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관
현존하는 골품제
요미우리 순혈이 아니면 코치까지는 가능하지만 요미우리 감독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구단 역사상 후지타 모토시 단 한명의 예외를 빼고 지금까지 지켜져온 골품제. 옆나라의 수도권 구단이나 옆나라의 모 축구단, 저 멀리 물 건너에 있는 축구단과 닮았지만 그 팀들과는 좀 방향이 다른 골품제다.
2 상세
2.1 예시
타 구단에서 뛰다 요미우리에서 은퇴했다고 해도 인정 못 받는다. 이 정도는 4두품 이하에 해당하며 어디가서 자이언츠 출신이라고 말도 못한다. 예를 들어 롯데 자이언츠에서 뛰다 말년에 몇 년만 삼성 라이온즈에서 뛴 최동원을 아무도 삼성출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우와 같다. 하지만 최동원의 사례와는 또 다른 게 선수 본인이 자이언츠에 애착을 가지고 있더라도 OB회 등에서 거의 허용을 안 하는 분위기. 물론 대놓고 하지 말라고는 하지 않지만 알게 모르게 타 팀 출신은 알아서 짜지는 분위기이고, OB들이 그나마 인정을 해줘야 주변에서도 자이언츠 출신으로 인정을 해주는 식이다. KBO로 칠 경우 넥센 히어로즈가 서건창더러 "너님은 입단할 때 우리 팀 아니었으니까 우리 팀에서 은퇴해도 출신으로 인정 안 함." 이런 식이라고 보면 된다.
4두품 이하 조건에서 팀에 웬만큼 공헌도가 높거나 압도적인 통산 성적을 쌓았을 경우 5두품 대접. 가네다 마사이치와 장훈이 이런 케이스이다. 이 둘은 그나마 일본 야구계에서 넘사벽의 업적을 남겼기에 그나마 요미우리 순혈은 아니더라도 공로자로서 인정은 해준다. 특히 가네다는 그의 등번호인 34번을 고작 5년만 뛰었는데도 요미우리가 영구결번 시켜줄 정도. 예외로 오쿠보 히로모토같은 케이스도 있다.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영구결번인 NBA 괴물 센터 샤킬 오닐도 5두품이라 할 수 있다. 위에 언급한 국내에서 순혈을 따지는 두산 베어스나 종목은 다르지만수원 삼성 블루윙즈는 여기부터 감독이 가능하다.
요미우리에서 20년 뛰고 선수 생활 막판에 1~2년 정도 다른 팀에서 뛰어도 인정을 못 받는다. 이 정도면 6두품 취급. 즉 요미우리 기준이면 시카고 불스의 마이클 조던이 6두품 취급받는다는 소리. 그래도 이정도면 어디가서 요미우리 OB라고 말하고 다녀도 되고 또 대우는 그렇게 해준다. 그리고 본인의 능력 여하에 따라서는 코치까지도 할 수 있다. 명투수 니시모토 다카시, 통산 최다 희생타 기록 보유자인 카와이 마사히로 등이 이런 케이스. 최동원의 케이스를 대입하면 만약 롯데에서 최동원을 순혈로 인정 안 한다면 이 케이스로 해석 가능하다. 뭐 최동원 같은 경우에는 노무라 카츠야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난카이 호크스 쪽에 가깝지만. 삼성으로 치면 김시진, 양준혁, 성준, 박석민그렇다, 요미우리대로라면 박석민은 삼성 감독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넥센으로 치면 이택근, 두산으로 치면 홍성흔이 대충 이 케이스에 들어맞을 듯. 정확히 말하자면 양준혁, 이택근, 홍성흔은 잠깐 다른 팀을 다녀온 케이스이지만, 어짜피 니시모토도 은퇴직전 마지막 1년은 요미우리로 복귀해서 요미우리 소속으로 은퇴했다.
심지어는 선수 생활 내내 요미우리에서만 뛰다 은퇴를 했더라도 지도자 생활을 다른 팀에서 잠시라도 한 경우도 순혈로 인정 못 받는다. 이쯤 돼야 그나마 진골 대접이라도 받는다. 삼성으로 치면 딱 이만수, 전병호 정도 되는 셈이다. 삼성구단이 이만수를 진골대접이라도 하는지는 차치하고. 이제는 해준다 다른 팀 코치직에서 물러나면 코치로 다시 불러들이기도 하고 요미우리 OB회 회장직을 맡아서 팀 운영에 의견을 제시하는 것도 허용된다. 다른 피가 섞이면 대우가 내려간다는 점 또한 묘하게 골품제를 닮았다(...).
이러한 요미우리식 골품제를 삼성 라이온즈에 적용해보면 류중일과 김한수가 요미우리식 원칙에 가장 충실한 감독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또한 위에서 설명하는 요미우리식 골품제를 삼성의 케이스에 적용하면[1] 해태 타이거즈에 있다가 김응용과의 갈등으로 삼성으로 이적한 이순철과 롯데 자이언츠에 있다가 1차 선수협 파동으로 김시진과 트레이드된 최동원은 4두품 이하가 된다. 타 구단에서 시작하다가 삼성으로 이적한 진갑용, 임창용은 5두품이 된다. 삼성에서 시작했으나 중간에 다른 구단에 갔다왔거나 막판에 팀을 떠난 김시진, 장효조, 성준, 양준혁, 박석민[2]은 6두품이 된다. 원 클럽 맨이지만 SK 와이번스에서 지도자 생활을 한 이만수와 kt wiz에서 코치 생활을 하고 있는 전병호는 진골 취급 이라고 보면 된다. 현재까지 성골 신분을 유지하는 이들은 류중일, 김한수, 김재걸 등이 있다. 해외진출의 경우 교진군에서는 이렇다 할 사례가 아직 없으므로 교진군 기준으로 볼 때 이승엽은 다소 애매하다. 참고로 교진군에서의 이승엽은 4두품 이하에 속한다. 이유야 당연히 데뷔도 다른 곳에서 했고 중간에 잠깐 왔다가 간 케이스이기 때문이다.
앞서 순혈주의의 예로 기술되었던 두산 베어스 감독들도 요미우리의 원칙대로 하면 장원진 정도만 감독직이 가능하고 김경문, 김진욱은 물론이거니와 김태형조차도 각각 6두품과 진골에 해당하므로 절대 두산의 감독이 될 수 없다. 김경문 감독은 선수 말년에 태평양 돌핀스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6두품에 해당. 1년만에 돌아오기는 했지만, 이후 코치 연수를 거쳐 처음 코치 생활을 시작한 곳은 삼성이었다. 김진욱 역시 선수생활 말년에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1시즌을 뛰었기 때문에 6두품에 해당된다. 김태형의 경우 선수 생활은 OB-두산에서만 한 원 클럽 맨이고 이후 2011년까지 두산에서 코치 생활을 하였으나 2012년에 SK 코치로 부임하였기 때문에 진골에 해당된다. 통일신라 중대(?) 물론 두산이 요미우리 수준으로 순혈주의를 따졌다면 애초에 SK이적 전에 감독을 시켰겠지만 야만없
감독 교체가 잦았던 롯데 자이언츠의 경우도 첫 취임 당시의 김용희를 제외하면 모든 감독이 순혈이 아니다. 후에 김용희는 삼성과 SK 감독을 맡기도 했기 때문에 오 사다하루와 비슷한 케이스라 하겠다. 구단의 선수 출신인 이종운 전 감독마저도 현역 막판엔 한화 이글스에서 뛰었다. 따라서 요미우리 기준이라면 박정태나 김민호 또는 조성환 정도나 가능하다.
이 외 한화 이글스의 경우 감독은 한화에서만 선수생활과 코치까지 역임한 송진우, 임수민 정도나 가능하고, KIA 타이거즈의 경우 김종국이나 유동훈 정도만 가능하며, LG 트윈스의 경우는 유지현이나 서용빈 정도만 가능하다. 그리고 계보가 복잡한 두 팀이나 2010년대에 탄생한 두 팀은 향후 몇십년간은 적합한 후보가 없을 것이다. 애초에 순혈 같은 거 따지려면 구단 역사가 최소 30 ~ 40년 넘어가야 된다. NC의 경우 나성범이 최소 6두품 이상이 될 가능성은 있다.
2.2 정리
즉, 요미우리 순혈주의의 대전제는 "프로야구에 입문하는 순간부터 인생 종치는 순간까지 요미우리의 유니폼이 아닌 다른 유니폼을 1초라도 입었으면 요미우리 순혈이 아니다."라는 거다. 그만큼 순혈을 까다롭게 따지는 구단이다. 그래서 키요하라 카즈히로는 요미우리의 감독이 될 수 없지만,[3] 키요하라의 동기인 쿠와타 마스미는 요미우리의 감독이 될 가능성이 있다. 선수 시절의 성적은 기요하라 쪽이 넘사벽임에도 불구하고... 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아쉽게도 쿠와타 역시 나이가 많은 상태에서 약간은 구단에서 떠밀리는 듯한 인상을 주면서 MLB 진출을 했다. 요미우리가 미국 쪽 유니폼 1년만 입은 것도 불순물로 쳐버리면 쿠와타조차도 순혈이 아니게 된다. 쿠와타도 요미우리에 대한 충성심이 보통이 아니라는 점과 마쓰이와는 달리 메이저리그에 가기 직전 상황에 요미우리에서는 이미 효용 가치가 떨어질 대로 떨어져서 본인의 개인적인 도전을 구단이 흔쾌히 수락했다는 점에서 그 처우도 주목거리지만 이미 하라에서 타카하시 요시노부로 감독 승계 작업이 시작된 상황이라 구와타도 요미우리 감독을 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요미우리의 골품제에서 중요한 또 하나의 원칙은 다른 팀 유니폼을 입게 되는 경위는 자의든 타의든 상관없다. 즉, 본인의 의지로 제발로 팀에서 나간 것이 아니라 구단의 뜻에 의해서 타구단으로 트레이드된 경우에도 가차없이 순혈이 아닌 것으로 간주한다. 즉, 타구단으로의 트레이드된 선수는 구단으로부터 "당신은 은퇴하고 나서 능력이 되면 코치까지는 할 수 있지만 감독은 절대 안됨."이라는 선고를 받았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구단에서 효용가치가 떨어져서 방출 통보를 받은 선수 중에는 기량만 따지면 다른 팀으로 옮겨서 몇 년 정도는 충분히 더 뛸 수 있는데도 요미우리 순혈을 지키기 위해서 그냥 자진 은퇴의 길을 택하는 경우도 꽤 있다.
그래서 오 사다하루가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의 감독직을 수락했을 때, 일본 야구계는 이를 충격적인 뉴스로 받아들였다. 당시 다이에 GM이었던 네모토 리쿠오의 강력한 러브 콜을 받고 호크스 감독직을 수락할 때까지 오 사다하루는 누가 뭐래도 카와카미 테츠하루, 나가시마 시게오와 더불어 요미우리의 상징이자 전설이었고 성골 중의 성골이었다. 오 사다하루가 감독을 맡았던 1980년대 중반의 요미우리는 우승을 장담할 수 있는 전력이 아니었음에도 우승 지상주의에 밀려 감독직을 내놓아야 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와서 요미우리는 FA 제도 도입 등 바뀐 제도를 십분 활용하여 돈지랄로 팀 전력을 강화하고 있던 중이었다. 따라서 실업자 해설가로서 성골 신분만 유지하고 있었으면 당시 감독이던 나가시마처럼 다시 한 번 요미우리의 감독직으로 복귀해서 권토중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고 진골 신분으로 내려앉은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워낙에 일본 전체에서 레전드급인지라 레전드 대우는 변함이 없지만 이게 더 무서운 거다. 여전히 일본프로야구 전체에서 레전드 대우를 받으며 변함없는 존경의 대상이지만 그래봐야 요미우리 내부에서는 "본인이 감독하고 싶어서 스스로 다른 팀 유니폼을 입은 진골"에 지나지 않는다는 소리니.
2.3 예외
후지타 모토시의 경우, 요미우리 순혈로 선수 생활을 마쳤으며 카와카미 테츠하루 감독밑에서 투수코치를 오랫동안 맡는 등 요미우리 최전성기를 받친 가신이었지만, 카와카미 감독 퇴진과 함께 교진군을 나와서 2년간 다이요 훼일즈 투수 코치를 역임한 경력이 있는데, 1980년 시즌 후 나가시마 시게오가 감독 직에서 사임하자마자 바로 감독자리에 올랐다. 다른 팀, 그것도 같은 리그의 경쟁 구단에서 코치로 활동한 커리어가 있음에도 요미우리 감독이 된 것이다. 당시로써도 이게 워낙 충격적인 일이라 팬들이나 팀내 프런트, 선수단 내에서도 반대가 심했고, 이후 요미우리 감독을 그만둘때까지 안팎에서 수도없이 디스를 당해야 했다. 요미우리 감독할 때 일본 시리즈 우승도 했지만 나가시마가 깔아준거 받아먹은 운장(.....)이란 폄하를 팬과 언론에게 숱하게 받았다. 그런데 그걸 막아야 할 프런트마저도 그 폄하에 동의하는 자들이 많아서 후지타의 편은 거의 없이 외로운 요미우리 감독생활을 해야했다. 어쨌든 1기 감독시절 일본 시리즈 우승 1회를 달성했고, 이후 요미우리 감독으로 재취임 하여 다시 일본 제일에 올랐다. 현재까지도 다른 팀 지도자 경력이 있음에도 요미우리 감독이 된 인물은 후지타가 유일하다.
2.4 해외파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케이스는 커리어의 후반을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보낸 마쓰이 히데키이다. 마쓰이는 비록 미국의 다른 구단의 유니폼을 입었지만 일본 국내에서는 요미우리 외에 다른 팀의 유니폼을 입어본 적이 없다. 만약 마쓰이가 일본 야구계로 복귀할 경우 요미우리의 감독이 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이 요미우리의 순혈주의의 정의와 요미우리로 대표되는 일본 프로야구의 메이저리그에 대한 인식이 확실하게 판가름 날 것 같다. 과연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 진출한 것도 피에 불순물이 섞인 것으로 간주해서 내칠지 아니면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은 일본 야구를 뛰어넘는 한 수준 높은 리그이고 일본 국내에서는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니까 MLB에서 뛴 경력이 있는 OB는 순혈로 간주해서 받아들일지. 마쓰이의 경우가 주목받는 것은 일본에서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MLB에서도 최고 명문이라는 뉴욕 양키스의 일원으로서 3년 연속 포함한 100타점 4번에 월드시리즈 MVP도 수상하는 등 일급 타자의 기량을 과시했다는 점이다. 요미우리의 마쓰이에 대한 태도에 따라 콧대 높은 요미우리의 순혈주의라는 것이 그저 메이저리그의 위엄 앞에서는 꼬리를 내리고 굽신굽신하는 일본 국내 한정인지 아니면 "메이저리그? 그거 뭐임? 먹는 거임? 우걱우걱"하면서 위엄을 과시할지 주목을 받는 부분이다. 일단 몇몇 구단들이 마쓰이 영입에 관심을 보이지만 요미우리에선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 걸 보면 마츠이 없어도 아쉽지 않은 상황도 그렇겠지만 내심 마쓰이를 프랜차이저에서 제외한 것이 아니냐는 말도 있긴 하다. 양키스에서 계속 뛰었으면 모를까, 그놈의 무릎 부상 때문에 저니맨 신세가 돼버린 마쓰이를 본다면...더군다나 마츠이 히데키의 부모도 한신 타이거즈 팬이고 마츠이 역시 그동안 보였던 성향을 보면 요미우리에 제대로 찍힌 듯한 느낌이었는데 일본 대표 팀 소집하는 날을 "오늘 쨉들의 모임이 있는 거야?"라고 했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구단의 최종 의사결정권자인 와타나베 쓰네오 요미우리 신문 회장이 직접 마쓰이를 감독감으로 보고 있다는 발언을 했다. 일단 마쓰이가 코치진으로 합류해서 감독 수업을 받는 것이 우선이긴 하겠지만 감독 선임에 대해서는 과연 OB회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문제.
어쨌든 그덕에 마쓰이와 비슷한 케이스인 우에하라 코지도 어쨌든 성골 취급으로 감독을 할 가능성이 생기긴 했지만 강도 높은 요미우리 비판 때문에 어려울 듯. 대지진으로 인한 정전 사태 중에도 프로야구를 강행하려는 요미우리를 씹었는데 그 이면에는 입단 과정에서 구단 측의 야쿠자 동원 등 안 좋은 루머에다 이런저런 일로 요미우리에 대한 감정이 나빴던 우에하라의 작심이 한 몫한 듯한 느낌도 있는 듯하다. 비슷한 케이스였던 다카하시 히사노리는 2014년 시즌부터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에서 뛰게 되면서 나가리.
3 비판
이 점에 있어서 너무나도 보수적이고 새로운 야구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비판도 있고 너무 배타적인게 아니냐는 의견도 많다. 같은 일본 사람인데 타 구단 출신이라고 감독을 못한다는 건 너무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프랜차이저가 감독 코치를 이루면서 잘 나가는 팀이야말로 진정한 명문 팀으로서 의미가 있는 만큼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응?!
하지만 프랜차이즈 스타를 찾는 것도 정도껏이지 선수도 아니고 지도자 생활을 다른 팀에서 했다고 능력있는 인재를 내칠 정도의 결벽증에 가까운 순혈주의는 2004~2005년 호리우치의 사례처럼 도리어 팀을 망치는 족쇄로 작용하는 경우가 나올 가능성이 많은 것이 문제이다.
근본적인 문제점은 저 조건을 만족하는 사람 그 자체가 매우 적다는 점이다. 즉 저런 말도 안되게 빡센 조건을 다 만족하는 사람도 몇명 안되는데, 그 적은 후보 사이에서 감독감을 골라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니 코치고 뭐고 지도자 경력이 하나도 없거나, 인덕도 영향력도 없는 사람이지만, 조건에 만족하는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감독에 앉힐수 밖에 없는 상황을 스스로 만든다는 점이다. 그렇다. 호리우치 놓고 하는 얘기다. 그나마 출신지를 안 따지는 게 용할 지경. 사실 출신지까지 따지면 성골 자체가 말라 버리니 못하는 거에 가까울 수도 있겠다. 구단의 전 역사를 통틀어서 출신지까지 일치하는 경우는, 소뱅 부임 이전의 성골인 오 사다하루 한 명 뿐[4]. 그런데 이 양반은 국적이 중화민국이다(...). 만일 국적까지 철저히 따진다면 성골은 진즉에 전멸하는 데다가 애초에 그런 성골은 나온 적도 없다. ??? : 교진군 보고 있나?
4 감독 선임
선수 시절에는 요미우리에서만 뛰었지만 코치, 감독 생활은 다른 팀에서 한 히로오카 타츠로[5]이나 모리 마사아키[6] 등은 맡은 팀을 몇 번씩이나 우승으로 이끈 명장임에도 불구하고 요미우리가 침체기일 때조차 감독 인선에서 고려돼 본 적이 없다. 감독 선임을 위한 수뇌부 상황을 표현하자면, 구단 내외부에서 "요새 우승에서 좀 멀어진 거 같은데 이쯤 되면 능력도 검증된 히로오카나 모리를 감독으로 모셔와야 하지 않겠음?"이라고 변죽을 울리면 바로 "어디 감히 야쿠르트, 세이부같은 평민 팀 유니폼에 손을 댄 작자들을!" 하고 반응이 나온다고 이해하면 된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호리우치 츠네오는 감독으로서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은퇴 이후에도 요미우리의 코치직 이외에는 해설자를 제외한 그 어떤 자리에도 앉지 않았던 덕분에 감독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준비도 없이 단지 다른 팀 유니폼을 입어본 적이 없다는 이유로 호리우치 츠네오를 감독으로 내세웠다가 팀 역사에 남을 흑역사만 기록하고 말았다. 이 시절 호시노 센이치의 감독 선임설도 나왔는데 OB 회장인 카와카미 테츠하루를 위시한 요미우리 OB회가 발끈하면서 난리를 치는 통에 무산됐다. 하긴 선수 시절부터 안티 요미우리 이미지로 먹고 살았고 일본시리즈 우승 경력도 없으며[7], 요미우리 유니폼을 1초도 입어본 적이 없는 호시노 따위야... 자리 준다 해도 차버릴 것 같다. 이것 때문에 요미우리는 팀이 서서히 가라앉는데도 융통성이 없다는 엄청난 비난을 들었다.
2012~15년에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의 지휘봉을 잡았던 나카하타 키요시도 비슷한 케이스이다. 미스터 자이언츠라고 불리던 나가시마 시게오의 골수 심복이던 나카하타도 오매불망 요미우리의 감독직만을 바라보며 다른 팀의 코치 제의를 거절하고 요미우리를 떠나 있을 때는 해설자 생활만 하고 있었다. 그러나 본인의 바람과는 다르게 결국 요미우리의 감독 자리가 자기랑 같이 뛰던 후배인 하라 다쓰노리로부터 자기보다 19년이나 프로 입단이 늦은 새카만 후배인 타카하시 요시노부로 이어질 조짐[8]이 보이자, 그대로 갔다간 평생 프로에서 감독 한 번 못해보고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꿩 대신 닭으로 평생의 꿈이던 요미우리의 감독 자리를 포기하고 요코하마의 지휘봉을 잡게 되었다. 그리고 망했다 이렇기 때문에 수많은 요미우리의 OB들이 다른 팀 감독이나 코치 자리를 마다하고 오로지 해설자와 연예인 생활만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2012년 기준으로 하라 다쓰노리의 자리가 위태위태해지고 에가와 스구루의 수석 코치 영입을 둘러싸고 광풍이 한 차례 불었는데 정작 에가와는 '난 감독을 절대 안 할 거임' 하고 선을 그어버렸고[9] 아직 코치 생활 시작조차 안 한 타카하시 요시노부가 경험을 충분히 쌓을 때까지 몸빵을 해줄 요미우리 감독 후보로는 한 번도 요미우리 이외에 유니폼을 입은 적이 없는 선수 중에서 60년대생 중에 사이토 마사키와 마키하라 히로미 등이 꼽히고 있긴 하다. 물론 어디까지나 타카하시가 감독 이을 커리어를 쌓을 때까지 땜빵 후보일 뿐... 이거 예전에 본듯한 장면인데?현직 코치들 가운데 순혈로는 오카자키 카오루와 무라타 신이치가 있지만 이 둘은 위의 두명에 비해서는 커리어가 평범하고 그저 준수한 수준이었던 선수들인지라 애매한 상황이다. 마키하라의 경우는 너무 현장을 오래 떠나있어서 과연 코치로서 복귀가 쉬울지도 의문부호가 있기도 하고.
2014년, 평생의 숙적 한신에게 일본시리즈 진출권을 헌납한 후 하라 다쓰노리감독의 경질설이 부각되면서 마츠이 히데키를 감독이 아니라 코치라도 좋으니까 수뇌진으로 불러오려고 했으나, 마츠이 본인이 오고 싶지 않다며 거절해서 무산되었다. 결국 2015시즌 후에 하라 감독이 사임하고 후임감독 인선에 나섰는데 그 전 부터 예측해온대로 타카하시 요시노부를 감독후보 1순위로 올려놓고 의사타진 중이라는 뉴스가 나왔다. 문제는 타카하시 본인이 선수생활에 미련을 보이고 있다는 점과 하라 감독 집권기 동안 후계구도를 명확하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감독은 고사하고 코치수업도 제대로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자칫하면 나가시마 시게오가 처음 감독자리에 올랐을 때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단 측은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2015년 10월 23일 다카하시 요시노부가 신임 감독으로 내정되었다. 이 정도면 구단이 망할 때까지 순혈주의는 계속 될 듯. 솔직히 호리우치하고 오 사다하루를 제외하면 순혈주의로 실패한 케이스가 없으니 답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팀은 극소수의 엘리트급 선수들을 거의 신인 시절부터 감독 후보로 내정하고 철저한 이미지 관리와 제왕학 교육을 통해서 감독 후보를 양성하는 방법으로 저 조건을 만족하는 감독 수요를 충족하고 있다. 그런 엘리트급 선수가 연륜을 쌓으면서 기대를 충족하는 활약을 하는 경우 중참급으로 올라오면 팀의 리더역할을 맡기고 고참이 돼서 선수생활 말년이 다가오면 거의 플레잉 코치에 준하는 대우를 해준다. 물론 선수가 현역에 미련을 보이지 않도록 은퇴시기는 최대한 선수의 의견을 존중해준다. 그리고 선수에서 은퇴하면 코치 혹은 해설자 생활을 거쳐서 야구를 보는 시각을 넓혀준 뒤 적당히 시기가 무르익으면 우리 나라의 수석코치급인 벤치코치 등의 자리에 앉혀서 현직 감독으로 부터 감독이 되기 위한 도제식 수업을 받게 한다. 그렇게 벤치 코치 자리에서 2~3년 정도 지나면 현임 감독도 어느정도 장기집권을 한 상태가 돼서 구단 안팎에서 슬슬 신진대사에 관한 얘기들이 나오기 시작하며 감독 교체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리고 현임 감독의 계약 임기가 만료되면 원만 퇴직의 형태로 정권을 이양하게 된다. 다카하시의 전임인 하라 다쓰노리가 이러한 코스를 제대로 밟은 경우이다.
그래서 현직인 다카하시 요시노부가 감독 재임기간 동안 최하위 혹은 2년 연속 B클래스 등의 대형 사고를 치거나 막장 행각으로 쉴드를 쳐줄 수가 없을 정도로 사회적 물의를 빚는 경우[10], 아니면 불의의 사고로 감독직 수행이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지 않는 한 다음 감독 후보는 아베 신노스케, 그 다음 감독 후보는 사카모토 하야토 혹은 초노 히사요시로 어느정도 추측이 가능할 정도이다.
물론 감독 교체가 항상 저렇게 진행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성적부진의 책임을 만만한 감독에게 뒤집어 씌우고 아무 생각 없이 잘라놓고 궁여지책으로 지도자 경험도 인성도 부족한 무능력자를 덜컥 감독자리에 앉힌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현직인 다카하시 요시노부도 현역 연장 의지가 있는 상태에서 하라 감독과 구단 프런트간의 알력에 의한 교체 움직임 때문에 제왕학 수업단계를 거의 건너뛴 상태에서 서둘러서 앉힌 느낌이라 구단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실 이 말도 안되게 빡센 조건 때문에 스스로 감독 후보군을 좁힌다는 위의 기술이 일반적으로 보면 사실이지만 중요한 것은 일본프로야구가 양대리그로 분립된 이후로 약 65년동안 이 팀의 감독자리에 앉아본 사람은 현직인 다카하시 요시노부를 포함 딱 8명 밖에 없으며 어떤 무능력자를 제외하면 최소 5년 이상의 임기는 보장을 받아왔다는 것이다. 즉 한번 앉히면 웬만하면 장기집권이기 때문에 현직 감독이 지휘를 하는 동안 이미 차기 감독 후보가 베테랑으로서 팀의 리더 역할을 하고 감독이 물러날 때 쯤 돼서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무르익고 그 동안에 차차기 감독후보는 팀분위기를 이끄는 주축선수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한 조건이 감독 선임에 큰 영향을 안 미치고 있는 것도 현재까지는 사실이다.
5 외국인 선수
감독 순혈주의와는 별개의 내용이긴 하지만,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선수 구성에서도 일본인 순혈주의를 고집해서 외국인 선수 개방에도 가장 늦었던 구단이기도 했다. 정확하게는 미국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한 외국인 선수의 영입이다. 물론 러시아계였던 빅토르 스타르핀이라든지 하와이 출신의 일본계 미국인이었던 요나미네 카나메가 있긴 했지만, 일본에서 오랜 기간 거주했거나 일본계라 여기서는 논외. 일본 프로야구는 출범 초창기부터 외국인 선수를 자유로이 기용했지만 요미우리는 1975년에 가서야 메이저리그 출신 내야수이자 전 워싱턴 내셔널스 감독인 데이비 존슨을 영입했다. 그러나 막상 데리고 온 데이비 존슨이 생각보다 못하자 요미우리의 외국인선수 자리는 무덤이나 다름없었고, 그나마 워렌 크로마티가 영입되어 대박을 친 이후에 좀 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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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연히 군 입대로 상무나 경찰청에서 뛴 건 뺀다.
- ↑ 삼성으로 돌아오면 6두품이지만 돌아오지 않는다면 5두품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 ↑ 사실 기요하라가 열성 교진빠라고 해도 일단 세이부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해서 교진군을 나간 뒤 오릭스에서 은퇴했으니 될 순 없다. 거기다 세이부랑 오릭스 시절은 그냥 잊는다 해도 선수시절 부상 등으로 활약을 잘 못한 데다 파벌까지 만들어 맘에 안드는 선수를 괴롭히고 감독/코치진을 좌지우지하기까지 했으니 다른 구단이든 임명할 리가 없다. 그리고 결국 2016년 2월 각성제 흡입혐의로 체포되면서 "반성 안 하는 한 감독직도 없고 코치직도 읎어요" 나 마찬가지인 신세가 되버렸다.
- ↑ 카와카미 테츠하루는 구마모토 출신, 나가시마 시게오는 치바 출신이다.
- ↑ 야쿠르트의 첫 일본시리즈 우승과 세이부의 80년대 전성기를 이끈 명장. 히로오카는 선수 생활은 요미우리에서 했지만 코치, 감독 생활은 히로시마, 야쿠르트, 세이부, GM 생활은 롯데에서 지냈다. 그래서 감독 인선에서는 거의 고려가 되지 않지만 요미우리 OB회 회장 자리는 역임한 바 있으며 회장 재임시절 감독이하 선수단의 운영에 이런 저런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 ↑ 히로오카의 후임으로 세이부에서 리그 우승 8번, 일본시리즈 우승 6번의 위업을 이룬 OB 출신 모리 마사아키 조차도 선수 시절도 아니고 코치, 감독 시절을 다른 팀에서 보냈다는 이유로 감독 인선에서 진지하게 고려된 적이 없다. 게다가 모리 감독의 경우 그의 마지막 감독 생활이었던 1994년에 요미우리의 모종의 계략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자세히 얘기하자면 요미우리가 3승 2패로 우승하기 바로 직전인 1994년 일본시리즈 6차전 경기 시작 직전에 "세이부, 모리 감독 경질"이라는 루머를 도쿄돔 전광판에 떡하니 띄워놨다. 그야말로 OB고 뭐고 간에 상대편 감독 죽이기밖에는...
- ↑ 2013년 라쿠텐의 우승으로 한을 풀었다.
- ↑ 그리고 진짜로 하라에서 다카하시로 감독직이 넘어갔다.
- ↑ 한신 타이거스에 드래프트 지명을 받았어도 유니폼을 입은 적은 없어서 순혈로 부르기에는 뭔가 애매한 케이스.
- ↑ 그것도 어느정도 수준까지는 모기업인 요미우리 신문의 미디어 장악력을 동원해서 덮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