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 서부 컨퍼런스 | |||
◀ 퍼시픽 디비전 ▶ | |||
45px |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Golden State Warriors) | 45px |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Los Angeles Lakers) |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Los Angeles Clippers) | 55px | 피닉스 선즈 (Phoenix Suns) | |
새크라멘토 킹스 (Sacramento Kings) | |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 ||
Los Angeles Lakers | ||
창단 | 1946년 | |
연고지 |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 |
컨퍼런스 | 서부 컨퍼런스 | |
디비전 | 퍼시픽 | |
현재 연고지로 이동 | 1960년 | |
구단 연고지 변천 | 디트로이트 (1946~1947) 미니애폴리스 (1947~1960) 로스앤젤레스 (1960~) | |
구단명 변천 | 디트로이트 겜즈 (1946~1947) 미니애폴리스 레이커스 (1947~1960)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1960~) | |
구단주 | 제리 버스 패밀리 트러스트 (Jerry Buss Family Trust) | |
사장 | 지니 버스 (Jeanie Buss) | |
단장 | 미치 컵책 (Mitch Kupchak) | |
감독 | 루크 월튼 (Luke Walton) | |
파이널 우승 (16회) | 1949, 1950, 1952, 1953, 1954, 1972, 1980, 1982, 1985, 1987, 1988, 2000, 2001, 2002, 2009, 2010 | |
컨퍼런스 우승 (31회) | 1949, 1950, 1952, 1953, 1954, 1959, 1962, 1963, 1965, 1966, 1968, 1969, 1970, 1972, 1973, 1980, 1982, 1983, 1984, 1985, 1987, 1988, 1989, 1991, 2000, 2001, 2002, 2004, 2008, 2009, 2010 | |
디비전 우승 (23회) | 1971, 1972, 1973, 1974, 1977, 1980, 1982, 1983, 1984, 1985, 1986, 1987, 1988, 1989, 1990, 2000, 2001, 2004, 2008, 2009, 2010, 2011, 2012 | |
홈구장 | 스테이플스 센터(1999년 건립) | |
약칭 | LAL | |
홈페이지 | ||
유니폼 | ||
홈 | 원정 | 얼터네이트 |
목차
1 소개
NBA의 프로농구팀. 서부 컨퍼런스 퍼시픽 디비전 소속. 연고지는 로스앤젤레스. 약자는 LAL[1].
보스턴 셀틱스와 함께 NBA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양대산맥이다. 그나마 셀틱스의 경우에는 90년대의 암흑기라도 있었지, 레이커스는 팀 창단 이후 2013년까지 60년동안 플레이오프에 못나간 적이 5번 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팀 역사에 암흑기, 침체기 자체가 없었다. 90년대 초중반을 침체기라고도 하는데 그때도 플옵은 꼬박꼬박 나갔다.이 팀의 팬들은 그걸 암흑기라고 부른다. 우승도 16회로 셀틱스의 17회에 이은 전체 2위인 명문구단이며 3-peat을 두차례 기록한 3팀중 하나다. 그러나 코비 브라이언트 말년에 팀 역사상 처음으로 암흑기가 찾아왔다.
여담으로 NBA의 30개 팀 중 항목이 가장 길다.
2 역사
2.1 창단
1946년도에 NBL팀인 디트로이트 겜즈(Detroit Gems)로 창단했지만, 44경기 중 4승이라는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참조 상황이 지지부진해지자 당시 구단주였던 모리 윈스턴이 팀을 매각하고자 원해서 1947년 여름에 미네소타 지역 스포츠 기자인 시드 하트먼(1920~ )이 아이스쇼 사업가인 모리스 찰펜(1907~1979)과 극장사업가 벤 버거(1897~1988) 두 사람을 설득하여 팀 인수를 이끌어내어 미니애폴리스로 연고지를 이전했다.
2.2 미네소타에서의 출발
미니애폴리스 레이커스 |
Minneapolis Lakers |
1947년 ~ 1960년 |
초기 레이커스의 중심이었던 조지 마이칸 생긴게 완전 범생이다
1947년에 미네소타주의 주도 미네아폴리스로 연고이전해서 미네아폴리스 레이커스로 리그에 참가(1948-49 시즌부터 NBA에 합류). 미네소타주에 호수가 많아서 팀명도 Lakers로 정했다. 1960년 로스앤젤레스로 연고지를 옮긴 이후에도 계속 사용중이다. 당시 구단주는 벤 버거와 모리스 찰펜, 단장은 스포츠 기자인 시드 하트먼이었다.[2]
창단 첫해부터 우승을 차지하면서 화려한 역사의 서막을 올렸다. '거인' 조지 마이칸을 앞세운 레이커스는 말 그대로 무적함대였다. 조지 마이칸의 신장은 6피트 10인치. 지금으로서는 포인트가드의 신장인 6피트4인치의 선수가 인사이더였고 6피트 7인치도 장신이었던 시대에 조지 마이칸을 완전히 막는다는건 불가능에 가까웠다.[3] 창단 첫해부터 1953-54 시즌까지 6시즌동안 5번의 우승, 1951-52 시즌부터 3연패를 달성하는 등 조지 마이칸을 앞세워 리그를 정ㅋ벅ㅋ 정복해나갔다.
하지만 조지 마이칸이 1955-56 시즌을 끝으로 32세의 나이에 은퇴하고, 이 와중에 구단주인 벤 버거가 팀 운영에 지나치게 간섭하여 시드 하트먼 단장과 충돌이 계속되었으며, 특히 1956년 드래프트에서 하트먼 단장이 빌 러셀을 영입하기 위해 트레이드를 제안하자 이에 구단주가 이를 가로막자 하트먼은 단장에서 사임하여 본업으로 돌아가는 등 어수선한 상황으로 인해 1957-58 시즌에는 팀 창단 후 처음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는 등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리고 이듬해 이들의 눈물 없인 절대로 볼 수 없는 안습전설이 시작되는데...
2.3 눈물의 2인자 시절
이듬해인 1958-59 시즌 합류한 루키 엘진 베일러의 활약으로 33-39패라는 저조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파이널까지 진출.
그리고 시작된다, 콩라인 신의 전설이. 일단 1958-59 시즌 파이널은 준우승.
1959-60 시즌에도 25승 50패라는 매우 저조한 성적이지만 8팀중 6팀이 나가는 널널한 플레이오프 기준점에는 간당간당하게 6등에 걸치면서 플레이오프에 진출, 플레이오프에서는 엘진 베일러가 맹활약하며 디트로이트를 꺾었지만 서부컨퍼런스 파이널에서 패한다.
이 시즌을 끝으로 팀은 밥 쇼트와 프랭크 라이언 두 사업가에게 인수되어 미네아폴리스 시대를 마감하고 현재의 연고지인 로스앤젤레스로 이동한다.[4][5] 로스앤젤레스에서의 첫 시즌인 1960-61 시즌, 현 NBA로고의 주인공[6]인 가드 제리 웨스트가 데뷔한다. LA에서의 첫시즌에도 2년연속 서부 결승에서 탈락.
이듬해인 1961-62 시즌에 베일러 - 웨스트가 평균 69.1점을 합작하는 대단한 활약을 보여주면서 파이널에 진출하지만, 빌 러셀을 앞세운 보스턴 셀틱스와 혈투끝에 3승 4패로 준우승. 보스턴 셀틱스와의 라이벌리는 이미 60년대에 시작되었다. 다음시즌인 1962-63 시즌에도 파이널에 올라가지만 또 보스턴 셀틱스에게 2승 4패로 준우승. 1963-64 시즌 현 애틀랜타 호크스의 전신인 세인트루이스 호크스에게 서부 세미파이널에서 패하면서 3년연속 파이널 진출은 실패하지만 다음시즌인 1964-65 시즌 다시 파이널에 복귀해 또 보스턴 셀틱스에게 1승 4패 준우승,
1965년에 구단주가 잭 켄트 쿠크로 바뀌고 난 뒤 1965-66 시즌 또 파이널 올라가 또 보스턴 셀틱스에게 또 3승 4패로 또 준우승. 이듬해인 1966-67 시즌 서부 세미파이널에서 현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전신인 샌프란시스코 워리어스에게 스윕 탈락하자 감독을 프레드 샤우스에서 벗치 반 브레다 콜프로 교체하고 1967-68 시즌 다시 파이널에 올라가지만 또 보스턴 셀틱스에게 패해 준우승... 이쯤되면 아마 구단주나 프런트나 선수단이나 팬이나 셀틱스라면 학을 뗄 수준일것 같다. 아무튼 이제 더이상 콩라인 준우승을 보고 싶지 않았던 수뇌부는 리그 최고의 센터이자 역사상 최고의 센터 중 하나인 윌트 체임벌린을 필라델피아에서 영입, 대권을 노린다.
최고의 센터 윌트 체임벌린, 최고의 포워드 엘진 베일러, 최고의 가드 제리 웨스트를 축으로 한 레이커스는 이번에야말로 우승에 가까워 보였고 1968-69 시즌 당연한듯이 파이널에 올라가 역시 당연히 보스턴 셀틱스를 만나지만 또 준우승.[7] 레이커스 콩라인전설 끝나려면 멀었다(...).
1969-70 시즌에 감독을 또 조 멀라니로 바꾸고 다시 정규시즌 내내 조뺑이 고생해서 다시 파이널 진출. 또 역시나 보스......턴이 아니다!! 망할 엿먹을 빌 러셀 영감탱이가 아니다!! 이번에야말로 우승이다!! 뉴욕 닉스따위 이길 수 있어!! 게다가 닉스의 혼이자 중심이자 모든것 센터 윌리스 리드가 5차전에 당한 장딴지 파열로 6, 7차전엔 못나온다!! 축배를 들자!!
.....는 개뿔 월리스 리드는 나왔고 레이커스는 3승 4패로 준우승. 콩라인 전설 아직 안끝났다.
1970-71 시즌에는 서부 파이널에서 밀워키 벅스에게 1승 4패 탈락. 이 시즌에 여러모로 팀의 상징인 엘진 베일러도 부상으로 2경기 밖에 못나오고, 1971-72 시즌을 앞두고 라이벌인 보스턴의 레전드 선수이던 빌 셔먼이 감독으로 취임하고[8] 이때 베일러가 복귀하지만 9경기만 뛰고 시즌 도중 은퇴 선언. 최고의 포워드를 잃은 레이커스에게 우승이란 요원해 보였다.
그런데 우승했다. 그것도 69승이라는 이후 1995-96 시즌에 마이클 조던을 앞세운 시카고 불스가 72승으로 기록 갱신하기전까지 최다승 기록을 세우면서. 이게 다 베일러 때문이다. 엘진 베일러는 울었을지도(...) 파이널 상대는 2년 전에 맞붙었던 뉴욕 닉스.
이듬해인 1972-73 시즌에 또다시 뉴욕 닉스와 맞붙지만 이번에는 준우승. 이 시즌을 끝으로 윌트 체임벌린이 은퇴하고, 제리 웨스트도 1973-74 시즌을 끝으로 은퇴. 레이커스의 준우승의 시대 한 시대가 저물었다.
2.4 Showtime!
체임벌린과 웨스트라는 위대한 선수들의 공백을 메꾸지 못하고 1974-75 시즌과 1975-76 시즌 두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 하지만 레이커스는 윌트 체임벌린의 공백을 그에 필적하는 센터로 메꾼다.[9] 바로 카림 압둘자바. 압둘자바가 합류한 첫시즌인 1975-76 시즌에는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지만 그 다음시즌부터 압둘자바가 은퇴하는 1988-89 시즌까지 레이커스는 모두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으며 팀 역사상 최고 전성기를 누린다.
1979년까지는 파이널 복귀에 실패하지만, 그 해에 팀이 유타 주 출신 사업가 제리 버스(1933~2013)에게 인수된 뒤 1979-80 시즌 레이커스 역사상 최고의 포인트가드이자 NBA역사상 최고의 포인트가드 매직 존슨이 데뷔한다. 매직의 데뷔시즌,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를 상대한 파이널에서 카림 압둘자바의 발목부상에도 불구하고 6차전 역사에 남을 퍼포먼스로 팀을 우승으로 이끈다.
이듬해에는 휴스턴 로케츠에게 충격의 플레이오프 1라운드 탈락을 맛보지만, 1981-82 시즌에는 다시 정신줄을 수습하고 다시 파이널에서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를 만나 또다시 우승을 차지한다. 1981-82 시즌 초반 감독이 레이커스 역사상 최고의 감독 중 하나로 꼽힐[10] 팻 라일리로 교체된다.
1982-83 시즌에는 또다시 파이널에서 필라델피아를 만나지만 필라델피아가 4승 무패 스윕으로 설욕한다.
1983-84 시즌, 모든 농구팬들이 바라왔고 현재까지도 최고의 매치업으로 꼽히는 대진이 드디어 파이널에서 성사된다. 바로 보스턴 셀틱스와의 조우. 60년대 보스턴에게 지긋지긋하게 당했던 레이커스의 입장에서도 우승을 해야했고 대학시절부터 래리 버드와 라이벌이었던 매직 존슨의 입장에서도 우승이 필요했으나.....졌다.[11] 이쯤 되자 레이커스 팬들은 보스턴을 이기려면 진짜 잘해야 할 것같애. 근데 우린 보스턴보다 못하잖아. 우린 아마 안될거야. 싶은 생각을 품게 될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다음시즌인 1984-85 시즌, 드디어 보스턴 셀틱스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 시리즈에서 카림 압둘 자바는 말그대로 지옥과 천당을 오갔다. 1차전에서 압둘자바는 12득점 3리바운드라는 처참한 성적을 기록하며 보스턴에게 34점차 대패를 당한다. "Memorial Day Massacre"라고 회자되는 이 경기 이후, 압둘자바는 2차전에서 30득점 17리바 3어시 3블록이라는 말도 안되는 스탯을 기록하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려놓고, 결국 우승을 차지함과 동시에 결승전 MVP에도 선정되었다.
다음시즌인 1985-86 시즌에는 '트윈 타워'를 앞세운 휴스턴 로케츠에게 서부 결승에서 탈락하지만 86-87시즌 다시 보스턴 셀틱스를 꺾고 우승을 차지한다. 특히 4차전은 지금도 회자되는 명승부다. 종료 12초를 남기고 래리 버드가 코너에서 3점슛을 성공시켜 104-106로 보스턴이 리드하게 되었다. 직후 압둘자바가 자유투를 얻어 1구는 성공, 2구는 실패한다. 리바운드 다툼끝에 공이 아웃되고, LA가 소유권을 갖게 된다. 현재 105-106. 7초가 남은 상황에서 긍을 잡은 매직이 안으로 돌파해 오른손 러닝 훅슛을 성공시키며 107-106으로 역전하여 결국 승리한다. 우승 후 축하행사 자리에서 팻 라일리 감독은 트로피를 들고 '내년에 이거 다시 갖고옴'이라는 간지 쩌는 멘트를 날렸고 그 말을 현실로 만들었다. 87-88시즌 '배드보이스' 디트로이트 피스톤스를 꺾고 50년대 이후 팀의 첫 2연패.
하지만 1988-89 시즌에는 배드보이스에게 스윕당했고, 89-90시즌에는 서부 세미파이널에서 피닉스 선즈에게 탈락한다. 팀의 정신적 지주이자 최고의 센터 카림 압둘자바가 이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고 매직 존슨과 제임스 워디, 바이런 스캇등이 악전고투하여 1990-91 시즌 다시금 파이널에 복귀하여 시카고 불스와 맞대결한다. MJ vs MJ로 불리우는 이 대결에서 오래된 MJ가 새로운 MJ에게 패하면서 한 시대의 끝을 고했다.[12] 90-91시즌 직후 매직 존슨은 익히 알고 있는대로 HIV 바이러스 보균 사실을 밝히면서 31세의 나이로 은퇴.
2.5 샤크-코비의 시대
이후 레이커스는 90년대가 다 끝나갈때까지 플레이오프는 한번빼고 꾸준히 나가지만 파이널은 한번도 못밟아보고, 인기와 언론의 관심도 마이클 조던을 앞세운 시카고 불스에게 완전히 뺏겨 라이벌 보스턴 셀틱스만큼은 아니지만 좀 우울한 시대를 보내야 했다. 엘든 캠벨, 세드릭 세발로스, 닉 반 엑셀, 에디 존스, 블라디 디박 등이 고군분투 했지만 영 아쉬웠고, 1996-97 시즌을 앞두고 '공룡' 샤킬 오닐을 영입하여 다시금 천하를 호령할 기세였지만 2%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며 유타 재즈, 샌안토니오 스퍼스에게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한다.
샤킬 오닐은 '우승하고 싶다'며 팀에 전력보강을 요구했고, 팀은 시카고 불스에서 6번의 우승을 일궈낸 명장 필 잭슨을 데려오고 난 뒤 노장 AC 그린과 론 하퍼를 데려왔고, 명장 필 잭슨의 지휘와 샤킬 오닐의 MVP급 활약[13], 96 드래프티인 코비 브라이언트의 성장으로 레이커스는 초강팀으로 군림했고 새천년이 시작된 1999-00 시즌 래리 버드가 감독으로 있던 인디애나 페이서스를 꺾고 우승. 이후 필라델피아, 뉴저지 네츠를 연거푸 꺾고 3-peat을 달성. 말 그대로 레이커스의 시대가 열렸다. 레이커스가 원정만 갔다하면, 특히 라이벌이었던 새크라멘토 킹스의 홈인 아르코 아레나에만 갔다하면 온 관중이 "Beat LA"를 외치던 그런 시절이었다.
3연패 이후 2002-03 시즌에 샤킬 오닐의 부상과 샼-코비의 주도권 다툼등이 겹쳐 서부 세미파이널에서 샌안토니오 스퍼스에게 탈락. 팀은 영광을 이어가기 위해 우승에 목마른 노장들인 칼 말론, 게리 페이튼을 영입하여 팀 내 명예의 전당 선수만 4명이라는 무시무시한 라인업을 구축하였다. 한국에서는 일명 전당포 라인업으로 명명. 하지만 시즌내내 생각보다는 위력적이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어쨌든 파이널 진출. 상대는 수비는 강력하지만 공격력이 영...인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였고 대부분 전당포의 우세를 점치지만 2차전 코비 브라이언트의 뽀록 3점 클러치샷을 제외하면 5경기 내내 무기력한 플레이로 일관하며 1승 4패 충격의 준우승.
이후 근 5년 가까이 팀내 주도권을 놓고 삐걱댔던 샼-코비[14] 중 팀은 코비 브라이언트를 택하면서 샤킬 오닐은 마이애미 히트로 향하고, 칼 말론은 은퇴, 게리 페이튼도 이적, 명장 필 잭슨마저 잠정적 은퇴를 선언하면서 라인업 완전 해체. 필 잭슨 퇴진 이후 휴스턴 로케츠를 2년 연속 NBA 우승으로 이끈 루디 톰자노비치를 감독으로 데려왔으나 기대이하의 성적. 2003년에 이미 방광암으로 휴스턴 감독직에서 물러났던 톰자노비치는 이번에는 심장이 좋지 않은 나머지 쌓이는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이러다 내가 죽겠다 싶어서 시즌 도중 퇴진. 결국 2004-05 시즌에는 10년만에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다.
2.6 코비-가솔의 시대
2005-06 시즌을 앞두고 명장 필 잭슨이 돌아오고 코비 브라이언트가 한경기 81득점을 하는 등 별 짓을 다하지만 선수단 자체가 별 경쟁력이 없어서 2006-07 시즌까지 플레이오프는 진출하지만 두번 모두 1라운드 탈락.
레이커스 팬들은 다시 90년대 초반처럼 되는가보다...하고 마음을 비우고 2007-08 시즌을 맞이 하는데 의외로 시즌 초반 유망주 센터 앤드류 바이넘이 갑툭튀하면서 중반 넘어갈때까지 순항한다. 하지만 시즌 중반 바이넘이 부상으로 시즌을 접으면서 역시 안되는건가...싶었는데 멤피스 그리즐리스에서 파우 가솔을 뺏어온다 트레이드 해온다. 이게 가능한가? 싶을정도의 엄청난 트레이드로[15] 레이커스는 순식간에 서부 최강으로 떠오르고 플레이오프는 가뿐히 진출, 플레이오프에서도 승승장구하여 오랫만에 파이널에 복귀한다. 게다가 파이널 상대는 시즌 전 빅3의 결성으로 1년 내내 화제를 뿌린 보스턴 셀틱스. NBA 사무국은 쾌재를 불렀고 모두의 관심속에 격돌하지만 레이커스는 2승 4패로 준우승.
2008-09 시즌에는 기존의 전력이 고스란히 보존된 데다가 우승을 향한 동기부여까지 완벽히 되면서 시즌내내 순항, 파이널에서 만난 올랜도 매직을 4승 1패로 제압하고 15번째 우승을 차지한다. 필 잭슨은 이 우승으로 열손가락 모두에 우승반지를 끼우게 되었다. 코비 브라이언트 입장에서도 드디어 샤킬 오닐없이 자신이 리더가 되어 이룬 첫 우승. 그리고 이어진 2009-10 시즌에도 레이커스는 우승후보 1순위로 무리없이 순항할 수 있었다.
결국 파이널에서 보스턴 셀틱스와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2009-10 시즌 역시 우승트로피를 움켜쥐게 되었다. 그동안 보스턴과 7차전만 갔다하면 졌었다. 4전 전패... 하지만 이번에는 이겼으니 실로 다행... 7차전은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게하고 양팀 팬들의 피를 말리는 난전이었다.
2010년 오프시즌에서는 안 그래도 빈틈 없는 로스터에 스티브 블레이크, 맷 반스 등의 알짜배기 자원들을 영입하면서 실로 무시무시한 전력을 과시하게 되었다. 마침 마이애미 히트가 드웨인 웨이드에 르브론 제임스, 크리스 보쉬를 끌어들인 상황이라 팬들은 이 두 팀이 결승전에서 만나 괴수급 대결을 펼치기를 바랐다.
서부 플레이오프 2번째 라운드에서 댈러스 매버릭스와 격돌, 팬이나 전문가나 모두 레이커스의 절대 우세를 예상했지만, 더크 노비츠키에게 발리고 발리다 뼛속까지 쳐발리며 4-0으로 스윕당했다.[16] 접전끝에 진 것도 아니고 시리즈 내내 무기력한 경기를 반복, 레이커스의 승리를 예상했던 전문가들을 물먹임과 동시에 수많은 레이커스 팬들에게 가루가 될 때까지 까였다. 설상가상으로 2차전에는 론 아테스트가 상대팀 포인트가드 J.J. 바레아에게 클로스라인을 먹여 3차전 출전 금지 징계를 받았고, 마지막 4차전에서는 라마 오돔이 거친 반칙으로 직빵 퇴장당한지 10분도 안돼서 센터 앤드류 바이넘이 J.J. 바레아에게 대공기 공중 펀치를 먹이는 전대미문의 파울을 범하면서 엄청난 비난과 실망을 자아냈다. 왜 그랬냐는 질문에 바이넘은 "쬐끄만 녀석이 우릴 자꾸 엿먹이니까 열받아서 그랬다."는 벙찌는 답변을 날려서 또 까였다.
4차전은 필 잭슨 감독의 마지막 경기였기 때문에 더 큰 아쉬움을 자아냈다. 위대한 감독의 마지막 경기가 스윕패라는 굴욕과 비매너 플레이로 점철되어 농구팬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2011-12 시즌에도 플레이오프에 진출해서 1라운드때 덴버 너기츠을 4:3으로 간신히 꺾었으나 세미파이널에서 케빈 듀란트가 이끄는 젊은 패기의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에게 1:4로 참패했다.
2.7 전당포 시즌 2
2012-13 시즌에 스티브 내쉬와 드와이트 하워드를 영입하며 다시 반지원정대를 결성해 강력한 우승후보로 부상한줄 알았는데...아주 거하게 망했다.
이 판타스틱 4들이 부상으로 골골대고 전혀 조화가 안되는 모습을 보여줘 심각한 부진을 겪는 중. 우승은 커녕 플레이오프 진출이나 걱정해야 하는 상황.(…) 마이크 브라운 감독이 사퇴 후 마이크 댄토니를 긴급수혈해 오고, 코비가 시즌 막판에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뻗어버리는 악재까지 겪었으나 정규시즌 마지막 날 유타 재즈가 멤피스 그리즐리스에게 패배하고 본인들은 휴스턴 로켓츠에게 승리하며 서부 7위로 리그를 마무리, 플옵 탈락이라는 굴욕은 간신히 면했다.
1라운드 상대는 샌안토니오 스퍼스. 후반 샌안이 좀 부진했기 때문에 몇승은 챙길 수 있을 줄 알았으나 현실은 시궁창, 스윕당하며 시즌을 마쳤다. 4경기 중 10점차 이내의 경기는 한경기도 없었다. 안습. 코비가 기량 회복에 성공한 채 복귀할지도 의문이고 하워드도 결국 휴스턴으로 떠났기 때문에 다음 시즌은 좀 암울해보인다.
2.8 창단 67년만에 첫 암흑기의 시작
어서 와. 암흑기는 처음이지?
2.8.1 2013-14 시즌
답이 없다.
플레이오프 진출도 힘들거라고 예상되는 2013-14 시즌이 시작되었는데 첫경기에서 뜻밖에도 벤치멤버들이 대폭발해 LA 더비에서 클리퍼스를 이겨버려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어쩌다가 예전엔 당연했는데 지금은 클리퍼스를 이긴 것이 이변이 되었나 하지만 다음 LA 더비에서는 3쿼터에서 8점만 넣는 등 부진으로 한때 41점차까지 뒤지다가 결국 36점차 대패를 당했다. 휴스턴은 홈에서 후반전 19점을 넣는 것보단 낫지만 허나 가드 위주의 농구, 특히 포인트 가드가 전술의 핵인 마이크 댄토니의 시스템에서 포인트 가드들이 하나도 예외 없이 전부 뻗어버리는 최악의 사태를 맞이했고, 부상 복귀한 코노인을 포인트 가드로 기용 하는 등 노인 학대를 시키다가 다시 6주짜리 부상을 당해버리면서 팬들은 모두 멘붕(...). 그러나 남은 멤버들이 잘해주면서 5할에 간당간당한 정도의 성적은 찍어주고 있다.[17]
스티브 내쉬는 시즌을 부상에서 시작해서 나중에야 복귀했으나 나왔다 말았다 하는 들쑥날쑥한 컨디션을 보이면서 15게임 출장에 그쳤고 그나마도 예전의 모습은 거의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결국 코비 브라이언트는 제대로 회복되지 않은 채 무리해서 경기 출장을 감행하다가 고작 6게임만에 시즌아웃 선언되는 등 점점 댄토니 농구가 레이커스에서 삐그덕거리고 있다.
거기에 새로 들어온 크리스 케이먼과 가솔은 출장문제 및 감독의 전술로 인해 계속해서 댄토니 감독과 불화설이 나오는 등, 분위기 자체도 최악으로 치닫게 되었다.
그 와중에 코비는 2년간 4800만 5000불을 받기로 한 조건에 레이커스에 더 잔류할 것을 선언, NBA 최초로 20년간 한 팀에서 뛴 프랜차이즈 선수로 남게 되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샐러리 캡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이며, 코비의 남은 2년동안 우승을 위해 뉴욕 닉스처럼 무리하게 팀 운영을 하다가 암흑기로 빠져들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는 팬들이 많았다.
이런 가운데서 그나마 레이커스 팬들을 웃게 해준 것은 조디 믹스와 닉 영의 발견. 조디 믹스와 닉 영 둘다 슛팅 능력이 많이 향상되고 열정적인 플레이를 펼쳐 커리어 하이 기록을 세우며 레이커스를 이끌었다. 그러나 둘 다 FA를 앞두고 있지.
결국에는 한 시즌만에 피닉스 선즈에서 워싱턴 위저즈로 트레이드 되자마자 방출되고 D-리그에서 뛰고 있던 켄달 마샬까지 영입. 마샬은 처음에는 상당히 훌륭한 능력을 보여주어 UNC시절에 그에게 기대했던 모습의 완전체를 보여주나 했으나 그 이후에는 점점 하락세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도 NBA 무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능력을 보여준만큼 성공적인 영입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가솔은 결국에는 트레이드 블럭에까지 올랐으나 컵책 단장은 1라운드 상위픽을 원하는 바람에 결국 교섭이 결렬되어 레이커스에 잔류했으나, 시즌 후 FA인지라, 현 레이커스의 성적에 댄토니 감독과 불화가 있는 가솔을 잡을 수 있을지는 의문부호다. 대신 내쉬가 부상일때 주전 포인트가드였던 스티브 블레이크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로 두 명의 젊은 선수와 트레이드 되면서 시즌을 포기했음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6연패-1승-6연패의 여파로 대차게 순위가 내려가더니 결국 2월 22일, 보스턴을 이겼지만 새크라멘토도 다음날에 보스턴을 이기고, 24일 브루클린에 패배하고 새크라멘토가 덴버를 이기면서 드디어 경쟁자유타와 새크라멘토를 밀어내고 당당히 서부 컨퍼런스 단독꼴찌를 차지했다. 그런데 나란히 막장을 달리고 있는 동부 12등인 보스턴에 비하면 승률은 오히려 좋다. 급기야 3월 7일 열린 세번째 LA 더비에서는 클리퍼스에게 탈탈 털린 끝에 142:94로 지면서 레이커스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다 점수차 패배라는 대굴욕을 당했다.
댄토니 특유의 엄청난 운동량을 필요로 하는 공격은 나이 많고 몸집이 큰 레이커스 선수들에겐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다시 한번 증명되었다.
현지에서나 국내 레이커스 팬들 사이에서나 댄토니 감독에 대한 의문부호로 매일매일 의견이 갈리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의견은 댄토니가 좋고 나쁜 감독인것을 떠나서 레이커스에 맞지 않는 옷이라는 것. 그러나 2014-15 시즌까지 계약되어 있어서 결국 한 시즌을 더 댄토니랑 해야 하는데, 레이커스 수뇌부는 올 시즌을 끝으로 360만불을 버리는 샘 치고 댄토니를 해임할지에 대한 여부에 골몰하고 있다고 한다.
내쉬까지 결국에는 은퇴할지 한 시즌을 더 뛸지에 대한 고민에 들어갔다고 한다. 참고로 내쉬의 계약 역시 다음시즌까지이다. 결국 진짜 제갈량처럼 끝끝내 원하는 바를 못 이루는건가.
최종 성적은 27승 55패(.329), 순위대로라면 레이커스는 전체 6번째 픽을 받게 되며, 승률은 레이커스가 로스엔젤레스로 연고지를 이전한 이후 최악의 성적이다. 레이커스 특성상 이러한 성적은 상당한 치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에 댄토니의 해임 가능성도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게 현실.
2.8.2 2014-15 시즌
밑에는 밑이 있다
본격 NBA 막장 드라마
그리고 막장 드라마를 끝낼 희망이 왔다
마이크 댄토니는 결국 사임하고 코비와 내쉬를 제외한 대부분의 선수들이 FA로 풀려나기 때문에 판을 새로 짜야 한다.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가 행운의 1픽을 거머쥐면서 레이커스는 7픽이 되었고, 오랜만에 손에 넣은 로터리 픽으로는 언더사이즈지만 인사이드 득점과 리바운드에 능한 켄터키 대학 출신 파워포워드 줄리어스 랜들을 선택했다.
지친 가솔이 시카고 불스로 떠난 가운데 쓸만한 빅맨인 조던 힐, 스윙맨 닉 영을 붙잡고 휴스턴에 있던 제레미 린을 트레이드로 영입했다. 플옵은 못갈거같으니 마케팅이나 하자 그리고 기량이 감쇠해 시카고에서 사면당했지만 아직까지 공격에서는 제몫을 해줄거라고 기대받는 파워포워드 카를로스 부저 입찰에도 성공하며 구색은 대충 갖춰가고 있다.
비시즌 오랫동안 감독 선임이 되지 않아서 영입된 선수를 짜맞추는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특히 노장 코비 브라이언트의 관리문제, 포지션이 겹치는 부저와 랜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신임 감독의 과제이다. 결국 7월 28일, 이전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감독직을 맡았던 바이런 스캇이 차기 감독으로 취임하였다.
스티브 내쉬는 정규시즌이 시작되기도 전에 등 부상으로 아웃되면서 아무것도 못하고 은퇴할 것으로 보이며,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열린 개막전에서 원정 온 휴스턴에게 완패한 것도 모자라 줄리어스 랜들이 데뷔전에서 정강이뼈 골절을 당하고 실려나가는 참사가 발생하면서 최악의 스타트를 끊었다. 그리고 11월 16일에 열린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와의 홈경기에서 115-136으로 완패하면서 1승 9패를 기록, 같은 날 9전 전패를 기록 중인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와 NBA 전체 꼴찌를 다투고 있는 상황이다.
내용을 보면 더 심각한데, 코비 브라이언트가 커리어 두번째로 많은 경기당 슈팅 시도를 하는데 커리어 최악의 야투 성공율을 기록하고 있다. 즉, 난사를 하고 있다.[18] 11월 18일 현재 37.7%의 성공율. 평균득점은 27.3득점으로 초반 전체 2위를 달리고 있지만 이게 겨우 개막 10경기에 불과하고 매경기 초반에 좀 안정되다가도 후반되면 다시 40%대 이하로 DTD하는 상황. 거기다 팀은 답이 없는 픽앤롤 수비로 리그 최악. 매 경기 끝날때마다 전세계의 레이커스팬들 vs 안티, 코비팬들 vs 안티들간의 키보드 전쟁이 격화되고[19] 개막 한달도 되지 않아 감독과 다른 멤버와 코비가 각각 따로놀고 있고 내쉬는 연락두절 상태라는 사상 최악의 콩가루 집안스런 모양을 보이고 있다. 팬들도 어차피 망한 시즌 코비가 그냥 난사질이라도 해서 득점왕이나 시즌 MVP나 타라고 코비에게 MVP! 챈트를 날리며 응원하는 막장스러운 상황이었는데 그런 코비마저 부상으로 시즌아웃됐다. 사실 코비가 그렇게 난사를 했는데도 득점 1위를 못한 걸 봐도 짐작할 수 있겠지만, 이런 막장 경기력[20], 으로는 아무리 난사를 해봤자 득점왕도 불가능하고 (노장이니 갈수록 스탯이 떨어지기 마련이므로) 난사만 해서 득점스탯만 좋은 선수에게 MVP를 줄 정도로 NBA가 허접한 리그가 아니다. 코비가 커리어 내내 단 한번 MVP를 탄 걸 생각하면 MVP운운은 말도 안되는 상황. 이대로라면 한두해 탱킹하는게 문제가 아니라 잘못하면 팀 스피릿이나 컬러가 망가질지도 모르는 상황이 우려될 정도로 레이커스의 내홍과 외환은 심각하다.
최종 성적은 21승 61패. LA에 온 이후 최악의 성적이다. 2라운더 루키 슈팅가드인 조던 클락슨이 후반기에 제법 활약을 한게 위안이었다.
그리고 레이커스는 시즌내내 처발린 덕분에 2015년 드래프트 1라운드 2순위 지명권을 얻었다. 암흑기가 끝나나요
2.8.3 2015-16 시즌
밑의 밑에는 밑이 있다
심각한 팀상황과 끝이보이지 않는 암흑기의 극치
지난 시즌이 밑바닥일줄 알았냐?
드래프트에서는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의 스킬풀한 가드 디안젤로 러셀을 선택했다. 동시에 라마커스 알드리지같은 FA 시장에 나오는 올스타 빅맨과 드마커스 커즌스의 트레이드를 노렸으나 모두 실패하고 인디애나의 계륵으로 전락한 로이 히버트만 데려오게 되었다.
그후 조용히 있다 싶더니 뜬금없이 메타 월드 피스와 1년 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이 나왔다.
수많은 레이커스팬들이 그래도 지난시즌보단 낫겠지...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었으나 그 내용물은 지난 시즌보다도 더 형편이 없다.(...) 감독은 전술이 없고, 코비는 말로만 유망주들 지원하겠다더니 현실은 예년보다 탐욕이 더 심해졌다. 그리하여 개막후 13경기에서 2승 11패라는 아름다운 성적을 거두고 있다. 하지만 압도적인 존재감의 어떤 팀에겐 밀리고 있다. 참고로 레이커스는 이번시즌 드래프트 3픽 안에 못 들 경우 픽을 그대로 이 팀에게 넘겨줘야 한다.(...)
엄청난 역사와 여러번의 왕조, 스타 선수들이 거쳐갔던 레이커스지만 코비 한 명을 제어하지못해서 팀이 완전히 엉망진창이 되었다. 인터넷에서는 코비를 쉴드치는 코빠들과 코비를 까는 코까들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으며 코비가 언급되는 순간 전쟁이 벌어진다. 다만, 코비가 골든스테이트전에 앞서 우리가 이길 수도 있다고 입을 털었다가 말그대로 개박살이 난 후로는 코빠들도 도저히 코비를 쉴드를 못치는 모양새.
지난 시즌 함께 서부의 밑바닥을 책임졌던 미네소타의 젊은 선수들이 가넷의 지도 아래 똘똘 뭉쳐 성장해나가고 있는데 반해 레이커스는 베테랑 단 한 명의 탐욕으로 여전히 밑바닥을 수성 중이다. 이번 시즌 명실공히 서부 최악의 팀.[21] 과부 마음은 홀아비가 알아준다고, 개막 후 한번도 이기지 못하고 있던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에게 첫 승을 선물했다.
이런 막장 상황 속에서 코비가 은퇴발표를 했다. 레전드의 은퇴라며 많은 관객들이 레이커스의 홈, 원정 경기를 찾고 있고, 코비도 이별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이렇게 보면 참 아름답지만, 그런다고 경기력이 좋아지는 것도, 팀이 승리하는 것도 아니다. 레전드라 할 지라도 팀에 있어서는 한 명의 선수. 한 시즌 전체가 선수의 은퇴고별행사로 치뤄지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표하는 레이커스팬들도 많다. 팀 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 NBA의 오랜 역사 동안 한 선수가 은퇴시즌을 보내는 데 대하여 환호와 감사가 전해진 적은 많지만, 팀의 시즌 하나를 홀라당 말아먹으면서까지 이런 대우를 받은 선수는 지금까지 없었다. 심지어 코비 이전의 레이커스의 레전드들 조차도
국내의 농구팬들 사이에서도 끊임없이 찬성의견과 반대의견이 충돌하고 있다. 레이커스 경기 후에는 늘 농구 관련 게시판에서 코비 관련으로 싸움이 나곤 한다. 사실상 코비가 은퇴할 때까지, 은퇴한 후에도 끊임없이 이어질 논쟁.
코비도 코비지만 다른 팀원들도 심각한 상황이다. 수비력 자체가 거의 없는 수준이며 베테랑 닉 영, 로이 히버트, 브랜든 배스 등은 존재감이 없고, 신인인 디안젤로 러셀은 기대치에 못미쳐 식스맨으로 돌리고 난뒤에야 개선된 모습이며, 섬머리그에서 맹활약하며 주축 유망주로 꼽히던 줄리어스 랜들은 리바운드를 잘 잡는거 외에는 수비나 공격이나 엉망인 모습으로 차라리 래리 낸스 JR가 더 낫다는 의견이 있을정도이다.
2015-16시즌 전반기가 끝난 상황에서의 성적은 11승 44패 승률 0.200으로 전체 팀 중 뒤에서 2위. 이대로라면 레이커스 역사상 최악의 시즌은 사실상 확정적이다.
후반기도 좋지 않은 성적이 이어지며 12승 51패를 기록하던중 뜬금없이 55승 5패의 괴물같은 성적으로 1위를 달리고 있던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를 홈에서 112-95로 잡아버렸다. 승률 1할대의 팀이 9할대의 팀을 잡아버린것은 NBA 역사상 처음있는 일이라고 한다.
그후 4월 클리퍼스와의 2연전에 모두 패배하면서 팀 역사상 최악의 승률을 확정한 것은 물론 사상 최초로 2시즌 연속 클리퍼스에 스윕패당했다. 그리고 클리퍼스에 도합 11연패를 당하면서 특정 팀 최다 연패 3위를 기록하게 되었다.
최종성적은 17승 65패 서부 15위, 전체 29위로 처참했지만 그나마 코비 브라이언트가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이자 커리어 마지막 경기에서 60득점을 뽑아내면서 유타 재즈를 홈에서 물리쳐 유종의 미를 거둔것으로 위안을 삼아야할듯하다.
2.9 포스트 코비 시대, 2016-17 시즌
시즌 종료 후 바이런 스캇 감독과 결별했다. 그리고 2003년부터 2012년까지 레이커스에서 뛰었던 골든스테이트 수석코치 루크 월튼을 새 감독으로 임명했다.
드래프트 로터리에서 2픽을 얻는데 성공하며 레이커스 구단과 팬들은 크게 한숨 돌렸다. 1픽은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현재 2016 드래프트 탑 2로 꼽히고 있는 브랜든 잉그램과 벤 시몬스중 남은 한 선수를 뽑을것이 확실시 되고있다. 그리고 예상대로 필리가 시몬스를 지명하자 레이커스는 잉그램을 2픽으로 지명했다. 2라운드에서는 크로아티아의 빅맨 이비카 주비치를 지명했다.
FA시장에서 부상으로 기량이 감퇴한 티모페이 모즈코프에게 4년 6400만달러의 계약을 맺었다! 사람들은 무슨짓이냐는 반응이 대다수. 우리나이로 31살에 팀플랜에서 밀려났고, 큰 부상이 있었으며 커리어 내내 평균 30분 출장을 못한 선수이다. 참고로 모즈고프의 작년 성적은 17.4분 6.3득점 4.4리바 0.8블락(...) 늘어나는 샐러리캡의 영향으로 전체적으로 선수들의 연봉 상승기조가 있다고는 하지만...굳이 역할을 대변해주자면 레이커스의 부실한 수비력과 부족한 스크리너 롤맨 역할을 바라고 영입한듯 싶으나 그를 염두에 두어도 오버페이라는 평가가 많다. 그리고 조던 클락슨과는 4년 5000만 달러에 재계약을 맺는다. 그리고 루올 뎅과도 4년 7200만 달러에 계약했다. 좋은 수비와 스몰라인업에서 활용등 다양한 용도로 쓰일 수 있지만, 팀내 기대주인 2순위 잉그램과 포지션이 대체로 겹치는지라 역시 부정적인 평가가 많다. 이후 마르셀로 휴레타스와 2년 300만 달러, 타릭 블랙과 2년 1285만 달러, 이젠롄과 옵션이 덕지덕지 붙은 단년 800만 달러 계약까지 맺었다.
잠시 KCC에서 뛰었던 식물용병(...) 2라운더 아터 마족의 권리를 넘겨주고 2개의 2라운드 픽과 베테랑 가드 호세 칼데론을 영입했으며, 시즌 전 이젠롄은 프리시즌 부진한 활약과 역할 불만등으로 웨이브 되었다.
홈에서 열린 시즌 개막전에서 휴스턴 로키츠와 치열한 난타전을 벌여 역전승을 거둬 기분좋은 스타트를 끊었다.
3 기타
- 팀 컬러는
아무리 봐도 샛노란색인데 황금이 간지나니까 황금으로 우기는 듯 한골드&퍼플. NBA에서 유일하게 흰색이 아닌 홈저지를 기본으로 쓰는 팀이다. NBA 룰 북에는 홈팀은 light-colored, 원정은 dark-colored라는 규정만 있지 직접적으로 홈저지에 흰색을 써야 된다는 규정은 없으므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나 덴버 너기츠 같은 팀이 원정 얼트로 쓰는 노란색을 홈저지 색으로 쓰고 있다.
- 팀의 홈코트는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WNBA 로스앤젤레스 스파크스, NHL 로스앤젤레스 킹스와 함께 쓰고 있는 스테이플스 센터.[22] 1999-00 시즌부터 홈으로 쓰고 있다. 그 전에는 LA지역의 좀 사는 흑인들 거주지역인 잉글우드에 있는 그레이트 웨스턴 포럼(1988년에 그레이트 웨스턴 뱅크에 명명권을 팔기 이전에는 명칭이 '더 포럼'이었음.)이었다. 참고로 레이커스가 홈구장을 스테이플스 센터로 옮긴 후 더 포럼은 한 교회가 매입하여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 건물이라고 한다.[23]
- 헐리우드의 도시가 연고지인 만큼 많은 셀레브리티들이 레이커스의 경기를 보러 오곤 한다. 대표적인 인물은 팀 버튼의 배트맨에서 조커를 연기한 잭 니콜슨. 70년대부터 계속 시즌티켓을 사시며 레이커스의 경기가 있는 날엔 촬영 따윈 없는 사람이다.[24]
- LA 레이커스가 워낙 오랫동안 농구명가로 명성을 떨치고, 미국 제2의 대도시인 LA가 농구에 열광하다보니 LA 레이커스를 보러 스테이플스 센터로 모여드는 유명인들이 많아서 레이커스의 시즌 티켓은 일종의 LA를 대표하는 재력가의 상징이기도 하다. LA 레이커스 시즌 티켓 홀더에 대한 소개글, 묘하게 정치적이다.
- 라이벌은 누가 뭐래도 역시 보스턴 셀틱스. 보스턴과의 라이벌리는 80년대의 NBA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반에는 서부의 새크라멘토 킹스와 굉장히 치열한 라이벌전을 벌였지만 새크라멘토가 지금은 너무 약한 전력이라 라이벌 관계 거의 소멸. 레이커스가 워낙 전통적으로 인기있는 강팀이라 그때 그때 리그의 강자라면 다 라이벌 구도를 붙이지만[25] 역시 최고의 라이벌은 보스턴 셀틱스.
- 오랜 시절 빅마켓의 강팀이었고, 화려한 농구를 지향하는 탓에 팬이 엄청나게 많다.[26] 그리고 그 덕분에 안티가 엄청나게 많다. BEAT L.A.[27]는 LA를 제외한 모든 팀들이 외치면서도 흥에 겨워하는 유명문구 중 하나. 이러한 경향은 비단 미국을 넘어 이역만리 타국인 한국의 NBA 커뮤니티에서도 드러난다. NBA 팬들 전체의 구도가 거의 LA팬 vs 기타 등등으로 나뉘고 이들 사이의 키배가 밤을 지새우는 잉여짓이 한창이다.
- 이렇게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자랑하는 레이커스지만 정작 레이커스 관련 모자나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 아마 강렬한 노란색이 너무 튀어서 그런 듯(...) 한국의 거리에서 가장 자주 보이는 NBA팀은 레드간지 시카고 불스와 블랙간지 브루클린 네츠.
- 메인 중계 방송사는 2011/2012 시즌까지는 KCAL-TV(CBS 계열, 원정경기 중계), FOX Sports West(Regional Sports Network, 홈경기 중계)였지만, 2012/2013 시즌부터 새로 런칭되는 채널인 Time Warner Sportsnet이 레이커스의 경기를 독점중계할 예정이다.[28]
- 루키(잡지) 선정 최고의 레이커스 라인업
4 영구결번
- 13. 윌트 체임벌린(Wilt Chamberlain)
- 설명이 필요없는 코트 위의 괴물. NBA 역사상 최고의 센터 중 한 명으로, 레이커스의 오랜 콩라인 전설을 깨뜨린 인물이다. 다만 필라델피아 시절 워리어스나 76ers에서 더 오래뛰고 전성기를 보낸(커리어 첫 우승도 76ers시절이다)탓에 레이커스 레전드라기에는 애매하다.
- 22. 엘진 베일러(Elgin Baylor)
- 콩라인이라는 것만 빼면, 역대 최고의 포워드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득점기계. 파이널 한 경기 최다득점(61점)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 25. 게일 굿리치(Gail Goodrich)
- 1970년대 레이커스를 진두지휘했던 명 가드.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되었다.
- 32. 매직 존슨(Magic Johnson)
- MJ 이전의 MJ.
쇼타임 레이커스를 진두지휘했던 다재다능한 1980년대 농구의 아이콘이자 역대 최고의 포인트가드.
- 33. 카림 압둘 자바(Kareem Abdul-Jabbar)
- 말이 필요없는 농구계의 전설. 1980년대 쇼타임 레이커스의 한 축을 담당했던 센터.
- 34. 샤킬 오닐(Shaquille O'neal)
- 2000~2002년 레이커스의 3연패를 이끈
자유투만 빼면역대 최고의 센터 중 하나.
- 42. 제임스 워디(James Worthy)
- "Big Game James". 1980년대 쇼타임 레이커스 시절 포워드로 명성을 떨쳤던 인물이다. 같이 뛰었던 압둘 자바나 매직 존슨이 원체 레전드라 살짝 묻히는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역대급 포워드 중 한 명이다.[29] 별명이 특이한데 별명에 걸맞게 큰 경기, 특히 컨퍼런스 파이널이나 파이널에서 맹활약하기로 유명했다. 1987-88 시즌에는 생애 유일한 트리플 더블을 파이널 7차전에서 기록하면서 동료 매직 존슨을 제치고 당당히 파이널 MVP를 수상하기도. 농구 명가 노스 캐롤라이나 대학 출신이며, 마이클 조던의 선배. 대학 시절 함께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 44. 제리 웨스트(Jerry West)
- "Mr. Clutch". 공격과 수비에 모두 능했던 당대 최고의 슈팅가드[30]로 1960년대 말~1970년대 초 레이커스의 전성 시대에 크게 기여했다. 은퇴 후 레이커스 단장으로 있으면서 샤킬 오닐을 FA로 붙잡고, 당시 주전센터였던[31] 블라디 디바치를 내주면서까지 코비 브라이언트를 드래프트에서 선발하면서 90년대 후반 쓰리핏 레이커스의 기초를 닦았다. 이후 멤피스 그리즐리스로 옮겨가서 밴쿠버 시절부터 안습이었던 팀을 잠시나마 서부의 강호로 만들었다.[32] 참고로 이 사람은 NBA 로고(드리블하는 모습)의 모델이다. 그래서 요즘 새로 붙은 별명은 "The Logo".[33]
- 52. 자말 윌키스(Jamaal Wilkes)
- 제임스 워디 이전의 레이커스의 주전 스몰포워드로 레이커스의 세차례 우승을 이끌었다.
- Microphone. 칙 헌(Chick Hearn)
- 1965년부터 2002년까지 37년간 LA지역 TV와 라디오의 레이커스 경기 중계를 담당한 전설적 아나운서로 현란하고 재치있는 입담으로 명성을 날렸다. 매직 존슨 등 70~80년대 레이커스 레전드들의 각종 커리어 하일라이트 동영상에서 이들의 플레이를
따발총 같은 속도로중계하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거의 이분이라고 보면 된다. '슬램덩크', '에어볼' 같은 농구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이 칙 헌이고 Mr. 클러치 제리 웨스트 등의 별명도 칙 헌이 지었다.[34]
이들 외에도 코비 브라이언트의 24번 역시 영구결번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한편, 2011년에 은퇴한 샤킬 오닐의 경우에는 레이커스 구단이 10-11시즌이 끝나고 오닐이 은퇴하자 적당히 날잡아서 오닐의 34번을 영구결번식을 치루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사실 레이커스 팬들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고[35] 오닐 본인이 말년에 레이커스의 최대 라이벌인 보스턴 셀틱스에서 뛰었다는것 등 때문에 과연 영구결번이 될까 하는 의문이 많았지만 아무래도 3연패에 큰 공을 세운 선수를 영구결번 안 시켜준다는 것도 모양새 빠지기도 하고, 오닐 급의 선수를 영구결번시켰을 때에 얻는 득이 실보다 훨씬 큰게 사실이기도 하다.
오히려 레이커스가 대차게 까이는 것은 바로 예전 연고지인 미니애폴리스 시절의 영구결번은 일괄적으로 리셋하고 기념하지 않는 부분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조지 마이칸이다. 마이칸의 등번호 99번이 원래 미니애폴리스 레이커스의 영구결번이었지만, 어쩐 일인지 LA 이전 후에는 잊혀졌다. 레이커스가 미니애폴리스에서 LA로 연고지를 변경한 이후 이전 역사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는건지 어쩐건지 미니애폴리스 시절 선수들에 대해선 일괄적으로 영구결번을 적용하지 않았다. 때문에 레이커스팬들은 물론이고 여타 NBA 팬들에게도 대차게 까이고 있다. 결번도 안해줄거면 이때 우승역사는 빼버리던가.
미니애폴리스 시절의 결번은 총 여섯 명으로 다음과 같다.
- 17. 짐 폴라드(Jim Pollard)
- 19. 베른 미켈센(Vern Mikkelsen)
- 22. 슬라터 마틴(Slater Martin)
- 34. 클라이드 로벨레테(Clyde Lovellette)
- 99. 조지 마이칸(George Mikan) : 역대 최초의 '압도적인 빅맨'이었으며, 이로 인해 열쇠모양으로 'key'라고 불리던 페인트존이 현재 형태로 확대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 . 존 쿤드라(John Kundla) : 미니애폴리스 시절의 감독.
5 2016-17 선수명단
2016-17 시즌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선수단 | |
감독 | 루크 월튼 |
코치 | 브라이언 쇼, 제시 머미즈, 마크 매드슨, 브라이언 키프, 주드 부쉴러, 테오 로벗슨 |
가드 | 1.디안젤로 러셀 4.마르코 헐타스 5.호세 칼데론 6.조던 클락슨 23.루이스 윌리엄스 |
포워드 | 7.래리 낸스 주니어 9.루올 뎅 14.브랜든 잉그램 15.토마스 로빈슨 30.줄리어스 랜들 37. 메타 월드 피스 |
센터 | 20.티모페이 모즈고프 40. 이비카 주박 |
가드-포워드 | 0.닉 영 |
포워드-센터 | 28.타릭 블랙 |
- ↑ 그래서 한국 한정으로 '랄가'라는 별명이 있다(...)
- ↑ 당시 하트먼이 근무하던 신문사의 편집장이 미네소타로 스포츠 팀만 데려오면 팀과 관련된 사업을 해 주겠다고 했는데, 대신 팀과 관련된 기사는 쓰지 않도록 조건을 내밀었다.
- ↑ 게다가 주무기가 훅슛이었다. 마이칸의 "Mikan Drill"은 지금도 빅맨에게 필수적인 훈련기술이다.
- ↑ LA로의 이전이 확정되었던 이유가 NBA의 미니애폴리스 레이커스가 흥행에 실패했다는게 중론이다. 바로 옆에 붙은 세인트 폴을 배려하지 않고 미니애폴리스의 도시명만 썼기 때문이라고 판단해 주명을 그대로 썼기 때문이다. 보통 미네아폴리스와 세인트 폴은 쌍둥이 도시라고 하는데 행정상 서로 다른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둘이 한꺼번에 취급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였는지 이 이후 미네소타 프로 스포츠팀들은 팀명 앞에 도시 이름 대신에 주 이름을 쓰게 된다.
- ↑ 레이커스가 LA 이전하고 나서 1989년 미네소타 팀버울브스가 창단되기 전까지 30년동안 미네소타에는 NBA 팀이 하나도 없었다.
- ↑ 빨강 파랑 바탕에 드리블하는 하얀실루엣
- ↑ 여담이지만 이때 보스턴이 레이커스를 꺾을거라고는 정말 누구도 예상못했다. 당시 보스턴은 겨우 플옵에 진출했고, 러셀을 포함한 주축선수들이 모두 노쇠한 상태. 반면 레이커스엔 제리 웨스트-윌트 챔벌린-엘진 베일러라는 리그내에서 손꼽힐 선수가 세명이나 버티고 있었고 7차전을 홈에서 치르는 이점까지 있었다. 이에 레이커스 구단주는 경기장 천장에 풍선을 세팅하고 아나운서 칙 헌이 수훈선수를 인터뷰할 순서까지 정해놓는 궁극의 설레발을 친다. 심지어 우승 직후 밴드가 "The happy days are here(좋은 날이 왔네)"란 곡을 연주하도록 대기시켜놨다고...근데 졌다. 러셀은 훗날 인터뷰에서 "그들이 천장에서 풍선을 하나하나 꺼내는 꼴을 보고싶었죠"라고 회고했다. 또한 러셀은 이 힘든 여정을 끝낸후 소감이 어떻냐는 질문에 감정이 북받혀 한동안 말을 못 이었다.
- ↑ 취임 당시엔 LA와 보스턴 두 곳에서 파장이 엄청났다. 그러나 셔먼 감독은 텍사스 출신이지만 대학은 LA에 있는 USC를 다녔기 때문에 LA와 아주 연관이 없지는 않다.
- ↑ 윌트와 카림 중 누가 뛰어나냐는 답하기 어려운 문제지만 말년의 윌트와 전성기 시절 카림이라면 당연히 후자가 더 뛰어나다.
- ↑ 나머지 하나는 필 잭슨
- ↑ 2011년 결승전때 해설을 하던 매직의 회고에 따르면, 이때 팬들로부터 정말 무시무시할 정도로 까였다고 한다(…). 언론에서는 "Tragic Magic"이란 제목 등으로 조롱을...
- ↑ 근데 정작 매직과 조던은 데뷔연도도 5년정도밖에 차이 안나고 나이도 네살차이밖에 안난다.
- ↑ 실제로 MVP를 수상했다. 윌리스 리드와 마이클 조던과 더불어 유일하게 MVP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선수가 되었다. 평생 괴물 소리를 들어오던 샤킬 오닐이지만 이해의 활약은 특히나 무시무시했다. 2000년 3월 6일에 61득점 23리바(…)를 기록하며 윌트 챔벌레인 이후 최초로 60-20을 기록했다. 팀은 시즌 67승이나 거두고 본인은 득점왕도 차지하고, MVP 투표에서도 121표 중 120표를 쓸어가는 유래없는 사태를 일으켰다(…). 결승전에서는 인디애나를 상대로 평균 38득점 16.7리바 2.3어시 2.7블록 필드골 성공률 61.1%라는 비인간적인 짓을 저지르고야 말았다. 참고로 이해 오닐이 기록한 결승전 평균 득점은 93년 조던의 평균 41득점에 이어 역대 2위.
- ↑ 샤크가 올랜도와의 계약이 끝나고 레이커스로 이적한 주요 이유 중 하나가 LA에 헐리우드가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농구 외에 끼도 많고 관심도 많은 사람인 반면, 코비는 여자친구랑 데이트 할 때도 마이클 조던의 비디오를 보면서 데이트 할 정도로 농덕후라서 코비는 농구에 집중하지 않는 샤크가 못마땅하고 샤크는 자기보다 실력도 경력도 못한 애송이 주제에 자기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게 아니꼬와서 갈등이 생겼다고 한다.
- ↑ 실제로 워싱턴 위자즈의 에이스 길버트 아레나스는 "이 트레이드는 범죄행위다"라 할 정도였다. 그래도 멤피스는 형 가솔을 넘겨주면서 받아온 동생 마크 가솔이 잘 성장해줘서 다행.
- ↑ 필 잭슨 감독 생애 최초의 스윕 패배이다.
- ↑ 아예 이번 시즌은 포기하고 탱킹하는게 어떠냐는 의견도 있지만 레이커스같은 팀은 아무리 대형신인이 눈에 보여도 무조건 성적이 좋아야 한다. 팬들의 비난도 문제고 무엇보다도 수익과 직결된다. 해도 안돼서 어쩔 수 없이 로터리를 노릴 상황이면 몰라도...
- ↑ 뒤집어 얘기하면 코비를 받춰줄 만한 플레이어의 부재란 의미도 된다.
- ↑ 다만 예전과 다르게 많은 코비팬들이나 레이커스팬들도 코비의 플레이가 엉망이라는 건 인정하고 있다. (초반에는 "코비답다", "이 정도만 해도 어디냐"는 반응도 있었지만 이런 옹호의 목소리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린이나 부저같은 동료가 대놓고 "공이 안 돌고 있다"고 비난하는가 하면 야투율은 올라갈 기미는 커녕 더 떨어지고 턴오버까지 많기 때문. 실제 경기를 보면 더 심한데, 아무리 동료 수준이 떨어져도 오픈된 동료를 무시한채 수비달고 난사를 하다 말아먹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고 있다.
- ↑ 이번 시즌 코비는 스탯상으로는 좋아보이나 자세히 보면 필드골 성공률 및 삼점슛 성공률이 형편없고 (필드골의 경우 평득 20점 이상을 찍은 선수중 역대 최저 수치) 2차스탯으로 보면 비효율의 상징인 조쉬 스미스보다도 더욱 비효율적이다. 얼마나 막장이었는지는 코비 브라이언트항목의 2014-15시즌 부분 참고
- ↑ 하든의 부진으로 붕괴한 휴스턴과 감독의 이해할 수 없는 운영으로 승리를 챙기지 못하는 클리퍼스조차 레이커스보다 형편이 낫다.
- ↑ 로스앤젤레스 킹스 페이지에는 아이스하키 경기가 끝나고 농구장으로 변신하는 영상이 있다.
- ↑ 휴스턴 로켓츠의 홈구장이었던 더 서미트(컴팩 센터) 역시 휴스턴에 있는 대형교회인 레이크우드 교회가 매입한 바 있다.
- ↑ 실제로 촬영시 계약에다 이걸 명시한단다. 2005-06 시즌에도 늘 그렇듯 홈경기 41경기 중 40경기에 출근하며 여전한 사랑을 과시했는데 문제는 스케줄때문에 못 본 그 경기가 2006년 1월 22일 토론토 랩터스와의 홈 경기, 바로 코비 브라이언트가 81점을 때려박은 그 경기다.
- ↑ 그 와중에 마이클 조던이 있던 시카고 불스와는 라이벌관계를 형성한 적이 없다. 이 시기에 레이커스가 파이널까지 올라갈 힘이 없었기 때문.
- ↑ NBA Fan Map이라는 자료를 보면 레이커스가 플옵에 탈락했고 코비가 시즌내내 부상때문에 드러누웠음에도 불구하고 연고지역팀이 없는 지역에선 레이커스를 가장 많이 언급했다.
- ↑ 유래는 LA가 강팀이라 부숴달라는..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더 심오한 뜻이 있다고. 자세한 것은 링크 참조. 요 Beat LA는 박자가 딱딱 들어맞는 흥겨운 챈트라서 다저스를 상대하는 팀들, 즉 야구장에서도 간혹 나온다(...)
- ↑ 타임워너 스포츠넷은 2013년까지는 FOX와는 달리 3개 팀(레이커스, MLS LA 갤럭시, WNBA LA 스파크스)밖에 중계하지 않았다. 근데 왜 장사가 되냐고? 2011/2012 시즌 레이커스 경기 평균 시청자 수는 30만명으로, 메이저리그 LA 다저스, LA 에인절스, NBA LA 클리퍼스, NHL LA 킹스, 애너하임 덕스 경기의 평균 시청자 수를 합친 것보다 더 많았다. 출처
LA농구의 위엄지금은 LA 다저스와 기록적인 중계권 계약을 맺어 LA 지역 양대 인기 스포츠 구단의 방송중계를 독점. - ↑ 써드팀이 최고이력이라 과소평가받는 경향이 있는데 80년대를 풍미한 래리버드나 도미니크 윌킨스....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바로 밑에 위치하기엔 부족함이 없는 선수다. 워낙 강팀에 입단해 실력에 비해 비교적 평범한 스탯을 남겼는데 스몰포워드로 크고 강한 신체를 이용한 포스트업의 위력이 대단했으며 빠르기까지 해 속공시 탱크처럼 돌진해오면 막을 길이 없었다. 하프코트, 풀코트에서 모두 빛나는 득점기계. 수비나 다재다능함을 제외한 르브론 제임스의 하위호환이라고 봐도 될 정도.
- ↑ 현역 시절 마이클 조던이 1:1로 대결해보고 싶은 상대로 꼽았다.
- ↑
그러나 샤크와의 계약으로 벤치로 밀리거나 트레이드 카드로 쓰일 것이 당연해 보였던디바치가 트래이드된 것은 7월 1일이었고, 샤킬 오닐이 영입이 발표된 건 2주 이상 지난 18일 경이었다. 즉, 샤킬 오닐을 확보하기도 전에 디바치를 포기했다는 말. 당시 샤킬 오닐은 올랜도와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고, 지역지인 올랜도 센티널에서 "샤킬 오닐이 1억1천5백만달러(올랜도의 제시액)의 가치가 있는가?"란 설문에 91.% 이상이 "그렇지 않다"고 답하는 등, 팀과 사이가 최악이 되어서 이적이 유력한 상태이긴 했다. 그렇지만 샤킬 오닐이 온다는 보장도 없는데 팀의 주전센터(그것도 실력도 만만치 않은)를 포기하고 즉시전력감도 아닌 18세 애송이 가드를 영입했다는 건 웨스트 특유의 승부사 기질이다. 실제로 만약 다른 팀이 갑툭튀해 오닐을 채갔으면 레이커스는 골밑의 공백을 못 메우고 붕괴했을 것이다. - ↑ 하지만 필 잭슨은 레이커스에 있을때 진짜 일한건 웨스트의 후임 GM인 컵책과 자신이었고 웨스트는 오후 세시면 골프치러 간다고 디스한적이 있긴 한데 뉘앙스가 진지하게 깠다기 보단 '구단 프런트에 관심있다는 얘기가 있는데 감독보다 힘들지 않을까?' 라는 질문에 힘들지 않다는 대답을 돌려 말한거라고 보는게 맞을 듯.
그리고 컵책이 그렇게 유능할 리가... - ↑ 그렇지만 NBA 사무국에선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초상권 지불을 해야할 수도 있기 때문에 말이다.
- ↑ 참고로 어빙 "매직" 존슨의 "매직"이란 별명은 칙헌이 아닌 매직의 고등학교 시절 신문기자인 스타브리가 지었다. 매직이라는 별명은 프로데뷔 이후 생긴 것이 아닌 어빙 존슨의 고등학교 시절부터 불려오던 별명이다. 1979년 NCAA 파이널에서도 미시간 대학 응원팀이 매직이라는 문구를 들고 응원하던 걸 볼 수 있다. 칙헌이 지었다는 것은 잘못 알려진 것이다.
- ↑ 레이커스 팬 포럼등에 설문조사를 해보면 보통 65%정도가 오닐의 영구결번에 반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