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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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국 신화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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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치우도의 모사도. *
2000년도 초에 지어진 중국의 중화삼조당에 그려진 치우벽화. *


蚩尤

군신... 으로 추앙받는다기에는 대접이 다소 좋지 않은 고대 신화의 등장 인물. 사실 오랫동안 괴물 취급이 대세였다. 치우 신앙은 분명 존재하였고 많은 중국의 군주들도 전쟁에서의 승리를 그에게 기원했지만, 민간 설화에서는 별놈의 것들에게 다 얻어터지기까지 하는, 기록마다 가지고 있는 위상이 천지차이인 존재이기도 하다. 천자의 재상, 대제후, 섭정과 서자 떨거지, 요괴, 재앙신의 갭은 엄청나지 않은가.

환빠들이 한민족의 조상신이라고 우겨대지만 묘족의 조상신이라는 설이 더 유력하고 정설로 인정되고 있으며, 중국 동북부지방[1] 민간신앙에서 많이 받들어지는 신이기도 하다.[2]중국에서는 소수민족 융합 차원에서 치우 또한 '중화삼조'라고 해서, 황제 헌원염제, 치우를 중화민족(한족과 다른 개념)의 조상으로 인정한다. 하지만 중국에서도 신화시대를 다룬 드라마에서도 흔히 치우를 비열하고 사악한 악당으로 묘사하는 통에 묘족 출신 지식인들이 '중화삼조의 한 분을 이렇게 묘사하다니!' 하고 발끈하곤 한다. 병주고 약주네

치우는 6개의 팔, 4개의 눈, 그리고 소의 뿔과 발굽, 구리로 된 머리와 쇠로 된 이마(동두철액)를 가지고 있었으며 맨몸으로 맹수와도 대적할 수 있을 만큼 힘도 굉장히 강했다고 한다. 때문에 당시의 조악한 기술로서는 어찌 할 도리가 없었으며, 안개 도술까지 구사할 수 있어 어디서 어떻게 나타날지 알 수 없으니 결국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었다. 이것을 묘사하기를 동두철액이라고 한다.

  • 이러한 외모와 산해경에서 표현된 원전 신화에서의 미칠 듯한 강력함, 그리고 비와 바람을 다스렸느니 하는데다 대척점에 있는 황제가 하필 가뭄을 사용하는 것 때문에 일부는 치우가 신농의 기믹을 이어받은 동부 평야의 풍요와 문명의 신이며 황제는 그에 대항해 나타난 서부 황야의 무법자(?)라는 주장도 있다. 참고로 말하자면, 묘족의 전승에 따르면 당시 동부 평야는 묘족이 주름잡고 있었는데 한족들이 그들을 밀어냈단다…. 근데 헌원이 가뭄을 상징한다면 풍백, 우사 앞에선 떼꿀멍이긴 해도 비를 내리게 하는 응룡이 황제편인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한편 형제 81인 또는 72인과 풍백, 우사를 거느리고 다녔다고도 한다. 문제는 단군신화에 풍백, 우사, 운사가 거론되는 덕에 환단고기를 지을 때 짜맞춰넣을 여지가 생겼다는 점.

그 외에 다섯 병기를 만들어 6개의 팔로 들고다녔다고도 하는데, 남은 한 손은 거들뿐[3] 이 다섯 병기가 무엇인지도 기록마다 다 다르다.

역사적 실존 인물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신뢰성 있는 근거가 없다. 중국에서는 중화삼조라며 역사적 인물처럼 인정하고 있으나 애초에 그건 소수민족 융합 차원, 다시 말해 '중국인'을 만들기 위한 작업에 불과하며 치우의 실존을 주장할만한 근거는 사마천사기 뿐, 물증은 하나도 없으며, 사마천 본인도 예전부터 내려온 이야기라는 것 말고는 역사라는 근거를 전혀 대지 못한다. 카더라 통신은 고대에도 이미 있었던 것

치우라는 이름이 처음 발견된 기록은 산해경인데[4], 산해경은 선진시대인 전국시대에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치우가 정말 고대의 실존 인물이었다면 수없이 발견된 갑골문자에는 왜 전혀 나오지 않는지를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 설마 모를까 싶지만, 사마천의 사기가 쓰인 전국시대보다 한참 뒤의 시대다.

즉, 신화 속의 존재일 확률이 매우 높다. 실존 인물이라는 증거라고는 전혀 없다. 치우의 무덤이라 전해 내려오는 곳들도 그냥 그렇다는 구전이 내려올 뿐, 유물이나 기록같은 제대로 된 근거가 없다.

하여튼 전승에 따르면, 당시 그의 군대는 발전된 병기제작 기술과 치우의 영도력에 의거 수많은 세력을 패퇴시키고 그 판도를 넓혀갔다. 그리고 그 뒤 신농씨(神農氏)와의 주도권 싸움에서 승리한 신흥세력 황제(黃帝)와 격돌하게 되는데, 여기까지는 중국 신화와 한국 유사역사학에서 별 이견이 없지만 그 뒤의 기록부터 상당 부분 달라진다.

중국 측의 기록에 보면 치우와 황제의 마지막 싸움은 탁록(학술적으로 위치 불명)에서 있었고, 그 때 황제는 지남거(指南車, 항상 남쪽을 가리키는 일종의 나침반)를 만들어 안개 속에서도 방향을 잡을 수 있게 되었고, 결국 응룡(應龍)과 자신의 딸인 태양을 다스리는 여신 (妭)[5]까지 총동원하여 그를 쓰러뜨렸다고 전한다. 묘족 신화에서는 발의 미인계에 의해 당했다고 나온다. 근데 중국 신화에서 묘사되는 발은 대머리인데? 그리고 황제에 의해 토막나서 처형당하는데, 이때 흘린 피가 단풍나무에 스며들어 가을마다 단풍이 붉게 물든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다만 같은 산해경에서도 단풍나무 전설 기록에 보면 치우가 자신을 포박한 차꼬와 수갑을 풀어 버리고 도망쳤는데 그것이 변한 게 단풍나무라고도 나온다. 애초에 산해경이란 물건이 절대 사서가 아니라 후대에 수없이 이리 덧씌워지고 저리 덧씌워지고 한 신화집이라 모순되는 내용이나 현실과 괴리된 내용이 굉장히 많다.

치우를 예전부터 숭상하던 묘족들조차도 치우가 황제에게 깨졌다는 것 자체는 인정한다. 묘족 신화에서 치우는 헌원에게 패한 이후 본거지인 동북부로 돌아가 자식들 중 하나에게 남쪽으로 내려가 나라를 세우라 하고, 그 자식이 남하하여 나라를 세우는 게 그게 묘족의 시조가 된다.(김선자 저, 중국 소수민족신화기행) 근데 이 과정에서 황제 헌원의 제재는 전혀 없다. 아예 등장이 없다. 역시 헌원은 진 게 맞나 보다 는 농담이고, 그쪽까지 힘을 실을 여력이 없었다고 보는게 무방할 듯. 다른 지역을 마저 정복하느라 바빴다고 나오며, 헌원이 아내를 넷이나 둔 이유가 일거리가 폭주해 사무를 시키려고였다는 기록까지도 있다.

응룡이나 황제가 죽였다는 쪽이 메이저지만, 마이너하게는 살아서 고향으로 도망쳤다거나 헌원의 신하가 됐다고 나오기도 한다. 치우가 죽었다는 설을 따르지만 '치우가 죽은 후 요마들이 날뛰니 치우의 얼굴을 그려 붙여 그가 살아서 헌원의 신하가 된 것처럼 위장하자 조용해졌다'고 나오는 신화도 있는데, 사망설과 생존설의 융합을 꾀한 것으로 보인다.
중화삼조 운운한 뒤부터는 드라마 같은 데에서 살아서 헌원에게 복속한 걸로 나오기도 한다.

과거에는 유성우를 치우기(蚩尤旗, 치우의 깃발)라고 불렀다.

관자 오행편에 보면 황제 헌원이 치우를 得(득, 만나다/얻다로 둘 다 해석 가능)하여 천도를 훤히 알게 되었다는 기록도 나오지만, 염제의 자손인 치우 본인이라기보다는 유성을 의인화한 별개의 인물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금속기 주조나 기상현상의 통제와 같은 면모가 없고, 대신 천도를 아는 현자라서 황제가 관직을 내린 것으로 나온다. 일단 황제와 싸운 그 치우가 아니라는 주석이 달려 있지만 본문이 아니라 주석이므로 권위가 떨어지며, 함께 병렬로 언급된 다른 재상들 중 다른 중국 신화의 신들이 있고, 중국 신화에 나오는 치우가 한 명 밖에 없기 때문에, 이 치우와 저 치우를 동일 인물로 여기는 경향이 예전부터 있어 왔다.
한편 지수 편에서는 천자가 치우에게 광산을 관리하게 시켰다가 치우가 무기를 만들어 다른 제후국들을 겸병하고 다니다가 천자에게 털린 것, 즉 잘 알려진 탁록전쟁과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황제가 오제 신들과 함께 행차에 나갔는데 그 신하 중 치우가 있다는 내용은 어느 주석에 나오는지 추가 바람. 본문엔 없었음.
이렇게 한 전집 내에서도 기록에 차이가 있는 이유는 관자가 여러 명의 저자와 편집자의 손을 거쳐 완성됐기 때문이다.

한고조 유방도 치우에게 제사를 지내고 전쟁의 승리를 기원하는 등, 군신으로서 치우 자체에 대한 신앙은 면면히 존재해 왔다. 하지만 민간에서의 치우는 그냥 태고적의 대악당으로서 나라 시대의 잡극인 관운장대파치우(關雲長大破蚩尤, 관우가 치우를 개박살내다) 등에서 보면 옥천산에 머무르던 관우의 혼령에게 떡실신 당하고 개처럼 끌려다니는 등 수없이 많은 안습의 팔자를 걷고 있다. 다만 이는 지역마다 달라서, 치우신앙이 시작된 중국 동북지방에서는 상당히 대우가 좋았다. 진나라 때 진시황에게 접근한 방사들이 숭상을 권한 팔신[6]중에 치우가 있으며, 현재도 중국 동북지역 일부에서는 민간에서 용신이자 우신으로 숭배된다.[7] 실제로 한나라가 중국을 지배하기 전에는 중국에서도 지역/국가 별로 민간 신앙의 차이가 컸으나, 한나라를 시작으로 점차 각지의 민간 신앙이나 흡수한 나라의 관변 신앙을 정리하고 유학을 장려하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본래 중국의 창세신급 여신이던 여와가 복희의 여동생으로 격하되는 신화도 한나라 때부터 등장한다.

千古奇才横空贤 천고의 세월 영웅 치우천왕은
可堪并论炎黄间 염제와 황제와 더불어 이야기 하리
五兵刑法君始点 다섯 무기와 형과 법이 치우로 시작했으니
九黎生气冲云天 구리 백성 사기는 하늘을 찌르고 남는도다
席卷中原华夏联 염제와 황제를 누르고 중원을 석권하니
血染江河五千年 5000년 강물을 피로 물들였네
英名不因涿鹿败 영웅의 이름이 탁록 패전으로 말미암지 않으니
老黑石山百花鲜 흑석산 온갖 꽃들 여전히 붉네

묘족은 이와 같은 치우만가를 전승해 왔으며, 해마다 음력 10월이면 묘족은 치우 제사를 지낸다.

...라는 떡밥을 환빠들의 인터넷 본거지 중 한 곳인 쿠투넷에서 뿌렸으나 정작 묘족들의 넷커뮤니티 苗人网에서는 罗国锦의 창작시가로 소개하고 있다.#

1.1 사이비 사학

한국과 중국의 유사역사학에서 둘 다 비중 있게 나오는데다, 중국의 소수민족 중 세력이 큰 편이자 치우 숭배의 원조인 묘족들이나 묘족이 소수민족으로 분포해 있는 동남아 국가들에서도 치우와 관련된 각종 환상문학을 써제끼고 있다 보니 각종 떡밥이 끊이지 않는다.

1.1.1 한국 유사역사학

치우에 대한 환빠들의 맹목적 빠질은 답이 없어서, 민족의 시조를 바꿔치기 위해서라면 똥과 된장을 안 가리고 달려든다.

한국의 기록에서 치우를 한민족과 연관지은 가장 오래된 문헌은 규원사화이고 가장 대표적인 저작은 환단고기인데, 환단고기는 익히 잘 알려졌다시피 위서이며, 규원사화는 논란이 많지만 역시 위서라는 설이 더 설득력 있다.참고 링크 이러니 치우와 한국의 고대가 뭔가 관계가 있다는 건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치우 숭배가 도깨비신앙에 영향을 줬다고 보는 학자들은 있지만, 역사적으로 한반도 내에서 직접적인 치우 신앙은 존재하지 않았을 뿐더러 한국식 도깨비와 치우의 외모는 완전히 딴판이다. 사실 이에 대해선 신채호나 정인보, 김교헌 같은 '민족사학자'들도 언급하지 않았던 치우가 뜬금없이 '민족사'에 삽입된 것부터 설명되어야 한다.

규원사화와 환단고기를 제하면 이들의 논거는 사기 등에 써있는 '동이' 기록인데, 항목에 써있듯 동이=한민족이 아니다. 그저 중국 입장에서 동쪽에 있는 민족들을 동이라고 불렀을 뿐(비유하자면 우리가 '서양인'이라고 부른다고 독일과 이탈리아인을 동일 민족이라고 볼 수 없는 것), 동이라는 '민족'은 존재한 적이 없으며 이들의 상호 연관성 또한 지역이 지역이다 보니 나타나는 제한적인 혈연적 관련성과 교류 정도에 그친다. 위에 설명했듯 한반도에는 독립적인 치우 신앙이 존재했다는 기록이 없으므로 계승 의식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없다[8]. 아니, 고구려 적부터 계승했다고 내려온 기자조차 연관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판명되어 학계에서 버림받았는데 검증조차 안 된 이러한 학설을 인정할 근거는 무엇인가? 이러한 동이 드립은 내선일체론, 동북공정과 다를 바가 없다.

규원사화와 환단고기 및 이를 따르는 대다수 환빠들의 주장에서는 전쟁에서 오히려 치우가 승리했다고 하며, 결국 전쟁은 이기긴 했지만 휴전 비슷하게 마무리되었다는 얘기를 한다.
치우천황덴노 같은 말을 쓰고 치우를 한민족의 조상으로 착각하고 있더라도 치우가 황제에게 패한 게 맞다고 인정한다면 그냥 환독의 영향권에 있을 뿐 환빠는 아닐 가능성이 높다. 다만 변종 환빠들 중에서는 황제가 치우를 이긴 게 맞다고 인정하지만 오히려 황제를 더 정통성 있는 배달족 군주로 보고 섬기는 경우도 있으니 방심은 금물. 본격 조상마저 마음대로 골라잡는 이기는 편 우리 편

사실 규원사화와 환단고기의 치우 서술은 서로 다르다. 규원사화에서의 치우는 환웅(신시씨)이 데리고 내려온 신하 중 하나지 왕족이 아니다. 신시씨의 신하라고 딱 박아놨다. 공상에서 제멋대로 제위에 오른 적 있다고는 한다. 규원사화에서 치우씨의 후손들은 일부는 중국에 너무 동화되었다고 나오나, 치우의 후손 가문 중 하나인 남후는 단군 아래의 제후 중 가장 활발하게 외부 정복 활동을 벌이거나 제후들 중에선 리더 노릇을 하려 드는 등 2인자. 그래도 어디까지나 신하이다.
탁록전쟁의 승패를 왜곡한 것, 작중에서 그려지는 탁록전쟁의 전반적인 양상, 옹호극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무기의 등장같은 요소는 환단고기가 규원사화를 베낀 게 맞다.

단기고사에서는 治尤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데, 행적은 중국 신화와 비슷하게 염제를 위해 자부선생 밑에서 같이 공부한 동문인 헌원과 싸웠다가 패배하지만 그의 손자인 특명이 단군조선의 관료가 된 것으로 나온다. 이 治尤라는 이름은 환단고기에서도 등장하지만, 서방을 담당하는 신으로 자오지환웅과는 별개의 인물로 나온다.

환빠들 중 관자 오행편에서 치우가 천도에 밝았다고 하는 기록을 갖다붙이는 자들이 있는데, 관자에서는 치우가 황제의 재상 중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좀 알고 붙이지?

2002년 월드컵 당시에는 붉은 악마에서 귀면와를 치우의 얼굴로 해석하여 귀면와의 도안을 붉게 만든 치우천왕기 도안을 만들어 널리 퍼뜨리고 다녔다. 귀면와는 여러 설이 있지만, 도철의 형상이라는 설도 있다. 중국 기록에는 도철은 사흉중 하나로, 아주 탐욕스러운 괴물이다.

환빠 세력이 치우를 한민족의 조상신으로 홍보하고 다니다보니 해외에도 어느 정도 알려졌는지 최근에는 묘족(몽족) 가운데에서도 한국인과 자신들이 같은 왕(치우)을 공유하는 같은 동이족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댓글 참조

1.1.2 중국 어용사학

위에서 중화삼조라 하며 실존인물로 포장하려 한다고 했는데, 이를 위해 어용학자들이 여러가지로 환단고기급 소설을 써내고 있다. 웃기는 건 한국의 유사역사학자들 중에서도 이런 중국 어용학자들의 영향을 받거나, 이들의 주장을 근거로 치우의 실존을 주장하는 작자들도 있다. 병신간 유기체적 관계

1.2 현대 대중문화

진실 여부는 제껴놓고라도 창작 작품의 소재로서는 적당해서인지, 소설이나 만화 등 여러 곳에서 자주 쓰이고 있다.사실 일본도 이런 경우가 많다. 유명해지기만 하면 고증따위 버리는게 문제

1.2.1 치우천왕기

2003년 간행되기 시작한 이우혁판타지 소설 치우천왕기는 치우와 관련된 유사역사학의 주장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논란이 많았으나 애초에 판타지 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나름대로 수작이라고 평해진다. 그리고 작가 이우혁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치우천왕기 완간 소식을 알릴 때 자신은 규원사화만 잠깐 참고했지 환단고기부도지등의 서적은 참고하지 않았다고 우겼지만, 규원사화와 환단고기를 읽어봤다면 뻥카 냄새를 맡을 수 있다. 규원사화 참고한 건 자랑이냐 다만 환단고기의 내용을 사용했다고 해서 그것이 진짜 역사가 아니고 그냥 소설적인 장치라고 이전부터 밝혀왔었다. 하지만 이전 작품인 퇴마록에서 여과없이 환단고기에 관련된 내용을 적었다는 점에서는 지금도 비난을 피하지는 못하고 있다. 후에 소장판에서는 내용, 각주에서 아예 환단고기 관련 내용을 빼버렸다.

작중 묘사되는 치우에 관해서는 치우천치우비 항목 참조.


이후 조아라의 노블레스인 MEMORIZE에서 치우천이 사용했던 갑옷이라는 설정으로 치우천왕의 갑옷이 등장한다.

1.2.2 천국의 신화

이현세의 만화 천국의 신화에선 2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정작 2부에서는 개뿔도 없는 찌질이 새퀴[9]인데 비해 어쩐지 죽고 나서 한참이 흐른 5부에서는 당시엔 본 적도 없었던 서왕모를 죽이기 위해 노력했다든가, 드래곤볼틱한 필살기 동귀어진을 개발한다든가 한다. 그리고 2부에선 칼싸움을 했는데 5부에선 갑자기 "치우창식"을 개발해 창의 신이 되었다고 묘사된다.

1.2.3 기타

판타지 라이브러리에도 소개된 바 있는데, 거기서는 ,,등의 무기를 발명한 것으로 언급된다. 근데 고우영의 십팔사략에서는 황제 헌원이 어린 시절에 뚝딱하고 만든 게 창과 방패라는 구절이 언급된다. 어?
사실 중국 신화에서는 한 가지 발명품을 만든 신이나 영웅이 신화마다 다르게 나오는 이야기들이나 그 반대가 많다. 이런 신들은 해당 직업인들이 가톨릭의 수호성인 처럼 각 직업의 시조이자 수호신으로 모시는데, 이렇게 많은 이유는 유명한 신이나 영웅을 내세워 미화하려는 목적. 그러다보니 하나의 신이 여러 직업의 수호신이던가, 실제 역사하고는 전혀 동떨어지는 우스꽝스러운 경우도 존재한다.

슈퍼로봇대전에선 용호왕 등 초기인들이 치우의 무덤 근처에 묻혀있다 나오지만 아직까지 치우의 초기인 같은 건 언급되진 않았다. 뭐, 신수들이 대거 나오는 판이니 나와도 별 힘은 못 쓸 것 같지만, 그건 알 수 없는 거고.

고우영의 십팔사략에서 보여지는 모습은 그야말로 포악하고 잔인한 원시 부족 족장으로서 맹수를 맨손으로 때려잡을 정도로 힘이 세면서 사람을 냅다 물어죽이는 괴물같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시시시시~"라는 웃음소리가 특징이자 포인트. 황제 헌원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꽤 잘 나갔었지만, 헌원이 신농씨를 굴복시키고 세력을 일원화하면서 맞붙은 대전에서 구리 투구와 무기들로 무장한 병사들은 헌원의 맹수부대의 밥이 되고, 안개도술로 적을 절벽으로 유인한 뒤 낙석으로 때려잡던 18번 전법도 헌원의 지남거로 인해 전부 파훼되면서 헌원의 칼에 의해 목이 달아난다.

고구려를 배경으로 한 사극에서는 이름 한번쯤 비춰주셔야 하는 것이 관례...일지도 모른다.

2011년 3월 둘째 주부터 조선일보 모닝플러스의 주간 어린이 한자 교육 만화 '맛있는 한자'에서 치우천왕 스토리가 연재되기 시작. 귀추를 좀더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자부가 등장하고 배달국 천자가 등장한 것으로 보아서는 유사역사학이 아닐 가망이 희박하다.

이상하게 일본에서 만들어진 삼국지 관련 매체에서 자주 언급된다. 삼국지 조조전이나 SD건담 삼국전 등. 물론 역할은 마왕.

작안의 샤나에서는 슈드나이의 옛 모습 중 하나로 나온다. 자세한 건 슈드나이 항목 참조.

타나카 요시키의 소설 창룡전에서 우종족의 왕으로 등장하며, 최종보스로 보인다. 우종족답게 소머리에 사람의 몸을 가진 괴물이며, 4권에서 잠깐 나왔다가 용왕 4형제의 삼남인 류도 오와루가 휘두른 칠성보검에 머리에서부터 사타구니까지 반토막이 나는 안습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작중에서는 72명의 형제들이 있다고 했으니, 어쩌면 진짜 치우가 아닐지도?

페르소나 3에서는 탑 아르카나의 최종 페르소나로 등장. 이명은 강군의 왕으로, 스킬카드 무도의 마음가짐을 주며 아이템화 할 경우 타케바 유카리의 최강 무기 원시만궁이 된다.

TRPG 월드 오브 다크니스 에서는 먼 옛날 동방의 늑대인간 부족인 핫켄의 장군이었다고 나온다. 핫켄이 대륙에서도 살고 있었을 때만큼 오래 전이라고.

그리고 이 치우도 모에선을 맞았다.후방 주의


태합입지전 5에서 치우의 갑옷이라는 아이템이 등장한다. 교토의 황거에서 1년에 한 번씩 벌어지는 천황의 친람 경기에서 전국의 괴물들을 뚫고 승리하면 랜덤으로 득템할 수 있다.

2 타이의 대모험의 괴물쥐

3 하세가와 치사메의 닉네임

마법선생 네기마!의 등장인물 하세가와 치사메가 넷 아이돌로 활동할 때의 닉네임.
  1. 황하 하류지역
  2. 묘족은 원래 양쯔강 이북에 거주하다가 후대에 남하했다고 알려져 있다.
  3. 대체로 오병에는 두 팔을 사용해야 하는 활이나 쇠뇌가 껴 있다. 거드는 거 맞잖아
  4. 혹자는 어전비가 산해경보다 이른 시기의 것이라고 하나, 이 역시 시대상으로는 전국시대의 것이고, 출토지역상으로는 한민족의 세력범위가 아니었다.
  5. 황제의 딸 발은 후에 가뭄을 부르는 재앙신의 속성을 띠게 되어, 이름의 한자도 妭에서 魃로 바뀌게 된다.
  6. 제나라에서 국가적으로 제사 지내던 여덟 신
  7. 이쪽 전승에서는 치우가 황제 헌원에게 막판에 패해 동북부로 돌아온 후, 이쪽 마을에 좌정하여 우신이 되었다고 전해진다.(서영대 저, 용, 그 신화와 문화 세계편 참고)
  8. 그네들 중에서도 바보가 아닌 이상 이런 드립은 안 치지만, 조선왕조실록 등에 기록된 치우 관련 제례는 중국에서 수입한 것일 뿐이다.
  9. 묘사가 환빠들에 비해 좀 안습(...)한게 어머니는 치우를 낳자마자 죽고(...), 호랑이와 함께 어린 생활을 하다가 인간 마을로 들어와서 소꿉친구 미리내와 이어지나 했더니 납치(...)되고 자기는 천왕이 되어 황제와 싸우는데 초반에 이기고 미리내가 죽은이후 흑화+이성을 잃어 갈수록 발려버린다(...). 결국 하늘의 도움으로 어찌어찌 이기지만 결국 쿠데타로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