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련 항목 : 야구 관련 인물(MLB), 야구 관련 인물(NPB)
오릭스 블루웨이브 시절. |
영광의 시애틀 매리너스 시절. |
뉴욕 양키스 유니폼을 입고 세이프코 필드에 서다. |
마이애미 말린스 유니폼을 입은 모습의 이치로 |
프로데뷔 20년, 드디어 4000안타를 치다.
마이애미 말린스 No.51 | |
스즈키 이치로 (鈴木 一朗, Ichiro Suzuki) | |
생년월일 | 1973년 10월 22일 |
국적 | 일본 |
출신지 | 아이치 현 니시카스가이 군 토요야마 정 |
출신학교 | 아이치공대 부속 메이덴 고교 (아이치)[1] |
포지션 | 외야수 |
투타 | 우투좌타 |
프로입단 | 1991년 드래프트 4위 |
소속팀 | 오릭스 블루웨이브 (1992~2000) 시애틀 매리너스 (2001~2012) 뉴욕 양키스 (2012~2014) 마이애미 말린스 (2015~) |
1994~1996년 일본프로야구 퍼시픽리그 MVP | |||||
쿠도 키미야스 (세이부 라이온즈) | → | 스즈키 이치로 (오릭스 블루웨이브) | → | 니시구치 후미야 (세이부 라이온즈) |
2001년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신인왕 | |||||
사사키 가즈히로 (시애틀 매리너스) | → |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 → | 에릭 힌스키 (토론토 블루제이스) |
2001년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MVP | |||||
제이슨 지암비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 → |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 → | 미겔 테하다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
2007년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MVP | ||||
마이클 영 (텍사스 레인저스) | → |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 → | J.D. 드류 (보스턴 레드삭스) |
2001년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타격왕 | |||||
노마 가르시아파라 (보스턴 레드삭스) | → |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 → | 매니 라미레즈 (보스턴 레드삭스) | |
2004년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타격왕 | |||||
빌 밀러 (보스턴 레드삭스) | → |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 → | 마이클 영 (텍사스 레인저스) |
2001년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도루왕 | |||||
자니 데이먼 (캔자스시티 로열스) | → |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 → | 알폰소 소리아노 (뉴욕 양키스) |
2001년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안타왕 | |||||
대린 어스태드 (애너하임 에인절스) | → |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 → | 알폰소 소리아노 (뉴욕 양키스) | |
2004년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안타왕 | |||||
버논 웰스 (토론토 블루제이스) | → |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 → | 마이클 영 (텍사스 레인저스) | |
2006~2007년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안타왕 | |||||
마이클 영 (텍사스 레인저스) | → |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 → |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더스틴 페드로이아 (보스턴 레드삭스) | |
2008년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안타왕 | |||||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 → |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더스틴 페드로이아 (보스턴 레드삭스) | → |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 |
2009~2010년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안타왕 | |||||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더스틴 페드로이아 (보스턴 레드삭스) | → |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 → | 아드리안 곤잘레스 (보스턴 레드삭스) 마이클 영 (텍사스 레인저스) |
보유 기록[2] | |
메이저리그 단일 시즌 최다 안타[3] | 262안타 |
메이저리그 연속 시즌 200안타[4] | 10시즌 |
목차
1 개요
노력하지 않고 무언가를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천재라고 한다면, 저는 절대 천재가 아닙니다. 하지만 피나는 노력 끝에 뭔가를 이루는 사람이 천재라고 한다면, 저는 천재가 맞습니다.천재의 손 끝에는 노력이라는 핏방울이 묻어있기 마련입니다. 제가 일본 최고의 선수가 될수 있었던 이유는 (일본에서)저보다 많이 연습한 선수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단 한번도 저 자신과의 약속을 어긴적이 없습니다.
ㅡ 스즈키 이치로. 당신은 스스로 천재라고 생각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일본 최고의 스포츠 스타 중 한명이자 메이저리그 역사상 손에 꼽히는 안타 제조기.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로 3000안타-500도루-10골드글러브를 달성한 레전드.[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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イチロー. 일본의 야구선수로 현재는 메이저리거. 흔히 그의 이름인 '이치로'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91년 NPB의 오릭스 블루웨이브에 입단하며 프로야구선수로서의 생활을 시작해 9시즌 동안 NPB를 초토화시키고 2001년 MLB(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의 시애틀 매리너스(Seattle Mariners)로 이적해 뛰어난 성적을 꾸준히 냈다. 2011년부터 성적부진 등으로 2012년 7월 23일에 뉴욕 양키스(New York Yankees)로 트레이드되었고 2015 시즌부터 마이애미 말린스에서 뛰고 있으며 2016시즌 3000안타를 달성했다. 현역 메이저리그 선수들 중에서 알버트 푸홀스, 미겔 카브레라, 애드리안 벨트레와 더불어 명예의 전당에 가장 근접한 선수.
2 상세
2.1 오릭스 블루웨이브 시절
NPB 역사상 최고의 야수.
20세기초 미국에 타이 콥이 있었다면 20세기말 일본에는 스즈키 이치로가 있었다.[6]
1991년 입단 당시 포지션은 투수. 드래프트 순위도 4위였던 평범한 선수였으나 들어가자마자 타격쪽으로 전향해서 큰 성공을 본 케이스이다. 특히 데뷔 초창기에는 특유의 타법인
시계추 타법때문에 더욱 더 유니크한 타자였다. 다만 이 시계추 타법을 못마땅해한 팀 고위층때문에 풀타임시즌이 늦어지게 되었다.[7] 타격왕 출신의 재일교포 타격코치 아라이 히로마사의 지도하에 타격기술을 연마하였다.
1994년 일본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한 시즌 200안타라는 대기록을 세우고, 1995년 리그 우승, 1996년 일본시리즈 우승에 기여한다. 오릭스 블루웨이브의 전신인 한큐 브레이브스의 3연패(1975~77년) 이후 19년만에 우승을 안겨준 것. 일본 통산타율이 무려 .353으로 비공식 역대 최고 타율을 보유하고 있다. 공식 기준인 4000타수에 381타수 부족한 3619타수라서 때문에 공식 기록으로는 인정이 되지 않으나, 일본 통산 타율 1위인 레론 리가 .320, 2위인 와카마츠 츠토무와 3위인 장훈이 .319, 현재 4위를 달리고 있는 오가사와라 미치히로가 .318이니 거의 넘사벽의 기록이라고 볼 수 있다. 설령 위에 모자란 381타수에서 모두 아웃을 당한다 해도 통산 타율은 .3195로 역대 2위. 여기에 안타 3개만 치면 .32025로 통산 타율 1위가 되는 정도. 특히 1995년에는 홈런과 볼넷을 제외한 공격 전 부문을 석권한 진기록을 가지고 있다.(이 당시 홈런 또한 1위와 단 3개차이인 25개였다.) 1994년부터 2000년까지 7년 연속 수위타자 타이틀을 거머쥐고 있었는데, 이것 또한 일본 신기록. 이종범은 당시 이 타자와 비견이 되었다. 홈런을 제외한 나머지 기록들을 따져보면 가히 오 사다하루, 나가시마 시게오, 장훈, 노무라 카츠야, 오치아이 히로미츠와 같은 NPB의 전설적인 강타자들과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는 커리어라 볼 수 있고 타율만 본다면 저들은 상대가 안된다. 특히 압권은 2000시즌으로 1994,1995시즌의 엄청난 임팩트 이후 일본리그 수준을 뛰어넘은 실력탓에 점차 매너리즘[8]에 빠졌던 자기자신을 반성하고 4할을 선언한후 시즌에 돌입 .387 - .460 - .539 - .999 21도루 1도루실패라는 엽기적인 성적을 달성하게 된다.
2.2 메이저리그 시절
2.2.1 시애틀 매리너스
시애틀 매리너스 역대 최고의 리드오프.[9]
2000년대 최고의 리드오프
2000년대 메이저리그 최고의 안타 제조기
일본에서 제왕으로 군림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린시절부터 꿈이었던 메이저리그로의 진출을 위해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에 참가, 그 이후 엄청난 격차를 느끼고 타격폼의 전면수정에 들어갔다.[10] 이런 노력은 결국 2001년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그 시애틀 매리너스로 진출[11]한 후에, '이치로 신드롬'을 일으키며 진출 첫 해에 신인왕과 아메리칸 리그 수위 타자(타율 0.350)[12], 최다안타 1위(242안타), 도루왕(56도루)[13] 리그 MVP를 동시 석권[14]하는 발판이 되었다. 또한 이 때의 기록을 일본에서도 높게 평가해 총리가 주관하는 국민영예상을 주려고 했으나 이치로 자신은 아직 갈 길이 남았다며 거절하였다.[15]
그리고 2004년에는 1920년 조지 시슬러가 기록했던 257안타의 기록을 84년만에 경신하며 메이저리그 역대 단일시즌 최다인 262안타를 쳤다. [16]
2007년 올스타 게임에서는 올스타 게임 역사상 최초로 인사이드 파크 홈런을 치면서 올스타 게임 MVP를 수상했다. 여담으로 수상식에 정장을 입고 나온 것으로도 화제가 되었는데 일부에서는 '상을 받는다고 제대로 차려입었네'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사실은 경기 끝나고 부인이랑 식사할 예정이어서 교체된 이후에 옷 갈아입고 밥먹으러 가려는데 직원이 자꾸 가지 말라고 말렸다고 한다. 왜 가지 말라고 하는지 몰랐는데, 나중에 상 받을때야 알았다고... 그리고 며칠 있다가 한국에서는 인사이드 파크 호텔로 용어가 바뀌게 된다.[17]
그리고 2009년 9년 연속 200안타 및 아시아인으로는 장훈에 이어 통산 두번째로 3000안타를 달성하였으며, 메이저리그 2000안타도 채웠다. 앞으로 4~5년 정도 현재 기량을 계속 유지한다면 4000안타도 가능하다. 물론 이치로의 나이가 이제 슬슬 걸리기 때문에 4~5년을 지금과 같은 기량을 유지한다는 것이 쉽지 않지만 데뷔 이후 10년동안 단 32경기만 결장할만큼 초인적인 자기관리능력과 매 시즌 안타를 200개씩 치고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불가능하지는 않은 기록이다. 참고로, 9년 연속 200안타는 야구 초창기었던 때에 윌리 킬러가 1894~1901년에 기록한 8년 연속 기록을 깬 것으로 MLB 최초이다. 홈런과 같은 장타가 안나오던 시절 이전의 그때와는 달리 홈런이 많이 나오고, 변화구가 많이 개발됐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치로는 세계의 누구와도 비교해서 밀리지 않는 타격실력을 갖추고 있다. 2010시즌까지의 MLB 통산 타율 역시 .331이나 된다. 단지 미국으로 건너와서는 장타율이 급락했다.[18] 2013시즌 기준으로 현존 메이저리거 중 타율 3위로 1위는 조 마우어, 2위는 알버트 푸홀스.
NPB에서 시계추 타법을 쓰던 시기에는 20개에 가까운 홈런과 5할 이상의 장타율(!)을 매시즌 기록하던 타자였지만 MLB 스프링캠프에서의 쇼크 이후 타격폼을 대대적으로 수정하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풀타임 1번 타자를 맡게 되면서 장타력을 완전히 포기하고 컨택을 극대화시킨, 출루 자체보다는 공을 때리는 것에 집중하는 스타일로 전환했다. 포볼로 진루하는 경우가 상당히 적은 편이고 타율 대비 출루율은 낮은 편이다. 통산 타율 3할 3푼대인데 출루율 4할을 넘긴 적인 단 한 시즌[19]밖에 없을 정도다. 하지만 어떻게든 출루하는 것을 최우선시해야 할 1번 타자로서는 시대착오적인 자세라고 비판이 나오기도 한다. 자세한건 밑 참조.
그러나 야구에서 1번 포지션은 출루를 목적으로 하는 타순인만큼 상대방 또한 가장 출루시켜서는 안되는 타순이며, 경기가 진행됨에따라 타순이 돌아올때도 가장타력이 약한 하위타순이후에서야 다시 타격기회를 잡을 수 있기때문에 가장 주자를 적게두고 시작하는 타순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투수는 타자에만 집중할 수 있어 가장 사사구가 적은 타순이 1번이다. 게다가 1번은 대체적으로 주루센스가 뛰어나고, 발이 빠르기때문에 투수는 더더욱 출루시키고 싶어하지 않는 타순이다. 거기에 장타력이 약한 선수는 정면승부로 안타맞으나 포볼내주나 의미가 크게 다르지 않기때문에 투수가 정면승부하는 경향이 크다. 따라서 포볼도 적게된다. 그에따라 1번타자의 출루율은 +.350~.360이면 준수한 수준으로 보는게 보통이다. 또한 1번타자중 통산 출루율이 4할을 넘기는 타자는 '그를 반으로 쪼개도 둘 다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다'라는 찬사를 받는 역대 최고의 1번타자 리키 헨더슨이 유일하다. 게다가 이치로의 메이저리그 통산출루율인 .376는 메이저리그 역사를 통틀어 보아도 1번타자중에서는 높은 축에 속하며, 현역 1번타자중에서는 독보적인 1위이다.
어쨌든 종합적인 선수가치인 war로 보면 뛰어난 선수임에는 틀림이 없긴하다. war는 누적기록으로 이치로가 오랜기간 좋은 기량으로 선수생활햇다는 걸 보여주는 수치이다. 오랜기간 누적이 뛰어난 선수이므로, war에 관련해서 이치로의 가치는 커리어 말년에 가서야 드러나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치로는 메이저리그 데뷔 때부터 각광받았고 이때는 당연히 war와 무관한 것이었다.
리키 헨더슨 이후 MLB 선수들의 파워넘버가 상향평준화되고 투수들의 피장타 억제책까지 따라 올라가면서, 이치로와 같은 클래식 1번타자보다는 그래디 사이즈모어 같이 파워넘버까지 갖춘 선수로 대세가 변하면서, 이치로의 장타력 부재가 까임거리로 떠올랐다. 그에 대한 이치로의 대답은 '타율이 .220대라도 상관없다면 40홈런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런 모습이 팀에 도움이 될까?'라고 했다. 장타력을 위해 벌크업을 시도했던 많은 1번타자들은 체형변화의 부작용으로 스피드가 떨어졌고, 잔부상에 시달리며 내구성과 꾸준함에서 심각한 결함을 보였다. 역시 똑딱이 타자는 한계가 있다 특히 약물단속이 강화된 이후 장타력에서 스피드와 수비력으로 다시 트렌드가 변하면서 다시금 최고의 1번타자로 각광받았다. 하지만 최근 세이버 매트릭스의 대중화로 이치로의 타격생산성에는 과대포장이 이루어 지고 있다는 주장이 있다. 200안타의 상징성으로 타격생산성이 부풀려져 있다는 주장. 타격지표중 가장 뛰어난 지표로 인정되는 wRC+에서 통산 108을 기록. 메이저 평균보다 8%뛰어나며 커리어 하이 시즌인 2004년 wrc+131를 기록하였다.
데뷔 2년차 때부터 미국의 전문가들의 입에서 이치로가 중견수로 옮겨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치로 정도의 재능이라면 중견수 수비를 하는 것이 팀에 이득이라는 논리를 주장했다. 실제로 이치로는 한 시즌 중견수로 뛰었는데 우익수 자리에서는 로베르토 클레멘테와 함께 역대 1, 2위를 다투는 괴물같은 수비력을 보이는 반면, 중견수로 옮긴 이후에는 레인지(수비범위)는 평균이하 였지만 장점인 어깨로 만회하는 형국이었다. 즉 우익수 이치로만큼 리그를 압도하는 수비수는 아니었다. 결국 1시즌 지난후 우익수로 복귀하였다. 이치로가 추신수를 싫어해서 중견수로 전환하지 않았다는 말도 있는데 해당 포지션에서 역대 최고를 논하는 수비를 갖춘 선수가 신인을 위해 자리를 옮긴다는 것이 말이 되는지 생각해보자.[20] 추신수 이적 이후 중견수로 전환한 것도 추신수를 비롯한 시애틀이 자랑하던 외야유망주들이 줄줄이 실패한 후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마저도 대체자원이 영입되자 곧바로 우익수로 복귀했다. 다만 중견수를 뛰었으면 팀에게는 더욱 이득이 되는 상황이었다. 아담 존스,추신수를 떠나보낸 시애틀의 외야는 처참하기 그지 없었다. 트레이드 후 아담 존스,추신수 둘의 누적war 는 44에 육박한다. 이런 이유등으로 팀보다는 자기 프라이버시와 기록을 더 중시한다는 이미지를 심어 주게 되었다.
어깨가 굉장히 좋아 보살 역시 능하다. 중견수던 우익수던 그 포지션에서 3루, 홈까지 거의 노바운드로 송구가 가능한 엄청난 강견. 위 동영상에서 역시 강견으로 유명한 블라디미르 게레로를 두번이나 보살하고나서 게레로의 허망한 웃음이 인상적이다. 참고로 게레로는 40도루 이상을 한적이있는 선수이다. 그냥 느린 선수를 잡은 것이 아니라 어느정도 주루능력이 있는 선수들이 이치로에게 보살당하는 것이다.
도루는 2009시즌을 제외하고는 5위권 바깥으로 나가 본 적이 없고 성공률은 9시즌 중 세 시즌 말고는 항상 80% 이상에다가 2008 시즌엔 무려 92%였다. 다만 2008시즌을 기점으로 나이에 따른 스피드저하와 부상위험때문에 자제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거기에다 10년 연속 골든글러브에 2000년대 메이저리그 올스타 외야수 부문에도 선정.
2010년에도 200안타를 달성하였다. 이로서 01년부터 10시즌 연속 200안타 달성. 이 연속 시즌 200안타 부문의 기록에서 2위는 Willie Keeler로 1894년부터 01년까지 8년동안, 3위는 웨이드 보그스의 7년으로 차이가 좀 난다. 사실 이치로 말고는 2010년까지 매시즌 200안타 기록을 이어오는 선수가 없다.
그러나 2011년 시즌 초반 타율이 2할 초반대에 머무는 부진을 보이다가, 결국 184안타, 타율 0.272로 시즌을 마감하면서 11년 연속 200안타에 실패했다. 올스타전에도 출전하지 못해 11년 연속 올스타전 출전은 실패. 이러한 결과에 대해 배트 스피드가 느려졌다느니 장타력이 떨어졌다느니 발이 느려졌다느니 속구 대응력이 떨어졌다느니 이런저런 분석이 나오고 있으며 사실 나이가 들었기에 어쩔 수 없다. 정작 본인은 연속 200안타 기록에 대한 중압감에서 해방되어 홀가분 하다는 모양.
자기 관리에 관련해서 이치로 본인이 밝힌 에피소드가 있는데, 이치로는 경기 시작하기 직전에 하는 식사는 미국 진출 이후 안정기에 들어온 이후부터 무조건 페퍼로니 피자를 먹는다고 한다.
이는 이치로가 피자를 미친듯이 좋아해서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몸의 리듬을 완벽하게 같은 상황으로 만들기 위해라고 한다. 즉 뱃속에 들어가 있는 음식을 언제나 같은 것으로 해서 컨디션에 의해 변할 요인을 통제하는것. 그런데 원정경기가 많은 야구 선수 특성상 미국 전역 어디에서도 일정하게 판매하는 음식이 필요 했고, 그 후보가 햄버거와 피자였는데, 햄버거만 먹어서는 아무래도 에너지가 부족하고, 고기 상태에 따라서는 체할 위험이 있는 햄버거는 좋지 않다고 생각하여 피자를 선택했고, 미국 진출 10년 넘는 세월동안 이를 습관화 시켜서 경기전에는 무조건 페퍼로니 피자를 먹고 나서 경기에 임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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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미국 진출 이후 홈경기 때에는 무조건 아내(TBS 아나운서 출신 후쿠시마 유미코-8살 연상)[21]가 만들어 준 카레만을 아침 겸 점심으로 먹었다. 아내가 없을 때를 대비해서 냉동실에 잔뜩 보관해 두었다가 데워 먹기도 한다(이를 두고, 마츠모토 히토시는 '인도인이라도 그렇게 아침부터 카레를 먹지는 않을 것이다' 라고 우스갯소리를 날리기도 했다, 2013년 10월 6일 가키노츠카이 방송 분에서) 그러고 보면 "결혼해서 제일 좋은 점이 뭐냐?"라는 질문에 "삼시 세끼 인스턴트가 아닌 밥과 국을 먹을 수 있다." 라고 대답한 적도 있는데...
이것이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지 아니면 단순히 본인의 집착 혹은 심리적 안정을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메이저리그에서 높은 커리어를 내기 위한 개인의 섬세한 노력중 하나라는 면에서는 호평을 받을 만 하다.[22]
2.2.2 뉴욕 양키스
2012년 7월 23일, 시애틀 팬들에게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이치로가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된 것. 이는 이치로가 팀의 리빌딩을 위해 잭 쥬렌식 단장에게 트레이드를 요청하여 이뤄진 것이라고 알려졌다. 말년에 겸사겸사 우승반지도 도전할겸, 시애틀에서 엇갈렸던 이치로와 A로드가 40가까이돼서 한자리에 모이는구나 흥미로운 것은 이치로의 첫 경기가 세이프코 필드 경기라는 점이었고, 열광적인 기립박수를 받고 등장한 첫 타석에서 목례로 답한 뒤 안타를 때려내고 도루까지 성공하며 다시금 기립박수를 받았다.
한편 일본 웹상의 팬들은 이치로 하나만 바라보고 마이너 계약을 감수하며 메이저리그에 도전한 가와사키 무네노리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8월 19일 對 레드삭스와의 홈경기에서 조시 베켓을 상대로 연타석 홈런을 날렸다. 보기 드문 연타석 홈런인데 아무래도 양키 스타디움의 버프를 받는 것 같다. 또한 2011~12 시즌에 연속으로 팀에 깽판친 조시 베켓을 향한 나름의 권선징악포이기도 한 듯.
결국 양키스가 지구 우승을 거머쥐고 메이져 와서 11년만에 처음으로 우승 세레모니라는걸 해봤다고 한다. 실은 이적 첫해에 시애틀이 지구우승을 하긴 했는데 하필 이때가 911테러가 벌어진 해라서 우승 세레모니를 자제하는 움직임 때문에 지구 우승하고도 조용히 넘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플옵에서 떨어진 이후 시애틀은 나락으로(...).
그리고 시애틀 말년에 .260대까지 떨어지는 굴욕을 맛 봤으나 순수하게 양키스 이적 후에는 타율 .322를 기록했다. 시즌 통합 타율 성적은 .288로 전성기 포스에 비하면 8번도 치고 좌익수도 보는 등 그렇게 좋은 건 아니였지만, 이적 전에 90경기나 뛰고 2할 6푼대에서 허우적 대던거 생각하면 많이 올린편. 처음 이적 시에는 다음 시즌 재계약은 힘들고 시즌 중간에 땜빵정도로 끝날거라는 관점이 지배적이였지만 시즌 중 성적도 좋고 플옵과 월드시리즈 성적에 따라서는 가능할 것 같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실제로도 포스트시즌에서 롸동자나 커현이가 잉여가 돼 가는 상황에서 데릭 지터와 함께 양키스를 이끌고 있는 상황을 연출하였다.
데릭 지터가 ALCS 1차전에서 부상으로 아웃되고 이적후 처음으로 1번 우익수로 남은 경기를 출장했으나, 2번이나 8번칠때에 비해서 별다른 활약이 없었다. 다만 시리즈 내내 양키즈 타선이 전체적으로 크고 아름답게 삽을 들어준 바람에 욕 안 먹고 적당히 묻어갔다(...). 같이 못쳤는데 그나마 다른 사람 보다는 조금 쳐준 덕인듯.
그리고 3000안타에 대한 열망이 있는지 오프시즌에 양키스와 2년 계약에 합의하였다. 당초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더 높은 금액을 불렀지만 양키스에 동년배들이 많아서인지(...) 노인정 양키스 더 편안함을 느끼고 약간 디스카운트를 해서 사인한 듯.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류현진이 양키스타디움에서 등판한 인터리그 경기에서는 류현진을 상대로 홈런을 치고 호수비까지 선보이면서 경기 내용상 완승을 거뒀다.
뒤이어 텍사스 레인저스의 다르빗슈 유와 양키스의 구로다 히로키의 선발 맞대결로 주목받았던 경기에서 9회 2사 끝내기 홈런을 날리고 이날의 진 주인공이 되었다.
8월 21일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홈경기에선 1회말 R.A. 디키를 상대로 좌전안타를 쳐내며 미일통산 4000안타라는 금자탑을 달성했다. 팀동료들도 덕아웃에서 모두 나와서 축하해주는 장면이 펼쳐졌다. 이것은 타이 콥, 피트 로즈, 행크 아론, 스탠 뮤지얼에 이은 5번째 대기록이자, 마이너를 제외한 프로리그로 한정하면 타이 콥, 피트 로즈 를 이은 3번째 기록이다.[23] 리그 운영의 차이 등으로 공식기록으로 인정 받지 못한 지커 스태츠의 기록까지 합하자면 6번째. 하지만 피트 로즈는 자신도 마이너 리그에서 427안타를 더 쳤다고 하면서 이치로의 프로통산 4000안타에 대해 일본에서 기록한 1278개의 안타를 인정하기 어렵다는듯한 늬앙스의 발언을 했다
'상대적으로 수준이 낮은 NPB에서 뛴 기록 덕분이지 처음부터 MLB에서 데뷔해 활동했으면 4000안타는 꿈도 못꿨을 거다'라며 폄하하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한국프로야구 초창기에 경기수가 적어서 누적에서 손해를 보는 선수가 있듯이 일본야구도 MLB보다 경기수가 약간 적어서 안타 누적이 약간 어려웠던것도 고려해야한다. 거기다가 이치로는 일본에서 프로데뷔 초기 2년간 팀 감독과의 갈등[24]때문에 1군 경기에 거의 못나오고 2군 생활[25]을 했기 때문에 2년 가까이 날린 시즌도 있다는 것 역시 고려대상이다. 처음부터 MLB에서 활동했다면 마이너에서 오래 있다거나 하면서 야구 인생이 달라질수는 있겠지만, 마이너리그 못지 않게 가혹한 걸로 유명한 NPB 2군 생활도 견뎌내고 첫 NPB 1군 풀타임시즌부터 200안타 신기록으로 리그 최고 타자가 되었던 이치로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을 고려해 본다면 MLB에서도 3500~4000 안타정도는 충분히 가능하고 4천안타를 넘기는 타이콥이나 피트로즈의 대기록에 도전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통산 4000 안타를 달성하며 호프 집 예약을 해 둔 건 좋지만 순수히 2013년 성적만 따지면 좀 안습하다. 특히 타석에서의 기량 하락이 심각한 수준. 원래부터 그다지 차이나지 않는 타율과 출루율 사이의 간극이 약점이었지만 타격왕을 차지할 정도의 높은 타율로 출루율을 올리던 그였다. 하지만 나이 때문에 타율이 수직 낙하를 해 2013년의 최종 타/출/장이 .262 / .297 / .342 밖에 되지 않는다. 메이저 리그 평균은 .253 /.318 /.396 이다. 타율이 평균을 약간 상회하긴 하지만 출루율과 장타율이 리그 평균에 크게 뒤쳐지는 마당에 큰 의미를 가지진 못한다.
한마디로 타석에서는 평균 이하의 선수가 되었다. 대신 수비와 주루 센스는 여전히 훌륭해서 이를 무기로 양키스에 도움을 주고 있지만, 그걸 공격에서 다 깎아먹어 전체적으로 큰 도움은 안 되고 있긴 하다.(...) 2013시즌에 기록한 WAR는 1.1로, 수비 잘하고 주루 플레이 좋지만 공격이 안 좋은, 전형적인 나이 많은 백업 선수의 스탯을 기록했다. 물론 연봉도 백업 수준이라 돈이 아까운 활약은 아니다.
물론 40살이 넘은 선수가 메이저리그 레벨에서 이 정도 스탯이라도 찍을 수 있는 건 그가 레전드이기 때문. 동시에 이런 성적을 찍으면서도 꾸준히 출장할 수 있는 건 쓸만한 선수가 안 남은 양키스의 안습한 상황 때문이기도 하다. (...)
2014년 시범경기에서도 안타를 거의 못치는 등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세금과 이치로의 안타는 줄지 않는다는 명언이 있을만큼 화려하고 꾸준한 모습을 보여줬었지만 천하의 이치로도 세월 앞에서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입지 탓인지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를 시도한다는 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다. 하지만 본인도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시범경기 거의 막바지 몇경기에서 맹타를 휘두르고 있다. 팬들 역시 부정적인 시선과는 다르게 3000안타를 치고 은퇴하기를 바라고 있다.
정규시즌에 들어와서는 백업으로서 괜찮은 모습을 보여줬고 .284의 타율과 102개의 안타를 기록하며 14년 연속 빅리그 세자릿수 안타를 기록했다. war는 0.3으로 대체선수 수준의 역할을 했는데, 앞으로 향후 몇년간은 이렇게 선수생활을 할 듯하다. 미&일 통산 3000경기 넘게 출장한 상태로, 몇년동안 선수생활을 어떻게든 지속한다면 피트 로즈의 기록을 노릴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마이애미에서 피트 로즈의 기록을 결국 넘어섰다.
2.2.3 마이애미 말린스
2015년, 마이애미 말린스와 1년 계약을 맺었다. 지안카를로 스탠튼, 크리스티안 옐리치, 마르셀 오즈나의 뒤를 받치는 백업 외야수로 활약할 듯 하다.
시즌 초중반 옐리치의 부상으로 출전 기회가 많았다.
6월 15일 뉴욕의 다나카 마사히로를 상대로 2안타를 치고 역대 안타 38위를 기록한다.
7월 30일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경기에서 덕 피스터를 상대로 2900안타를 달성했다.#
8월 15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즈와의 경기에서 상대 선발 하이메 가르시아를 상대로 2913안타, 프로 통산 4191안타를 달성해 메이저리그 역대 2위 타이콥과 동률을 이뤘다. 다음날인 8월 16일에 타이콥을 넘어 단독 2위로 올라섰다. 세인트루이스원정임에도 관중들의 기립박수는 덤.# 1위인 피트 로즈의 4256안타에 가까워졌다.
8월 26일 피츠버그와의 경기에서 역대 82번 째로 통산 10,000타석을 달성했고 시즌 11호 도루도 기록했다.#
10월 4일 필라델피아와의 2015년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8회말에 중간계투로 깜짝 등판하여 한 이닝을 던지고 1실점을 기록하고 내려갔다. 메이저리그에서 처음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는 것이었다고... 이치로 본인이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보고 싶다 적극적으로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애틀 때도 이런 요청을 한 적이 있지만 야수가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는 건 이미 승패는 한쪽으로 일방적으로 기울어져서 불펜 투수를 내느니 팬서비스도 겸해 불펜을 아끼려는 용도다. 게다가 불펜에서 몸을 풀거나 마운드에서 실전 피칭을 하다가 갑작스럽게 몸에 이상이 생기면 팀이나 선수 본인에게 손해라서 당시 주전 우익수인 이치로의 요구는 당연히 거절당했다. 마이애미에서는 백업 선수이다보니 가능한 일.
성적은 당연히 나이를 감안해도 좋다고는 할 수 없다. 사실 진작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지만 3천안타에 대한 본인의 집념이 워낙 강해 내년에도 계속 메이저리그에 있으려고 할 걸로 보인다.
그리고 10월 6일 42번째 생일을 눈앞에 두고 마이애미와 1년 연장계약을 맺으며 잔류에 성공했다. 정확히 말하면 2M에 1+1년이며 타석당 보너스가 붙어있다.#
2015년 타율 2할2푼9리의 성적에 그쳤지만 현재 통산 3000안타까지 65개 밖에 남지않았다.
2.2.3.1 2016 시즌
메이저리그 통산 3000안타를 달성하다
스즈키 이치로/2016년 문서로
2016년 8월 8일 콜로라도 로키스전 4번째 타석에서 7회초 3루타를 터뜨리며 개인 MLB 통산 3000번째 안타를 때려냈다. 메이저리그 역대 30번째로 3000안타 클럽에 가입.[26]
이러한 쏠쏠한 활약으로 시즌 후 계약 연장 옵션 실행은 물론 2018년 옵션까지 추가됐다.
3 엇갈린 평가 (메이저리그에서의 평가)
정확한 타격, 빠른 발, 넓은 수비범위, 강력한 송구능력 등으로 일반적인 기준에서 보면 탑 클래스에 속할 야구기술의 소유자고 실제로도 그에 걸맞는 훌륭한 성적을 남기고 있으나, 자신의 개인 기록에만 집착하고 팀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이치로가 몸 담아왔던 팀들의 전력이 결코 약한 팀이 아니었음에도 우승 경력이 오릭스시절 딱 한번이었음은 물론, 팀이 좋은 성적을 남긴 숫자도 그의 능력과 성적을 감안했을 때 적다는 점에서 그러한 근거를 찾는 일부 야구팬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오릭스는 이치로 이전에는 우승과는 거리가 있는 팀이었고, 시애틀은 명단장 팻 길릭의 해임 이후 빌 버베이시 단장 체제로 바뀌면서 노화징후가 보이던 팀 체질 개선에 실패해서 팀 성적이 대폭락한 케이스이다. 그 이전 2001-2003시즌의 시애틀은 아메리칸 리그 서부지구의 강자였다. 선수 혼자서 팀성적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선수는 배리 본즈가 유일하다. 그 외의 블라디미르 게레로, 알버트 푸홀스, 알렉스 로드리게스도 팀원들이 부진할때는 PO진출에 실패했던것이 현실이다.
팀성적이 좋을때는 아무 이야기도 없다가도 팀성적이 나쁘면 이치로가 비판받는데, 이는 과거 알렉스 로드리게스도 겪던 현상으로 팀의 대표선수가 나쁜성적의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현상이다.
독고다이 스타일의 성향상 한번 팀이 되면 팀을 중시하는 미국의 스타일과는 매우 안 맞다는 얘기가 있다. 실제로 07년부터 꾸준히 나오는 이치로와 팀메이트간의 불화설이 대표적인데, 시애틀 매리너스 구단에서 자기 기록 올리기에만 여념이 없는 철저한 개인주의 플레이어'라는 말도 있었다.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뉴욕 메츠로 이적한 J.J 푸츠가 이적 전에 시애틀 타임즈라는 지역 신문과 한 인터뷰에서는 '누군지는 말 안 하겠는데 매리너스 안에 팀웍을 망치는 암적인 존재가 한놈 있어'라는 요지의 발언을 했는데, 99.9%쯤 이치로 얘기라고 한다(...). 그리고 이 후 팀 리더격인 아드리안 벨트레가 인터뷰를 통해서 이치로를 돌려서 깠다. 관련자료 1 관련자료 2 하지만 켄 그리피 주니어나 라울 이바녜즈는 이치로를 감싸고 두둔했다. 2009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팀 동료들이 이치로에게 무등을 태워주는 사진이 찍힌 것으로 봐서 최근 동료들과의 관계는 어느정도 회복한 듯 싶다.
하지만 이 부분도 생각해야 한다. 시애틀 타선은 2004년 이후부터 90년대를 지탱하던 주축선수들[27] 등이 대부분 다른 팀으로 이적하거나 하강세를 기록하면서 이미 전체적으로 팀의 평균타격 수치가 많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이치로가 배드볼히터 소리를 들으며 타율대비 출루율이 상대적으로 안좋다고 하지만 2005년부터 2010년까지의 기간 동안에 출루율의 평균만 계산해도 이치로가 팀에서 1위였다[28]. 그 외의 경우는 반 이상이 공갈포들만 모인 팀에서 그나마 빠따로 밥값 해주는 몇 안되는 타자라는 말이다. 그러다보니 투수들이 이치로가 1번타자임에도 고의사구로 거를 정도가 되었고, 결국 9년차이던 2009년 올타임 리드오프 고의사구 순위[29]에서 139개로 피트 로즈(135개)를 제치고 1위로 등극했다. 현역 선수 중에서도 단 11시즌만을 중심타선도 아닌 리드오프로서 뛰고도 웬만한 클린업 히터들과 맞먹는 개수를 기록 중이다. 10년이나 더 뛴 짐 토미와 맞먹는 고의사구 개수로, 2011년 종료 시점에서 7위. 현역 고의사구 순위
세이버메트릭스 계열에서 보면 혼란이 생기는데, 어떤 이들은 이런 주장을 펼친다.
일단 이치로의 RC, XR, wOBA 등의 스탯 자체는 메이저리그 리드오프 중 정상급이라 봐도 무방한 편이지만 그 내용에서 이치로의 극단적인 내야안타 비중을 놓고 보면,
예를들어 XR(Extrapolated Runs, 추정 득점) = 1루타×0.5 + 2루타×0.72 + 3루타×1.04 + 홈런×1.44 + (몸에 맞는 볼 + 볼넷 - 고의4구)×0.34 + 고의4구×0.25 + 도루×0.18 - 도루실패×0.32 - (타수 - 안타 - 삼진)×0.09 - 삼진×0.098 - 병살타×0.37 + 희생플라이×0.37 + 희생번트×0.04.
이 공식에서 주자를 진루시키지 못하는 경우의 내야안타는 실질적으로 볼넷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도 무방한데 어떻게 그것을 외야안타와 같은 값으로 계산하냐는 것. 뭐 이런 경우는 제외지만.
이치로와 유사한 플레이를 하는 선수들도 발에 치이도록 많다. MLB에서도 2015년 디 고든만해도 내야수라는것만 제외하면 이치로랑 플레이 스타일이 많이 닮아있다. 또 타격에서는 컨택 하나만 생각하고 수비와 주루에 엄청나게 치중하는 플레이스타일만 따지면 이대형과 완전히 판박이다. 물론 이대형은 그 컨택과 수비도 마음 먹은대로 되지 않으며 이대형과 디 고든을 이치로에 비교하는건 이치로에게 엄청난 실례다.
이치로의 장점은 뛰어난 성적을 거의 10년 가까이 기록 했다는 것에 있다. 그리고 그 플레이스타일 속에서 리그 최고의 활약을 했다는 것도 그의 장점.
2012년 기준으로 이치로의 현역 활동 기간에 이치로보다 높은 통산 WAR를 기록한 타자는 구홀스, A-Rod, 벨트란, 버크먼 뿐#이며 2015년까지 계산해도 구홀스, 약로드, 벨태현, 미기, 어틀리, 벨트란, 데이비드 라이트, 약티즈, 약하다 뿐이다. 이 중 약쟁이는 3명이다 이치로의 WAR가 이렇게 높다는 것은 위에서도 언급한 이치로의 꾸준함 때문일 것이다. WAR는 말그대로 경기를 뛰면서 팀 기여도가 쌓이는거니까. 위에 언급된 선수들은 다 클린업트리오에 위치한 선수들이라 WAR을 쌓는데 더욱 유리한 점도 있다. 루상에 주자가 나가있을 경우 병살유도 등으로 수비에 구멍이 더 자주 생기고, 이 때문에 중심타선에 위치한 타자들은 득점권 타율이 높다. 물론 어디까지나 이치로가 클린업 트리오에 적합한 타자라는게 아니라 클린업 트리오가 테이블세터보다 BWAR을 쌓는데 더 유리하다는 얘기.
WAR의 핵심은 1. 부상없이 많은 경기를 2. 좋은 성적을 내며 소화 하는것이다. 그리고 이치로는 2번 항목에서 A급이었고 1번 항목은 S급인 선수였다. 10년 연속 골드글러브, 3번의 실버 슬러거, 2번의 타격왕, 7번에 안타왕, 2009년 시즌까진 5위 밖으로 떨어져 본 적 없는 도루, 매년 10위권 안에 드는 고의사구 등 정상급의 성적을 매년 찍었고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것이 WAR라는 것이다. 이치로가 루키 때 얻은 명성과 10년 이상의 꾸준한 자기관리가 더해져 커리어 후반에 이른 이치로의 진가가 더 빛을 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준수한 성적을 꾸준히 기록하다 보니 이치로보다 뛰어난 아시아 출신 야수가 메이저리그에서 나오려면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할 듯 하다.
전문가들 역시 이치로는 전무후무한 선수로서 이미 역사에 한 획을 그었으며 실제 가치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 평가한다. 또한 이치로가 현역 메이저리거들 중에서 명예의 전당에 가장 근접한 선수들 중 한명이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야구명예의 전당 오를 현역 선수 30명은? 참고로 리드오프의 포지션으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선수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거의 없다. 리키 헨더슨, 크레이그 비지오, 루 브룩, 토니 그윈, 웨이드 보그스 그리고 폴 몰리터[30]
좀 더 쉽게 풀어서 생각해보면, 저 때처럼 OPS 평균 .770~.780이 OPS+ 100으로 측정되는 비정상적인 스테로이드의 시대가 아니라 지금처럼 상대적으로 훨씬 투고타저일 때 다른 선수들이 받고있는 평가를 되새김질해보자. 제이슨 헤이워드처럼 안정적인 주루와 뛰어난 수비력, 그리고 평균보다 약간 높은 타격을 가진 우익수가 8년 1억 8400만이라는 어마어마한 페이를 받고 있고, 2016년을 제외하고 이치로와 타격성적에서 가장 비슷한 수치를 보였던 호세 알투베가 2루수로써는 치명적인 수비결함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MVP 컨텐더 중상위권에 꾸준히 오르고 있고, 빌리 해밀턴이나 엘비스 엔드루스처럼 타격은 반쯤 포기하고 주루하고 수비 위주로 WAR를 쌓는 리드오프들은 이미 그 툴만 가지고도 주전감이다.그리고 뼈만 남은 어떤 흑인은 약쟁이니까 넘어가자 지금 언급한 선수들은 각각 타격, 주루, 수비에 있어 기본적으로 한가지씩은 결함이 있는 선수들임에도 불구하고 FA에서 고액연봉이 기대되거나 이미 계약을 맺은 선수들이다. 그런데 이런 리드오프 류의 타자 중에서 이치로와 동급 소리를 듣거나, 혹은 짭이치로 소리라도 듣는 타자들은 단 하나도 없다. 이치로가 저평가받는 것은 타율대비 출루가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장타생산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배드볼히터라는 점에서 명전에 오른 리드오프들과 비교해 안좋다는거지, 그 아랫급의 타자들과는 주거니 받거니 2000년대 동안 MVP에서 꾸준히 경쟁하던 타자다. 심지어 타격수치가 몰락하기 전, 그러니까 2010년까지의 Offence 누적수치만 봐도 217.4로 22위다[31]. 눈여겨봐야 할 것이, 그 위에 있는 타자 중 맨손빠다 괴수의 수치가 256.0이고, 홈런 아니면 삼진인 선풍기가 Off 250대다. 또한 Off 300대 이하의 타자중에서는 유일하게 카를로스 벨트란과 함께 10년동안 공수 다 합쳐서 누적 WAR 50을 넘긴 타자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한가?
결론적으로 이치로는 시대보정을 한다고 해도 타격,수비, 주루 3박자를 전부 갖춘 리드오프로써 평가절하할 요소가 생각보다 별로 없는 몇 안되는 타자다. 오히려 수비와 주루플레이로 벌어들인 WAR 수치가 15가 안되는 정도고 나머지 45는 다 타격에서 비롯된거다. 수비 혹은 주루 위주로 명전을 간 타자는 데드볼 시대를 제외하더라도 애초에 피 위 리즈나 아지 스미스, 루이스 아파라시오 정도밖에 없다. 애초에 주루 및 수비가 타격의 10배를 벌어들였으면, 주루수비로 40 이상을 벌어들였다는건데, 그런 선수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아지 스미스 단 한 명 밖에 없다. 칼 립켄 주니어 조차도 철인 소리 들으면서 34.6을 기록했는데 아지 스미스 바로 다음 아래 소리를 듣는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중견수 수비와 호타준족을 자랑하는 윌리 메이스가 22년동안 수비로 벌어들인 dWAR가 18.1이고, 수비에서만큼은 이를 능가하는 앤드류 존스가 24.1이다. 주루 스탯인 BsR 조차도 8 이상이면 최정상급인데, 이게 10이 되야지 1 WAR 이 나올까 말까다. 1406개의 통산 도루를 기록한 리키 핸더슨 조차도 BsR로 반영된 WAR 수치가 14 정도이다. 만일 이치로가 진짜로 타격 대신 주루와 수비로 WAR의 반 이상을 쌓았다고 해야한다면 한시즌에 도루로만 30점을 기록하고, 수비에서 30점을 세이브 한다는 건데, 이 것을 둘다 하려면 도루는 한 시즌 200개는 해야하고 수비는 좌익수 우익수 플레이 다 뺏어먹고 에러 없이 보살도 40개는 거뜬히 해줘야하고, 통산 도루는 2천개를 아득히 넘어가야 한다. 실제로 기재되어 있는 이치로의 oWAR는 16시즌 기준으로 통산 47.6에 dWar는 4.4를 기록하고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이치로의 수비가 아무리 좋고 골든 글러브를 10년 이상 탔다는 사실을 상기한다고 쳐도 애초에 우익수로 메이저 커리어를 밟아나갔기 때문에 보정스탯에서 중견수나 유격수, 3루수등에 비해서 깎여나가는 포인트가 많다는거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낮은 출루율은 전혀 문제될것이 아니다. 리드오프 타자로서 상대팀은 당연히 볼넷을 안주려고 할 뿐더러, 적극적으로 고타율을 기록하며 치고 나가는 어프로치를 취한게 옳은 표현이다. 애초에 치고 나가는 리드오프가 출루율이 4할이 넘는다는 것 자체가 센세이션이고, 당연히 그 선수의 가치는 메이저리그 최정상급으로 변모한다. 추신수가 구린 수비를 보이고도 높은 출루율을 기록하며 1억달러 이상 대규모의 계약을 딴것만 봐도 알수 있듯이. 볼넷이나 몸에 맞는 공으로 나가면 1루가 한계지만물론 진루하면 바로 도루 및 득점으로 연결되는 괴물은 예외다, 안타로 치고 나가면 주루 플레이, 에러 같은걸 고려할수 있고 또한 진루타가 될 가능성이 생긴다.
전성기 이후에 능력치가 생각보다 빨리 하향조정되면서 타-출-장에서 모두 깎인 점 때문에 다른 명전급 타자들이나 현재 활약하고 있는 선수들과 비교해 평가절하 받는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이치로의 출루율이 4할이 안된다고 여태까지 쌓은 타격수치가 평가절하가 된 다는 것은 그야말로 자신이 초보라는 티를 밝히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2010년에 은퇴한 켄 그리피 주니어와의 한 때.
이전에는 팀에서 겉돌았던 이치로였지만 켄 그리피 주니어 덕에 팀원들과의 사이가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참고로 그리피는 이치로의 우상이라고 할 수 있는 선수다. 이치로가 고교야구에서 뛰던 시절부터 그리피의 팬이었다고 하며 일본프로야구에서 뛰던 1995년 오프시즌엔 미국여행을 가서 마이클 조던, 켄 그리피 부자와 만남을 갖기도 했다. 그리고 이 시기에 구입한 켄 그리피 주니어의 져지는 그가 가장 아끼는 소장품 중 하나라고 한다. 2009년 그리피가 시애틀 매리너스로 돌아왔을땐 그리피는 언제나 나의 영웅이었다. 꿈이 실현된거 같다라고 밝히며 누구보다 그리피의 복귀를 환영했다. 기사
4 일본에서의 평가
2000년대 일본의 영웅.
일본에서는 최고의 선수라는 평가를 받는다. NPB시절 기준으로 공-수-주가 모두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장타력까지 갖춘 타자였으니까. 데뷔 3년차부터 이치로가 NPB에서 남긴 성적은 홈런 기록만 제외하면 야수로서 낼 수 있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성적이다.
일단 일본인 남자들에게 야구는 '자존심'과도 같은 종목이다. 2010년대 후반부터는 축구 쪽으로 인기가 약간 쏠리고는 있지만 여전히 일본의 모든 스포츠 중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종목은 야구다. 그런 종목의 역대 최고 선수 중 한명이니 이치로가 받는 평가는 엄청날 수밖에 없다. 오릭스 시절부터 그랬지만 '야구천재'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 붙었으며, 메이저리그에서도 역대 일본 출신 선수 중에서 가장 빼어난 활약을 펼치고 처음으로 MVP를 받은 선수라서 일본인들에게 인기는 엄청나다.
쉽게 생각하면 한국에서 박지성의 인기+ 실력까지 명전급 선수
일본인들에게 오 사다하루(왕정치) 이후에 가장 영향력 있는 타자라고 할 수 있다.[32]
5 WBC
06년 WBC 1회 대회, 09년 WBC 2회 대회에서 대한민국을 상대로 명성에 걸맞지 않는 부진한(?) 모습을 보여 많은 한국인에게 그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는 입치로, 입치료 등으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한일전에서는 땅볼만 친 것으로 봐서 '츤데레가 아니냐'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럴리는 없지만 사실이면 흠좀무. 여담으로 이치로의 망언은 일본 대표팀에게 매우 큰 디버프로 작용한다는 특징이 있다.(30년 망언 후의 WBC 1회 대회에서 2연패 등)
영상 15초부터 망언 릴레이가 시작된다. 30년 발언과 인생굴욕 발언, 그리고 이치로의 WBC 활약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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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30년동안 일본 야구를 이기지 못하게 해주겠다.
- WBC 1회 대회 지역예선중. 사실 원문은 '대결한 상대가 30년 동안 얕볼 수 없을 정도로 이기고 싶다'이다.[33] 결국 그래도 한국, 타이완 등을 겨냥한 말이 아니냐고 하지만, 딱히 특정 국가를 비하가기 보다는 "님들 일본이 짱이거든요. 함부로 덤비지 마셈"하는 일종의 국뽕성 발언이지 타국 비하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이 말이 한국의 매스컴에서 미묘하게 뉘앙스가 바뀌어서 전달된 후에 망언으로 등극하면서 넷상에선 "한국 야구가 일본을 따라오려면 30년은 걸린다"라는 식으로 재차 변형되면서 원문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문장들이 이치로의 망언이라는 타이틀로 상당히 나돌고 있다. 물론 말하면서 실실 웃는 것도 그렇고 보는 사람에 따라 불쾌하게 느껴질 수도 있으니 영상을 직접 보고 각자 판단할 것. 그리고 김병현은 "그냥 만화를 많이 봐서 그런 것 같은데..."라고 반응. 그리고 이치로 본인은 그 발언을 한것에 대해 계속 마음이 걸렸는지 2012년 당시 오릭스에 입단한 이대호한테 인사하면서 한국팬들이 나를 안 좋아할 것 같다며, 나를 미워하지 않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이대호는 깜짝놀라며 어떻게 말 할지 고민하다가 승부에 세계이니까, 그럴수있다고 생각하고 한국인들도 이해해 주실 것이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이치로는 기분 좋은듯한 표정을 짓었다고 한다.기사
- 야구 명언 참조.
그리고 그 대가로 배영수에게 아주 혼쭐이 났다.[34]
- 내 야구인생에서 가장 굴욕적인 날.
- WBC 1회 대회에서 한국에게 2연패 한 뒤. '똑같은 상대(한국)에게 두 번 연속으로 진 게 굴욕이다'라는 의미.
- 한국을 이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 WBC 1회 대회에서 3번째로 일본과 한국의 맞대결이 성사되자 이치로가 한 말.
앞서에 비해서 약하긴 하지만 야구는 야구지 WWE가 아니다앞서의 망언에 이어 이 말까지 나오면서 한국의 대표팀 감독인 김인식감독님마저 분노시켰다.그 성격좋은김감독님 마저 이 말을 듣고 '인생에서 강하게 나가다 보면 자기가 스스로 무너지는 경우가 많더라' 라며 디스.[1] 물론 이치로의 말 대로 세 번째 경기는 우리가 졌다.
- 없어. 그런거. 없어.
- WBC 2회 대회 2라운드 한국전을 앞두고. '한국과 함께 아시아 야구 수준을 높여갈 의식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 실제로 그리 답변한지는 알 수 없지만 보도된 바로는 상당히 비아냥 거리는 말투(ね~よ)다. 하지만 이 발언은 박동희 기자의 취재에 따르면 현장에 있던 기자들 중 아무도 이 말을 들은 사람은 없었다고. 이 기사를 올린 산케이 신문 기자의 망상이라고 밝혀졌다.
역시 명불허전 산케이[35]
그리고 WBC 2회 대회 2라운드 한국과의 경기에서 봉중근에게 조련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래저래 한국만 만나면 안습.(관련자료) 하지만 "봉중근의 공은 정말 치기 어렵다"고 인정하고[36] WBC 2회 대회 결승전 연장 10회에서 임창용 상대로(...) 결승 2루타를 때려서 일본 우승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한국의 경기중계방송에서 선수들의 이름이 나올 때 다른 일본 선수들은 후쿠도메, 조지마처럼 성만 나오는데 비해 스즈키 이치로만 이치로라고 이름만 나오는데, 등록명 자체를 이치로로 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스즈키라는 성이 워낙에 흔하기 때문에 감독이 특이하게 이름을 등록명으로 하길 권했고 이걸 메이저에서도 그대로 썼다.
5.1 그 외 망언 논란과 실상
위와 같은 인터뷰들이 이어지면서 이치로 = 망언이라는 공식이 따라 붙게 되었다. 그때문에 이후에 인터뷰가 왜곡되어 전해지는 경우가 있다. 말하자면 그가 망언을 안 했는데 언론이 했다고 하는 사례들.
대표적인 사례로 2013년 6월 20일 류현진의 공을 눈감고 홈런쳤다.라고 했다는 기사가 떳는데 이건 전형적인 기레기왜곡 기사다. 우선 산케이스포츠와의 인터뷰를 보자.
「(七回、左前に2点適時打)何もアイデアはなかった。振ったら?たった。(狙い打ったように見えたのは)普段の僕がそう見せているということ。(八回の好捕は)?後ろの打球だったので難しかった。点差があったので(積極的に)いってみようと。そしたらうまく入ったという感じ」(7회 좌전 2타점 적시타) 아무 생각없이 휘둘렀는데 맞았다. (노려친 것처럼 보여진 것은) 평소의 내가 그렇게 보이고 있다는 것. (8회의 호수비는) 바로 뒤로 날아가는 타구였어 어려웠다. 점수차가 있었기 때문에 포구를 적극적으로 가져갔고 그 결과 잘 들어간 느낌.
이다. 여기에선 어디에도 눈을 감고 쳤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데, 기자가 떡밥을 문 눈을 감았다라는 표현은 MLB와의 인터뷰에서 등장한다.
"I haven't changed anything," Suzuki said through a translator. "I haven't done anything different. To be honest, I just closed my eyes and swung.""난 바뀐게 없다". 이치로가 통역사를 통해 말했다. "난 달라진게 아무것도 없다. 단지, 좀더 마음을 비우고 스윙했을 뿐이다."원문 출처
하지만 여기서 "closed my eyes"는 "마음을 비우고"를 나타내는 속어다.[37] 오히려 인터뷰 내용은 국내 기자들이 쓴 내용과는 전혀 다른것. 이렇게 이치로는 또 까입니다. 결국 다른 기자가 나서서 기자를 까는 기사를 올렸다. 거기다 위의 문구는 류현진의 공을 친것에 대한 말이 아니라 파코 로드리게스의 공을 친것에 대한 말이며, [38] 최근 타격감이 올라온 것에 대한 질문 이었던 거다. [39]
다만 이치로 망언 논란의 시작은 97년 마늘냄새 발언이며, 1997년 10월 31일 인터콘티넨탈 호텔의 한·일 골든시리즈 기자회견에서 양군의 감독 4명(천보성,김재박,오오기,호시노)과 선동렬,이치로, 야마모토, 이종범, 이상훈, 김동수등이 참여한 기자회견 자리에서 기자가 한국에 대한 인상을 물어보자, 공항에 내리자 마늘냄새가 진동했다.고 대답한 것이 그 시초 [2]이며, 그걸 변명한답시고 한 발언이 "금년('97)올스타전 때의 일입니다. 선동렬선배와 대결을 하게 되었는데 마운드에서 뿜어대는 선동렬선배의 마늘냄새는 타석에 서 있는 나를 혼수상태로 빠지게 하며 볼카운트를 잃어버릴 정도 였어요."라고 말해서, 그 때부터 까이기 시작한 것이지 모든 인터뷰를 왜곡이라고 주장하는 것 역시 기레기자들만 악당으로 만드는 편파적인 해석이다. 만약 기자들의 자극적인 선동이 망언의 전부라면 타이중참사때나, 프리미어 12같은 이후 대회에서는 왜 제 2, 제 3의 이치로가 탄생하지 않았는지? 오타니도 기레기들이 악당으로 만들었으면 프리미어 12가 두 배로 재밌었을텐데 말이지도 또한 의문이다.
결국 정리하자면 예전에 생각없이 말을 내뱉은 것은 사실이고, 이후에 그 일 때문에 과도하게 까이는 것도 사실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6 기타
-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일본에서는 イチロー, 미국에서는 ICHIRO 라는 등록명으로 선수 생활을 하였고, 실제로도 그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여담으로 '스즈키'라는 성과 '이치로'라는 이름은 둘 다 일본에서 흔하기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흔한 성과 흔한 이름이다. 원래 一朗라는 이름은 일본에서 자식을 많이 낳던 시절에 첫째는 이치로, 둘째는 지로(二朗), 셋째는 사부로(三朗), 넷째는 시로(四朗), 다섯째는 고로(五朗) 같은 식으로 짓던 이름. 그런데 스즈키 이치로는 차남이다(…).
장남은 제로김씨 집안 둘째 아들 김장남씨형 스즈키 카즈야스(鈴木 一泰)는 디자이너로 기업 상표나 로고, 캐릭터 등을 만든다고 한다.[40]
- 그의 등번호 51번은 사실 투수들이 많이 쓰는 번호. 그런데 오릭스 블루웨이브 시절 감독이었던 오기 아키라가 이치로의 컨택 능력과 빠른 발을 보고 반하여 이치로를 응원할 때 'Go いち'라는 말을 주로 했는데 이후 5는 일본어로 고ご, 그리고 1은 이치いち라는 말에서 그의 등번호가 유래됐다. 또는 이치로가 신인 시절 동경했던 타자인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마에다 토모노리의 등번호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도 있다.[41]
- 성격은 일본 내에서조차 전부터 말이 많다. 일단 이미지와는 달리 절대 과묵한 남자가 아니다. 선수이면서 파벌을 만들려 한다던가 대표팀내에서도 독불장군이라 선수들 사이에서도 평은 안 좋은 편. 심지어는 감독조차 제어하지 못할 수준이라고. 한국에선 일본팀의 리더 정도로 인식하지만 리더로서의 자질은 같은 일본 선수들조차도 평가가 제각각. 워낙에 인기가 많아 묻히곤 하지만 일본 야구팬들 사이에선 오히려 자주 까이는 선수다. 하지만 연이은 WBC 참가와 애국심을 고취하는 듯한 발언, 그리고 2009년 WBC의 활약으로 인해 안티는 많이 줄어든 상태.
- 메이저리그 올스타전때마다 올스타전 당일 같이 소집된 올스타전 선수들을 모아 놓고 일장 연설을 한다고 한다. 평소 언론에 등장할 때면 말실수를 줄이기 위해서인지 일뽕을 들이키기 위해서인지(...) 무조건 일어-영어 통역을 대동하지만 이날만큼은 기자들도 보는 자리에서 거침없는 영어로 상대팀인 내셔널리그를 비하하는 욕설과 저주를 퍼붓는다. 2001년부터 시작한 그의 스피치 덕인지 AL은 이후 7년간 올스타전에서 NL에게 7년 연속 올스타전 무패 (6승 1무)를 기록했다. 이젠 올스타전에 모이는 선수들도 하나의 독특한 "의식"의 하나로 여기며 즐기는 수준. 또한 카를로스 페냐, 미겔 카브레라 등 히스패닉계 1루수들에 따르면 못 알아들을 줄 알고 스페인어로 뭐라 했더니 영어로 표현도 못할 스페인어 욕설(...)이 돌아왔다는 등의 흉흉한 소문[42]이 전해지는등 흔히 영어를 못해서 통역 쓴다고 하는 오해와 달리 상당한 외국어 내공을 갖고 있다. 일본에서부터 메이저리그를 꿈꾸며 영어를 공부해왔다고는 하지만 스페인어 트래쉬 토킹 등의 이야기는 흠좀무.
- 어디까지나 일본 국내에서의 안티가 많이 줄은 거지 오히려 한국에서는 늘었다. 특히 30년간 이기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겠다란 발언때문에 안티 대폭발. 그 전에 한국에서의 이미지는 천재+과묵한 남자 정도였다. 하지만 이 발언은 위에도 나와있다시피 언론의 과장이라는 의견도 있다. 물론 그런 뉘앙스가 아예 없다고 하긴 뭐하지만.
- 2006년 WBC 1회 대회 때 3월 5일 한일전에서 배영수 선수가 던진 공에 엉덩이에 맞고 크고 아름다운 검열삭제를 가졌던 일이 있었다.
이치로 : 아야! 왜던져요! 배영수 : 찰지구나이로 인해 디시인사이드의 필수요소로 인정되었다.# 일명 이치로의 굴욕.
- 기자와 인터뷰했을 때 그가 "텐션이 올라온다"라고 말하는순간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게 캡처되었는데 그 잔상이 남는게 필수요소화 되어서 보통 2ch나 니코동에서 "テンション上がってきた"의 설명이나 태그가 붙은 건 머리를 흔드는 잔상이 남는 그림을 의미한다.#
위는 '이치로의 레이저 빔으로 인류멸망'이라는 동영상(…)
2001년 4월 13일 오클랜드 애슬래틱스과의 경기에서 라이트 타구를 3루에 광속으로 뿌리는 장면을 이용한 영상이다. 그냥 재미있는 영상으로 넘겨버릴 수도 있지만, 이치로는 저 한해동안 무서운 활약을 선보이며 메이져 리그 데뷔 첫 해에 아메리칸 리그 신인왕, MVP, 수위타자, 도루왕, 실버 슬러거, 골드 글러브를 싹쓸이 해버린다(…).(※ 일본 야구계에서는 외야에서 내야로의 빨랫줄같이 빠르고 정확한 송구를 흔히 '레이저 빔'이라고 표현한다. 레이저 빔을 소유한 대표적 선수로 스즈키 이치로, 신죠 츠요시 등이 있다.)
- 원빈 덕에 굴욕적인 경험(?)을 한 일도 있다고 한다. 영상 대충 내용을 이야기하자면 일본에 와서 호텔로 가던 중인 이치로가 원빈을 보기 위해 몰려있는 팬들을 보고 장난기가 발동해서 타고있던 차의 창문을 열고 얼굴을 보였는데, 고급차가 지나가니까 원빈이겠거니 하고 몰려들었던 팬들의 반응은... "뭐야. 이치로잖아.." 그리고 우르르 이치로의 차에서 떠나버렸다(...).
원빈 의문의 1승영상에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시애틀에서 마무리를 맡기도 했던 사사키 카즈히로. 사실 저 이야기는 농담으로 생각해도 되고, 이치로 전성기 시절, 일본에서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해서 이치로에 관한 안드로메다급 농담도 굉장히 유행했었다.
- '이치류'라는 TV 프로그램에서 일본의 국민밴드 미스터 칠드런의 팬이라고 밝힌적이 있다.
- 2011년 2월, 니코니코 동화에 다음과 같은 VOCALOID 오리지널 곡이 업로드되었다. 【第6回MMD杯本選】#51#
- MMD 및 VOCALOID 오리지널 곡 분야에서 나름 알려져 있는 스트리크P(ストリ?クP)[43] 作. 제목도 #51이고 영상이나 가사 자체가 이치로 응원가 내지 찬양가(…). 상기 설명된 바 있는 필수요소 및 경기영상을 MMD로 완벽하게 재현한, 그야말로 재능의 낭비가 무엇인지 잘 보여주는 PV이다.
- 2012년 일본에 진출한 이대호가 팀의 제2홈구장 홋토모토 필드에서 이치로를 만났는데, 이치로의 예상치않은 환대에 놀랐다고 한다. 이때 이치로가 본인이 30년 발언을 한것에 대해서 마음이 걸렸는지 "한국팬들이 나를 안 좋아할것같다. 한국팬들이 나를 미워하지 않느냐"라고 물어봤다고 한다. 이대호는 깜짝놀라며 어떻게 대답 할지 고민하다가 승부에 세계이니까, 그럴수있다고 생각하고 한국인들도 이해해 주실 것이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이치로는 기분 좋은듯한 표정을 짓었다고 한다.#
- 대부분의 야구팬들이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에 실제로 이치로의 플레이를 접했고 일본프로야구 시절엔 그냥 이치로라는 엄청 잘하는 선수가 있다더라.....수준으로만 알았던 터라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엄청난 바람둥이다. . 일본에 있을 때 7년 연속 수위타자를 차지하고 심지어 MLB에서 조차 방망이를 거꾸로 잡아도 3할은 너끈한 수준이다 보니 야구에 대한 동기를 잃고 여자 꼬시는 데 몰두했다고. 여자에게 헤어져도 그 어떤 뒷얘기가 나오지 않게 한다는 각서도 쓰게하고 그 각서가 법적 효력을 갖게 하기 위해 변호사와 상담하기도 했다는 일화도 있다. 염문설이 나온 여배우들로 이치로 마키와 하즈키 리오나 등 이 있고, 불륜으로 확정적인 증거가 나온 경우만 두 차례로 MLB진출을 앞둔 98년에는 유부녀와 바람을 피다가 남편에게 재판을 하지 않는 댓가로 1250만엔의 위자료를 지불하였고[44] 2001년도에는 샌프란시스코 거주 유학생과의 불륜 섹스 테이프가 걸려서 역시 큰 곤욕을 치뤘다.[45] 불륜설 정리 [3] 참고로 부인이 불임이라 보상심리로 불륜
합법을 저지르는 것 같다는 분석도 있다. 물론 불륜과 불임은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어떤 이유로든 불륜이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 NLB 기록인 장훈의 3085안타를 넘은 날 장훈이 직접 메이저리그 경기장을 찾아갔다. 배트를 모으는것이 이치로의 취미인데 자신이 현역시절 썼던 배트에 직필 사인까지 해줘서 3085안타를 기념해 선물을 해주었다. 그날 이치로는 안타를 때려서 3086안타를 기록해서 장훈의 기록을 넘었다. 경기가 끝난 후 촬영 카메라를 대동하고 장훈이 또 다시 찾아가 역사적인 순간을 축하했다.
- 한국에서는 잘 언급이 안 되지만 자기가 말하고 싶은 것을 조리있게 잘 전달하는 달변가다. 방송에도 가끔 씩나오면서 미국에 일본인들이 오면 즐겁게 맞이해주며 NPB에서 활약한 선배들에게 예의바르게 행동하고 후배들에게 잘해주는 모습도 보인다. 한국인 선배인 장훈에게도 깍듯이 대한다. 이렇듯 메이저리그에서도 롱런할 수 있었던 자기관리를 포함해 야구인으로써 본받아야할 모범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7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NPB) | |||||||||||||||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석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사사구 | 출루율 | 장타율 | OPS |
1992 | 오릭스 블루웨이브 | 40 | 99 | .253 | 24 | 5 | 0 | 0 | 5 | 9 | 3 | 3 | .276 | .305 | .581 |
1993 | 43 | 67 | .188 | 12 | 2 | 0 | 1 | 3 | 4 | 0 | 2 | .212 | .266 | .478 | |
1994 | 130 | 616 | .385 | 210 | 41 | 5 | 13 | 54 | 111 | 29 | 51 | .445 | .549 | .994 | |
1995 | 130 | 613 | .342 | 179 | 23 | 4 | 25 | 80 | 104 | 49 | 68 | .432 | .544 | .976 | |
1996 | 130 | 611 | .356 | 193 | 24 | 4 | 16 | 84 | 104 | 35 | 56 | .422 | .504 | .926 | |
1997 | 135 | 607 | .345 | 185 | 31 | 4 | 17 | 91 | 94 | 39 | 62 | .414 | .519 | .933 | |
1998 | 135 | 558 | .358 | 181 | 36 | 3 | 13 | 71 | 79 | 11 | 43 | .414 | .518 | .932 | |
1999 | 103 | 468 | .343 | 141 | 27 | 2 | 21 | 68 | 80 | 12 | 45 | .412 | .572 | .984 | |
2000 | 105 | 459 | .387 | 153 | 22 | 1 | 12 | 73 | 73 | 21 | 54 | .460 | .539 | .999 | |
NPB | 통산 9년 | 951 | 4098 | .353 | 1278 | 211 | 23 | 118 | 529 | 628 | 199 | 384 | .421 | .522 | .943 |
역대기록(MLB) | |||||||||||||||||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석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득점 | 타점 | 도루 | 사사구 | 출루율 | 장타율 | OPS | bWAR | 연봉 |
2001 | SEA | 157 | 738 | .350 | 242 | 34 | 8 | 8 | 127 | 69 | 56 | 30 | .381 | .457 | .833 | 7.7 | 566만 달러 |
2002 | 157 | 728 | .321 | 208 | 27 | 8 | 8 | 111 | 51 | 31 | 68 | .388 | .425 | .813 | 3.5 | 369만 달러 | |
2003 | 159 | 725 | .312 | 212 | 29 | 8 | 13 | 111 | 62 | 34 | 36 | .352 | .436 | .788 | 5.6 | 466만 달러 | |
2004 | 161 | 762 | .372 | 262 | 24 | 5 | 8 | 101 | 60 | 36 | 49 | .414 | .455 | .869 | 9.1 | 650만 달러 | |
2005 | 162 | 739 | .303 | 206 | 21 | 12 | 15 | 111 | 68 | 33 | 48 | .350 | .436 | .786 | 3.9 | 1250만 달러 | |
2006 | 161 | 752 | .322 | 224 | 20 | 9 | 9 | 110 | 49 | 45 | 49 | .370 | .416 | .786 | 5.3 | 1250만 달러 | |
2007 | 161 | 736 | .351 | 238 | 22 | 7 | 6 | 111 | 68 | 37 | 49 | .396 | .431 | .827 | 5.8 | 1250만 달러 | |
2008 | 162 | 749 | .310 | 213 | 20 | 7 | 6 | 103 | 42 | 43 | 51 | .361 | .386 | .747 | 5.3 | 1710만 달러 | |
2009 | 146 | 678 | .352 | 225 | 31 | 4 | 11 | 88 | 46 | 26 | 32 | .386 | .465 | .851 | 4.7 | 1800만 달러 | |
2010 | 162 | 732 | .315 | 214 | 30 | 3 | 6 | 74 | 43 | 42 | 45 | .359 | .394 | .754 | 3.7 | 1800만 달러 | |
2011 | 161 | 721 | .272 | 184 | 22 | 3 | 5 | 80 | 47 | 40 | 39 | .310 | .335 | .645 | 0.6 | 1800만 달러 | |
2012 | 95 | 423 | .261 | 105 | 15 | 5 | 4 | 49 | 28 | 15 | 17 | .288 | .353 | .642 | 1.6 | 1700만 달러 | |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석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사사구 | 출루율 | 장타율 | OPS | bWAR | 연봉 |
2012 | NYY | 67 | 240 | .322 | 73 | 13 | 1 | 5 | 28 | 27 | 14 | 5 | .340 | .454 | .794 | 0.2 | - |
2013 | 150 | 555 | .262 | 136 | 15 | 3 | 7 | 57 | 35 | 20 | 26 | .297 | .342 | .639 | 1.5 | 650만 달러 | |
2014 | 143 | 385 | .284 | 102 | 13 | 2 | 1 | 42 | 22 | 15 | 22 | .324 | .340 | .664 | 1.0 | 650만 달러 | |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석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사사구 | 출루율 | 장타율 | OPS | bWAR | 연봉 |
2015 | MIA | 153 | 438 | .229 | 91 | 5 | 6 | 1 | 45 | 21 | 11 | 31 | .282 | .279 | .561 | -1.2 | 200만 달러 |
2016 | 143 | 365 | .291 | 95 | 15 | 5 | 1 | 22 | 30 | 10 | 30 | .354 | .376 | .730 | 1.5 | 200만 달러 | |
통산 | 16년 | 2500 | 10466 | .313 | 3030 | 356 | 96 | 114 | 760 | 1396 | 508 | 626 | .356 | .405 | .761 | 59.9 | 1억 6313만 달러 |
- ↑ '나고야 전기'가 세운 공대.
- ↑ 그 외 나머지 기록은 [4] 참조
- ↑ 2004년 시애틀 매리너스. 종전 기록은 1920년 조지 시슬러의 257안타.
- ↑ 2001년-2010년 시애틀 매리너스. 종전 기록은 1894년-1901년 윌리 킬러의 8년.
- ↑ 메이저리그에서 3000개 이상의 안타와 10회 이상의 골드글러브 수상을 달성한 야수는 이치로를 포함해서 윌리 메이스(3283안타 12GG), 알 칼라인(3007안타 10GG), 로베르토 클레멘테(3000안타 12GG) 네명 뿐이고 3000개 이상의 안타와 500개 이상의 도루를 달성한 야수는 이치로를 포함해서 타이 콥(4189안타 892도루), 호너스 와그너(3415안타 722도루), 에디 콜린스(3315안타 744도루), 루 브록(3023안타 938도루), 리키 핸더슨(3055안타 1406도루), 폴 몰리터(3316안타 504도루) 일곱명 뿐이다.
- ↑ 여러모로 타이 콥과 비슷하다. 압도적인 배드볼 히팅과 탁월한 주루로 리그를 정복했다는 점과 수비가 뛰어난 중견수(이치로는 일본에서는 중견수였고, 메이저리그에서 우익수가 되었다)였다는 점이 똑같고, 3년차에 감독이 바뀌면서 풀타임 주전이 되어 그 해에 바로 타격 전부문에서 최상위권 성적을 내서 리그의 톱스타로 떠오르게 되었다는 것도 비슷하다. 물론 이치로는 2년차까지 감독에게 찍혀 1군을 어쩌다 한번 올라 오는 2군 선수였고, 타이 콥은 신인이라 풀타임 주전이 아니었을 뿐 감독에 찍힌 것도 아니고, 2년간 500타석이 넘는 기회를 받을 만큼 적지 않은 경기를 나가던 1군 선수였다는 것은 다르지만.
- ↑ 특히 도이 쇼조 감독이 싫어했다. 그래서 2년간 2군선수로 지내다가 감독이 오기 아키라로 바뀌고 난 3년차가 돼서야 1군 풀타임 주전선수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200안타 신기록을..
- ↑ 어떻게해도 계속 타격 1위를 유지하자 모티베이션 자체를 잃어버렸다고 인정했다. 첫풀타임인 1994년부터 일본리그에서의 마지막 시즌인 2000시즌까지 7년 연속 타격왕. 그것도 2위와 현격한 격차를 보이는 타격왕이었다. 이상태에서 지속적으로 동기부여를 주는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 ↑ 시애틀 매리너스의 타격 기록은 사실상 에드가 마르티네즈, 켄 그리피 주니어, 스즈키 이치로 이 세 명이 나누어 가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 ↑ 특히 "공의 빠르기는 예상했던 정도인데, 볼의 무브먼트가 차원이 다르다"라는 말을 했다. 이는 그 이후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마쓰이 히데키 또한 공감했던 부분이었다.
- ↑ 당시 이치로는 51번을 달기 위해 전임 51번이자 매리너스의 준 영구결번자인 랜디 존슨에게 51번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2012년에는 스스로 모든 것을 포기하며 뉴욕 양키스(양키스 51번은 프랜차이즈의 레전드 중견수 버니 윌리엄스다.)의 31번 저지를 입게 되지만...
- ↑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품을때 당시 시애틀 감독 루 피넬라는 굳건한 신뢰를 보였는데 이치로가 적어도 타율 0.280은 칠 것이라 확신했다. # 물론 이치로는 0.280은 물론이고 0.350을 기록(...)
- ↑ 도루왕 타이틀은 55도루의 로저 세데뇨(디트로이트 타이거스)를 1개 차이로 누르고 차지했는데, 이 세데뇨가 시즌 막판 구단과의 갈등으로 출장정지를 받고 경기에 출장하지 못하는 사이 이치로가 따라붙어 결국 시즌 막판에 역전시켰다.
- ↑ 1975년 보스턴 레드삭스의 프레드 린 이후에 두번째. 하지만 이치로와 바로 전해 신인상을 수상한 사사키 카즈히로의 경우에 일본프로야구에서 뛰다가 온 선수를 과연 신인으로 볼 수 있느냐에 대한 의문이 기자단 사이에 나왔고, 결국 2003년에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마쓰이 히데키는 신인상을 받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 ↑ 최다 안타를 친 2004년에 또 한 번 주려고 했으니 이것 역시 고사하였다.
- ↑ 참고로 켄 그리피 주니어의 커리어 최다 안타는 185개(1997년), 장훈은 182개(1976년).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 실제로, 이치로가 인사이드 파크 홈런 기록을 한 며칠 뒤에 2007 한국프로야구 올스타전에서 이택근이 인사이드 파크 홈런 기록을 세우게 된다. 하지만, 박노준 해설위원이 인사이드 파크 호텔로 말실수를 하는 사건이 터진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고.
- ↑ 메이저리그 진출 후에는 타율과 출루율에 비해 장타율이 확 떨어진 것이 눈에 보인다. 컨택을 위해 장타율을 포기했다고 말하지만 타율까지 떨어졌다는 것은...
이것이 MLB의 위엄대신 도루개수와 안타개수는 상승. - ↑ 2004시즌인데 그때는 타율 커리어 하이 시즌(3할 7푼)이라 비안타 출루가 적어도 웬만하면 출루율 4할을 넘길 수 밖에 없던 때였다.
- ↑ 이런 경우라면 신인이 수비 위치를 옮기는게 당연한 일이며, 결국 추신수는 중견수로의 컨버전에 실패했기에 트레이드 된 것. 물론 찾아보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지구 라이벌 LA 에인절스의 경우 토리 헌터가 스스로 중견수자리를 넘긴 케이스도 있다. 단 본인의 의사가 우선이므로 이치로가 우익수를 원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 ↑ 아직 둘 사이에 애는 없다. 아마 나이가 있어서인지 자식은
요태까지 그래와꼬 아패로도 계속없을 듯. - ↑ 비슷한 예로 웨이드 보그스의 경우 경기 전에 무조건 닭고기를 먹었다고 한다. 그 덕에 보그스의 부인은 닭고기 요리에는 반쯤 전문가가 되어 요리책을 출판할 정도였다고. (...) 그런데 웨이드 보그스는 단순히 '비슷한 예' 라고만 하기에는 이런 징크스를 통한 일상 생활의 변수 통제를 거의 80 개 가까이 만들어 놓은 선수라서 이치로보다 훨씬 지독한 경우였다.
- ↑ 실제로 NYY 중계진은 역대 3번째 프로기록이라고 코멘터리를 달았다.
- ↑ 타격방식에 대해 의견이 달라서 충돌했다고 한다.
- ↑ 2군을 지배하다시피하는 압도적인 타격 성적을 냈다. 최소한 2년차에는 1군 풀타임 정도가 충분히 가능할 수준이었으나 감독이 잘 쓰지 않고 어쩌다가 백업 야수(대타, 대주자, 대수비용)으로 1군 콜업하면서 경기당 한두타석 나오게 하고 내리는 정도로 기용했기 때문에 당연히 1군에서 적응이나 성장하기 어려웠던 형편이라 좋은 성적을 낼 수 없었다. 결국 감독이 바뀐 3년차에야 1군 풀타임 생활이 시작되었고 바로 200안타를 쳤다.
- ↑ 영상 마지막에 이치로를 포옹한 사람은 배리 본즈. 2016년 마이애미 말린스의 타격 코치로 있다가 시즌이 끝나고 짤렸다.
엉엉 나는 3천안타 못 쳤는데 ㅠㅠ - ↑ 제이 뷰너, 켄 그리피, 에드가 마르티네즈, 존 올루드, 알렉스 로드리게즈, 브렛 분
- ↑ 그 안좋다고 평가받는 출루율도 저 기간동안엔 .370이다
- ↑ 올타임 고의사구에서는 배리 본즈가 이 모든 것을 뒤집어 엎는 688개를 기록 중이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통산 고의사구가 300개 이상인 선수는 본즈와 알버트 푸홀스 뿐이다.
- ↑ 저니맨이라는 치명적인 결험이 있었지만 90년대 최고의 공수겸장 리드오프 중 하나로 평가받던 케니 로프턴이나 하필 동시대의 리키 헨더슨이라는 거물 때문에 평가절하 받던 팀 레인스 조차도 주루수치와 타격에 있어서는 이치로에 밀리기는 커녕 용호상박 혹은 더 높이 평가받는 타자들인데, 이들차도 현재까지 명전에 못들어가서 논란이 되고 있는 사항이다
- ↑ [5]
- ↑ 마쓰이 히데키도 NPB시절에는 슈퍼스타였지만 메이저리그에서 남긴 커리어를 본다면 마쓰이를 이치로와 비교하는건 이치로에게 실례.
- ↑ 원문은 ただ勝つだけじゃなく、すごいと思わせたい。戦った相手が“向こう30年は日本に手は出せないな”という感じで勝ちたいと思う。 단순히 이기는 게 아니라 엄청나다는 생각이 들게 해주고 싶다. 대결한 상대가 앞으로 30년은 일본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기고 싶다.
- ↑ 후에 인터뷰를 통해서 구대성이 화나는데 그냥 맞춰보라고 했고, 그말을 듣고 고의로 데드볼을 던졌다고 고백했다. 물론 이치로의 발언 의도의 진위가 어쨋든 고의로 데드볼을 맞추는 게 절대로 잘한 일은 아니다.
- ↑ 극우 성향 언론사로 일본 내에서도 유명하다.
- ↑ 2009년에 방영된 무릎팍도사 허구연 편에서 허구연이 밝혔다. 당시 이치로는 허구연에게 '정말 한국야구 무섭다. 겁난다. 자신이 없다.' '봉중근은 스니키 패스트볼이라서 공을 알고도 못 치겠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치로 본인도 한국야구를 상당히 인정하고 있었다는 것.
- ↑ 침착하게, 동요하지 않고라는 뜻도 있다. 사람들이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첫번째로 하는 행동이 눈을 감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의미가 나온 것.
- ↑ http://news1.kr/articles/?1183858
- ↑ 참고로 반박기사를 올린 사람은 한화 이글스와 류현진을 담당하는 이상학기자로 다른 기자들과 달리 개념있는 기사를 쓰는걸로 유명한 기자다.
- ↑ 형의 이름을 보면 알겠지만 일반적인 일본 형제의 명명과는 달리 이 형제는 하나 일(一)자를 돌림자처럼 쓰는 형제이다.
- ↑ 마에다는 2013년 시즌 종료 후 은퇴했다.
- ↑ 마이너리그 리햅을 뛸때 아들뻘인 히스패닉 꼬맹이 동료가 홈런을 치자 스페인어로 축하해줬다는 훈훈한(?) 증언도 있다.
- ↑ 오늘도 졌다를 제작한 사람이다. 야빠.
- ↑ 다만 이치로의 말에 따르면 유부녀인줄은 몰랐으며 남편에게 지불한 돈은 도리 상 지불하였다고 한다.
- ↑ 유학생 쪽에서 테이프를 녹화하여 주간지에 팔아넘겼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