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lkan Peninsula
1 개요
조밀한 산지와 온화한 기후가 특징인 유럽 남동부, 또는 남유럽 동부의 지중해(아드리아해와 에게헤)와 흑해와 면한 사다리꼴 형태의 지역. 엄밀하게 따지면 반도라기보다 대륙의 한 귀퉁이에 가깝지만 반도라는 표현이 일반화되어 있다. 고대, 중세 시대에는 로마 제국, 근세에는 오스만 제국이 지배하며 두 제국을 지탱해온 번영했던 땅이였다.
하지만 현재는 별로 영예롭지 못한 "유럽의 화약고"라는 이명으로 통한다. 서로 적대하는 작은 세력으로 분열시키다라는 뜻의 단어 Balkanize 또는 Balkanization의 어원이다.
또 롤케이크가 유래된 곳이기도 하다.
2 명칭
명칭은 터키어로 '거칠고 숲이 많은 산악지대'를 뜻하는 발칸에서 비롯되었다. 위의 지형도를 봐도 알 수 있지만 대부분이 산악지역이다. 원래는 반도 북동부의 한 산맥을 지칭했지만 오스만 제국의 지배 이후 반도 전체를 지칭하는 일반명사가 되었다. 다만, 터키어에서 그 단어는 사어화되어 오늘날에는 발칸 반도만을 의미한다. 발칸 산맥, 발칸 국가(민족)들, 발칸 반도이라고 말할때는 그래서 Balkan dağlar, Balkanlar, Balkan Yarımadası 식으로 쓴다.
3 국가
전체 면적은 50만 5000㎢로, 프랑스보다 작지만 여러 국가들이 속해있기에 지도는 대단히 복잡하다. 발칸 반도에 속한 국가는 10개국이나 된다. 몰도바나 터키(보스포루스 해협 서쪽 유럽 지역 한정)가 포함되기도 하며, 발칸반도를 최대로 확장하면 이탈리아의 '트리에스테'(슬로베니아 국경 근처에 위치) 지역까지 발칸반도에 포함된다. 지형도를 참고하자.
그리스, 불가리아, 알바니아, 세르비아[1], 몬테네그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마케도니아 |
그리스, 불가리아, 알바니아를 제외한 모든 나라는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에 해당하며, 루마니아도 동남부 흑해에 닿아 있는 도브루자(Dobruja) 지방을 통해 발칸 반도에 한 다리 걸치고 있다.
오스트리아, 헝가리, 이탈리아, 우크라이나, 터키의 5국이 이 지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이다. 바다로는 지중해, 흑해, 에게해, 아드리아해, 크레타해에 면하고 있다.
소챠강(Soca, 이탈리아어로는 이손조Isonzo 강), 비파바 계곡, 크르카, 사바(Sava, 구 유고슬라비아의 중심을 흘렀다), 다뉴브 강(도나우 강) 등의 수많은 산맥과 강이 대륙과 발칸을 구별지으며 지역 내에서 경계선 노릇을 하고, 내륙은 건조하며 척박하다. 민족적으로는 슬라브, 라틴, 투르크 등 여러 민족, 그리고 그 혼혈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각 국가의 민족성은 민족주의 시대를 지나면서 매우 만개해졌다.
4 기후
해안 지역들은 대체로 지중해성 기후를 띄나, 내륙은 한겨울 외에 4~6월에도 폭우가 자주 쏟아지므로(출처)[2] 1년 내내 강수량이 균등한 편이다. 불가리아의 소피아를 포함한 고산지대는 냉대습윤기후를 띄기도 한다.
5 멸칭
해당 지역 사람들이 매우 싫어하는 표현이다. 좀 심하게 말하면 니그로 수준의 단어다. 애초에 어원이 터키에서 왔다는걸 생각하자. 해당 지역 국가들에게 터키에게 종속당했다는 것(혹은 종속 당하지 않았는데도 터키적 명칭으로 불린다는 것)은 지우고 싶은 흑역사 그 자체가 된다.
발칸이란 단어 자체는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에야 등장한 단어로 그 전까진 오스만에선 발칸반도를 로마인의 땅이란 뜻인 루멜리아란 표현을 썼고 서유럽에선 마케도니아, 다키아, 에피루스, 모이시아 등의 고대 명칭들 혹은 '유럽의 터키'라는 표현을 즐겨 썼다[3]. 원래 발칸은 중부유럽에서 콘스탄티노플로 가는 관문인 발칸 산맥에서 온 말이다.
발칸 산맥은 자연스레 이베리아의 피레네 산맥처럼 발칸 반도와 다른 유럽을 구분하는 자연경계로 인식되었고 그것이 확장되어 발칸 산맥을 넘어야 나오는 지역 전체를 발칸 반도라고 부르게 되었다. 발칸 반도라는 단어는 19세기까지만 해도 굉장히 희귀한 표현이었으나 1880년대에 접어들면서 쇠락한 오스만 제국이 유럽에서 내쫓기고 새로 등장한 그리스, 불가리아, 루마니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등의 국가들이 각축을 벌이자 발칸이란 용어도 보편화되었다. 그리고 그 발칸이란 이름에는 굉장히 부정적인 의미가 담겨 있었다. 서유럽인들은 발칸 반도를 야만적인 유럽 내지는 아시아라고 경멸했고 그곳을 시간이 멈춰서 성 바울 시대로부터 진보되지 않은 곳이라고 폄하했다. 발칸 반도의 인식은 답이 없는 후진적 무법지대 정도였고 발칸 반도의 주도권을 두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전쟁, 학살, 암살, 정쟁은 그런 인식을 확고히 만들었다.
1800년대 이래 (서)유럽인들에게 이 지역은 미개한 오스만 제국 지역이나 아시아 지역으로 여겨졌다. "발칸"이란 단어는 후진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도 보스니아는 "아시아"라고 불리며 차별을 받았다. 이 때문에 보스니아 서북쪽에 있는 (구 오-헝 제국의 일부이기도 했던)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는 자신들이 발칸반도 소속이 아니라 중앙유럽 소속 국가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는 실제로 Sava강 이북이라 해당이 안된다. 그 중에서도 슬로베니아는 또 크로아티아를 변방이라며 차별한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이슬람 권인데다가, 하도 주변 지역맹주급 두 국가(크로아티아 - 세르비아)한테 치고박고 고생을 많이 했던 동네라 민족주의가 좀 덜하지만, 세르비아의 경우 기독교 문명의 보루라는 자부심이 있으며, 언어가 같음에도 사용하는 문자(키릴문자)와 성격이 다르다는 점에서 크로아티아와 구별된다[4]. 여하간 발칸이란 말은 이 동네들도 안 좋아한다.
그리스야 당연히 "발칸" 이라는 생각도 할 리가 없고,[5] 인문지리적으로도 남유럽에 소속되며, 터키에 대한 기억은 그야말로 박멸시켜버렸다. 불가리아나 알바니아는 터키에게 지배를 받았는데다가 "발칸"이란 정체성에 큰 관심 없다. 결국 이 단어는 (별 생각 없이 쓰는) 아시아권이 가장 즐겨쓰는 단어가 되었다. 일본이라든가, 한국이라든가[6].
EU 등에서는 '남동유럽(Southeastern Europe)'이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중립적인 표현을 쓰기로 한 것.
6 역사
남쪽의 고대 그리스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가장 일찍 문명이 만개한 땅이기도 하다. 당시 수많은 도시국가들이 발칸 반도 남쪽에 자리잡아 왕성한 교역과 문화 전파를 벌였고, 바다 건너 이탈리아 반도와 아나톨리아 반도, 심지어 북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식민지를 수립하기도 했다. 동쪽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의 침공을 겪기도 했지만 트라키아를 비롯한 일부 제역을 제외하곤 잘 버텨냈다.
그러나 필리포스 2세의 마케도니아군이 그리스 도시국가들을 정복하면서부터는 역사의 전면에서 뒤로 물러선다. 기원전 168년 로마에 의해 라틴계 민족에게 점령당한 이후로는 제국의 변방이 되었고, 로마의 동서 분열 결과 동로마 제국의 서쪽 중심지가 되었지만 많은 고난을 겪게 되었다. 6~8세기 경 슬라브 인들이 남하하여 발칸 반도에 대한 제국의 지배권이 위협받은 적도 있었으며, 불가리아 왕국이 성립되자 9세기 초에는 황제 니케포루스 1세가 그들과의 전투에서 전사하여 두개골이 술잔으로 만들어졌고 이로 인하여 한풀 꺾인 제국으로부터 바실레우스(황제)라는 칭호를 인정받아 서로마의 샤를마뉴 다음으로 동방제국으로부터 황제로 인정받게 되었으며, 수도 오흐리드는 총대주교구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다만 동로마가 바실레우스의 호칭을 인정한 것은 니케포루스 1세를 패사시킨 불가리아의 칸 크룸이 아니라, 약 1세기 후인 10세기의 불가리아의 차르인 시메온이었다.
불가리아 제국의 위세는 11세기 초에 절정에 이르러 발칸반도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강력해졌다. 하지만 요한네스 1세와 바실리우스 2세의 잇따른 출현은 불가리아 제국에게 재앙이었고, 특히 바실리우스 2세는 아예 불가리아 군대를 학살하고 제국을 완전히 병탄하여(항목 참조) 멸망하고 오흐리드 총대주교구는 대주교구로 격하되게 된다. 이후 제국이 쇠락하는 와중에도 동방에 비하면 발칸반도를 비롯한 서부의 피해는 비교적 적었다.
십자군 전쟁이 시작되면서부터는 동쪽과 북쪽뿐만 아니라 서쪽에서 온 유럽의 가톨릭 교도들에까지 시달리며 완벽한 각축장이 된다. 이는 1180년 마누엘 1세가 죽고 그의 어린 아들 알렉시우스 2세와 모후 안티오키아의 마리아가 제국민의 반발을 사자 숙부 안드로니쿠스 1세가 쿠데타를 일으켜 제위를 찬탈하고 공포정치를 실시하여 제국이 분열되기 시작했을 때 극심해져 불가리아 제국이 부활하기에 이르렀고, 4차 십자군 때에는 그나마 제국령으로 귀속되어 있던 발칸 반도의 대부분이 아예 라틴 제국의 봉건 영지, 그리스 계(정통 동로마 계) 군주국과 독립령, 베네치아령으로 갈가리 찢어지게 되었고, 이는 13세기 중반 그리스 계 동로마 제국이 라틴 제국을 멸망시키고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탈환하고 난 후에도 크게 호전되지 않았다.
14세기부터 강성해진 오스만 제국은 1366년 불가리아를 집어삼키고 1389년에는 코소보 전투를 통해 반도 서부에 위치한 세르비아에게 괴멸적인 피해를 입히면서 발칸 반도의 패권을 장악한다. 불가리아와 세르비아가 패망한 후로는 발칸반도는 잔존 라틴 군소 영주령과 동로마 황실의 종친들이 다스리는 몇몇 군주국, 베네치아 인들이 접수한 무역 거점들과 황제의 통치력이 미치는 펠로폰네소스 남부 일부를 제외하고는 발칸 반도 전역이 오스만 제국령으로 문제 없이 편입, 동로마는 사방이 이슬람 세력으로 고립되고 말았다.
그러다 1453년 메흐메트 2세에 의해 끝내 동로마까지 멸망하면서 그나마 남아있던 기독교 계통의 발칸 군소 국가군이 쓸려나갔다.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동로마의 종친인 데메트리우스 팔라이올로구스와 토마스 팔라이올로구스(마지막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의 형제들) 형제는 끝까지 반목하다 오스만 술탄 메흐메드 2세에게 멸망하였다. 그로 인하여 일부 베네치아 령과 매우 험준한 산악지역에 위치한 몬테네그로 주교국을 제외한 발칸 반도 전역이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하지만 발칸 반도에서는 로마 이래로 꾸준히 동방정교 신앙을 지켰다. 이는 오스만 제국이 종교에 대해 관용으로 대우했기 때문이기도 하다.[7] 다만 알바니아와 보스니아는 이슬람화되었다. 오스만 제국의 핵심 전력인 예니체리들은 초기에는 발칸 반도의 동방정교를 믿는 주민들 중에서 징발되었다. 토착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나 차별과는 별개로, 오스만 제국의 국가 운영 인프라는 기본적으로 동로마 제국의 체제를 흡수한 것이 많으며, 15~16세기 오스만 제국의 국운상승도 동로마가 나가리 된 이후 정치적 불안정에 시달리던 주민들이 종교는 달라도 어쨋든 지정학적 안정성과 치안을 복구 시키면서 옛 정교회권 유민들이 지배자의 종교는 바뀌었어도 그럭저럭 타협하고 신속하게 재정착하면서 세수가 확보되었던 점이 컸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이 지방도 콘스탄티니예 그 자체와 일대의 부르사, 이즈미르 같은 서부 아나톨리아의 도시들과 연계되어 오스만 제국의 국력에서 가장 큰 부분을 담당하는 핵심 지방이 되어, 퓌르젠, 슈코데르, 마나스티르, 위스퀴프, 사라이보스나 같은 많은 신도시들이 생기면서 안정적인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이 시절만 해도 현대 발칸 반도에 멍에를 지운 젣적 후진성, 정치적 불안정, 고질적인 저개발과 가난 같은 문제는 전혀 다른 동네 문제로 보였다. 물론 오스만 제국의 리즈시절에도 현대 크로아티아~헝가리 지역의 라이벌 합스부르크 제국과 국경을 맞대었던 최전방 일대와 특유의 지정학적 여건으로 행정력이 제대로 미치지 않았던 현대 몬테네그로 지방은 굉장히 불안정했다.
이렇게 4세기 가량을 지내다 오스만 제국의 국력이 쇠퇴하고 민족주의가 유럽을 휩쓸면서 남쪽의 그리스부터 민족국가 독립을 시작했다. 이 틈을 노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러시아 제국이 찝적거리기도 했으나, 꾸준히 독립이 이루어지는 한편 발칸 전쟁을 통해 반도 내의 질서도 재편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는 이스탄불을 제외한 발칸 반도 전역이 독립된 민족국가로 들어찬다. 그리스는 이틈에 이스탄불을 얻고 내침김에 아나톨리아도 점령하려다가 아타튀르크에게 패배하여 기존에 획득한 이즈미르 지역까지 잃고 축출되었다.
이후 소련이 이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발칸 반도는 다시 시련을 겪는다. 때마침 나치 독일이 발흥하면서 그리스를 제외한 발칸 전역이 친나치 반소련 기조에 의해 추축국 편에 붙었고, 여기에 더해 독일과 동맹인 이탈리아와 헝가리도 발칸 반도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추축국에 붙을까 저울질하며 애매하게 굴던 유고슬라비아가 독일, 이탈리아, 헝가리에 의해 점령당하고, 땅 욕심에 눈이 멀은 이탈리아 덕분에 그리스마저 나치 독일에 점령당해 발칸 반도 전체가 나치의 판도에 묶였다.
특히 루마니아와 크로아티아의 경우는 대놓고 나치의 앞잡이 노릇을 했으며 불가리아는 나치에 의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끌려가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연합국에게 유리해지자 나치독일과의 국교,동맹 조약을 끓고 소련 등 연합국 세력과 합세하여 나치를 공격했다.
전쟁이 끝나고 나치 세력이 패망하자 이번엔 소련군이 들이닥쳤다. 다시 그리스를 제외한 발칸반도의 유고슬라비아, 루마니아, 불가리아의 왕정이 무너지고 반강제적으로 공산화되었다. 1980년 유고슬라비아의 요시프 브로즈 티토라는 강한 구심점이 사라지고 80년대 말부터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민족주의가 다시 대두되면서 드디어 후폭풍이 시작되었다. 유고 내전과 코소보 사태의 상흔으로 인해 발칸은 유럽의 화약고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 1990년대 발칸 반도는 소말리아, 르완다 등과 더불어 지구 그 어느 지역보다 극심한 분쟁을 겪었다.
이 전쟁통에 동원된 외부 세계의 군인들이 귀국 후 두통과 불면증을 겪고 심지어 백혈병, 암으로 목숨을 잃는 일이 비재하자 이 원인을 알 수 없는 질환에 '발칸 반도 증후군'이라는 이름이 붙기도 했다.
7 창작물에서의 발칸 반도
울트라 시리즈에는 발탄성인이라는 이름의 우주인이 등장하는데, 그 이름 또한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만화 매복병 등 여러 창작물에 "동유럽 모 국가에서 분쟁 중"이라는 설정이 나올 때는 대개 유고 내전을 모티브로 한다.
워페이스의 몇몇 맵들은 이곳이 배경이다. 정확히는 코소보 지역.
요르문간드(만화)에서 코코 헥마티아르가 국경없는 이사회를 밀입국시켜준다. 도중에 대치하게되는 민병대 대장 별명이 발칸의 드래곤이라서 발드래이다.
8 종교
이 지역은 유럽에서 정교회권과 가톨릭권이 나뉘는 지역이며 과거 오스만 제국 영토도 있었기 때문에 이슬람화된 지역도 있어서 종교 구성이 매우 복잡하다.
(통계는 하나의 통계가 아니라 산출 연도가 다른 여러 통계를 단순히 모아놓은 것이므로 참고용으로만 보자.)
국가 | 가톨릭 | 정교회 | 이슬람 |
슬로베니아 | 59% | 7% | 2% |
크로아티아 | 87% | 4% | 1%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 14% | 31% | 52% |
불가리아 | 1% | 82% | 12% |
세르비아 | 5% | 85% | 3% |
몬테네그로 | 3% | 72% | 20% |
마케도니아 | 1% 미만 | 65% | 33% |
알바니아 | 10% | 6% | 56% |
그리스 | 1% 미만 | 98% | 1% |
보이보디나 자치구에 사는 헝가리인들 중에는 가끔 여기서 아예 존재감이 없을 듯한 종교를 믿는 경우도 있다.(위키미디어 공용)
9 발칸 반도의 경제
발칸 반도의 경제 | ||||||||
그리스/경제 | 불가리아/경제 | 세르비아/경제 | 알바니아/경제 | 코소보/경제 | 크로아티아/경제 | 마케도니아/경제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경제 | 몬테네그로/경제 |
10 관련 항목
- ↑ 코소보도 세르비아의 일부였고 발칸반도에 속하지만 여기서 제외한 이유는 UN의 과반수 승인을 못 얻은 미승인국이기 때문이다.
- ↑ 2014년 보스니아와 세르비아 내륙에서 일어난 홍수 사태도 5월에 일어났다.
- ↑ 발칸이라는 표현이 멸칭으로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동로마 제국이 이 땅을 지배할 때나, 오스만 제국이 서유럽을 공포에 떨게 할 때는 사용되지 않은 표현이었고, 오스만 제국이 쇠락하고 이 지역이 혼란스러워진 이후에야 사용된 표현이라는 것. 즉, 이 지역이 그나마 잘 나갈 때는 발칸이라고 불리지 않다가, 상황이 나빠진 이후부터 발칸이라고 불렸다는 것이다.
- ↑ 사실 슬로베니아를 제외하면 언어로 민족을 구분하는 초기 민족주의자들의 기준에서 구 유고슬라비아 동네는 슬로베니아를 제외하면 모두 같은 민족이 된다. 부크 카라지치(Vuk Karadžic, 1787-1864)는 '무엇'을 의미하는 단어 '슈토(Što)'를 쓰는 민족은 모두 세르비아인이라고 봤는데, 이것이 "대세르비아주의"의 근원이 된다.
- ↑ 펠로폰네소스 반도라면 몰라도.
- ↑ 특히 일본의 경우 "발칸"은 분쟁의 상징이다. 70년대 자민당내 소수파로 고군분투했던 미키 다케오 총리의 별명이 "발칸"이었다. 한국이야 같은 반도라니 조금 친근감을 가지긴 하지만 역시 "발칸"이라면 막장 이미지가 있다... 실제로 후세 다쓰지는 조선의 독립 문제에 대해 변호하면서 한반도와 발칸반도의 지정학적 상황이 유사하다는 언급을 남겼다.
- ↑ 다만 이는 이교도에 세금을 걷어 재정 확보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또 기독교를 믿는것은 허락되었으나 많은 차별과 압제,탄압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