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개요
KBO 리그의 유명한 저주 중 하나로, 김성근을 감독직에서 자른 팀은 그 이후 암흑기에 빠지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한동안은 "김성근을 버리면 화를 입는다(=김성근 없으면 안된다)"는 의미였지만, 지금은 "김성근의 민폐질들로 인해, 구단과 후임 감독들이 수습하느라 고생한다"는 뜻으로 바뀌었다. 대체로 선수의 체력을 고려하지 않는 김성근 특유의 무리한 지옥훈련과 투수 혹사의 후유증으로 김성근이 지나간 자리에는 풀한포기 남지 않는다는 식으로 회자되곤 한다. 즉 김성근 감독의 막장 행각으로 팀이 후유증에 시달리는거지, 김성근 감독을 잘랐기에 저주에 걸린 것은 아니라는 의미. 인과관계를 잘못 따진 오류. 보다 구체적인 내용(즉, 전자에 대한 반론)에 대해서는 김성근의 저주/반론을 참조.
아무튼 그가 야신으로 추앙받던 시절에는 이런 저주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분명 있었고, 그래서 이 항목이 개설되었다. 저주에 걸렸다고 일컫어 지는 팀은 다음과 같다.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는 김성근 본인이 몰락에 크게 관여한 만큼 제외된다.
- OB 베어스 - 1989년 5위, 1990년 7위(1991년부터 8개구단 체제가 되므로 최하위) 1991년 8위.[1].
- 태평양 돌핀스 - 1991년 5위, 1992년 6위, 1993년 8위.
- 삼성 라이온즈 - 1993년 2위(김성근 퇴출후 1년은 등수가 훨씬 올랐다!), 1994년 5위, 1995년 5위, 1996년 6위 삼성은 이전에 4위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고 1996년 이후에는 2009년에나 가야 선동열 감독 체제에서 5위를 기록했으므로 삼팬 입장에서는 저주라고 보기에 충분한 성적이다. 구단 역사상 가을야구 못한 게 총 4번인데 그 중 3번이 이 저주로 인한 것이다.
- 쌍방울 레이더스 - 재정난 끝에 해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LG 트윈스 - 6668587667, DTD의 최대 피해자, 역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후 2013년 시즌으로 2002년 명성 회복.
- SK 와이번스 - 김성근의 저주에도 불구하고 2011시즌 이만수 감독대행은 김성근 감독 경질 당시 순위였던 3위를 유지하는데 성공했고 포스트시즌에서 2위 롯데를 3승 2패로 물리치고 한국시리즈에 진출 최종 순위 2위를 차지한다. 그 다음해인 2012시즌에도 시즌 2위를 올라 종합순위 2위의 호성적을 거둔다. 얇은 투수진이 더 약해진 2013시즌에는 7년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6위)했으나 2014시즌에는 그래도 처음에 6~8위를 오가다가 막판에 스퍼트를 올려서 최후까지 4위 경쟁을 하다 5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그리고 2015년에는 그 김성근을 부수고(한화 이글스에 상대전적 9승 7패로 우위) 5강 막차에 타면서 가을야구에 복귀했다.
2 자세한 내용
2000년대 이전의 내용은 김성근/지도자 경력을 참조. 사실 김성근의 저주라는 말이 부각된 시점이 LG, SK때문이라 해당 부분만 읽어도 충분하다. 그리고 실상 LG와 SK도 감독과 무관하게 '저주'에 걸려서 성적이 곤두박질친 것이 아니라, 김성근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라 사실 본인이 스스로 만든 저주에 가깝다. 절대 김성근이 '잘나서' 생긴 저주가 아니라 구시대적 야구가 빚어낸 비극인 것이다. 단, 삼성은 김성근이 스스로가 재임 시절부터 실패했다고 실토하고 있고(물론 각종 강연회에서 본인이 삼성 감독직을 맡았단 소리는 거의 하지 않는다), 쌍방울은 모기업이 재정난으로 주요선수를 죄다 팔면서 버티다 없어진 구단이라 마지막에 최악의 성적이 나왔다고 해도 별다른 해당사항이 없다.
2.1 LG 트윈스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 라이온즈와의 혈전 끝에 아쉽게 준우승에 그치고 만 LG 트윈스. 그러나 LG는 꼴찌에 가까운 전력을 가진 팀으로 강한 정신력을 보여 주며 준우승을 거둔 김성근 감독을 경질하는 병크를 저지르고 만다.
2003년 자율야구의 달인이자, 1994년 우승의 주역인 이광환을 감독으로 다시 영입했지만 6위을 기록했고, 이광환 감독은 시즌 후 스스로 2군 감독행을 자처한다. 바로 다음 해인 2004년에는 수석코치 이순철이 감독으로 승격되었고 프런트의 만행이 시작되면서 LG의 악몽은 시작되었다.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를 강제로 은퇴시키거나 김재현 각서 파동으로 인해 2004년 시즌 후 FA로 풀린 김재현을 SK 와이번스로 보냈으며 프랜차이즈 스타 이상훈 역시 SK로 트레이드된 후 갑자기 은퇴했다. 그 결과 LG는 3년 연속 6위라는 성적을 기록하게 된다.
2006년, LG는 유니폼으로도 병크를 저지르게 되는데 기본 틀만 변경이 되지 않은채 가슴로고만 Twins로 변경했다. 그 결과 창단 첫 꼴찌를 기록하며 이순철 감독이 사퇴했다. 이후 김재박 감독을 영입하면서 2007 시즌에 5위로 올라왔다.
2008년 LG는 기존 유니폼에 그룹 로고를 덧붙였다. 그러나 창단 이래 최저 승률과 팀도 2번째 꼴찌를 기록하고 말았다. 2009년 초반에는 2위로 올라가 김성근의 저주가 풀리나 싶은 듯 했지만 주전 포수인 김정민의 부상 이후 결국 7위로 내려가고 말았다.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 그 와중에 조인성과 심수창의 불화, 이후 김재박 감독의 박용택 타율 관리에 대한 만행에 대해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LG는 롯데 자이언츠의 8888577에 버금가는 암흑기인 6668587을 완성하였다.
그리고 2010년에는 박종훈의 LG가 김성근의 저주를 푸나 싶었지만 초반부터 안 좋은 일만 겹치면서 현실은 시궁창. 결국 2010년 시즌도 6위로 가을야구는 완전 실패. 게다가 2011년에는 초반 1~2위로 잘 나갔고 4위로 떨어졌을 때에도 5위와 8게임차였음에도 불구하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낙하하며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고 박종훈 감독이 시즌 도중 사퇴하며 기어이 666858766이라는 새로운 기록을 세우고 말았다. LG 팬들은 박종훈 감독의 사퇴 후, 김성근의 저주는 김성근 감독만이 깰 수 있다며 마침 2011 시즌 중 SK에서 경질당한 김성근 감독을 모셔오자고 쌍마에서 릴레이를 펼쳤으나 결과는 김기태 수석코치의 감독 승격. 그리고 2012 시즌에도 전력 유출을 겪으며 가을야구에 실패 6668587667이라는 열 자리수(햇수로 계산하면 두 자리수) 암흑기를 맞이하고 2013 시즌이 돼서야 비밀번호를 끊어내고 가을야구에 진출했다.
2.2 SK 와이번스
김성근 감독 부임시에는 3위 아래로 내려갔던 적이 없던 팀이 2012년에 1위에서 6위까지 떨어졌었기에 김성근의 저주가 현재 진행형이라고 봐도 무방했으나 부자는 망해도 3년 먹을 양식은 있다고 8월말에 다시 2위로 올라갔고 결국 최종순위 2위, 한국시리즈 준우승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2013년에는 계속 하위권을 전전하면서 시즌 내내 4강권에 들지도 못했다. 전반기 SK의 성적은 34승 1무 39패(0.466)으로 2013 시즌 4강이 70승 언저리인 것을 감안하면 후반기에는 36승 18패, 즉 후반기 전 경기 위닝시리즈를 거두어야 가을야구 안정권에 들 수 있다고 봐야 하니 정말 기적을 바라지 않고서는 포스트시즌이 어려울 상황이였다. 8월 되면서 올라가긴 올라갔지만..... 결국 9월 말에 SK 왕조 멸망. 게다가 기대를 걸었던 5할 승률마저 시즌 최종전에서 지켜내지 못하는 치욕도 당했다.
14시즌에도 한때 8위까지 추락하며 DTD 모드가 시작되는게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왔으나 막판 스퍼트로 5위까지 올라갔고, LG로부터 4위를 탈환하기 직전까지 갔다 아깝게 실패하여 5위로 시즌을 마무리 지었다.
그러나 15시즌에는 김성근 감독의 한화가 SK와의 첫 시리즈에서 스윕승을 거두며 3승을 깔고갔음에도 불구하고 김성근의 막장 운용과 투수진의 과도한 혹사로 SK에게 연일 위닝시리즈와 결국 마지막 시리즈에선 스윕까지 허용하면서 한화는 SK에게 11년 연속 상대전적 열세를 허용하고 말았고, SK는 결국 가을DNA 버프로 인해 후반기에 치고 올라가 5위로 포스트시즌 막차를 타는데 성공, 한화와 김성근이 그토록 앵무새처럼 부르짖던 5강행을 빼앗고 가을야구를 하는데 성공했다. 경질 이후 SK가 예전만큼의 성적을 거두지 못하는 이유는 다음 항목 참조.
3 원인
기본적으로 김성근의 야구는 극한의 Risk회피 전략에 기반한다.
자기 임기내에 최고의 성적을 내는데만 급급하기 때문에 일체의 위험요소와 모험을 피하고 철저하게 검증된 안정적인 방향으로만 운영하는 것이다. 김성근의 특징인 베테랑 우대, 신인 홀대, 과도한 경기개입, 투수혹사, 쥐어짜기 1점번트 야구, 잦은 수비 교체, 비과학적인 훈련, 부실한 체력관리, 프런트와의 대립 모두 이런 관점에서 기인한다.
3.1 리빌딩이 뭐죠?
일단 당장 자기 임기내에 성적을 내는데만 급급하고 그뒤는 내 알바 아니라는 태도를 보인다. 이때문에 선수단 구성과 운영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노출한다. 당장 자기 임기, 올 한해, 이번 달, 오늘 경기에서의 승패에만 집착하기 때문에 선수라면 내보내자 마자 무조건 잘해야 한다. 당연히 이미 1군에서 충분히 검증된 베테랑만을 선호한다. 소위 계산이 된다는 것이다.
반면에 육성과 1군 적응에 시간이 걸리는 신인 혹은 노망주는 거의 쓰지 않는다. 1군에서 검증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신인은 High Risk, High Return이다. 즉 신인을 중용해서 성공하면 대박이지만, 만일 실패하면 당연히 성적이 안나온다. 하지만 팀의 미래를 위해선 점점 기량이 하락세에 접어드는 노장들에게 체력안배를 해주면서 신인급들도 꾸준히 출전시켜서 경험을 쌓게 해야 한다. 하지만 김성근은 성적이 안나오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인지 소위 계산이 안되는 신인들, 노망주들에겐 제대로된 기회를 주지 않는다. 팀의 미래를 위해서, 내년 시즌을 위해서, 다음 경기를 위해서 가능성이 보이는 신인을 성적에 관계없이 꾸준히 1군에 내보내면서 경험을 쌓게한다? 김광현급이 아닌 이상 어림도 없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똑같이 심각한 투수 혹사로 비판받지만, 야수 육성과 리빌딩의 귀재로 평가되는 강병철 전 감독, 김경문 감독과 큰 차이를 보인다. 강병철의 양아들이나 김경문이 두산과 엔씨에서 보여준 화수분은 김성근 체제에선 절대 있을 수 없다.
이렇듯 1군 즉전감만을 선호하기 이미 전성기가 지나서 하락세에 접어든 베테랑과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신인을 맞바꾸는 트레이드에도 적극적이다. 구단이 프렌차이즈 스타를 기대하고 키우던 연고지 출신 유망주도 당장 1군에선 못쓰겠다 싶으면 즉시전력감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대면서 다른 팀 노장과 트레이드한다. SK왕조 시절 김광현이 오랬동안 막내였던게 이런 이유 때문이다. 노리타(야구)들은 SK스카우터들이 무능해서 감독님이 키울만한 신인이 아예 없었다고 강변하지만, 나이 마흔이 다되가는 은퇴직전의 최동수, 권용관 같은 노장들을 받고 선발투수 유망주 박현준을 트레이드한게 김성근이다. 박현준이 승부조작으로 제명되면서 묻혔지만 김성근이 맡는 팀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트레이드가 항상 있어왔다. 2008년에는 군필 20대 포수 유망주 정상호를 은퇴가 얼마 안남은 이숭용과 트레이드 할려다가 실패한 적도 있다.[2] 실제 이숭용은 불과 3년뒤인 011년 은퇴했다. 40대 1루수를 고작 2~3년 쓸려고 서비스타임이 한참 남은 20대 군필 포수 유망주를 줄려고 한것이다.
2015년 한화에서도 즉시전력감 확보 명분으로 1픽 유창식에 군필 외야수인 오준혁, 노수광을 김광수까지 묶어서 죄다 내주고 대졸 미필 임준섭, 신고선수 출신 이종환과 바꿨다. 양훈도 과도한 체중 감량 후 회복이 더디자 즉시 트레이드했다. 이때문에 한화 리빌딩 하라고 데려왔더니 다른 팀 리빌딩 시켜주고 있다는 비아냥을 듣고 있다. LG시절 당뇨병 환자 심성보까지 데려 왔고 한화 감독인 지금도 한번 자신의 팀에게 버림받은 적이 있는 권용관까지 데려 오는 데서 엿보이듯 타팀에서 하향세때문에 방출된 노장 영입에도 적극적이다.
이렇듯 새얼굴을 홀대하고 즉전감 베테랑만을 선호하면서 정작 20대 선수들을 혹시 쓸때가 있을지 모른다면서 자기 임기 중에는 군대도 안보낸다.[3] SK 시절만 해도 고효준, 이영욱, 조영민이 군 야구단 입단 가능 시기를 넘기는 바람에 공익으로 병역을 해결했고, 모창민과 이재원은 계속해서 붙잡혀 있다 부모까지 나서서 읍소해 감독 동의 없이[4] 상무 피닉스 야구단에 입대한 전적이 있다.
그나마 신인들도 활용한다는게 투수는 불펜 노예, 야수는 플래툰이나 백업이라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다. 매경기 5~6이닝 이상을 완급조절하면서 던져야 하는 선발 투수 키우는게, 당장 1이닝만 집중해서 던지는 불펜 투수 키우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이러니 당장 가능성이 보이는 젊은 투수가 나오면 바로 써먹기 위해서 불펜 노예로 굴리는 것이다. 신인야수는 빠르게 써먹기 위해서 좌우놀이용 대타, 아니면 대수비, 대주자 요원으로만 활용한다. 물론 1군 시즌 운영을 위해선 주전 이외에도 대타, 대수비, 대주자 등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자리는 치열한 주전 경쟁에서 밀려난 선수들이 돌아가는게 일반적이다. 반면에 김성근은 주전 자리는 노장들로 무조건 채워놓고, 신인급 선수들한테는 아예 기회 자체를 주지 않는다. 그래놓고 당장 눈에 띄는 능력 한두가지를 활용하기 위해서 대타, 대수비, 대주자 요원 등 백업으로만 쓰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포수 이재원. 포수는 육성에 긴 시간이 필요한 포지션이다. 대부분의 팀이라면 이재원 같은 대형 포수 자원은 2군에서 차근차금 수비를 다듬고 미리 상무나 경찰청에 입대시켜서 충분한 경험을 쌓게 한뒤에 1군에 콜업할 것이다. 혹은 1군 포수진이 허약하다면 입대 대신에 빠르게 1군에 콜업할 수도 있다. 그러나 김성근은 이재원이 좌투수 공을 잘친다는 이유로 임기내내 좌투수상대 대타 요원으로만 1군에 데리고 다니면서 군입대도 계속 늦췄다. 1군에서 포수경험을 쌓는것도 아니고, 병역해결도 못하고 어쩌다가 한번씩 나오는 대타만 몇년씩. 기량향상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20대를 그냥 허송세월 한것이다.
선수가 실력을 쌓기 위해서 경험이 중요한데, 정작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신인들한테는 극히 제한적인 롤(불펜 원포인트, 우투 상대 대타, 대수비 등)만을 부여하니 선수가 클 수가 없다. 게다가 어쩌다가 새얼굴이 가능성을 보이면 다른 팀 선수와 트레이드 추진.[5] 따라서 임기 내내 신인은 가뭄에 콩나듯하며, 그나마도 1군에서도 구른 선수들은 혹사와 플래툰 기용으로 인해서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다. 당연히 1군 평균 연령은 점점 올라가고, 김성근이 짤릴쯤 되면 주전중에 20대는 거의 없고 노장들만 가득한 노인정이 된다.
그외에 다른팀에서 방출된 선수들, 사실상 선수생명이 끝난 노장들도 쓸데가 있을 지 모른다면서 무조건 모으고 보자 식이다. 쓸데없는 노장들은 모조리 긁어모아, 젊은 선수들은 군대도 안보내니 당연히 선수단 규모가 다른 팀에 비해서 매우 비대해지며, 인건비도 많이 들어가지만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SK만 해도 05년, 07년 데뷔한 최정과 김광현이 김성근이 경질되는 11년까지 야수조와 투수조 막내였다. 이 해에 최윤석과 김태훈이 올라오면서 겨우 막내에서 벗어났다. 문제는 이 모든 뒷감당을 프런트랑 척지다 잘린 김성근의 후임 감독들이 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나 위의 혹사까지 더해져 선수단 일신이 불가피해진다.
그나마 삼성이나 SK는 후임 감독들이 어떻게든 팀을 추슬렀지만 LG는 김성근을 경질시킨 뒤 도저히 재평가를 할 수 없는 초대형 무리수를 일으켰다.[6], 결정적으로 이 과정이 한 시기에 다 일어나버리는 바람에 이 때 LG는 기반이 무너졌다. 결국 10년동안 비밀번호의 행진을 한 후 그 다음해인 2013년에 와서 다시 포스트시즌에 진출한다.
3.2 심각한 혹사와 비과학적인 훈련
눈부시게 발전한 현대 스포츠 의학, 체계적 트레이닝 방법론과는 담을 쌓은 사람이다. 21세기에 아직도 2차대전 일본군 마냥 정신력으로 육체의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있다고 공공연히 말하면서, 노-오-력을 강조한다. [7]
이러다보니 선수의 체력과 컨디션을 무시한 극한의 지옥훈련을 밀어붙인다. 스프링캠프기간부터 여타 야구단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긴데다가 중간에 쉬는 날도 거의 없다.[8] 게다가 매일 휴식도 없이 다른 구단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장시간의 훈련을 실시한다. 심지어 식사시간도 제대로 주지 않고, 점심은 훈련 도중 짬짬이 먹는 김밥으로 때울 정도이다. 이렇게 새벽부터 밤늦게까지의 강행군으로 선수는 녹초가 되고, 피로 누적으로 전지훈련 단계부터 부상자가 속출한다.
시즌이 시작돼도 이런 방식은 변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선수의 플레이가 맘에 들지 않거나, 성적이 부진하면 매일같이 지옥펑고, 특투, 특타를 반복한다. 휴식일인 월요일에도 선수들을 불러내서 훈련, 훈련, 훈련. '던지면 던질수록 어깨는 강해진다'식의 과학적 근거가 없는 속설을 믿다 보니까, 문제가 생기면 훈련시간을 늘리는 것으로만 해결할려고 하는 것이다. 이러니 김성근이 맡은 팀들은 항상 시즌 초반에는 잘나가다가, 무더위가 시작되는 6월쯤 되면 선수들의 체력고갈과 부상자 속출로 주춤한다.[9][10] SK에선 워낙에 좋은 선수들이 많으니 봄에 엄청난 승수를 쌓아놔서 버티기가 됬지만, 그 이전이던 이후던 다른 팀에선 그게 안되니 항상 여름을 지나면 무너진다. [11]
시즌이 끝나면 이번엔 마무리훈련이 기다리고 있다. 대부분 팀들은 1군 주전들은 휴식을 주고, 경기를 많이 뛰지 못한 1.5군이나 2군 백업급 선수들 그리고 입단예정인 신인선수들의 기량을 확인하는 목적으로 마무리캠프를 운영한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은 1군 주전들까지도 전부 마무리캠프에 데려가서 또 지옥훈련을 한다.[12] 그야말로 일년내내 개처럼 굴리는 것이다.
기계도 중간중간 세워서 다시 기름칠하고, 정비를 해야 수명이 길어지는데 사람을 이렇게 일년내내 휴식없이 굴리다보니, 몸이 버티지를 못한다. 몇년동안 김성근 체제에서 구른 선수들은 당장은 나타나지 않더라도 몸에 피로가 누적되있어서, 어느 순간 확가버리는 경우가 많다.[13]
2015년에 80년대에다 할 법한 투수 로테이션을 실행했다. 당연히 선수들, 특히 특유의 벌떼야구를 감당해야 하는 투수진에는 엄청난 과부하가 걸린다. 여기에 전술한 대로 오대산 극기훈련으로 대표되는 비과학적이고 오히려 선수의 몸을 망치는 지옥훈련을 계속하다 보니 선수의 몸이 망가지는건 당연지사. 다음 시즌에 재충전을 위한 중요한 시기인 비시즌 기간까지 팀 훈련을 소집해 선수들을 굴렸다. 이것이 선수의 단기적 성장에는 도움을 줬을지 몰라도 비시즌중 과도한 훈련으로 정규시즌을 망친 선수들의 사례 역시 적지 않다.
게다가 있는 자원을 최대한 쥐어짜는 유형이라 기존 자원이 계속 그 강행군을 견뎌야 한다. 이러니 처음에는 견디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팀 뎁스에는 구멍이 난다. 단적인 사례가 태평양 돌핀스 마지막 해에 기록한 성적. 부상자가 속출했다. 태평양 전후로 맡았던 OB 베어스와 삼성 라이온스는 혹사가 당연시되던 시대라서 묻혔다고 하지만, 36살의 김성길을 선발 겸 중간계투 겸 중무리 겸 패전처리로 188이닝을 돌린 것은 엄청난 논란을 일으켰다. 그뒤에 쌍방울 레이더스에서도 김현욱을 순수하게 불펜투수로만 쓰면서 157이닝을 던지게 했다.
투수 분업화가 정착된 후 맡은 LG와 SK에서도 혹사 피해자들이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이동현은 김성근 감독 치하 2년 동안 엄청난 혹사를 겪은 이후 이순철이라는 금지어를 만나 장기 부상의 늪에 빠졌으며, 신윤호 역시 2001년에 엄청난 혹사를 받고, 다시는 그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고 장문석도 2002년 100이닝을 넘게 던진 이후 KIA 타이거즈로 가서 은퇴할 때까지 부진하였다. SK 불펜진도 마찬가지 였는데 간단하게만 봐도, 그나마 이승호, 채병용, 전병두 등이 모두 혹사를 당해봤고 역대급 내구성의 정우람을 제외하면 모두 후유증에 시달렸다.
그리고 이러한 혹사는 15시즌 한화에서 정점을 찍는다. 살려조 항목 참조.
3.3 프런트와 척을 지다 금방 잘린다.
김성근 감독은 여러 팀을 거치는 동안 구단 고위층과 사사건건 불화가 많았으며 프로 커리어 내내 단 한번도 계약기간을 제대로 마친 적이 없이 경질 당했다. 이렇게 된 것은, 김성근은 프런트을 무시하고 선수단 운영에서 감독의 절대적인 권한을 추구하는 인물이기 때문. 단순히 팀운영에 힘을 보태달라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자기가 다 하겠다는 뜻이다. 김성근은 FA 영입과 선수 트레이드, 신인 지명, 선수단 복지, 군 입대 문제, 훈련 방식과 일정까지 다른 구단에선 프런트가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진행하는 것들까지 자기 마음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인물이다. 이 과정에서 프런트가 사소한 의견을 제시하기만 해도 불같이 화를 내면서 야구모르는 프런트가 현장에 간섭한다고 사방에 언플을 하고 다닌다. 김성근이 구단에 요구하는 건 오직 자신에게 비난이 돌아오지 않도록 하는 언론플레이, 즉 방패막이 역할 뿐이다. 즉 김성근이 원하는 감독의 역할은 사실상 감독 겸 사장이며, 프런트는 그저 돈이나 바치는 호구로 보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러한 방식은 결과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여러 부작용을 불러온다. 야구단은 엄연히 법인이고 회사이기 때문.
일단 예산이 문제가 된다. 프런트에서 정해준 금액을 쓰는게 아니라 자기 마음껏 돈을 쓰고 모자라면 더 바치라는 식이다. 그나마 프로 구단은 어떻게 감당할 수라도 있지 독립구단인 고양 원더스는 김성근과 그가 데려온 코칭 스태프의 고액 연봉에 해외 전지훈련 등 과도한 재정 지출이 구단 운영에 심각한 부담이 되었고, 결국 3년만에 허민(기업인) 구단주가 포기하고 팀을 해체해버렸다.[14][15] 축구계의 아르센 벵거처럼 팀의 재정까지 고려해서 움직이는 인물은 아니라고 봐야 할 것이다. 실제 김성근이 감독을 맡았던 모든 팀들은 언제나 페이롤(연봉총액)이 상위권이었다. 지금은 '돈이 없어서 항상 설움을 받았지만, 김성근 감독의 지옥훈련을 통해서 여타 재벌구단을 무너뜨렸다'[16]식으로 미화되고 있는 쌍방울 레이더스도 실제로는 KBO구단중에서 선수단 연봉총액이 1위였다. 그 돈많다는 삼성보다도 더 많은 돈을 쓴게 김성근 체제의 쌍방울 레이더스였던 것이다. SK 와이번스 시절에도 다른 팀에 비해서 훨씬 많이 쓰는 훈련비용 및 코칭스탭 인건비[17] 때문에 프런트와 불화가 심각했다. 김성근이 감독이 취임한 이후 한화 이글스도 페이롤이 대단히 높은 팀중 하나이며 이미 2015년에 지정된 예산을 초과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 시즌 중반에 엠팍에 자칭 '한화 2군 선수'라는 인물이 "지금 한화 2군은 선수가 없어서 경기도 제대로 못할 정도로 육성시스템이 무너졌으며, 예산도 오래전에 초과해서 운영비도 없는 막장이다"라는 요지의 글을 올린적이 있다. 글의 신빙성에 대해서 설왕설래가 있었지만, 2016시즌 이후 미디어를 통해서 드러나고 있는 한화의 내부 상황을 볼때 팩트에 가깝다고 여겨지고 있다.
거기에 외국인 선수가 조금만 개성이 강하다 싶으면 자기 말을 안듣는다면서 연봉이 얼마던 실력이 얼마나 뛰어나던 바로 내친다.[18] 선수를 자신의 장기말로 보기 때문에 외국인 선수들한테도 자신에게 절대 충성하기를 요구하는데, 철저하게 계약관계로 움직이는 서양권 선수들 입장에선 이뭐병. 당연히 트러블이 날 수 밖에 없다.[19]
이런 막장짓거리의 뒷감당을 다 해야 하는 프런트 입장에선 굉장히 피곤한 인물이다. 게다가 위에서 언급한 노장 위주의 선수단 구성과 특유의 쥐어짜는 스타일 탓에 성적은 부임 첫해가 최고이며 그뒤로는 계속 하락한다. [20] 헌데 언플을 통해 그 모든 공로를 자기가 가져가고 맘에 안들면 지원해준 프런트 비난하는 것도 서슴치 않는 인물이다. 프런트가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 아닌 다음에야 장기집권이 가능할 리가 없다.
가장 큰 비극은 정작 김성근 본인은 항상 팀이 무너지기 직전에 짤린다는 것이다. 김성근은 언제나 부임 초기부터 프런트 및 고참선수들과 불화를 겪는데, 첫해에는 성적이 좋게 나오니 모기업 고위층들이 감싸주면서 무마가 된다. 하지만 신인홀대와 혹사 후유증으로 성적이 내려가기 시작하면 이런 불협화음들이 외부로 노출이 되고, 높으신 분들 보기에 우승도 못하면서 이미지만 더러워지니 버리는 것이다. 그게 보통 부임 2-3년차.[21] 그리고 가혹한 투수혹사의 후유증과주축급 선수들의 줄부상 그동안 미뤄둔 20대 선수들의 군 입대로 선수단이 휑해지면서 팀이 무너진다. 성적이 추락하니 당연히 욕은 후임 감독과 프런트가 다먹고, 김성근은 "봐라, 야구도 모르는 프런트가 현장 간섭하고 나 짜르더니 팀 망가지지 않냐. 조금만 시간이 더했으면 우승도 가능했는데, 아쉽다."식으로 사방팔방 언플을 하고 다닌다.
좋은예가 삼성의 비밀번호 556. 분명히 원인은 조급한 리빌딩과 맹목적인 양아들 기용으로 선수단 장악에 실패하고 팀을 와해시킨 김성근이다.[22] 하지만 정작 김성근은 그전에 잘렸고, 이미 만신창이가 된 선수단을 데리고 비밀번호를 쓴건 후임인 우용득과 백인천이었다. 밑밥은 다 깔지만 터지기 전에 잘리니 커리어를 겉으로만 보면 실패가 거의 없는 명감독으로 보인다. 물론 이 해고까지 본인이 다 계획했을리는 없다. 그냥 아무리 좋은 프런트라도 4년 이상 못버티게 만드는 특유의 독재자 기질이 문제인거다.
삼성 이전에 부임했던 태평양 돌핀스에서도 부임 첫해에는 정명원, 최창호, 박정현 신인투수 3인방을 쥐어짜서 3등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였다. 그러나 2년차엔 투수혹사 후유증으로 5등으로 내려앉았고, 프런트와의 갈등으로 시즌 직후에 해임되었다. 참고로 당시는 7개구단 체제였다. 그리고 김성근 후임으로 차례로 들어선 박영길, 정동진 감독 시절에는 멀쩡한 투수가 없어서 시즌운영이 불가능한 수준. 박영길은 성적 못낸다고 1년만에 짤리고, 그 뒤를 이은 정동진 감독은 그래도 모기업에서 상황을 이해하고 임기를 보장해준 덕분에 투수들 재활시키느라[23] 2년을 날린 후 3년차에야 팀을 가을야구까지 올리는데 성공한다.
야구계에서 김성근이 지나간 자리에는 풀한포기 남지 않는다! 말이 괜히 나오는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