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소개
대한민국 국군 보병사단. 일명 육군승리부대. 경례구호는 해군 해병대 공군과 같은 '필승'. GOP대대에서는 완전작전 하겠습니다!를 덧붙인다. 베낀거 아니냐는 말도 있는데 부대가 승리부대니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다. 같은 필승 구호를 사용하는 육군부대는 제6보병사단과 제30기계화보병사단이 있다.
심볼은 3개의 동심원이 겹친 형태로, 각 원에는 다음과 같은 상징과 의미가 부여되어 있다.[1]
노란색원 : 고름을상징
붉은색원: 피를상징
푸른색원 :멍을 상징
즉 피와 멍과 고름의사단!
당연히 취소선은 농담이고,
붉은색 원 - 태양을 상징하며, 사단의 용맹성을 의미.
푸른색 원 - 평화를 상징하며, 자유와 평화를 의미.
노란색 원 - 달을 상징하며, 사단의 무궁한 번창을 의미. [2]
생긴게 양궁 과녁판 같이 생겼다고 해서 과녁판 부대라고 부를때도 있다. 또는 계란 후라이 부대.
멍(푸른색), 피(붉은색), 고름(노란색)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구호: 대성산 이상 무
좌측의 제3보병사단, 우측의 제7보병사단과 함께 중부전선을 담당하는 최전방 부대로, 휴전선 155마일 정중앙에 위치해있다고 설명한다. 부대가 주둔하는 강원도 철원군 및 화천군의 산악지형 특성상 산악전 부대로 분류된다고 한다.[3] 그래서 포병도 산악포병이라는 희한한 별칭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행군은 거의 산을 타는게 당연시되며[4] 이 산을 중심으로 사단의 거의 모든 부대가 산 중턱 혹은 근처에 퍼져있기에 부대에 따라서는 산을 오르내려야 밥을 먹거나 눈을 치울 수 있는 곳도 많다. 1996년에는 수해로 인해 사단 사령부를 포함한 거의 모든 지역이 초토화되었고, 18명의 장병들이 사망하기도 하였다. 현재는 DMZ 책임지역을 관리하고 1차적으로 적의 도발을 방어하는 최일선 부대이다.
2 개요
별로 널리 알려진 부대가 아니지만 의외로 15보병사단은 6.25 전쟁에서 전공을 세운 전통있는 사단이다. 1952년 11월 8일 제12보병사단과 함께 강원도 양양 전진리에서 38, 39, 50 보병연대를 기반으로 창설되었고, 이듬해 2월까지는 후방에 주둔하고 있었으나 5사단을 임무교대차 철수시키면서 15사단이 대신 전선을 담당하게 되었다. 53년도 부턴 1군단에 배속되었으며 배치된 곳은 고성 통일전망대 부근 351고지로서 이곳에서 북한군을 상대로 수차례 방어전을 벌여 크고 작은 100여회의 전투속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현재 강원도 고성군 통일전망대를 가면 이를 기리는 전적비가 세워져 있다. 승리부대라는 별명도 이 고성 전투의 승리 뒤 이승만 대통령이 프란체스카 여사의 의견을 따라 '싸우면 반드시 승리하는 부대'라는 의미로 지어준다. 이후 60년대에는 여주, 이천, 양평에 주둔하다가 춘천시 오음리로 이동후 2군단에 배속뒤 64년 부터 현 철원, 화천 지역에 주둔중이다. 참고로 이 부대는 4.19혁명으로 서울 고려대학교에 이동배치되었으나 사단장 조재미 준장은 이승만이 내린 4.19혁명 진압을 당당하게 거부했다.
3 사단가
1.
화랑의 넋을 이은 대한의 건아
무쇠같이 뭉치어 달려나가자
산천도 떠는구나 거칠 것 없다
지키자 금수강산 우리 손으로
드높이 휘날려라 승리의 깃발
원수를 무찌르는 제15사단
2.
철모를 조여라 굳게 조여라
겨례의 비원을 풀어야 한다
오늘도 다시 한 번 맹세 하노라
이루리라 조국통일 우리 손으로
드높이 휘날려라 승리의 깃발
원수를 무찌르는 제15사단
4 훈련소
4.1 제1신병교육대대
2007년에 신축되었다.
상당히 좋은 시설을 자랑한다. 또한 육군훈련소처럼 각 시설이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서 102보충대에서 교육을 15사단으로 받게 되었다면 시설 걱정은 안 해도 좋다. 그런데 보충대에서 그런걸 생각할 겨를이 있나? 눈이 오거나 춥지만 않다면 훈련은 어렵지 않을 것. 식당밥도 맛있다.[5] 화장실의 경우, 중대당 두개의 화장실에 양변기가 각 20개 정도 있다. 보통 한 기수에 250여 명이 입소하는 것을 감안하면 꽤 넉넉한 편. 온수 사용에도 관대한 편이어서, 아주 애매한 환절기가 아닌 다음에야 온수샤워가 가능하다.
주말마다 전투영화 시청하는 시간이 잡혀 있는데, 이 때 나라사랑카드 등으로 소량의 과자를 구입하는 것이 허용된다.[6] 많이 사서 남긴 다음 나중에 먹겠다는 생각을 하는 훈련병들이 많으나, 어차피 남으면 조교한테 죄다 뺏기니 그냥 빨리 먹는게 낫다. 수시로 점검하기 때문에 관물대에 숨겨도 소용 없다.
신병교육대에는 성당과 법당, 교회가 있는데, 성당에서는 한 달에 한 번 햄버거, 법당에서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짜장면을, 교회에서는 매주 빵과 사이다 (+초코파이), 한 달에 한번 이삭토스트를 주니, 다른 종교행사에 참여한 동기들의 정보를 수집해서 적절히 잘 챙겨먹으면 좋다. 초코파이! (주세요!) 참고로 신교대 종교활동 부식은 사단 군종부에서 지원한다. 2014년 초중순 즈음에 법당에선 머핀을 제공했는데 종교행사 전날 서울 코스트코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4.2 제2신병교육대대
2005년에 신축[7]되었으나, 현재는 일반 전투부대로 전환되었다.
산 중턱을 깎아서 만든 부대인지라 위병소와 통합막사와의 고도차는 60m 가까이 된다. 여기서 3km 체력측정하는 교육생들 및 기간병들 지못미 특히 막사로 가는 중간지점에 50m 정도의 경사로가 있는데, 경사가 상당히 가파르기 때문에 여기에 처음 와서 의류대 메고 올라갈때 방심하면 낙오할 수도 있으니 조심하기 바란다. 실제로 병사들끼리 위병소를 지났다고 훈련(특히 행군)이 끝난게 아니다. 라는 말이 돈다. 신교대였던 과거나 일반 전투대대인 지금이나.
2013년부터는 제1신병교육대대에서 훈련병들의 교육을 맡고 있기 때문에 다시 이전처럼 야전부대로 돌아갔다. 덕분에 산악대대가 좀 덜 힘들어졌다. 이전에는 연대의 모든 훈련을 도맡아서 힘들기로 유명했다. 일주일 뒤에 훈련 또 훈련
4.3 분대장 교육대
제1신병교육대대의 한 개 중대가 맡아서 실시한다.
사단 소속이 아닌 군단 소속 분대장 후보생도 해당 교육대에서 교육을 받는다. 분대장 교육대 교관이 상당히 FM에다가 빡센 사람이었기 때문에 병사들에게 유명했다. ("당신들이 분대장이야~?, 당신들은......", 고음 샤우팅 덕에 조교들 사이에서는 별명이 익룡이었다 카더라) 현재는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 또한 분대장 교육대 이용 중 px이용이 제한적으로나마 가능하다.
분대장 교육대에 시험이 있는데, 이 부분이 매우 엄격해 일정 커트라인을 넘기지 못하면 퇴소처리 된다. 각 분과 별로 성적우수자 포상과 모범분대장 포상이 있다. 하지만 모범분대장 포상은 대부분 행정보급관 교육생이 받고, 이 행정보급관 교육생은 같은 대대 내 입소자 중에서 뽑는다.[8] 의무대나 PX이용 같이 부대 안에서 필요한 것들을 챙기는 역할을 맡기 때문에 편의상 그렇게 선정하는 것. 그러니 포상을 노린다면 성적우수자를 노려보는 것이 낫다. 아니면 조교에 지원하지 그랬어. 누가 그런 메리트가 있는 줄 알았나.
5 예하부대
- 육군 연대급 이하 부대는 고유명칭(예: 육군 제1보병연대)을 사용할 수 없고, 반드시 통상명칭(예: 육군 제3260부대)이나 애칭(예: 한라산 부대)을 사용해야 합니다. 또 주둔지 위치를 특정할 수 있는 내용 또한 작성할 수 없습니다. 내용 작성에 주의해 주세요.
- 번개연대
- 을지연대
- 독수리연대
- 포병연대
- 사단 직할대
5.1 독수리연대
을지연대나 번개연대처럼 GOP 근무를 하지 않고 매번 훈련만 뛰는 부대다. 훈련량은 27사단 뺨치며 상호간에 훈련도 자주 뛴다. 이 부대에는 신병 교육대대가 있었으며 2010년 말 제 2 신병교육대가 창설됨으로써 다시 제 2 신교대가 전투부대로 환원되기 전까지는 전투부대는 산악대대만 남게되어 독수리 연대의 모든 훈련은 죄다 산악대대가 뛰게 되었다.[9] 그 결과 그 부대원 전부다 FTX 훈련의 달인이 되었으며 매주마다 산을 타게 되었다. 후방연대라고 해서 편한게 아니다. 그 주변은 온통 산이며 지형조차 매우 험악...화천은 신이 버린 땅이다.해서 정말 쉽지 않다. 또한 행군 훈련 및 전술훈련도 굉장히 많아서 그 부대원들에게 애로도 많았을 뿐만 아니라 그 당시 대대장도 사단에서 빡세기로 유명하던 사람이었다. 오죽하면 특공대라는 별명이 붙혀졌을까... 예를 들어 사격측정을 하는데 3번 연속 18발을 못 맞출시 맞출때까지 매번 사격을 해야했으며 아침먹기전에 ftx 점심먹고 ftx, 자기전에 5대기는 덤... 한 중대 평가훈련이 있었는데 대대장은 나머지 중대도 같이 훈련을 뛰라고해서 나머지 중대도 웃지못할 상황을 만들게 되었다. 유격때는 유격 하루일과가 끝나고 나서 밤에 간부사격도 하였다. 간부들의 아우성 신막사가 건축하기 전까지는 15사단 최악의 시설을 자랑했으며 부조리 또한 심했었다.[10] 현재는 제 2 신교대가 전투대대로 환원됨으로써 나아졌을꺼라고 추정. 현재 연본을 제외한 전 대대가 신막사 애용중이시다. 산악대대 근처에는 이외수씨가 사는 감성마을이 있다. 주 마다 한번씩 해방촌 구보를 하니 숙달되지 않은 신병은 퍼지지 말자. 퍼지면 욕 많이 먹는다. 군가는 덤.[11] 운이 좋으면 이외수씨를 볼 수도 있다. 홀연히 나타나서 휴가증을 뿌리고 사라졌다 하더라
대신 독수리연대 산악대대병사들이 좋은점은 다목리가 코 앞이라 휴가나가기가 굉장히 편하다는 점이다. 바로 강원고속 동서울행 버스를 탑승할 수 있다. 대신 9시 이후에는 서울로 나가는 차가 없으니 주의 할 것. 다목리에는 1박 2일에서 나온 중화요리 집도 있다. (효동각)[12]
신병교육대대가 배속되어있는 독수리연대 본부로 배치 받는 병사들은 아주 시설 좋은 신교대를 겪고나서 연대본부는 엄청 좋을거라고 생각 할 수도 있는데 신병교육대대가 배속되어 있는 연대의 제일 시설 좋지 않은 곳이 연대본부다. 원래 독수리연대 산악대대가 제일 안좋고 부조리도 심했는데 신막사가 들어서면서 통합막사를 사용중에 있다. 하지만 그 대대는 옛날 간부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많아서리..... 식당역시 막사쪽으로 이전. 예전 산악대대 식당은 간부식당이 없고 그냥 식당안에 병사랑 같이 먹었었다. 간부식당같은 식당이 아니여 보급도 구려서 잼도 먹는날이 있고 못먹는 날도 많다. 연본에는 본부 통신 의무중대가 본관 2층을 사용하는데 안에나 밖에나 안습이다. 사지방은 컨테이너박스 3개에 나뉘어서 사용할 수 있다. 지원중대는 몇 개의 생활관으로 나와있지만 본관과 시설이 별 다를바가 없다. 수송대는 연대본부 건물과는 조금 떨어져 있다. 다른 연본과 같이 구막사를 사용중이며, 2009년에 리모델링을 한 이후로 나름 살만한 생활관이 됐다. 대신 길다. 예전에는 한 밤 중에도 여름의 열기가 식지 않아 샤워 하고난뒤에도 땀을 흘렸다고 하였으나[13] 리모델링후에는 연본에서 특히 화장실만큼은 제일 좋다. 또한 연본에서 인원이 가장많은 관계로 사지방도 수송대 것은 따로 있다. 다만 본부중대에 있는 px까지의 거리가 상당히 멀다...군가를 3번이상은 불러야 도착한다... 연본 근처에는 승리회관이 있는데 면회나 분대회식, 간부회식 등으로 사용되며 영외 px도 하나 딸려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연대본부가 말이 본부지 여러모로 시설은 제일 좋지않다. 그래도 밥은 맛있는편. 굳이 순위를 매겨보자면 수색중대>신교대>연본>돌격대>산악. 수색중대는 진짜 맛있다. 심지어 식사추진된 음식마저도 연본 내부에서 갓 한것보다도 맛이 있다. 또한 가끔 야간 사격훈련중에는 수색보급관이 식사추진에 기본 밥과 라면까지 넣어주기도 한다!
관할 구역에 문화재로 등록된 인민군 막사가 있다. 근데 볼 것도 없다. 그냥 덩그러니 집 한 채 있을 뿐.
5.2 번개연대
GOP 근무를 들어가는 부대로써 부대 전체가 민통선 내에 위치하고 있어 함부로 접근할 수 없다. 특히 이 연대가 방어하고 있는 GOP는 7사단 GOP와 맞먹을 정도의 최악의 난이도를 자랑하고 있으며 GOP에 들어가는 승암고개[14] 의 경사는 정말 급하다. 대신 포장 되어있는게 다행. 운전하다보면 땅을 보는 게 아니라 하늘을 보고 운전한다. 일단 15사에서 이 부대에 배치되면 애도를 표한다. 훈련은 타 부대보다 덜할지라도(이마저도 2015년 기준 초임 연대장과 PKO출신 초임대대장 3명이 한번에 전입와 타연대 못지않은 훈련량을 보여준다. 한 달에 부대정비 없이 훈련을 얼마나 많이 할 수 있는가 몸소 느끼게 해준다. 2015년 불패대대 기준 혹한기훈련 4번 시행) 지형이 정말 열악하기 때문이며 겨울에는 상습적으로 영하 30도 이하로 떨어질 때도 있다. 무려 연본에서도! 연본 위치가 해발 750m니 할 말이 없다물론 여름에는 시원하지는 않다. 또한 GOP대대는 휴가를 나가려면 산 속에서 차량을 탑승하고 나가야 하기 때문에 여러가지 애로가 넘치나, 철원군 와수리에서 동서울까지는 1시간 반이면 가므로 그걸로 위안을 삼자. 연본이나 타 대대 소속은 민통선 안으로 강원고속 버스가 다니므로 시간에 맞추어 탑승하면 되므로 꿀이다. 이 부대 또한 사단에서 중심이 되는 모 산을 뒷 산처럼 들락날락 하므로 미리 익숙해 지면 편하다. 예전 장혁과 김준현이 이 부대에서 복무하였다.
타 연대는 신막사가 올라갔거나 건설하는 중이지만 오직 이 연대 소속 예하부대만큼은 초지일관으로 구막사를 사용 중이다. 특히 연본 px는 황량할 따름이다. 아마 포병연본과 더불어 가장 좋지않은 막사를 가진 부대가 아닌가 싶다. 여담으로 수송대가 따로 독립중대 신세라서 황금마차가 들어온다카더라..역시 사령부가 좋다. 지금은 어떻게 됐는지 잘 모르므로 추가바람.
민통선 안 말고개 정상 부근에 한국군 보병 6사단의 금성 전투 전과를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탱크는 덤. 말고개를 넘으면 철원군과 철원 평야가 나온다.
5.3 을지연대
이 부대 또한 번개연대와 더불어 GOP 근무를 들어가는 부대로써 옆에 번개 연대 보다는 낫다는 평이다. 이 부대 관할로 승리 전망대가 있으며 가끔 민간인이나 VIP들이 찾아온다. 여기 브리핑하는 병사 브리핑 잘한다 가끔씩 대학생들 국토대종주하러 온다. 마현리대대가 구막사였으나 수 년간 컨테이너 생활을 한 끝에 신막사로 입주를 했으며 육단리 대대는 이미 신막사가 들어섰었다. 육단리 대대 옆에는 필승회관이라고 해서 회관과 영외PX가 있으며 부대 근처에 마을이 있다. 교통이 타 부대보다 낫기 때문에 접근성이 좋은편. 이 부대 병사들 또한 다목리 말고 와수리를 이용하므로 오히려 서울까지 가는데 독수리연대보다 시간이 적게 걸린다. 독수리 연대 병사들이 타는 버스는 서울로 나가는데 광덕고개를 넘기때문. 이 광덕고개를 넘으면 포천시인데 내려가가보면 그 유명한 박달 유격장이 있다. 이 부대 또한 모 산을 관할하기 때문에 제집처럼 드나들기 때문에 퍼지지 말자. 정상에서 북쪽을 바라보고 앉으면 북한이 잘 보인다. 2010년에는 북한군 GP초소에서 이 연대소속 GP로 총격을 가했으나 바로 맞대응 사격을 하기도 하여 뉴스에도 실린적이 있다. 45초 완전 작전이라고도 하며 즉각 대응을 한 병사들은 여러차례 포상을 받았다고 한다. 이 부대가 관할 하는 곳에 유격장이 있으며 예전 모 대대가 주둔하다가 떠난 후 유격기간에만 사용하는 막사가 있다. 화장실이 최악이며 샤워실도 상상에 맡길 것. 그래도 텐트치는거 보단 낫다. 9월 말 부터 유격뛰는 인원들은 강원도 특유의 추위를 고려하여 화학대에서 제독차를 지원해줘서 온수!!로 샤워를 할 수 있다.
을지연대는 연본이 구막사였으나 현재 btl 공사를 마치고 신막으로 입주했다. 예전 구 막사 특히 수송대/의무대 막사는 최악..... 거기에 사람이 살수 있는가라는 말이 나올정도로 후졌다. 화장실이...... 또한 거기는 밥 먹으려면 거진 등산을 해야하기 때문에... PX도 황량했다. 현재는 신막사로 바뀌어 나름 살기 좋아졌다.취사장이 복지관과 같이 붙어있어(옛 취사장은 군수과 창고가 되고..) 밥먹으러 갔다가 2층으로 올라가 노래방이나 사지방 등을 즐길 수 있게 됐다.연대 본청과 생활관이 한 건물로 통합되어있고,최근에는 본청 중앙 입구 위에다가 대형 사단마크를 설치하였다.신막사로 바뀌고 난 후에는 15사단 내에서 가장 시설 좋은 부대라는 말이 나왔다.(ㅎㄷㄷ...)
모 산 정상을 관할중인데 이 때문에 군 VIP가 자주온다. 두 달 있으면서 3스타와 4스타,그리고 화천 군수 를 몇 번은 봤다고 한다.
5.4 포병연대
- 포병연본(명포부대)
- 상무 포병대대
- 충무 포병대대
- 청룡 포병대대
- 백호 포병대대
포병연본과는 달리 대대들은 여러곳에 퍼져있는데 한 곳만 빼고는 하나같이 접근성이 좋지 않다. 그 한 곳도 산 중턱.. 예전 승리포병연대 한 대대에서 송승헌이 복무하였다. 병과 특성상 독립포대가 많으며 한 대대만 신막사였으나 다른 한 곳이 완성되어 거진 대학교 캠퍼스 뺨치는 시설을 자랑한다. 한때 그 신막사 공사시 모 고개에는 매일 수십대의 레미콘 차가 들락날락 거렸다. 안그래도 길이 좁은데...
155㎜ 견인포 3개 대대와 155㎜ 자주포 1개 대대로 구성된 육군15사단 포병연대는 이 같은 실전적 교육훈련을 통해 적 도발에 대비한 즉각 대응사격태세 유지와 적 도발 시 원점타격이라는 기본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고 있다.
15사단 포병연대는 6ㆍ25 전쟁 중인 1952년 8월 7일 전남 광주 포병학교에서 제9야전포병단으로 창설됐다. 이후 1953년 4월 1일 현재의 15사단에 예속됐다.
특히 부대는 6ㆍ25 전쟁에 참전한 몇 안 되는 포병연대로 수도고지전투(강원 금성군)와 한국군 최초의 제병합동 화력지원 전투로 기록된 고성지구전투(강원 김화) 등 창설 7개월 만에 100여 차례의 전투에 참전, 9344명을 섬멸하고 24명을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후 부대는 1986년 7월 육군 장비전력화 계획에 의해 155㎜ 개량형 견인곡사포 KH-179를 도입했고 1996년 12월에는 포병대대 사격지휘체계(BTCS : Battalion Tactical Command System) 배치를 완료했다.
또 1999년 4월에는 승리 포병 훈련장을 마련, 전술전기 연마의 토대를 구축했고 2005년 11월 전자 기상관측장비 GL-5000P의 전력화, 2008년 8월 육군전술지휘정보체계(ATCIS : army tactical command information system) 전력화, 9월 BTCS A1전력화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전력 보강을 해 왔다. 2014년 11월 신형 포병관측장비 TAS-1K의 전력화를 완료해 포병전력의 타격능력을 크게 향상시켰다.
현재 모 대대가 견인포에서 자주포로 전환되었다고 한다. 자세한 것을 아는 분들은 추가바람
개편관련한 사항은 언급하지 말길.. 코렁탕감임
5.5 직할대
타 부대와 마찬가지로 몇몇 대대를 제외하면 사령부 옆에 옹기종기 붙어있다. 사령부 안에 있는 본부대와 통신대의 통합 막사만 제외하고는 전부 구막사다. [15] 그래서 타 연대 통신병들이 통신대대에 오면 시설 좋다고 부러워하기도. 소문에 의하면 요즘 군대가 좋아져서 pc로 리그 오브 레전드를 할 수 있다고 한다.[16] 2011년에 사단 연병장에 남성대에서 공수해온 잔디를 깔아서 현재 잔디가 깔려있다. 잔디를 깐 장병은 전부 2박 3일 보상휴가를 받았다.
2015년 3월 중순 쯤에 수색대대가 막사 리모델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색대대는 전 대대원이 선 후임을 끊는 것 뿐만 아니라 휴가가 적은 부대로 알려져있다. 예전에는 많이 줬는데? 관심병사만 아니면 포상 2-3개는 받아 나갔음
6 사건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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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오혜란 대위 성추행 자살사건
현역 육군 대위가 현역 육군 소령에게 각종 가혹행위와 "하룻밤만 같이 자면 군 생활 편하게 해주겠다"는 등의 파렴치한 성희롱과 성추행을 당한 끝에 자살한 사건. 여군 대위에 대한 성추행, 피해자 자살, 가해자의 아버지가 장성 출신이라는 보도, 소속부대의 증거 위변조 의혹 보도, 1심 집행유예, 결국 국회의원 4명이 국방부를 항의방문하고 국방장관이 재조사를 지시한 뒤에야 대법원에서 실형이 선고되는 등 한국군 내의 여군의 처우와 군내 사망사고를 다루는 고위 장교의 안이함, 군사법원의 한계 등 국군의 많은 문제점이 결집된 사건이다.
2012년 10월 16일, 15사단 부관부 인사행정장교로 복무했던 오혜란 대위(여군 54기)는 15사단 부관참모인 노승원 소령(3사 35기)에게 10개월 동안 지속적인 언어폭력과 성추행에 시달리다 자신의 차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노승원 소령은 오혜란 대위에게 "하룻밤만 같이 자면 군 생활 편하게 해주겠다"라며 지속적으로 성관계를 요구했다. 약혼자가 있는 오혜란 대위는 이를 거부하자 10개월 동안 매일 보복성 야간근무를 시키는가 하면 다음날 아침 출근해서 막상 야간근무한 서류는 제대로 보지도 않고 집어 던지는 등의 가혹행위를 했다.
피해자의 기록으로 사건을 재구성한 기사. 지독한 모욕과 가혹행위가 이어졌다는 내용이 보도됐다.
피해자가 불교 신자였음에도 기독교도인 노 소령예수님이 직접 채찍 들고 오실 겁니다.은 매주 교회에 나올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아무리 군대고 장교 사이라지만 신앙 생활에 이런 식으로 강요와 간섭을 하는 것은 지극히 잘못된 일이다. 이 사건을 보도한 한겨레의 기사에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아버지가 장성 출신이라 사건을 보고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내용도 나온다. 피해자 오 대위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노 소령이 다른 여군 6명에게 폭언과 폭행을 가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 일로 인하여 부관부가 전격 해체되었으며 1심 판결에서는 징역 2년 집행유예 4년이 선고되어 논란[17]이 되고 있다. 군 검찰과 노 소령 변호인 둘다 항소할 뜻을 밝힘에 따라 2014년 11월 기준으로 2심 고등군사법원에서 재판이 진행되었으며 가해자 노 소령은 집행유예 상태로 불구속 수사를 하고 있었다.
사건에 대한 15사단의 대응은 많은 비판을 받았다. 증거 위변조 의혹은 1심의 약한 형량에 더해 여론의 공분을 사는 계기가 됐고, 결국 국회의원들이 국방장관에게 직접 항의방문을 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백미는 부사단장이 무속인의 말을 빌미로 유족에게 가해자를 용서하라고 권한 사건. 유족이 분노한 것은 당연하다. 그보다 한국 육군 부사단장 정도 되는 고위 장교가 자살한 부하 장교 유족에게 이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상식 밖이다.
증거 위변조 의혹도 제기돼 결국 국회의원 4명이 국방부를 항의 방문했고 국방장관이 재조사를 약속하는 사태로까지 번졌다.
피해자 오혜란 대위는 순직이 인정돼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2014년 11월 4일, 군인권센터에서 심리부검결과에서 오 대위의 자살원인이 성추행과 가혹행위로 인한 우울증으로 나왔다. 15사단 배치 이전에는 정신적인 문제가 없었는데, 15사단 배치이후 노 소령의 성추행과 가혹행위로 인해 정신병이 생겼고, 이로 인해 자살했다. 군인권센터는 죄목을 강제추행죄에서 강제추행 치상죄로 격상하라고 고등군사검찰부에 요청했다. 2014년 12월 18일, 고등군사법원 선고공판에서 가해자 노 소령은 보통군사법원의 원심을 깨고 징역 2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오 대위가 당한 수모에 비하면 죄가 너무 가볍다는 의견이 절대 다수이다
마침내, 2015년 7월 9일, 대법원은 가해자 노 소령에게 징역 2년 선고를 확정했다. 그와 동시에 2심 고등군사법원에서 제시하지 않았던 성폭력 특례법 제42조 제1항에 따른 신상정보 등록대상자로도 등록되었다.
6.2 구상훈 이병 가혹행위 은폐 사건
해당 사건을 뉴스화면 캡쳐하여 인터넷에서 재구성한 짤방
2012년 2월, 해당부대에서 근무하던 구상훈 이병이 19일만에 쓰러져 식물인간이 된지 1년 7개월만에 깨어나고, 1년이 지나 말을 할 수 있게 되자 자신은 구타당해 실신한 것이라고 KBS 취재기자를 통해 최초로 폭로된 사건이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은 KBS 시사기획 창에서 2014년 11월 11일 방영되므로 사건내용이 추가될 수 있다.
구 이병의 뒤통수에 난 상처가 욕창[18]이라는 군의관의 말에 관계자들은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고 당시 군의관은 진술서를 쓰지 않았다. 또한 군 수사기관은 구 이병 부모들에게는 뇌동정맥 기형에 의한 뇌출혈이라 말해 가족들이 납득했다고 군 수사기관은 주장했다. 문제는 KBS 취재기자가 입수한 2012년 3월 9일 구 이병 간호 기록집을 보면 욕창없음이라고 표기되어있다. 3월 5일, 부모에게 욕창이라고 설명한 군 당국이 거짓말 했을 개연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며, 사건 당일 구 이병의 상처에 대해 다 알고 있었다. 구 이병이 의무대에서 누워있을 당시에는 생활복 상의에 군복 하의 상태였다고 한다. 구 이병 부모는 사건이 일어난 이후, 군 관계자에게 구 이병의 군복, 옷가지, 소지품을 돌려달라고 했는데 항의를 했음에도 끝내 돌려받지 못했다. 이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당시 구타 가해 지목 선임병사 7명중 한 명은 뻔뻔스럽게도 구타나 가혹행위 본 적도 없고 한 적도 없어요라고 말하는 건 물론 무고죄로 맞고소하겠다고 나섰다.
구 이병 가족들은 사건 초기에 청와대 신문고, 인터넷 게시판 등에 올리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했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구 이병의 증언으로 가족들은 현재 사건 당시 가해 선임병사들을 형사고소 준비하고 있다. 구 이병 변호인은 제22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 임병장 공동변호인과 제28보병사단 폭행사망 사건 가해병사 하 병장 변호인을 맡고있는 김정민 변호사이다.
사건이 커지자, 육군 측은 구 이병이 의식을 회복한 것에 대해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육군 측에서 정부 유관기관 및 민간 수사기관 등과 공조하고, 또한 가족이 원하면 가족을 참여시킨 가운데 재수사를 하기로 결정했지만, 가해자들이 전부 전역했고, 피해자도 전역해서 육군이 수사할 권한이 없는데 여론이 빗발치니깐 사건을 무마해 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와중에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재조사한다면서도 기존 군 수사결과를 신뢰한다고 말해 논란이 일고 있다. 도대체 뭘 믿고 신뢰한다고 말할까?
2014년 12월 17일, 별로 신뢰가 안가는 육군에서 재수사가 밝혀졌는데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 사건이 은폐된 거 그대로 발표했다.# 구 이병 가족들 및 시민들은 이 결과를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 절대 다수. 조사과정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병사들은 계속 무고죄 드립을 난무하고 있는 실정이라 향후 구 이병과 가해자들은 현재 민간인 신분이기에 고소가 접수되면 민간수사기관을 통해 수사진행될 예정이다.
7 그 외
재수가 좋지 않은 이상 별별 힘든 곳에 걸릴 공산이 크다. 연대의 경우 미묘하게 산지지역과 평야지역이 교차되어있는 작전지역이 있고 이 중 사단이 덜 신경쓰는 연대도 있으며, 그런 연대 산하는 고생을 더 한다.
그렇기 때문에 2사단, 12사단, 21사단과 더불어 피박 중 하나다. 7사단이나 27사단도 이런 취급을 안 받는 점을 생각하면 왠지 안습이다. 거기에 15사단 자체도 어떤 곳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 실례로 몇몇 전역자들은 15사단이 어디냐고 물어보면 "은둔부대로서 북한군이 쳐들어오면 갑자기 튀어나와 막아내는 부대."라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그도 그럴것이 워낙 산골인데다가 삼면이 메이커 부대로 둘러싸여 있다!!! 때문에 이 사단에 배치받게 되는 신병들에겐 괜찮은 부대로 소문 나 있으나... 27사단에 가려서 그렇지 훈련이 상당히 빡세며[19] GOP섹터는 7사단과 더불어 최악이다. 여기 배치되는 보병 특기 신병들은 개고생이 확정이다. 천국에 온 것을 환영하오 용사여일단 여름에는 39도까지 올라가고 겨울에는 영하 30도 이하로 떨어지며 GOP 지역의 거의 모든 섹터가 맥도날드 로고 마냥 이어져 있고, 운전병들에게도 굉장히 애로사항이 꽃피는 지형이었으나 도로만큼은 점차 나아지는중... 예전 사고사례를 보면 고개부분의 도로가 비포장도로 길이었기 때문에 간부들이 오토바이타고 출퇴근하다가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20년 전만해도 전 구간이 포장 도로가 아니라 죄다 비포장 길이었다. 현재 GOP 지역 일부분을 제외하고 어지간한 도로는 포장이 되어있어 운전하는데 크게 지장은 없다. [20] 하지만 사단 본부마저 영내 지형이 험악하기에(...) 통합막사 올라가는 길 경사가 겨울에 눈이 내리면 근무병들의 절규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보충병들이 도미노처럼 넘어지는 광경도 목격할 수 있다. 눈도 참 많이 내린다. 거의 이틀에 한번 꼴로 내리게 된다. 육군 간부들 사이에선 유명하다고 한다. 왜냐면 죄다 산밖에 없느니 말이다 하하하.
매해 초, 화천군에서 열리는 산천어 축제 때에는 사단과 연대에서 병사들을 뽑아다가 주말에 많이 축제에 즐기기 머리수 많이 늘리기 위해서 내보낸다. 일과중에 당당히 외출을 할 수 있으므로 좋긴 하지만 실 목적인 PC방 등지에는 헌병들이 펜을 꺼내든채(...) 잠복하고 있으므로 그냥 축제 먹거리나 실컷 먹고 오는게 보통이다. 어자피 가도 제대로 못한다. 이미 예약 같은게 꽉 찼기 때문.가을에는 민ㆍ관ㆍ군 한마음 축제라는 이름으로 대성산 축제를 하는데 걸그룹을 초청한적도 있었다. 근처 감성마을에 사는 이외수가 축제기간에 부대 위병소로 찾아와서 근무자에게 랜덤으로 한장 주고 가는 식의 포상휴가증을 뿌리기도 했다고 한다. 여러가지 행사가 있다. 가령 예를 들어 의무대에서는 인바디 체크를 해서 측정 결과를 알려준다던가 유격체험 및 타로카드 심리체험, 플스로 위닝 대회나 철권을 하여 상품을 주기도 한다. 2011년 기준. 축제하는 곳 뒤에 대성산회관이 있는데 목욕탕을 이용해도 좋다. 근처 다목리의 식당에서는 파닭이나 중화요리, 순대, 막걸리 떡볶이 등 여러가지 음식을 팔며 물가는 당연히 비싸며 서울보다 500원 정도 비싼수준. 옆에 다목초등학교에서 본격적인 축제가 벌어지는데 놀다가 뒤를 보면 사열대 위에 사단장님이 허허허 하면서 앉아계신게 보인다. 여기서 잘하면 포상휴가! 2011년에는 포병연대 소속 모 대대가 받았다.
연예인 송승헌과 장혁이 복무했던 부대로 유명하며, 그 외에도 성우 정재헌씨가 수색중대, 아이돌 그룹 젝스키스 출신 장수원도 이 부대 본부대 군악대 출신이다. 이땐 그냥 아재였는데 TV에서 얼굴 환해진거 보면 역시 관리가 중요한 듯개그맨 김준현은 번개연대 수색중대 출신이었으며 상추는 불미의 사건으로 독수리 연대로 전출오게 되었다. 근데 소문으로는 전역할 때까지 춘천병원에 몇개월동안 있었다고... 가수 전영록씨도 이 부대 출신이다. 해당 연예인이 부대에 있던 시절에는 산천어 축제 등 군부대 관련 축제때에 지원온 연예인이 꽤 빵빵했으나 현재는 그냥 조촐하다.[21] 비슷한 사례로 김태우가 복무했던 27사단이 있다. 번외로 소셜 페스티벌 텐트 24시로 유명한 이광낙씨도 15사단 을지연대 모 대대 중사 출신이다. [22]
송승헌의 경우는 당시로서는 어떻게 다뤄도 곤란해질 병사로 간주되었기 때문에,민통선 북쪽에 있는 부대로 배치되었다. 민통선은 아니지만 인적이 드문부대로 배치되었다. 그래서 자대 배치시 대부분의 사단이 그렇듯이 포병연대에 일단 차를 타고 갔고, 당일에 자대가 된 105밀리 견인포병대대에서 차를 몰고 와서 다른 신병들과 함께 실어갔다. 이 항목에서 '원래 배속되었던 대대 위치가 도로변'이라고 서술된 이유는 15사단 포병연대가 다목리에 있는 점에 기인한다. 그리고 그 몇시간 사이에 포병연대의 행정병들이 깔깔이에 송승헌 싸인을 다 받았다는듯 하다(…). 유일하게 대한민국 건국 이래로 봉오리가 붐빈적은 송승헌이 전역하던 날이라고 하는데 일본에서 팬들이 와서 진을 쳤다고 한다. 일본을 비롯한 국내외 팬들을 실은 관광버스 40대가 봉오리 길을 막아서 독수리연대 돌격대대 공지합동 훈련이 지연되었다고 한다. 당시 거기서 근무하던 부사관분의 말이 물동량 차량이 관광버스 때문에 이동을 못해서 오후 늦게 훈련을 출발했다고 한다.
참고로 찰지구나 드립으로 유명한 엉덩국도 여기 포병대에서 복무하다가 2016년 4월에 전역했다.
군복무 시절에는 팬클럽과 일본에서 정기적으로 소포가 왔었는데, 1인이 먹는건 턱도 없고 포대 전체가 일과 이후에 꾸역꾸역 티비를 보면서 먹는걸 일주일 내내 일과처럼 해야 치울 수 있을 정도로 배송되었다. 예전에는 인사행정병 혼자 쫄래쫄래 소포를 들고왔지만, 송승헌 전입 이후로는 분대마다 1명씩 일병을 징발해서 단가로 실어날랐다. 차량이 동원된 때는 발렌타인 데이뿐이다. 차량을 운영하려면 기름이 필요한데, 포병 작전에 써야하는 차량 연료를 수송관의 허가와 상부에 서류 요청까지 감수해가며 영내에서 짐나르는데 썼다는건 예비역 수준만 되어도 헛소리인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헛소리는 아니다. 모연대의 경우에는 택배가 좀 많거나 무거운 물건은 도수운반 말고 차량 수송했다.
처음에는 간부들의 연구실에 보관하려 했으나, 적절치 않은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에 내무반 피시방에 쌓아두게 되었다. 피시가 너무 낡아서 병장들도 잘 쓰지 않았기 때문에 원래는 철야한 당직병들의 숙소처럼 쓰였지만, 그 이후에 용도가 변경된 것이다. 체력단련실은 건물 외곽의 요철 부분에 칸막이를 세워서 만든 공간이므로, 당연히 벌레와 쥐가 들끓을 그 공간에는 소포가 보관된 적이 없었다.
원래 소포 내용물로 사제 음식물을 반입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으나, 일본에서 오는 소포들이 처치곤란인데다가 송승헌 한 사람만 예외로 해줄수가 없어서 이후로는 음식물 소포를 따로 반송하지 않게 된다.
그 외에는 매니저를 통해 체력단련실에 비품을 기증하였고, 플스2 슬림 버전과 위닝 일레븐을 가져왔다.[23]
군생활 자체는 무난하게 한 것 같으면서도 나름 이런저런 일은 있었다. 몇몇 에피소드는 잘해야 대학생 정도이던 병사들에게 사회생활의 단편을 보여줬달까... 굳이 에피소드를 좋은 걸로 하나 들자면, 일병 진급 당시 연예인 부대 차출이 왔지만 거절하였다.
2009년 장혁이 주말에 매니저와 둘이 방문해서 출신 대대 전체에 아이스크림을 돌리고 간부들과 저녁을 먹고 가기도 했다. 근무 당시 간부들의 증언으로는 궂은 일도 마다않고 특권의식없이 열심히 군생활을 했다고 한다(송승헌과 반대되는 복무태도였다고…). 대대 시설병으로 복무했는데 여름에 유격 훈련중 비가 많이 와서 전투복 바지에 사타구니(...)가 쓸려 상처가 났다는 목격담이 있다. 근데 장혁이 이렇게 성실히 복무한데는 다 이유가 있다. 장혁 항목을 봐도 알겠지만 장혁은 군대 안갈려고 브로커가 개입된 병역비리를 저질렀다 걸린 전과가 있다. 그 일에 대한 사죄의 의미로 열심히 임한것이라 보는게 맞겠다. 이후 여러가지로 그 병역비리에 대해 진심으로 후회한다는 언급도 했다.
지금은 많이 잊혀졌지만 최악의 무장탈영 사건으로 기록된 혜화동 터미네이터 사건의 임채성이 이곳 15사단 소속이었다. 부대 흑역사.
2010년에는 북한군 소초에서 15사단 GP로 총격을 가했으나 바로 맞대응 사격을 하기도 하여 뉴스에도 실린적이 있다. 그리고 밖에서는 신경도 쓰지않고 넘어갔지만 사단내부에서는 대략 2주동안 TV 시청금지에 단독군장으로 돌아다녀야 했다.
그 다음해에 대통령 부대표창을 수상하였다. 총 9회 수상
15사단 출신들이나 주위사단 출신들은 알겠지만 사단위치가 어중간한 화천과 철원의 걸쳐서 위치해있어, 화천 쪽에선 철원에서, 철원 쪽에선 화천에서 지원을 받으라고 해서 불쌍한 거지사단으로 유명하다. 아마 22사와 더불어 GOP 사단 중에서 가장 가난한 사단이 아닐까 싶다. 아래에 27사단 best xx연대의 차량은 죄다 새차인데 우리차는 왜 구형만 있지?[24][25][26]
결론적으로 가난하고 지형도 뭐 같고 사람들도 어디있는지 잘 모르며 여름엔 덥고 겨울엔 얼어죽는 그런 곳이다.
육군 간부들 사이에서 베스트 유배지로 유명하나, 위치 특성상 작전수행에 매우 중요한 부대이기 때문에 겉으로 안 좋은만큼 진급은 타부대보다 잘 된다.
미국의 16명 전쟁영웅으로 유명한 고 김영옥 미 육군 대령이 6.25 전쟁 기간 미 육군 7사단 31연대 1대대를 이끌고 싸우던 곳이 바로 7사단 독수리연대 gop 지역과 15사단 번개연대 gop 지역이었다.
그리고 승리부대 용사의 다짐이라는 게 있다. 2가지가 있다. 현재와 약간 다르니 주의.
하나, 나는 자랑스러운 승리부대 용사다.
하나, 나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생명을 바친다.
하나, 나는 임무를 반드시 완수한다.
하나, 나는 최고의 전사가 된다.
하나, 나는 승리부대의 전통과 명예를 지킨다.
나머지 한가지는
하나, 나는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생명을 바친다.
하나, 나는 부대와 나의 임무를 반드시 완수 하겠다.
하나, 나는 전술전기를 연마하여 당장 전투에 돌입할 능력과 태세를 갖춘 최고의 전사가 되겠다.
하나, 나는 전우들과 굳게 단결하여 승리부대의 전통과 명예를 지켜가겠다.
하나, 나는 건강한 신체와 건전한 정신을 유지하며 민주시민의 표상이 되겠다.
TV 프로그램 진짜사나이에서 2군단 예하 사단들 중 유일하게 한번도 출연을 못 한 부대다.(...)[27] 막사가 구막사인데 출연가능할리가... 포병은 전부 견인포라서 자주포 나왔으니 나올리도 없고 견인포 방열은 더 위험해서...
8 출신 유명 인물
8.1 장교
- 권오성: 前 제1군단장,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육군참모총장. 사단장을 지냈다.
- 김관진: 前 제35향토보병사단장, 제2군단장, 제3야전군사령관, 합동참모의장, 국방부장관. 現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독수리연대 예하 대대장과 사단 작전참모를 지냈다.
- 김태영: 前 제23보병사단장,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제1야전군사령관, 합동참모의장, 국방부장관. 포병연대 예하 대대장을 지냈다.
- 김영식: 前 제5군단장. 前 항공작전사령관. 사단장을 지냈다. 2015년 9월 1군사령관으로 내정되었다.
- 이용광: 前 제7포병여단장, 제3군단장, 제3야전군사령부 부사령관. 사단장을 지냈다. 경상대학교 ROTC 출신.
- 백군기: 前 제31향토보병사단장, 특수전사령부 사령관, 제3야전군사령관,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19대 국회의원. 독수리연대장을 지냈다.
- 허화평: 12.12 군사 쿠데타 주역 중 하나였으며 5공화국 실세였다. 육사 17기 졸업 후 독수리연대 수색중대 소대장으로 군생활을 시작하였다. 육군 준장 예편 후 청와대로 들어갔다. 초기에는 이리저리 끝빨 날리며 실세로 군림하다가 전두환과 이순자의 눈에 찍혀 하삼수와 같이 미국으로 도피하는 신세가 되었다.
- 노승원: 3사 35기, 부관참모를 역임했다. 현재 국군교도소 수감중
- 이순진: 3사 14기, 수도군단장, 항공작전사령부사령관, 제2작전사령부사령관, 현 합참의장(3사출신 최초) 1982.08.∼1985.01. : 번개연대 3대대 10중대장, 1985.01.∼1987.02. :번개연대 작전장교, 1987.02.∼1988.03. : 번개연대 4대대 작전장교, 2008.03.∼2008.04. : 육군 제15보병사단 사단장직무대리
8.2 그 외
- 황치열: 15사단 화학지원대에서 복무했다.
- 장수원: 젝스키스 멤버로써 군악대에서 복무했다.
- 장혁: 번개연대에서 복무했다.
- 정재헌: 수색중대에서 복무했다.
- 송승헌: 포병연대 예하 대대에서 복무했다.
- 상추: 연예병사로 입대하였으나 안마방 사건으로 인해 독수리연대 예하 대대로 전입했다.[28]
- 김준현: 개그맨으로써 번개연대 수색중대에서 복무했다.
- 엉덩국: 포병연대에서 복무했다.
- Lv.7개미: 24인용 텐트 홀로치기행사의 바로 그 주인공. 현역시절 을지연대 모 대대 탄약반장으로 복무했다.
- 임채성: 22사단 임병장 총격난사 전까지 건국 이래 최악의 무장탈영의 주범자. 현재 사형선고 받고 감옥에 수감중
- ↑ 4개라는 말도 있지만 애초에 사단 창설 당시부터 3개의 원이라고 말한다.
- ↑ 달이 가장 강조되는 이유는 보름달->15일->15사단이라는 연상 때문. '십오야 둥근 달'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 15사단 사병들은 처음 자대배치하면 선임이 자신들의 부대를 육군 유일의 산악보병부대라고 조소를 흘리며 말한다.
잠깐? - ↑ 신병교육대에서 실시하는 행군도 마찬가지다. 제1신병교육대에서 실시하는 행군의 경우, 4km 행군을 제외하고는 모 고개 정상(해발 695m)까지 등반하는 것은 필수이며 제2신병교육대에서 실시하는 40km행군의 경우 여기에 추가적으로 근처에 있는 모 산의 정상까지(해발 1100m) 등산해서 다른 길로 내려왔다가 앞에서 언급한 고개까지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코스가 포함되어있다. 이 구간이 굉장히 힘들다... 20도 구배의 길이 15km 정도 이어진다. 하지만, 이 쪽으로 자대 배치를 받는다면 2년 동안 1100m 정상을 훈련, 제설 등의 이유로 뒷산 가듯이 동, 서, 남, 북로를 통해 최소 10번 이상 갈 것이니 미리 익숙해지는게 편할 수도 있다. 그나마 동,서,북로는 경사가 봐줄만 한데, 남로는 중반쯤 걷다보면 그 이후의 경사는 가히 기절할 수준이다. 하지만 훈련소에선 남로를 통해 등반하지 않는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하지만 서로가 더 힘들다. 남로보다 수 km는 긴듯. 거기다가 서로는 구간 포장에다 거진 비포장길이다. 하지만 동로는 포장길이라 매우 등산하기가 좋다. 물론 민간인은 출입금지다. 북로도 나쁘지 않으며 여긴!! 짧다
- ↑ 2010년 당시 2군단 군단지정 1호 우수병영식당에 선정된 바 있다. 조리자격증이 있어야만 취사병을 할 수 있다고 한다.
- ↑ 중대마다 차이는 있지만 보통 2주차 이후부터 가능.
- ↑ 제2신병교육대대가 더 빨리 신축된 이유는 원래 전투대대였으며, 육군 훈련기간이 8주로 늘어남에 따라 신병교육대대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한 때 안마방으로 유명했던 상추가 여기에 배치됐으나 그 본인은 춘천병원에서 군생활을 날림하셨다.
- ↑ 즉, 대부분 조교들이다.
- ↑ 그러니까 한 연대의 직할중대를 제외한 각 대대에 뿌려진 모든 훈련을 나머지 대대들이 신교대로 재편재되어서 남은 전투1개 대대가 뛰게 되는 셈(...)몰빵
- ↑ 모중대는 취침시간에도 구타가 이어져 귓방망이 중대라고 불렸다고 하며, 자다가 선임이 깨워 근무를 대신 서게 하는 일도 빈번했다고 한다. 화기중대에 위키러가 파견을 나간적이 있었는데 일병 나부랭이가 이등병을 새벽 3시까지 갈갈이 하고 있었다. 그래서 다들 해당 대대를 옛날 군대라고 불렀다.신막사로 옮긴 시점에는 사단 자체 대대적인 부조리 박멸이 시작되어 쾌적한 생활 환경이 조성되었으며 현재는 동기생활관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간부들은 옛날간부 마인드다. 인상깊었던게 의무병이 외진 일정을 짜는데 언제되냐니까 돌아오는건 엄청난 욕설뿐.. 이라고 하는데 사실 의무병인 입장에서는 보낼 수 있는 인원에 비해 흘러 넘치는 외진자, 인솔해 줄 수 있는 간부, 훈련이나 사정에 따라 외진이 취소될 수 있고, 외진 보내는 날에 진료과가 휴진할 수도 있다. 심지어 치과외진은 의무병이 외진 리스트를 보내면 거기서 선발해서 외진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의무병이 정확히 언제 외진을 갈 수 있는지 확인이 안되기 때문에 외진 전날에 알려준다고 해도 계속 물어보고 화를 낸다. 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의무병이 외진을 안보내 준다고 생각하여 마음의 편지로 의무병 전체가 찔린 적이 있었다. 안습
- ↑ 그런데 이런 것들은 전부 부조리라고 진즉에 폐지되었다. 현재는 자율 뜀걸음을 하고 있으나 대대장이 바뀐 이후 병사들이 너무 요령을 피운다면서 해방촌 반환점에 간부들이 대기타면서 반환점까지 제대로 돌았는지 확인하는 번호표 같은 것을 주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현재는 또 다른식으로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전역한 위키러가 추가 바람.
- ↑ 지금 리모델링인지 뭔지 철거중이다. 그리고 1박 2일 멤버들은 자장면을 먹고 맛있다면서 극찬을 했으나 정작 효동각은 자장면이 맛없고 탕수육이 맛있었던 것으로 유명했다..
- ↑ 이는 각종 파견이 많은 수송대의 특성상 어쩔수가 없다. 한정된 막사안에 원래 인원도 지내기 빠듯한데 각종 파견 복귀 혹은 급작스런 신병유입이 이뤄진 경우 매트리스 2개에 3명이 껴서 자는 등 열악한 상황이 벌어진다...이를 해결키 위해 2013년 말엽 생활관 끝에 있는 다용도실을 리모델링해 생활관으로 바꿨다. 예전 다용도 실에서는 연등과 라면 취식을 자주 했는데 거기 엄청 큰 쥐도 살았다. 귀신이 있다는 애기도 들었다. 음료수도 박스 채 보관했는데 다들 중간에 몇 개씩 빼먹었다. 수송대장실에 있는 라면과 커피는 당직병과 당직사관의 주된 야식!
- ↑ 예전에 무장 탈영했던 병사가 여기서 잡힌 적이 있다. 근데 그 주위는 온통 지뢰밭이다.
- ↑ 보충중대 기간병 생활관은 본부대에 있다. 공군파견병도 같이 생활
- ↑ 본부대의 경우 같이 붙어있는 통신대대쪽에 동아리방이라고 하는 PC방이 있다. 가격은 창렬에 통신대 전용이다. 반대로 PX는 본부대 막사에 있다. 그런데 통신대대도 같이 이용하고 있다. PX병은 통신대 혼자만 한 경우도 있고 본부대 두명이서만 한 경우도 있고, 12년도 즈음 부턴 본부대와 통신대 병사가 같이 운영했다.
- ↑ 피해자 유가족과 합의도 하지 않았고 노 소령 조차 반성의 기미가 없었는데도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은 피해자 유가족을 우롱하고 있단 증거. 일단 1심을 맡은 군단 소재 보통군사법원이 독립성 보장 제로인 곳인지라...
- ↑ 주로 쇠약하거나 누워서 지내는 환자, 노인 등에서 발견되는 질환. 쉽게 말해 몸을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 혈액 순환이 안되는 부위가 썩어들어가는 질병이다.
- ↑ 독수리 연대의 경우 행군훈련이 굉장히 많다. 더군다나 행군코스는 산으로....산악 대대 부대원이라면 상황 걸릴때마다 인접산과 고개를 제집 드나들듯이 갈 것이다. 산이 하나같이 경사가 더럽다.
- ↑ 가끔가다가 씽크홀이 보이긴 한다.
- ↑ 여담이지만 모 가수는 배치를 받았는데 사단 인사처에서 연예인 귀찮다고 다른데로 보내버린 경우도 있었다.
- ↑ 또 재밌는건 15사단 내에서는 KCTC 영웅으로 유명하다. 소총으로 탱크 잡으려고 대항군 탱크 위에 올라갔다가 통제관한테 욕 먹었다고 한다. 분명히 탱크 안에 승차하고 있던 군인들에게 소총을 난사했으나 마일즈 장비를 안차고 있었으므로 안 죽었다.
- ↑ 같은 시기에 플스 2가 1대 더 반입되었는데, 그걸 가져온 덕후는 삼국무쌍 같은 덕후들 사이에서의 접대게임을 들고왔지만 실제 일반인들은 위닝 말고는 관심이 없어서.... 그냥 안습.
- ↑ 물론 확실히 지원이 부족하긴 한 듯. 폭우가 쏟아져서 고생했던 2008년 공중지상합동훈련 당시, 7사단 병사들은 훈련 후 버스타고 복귀했지만 15사단은 병사들 버스를 태워줄 여유가 없었는지 행군으로 복귀했다. 물론 병사들은 수긍을 했는데 기름값이 부족했는지 전차를 컨테이너 트럭에 싣고 와서 사격을 한 후 다시 트럭에 싣고 가는 걸 훈련 중에 봤기 때문이었다.. 2010년 독수리연대 RCT훈련 때도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는데 행군으로 복귀했다. 안습
- ↑ 신교대에서도 거지사단의 면모를 볼 수 있는데, 사단장이 부대방문을 하는데 구두약이 없어 물로 전투화를 닦는 경우도 있었다. 그 외에 소나기 책만 주고 커버는 주지 않는 등(옆 7사단에서는 줬다.) 여러 가지 안습한 일이 많았다.(2011년 기준)
- ↑ 하지만 27사단보다 더 먼저 보급되는 장비들이 있는데 바로 GOP에 필요한 장비들이다. 그러나 이건 당연한게 27사단은 GOP 부대가 없다.(...) 이 때문에 2008년 2군단 저격수 대회 당시 야간사격에 사용할 야간투시경이 신형 모델인 PVS-04K(단안)가 아닌 PVS-7(양안)으로 지정됐었다. 당시 7사단과 15사단의 저격수들은 이미 보급된 PVS-04K로 연습을 해놓은 상태였지만, GOP가 없는 27사단이 여전히 구형 모델인 PVS-7을 이용했기 때문에..
- ↑ 27사단 수색대대 편에서 수료식 당시 군악연주를 15사단 군악대가 담당하긴 했다.
- ↑ 사단 보충중대에서 전출 대기도중에 본부근무대 막사 내에서 생활했는데 기간병들이 몰려가서 싸인을 받았다(...) 분위기는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