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개요
한국의 제주도와 일본의 오키나와는 본토와 떨어져있고 관광도시로 유명한 대표적인 섬이라는 점에서 서로 비교되는 경우가 많다. 이 문서에선 이러한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 서술해본다.
2 자연환경
제주도 | 오키나와 |
본토에서 꽤 떨어진 섬이다. | |
서울에서 제주시까지는 약 450km, 해남군 땅끝 전망대에서는 약 80km 거리이다 | 도쿄에서 오키나와까지는 약 1500km, 큐슈 남쪽 끝인 가고시마의 사츠마(薩摩) 반도에서부터 재어도 550km나 된다. |
행정구역 면적의 대부분을 제주도(섬)가 차지하며, 다른 섬들은 별로 많지 않다. | 가장 큰 섬인 오키나와 섬이 현에서 차지하는 크기는 절반 정도이며, 이외에도 미야코지마, 이시가키 등 규모가 꽤 되는 섬이 많다. |
남북으로는 추자도[1]부터 마라도까지 약 90km, 동서로는 차귀도부터 우도까지 약 80km이다. | 서쪽 끝 요나구니에서 동쪽 끝 다이토 제도까지 약 860km나 된다. |
본토에 비해 더운 아열대기후이다. | |
겨울에는 눈도 내린다. 특히 한라산은 강원도 수준으로 눈이 쌓인다. 아열대 기후의 북쪽 경계선에 가깝다. | 오키나와 본섬은 아열대 기후의 남쪽 경계선에 가깝고, 이시가키 같은 경우는 아예 열대기후이다. |
섬이다 보니 바람이 많이 분다. | |
제주도의 별칭 삼다도에 바람이 포함된다. | 바람은 물론 태풍의 단골 코스. |
특이한 지질 환경이며 동굴도 많다. | |
화산섬이다 보니 현무암 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만장굴 같은 용암동굴이 유명. | 옛 산호초에 의해 형성된 석회암 지대이다. 교쿠센도(玉泉洞)와 같은 석회동굴이 유명. |
한라산을 빼더라도 산방산 같은 산과 오름이 널려있다. | 그나마 가장 높은게 이시가키 시에 위치한 오모토다케(於茂登岳) 산. 해발 525.5m |
섬이고 비도 많지만 물이 부족하다 | |
구멍이 많은 현무암은 물이 잘 빠지기 때문 | 석회석은 물이 잘 빠지기 때문 |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고 특이한 동식물이 많다. | |
한라산의 노루, 제주 족제비[2] 딱따구리 등. 한라산에서는 해발 고도에 따라 식생이 달라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 반시뱀, 이리오모테삵, 바다뱀 등. |
바다가 맑고 깨끗한 편이다. |
3 행정구역
제주도 | 오키나와 |
특별자치도라는 특수한 행정구역이다. | 그냥 하나의 현이다. |
하위 행정구역은 단 두 개, 제주시와 서귀포시. | 11 시(市) 11 정(町) 19 촌(村) |
4 인구
제주도 | 오키나와 |
전체 국가 인구의 1% 이상을 차지한다.(2015년) | |
61만여 명/5060만여 명 (제주특별자치도 인구/대한민국 인구) | 143만 여명/1억 2688만여 명 (오키나와 현 인구/일본 인구) |
5 인문 환경
제주도 | 오키나와 |
본토와 구별되는 특이한 문화를 지니고 있다. | |
본토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사투리가 있다. 본토 언어와 별개의 언어로 보는 경우 본토 언어와 같은 어족으로 분류된다. 유네스코에서 정한 소멸 위기에 처한 언어이다. | |
제주어는 한라산을 기준으로 산남(山南)과 산북(山北)이 약간 다른 정도. | 멀리 떨어진 섬끼리는 말이 안 통하는 지경이어서 류큐어를 또 여러개의 언어로 구성된 류큐어파로 보기도 한다. |
예전에는 지역 말을 못 쓰도록 압박을 당하기도 했다. | |
일제 강점기에는 지역 말을 쓰는 학생에게 방언찰(方言札)이라는 걸 매달아서 지역 언어를 탄압했다. | |
제주 4.3사건 이후 육지사람들에 의한 차별을 피하기 위해 방언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할 수 밖에 없었다. | 마찬가지로 내지인들에 의한 차별을 피하기 위해 방언을 쓰지 않으려 노력할 수 밖에 없었다. |
본토와 색다른 종교 문화가 남아있다 | |
육지에서는 보기 힘든 한국 무속신앙에 관련된 자료가 많이 남아있는 지역이다. | 토착 종교인 류큐 신토는 일본 본토와 구분되는 독특한 신앙체계를 가지고 있다. 유타(ユタ)[3], 우타키(御嶽)[4], 니라이카나이(ニライカナイ)[5] 등등. |
5.1 요리
제주도 | 오키나와 |
돼지고기로 유명하다. 예전에는 똥돼지로 키웠다 | |
돼지고기가 들어간 국수가 유명하다. 미군정 때 들어온 밀가루 때문에 본격적으로 이러한 국수요리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 |
돼지뼈 육수[6]를 쓰는 고기국수 돼지 수육이 고명으로 올라간다. | 돼지뼈, 다시마, 가쓰오부시로 육수를 만드는 오키나와 소바 그 가운데 소키소바(ソーキそば)의 경우는 돼지갈비 고명 테비치소바(てびちそば)의 경우는 족발이 올라간다. |
옛날에는 쌀밥이 귀했다. | |
지역의 독특한 주류가 있다. | |
좁쌀로 빚는 전통 소주 고소리술 한라산 소주 | 안남미로 빚는 전통 소주 아와모리 오리온 맥주 |
6 역사
제주도 | 오키나와 |
선사시대 유물이 풍부하다. | |
육지보다 이른 시기에 만들어지기 시작한 고산리식 토기가 유명하다. | 일본 본토에서 보기 힘든[7] 야마시타 동굴인(山下洞人), 미나토가와인(港川人)과 같은 화석인류가 여럿 발견되었다. |
본토와는 독립된 국가였다. 이후 본토의 정부에 복속되고, 흡수당했다. | |
탐라국의 시작은 기원전 57년으로 전해진다. | 11~12세기가 되어서야 농경문명 사회인 구스쿠시대(グスク時代)에 진입하며, 15세기가 되어서야 통일 류큐 왕국이 세워진다. |
성주(星主) 제도가 시작된 고려시대부터 반 복속상태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완전히 흡수되어 중앙정부의 통제를 받기 시작했다. | 류큐 왕국이 일본에 복속된 것은 1609년 사츠마 번의 침공 때이며, 합병은 메이지 유신 이후이다. |
나라가 본토에 반 강제 합병되었다. | 나라가 본토에 반 강제 합병되었다. |
고려 때부터 탐라 지배층이 벼슬살이를 시작해 현으로 복속되어 조선 때 완전히 복속되었다. | 에도시대 때부터 사츠마가 정벌하여 일본 제국 때 완전히 합병되었다. |
독립성을 상실한 뒤 이전과 다른 이름이 붙여졌다. | |
탐라→제주 | 류큐→오키나와 |
독립성을 상실한 뒤 붙은 이름은 본토에서 새로 지은 이름이다. | 독립성을 상실한 뒤 붙은 이름은 본토에서 새로 지은 이름이 아니다. |
본토 입장에서 '바다 건너(濟)에 있는 고을(州)'이라는 의미로 | 본래 류큐에서 가장 큰 섬만을 가리키는 말이었던 오키나와를 기존 류큐 전체(아마미 군도[9]는 제외)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바꿨다.[10] |
본토 사람들에게 착취당한 역사가 있다. | |
조선시대 제주도 진상품 고난 문서 참고 | 1609년 이후 류큐 왕국을 복속시킨 사츠마 번은 과도한 공물을 요구했다. 요구를 맞추기 위해서 류큐 왕국 정부는 미야코지마 등 멀리 떨어진 섬 주민들에게 무거운 인두세를 부과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인두세를 피하기 위해 마을에서는 인구조절[11]을 해야 했다. |
태평양 전쟁 당시 군사기지를 짓는 데 주민들이 동원되었고, 아직도 남아있는 땅굴들이 있다. | |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알뜨르 활주로를 비롯하여 여러 지하요새와 땅굴들이 남아있다. 잘 알려지지 않았고 규모도 작았기는 하지만 미군은 제주도를 공격하기도 했다. | 토미구스쿠의 해군사령부호(舊海軍司令部壕)를 비롯한 많은 땅굴들이 남아있으며 오키나와 전투 당시에 철저하게 활용된다. |
본토인들에 의해 섬 인구 상당수가 학살을 당한 역사가 있다. | |
제주 4.3사건 | 오키나와 전투 |
7 주민
제주도 | 오키나와 |
섬 바깥으로 떠나서 살게 된 주민들이 많다. | |
일제강점기 때부터 오사카 등지의 공장에 취업한 제주도민들이 많았으며, 4.3 사건 당시 학살을 피하기 위해 일본으로 떠난 사람들도 매우 많았다. 재일 한국인 1세대 가운데 약 1/5이 제주도 출신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후 도시화 과정을 거치며 전국적으로 불어닥친 이촌향도 현상으로 육지로 상경한 주민들도 상당하다. | 일본제국 시기 소철지옥(ソテツ地獄)[12]이라는 불황을 겪고, 수많은 현민들이 하와이 등지로 대규모 이민을 갔다. 그래서 2015년 기준으론 하와이 주지사도 오키나와계일 정도다. 제8대 하와이 주지사 데이비드 이게(David Ige). |
8 교통
제주도 | 오키나와 |
국제공항이 있으며 현재 거의 포화상태이다. | |
궤도교통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13] | 오키나와 도시 모노레일이 존재한다. |
9 산업
제주도 | 오키나와 |
물이 잘 빠지는 지질 특성상 쌀농사 짓기가 힘들다 그래도 짓기는 짓는다 [14] |
10 정치 및 지역 감정
제주도 | 오키나와 |
트라우마가 된 역사적 사건이 있으며 역사왜곡 시도를 당하고 있다. | |
일부 보수 우익 단체에서 제주 4.3사건이 '빨갱이 폭동'이었다고 역사왜곡을 하는 사례들이 있다. 그런 연장선상인지 4.3사건을 다룬 영화 지슬이 별점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 일본 극우파들은 오키나와 전투 당시 미군이 오키나와 사람들을 학살했다는 억지 주장을 한다.[15] 하지만 널리 알려진대로 오키나와 전투에서의 민간인 피해는 주민들에게 옥쇄를 강요하거나 심지어 인간방패로까지 썼던 일본군의 책임이 훨씬 더 크다. |
지역에서 본토를 이르는 단어가 따로 존재한다. | |
육지 : 본토 뭍것 : 본토 사람 곤밥 먹은 소리 : 서울말[16] | 나이치(内地), 야마투(ヤマトゥ)/야마토(ヤマト)[17] : 본토 나이챠(ナイチャー), 야마톤추(ヤマトンチュー) : 본토 사람 야마토구치(ヤマトグチ) : 일본어 |
정당 구도가 본토와 매우 다르다.[18] | |
일본에서 드물게 자민당이 영 힘을 못 쓰는 지역이다.[20] 지역 정당으로 오키나와사회대중당[21]과 가리유시 클럽[22]이 있다. | |
분리 독립 운동이 없다 | 분리 독립 운동이 있다 |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이 없다.[23] |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가리유시 클럽이라는 정당이 존재한다.[24] |
11 군사
제주도 | 오키나와 |
군사기지 문제로 중앙 정부와 갈등을 겪고 있다. | |
제주도 해군 기지 건설 논란 | 주일미군 |
제주민군복합형관광미항이 2015년 12월 완공되었다. | 오키나와 전투 이후로 미군이 눌러앉으면서 반세기 넘도록 문제가 이어지고 있다. 오키나와/역사 문서 참고. |
12 영유권 분쟁
제주도 | 오키나와 |
중국과 영유권 문제로 갈등을 빚는 지역이 있다[25] + 중국이 아닌 국가가 실효지배하고 있다.[26] | |
센카쿠 열도 |
13 관련 문서
- ↑ 행정구역상 제주특별자치도이지만, 사실 전라도 문화권이다.
- ↑ 육지의 족제비와 다른 아종으로 분류되기도 함
- ↑ 오키나와의 무당을 말한다.
- ↑ 오키나와 사람들이 제사를 지내는 성소(聖所)로, 원시적인 형태의 신사의 모습이 남아있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 ↑ 오키나와 신토에서 먼곳의 바다에 위치해 있다고 여겨지는 낙원. 죽은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고 하며, 제주도 이어도#s-2 전설과 비슷하다.
- ↑ 멸치육수가 들어가기도 한다.
- ↑ 화산, 지진 등이 활발하여 구석기 유적이 보존되기 힘들기 때문. 하지만 후지무라 신이치가 날조한 것들을 빼더라도 구석기시대 유적이 여럿 존재하기는 한다.
- ↑ 단 한자 문화권 국가 곳곳에 같은 이름이 붙여진 지명들이 존재했던 적은 있다(현재는 폐지).
- ↑ 사쓰마 번의 류큐 정벌 후 사실상 류큐의 지배 지역에서 벗어나 있긴 했지만 형식적으로는 상당 기간 류큐의 영토로 취급되었다. 하지만 폐번치현을 거치면서 가고시마 현의 일부가 되었다.
- ↑ 왜 바꿨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류큐가 명나라·청나라와의 책봉을 받은 국호이기 때문에, 일본이 청나라 측의 종주권 주장을 최대한 차단하기 위해 다른 이름으로 바꿨을 것이라는 게 정설이다.
- ↑ 사람을 죽여서 숫자를 줄였다는 이야기다!
- ↑ 오키나와의 경제 기반이던 설탕의 가격이 폭락했고, 이로 인해 현민들이 소철이라는 나무로 연명하던 시절을 말한다. 소철에는 독이 있어서 복잡한 가공을 거쳐 독을 제거해야 먹을 수 있는데, 사정이 급하다 보니 독이 빠지지 않은 소철을 먹고 앓다가 죽은 사람들이 꽤 되었다고 한다.
- ↑ 제주의 경우 1929~1931년간에 제주도순환궤도라고 하는 철도가 잠시 존재했었는데 몇년 가지 못하고 일제가 철거하였고 현재는 그 흔적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만큼 시망상태이다. 제주도에서도 아주 극소수 고령의 노인 일부를 제외하면 그런게 있었는지도 모른다...
- ↑ 서귀포시의 하논 일대가 대표적. 람사르 총회 등에서 세계적으로 보존가치를 인정받는 습지인데 제주도에서 매우 드물게 논농사가 가능한 지역이다. 그 외에도 조선시대에 제주 전역을 통틀어 3~4곳의 논농사 가능한 답이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까지 논농사가 가능한 지역은 하논 뿐이다. 그 외에 제주도의 각 지역에서 논농사가 아닌 밭벼 재배 형태로 벼농사가 이루어지기도 했었다. 물론 지금은 그런거 없다.
- ↑ 미군에 의한 오키나와 민간인의 피해가 적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미군에 의한 무차별적인 학살은 확인할 수 없다. 민간인 피해사례는 동굴에 들어간 사람들을 쫓아내기 위해 연막탄을 썼는데 주민들이 피하지 못하고 연막에 질식사한 경우와 같이 의도치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미군은 전투 후 주민 생활 복구를 위해 여러 노력을 다했다.
하지만 이후 미군기지를 짓고 눌러 살면서 민폐를 끼친다. - ↑ 곤밥은 쌀밥이란 뜻으로, 제주도는 쌀이 귀하지만 육지 사람들은 쌀밥을 자주 먹는다는 데에서 온 말이다.
- ↑ 원래 오키나와어는 AIU 3모음 체계로 오(O) 모음을 잘 쓰지 않아 야마투라고 발음했으나, 이후 본토와 교류가 늘면서 야마토라는 발음을 많이 쓰게 되었다.
- ↑ 다만 원래 한 나라 안에서도 지역마다 우세한 정당이 제각각이긴 하다. 다만 제주도와 오키나와는 그걸 감안해도 따로 특기할 사항이 있을 정도로 특이한 점이 있기 때문에 따로 정리한다.
- ↑ 제주어로 친척이라는 뜻. 괸당으로도 적은다. 한자어 권당(眷黨)에서 왔다. 인맥과 친목이 지방 정치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나온 말.
- ↑ 2014년 제47회 일본 중의원 총선거에서는 오키나와 4개 선거구에서 각각 일본 공산당, 사민당, 생활의 당, 무소속 후보가 당선되었다. 2016년 제24회 일본 참의원 통상선거에서도 자민당 후보가 완패하며, 오키나와에서는 중의원4석/참의원2석 모두 비자민당 의원들이 차지하게 되었다.
- ↑ 참의원에 의원이 한 명 있는 원내정당이다.
- ↑ 류큐의 독립을 주장한다
- ↑ 게다가 한국의 경우 분리 독립을 주장할 경우 현행 국가보안법에 저촉될 수 있다.(...)
- ↑ 다만 분리 독립 지지 여론이 높진 않다. 류큐 독립 운동 문서 참고.
- ↑ 허나 이어도는 육지가 아니어서 영토(領'土')가 아니기 때문에 영토분쟁이라는 단어 자체가 부적합하다. 실제로 중국정부에서도 이어도는 영토분쟁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발표한 적이 있다.
- ↑ 센카쿠 열도는 일본이 실효지배하고 있고 이어도에도 한국의 이어도해양과학기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