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시벌

(퍼시발에서 넘어옴)

Percival

아서 왕 전설에 나오는 원탁의 기사의 일원. 퍼시벌 경(Sir Percival). 퍼시발이라는 표기도 대중적으로 쓰인다. 독일어로는 파르지팔(Parzifal) 또는 파르치팔(Parzival), 프랑스어로는 페르스발(Perceval)이라 불린다.

현대에는 이 소재를 바탕으로 작곡된 바그너의 악극 파르지팔(Parsifal)이 유명해진 관계로 세계적으로 파르지팔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통용되고 있다.
어째 전부 어감이...

1 유래

퍼시벌은 원탁의 기사로서 유명한 기사지만, 실상 퍼시벌의 원류가 되는 이야기는 아서 왕 이전부터 이미 웨일즈 전설에 존재하고 있었다. 실제로 퍼시벌의 원형이 누구인지는 짚어내기 어렵지만, 가장 유력한 것은 웨일즈의 영웅 페레두르(Peredur)라는 것이다. 실제 12~13세기 경에 정립된 《마비노기온》에서 페레두르는 퍼시벌과 동일시되고 있었다.

장창술을 특기로 삼는다는 점에서 페레두르(퍼시벌)는 웨일즈 신화의 태양신 레이 라우 기페스(Lleu Llaw Gyffes)의 계승자로 취급받는다. 레이 라우 기페스는 흔히 알려진 에린 쪽의 켈트 신화에 나오는 와 동일시된다. 루 라바다, 즉 긴 팔의 루라는 별명을 가진 이 태양신은 '긴 팔'로 형용되는 창을 무기로 삼고 있는데, 이 특징이 페레두르(퍼시벌)에게 계승된 것이다.

2 출신

퍼시벌의 출신에 대해서는 비천한 출신이라는 것과 고귀한 출신이라는 등 제설이 분분하지만, 가장 지지받는 설은 아리마대의 요셉의 자손이자 명망 있는 기사의 아들(보통 펠리노어 왕)이라는 전설이다.

어떤 전설에서든 퍼시벌의 어머니가 아들을 데리고 나와 산 속에서 은둔한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이 경우 퍼시벌의 어머니가 아들을 데리고 나온 이유는 보통 남편을 비롯한 기사들의 야만적인 행태가 싫어서, 또는 남편이 전투 중에 사망해 싸움에 진력을 냈기 때문이라고 설명된다. 이 이유 때문에 퍼시벌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기사라는 존재에 대해서 감추며, 퍼시벌에게는 사냥용 을 한 자루 쥐어줄 뿐이었다.

하지만 퍼시벌은 이 사냥용 창 한 자루로 온갖 들짐승은 물론이고 날짐승까지 창으로 잡고서 어머니에게 먹거리를 제공하는 등 탁월한 무인으로서의 자질을 보일 뿐더러, 급기야 우연히 기사가 지나가는 걸 보고 한눈에 반해 기사가 되러 길을 떠나버린다.

3 아서 왕 전설

다른 기사들과는 달리 그 등장부터가 간지가 나지 않는다(...) 아니 이름부터가...

이렇게 된 것은 본래 퍼시벌이 아서 왕 계통 전설의 인물이 아니라, 다른 민담의 주인공인데 아서 왕 전설로 편입된 것이 원인으로 추측된다. .[1]

삼베옷에 웨일즈식 바지로 등장하여 아서 왕과 동료들에게 비웃음거리가 되지만 전혀 신경쓰지 않고 왕비를 모욕하고 튄 웬 듣보잡 기사를 갑옷도 입지 않고 개발살 내버려 유명해지고 원탁의 기사의 일원이 된다. 상대 기사는 고명한 기사가 올줄 알고 있다가 왠 촌놈이 덤비자 비웃다가 끔살 당한다.

차후 성배를 찾기 위한 모험에서 갤러해드, 보로스와 함께 성배를 찾는데 성공한다. 갤러해드는 성배를 통해 하느님을 보고 승천(...)하고, 퍼시벌은 성배의 왕이 되었다는 듯. 애초에 성배 이야기가 아서 왕 전설에 편입될 때는 성배탐색의 단독 주인공이었으나 후에 프랑스 작가들이 란슬롯갤러해드를 아서 왕 전설에 끼어 넣으면서 성배 탐색의 주역 자리를 갤러해드에게 뺐겼다고 한다... 지못미.[2]

참고로, 이분이 하신 말씀 중엔 - 장 마르칼의 아발론 연대기 기준 - 어떤 여자들을 다른 여자들보다 더 사랑할 수 없다는 위대한 말씀이 있다(...)

프랑스에는 이 이름(Perceval, the Story of the Grail)의 문학작품이 있다. 여기서 오우거가 등장하는데, 인간의 도래 이전에 영국에 살던 존재들을 지칭하는 말로 나온다. '~옛 오우거들의 땅 위에 세워진 모든 영국의 왕국들은 그 창에 의해 무너지리라~'.

4 바그너의 신성무대축전극 파르지팔

4.1 개요


▲1882년 초연 당시 바그너가 직접 연출한 성배의 사원(The Temple of the Grail) 장면

볼프람 폰 에셴바흐의 서사시를 바탕으로 한, 리하르트 바그너의 만년의 종교적인 이상을 담은 대작 악극. 바그너의 최후의 작품.

바그너가 이 작품을 최초 구상한 것은 1857년이었지만 니벨룽의 반지 4부작, 트리스탄과 이졸데 등을 작곡하느라 만년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이 작품의 작곡에 매진할 수 있었다. 실질적으로 작곡한 기간은 1876년부터 1882년까지로 역작 니벨룽의 반지 4부작을 초연한 이후 남은 여생을 모두 이 작품에 쏟았다. 바그너는 이 작품을 초연한지 몇 개월 후 눈을 감았다.

작곡가 본인은 이 작품을 오페라나 악극이라 하지 않고 신성한 무대 축전극이라 했다.바그너는 이 작품이 떠들석한 세속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극장에서만 상연도록 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1막이 끝난 후 인터미션이 1시간이다. 그 사이에 저녁 먹고 오라는 뜻. 그러다보니 총 공연시간이 5시간 30분을 넘어서고(...) 바그너의 후기 악극들이 모두 순수 공연시간만 4시간 내외에 달하는 만큼, 독일에서는 인터미션마다 한 시간씩을 준다. 파르지팔의 경우 1막의 규모가 매우 크기 때문에 1막 후 1시간의 인터미션을 주고, 2, 3막 간의 인터미션은 짧게 주는 경우도 많다.

4.2 줄거리

1막 - 성배의 수호자 '암포르타스(바리톤)'는 스스로 고자되기를 시전한(...) 마법사 '클링조르(바리톤)'의 계략에 의해 성창을 빼앗기고 성창에 부상을 입게 되었다. 성스러운 호수에서의 목욕도, 어떤 약을 써도 상처에는 효과가 없었다. 그 상처는 '연민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순수한 바보'만이 치료할수 있다고 한다. 암포르타스와 기사들은 그가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암포르타스를 위해 약을 구해온, 정체를 알 수 없는 '쿤드리(소프라노)'라는 여자를 못마땅해하는 기사들에게, 상급 기사(또는 기사장?) '구르네만즈(베이스)'는 그녀를 옹호하며 기사들에게 성배와 성창에 엮인 이야기를 한다. 천사가 암포르타스의 아버지 티투렐에게 성배와 성창을 하사했고, 선한 마음을 가진 자만이 성배와 성창을 지킬 수 있다. 클링조르도 성배기사가 되기를 원하며 속죄하길 원하며 거세를 했으나, 성배기사들이 그를 비웃으며 쫒아냈다. 이에 앙심을 품은 그는 마법을 이용해 황무지를 화려한 정원으로 만들고, 미인계로 성배기사들을 타락시키려 했다. 이것을 본 혈기 넘치는 암포르타스가 섣부르게 그를 무찌르려 하나 변을 당하고, 지금은 빼앗긴 성창을 되찾아줄 이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해준다.

그 때, 신성한 숲에서 백조를 쏴 죽인 '파르지팔(테너)'가 끌려온다. 그는 어머니만을 알고 있는 완벽한 바보였다. 쿤드리는 그의 어머니 헤르체라이데는 전쟁에서 죽은 그의 아버지를 닮을까 두려워 세상과 단절시킨채 키웠다고 알려준다. 파르지팔은 자기가 기사들을 보고 그들을 따라간 것(아서왕에게?)을 기억하고 있었고, 쿤드리는 아들이 떠난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헤르체라이데가 죽었다고 전해준다. 구르네만즈는 파르지팔이 계시 속의 순수한 바보일지 모른다는 기대 속에 그를 '성배 의식'을 치루는 곳으로 데려간다.

성배의 힘은 신성한 빵과 포도주를 만들어 기사들을 강하게 하고, 암포르타스의 기력을 회복시켜주나 상처에 대한 지옥과도 같은 고통도 함께 주기에 이를 거부하나, 아직 무덤에서 살아있는(...) 티투렐의 명에 따라 성배 의식을 치룬다. 이 모든 걸 지켜보던 파르지팔은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고, 연민도 느끼지 못한다. 그걸 본 구르네만즈는 사람을 잘못 봤다고 생각하고 파르지팔을 쫓아낸다.

4.3 기독교, 불교적 색채

성배의 기사, 성창과 성배가 등장하는지라 매우 '기독교적 색채'를 띄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1막 중반부 이후 수십분을 통채로 기사단의 예배와 의식을 묘사하는데 할애했기 때문에 이 작품을 관람한 사람들은 이 작품의 종교적 색체에 깊은 인상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이 작품은 바그너가 만년에 도달한 종교/철학적 관점이 몽땅 녹아난 작품으로 기독교, 불교, 게르만 신화 등 다양한 요소가 결합되어 있다. 오히려 작품에서 시종일관 강조되는 주요 덕목들은 불교와 연관된 것들이다. 바그너 본인은 무신론자였고, 쇼펜하우어의 철학에 심취했던 만큼 불교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작품에는 불교에서 강조하는 덕목들이 녹아있다. 이러한 불교적 덕목들을 서양사람들이 친숙하게 여겼던 기독교라는 포맷을 빌려 표현한 것이라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4.4 니체와 파르지팔

본 작품으로 인해 바그너와 니체는 결별하게 된다. 기독교의 극복이 서구문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난제라고 여겼던 니체는 이 작품을 기독교적이고 또한 데카당스적이라 여겨 바그너와 완전히 결별하게 된다.

바그너가 뮌헨의 정적들으로부터 정치적 공세를 받고 반강제적으로 스위스 트립셴 산속에서 은거해 살던 시절, 인근 바젤 대학에서 24세에 독일 최연소 대학교수가 되었던 프리드리히 니체와 조우하게 된다. 이미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심취해 있었던 니체와 바그너가 가까워진 것은 자연스런 수순이었다. 스위스의 한적한 산골에서 바그너와 니체는 매일 같이 쇼펜하우어에 대한 토론으로 시간을 보냈다.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냈던 니체는 스스로 바그너는 아버지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또 니체는 세상에서 바그너보다 쇼펜하우어를 더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고 말할 정도로 바그너의 철학적 식견을 높이 평가하기도 하였다.

얼마 후 니체는 비극의 탄생을 저술해 독일 철학계의 총아로 떠올랐는데, 비극의 탄생에서 지향하는 예술은 다름아닌 리하르트 바그너의 악극이었다.

하지만 니체와 바그너는 이후 여러가지 이유로 서서히 멀어지게 된다. 우선 바그너가 바이로이트 저택으로 이사가면서 지리적으로 멀어졌다. 또 바그너의 여러가지 사상이 복잡다단하게 녹아있는 작품인 니벨룽의 반지 4부작의 초연과정에서 니체는 자신의 철학과 바그너간의 불일치점을 느끼게 된다.

젊은 시절 여러차례 바그너의 사상과 음악을 지지하는 글을 썼던 니체는 서서히 바그너에게도 비판적을 가하기 시작하는데 하지만 아직도 바그너에 대한 애정도 동시에 드러난다.

니체가 바그너와 결별해 나가는 과정은 그의 철학의 완성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의 저작 중 적지 않은 부분이 바그너에 대한 내용으로 할애되어 있다. 니체에게는 인간적으로나 사상적으로나 바그너가 너무나 중요한 존재였기 때문에 그가 바그너에 대한 그의 애증이 묻어나는 글들을 보면 안타까운 느낌이 든다. 니체 스스로는 바그너를 뛰어넘지 않는한 철학가로써 나아갈 수 없기에 안티 바그너의 길로 갔다고 한다.

바그너 부부는 니체를 자식처럼 여기기도 했지만, 니체의 인생에서 바그너가 차지하는 비중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니체가 서서히 자신을 비판하고 있다는 점을 인지한 바그너는 처음에는 무반응을 보이다가 마침내 니체가 자위를 많이 해서 시력에 이상이 생긴게 아닌가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와중에 바그너의 기독교를 소재로 한 파르지팔을 접한 니체는 애증의 감정이 교차하던 바그너와 드디어 결별을 결심하게 된다. 그 와중에도 니체는 파르지팔의 음악에는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4.5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극장과 파르지팔

바그너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하우스의 독특한 울림을 염두에 두고 이 작품을 작곡했는데 그 결과가 현재 이 작품이 들려주는 경이로운 음향이다.

만년이기도 했지만 바그너 작품 중에서는 비교적 작곡에 많은 시간이 걸린 편이다. 바그너는 이 작품을 작곡하면서 몰입하기 위해 방과 욕실을 온통 보라색으로 도배하고 향수를 자욱할 정도를 뿌리고 작업했다고 한다.

바그너는 이 작품을 세속적인 오페라 하우스의 떠들석한 분위기[3]에서 이 작품이 연주되기를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이 작품이 오직 바이로이트에서만 연주하도록 유언을 남겼다.

1882년 여름 제2회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초연되었다.[4] 바그너는 청중들에게 박수를 치지 말라고 했고 실제 페스티벌 기간 청중들은 박수를 치지 않았지만 한번은 혼자 박수를 치는 무례한이 있었는데 그는 바로 바그너 자신이었다.

바그너 사후 그의 음악적 유지를 받들기 위해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을 부활시킨 미망인 코지마는 이 작품을 바이로이트에서만 연주하라는 바그너의 유지를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코지마는 법원으로부터 법적인 보호를 받으려고 했는데, 독일 법원은 원저작권자인 바그너의 사후 30년 동안만 바이로이트의 독점 상연을 인정했다. 하지만 독일 국내법의 영향을 받지 않았던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초연 20년 후인 1903년 이 작품을 상연했다. 코지마 바그너가 항의했지만 소용없었다. 당시 메트로폴리탄측은 중부지방에서 올 청중들을 위해 뉴욕 시카고간 파르지팔 특급열차를 운행할 만큼 떠들석하게 홍보했다. 독일에서는 30년이 지난 1914년에 여러 극장에서 이 작품을 올리려고 했지만 그해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흐지부지되었다.

현재 이 작품은 전세계에서 자유롭게 상연되지만 바이로이트에서의 연주는 오랫동안 특별한 권위를 인정받아왔다.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연주되는 열개의 바그너 오페라(또는 악극) 중 니벨룽겐의 반지 4부작과 파르지팔은 기본적으로 매년 상연되는 것이 원칙이다.[5] 파르지팔은 페스티벌 초기에는 바그너 자신의 연출과 무대배경이 그대로 재현되어 상연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손자 빌란트 바그너의 유명한 연출과 거장 크나퍼츠부쉬의 지휘로 명성을 이어갔다. 빌란트 바그너의 연출은 무려 20여년이나 지속될 정도로 성공적이었다.[6]

5 가족 관계

보통 퍼시벌의 아버지로 꼽히는 것은 아서 왕의 검, 엑스칼리버를 한 번 부러뜨린 것으로도 전해지는 용맹한 펠리노어 왕이다. 퍼시벌의 어머니는 지혜롭고 강단 있는 인물로 그려지지만 그 이름은 밝혀지지 않았으며, 퍼시벌의 누이(누나라고도, 여동생이라고도 전해진다) 딘드레인은 성배전설의 히로인이라 불릴 정도로 눈에 띄는 여인이다.

《파르치팔》을 쓴 볼프람 폰 에셴바흐는 그의 다른 작품 《로엔그린》에서 파르치팔(퍼시벌의 독일 이름)의 아들로서 제2대 성배의 왕인 백조의 기사 로엔그린을 등장시켰다.

6 대중문화 속의 퍼시벌 경

7 인명

동명이인
· · · · · · · · · · · · ·


Percival

주로 영미권에서 남자 이름, 성씨로 쓴다. 어원은 켈트어로 '성배의 동반자'를 뜻한다. (History of Christian Names, Yonge, 1884). 링크

위에도 나왔지만 프랑스어권에서는 페르스발(Perceval), 독일어권에서는 파르치팔 또는 파르지팔(Parzival)이라고 쓴다.

변형으로는 Parsifal, Percivale

애칭으로는 퍼시(Percy)가 있다.

7.1 실존인물

7.2 가상인물

7.2.1 에어기어의 등장인물

에어기어의 등장인물. 외국인 소년으로 주근깨에 안경을 낀 Geek의 이미지. 물론 에어기어의 등장인물 답게 미형이지만. 외형에 걸맞게 엄청난 양덕후. 온갖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을 섭렵하고 있는 걸로 보이며, 그러한 매체에서 봤던 명대사들을 시도때도 없이 써먹는다. 예컨대 크샤나 황녀의 명대사를 써먹는다든가, 처음 벤케이를 보고 너 같은 할머니가 어디 있어라는 대사를 친다든가.

가웨인과 더불어 갑툭튀제네시스측의 인물로 첫 등장은 가상현실에서 이루어졌다. 여기서 가웨인, 니케와 함께 등장해 그 분을 가상현실 내에서 암살해버리려고 시도하지만 결국 실패. 그래비티 칠드런으로써 아기토미나미 이츠키를 가볍게 제치고 나가는 실력을 보여줬다.

이후에는 오사카에 등장해 요시츠네가 이끄는 트라이던트를 박살내는 작업에 착수한다. 직접 전투파인 가웨인과는 다르게 이쪽은 AT전차와 같은 기계를 조종해 간접적으로 공격한다. 다만 그걸 움직이는 컨트롤러가 PSP.

그러나 벤케이에게 걸려서 AT전차를 다 부숴먹고 본인도 리타이어하는 듯 했으나...

이후 갑자기 초거대 AT로봇병기를 타고 나타나서는 AT레일건을 쏘아대며 오사카트라이던트 멤버들을 개발살낸다. 이것도 조종은 PSP. 그러나 AT 레일건의 공격을 굉음의 레갈리아로 맞받아친 요시츠네 때문에 AT로봇이 폭발하고 그 폭발해 휘말려 사망하고 만다.

철저한 양덕후로써 유언이 히데부!!

7.3 기타

7.3.1 은하영웅전설에 등장하는 나이트하르트 뮐러의 기함

Perceval_fore.jpg
Perceval_%28BD%29.jpg
Perceval_ventral_fore_%28BD%29.jpg
Perceval(パーツィバル)

은하영웅전설에 등장하는 나이트하르트 뮐러의 신형기함. 독일어 발음이므로 페르치팔이라 읽는다.

버밀리온 성역 회전에서 기함을 잃고도 전투를 치러내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을 구한 공로로 하사 받았다. 신 은하제국에서 제일 처음 건조한 전함으로 제국군 총기함인 브륀힐트의 동종함이며, 최신형 답게 빔이 장갑에 직격해도 삐용!이라는 반사음과 함께 튕겨낸다. 사기다

동형함을 준 이유가 카게무샤이 아니냐는 루머가 있다.

8 관련 항목

  1. 물론 아서 왕 전설에 편입된 것은 퍼시발 뿐이 아니긴 하다. 문제는 퍼시발이 상대적으로 늦게 투입되었고 하는 일이 아서왕 전설의 큰 흐름에서 벗어낫기 때문. 아서왕 전설의 오리지날로 가면 활약할 기사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2. 이는 퍼시발의 켈트적 요소가 눈에 거슬린 수도원 신부들의 짓이다. 하지만 퍼시발 자체도 아서왕 이야기에 짜맞추기로 편입된 경향이 좀 세서... 성배 탐색 자체는 본래 켈트 전설인 마법의 솥 탐색 모험이 기독교적으로 변형된 것일 수도 있다. 본래 구전전승으로 내려오던 켈트 전승과 달리 문자화된 기록으로 남겨진 수도원측의 기술이 더 신뢰받을 수 밖에 없는 형편이라 확실한 건 없다고 생각하는 게 낫겠다
  3. 당시 오페라 공연 시에는 객석까지 실내 조명을 밝게 유지했으며 관객들이 연주 도중에 수시로 입장하거나 이동했고 잡담도 나누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4. 총 16회 공연되었다.
  5. 연출이 바뀔 때는 1년을 건너뛴다.
  6. 빌란트 바그너는 1966년에 사망했지만 그의 사후에도 파르지팔은 그가 생전에 연출했던 방식으로 계속 상연되었다.
  7. 비중있게 등장하지는 않지만 록시의 추천인이다. 다만 정식 배우가 아니라 감독 매튜 본의 일반인 지인이 찬조출연한 캐릭터이기에 속편이 나온다면 어떻게 될지는 미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