띄어쓰기: 천주교 정의 구현 사제단
목차
1 개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1974년에 결성된 한국 천주교의 사제들이 만든 사회운동 모임으로 민주화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이름이 길기 때문에 언론등지에서는 정의구현사제단이라 준말로 부른다.
2 역사
1974년 당시 천주교 원주교구 교구장이었던 지학순 다니엘 주교가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되자[1], 이를 계기로 결성되어 9월 26일 제1 시국 선언의 발표와 함께 만들어진다. 이후 각종 민주화 운동 등에 참여한 전력이 있다. 이들의 업적 중 하나로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을 폭로하여 정권 교체의 전기를 마련한 것이 있다. 이들은 개혁적 성향을 유지하며 사회적으로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3 조직
30년이 넘은 긴 활동 연혁에 비해, 규율이나 조직 체계는 간단히 말하자면 대학 동아리 수준이다. 사제들 중 뜻을 함께 하는 이들이 모여 적당한 장소에서 매주 회의와 토론을 갖는 것이 평소 정규 활동의 거의 전부고, 정해진 사무실도 없고 회비도 없다. 따로 가입이나 탈퇴 절차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단, 같은 맥락에서 이들은 가톨릭 산하의 공식적인 사제 단체가 아니며, 엄밀히 말해 사제들의 사적 모임에 해당한다. 사제들에게는 순명의 의무가 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소속교구의 교구장인 주교의 명을 거스를 수는 없다. 또한 각자의 자율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서로의 행동을 규제하지 않고 기본 소양에 충실한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교구장의 권리를 수용하기 때문에, 독단적으로 탈피하는 현상은 없다.[2]
이러한 여러 특성으로 인하여, 고유 조직 배경과 자금줄을 갖추며 특정한 사상적 지향점을 쫓게 마련인 시민 사회 단체와는 달리, 사제단은 규율이나 조직 체계, 사상적 측면에 있어 비교적 자유로운 편으로 여겨지곤 한다.
4 활동 연혁
2008년 이후 사제단의 활동 방향 및 동향에 대해서는 공식 홈페이지에 게시되고 있다.
4.1 1970년대
1970년대에는 웬만한 민주화 단체들이 다 죽어 지내고 있을 때, 정면으로 유신을 비판하여 한국의 종교 계열 민주화 운동의 큰 줄기로 자리잡았다. 이 시기 대표적인 활동으론 3차례에 걸친 대규모 시국선언, 유신 헌법 반대 운동, 긴급조치 무효화 운동이 있다.
4.2 1980년대
1980년대에는 폭동으로 위장 보도되던 광주 민주화 운동의 진상을 가장 먼저 알린 단체 중 하나로, 전두환 정권 내내 민주화 운동의 중요한 부분을 맡았다. 특히 정권이 덮으려고 했던 박종철 사건의 폭로는 6월 항쟁의 직접적인 시발점이 되었고, 결국 대한민국 군부 독재 역사의 종지부를 찍는 데에 일정한 기여를 하였다.
4.3 1990년대
1990년대에는 군사정권의 퇴진 후 진행된 민주화로 평화통일 운동 및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 등에 나서나, 전반적으로 80년대보다 수위를 낮춘 활동 위주로 진행됐다.
4.4 2000년대
2000년대에는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X파일 사건으로 크게 알려졌다.
특히 김용철 변호사가 사제단을 선택한 이유를 '매수당하지 않고, 권력에 쉽게 밀리지도 않는 사람들이다'로 밝혀 '매수당할 개신교'와 '한줌에 밀릴 민노당'이라는 인식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삼성 X파일 사건은 검찰과 특검 수사 결과 사실상 무죄 판결이 내려졌고, 사제단 대표 전종훈 시몬 신부는 소속 교구인 서울대교구로부터 중징계성 인사로 볼 수 있는 무기한 안식년 조치를 받았다. 이에 대해 가톨릭 교계 내에서도 삼성과 모종의 커넥션이 있어서 이런 인사가 내려진 게 아니냐 하는 음모론을 들고 나왔지만, 해당일의 중심에 서 있던 전종훈 신부를 비롯해 인사 발령을 받은 사제단 소속 신부들은 교구의 명에 순명했다.
이후 2008년 대규모 촛불 집회에 나서기도 하였으며, 용산 철거민들을 위한 기도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기리는 장례 미사 등을 집전하였다.
4대강 정비 사업 반대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4.5 2010년대
2010년대 들어 1990년대에 진행하다 중지한 북한에 관련된 활동을 다시 시작했다. 2000년대에 독재자들이 픽픽 나가 죽으며 외신보도라거나 주목도 등이 올라가, 활동을 하기 용이해졌기에 선택했다며 비난하는 측도 있지만 여러 활동을 동시에 진행 중임으로 딱히 대외적인 주목도를 올리기 위해 선택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 일반론이다.
5 평가와 비판
5.1 지지 의견
사제단에 대한 지지 의견은 주로 이 단체의 진보, 개혁적 성향에 대한 지지, 그리고 과거 이 단체가 군사 정권 시기에 행한 반(反) 독재, 민주화 활동 참여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5.1.1 정교 분리 원칙에 위배되는가?
사제들의 정치 관여에 대하여, 정교 분리 원칙에 위배된다는 비판이 있다. 그러나 정교분리 항목에서 보듯, 정교 분리는 종교인의 정치 참여를 배제하는 개념이 결코 아니다. 애초에 그럼 사제들은 투표도 하지 못한단 말인가? 정교 분리는 교회의 교리로서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지 세속 일에 대해서 금하는 개념이 아니다. 예를 들어 다음 사례들을 보자.
- 천주교를 공식적으로 대표하는 주교 회의도 4대강 정비 사업 반대를 하면서 미사를 집전한 적이 있다.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역시 과거 폴란드에서 공산주의의 정치적 부당함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주교, 추기경 시절 미사를 집전했으며, 교황이 된 후에도 폴란드에 와서 비판 미사를 집전하였다.
- 개신교인이긴 하지만 마틴 루터 킹이 인종 평등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정교 분리성에 대한 비판을 받지는 않는다.
- 헌법학상 정교분리는 단순히 종교인이 정치[3]에 참여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종교인 역시 국민의 한 사람이므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 정교분리의 원칙이란 종교인이 정치단체를 결성하는 것을 제약하기 위한 것이 아닌, 국가가 특정한 교단에 편의를 제공하는 것을 막고 종교적 권위와 정치적 권위가 일치하지 않도록 막는 것이다.
정교분리 항목에서도 설명되어 있지만, 정교 분리는 구체적 해석에 있어서 많은 견해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방식들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방식은 '국가는 특정한 교단에 정치적 편의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형태이다. 미국과 독일의 방식으로, 이 경우 정치적 신념과 종교적 신념을 연관시키는 것은 정교 분리에 위배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미국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성경을 인용하여 맹세할 수 있고, 독일에서는 종교 정당이 활동할 수 있다. 2번째 방식은 '국가는 공적인 자리에서 일체의 종교 활동을 배제한다'는 형태이다. 프랑스의 방식으로, 이 경우 공립학교에서 무슬림 여학생이 히잡을 쓰는게 금지될 정도로 공적인 것을 종교로부터 철저하게 배제시킨다. 3번째 방식은 국가와 교단이 특정한 조약을 맺고 서로의 독립성을 존중함과 동시에, 일부 사안에 대하여 연대하는 유형이다. 이 사례는 이탈리아와 폴란드가 있다. 한국은 여기서 미국의 방식을 따르며, 그렇기에 적어도 대한민국과 미국의 관점에서는 종교인이 자신의 종교와 정치적 신념을 연관시켜서 공적인 발언을 하는게 전혀 문제가 없다. 당장 마틴 루터 킹의 연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에서 하나님(God)이라는 말이 몇번이나 나오는지 세어보자. 한국에서도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은 미사에서 카인과 아벨 이야기를 인용하여 제5 공화국을 저격한 바 있다.
또한 대한민국 법의 관점이 아닌 가톨릭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신자가 신앙에 근거하여 정치적 행위를 하는 건 금지되지 않았다. 오히려 권장된다. 다음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사목헌장 76 전문이다.
사목헌장 76. 특히 다원 사회에서는 정치 공동체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지니고 또 그리스도인들이 개인이든 단체든, 국민으로서 자기 이름으로 그리스도인의 양심에 따라 하는 일과 교회의 이름으로 그 목자들과 함께 행동하는 일을 분명하게 구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교회는 그 임무와 권한으로 보아 어느 모로도 정치 공동체와 혼동될 수 없으며, 결코 어떠한 정치 체제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동시에 교회는 인간 초월성의 표지이며 보루이다. 정치 공동체와 교회는 그 고유 영역에서 서로 독립적이고 자율적이다. 그러나 양자는, 자격은 다르지만, 동일한 인간들의 개인적 사회적 소명에 봉사한다. 양자가 장소와 시대의 환경을 고려하며 서로 건실한 협력을 더 잘 하면 할수록, 그 봉사는 더 효과적으로 모든 사람의 행복에 이바지할 것이다. 사실 인간은 현세 질서에만 매여 있지 않고, 인간 역사 안에서 살아가며 영원한 자기 소명을 온전히 보존하고 있다. 교회는 구세주의 사랑을 바탕으로 국가 영역에서 또 민족들 사이에서 정의와 사랑이 더 널리 펼쳐지도록 이바지한다. 교회는 또한 복음의 진리를 선포하고 그 가르침을 통하여 또 그리스도인들이 보여 주는 증거를 통하여 인간 활동의 모든 분야를 비추어 줌으로써 국민들의 정치적 자유와 책임도 존중하고 증진한다.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 그리고 이들의 협력자들은 사람들에게 세상의 구원자이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도록 파견되므로, 자신의 사도직 수행에서 하느님 능력에 의존한다. 하느님께서는 매우 자주 증인들의 약점 안에서 복음의 위력을 드러내신다. 실제로 하느님 말씀의 교역에 헌신하는 사람은 누구나 복음의 고유한 방법과 수단을 활용하여야 한다. 이는 여러 면에서 지상 국가의 수단과 다르다. 참으로 지상의 사물과 또 인간 조건에서 현세를 초월하는 것들은 서로 긴밀히 결합되어 있다. 그리고 바로 교회는 그 고유의 사명이 요구하는 범위 안에서 현세 사물을 활용한다. 그러나 교회는 국가 권력이 부여하는 특권을 바라지 않는다. 더 나아가서, 어떤 정당한 기득권의 사용이 교회 증언의 진실성을 의심받게 한다든지 새로운 생활 조건이 다른 규범을 요구하게 될 때에는 정당한 기득권의 행사도 포기할 것이다. 그러나 교회가 언제나 어디에서나 참된 자유를 가지고 신앙을 선포하고, 사회에 관한 교리를 가르치며, 사람들 가운데에서 자기 임무를 자유로이 수행하고, 인간의 기본권과 영혼들의 구원이 요구할 때에는 정치 질서에 관한 일에 대하여도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정당하다. 이때에 교회는 오로지 복음에 일치하고 다양한 시대와 환경에 따라 모든 사람의 행복에 부합하는 모든 방법을 사용한다. 복음을 충실히 따르며 세상에서 자기 사명을 수행하는 교회는 인간 공동체 안에서 발견되는 진선미는 무엇이든 보호하고 승화시키는 것을9) 자기 임무로 삼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람들 가운데에서 평화를 견고하게 한다.10) |
다음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 2244에서 2246까지의 전문이다.
정치 공동체와 교회 2244 어떤 제도이든지, 은연 중에라도, 인간과 인간의 소명에 대한 시각을 지니고, 그 시각을 판단 기준과 가치 체계와 행동 노선의 근거로 삼는다. 대부분의 사회 제도들은 사물에 대한 인간의 우월성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종교만이 창조주이시고 구세주이신 하느님을 인간의 기원과 목적으로 명확하게 인식해 왔다. 교회는 정치권력들에게 그들의 판단과 결정을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이 진리에 비추어 내리라고 권고한다. 이 진리를 무시하거나, 하느님에게서 독립한다는 명목으로 이를 거부하는 사회들은, 그들의 판단 기준과 목적을 자체 내에서 찾거나 어떤 이데올로기에서 이끌어 오게 된다. 또한 역사가 보여 주는 바와 같이, 선과 악의 객관적 기준을 용납하지 않음으로써, 인간과 인간의 운명에 대해서 공공연하게든 또는 음험하게든, 전체주의적인 권력을 스스로에게 부여한다.28) 2245 “교회는 그 임무와 권한으로 보아 어느 모로도 정치 공동체와 혼동될 수 없으며, 결코 어떠한 정치 체제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동시에 교회는 인간 초월성의 표지이며 보루이다.”29) 교회는 “국민들의 정치적 자유와 책임도 존중하고 증진한다.”30) 2246 “교회가 인간의 기본권과 영혼들의 구원이 요구할 때에는 정치 질서에 관한 일에 대하여도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정당하다. 이때에 교회는 오로지 복음에 일치하고 다양한 시대와 환경에 따라 모든 사람의 행복에 부합하는 모든 방법을 사용한다.”31) 이것은 교회의 사명에 속하는 일이다. |
또한 주교에 대한 순명 논란 여부와는 별개로, 함세웅 아우구스티노 신부가 지적했듯이, 가톨릭 교회가 말하는 사제의 정치 참여 금지는 사제가 대통령, 국회의원 등이 되지 말라는 의미일 뿐이다.
즉 결론을 말하자면, 대한민국 법으로 보더라도 가톨릭 교회의 규율로 보더라도, 정교 분리란 종교와 연관하여 정치적 신념을 밝히는 것을 금하는 개념이 아니며 종교인의 정치 참여를 배제하는 개념은 더더욱 아니다.
5.1.2 정의구현사제단은 좌파인가?
정의구현사제단은 정치적 목적을 설파하더라도, 사제들로서 근본적인 천주교의 교리와 기본적인 틀을 유지하려고 하며, 특수하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면 직접적인 행동은 자제하기 때문에 좌/우 논쟁과는 별로 연관이 없다는 의견이 있다. 물론 이들을 비롯한 천주교 교단이 소위 '좌파'로 불리던 자들을 도운 사례가 있기는 하나, 이것을 정치적 목적으로 해석하여 사제단 또는 천주교 자체를 좌파 취급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고도 한다. 대표적으로 그 '좌파'라는 걸 도왔던 시절인 군사독재 시절은 그 사람들이 '좌파'라서 도운 게 아니라, 사회 정의를 위해서였을 뿐이다. 어떤 집단도 좌우 논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현대사에서, 공신력 있는 중재자로서 사제단이 수행한 역할은 분명 크다.
나아가 사제단이 주장하는 평화, 생명, 인권 등의 가치가 본래 그리스도교 정신 추구의 연장이며, 심지어 예수도 그리스도교 정신을 발휘하는 연장선상에서 당시 정권과 매우 정치적인 충돌이 있었고, 그러다가 사형당했다는 점을 들어, 그리스도교적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행동이 결국 정치적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들이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의 4대강 사업 관련 발언을 공개 비판한 것에 대해서도, 추기경의 해당 발언이 이전 주교 회의에서 결정된 내용을 주교들과의 합의 없이[4] 독단으로 뒤집는 것으로 이해될 여지가 많은 발언임을 고려하면 이들의 비판이 명분을 갖고 있다는 지지 의견이 있다. 이에 대한 구체적 근거로는 이미 주교회의가 지난 3월13일 '4대강 사업이 자연환경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힐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 사실상 주교회의의 결정에 따라 한국 천주교가 이미 4대강 반대를 기정사실화해온 것이 꼽힌다. 또한 사제단뿐만 아니라 12월 13일 원로 사제 20여명이 정진석 추기경에게 '서울대교구장직에서 용퇴할 것'을 촉구하고 나선 것을 들어 정당한 의견 개진이라는 주장이 있다.
5.2 비판 의견
아래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거다.[5]
일부 극단적인 사제들은 미사 때 특정 정치 성향에 편향되어 있는 견해를 밝히는 것을 넘어서서, 마치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으면 진짜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 처럼 매도하고는 한다. 이는 명백히 잘못되어 있다. 물론 군사 독재와 같은 사례는 어떠한 면모로 보더라도 현대적인 민주주의 원칙에 위배되며 그렇기에 김수환 추기경의 사례에서 보듯, 강하게 비판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많은 정치적 주제들은, 군사 독재처럼 명백하게 선악을 판단하기 모호한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사제 개인이 자신의 정치 성향과 맞지 않는다고 그 미사에 참례한 일부 신자들을 매도하는 게 과연 옳을까?
특히 이 경우 많은 사제들은 자신의 개인적 정치 신념과, 교회의 보편된 가르침을 구분하지 않고 말한다. 마치 자신의 의견이 하느님과 보편교회를 대표하는 듯이 말한다. 이 경우 일부 교리에 무지한 신자들은, 사제의 개인적 정치 성향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는 한다.[6][7] 아무리 종교는 명백하게 현실과 연관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교리를 근거로 부자 감세를 반대하고 자신의 의견과 다른 신자들을 그리스도인 답지 않다고 말한다면, 그 사제는 성경을 인용하는 게 아니라 이용하는 것이다. 쉽지는 않더라도, 자신의 말이 교회의 보편된 가르침은 아니며, 다만 교리적으로 이렇게 저렇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식으로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후술할 이들의 병크로 인해 대한민국에서 대다수의[8] 개신교인들을 비롯한 반가톨릭 진영에서 가톨릭은 역시 예나 지금이나 대한민국에 도움이 안되는 종교라 인식하는 빌미가 되기도 했다.
5.2.1 이념적 편향성
정의구현사제단은 공식적으로 특정 정치 성향이나 정당과 연대하는 것을 강령 등으로 채택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실제 그들의 행보는 대중의 시선에서 보더라도 명백히 특정 정당이나 정치 세력에 편향되어 있다. 가톨릭 교회는 그 특성상 근본적으로 북한에 동조할 수 없는 것인데, 정의구현사제단이 연평도 포격 사태 등 남북간의 갈등에 대해 보여준 지나친 양비론적 입장은 대중들에게 종북은 아닐지언정, 친북적이라고 인식될 여지가 충분하다.
그리고 굳이 친북이라는 민감한 소재가 아니더라도, 정의구현사제단의 지나친 극단적 편향성은 가톨릭 교회의 성격에 맞지 않다. 가톨릭 교회는 보편적인 교회이다. 즉 자유지상주의자, 신자유주의자, 사회자유주의자, 사민주의자, 왕정주의자, 아나키스트 등이 모두 믿을 수 있는 가톨릭한(Catholic, 보편된) 교회이다.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 1서 9장 19~22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은 자유인이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유다인들을 얻으려고 유다인들에게는 유다인처럼 되었습니다. 율법 아래 있는 이들을 얻으려고, 율법 아래 있는 이들에게는 율법 아래 있지 않으면서도 율법 아래 있는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나는 하느님의 율법 밖에 있지 않고 오히려 그리스도의 율법 안에 있으면서도, 율법 밖에 있는 이들을 얻으려고 율법 밖에 있는 이들에게는 율법 밖에 있는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약한 이들을 얻으려고 약한 이들에게는 약한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
바오로 사도의 표현을 빌리자면, 교회는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어야 한다. 가난한 자의 교회일지언정, 가난한 자만의 교회가 되어서도 안된다. 그렇기에 부자에게는 부자의 교회가, 가난한 자에게는 가난한 자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 같은 원리로 신자유주의자에게는 신자유주의자의 교회가, 사민주의자에게는 사민주의자의 교회가, 왕정주의자에게는 왕정주의자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매사에 신중하고 의심이 많은 토마스를 위하여 다시 한번 나타났고, 토마스에게 자신의 상처를 직접 확인시켜 주었다. 그리고 그 순간 예수 그리스도는 '토마스의 하느님, 토마스의 주님'(요한 20, 28)이었다.
만약 교회가 가난한 자'만'의 교회 또는 부자'만'의 교회가 된다면 그 교회는 보편적이지 않다. 즉 가톨릭(Catholic, 보편)하지 않은 교회다. 비록 그리스도가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노끈이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루카 복음서 19, 24)"라고 말하고는 했으나, 여기서의 부자는 세속적인 의미의 부유층이라기 보다는 탐욕을 부리는 자, 수덕적 의미의 청빈을 도외시 하는 자 등으로 해석하여야 한다. 신약에서는 많은 가난한 이들이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그리스도에게 무덤을 기꺼이 내어준 아리마태아의 요셉(루카 27, 57), 하느님을 섬기는 그리스의 귀부인들(사도행전 17, 4) 역시도 보여준다.
물론 교회가 가난한 자를 박대하고, 중산층이나 부유층만을 품으려고 한다면 비판을 들어야 마땅하다. 어떠한 면에서 보더라도, 가톨릭 교회는 가난한 자에 대한 사랑을 역사상 꾸준히 강조하여 왔으며, 강조하고 있으며, 또한 강조해야만 한다. 그러나 교회를 특정한 정치성향이나, 계급투쟁론에 연결시키는 것은 가톨릭 교회를 가톨릭하지 않게 만드는 행위일 뿐이다.
이러한 편향성 때문에 사제단의 정치적 입장 그 자체, 또는 그 이념적 편향성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사제단을 이른바 "소수 좌파 신부" 의 집단으로 규정하고자 하는 목소리도 있다. 특히 이러한 주장은 초기 타파의 대상이었던 군사 독재 정권의 종식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지속적인 정치적 활동을 계속하는지, 또한 그 방식이 과거 민주화 시대와 유사한 시위, 투쟁의 형식으로 나타나야 하는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특히 이러한 비판의 연장선상에서, 삼성 특검 사건에 대한 개입을 "결과적으로 무죄 판결된 사건에 종교 단체가 부당하게 개입, 민간 기업의 이익을 침해하였다" 는 의견도 존재한다.
5.2.2 순명
정진석 추기경에 대한 교구장 사임 요구 건의 경우, 4대강사업과 같은 '세속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상호간의 비판과 토론이 당연히 있을 수 있지만 교구장직 사임 요구는 세속적인 문제를 넘어선 문제, 즉 교도권에 대한 도전이라고 볼 여지가 있어 부당한 행위라는 문제제기가 있다.# 다시 말해, 추기경의 발언을 비판하는 선을 넘어선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비슷한 사례로는 2004년 3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 김수환 추기경의 탄핵 반대 촛불 집회 자제 요청에 대해 함세웅 신부가 "그분의 사고는 다소 시대착오적이라고 판단한다."라고 말해서 큰 논란이 됐었다. 논란을 일으킨 발언을 비판한 정도에서 멈췄다면 정당한 비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겠지만, 이를 넘어서 교구장직을 사임하라는 요구를 하는 것은 교회의 근간인 교도권에 항명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애초에, 주교품 성직자의 서품. 즉 교구장의 임명은 교황에게만 유보된 특수 권한이다. 당연히 교구장의 교체 역시 교황의 고유 권한이라는 사실.
또, 이미 정진석 추기경은 75세가 넘은 주교는 사의를 표명하고 은퇴한다는 관례에 따라 이미 여러 차례 교황 베네딕토 16세에게 사의를 표명한 바가 있다. 다만 교황이 사의를 계속 반려하고 있는 상황인데[9], 이러한 상황에서 사제단의 이런 행동은 예의를 크게 벗어난 행동이라는 비판도 있다.
결국 2012년 5월에 정진석 추기경의 사표가 수리되어 서울대교구장이 염수정 대주교로 교체되면서 이 논란은 잠잠해졌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사제들이 정치적, 사회적으로 직접 개입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정치 구조나 사회 생활 조직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교회 사목자가 할 일이 아니며, 이 임무를 주도적으로 행하는 것은 평신도의 소명으로 강조하고 있다' 하며 비판하였는데12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원로 인사이자 안중근 의사 기념 사업회장 함세웅 신부가 염수정 추기경의 강론에 대해 '시대착오적이며 성서적 기초도 없는 강론', '가톨릭 교리를 아전인수 식으로 왜곡했다' 라며 비판했다.출처 문제는 이런 식의 발언이 순명을 거부한다는 발언으로 보기 충분하다는 것.[10]
6 논란거리
- 다수의 민주화, 인권 관련 단체에 대한 비난과 맥락을 같이하여, 사제단에 대하여 "한국의 인권과 민주화를 지나치게 따지면서 막상 그보다 열악한
외국북한의 인권에는 침묵한다"는 이른바 "한 입으로 두말하는 일관성 없는 단체" 라는 비판이 존재한다.[11]
- "정의" 구현 사제단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 일부 지나치게 정치 편향적인 발언이나 추문 등이 종종 거론되곤 한다. 사제단의 중직을 맡고 있는 사제가 KAL기 폭파 음모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문정현 바르톨로메오 신부는 2002년 효순이·미선이 사건으로 "인간백정 주한미군을 반드시 심판할 것" "미군부대만 지나면 저주의 마음이 든다" 이라고 하였으며,# 이 발언이 사제단의 성격을 대표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 참고로 이 발언은 단순히 당시 사건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며, 문정현 신부 자신이 평소에도 '깡패 신부'라고 불릴 정도로 굉장히 강한 어조를 즐겨 사용하던 사람이라 그랬다는 의견도 많다. 다만 문정현 신부 자체가 사제단의 중추에 있는 인물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할 듯.
-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신부 중 한 명의 강제 성행위 의혹이 있다. 현재 문제의 신부는 잠적한 상태다.#
- 정의구현사제단 소속인 박창신 베드로 신부가 18대 대선 개표가 조작되었다는 음모론을 설파하면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박창신 신부는 각종 시국미사에서 한영수가 출판한 '제18대 대통령 부정선거백서'를 인용하면서 계속 국정원이 주도하고 선관위가 협력한 정권차원의 조직적인 개표 부정이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 주장은 실체적 근거가 전혀없는 그야말로 짜집기 음모론에 불과하다는게 대체적인 평가이다. 야당과 개혁/진보 성향의 시민사회단체들도 국정원과 군 사이버사령부의 댓글 공작 같은 정권의 선거개입[12]을 비판할 따름이지, 무슨 후진국 마냥 조직적인 개표부정으로 선거결과가 뒤집혔다는 음모론과는 확실히 선을 긋고 있다. 개혁 성향 언론들도 음모론은 외면하고 있으며, 기껏해야
음모론 매니아김어준 정도가 인터넷에서 떠드는 정도다.
-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은 천안함 피격사건 직후부터 계속해서 천안함 음모론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합조단 최종보고서는 F학점” 천안함 사건이 어느 정도 일단락된 뒤에도 국방부의 조사보고서에 대해선 계속 불신을 표명해왔으며, 이에 대해선 입장 변화나 의견 제시는 없다.
6.1 박창신 신부의 연평도 포격 사태 발언 논란
정의구현사제단 소속인 박창신 베드로 신부가 2013년 11월 22일에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위한 시국미사를 집전하던 도중 연평도 포격 사태에 대한 발언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정확하게 박 신부가 했던 해당 발언은 다음과 같다.
"일본이 자기 땅이라고 독도에서 훈련하면 우리 어떻게 해야 돼요, 대통령이? 쏴버려야죠. 안 쏘면 대통령 문제 있어요. 그러면 NLL(서해북방한계선), 문제 있는 땅에서 한미 군사 운동을 계속하면 북한에서 어떻게 하겠어요? 그것이 연평도 포격 사건이에요."
"NLL은 유엔군 사령관이 우리 쪽에서 북한으로 가지 못하게 잠시 그어놓은 거예요. 북한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고, 휴전 협정에도 없는 거예요."
연평도 사건 3주기 시점에서 북의 포격으로 인해 피해를 본 군 장병들과 민간인들에 대해선 일언반구 언급도 없이, 북한의 입장과 유사한 주장을 단정적으로 내뱉으면서 천주교 내에서도 "지나친 발언이다","대체 신부님은 어느 나라의 신부님이십니까?"라는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사실 NLL에 관해서 박창신 신부가 언급한 2번째 내용은 명백한 Fact이긴 하다. 이전 문서에서 북방한계선(NLL)를 영해로 간주하고 기나긴 비판을 서술해놨는데, 북방한계선(NLL)의 실체와 효력에 대해선 국내외적으로 많은 논란이 있다. 심지어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주한미군이 일방적으로 선포한 북방한계선(NLL)은 국제법 위반이라는 의견을 피력한 적도 있을 정도이다. 자세한 내용은 북방한계선(NLL) 항목 참조.
다만, 위의 내용은 진중권 교수가 변희재와 NLL 관련하여 사망유희 토론할 때 주장하다가 발린 내용이다. 자세한 것은 유투브에서 사망유희 다시 볼 수 있으니 관심 있으면 보자. 헨리 키신저 저 발언가지고 많이 우려 먹는데, 이들의 특징은 훗날 NLL분쟁 관련하여 UN과 미군이 공식적으로 한국의 손을 들어준 것은 외면하고 있다. 변희재가 이 점을 파고들자 진중권 교수는 조용해졌다. 오히려 독도 분쟁이 팩트인데 독도는 한국 땅이 아니라고 주장하면 어떻게 될까? 실제 미국에서는 독도를 중립 지역처럼 표기하는데, 실제 모 의원은 독도는 한국 땅이 맞지만 외국에서는 분쟁지역처럼 여기니까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가 진보들로부터 친일파란 비난을 받았다. 박창신 신부의 NLL발언을 옹호하는 진보들은 '팩트'라며 옹호하는데, 사실 동해도 외국에서는 동해(East Sea)로 표기하는 나라는 거의 없고, 미국을 포함하여 대다수가 일본해(Japan Sea)로 표기하는 게 '팩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국인이 '일본해'라고 발언하면 진보들이 '팩트'라고 옹호해줄까? 독도가 분쟁 지역이므로 한국 땅이 아니라고 주장하면 '팩트'라고 옹호해줄까? '친일파'라고 욕먹으며 매장당할 것이다. 헌데 UN과 미국이 공식 입장으로 한국의 손을 들어준 NLL만 외국의 반응 어쩌고 하며 팩트 운운하며 북한의 편을 들어주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북방한계선(NLL)에 대한 논란은 뒤로 하고 가장 중요한 건 민간인을 상대로 포격을 했다는 것을 박창신 신부는 끝까지 말하지 않고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건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 되지 못한다. 북이 어떠한 명분으로 포격을 했던 간에, 민간인이 공격 대상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명백한 범죄적 행위이다.
7 그외의 사항
74년 결성 이후, 이듬해 75년에 '한국 천주교 정의 신자단'이라는 정체불명의 단체가 사제단의 기도 집회를 '위장 정치 집회'로 단정하며 규탄했던 적이 있다. 이때 '횃불'이라는 유인물이 뿌려졌는데, 해당 유인물을 제작한 분이 공동체의 의견을 묻지 않고, 해당 공동체의 부회장 직위를 넣은 채로 배포했다가 공동체 소속원들의 반대로 인해 결국 부회장 자리를 사퇴하게 됐다는 안습한 과거가 존재한다. 일단 해당 조직에 지도 신부도 2분 정도 계셨다고 한다.
11년 현재에도 '정치 사제들의 퇴진을 요구'한다는 '천주교 나라 사랑 기도회'라는 정체불명의 단체가 존재하고 있다. 기도회에서 확인된 해당 단체의 인원수는 대략 70명 정도라고 한다. 정체는 뉴라이트의 천주교 조직으로, 08년 촛불 정국 때 주교회의 인준 단체인 평신도사도직협의회의 이름을 도용했다가 정정 광고를 실었던 적도 있다. 해당 조직에 동의를 표명한 분은 김계춘 도미니코 신부(부산교구), 박홍 루카 신부(예수회)의 2명이라고.# 일선의 사제들 사이에서는 불쾌하다는 입장이 강한데, 일단 천주교 신자를 자처하면서도 천주교 내부에서의 소통과정에는 일체 참여하지 않는다는 점. 주교 회의의 결정에까지 반발하고 나서는 것은 확실히 교회의 일치를 깨뜨리는 행위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평신도들 가운데서도 사제들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가 과연 정당한가에 대해선 의문의 시각이 꽤 있다. 일례로 가톨릭 언론인 평화신문에 종교인들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옹호한 글이 실리자# 바로 종교인의 정치 참여가 올바른지 반박하는 기고문이 올라왔는데# 사제들이 정치적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신자들 사이에 있는 것도 사실인 것.
90년대 극우성향 잡지인 한국논단에서 빨갱이라고 비난했다가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해 편집인 이도형이 집을 날린다. 정의구현사제단 뿐 아니라 참여 연대, 경실련 등 주요 시민 단체들이 고소하였다.
인간 말종 개그맨 양원경의 동생인 양인경 알폰소 신부가 이 사제단 소속이다. 일반적으로 천주교 사제가 되는 길이 다른 여타 성직자들보다 수 배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형과는 정 반대의 인생을 걸어온 셈. 전형적인 못된 형과 착한 아우의 표본이다.
- ↑ 정작 지학순 주교는 해당 문서를 보면 알 수 있지만, 5공 이후에 민주화 활동이 상당히 부실해져서 대표적 5공 변절자 윤천지강에 이름을 올렸다는 아이러니한 일화가 전한다.
- ↑ 서울대교구 사제 인사 이동 중에 촛불 집회에 참여한 정의구현사제단 사제 한 분에게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을 위시한 서울대교구가 휴직계를 발표하자 순명한 일도 있다.
- ↑ 여기서의 정치는 국민의 의사 형성에 기여하는 것 등을 말하는 넓은 의미의 정치다.
- ↑ 교황부터 주교까지는 서열 체계가 존재하긴 하지만 사실상 같은 주교다. 교황이 로마 주교 직위를 가지고 있음을 생각할 것.
- ↑ 사실 반대파에서 내거는 플랜카드로는 제의를 벗고 교회를 떠나라는 내용이 더 많다. 더 정확하게는 일반인 단체 쪽 반대파에서 내걸면 본문이고, 천주교 평신도 협의회니 뉴라이트 천주교 협의회가 내걸면 교회를 떠나라는 내용이 된다.
- ↑ 원래 신부가 영대(종교의례 중 목에 거는 끈)를 걸거나 제의(미사 등에 입는 예복)를 입음은 '보편교회를 대신하여' 종교 의례를 거행한다는 의미가 있으므로, 이런 인식은 충분히 나올 수 있다.
- ↑ 참고로 정당하게 사제품을 받은 성직자가 올리는 미사는 미사 규정을 심각하게 위반하지 않는 한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하고 합당한 미사이며 정의구현 사제들의 미사도 엄연한 미사이다.
- ↑ 일부 반개신교인들과 에큐메니컬주의자들의 희망 사항과 달리 대한민국 개신교의 대다수는 정치적으로까지 보수 우익이라 할 순 없지만, 엄연히 보수 및 근본주의적 교파가 대다수이다.
- ↑ 김수환 추기경이나, 베네딕토 16세가 '라칭거 추기경'이던 시절에도 이랬었다. 두 분 다 여러 차례 사의를 표명했지만 김수환 추기경은 은퇴 시기가 한참 지나서야 사의가 받아들여졌고, 라칭거 추기경은 사의가 받아들여지기 전에 교황이 사망해 새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 ↑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성직 서품을 받을 때 교구장과 그 후임들에게 존경을 맹세한(1990년판 사제 서품 예식서) 함세웅 신부가 서울대교구장의 의견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은 천주교 교리상 중죄인 항명으로도 볼 수 있다. 함세웅 신부는 정진석 추기경이 은퇴하자 자신도 은퇴 신청을 하여 2012년 8월부로 서울대교구 청구성당 주임 직책을 내려놓고 은퇴하였다출처. 그러나 서울대교구장과 그 후임들에 대한 충성의 의무는 현역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지속된다.
- ↑ 2008년 광우병 쇠고기 촛불시위에 앞장서 황장엽으로부터 "진정 삶의 권리와 정의를 아는 사람이라면 왜 북한 인권을 위해 여태껏 촛불을 들지 않았느냐"는 비난을 받은 적도 있다. 황장엽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는 의문이나 천주교 사제단 쪽이 이쪽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은 다른 이들도 가지고 있는 듯. 참조. 물론 이는 (북한 인권 단체를 제외한) 다른 인권 관련 단체들도 반대파로부터 받는 비판이긴 하다.
- ↑ 실제 두 기관이 집권여당에 유리한 쪽으로 댓글 공작 등 선거에 개입한 것은 실체가 어느 정도 밝혀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