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

(다이요 훼일즈에서 넘어옴)
(일본프로야구)
센트럴 리그(Central League) | 퍼시픽 리그(Pacific League)
50px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Tokyo Yakult Swallows)
60px요미우리 자이언츠
(Yomiuri Giants)
65px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
(Yokohama DeNA BayStars)
65px주니치 드래곤즈
(Chunichi Dragons)
55px한신 타이거스
(Hanshin Tigers)
55px히로시마 도요 카프
(Hiroshima Toyo Carp)
과거에 참가했던 팀들 →
200px300px
로고마스코트 DB 스타맨 & DB 키라라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
Yokohama DeNA BayStars
横浜DeNAベイスターズ
구단 법인명㈜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
(株式会社横浜DeNAベイスターズ)
창단1949년 11월 22일
연고지카나가와요코하마
현재 연고지로 이전1955년
구단 연고지 변천야마구치 현 (1950~1952)
교토 부 (1953~1954)
카나가와 현 (1955~)[1]
구단명 변천타이요 훼일즈 (1950~1952)
타이요쇼치쿠 로빈스 (1953)
요쇼 로빈스 (1954)
타이요 훼일즈 (1955~1977)
요코하마 타이요 훼일즈 (1978~1992)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1993~2011)
쇼난 시렉스 (2군: 2000~2010)[2]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 (2012~)
홈 구장시모노세키 구장 (1950~1952)
오사카 스타디움 (1953~1954)
가와사키 구장 (1955~1977)
요코하마 스타디움 (1978~)
2군 구장요코스카 스타디움
모기업DeNA
모기업 변천다이요 - 마루하[3](1949~1952, 1955~2001)
다이요, 쇼치쿠[4] 공동운영[5](1953~1954)
TBS테레비(2002~2011)
DeNA(2012~)
감독알렉스 라미레즈
일본시리즈 우승
(2회)
1960, 1998
센트럴 리그 우승
(2회)
1960, 1998
센트럴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우승
(0회)
-
공식 홈페이지
1960년 일본시리즈 우승 팀
1959년 난카이 호크스다이요 웨일스1961년 요미우리 자이언츠
1998년 일본시리즈 우승 팀
1997년 야쿠르트 스왈로즈요코하마 베이스타즈1999년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1 개요

일본프로야구 센트럴 리그의 프로야구단. 연고지는 카나가와요코하마 시.

팀명에 쓰는 마스코트는 오랫동안 훼일즈[6], 즉 고래를 써왔었는데 당시 모기업이 고래잡이를 했었기 때문. 하지만 고래잡이가 점점 논란거리가 되어서인지 1992년부터 베이스타즈라는 아주 일본스러운 영어로 바꾸었다. 말 그대로 요코하마 만(Bay)의 별들이라는 뜻.[7]

2011년 시즌까지 방송국인 TBS가 모기업으로서 운영해 왔으나, TBS조차도 꿈도 희망도 없는 요코하마 보다 요미우리의 경기 중계에 더 힘을 쏟아왔다. 모기업도 버린 안습 그 자체인 셈. 2010년 시즌 종료 후 구단 매각을 선언하여 유력 후보로 住生活グループ(쥬세이카츠 그룹 - 건축 관련 기업의 합동기업)이 거론되었으나, 교섭결렬로 2011년 시즌 까지는 TBS가 구단을 운영해 왔다.

결국 2011년 11월 4일, 모바일 게임 사이트 '모바게(Mobage)'이름부터가 그냥 모바일 게임이라는 뜻이다[8]를 운영 중인 DeNA(디엔에이)가 요코하마의 모기업인 TBS 홀딩스와의 매입 협상을 완료하고 구단을 인수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회사 재무구조와 향후 사업계획 등의 실사를 마치고 12월 1일 구단주 회의에서 DeNA[9]의 요코하마 구단 인수를 승인함에 따라 팀 명칭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로 변경되었다. 이에 따라 약호도 요코하마의 横에서 DeNA의 De(혹은 ディ)로 바뀌고 표기도 요코하마 DeNA[10]로 변경되었다. 랜덤 가챠 팔아서 구단 운영하는 팀. 아시아 시리즈에서 NC 다이노스와의 게임사 더비가 기대된다. 물론 요코하마 때문에 당분간 불가능하겠지만

2 홈구장 : 요코하마 스타디움

요코하마 스타디움 항목 참조.

3 구단 역사

공식적인 센트럴리그 동네북. 센트럴리그 우승은 고작 2회(1960년, 1998년)이다. 그런데 고작 두번 진출해본 일본시리즈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했다. 2005년 창단해서 2013년 첫 일본시리즈 진출 후 우승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과 함께 아직까지 일본프로야구에서 일본시리즈에서 패한 적이 없는 유일한 구단...게다가 1998년 일본시리즈 3차전에서 패하기 전까지는[11] 일본프로야구 12개구단 중에서 유일하게 일본시리즈에서 단 1게임도 진 적이 없는 구단이라는 타이틀을 보유하기도 했다...나름대로 흠좀무.

1950년 포경(고래잡는)회사인 다이요 어업을 모기업으로[12] 하는 다이요 훼일즈(大洋ホエールズ)시모노세키에서 창단된 뒤 1953년 영화회사인 쇼치쿠가 모기업인 쇼치쿠 로빈스와 합병하여 다이요쇼치쿠 로빈스(大洋松竹ロビンス로 이름을 바꾸고 쇼치쿠의 텃밭인 교토로 이전. 그 뒤 1954년 요쇼 로빈스(洋松ロビンス)로 이름을 바꾸기도 했으나[13] 1955년 쇼치쿠가 야구단에서 손을 떼면서 다시 다이요 훼일즈로 이름을 바꾸면서 가와사키로 연고지를 바꾼다. 1978년 요코하마 스타디움의 개장에 맞춰 요코하마시로 연고지를 옮겨 요코하마 다이요 훼일즈(横浜大洋ホエールズ), 그 후 1993년 포경업에 대한 세계적인 여론 악화와 맞물려 기존의 포경업 이미지를 버리고자 시민구단을 표방하면서 팀 이름에서 기업명을 빼고 요코하마 베이스타즈(横浜ベイスターズ)가 되었다. 그 후 2001년 못나가는 팀에 쌓여가는 적자, 본업인 원양어업 및 수산물 가공업의 부진으로 지분의 80%를 보유하고 있던 마루하[14]TBS 측에 지분을 다 떠넘기면서 구단에서 완전히 손을 탈탈털고 TBS가 2011 시즌까지 단독으로 운영했다.

모기업이 고래나 잡고 어묵이나 만들어 팔던 회사였던 덕분에 구단에 대한 지원이 빈약하여 태생적으로 센트럴리그 공인 동네북의 운명을 짊어져 왔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게 아니라 고래 등이 터지는 거였다.

그래도 1950년대에는 모기업조차 없어서 시민들의 성금으로 운영하던 진정한 시민구단 히로시마 카프보다는 사정이 조금 나았다. 그 후 마쓰다가 경영권을 인수한 히로시마가 안정된 재정상황을 바탕으로 강팀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반면 다이요는…. 그러나 2000년대까진 두 팀 다 짠돌이 모기업 덕분에 하위권에서 친하게 지내는 단짝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다이요 훼일즈 시절인 1959년 리그 꼴찌를 차지한 뒤[15], 니시테츠 라이온즈의 일본시리즈 3연패를 이끈 명장 미하라 오사무를 감독으로 영입하여 1960년 리그 우승[16]을 차지하고, 일본시리즈에서 다이마이 오리온즈(치바 롯데 마린즈의 전신)을 4승 무패로 꺾고 우승하였는데, 전년도 꼴찌팀이 다음해 일본시리즈에서 바로 우승한 최초의 경우다. 에이스 아키야마 노보루를 중심으로 한 투수진에 신인인 곤도 아키히토의 활약, 그리고 감독 스스로도 '초2류선수' 라고 부른 시마다 겐타로, 스즈키 타케시 등이 명포수 도이 키요시뜬금없이조화를 이뤄 얻어낸 그야말로 깜짝 우승. 그러나 이듬해인 1961년 다시 꼴찌로 추락, 다음해인 1962년 한신 타이거스와 치열한 우승경쟁을 한 끝에 2위로 우승을 놓친 후로는...1969~1971년의 연속 3위를 제외하고 약 40년간 몇몇 연도를 빼고 하위권으로 지내왔다. 참고로 이 1962년이 한신 타이거스가 양대리그 분립후 처음으로 차지한 리그 우승이다. 일본 제2의 도시인 오사카의 맹주이자 일본프로야구에서 거인과 쌍벽을 이루는 초절정 인기팀인 한신 타이거즈보다 리그 우승도 일본시리즈 우승도 먼저였다. 나름대로 흠좀무.

일본시리즈 두 번째 우승은 1998년에 나왔다. 명실상부한 베이스타즈 최고 전성기의 절정으로, 당시 일본프로야구 특급 마무리었던 사사키 카즈히로이시이 타쿠로, 하루 토시오, 스즈키 타카노리, 로버트 로즈, 코마다 노리히로, 사에키 타카히로, 다니시게 모토노부 등이 포진한 머신건 타선을 앞세워 두번째 우승을 차지한 것. 그건 그렇고 이렇게 쓰레기 취급 받는 팀도 일본시리즈 2번 우승했는데 한신 타이거즈는 뭐하고 있는 거냐.[17]

2ch야구판의 익명의 롯데 담당기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뭔가가 잘못되어서 운좋게 우승했는데 그걸 실력으로 착각하고 있는 팀…이라고는 하는데 이 시기의 요코하마는 강한 팀이었다. 1997~1999년 까지의 3년간이 안습의 역사로만 점철된 팀의 최고 전성기 였으며, 사이토 다카시, 노무라 히로키, 미우라 다이스케, 카와무라 타케오의 선발진은 조금 약한 편이기는 했지만 머신건 타선[18][19]과 투수출신인 곤도 히로시 감독의 마무리 사사키 카즈히로를 중심으로 한 절묘한 투수진 운용으로[20] 구단 역사상 2번째로 3년 연속 A클래스를 기록한 시기였다.[21]

1997년 후반기부터 갑자기 팀이 미치기 시작, 당시 격년제로 잘 하기는 했지만 최강이던 야쿠르트 스왈로즈와 맞짱을 뜰 정도로 상승세를 타면서 2위로 시즌을 종료.[22] 1990년 이후 7년만에 A클래스에 진입하더니 급기야는 1998년엔 리그 우승을 거두고, 일본시리즈에서 세이부 라이온즈마저 꺾어버리며 38년만의 일본시리즈 우승도 차지해버렸다. 리그 우승의 순간, 일본시리즈 우승의 순간. 친절한 세이부 씨[23]

1999년은 개막 초반에 비틀거려 하위권으로 쳐지는 바람에 주니치 드래곤즈에게 리그의 주도권을 내주고 끝내 우승은 놓쳤지만 그래도 시즌 끝나고 나니 3위였다. 그래도 이 해 '머신건 타선'만큼은 절정에 달해서, 팀타율이 2할 9푼 4리에 달하고, 용병 로버트 로즈192안타[24], 타율 .369, 35홈런 153타점의 역대급 활약을 하는 등 절호조의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2000년 시즌을 끝으로, 팀을 더 강하게 탈바꿈 시킬 확실한 카리스마와 리더십을 바라던 선수들과의 갈등으로 자율야구를 추구하던 곤도 감독이 사임을 한 뒤, 정 반대 스타일의 관리야구의 대명사인 모리 마사아키를 감독으로 맞이한게 결정적으로 패착이 됐다. 세이부 라이온즈에서는 일본시리즈를 6번이나 우승하는 등 명감독으로 이름을 날린 모리였지만 이 팀에 와서는 그동안의 팀컬러에 맞지 않는 관리야구로 팀이 서서히 공중분해. 1999년 시즌을 마치고 팀의 기둥뿌리였던 사사키 가즈히로가 메이저리그로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3년연속 A클래스 + 우승을 경험해본 선수들의 끗발로 2001년까지는 어떻게 버티며 2년연속 3위를 차지해 5년 연속 A클래스에 성공했다. 그렇지만 해를 거듭하면서 몰락의 그림자가 드리워졌음은 누가 봐도 확연했다.[25] 결국은 2002년 49승 86패로 최하위를 기록하면서 완전 몰락. 모리는 도중 사임.

아무튼 이런 사정으로 인해 이 팀이 65년이 넘는 긴 역사동안 리그 A클래스(1~3위)에 오른 적은 딱 16번 뿐이다. 현재 있는 12구단 중 21세기 신생팀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를 제외한 나머지 11구단 중 꼴찌이며[26] 심지어 일본시리즈 우승을 1번도 못 이루고 해산한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22번) 보다도 밀린다. 미친

아래가 그 16번 A클래스의 연표. 볼드체는 일본시리즈 우승겸 리그 우승. 일본시리즈 우승 안하면 리그 우승도 없다!. 괄호 안의 숫자는 당시 순위.

1960(1) - 1962(2) - 1964(2) - 1969~1971(3) - 1979(2) - 1983(3) - 1990(3) - 1997(2) - 1998(1) - 1999~2001(3) - 2005(3) - 2016(3)

팀이 이 모양 이 꼴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첫째로는 역지명제가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친 90년대 후반부터 불리해질 수 밖에 없었던 비인기팀의 한계 때문에 최고의 신인은 늘 교진군과 같은 인기 많고 자금력 좋은 구단들에게 빼앗겼던 것이나, 구장이 유흥가와 가까운 탓에 이기면 기뻐서 한 잔 걸치고 지면 잊기 위해 한 잔 걸치는 막장스런 팀 분위기, 코치들의 역량 부족 등이 어우러져 지금의 상황에 이르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큰 이유는 모기업이 강한 팀을 만들어서 팬 수를 늘리고 인기팀이 되겠다는 의지와 비전을 가지기는 커녕 구단을 회사 경영에 방해가 되는 짐으로밖에 생각하지 않았고, 12개 구단 체제를 깰 수 없어서 마지 못해서 근근이 연명만 가능한 수준 이상의 투자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3.1 2008년 이후

3.1.1 2008년 시즌

이전부터 캐망이였지만 특히 08년 시즌부터 부터 3년 연속 연속 꼴찌를 기록하는 등 일본인에게 동네북 이미지를 다시 한번 각인시키고 있다. 특히, 2008년은 리그 수위타자를 차지한 우치카와 세이이치의 타율(.378)보다 더 낮은 승률(.338)을 기록. 후새드 안습.[27]

3.1.2 2009년 시즌

3년연속 꼴찌의 책임을 물어 시즌 중반부터 원 감독인 오오야 아키히코 감독을 중간에 짤라버리는 초 강수를 뒀다...만 어차피 팀 꼬라지가 막장이라 그놈이 그놈. 결국 2010년부터 명 투수 조련사로 불리는 오바나 타카오 전 요미우리 투수코치가 지휘봉을 잡게 된다.

이해의 기록은 51승 93패로 정규시즌 우승 요미우리 자이언츠승차 42.5 게임(...). 그리고 2년연속 90패 초과. 1년만 더 90패를 초과하게 되면 일본 프로야구 역사상 최다 기록 갱신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3.1.3 2010년 시즌

2010 시즌을 앞두고 치바 롯데 마린즈와의 트레이드로 선발투수 시미즈 나오유키, 포수 하시모토 타스쿠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에서 자유계약으로 풀린 강타자 터멜 슬레지를 영입하는 등 의욕적으로 출발했다. 시즌 초반부터 삽질을 거듭한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가 바닥을 깔아주며 센트럴리그 4위까지 올라가는 등 뽀록 선전했으나, 역시나 한계였던지 야쿠르트가 부상하기 시작하면서 다시 꼴찌로 주저앉고 말았다.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

감독으로 명투수코치 출신인 오바나가 감독을 맡았는데도 투수진이 전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은 채 줄곧 센트럴리그 꼴찌를 달리다가, 결국 센트럴리그 3년 연속 꼴찌가 확정되었다. 그것도 3년연속 승률 3할대. 더불어 사상최초로 3년연속 90패도 확정. 8-8-8-8을 찍은 시절의 롯데 자이언츠도 3년연속 90패는 안 했다.[28] 역시 센트럴리그 공인 동네북.

물론 투수력만 구려서 못 이긴다고 생각하면 착각. 팀타율 역시 1위와 3푼 이상이 차이나는 압도적인 꼴등을 기록했다. 특히 가장 큰 피해를 본 게 사회인 야구에서 뛰다가 2010년 신인으로 입단한 카가 시게루. 신인임에도 꼬박꼬박 로테이션을 지키며 145이닝을 던져서 방어율 3.66이라는 훌륭한 피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정한 타자들은 그에게 3승 12패라는 처참한 기록만 안겨주었다. 그의 항목에 올라와 있는 방어율 순위표를 보면 참 눈물이 쏟아진다.

오프시즌에 구단 매각관련해서 홍역을 치웠으나 결국 매각처와의 교섭결렬로 2011년까지 계속 이 꼴로 갈듯. 게다가 뒤숭숭한 팀 분위기에 FA최대어인 우치카와 세이이치가 타구단과 교섭하겠다고 선언, 재정축소로 그냥 풀어주는 분위기상 팀 전력은 더 나락으로 떨어질 공산이 크다(...). 때문에 이 해 드래프트는 즉전력으로 쫙 깔고, 4명 지명하고 끝내는 팀도 있는판에 8명이나 대량으로 지명하여 전력 땜빵을 시도하고 있다. 이래저래 안습. 그나마 무라타 슈이치는 어떻게 어떻게 잔류시키는데에는 성공했으나, 우치카와 세이이치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로 떠나버렸다. 사실 우치카와의 경우는 오이타 출신이기 때문에, 인접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상당히 선호하고 있었다. 게다가 전력도 좋아 항상 우승후보로 꼽히고 못해도 플옵은 가는 팀이라 그놈의 플옵 징크스가 문제기는 하지만 요코하마보다 싼 값을 불러도 갈 판이었다. 금상첨화로 돈지랄로 유명한 호크스의 모기업은 당연히 우치카와에게 제대로 된 대우를 해줬다. 안 뺏기는게 이상한 상황.

그래도 그 와중에 FA로 풀린 한국계로 유명한 모리모토 히초리를 영입하는데 성공했다.

3.1.4 2011년 시즌

여전히 동네북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기존 선수들이 전혀 도움이 안 되는지라 새로 들어온 신인 선수나 용병들을 마운드에 올리거나 타석에 올리지만 마찬가지로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더욱이 2011년은 통일구 덕분에 유독 두드러진 투고타저의 시즌이 돼서 무라타나 브렛 하퍼, 터멜 슬레지의 장타력만으로 해결해야하는 팀의 입장에서는 곤란하게 됐다.

다행히도(?) 투고타저의 시즌을 맞이해서 선발투수 타카사키 켄타로의 안정적인 투구[29]와 더불어 에지리 신타로[30]의 계투가 빛을 바라고 있다. 투고타저의 시즌이긴 하지만 오바나 감독의 투수 조련술이 어느정도 빛이 난듯한 느낌. 마무리도 확실하다 야마구치 슌이 확실하게 마무리 해줄 수 있는 투수이다.[31]다만 타선(혹은 불펜진)이 안따라줘서 세이브 찬스가 없는게 문제지 그외에도 시노하라 타카유키, 후지에 히토시, 우시다 시게루 불펜들도 잘 던진다. 기본적으로 실력이 있었던 투수들인 만큼 오바나 감독의 능력을 볼 수 있는 사례.

다만, 다른 투수들은 별볼일 없는데다가...큰 문제는 확실한 선발을 해줄만한 선수가 타카사키 켄타로 말고는 없다는 점...2010년까지 히로시마가 마에다 켄 한 명 가지고 버틴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32] 이것은 요코하마가 올시즌도 꼴찌에 3할 승률을 할 수 밖에 없어보이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물론, 타선도 시원찮지만...어차피 2011시즌은 투고타저의 시즌이기도 하고 다른 팀에 비해서 딱히 팀타율[33]이 밀리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투수진의 안정이 남은 기간의 성적을 책임진다고 볼 수 있겠다.

투고타저의 시즌이니 만큼 오바나 감독이 마운드 하나는 제대로 휘어잡는 수 밖에 없을 듯. 얼마나 투고타저의 시즌이 심한지 요코하마에서 3할타자가 안나올 수도 있는 그런 상황이 됐다. 7월 30일 한신 타이거스와의 경기에서 슬렛지 선수가 5타석 5안타 3홈런(!) 8타점이라는 성적을 기록해 9-5로 승리하였다. 한 선수가 한 경기에 3홈런 때리는 것도 힘들고 8타점 올리는도 쉽지 않다. 올시즌 투고타저라지만 의미있는 기록이 하나 나온셈이다.

결국 그러거나 말거나 결국 2011년에도 상황은 전혀 나아진 거 없이 4년연속 최하위 확정. 거기다 4년 연속 승률 3할대를 기록. 다행히도(?) 전력 절약을 위한 시간제한 규정 덕분에 무승부가 미친 듯이 늘어나서(11무승부) 사상 초유의 4년연속 90패는 면했다. 그럼에도 86패를 했으니 만약 지진이 안 나고 예년처럼 연장전이 시간 제한 없이 12회까지 가는 승부였으면 아마도 4년 연속 90패는 확실하게 했으리라 예상된다. 그리고 팀을 떠난 우치카와로부터는 긴장감 없는 팀, 뛰는 보람이 없는 팀이라고 공개 인터뷰 상에서 디스까지 당했다. 하지만 다들 동의한다. 그걸 내놓고 얘기해서 우치카와가 욕을 좀 먹었지만.

결국 갈수록 수렁으로 빠져들면서 희망도 없어지고, 거기다 홈에서 주니치가 우승을 확정짓고 오치아이 감독을 헹가래 치는 꼴을 직관하는 굴욕까지 겪게된 타선의 주축 무라타 슈이치가 팀에 정나미가 떨어졌는지 2011시즌 종료 후 FA권을 행사해서 팀을 떠나버렸다. 이제 진짜로 요코하마는 꿈도 희망도 없게됐다.

2000년대 초반까지 개판의 극을 달리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투수진을 지금과 같은 투수왕국으로 만들고, 2000년대 중반에 무능한 호리우치 밑에서 붕괴됐던 요미우리 자이언츠 마운드를 완전히 재건하면서 투수조련의 달인으로 불렸던 오바나 타카오를 감독으로 영입하면서 리빌딩을 꾀하여 뭐 이건 키우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시작하는 수준이니 더딘 속도이지만 마운드쪽은 그나마 젊은 선수들이 치고 올라오고 있었다. 이른바 오바나 효과...[34] 그런데 그 오바나 감독도 2011년을 끝으로 구단이 매각되면서 경질되었다.

3.1.5 2012년 시즌

위에 언급된 대로 2012년 시즌부터는 DeNA를 모기업으로 새출발 하게 되었다. 구단 매각을 계기로 내년 시즌엔 뭔가 변화된 모습을 보이길 기대할 수밖에...그리고 새 감독을 인선했는데 원래 쿠도 키미야스가 유력했으나 이사람이 나 선수 겸업할 거임 하면서 뻗대는 바람에 결국 감독 인선이 무산되었고[35] 검토끝에 요미우리 자이언츠프랜차이즈 스타이자 간판타자였던 나카하타 키요시를 감독으로 선임했다. 헌데 이분... 요미우리 출신 답지 않게 상당히 개그맨 기질이 탁월하시다.[36] 요코하마의 팀 분위기에는 딱 맞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팬들은 경기에서 죽을 쑤든 팀이 꼴찌로 떨어지든 감독 인터뷰가 재미있다며 낄낄낄(…).

그런데 문제는 나카하타가 나가시마 시게오의 대표적 심복으로 골수 요미우리 OB라는 점이다. 본인으로서는 오매불망 요미우리의 감독 자리만 바라고 타팀의 코치 제안도 거절하고 해설자 생활만 했건만 정작 요미우리는 후배인 하라 타츠노리[37]로부터 정말 새카만 후배인 타카하시 요시노부[38]로 바통을 넘겨줄 준비를 하면서 본인은 감독 후보로 고려도 안 하는 상황. 그대로 가다가는 프로에서 감독생활 한번 못 해보고 그대로 죽겠다 싶어서(...) 교진으로서의 프라이드를 포기하고(...) 요코하마의 지휘봉을 잡았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감독이 된 요미우리 낙하산 OB들의 성과가 별로 좋은 적이 없었다는 점. 보통 이런 경우 감독이라는 인간들이 자기 팀의 전력상승보다는 요미우리의 내부의 사정에 더 관심을 보이면서 맡은 팀이 어떻게 되든 말든 방치(...)하는 경우가 많은지라 팀이 더더욱 막장화가 가속화되는 원인이 되기도 해서 꾸준히 팀을 응원해 온 팬들은 싫어하는 경우가 많다. 워낙 개그맨 기질이 뛰어나서 기자들에게는 인기가 많지만 과연 선수들과 팬들은 어떻게 생각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나카하타가 우익정당인 '타치아가레 닛폰(일어나라 일본)'의 후보로 국회의원에 출마한 것도 있어서 은근히 욕을 얻어먹는 중.

결국 2012년 시즌도 별로 나아진 건 없어보인다. 아니 더 나빠 보인다. 시즌 초반부터 히로시마의 에이스 마에다에게 노히트 노런의 굴욕을 당하는 등 4경기 연속 완봉패로 38이닝 연속 무득점을 기록. 그리고 2012년 7월 19일 시점에서 1위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21게임차, 5위 한신 타이거스와 6게임차로 독보적 꼴찌. 한국의 모 야구단도 2012년 비슷한 처지...

그리고 2012년 6월 28일에는 요미우리 하라 타츠노리 감독의 불륜 협박 사건에서 나카하타 감독이 야쿠자에게 하라 감독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는 의혹을 받았다. 사실이라면 망했어요. 오바나 당장 불러와!

한편 2012년 7월 18일에는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와의 홈 경기에서 4-0으로 승리, 시즌 최초로 3연승을 기록하였다. 이로써 요코하마는 2012 시즌 최초로 타구단과의 전적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당시 야쿠르트 상대로 7승 1무 5패)(...). [39] 그러나 결국 팀 전력은 어디 안 가는 듯 후반기 야쿠르트의 폭풍반격으로 상대전적 10승1무13패로 열세로 끝났다. 올스타전 이후로 3승8패로 완전히 열세.

신임 감독 나카하타가 위에서 우려했던 것 처럼 팀을 팽개친 정도는 아니었지만 오로지 요미우리 감독직만 바라보고 해설자 생활만 했던 초짜 감독이 4년연속 최하위에 승률 3할대를 기록하던 팀에 천지개벽을 일으키기를 기대하는 것도 결국은 무리였다. 2012년에 완전히 폭망해서 리빌딩 모드에 들어간 한신 타이거즈조차도 한번도 넘지 못한 채 5위와 9.5게임차라는 꿈도 희망도 없는 게임차로 당당히 5년연속 최하위를 차지. 5년 연속 승률 3할대도 덤. 이제 이 팀조차도 비교를 불허하는 영역에 들어섰다. 그리고 비밀번호6-4-6-6-6-6-6[40]. 참고로 저 4는 혼동하면 안 되는게 NPB는 센트럴리그 6팀 퍼시픽리그 6팀이고 가을야구는 각 리그별 3위까지 할 수 있으니 한국야구로는 5를 찍은 것과 같다. 그나마 한 가지 위안이라면 점점 패수는 줄어들고 있다는 것. 이것도 다 시간제한 무승부 규정 덕분이다. 승수는 거의 안 늘어났다.[41] 시즌 종료 5경기를 남겨둔 시점에서 80패를 기록, 5년 연속 85패의 기록은 기록은 면할 가능성이 커졌...나 했더니 그 남은 경기를 다 패하면서 기어이 5년연속 85패의 기록을 달성하는 근성을 발휘했다(...). 2년만 더 꼴찌에 머무르면 자신들이 세운 6년연속(1954~59) 최하위 기록을 경신하게 된다. 20년 연속 B클래스 기록에 도전하는 이 팀이나 연속 최하위 기록에 도전하는 이 팀이나... 이쯤되면 엘넥한의 일본버전으로 요가 등장할지도

3.1.6 2013년 시즌

꿈도 희망도 없을 줄 알았...는데 개막 이후 연승으로 3256일, 약 9년만에 리그 단독 선두로 치고 올라가는 쾌거(…)를 이룩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DTD가 발동. 결국 3위로 떨어져 어렵사리 A클래스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였지만...

주니치에서 데려온 토니 블랑코가 기록적인 홈런 페이스를 보여주며 타선 하나는 남부럽지 않은 팀이 되었다. 후반기에는 유망주 가지타니 다카유키가 생각지도 않던 타격포텐 대폭발을 보여주며 팀의 미래를 밝게 하였다. 하지만 문제는 투수력.. 파리그의 오릭스 버팔로즈DTD하는 데 한 달도 안 걸렸다. 이 팀도 내려갈 지도 모른다.. 결국 교류전에서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퍼시픽리그 팀들에게 동네북이 되고 말았다. 교류전에서 7승 17패로 최하위로 굴러떨어지면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교류전 종료 시점까지는 야전병원야쿠르트가 부진을 보이면서 밑바닥을 깔아주고 있는 덕분에 최하위까지는 아니지만 3위부터 6위까지 3.5게임차 안에서 다닥다닥 붙어있어서 잘하면 탈꼴찌 뿐만 아니라 승률이야 어찌됐든 꿈에도 그리던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가능성도, 못하면 연속 최하위 타이기록을 세울 가능성도 있는 불안불안한 상태. 8월 11일 현재 5위지만 그래도 3위인 주니치와는 단 3게임차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꼴지 야쿠르트와의 게임차도 단 3게임.

결국 10월 8일, 요코하마에서 열린 한신 타이거스와의 최종전에서는 7대 5로 승리했지만, 최종 순위는 달라지지 않은 채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23게임 차이인 5위로 이번 시즌을 마쳤다.[42] 올 시즌에 완전히 막장화된 야쿠르트보다도 더욱 높은, 독보적인 팀 방어율 4.50이 결국 발목을 잡았다는 점에서[43], 꼴찌는 면했지만 여전히 아쉬운 성적이다. 그래도 팀 타율은 요미우리와 더불어 리그에서 가장 높은 .262로 공동 1위를 기록했는데도 5위했다는 점이 슬프다. 그리고 2007년 시즌 이래 최고 승률, 다시 말해서 최근 6년 동안 가장 적은 79패만을 당했다는 점을 위안으로 삼자(...) 최종 성적은 64승 1무 79패.

오프시즌에는 한신 타이거스로부터 FA로 베테랑 우완 선발요원인 구보 야스토모를 영입했고,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뛰다 메이저리그를 잠시 경험했던 베테랑 좌완 다카하시 히사노리를 영입했다.어째 다 노장들... 야수쪽에서는 오릭스 버팔로즈에서 이대호와 클린업을 이루던 우타 3루수 아롬 발디리스를 영입했다. 그런데 영입과정에서 정말로 바보같은 짓을 하고야 말았는데 구보 야스토모의 보상선수로 팀에서 가장 경험많은 포수인 쓰루오카 가즈나리를 한신으로 보내버린 것이다. 이 때문에 2014년 시즌은 포수 최고참이 20대 중반인데다 출전경기수도 100경기 남짓한 경험이 부족한 구로바네 도시키,다카조 닦아줘 슈토와 신인포수 미네이 히로키 등으로 1년을 운영해야 하는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3.1.7 2014년 시즌

그래도 팀을 체질개선하겠다는 새 구단주의 의욕이 통했는지 점점 팀같은 팀의 꼴을 갖춰는 나가고 있다. 그렇다고 비밀번호 연장을 막은 건 아니지만.

나카하타 감독도 경험치가 쌓이면서 선수시절 전매 특허였던 분위기 메이커의 역할을 살려서 팀을 잘 추스르고 있다. 처음 부임시 우려됐던 부정적인 측면보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점점 더 부각되고 있으며, 선수들도 과거의 무기력한 모습에서 점점 탈피해가고 있다. 비록 순위는 5위였지만 시즌 중반에는 한 때 3위자리를 넘보기도 했고 4위인 주니치 드래곤즈와는 불과 1게임차로 아깝게 5위에 그쳤다. 승수도 증가하여 4위인 주니치와 같은 67승이나 거뒀으며 패수도 최근 7년간 가장 적은 75패에서 멈췄다. 그리고 2007년이후 무려 7년만에 승패마진을 마이너스 한자릿수로 줄였다(...)

일단 투수진에서 FA로 영입해온 쿠보 야스토모가 12승 6패로 에이스 역할을 해줬고, 영건인 이노우와 야마구치 듀오, 용병 기예르모 모스코소가 안정적인 로테이션을 형성하면서 선발투수진에서 계산이 서게 되었다. 기존에 마무리투수를 맡았던 호르헤 소사의 부진으로 대신 중간계투로 호투하고 있던 신인 미카미 토모야에게 맡기면서 뒷문이 개선되며 DeNA의 수호신으로 각성하였고, 그리고 팀내 최고참 미우라 다이스케는 스팟 스타터로서 역할을 충실하게 해주는 등 선발진이 최근 몇년간 보여준 적이 없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 요코하마 성적 상승의 원동력이다. 타선에서는 주니치와 오릭스에서 데려온 블랑코와 발디리스가 기대이하의 모습을 보여줬지만 토종 4번타자인 쓰쓰고가 3할 22홈런으로 타선의 중심을 잡아줬고 시즌 도중에 쿠바에서 영입한 율리에스키 구리엘[44] 등의 활약으로 장타력 부족이 아쉽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지난 안습의 세월처럼 궤멸적인 타선은 아니었다.그리고 1위인 요미우리를 상대로 13승 11패로 유일하게 상대전적에서 앞섰다.

2014 시즌을 정리하면 최근 몇년의 안습상태에서 벗어나 조금씩 희망의 싹이 보이기 시작한 시즌이라고 할 수 있겠다.

3.1.8 2015년 시즌

전반기까지 버티다 시들어버린 희망의 싹 도로아미타불 용두사미

율리에스키 구리엘이 쿠바 정부의 방침상 쿠바리그를 끝내고 와야하고 부상 등을 이유로 개막 후 늦게 합류하는 것이 확실시 된지라 2014년 말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방출된 요코하마 킬러 호세 로페스를 영입. 팀의 주축 타자 중 하나로 평가받은 구리엘이 빠진 타선으로도 오픈전 2위라는 준수한 성적을 뽑아내며 팬들을 설레게 만들었다.

그런데, 믿고 있던 구리엘이 부상을 핑계로 합류를 미루다 음신불통이 되는 사태까지 발전하자 결국 참다못한 프론트가 폭발, 구리엘을 계약해지 해버렸다.[45] 결국 거인한테 버림받은 로페스[46]와 작년 부진하던 아롬 발디리스 등을 데리고 시즌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작년에 보이던 희망의 싹이 드디어 개화한 건지 전 타선이 불을 뿜고, 답이 없던 선발진이 연일 호투를 하기 시작하면서 4월 8일 8년만에 3연승으로 3저금(...)을 이루어 내며 마찬가지로 포텐셜을 폭발시키고있는 주니치와 공동수위에 등극했다. 2015년 5월 30일 현재 그 요미우리를 앞선 1위(!)를 기록중... 이지만 현재 2위인 요미우리와 경기차는 1경기 밖에 되지 않아 언제 1위에서 내려올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계속 꾸역꾸역 승리를 쌓아가며 페이스를 유지해 나가더니 교류전을 앞두고 무려 승률 5할 + 11승으로 당당히 1위자리를 차지했다. 이에 미디어들도 1998년 이후 17년만의 우승을 언급하기 시작하는 등 설레발의 조짐이 보이고 시작했다. 이 와중에 히로시마는 DTD를 시전하였다.

그러나 세-파 교류전 첫 판인 파리그 꼴찌 오릭스 버팔로즈와의 대결에서 루징시리즈를 기록한 것을 시작으로 4연속 루징시리즈를 기록하며 6월 4일자로 선두 자리를 요미우리에게 내주고야 말았다(...). 결국 전년도 퍼시픽리그 꼴지팀인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게 3연전 스윕을 당한 것을 비롯, 10연패를 기록하며 그동안 쌓아왔던 저금이 다 털리고 승률 5할조차 붕괴된 채로 교류전을 마치고 말았다. 교류전 최종 성적은 3승 1무 14패로 역대 최저인 1할 7푼 6리. 상세히 살펴보자면 타격은 중심타자였던 쓰쓰고가 한참동안 이탈한 것 치고는 그럭저럭 쳐 줄만큼 쳐 줬지만, 투수진이 리그전에 비해 매우 부진한 탓이 컸다. 완전히 붕괴수준이 된 것은 아닌데, 타격진이 잘 친 날에는 투수진도 개털려서 지고 반대로 투수전이 벌어진 날에는 질 만큼의 점수만 딱 내 주고 져버리는 투타의 불균형이 심각했다.

그래도 쌓아둔 저금이 워낙 많았고, 다른 세리그 팀들 역시 파리그 상대로 딱히 좋은 성적을 낸 팀은 없어서[47] 승보다 패가 더 많지만 2위는 유지했다. 그리고 세리그는 수위와 최하위 사이의 게임차가 고작 4.5게임이라는 혼전 상태가 되었다.

2015년 7월 시작 시점에서 5위까지 굴러떨어졌다. 그나마 맨 밑에 더 빨리 내려가는 팀이 있어 최하위까지는 안 처진 게 다행. 그러나 선두와의 차이는 2게임도 안 된다.

전반전 마지막 카드였던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3연전에서 자이언츠를 3연벙시켜버리며 단독 수위로 등극했다. 이로써 요미우리는 4년만에 승률5할미만으로 전반전을 종료했고 요코하마는 8년만에 승률 5할이상으로 전반전을 종료했다눈물좀 닦고 물론 현재 세리그가 수위와 꼴찌가 4게임차밖에 안나는 혼전상태라 금새 뒤집힐 가능성도 있기때문에, 요코하마로썬 방심은 금물. 게다가 하필 후반전 첫카드가 요코하마가 세리그중 유일하게 약한모습을 보여주고있는 야쿠르트 스왈로즈상대인지라...결국 올스타전 이후에 야쿠르트에 게임을 헌납하면서 후반기 시작은 1위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그리고 8월이 되자 혹시나가 역시나가 되면서 신나게 털리고 털려 결국 5할에서 -8까지 떨어졌다.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 - 전반기 수위였는데 38일만에 최하위로 급전직하 한화이글스와 요코하마의 평행이론

그리고 9월 23일부로 6시합을 남기고 CS진출 트레직 넘버가 소멸하여 10년 연속 B클래스가 확정됐다. 안습. 그리고 시즌 내내 바닥을 기었던 주니치에게조차 추월 당해서 3년만에 최하위로 복귀하고 말았다. 전년도까지 겨우겨우 줄여놨던 승패마진의 적자도 -18로 늘어났고 3년만에 다시 80패를 채웠다.클래스는 영원하다. 그동안 전년도 우승팀에서 최하위까지 추락한 팀들은 있었지만 같은 시즌에서 올스타전 끝날 때까지 1위를 하던 팀이 최하위로 추락한 건 사상 최초의 기록으로 이렇게 단기간에 1위에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는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 것 같다. 결국 비밀번호6466666556 ......

결국 나카하타 키요시 감독이 10월 3일부로 사퇴하겠다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후임은 알렉스 라미레즈, 쿠와타 마스미, 트레이 힐만, 신도 타츠야가 거론되는중. 다만 쿠와타의 경우는 나가하타처럼 요미우리 출신이란 게 변수. 결국 알렉스 라미레즈가 새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언젠가 NPB에서 감독을 하고 싶다는 라미레즈의 꿈이 결국 이루어진 것.

여담으로 한 시즌 68폭투를 기록하여 일본프로야구 단일시즌 최다 폭투 타이기록을 세웠다.(...) 팀에 베테랑 포수가 없고 포수 자리를 돌아가며 맡은 구로바네, 미네이, 다카조 등[48]이 전부 경험이 많지 않다보니 생긴 일.

3.1.9 2016년 시즌: 18년만에 진출한 포스트시즌

요코하마에게 1998년 이후[49] 가장 영광스러운 해
드디어 비밀번호를 끊었다! ???: 안 돼!!!
작년의 최하위는 그저 운이 없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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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출범 5주년 시즌. 과거 역사는 잊지 않으려는지 5주년 엠블럼에 67도 써져 있다.

3월 25일 히로시마와의 개막전에선 신인 시바타 타츠히로의 선제 2타점 적시타, 야마구치 슌 대신 선발로 등판한 이노 쇼이치의 7이닝 무실점의 호투, 미카미 토모야-야마사키 야스아키가 주니치 타선을 틀어막으며 2-1로 승리, 라미레즈 감독에게 첫승을 안겼다. 하지만, 이후 2연패를 기록하며 루징 시리즈로 시즌을 시작했다. 포수 도바시라 야스타카가 신인 1호 홈런을 기록한 것이 위안거리.

그러나 초반부터 4연패만 두번이나 하는 등 죽을 쑤며 최하위로 쳐져있다. 작년 시즌에는 그나마 시즌 초~중반 1위를 달리며 좋은 모습을 보여줬지만꼴지한건 비밀이다 이번에는 초반부터 힘이 빠진 모습을 보여주고있다. 하지만 아직 시즌 극초반이다보니 아직 뭐라 그닥 말할수도 없는상황.이번시즌에는 반대로 꼴지에서 1위로 치고 올라갈 수도 있다 응 아니야

현재까지의 양상을 보면 타선의 부진이 꽤 심각한 편이다. 팀타율이 0.230, 팀도루 3개로 양대리그 독보적인 꼴찌이다. 츠츠고 요시토모가 분전하는것이 타선 중에선 위안거리...근데 얘도 4월 현재 2할대 중반이다 아주 가끔 타선이 맹폭발해서 크게 이기기도 하지만 거기에 우주의 기운을 다 쓰는 모양... 그나마 츠츠고 요시토모, 야마사키 야스아키, 이노 쇼이치 등 작년시즌 준수한 활약을 보여줬던 선수들이 꾸준하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은 좋은 점 중에 하나다.

다만 아직은 완전히 희망을 놓을 단계는 아닌 것이, 투수진은 제법 훌륭하게 갖춰놨기 때문이다. 5월 6일 현재 요코하마는 팀 방어율이 12구단 중 2위로 꽤 좋으며, 지금까지 34시합 모두 선발투수가 5회를 못 채우고 내려간 적이 한 번도 없다. 즉, 선발 로테이션은 붕괴는 커녕 아주 잘 돌아가고 있으며, 게다가 미카미 토모야 - 야마사키 야스아키로 이어지는 승리계투조는 12구단 중 최고를 다툴 레벨이다. 그러니까 꼴찌를 달리고 있는게 정말정말 신기할 따름이다 이게 다 개막장 물빠따 타선의 탓 특히 1년차 대졸 신인임에도 바로 개막 로테이션에 합류한 좌완 윤석민 이마나가 쇼타의 예가 그것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데, 이마나가는 5월 6일 시합에서 마침내 선발승을 따내기 전까지 5번의 등판에서 모두 퀄리티 스타트와 평균자책도합 2.4대를 기록했음에도 평균 0.5점(...)의 득점지원을 받으며 0승 4패를 기록하고 있었으나 5월 6일 히로시마전에서 7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대망의 첫승을 기록하였다. 양현종이 울고 있습니다

답이 없던 타선도 카지타니 타카유키의 복귀로 생기가 살아났으며 로막은 안될거야 아마(복사근 부상으로 잠깐 2군에 내려가 있던) 츠츠고 요시토모도 곧 돌아올 예정이니 타선 부활을 바탕으로 순위를 올릴 희망은 있다. 따라서 앞으로 더 지켜볼 여지는 있다.

정말 희망이 생긴 것인지 5월 들어서 3연속 위닝시리즈 및 한신과 시리즈 타이를 이루었고 5월 17일 요미우리전도 승리를 챙기며 상승세를 타고 있다. 다음날도 가지타니의 홈런포로 1:0 승리를 거두며 또 위닝시리즈를 확정지었다! 덕분에 1위와의 승차가 9게임에서 4.5게임차까지 줄었다!! 최근 13경기 9승 1무 3패라는 호성적으로 점점 기대감이 커지고는 있다... 디레발은 죄악입니다

팀이 분위기를 타고 있다는 것은 똑같이 이마나가를 예로 들어보면 확연한데, 어떻게 하면 될 것 같은 경기도 결정적인 빈타로 막혀서 4연패를 하던 이마나가가 이제는 거꾸로 안 될 것 같은 경기도 적절하게 득점이 터지면서 3연승을 기록중이다. 5월 21일 현재 요쿄하마의 선발투수들은 아직도 5회를 못 채우고 내려간 적이 없으며 (46시합 연속), 5월 17일에는 기예르모 모스코소가 아예 완투를 해버리고 이어서 다음날 5월 18일에는 이시다 켄타가 8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며, 먹는 이닝이 점점 늘어나는 굉장히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즉 이번 시즌은 요코하마 암흑기의 상징과도 같았던 머신건 계투[50] 중간계투의 무한 혹사가 전혀 발생하지 않는 상당히 위화감 넘치는 전개를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와는 색다른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알았으니까 시즌 다 끝나보고 얘기하자고 좀 있으면 교류전

5월 29일 시점에서 6연승을 하면서 리그 3위를 기록중이다. 6월 1일 현재 팀방어율이 3.04로 양대리그 통틀어 팀방어율 1위이다!
그러나 6월 4일, 치바 롯데전에서 이마나가 쇼타가 3이닝 5실점을 기록한 이후 그의 타석때 대타로 로막이 나오면서 올 시즌 처음으로 조기강판 당한 선발투수가 되었다. 근데 로막이 투수들보다 더 타격을 못하고 있는데? 그런데 3회말에 바로 츠츠고의 쓰리런과 로페스의 백투백이 터지며 패전이 지워졌다. 불운남에서 럭키보이로 등극?

5월 31일부터는 우려하던 교류전이 시작되었으나, 결과 7승 11패로 (작년을 생각해보면) 나름 준수한 성적을 냈다. 다만 순항을 이어가던 팀 사정은 전체적으로 굉장히 불안해졌다. 특히 선발투수들의 피로가 슬슬 드러나면서 조기 강판, 대량 실점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타선에서는 최근 타격감이 절호조에 달해있던 로페스가 발가락 부상으로 빠진 것이 뼈아프다. 카지타니도 아무런 활약을 보이지 못하며 2할대 초반에 머무르면서 그저 츠츠고 혼자 타선을 이끌며 간간히 로페스의 백업으로 나온 미야자키가 홈런 몇개를 때린 수준. 교류전 마지막 주간에는 홈 6연전에서 6전 전패를 기록했는데 그야말로 4월의 요코하마로 그대로 돌아왔다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게임차는 여전히 촘촘하지만 6월 21일 현재 5위로 떨어진 상황. 리그 재개 후 얼마나 잘 추스리느냐가 관건이다.

6월 24일부터 다시 세리그가 열리자마자 당일 기준으로 평균자책점이 0.88이고 시즌 동안 총 자책점이 10점이였던 교진스가노 도모유키2.1이닝 9실점으로 탈탈 털었다! 그 와중에 츠츠고는 투수 제외한 선발 중에 혼자 무안타 그 다음날도 약속의 8회를 연출하고 다시 2위 등극

7월 초까지 2~4위를 주니치 드래곤스요미우리 자이언츠와 함께 왔다갔다 하고 있다. 야쿠르트를 스윕시켰으나 혹시나 했더니 다음 3연전 요미우리에게 피스윕... 전반기 마지막 9연전을 기점으로 임시 선발들의 등판이 상당히 잦아졌다. 사실 6월까지 요코하마는 위에 상술되어 있듯이 가장 확고한 선발진을 구성하고 있었다. 7월 9일까지를 기준으로 선발투수로 등판해 본 적이 있는 선수는 단 7명으로 리그에서 가장 적은 수치였다. 그러나 10일 구니요시, 11일 미우라, 그리고 12일에는 신인 구마바라 등 땜빵급 투수들이 차례차례 선발로 등판했다. 문제는 이 투수들이 결국은 초반부터 탈탈 털렸다는 점(미우라는 24년 연속 안타를 기록했으나 6실점) 그나마 모스코소 대신 올라온 용병 페트릭은 2실점 호투와 함께 타선에서도 2안타 2타점으로 혼자 북치고 장구치며 좋은 모습을 보였다.

그래도 전반기 마지막 3연전 3위 경쟁 중인 주니치 드래곤즈와의 맞대결에서 2승 1패를 거두면서(둘째날 로페스의 끝내기 홈런) 40승 44패 3무, 3위의 성적으로 전반기를 마감했다. 2년 연속 전반기 A클래스 확정

주니치 드래곤스가 후반기들어 DTD를 시전하면서 B클래스 그룹과 적잖은 차이로 3위를 유지하고 있다. 2위 요미우리에 1게임 내외 차이를 유지하며 순위싸움을 지속하는 중. 7월 26~28일 3일간은 순위싸움의 경쟁상대인 주니치를 상대로 2승1패의 위닝시리즈를 거두었다. 그러나 3연전의 마지막 경기에서는 등판한 모든 투수가 실점하며 2:15로 거하게 털렸다. 오오시마에겐 사이클링까지 조공 그러고서는 7월 29일 히로시마와의 경기에서는 최근 불붙은 타격감을 과시하기라도 하듯 19 : 3이라는 거한 점수차로 히로시마를 영혼까지 털었다. 19득점은 무려 17년만이다. 후반기 들어 홈런 페이스가 무시무시한 츠츠고 요시토모의 연타석 홈런 대활약이 컸다. 나고야예서 뺨맞고 히로시마에서 눈 흘긴다. 현재 세리그 압도적 톱인 히로시마를 상대로 스윕을 가져갈 수도 있었으나 마지막 날 4-2 리드 상황에서 폭풍 난타+에러로 역전패했다. 어쨌든 히로시마를 상대로 위닝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을 듯 하다. 작년하고 비교하면 생각보다 잘 버틴다.

8월 초에 4~5위 그룹인 한신과 주니치, 그리고 2위싸움 중인 교진과의 카드가 예정되어 있기에 상당히 중요한 열흘이 될 듯 하다. 여기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A클래스를 굳히면서 다시 2위까지 올라설 수도 있고 아니면 DTD의 서막이 열릴 지도 모르는 일...

그렇게 중요한 일정이라고 강조를 했는데 한신에게 루징으로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최악의 시나리오로... 마무리 야마사키 야스아키가 3경기 모두 최악의 피칭을 선보였다는 점. 1일차에는 8회말에 고토 G 타케토시가 극적인 동점 홈런을 쏘아 올렸건만 9회에 폭풍 4실점을 범하며 패전투수가 되었고, 2일차에는 세이브를 기록하긴 했으나 피홈런을 허용하며 1점차 어렵게 세이브를 올렸다. 3일차에는 9회초 2점차 리드에 등판했음에도 불구하고 동점을 허용하여 블론세이브. 게다가 10회초에 마운드에 올라온 마이크 자거스키 또한 2실점 하며 5:7 패배. 이로써 한신과 게임차가 고작 4게임차가 되었다. 열린다 DTD의 서막

주니치와의 시리즈는 DeNA 여름 대행사 STAR☆NIGHT DAY로 펼쳐진다. 축 쳐진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서는 이번에는 꼭 위닝을 가져가야 하는데... 첫번째 대결에서 9회초 2-1 리드 상황에서 야마사키가 또 다시 털리면서 3실점으로 블론세이브와 패전을 기록하였다. 4일연속 불지르는 마무리 것보다 계속 털리는 애를 왜 4연투를 시키냐 츠츠고가 34호 홈런을 쏘아올린 것이 그나마 정신승리감... 다행히 남은 2경기는 승리하며 위닝시리즈를 가져갔다. 2경기 모두 세이브 요건이였지만 야마사키는 등판하지 않았다. 다나카 겐지로-미카미 토모야 체제로 9회를 틀어막았다. 이마나가도 교류전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승리를 챙겼다.

도쿄돔에서 교진과의 시리즈는 루징으로 마무리했다. 원래 도쿄돔에서 드럽게 못하긴 했지만 이번 시리즈 역시나 드럽게 못했다. 이틀 연속 4안타-2득점이라는 물 잔뜩 먹은 타격으로 깔끔히 2연패. 그러나 마지막 날에는 카지타니의 홈런 포함 4안타 행진과 츠츠고의 35호 홈런이 나왔고, 오랜만에 야마사키가 마무리로 등판하여 세이브 1피안타 무실점의 세이브를 챙겼다. 이로서 2위 교진과 4.5게임차, 4위 한신과 5게임차로 진짜 미칠듯이 잘한다거나 미칠듯이 못하지 않는 이상 당분간 3위에 머무를 것으로 보인다. 리그우승을 해도 일본시리즈에서 패하면 실패한 시즌으로 규정하는 요미우리와는 달리 그것만 성공해도 이 팀에게는 성공적인 시즌이다.

8월 중순 진짜 미칠듯이 못하고 있다. 8월 셋째 주에 펼쳐진 4경기를 합한 점수가 고작 3점. 게다가 주말에는 완전히 맛이 간 주니치 상대로도 루징을 기록하며 4위 한신 타이거스에 3.5게임차로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주중 한신과의 3연전을 깔끔히 3연패하면서 한신에 0.5게임차로 쫓기게 되었다! 타격은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다...

하지만 8월 26~28일의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홈경기에서 무려 스윕을 거두게 되어 재도약 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타선 또한 3경기 동안 도합 38안타 24득점을 내면서 되살아났다. 이 주에 한신은 야쿠르트와의 원정경기에서 스윕패를 당하는 바람에 5위로 밀려나게 되었으나, 4위 야쿠르트와의 경기차가 2.5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방심은 금물이다. 가을야구 하기 참 힘들다. ㅎㄷㄷ

9월 2~4일 한신 원정에서 2승 1패를 기록하여 4위 야쿠르트와의 승차를 2게임차로 유지하였는데, 하필이면 6~8일 홈에서 야쿠르트와 대결을 가지게 되었는데, 6, 7일 경기를 모두 승리함으로서 위닝시리즈를 예약한 상태이며 9월 7일기준 4게임차로 승차를 벌림으로서 유리한 고지를 가져가며 클린치넘버 10으로 가을야구에 가까워지고 있다. 트래직 넘버 말고 다른 걸 세는 날이 오는구나 ㅠㅠ 또한 7일 경기에서는 포텐이 만개한 츠츠고 요시토모가 홈런왕 경쟁을 하는 야마다 테츠토가 보는 앞에서 39호 홈런을 날리면서 생에 첫 홈런왕 타이틀에 한발짝 더 다가감과 동시에 무라타 슈이치(현 요미우리)이가 45홈런을 친 이후로 8년만에 40홈런을 치는 구단 내 일본인 타자 겸 구단 최초로 40홈런 고지를 밟는 일본인 좌타자에 바짝 다가서게 되었다. 물론 25년만의 우승에 근접한 히로시마의 선수들도 있지만 개인 기록이 출중해서 만약 팀이 98년 일본시리즈 이후 18년만의 포스트 시즌 진출에 성공[51]한다면 히로시마의 스즈키 세이야, 아라이 다카히로 및 크리스 존슨 등과 더불어 강력한 MVP 후보로 손색없는 활약을 보이고 있는 중.

9월 10일 주니치와의 대결에서 야마구치 슌이 8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하고 야마사키 야스아키가 마무리 자리로 돌아와 무실점으로 막으며 클린치넘버를 8로 줄였다. 여담으로 이 날 히로시마 도요 카프가 도쿄돔에서 25년만의 리그 우승을 확정지으면서 베이스타즈는 센트럴 리그에서 우승을 해본 지 가장 오래된 팀이 되었다.[52] 괜찮아 일본시리즈 기준으로 하면 여전히 히로시마가 제일 늦어[53] 그리고 2016년 일본시리즈에서 퍼시픽 리그 우승팀이 승리하면 그 기록은 계속 유지할 수 있다.

9월 13,14일은 클라이맥스 시리즈 마지막 한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야쿠르트와의 맞대결이다. 9월 13일까지 야쿠르트와의 게임차는 3.5게임. 3위 요코하마와 이미 6.5경기 이상이 벌어져 있는 한신과 주니치가 남은 시즌 거의 전승에 가까운 기적을 일으키지 않는 한 이 맞대결에서 클라이맥스 시리즈 막차의 향배가 갈릴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렇게 벌어진 9월 13일 경기에서 쓰쓰고의 대망의 40홈런을 포함해 DeNA가 홈런 4방을 몰아치면서 11대3으로 대승을 거두며 야쿠르트와의 게임차를 4.5게임으로 벌리고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이 두 발짝 더 다가섰다. 쓰쓰고는 구단 사상 일본인 좌타자 최초의 40홈런의 쾌거를 달성했다. 9월 14일 경기는 패했으나 15~17일 열리는 한신과의 3연전에서 첫 두경기를 1승 1패로 나눠 가지는 동안 야쿠르트가 1패를 추가하면서 시즌 종료까지 7경기를 남겨두고 클린치넘버를 4로 줄였다. 남은 경기를 거의 전패를 하면서 야쿠르트가 거의 전승을 하지 않는 이상 창단 이후 첫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이 아주 유리해진 상황이 됐다!

9월 18일 히로시마와의 경기에서 연장 11회 혈투끝에 호세 로페스의 끝내기 쓰라린 쓰리런 홈런으로 승리를 거두고 4위 야쿠르트가 최하위 주니치에게 1대8로 지면서 마침내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 클린치 넘버가 1까지 줄어들었다! 1경기라도 이기면 자력 진출이고, 남은 경기를 모두 지더라도 야쿠르트가 1경기라도 패하면 진출이 확정된다. 그리고 9월 19일 경기에서 센트럴리그 우승팀 히로시마를 3대1로 물리치고 대망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무대를 밟게 되었다. 세상 오래살고 볼 일이다. 팀 사상 최초이자 이로써 클라이맥스 시리즈가 출범한지 10년만에 NPB 소속 전 12개 팀이 클라이맥스 시리즈를 경험하게 되었다. ???: 엉엉엉, 은퇴하기 전에 다시 한번 포스트시즌 무대는 밟아보는구나.[54] [ #요코하마 클라이맥스 진출 확정의 순간

2016년 9월 20일 팀의 레전드인 미우라 다이스케가 은퇴를 선언하였다.

9월 24일 요미우리와의 경기를 짜릿한 역전승으로 장식하며 극적으로 승률 5할을 달성하였다! 만약 남은 경기를 전승하고 요미우리가 DTD를 시전해 준다면 극적으로 2위도 가능한 상황. 그러나 도쿄 야쿠르트한테 발목이 잡히며 클라이맥스 시리즈 모든 경기를 원정경기로 치르게 되었다.

10월 8일 퍼스트 스테이지 1차전에서 5-3으로 승리를 거두며 파이널 스테이지 진출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 특히 시즌 말부터 선보인 비장의 타선인 2번 카지타니-3번 로페스-4번 츠츠고가 전부 홈런을 터뜨리며 신바람 승리를 이끌었다. 마무리 야마사키는 2피안타 (1피홈런) 1실점으로 불안한 모습을 보였긴 했지만... 사와무라도 같이 털었으니 상관 없을지도

10월 9일 2차전에서는 8회에 혈을 뚫는 초노 히사요시의 역전 적시타로 패했으나, 3차전에는 연장 11회까지 가는 접전 끝에 미네이 히로키의 결승타로 4-3 승리. 파이널 스테이지에 진출해 마쓰다 줌줌 스타디움 개장 후 첫 가을야구 원정팀이 되었다. 첫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에 첫 파이널 스테이지진출에 첫 히로시마 포스트시즌 홈경기 상대 등 기록이라는 기록은 다 쓰고 있다. 그리고 파이널 스테이지에서 1승을 거두게 되면 하더라도 구단 사상 처음으로 1년에 150경기 소화 기록도 올릴 수 있다. 1승 과연 할 수 있을까

다만 파이널 스테이지 이후의 DeNA는 완벽히 시즌 초 노답의 모습을 재현한 모습. 물론 상대가 무려 19.5게임차나 나는 우승팀 히로시마이긴 하지만, 시즌 히로시마 상대로 12승 13패의 호적세에 로페스, 츠츠고, 시라사키 등이 히로시마의 강한 면모를 보여줬기에 나름 타격전이 되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현실은 2경기 0점(...) 사실 히로시마도 불꽃 타선에 비해 5득점, 3득점으로 부진한 편인데 DeNA는 출루가 귀할 지경이다. 3차전엔 22이닝만에 득점을 올리는 엘리안 에레라의 투런 홈런이 터져 나왔고 이시카와와 가지타니의 호수비, 선발 이노와 마무리 야마사키의 무실점 호투에 힘입어 드디어 구단 첫 파이널 스테이지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4차전에서 21안타를 주고받는 무지막지한 타격전 끝에 8-7로 패하며 가을야구는 끝났다. 딱 150경기 하고 끝난 셈. 그리고 일본시리즈에 간 지 가장 오래 된 센트럴 리그 구단으로 남았다.[55]

4 최근 5년간 관중수 추이

2012년2013년2014년2015년2016년
연 평균1,165,933명 (+5.8%)1,425,728명 (+8.3%)1,564,528명 (+9.7%)1,813,800명 (+15.9%)1,939,146명[56] (+5.4%)
일일 평균16,194명19,802명21,730명25,546명26,993명[57]

해가 갈수록 계속해서 팬덤이 커지고 있다. 현 시점 센트럴 리그에서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 더불어 가장 빠르게 관중이 늘어나고 있는 구단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모기업인 DeNA의 공이 크다고 볼수 있다. 구단을 짐짝처럼 취급했던 전 주인과는 달리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성적에도 불구하고 모기업이 본거지인 요코하마와 팀에 애정을 가지고 제대로 구단을 경영해보려는 의지는 가지고 있다. 정말로 DeNA가 모기업이 된 것이 천만다행. 요코하마 스타디움 항목에도 DeNA가 새 구단주가 되고나서 프로 구단으로서 자립하기 위한 노력에 대해서 기술되어 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은 결실을 맺어서 2016년 마침내 관중도 잡고 성적도 잡는데 성공했다.

5 팀 특징

5.1 팀이름은 베이「스타즈」인데 스타가 없어(!)

그나마 이 팀에서 뛰는 스타급 선수로는 오랫동안 팀 투수진을 떠받쳐온 '반초(대장)' 미우라 다이스케정도였으나 2016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 미우라는 성적으로 보면 충분히 주목받을 만한 선수지만 팀이....[58] 그 외에 한국 야구팬들에게 알려진 선수는 재일교포 모리모토 히초리가 있었고 한국에서 활약한 카도쿠라 켄이 일본프로야구 커리어의 최전성기를 보낸 곳도 여기였다.

한 때 이 팀을 대표하는 선수로는 2007, 2008년 센트럴리그 홈런왕이자 베이징 올림픽,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국가대표로 참가한 거포 3루수 무라타 슈이치가 있...었으나, 2012년 시즌에 FA를 선언하고 요미우리로 이적해버렸다... 그리고 일본 턱돌이로 유명하며 고타율과 2라운드 1/2위 결정전에서 홈런을 쳐내어 우리나라를 울리기도 했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우치카와 세이이치도 이 팀 소속이다.

이러다 보니 결국 팀에서 뛰는 주목받는 스타라고 할 수 있는 선수가 없다. 나카하타 감독 시절에는 담당 기자들도 선수보다는 개그맨 감독만 졸졸 따라다니면서 오늘은 어록으로 쓰일만한 뭐 한마디 안 나오나 기다리는 게 일이었다. 오죽하면 카네모토 토모아키가 은퇴 경기에서 "DeNA는 나카하타 감독이 가장 눈에 띈다. 선수가 주목받지 않으면 (안 된다.)"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꿈도 희망도 없어.

그나마 2014년 시즌 들어와서 쓰쓰고 요시토모가 3할 22홈런으로 토종 4번타자로서 활약을 보이면서 프랜차이즈 스타 후보로서 떠오르고 있고 FA 선언해서 딴 팀으로 옮기지만 말아라 어? 얘는 입단할 때부터 자기 메이저리그 가겠다고 벼르던 애인데?? 망했어요 선발 로테이션의 이노 이놈 쇼이치와 야마구치 슌이 주목할만한 활약을 보이고 있으나 그렇다고 해도 다른 팀의 주축 선수보다 개성도 화제성도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2015년 입단한 야마사키 야스아키가 마무리로 혜성같이 등장, 엄청난 활약을 보이면서 스타가 될 가능성을 보이고있다.

또한 요코하마 프런트는 툭하면 구단의 레전드로 남을 선수를 제대로 못 지키는데 이 점은 팬들의 원성이 매우 크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98년 우승의 주역이었던 붙박이 유격수 이시이 타쿠로가 2009년에 히로시마로 이적하여 은퇴 후 히로시마 코치로 정착, 마찬가지로 98년 우승의 주역이었던 외야수 사에키 타카히로가 2011년에 주니치로 이적하여 불과 1년만에 은퇴 후 주니치 코치로 정착, 미우라 다이스케와 함께 요코하마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외야수 긴조 타츠히코 역시 2015년에 요미우리(!!)로 이적하여 불과 1년만에 은퇴 후 요미우리의 코치로 정착하였다. 이 케이스의 공통점은 구단 측에서 빡빡하게 은퇴 권고와 전력외 통지를 날렸고 선수와 구단간의 입장 차이가 첨예하게 대립했다는 것인데, 팬들에게 큰 지지를 받는 인기 선수들을 좀 기다려주지 못하고 그렇게 쉽게 내쳐버리는 선택이 팬 입장에서는 씁쓸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요코하마의 팬 입장에서는 이 선수들이 다른 팀 유니폼을 입고 있는 모습이 지금 봐도 어색할 정도이다.

5.2 요코하마 팬의 십계명

아래는 요코하마 팬으로 사는 십계명이라고 한다.[59]

1. 시합은 원래 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관전한다.
2. 경기 도중 단 한 군데라도 희망이나 좋은 점을 찾아낸다.
3. 시합에 이기든 지든, 감독의 수수께끼같은 선수기용이나 작전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4. 이긴 날은, 오늘이 야구 뉴스를 즐거운 기분으로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행복하게 본다.
5. 언젠가는, 언젠가는 초 거물 용병선수가 입단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6. 상대팀의 에이스 투수가 선발로 나서는 날은 결코 쓸데없는 희망을 버리고 패배를 확신한다.
7. 팀 내 루키의 성장을 가장 큰 즐거움으로 삼는다.
8. 도저히, 정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괴로울 때면 1998 시즌 우승했을 때의 비디오를 몇 번이고 돌려본다.
9. 경기가 없는 매주 월요일은 오늘은 절대 지지 않는 날이라며 마음 편히 하루를 보낸다.
10. 팀이 지고 있을 때면,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연패기록을 보며 마음을 달랜다.

한화 이글스 팬 일본버젼

최근 몇 년간 센트럴리그 꼴지를 도맡아해온 베이스타즈의 상황을 비꼬는 유행어로 베리그가 있다. 매년 다른 팀과 엄청난 차를 벌리면 꼴등으로 가라앉은 채 그대로 시즌이 끝나버리는 거의 독립적인 위치라는 점 때문에 베이스타즈가 사실은 다른 리그였다! 라는 뜻으로 센트럴리그를 줄여서 세리그, 퍼시픽리그를 파리그라고 부르는 것에 빗대어, 베이스타즈에서 「베」를 따 베리그라고 부른다. 기본적으로는 베이스타즈 혼자 소속된 리그이지만 자국리그나 타국 리그에서 헤매는 팀들을 여기로 승격시켜서(...) 순위를 가리곤 하는데, 공교롭게도 파리그의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MLB시애틀 매리너스와 함께 한화 이글스가 여기 단골로 일본에서 유명하다. 결국 매년 수위는 베이스타즈가 차지한다. 물론 패가 많을수록 순위가 높은 베리그 기준으로. 허정무컵?

이 뿐만 아니라 일본 현지에서는 'Baysball'이라는 말도 꽤 쓰이는 모양. 그러니깐 베이스타즈가 하는 야구는 Baseball이라 하기엔 워낙 못한다는 소리 정도 되겠다.[60]

5.3 기타

[[파일:46cd59SD.png|]]

  • 요코하마 차이나타운에 98년 베이스타즈의 우승을 기념하며 국물이 파란색인 베이스타즈 라면을 팔던 칸톤(廣東)이라는 중국음식점이 있었다. 맛은 그럭저럭 괜찮았다는 듯. 2014년 현재는 폐점.
  • 구단 공식 응원가로 熱き星たちよ(뜨거운 별들이여)가 있는데, 1993년[61]에 작곡된 곡이다 보니 다른 센트럴 리그 구단들 응원가에 비해 젊은 센스가 있다.
  • 교류전에 매우 약하다. 2005년 교류전 시작 이래 2015년 종료 시점까지 105승 170패 7무승부로 승률이 .382로, 교류전 통산 1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무려 2할 넘게 차이가 난다. 교류전 꼴지도 5번으로 최다. 이러한 체질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 2015년 시즌으로 교류전 돌입 전에 승률 5할 + 11승으로 1위를 기록하며 17년만의 우승 설레발까지 나왔지만 교류전에서 3승 14패로 참패하면서 최하위를 기록. 그 전까지 벌어놓은 저금을 다까먹고 내려 앉아 마침내 시즌 끝날 때는 최하위까지 굴러 떨어졌다.

파일:R8AH4af.png

6 유니폼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유니폼항목 참조.

7 대표적인 선수들(2016년 기준)

7.1 감독 및 코치

7.2 투수

7.3 포수

7.4 내야수

7.5 외야수

7.6 OB

7.6.1 감독

  • 미하라 오사무 (1960 - 1967) - 팀 첫번째 우승당시 감독
  • 고바 다케시 (1987 - 1989) - 다이요와 B클래스 동지(...)였던 히로시마 도요 카프를 리그 우승 4회, 일본시리즈 우승 3회로 이끈 명장으로 5년 장기계약을 체결했으나, 3년 연속 B클래스를 기록하며 중도해임되었다.
  • 곤도 아키히토 (1993 - 1995) -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초대감독. 선수 시절 첫해인 1960년 다이요 웨일스를 일본시리즈 우승에 기여했고 신인선수로서 최초로 일본시리즈 MVP에 선정되었다.
  • 오야 아키히코 (1996 - 1997, 2007 - 2009)
  • 곤도 히로시 (1998 - 2000) - 팀 두번째 우승당시 감독. 이 팀 역사상 넘사벽급의 성적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극단적 자율방임노선으로 인해 선수들과 알력을 일으키며 재계약에 실패한다(...)
  • 모리 마사아키 (2001 - 2002) - 전 소속팀에서는 팀을 리그 우승 8번, 일본시리즈 우승 6번으로 이끈 명장이었으나 이 팀에서는 첫 해 3위에 이어(그나마도 4위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게 승률에서 밀리는데 승수 높아서 겨우 억지로 된 순위.) 이듬해 꼴찌로 꼬라박으며 중도해임되었다.이 분과 평행이론?
  • 야마시타 다이스케 (2003 - 2004)
  • 우시지마 가즈히코 (2005 - 2006)
  • 오바나 다카오 (2010 - 2011)
  • 나카하타 키요시 (2012 - 2015)
  • 알렉스 라미레즈 (2016~현재)

7.6.2 투수

7.6.3 포수

7.6.4 내야수

신인으로서 최초로 일본시리즈 MVP에 오른 선수이고,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초대감독으로 1993~1995년까지 역임했다.
70~80년대 팀을 대표하던 프랜차이즈 플레이어. 1976년부터 83년까지 8년연속 유격수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2003 - 04년에는 팀의 감독도 역임.
60~70년대 팀을 대표하던 강타자이자 일본프로야구계의 진정한 무관의 제왕. 무관의 제왕에 소개된 다른 선수들은 타격과 관련된 주요 타이틀만 못 땄을 뿐 신인왕, 골든글러브, 베스트나인 등등 기타 수상경력이 있는 '불순물'임에 반해 이 선수는 선수생활 20년동안 통산 2095안타, 331홈런, 1180타점을 기록한 강타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상도 수상하지 못한 순도 100% 무관의 제왕이다. 이 정도 성적을 남긴 선수가 주요 타격 타이틀은 고사하고[67] 포지션별로 주어지는 골든글러브나 베스트나인 조차도 수상하지 못한 이유는 포지션 때문인데 이 선수의 주 포지션이 1루수와 3루수였다. 문제는 이 사람이 현역으로 활동하던 시기가 나가시마 시게오오 사다하루의 전성기와 정확히 겹친다는 것(...). 저 두 사람이 3루와 1루에서 포지션 관련 상을 쓸어가니 상을 받을래야 받을 수 가 없었다. 그나마 이 사람이 현역으로 있는 동안 시즌 최다안타는 2번 기록했지만 그 당시에는 최다안타는 수상항목이 아니었다(...) 안습. 다만 현역 마지막 해인 1981년 요미우리로 트레이드 되어 일본시리즈 우승을 맛보고 우승반지 하나는 끼고 은퇴해서 안습아닌 듯 안습인 현역 커리어를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기는 했다.[68]

7.6.5 외야수

초창기 일본 프로야구를 대표했던 강타자. 일본 프로야구 시즌 최다타점(161), 최다득점(143), 최다루타(376) 기록 보유자이며 일본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시즌 50홈런을 기록했다. 모두 일본에서 양대리그가 시작된 1950년의 기록인데 이 해의 기록이 타율 .355, 51 홈런, 161 타점, 출루율 .450, 장타율. 729로 OPS만 무려 1.179를 기록했다(...) 다만 방계구단으로 취급받는 쇼치쿠 로빈스 소속이었고 쇼치쿠가 다이요와 통합됐을 무렵에는 히로시마로 이적한 상태였기 때문에 일본어 위키피디아에서는 요코하마 OB로 취급하지 않는 듯 하다.

7.7 팀 출신 메이저리거

  1. 현재 연고지인 요코하마 시로 옮긴 것은 1978년
  2. 2000년부터 2010년까지 2군 팀만 이름을 달리해서 쇼난 시렉스(湘南シーレックス, Shonan Searex)라고 했다. 2014년 이후의 넥센 히어로즈(1군)와 화성 히어로즈(2군)의 관계와 같다.
  3. 일본의 어업회사. 1943년 창업 때부터 다이요란 이름을 썼으나, 1993년 "마루하" 로 이름을 바꾸었다. 참고로 동명의 항공모함하곤 전혀 상관없다.
  4. 일본의 대형 영화 제작/배급사.
  5. 다이요 훼일즈와 쇼치쿠 로빈스가 합병하게 되면서 공동운영을 하게 되었으나, 1954년 시즌 종료 후 쇼치쿠가 구단 운영에서 손을 떼면서 다이요 단독운영 체제로 돌아왔다.
  6. 한글로 웨일즈나 웨일스로 표기하기도 한다. 현대 영어의 많은 화자들이 Whales의 wh 부분을 /hw/(정확히는 [ʍ])로 발음하지 않고 /w/로 발음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
  7. 전형적인 일본식 영어라서 미국 매체들이 메이저리그탬파베이 레이스처럼 지명 자체에 '베이'가 붙고 팀명에도 그걸 사용하는 케이스들처럼 착각해서 요코하마 + 베이스타즈가 아니라 요코하마베이 + 스타즈로 인식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지금은 요코하마 뒤에 DeNA가 붙었으니 오해의 가능성이 줄었다고 볼 수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요코하마 DeNA 베이' + '스타즈'로 오해할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참고로 그냥 '스타즈'는 해체되긴 했지만 '다이에이 스타즈'라는 임자가 있었다.
  8. 모바일 게임의 일본식 표기인 モバイルゲーム를 줄인 モバゲー를 그대로 로마자로 적어서 Mobage라고 쓴 것이다.
  9. 우리나라에서는 다음과 합작해 다음의 모바일 게임 사업을 운영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대학 취업설명회 시즌에도 일본 본사에서 일할 한국인 인재를 모집하고 있다.
  10. 지역명 빼고 DeNA로도 쓴다. 아직도 국내 언론에서는 '요코하마'로 잘못 호칭하고 있다. 'DeNA'라고 호칭하는데는 어색한가보다. 치바 롯데 마린스의 경우 '치바'라고만 호칭하지는 않으며, 다른 지역명 넣은 구단은 아예 지역명칭을 언급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맨 앞에 오는 것으로 호칭하든지 기업명(히로시마 제외)으로 호칭하든지 통일안이 필요할 듯 하다. KBL처럼 하면 되는데
  11. 이 날 패전투수가 바로 하마의 반쵸 미우라 다이스케였다.
  12. 그래서 팀명에 훼일스(고래)라는 이름이 들어가 있었다.
  13. 앞의 요쇼는 다이요(大洋)의 요(洋)와 쇼치쿠(松竹)의 쇼(松)을 따서 지은 것이다.
  14. 다이요어업에서 마루하로 개칭한 이름. 단, 개명 이전에 다이요 어업에서 썼던 브랜드로 다이요 웨일스 시절 한때 동그라미 안에 'は'가 박힌 로고를 소매패치로 쓰기도 했다.
  15. 1954년부터 6년연속 최하위였다.
  16. 그리고 창단 이래 최초의 리그 A클래스.
  17. 근데 한신은 양대리그 시대 이전엔 리그 우승을 4번 하긴 했다.
  18. 이 때의 요코하마 타선은 특별히 거포라고 할 만한 선수는 없어서 단타, 2루타 위주로 득점을 내기는 했지만 타선이 마치 기관총을 난사하듯, 1번부터 8번까지 정신을 못차릴 정도의 연타로 상대팀 마운드를 KO시키는 게 주특기였다.
  19. 이 시기동안 요코하마는 1997년에서 2000년까지 수위타자를 독점한다. 스즈키 타카노리(97년, 98년), 로버트 로즈(99년), 긴조 타츠히코(00년).
  20. 가장 큰 특징은 시마다 나오야, 수염마인 이가라시 히데키, 아와노 히데유키중간계투진의 로테이션화를 들 수 있다.
  21. 수정 전 팀 역사 최초의 3년 연속 A클래스 기록 시기라고 되어 있었으나 사실 위에도 기록했다시피 1969~1971년 다이요 훼일스 시절 벳토 카오루 감독 휘하에서 3년 연속 3위를 기록하며 이미 3년연속 A클래스를 기록한 바 있다. 괜히 거인의 별의 호시의 라이벌 "사몬 호사쿠"가 다이요 소속으로 나오는 게 아니다.
  22. 이 해가 나가시마 시게오교진군 2기 감독 시절 유일한 B클래스(4위)를 찍은 해였다. 작년에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 14게임차 나던 걸 뒤엎고 리그 우승을 달성하고선(일명 메이크드라마. 그러나 일본시리즈에선 오릭스 블루웨이브에게 패배했다) 다음 해 하위권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지도력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그거 1번 찍었다고? 차라리 날달걀 처맞던 시절의 왕정치라면 모를까.
  23. 사이타마 세이부는 1985년 일본시리즈에서 한신 타이거스에게 유일한 승리를 헌납한 팀이기도 하다.
  24. 당시 센트럴리그 최다안타기록. 이 기록은 2005년 202안타를 친 아오키 노리치카에 의해 깨지고, 2010년에 214안타를 친 맷 머튼에 의해 다시 한번 깨진다.
  25. 그 예로 5년 연속 A클래스의 마지막 해인 2001년엔 3위팀 주제에 승률이 4위팀이었던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게 밀렸다. 당시 베이스타즈의 성적은 69승 67패 4무 승률 0.507 이었고 카프의 성적은 68승 65패 7무 승률 0.511 이었다. 이렇게 기묘하고 이상한 성적이었기 때문에 1위와의 게임차도 3위인 베이스타즈가 8인데 4위인 카프가 7.5인 못 웃을 상황까지 벌어졌다. 왜 이런 상황이 됐냐면 이 해엔 승률이 아니라 승리 수로 순위를 결정지었기 때문(...)
  26. 1위는 요미우리 자이언츠(73번), 2위는 한신 타이거스(50번), 3위는 주니치 드래곤즈(49번), 4위는 오릭스 버팔로즈(47번), 5위는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45번), 6위는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44번), 7위는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29번), 8위는 치바 롯데 마린즈(26번), 9위는 히로시마 도요 카프(22번), 10위는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18번).
  27. 이 때부터 우치카와가 완전히 각성(?)하게 되어서 3할 타자에 장타력도 보유한 중장거리형 타자로 변하게 되었다. 그리고 흑화한다. 그리고 5년 후, 한국에 있는 이 팀과 운명이 똑같던 팀이 굴욕을 한 번 더 겪게 되었다. 당시 타격 1위가 0.348, 2위가 0.345, 한화 승률은 0.331. 수위타자가 소속 팀이 아니라는 게 그나마 다행.
  28. 여기서 한 가지 간과해선 안 되는 점이, 요코하마는 144경기에서 90패를 한 거고, 롯데 자이언츠는 133경기에서 2년 연속 90패를 했다는 것. 요코하마가 144경기 중 54승 90패를 거두었다면, 승율이 .351이 되는데, 한국프로야구 기준으로 3할5푼 승율 찍을려면 133경기에서 47승 86패이다. 즉, 일본에서의 90패와 한국의 85패가 승율이 같다는 소리. 하지만 그래도 결과적으론 2001년 70패, 2002년 97패, 2003년 91패, 2004년 72패로, 85패 이상도 2년연속으로 끝냈다.
  29. 7월30일 현재 4승 7패 108.2이닝 방어율 2.73
  30. 7월30일 현재 2승 2패 39.2이닝 방어율 2.50
  31. 7월30일 현재 1승2패 18세이브 방어율 2.01
  32. 그나마 히로시마는 2011년에는 벌링턴이 가세하면서 좀 나아지긴 했는데 이번에는 마에다가 부진의 늪 속으로...
  33. 7월30일 현재 .238으로써 주니치나 요미우리보다 높다 센트럴 리그 4위
  34. 오바나 타카오가 요코하마의 감독을 맡으면서 2010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투수진은 그대로 붕괴되어 버렸다. 그만큼 능력을 인정받은 코치였다는 점.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경우에는 워낙 재능이 훌륭한 선수가 많았던지라 아직도 잘 버티고 있다.
  35. 선수로써는 사실상 끝난거나 다름없는데도 현역을 고집해서 몆 년 전에만 해도 노장의 투혼이라고 박수를 받았지만 2010년 이후에는 쓸 데 없는 똥고집 부린다고 야구팬들에게 대차게 까이고 있다. 나이로 보았을때 코치로 시작하기에도 많은 나이라 지도자 전향이 더 늦어지면 프로에서 감독 코치하긴 힘들듯 하다. 하지만 2015년 시즌에 아키야마 코지의 뒤를 이어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아무렴 요코하마 감독보다 소뱅 감독자리가 백배 나았겠지.
  36. 오해하지 말 것은 요미우리 선수 시절에도 개그맨 기질로 유명했다.
  37. 나가하타보다 4살 아래
  38. 나가하타보다 19살 아래. 이러니 빡칠 만 하다...
  39. 7월 16일과 17일의 시합에서도 야쿠르트를 상대로 각각 7-5, 6-2로 승리(둘 다 홈 경기). 이 탓에 안그래도 히로시마에게 추격당하던 아쿠르트는 7월 19일 현재 공동 3위가 되었다(...) 여담으로 히로시마는 그 전인 13일부터 15일까지 열린 3경기에서 요코하마를 상대로 전승을 기록하였다.
  40. 참고로 2006 시즌의 경우, 완전 폭망해서 이승엽 혼자서 버티던 교진군이 5위 찍었다(...)... 07년 5위는 히로시마 도요 카프, 6위는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41. 위키백과에 등재된 시즌 기록에 의하면, 5년연속 최하위를 기록하는 동안 승수는 48-51-48-47-46. 어째 승수도 같이 줄어들고 있다(...)
  42. 2013년 10월 9일 기준으로 센트럴리그 3위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는 6게임, 4위 주니치 드래곤즈와는 1게임, 그리고 꼴찌 야쿠르트 스왈로즈와는 5게임 반 차이.
  43. 다시 말하면 투수진이 아직도 막장이라는 뜻이다... 안습. 참고로 야쿠르트는 팀 방어율 4.26을 기록
  44. 베이징 올림픽 결승전 마지막 타석에서 병살타로 한국의 금메달 획득에 공헌했던 그 구리엘 맞다.
  45. 이후 구리엘은 미국 언론과 뉴욕 양키스에 입단하고 싶어서 그랬다는 논지의 인터뷰를 해버려서 요코하마 팬들한테 영구 까임권을 획득했다.
  46. 2014년 성적이 22홈런 57타점 타율 0.243으로 매우 완벽한 공갈포였다.
  47. 한신 말고는 아무도 세리그에서 승패마진 + 를 내지 못했다!
  48. 이 시즌 기준으로 고졸 10년차, 28세의 구로바네가 포수 최고참이었다.
  49. 현재까지 마지막 센트럴리그-일본시리즈 우승한 해
  50. 위에서 설명한 전성기 머신건 타선을 비틀어 요코하마의 불펜을 조롱하는 표현. 머신건 타선이 연속안타를 뽑아낸다면, 계투진은 나오는 족족 연속안타를 허용한다고...
  51. 요코하마 DeNA의 첫 클라이맥스 시리즈이기도 하다. 이번 시즌 클린치 넘버가 0이 되면 드디어 전 구단이 클라이맥스 시즌 출전 경험을 갖게 된다.
  52. 마지막 우승이 히로시마 2016년, 야쿠르트 2015년, 요미우리 2014년, 주니치 2011년, 한신 2005년, 요코하마 1998년.
  53. 요미우리 2012년, 주니치 2007년, 야쿠르트 2001년, 요코하마 1998년, 한신 1985년, 히로시마 1984년. 의외로 야쿠르트와도 얼마 차이 안 난다.
  54. 본인은 1998년 일본시리즈 3차전에 선발로 나와서 패전투수가 된 바 있다. 현재 요코하마 선수 중에서 요코하마 유니폼을 입고 포스트시즌을 경험해 본 유일한 선수이다.
  55. 히로시마 2016년, 도쿄 야쿠르트 2015년, 한신 타이거스 2014년, 자이언츠 2013년, 주니치 2011년, 요코하마 디엔에이 1998년. 그런데 2015년까지 둘 다 2010년대엔 진출한 경험이 없었으니 진 쪽은 오래된 구단으로 남게 되는 처지이긴 했다.
  56. 구단 신기록
  57. 구단 신기록
  58. 실제로 2015년 시즌 이후로 주니치 드래곤즈의 대대적인 고려장 세대교체 움직임으로 팀에 재적했던 수많은 베테랑들이 옷을 벗으면서 2016년 시즌 현역 투수중에서 최연장자가 됐다.
  59. 출처 리라하우스.
  60. 일본어로 '베이스볼'을 본래는 가타카나로 ベースボール이라 표기하는데, 베이스타즈를 조롱할 때의 '베이스볼'은 '베이스타즈'의 ベイ를 따서 ベイスボール이라 적는 것. '베이스'와 '볼' 사이에 별을 집어넣어 'ベイス★ボール'같은 식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61. 위 영상에는 가사가 '디엔에이 베이스타즈'지만 만들어질 당시에는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였다. 득점곡으로 부를 땐 여전히 '요코하마 베이스타즈'로 부른다.
  62. G20120319002859700_view.jpg 가운데가 홋시, 왼쪽이 홋시나, 오른쪽이 홋시조.
  63. 우치카와 본인은 그런뜻으로 했던 말은 아니었다고 후에 부정했지만, 그럼 위의 발언은 원래는 뭔뜻이었냐는말에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64. 중간에 격투기 선수로 전향해 K-1에서 경기를 가진 적이 있는 이색 경력의 소유자. 프로 시절에는 장타력은 있는데 선구안과 컨택이 막장인 2군 본즈로도 유명했다.
  65. 지바 롯데에 이어 두번째 방출, 한신에 완전히 정착했으나 2015년을 마지막으로 또 방출.
  66. 이 선수는 1987년 한큐 브레이브스에서 시작하여 2015년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를 끝으로 29년 연속 1군 등록하여 노무라 카츠야, 쿠도 키미야스, 야마모토 마사보다 오랜 기간 1군무대를 밟은 신기록을 기록하였다. 참고로 나카지마는 2010년대까지 현역생활을 한 유일한 한큐전사이다. 은퇴경기에서 한큐시절 선배이자 명투수인 야마다 히사시가 축하해주러 찾아오기도 하였다.
  67. 3대 타격 타이틀(수위타자, 홈런, 타점)을 수상하지 못한 선수로는 기요하라 가즈히로의 예도 있다.
  68. 정작 본인은 우승을 하고서도 (우승하는 게 당연한 요미우리가 아니라 정들었던 전소속팀) 다이요에서 우승하고 싶었다라면서 (남의 힘으로 얻은) 이런 반지 나한테는 아무 의미 없다.라고 할 정도로 다이요 훼일즈에 대한 애착을 보였다. 겉보기에는 해피엔딩이지만 본인에게는 전혀 해피엔딩이 아니었던 듯. 이후 요코하마구단에서 25번을 가장 기대되는 야수에게 부여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드래프트 1순위로 기대를 받으며 입단한 우치카와 세이이치도 최초에는 25번을 받았으며 (다음 해에 곧 2번으로 변경했고 2011년에는 FA 선언하고 소프트뱅크로 튀고나서 틈만 나면 전 소속팀을 디스하는 등 배은망덕의 길을 걷고 있다.), 거인으로 이적하기 전의 무라타 슈이치, 또 지금의 츠츠고 요시토모까지 쭉 25번을 달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