, 호른 - 스티브 홀리
콩가, 탬버린, 팀파니, 비브라폰, 쉐이커, 벨 트리, 풍경, 마림바 - 레이 쿠퍼
클라리넷, 테너 색소폰 - 존 크로커
트럼펫 - 패트릭 할콕스, 헨리 로우더
트롬본 - 짐 쉐퍼드
백보컬 - 비키 브라운, 개리 오스본, 데비 존스톤, 스티비 레인지, 조안니 스톤, 크리스 톰슨, 왓포드 FC의 선수들
현악 편곡, ARP 신디사이저 - 폴 벅마스터
프로듀서 - 클라이브 프랭크, 엘튼 존
총 책임자 - 마이크 길
엔지니어 - 필 던, 스튜어트 입스, 클리브 프랭크, 피터 뮤
믹스 - 필 던, 스튜어트 입스, 클라이브 프랭크
마스터링 - 랜 쿠퍼
디지털 리마스터링 (1998년) - 거스 더젼
조정 - 알렉스 포스터
편곡자 - 조안니 스톤
현악 편곡 - 폴 벅마스터
디자인 - 데이브 코스타, 마이크 스토리
라이너 노트 - 존 토블러, 크리스 화이트
녹음 - 영국 버크셔의 The Mill, Cookham 스튜디오. 1978년 1~9월
10 차트 성적 (1978~1979년)
호주 | 8위 |
캐나다 | 12위 |
네덜란드 | 16위 |
프랑스 | 2위 |
이탈리아 | 13위 |
일본 | 74위 |
뉴질랜드 | 5위 |
노르웨이 | 4위 |
스페인 | 12위 |
스웨덴 | 26위 |
영국 | 8위 |
미국 빌보드 200 | 15위 |
서 독일 | 17위 |
10.1 연말 차트 (1978년)
호주 | 82위 |
캐나다 | 93위 |
프랑스 | 6위 |
10.2 연말 차트 (1979년)
호주 | 28위 |
이탈리아 | 43위 |
영국 | 82위 |
11 판매량
미국 (RIAA) | 플래티넘 1장 (1,000,000장) |
캐나다 (Music Canada) | 플래티넘 (100,000장) |
프랑스 (SNEP) | 골드 (100,000장) |
12 싱글
Ego / Flinstone Boy | 1978년 3월 21일 |
Part-Time Love / I Cry At Night | 1978년 10월 4일 |
Song For Guy / Lovesick | 1978년 11월 28일(UK), 1979년 3월(US) |
Return To Paradise / Song For Guy | 1979년 3-4월 |
12.1 싱글 성적
1978년 | Ego |
영국 | 34위 |
호주 | 40위 |
캐나다 | 21위 |
미국 빌보드 | 34위 |
1978~1979년 | Part-Time Love |
캐나다 | 13위 |
캐나다 AC | 7위 |
영국 | 15위 |
미국 빌보드 | 22위 |
빌보드 AC | 40위 |
빌보드 캐시 박스 | 13위 |
1978~1979년 | Song For Guy |
영국 | 4위 |
호주 | 14위 |
벨기에 | 9위 |
독일 | 22위 |
아일랜드 | 7위 |
네덜란드 | 11위 |
뉴질랜드 | 7위 |
미국 빌보드 | 110위 |
빌보드 AC | 37위 |
1979년 | Return To Paradise |
프랑스 | 2위 |
네덜란드 | 49위 |
- ↑ 왓포드 FC 의 구단주로 보내는 시간이 더욱 많았다.
- ↑ 전 오랫동안 투어를 진행하지 않았고, 이건 고통스러운 결정이 될거 같아요, 다시 올것인지 아닌지.. 전 이 공연은 마지막 공연이 될것이라고 결정했습니다. 단지 투어 활동만이 아니더라도 할것은 아주 많죠.. - 1977년 11월 3일 웸블리 아레나.
- ↑ 개리 오스본은 키키 디의 히트 곡 Amoureuse에 가사를 쓴 경력이 있지만, 엘튼 존과 작업이 이루어지기전 까진 무명이었다.
- ↑ 레이 쿠퍼는 그 후로 발매된 앨범들에 꾸준히 참여 했고, 데이비 존스톤은 1979년에 떠났다가, 1982년에 다시 돌아왔고, 폴 벅마스터는 이 앨범 이후로 1995년 25집 Made In England에 다시 참여했다.
- ↑ 다만, 당시 투어에선 Part-Time Love이 셋리스트의 레파토리였기 때문에 소련 공연에서도 계속 불렀었다.
- ↑ 사진들 중 하나는 엘튼 존 당시 본인의 자가용 재규어 XK140 FHC에 타고 있는 사진.
- ↑ Strangers는 다른 레이블에서 리마스터링된 21 AT 33 앨범의 보너스 트랙으로도 수록되었다.
- ↑ 처음으로 버니 토핀 없이 제작한 앨범이에요. 버니와 저는 절대로 갈라지지 않아요. 하지만, 당시엔 수많은 마약을 복용했었고, 알코올 중독도 심했었죠. 그리고 당시 그는 다른 사람들과 곡을 쓰기 시작했었고, 저한텐 좀 질투감을 느꼈어요. 하지만 저도 다른 사람들과 곡을 쓰기 시작했었죠. 우린 절대로 논의를 하지 않았고, 그저 내버려두고 상처를 주었죠. 그를 상처를 주고 저한테 상처를 주고 말이죠. 하지만 만약 우리가 가진 탄력성과 지능으로 통해서 다른 사람들과 곡을 쓰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관계는 끝을 내릴수 있었어요. - 2013년 롤링 스톤 인터뷰
- ↑ 자세한건 항목 참고.
- ↑ 아니면 8월 20일.
- ↑ 그래서 전 이 곡을 일요일에 작곡하게 되었고, 전 당시 제 자신이 공간에 떠있으면서 내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면서 상상했죠. 저는 제가 죽어가는것에 대해서 상상을 했어요. 이러한 생각을 병적으로 생각했지만요. 그래서 죽음에 대해서 곡을 썼어요. 다음날, 전 17살의 사환 소년 가이 바쳇이 전날, 오토바이 사고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가이는 전날에 사망했을때, 전 이 곡을 작곡한것이죠. - 7인치 싱글 뒷면에 세겨진 설명.
- ↑ 빌보드 어덜트 컨템포러리 차트에선 37위.
- ↑ 제가 A Single Man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은 Song For Guy이고, 이건 연주곡이라서 좀 달랐죠. 이건 저한테 큰 의미를 가졌습니다. 이 곡은 영국에서 크게 히트를 쳤고, 다른 국가에서도 크게 히트쳤었죠. 하지만 이건 미국에서 100위 안에 진입되지 못한 첫번째 싱글이었어요. 그래서 전 심술 궂었고, MCA 레이블에서 나오게 된것이죠. 전 연주곡을 차트에 기록하고 싶었고, 그들은 '당신은 못한다. 그래서 전 씨발 좆까, 난 게펜과 계약할테니까라고 했지만, 그것도 큰 실수라고 나중에 느끼게 되었죠. - 2013년 롤링 스톤 인터뷰.
- ↑ 1990년대부턴 Take Me To The Pilot의 즉흥적인 피아노 인트로나 아웃트로에 사용되는 경우가 잦아졌다. 1992년 투어에선 Your Song과 메들리로 연결하기도 했었다.
- ↑ 후에 밝힌 인터뷰를 따르면 이 곡은 괴상한 사운드의 록 넘버이지만, 버니 토핀과 쓴 곡들 중에서 가장 진실성을 가진 곡들 중 하나라고 했다.
- ↑ 1973년 Step Into Christmas, 1976년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는 프로모 비디오로 제작되었지만, 사실 첫번째 뮤직비디오를 가진 곡은 이 곡.
- ↑ 1979년은 피아노 솔로로 불렀지만, 1980년에는 밴드와 같이 진행된 투어이기 때문에 원곡처럼 기차 경적을 넣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