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습근평에서 넘어옴)
역대 중국의 최고지도자
1대2대3대4대5대6대
마오쩌둥화궈펑덩샤오핑장쩌민후진타오시진핑
중화인민공화국국가주석
6대7대(현직)
후진타오시진핑(현직)
시진핑
习近平
중화인민공화국 제7대 주석
임기2013년 3월 14일 ~
부총리리위안차오
총리리커창
중국공산당의 제9대 중앙위원회 총서기
임기2012년 11월 15일 ~
중국공산당의 제8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임기2012년 11월 15일 ~
이름시진핑
간체: 习近平, 정체: 習近平
병음: Xí Jìnpíng, 한자음: 근평
출생일1953년 6월 15일 ~
출생지중국 베이징 시
정당중국공산당
학력칭화대학교 공과대학
인문사회과학대학 법학 박사
종교무신론
부모아버지 : 시중쉰 간체: 习仲勋, 정체: 習仲勛 (1913년 10월 15일 ~ 2002년 5월 24일)
어머니 : 치 신 齐心 (1926년 11월 ~ )
배우자커링링柯玲玲(이혼)[1]
펑리위안간체: 彭丽媛, 정체: 彭麗媛[2]
자녀시밍쩌習明泽
형제자매[3]치차오차오齊橋橋(1949년 3월 1일 ~ )
치안안齊安安(1951년 ~ )
시정닝習正寧(1941년 ~ 1998년 11월 27일)
시위안핑習遠平(1956년 11월 ~ )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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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주석, 마오쩌둥을 흉내 내다.

신 중화제국 7대 황제

중국의 정치인. 중국의 제7대 국가주석이자 제5대 중국 공산당 총서기, 제6대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으로서 2012년 11월부터 중국 최고 지도자가 되었다. 반부패 전쟁 등으로 대중적인 이미지가 매우 좋아 중국 내에서는 시다다(习大大; 시씨 아저씨)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비민주국가라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렵지만

태자당의 주축으로, 보시라이와는 같은 태자당이지만 그 같은 강경파가 아닌 온건파 지도자에 속한다. 혹자는 푸젠성위부서기 출신으로 중국 공산당 자격으로 중앙 후보 위원 150명 중에서 151등의 꼴찌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당서기가 된 인간 승리의 표본이라고 찬양하는데, 그건 그냥 당시 당 간부들이 특채해서 중앙위 후보 위원이 됐기 때문에 서열상 꼴찌였을 뿐이다. 원래 관례상 150명만 뽑는 중앙위 후보 위원 자리에 당 고위 간부들이 시진핑을 억지로 밀어넣어서 151위였던 것이다. 애초에 태자당 출신에 당 고위 간부들의 배후 지원까지 받는 중앙 후보 위원이면 승승장구하는 세습 엘리트의 전형이지 핸디캡 논할 계제가 아니다.

2 생애

산시 성(陝西省)에서, 혁명 원로로 부총리였던 시중쉰의 아들로 태어나서 어렸을 때는 부러운 것 없이 자랐으나 1962년 류즈단 사건에서 시중쉰이 펑더화이[4]를 지지하다 반당(反黨)집단으로 몰려 오지로 처분되었고 산시 성 시골로 하방(추방)되어 불행한 시절을 보냈다. 이 때 토굴에서 7년간 힘겹게 살았다고 한다. 소시적부터 리더십이 있었는지 하방 당한 곳에서 노동자들을 지도하여 최고의 생산량을 올렸다고 한다.[5]

시진핑은 1970년대에 명문 칭화대학에서 공정화학과를 졸업하고 공산당에 여러 번 입당 퇴짜를 맞다가 겨우 입당, 정치 생활을 시작했으며 마오쩌둥이 죽은 후 시중쉰이 덩샤오핑에 의해 복권되자 베이징으로 돌아오며 본격적인 정치이력을 쌓기 시작한다.

정치 생활의 대부분을 푸젠 성, 저장 성 등 동남부 지방 정부에서 지냈는데, 2007년 상하이 시 당서기를 지내면서 장쩌민과 주룽지의 파벌인 상하이방과도 관계를 맺게 되어 태자당상하이방 양쪽의 후원을 받는 거물로 성장했다. 2008년에는 국가 부주석 직에 올랐다. 하지만 이때까지 보시라이리커창에 비해 외국에 덜 알려졌으며 한국에서도 그가 중국의 주석에 오를 것으로 미리부터 예측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는 부주석을 지냈던 쩡칭훙 외에도 장쩌민과 후진타오의 지지와 후원 모두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부주석으로 있다가 2010년에 당 중앙군사위 부주석 직에 오르면서 후진타오를 이을 차기 지도자로 공인되었다.

영국 주재 대사의 딸이었던 첫 아내와는 성격차이로 이혼했고, 재혼한 현 부인 펑리위안중국 인민해방군 예술단 소속의 가수[6]로 중국의 국민가수로 불리는 사람인데, 펑리위안의 인기도 시진핑의 권력 상승에 도움이 되었다.

3 집권

전임인 후진타오 주석이 전전임인 장쩌민이 자기 권력을 내놓지 않겠다고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자리를 계속 유지하는 바람에 5년동안 반쪽짜리 권력만을 유지하였으나, 시진핑은 2013년 중국 공산당 제 18회 당 대회 때 후진타오로부터 당 총서기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자리를 동시에 이양받았고 2013년 3월 후진타오의 국가주석 임기가 끝나면서 국가주석 직도 승계하였다. 따라서 공식적으로는 2013년 3월 14일부터 별 일이 없는 한 2018년 3월 14일의 연임을 거쳐서 2023년 3월 14일까지 중국과 중국 공산당 전체를 이끌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되었다.

사실 시진핑이 국가주석에 오른 이면엔 장쩌민후진타오의 권력 암투가 있었다. 장쩌민은 후임인 후진타오에게 권력을 승계하지 않고 그를 일종의 꼭두각시로 삼으려 했기 때문에 이 둘은 물밑에서 박터지게 싸웠는데 이런 암투 끝에 시진핑이 권력을 잡은 것. 장쩌민 입장에서는 태자당이야 어차피 자기 측근 쩡칭훙이 있으니까, 시진핑 역시 자기 사람이나 마찬가지고 후진타오 입장에서도 공청단 소속이 태자당에도 소속되는 등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인원들이 나름대로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진핑도 장쩌민의 꼭두각시가 될 생각은 없었기에 후진타오와 손을 잡고 장쩌민에 대항했고 이게 현재 반부패를 핑계로 한 상하이방 대규모 숙청의 원인이 된다. 원래 장쩌민이 차기 주석으로 삼으려던 인물은 천량위였고 천량위가 실각한 이후 보시라이가 뜨자 보시라이를 주석으로 삼으려고 했다.

간략하게 설명하긴 했지만 사실 시진핑의 집권과정은 더 복잡한 암투를 통해 이루어졌는데 중국 공산당 내 암투에 대해선 디시위키 시진핑 문서에서 잘 설명하고 있으니 참조해도 좋다.

4 임기 중 행보

폭발적인 성장에 따라 부작용이 확대하는 것을 감안, 개혁으로 국가 동선을 움직이고 있다. 세계적으로 문제시되는 부정부패를 감시, 처단하는데 힘을 쏟고, 역시 세계적으로 문제시되는 빈부격차에 대해서도 줄이려 노력하고 있다. 성장과 복지에 모두 관심을 가질 것이며 중국 국내에서 2000년대 후반기부터 문제시 되어오던 한 자녀 정책은 시진핑 시대를 기점으로 폐지되었다.

1%의 국영기업이 40%의 비중을 차지하는 경제에 대해서도 메스를 댈 듯하다. 하지만 중국 내 기득권세력과 개혁세력의 복합적인 이익관계를 조정해야하는 입장이고 게다가 사회적 혼란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므로 정치와 법 분야의 개혁은 안정적인 기조 위에서 실행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경제 면에서도 마찬가지로 민간기업의 몫이 늘어나겠지만 전면적으로 정부와 무관하게 시장에 권한이 집중될 것으로 보기 어렵다.

임기 초반부터 개방개혁을 우선 강조하며 강한 의지를 보였으나 이에 대해 보수세력[7]들로부터 견제도 받았던 것 같다. 그가 공산당 혁명 유적지를 찾기보다 개혁•개방 1번지인 선전을 방문해 덩샤오핑 동상에 헌화한데 의구심을 표한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후로는 마오쩌둥 기념식에도 꾸준히 참석하고 있다.

현재 자신의 정책을 실행해나가는 상황이며 계획생육정책의 골자인 한 자녀 정책을 부모 중 한 쪽이 한 자녀일 경우 둘째까지 허용하는 방침이 그 중 하나이다. 노동교화소 폐지도 정책으로 실행된다고 하였는데 정식으로 폐지되었는지 아직 확인되진 않았다. 대대적으로 출범한 전면심화개혁영도소조 조장도 직접 맡고 있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국내외 현안 전반에 걸쳐 추진작업을 해나갈 것이라고 한다.

다만 중국 국가와 공산당 독재체제에 대한 변화를 근본적으로 꾀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이고, 미국과 똑같은 민주 정치제도의 시행에는 부정적이며, 이 점에서는 여태까지의 다른 중국 권력자와 별반 다른 점이 없다. 2013년 8월 뉴욕타임스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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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중국 인민해방군의 군 구조를 대규모로 개편한데 이어, 2016년 4월에는 '중앙군사위 연합지휘중심 총지휘'라는 새로운 직함을 달고 군사훈련을 지휘하는 모습이 보도되었다.

4.1 외교

4.1.1 서방

시진핑은 국가 부주석일 때 멕시코를 방문하여

우리는 혁명을 수출한 적이 없고 배고픔을 수출한 적도 없으며 상대를 괴롭히지도 않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한가한 서방 사람들이 이렇다 저렇다 한다.

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중국이 개혁개방 30년을 지나 경제가 계속 발전하면서 중국에 대한 서방의 간섭이 수위를 높여오자 이에 그가 어떻게 대응하려는지 대충 방식을 보여준 셈이다.

제 18회 당대회에서 취임 기자회견 이후 중화문화의 부흥에 대해서 강조했고 채택된 내부 정치보고 문안에서는 "국제적 위치에 맞고 국가 안보와 발전 이익에 부응하는 강한 군대를 건설하는 것이 전략적 임무"라고 명시함으로써 태평양 지역에서 이제는 미국, 일본과 대립각을 세워 국가 안보에 대해서는 양보하지 않을 것임을 피력하였다.

4.1.2 북한

북한 문제와 관련해서는 중국의 안보 문제와 관련해 북한의 핵보유[8]에 반대한다는 입장이 단호하고 국제적인 규범을 성실히 이행할 것임을 천명하였지만 북한의 동향이 줄 영향에 대해서도 관심이 크므로 북한에 대한 전통적인 외교경제적인 후견인 역할이 어느 면에서 한국과 안정적으로 공조가 이루어져 변화하고 조정될 수 있는지 주목을 받고 있다.

시진핑은 예전에 "항미원조전쟁은 조선을 도운 중국의 정의로운 전쟁" 이라고 발언한 적이 있다. 물론 시진핑이 6.25전쟁의 배경을 모를리는 없지만, 중국 공산당 부주석으로 한 말이기에 당연히 중국 공산당의 입장에서 말해야 했을 것이다.

4.1.3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박근혜 대통령과 친분이 깊고, 박준영 전라남도 지사, 새누리당의 정몽준 전 의원, 새정치민주연합의 손학규 고문, 삼성 이건희 회장, 현대차 정몽구 회장, 포스코 정준양 회장 등 한국의 많은 정•재계 인사들과의 교분도 깊어 지한파로 알려져 있으며, 예전 중국의 지도자들에 비해 한국과의 관계 발전에 더욱 관심이 많다고 한다.

그러한 점이 작용했는지 2014년 7월 3일 대한민국을 방문하게 되는데 중국과의 수교 이후 처음으로 최고지도자가 전통적인 동맹국인 북한이 아닌 대한민국을 먼저 방문하는 케이스가 되었다. 박근혜 역시 한국의 대통령이 취임 이후 일반적으로 미국을 처음 방문하고, 그 다음에 일본을 방문하는 관례를 깨고 미국 방문 이후 중국을 먼저 방문하였다.

한편 박근혜가 당선된 이후 "일본에 우호적인 후보가 당선되었다"라는 일본언론 보도가 있었고 이명박 정부 후반기에 악화된 한일관계를 개선할 대통령으로 알려졌으나 아시다시피 한중관계의 강화로 박근혜가 졸지에 반일지도자로 제대로 각인되었다.(...) 한국 내의 친서방 성향의 인사들도 지나친 친중 외교를 비판하기도 했다.

2014년 11월, 베이징에서 열린 APEC에서 시진핑은 박근혜, 버락 후세인 오바마, 아베 신조를 만났는데, 아베 총리에게 보여준 표정은 박근혜, 버락 후세인 오바마 대통령과 악수할 때는 사뭇 달라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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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e
so-so
shit 세상에서 제일 어색한 사진 대충 봐도 시진핑이 아베 신조와 악수할 때는 표정이 확 다르다. 그래서 그런지 아베 신조도 제대로 웃지를 못하고 있다. 내가 웃는게 웃는게 아니야 그 윗 사진 두 장도 옛말

나 지금 너랑 말 섞을 기분 아니야
2016년 현재 THAAD 한반도 배치에 크게 반발하여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줄곧 우호적이었던 대한민국과의 관계도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4.1.4 중화민국

[9]

첫번째로 수복해야 될 곳의 지도자인데 아베와는 다르다?[10]

2015년 11월 7일 마잉주 중화민국 총통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에 대만-중국 간의 정상회담이 66년 만에 진행되었다. "중화민국 총통"과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주석"간의 관계를 나타내는 한 사례가 되었다.[11]. 기사 하지만 2016년에는 하나의 중국 정책에 회의적인 민주진보당차이잉원총통으로 당선되어서 앞으로의 행보가 어떨지 주목되었다[12].

5 비판

  • 외치
  • 내치
    • 후진타오 주석의 노력으로 형성된 권력 승계 제도의 퇴보.
    • 후진타오에 의해 어느 정도 정리된 파벌 싸움을 다시 부추김
    • 태자당 파벌의 공산당 독재 주도
    • 강남 지역에 한해 상하이방 파벌이 엄청난 영향력을 쏟을 수 있게 해줌.[13]
  • 경제, 사회
    • 빈부 격차 증가
    • 경제 성장률 하락.
    • 지역 감정 대폭 증가. 특히 현 중국에서는 반하남성 정서가 더욱 강해졌다.

5.1 1인 독재화

나는 호랑이든, 파리새끼든 다 때려잡을 겁니다.

보시라이 숙청을 시작으로 점차 자신의 정적을 제거해나가며 권력을 강화시켜가고 있다. # # 저우융캉 전 상무위원마저 부패 및 국가 반역 시도 혐의로 처벌 수순에 오르면서 # 시진핑의 독주를 막을 세력이 점점 줄고 있다. 그나마 아직까지는 반대 세력이 건재해서 저우융캉은 무기징역을 선고받는 걸로 최악을 피할 수 있었다.[14]

단순히 정적 제거뿐 아니라, 마오쩌둥 이후로는 전례없는 지도자 선전 등 그가 점차 권력을 강화시키려고 드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러다 보니 새로운 행정기관 설립으로 인해 마오쩌둥, 덩샤오핑과 맞먹는 권력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올 정도.# 오죽하면 전직 대만 총통이 시진핑의 행보에 대하여 '마오쩌둥 시대로 되돌아가려고 한다는 발언을 했다.

시진핑이 추진하는 반부패 드라이브의 진정성은 이 기사에 매우 잘 나타나있다. 반부패 대책을 세우는 일반인들을 탄압하고, 그 재판 과정조차 공개하지 않아 투명성조차 의심이 간다는 내용. 사실상 숙청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러한 시 주석의 움직임에 대한 반발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으나, 몇몇 매체를 통해 시진핑 암살 미수 및 쿠데타 음모가 적발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기사 처음 이 기사를 보도한 매체가 반중 성향이 강하고 신뢰도가 비교적 낮은 보쉰이라 의심을 받기도 했으나, 이후 중국 주요 언론에서도 "비조직 정치 활동"에 대해 언급한 걸로 보아 뭔가 심상찮은 일이 있었던 것 같기는 하다. 홍콩의 주요 월간지 중 하나인 개방에 따르면 시진핑 암살 시도만 현재까지 6차례나 된다(...)고 한다. 이 사람이 필요하다

# 일부 언론에서는 이런 행보로 인해 시진핑의 종신 집권을 점치기도 한다. 중국/정치 항목에서도 알 수 있지만, 중국 정치는 공산당 1당 독재로 민주주의와는 많이 달라서, 주석 임기만 채우고 물러나더라도 중앙 군사위원회 주석 자리만 지키고 있으면 계속 집권할 수도 있는 식으로 언제라도 1인 독재로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15] 시진핑의 권력이 강해질수록 이런 일을 막는 중국 공산당 내부의 압박이 약해지기 때문에 이런 의혹이 발생하는 것이기도 하다.

시진핑은 주석 임기의 반도 채우지 않은 상태고 남은 임기 동안 그를 견제할 세력은 저우융캉 등 거물급들이 전부 반부패운동을 빌미로 전부 제거된 상태다. 기껏해야 남은 거물급은 장쩌민 정도인데 이미 시진핑이 과거부터 후진타오와 손잡고 철저하게 장쩌민의 측근들을 정리해 온 데다 고령까지 감안하면 사실상 시진핑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다시 시진핑에게 대항할 세력이 성장하려면 최소 십 년도 모자른 상황이다. 일단 실질적으로 힘을 가진 당 내의 세력도 일소된 상황에서 민주주의적인 장치가 전혀 없는 중국의 사회 구조상 지식인들이 아무리 독재에 반감을 가지고 있다 해도 시진핑의 폭주를 막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시진핑은 지금도 1인 독재자가 되기 위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실제로 장기 집권하는 각국의 지도자들은 민심은 아랑곳하지 않고 헌법을 고치기 때문에, 의사가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위에서 보듯이 시진핑이 종신집권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은 거의 확실하나 어떤 명분을 내세워서 종신집권을 추진할 것인지가 아직 불확실한데 대외적인 명분으로는 2021년까지 중국의 국민소득을 2010년의 두배로 만드는 샤오캉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시 주석의 임기연장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는걸 봐선 명분적으로는 샤오캉 사회의 실현을 명분으로 하여 종신집권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본인 역시도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의 꿈(中國夢)을 반드시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해 오고 있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본 시츄에이션 같은데?

위에서 말한것처럼 명분상으로는 샤오캉 사회의 실현을 내세운다면 나머지 하나는 덩샤오핑 이래로 이어진 당내의 10년 집권이란 불문율을 깨뜨릴 수 있느냐의 문제만 남았는데 이 불문율에 대해선 시진핑이 왕치산 중앙기율검사위 서기의 유임을 통하여 이 불문율을 박살낼것으로 보인다. 왕치산의 유임여부가 시진핑의 종신집권 성공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지렛대인 이유를 들어보면 최고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에게 적용되는 칠상팔하(七上八下)[16]라는 내규가 있는데 이 원칙에 따르면 시진핑과 리커창을 제외한 나머지 5명은 모두 19대에서 은퇴해야하며 왕치산은 내년에 69세가 되며 또한 시진핑이 추진하고 있는 반부패 운동(을 가장한 정적제거)의 가장 핵심 인물이기 떄문, 따라서 왕치산이 이 내규를 깨고 유임에 성공하여 선례를 만들어 놓을 경우 2022년에 70세가 되는 시진핑 역시도 왕치산의 유임을 통해서 만들어진 선례를 활용하여 칠상팔하를 무력화하고 종신집권에 성공하게 된다.

그 중에서 시진핑의 퇴진 요구 서한 연루설로 일선 퇴진설이 제기됐던 장춘셴 전 신장 위구르 자치구 서기가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당건 영도소조 부조장에 선임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2016년 제18기 중앙위원회 제6차 전체회의(18기 6중전회)가 개최하였는데, 중국의 정치는 집단지도체제로 가고 있지만, "7인의 표결" 대신 시진핑의 지시에 따라 정책에 거쳐야한다는 것이다.# 18기 6중전회 결과 공보문에서 시진핑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 중앙이란 구절이 등장함으로써 사실상 1인지도 체제에 들어갔다.#

중국 공산당의 집단지도체제 강화와 문화대혁명의 안 좋은 기억으로 시진핑이 종신집권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느냐는 반박도 있으나 시진핑은 장쩌민의 정치적 생명을 끝장낸 상황이며 기존의 저항 세력이 이미 박살난 만큼 시진핑이 집단 지도체제를 붕괴시킨다 해도 현재로서는 막을 수 있는 세력이 없기 때문에 별 다른 이변이 없다면 시진핑이 자신의 임기내에 정치적 도전에 직면할 일은 없다고 봐도 된다.

5.1.1 우상화

시진핑이 권력을 공고히 하면서 시진핑을 찬양하고 우상화 하는 낯뜨거운 노래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2014년에는 '<시다다(習大大)는 펑마마(彭麻麻)를 사랑해>[17]'라는 노래가 나왔고(음원, DJ 리믹스 버전), 2016년에는 <시집가려면 시다다 같은 남자를 만나라(要嫁就嫁習大大這樣的人)>(...)라는 노래가 나와 중국 공산당의 증언에 의하면 중국에서 인기를 끌었다. (음원)[18] 시집가라는 노래에 왜 열병식 장면만 주구장창 보여 주는건지? 저기 나오는 무기들이 다 시다다의 혼수품이라 카더라.

<시다다는 펑마마를 사랑해>는 5400만회의 조회수를 기록했고 <시집가려면 시다다 같은 남자를 만나라>는 댄스 뮤비[19]까지 나오면서 인기 몰이를 하고 있고 검열 당국에서도 해당 노래의 인기를 크게 반기고 있다고 한다. 백 투 더 모택동 응답하라 1966

인민일보는 외국인 유학생들을 동원해 "시다다는 정말 귀여워요." 같은 인터뷰 영상까지 찍었다.

일련의 시진핑 우상화 열풍이 중국 인터넷을 강타하자 본인도 어지간히 얼굴이 화끈거렸는지 인터넷에서 '시다다' 애칭이 자취를 감추고 자신을 시다다라고 부르지 말라고 지시했다. 친근한 아저씨 같은 이미지 보다는 위엄있는 지도자의 모습을 더욱 부각 시키고 싶어 하느거 아니냐는 추측이 있다. 덕분에 인기 동영상(?)이었던 <시집가려면 시다다 같은 남자를 만나라>도 중국 인터넷에서 삭제됐다.

하지만 저 지시 이후에도 중국의 걸그룹 모란봉악단 56둬화(56朶花)가 시진핑 찬양가 '당신을 어찌 부를지 모르겠다', '만두가게' 등을 부르는 등 개인 우상화는 현재 진행형이다.

중국의 일부 땡추 불교 승려들이 시진핑은 보살의 화신이라고 극찬하고 있다.

일당독재가 지속되는 중국이라지만 문혁 이후 중국 공산당은 최고지도자라도 개인을 우상화하고 숭배하는 일을 하지는 않았다. 시진핑은 이 관례를 깨고 있다.

마오쩌둥에게만 불렸던 '영수(領袖)'를 공산당 기관지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반부패 어록도 띄워주고 있다.# ##

시집 가려면 시다다 같은 남자를 만나라 고화질 버전
시다다는 펑마마를 사랑해[20]
중국은 시다다를 배출했네
당신을 어찌 부를지 모르겠다[21] 뮤비(?) 버전
시다다 우리 집에 오셨네 기사
전민 우상 시다다
이곳저곳에서 모두 칭송하는 시다다
시주석께 바칩니다 초반부 멜로디가 북한 혁명가곡 같다.

뽕짝(?)에 (?)에 아이돌 군무, 발라드까지 있을건 다 있다.

5.2 비리

2014년부터 부정부패 척결을 외치면서 자신의 친인척들에게 재산을 처분하고 대외투자를 줄이라고 압박하고 있다고 한다. 누나 등 가족들에 재산 처분 압박 시진핑이 정치국 상무위원이 된 2007년 이후 친인척들의 재산이 크게 불어났다고 하니.

일단 부정부패 척결은 모든 지도자[22]가 하는 말이고, 위에서 솔선수범을 하지 않는 이상 아래에서 절대로 듣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런 강경 행보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게다가 중국은 나라가 큰 만큼 원체 정치인들이 해쳐먹는 규모가 남달라서(....) 부패를 강하게 때려잡아야 할 명분이 서고도 남는다. 정치권의 부정부패를 가만 놔두면 중국의 암적 존재가 되어 경제 성장을 방해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

다만, 이를 단순한 쇼라고 보는 의견도 있다. 반부패 정책이 실제로는 시진핑의 정적 숙청 수단으로 쓰일 수도 있기 때문. 중국의 중앙 정치는 일당독재이기는 해도, 실제로는 공산당이라는 틀 내에서 수많은 계파가 싸우는 형국이라 모든 당원이 친주석파는 아니다. 또한 부패 척결이나 사회 정화 목적으로 내놓은 정책을 반대파 탄압에 악용하는 것은 흔해 빠진 일이다. 이로 인해 시진핑의 "반부패 드라이브"의 진정성이 의심받기도 한다. # 반부패 운동 자체가 그의 권력 강화를 위한 기반이 아니겠냐는 의혹이다. 반부패를 위해 권력을 강화하는 것인지, 아니면 반부패를 권력 강화에 이용하는 것인지는 좀 더 시간이 지나봐야 알 수 있을듯. 이러한 반부패 운동에는 친누나도 예외가 없다.

시진핑을 포함한 중국 지도부의 친인척이 4000조원을 탈세했다는 기사가 나왔다.#[23] 저 어마어마한 액수의 탈세를 시진핑이 몰랐을 가능성은 매우 낮으므로, 시진핑은 이에 대해 아무리 낮게 잡아도 공범이나 협력, 혹은 최소 방관의 책임이 있다.

시진핑의 매형인 덩자구이가 조세 피난처에 유령회사를 세웠다는 의혹이 있다. #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시진핑은 부인중. 파나마 페이퍼스참고.

공산당 기관지에서는 시진핑에 대한 이런 의혹을 서방의 음모(...)라고 주장하는 병크를 터뜨려 빈축을 샀다. 푸틴이랑 반응이 똑같다

5.3 외교, 민족문제의 악화

시진핑 집권 이후의 중국은 점점 대외적으로 강경하고 양보가 없는 경향으로 가고 있다. 과거 덩샤오핑이 서방 세력과의 강한 충돌을 경계한 이래 중국은 그 동안 이웃국가들이나 미국을 비롯한 서방을 자극하는 것을 최대한 자제하려 노력했는데 시진핑의 등장 이후 중국이 주변국들은 물론 서방과의 충돌도 점점 높아지는 상황이다. 남중국해 해역 일대의 동남아 국가들과의 영해 분쟁은 물론 한국과도 북한 문제와 영해 문제로 인해 점점 국민갈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중국 내 소수민족들은 물론 이제는 특별행정구나 대만과의 관계에서도 점점 문제가 나타나고 있는데 시진핑의 강압적인 독재 스타일의 정치는 일단 민주주의 체제를 따르고 있는 홍콩과 대만으로서는 절대 받아들이기 힘든 체제였고 중국이 홍콩과의 약속을 어기고 내정에 간섭할 듯한 모양새를 취하면서 홍콩에서의 반중 감정이 높아지고 있으며 대만도 홍콩이 겪는 꼴을 보고 양안이 다시 하나가 되느니 그냥 분리독립하는게 낫다는 주장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게다가 러시아도 차이나 머니 때문에 친분을 유지하려고는 하지만 중앙아시아 패권 문제 등으로 인해 충돌이 있다. 하지만 러시아는 돈이 없어서 참고 있다.

이런 식으로 중국이 대책없이 주변국들을 적으로 돌리는 국수주의적 외교를 하는 데는 시진핑 자신의 독제체제 성립 시도와도 연관이 있다는 시각도 있다. 시진핑의 1인독재 시도는 중국 내외적으로 반발이 있고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중국 경제도 과거만큼 잘 나가지 못하게 되면서 쌓인 시진핑 및 공산당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를 민족주의를 통해 외부의 이웃 국가들에게 향하게 함으로서 정권을 유지하려 한다는 것. 문제는 이런 방식의 통치는 국민들의 국수주의 유지를 위해 계속 고압적이고 비타협적인 외교방식을 유지하는 방법밖에 없기에 대화를 통한 외교문제 해결이 어려워지고 주변국과의 적대관계가 높아질 위험이 크다는 것. 실제로 이로 인해 주변 아시아 국가들이 그를 크게 경계하고 있다.

5.3.1 팽창주의

세계에 중국 위협론을 본격적으로 대두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시진핑은 전 지도부의 내정불간섭 원칙을 내세우며 세력을 확장해나가던 중국의 외교원칙을 깨부수고, 일대일로 정책 추진 등 적극적이고 팽창적인 대외확장 외교를 해버림으로써, 미국이 대중국 포위망 구성에 박차를 가함으로써, 중국을 외교적으로 고립되게 하였다. 일부 친중 인사들은 시진핑이 현 중국을 후진타오 시기의 중국보다 더 퇴보시켰다고 비판하고 있다. 몇몇 네티즌들은 중국 위협론 및 그의 철혈 권력을 이유로 '신 중화제국의 시황제'라 하기도 한다.

5.3.2 소수 민족 탄압

시진핑 체제 수립 이후 소수민족 분리운동에 대한 강경정책이 시행되었는데, 독립을 요구하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 사람들에게 단호한 대응을 취하고 있다. 분리운동 테러분자들에 대해 강경대응한다는 점에서[24] 기존 중국의 노선와 별반 다르지 않는 안보정책을 취하면서 경제적으로는 개방개혁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5.3.3 특별행정구 간섭

홍콩 특별행정구에서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중앙정부에서 이를 받아들였다. 문제는 행정장관 후보는 무조건 공산당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 이로 인해 벌어진 것이 홍콩 우산 시위이다.

홍콩은 중영공동선언에 따라 자치와 민주주의가 보장되지만, 중국 공산당은 홍콩의 자치와 민주주의가 본토로 확산되어 일당독재에 위협을 줄 것으로 인식하고 있어서인지, 이런저런 장치를 통해 완전한 절차적 민주주의를 실현하지 않고 있다.(자세한 사항은 홍콩 항목의 정치 참조) 공산당 정부는 홍콩 반환 이후 홍콩의 자치 및 민주주의에 이런저런 간접적인 방식으로 간섭을 해왔고, 따라서 이것이 딱히 시진핑 정권이 만들어낸 문제점은 아니다. 시진핑 정권의 문제점이라면 홍콩 및 마카오 양 특구에 대한 정치사회적 간섭을 더 심화하고, 그에 따른 특구 주민들의 반발을 원만하게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외국에서 일국양제 훼손 시도라고 비판하지만 중국에서는 내정간섭이라고 반발중. 이 때문에 홍콩 쪽에서는 일국양제 안 지킬거면 차라리 독립해 나가겠다고 주장하는 세력이 일부 존재한다.

5.3.4 양안관계

우리대만정책명확하고 일관적이다. 대만 정국의 변화에 따라 변하지는 않는다. 어떤 형태의 이른바 대만 독립 분열 행동도 결단코 굴복시키겠다. #

차이잉원이 대만 총통에 당선된 이후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다. 차이잉원은 대만 독립노선을 추구하고 있으며, 이미 국호도 "중화민국 대만"이라고 바꾸기로 했고, 대만 주미대표부의 수장도 기존의 '대표'에서 '대사'로 격상시키기로 했다. 기사. 이는 현상유지를 목표로 하던 92공식을 변화시키려는 것으로, 중국 입장에서는 대만 독립 추구로 비춰지고 있다.

2016년 3월 6일, 시진핑 주석이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차이잉원 중화민국 총통 당선인을 겨냥한 사실상 선전포고에 가까운 강경발언을 쏟아냈다. 차이잉원은 아직까지 표면적으로 대만 독립을 주장하지 않는 등 온건한 스탠스를 보이고 있으나 정식으로 총통에 취임하고 나면 양안관계가 격랑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6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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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기타

  • 축구으로 유명하다. 아르헨티나를 방문했을 때는 메시유니폼까지 선물받고 좋아할 정도. # 2011년 당시 민주당 대표이던 손학규와 만남 당시 "중국이 월드컵에 나가고, 월드컵을 유치하고,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것이 내 세 가지 소원" 살아 생전에 가능할까 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의 영향력 때문인지 중국의 고등학교 입학 시험에서 체육 과목 구기 테스트 종목에 축구가 공식적으로 포함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AC 밀란을 인수한다는 기사가 떴다. 그러나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잇따른 삽질로 현재는 중국 국가대표팀에 대한 기대감을 어느 정도 접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대신 중국 슈퍼 리그를 무지막지하게 키우자는 걸로 방향전환을 했다고 한다. 축구굴기라 해서 중국 축구 산업을 급속도로 성장시키고 있다. 전국에 축구 전문 학교 2만개 설립을 하고 있는데, 2만 개면 우리나라 전국에 있는 학교 수보다 많다.
  • 젊은 시절 복싱을 배웠었다고하며 자세를 취한적도 있다 # 중국무술 빠들 부들부들
  • 바둑을 즐긴다고 하며, 이창호의 팬이기도 하다. 2014년 방한 당시 청와대 만찬에서 이창호의 얼굴을 보고 매우 기뻐하며 악수하기도 했다. #. 청와대에서 국가간 선물 교환 시에도 한국에선 바둑알을 선물했다.
  • 2014년 7월 서울대 강연에서 서울대에 책 기증 의사를 밝혔고, 약 1 년 후 서울대 도서관에 책, 정기간행물, 영상물 약 1만 점을 기증함으로 약속을 지켰다. #.
  • 키 180cm로 아시아 정치인 치고는 꽤 장신에 속한다. 위의 단락 사진을 보면 박근혜보다도 넘사벽으로 크고, 버락 오바마와는 그렇게 키 차이가 나지도 않는다.
  • 베이징(北京, 북경)이 베이핑(北平, 북평)이던 시절 베이핑 근처에서 태어났다고 이름이 近平(근평)이라카더라.
  • 인도의 한 뉴스 앵커가 Xi Jinping의 Xi를 로마 숫자 11로 착각해 Eleven Jinping으로 읽었다가 해고된 적이 있다.(...) 관련 기사: BBC, WSJ, 연합뉴스
  •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 나폴레옹이 중국한테 했던 중국은 잠자는 사자다. 잠에서 깨면 세계를 진동시킬 것 이라는 말을 인용해서 중국이라는 사자는 이미 깨어났다. 이 사자는 평화적이고 친절한 문명 사자다.라는 말을 했었다. [1]
  • 호랑이를 매우 싫어한다고 한다. 중국에는 유독 호랑이를 때려잡는 시진핑 그림이 많다.[25]
  • 중국산 스마트폰 골수 마니아라고 하며 현재 사용하는 스마트폰은 ZTE Axon 시리즈 스마트폰 중 하나인ZTE Axon Elite라고 한다.[26]
  1. 1979~1982
  2. 1987 ~
  3. 아버지 시중쉰은 재혼했고 첫 결혼에서 1남 2녀를 낳았고 재혼해서 2남 2녀를 낳았다. 1번째 아버지의 자녀중 장남만 기재했다.
  4. 시중쉰은 중공정권 수립 후 서북(西北)지역 제1서기, 군정위원회 주석이던 펑더화이가 항미원조전쟁 (6.25 전쟁) 지휘관으로 불려가면서 1950년 10월부터 1952년 9월까지 서북지역 군정위 부주석, 주석대리와 경제총책을 맡았다.
  5. 다만 정치인들에게 붙는 이런 일화는 프로파간다의 차원에서 만들어진 것일 수 있으니 함부로 믿으면 안된다. 특히 중국같은 비민주국가라면 더욱 그렇다. 국내도 어린이 위인전에 나오는 유명인들의 어린 시절 일화는 거의 대부분 소설이라고 보면 된다.
  6. 2012년 기준 현역으로 계급은 소장이다.
  7. 경제적으로 따지면 중국은 보수세력이 좌파다. 당부터 공산당
  8. 2014년 7월 4일 한반도 비핵화라고 언급을 하였으나, 이것은 단순히 북한의 비핵화뿐만이 아닌 한국의 비핵화, 즉 미국의 핵우산 전략목적에 대한 포석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9. 파일:PAF20151107086301003 P2 99 20151107161704.jpg
  10. 사실 남북과는 달리 둘다 잘 먹고 잘 사는 동네들이고 사회상황도 나쁘진 않은데다가 무엇보다도 둘이 서로간의 분쟁을 일으키지 않고 있는지라 딱히 이렇다할 깔 거리가 없어서 그런듯 하다.
  11. 혹자들은 국교 정상화라는 이상한 소리가 있었는데, 국교 정상화는 개뿔(...) 양안관계가 외교관계로 탈바꿈하려면 중국이 하나의 중국 정책을 포기해야 한다. 중화민국도 하나의 중국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 물론 대만 독립파는 중국과 언젠가는 국교 정상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2. 민진당은 예전만큼 대만 독립을 강력하게 주장하지는 않는다. 다만, 일단은 중국대륙과 분리된 독립된 주권국가라는 정체성은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13. 당내 유력 파벌을 중앙에서 배제하겠다고 지방에서 세력을 키울수 있게 해준 거다. 현 중국의 하나의 중국 원칙에 엄연히 위반되는 행위이며, 최악의 경우 중국 분열의 효시가 될 수도 있는 엄청난 행위다.
  14. 그의 수하였던 보시라이가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것도 고려됐을 것이다.
  15. 장쩌민도 이런 방식으로 꼼수를 부려 후진타오를 허수아비처럼 만든 전적이 있다.
  16. 당 대회 개최시점에 67세이면 유임하고 68세 이후는 하차해야 한다는 원칙
  17. 시다다는 시진핑의 애칭이고 펑마마는 펑리위안의 애칭이다.
  18. 가사가 압권이다. "시집을 가려거든 시다다 같은 남자를 만나요. 그는 결단력 넘치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죠. 파리든 호랑이든 다 때려잡지요." "굽힐 줄 모르는 그는 어떤 변화와 어려움이 닥쳐도 계속 전진할 거예요" 해당 링크는 대만, 홍콩 네티즌들의 비추천 폭탄을 받아 추천:비추천 비율이 1:10이다(...).
  19. 시다다 금지령을 내린 후에는 요우쿠 등지에서 삭제됨.
  20. 노래 제목만 보면 시진핑 부부의 사랑 노래 같지만 부정부패 고위관료 때려 잡는걸 칭송하는 부분이 더 눈에 띈다.
  21. 참고로 유튜브에 이 노래에 김정은 찬양가 《그이 없인 못살아》 영상을 덧붙인 김정은 판 패러디 버전이 올라와 있다.
  22. 심지어 그 김정은마저도 부정부패 척결을 항상 외친다. 그 김에 숙청숙청
  23. 오해를 막자면, 시진핑 혼자의 친인척이 4000조를 탈세했다는 것이 아니다. 일개 일가가 그 많은 돈을 탈세해서 다 어디에 쓰게; 습가황조? 중국 지도부의 친인척들이 그만큼 탈세를 했다는 소리. 물론 그래도 무시무시한 액수임에는 변함없다. 중국 1년 예산보다도 1.5배 이상 많은 액수다.
  24. 독립을 요구하는 신장 자치구의 테러리스트들을 왜구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단호한 대처를 요구하고 있다.#일본 의문의 1패 2014년 6월 25일에는 테러죄로 113명에게 중형을 선고하였다. 문제는 69건의 재판 중 4건의 재판의 판결 내용만 공개하고 나머지는 전부 비공개로 돌렸다는 것. 즉 조금이라도 혐의가 있으면 무차별적으로 체포하고 있다는 의심을 사고 있는 것이다.#
  25. 해당 그림에 나오는 호랑이들은 부패한 고위 관료들을 빗댄 것이다.
  26. 기사에는 ZTE Axon으로 나와있으나 정작 해당 사진에는 ZTE의 Axon Elite 모델이 나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