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나라의 프로야구계에서는 오랫동안 우승 못하는 팀들의 이유를 저주로 설명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에 대한 이야기들을 소개하는 페이지.
목차
1 풀리지 않은 저주
1.1 염소의 저주
염소를 입장금지 시키는데 모든 힘을 쏟아낸 컵스는 이어지는 메이저리그 역사 이래 거짓말처럼 연패를 당했다.
야구계에서 가장 유명한 저주이며 밤비노의 저주가 풀린 시점에서 가장 오래도록 남아있는 저주. 1940년대 그리스계 이민자로 시카고 컵스의 열성팬이었던 빌리 시아니스는 애완 염소를 가족처럼 아껴서 컵스의 홈구장인 리글리 필드로 데려가서 같이 경기를 관람했다. 1945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와의 월드시리즈 4차전 열리자 염소의 표까지 끊어서 경기장에 들어갔고 4회까지 관람했다. 그런데 구단주 필립 K 리글리가 염소가 악취를 풍긴다며 퇴장할 것을 요구했고 관람중에 별안간 쫒겨나게 된 그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다음과 같이 저주했다.
"컵스는 더 이상 우승을 못할 것이야. 리글리 필드에 염소를 입장시키지 않는 한 다시는 월드 시리즈에서 승리하지 못할 것이라고!""You are going to lose this World Series and you are never going to win another World Series again. You are never going to win a World Series again because you insulted my goat"
컵스가 월드시리즈 진출을 못한다는 것이 저주의 내용으로 많이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우승을 하지 못할거라는 저주였다. 월드시리즈에서 진출은 할 것이지만 한 경기도 못이길거라고 보는 해석은 잘못된 것이, 바로 그 해 월드시리즈에서 염소의 저주 이후에 치러진 6차전 한 경기를 연장 12회에 가까스로 이겼기 때문이다. 만약 월드 시리즈에서 승리하지 못하는 것이 저주의 내용이라면, 염소의 저주는 저주가 걸린 해당 년도에 풀렸어야 했다. 따라서 염소의 저주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1]
그 해 월드 시리즈에서 3승 4패로 우승에 실패한 컵스는 월드 시리즈 진출은 물론, 대한제국 융희 2년 이후 100년을 훨씬 넘어 현재까지도 아직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을 하지 못하고 있다.
1973년 빌리 시아니스의 조카인 샘 시아니스가 빌리 염소의 7대손 염소와 함께 리무진과 붉은 카펫을 동반, "모든 것이 용서됐다. 빌리 고트여, 나로 하여금 컵스를 페넌트 경기를 우승하게 하소서"라고 해주를 하려고 리글리에 입장하려 했으나 또 다시 저지되고 말았다. 그리고 또 졌다. 이쯤되면 괘씸죄로 낙인찍혀도 할말 없을듯
사실 2003년 저주를 깰 절호의 기회가 있었다.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5차전까지 컵스는 3승 2패로 플로리다 말린스를 리드하고 있었고, 6차전 선발투수로, 시즌 18승을 거둔 유망주 마크 프라이어가 호투하며 7회까지 3-0으로 컵스가 앞서고 있었으나…
8회초 말린스의 공격, 루이스 카스티요[2]가 친 공이 좌측 파울선으로 날아가는 순간, 스티브 바트만이라는 컵스 팬이 공을 잡으려고 손을 내밀면서 좌익수 모이세스 알루가 공을 못 잡고 말았다. 이 상황 이후 프라이어가 심리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했고, 이후 말린스가 구원 투수들을 후드러 패며 컵스는 8:3으로 믿을 수 없는 역전패를 당하게 되었고 7차전에서도 내리 패하며 월드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그리고 그들을 밟고 올라선 말린스는 뉴욕 양키스를 꺾고 그해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한다. 그리고 바트만은 온갖 욕을 다 먹었는데 그에 대해선 시카고 컵스 항목을 참고할 것.[3]
우선 우승을 하려면 탄탄한 투수진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당시의 영건 3인방이었던 프라이어, 케리 우드, 카를로스 잠브라노 중 우드는 결국 불펜투수로 전향했다가 은퇴, 프라이어는 사실상 재기불능 상태로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다 은퇴, 잠브라노는 한동안 자기 역할을 해줬지만 결국 멘탈이 박살나서 마이애미 말린스로 내쳐졌고, 마이애미에서도 재계약에 실패해서 백수가 되었다.[4]
이후 이 때 건드린 파울볼을 경매로 사들여 공개 폭파쇼를 벌인다거나, 전에 경기장에 못들어 온 시니아스의 후손들을 무료로 입장시키고, 그의 염소 후손을 리글리 필드 내로 모셔오거나 하는 등 염소의 저주를 풀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을 했으나 효과는 아직 없다. 염소를 안들여보내면 우승 못한다고 했지 염소 들여보내면 바로 우승한다고는 말 안했다. 아니 그 전에 손자가 용서해준다고 한 걸 지들이 거절했으니 저주 내린 당사자가 그거 보고 저승에서 노해서 저주를 따따블로 내렸다 카더라
'리글리 필드'에서 월드시리즈 승리를 못한다고 저주했으니 아예 새 구장에 가서 저주 자체를 피하면 되지 않냐는 농담도 있다. 참고로 컵스의 첫 전국제패는 리글리 필드가 개장하기 전에 했으므로 리글리 필드에서 우승이 나온 적은 단 한 차례도 없다.
2015년 시카고 컵스는 영화 Back To The Future가 예언한대로 우승을 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쏟아지는 가운데 NL 전체 승률 3위로 와일드카드 진출 후, NL 승률 2위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 NL 승률 전체 1위 '가을좀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연이어 박살내고 NLCS에 진출했다. 컵스팬들은 이번에야 말로 저주를 극복하겠다며 가을야구 개막전 단체로 모여 염소고기 파티도 벌였었다. 염소 : 아니 이것들이? ㅂㄷㅂㄷ 그러나 NLCS 내내 뉴욕 메츠의 대니얼 머피의 활약에 휘말리다 스윕으로 탈락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시아니스의 애완염소 이름도 "머피"였다.
아직은 설레발에 가깝지만, 2016년 시카고 컵스는 성공적인 리빌딩을 통해 현재까지 이번 시즌 MLB 전체 승률 1위혼자 6할를 달리는 막강한 팀이 되었다! 백 투 더 퓨처의 예언에는 실패했지만, 그 다음 년도에 우승의 적기가 찾아온 것. 시카고 컵스#s-2.6.5 참조. 그리고 디비전 시리즈의 결과에 따라 대니얼 머피를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2016 내셔널 리그 디비전 시리즈에서 워싱턴 내셔널즈가 LA 다저스에게 탈락하면서 대니얼 머피를 만나게 되는 일은 없게 되었다.
시카고 컵스가 71년만에 월드 시리즈에 진출하면서 그 저주가 깨질 기회가 생겼고, 이 저주와 후술하는 저주 중 하나는 깨질 것이다. 2016년 10월 26일 월드시리즈 2차전에서 이겨 1승 1패가 되면서 문제의 그 해 시리즈 이후 첫 승리를 기록했다.
1.2 와후 추장의 저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는 1948년을 마지막으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해보지 못했는데, 이는 컵스 다음으로 오랜 기간 동안 월드시리즈 우승을 못한 기록이다. 팀 로고에 아메리카 원주민을 바탕으로 한 마스코트인 '와후 추장'의 얼굴을 우스운 모양으로 박아넣어 원주민들의 원한이 깃들었기 때문이라고 전해지는데, 일명 '와후 추장의 저주(Curse of Chief Wahoo)'라고 한다.
그럴만 해 보이네
1995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1997년 플로리다 말린스에게 월드시리즈에서 졌고, 가장 최근에 월드시리즈에 가까웠던 2007년 ALCS에선 보스턴 레드삭스에게 3승1패로 앞서가다 3연패를 당해 다잡은 월드시리즈 진출을 놓치기도 했다.
이 저주를 의식한 것 때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클리블랜드는 2011년 기존의 홈 유니폼을 제외한 리트로 스타일의 홈 유니폼과 원정 유니폼, 얼트 유니폼(원정) 착용 시 경기에 쓰는 모자와 헬멧의 패치를 와후 추장 로고에서 알파벳 C로 바꾸었고 공교롭게도 2011 시즌에는 초반 지구 1위의 호성적을 거두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중부지구 1위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와 15게임이라는 압도적인 격차로 2위에 그치고 말았고, 2위 주제에 승률이 겨우 0.494로 당연히 와일드카드 획득도 실패. 막판까지 치열했던 와일드카드 열전에 대해 알고 싶다면 2011 MLB 와일드카드 레이스를 참조하자. 2013년에는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진출했지만 탬파베이 레이스에게 깨지면서 66년째 우승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하지만 2016년, 중부지구 1위를 차지하고 2016 아메리칸 리그 디비전 시리즈에서 보스턴 레드삭스를 3:0으로 스윕하고 2016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 진출했다. 만약 월드 시리즈에 진출한다면 우승을 노려볼 만하다. 그리고 드디어 토론토 블루제이스를 꺾고 2016년 월드 시리즈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그리고 상대편으로는 NLCS에서 시카고 컵스가 올라와 세기의 대결이 펼쳐지게 되었다. 일단 둘 중 하나는 무조건 깨진다.. 2016년 10월 25일 월드시리즈 1차전에서 이겨 1승 1패가 되면서 문제의 그 해 시리즈 이후 첫 승리를 기록했다.
1.2.1 유사 사례 : 올드 유니폼의 저주
해당팀은 삼성 라이온즈. 이미 풀렸던 져주기 게임의 저주의 변형이기도 하다. 올드 유니폼 이벤트를 하면 꼭 끝이 좋지 못한데, 혹자는 준우승의 원한이 서려서 그렇다고... 특히나 통합 2연패(2005, 2006)와 4연패(2011 ~ 2014) 당시에 올드 유니폼 데이는 없었다는 것이 그 증거. 올드 유니폼 데이를 한 시즌을 보면,
- 2009년 : 감독 선동열[5]의 한계가 드러난 시즌. 최종순위는 5위로, 조원수박차가 나타난 시즌이다.
- 2015년 : 2001년 이후 14년만의 업셋 준우승(1승 후 4연패). 도박 사건이 발생하여 투수 3명이 이탈했고, 그 중 2명은 더 이상 삼성 소속이 아니다.
- 2016년 : 말이 필요없다. 직접 보자.
답은 하나, 올드 유니폼을 다 태워버리는 거다
1.3 커넬 샌더스의 저주
항목 참조.
1.4 이영민 타격상의 저주
팀의 우승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저주는 아니다. 자세한 것은 이영민 타격상 항목 참조.
1.4.1 팀 버전 : 류중일의 저주
- 관련 항목 : 큰 수의 법칙
2011년 류중일 감독의 삼성 라이온즈 감독 부임 이후, 2015년까지 매 해 페넌트레이스에서 삼성을 상대로 가장 우세를 거둔 팀의 감독들에게 다음 시즌에 영 좋지 못한 일이 일어난다는 저주. 일단 승패마진이 0이면 효과에서 제외. 두말할 것 없이 기록으로 보자면,
팀 및 해당 시즌 | 전적 | 결과 |
11시즌 한화 | 9승10패 | 한대화 감독 12시즌 도중 경질. |
12시즌 두산 | 7승12패 | 당해시즌에서는 롯데에게 13년만의 포스트시즌 승리를 안겨주지 않나, 13년 KS 3승 1패에서 내리 3연패 당하는 바람에 김진욱 감독이 13시즌 준우승 후 경질. 그리고... |
13시즌 LG | 7승9패 | 김기태 감독 14시즌 도중 야반도주 |
13시즌 넥센 | 7승1무8패 | 예외사례 1...이었다. 하지만 2014년 통한의 준우승에 한이 서린 나머지 2015시즌에서 살려조 넥센 .ver을 찍어서 감독 경력에 오점을 남긴 것과 2016년에 준플레이오프에서 1승 3패로 털린뒤 찜찜하게 사퇴했다는 게 문제. |
14시즌 두산 | 6승10패 | 송일수 감독 14시즌 종료 직후 경질 |
15시즌 한화 16시즌 한화 | 6승 10패 5승 1무 10패 | 김성근 감독뿐만 아니라, 한화 팀 자체가 쫄딱 망했다. |
16시즌 롯데 | 5승 11패 | 느그가 프로가? ㅋㅋㅋㅋ로 요약 끝.(...) |
16시즌 두산 | 6승 10패 | 2번째 예외가 될 수도 있다. |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중에서 제일 억울할 것 같은 팀(...)은 11시즌 한화와 13시즌 LG. 겨우 1~2경기 더 가져간 죄로 저주에 희생당해버렸다.(...) 괜히 김기태 감독이 8승 8패에 열올리는 게 아니다 LG야 다음 시즌에 가을 DNA 모드 발동해서 비껴갔지, 한화는 뭐...(...)
다만 표본이 적어서 앞으로도 계속될지는 의문. 또한 2015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김태형감독에게는 해당될지가 미지수인데, 사실 2015년 두산은 삼성 상대로 열세여서 해당되지 않는다. 이 저주는 페넌트레이스를 표본으로 삼았지, 포스트시즌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
결론적으로 팀 상황이 안 좋은데 무리하게 한 팀만 잡으려 들다가는 다른 쪽에서 문제가 터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한 팀 확실히 잡았다고 설레발 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도 보여준다. 관련 항목에 큰 수의 법칙을 넣은 것도 그 이유. 사례 중 12시즌, 16시즌 두산과 13시즌 넥센을 제외하면 감독들의 오판과 선수층 문제가 겹쳐서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팀들이다.
이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이나 반박 등은 항목 참조.
1.5 10번의 저주
이 저주는 OB 베어스의 전 감독 윤동균과 연관이 있는데, 이는 윤동균이 현역 시절 달던 번호가 10번이었고, 한때 영구결번까지 갔지만 1994년 OB 베어스 항명파동으로 물러나면서 슬그머니 해제, 그 후 두산 베어스로 가면서 10번을 단 선수들이 이상하게 부진을 겪게 되는 일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 첫 번째 타자는 문희성으로 1997년 입단 이후 1년 동안 10번을 달고 뛰었다. 그러나 문희성은 이후 2군을 전전하는 2군 본즈가 되어 2005년 시즌을 제외하면 만년 2군, 백업을 전전하다가 잠시 버스기사를 하기도 하고 현재는 사회인 야구에서 뛰고 있다.
이후 10번을 단 선수는 강혁 한양대-OB 사이 이중등록으로 영구제명까지 갔다가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 이후 복권되어 당시 지명권을 소유한 두산으로 5억 7천만원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면서 10번을 달게 된다. 그러나 당시 두산은 1루수로 타이론 우즈가 있었고, 거기다 해태에서 최훈재를 영입한 상황. 자리가 없어진 강혁은 대타를 전전하다 2001년 SK 와이번스로 이적, 이후 2004년 병역비리 사건 때 방콕 아시안게임 직전 병역 면탈을 시도했던 사실이 드러나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받은 병역특례가 박탈되고 공익요원으로 입대하면서 선수인생이 완전히 망가지게 된다.
강혁이 이적한 후 이번에는 심재학이 2001년 2월 두산으로 오면서 10번을 달게 되었다. 심재학은 2001년 한국시리즈의 우승 주역이 되었고 더불어 성적도 타격 2위인 0.344에 홈런 24개, 88타점을 기록하며 커리어하이를 찍었는데... 2002년과 2003년에 거짓말같이 패망, 결국 2004년 KIA 타이거즈로 이적하면서 10번의 주인은 사라졌다.
이후 트레이드된 황윤성이 10번을 달았지만, 그 또한 2005년 5월 현대 유니콘스 전에서 그라운드 홈런을 친 인생경기를 제외하면 큰 존재감은 없었고, 최준석이 2006년 이적 이후 2007년부터 10번을 달게 되는데, 최준석은 2007년 16홈런, 2009년부터 2011년까지 5번 타자로 맹활약하며 저주가 드디어 깨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고질병인 무릎 부상이 발목을 잡기 시작, 2012년과 2013년을 연속으로 부진했다. 하지만 2013년 포스트시즌 맹활약 이후 FA때 친정팀 롯데 자이언츠로 컴백, 부활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최준석은 롯데에서는 25번을 달고 있다.
최준석이 떠난 후 10번은 2011년 말 한화 이글스에서 2차 드래프트로 영입한 김강이 달고 있었는데, 김재환, 오재일 등에 밀려나면서 2군을 전전했고 끝내 두산 유니폼을 입고는 1군에 올라오지 못한 채 2016년 9월에 선수단에서 제외되었다.
2 풀린 저주
2.1 밤비노의 저주
염소의 저주와 쌍벽을 이뤘던 저주
가장 유명했던 야구계의 저주. 보스턴 레드삭스는 1901년 창단한 이후 1918년까지 5번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명문팀이었다. 하지만 레드삭스의 구단주 해리 프레이지는 1912년에 새로 지은 야구장인 펜웨이 파크를 건설하는 데 융자받은 돈을 갚기 위해 1920년 1월에 팀의 간판타자[7]로 전 시즌에 홈런 신기록을 세운 베이브 루스를 12만 5천 달러, 거기에 향후 37만 5천 달러를 빌리는 조건을 덧붙여 뉴욕 양키스로 현금 트레이드했다.
이후 양키스는 루스의 미친듯한 홈런 행진 덕분에 메이저 리그 최고 명문팀으로 성장해 2009년 우승을 포함해 모두 27번이나 우승을 차지한 반면, 레드삭스는 2004년에 우승할 때까지 단 한 번도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지 못했다. 특히 1986년 월드 시리즈에서 3승 2패로 앞서고 있던 뉴욕 메츠와의 월드시리즈 6차전, 연장 10회말 동점 2아웃 상황에서 1루수 빌 버크너가 공을 가랑이 사이로 빠뜨리는(알까기) 실책으로 무너지며 영상 7차전마저 패배하며 우승에 실패하자 이를 두고 언론에서는 루스의 애칭을 따 '밤비노의 저주'라 부르기 시작했다. 29년 후 상대팀이었던 뉴욕 메츠의 대니얼 머피가 4차전에서 실책
저주를 풀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한 끝에 레드삭스는 2004년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양키스를 3연패 뒤 4연승으로 역스윕하며 월드시리즈에 진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시리즈 셧아웃으로 꺾고 우승함으로써 86년 만에 저주를 풀었다. 그러나 당시 커트 실링의 피 묻은 양말 조작설이 돌기도 했고, 후에 타선의 핵이었던 매니 라미레즈와 데이빗 오티즈의 약물 복용이 사실로 밝혀지며 의미가 퇴색.
어쨌든 이후 레드삭스는 2007년에 샌디에이고-만패-애리조나를 차례대로 셧아웃시키고 올라온 록토버 콜로라도 로키스를 시리즈 셧아웃시키면서 팀의 일곱번째 우승을 기록한다. 그리고 2013년 10월 31일 95년만에 펜웨이 파크에서 8번째 우승을 확정지으며 저주에 확인사살을 찍었다.
2.2 검은 양말의 저주
시카고 화이트삭스가 1919년 최악의 승부조작 사건인 블랙삭스 스캔들을 일으킨 이후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한 것을 가리키는 저주.
당시 구단주인 찰리 코미스키가 지독한 수전노였기 때문에 급여를 짜게 주는 것은 물론 선수들에게 유니폼 세탁비도 받을 정도였다. 결국 돈이 필요했던 화이트삭스 선수 조 잭슨 외 7명은 신시내티 레즈와의 월드시리즈에서 도박사와 짜고 승부를 조작했다. 이후 8명은 야구계에서 영구퇴출 당했고 화이트삭스는 우승을 못하는 것은 물론 연고지에서의 인기도 시카고 컵스에 압도적으로 밀리는 안습의 세월이 86년 동안 계속되었다.
그렇게 안습의 세월을 달리다가 2005년 포스트 시즌에 갑자기 미친 저메인 다이와 조 크리디, 진숙희의 사기짓 등의 활약으로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시리즈 셧아웃으로 꺾어 88년만에 통산 3번째 우승을 거두며 저주를 풀었다. 또한, 월드시리즈를 4전 전승으로 우승한 통산 19번째 팀이 됐다. 무엇보다 지역 라이벌 시카고 컵스보다 우승을 먼저 했으니 기쁨도 두 배. 그리고 컵스는 월드시리즈 우승을 못한 지 한 세기가 지나가고 말았다(...) 이번에 월드 시리즈에 올라갔다는데 지켜 보자
2.3 윌리엄 펜의 저주
필라델피아의 모든 프로팀(만패델피아,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필라델피아 이글스, 필라델피아 플라이어스)이 우승을 하지 못하는 저주.
필라델피아 시가 속한 펜실베이니아 주를 건설한 윌리엄 펜이란 사람을 기려 1871년 신축한 필라델피아 시청 건물 꼭대기에는 37피트(약 11미터) 크기의 펜의 동상이 세워졌다.[8] 그리고 필라델피아에는 시청보다 높은 건물을 안 짓는 불문율이 있었는데...
그런데 1987년에 필라델피아에 945피트(약 288미터)짜리 고층 빌딩이 세워졌다. 이후 필라델피아 필리스(야구), 필라델피아 이글스(미식축구),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농구), 필라델피아 플라이어스(아이스하키) 등 필라델피아 시를 연고지로 하는 모든 프로팀이 21년 동안 단 한 번도 우승을 하지 못하는 사단이 벌어졌다. 필라델피아 시민들은 이를 가리켜 펜이 자기가 서있는 높이보다 높은 건물이 세워지자 열폭해서 저주를 걸었다고 얘기하기 시작했다.
이 저주를 깨기 위해 2007년 6월에 신축한 975피트(약 297미터) 높이의 빌딩 꼭대기에 윌리엄 펜의 인형을 갖다놓았다. 얼마 후에 인형이 도둑맞자 2008년 월드시리즈를 앞두고 급히 작은 윌리엄 펜 인형을 구해다 대신 세워두었다. 이 덕분인지 2008년 월드시리즈에서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탬파베이 레이스를 상대로 4승 1패의 성적으로 필라델피아 팀으로는 25년 만에(1983년 시즌 세븐티식서스의 NBA 우승) 우승을 하게 되었다. 다만, 다른 팀들은 아직 우승을 못하고 있어서 절반의 성과.
2.4 노무라 카츠야의 저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전신인 난카이 호크스에서 활약했던 노무라 카츠야가 플레잉매니저 시절인 1977년 시즌 2경기를 남겨둔 상황에서 아내(당시는 애인) 노무라 사치요의 막장행각[9]으로 인해 감독직을 사임하고 난카이를 떠나면서 기나긴 저주가 시작되었다. 노무라가 떠난 다음 해인 1978년부터 중간에 1988년 난카이 전기철도가 다이에에게 구단을 매각해 오사카에서 후쿠오카로 이전한 후 1997년까지 일본 프로야구 최장기간 B클래스 기록인 6565655664546546456를 세웠다.(참고로 6이 꼴찌).
이후 1993년 80년대에 세이부 라이온즈를 강팀으로 만들었던 GM 네모토 리쿠오가 부임해 세이부에서 한 것처럼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트레이드와 스카우트 등으로 좋은 선수들을 연이어 영입하고 1995년 왕정치가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심기일전하기 시작하여 드디어 1998년 리그 A클래스를 찍으며 비밀번호를 끊었고, 1999년 퍼시픽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센트럴리그 우승팀인 주니치 드래곤즈와의 일본시리즈에서 4승1패로 프랜차이즈 역사상 35년 만에 우승을 차지하며 기나긴 저주가 깨지게 되었다.(다만 네모토 리쿠오는 이해 4월 사망해 일본시리즈 우승을 보진 못했다.) 2000년 일본시리즈에서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에게 밀려 준우승 했지만 2003년에는 '호호응(호랑이와 매) 시리즈', '산요 신칸센 시리즈'라 불린, 콩라인(~2012)호시노 센이치가 지휘하던 한신 타이거즈와 명승부를 거두며 다시 한 번 일본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하지만 2011 일본시리즈 전까지 클라이막스 시리즈 징크스에 걸린 건 안 자랑. 왕정치가 마지막으로 감독직을 맡은 2008년엔 퍼시픽리그 꼴찌한 게 함정 사실 저주는 마지막 1경기에 숨어있었다 카더라
2.5 달구벌의 저주 (a.k.a 져주기 게임의 저주)
2002년 이전까지 KBO에서 가장 유명했던 저주. 1984년 삼성 라이온즈는 전기리그 우승으로 이미 한국시리즈 진출권을 따낸 상황이었는데, 여기서 김영덕 감독은 상대적으로 껄끄러운 OB 베어스[10]보다 만만했던 롯데 자이언츠[11]를 한국시리즈 파트너로 간택(?)하게 되고, 후기리그 마지막 2연전을 롯데에게 모두 내주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우선 트리플 크라운 만들기 작전을 위해 이만수와 장효조를 10경기 전부터 내보내지 않았고, 김영덕 감독은 첫 번째 경기를 2진급 선수들로만 구성해 내보냈는데, 경기 초 2진급 선수들에게 롯데가 탈탈 털리자 김영덕 감독은 아예 노골적으로 져주라고 지시하며 7-0으로 앞선 경기를 9-11로 져주는(...) 위엄 돋는 업적을 달성하셨다. 그리고 이어진 두 번째 경기에서는 전날보다 노골적으로 져주기 승부를 기록하며 롯데의 후기리그 우승에 큰 공헌을 하셨다. 당시 이만수와 함께 수위타자 부문에 경쟁했던 홍문종은 당연히 덤으로 9연속 고의사구를 당했다...
그러나 그 후 벌어진 한국시리즈에서는...
그리고 84년 이후 삼성은 86년, 87년, 90년, 93년, 01년 한국시리즈에서 모두 패했고, 이기간중 한국시리즈 12연패, 한국시리즈 잠실 구장 10연패(...)라는 흠좀무한 대기록을 작성하며 85년 통합우승을 제외하고 단 한번도 우승하지 못하는 비운을 겪어야 했다. 82년 준우승을 포함하면 한국시리즈 6회 진출 모두 준우승이라는 위업마저...
그리고 2001년 우승 청부사 김응용 감독을 모셔와 발비노 갈베스의 활약으로 87년 이후 간만에 페넌트레이스 출범이후 첫 우승을 기록하며 93년이후 9시즌만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으나, 투수진의 전체적인 난조로 그만 2승 4패, 페넌트레이스 체제 출범이래로 3번째, 프로야구 통산 4번째 한국시리즈 직행팀의 준우승이라는 뼈아픈 기록을 다시한번 작성해야했다. 이 준우승은 김응용 감독의 첫 준우승이기도 했으며, 이때 삼성은 '정말 안되는 것인가?'란 주제로 인터넷 야구 게시판이 크게 달구어지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 저주는 이듬해인 2002년 이승엽-마해영의 극적인 홈런 2방으로 떨쳐내면서 삼성은 장장 19시즌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뤄내며 달구벌의 저주에서 벗어나기에 이른다. 82년부터 치면 21시즌, 8번째 한국시리즈를 맞아 거둔 우승이었다. 그 이후 2003년 최강타선을 이끌었음에도 4위(정규리그 성적, 3위). 2004년 또 다시 준우승에 머물다가 2005년, 2006년 우승, 2007년, 2008년에는 연속 4강, 2009년에는 한번 탈락(5위), 2010년 준우승을 하다가 다시 2011년에 우승, 2014년까지 4년 연속 우승을 거머쥐게 된다.
2.6 김성근의 저주
김성근이 경질되는 팀마다 한동안 부진하게 되는 저주. 야구계에선 김성근이 지나간 자리에는 풀한포기 남지 않는다는 식으로 회자되곤 한다. 대체로 선수의 체력을 고려하지 않는 김성근 특유의 무리한 지옥훈련과 투수 혹사의 후유증으로 본다. 다만 아래 사례 중에서 쌍방울은 모기업의 재정난으로 주전선수를 모두 팔아치면서 좌초한 것이라 딱히 김성근의 저주라고 하긴 힘들다.
- OB 베어스 - 1989년 5위, 1990년 7위(1991년부터 8개구단 체제가 되므로 최하위) 1991년 8위. 김인식이 해제하였다.
- 태평양 돌핀스 - 1991년 5위, 1992년 6위, 1993년 8위. 이 쪽은 다만 김성근이 와도 태평양 자체가 답이 없었던 것도 한몫했다. 하지만 이듬해 1994년에는 태평양 돌핀스가 페넌트레이스와 한국시리즈에서 2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해 저주가 해제.
- 삼성 라이온즈 - 김성근이 팀을 망친 사례 1. 져주기 게임의 저주까지 겹쳐서 삼성을 암울하게 했다. 김응용이 2002년에 해제.
-
쌍방울 레이더스- 모기업이 외환위기로 기울어서 해체되었다. 당시 쌍방울은 1991~93년도 태평양 돌핀스보다 훨씬 심각했으며 다음 해 시즌이 시작하기도 전에 팀 자체가 해체되어서 저주라고 보기도 어렵다. - LG 트윈스 - 이 항목이 만들어진 가장 큰 원인. 6668587667, DTD의 최대 피해자, 이쪽은 구단이 계약 기간도 안지키고 경질시켰으면서 그 뒷수습이나 대안 마련에 완벽하게 실패했기 때문에 빼도 박도 못한다. 2013(김기태), 2014시즌(양상문) 연속 4강 진출로 흘러간 이야기가 되었다. 야수 노쇠화로 인해 2015시즌은 성적이 안 좋았으나 이는 리빌딩 과정에서의 진통으로, 김성근의 저주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리고 2016 시즌 초반 부진을 극복하고 정규시즌 4위를 기록한 뒤 플레이오프까지 진출하면서, 저주가 깨졌음을 증명했다.
- SK 와이번스 - 저주가 늦게 발현된 사례. 김성근의 저주에도 불구하고 2011년 말 이만수 감독대행은 김성근이 넘겨준 3위를 유지하고 포스트시즌에서 최종 순위 2위를 하였다. 그 다음해인 2012년엔 시즌 2위를 유지했다. 2013년에는 가뜩이나 얇은 투수진이 더 열악해져 7년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으나 2014시즌에는 최종전까지 4강 싸움을 했고 2015시즌에는 와일드카드로 가을 야구 진출에 성공했다. SK도 김성근 해고하고도 한국시리즈 2번이나 진출했고 13, 14시즌은 주축 선수들의 이탈과 용병농사 실패, 초보감독의 운영 미숙, 리빌딩 과정에서 찾아온 자연스런 하향세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 ↑ 만약 월드 시리즈 진출만으로 염소의 저주가 풀린다면, 2016년 월드시리즈에 컵스가 진출했는데도 왜 미국의 언론은 침묵만 지키고 있을까? 염소의 저주란 월드 시리즈 진출이 아닌 월드 시리즈 우승에 관한 저주이기 때문이다.
- ↑ 히 드랍 더 볼로 유명한 그 선수 맞다.(...)
- ↑ 사실 바트만이 공을 안 건드려도 파울이 됐을 공이었다는게 일반적인 평가.
- ↑ 이러한 원인이 전 신시내티 레즈 감독이었던 베이커의 혹사가 문제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 ↑ 투수코치 선동열은 여전히 평가가 좋다. 특히 2015 WBSC 프리미어 12에서 현장 1년 공백기를 뚫고 진가를 발휘했다.
- ↑ 고교야구 대회시 들어서는 타석수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고려했다. 데이터가 축적될수록 플루크인지 아닌지가 판가름나는 것.
- ↑ 1917년까지는 간판투수였다. 이후 외야수로 옮겼지만 아직 투수로도 출장했다.
- ↑ 참고로 시청 건물의 높이는 548피트인데, 548은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전설로 남은 3루수인 마이크 슈미트의 통산 홈런수이기도 하다.
- ↑ 선수 부인들을 갈군다든가, 선수 기용에 간섭한다든가 등등
- ↑ 김영덕 감독이 OB 선수들의 뒷통수를 쳐버리고 삼성 감독으로 온터라 84년 전기리그에서 두 팀 간에 난투극이 있기도 했고, OB는 84년 전후기 통합승률 1위를 기록하는 등 삼성 못지않은 강팀이었다.
- ↑ 전기리그 상대전적이 9승 1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