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개요
고대로부터, 관습적으로 자녀로서 딸보다 아들을 더욱 선호하는 풍조. 말 그대로 자녀로서 여자아이보다 남자아이를 더욱 선호하는 경향이다.
인류가 문명을 세우기 이전부터 존재한 관념이며, 이런 남아 선호사상은 대부분의 농경 민족의 역사에서 이집트와 같은 몇몇 극소수의 문명을 제외하고는 예외를 찾기 힘들다. 특히 가부장 문화와 대(代)를 잇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유교 문화권에서 남아 선호사상이 두드러지며 유교의 정점을 이룬 조선에선 '소박맞다'라는 개념이나 씨받이라는 직업이 생겨날 정도로 극심했다.
대한민국의 80~90년대까지는 그야말로 남아선호의 천국이었지만 2010년대에는 옛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유교적 관념이 강하고 여전히 후진국 마인드가 강한 한국에서는 옛날보다야 덜하지 여전히 건재하며, '남아'선호사상만 사라져 갈 뿐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적인 태도를 갖는 남존여비 사상은 여전히 건재하는 등, 여전히 한국에서는 문제가 많은 편.
2 원인
2.1 인류학적 측면
전통적으로 인류학적 관점에서 남아 선호 사상은 원시의 수렵 기반 사회 구조에서 농경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부각된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했다. 또한 근대까지 남았거나 현대에도 남아있는 원시적인 수렵 생활을 유지하는 민족들의 경우에는 모계사회인 경우가 있다.[1] 물론 모계사회라고 여아 선호사상과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농업혁명이 인간 사회에 미친 영향은 대단한데, 실질적으로 이 시점부터 문명이라고 할 수 있는 토대가 형성되었으며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급격히 증가하고 한 곳에 무리지어 정착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인구 증가도 빠르게 일어났다.
농업혁명은 남녀 간의 직업을 고도로 분업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물론 그 이전 시대에도 남자는 수렵을 주로 담당하고 여성은 채집이나 육아를 맡는 정도의 분업은 존재했다. 그러나 농경사회 들어 남성은 여성보다 훨씬 넓은 이동반경과 사회의 안전 보장에 관련된 일을 맡게 되어 그 지위가 더욱 증대되었다.[2] 쉽게 말해서, 남자들이 사회의 요직들을 차지하고 무기를 들고 외적을 지키는 동안 여자들은 집에서 육아 및 생활에 집중하는 분업이 이루어졌다는 말이다.
이에 따라, 여성은 신분 상승 및 미래에 대한 기대치가 현저히 낮아지게 되고 이는 남아 선호사상으로 직결되게 된다.
군사문화가 우월한 사회에선 더욱 심화된다.
2.2 생물학적 측면
남아선호 관념이 시공을 초월해서 보편적으로 퍼진 것에 대해서는 다양한 생물학적인 학설들도 존재한다.
우선 종족의 보전을 위해 자연적으로 성비가 조절된다는 설이 있다. 물리적으로 남성과 여성은 다른데 이로 인해 손실율(?)이 높은 남성인구수를 채우기 위해 남성을 더 많이 낳기를 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남성은 남성 호르몬의 영향으로 모험심이 강해 사고를 자초하기도 쉽고 유전병이나 활발한 외적 활동(전쟁, 사냥) 등의 요인으로 여성보다 빨리 죽는 일이 많다보니 성비가 안 맞게 된다. 이러한 경향은 의학이 최첨단으로 발달한 현대에도 예외가 아니어서 지역을 막론하고 거의 모든 나라에서 여성의 기대수명이 남성을 훨씬 웃돈다.
특히, 과거 남성의 수명이 짧아 소모율이 높던 아랍의 경우 일부다처제와 형사취수제를 통해 이런 문제점을 보완해야 했을 정도였다. 게다가 남성은 많아도 인구가 늘어나지 않지만 여성의 인구가 늘면 인구 증가와 직결된다. 인구 증가와 직결되는 것은 가임기 여성의 인구수이기 때문이다.[3] 가축의 경우만 보더라도 번식을 위해 많은 숫자의 암컷이 필요한 것에 비해 수컷은 씨를 뿌려줄 한, 두마리만 있으면 된다.
또한 Y염색체를 통해 남성 쪽이 자손에 대한 유전적인 동질성을 확인하기 쉬워서라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인간은 세대를 거듭하면서 조상이 갖고 있던 염색체들이 꾸준히 흩어지는 경향이 있으나 오로지 부계로 유전되는 Y염색체만은 아무리 세대를 거듭해도 보존된다. 즉 최소한의 유전적 '정체성'을 대대로 물려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론적으로는 같은 형제들은 물론 사촌형제와 조카, 종질까지도 남자라면 모두 같은 Y염색체를 갖고 있기에 확고한 동질성을 보유하게 된다. 이러한 혈연적 유대에 자연적으로 끌린다는 것이다.[4][5]
2.3 사회학적 측면
산업혁명과 때를 같이, 해 비료의 발명을 통해 인구가 폭증하였고 차츰 자녀계획도 다자녀에서 소자녀로 패러다임이 바뀌게 되었으나 그럼에도 남아선호 사상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소자녀이기에 가뜩이나 남아를 선호하던 풍조에 더해지는 바람에 더욱 남성에 집착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이런 이유에 대해 사회학적인 분석이 동원된다.
근대에 이르러서도, 대부분의 사회 구조는 남성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급격히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서구 사회에서 남성의 위치는 여성보다 매우 높아졌으며 상류층의 사교계에선 여성은 남성들을 장식하기 위한 꽃으로 취급받곤 했다. 이러한 경향은 여성들의 사회 활동과 여권 신장 운동으로 성적 분업의 격차가 상당히 개선된 현대에서도 남성스러움, 여성스러움 같은 단어로 여전히 큰 위력을 떨치고 있다. 예를 들어 CEO 같은 상위 직업은 'Old boy club'으로 불리는 나이 많은 남성들이 독식하다시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인 성적 격차는 남아에 대한 높은 기대와 여아에 대한 소홀한 대접으로 이어진다.
육아 차원에서의 관점으로 보자면, 딸이 아들에 비해 양육상 훨씬 조심스럽다는 문제점도 있다. 성범죄는 같은 상황이라면 남성보다 여성에게 훨씬 치명적이다. 물론 남성이든 여성이든 성범죄를 당하고 트라우마가 생기는 건 당연하지만, 여성은 임신을 당할 수 있다는 위험[6]과 함께 사회적으로도 이상한 눈초리를 받게 된다. 즉, 남성에 비해 여성은 비교할 수 없이 후유증이 심각하다.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딸 가진 부모는 매사에 조심스럽고 신경이 많이 가며 마음을 놓기가 힘들다.
어느 드라마 중[7]... "아들이면 아들의 꼬추만 걱정하면 되지만 딸이면 온 동네 꼬추들을 다 걱정해야 하거든"
3 종교의 남아 선호 사상
이슬람에서는 여성이 음욕을 자극하는 것을 철저히 금기시하여 히잡을 강제하는 등 여성의 색기를 최대한 줄이려고 애를 쓰고 있다. 자연히 여성이 사회적으로 받는 제약이 많고 남성의 가부장적 지위가 높은 편이다. 간통의 경우 말할 것도 없이 사형감이며 교리상으로는 남녀 모두에게 적용되지만 실제로는 여성 쪽이 음욕을 일으켰다고 간주되는지라 더 잔혹한 꼴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8] 물론 이는 이슬람 국가들의 이슬람과는 별개로 상당수가 그냥 원래부터 남성 중심 사회였으며, 또한 본래 꾸란에서는 당대 기준으로 나름대로 여성을 배려하는 얘기가 들어가 있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문제라면 이슬람권에서도 보수적이거나 후진적인 곳에선 이 조항들을 악용해 되려 여성인권을 억압한다는 것.
그래도 이슬람권은 사정이 양호한 편이다. 힌두교권인 인도 공화국은 그 이슬람보다도 상황이 나빠서[9] 아예 여성의 가치를 재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취급하는 예가 다반사였다.(주방에서 타죽은 부인, 명예살인 참조)[10]
불교의 경우 먼 옛날에는 비구니의 출가에 있어 제한사항을 두는 등[11] 여성을 알게 모르게 차별했다. 기독교는 예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목사나 사제의 지위는 남성이 독식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까 여성 목사에 대한 의견이 나오면 보수적인 남성 목사가 기저귀 차는 여자가 무슨 목사 자격이 있느냐는 병크 같은 발언을 하기도 하고, 다른 종교가 남녀 차별이라며 까면서 들먹이는[12]) 경우까지도 있다.
4 우리나라의 남아 선호 사상
조선시대에 중국에서 받아들인 유교가 성리학이라는 형태로 교조화되어 이른바 남존여비의 관념으로 굳어져버렸다. 그 결과, 고려까지만 해도 남녀균분상속이 존재했고 조선 초까지도 여성의 지위가 어느정도 보장되었으나 성리학을 신봉하는 사림 세력이 득세하면서부터는 남아가 없을 경우 양아들을 들여서라도 "반드시 대를 이어야 한다."는 지독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13]이게 종교적 의식이라며 실드를 치는 사람도 있으나, 애초에 15세기까지만 해도 딸이 제사를 맡는 경우가 적잖이 있었으므로 이것이 성별의 차별을 뒷받침하는 사상이라는 점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유교(특히 성리학)에서 남성 자녀가 중요한 이유는 간단하다. 유교에서는 위아래를 구분하는 서열을 중시하며 그 윗 서열에 남성과 어른이 규정되어져 있기 때문이다. 공자, 맹자, 주자 등이 제시한 이런 기준은 신성불가침한 것으로 여겨져 이의를 달 수 없었고 반항하면 사문난적이라 하여 사회적으로 매장을 당했다.
이런 유교 치하의 조선에서 여성들은 사내아이를 낳지 못하면 소박맞기까지 했다.[14]반면, 남성의 축첩은 당연하게 여겨졌고 칠거지악이라 하여 질투는 중죄로 다스렸다.[15] 물론 보호장치가 있긴 하지만 사회 분위기가 저 모양이면 매일매일이 눈치밥이니 위자료 받고 이혼하거나 축첩을 묵인하는 대가를 받는 게 낫다. 이러한 분위기였으니 여자아이를 꺼리는 풍조는 지극히 당연할 정도이다.[16]
유교 사회에서 가문(家門)이 중요하게 여겨진 것은, 제사라는 종교 의식을 통한 단합에서 소외당하기 때문이다. 장기간의 문벌을 가진 가문은 누대에 걸친 족보와 조상을 자랑하였고, 이러한 행위를 통해 가문을 단합하고 사회적 세력을 쌓았다. 문중은 제사를 지낸다는 명분 하에 농경지나 야산 등의 토지를 가문의 이름으로 집중하여 그 자체가 재산을 보유하도록 되었다. 이러한 문중 자산은 '종손'이 승계하였으나, 동시에 종손은 제사를 지낸다는 전제하에 문중 자산을 유지할 수 있었으므로 이는 일종의 '공동 자산'으로 취급되었다. 문중의 재산은 다른 친척에게 원조를 주고 받을 중심점이 되었다.
그때까지도 친족 사회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던 당시에는 친족을 원조하는 행위는 인간으로서 당연한 도리로 여겨졌으나, 다른 형태의 복지는 현대 사회 이전까지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매우 부족한 편이었다. 결국 가문을 상실한다는 것은 사실상 사회 복지 체계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사회적 성공이나 최소한의 복지 등 모든 것이 가문에 의지했으며, 가문에서 이탈된다는 것은 순전히 자기 혼자의 힘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지만 현실적으로 전근대 농업 경제 사회에서 이러한 단독 가구가 빈민층으로 전락하지 않고 살아갈 방법이 별로 없었다. 그러므로 가문과 문중을 유지하는 것은 사실상 생존과 사회 생활의 문제였다.
조선시대에 문중을 제외한 사적 결사체는 이런저런 명분 때문에 탄압 받는 일이 많았다. 남자들이 모여서 뭐 해보려고 하면 당파나 역적 무리로 몰리기 쉽고, 불교는 조선시대에는 아예 전면에 나서지 않는 대신 그 세력을 인정받은 종교[17]이며, 상단은 애시당초 돈을 목적으로 이해관계를 갖고 모였기에 그 결속력이 매우 낮았으므로 조정에서 문제삼지 않았다. 결국 유일하게 국가로부터 정당하게 인정받는 사회 조직인 문중으로 관심이 편중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사실 가문의식에 기반을 둔 가부장제가 강화되고 그로 인해 남아 선호사상이 두드러진 것은 임진왜란의 탓이 크다.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말로는 성리학을 외치긴 했지만 심지어는 사대부들조차도 그렇게 전적으로 따르지는 않았던 터라... 우리가 잘 아는 신사임당의 경우만 하더라도 시부모를 떠나 아들 데리고 친정 가서 살았다. 조선 후기라면 생각하기 힘든 일이다. 그러나 전란 이후 사대부들은 자신들의 세력 강화를 위해 가문을 중심으로 결속하게 되었고, 여성들조차도 생존과 번영을 위해 이에 동조하면서 남아선호 사상이 극도로 강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조선이 망한 것도 불과 100여년 정도밖에 안되서,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는 유교적 관념이 가시지 않고 있다. 아들을 못 낳는다고 며느리를 구박하는 시어머니나 아들(손자)에게는 잘해주면서 딸(손녀)에게는 박대하는 어머니나 할머니의 모습은 비단 드라마나 동화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며[18] 아들을 못 낳는다고 이혼을 요구하거나 아들을 잘 낳는다고 소문난 씨받이를 들인 사례가 무려 90년대 말에도 드물게나마 있었다. 사실상 현재의 남아선호 사상이 그나마 잠잠해진 것은, 기껏해야 2000년도 들어서면서 부터였다. 비교적 최근에 나타나기 시작한 현상이라는 점에서 충격과 공포가 아닐 수 없다.[19]
물론 한국의 남아선호사상이 무조건 성리학때문이라고 생각하는것도 곤란하다. 여권이 높다던 고려시대에도 중혼의 폐혜는 심각했고[1] 이전부터 위에서 언급한 인류학적,생물학적,사회학적이유때문에 남아선호사상은 꾸준히 지속되어왔다. 다만 성리학의 교조화이전에는 남아선호사상의 목적이 단순히 생존을 위한것이었지만 그것을 교조화된 성리학이 단순한 생존문제만이 아닌 사상문제까지 끌어들였다는 점이 문제인것이다.
한국의 치안상태가 중남 아프리카(소말리아) 등의 막장 헬게이트 후진국들보다야 백배천배 훨씬 낫다지만(오히려 세계 최고수준의 치안상태를 유지하고있다), 한국은 경제력으로 서방국가 못지 않은 상당한 수준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에 대한 성의식이 경제력만큼 발전하지 못했음을 부정을 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이 문제에 있어서는 뭐라고 해도 남자 자녀보다 여자 자녀가 더욱 취약한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 90년대 후반부터 인터넷의 급속한 보급으로 인해 아이들이 과거보다 훨씬 성적으로 개방성을 띄게 되면서 자녀의 탈선이나 성적인 피해가 새로운 사회 문제로 부상하고 있기도 있다. 조두순이나 김수철 같은 악질 성범죄자들이 이슈가 되면서 여자 자녀에 대한 사회적 불안을 더더욱 고조시킨 것도 있다. 물론 처벌은 미국을 제외하면 매우 무거운 축에 들어가지만 뭐라고? 성범죄자가 처벌 수위가 무서워서 성범죄를 자제하지 않는 것이 문제.[20] 사회가 전반적으로 가해자는 당당하고 피해자가 숨어 살아야 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한 몫하고 있다.[21]
다만 한국의 경우 2000년대 들어 남아선호사상은 사실상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남녀 신생아 성비는 거의 자연상태 수준으로 회복되었다.[22] 관련 기사 현재 사위나 며느리를 볼 50~60대들은 이미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히 이루어진 사회에서 성장해 왔고, 이제 결혼하여 자녀를 가질 20~30대들은 여자가 집안일만 한다는 것은 사회 의식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자연히 굳이 아들이 있어야 할 이유가 사라진 셈. 더군다나 아들보다 딸이 더 부모에게 잘 대해주며 부모 부양 능력도 좋은 편이라는 인식이 늘어난 반면 아들은 결혼 비용 등의 문제로 선호도가 줄어들었다. 또한 언론에서 '딸바보' 이미지를 많이 밀었던 것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남아선호사상이 사라진 것도 어디까지나 젊은 세대 한정이다. 기성세대 시부모들은 여전히 아들을 꼭 원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남편이 장남이거나 외아들인 경우 며느리는 높은 확률로 시부모로부터 아들을 반드시 낳을 것을 어떤 형태로든 강요받게 된다. 가족 계획으로 성별 무관하게 한 명만 낳아 키우려 했는데 종가집이라 시부모가 아들을 꼭 낳으라고 압박하는 바람에 무리해서 둘 이상 낳아 기르게 되는 부부들도 있다. 실제로 아들을 낳지 못한 종갓집 며느리가 자살하는 일이 2002년에 벌어졌다.#
또한 젊은 세대가 남아선호사상을 갖고 있지 않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남아선호사상이 짙은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란 자녀들은 나중에 커서 그 사상을 그대로 물려받을 확률이 높다. 즉 자기 부모 세대처럼 아들에 집착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아무리 사회가 변해도 그 사람만이 겪어 온 집안 분위기와 성장 과정은 그의 가치관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23] 게다가 80-90년대의 여아낙태 문제 문서를 보면 알 수 있듯 최근 미국 등지의 한국인 이민자가 많은 곳에선 마치 한국의 80~90년대처럼 여아낙태가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성비가 파괴되고 있다. 아직 남아선호사상이 한국인에게서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24]
5 문제점
5.1 여아낙태
자세한 내용은 성별 선택 낙태 문서 참조.
5.2 인구감소
반대로 여성의 인구가 남성의 인구보다 많다면 인구감소라는 치명적인 문제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여아를 낙태하게 되면서 남아의 인구가 당연히 감당할 수 없을정도로 여성인구수에 비해 많아진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여성은 남성들과는 달리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시기가 '가임기'로 한정되어있으며, 주로 40대 초~중반에 폐경기가 오게 되므로, 그 나이가 되면 대부분이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된다. 때문에 여성의 결혼 적령기는 20~30대라는 소린데, 결혼 적령기에 도달한 30대의 남성은 아이를 갖기 위해선 자신과 동시대에 태어난 또래의 여성 혹은 자신보다 어린 여성과 결혼을 해야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결혼 적령기가 된 남성의 인구가 4,000명(물론 현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터무니 없이 적은 숫자다)이고 여성의 인구가 3,000명이라면? 약 1/4의 남성은 당연히 결혼을 못 하게 되는 것이고, 그만큼 인구도 감소한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아이를 돈(양육비+교육비)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선 한 가정당 한명씩만 낳는 추세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리고 한국의 80년대 중반~90년대 초반 출생 세대는 이것이 현실로 닥쳤다.
"이혼 경력이 있는, 일명 '이혼녀'와 결혼만 하면 해결된다"라고 하는 몰상식한 발언은 하지 말자. 자식이 있는 여자가 가정까지 버려가면서 이혼을 할 거라는 보장도 없을 뿐더러, 아빠가 다른 형제를 낳은 여자를 현대사회에서 어떻게 취급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면 말이다. 더군다나, 상대가 양육비 및 교육비가 얼마나 들어가는지 알고 있는 여성이라면...
5.3 일명 고추보기, 만지기, 사진찍기
남아 선호사상이 강한 곳에서는 성추행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풍습으로 인식되는, 일명 "남자아이의 고추보기, 고추만지기, 고추사진찍기" 등이다. 한국에서 남아 선호사상이 강했을때는 이런 것이 자연스러운 풍습으로 인식되다보니 미국으로 이민을 간 한인의 초기세대 역시 이런 풍습을 자연스럽게 인식했다. 그들이 그런 인식을 가지고있다보니 미국의 백인 남자아이의 성기를 보거나 만지려고 하거나, 실제 행동을 하다가 성추행범으로 되어 경찰에 연행되는 경우도 있었다.[25] 또한 남자아이의 고추를 촬영한 사진도 아동 포르노로 취급되어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북미권에서 아동 성범죄와 아동 포르노가 어떤 취급을 받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현재 한국은 과거에 비해 남아선호사상이 많이 약해졌고, 남아여아 상관없이 어린아이의 성기를 귀엽다거나, 자랑스럽다거나, 친근감을 나타낸다는 등 어떤 이유로든 만진다는 것을 아동 성범죄로 인식하게 되어서 이런 행위는 크게 줄어들었다.
6 이런 사상을 가진 실존 인물들
실존 인물은 출처와 함께 제시 바람.
7 이런 사상을 가진 가공의 인물들
- 개그콘서트 두분토론 - 박영진 (어디까지나 해당 코너의 배역이 그렇다는 이야기고, 그 배역도 실제로는 남아선호사상을 희화화한 배역이다.)
- 아들과 딸 - 후남 엄마
- 뻐꾸기 둥지 - 곽희자[27]
- 사랑이 뭐길래 - 이병호(대발이 아버지)
- 치즈인더트랩 - 홍설 아버지
- 딱 너 같은 딸 - 소판석[28]
- 워크래프트 시리즈 - 마그니 브론즈비어드 [29]
8 이 사상의 실존 피해자들
실존 인물은 출처와 함께 제시 바람.
- 가문 승계 문제에 휘말린 여성들
- 고준황후 - 결혼 후 딸만 줄줄이 4명을 낳아 비난을 당했다. 심지어 측실 제도의 부활까지 거론되었으나 쇼와 덴노가 거부하는 바람에 실행되지 못했고, 다섯째 아이로 어렵게 아키히토 덴노를 낳았다.
그리고 훗날 악독한 시어머니가 되었다. - 마사코 황태자비 - 오랫동안 불임이었다가 어렵게 아이코 공주를 낳았지만, 이후로도 황위를 이을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압박을 당했다.
- 키코 비 - 형님 마사코 황태자비가 낳지 못한 아들을 낳아 주목받고 있지만, 그녀 역시 시부모와 궁내청의 압력에 의해 늦은 나이에 어렵게 임신하여 아들 히사히토 친왕을 낳았다.[30] 또한 마코 공주에 이어 카코 공주를 낳았을 때는, 딸만 둘을 낳았다며 비난을 받기도 했다.
- 고준황후 - 결혼 후 딸만 줄줄이 4명을 낳아 비난을 당했다. 심지어 측실 제도의 부활까지 거론되었으나 쇼와 덴노가 거부하는 바람에 실행되지 못했고, 다섯째 아이로 어렵게 아키히토 덴노를 낳았다.
- 앤 불린 - 제대로 살아가는 아들을 낳지 못해 사형당했다.
- 남초 현상 시대의 모든 남녀.
너, 나, 그리고 우리- 남자는 남자대로 남초현상으로 인한 극심한 경쟁과 신붓감 부족으로 고통을 받고, 여자는 여자대로 숫적 열세로 인한 사회적 영향력 축소를 겪어야 한다. 다만 남성의 숫자가 많아서 사회적인 영향력이 강해지는 측면에서, 여자는 희소성으로 인해 역설적이지만 그 가치가 올라가는 점에서 이익이라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이런 관점은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현대에서 결혼시장에서의 장점만이 부각된다는 점에 비판이 있으며 여성을 무조건 성 상품화 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32]
- 조혜련 - EBS 2016.3.15&22일 방영분 '리얼극장 참조. 제목부터가 "행복-아들로 태어나지 못한 딸,조혜련과 어머니"다.
9 이 사상의 가공의 피해자들
- 홍설
- 사카키 유미코
- 서인숙 (단, 이쪽은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 해당 문서 참고.)
- 다혜[33]
10 관련 문서
- ↑ 모계사회라고 해도 점박이하이에나처럼 여성이 남성을 지배하는 식의 사회는 아니며, 일반적인 가부장적 사회에서 남성이 가지는 지위에도 훨씬 미치지 못한다. 대부분의 원시모계사회에서 씨족내 가장 큰 발언력을 지니는 사람은 어머니의 남자형제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원시수렵공동체 중에는 예외적으로 남미의 야노마모족처럼 여성을 폭력의 대상, 노동력을 제공하는 존재 이상으로는 대하지 않는 경우 또한 있는 편으로 이런 원시사회들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며, 인류 초창기에는 모계사회가 있었다는 이론은 폐기되었다.
- ↑ 원시 수렵 민족에선 남녀의 하루 동안의 이동반경은 별 차이 없다.
- ↑ 예를 들어 남자와 여자가 50만 명씩 있다고 치면 여자 하나당 두어야 할 자녀의 수는 2명을 조금 넘으면 충분하다. 그러나 남자가 60만이고 여자가 40만이라면 여자 하나당 두어야 할 자녀의 수는 2.5명으로 급증하게 된다. 물론 이건 태어난 자녀가 아들인지 딸인지는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 ↑ 물론 모계로만 유전되는 미토콘드리아도 있지만 이것은 염색체가 아니므로 형질 발현에 별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
- ↑ 엄밀히 말하면 저 Y형 유전자도 세포 분열 과정에서 돌연변이가 필연적으로 발생하여 좀 다르게 된다. 하지만 친족 내에서 큰 차이가 없는 건 사실이며 수십 세대 내에서는 큰 차이가 없고 오히려 돌연변이로 특질을 갖으면 더더욱 해당 씨족의 개성이 확립된다.
- ↑ 원하지 않는 임신 같은 경우는 예사고 그에 따른 낙태와 트라우마라든가 아주 심할 경우 아예 아이를 가질 수 없는 경우까지 갈 수도 있다.
- ↑ The Bernie Mac Show 시즌 5 에피소드 18中 "When a father has a boy, he only has one penis to worry about. But when he has a girl, he has everybody's penis to worry about."
- ↑ 그것 이외에 코란에서 남성중심이다 보니 간통의 증인으로 4명이 필요한데, 여성은 절반으로 간주하여 여성들로 증인을 채우기가 힘들어서도 한 이유다.
- ↑ 그래도 이슬람에서는 명목상 남녀는 평등하다고 가르친다. 다만 그 평등의 잣대가 우리식과는 달라서 문제로 인식된다.
- ↑ 한 가지 예로 들어보자면 인도에서는 결혼할 때 신부 측이 신랑 측에 거액의 돈을 보내는데, 얼마나 많으냐면 인도 노동자 8년치 임금에 해당되며, 이걸 마련하려고 신부 측에서는 집도 파는 일이 많고 이 돈이 없어 죽은 여성만 1년에 8천명이고 많은 여아들이 생매장당하거나 심지어는 아예 태어나기 전에 낙태당하는 일도 잦다.
- ↑ 다만, 이는 당시 인도에서 여성 수행자의 처지란 것이 매우 위태했음을 감안할 필요는 있다. 물론, 궁극적으론 바뀌어야할 필요가 있지만.
- ↑ 실제로 어느 목사가 "이슬람에는 여자 이맘이 없으니 남녀차별"이라고 한 개신교 신문에 깠다가, 다른 목사로부터 "한국의 개신교에 여자 목사가 있는지 좀 알아보고 그런 소리나 지껄이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실제로 한국 개신교에는 여자 목사가 존재한다.
- ↑ 실제로 가문에 아들이 없어서 양자로 들어온 경우가 많았고, 양자를 들이지 않는 경우 차남의 아들이 그대로 승계해 나갔다. 장남, 차남 모두 무후일때는 삼남의 아들이 승계해 나간 경우도 존재하였다. 근래들어 굳이 양자를 잘 하지 않는 추세이다.
- ↑ 다만 이건 무지라고 보는 게 맞는 것이, 자녀가 아들인지 딸인지 성별을 결정하는 것은 모체가 별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면 이런 악습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녀의 성별은 정자가 결정한다. 즉, 아들을 못 낳는건 남자 잘못이라는것. 실제로 이 사실이 알려진 뒤로 아들 못 낳는다고 소박하는 일이 사회에서 당연시되는 경우는 없어졌다.
- ↑ 다만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진짜 중죄로 다뤄지는 경우는 정말 심하게 하거나 질투로 인해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 한했다. 대표적인 예로 태종의 왕비 원경왕후는 질투가 심한 왕비로 평가되지만 구박은 받아도 폐비가 되지는 않았고 성종의 두번쨰 왕비였던 폐비 윤씨의 경우에는 왕비가 되고 8개월만에 폐비 논의가 있었는데 이떄 임사홍이 "예로부터 질투를 하지 않은 왕비들이 없으니 부디 폐비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해서 1차 폐비소동을 종식시켰다. 따지고 보면 남편이 다른 여자와 관계하는데 질투하는건 당연하니 어찌보면 그 시대의 사람들도 이 점은 유의한듯
만일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사귀는 여친이 다른 남자랑 몰래 사귄다고 생각해 보면 간단하다. - ↑ 다만 일반 평민들 가정에서는 몰라도 양반 가문에서는 여자아이를 낳았다고 버리는 경우는 없었고 키우기는 다 키웠다. 물론 평민들 가정에서 버리는건 여자이기 떄문이기 보다는 입이 많아져서가 맞겠지만
- ↑ 임진왜란 이후에는 불교에 대한 전면적인 탄압은 없어졌지만 무시는 여전했다,
- ↑ 레진코믹스의 수요 웹툰 단지도 바로 이런 끔찍힌 차별을 받은 여자(작가본인)의 이야기이다.
- ↑ 참고로 장녀는 그래도 70년대까지는 넘어가졌는데 장녀는 살림밑천인 경우가 많았기 떄문이다.
- ↑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건 치안유지가 매우 우수하고 범죄율도 세계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꼽을 만큼 낮아서 매우 안전하다. 단적인 예로, 밤 10시 이후 외출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국가는 미국같은 선진국도 있다!
- ↑ 당장 성폭행 피해자에게 "남자가 성욕을 참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지 뭘.", "꽃뱀.", "옷을 야하게 입으니까 그렇지.", "네가 부주의해서 그런거야."라고 비난하는 게 현실이다. 게다가 이건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도 성범죄자의 사회적 지위가 높고 피해자가 미성년자가 아닐 경우(성범죄 피해자의 대다수는 성인) 마찬가지 태도를 보인다. 대학캠퍼스 및 여군 성폭행 문제가 한국보다 심각한 이유.
- ↑ 그러나 이는 여성의 사회 진출과 주거비, 양육비, 교육비 부담 때문에 한 가구당 한 명씩만 낳는 등 출산율 자체가 낮아져서 그렇게 된 면이 크다. 정말 남아선호사상이 없어져서 성비가 회복되었다고 단정하기는 힘들다.
- ↑ 마치 가정 폭력에 시달리던 아이가 나중에 부모가 되면 은연중에 자식을 똑같이 그렇게 대하는 것과 비슷하다.
- ↑ 다만 이민자 집단은 타지에서 자기들끼리 강한 결속력으로 인해 본토 국민들보다 훨씬 보수적인 성향을 띠고, 1세대가 한국을 떠나왔던 그 시대의 문화를 해외에서도 쉽게 변화시키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이민 2세대 이하 세대들의 남아선호사상이 강하니 대한민국 본토도 여전히 그렇다는 식의 논리는 다소 비약이 있다.
- ↑ 일부 이민자는 미국에서 이런 짓을 하다가 경찰에 연행된 후, 한국에서 아이의 중요부위를 만지는 것이 전통, 관습이고 귀여운 아이한테는 친근감을 나타내는 행위라면서 우직하게 주장하기도 해 파문이 생기기도 했다.
- ↑ 단순히 남아 선호를 넘어서 학대 수준이다. 자세한 것은 문서 참조.
- ↑ 이쪽은 안좋은 시어머니 전형으로 뻐꾸기 둥지 초반부에 장손을 얻어야 한다고 며느리와 아들을 닦달하는 것을 보면....
- ↑ 장차로 아들이 있고 막둥이로 딸을 얻었지만 오히려 아들이 아니라며 딸을 구박하였던 적이 있다.
- ↑ 유일한 자식인 모이라 브론즈비어드가 아들이 아닌 이유로 차별대우를 했다. 결국 모이라가 탈선하고 가출해버리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런 모이라를 당시 악의 세력이였던 검은무쇠 드워프의 수장 다그란 타우릿산이 위로해주자 그와 마음이 맞아 결혼까지 했다. 다만, 마그니는 그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했으며, 나중에 딸에게 용서를 빌기도 했다.
- ↑ 일본 황실 최고령 출산이었다. 키코 비는 1966년생, 히사히토 친왕은 2006년생. 또한 일본 황실 최초의 제왕절개이기도 하다.
- ↑ 딸이라는 이유로 자식 취급은 커녕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온갖 폭력을 당했다. 독립한 후에도 한동안 가정폭력 피해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정도였다.
- ↑ 왕실만큼 남아선호가 여전하나 일반 가정에서조차도 남아선호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다.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란 사상으로 남존여비가 존재하여 여성들은 수동적 존재이자 미천한 존재로 취급한 것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뿌리깊다.
- ↑ 와해된 시선의 등장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