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KCC 이지스

(대전 현대 다이넷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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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부산 kt 소닉붐
서울 삼성 썬더스
서울 SK 나이츠
안양 KGC인삼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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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모비스 피버스
원주 동부 프로미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전주 KCC 이지스
창원 LG 세이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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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마스코트
전주 KCC 이지스
Jeonju KCC Egis
창단1977년
구단명 변천현대중공업 실업농구단(1977~1989)
현대전자 실업농구단(1989~1996)
대전 현대 다이넷(1997~1999)
대전 현대 걸리버스(1999~2001)
전주 KCC 이지스(2001~)
연고지대전광역시(1997~2001)
전라북도 전주시(2001~), 군산시(2013~)[1]
모기업현대중공업(1977~1989)
현대전자(1989~2001)
KCC그룹(2001~)
구단주정몽익
단장최형길
감독추승균
영구결번4, 11
주장전태풍
홈 구장충무체육관(1997~2001)
(4,475석)
전주실내체육관(2001~)
(4,800석)
제2 구장군산월명체육관(2013~)
(4,200석)
클럽하우스현대인재개발원
홈페이지

1 구단 현황

1.1 선수단

2016-17 시즌 전주 KCC 이지스 선수단
감독추승균
코치필립 허버드, 정선규, 최승태
가드2.안드레 에밋 3.전태풍 5.정의한 10.이현민 13.김지후 17.신명호 23.김민구 30.박경상 34.김효범
포워드1.리오 라이온스 6.박준우 7.송교창 8.정민수 9.정휘량 14.노승준 22.최승욱 31.송수인
센터0.하승진 15.한준영 37.주태수
  • 군 입대 : 정희재

1.2 우승 기록/플레이오프 성적

타이틀
KBL 챔피언 결정전 우승
(5회, 1997-1998, 1998-1999, 2003-2004, 2008-2009, 2010-2011)
KBL 정규 리그 우승
(4회, 1997-1998, 1998-1999, 1999-2000, 2015-2016)
역대 플레이오프 성적
챔피언 결정전(5승 4패)
1997-98(정규 1위, 승), 1998-99(정규 1위, 승), 1999-00(정규 1위, 패),
2003-04(정규 2위, 승), 2004-05(정규 2위, 패), 2008-09(정규 3위, 승),
2009-10(정규 3위, 패), 2010-11(정규 3위, 승), 2015-16(정규 1위, 패),
4강 플레이오프(9승 3패)
1997-98(정규 1위, 승), 1998-99(정규 1위, 승), 1999-00(정규 1위, 승),
2001-02(정규 3위, 패), 2003-04(정규 2위, 승), 2004-05(정규 2위, 승),
2005-06(정규 5위, 패), 2007-08(정규 2위, 패), 2008-09(정규 3위, 승),
2009-10(정규 3위, 승), 2010-11(정규 3위, 승), 2015-16(정규 1위, 승),
6강 플레이오프(4승 2패)
2000-01(정규 6위, 패), 2001-02(정규 3위, 승), 2005-06(정규 5위, 승),
2009-10(정규 3위, 승), 2010-11(정규 3위, 승), 2011-12(정규 4위, 패),

1.2.1 세부 우승 기록

KBL 챔피언 결정전 우승 팀
19971997-1998, 1998-19991999-2000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대전 현대 다이넷청주 SK 나이츠
2002-20032003-20042004-2005
원주 TG 엑써스전주 KCC 이지스원주 TG삼보 엑써스
2007-20082008-20092009-2010
원주 동부 프로미전주 KCC 이지스울산 모비스 피버스
2009-20102010-20112011-2012
울산 모비스 피버스전주 KCC 이지스안양 KGC인삼공사
KBL 정규 리그 우승 팀
19971997-1998, 1998-1999,
1999-2000
2000-2001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대전 현대 다이넷
대전 현대 걸리버스
수원 삼성 썬더스
2014-20152015-20162016-2017
울산 모비스 피버스전주 KCC 이지스-

2 소개

WITHUS KCC!

KBL의 프로 농구단. 연고지는 전라북도 전주시. 전신은 현대전자 실업 농구단(농구대잔치 시절)-대전 현대 다이넷-대전 현대 걸리버스. 농구대잔치 시대 이전부터 삼성전자(現 서울 삼성 썬더스)와 더불어 한국 농구를 대표하는 양대 구단이었고, 농구대잔치가 시작되고 기아 농구 팀이 창단된 이후엔 기아자동차(現 울산 모비스 피버스)와 함께 농구대잔치를 대표하는 3강 중 하나였다. 프로농구 초창기에도 이와 같은 라이벌 관계는 이어져서 초창기 프로농구 흥행 보증 수표이기도 했다. 2001년 모기업이었던 현대전자의 자금난을 이유로 금강고려화학(KCC)이 인수함과 동시에 전주로 연고지 이전을 하여 전주 KCC 이지스가 되었다.[2] KBL에서도 우승 5회와 준우승 3회를 기록한 명문 구단.

2.1 현대중공업 실업농구단(1977~1989)

현대중공업 시절에는 이충희의 입단 후 이충희와 운동 능력 좋은 센터 김성욱 등의 멤버로 전성 시대를 누렸으며, 이 시기 대학 팀으로서는 처음으로 농구대잔치 결승까지 올라왔던 허재, 김유택, 한기범의 중앙대를(편파 판정 의혹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충희의 경이적인 득점력을 앞세워 격파하기도 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으로 넘어간 후 이충희가 부상에 이어 은퇴했으며, 김성욱이 미국 국적을 취득하며 한국을 떠났고, 나름 좋은 활약을 선보이던 임달식이 허재를 코트에서 두들겨 팬 후 1년 동안 선수 자격 정지를 당하고 그대로 코트를 떠나는 일 등이 벌어지면서 전성기의 멤버들이 싹 사라졌고, 결국 이름만 명문인 구단으로 전락한다.

2.2 현대전자 실업농구단(1989~1996)

1990년대로 넘어온 후 1994년부터 신잔머리 신선우가 감독으로 부임해 팀을 재정비하기 시작한다. 중앙대 출신으로 당시 대형 센터로 취급받던 정경호를 영입하고 유도훈이 활약해주고 하면서 팀은 재기의 노력을 했는데, 프로화를 앞두고 우수한 선수들을 스카웃한 후 이렇게 스카웃한 이상민, 조성원을 몽땅 군 복무로 보내 버리는 과감한 일을 벌였다. 거기다 얼마 후 한양대에서 놀라운 활약을 펼치던 추승균까지 스카웃하는 데 성공했고, 이들의 합류를 기다리며 프로 출범에 참여했다. 다만 프로농구 참여에는 다소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는데 이는 서장훈의 진로와도 연관되어 있었다.

2.3 대전 현대 다이넷(1997~1999)

프로 원년, 군대로 보낸 선수들이 아직 제대하기 전이었던 데다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도 그다지 좋은 선수를 못 뽑으면서 프로 원년인 1997 시즌에 현대 다이넷은 뒤에서 두 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만다. 그저 상무 보낸 이상민과 조성원, 그리고 대학 졸업반인 추승균만 바라보며 유도훈이 고군분투하던 시기.

하지만 군 복무로 보낸 선수들이 전부 복귀한 1997-98 시즌, 제대한 이상민과 조성원, 졸업한 추승균으로 이루어진 신예 3인방에 당시 센세이션을 불러온 맥도웰과 든든한 센터 제이 웹을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뽑으면서 약점이 보이지 않는 라인업을 구성, 정규 시즌에서 승승장구를 계속했다. 기아 엔터프라이즈와 대결한 KBL 챔피언결정전에서 허재의 미친 듯한 활약에 패배 직전까지 몰리기도 하나 조성원이 대폭발하먼서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3]

1998-99 시즌에는 기존 멤버에 새롭게 올라운더 외국인 센터 재키 존스를 영입, 앞선 시즌보다도 완벽한 베스트 5를 이루어냈다. 패스 능력이 출중한 재키 존스의 리바운드 후 롱 패스에서 이어지는 속공 레이업 혹은 조성원 추승균의 노 마크 3점이 잘 나오고 잘 먹혀서 경기에 안 나오면 심심했을 정도. 다시 기아 엔터프라이즈와 대결한 KBL 챔피언결정전에선 전 시즌보다 손쉽게 상대를 꺾으며 KBL 2연패를 달성했다. 특히 이상민-맥도웰이 픽 앤 롤 플레이는 상대 팀이 뻔히 알면서도 당하는 비기였다.

2.4 대전 현대 걸리버스(1999~2001)

이후 팀명을 현대전자의 휴대전화 브랜드인 걸리버를 따라 전환했다.

1999-00 시즌. 현대는 재키 존스를 청주 SK 나이츠로 보내고 인사이드에서 엄청난 파괴력을 보인 센터 로렌조 홀을 영입했다. 로렌조 홀은 당시 역대 최고의 하드웨어(203cm , 128kg)를 자랑하던 센터로서 몸싸움이 벌어지면 상대 팀 용병들이 뻥뻥 나가 떨어질 정도로 골밑 파괴력은 역대 최강급이었고, 이를 통해 정규 시즌에서 현대 걸리버스는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KBL 챔피언결정전에서는 청주 SK 나이츠의 서장훈과 이를 갈고 나온 재키 존스 라인업에 맥도웰과 로렌조 홀이 밀리면서 패배하고 만다.

이 시즌 이후 로렌조 홀과 재계약을 맺지 않았는데, 이에 대해 로렌조 홀이 거친 플레이를 통해 여러 선수를 중상 입힌 일이 있다 보니 타 팀들의 반발이 심했고 현대를 제외한 다른 9개 구단이 합심해서 홀과 재계약하면 가만 안 있을 분위기를 만들었다. 따라서 공식적으론 조건이 안 맞아서 재계약이 무산된 것이지만 실질적으로 암묵적인 영구 제명을 시킨 것이라고 한다. 로렌조 홀은 자기를 깡패 취급한다고 반발하기도 했지만 홀의 거친 플레이는 선을 넘는 경우가 많았고 변명의 여지가 없기는 했다. 이 린치에 가까운 플레이 때문에 특히 대구 오리온스가 손해를 많이 봤는데 신인 가드 김상우가 홀과 루즈볼을 다투다가 왼손 복합골절상을 당해 시즌 아웃되었고, 전희철은 홀에게 가격당한 이마에 붕대를 감았고, 부상 후유증으로 몇 경기를 교체선수로 출장할 정도였다.

2000-01 시즌에는 조성원을 트레이드로 보낸 후 맥도웰을 센터로 내세우는 스몰 라인업을 내세워 봤으나 맥도웰이 센터로서는 아무래도 스몰 사이즈라 좋은 성적은 거두지 못한다.

2.5 전주 KCC 이지스(2001~현재)

KCC 이지스로 바뀌고 처음 맞는 2001-02 시즌. 당시 감독이던 신선우는 팀에 큰 변화를 가한다. 그때까지 함께 해온 맥도웰을 포기한 후, 포지션을 가리지 않고 모든 선수가 포스트업을 하고 외곽 슛을 쏘는 이른바 토탈 바스켓볼을 들고 나온 것. 이를 위해 다시 재키 존스를 영입하고 야심차게 시즌을 시작하나 시즌 직전 재키 존스가 부상으로 빠지면서 팀은 나락에 빠져들고 만다. 하지만 재키 존스가 부상에서 돌아오자 토탈 바스켓볼이 제대로 작동하면서 팀은 연승을 거듭하고 가볍게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플레이오프에선 탈락을 했다.

2002-03 시즌, 앞선 시즌에 보여준 게 있었고, 거기다 이현준을 오리온스에 내주고 누가 봐도 이현준보다 훨씬 좋은 전희철을 데려온 덕분에 팀은 우승후보 0순위로 꼽혔으나 막상 뚜껑을 열자 단숨에 꼴찌후보로 전락한다. 기존 토탈 바스켓볼의 핵심이었던 재키 존스가 마약 복용 혐의로 한국을 떠나게 되었고, 때문에 외국인 선수 두 명을 전부 물갈이 했는데 그 용병들이 죄다 망했어요. 그래서 부랴부랴 인천 SK 빅스에서 뛰었던 요나 에노사와 LG에서 뛰었던 칼 보이드를 데려왔지만 추락하는 팀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대학 시절부터 해서 오리온스 때까지도 어느 정도 자유로운 플레이를 했던 전희철은 신선우 감독의 빡빡한 패턴 플레이 스타일 농구에 전혀 적응을 못하며 그냥 슛 덜 들어가는 외곽 슈터 역할밖에 못하고 만다. 결국 20승 34패, 9위로 시즌을 마친다.

2003-04 시즌에는 토탈 바스켓볼을 포기하면서 전희철을 보내고 다시 조성원을 데려오고(뒷돈 의혹이 많긴 하지만), 해외 리그에서 이미 훌륭한 득점력을 보여줬던 선수인 찰스 민랜드를 영입하면서 다시 한 번 강팀으로 군림했다. 거기다 당시 바닥을 벅벅 긁고 있던 모비스와의 변칙적인 외국인 선수 임대트레이드로 두고 두고 욕을 먹긴 했지만[4] 우승을 달성했다.

2004-05 시즌, 앞선 시즌에 우승을 달성한 KCC 이지스였으나 주전 멤버들은 몽땅 30대 이상의 나이에 부상에 시달리는 터라 KCC는 민랜드 하나 덕에 버티는 팀이란 말을 듣기도 했으며, 정규 시즌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상대가 시즌 후반기에 단테의 신곡 단테 존스의 태풍을 몰고 다니던 SBS스타즈였기에 KCC에 기대를 가지는 사람은 없었다.

한데 어이없게도 시즌 내내 악평을 듣던 외국인 선수 제로드 워드가 3점 슛을 퍼부어대며 당시 단테 존스의 활약 속에 승승장구하던 SBS를 침몰시켜 버렸고, 이를 통해 KCC 이지스는 또 한 번 KBL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하는 데 성공하면서 TG삼보와 대결하게 된다. 챔피언 결정전에서 제로드 워드는 여전히 3점 슛을 퍼부어 댔고 KCC의 선수들은 TG삼보의 김주성과 왓킨스 트윈 타워의 팔을 대놓고 잡아 끌 정도로 육탄공세를 펼쳤으나 결국 역부족, 챔피언 결정전에서 패배한다.

2.5.1 허재 감독 시대

2005-06 시즌을 앞두고 신선우는 LG 감독으로 떠나버렸고, 뜬금없게도 대신 감독을 맡게 된 사람은 누구나 TG삼보의 미래 감독이 될 줄 알았던 허재였다. 선수로는 훌륭했던 자가 감독으로는 말아먹는 일이 많았던 만큼 코치 과정도 없이 바로 감독을 차지한 허재에 대한 우려가 많았는데, 일단 2005-06 시즌에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하여 괜찮은 성적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어진 2006-07 시즌, 주전들의 노쇠화 속에 팀은 추락을 거듭하고 허재도 감독으로서 전혀 팀을 수습해내지 못하면서 KCC는 총체적인 난국 속에 꼴찌로 떨어진다.
2007-08 시즌을 앞두고, FA로 풀린 서장훈과 임재현을 영입하는 큰 변화 속에 다시 강팀으로 올라서려 했는데, 그 와중에 그때까지 영원히 기둥일 것만 같았던 이상민이 팀을 떠나는 일이 벌어진다.
당시 KCC에서 FA로 풀린 서장훈과 임재현을 영입하면서 보호 선수 명단을 제출해야 했는데, 하필이면 FA로 잡은 선수는 무조건 보호 선수 명단에 들어가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KCC는 팀의 간판 선수인 이상민추승균 둘 중 한 명을 저울질하다 '설마 누가 이상민을 데려가려고?' 하는 생각으로 이상민을 보호 선수 명단에서 제외했다. 그런데 서장훈의 전 소속 팀이었던 서울 삼성 썬더스이상민을 보상 선수로 지명하고 말았던 것. 아이러니하게도 서장훈이 KCC로 오게 된 이유는 '학교 선배인 이상민과 같이 뛰고 싶어서'였다고. 지못미.

결과적으로 이상민을 대체하게 된 임재현은 허재의 학교 후배 챙기기냐는 비아냥 속에 봉사라는 굴욕적인 별명까지 붙게 되었는데, 그런 와중에도 서장훈은 여전한 위력을 발휘하면서 KCC는 앞선 시즌 꼴찌에서 단번에 정규 시즌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 상대는 토사구팽당했다며 이를 갈던 이상민이 있던 삼성 썬더스. KCC 이지스는 플레이오프에서 단 1승도 못 거두고 탈락하고 만다.

2008-09 시즌, 꼴찌로 떨어졌던 시절 덕에 얻은 드래프트 1순위로 하승진을 뽑은 KCC는 '서장훈하승진이 공존 가능할까' 하는 의문도 있었지만 확실한 우승 후보 중 하나로 지목받았다. 하지만 웬걸, KCC는 팀플레이를 전혀 보여주지 못하는 모래알스런 모습 끝에 추락을 계속한다. 서장훈하승진으로 인해 자신의 비중이 지나치게 줄어드는 걸 용납하지 못했고,[5] 임재현은 여전히 눈 감은 포인트 가드 같이 뛰었으며, 하승진은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한 채 키 큰 일반인스런 모습만 보여줬다. 결국 서장훈허재의 갈등이 이어지고 그나마 자리라도 차지해주던 하승진까지 부상으로 빠지면서 KCC는 붕괴 직전, 아니 붕괴 자체인 상태가 되고 만다.

그런데 시즌 도중에 KCC는 큰 변화를 겪는다. 하나는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와의 트레이드로 서장훈을 보내고 강병현-조우현-정선규를 영입한 것, 현금을 주고 어음을 받은 격이라던 이 트레이드는 전자랜드의 득이라는 의견이 당시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KCC에 엄청난 득으로 작용한다. 또 하나는 임재현을 식스맨으로 내리고 드래프트 당시 허재가 왜 뽑았는지 모르겠다는 소리까지 듣던 신명호를 주전으로 올린 것, 이를 통해 느린 하프 코트 공격 위주에 수비는 좋지 못했던 KCC는 신명호-강병현-추승균으로 이어지는 앞선 수비의 압박과 거기서 파생되는 빠른 역습을 가진 팀으로 갑자기 완전 변신을 해버린다. 거기다 어음이라던 강병현은 현찰로서 활약해내면서 어이없는 턴오버와 나락에서 팀을 구하는 에이스 노릇을 뒤섞어서 보여줬고, 전성시대를 함께한 이상민도 없고 조성원도 없는 팀에서 추승균은 변함 없는 기둥으로 활약하며 에이스로서 팀을 이끌어 나갔다. 이런 변화 속에 KCC는 차츰 상승하기 시작한다.

부상에서 돌아온 하승진은 이런 갑작스런 팀의 변신에 전혀 적응을 못하면서 깽판까지 치기도 했지만, 허재의 구슬림 속에 팀의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마음을 다시 가다듬고는 서서히 기대만큼의 활약을 보여주기에 이른다. 거기다 식스맨 역할을 하게 된 임재현은 외려 부담이 줄어들자 한결 나아진 모습을 보여줬고, 이를 통해 KCC는 한 경기 안에서 확실하지만 느린 높이 중심의 팀과 낮지만 빠른 스피드 중심의 팀으로 2단 변신을 해대면서 상대 팀을 연이어 격파, 우승 후보에서 꼴찌 후보로 전락했던 팀이 다시 우승 후보로 꼽히게 되었다.

결국 진출한 플레이오프에선 KCC에 복수하겠다던 서장훈이 버틴 전자랜드를 외려 격파했고,[6] KBL 챔피언결정전에선 역시나 복수심에 불타던 이상민이 있던 삼성 썬더스마저 격파하면서 통산 네 번째 우승을 달성한다. 소리없는 남자라던 추승균은 결승전 MVP를 받으며 자신의 가치를 새삼 드러냈다.[7]

2010-11 시즌에는 정규 리그 3위를 기록했지만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를 꺾고 결승에 진출, 부산 KT 소닉붐을 격파한 원주 동부 프로미와 벌였다. 강은식과 추승균이 부상으로 이탈한 상황에서도 6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4승 2패로 우승을 차지했다. 이로써 통산 5번째 우승 달성.

2011-12 시즌은 디펜딩 챔피언인 만큼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으나, 정규 시즌은 역시나 지지부진한 성적을 거두며 막판 분전에도 불구하고 4위를 기록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전통적으로 PO에서 강한 모습을 보여준 만큼 강력한 챔프 후보로 꼽혔지만, 정규 시즌 막판 당한 전태풍의 부상이 팀에 치명타로 작용하고 말았다. 상대였던 5위 모비스에 힘 한 번 못 써보고 3연패로 광탈.

2011-12 시즌이 끝나고 전면적인 리빌딩이 불가피해졌다. 하승진은 공익 입대가 예정되어 있으며, 전태풍은 한 팀이 혼혈 선수를 3년 이상 보유하지 못하는 리그 규정에 의해 팀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거기에 15년 동안 팀을 묵묵히 지켜준 추승균은 은퇴를 결정했다. 임재현과 용병을 제외하면 스쿼드에 고만고만한 B급밖에 남지 않았으며, 설상가상으로 임재현조차 FA 자격을 획득했다. 대놓고 2013년 드래프트에 풀리는 대학 최대어 김종규를 노려야 되지 않나 하는 말까지 나왔다. 승진이도 없고, 태풍이도 없고, 승균이도 없고... 그래도 크고 작은 선수가 8명이나 빠져나간 SK 와이번스보다는 나을지도 설상가상으로 로터리 픽 뽑기 전문가 허재가 1.5%라는 확률을 뚫고 1순위로 뽑은 외국인 선수 커트니 심스는 발목 부상이 길어졌다. 전문가들은 이 시즌 KCC를 창원 LG 세이커스와 함께 2약으로 예상했다.

예상대로 홈 개막전에서 서울 삼성 썬더스를 상대로 52:64라는 큰 점수 차로 패배하고 말았다. 그리고 다음 날 고양 오리온스 상대로도 패배. 경기 후반에 한 점 차까지 따라갔으나 임재현을 제외하고는 해결사가 없었다. 임재현과 아이들 득점을 너무 못해서 그렇지, 실점도 비교적 적었다. 결국 1라운드를 1승 8패로 마쳤는데 사실 1승도 KT가 그날 너무 못해서 빡친 전창진 감독이 작전 타임도 부르지 않는 등 최선을 다하지 않았었다.

2군 선수를 올려도 엔트리를 못 만들어서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로부터 이한권을 트레이드로 데려오고, 그마저 시즌 아웃당하자 1.5%를 뚫고 뽑은 1순위 심스를 SK로 보내는 대신 크리스 알렉산더와 김효범을 데려왔다. 프로농구 사상 최초의 1등 팀과 꼴찌 팀의 트레이드인데 꼴찌 팀이 먼저 제안했다.
2012년 3라운드까지 보여준 모습은 막장 of 막장이었다. 공격, 수비 모두 기록상 최하위를 맴돌았으며, 전자랜드의 최다 패 기록마저 경신해 버릴 포스로 달려나갔다. 심지어 디시인사이드 농구 갤러리농구 팬들이 KCC는 아마(혹은 농구대잔치)로 보내버리고 상무를 대신 프로 리그로 올리자는 주장까지 했을 정도로 답이 없었다. 다만 강병현이 온 뒤로는 한결 나아진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꼴리온스의 최저 승률 기록은 넘사벽이다.

2월 6일 KT전, 8일 LG전에서 연이어 승리를 거두면서 시즌 3번째 2연승을 거두었으나, 그 후 2월 10일에는 인삼공사를 제외한 다른 모든 팀KCC의 천적으로 군림하게 된 서울 SK 나이츠를 상대로 71:89로 패배하면서 또다시 3연승에 실패하였다. 이후 인삼공사를 가볍게 꺾고 오리온스를 상대로 4쿼터 대역전승에 성공했지만, 바로 다음날 체력 문제로 전자랜드에게 22점 차 대패, 또다시 3연승 도전에 실패하였다.

5라운드에서는 5승 4패, 5할을 넘었다! 그러나 크리스 알렉산더의 부상 때문에 용병 1명(안드레 브라운)만으로 버티면서 7연패-1승(LG)-1패를 했고, 2012-13 시즌은 예상대로결국 꼴찌로 마무리했다. 그나마 LG에게는 4승 2패로 우세, KT에게는 3승 3패로 동률이었지만, 서울 SK, 울산 모비스, 인천 전자랜드에 전패하면서 세 팀이 상위권에 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06-07 시즌과는 달리 두 자리 연패는 없었지만, 5연패를 빼고 모두 1~8연패를 최소 한 번씩 해봤다.

2013년 9월 30일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경희대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김민구를 지명하였다. 그리고 시즌을 앞두고 외국인 코치인 척 퍼슨을 영입했다. 척 퍼슨은 1987년 인디애나 페이서스 소속으로 신인왕을 수상했고, '라이플 맨'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NBA에서 정확한 슈터로 날렸던 인물인 데다 한때 래리 버드와 플레이오프에서 득점 맞대결을 펼치기도 하고,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LA 레이커스에서 코치를 하던 인물이라 국내 팬들은 '진짜 척 퍼슨이야?'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시즌 전 하위권 후보로 높게 점쳐졌지만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와의 개막전에서 1점 차 터프한 승리를 거두더니, 이후 홈 개막전에서 전년도 정규 시즌 우승 팀인 서울 SK 나이츠를 압도적인 스코어로 이겨버렸다.[8] 중간에 울산 모비스 피버스에게 43점 차 대패라는 굴욕을 당하지만, 이후 강병현을 주축으로 한 외곽 포와 용병 타일러 윌커슨의 엄청난 득점력, 로터리 픽 멤버 김민구의 합류로 11월 3일을 기준으로 6승 3패, 4위를 거두며 선전했다. 게다가 식물 용병이라 욕먹던 아터 마족을 버리고, BJ 리그와 풀 개런티 계약을 해지한 대리언 타운스를 영입했는데 2경기 연속 더블더블을 선보이며 전 용병과는 월등한 차이를 보이며 팀의 전력을 강화했다. 1라운드는 4연승 포함 6승 3패로 마쳤다.

하지만 2, 3라운드에 각각 3승, 4, 5라운드는 각각 2승만 거두고 5연패만 4번이나 하며 감독마저 잘린 인삼공사감독마저 사퇴한 삼성보다 오히려 아래를 달렸다. 2월 22일까지 17승 32패로 9위에 쳐졌다. 윌커슨은 평균 득점 20점 이상으로 꾸준히 제 몫을 해주었지만, 물론 턴오버도 적지 않았다 타운스는 심리적인 문제로 자신의 기량이 민폐가 될까 봐 자진 퇴출을 결정하였다. 그리고 팀은 타운스가 나간 뒤 델본 존슨을 대체 선수로 영입했다.[9] 레더와는 다르다!

이 와중에 KCC는 2월 6일 SK전을 이겼지만 8일 동부의 14연패 뒤 2연승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그리고 군산시에서 열린 경기에서도 맥없이 패하면서 KCC 창단 이래 최초로 LG에 6전 전패를 기록했다! 심지어 LG는 KT와 함께 전년 시즌 답이 없던 KCC의 희망이자 보약 중 하나였는데 이번에는 둘 다 독약이 되었다. 게다가 11/26 첫 대결에서는 둘과 같이 막장 경기를 만들며 시청률서 농구를 누르는남자 배구와 비교가 되게 만들었다. 전주 홈 경기였는데, 1쿼터 역대 최소 득점 기록을 기존 19점에서 14점(KCC 6-LG 8)으로 경신하며 63-68로 졌다. 그런데 이날 계양체육관서 열린 대한항공러시앤캐시의 배구 경기에서 3세트 스코어가 56-54였다. 도대체 얼마나 슛을 못 넣으면 이러냐? 오죽하면 외국인 선수도 농구하는 것 같았다고 그러더라

시즌이 끝난 뒤에는 팀의 몇 안 되는 볼거리 중 하나였던 외국인 선수 타일러 윌커슨과 재계약을 맺는 데 성공했다. 또 하승진의 복귀에 따라 다시 대권을 노리려는 의도인지는 몰라도 강병현, 장민국김태술을 사인 앤 트레이드로 트레이드하는 데 성공해 김태술, 김민구라는 좋은 가드진을 형성했고, 하재필김일두자전거 맨을 트레이드 하며 우승을 다시 노리나 했는데... 김민구가 음주운전 사고를 내며 시즌 아웃, 선수 생활의 위기를 맞게 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결국 2014-15 시즌은 완전히 멸망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남농계의 타어강. 원래 기아랑 같은 모기업 둔 남자 농구단이 걸려서 폭망해야 했는데, 거긴 남농의 유느님이 있잖아? 그 팀이 아예 같은 모기업 산하 프로 팀들과는 2013년 이후 연관이 없었다. 역시 만날 때 잘 만나야 한다. 반대로 KCC는 타어강 원조같은 동네 출신의 국제적으로 잘나가는 팀과는 관련이 없었지만, 하필 602 대첩 직관 가고 시구했던 타어강 수원 분점과 같은 숙소를 쓰고 있었던 점이 작용했다. 2014 코보컵 우승해도 통했던 촉새의 위엄

하승진이 돌아왔지만 다른 선수들이 전혀 받쳐주지 못했으며, 기대했던 김태술도 본인의 장기인 리딩 능력마저 상실하고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김민구의 공백이 KCC에게는 크게 타격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1월 29일 기준으로 5승 15패로 서울 삼성 썬더스와 공동 9위에 랭크되었는데, 세부 지표 면에서 약팀의 전형적인 기록을 보여주었다. 툭하면 다실점 경기를 보여주며 팬들의 뒷목을 잡게 만들었고, 사실상 2012-13 시즌의 재림으로 봐도 무방하다. 승진이도 있고 태술이도 있는데 그러나 서울 삼성의 경기력이 훨씬 안 좋았기 때문에 KCC는 9위를 유지했다. 그 가운데 그 시즌 군산에서 열린 세 경기를 모두 패하고 말았다(...).

결국 삼성에게도 패하는 등 위기는 이어졌고, 6라운드를 앞둔 2015년 2월 9일 허재 감독이 자진 사퇴하였다. 더불어 2010년부터 허재 감독을 보좌했던 천정열 코치까지 물러났다. 남은 경기는 추승균 감독 대행 체제로 치르게 되었고, 추 감독 대행을 보좌할 코치로는 정선규 스카우트가 임명되었다.

결국 마지막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9위를 확정지었다. 이렇게 삽질했는데 9위라니 도대체 꼴찌는 뭐하는 놈들이냐? 이 시즌 KCC 농구단은 12승 42패를 기록했는데, 이는 현대 농구단이 KBL에 참가한 이래 최악의 성적이다.

2.5.2 추승균 감독 시대

2015-16 시즌을 앞두고, 구단은 추승균 감독 대행을 정식 감독으로 선임하였다. KCC의 3대째 감독이 되었으며 계약 기간은 3년.

장, 단신제로 시행된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단신 선수인 안드레 에미트를 1라운드 5순위로 선발하였다. 다른 팀들은 모두 장신 선수를 1R에 선발했던 것과는 대조적인 선발로 화제를 모았다. 또한 2라운드에서 전자랜드의 주장 역할을 맡으며 인기가 높았던 리카르도 포웰을 선발하여 더욱 화제가 되었다. 하승진이라는 장신 센터가 있는 팀 사정을 감안한 외국인 선수 선발인 듯 보이며, 관건은 하승진의 건강 상태와 김태술, 전태풍, 에미트, 포웰 등 볼 소유가 많은 선수들의 분배에 달려 있다는 평가.

시즌 전 열린 2015 프로-아마 농구 최강전에서는 안양 KGC 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2라운드에 진출했으나, 오리온스에 대패하면서 대회를 마감하였다. KGC전에서 외국인 선수 안드레 에미트가 35점, 13리바운드, 4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맹활약했지만, 오리온스전에서는 부상으로 뛰지 못한 것. 공격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에미트가 빠질 경우의 팀 조직력 정비, 포웰의 팀 융화, 하승진이 코트 바깥에 있을 때의 골밑 문제 등 시즌을 앞두고 해결해야 하는 팀의 과제를 여실히 보여준 대회 결과였다. 한편 음주사고로 인해 공백기와 부상 회복 기간을 가진 김민구가 복귀해 짧은 시간 플레이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팬들에게 욕을 먹었다

2.5.2.1 2015-16 시즌 : 4년만의 화려한 부활, 16년만에 정규리그 우승! 그러나.....

올 시즌 군산 경기는 2015년 12월 31일, 2016년 1월 2일, 1월 3일 개최하며 주말에도 전부 밤 경기(6시)로 개최된다.

  • 9월 12일 개막전에서는 서울 SK 나이츠에 80:73으로 패했다.
  • 9월 13일 안양 KGC 인삼공사와의 대결에서는 92:88로 이겼지만, 후반전에서 KGC에게 쫓기는 등 불안한 모습도 보였다.
  • 9월 16일 부산 KT 소닉붐과의 경기에서는 김효범이 에어볼을 날리는 등 답답한 모습을 보이면서 54:72로 대패했다.
  • 9월 19일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와의 경기에서 78:86으로 패했다.

초반에는 부진했지만 5연승을 거두며 확실히 달라졌구나 싶었는데, 하승진과 김태술이 합류하면서 지난 시즌과 똑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회귀 본능

10월 26일 2015~2016 신인 드래프트에서 3번 픽을 뽑아 삼일상고의 송교창을 지명했다.

12월 11일 전자랜드와의 트레이드 기사가 떴다. 전자랜드의 허버트 힐을 데려오고 포웰을 친정팀인 전자랜드로 보냈다. 한편 그날 동부를 상대로 패하면서 4위 자리를 위협받게 되었다. 동부와 삼성의 기세에 밀린다면 6위로 추락할 수도 있는 상황.

12월 16일에는 KGC를 상대로 85:60이라는 큰 점수차로 승리했다.

12월 24일에는 LG를 상대로 94:98이라는 아쉬운 점수차로 패배했다.

12월 26일에는 서울 삼성을 상대로 74:64로 승리했다.

12월 31일에는 올 시즌 첫 군산경기에서 모비스를 상대로 67:65로 극적인 승리를 거뒀다.

1월 2일에도 전자랜드를 상대로 79:72 승리, 1월 3일에도 kt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면서 올 시즌 두번째 4연승을 거두고 있다.

그러나 1월 6일 삼성과의 원정경기에서는 판정 논란과 김태술의 턴오버 등이 겹치면서 82:77로 아쉽게 패했다.

1월 30일 삼성전에서는 3쿼터까지 끌려가다가 4쿼터에서 에밋이 경기종료 1.5초를 남기고 극적인 2점이 들어가면서 74:72로 승리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펼쳐진 전자랜드전에서는 2차 연장전까지 가는 치열한 접전을 펼치면서 113:108로 승리했다.

2월 5일 모비스전에서는 다소 답답한 경기력을 보이긴 했으나 다행히 70:67로 승리하면서 시즌 첫 6연승을 달렸다.

2월 7일 KT전에서는 다소 많은 턴오버에도 불구하고 101:94로 승리하면서 7연승에 성공했다. 이날 모비스도 승리하면서 여전히 0.5게임차로 2위를 지켰다.

2월 9일 LG전에서는 85:80으로 승리하며 8연승과 더불어 마침 이전에 모비스가 KT에 패배하면서 실로 오랜만에 정규리그 1위에 올랐다! 4쿼터에 너무 설렁설렁하긴 했지만 벌어놓은게 많아서 이겼다

2월 13일 동부전은 92:87로 승리하며 9연승을 거뒀다.

2월 16일 오리온전은 73:71로 승리하면서 10연승을 거뒀다. 70:71로 뒤진 상황에서 경기 종료를 1.5초 남겨두고 성공한 전태풍의 3점슛이 이 경기의 묘미이자 최고의 하이라이트.[10] 모비스 역시 이날 동부에 승리하면서 공동 1위를 계속 유지하였다.

2월 18일 SK와의 경기에서 90:83으로 승리하며 구단 최다연승 타이기록인 11연승을 기록했다. 모비스는 다음날에 KGC에 승리하며 공동 1위를 유지하였다.

2월 21일 KGC전에서 71:86으로 승리하면서 구단 최다연승 신기록 12연승을 기록하며 16년만에 정규리그 우승을 거뒀다! 동시에 KCC 이지스란 이름으로는 첫 정규리그 우승이다.

정규리그 우승으로 4강에 직행했으며, 4강 플레이오프에서는 KGC와 삼성의 맞대결에서 KGC가 3승 1패로 승리하여 KGC와 맞붙게 되었다.
1차전에서는 2주동안 쉬어서 그런지 경기감각이 우려되었으나 1쿼터에서만 22:12로 압도하며 80:58로 가볍게 승리하였다. 2차전 역시 1쿼터부터 32:22로 앞서가더니 중간에 주춤했으나 결국 99:88로 승리하였다. 3차전에서는 1쿼터에서만 14:23으로 부진하였으나 한때 19점차로 벌어진 점수차를 끝내 막판에 역전시키기도 했다. 77:77로 연장전에 갔지만 90:86으로 패배하였다. 4차전에서는 1쿼터부터 신명호가 3점슛 2방오늘의 승부처을 성공하는 등 전반전에서만 65:44라는 충격적인 스코어가 나왔다.모비스의 4강 한 경기 평균 스코어를 전반전에서만 다 넣었다 후반에서도 공세를 이어가더니 3쿼터를 93:69로 마무리하였고 4쿼터 시작 3분만에 100점을 찍었다. 마지막 4분동안 1점도 넣지 못했으나 113(!!!):92로 승리하여 오리온스와 챔피언결정전에서 맞붙게 되었다. 2점슛만 하나 더 넣으면 신기록인데 왜 넣지를 못하니ㅠㅠㅠ[11]

그러나 KCC 이지스는 챔피언 결정전에서 멸망했다. 오리온의 공산농구포워드 농구에 말 그대로 탈탈 털리는 모습을 보여주며 다실점 패배를 여러 번 보여준 끝에 폭망하고 말았다. 하승진, 힐의 높이를 통한 공격과 에밋에게 공을 몰아주는 패턴농구는 오리온에게 제대로 먹혀들지 않았으며 1차전과 5차전은 김민구와 송교창의 분위기 반전으로 어떻게 승리를 따내긴 했지만 나머지 경기에선 제대로 손도 써보지 못하고 당하고 말았다. 콩(K)씨씨

시리즈의 결론을 말하자면 추일승 감독의 판짜기에 완벽하게 당했다. 수비 센스가 좋은 오리온의 포워드진의 도움 수비와 스위치, 새깅 등 다양한 수비전술 변화에 전혀 손을 쓰지 못했다. 1차전의 김민구의 활약과 5차전의 안드레 에밋이 40점 가까이 넣긴 했지만 이마저도 막판 오리온의 공격 난조 덕분에 운 좋게 승리를 챙겼다고 볼 수 밖에 없었다. 더 가관인 것은 5차전에서 20점차를 앞서던 경기를 조 잭슨과 이승현을 막지 못해 역전까지 허용했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오리온은 스쿼드를 2개정도는 여유롭게 꾸릴 수 있는 두터운 선수층이 있었지만, 정규시즌에 김민구, 정희재를 제외한 백업 자원들이 제대로 경험을 쌓지 못한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물론 신명호는 평소 슛고자의 모습과는 다르게 새깅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외곽에서 보조해주었고, 김지후, 송교창 등은 오리온의 빠른 공수전환이 통하지 않도록 외곽 및 인사이드에서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KBL 최고의 앞선 수비수로 평가받는 신명호 조차도 잭슨에게 탈탈 털리고 있는 와중에 오리온이 안드레 에밋 수비를 위해 사용했던 전술과 같이 잭슨을 봉쇄하는 플레이를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물론 지금 당장은 초보 감독이 챔프전에 진출하여 로얄로동에 도전한 것 자체로도 대단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지난 시즌에 비슷한 평가를 받았었던 김영만 감독이 15-16시즌에 어떠한 평가를 받았는지 생각해보자. 그러기에 비시즌동안 백업자원들을 잘 육성하여 안정적인 스쿼드를 구축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2.5.2.2 연고지 이전 논란

2015-16시즌 종료 후 수원시로 연고지 이전을 할지 모른다는 카더라가 농구팬들 사이에서 떠돌기 시작했다. 사실 이전부터 수원시에서 지속적으로 농구단 유치를 위해 여러 팀들에 접촉한 것은 알려져 있으며[12] 염태영 수원시장은 공식적으로 농구단 유치를 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여러 차례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원래 부산 kt 소닉붐과 접촉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전임 대표이사가 연고이전을 강하게 추진했지만 그룹 회장과의 관계 등 불미스러운 일로 교체되고 후임 대표이사가 연고이전 건을 무마시켰다는 설 등으로 인해 무산되면서 KCC에 접근한 것으로 보인다.

이 루머에 불을 지피게 된 것이 구단 측에서 연고지 언급을 꺼려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2014-15시즌부터 유니폼에 전주라는 지역명이 빠지더니, 2015-16시즌부터는 응원가뿐 아니라 공식 홈페이지 곳곳에 전주라는 연고지명이 빠지기 시작했고,[13] 정규리그 우승 플랜카드에도 전주라는 연고지명이 빠진 사실[14]이 뒤늦게 알려지며 전주의 농구팬들의 불안감[15]이 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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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카드에 "전주"가 빠져있다.

연고 이전 관련해서 구단이 이렇다할 해명을 하지 않는 것도 이런 논란을 불지피고 있는데 일각에서는 KCC 마카오 팬투어 때문에 연기하고 있다는 말이 돌고 있으며 4월 24일 팬투어 종료 후에 발표할지도 모른다는 설이 돌았다.[16] 그리고 전주 KCC 서포터즈 회장이 올린 글에서 KBL의 승인만 기다리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어서 파장이 더 커졌다. ##

다만 확실한 것은 아니며 한 농구팬이 전민일보의 한 기자에게 이와 관련된 질문을 메일로 보내자 기자가 답변하기를 "KCC 측에 확인한 결과 루머라고 확인해 주었고, 연고지 이전에 대해 전혀 검토한 바가 없다. 그리고 전주시에서 경기장 개보수를 해주기로 결정했다."라는 답변을 받았다고 했기에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다.[17]

수원시의 적극적인 유치 의사에 의해 KCC가 연고지 이전하는 쪽으로 방침을 세웠다는 기사가 발표되었다. 전주시가 새로운 실내체육관 건설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연고 이전 방침을 철회할 수 있다고 하나 사실상 연고지 이전은 피할 수 없는 수순으로 보다.[18][19] 또한 현재의 KCC 이지스부터가 대전 현대에서 전주 KCC로 연고지를 옮긴 전력이 있는 구단이기도 했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이 어려우리?[20]

2016년 4월 20일, KCC 측에서 "홈구장을 신축해주면 남음"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전주시의 무관심 vs 홈팬 뜨거운 응원…KCC,떠나려는 이유와 망설이는 이유

2016년 4월 21일, 결국 전주시의 김승수 시장이 나서서 이 날 13시 30분에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또한 KBL과 KCC 구단을 방문하여 새 구장을 신축하겠다는 약속을 하였고, 이에 KCC가 공식적으로 연고지 이전은 없다고 화답하였다. ## 물론 과거 오리온스가 연고 이전은 없다고 했다가 전격적으로 이전을 단행했던 전례가 있는 터라 불씨가 완전히 꺼졌다고 하기는 어렵다.

사실 전북 지역의 프로스포츠가 K리그 전북 현대와 KBL 전주 KCC[21]뿐인데다 여러 인프라가 없어지는 듯한 느낌을 계속 받아온[22]전북도민들이 그 며칠 동안 전주시에 엄청난 항의를 하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전주 팬들은 홈구장 신축과 지역연고 정착을 위한 서명운동까지 실시하면서 용인에 있는 기존 선수단 숙소까지 전주로 옮길 것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는 상황.

2.5.2.3 2016-17 시즌

비시즌동안 OME급의 김태홍을 나름 반쪽짜리 선수정도로 만들어서 16-17시즌을 기약할 수 있나 싶었는데, FA를 통해 동부로 이적했다.
송교창, 노승준이 있긴 하지만 정희재의 군입대, 김태홍의 이적으로 하승진을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의 높이가 대폭 낮아져버린 탓에 공수 전반의 전술을 새로 재구축을 해야하는 상황에 놓였다. 전태풍, 이현민의 가드진의 높이는 어쩔 수 없다 쳐도, 포워드진의 높이가 심각할 정도로 낮아져버렸기 때문에 낮은 높이를 상쇄하기 위한 다양한 전략들을 비시즌동안 잘 연구해야 할 것이다. 1라운드 픽까지 넘겨주시는 친정사랑 가드 레전드 니뮤가 있어서 정말 다행 ㅠㅠㅠㅠㅠ

그런 우려를 드러내기라도 하듯 2016 프로-아마 최강전에서 상무를 상대로 에밋과 전태풍이 빠진 가운데 답이 없는 야투 성공률을 보여주어 관중들, 캐스터, 해설자 모두의 눈을 썩게 만드는 처절한 경기력[23]을 보여주며 51-71로 완패를 당하고 말았다.

또한 지난해 지적을 받았던 외국인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더 늘어버렸다. 이는 외곽 슛터들의 슛난조에 있었는데, 비시즌 동안 뭔 짓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김지후를 제외하고는 슛터 자원들이 바닥을 기는 3점슛 성공률을 보여주고 있었다. 40%대의 성공률의 김지후를 제외하면 20%에도 못미치는 외곽 성공률 때문에 에밋과 라이온스가 무리한 공격을 할 수 밖에 없는 경기력을 보여주었고, 이는 2016 아시아 농구 챔피언스 리그에서 2승 1패로 모비스와의 득실차에 밀려 준우승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시즌이 시작되었고 프로아마최강전의 우려가 더 심해졌는데 개막전에서 2연패를 시작했고 에밋마저 홈개막전이었던 LG, 바로 다음 모비스 경기에서 부상으로 뛰지 못했다. 그래도 이종현, 양동근마저 부상당한 답이 없던 모비스를 리오 라이온스의 결승 슛으로 원정에서 2점차 진땀승을 거뒀지만 동부, 인삼공사와의 경기에서 다시 2연패를 당했다. 특히 인삼공사와의 경기에서는 십수점차로 지고 있다가 상대팀 인삼공사가 2일 전 전자랜드 때와 마찬가지로 2연속으로 4쿼터에서 거하게 삽질을 하는 틈타 막판에 다 따라잡았으나 끝내 패배한 것이 아쉬웠다. 그래도 희망적인 부분은 송교창의 성장에 더 기대해 볼만하다.
설상가상으로 하승진(왼쪽 발목, 최소 3개월), 안드레 에밋(사타구니, 3주)의 부상으로 당분간 강제탱킹더 암울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전자랜드로부터 주리핀을 데려온 것은 신의 한수가 되었다 안드레 에밋의 일시 대체 선수로는 전년도 삼성에서 뛰었던 에릭 와이즈.

2.6 사건 사고

2.6.1 전주시로의 연고이전

2.6.2 이상민 트레이드 사건

  • 2007년 서장훈이상민과 함께 뛰고 싶다는 이유로 삼성에서 KCC로의 이적을 택하였다. 하지만 정작 KCC에서는 보호선수 명단에서 이상민을 제외시켰으며, 결국 이상민이 보상선수로서 삼성에 가게 되면서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2.6.3 아이반 존슨 손가락 욕설 사건

  • 2009~2010 시즌 LG에서 뛰다 KCC로 온 아이반 존슨은 인성 문제로 말이 많았는데 대표적으로 SK전에서 버저비터 역전골을 넣고 중계 카메라에 손가락 욕을 하였다. 이 후 챔피언결정전에서 유재학 감독과 심판에게 손가락 욕을 날렸고 벌금 총 1,500만원 징계[25]와 함께 KBL에서 영구제명을 당하였다.

2.6.4 허재 불낙 사건

2.6.5 김민구 음주운전 사건

  • 2013~2014 시즌, SK의 애런 헤인즈에게 과격한 파울을 당한 김민구는 이 후 음주운전을 하면서 그를 동정하던 사람들이 욕을 하게 된다. 한편 헤인즈는 이 사건으로 정의 구현을 했다 하며 재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김민구가 시즌아웃 판정을 받아 타어강이 옮으면서 전력 외가 되면서 14-15시즌 9위라는 충격적인 시즌을 보내게 되었다.

2.6.6 수원시로 연고이전할 뻔 했던 사건

  • 2015~2016 시즌이 끝난 후 KCC가 뜬금없이 수원으로 연고이전을 한다는 소문이 나왔지만, 끝내 전주시에게서 새 구장을 지어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내어 전주시에 계속 남게 되었다.

3 역사

3.1 역대 감독

역대 감독
이름연도전적선수 시절
데뷔출신대학포지션은퇴
신선우1997~2005247승 170패1977서울연세대센터1983
허재2005~2015252승 279패1988춘천중앙대가드2004
추승균2015~-승 -패1997부산한양대포워드2012

다음 감독은 2008년에 데뷔한 감독일 것이라고 하더라...

3.2 역대 선수

3.2.1 주요 선수(이적)

3.2.2 주요 선수(은퇴)

주요 선수
이름소속 기간은퇴현 소속대학포지션
유도훈1990~20002000개그전자랜드(감독)연세대가드
정경호1993~19972005중앙대센터
이상민1995~20072010삼성(감독)연세대가드
정진영1996~19982005건국대가드
추승균1997~20122012KCC(감독)한양대포워드
표명일2002~20072012명지대가드
이지승1997~20012005고려대포워드
조성원1997~2000
2003~2006
2006명지대포워드
서장훈2007~20082013연세대센터

3.2.3 주요 외국인 선수

주요 선수
이름소속 기간국적현 소속포지션
조니 맥도웰1997~2001미국-포워드
찰스 민렌드2003~2007미국-포워드

3.3 소속 선수 타이틀

KBL 타이틀 홀더(현대-KCC 소속)
시즌타이틀이름
2011-2012특별 상추승균
2010-2011파이널 MVP하승진
베스트 5(센터)하승진
2009-2010베스트 5(가드)전태풍
베스트 5(센터)하승진
2008-2009파이널 MVP추승균
신인 선수 상하승진
베스트 5(포워드)추승균
수비 5걸(가드)신명호
2007-2008베스트 5(센터)서장훈
2005-2006수비 5걸(포워드)추승균
2004-2005우수 수비 상추승균
자유투 상추승균
수비 5걸(포워드)추승균
2003-2004파이널 MVP이상민
우수 후보 선수 상표명일
기량 발전 상표명일
베스트 5(포워드)추승균
자유투 상추승균
수비 5걸(포워드)추승균
외국 선수 상찰스 민렌드
득점 상찰스 민렌드
수비 5걸(센터)R.F. 바셋
베스트 5(센터)R.F. 바셋
2002-2003수비 5걸(포워드)추승균
2001-2002베스트 5(가드)이상민
자유투 상추승균
수비 5걸(포워드)추승균
우수 후보 선수 상정재근
수비 5걸(센터)재키 존스
2000-2001모범 선수 상추승균
3점 슛 상조성원
스틸 상이상민
1999-2000외국 선수 상조니 맥도웰
3점 슛 상조성원
베스트 5(가드)조성원
베스트 5(포워드)조니 맥도웰
수비 5걸(포워드)추승균
수비 5걸(센터)로렌조 홀
리바운드 상조니 맥도웰
블록 상재키 존스
자유투 상추승균
1998-1999MVP이상민
파이널 MVP조성원
외국 선수 상조니 맥도웰
우수 수비 상추승균
어시스트 상이상민
블록 상재키 존스
베스트 5(가드)이상민
베스트 5(포워드)조니 맥도웰
수비 5걸(포워드)추승균
1997-1998MVP이상민
외국 선수 상조니 맥도웰
모범 선수 상조성원
베스트 5(가드)이상민
베스트 5(포워드)조니 맥도웰
1997수비 5걸(가드)이지승

3.4 역대 성적

통산 팀 성적
연도팀명순위전적승률포스트시즌타이틀감독
1997현대7위7승 14패0.333신선우
1997-98현대1위31승 14패0.689챔피언 결정전 우승
vs. 부산 기아(4승 3패)
4강 플레이오프 승
vs. 대구 동양(3승)
이상민(M)신선우
1998-99현대1위33승 12패0.733챔피언 결정전 우승
vs. 부산 기아(4승 1패)
4강 플레이오프 승
vs. 원주 나래(3승)
이상민(M)신선우
1999-00현대1위33승 12패0.733챔피언 결정전 패
vs. 청주 SK(2승 4패)
4강 플레이오프 승
vs. 안양 SBS(3승)
신선우
2000-01현대6위20승 25패0.4446강 플레이오프 패
vs. 청주 SK(2패)
신선우
2001-02KCC3위30승 24패0.5564강 플레이오프 패
vs. 서울 SK(2승 3패)
6강 플레이오프 승
vs. 안양 SBS(2승)
신선우
2002-03KCC9위20승 34패0.370신선우
2003-04KCC2위39승 15패0.722챔피언 결정전 우승
vs. 원주 TG(4승 3패)
4강 플레이오프 승
vs. 창원 LG(3승)
신선우
2004-05KCC2위34승 20패0.630챔피언 결정전 패
vs. 원주 TG(2승 4패)
4강 플레이오프 승
vs. 안양 SBS(3승)
신선우
2005-06KCC5위29승 25패0.5374강 플레이오프 패
vs. 울산 모비스(1승 3패)
6강 플레이오프 승
vs. 부산 KTF(2승)
허재
2006-07KCC10위15승 39패0.278허재
2007-08KCC2위33승 21패0.6114강 플레이오프 패
vs. 서울 삼성(3패)
허재
2008-09KCC3위31승 23패0.574챔피언 결정전 우승
vs. 서울 삼성(4승 3패)
4강 플레이오프 승
vs. 원주 동부(3승 2패)
6강 플레이오프 승
vs. 인천 전자랜드(3승 2패)
하승진(신)허재
2009-10KCC3위35승 19패0.648챔피언 결정전 패
vs. 울산 모비스(2승 4패)
4강 플레이오프 승
vs. 부산 KT(3승 1패)
6강 플레이오프 승
vs. 서울 삼성(3승 1패)
허재
2010-11KCC3위34승 20패0.630챔피언 결정전 우승
vs. 원주 동부(4승 2패)
4강 플레이오프 승
vs. 부산 KT(3승 1패)
6강 플레이오프 승
vs. 서울 삼성(3승)
허재
2011-12KCC4위31승 23패0.5746강 플레이오프 패
vs. 울산 모비스(3패)
허재
2012-13KCC10위13승 41패0.241허재
2013-14KCC7위20승 34패0.370허재
2014-15KCC9위12승 42패0.222허재
2015-16KCC1위36승 18패0.667챔피언 결정전 패
vs. 고양 오리온(2승 4패)
4강 플레이오프 승
vs. 안양 KGC(3승 1패)
추승균
KBL 통산 20시즌-536승 475패0.530챔피언 결정전 5회 우승
정규리그 4회 우승
MVP 2회
신인상 1회
-

3.5 역대 신인 드래프트

역대 신인 지명 선수
연도순번1라운드2라운드3라운드
1998전체 10번구본근
(연세대, 센터)
박영진
(건국대, 가드)
미지명
1999전체 10번길도익
(명지대, 포워드)
정종선
(중앙대, 포워드)
미지명
2000전체 9번정훈종
(중앙대, 센터)
강대협
(고려대, 가드)
미지명
2001전체 10번허중
(연세대, 가드)
성준모
(한양대, 포워드)
미지명
2002전체 8번손준영
(중앙대, 포워드)
서영권
(동국대, 포워드)
미지명
2003전체 7번전병석
(연세대, 포워드)
안종호
(한양대, 포워드)
송유섭[27]
(중앙대, 포워드)
2004전체 1번양동근[28]
(한양대, 가드)
지명권 포기미지명
2005전체 9번강은식
(한양대, 센터)
진상원
(연세대, 포워드)
미지명
2006전체 9번윤호성
(중앙대, 포워드)
백주익
(연세대, 포워드)
김정윤
(단국대, 가드)
2007전체 6번신명호
(경희대, 가드)
유병재
(동국대, 포워드)
미지명
2008전체 1번하승진
(연세대, 센터)
김태환
(단국대, 가드)
미지명
2009전체 1번[29]Anthony Akins
(GIT, 가드)
지명권 포기미지명
2010전체 6번하재필
(고려대, 센터)
박병규
(경희대, 포워드)
미지명
2011전체 9번정민수
(명지대, 포워드)
김태홍
(고려대, 포워드)
미지명
2012전체 10번장민국
(연세대, 포워드)
노승준
(고려대, 포워드)
미지명
2012전체 4번박경상
(연세대, 가드)
정희재
(고려대, 포워드)
미지명
2013전체 2번김민구
(경희대, 가드)
염승민
(고려대, 가드)
미지명
2014전체 4번김지후
(고려대, 가드)
한성원
(경희대, 가드)
미지명
2015전체 3번송교창
(삼일상고, 포워드)
박준우
(조선대, 포워드)
미지명

4 유니폼

/유니폼 문서 참조.

5 기타

  • 이상민이 삼성으로 이적한 뒤로는 이상민 팬들이 대거 이탈, 구단의 인기가 예전만 못해졌다는 말이 있었으나, 연고지인 전주뿐만 아니라 타 지역에서도 인기는 크게 줄지 않았다. 드래프트 1순위로 뽑은 하승진과 혼혈 선수인 전태풍, 그리고 강병현이 새로운 스타가 되었고 결정적으로 현대 시절부터 팀의 상징이었던 추승균도 2011-12 시즌까지는 여전히 뛰고 있었기 때문. 그리고 그 추승균은 은퇴. 팀의 감독으로 전업하였다.
  • 허재가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풍겨나오는 아스트랄함과 기묘한 병신력도 팀 인기에 한 몫을 한다는 듯하다.
  • 전신인 현대 시절에 정규 리그 1위를 하고 챔피언 결정전에서 우승을 한 적은 있으며, KCC로 바뀐 이후 정규 리그 1위를 하지 못하고도 챔피언 결정전에 올라가서 우승을 하기도 한다. 사실 이건 팀의 주축이 하승진으로 옮겨간 것에 기인한다. 하승진이 신체 특성상 각종 잔부상이 많다 보니 비시즌에도 다른 선수들처럼 시즌 개막에 맞춰 몸 상태를 100%로 끌어올리기가 쉽지 않고, 그 결과 시즌 초반 1~2라운드는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잘 나오지 못하거나, 경기에 나오더라도 영 움직임이 시원찮은 경우가 많다. 하승진에게 모든 걸 맞춘 팀의 특성상, 이처럼 하승진이 없거나 부진할 때면 팀 전체가 굉장히 무기력한 경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1~2라운드에서는 승수를 많이 까먹고 하위권에서 시작하다 보니 시즌 내내 잘해야 하는 정규 리그 1위는 이미 물 건너간 상태. 그래도 하승진이 경기 감각을 끌어올려 정상 궤도에 오른 플레이오프에서는 최상의 경기력을 발휘해 우승을 거두는 게 KCC의 한 시즌 패턴이 되었다.
  • 공식 홈페이지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구단 주소가 용인으로 되어 있다. 홈 경기만 전주에서 하고 숙소 및 연습 체육관은 용인의 범 현대家 연수원[30]에 있다. 그래서 이것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 연고지인 전주고 출신의 선수도 별로 없다.[31]
  • 참고로 팬들에게는 장판이라고 불린다. KCC에서 만든 옥장판 때문에 이런 별명이 붙여진 듯.
  • 역대 유니폼은 현대 시절에는 녹색-노란색, KCC로 바뀐 이후에는 파랑색-남색&하늘색 컬러 위주이다. 마스코트는 현대 시절에는 초식공룡 트리케라톱스 마스코트와 인간체 마스코트가 존재했으며, 팀명 변경으로 걸리버라는 마스코트를 거쳐서 지금은 하늘색 몸체에 주황색 방패를 단 이지스라는 마스코트가 있다.
  • 허재 감독과 김민구의 경우, 각각 천안인천서 도플갱어를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래도 전설은 전설을 닮았다.
  • 프로농구 10개 구장 중에 구내식당이 제일 맛있는 곳으로 각 팀 선수단들이나 관계자들에게 꼽힌다고 한다. 역시 맛의 고장 전주
  • 그리고 이 구단은 의 프로농구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되지 않은 유일한 구단이다.[32] 팀의 성적이 바닥을 기는 동안 그래도 이렇게 모범적인 모습을 보이나 싶었지만, KBL이 2015년 승부조작 사건에 개입된 선수 명단을 발표하는 와중에 김민구 징계 건을 묻어가기 형식으로 발표하고, 덩달아 구단 자체 징계도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구단과 KBL 모두 팬들에게 욕을 먹고 있다.
  • 홈 구장인 전주체육관 천장에 역대 우승 배너가 걸려 있는데 전신 현대 시절 거둔 두 차례의 우승을 KCC로 넘어와서 거둔 것처럼 쓰고 있다. 전신 기아와의 단절 문제로 말이 많았던 모비스조차 원년 우승 배너를 기아 시절의 것으로 쓰는 것과 대비되는 부분.
  1. 2013-14 시즌부터 연고지를 전북으로 확대, 군산에서도 경기를 한다.
  2. 이지스라는 이름의 유래는 당연히 아이기스로 추정된다. 다만 이쪽은 철자가 'Aegis'다.
  3. 그런데 97-98 챔피언 결정전의 MVP는 모두 알다시피 허재였다. 99년에 준우승 하고 MVP 받은 안정환과 함께 한국에서는 유이한 기록.
  4. '무스타파 호프와 2004 드래프트 1순위 지명권 ↔ R.F. 바셋 트레이드'였다. 이 시즌 KCC는 우승을 달성하고 그 다음 시즌에도 R.F. 바셋을 잔류시켰으나 04-05 시즌부터 용병 자유 계약제가 실시되는 바람에 보다 레벨이 높은 선수들이 유입, 바셋은 첫 경기부터 삼보의 왓킨스에게 탈탈 털리며 결국 두 경기만 치르고 짐을 싸고 말았다..만, 실제로는 바셋이 구단에 뒷돈을 요구했으나 구단에서 거절, 그로 인해 태업을 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 반대로 1순위 지명권을 받은 모비스는 양동근을 지명하며 팀의 주역으로 키워내는데 성공하는 등 우승의 대가 치고는 개운치 못한 결말이었다.
  5. 그냥 줄어든 정도가 아니라 출전 시간이 20분대로 급락했다. 한창대의 선수, 게다가 여전히 국내 선수 중 손꼽히는 기량을 가진 선수가 로테이션 멤버가 된 것이다.
  6. 물론 전랜의 전력이 KCC보다 한참 떨어졌던 것도 있다. 서장훈 트레이드 당시 전랜은 바닥권이었고, 언론에서는 "서장훈이 소속 팀을 플옵에 진출시키지 못한 적이 한 번도 없다"며 서장훈 징크스 운운했는데 결국 이대로 된 것. 이후에 서장훈이 문태종과 함께 전랜을 정규 리그 2위로 끌어올리고 MVP 후보로까지 거론된 걸 생각하면 전랜 입장에서 서장훈 영입은 대성공이었다. 물론 KCC 입장에서도 어차피 쓰지 못할 트윈 타워를 포기하고 특급 유망주이자 훗날 손꼽히는 가드로 큰 강병현을 얻었으니 이른바 win-win 트레이드였다.
  7. 09년은 전북 소재 농구단전라도를 연고로 한 야구단, 역시나 전주에 본거를 둔 축구단이 모두 우승한 해였다. 그리고서 기아는 박펠레의 저주로 끊임없는 DTD
  8. 게다가 이 패배는 SK가 1라운드에 거둔 유일한 패배였다!
  9. [1]
  10. 전태풍의 3점슛 역시 묘미였으나, 공을 받고 레이업을 올라가려던 김태술이 자신에게 4명이 붙자마자 주저없이 전태풍에게 패스를 쏴준 장면도 명장면이다.
  11. 참고로 전주 KCC 이지스의 PO 한 경기 최다득점은 대전 현대 시절에 기록했던 114점이다.
  12. KBL의 방침 상 남북통일이 되기 전까지는 신생팀 창단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기존 팀을 끌어들이는 방법 외에는 없었다.
  13. 심지어 10개 구단 중 유일하게 공식 홈페이지 인삿말에도 연고지 언급이 안 되어 있다.
  14. 사실 프로구단 운영 사업이 자선사업은 아니기에 자신들을 도와주지도 않는 지역을 위해 홍보해 줄 필요가 없기도 하다. 애초에 프로야구이지만 넥센 히어로즈도 유니폼, 헬멧 등에 네이밍 마케팅으로 구단의 재원을 얻어 수익을 얻는 구조로 돌아가기도 하고...
  15. 시즌 시작 3개월 전인 7월 21일까지는 KBL에 이전에 대한 공지사항이 나와야 승인이 완벽하게 되는 것이라서 그 시간까지 너무 많이 남았기에(...) 전주 시민들은 계속 불안할 수 밖에 없다.
  16. 팀 스폰서인 마카오 관광청과 공식 협약이 되어 있어서 추진하는 행사이기 때문.
  17. 참고로 부천 SK가 제주로 연고이전 하기 3일전에도 서포터즈 대표와 면담을 통해 부인한 적이 있으며, 대구 오리온스의 경우에는 구단 대표가 직접 부인했지만 도망간 경력이 있다.
  18. 왜냐하면 KBL은 연고지 이전의 사례가 수 차례 있었기 때문에 각 구단주들이 모인 이사회에서 관련 회의를 한다면 연고지 이전을 반대할 명분 자체가 없다. 왜냐면 자기들도 옮겼거든
  19. KBL에서는 연고지를 한번도 옮기지 않은 구단을 세는 것이 더 빠르다. 안양 KGC, 인천 전자랜드이쪽은 체육관 문제로 한동안 부천에서 홈경기를 했지만, 원주 동부, 창원 LG 정도만 연고지를 옮기지 않았다.
  20. 하지만 두 번 옮기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을 수도 있다.
  21. 예전에 전라북도에 야구단 쌍방울 레이더스가 있었고 제10구단 창단에서 수원과 각축을 벌이다 미끄러졌기에 전북도민들의 박탈감은 엄청나게 크기도 하다.
  22. 서남대 의대의 명지의료재단으로의 이관 문제라든지... 쌍방울 레이더스가 해체되고 사실상 SK 와이번스인천에서 쌍방울을 흡수한 모양새가 되어버린 느낌을 받는다든지...
  23. 전날 LG를 상대로 대패한 건국대학교만도 못한 경기 내용을 보여주었다.
  24. 실제로 대전 현대는 프로 초창기 충무체육관 내 시설 문제 때문에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 뒤편에 있는 한밭체육관(다목적체육관)에서 홈경기를 치른 적도 있다.
  25. 400만원-600만원-500만원 순
  26. 블락을 말하다가 불낙으로 들린 것
  27. 짧은 1년간의 선수생활을 끝으로 전주실내체육관에 공익근무를 하면서 은퇴를 하였고, 최근까지 KCC의 프런트로 근무했었다. 애초부터 하라는 농구는 안하고 프런트에 꿈이 있었다고 하기도 하였고...##
  28. KCC와 모비스의 무스타파 호프와 R.F. 바셋 트레이드에 따른 조건으로 드래프트와 동시에 모비스로 이적했다. 실질적으로 KCC가 아닌 모비스가 선발한 것.
  29. 귀화 혼혈 선수 드래프트 1순위에 배정되면서, 2009년 해당 드래프트 20순위를 가지게 되었다.
  30. 과거 '현대그룹 연수원'으로 부르던 곳으로, 현재는 기존의 현대그룹 계열 연수원에, 왕자의 난 이후 금강고려화학(KCC) 연수원, 모비스 연구소 등이 추가로 입주해 있다. 다만, 여기에 입주해 있는 KCC와 여자배구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연습체육관은 프로화 이전부터 오랫동안 써와서 옮기지 않고 그대로 쓰고 있다.
  31. 그러나 이 부분은 다른 구단들도 마찬가지인지라 KCC만 까기는 무리다.
  32. 물론 두 번의 승부조작 모두 감독, 선수들이 독자적으로 저지른 것이며, 나머지 9개 구단이 잘못한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