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라이어 캐리

(머라이어 케리에서 넘어옴)
역대 그래미 시상식[1]
최고의 신인상
제32회
(1990년)
제33회
(1991년)
제34회
(1992년)
없음[2]머라이어 캐리마크 콘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
이름머라이어 캐리
MARIAH CAREY
분야음악
입성날짜2015년 8월 5일
위치6270 Hollywood Blv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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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머라이어 캐리 (Mariah Angela Carey)
국적미국
출생1970년 3월 27일, 뉴욕 주 헌팅턴
거주뉴욕 주 뉴욕
신장175cm A형
데뷔1990년 1집 <Mariah Carey>
가족슬하 1남1녀[3]
링크> > >

1 개요

Songbird Supreme[4]

1990년대 최고의 슈퍼스타이자 싱어송라이터, 아메리칸 스윗하트, 빌보드의 여왕

대중음악의 황금시대인 1990년대[5]를 평정했던 최고의 가수이자 완전히 망한 상태에서 2000년대에 화려하게 부활해 또 다시 팝계를 평정한 여가수이며 흑인여가수 커리어 끝판왕이다. 여가수들의 수명이 대체로 짧다는 것을 보았을 때 이만큼 세계적으로 성공한 여가수는 5손가락 안에 꼽는다.[6] MTV 선정 역사상 가장 위대한 목소리 1위에 선정되었다. 각종 매체에서 역대 전세계 여가수 가창력 순위를 따지면 5위 안에 무조건 등장하는 가수.[7]

,알앤비,힙합의 융합에 성공한 아티스트이며 캐럴의 여제이기도 하다.수 많은 여가수들의 롤모델이며 먼저 여가수 커리어의 정점을 찍은 대선배 휘트니 휴스턴의 가장 큰 라이벌이었으며 휘트니와 함께 가장 많은 가수들에게 영향을 준 여가수이다. 머라이어 이후에 나온 대부분의 보컬리스트들은 머라이어의 영향을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무조건 받았다.[8]

현재 살아있는 전설 중 하나이며 최상위권의 커리어를 가지고있다.[9]

그녀의 화려한 커리어 뒤에는 매우 가난했던 과거도 있었다. 이는 2집 'Make It Happen'의 가사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자신의 재능을 바탕으로 노력을 해서 성공한 인생승리의 표본들 중 하나이다.

전세계 1억 7천만 이상의 앨범 판매고와 2억 장이상의 레코드 판매(앨범+싱글)를 가지고 있으며 여가수로는 2위, 미국에서도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에 이어 앨범 판매고 여가수 2위.전세계 통틀어 음반판매(앨범+싱글) 순위 8위에 빛난다. 30세에 이미 빌보드 Hot 100 차트 넘버원을 15곡이나 만들어냈으며 38세까지 18곡을 만들어내면서 비틀즈에 이어 공동 2위를 기록하고 있다.콩라인 또한 (Dreamlover, Fantasy), 알앤비(We Belong Together, Butterfly, Honey), 가스펠(Fly Like A Bird, Make It Happen, My Saving Grace, Thank God I Found You), 소울, 힙합(It's Like That, Migrate), 발라드(All I Ever Wanted, Reflaction), 어덜트 컨템포러리, 댄스(Obsessed), 라틴(My All, After Tonight), 클럽(Loverboy, Heartbreaker), (Bringin'On The Heartbreak), 컨트리(Make It Look Good), 레게(Cruise Control) 오페라 등 갖가지 장르를 넘나드는 크로스오버형 가수.

Hot 100 18곡의 1위뿐 아니라 그 하위 부류인 알앤비/힙합 차트에서는 10곡의 넘버원, 팝 차트에서는 6곡, 댄스/클럽 차트에서는 17곡, 어덜트 컨템포러리 차트에서까지 7곡의 넘버원을 뽑아내며 빌보드의 메인 차트들 중 록 차트와 컨트리 차트를 제외한 모든 차트에서 1위곡을 뽑아냈다. 특히 그녀의 곡〈One Sweet Day〉는 Hot100차트 16주간 1위를 차지해 최장기 1위기록을 세웠고 현재까지 깨지지 않는 기록이 되었으며 그녀의 곡 <We Belong Together> 또한 14주 1위로 이 부문 공동 2위를 기록중이다.
빌보드 선정 1990년대 최고의 가수[Artist of the Decade]에 선정되었고 1990년대 빌보드 최고의 노래[Song of the Decade]는 <One Sweet Day>이고 2000년대 빌보드 최고의 노래[Song of the Dacade]는 <We Belong Together>이며 모두 머라이어의 곡이다.
그녀의 캐롤곡〈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는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 때(11월 부터)가 되면 빌보드 Hot 100에 50위 이상으로 재진입을 하는 기염을 토한다. 또한 저 전설의 캐롤은 피지컬 판매량 1400만장 디지털 판매량 350만건으로 약 1700만장의 싱글 판매고를 올렸다. 이는 피지컬로는 전체 10위 피지컬 + 디지털로는 전체 8위이다.

미국 뿐만이 아닌 아시아에서도 인기 있는 가수로서 유럽에서 인기가 비교적 약하다는 점을 아시아 지역의 엄청난 인기로 보완한다. 그도 그럴 것이 아시아 지역은 유럽 지역보다 훨씬 더 영/미권 팝가수의 진출과 성공이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에선 캐럴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는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흘러나오고 있으며 곡 〈Hero〉는 영어 교과서에도 실렸다. 머라이어는 한국에서 약 430만장을 팔아치우며 가장 많은 앨범을 판매한 여자 가수이다. 아무래도 한국에서 팝송이 대중가요만큼이나 주류음악이었던 90년대 초중반에 데뷔와 전성기를 맞이한 것이 크다. 음악도 한국인에 정서에 딱 들어맞는 발라드 위주의 사랑노래들이기도 하다. 나무위키의 이 문서도 다른 유명 팝가수들의 문서에 비해 내용이 꽤 많다. 왠만한 국내가수들보다도 많은 수준이다.

전성기 시절 일본 인기는 엄청나다. 해외가수들이 흥하기 매우 힘든 시장인 일본음반시장에서 대성공을 거둔 몇 안되는 팝가수이자 최고의 팝가수.[10]그녀의 앨범 《#1's》는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린 해외 앨범이며 3위, 4위, 8위에 그녀의 앨범들이 포진 되어있다. 게다가 일본 인기가수들도 하기 힘들다는 도쿄 돔 공연을 《Daydream》시절 3일, 《Butterfly》시절 4일, 《Rainbow》시절 2일분 모두 매진시키면서 총 9회분의 공연을 다 매진시켰다. 매진시킨 관석수를 합쳐보면 45만석이다. 오리콘 위클리 앨범차트 1위가 6개있으며 오리콘 위클리 싱글차트는 2위가 1개 있다. 일본에서만 1700만장 판매고로 일본내 해외가수 판매량 1위이다.

음역대는 0옥타브 파(F2)에서 5옥타브 라#(Bb7)까지다. 최고음 Bb7까지 올라가는 팝 가수나 소프라노들은 아주 드물긴 하지만 그래도 종종 있긴 한데 핵심은 최저음이 F2라는 것. 웬만한 남자가 내는 중저음을 내는 것이다. 따라서 사실 엄밀하게 따지면 머라이어는 콘트랄토인 셈. 중음도 안비는 데다가 완벽한 발성으로 구사한다는 것이 더 놀라운 점이다. Hot 100 넘버원 18곡 중 잭슨 5의〈I'll Be There〉리메이크를 제외한 17곡 모두를 본인이 작곡하는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하다. 머라이어의 노래들은 〈Hero〉같은 몇몇 곡들을 제외하면 난이도가 미친 듯이 높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렇다고 히어로의 곡 난이도가 낮다고 보기는 힘들다. 중간 정도. 쉬운 노래를 꼽자면〈I Still Believe〉정도가 있을 것이다. 이마저도 후반부에 4옥타브 가성이 있지만 진성 부분은 무난한 편. 팬들이 꼽는 미친 난이도 노래는 〈Butterfly〉, 〈Outside〉, 〈Lead the Way〉, 〈Fly Like a Bird〉, 〈Anytime You Need a Friend〉, 〈There's Got to Be a Way〉, 〈Whenever you call〉, <If It's Over> 등 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 곡들이 특히 최강의 난이도를 자랑한다는 것이지 다른 노래들도 굉장히 어렵다.- 특히 머라이어의 노래를 따라부르기 힘든점이 대부분의 노래의 음역이 굉장히 넓기 때문에 옥타브를 낮추거나 올려부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옥타브를 낮춰부르면 저음도 덩달아 낮아지고, 그렇다고 올려버리면 고음이 덩달아 더 올라가니.. 사실상 머라이어나 아레사 프랭클린 같은 음역대가 굉장히 넓은 가수가 아니라면 따라부르기 어렵다. 심지어 거기다 중간 중간에 3옥타브 음역대에서의 그로울링이나 팔세토등의 기교도 부려야한다..

고무줄 몸매의 소유자로 지금은 애엄마이기도 하고 40대의 나이라서 살이 쪘지만 다이어트를 하면 몸매가 드러난다. 그 예가 2008년 E=MC² 활동 당시. 그녀의 다리는 1조원에 달하는 보험에 가입되어있다.

그녀가 데뷔한지 25년이 되었기 때문에 락앤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격이 부여되었다. 사실 2015년 기준으로 25년차 가수지만 데뷔 앨범 발매시기가 작년 헌액대상 선정기간보다 좀 늦었기 때문에 올해부터 후보로 오를 수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락밴드들이 중점으로 헌액된다. 거기다 여가수들은 상대적으로 헌액되기가 어렵다. 또한 헌액된다 해도 데뷔 25년차가 되는 해에 바로 헌액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리고 유독 머라이어가 평론가들 사이에서 과소평가되어있는 가수 중에 탑이기때문에(...)[11] 현재로썬 후보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성공한 것이다.

-1995 Madison Square Garden 공연

2 음악 인생

2.1 데뷔 전

힘들고 가난한 환경 속에서 가수의 꿈을 키운 뉴욕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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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머라이어

아일랜드백인 미국인 어머니와 미국흑인과 베네수엘라계 흑인의 후손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어머니는 오페라 가수였다. 부모가 세 살 때 이혼하여 어머니와 살게 되었다. 이때 집안 환경이 막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그녀의 2집에 수록된 <Make It Happen>의 가사를 들어보면 알 수 있듯이 매우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신을 신발도 없었고 배고픔을 잊기위해 일부러 잠들려고도 했었다고 한다.머라이어에겐 언니가 있는데 이 언니는 아동 성추행을 당하고 나중에 매춘부가 되어서 가수 지망생이던 머라이어에게 용돈을 주면서 지원해 주기도 했다. 나중에 이런 사실이 머라이어를 곤란하게 했다. 1990년대 후반 미국의 방송인 바버라 월터스와의 인터뷰에도 이에 대한 언급이 잠깐 나온다. 머라이어 캐리의 오빠는 성공한 사업가였지만 언니가 문제였다. 성공한 이후 머라이어는 언니가 바른 길을 가기를 원했지만 지원해준 돈은 흥청망청 써버리고 여러모로 머라이어를 힘들게 했다. 아마도 머라이어가 토미 머톨라와 에미넴 다음으로 가장 싫어하는 인물일 듯. E=MC 앨범의 〈I Wish You Well〉에서 잘 되기를 빌었다.

뉴욕으로 이사한 후에는 가수 브랜다 K. 스타의 보조 가수로 활동했다. 물론 각종 아르바이트도 뛰었는데 웨이트리스 일을 하다가 머라이어 자신의 자존심 센 성격을 못이겨 때려치고 손님들의 코트를 받는 등의 일을 했다고(...) 그리고 잠깐 헤어숍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헤어숍 원장이 '에코'라는 별명을 붙이려 하자 화가 나 그만두었다는 얘기도 있다. 이후 머라이어는 #1's 앨범에서 브랜다의 〈I Still Believe〉를 리메이크해 은혜를 갚았다. 브랜다와 함께 어느 파티에 갔다가 콜롬비아 레코드사의(현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 SME) 토미 머톨라를 만나 데모 테이프를 건네주었는데 머톨라는 파티를 떠난 후에야 노래를 듣고 감명해 다시 파티에 돌아가 보았으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결국 머라이어를 다시 찾아내 음반 계약에 성공했다.콜롬비아에선 머라이어를 그 당시 최고의 주가를 달리던 여가수였던 휘트니 휴스턴의 대항마란 타이틀로 머라이어의 데뷔를 준비한다.[12]

2.2 혜성같은 데뷔

데뷔하자마자 대중들의 인기를 쓸어모은 머라이어 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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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집《Mariah Carey》활동 시절

그 후 캐리는 동명의 앨범 《Mariah Carey》로 데뷔한다. 앨범 수록곡 모두에 본인이 작곡에 참가했으며 평단의 환영을 받았다. NBA 파이널 경기에서〈America the Beautiful 〉을 열창하면서 화려한 첫무대를 치뤘다.[13]데뷔 이후 처음으로 무대에 선 만큼 인지도도 전무했었기 때문에, 관중들은 '뭐야 쟤는 누군데 여기서 노래를 부르지?'라 생각하며 머라이어가 노래를 부르기 전 야유를 퍼부었다. 하지만 머라이어가 노래를 마친 후, 야유들은 모조리 환호로 바뀌었다. 그만큼 첫 무대에서도 완벽한 실력을 뽐냈다.

이 공연 이후 데뷔싱글인〈Vision of Love〉는 본격적으로 차트를 치고올라가서 1위를 해내며 신고식을 제대로 치뤘다. 판매량은 미국 내 1000만 장,월드와이드 1500만 장으로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이 앨범에서만 빌보드 Hot 100 1위곡을 4개나 뽑아내면서 1위곡을 가장 많이 배출한 데뷔앨범 타이틀을 얻는다. 1위곡들은〈Vision of Love〉, 〈Love Takes Time〉, 〈Someday〉, 〈I Don't Wanna Cry〉. 이에 그래미도 일생에 단 한 번뿐이라는 Best New Artist상을 수여하게 된다. 데뷔앨범은 그래미 수상 이후 빌보드 앨범차트 11주 연속1위를 했고 1991년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 되었다. 당시에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차트에서는 1위행렬에 앨범은 주구장창 팔려나갔고 각종 시상식을 휩쓸어버리는 기염을 토하는 인기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데뷔하자마자 정상에 오른 탓에 엄청난 논란들 또한 따라붙게 된다.가족이나 친척 중에 유명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데뷔전 커리어라고는 인지도 낮은 가수의 백보컬을 했던 것이 전부였던 갓 20대 흑인 소녀가 순식간에 음악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으니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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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집《Emotion》활동 시절

그 후 국내에는 돌고래(Whitsle, 하이노트) 소리로 유명한 곡 〈Emotions〉가 수록된 2집 앨범 《Emotion》을 발표하지만... 1집의 성공에 뒤따른 논란들이 터져버리고 결국 소포모어 징크스를 이기지 못하며 평단에게 기교만 있는 앨범이라고 가차없이 까이며 판매량도 미국 내 450만 장,월드와이드 800만 장으로 급 추락하게 된다.초반엔 1집의 여파로 첫 싱글 〈Emotion〉이 1위에 오르는 성공을 거뒀지만 2번째 싱글인 〈Can't Let Go〉가 표절시비가 붙으면서 차트 2위에서 멈춰버린다.[14]3번째 싱글인 〈Make It Happen〉가 5위까지 가며 그럭저럭 체면치레를 하긴했으나 앨범의 부진을 면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립싱크 의혹과 다른 사람이 불러 그래미에서 <Best New Artist>상을 받은 밀리 바닐리와 같이 다른 사람이 불러 준 거 아니냐는 의혹까지 흘러나오니 흠좀무. 데뷔 당시 싱어송라이터라기엔 모델이나 영화배우를 연상케 하는 외모도 이 논란에 한 몫했다.

그러자 화난 머라이어는 다음 해 MTV를 통해 라이브 공연을 열어 충공깽을 시전했다. 이 공연을 앨범으로 발매한 라이브앨범인《MTV Unplugged》는 빌보드 앨범차트에서 3위를 찍었고 이날 공연에서 리메이크한 Jackson5의 곡인 〈I'll Be There〉은 빌보드 Hot100 1위를 찍는 기염을 토하면서 머라이어의 6번째 1위곡이 된다.결국 앨범은 전 세계 700만장이상이 팔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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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미 모톨라와 머라이어 캐리의 결혼식 장면

다음해에 소속사 사장이었던 토미 모톨라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게된다. 약 20살연상의 소속사 사장과 결혼하게 되면서 인기가 식을 줄 알았으나 토미모톨라와의 결혼은 그녀의 전성기의 신호탄을 날리는 것이었다.

2.3 전성기 시절

앨범만 내면 몇천만장 팔던 시절,싱글만 내면 1위찍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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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집《Music Box》 활동 시절

그 후 1993년 하반기, 머라이어 캐리는 전세계 3,20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린 앨범 《Music Box》를 내놓는다. 첫 싱글 〈Dreamlover〉는 6주만에 차트 정상을 탈환하고 8주 1위를 거머쥐었고, 두번째 싱글인 〈Hero〉도 덩달아 1위를 기록하게 된다. 그리고 머라이어의 전세계인기를 한층 더 높인 <Without You>이 초대박을 쳤다.비록 빌보드에선 더블싱글 발매로 인해 3위에서 6주씩이나 머물렀지만 유럽과 아시아에서 엄청난 인기를 구사한다.그 후 가스펠 곡인 〈Anytime You Need A Friend〉 등 싱글들이 연달아 히트를 치면서 미국내에서 다이아몬드 인증을 받았고 유럽에서도 많은 앨범을 팔아치운다. 아시아 지역에서의 인기도 엄청났는데 일본에선 200만장 인증을 받았고 한국에서도 판매고 100만 장을 찍는다. 국내에서 팝 앨범 100만 장 판매량의 기록은 마이클 잭슨, 휘트니 휴스턴과 머라이어 캐리 셋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이 시기는 휘트니 휴스턴의 <보디가드>OST앨범이 한창 세계를 폭격하고 그 여파가 남아있던 시기라서 시상식들에서 상들을 휘트니에게 넘겨줄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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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럴 앨범《Merry Christmas》활동 시절

이렇게 《Music Box》가 대박을 치고 1994년 가을, 루서 밴드로스 옹과 함께 부른 〈Endless Love 〉[15]가 빌보드 2위까지 치고 올라가면서 성공을 이어간다. 그리고 1994년 겨울, 크리스마스 앨범계의 전설로 평가받는 《Merry Christmas》를 공개한다.[16]수록곡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는 국내외 많은 가수들이 따라불러 매년 크리스마스 때만 되면 캐럴 음원 차트를 점령해버려 빌보드지에서도 역대 크리스마스 송 No.1으로 선정했다. 이 전설적인 캐럴 앨범은 총 1500만장이 팔려나가면서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캐럴 앨범이 되었다.

1995년 상반기까지의 인기로 볼때 머라이어는 아직 휘트니의 아성을 완전히 넘진 못했다.비록 3집으로 전세계음악시장 정상권에 올라 휘트니와 투톱을 달리긴 했지만 보디가드 앨범으로 초대박을 친 휘트니의 인기를 따라잡기엔 아직 뭔가 강력한 한방이 부족했다. 머라이어는 1995년 하반기 희대의 명반을 가지고 컴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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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집《Daydream》 활동 시절

발매 1달 전 팬들의 빗발치는 요구로 앞당겨서 발매한 첫 싱글 <Fantasy>는 마이클 잭슨의 <You Are Not Alone>에 이어 빌보드 역사상 두번째 1위 핫샷 데뷔곡이 되었고 여성가수로는 최초이다. 이 곡은 2일 동안 무려 38만장이 팔려나가서 단 2일만의 판매량 집계로 1위에 오른것이며 라디오 공개는 이 후에 했기 때문에 오직 판매량으로 1위에 올랐다. 심지어 핫샷 데뷔 후 1~2주 버티고 하락하는 다른 핫샷 데뷔곡들과 달리 이곡은 8주동안이나 정상을 지켰다.그렇게 리드싱글의 대성공을 바탕으로 1995년 10월, 《Daydream》이 발매되었다. 이 앨범도 역시 다이아몬드 인증을 받으며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다. 이 앨범의 후속싱글 또한 대박을 치면서 본격 3대 디바 빌보드 쟁탈전이 벌어졌다. <Fantasy>의 두달간의 차트 독주 후 1위를 뺏은 가수가 바로 휘트니 휴스턴이다. 휘트니의 <Exhale> 이 머라이어를 끌어내리고 핫샷 1위 데뷔를 한다. 하지만 1위의 기쁨도 잠시. 머라이어 캐리와 [보이즈 투 멘]이 함께 부른 〈One Sweet Day〉가 빌보드 정상을 16주간 차지해 빌보드 최장기 1위곡으로 등판하면서 현재까지 20년 넘게 아직도 깨지지 않는 기록을 가지게 되었다.[17] 그리고 머라이어 캐리의 <One Sweet Day> 를 끌어내린 곡은 바로 셀린 디온의 <Because You Loved Me> 이다. 저 곡이 6주 동안 1위를 차지하는 동안 머라이어의 3번째 싱글인 <Always Be My Baby> 가 나왔다. 셀린 덕분에 핫샷 1위 데뷔를 놓치고 2위 데뷔(...) 게다가 셀린한테 밀려 4주 2위후 1위를 드디어 거머쥐고 장기집권을 하나 싶었더니 2주 1위하고 또 다른 곡에 밀려 5주 2위를 하며 총 9주 2위를 기록해 머라이어의 최장기 2위곡이 된다.

1996년 이 해에 머라이어의 인기는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영역에 이르렀다. 일본 도쿄돔 5만석 공연 3일분, 그러니까 15만석을 3시간만에 매진시키는 기염을 토하고 미국에서도 잘 나가는 가수만 한다는 뉴욕 Madison Square Garden 공연도 매진시키며 첫 대형투어는 대성공을 거둔다.또한 그래미 어워즈에서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는 기염을 토했으나, 정작 수상에는 실패했다. 머라이어 캐리가 가졌던 당시의 인기나 기록들은 타 가수들이 접근하기 매우 힘들만큼 독보적이였는데, 이를 견제하고 자신들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시상하지 않은 것-(병크)-으로 유추된다.-백인이 아닌 것도 꽤 영향을 미쳤을 듯- 실제로 전 남편이자 소속사 사장이던 토미 머톨라도 이를 두고 굉장히 어이없어 했다. 그리고 이 일 때문에 부부 간의 사이가 더 틀어진 것 같다고 자서전에 썼다. 덕분에 이후로 해방 앨범 이전까지 단 한번도 그래미 시상식에 참여하지 않았다. 어쨌건 인기가 워낙에 엄청났기 때문에 라이벌이라 할만한 가수가 없었다. 셀린 디온이 엄청난 속도로 치고 올라왔으나 아직은 인기에 격차가 있었고 80년대를 풍미했던 마돈나자넷 잭슨은 여전히 강했지만 최전성기는 지난 상태였다. 라이벌이었던 휘트니 휴스턴은 여가수 역사상 최대의 커리어를 낸 보디가드 앨범 이후 공백기가 너무 길었으며[18] 30대 중반의 나이에 접어든 시점이기도 했고 상술한 차트전쟁에서 머라이어에게 11주 동안이나 밀려서 2위를 했기에 머라이어의 독주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토미모톨라의 앨범 판매량을 위한 싱글 발매 억제때문에 4번째 싱글은 발매하지 않았다. 앨범은 총 2500만장이 팔리고 미국 내1000만장을 팔며 두번째 다이아몬드 인증앨범이 되었다.

2.4 새로운 변화

아직은 탑스타, 그러나 가파르게 하락하는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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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집《Butterfly》활동 시절

토미 머톨라와의 별거를 인정한 머라이어 캐리는 다음 앨범 《Butterfly》에서 디바의 이미지에서 완전히 탈피해 탱크톱킬힐 등 자신이 원래부터 하고싶었던 섹시 컨셉을 하기 시작한다. 앨범은 대박이지만 그전의 머라이어를 본다면 중박을 쳤다. 미국기준 전작에 반토막이난 500만장 월드로는 1500만장. 하지만 평단과 매체는 등을 돌리기 시작했고 그 후로 평론가들에게 가열차게 까이기 시작했다. [19] 전작 <Daydream>의 후파와 여전히 하늘을 찌르는 인기덕분에 첫 싱글 <Honey> 는 핫샷 데뷔를 해 머라이어 캐리는 현재 독보적인 핫샷1위 데뷔곡 최다보유 가수이다. 두번째 싱글 <My All> 은 아쉽지만 놀랍게도 2위로 데뷔하는 기염을 토했고 다음주에 바로 1위를 차지하지만 첫 1주 1위곡이 되고만다. 놀라운 점은 18곡의 1위곡 중에서 1주 1위곡은 단 2곡뿐이다.
1998년 투어의 도쿄돔 공연 4일분을 1시간만에 매진시키면서 머라이어의 일본인기는 1998년에 인기절정을 찍게된다.

베이비 페이스의 제작 아래, 휘트니 휴스턴과 함께 《이집트 왕자》의 삽입곡인 〈When You Believe〉를 내놓아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이 곡은 언론에 의해 라이벌로 회자되던 두 사람이 함께한 첫 작업이자, 그간의 불화설을 종식시키는 기회가 되었다. 그러나, 화제성에 비해 차트에서는 비교적 낮은 순위를 기록했다. 이 곡은 1998년 하반기에 머라이어의 첫 베스트 앨범(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빌보드 1위곡 위주로 수록곡이 선정되어, 머라이어는 베스트 앨범이라고 칭하지는 않았다.) #1's에 수록되었다. 휘트니 휴스턴과의 신곡을 포함한 4곡의 신곡과 13곡의 1위곡, 브라이언 맥나잇과의 듀엣곡을 수록한 이 앨범은 전 세계 180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했으며,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린 해외앨범이 되었고, 앨범의 싱글 는 4위를 기록했다.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는 한국의 6.25 전쟁 당시 마릴린 먼로의 위문 공연을 컨셉으로 촬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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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집《Rainbow》활동 시절

그리고 그 다음 해인 1999년, 음악의 다양성을 앞세운《Rainbow》 앨범을 내놓으나 리드싱글인〈Heartbreaker〉에서 보인 소녀취향과, 과도한 노출로 인해 언론에서는 연일 그녀를 향한 비판을 쏟아냈다. 앨범 판매량은 전작들에 비해 너무나 저조하게 떨어졌지만 여전한 인기덕분에 1000만장을 팔았고 두 곡의 1위곡을 만들어 내며, 15곡의 1위곡을 보유한 가수가 되었다. 동시에 1990년대에 한해도 빠짐 없이 싱글을 1위에 올려놓은 가수로 기록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해 빌보드에서 선정한 1990년대를 빛낸 아티스트 1위에 랭크되었다. Billboard Music Award 에서 <Artist Of The Decade>를 수상한머라이어는 수많은 가수들과 대중들의 기립박수와 환호 속에서, 그녀를 향한 루머와 수많은 이야기들을 언급하며, 그것들을 잊으라고 수상소감을 전했다. 동시에 팬들을 향한 감사와 사랑도 잊지 않고 강조했다.머라이어 최고의 수상소감으로 꼽힌다.

2.5 흑역사

대중들에게는 한물간가수, 언론에겐 끝나버린 커리어라는 말을 듣던 진정한 흑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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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집이자 사운트트랙 앨범《Glitter》활동 시절

2000년 소니와 결별하고 버진 레코드와 8000만 달러라는 상당한 금액에 계약을 한다. 2001년 반자전적 내용을 다룬 영화 《글리터》를 발표한다. 새로운 소속사였던 버진레코드는, 1990년대 최고의 가수였던 만큼, 그녀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당시 뉴욕 전역에는 머라이어가 주연한 새로운 영화와 그 OST와도 같은 새 앨범의 홍보물이 깔렸을 정도였다. 머라이어 역시, 하루에 2~4시간만 잠을 자며 음반과 영화 작업에 매진했다. 그러나, 후반으로 갈수록 엉성한 스토리와 배우들의 연기력이 도마에 올랐고, 결국 그녀의 명성에 비해 영화는 흥행에 참패하는 수모를 겪었다. 그리고 동명의 음반이 발매되던 2001년 9월 11일, 뉴욕의 쌍둥이 빌딩을 비롯한 미국 본토가 공격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면서(9.11테러), 음반 역시 참혹할 정도로 저조한 판매량을 기록했다. 이와 관련해서 경악할 만한 사진이 있으니 이것이다.[20]머라이어는 이 앨범에 애착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 후유증인지 그 이후 머라이어는 글리터에 관한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21] 첫 싱글이었던 <Loverboy>는 빌보드 싱글차트 2위를 기록했다.[22] 하지만 후속 싱글이던 Don't stop은 차트진입에 실패하고 그나마 Never too far은 당시 9.11테러 추모열기 속에 <Hero>와 함께 라디오에서 틀어져서 80위권에 진입한다.

게다가 당시 잠도 제대로 못자고 일했던 머라이어는 이상한 행동들을 보이다가 결국 과로로 쓰러져 병원으로 긴급 후송되어 입원하면서, 모든 활동이 잠시 정지되기도 했다. 그녀가 병원에 입원하자, 가십지와 언론들은 기다렸다는 듯 자살설/자살시도설을 제기했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다. 쓰러지면서 깨진 유리잔으로 인해 그런 루머가 생긴 것. 머라이어는 자살 루머에 대해 그런일은 절대로 있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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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집《Charmbracelet》활동 시절

영화와 음반의 연이은 실패로, 결국 버진레코드는 2800만 달러의 위약금을 물어주고 머라이어와 계약을 해지했다. 머라이어는 버진레코드와 잘 합의하여 계약을 종료하고 유니버셜로 소속사를 옮겼다. 유니버셜에서의 첫 작품이었던 《Charmbracelet》은 2집 《Emotions》이후 업템포의 곡이 첫 싱글이었던 것과 대조적으로 발라드인 <Through The Rain>이 첫 싱글이었다. 이 앨범 역시 판매량이 저조하고 차트 성적 역시 암담했으며 언론에서는 연일 비난에 가까운 목소리를 쏟아냈지만, 머라이어는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그리고 머라이어의 커리어상 역대 최대 규모의 월드투어 역시 이 시기에 이루어졌다. 덕분에 한국에서도 내한공연이 성사되었다. 서울뿐 아니라 부산에서까지도 공연을 했는데 서울공연은 굉장히 혹평을 받았다.[23]

무엇보다 이 시기는 그전의 머라이어에겐 전혀 없었던 일이 닥쳤는데 바로 살이 찐 것이다. 머라이어는 데뷔초기에는 너무도 마르고 가녀린 몸매의 소유자였으며 90년대 중반에 들어서는 보기 딱 좋을 정도로 날씬했고 90년대 후반엔 운동으로 인해 건강미를 뽐내는 몸매였었다.따라서 노출을 해도 전혀 문제가 없었으나 2000년대가 들어서면서 스트레스를 비롯한 여러 요인이 겹치면서 살이 찌기 시작한 것이다.게다가 노출도 그전보다 심해졌으니...팬들과 대중은 생전 처음보는 머라이어의 살찐 외모를 보고 놀랐으며 안티와 언론들은 이 점을 가지고 머라이어를 엄청 깐다.

사실 이 시기의 두 앨범의 판매량이 각각 200만장이 넘어서 뭐가 그리 망했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저때의 음반시장은 현재보다 훨씬 컸다. 저정도 실패로 본다면 현재 음반시장에선 50만장대 판매량으로 보는게 맞을듯 하다. 이 시기는 팝역사상 마이클 잭슨,휘트니 휴스턴,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암흑기와 함께 가장 큰 암흑기로 뽑힌다. 그나마 머라이어의 경우는 저 셋의 경우보다 그나마 나았던 것이 머라이어는 이 후 재기를 해서 어느 정도 흑역사를 만회하는데 성공했으나 마이클과 휘트니는 아예 세상을 떠나버렸고 브리트니도 재기를 사실상 하긴 했으나 아직 예전의 떠올랐던 시기를 되찾은 것이라고 하기엔 조금은 부족하기 때문.

2.6 화려한 복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드라마틱한 재기, 순식간에 전성기의 인기를 되찾은 머라이어 캐리

2004년 12월, 머라이어 캐리는 디즈니랜드에서 공연을 가졌다. 이 공연은 이듬해로 예정된 머라이어 캐리의 컴백 앨범을 기대하는 많은 팬들에게 화제가 되었다. 그녀는 이 공연에서 [ALL I WANT FOR CRISTMAS IS YOU]를 불렀는데, 그간의 비난들을 비웃는 듯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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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집《The Emancipation of Mimi》활동 시절

이듬해, 첫 싱글 〈It's Like That〉이 공개되면서 언론과 대중들은 다시 한번 그녀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머라이어는 지금까지 시도했던 힙합+R&B 보컬의 완성과도 같은 세련된 음악을 선보였던 것이다. 이어 발매된 앨범 《The Emancipation of Mimi》는 머라이어 캐리의 앨범 첫 주 최다 판매량을 갱신하면서 과거 디바로써의 머라이어가 아닌, 트렌드를 이끄는 전설과 같은 인물로 컴백했다. 두번째 싱글 〈We Belong Together〉는 무려 14주동안 1위를 차지하면서 그 해 미국 내 최고의 히트곡으로 기록됐다. 심지어 이 곡은 빌보드 Hot100차트 2000년대 결산 1위까지 거머쥐었다. 당시 <We Belong Together>는 빌보드 차트 기록을 연이어 경신하는 경이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어 세 번째 싱글 〈Shake It Off〉이 당시 1위를 하고있던 <We Belong Together>와 함께 나란히 2위를 기록, 자신의 곡으로 차트의 1위와 2위를 모두 차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어 머라이어 캐리는 신곡과 리믹스 네 곡을 묶은 《Platinum Edition》을 발매하여 싱글 〈Don't Forget About Us〉 마저 1위에 올려놓는 괴력을 발휘한다. 이 앨범으로 수많은 상을 거머쥔 머라이어는, 데뷔 이후 인연이 없던 그래미 어워즈에서도 R&B 부문 3개의 상을 모두 휩쓰는 기염을 토했다. 또한 1996년 그래미에서 마지막으로 〈One Sweet Day〉의 무대를 선보인 이후 한 번도 그래미에 참석조차 안한 머라이어가 10년만에 그래미 무대에 올랐다.10년전에는 비록 최정상의 가수였으나 6년차 가수였던데 반해 이 당시 머라이어는 16년차의 어엿한 레전드 가수였다. 그래미 무대가 끝난 후 거의 모든 관중들이 기립박수를 쳤다.[24]평론가들은 지금까지 머라이어가 시도했던 힙합+R&B의 완성판과 같다며 호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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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집《E=MC²》활동 시절

3년 후 2008년, 첫 싱글 〈Touch My Body〉가 발표되고 엄청난 다이어트와 뮤비가 함께 화제가 되어 여가수 첫주 최고 디지털 판매량 기록을 갱신하며 1위를 차지하게 된다. 현재까지 마지막 1위곡인데 이 곡까지 18곡의 1위곡을 가져 비틀즈에 이어 두 번째로 1위곡을 많이 배출해낸 가수로 등극했다. 솔로로는 공동 1위. 이어 새 앨범 《E=MC²》가 발매되었다. 이 앨범은 2005년에 갱신했던 개인 첫주 최다 판매 기록을 다시 또 갱신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전작의 성공 공식을 답습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다. 이는 1995년 [Daydream] 앨범 당시에 있었던 비판이기도 했다. 전작에 비해 상업적인 면이 더 보였지만,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기에는 확실히 유리해보이는 앨범이었다. 그러나, 돌연 두번째 싱글이었던 [Bye Bye] 뮤직비디오 촬영 무렵 비밀리에 진행된 결혼과 함께 활동이 흐지부지 되면서 이 앨범은 전작과 같은 히트를 기록하지는 못했다.

2.7 복귀 이후

현역에서 전설로의 연결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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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집《Memoirs Of An Imperfect Angel》활동 시절

2009년 머라이어 캐리는 〈Obsessed〉로 복귀를 한다. 이 곡의 가사와 뮤직비디오에서 보여준 머라이어의 남장으로 언론과 대중들은 에미넴을 향한 디스곡이라고 추측했지만, 머라이어는 부정했다. 또, 이 싱글은 단 한번의 프로모션으로 다운로드 120만 건이라는 수치를 남기며 의외로 선전하지만 7위에 그친다. 그 후 발매된 앨범 《Memoirs Of An Imperfect Angel》은 전작들과 달리, 차분한 듯한 보컬과 약간은 지루하다고 느낄 수 있는 편곡 등으로 대중들에게 어필하지 못하며 흥행에는 실패했다.

2010년 모습

2010년 《Memoirs of An Imperfect Angel》의 리믹스 앨범 《Angels Advocate》가 발매된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얼리샤 키스, ne-yo, 니키 미나즈, 메리 제이 블라이즈, R. 켈리, 구치 메인, 릴 웨인, 트레이 송즈, 루다크리스 등 여러 힙합&알앤비 아티스트의 피처링 녹음까지 완료했으나 어른의 사정으로 취소되었다. 본작은 머라이어 커리어 사상 가장 이질적인 미완성작으로 남았다.

그 후 두 번째 크리스마스 앨범 《Merry Christmas Ⅱ You》를 발매해 활동하였다. 이 무렵, 그녀의 임신설이 제기 되었는데 머라이어는 그 루머에 대해 일절 이야기 하지 않다가, 그해 백악관에서 진행된 크리스마스 공연에서 오바마 부부에게 처음으로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렸고 이후 언론에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 보도 되었다. 물론 그 전부터 팬들과 언론, 대중들은 그녀가 임신한 사실을 모를 수 없었지만...

2011년 5월 머라이어는 예정 일자보다 조금 늦게 쌍둥이를 출산하였고 남자 아이의 이름은 모로칸 스콧 캐넌, 여자 아이의 이름은 먼로 캐넌[25]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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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아이돌 시즌 12의 심사위원이 된 머라이어

2012년 7월, 아메리칸 아이돌에 심사위원으로 출연하는 것이 확정되었다.

2012년 8월 초에 새로운 싱글이 발표되었다. 싱글 제목은 〈Triumphant (Get 'Em)〉이며 피쳐링으로는 릭 로스와 미크 밀이 참여했다.

평론가들은 이 곡이 너무 객원 래퍼들에게 의존한 나머지 머라이어의 보컬이 묻혀버렸다는 점을 공통으로 지적했다. 이러한 점은 〈Triumphant (Pulse Radio Remix)〉에서는 그녀가 전곡을 혼자서 부르면서 희석되었으나 라디오 에어플레이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이 싱글에 대한 일반 대중의 반응은 한마디로 '무관심'이었다. 익명의 한 음악 관계자는 "만약 사람들이 머라이어의 신곡을 찾아서 듣고 악평을 했다면 그래도 최소한 사람들이 머라이어에 대해 여전히 관심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라도 하죠. 머라이어의 〈Triumphant〉는 그런 악평조차도 많지 않았습니다. 라디오에서 잘 틀어주지도 않았죠. 40이 넘은 여가수가 팝 신에서 여전히 관심을 받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라고 말했다.

2013년 2월 19일에는 디즈니 영화 《OZ》의 사운드트랙으로 실리게 될 〈Almost Home〉이라는 곡이 발표되었다. 머라이어 캐리의 공식홈에서 들어볼 수 있다.

2.8 두 번째 암흑기

예전에 비해 많이 식은 인기, 그러나 현역가수 못지않게 커리어를 쌓아나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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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집《Me. I Am Mariah... The Elusive Chanteuse》활동 시절

2013년 5월 6일, 하반기 발표 예정인 앨범 《The Art of Letting Go》에 수록될 새 싱글 〈#Beautiful〉을 발표하였다.

R&B 신성으로 떠오르는 미겔(Miguel, 2013년 〈Adorn〉으로 그래미어워즈 Best R&B송 수상)' 과 함께 한 미드템포 곡으로 Hot 100 차트 15위까지 오르며 선전했다. 싱글 발매 직전 공개된 뮤직비디오에선 다시 고무줄처럼 살이 빠진 모습으로 여전한 실력을 보여주었고 여러 평론가들에게 2013년 Song of the Summer라는 호평을 받으며 곧 발표될 새 앨범에 대한 기대치를 높였다. 해당 싱글은 빌보드에서도 15위에 오르는둥 선전할 듯했다. 하지만 부족한 홍보와 리믹스 뮤직비디오 촬영 중 팔에 부상을 입고 활동중단과 함께 앨범발매 역시 연기되었다. 말이 부상이지 넘어져 갈비뼈가 금이 가고 팔은 1년이 지난 지금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였다. 운동을 하지 못해 체중증가는 덤.

2013년 11월 11일 이벤트형 싱글인 〈The Art Of Letting Go〉가 발표되었다. 모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리스닝 파티라고 속이고 라이브를 하며 나타나 팬들을 놀래는 영상이 유명하다. 2014년이 오고 2월 14일 발렌타인 깜짝 싱글 〈You're Mine (Eternal)〉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두 싱글 모두 전자는 100위권에도 들지 못했고 후자는 88위에 그쳐 그 망했다는 《Charmbracelet》의 싱글보다도 처참한 성과를 보였다. 그러던 중 드디어 5월 앨범 발매 소식이 들렸으나 그동안 딱히 리드싱글이라 불리는 싱글이 없어 걱정을 샀지만 앨범 자체에 집중을 하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4년 만에 정규앨범 《Me. I Am Mariah... The Elusive Chanteuse》발매했다. 어린 시절 스케치북에 본인을 그린 그림에 <나. 나는 머라이어다(Me. I Am Mariah)>라 써놓은 것에서 모티프를 얻었다고 한다.

머라이어 캐리의 음악을 많이 들어온 사람, 즉 팬들은 이 앨범을 머라이어 캐리 역사상 가장 완성도 높고 통일성 있는 고퀄리티 앨범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현 소속사 데프잼과의 마지막 작품이니만큼 적절한 지원과 매니지먼트가 구비되지 않아 허공에 던져놓고 손을 놓은 상태이다. 발매 후 거의 한달이 지났는데도 싱글이 없는 상태. 앨범을 통째로 들을 사람만 들으라는 전략일 수 있겠으나, 첫주 판매량으로 끝나버리는 요즘의 음반시장에서는 성공하기 어렵다. 일각에서는 아예 활동의 시도도 하지 않았으니 망했다고도 말할 수 없다고 하고 있다. 곡의 난이도는 거진 별 다섯 개씩으로, 진성과 휘슬 모두 본인의 역대 최고음이 한번씩 더 등장한다. 3옥타브 라 (A5), 5옥타브 솔# (G#7) 둘 다 〈Heavenly (No Ways Tird / Can't Give Up Now)〉라는 곡. 부상으로 인한 회복기간동안 믹싱에도 여러 번 상당히 공을 들여 완성도가 높다.

팬들은 뛰어나다고 평가하지만 대중의 평가는 참담하다. 머라이어 캐리 최악의 흑역사. 앨범은 미국에서 첫주 판매량 5만 장을 찍고 차트에서 광탈했고[26]현재까지 월드와이드로 총 30만 장이 판매됐다. 전작인 '회고록'이 이 200만장을 판매한 것에 비하면 1/15의 안습한 판매량을 보이고 있으며 싱글도 15위까지 올라간 〈#Beautiful〉을 빼면 모두 망했다. 분명 나쁜 음반은 아니다. 깔끔하게 잘 빠진 앨범이고 그 전까지 머라이어가 보여주던 트렌드를 쫓아가기만 하던 행보와는 달리 음악적인 성찰이 담겨있어 평은 상당히 좋다. 완성도 높게 잘 짜인 앨범이지만 나쁘게 평가하자면 모든 곡이 다들 비슷비슷하게 재미가 없다는 말도 되고, 실제로 킬링트랙이라 할 만한 곡이 없어서 결국 흥행에는 실패하게 되었다.
앨범이 망한데엔 앨범자체보다 더 큰 이유가 있다. 일단 리드싱글인 <#Beautiful>의 경우만 해도 꽤 오랜 공복기를 깨고 나오는 것임에도 무려 24위로 차트에 데뷔한 후 15위까지 치고올라가고있었다. 하지만 부상과 여러 이유로 인해 앨범이 1년이나 연기되었고 이 사이에 리드싱글로 모였던 대중의 관심도 많이 식어버렸다. 게다가 소속사에서는 이 앨범이 머라이어의 소속사에서의 마지막 앨범이라 그냥 나몰라라하는 식으로 프로모를 잡아주지도 않았다. 결국 앨범의 실패엔 머라이어와 앨범의 문제보단 앨범발매의 연기와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못했던 홍보활동에 있었다. 때문에 머라이어가 정말로 소위 말하는 한물 간 가수가 될지는 다음 정규앨범이 말해줄 것이다.[27]

올해 2015년에 라스베가스공연을 하기로 했고 공연에서 그녀의 1위곡들과 히트곡들을 부를 예정이다. 또한 그녀의 1위 컴필레이션 베스트앨범인 <#1's>를 <Rainbow>앨범 이후부터의 1위곡들도 추가하고 신곡을 담아 발매할 예정이라고 한다. 에픽레코드의 사장 L.A리드가 머라이어의 커리어를 살릴 수 있다고 자신해 그와 계약하려했으나 계약금이 한화 3억이라는 처참한 계약금이었다.하지만 계약이 취소됐다는 소문이 잠깐 돌았지만 결국 에픽레코드와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보인다. 팬들에겐 2005년에 L.A리드와 재기를 이루어냈으니 이번에도 재기를 이루리라는 희망이 있다.

2.9 다시금 반동을 노리는 전설

4월 27일에 베스트 앨범의 리드싱글로 추정되는 <Infinity>가 공개되었고 5월 15일엔 베스트앨범 《#1 To Infinity》가 발매되었다. Billboard Music Award에서 <Vision Of Love>를 불렀으나 역시나 그녀의 목상태로는 더 이상 부를 수 없다고 생각될 정도였으나 그 후의 TV쇼들에선 훌륭한 라이브를 선보이며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라스베가스에서의 공연도 활발하게 진행 중인데 역시나 라이브는 안습이다. <Honey>와 같은 속삭임 창법을 쓰는곡들이 가장 소화못하는 곡이고 그 다음으로 소화못하는것이《 Daydream》앨범 곡들이다.팬들은 이 앨범을 들어서 알겠지만 다른 앨범들과 다르게 곡들을 부를 때 목소리를 가늘고 얇게 해서 더욱 더 맑고 아름다운 미성을 낸다. 현재 목상태론 이 창법을 소화하기엔 어려움이 있다.하지만 2014년만큼의 심각한 라이브는 아니라서 팬들은 만족하는 중이다. [28]

2015년 8월 5일엔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이름을 새겼다.

현재 호주에서 4번째로 부자인 제임스 패커와 연애를 하고있으며 결혼까지 갈 생각도 있는듯하다. 무엇보다 제임스 패커가 자신의 쌍둥이아이들을 잘 챙겨주는 모습에 머라이어가 감동한듯.

그녀는 8월 중순, 트위터에 자신의 최대암흑기 시절[29] 곡인 <Through The Rain>의 가사일부인 "I Can Stand Up Once Again For My Own"을 올리면서 자신도 재기의 뜻이 있다는것을 밝혔다.

'켈리 & 마이클' 쇼에서의 Vision of Love와 Infinity 공연.

이후 TV쇼들에서 체중관리도 많이 하고 목 상태도 확실히 좋아진 상태를 선보이며 다시 반동을 노리고 있다. 실제로 머라이어 캐리의 경우 살이 찌거나 목상태가 안 좋으면 보는 사람이 불편할 정도로 위축되어 있는 모습을 보이는 편인데 (대표적인 것이 2015년 빌보드 어워즈에서의 공연) 체중관리와 함께 목상태가 다시 좋아지면서부터 과거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다시 돌아와 팬들을 안심시키고 있다. 물론 전성기때의 미친 가창력에는 비교할 수 없지만 솔직히 전성기때의 머라이어 캐리를 이길 수 있는 보컬리스트가 몇이나 되겠는가(...) 참고로 이 영상의 백미는 'Infinity' 후반부의 하이 노트를[30] 머라이어가 성공적으로 내자 뿌듯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백업 보컬리스트들.

2015년 12월에도 어김없이 크리스마스 공연을 열었다.작년에 했던 장소인 Beacon Theater에서 공연을 했는데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를 비롯한 자신의 크리스마스 시즌 송들을 공연했다. 베이비페이스와의 듀엣 곡도 있다. 비록 예전에 비할바는 못되지만 최근 다이어트와 목관리를 꾸준히 하더니 라이브 실력이 많이 좋아졌다. 내년에 새 앨범으로 컴백 예정이라고 한다.[31] 누가 워커홀릭 아니랄까봐

전체 공연.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


2016년 2월,꽤 긴 연애끝에 제임스 패커와 약혼을 했다.곧 결혼까지 할거라고.팬들은 이번이 벌써 3번째 결혼이니만큼 머라이어의 행복을 빌어주고 있다. 비록 제임스 패커가 미란다 커와의 연애때문에 안좋은 소리가 많지만...결혼할지는 머라이어 본인이 결정하는 것이다.아마 제임스 패커와의 사랑이야기가 다음 앨범에 영향을 미칠듯하다.

2016년 3월, 'SWEET SWEET FANTASY' 촌스러움이 묻어나는 것은 기분탓 이라는 명칭을 가진 유럽 - 아프리카 투어를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큰 인기를 얻지 못한 유럽에서의 뜬금없는 투어인 만큼 'Glasgow'에서의 첫 공연은 좌석 수 자체가 적었다. 덕분에 매진에 가까운 예매율을 보였지만 좌석수가 적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엄청나게 좋아진 라이브 실력과 근래 투어 중 가히 최고라고 말해도 아깝지 않을 셋리스트가 알려지면서 투어의 인기가 늘기 시작했고, 기어이 '런던 O2 아레나'의 2만석 가량의 좌석을 매진시켰다. 흠좀무
인기에 힘 입어 투어가 남미까지 연장되었다. 하는 김에 한국에도 와주세요 미미겅듀님

Against all odds

When you believe

2016년 6월부터 9월까지의 라스베가스 투어를 마친 머라이어는 미드 엠파이어에 캐스팅되어[32] 출연 배우 주시 스몰렛과 함께 OST를 제작했다. 제목은 [Infamous]. 음원은 9월 30일날 공개될 예정인데, 29일자로 노래가 선공개 되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재즈와 스윙에 가까운 느낌. 대중성과는 약간 동떨어진 느낌이기 때문에 차트 성과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으나 음악 자체는 꽤 잘 뽑아냈기에 팬들은 나름 만족하는 중. 물론 여태까지의 머라이어의 곡과 분위기가 사뭇 다른 느낌이긴 하지만, 새 앨범 싱글이 아닌 드라마 OST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머라이어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진 않았을 것이다. 거기다 프로모션도 전무할 것으로 예상되니..
그래도 미국 아이튠즈 22위에 오르는 등 예상외로 크게 선전하고 있는 중이다.

10월 부터는 남미와 하와이에서 [SWEET SWEET FANTASY] 투어를 진행할 예정이다. 원래는 유럽과 아프리카 지역에만 진행할 예정이였으나 워낙 인기가 좋아 내친 김에 추가로 연장하기로. 그리고 엠파이어 OST와는 별개로 저메인 듀프리와 또 다른 싱글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0월 말, 약혼남인 제임스 패커와 파혼했다.[33]

3 음반

3.1 기록

역대 여가수 음반판매량 2위 , 역대 솔로가수 음반판매량 5위 , 역대 전체가수 음반판매량 8위[34]

역대 빌보드 Hot100 아티스트 5위
역대 빌보드 Hot100 싱글 11위《We Belong Together》
역대 빌보드 200 아티스트 6위
역대 빌보드 200 앨범 50위《Mariah Carey[35][36]

3.2 앨범

3.3 싱글

3.3.1 빌보드 1위

머라이어 캐리의 1위기간을 합쳐보면 79주라는 어마어마한 기간이 나온다.이는 엘비스 프레슬리와 함께 공동1위 기록이며 1위곡이 하나만 더 나오면 이 기록은 바로 갱신된다.

  • Vision of Love (1990 - 4주)
  • Love Takes Time (1990 -3주)
  • Someday (1991 - 2주)
  • I Don't Wanna Cry (1991 - 2주)
  • Emotions (1991 - 3주)
  • I'll Be There (1992 - 2주)
Mariah Carey - I'll Be There (Feat. Trey Lorenz, from 'MTV Unplugged')
Mariah Carey & Boyz II Men - One Sweet Day (from 'Daydream')
Mariah Carey - We Belong Together (from 'The Emancipation of Mimi')

참고로 2012년 휘트니의 타계 이후 부터 재진입곡도 인정된다 자 다시 한번 달립시다 연금캐럴이여

3.3.2 빌보드 2위

어떻게 보면 머라이어 캐리는 2위와의 인연이 별로 좋지 않은 편이다. 가수 본인 자체가 1위 곡이 많기도 한 데다가 2위 싱글들이 본인의 기록을 계속 깨먹으니...

  • Can't Let Go (1991) - 첫 2위 싱글로 아쉽게 여기서 데뷔 이후 5개 연속 싱글 1위 기록이 끊겼다.
  • Endless Love (1994) - 루서 밴드로스의 싱글을 피처링.
  • Loverboy (2001) - 이 곡으로 11년 연속 1위를 배출해낸 기록이 깨지게 되었다. 토미 모톨라 개자식...
  • Shake It Off (2005) - 본인의 곡인 〈We Belong Together〉가 이 곡의 1위를 가로막았다. 팀킬

3.3.3 빌보드 3위~10위

  • Make It Happen (1992)
  • Without You (1994)
Mariah Carey - Without You (from 'Music Box')

3.3.4 빌보드 11위~20위

  • Anytime You Need A Friend (1994)
  • It's Like That (2005)
  • Bye Bye (2008)
  • Just Stand Up! (2008) - 08년 프로젝트 싱글. 15명의 여가수가 참여.
  • #Beautiful (2013) 충분히 19번째 빌보드 HOT100 1위가 될 수 있었으나, 부상과 적은 프로모로 Bye Bye~
  •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 (2015) [40] 성탄연금

※여타 곡들의 M/V유튜브에 개설된 'Mariah Carey VEVO'에서 시청하자. Mariah Carey VEVO

3.3.5 뮤직비디오

머라이어의 뮤직비디오들은 거의 대부분 머라이어의 비쥬얼을 내세웠다. 실제로 머라이어의 뮤직비디오를 보다보면 스토리보단 머라이어가 노는 모습위주로 촬영된 것을 볼 수 있다. 머라이어의 청순하고 빼어난 비쥬얼과 전성기 시절 머라이어의 달달한 분위기의 싱글들하고 잘 어울렸기 때문에 그다지 스토리있는 뮤직비디오를 만들 필요성이 없었다고 볼 수도있다. 콜롬비아 레코드 정도되는 대형레이블에서 뮤직비디오에 돈을 쏟는다면 쏟을 수 있겠지만 필요성을 못 느꼈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이렇게 평면적인 뮤직비디오만 만들다보니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의 실적은 머라이어 커리어 사상 딱 한번 노미니된게 끝이었다(...)때문에 머라이어가 이 시상식에 참석한 것은 91년도 <Emotions>[41]공연과 96년도에 상술한 한번의 노미네이션과 락 비디오 부문 시상자로 나온 것말고는 전무하다. 메이저 시상식중에서 유일하게 머라이어랑 인연이 거의 없는 시상식인듯하다.[42]
하지만 인기절정일때인만큼 뮤직비디오 속에 입고 나온 패션들은 화제가 되었고 <Fantasy>의 뮤직비디오가 나왔을 당시엔 뮤비 속 머라이어가 입은 핫팬츠가 엄청난 유행을 타 매진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후 <Honey>에서 꽤 많은 공을 들여서 첩보영화같은 뮤직비디오를 만들었고 <Heartbreaker>에서는 팝역사상 통틀어도 최상위권에 해당하는 예산을 들여 뮤직비디오를 제작했다.[43] 대부분의 팬들이 말하는 최고의 뮤직 비디오는 바로 [It's like that] & [We belong together]. 놀랍게도 두 뮤비는 스토리가 연결되어 있다. [It like that]에서는 약혼자[44]의 파티에서 우연히 한 남자를 보고 반하게 되고, [We belong together]에서는 약혼자와 남자를 두고 갈등하지만 결국 돈 대신 사랑을 선택하는 스토리. <Honey>때부터 뮤직비디오에 나름 신경썼지만 상술했듯이 VMA에서의 수상은커녕 후보에 든 것도 전무하다.[45]
반대로 팬들이 꼽는 최악의 뮤비[46]는 [Auld lang syne]. 합성 같은 배경에 4분 내내 춤추는 머라이어만 나온다..

당연히 머라이어 본인이 옛날 가수이기도 하고 머라이어의 대부분의 뮤직비디오가 90년대의 것이라서 유튜브에서의 조회수가 저조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머라이어는 현재 1억돌파 뮤직비디오를 5개나 보유중이다![47]이 외에도 조회수들이 상당히 높다. 20세기에 데뷔한 가수들 중에서 이 이상의 조회수를 낸 가수는 브리트니 스피어스비욘세, 에미넴 셋 뿐이다.[48]

4 필모그래피

  • The Bachelor (1998)
  • Glitter (2001)
  • Wisegirls (2002)
  • State Property 2 (2005)
  • You Don't Mess with the Zohan (2008)
  • Tennessee (2008)
  • Precious (2009)
  • The Butler (2013) - 여러 사람들이 도데체 어디서 머라이어 캐리가 등장한거냐?라고 의문을 갖는다. 영화 극초반에 주인공의 어머니로 출연하며, 대사도 거의 없다.(아예 없던가?) 백인 주인에게 검열삭제를 당하러 창고에 끌려간 이후로 출연이 없다가, 노년의 모습으로 다시 나오나, 실어증이라는 이유로 또 대사가 없다.
  • 레고 배트맨 무비 (2017) - 고담 시장 역 (목소리)

5 창법

머라이어 캐리/창법 항목 참조.

6 작사&작곡

머라이어 캐리는 데뷔 때부터 작사, 작곡을 해온 싱어송라이터다. 머라이어 캐리의 리메이크 곡을 제외한 모든 곡의 작사에 참여했으며 거의 모든 곡의 작곡진에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빌보드 Hot100에 가장 많은 1위곡을 배출한 여성작곡가다. 가끔 아무 것도 모르는, 혹은 음모론자들은 대부분이 공동 작곡인 걸 보고 '한 두 마디만 만들고 이름 올려놓은 거 아니냐' 라는 말을 할 수도 있지만, Charmbracelet 투어때의 밴드 소개 시간은 전부 즉석작곡을 해 부른 것이다. 무엇보다 머라이어의 최고명반으로 손꼽히기도 하는 데뷔앨범은 머라이어가 소니에 들어오기전에 혼자서 작곡,작사,녹음한 데모테이프를 토대로 소니의 작곡가와 함께 편곡을 거쳐서 나온 앨범이다. 특히 걔 중 'Vanishing'은 머라이어 캐리의 데모 테이프 버전에서 일체 수정이나 편곡도 하지 않았다. 또한 중간 중간 방송에서 즉석 작곡을 흥얼거리기도 하며 2013년 팬미팅에는 'Fly Like A Bird' 반주로 즉석 작곡을 해 부르기도 했다. 또한 여러 곡의 멜로디를 보면 코드가 비슷하다. 머라이어는 그저 악기를 다룰 줄 몰라 멜로디만 쓰고 체계적인 작업은 다른 작곡가가 할 뿐이다.

작사 또한 본인이 다 하는데, 특히 작사는 작곡과 달리 대필이라는 의심이 거의 없다. 그 이유는 작사 내용이 대부분 머라이어 캐리 자신의 상황을 썼기 때문이다. 머라이어의 주요 작사 내용은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로 어린 시절, 불우한 시절(왕따)에 대한 회상(Make It Happen, Close My Eyes, Outside, Petals, Can't Take That Away) 첫 번째 남편이었던 토미 모툴라와의 사랑 혹은 디스(...) 이야기(Dreamlover,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Did I Do That, Side Effect) 닉 캐논과의 사랑 혹은 디스(...) 이야기(Memoirs Of An Imperfect Angel의 거의 모든 곡, Cry, Faded, Camouflage, Infinity) 또는 찬양, 가스펠(Make It Happen, Hero, Jesus Born On This Day, My Saving Grace, Fly Like A Bird, I Wish You Well, One Child) 등이 있다.에미넴 디스도 있다

하지만 머라이어의 경우 표절 의혹이 왕년에 종종 있었다. 특히 2집의 싱글컷이 된 3곡(Emotins, Can't Let Go, Make It Happen) 모두 표절시비에 걸렸으며 앨범도 전작보다 흥행하지 못하게 된다.물론 <Can't Let Go>같은 경우 시비를 제기했던 아티스트가 표절이 아니었다며 사과하긴 했다.한 번은 머라이어 캐리의 예전 경호원이 자신이 Hero의 작사가라고 밝혀 법적 공방까지 갔지만 머라이어 캐리는 Hero를 자신의 일기장을 보다가 영감을 얻어 쓴 거라고 밝히며 일기장을 증거로 재출해 가볍게 승소해 예전 경호원을 데꿀멍하게 만든다(...) 또한 6집 [RAINBOW]의 싱글 'Thank God I Found You'도 미국의 여성 밴드와 표절 시비가 붙었다. 국내에는 이 곡이 이원진의 '시작하는 연인들을 위해'라는 곡을 표절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이원진 측이나 머라이어 캐리 측에서 어떠한 공식/비공식적 언급도 없었고 중요 멜로디 4초정도만 겹치기 때문이다. 또한 이 멜로디 자체도 꽤 흔한 멜로디이다. 그리고 머라이어 캐리는 3집 'Dreamlover'에도 샘플링을 사용했는데 이 때 작곡가에 샘플링 한 노래의 가수도 적었다. 이는 그 뒤에도 꾸준하게 지켜왔는데 정말 이원진의 노래를 샘플링했다면 표시를 안 했을리가 없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이 대대적으로 유포된 시기가 2007년 쯤인데 [49] 이 논란에 다시 불을 붙인 사람이 바로 마돈나의 광팬이라는 점이다.

또한 프로듀싱도 모든곡에 다 참여한다. 빌보드 1위를 가장많이 배출한 여성프로듀서부문에서도 1위이다.

7 비판과 논란

머라이어 캐리/논란 항목 참조.

8 인간관계

머라이어 캐리/인간관계 항목 참조.

9 워커홀릭

엄청난 워커홀릭으로 유명하다. 데뷔 때부터 끊이지 않는 프로모션 등으로 몸이 남아나질 않았다. 그런데도 건강상의 문제로 한 번 쉬지 않고 12년동안 활동했으니. 하지만 결국 'Glitter' 활동 당시 건강상의 문제가 생겨 활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는 앨범을 좀 쉬어가면서 내는 듯 하지만 역시나 엄청난 프로모션으로 유투브에서 머라이어 캐리를 치면 정말 타 가수와는 비교가 불가능한 수의 라이브 영상이 나온다. 사실 그래서 립싱크 논란이 끊이지 않지 이러한 워커홀릭 덕분에 머라이어 캐리는 10년만에 빌보드 Hot 100 1위를 15곡이나 만들어 냈다. 1990년대 빌보드의 경우에는 디지털 다운로드의 개념이 없던지라 라디오가 순위를 좌우했다. 대형 소속사의 가수인 데다가 엄청난 프로모션을 뛰는 머라이어 캐리가 순위가 높은 것도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 그리고 내리막길을 탄 후에도 화려하게 복귀하여 1위곡을 3곡이나 더 만들어냈다.

머라이어 캐리의 디스코그래피를 주시하다보면 머라이어 캐리가 얼마나 워커홀릭인지 알 수 있다. 1990년 데뷔부터 2010년까지 1996, 2000, 2004, 2006, 2007년을 제외하고 모든 해에 앨범을 발매했다. 하지만 1996년에는 두 개의 넘버원 싱글 'One Sweet Day' 와 'Always Be My Baby' 활동, 2000년도에는 역시나 넘버원 'Thank God I Found You', 2004년엔 컴백의 준비,2006년에도 넘버원 'Don't Forget About Us' 활동을 하였다. 머라이어 캐리가 제대로 쉰 해는 2007년밖에 없다. 2011년은 임신과 해산, 2012년에는 정규앨범 작업과 여러 제품을 런칭하고 광고하는 등 무엇이든 쉬지 않고 일을 했다.. 2013년에는 큰 부상을 당해 강제로 쉬었지만, 쉬는 김에 새 앨범의 추가 작업에 몰두,아메리칸 아이돌의 심사위원을 지냈다. 2014년엔 정규앨범활동을 했고 2015년엔 라스베가스 공연과 베스트앨범을 발매를 했다.

10 별명

머라이어 캐리는 팬과 안티 등에게 불리는 별명이 다양한데 애칭으로는 본인의 애칭인 MiMi, 팬들이 자주 줄여서 부르는 머랴 등이 있다. 하지만 의외로 머캐라고는 줄이지 않는데 어감이 좋지 않기에 안티들이 좋아하는 별명인 멀캐와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멀캐는 PC통신 시절 머라이어 캐리 팬들이 부른 별명이긴 하지만 이상하게 안티들이 많이 사용하면서 팬들은 싫어하는 별명이 되었다. 그 외에는 누가 붙인 것인지 알수없는 미미겅듀(...)라는 별명도 있다. 요즘은 팬들도 공주병스러운 짓을 하면 그렇게 부르기도 한다.

  1. 그래미 시상식의 가장 중요한 상들로 여겨지는 올해의 레코드상, 올해의 앨범상, 올해의 노래상, 최고의 신인상만이 기록되있다. 나머지 부문의 상들은 따로 문서 내 수상 목록에 수록해주길.
  2. 원래 수상자는 R&B 듀오 밀리 바닐리였지만 1990년 11월에 본인들의 앨범에서 단 한 소절도 부르지 않은 사실이 프로듀서들과 확인이 되면서 수상이 철회됐다.
  3. 이란성 쌍둥이다.
  4. 최고의 명금이란 뜻으로 명금은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새를 말한다. 그녀의 휘슬 레지스터가 새가 지저귀는 소리로 들리는 것과 그녀의 노래가 새의 노래 같다 하여 붙은 별명이다. 노래 잘 하는 사람을 송버드라고 부르는 건 영어에선 흔한 수식이지만 그 중에서도 최고라는 뜻으로 보면 될 듯. 팝의 여왕이나 알앤비의 여왕이라 불리는 경우도 많지만 저 말들은 마돈나휘트니 휴스턴 같은 위상 높은 가수들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로 쓰이기도 하므로 머라이어의 고유한 별명은 이게 맞다.
  5. 앨범과 싱글이 역사상 가장 잘 팔리던 시기였으며 온갖 희대의 명반과 명곡들이 쏟아져 나왔던 시기이다. 현재와 달리 실력있는 가수들이 당당히 성공할 수 있었던 시대이며 당연히 2000년대 이후 음악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6. 5손가락 안엔 머라이어 외에 레전드 가수들인 휘트니 휴스턴,마돈나,셀린 디온, 자넷 잭슨이 있다.
  7. 보통 아레사 프랭클린휘트니 휴스턴이 1,2위이고 그다음이 바브라 스트라이샌드혹은 머라이어이다. 그리고 5위 안에 드는 가수들이 워낙 넘사벽이기 때문에 순위의 높낮이 관계없이 그냥 모두 레전드라고 생각하면 된다.
  8. 머라이어의 노래는 보컬리스트들의 가창력 측정기준으로 자주 쓰이며 현대의 알앤비 창법이나 팝 창법은 대부분 휘트니 혹은 머라이어의 창법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이다. 보컬 측면이 아니라 송라이팅 측면에서도 머라이어는 많은 영향을 끼쳤다.
  9. 현재 살아있는 전설 중 커리어로 따지면 폴 매카트니가 톱이고 그다음이 마돈나,그리고 엘튼 존,머라이어 캐리가 온다.
  10. 수 많은 해외가수들이 일본을 공략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대성공을 거둔 가수들은 락덕이 많은 일본에서 비틀즈와 같은 락가수들만이 성공을 거두었고 마이클 잭슨이 월드투어때마다 매진을 이끌어내면서 성공했다. 다른 팝가수들도 도쿄돔 매진 기록이 없었다. 허나 알앤비 팝가수인 머라이어 캐리는 당당히 락가수들을 이기고 일본에서 크게 성공했다. 그리고 이 기록은 2015년 테일러 스위프트에 의하여 다시 한 번 쓰여졌다.
  11. 머라이어의 음악성이 낮다는 것이 아니나 그녀가 1990년대에 그래미에서 주구장창 후보로만 오르기도 했고 2000년대 이후의 앨범들은 메타크리틱등지에서 유독 낮은 점수를 보인다. 물론 일부는 이점을 가지고 그녀가 안전한 대중음악만 지향한 결과라고 하는데 헛소리로 그녀의 자유로운 음악적 변화나 25년간 현역으로 있었던 점들이 평론가들에게 마이너스 요소였을 뿐이지 그녀의 음악성은 음악사에서 어찌됬건 길게봤을 땐 손에 꼽을 정도이다. 그리고 중견가수이면서 현역가수가 활동이 뜸한 동시대의 중견가수들이나 한창 커리어 최상인 젊은 현역가수들에 비하여 과소평가 당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다.
  12. 그리고 휘트니의 소속사는 콜롬비아 레코드와 같은 소니 산하의 아리스타 레코드였는데 아리스타 레코드의 사장인 클라이브 데이비스가 토미모톨라의 업계라이벌이었던것. 그것때문에 머라이어의 성공에 더 지원을 한 것일수도 있다.
  13. 아무래도 데뷔한지 얼마 안된 신인이 NBA에서 무대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소속사의 힘이 있었다고 할 수있다. 소속레이블이었던 콜롬비아 레코드는 소니산하 최대의 레이블이기도 했고 통틀어봐도 최대의 레이블이었다.
  14. 결국 데뷔때부터 이어온 5연속 싱글 1위의 행렬이 깨져버린다.
  15. 다이애나 로스와 라이오넬 리치가 불렀던 곡을 리메이크한 것이다. 원곡은 빌보드 Hot100 9주 1위에다가 빌보드 선정 80년대의 히트곡 중 3위에 올랐다.
  16. 앨범은 여름에 만든 것이다. 스튜디오를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해놓고 앨범제작을 했다고 한다.
  17. 덕분에 휘트니의 <Exhale> 은 11주간 2위를 기록하면서 신기록 수립과 동시에 휘트니 팬들은 일제히 머라이어를 원망했다(...)게다가 그 전까지 빌보드 최장기간 1위는 휘트니의 였다.여러모로 휘트니 팬들에겐 욕먹는 곡.</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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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물론 보디가드 활동시절에 워낙 투어 등에 힘을 쏟다 보니 천하의 그녀도 휴식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게 너무 길어지다보니 정규앨범이 보디가드 앨범이 나온지 약 6년만에 나왔다. 물론 그 동안에 영화 OST등으로 꾸준히 활동했으나 아무래도 정규앨범 활동에 비하면 활발한 활동을 못 하기때문에 인기가 어느정도 하락했다. 게다가 이 시절부터 절대로 해선 안 되는 것을 하고 말았으니...
  19. 특히 국내에선 임진모가 유명하다. 그나마 임진모는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 받아들였는데, 1993년 이후 장르 변화로 바로 등돌린 배철수는 아직까지 데뷔앨범으로 돌아오라며 머라이어를 극딜한다. Letting go 가 필요한 시점.
  20. 혹시나 사진 이해를 못한 위키니트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머라이어의 영화홍보 광고판 뒤로 쌍둥이 빌딩이 폭격받고 있는 상황이다.
  21. 그러나 2016년 SWEET SWEET FANTASY 투어에서 메들리로 LOVERBOY를 부르고, 심지어 글리터 앨범을 가지고 온 팬에게 사인까지 해주었다!
  22. 토미 모톨라의 방해로 4주 동안이나 2위에만 머물렀다.
  23. 이에 비해 부산 공연이 상대적으로 호평을 받았을 정도... 그래도 2014년 립싱크가 다수이던 최악의 내한공연에 비해서는 양반이었다.
  24. 또한 이 때 그래미에는 비욘세켈리 클락슨같은 당대 최고의 가수이면서 머라이어의 엄청난 팬으로 알려진 가수들이 많이 참석했다.자신의 우상이 재기한 모습을 보고 느낌이 남달랐을듯하다. 머라이어 대신 올해의 앨범을 수상한 U2도 수상소감에서 머라이어에 대해 존경을 표했다.
  25. 마릴린 먼로에서 따온 이름이다.
  26. 빌보드 앨범차트에선 3위를 찍었다. 예전같으면 높은 순위였지만 요즘같은 앨범불황기에는 어느정도 네임밸류가 있는 가수들은 1위를 찍어야 성공한거라고 본다. 물론 쟁쟁한 가수끼리 붙는 경우에는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머라이어가 이 앨범을 발매할 당시에는 머라이어와 견줄만한 가수가 전혀 컴백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27. 최근 베스트앨범인 <#1 to Infinty>의 싱글과 앨범 모두 성적이 좋지 못하여서 이것을 가지고 뭐라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저 앨범은 18곡이 이미 기존의 곡들이고 신곡 하나마저도 그냥 라스베가스 공연용으로 만든 곡이다. 흥행을 노렸으면 라스베가스말고 다른 방송에서 활발히 프로모를 돌았을 것이다.애초에 베스트앨범이 잘 팔리던 시기는 2000년대 초반까지로 그 이후로는 그냥 팬들을 위한 앨범이다. 때문에 베스트앨범을 가지고 망했다 뭐다 하는 것은 옳지 못한 것이다.
  28. 놀라운 것은 그녀의 라스베가스 공연 1회당 페이가 역대 1위였던 셀린 디온을 제치고 1위가 되었다!미국에선 이미 전설로 대접받는듯 하다.
  29. 지금이 더 암흑기라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현재는 딸과 아들도 있고 연애도 하는 중이라 머라이어 본인은 정신적으로 행복한듯 하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엔 기댈사람도 없고 말그대로 밑바닥까지 추락했다.하지만 결국 이겨내고 재기
  30. 정확히는 C#6으로 하이 노트라기 보다는 소프라노 음으로 본다. 흔히 말하는 하이 노트는 D#6 이상.
  31. 공연과 투어 일정이 많기 때문에 앨범 발매는 불가능에 가깝고 싱글 발매가 좀 더 유력하다.
  32. 1회분량이긴 하지만
  33. 머라이어의 사치때문이라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머라이어 캐리/인물관계 항목을 참조
  34. 역대 여가수 앨범판매량 2위는 셀린 디옹이다. 하지만 싱글판매량까지 합치면 머라이어가 앞선다.
  35. 이외에도 52위와 87위에 머라이어의 앨범이 올라있다. 100위안에 무려 앨범을 3개나 올렸다.
  36. 이 차트들은 단순히 앨범이나 싱글의 절대적인 판매량이나 차트상의 기록으로만 따진것이 아닌 여러 부문에서의 파급력을 따진 것으로 보인다. 만약 판매량만으로 집계를 했다면 당연히 앨범 호황기였던 2000년대 이전 가수들이 차트를 정복해버릴 것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것인듯 하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앨범이 판매량이 엄청난 괴수앨범들을 제치고 4위를 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37. 2003 NBA 올스타전에서 코트를 떠나는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에게 'My Saving Grace'와 함께 헌정한 곡.#
  38. 편집시점(2024-11-17 02:30:17) 기준 빌보드 싱글차트 최장기간 1위곡.
  39. 이 기록이 얼마나 대단하냐면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어떤곡도 이곡을 넘지못했다.심지어 15주의 벽을 넘은곡도 없다.전세계적으로 열풍을 일으킨 댄스곡들인 <Macarena>,<I Gotta Feeling>,<Uptown Funk>는 물론 다이애나비의 추모곡 <Candle in the Wind>,머라이어의 재기곡 <We Belong Together>,1990년대 최고의 보컬그룹<보이즈투맨>의 <I'll Make Love to You>,휘트니 휴스턴의 불후의 히트곡 <I Will Always Love You>마저도 다 15주의 벽을 넘지못하고 14주에서 멈춰버렸다.때문에 16주 1위는 유일하게 1곡인데 비해 14주1위곡은 7곡(...)
  40. 1994년 노래가 2015년에 11위를 찍어 최고 순위를 기록
  41. 이 공연이 머라이어가 감기로 인해 컨디션이 안 좋을 때 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라이브와 그녀의 라이브 사상 최고의 고음인 5옥타브 시를 냈다.
  42. 당연하지만 그래미와의 관계랑은 다르다.머라이어의 뮤직비디오가 딱히 작품성이 없었기 때문에 VMA에서의 수상이 없는 것일뿐이다. 그러나 그래미에서는 역대급 명반을 내놓았음에도 노미니만 주구장창 시켜놓곤~희망고문의 달인~ 상을 거의 안 주었다.
  43. 이 비디오를 본사람들은 대체 어디에 돈을 썼냐고 물을 수 있는데 비디오 속에 나온 머라이어의 얼터에고인 비앙카를 구현하는데에 상당수 돈이 들어갔다. 그 당시에는 CG기술이 아직 발달이 크게 안되었기 때문에 엄청난 돈이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44. 정략결혼인 듯한 느낌을 물씬 풍긴다
  45. VMA측이 머라이어와 사이가 나쁜 것인지는 모른다. 원래 이 시상식이 옛날부터 퍼포먼스형 가수 위주로 시상되던 시상식이다 보니 마돈나,자넷 잭슨같은 댄스가수들과 락가수들이 상을 많이 타갔다. 현재에도 비욘세케이티 페리,리아나,레이디 가가등 댄스와 퍼포먼스 위주 가수들에게 준다. 유튜브의 발달과 보는 음악의 확대에 따라 뮤직비디오 자체의 작품성에 신경을 많이 쓰기 시작한 것도 있다. 이렇다보나 디바형 가수들이 상대적으로 수상실적이 적다. 예외도 있는데 휘트니 휴스턴의 경우 대상 다음가는 본상격인 최고 여자 비디오 상을 탄 전적이 있다. 후배 디바인(락색채가 있지만) 켈리 클락슨도 2년 연속으로 최고 여자 비디오상을 가져갔다. 머라이어에 대해서만 수상은 둘째치고 후보전적도 1번빼고 없다는 것이 팬들사이에서도 의문이다.
  46. 라기보단 사실 웃긴 뮤비라고 하는 팬들이 많다
  47.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 <We Belong Together>,<Touch My Body>,<Hero>,<Without You> 특히 <Hero>와 <Without You>는 90년대 초반의 노래인데다가 뮤직비디오를 가장한 라이브 영상이다.
  48. 그러나 이 셋은 유튜브가 발달하기 시작한 2000년대 후반에도 여전히 활발히 활동한 현역가수들이다. 머라이어는 유튜브의 발달즈음으로 이미 중견가수였다는 점에서 어찌보면 대단하다.
  49. 물론 그 전에도 의혹이 제기되었지만 사람들이 잘 몰랐다.
  50. </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