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84 썬더제트

(F-84에서 넘어옴)
미국의 제트전투기
1940년대FH 팬텀FJ-1 퓨리F-2 (F2H 밴시)F9F 팬서F-86 세이버F-84 썬더제트F-80 슈팅스타F6U 파이어릿
1950년대F-89 스콜피온F-94 스타파이어F-9 쿠거F-10(F3D)
스카이나이트
F-100
슈퍼 세이버
F-1(FJ-2/3)
F7U 커틀러스F-1E(FJ-4)F-7 (F2Y)
씨다트
F-11(F11F)
타이거
F-3(F3H)
데몬
F-102
델타 대거
F-6(F4D)
스카이레이
F-8(F8U)
크루세이더
F-101
부두
F-104
스타파이터
F-105
썬더 치프
F-106
델타 다트
1960년대F-4(F4H)팬텀 IIF-5 프리덤 파이터 / 타이거 IIF5D 스카이랜서YF-12F-111
1970년대F-14 톰캣F-15 이글F-16 파이팅 팰콘YF-17 코브라
1980년대F-20 타이거 샤크F/A-18 호넷
1990년대YF-23 그레이 고스트
/블랙 위도우 II
F-22 랩터F/A-18E/F 슈퍼호넷
2000년대F-35 라이트닝 IIX-32
2010년대F-15SE 사일런트 이글
2020년대F/A-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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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용과 퇴역
초도비행1946년 2월 28일
도입1947년 (미 공군)
퇴역1972년 (F-84F, 미 주방위군)
1991년 (RF-84F, 그리스 공군)
생산7,524 기

1 제원

F-84G Thunderjet
분류단발단좌 터보제트 전투기
전폭11.1m
전장11.6m
전고3.84m
주익면적24 m²
익면하중342 kg/m²
중량자체중량 5,200kg
일반임무중량 8,200kg
최대이륙중량 10,600kg
엔진앨리슨 J35-A-29 터보제트
추력 5560파운드(24.7kN)
최대 속도1000km/h
순항속도770km/h
전투행동반경1600Km
최대상승률19.1m/s
무장AN/M3 50구경 중기관총 6정[1]
각종 로켓과 폭탄 등 2,020kg의 폭장 가능
F-84F Thunderstreak
분류단발단좌 터보제트 전투기
전폭13.23m
전장10.25m
전고4.39m
주익면적30 m²
익면하중423 kg/m²
중량자체중량 5,200Kg
최대이륙중량 12,700kg
엔진라이트 J65-W-3 터보제트
추력 7,220파운드(32.2kN)
최대 속도1120km/h
전투행동반경1300Km(외부연료탱크 탑재시)
최대상승률42m/s
무장AN/M3 50구경 중기관총 6정
각종 로켓과 폭탄 등 2,730kg의 폭장 가능

2 개요

F-84 썬더제트(Thunderjet)는 미국 리퍼블릭사가 개발한 전폭기이다. 1940년대 중후반에 개발, 배치되기 시작하였으며 여러 NATO 국가들에게도 판매되어 1970년대까지 운용되었다. 현역 시절의 F-84는 미 공군의 주요 공격기로서 한국전쟁 등지에서 활약했으며, 최초의 전술 핵무기인 Mk.7 'Thor'를 장착할 수 있는 최초의 항공기이자, 최초로 공중급유가 가능한 양산형 항공기이기도 했다.

MiG-15나 F-86등과 마찬가지로 40~50년대 초기 제트 전투기들의 전형적인 기수에 설치된 공기흡입구 형태를 가지고 있다. 당시 전천후(야간)전투기가 아닌 이상 레이더를 거의 사용하지 않거나 근거리에서만 사용이 가능했기에 대형 노즈콘을 설치하지 않고 비행기의 자세에 영향을 덜 받기 때문에 당시 신뢰성이 아직 낮던 제트엔진에 비교적 안정적인 공기흐름을 구성할 수 있었다.

3 모델별 상세내용

3.1 F-84A(P-84A)

1944년 미육군항공대(미공군의 전신)는 앨리슨사의 J35 터보제트 엔진을 이용하여 최대속도 600mph(966km/h)이상으로 비행 가능한 주간 전투기 개발 계획을 공고하였다. 리퍼블릭은 이 사업의 계약업체로 선정되어 25대의 시제기 및 운용시험용 전투기와 75대의 실전 투입용 전투기를 생산하기로 계약했으며 일단 3대의 시제기 를 제작 하기 시작했다. 이 신형 전투기는 P-84로 명명되었으며 여러면에서 P-80 슈팅스타를 압도할 것으로 분석되었다.

P-84의 특징과도 같은 두꺼운 직선익은 본래 P-47의 제트화 계획의 일환으로 나온 개념이었다. 당시 P-47 제트화 계획에서는 지름이 굵은 원심 압축기식 터보제트 엔진 대신 지름이 가는 축류 압축식 터보제트 엔진을 사용하여 동체직경을 가늘게 만들고자 했다. P-47 동체가 굵다고 놀림 받는게 은근 콤플렉스였나보다. 그리고 동체가 가늘어져 갈 곳 없는 연료는 두꺼운 날개에 몰아넣으려 했는데, 사실 당시 제트 전투기들은 동체 앞부분부터 이어져 동체 뒤까지 모두 빈 관형태(공기흡입구->제트엔진->배기구)였기 때문에 동체에 연료를 넣을 곳이 별로 없기도 했다.

그런데 NACA(NASA의 전신)이 풍동 실험을 해보니 P-84는 여러모로 문제가 많았다. 일단 세로방향으로 불안정한데다가 꼬리날개 외피(skin) 구조물은 고속에서 구조적인 우그러짐 현상이 발견되었다.재수 없으면 제로센 재림 게다가 당시 제트 엔진의 추력은 약한 편인데, 제 버릇 남 못주고 P-47 마냥 설계를 할 수록 꾸역꾸역 전투기 무게가 늘어나서 잘못하면 엔진에 비해 너무 무거운 전투기가 될 위험이 있었다. 미 육군항공대는 예상 임무 중량(기체자중 + 평균 임무시 연료 및 무장 중량)을 6톤 급으로 제한했다. 리퍼블릭은 설계를 진행하여 어떻게든 문제점들을 수정하였고 계획된 3대의 시제기중 마지막 시제기에 설계 변경 결과를 반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나마 XP-84에게는 다행스럽게도 탑재하기로 한 엔진이 더 출력이 향상된 J35-GE-15(4천 파운드급)이 개발되었고 이 역시 3번째 시제기에 장착되었다(시제기 1, 2호기는 3천7백 파운드급인 J35-GE-7엔진 사용). 3대의 시제기는 XP-84A로 명명되었다.

XP-84A는 1946년 2월 28일 최초로 뮤록(Muroc) 미 육군 비행장[2]에서 첫 비행에 성공했다. 본래는 첫 비행이 더 앞당겨질 수 있었으나 리퍼블릭은 시제기 1, 2호에도 추력이 향상된 J35-GE-15를 탑재하여 첫 비행단계 부터 신형 엔진이 비행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결국 각론 끝에 시제기 1, 2호는 더 저추력인 J35-GE-7을 사용하여 비행하기로 하면서 첫 비행이 이루어 진 것이다(그러나 이 리퍼블릭의 주장은 훗날 설득력 있는 이야기인 것으로 결론난다). 이후 운용성 시험 목적으로 6정의 M2 중기관총이 탑재(기수 4정, 주익 2정)된 YP-84A이 15대 생산되었으며, 이 시점에 F-84의 상징과도 같은 226갤런(856리터)들이 날개 끝 연료탱크가 추가되었다. 다만 사업이 급하게 진행되느라 이 연료탱크가 기체에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테스트도 해보지 않았던 통에 문제가 있었는데, 이 문제는 F-84D 버전에 가서야 확인이 되어 연료탱크에 작은 날개를 다는 것으로 수정되었다.

P-84 개발 계획중 기술적 문제와 개발 지연이 계속 되자 미육군항공대는 리퍼블릭에게 이런식으로 하면 사업을 취소해버릴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사실 리퍼블릭도 약간은 항의할 구석이 있었다. XP-84A 1, 2호기에와 시제기3호기의 엔진이 달라지면서 기체의 성능과 특성이 변하였는데 리퍼블릭 말대로 1호기 부터 본래 계획된 엔진을 달았다면 기술적 위험을 사전에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3] 또 미 육군이 속도 기록을 세워야 한다고 시험비행해야 할 2호기를 가지고 속도 기록 세우는데 열중하면서 시험 데이터 수집이 늦어진 것도 있었다. 하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어쨌거나 NACA가 지적한 문제 수정한다고 시제기 3호기의 생산이 지연되고 그로 인해 지상 하중 시험등도 지연되면서 전체 사업 일정이 지연된 것은 리퍼블릭 책임이 컸으므로 리퍼블릭도 할 말은 없었다. 께서 까라면 깔 것이지 말이 많아.

3.2 F-84B

P-84B는 F-84 시리즈 최초의 양산 모델로 1947년 여름경에 미 육군 항공대에 인도 되었다. 기본적으로 YP-84A와 거의 동일했지만 기관총이 기존 M2에서 좀 더 개량된 M3으로 변경되었다. 한편 양산기중 후기 버전 부터는 P-84B에는 8개의 접이식 로켓 발사대기 각각의 날개 밑에 장착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기술적 문제는 산재해 있었다. 일단 최대 속도는 마하 0.8로 고정되었는데 그 이상 속도를 내면 기수가 갑자기 위로 들리는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당시 부족한 천음속 항공기 설계 경험탓에 에어포일(주익 단면형상)을 잘못 선택한 문제로 비행중 이 현상이 나타나면 전투기 기수가 순간적으로 들려 실속하여 추락할 위험마저 있었다. [4] 게다가 동체 구조물이 우그러질 위험이 있어서 최대 기동 한도 역시 5.5G로 제한되었다. 게다가 실제 운용결과 정비성도 지랄 맞아 ‘정비사들의 악몽’이란 별명이 붙었다. 사실 이런 악평을 받은 것은 리퍼블릭이 초반에 정비사들의 제트전투기 정비 교육을 위한 인원배치가 늦어진 탓도 있었다.

결국 구조적 결함 문제 및 여러 문제가 겹쳐서 P-84B는 생산이 종료되었고, P-84B들은 전부 점검을 위해 한 동안 비행금지처분을 받기도 했다. 곧 점검결과 일단 구조 파손등이 발견되지 않은 기체들은 비행을 재개하였으나 최대속도가 더욱 제한되었고, 이 문제는 나중에 리퍼블릭이 구조물 일부를 수정할 때 까지 계속 되었다.

한편 미 육군 항공대가 미 공군으로 독립하면서 항공기 명명법이 변경되는데 이때 전투기를 뜻하는 약자가 P(Pursuit)에서 F(Fighter)로 변경되면서 P-84의 이름도 F-84로 변경된다. 또 리퍼블릭은 미 공군에게 F-84에 썬더제트라는 이름을 붙이자고 제안하여 채택되었다.[5]

F-84B는 총 226대가 생산되었으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실전배치된지 몇 해 되지도 않은 1952년에 미 공군에서 전량 퇴역했다.

3.3 F-84C

F-84C는 F-84B과 비교하여 전기, 유압, 연료 계통 일부를 수정하는 한편 엔진을 신뢰성 있는 J35-A-13로 교체한 모델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어서 F-84C는 F-84B와 거의 동일한 문제를 갖고 있었어1948년 11대가 미 공군에 인도된 것을 시작으로 총 191대가 생산되었으나 말썽이 많다보니 1952년에 F-84B와 함께 퇴역했다. 전투기 기껏 만들어 놓고 맘에 안든다고 500여대를 10년도 안쓰고 폐기해버리던 시절

3.4 F-84D

F-84B는 실패작으로 판명나고, F-84C도 곧 실패작으로 판명나기 직전인(아직 시제기 제작중) 1947년에 미 공군은 F-84 시리즈의 다음 버전을 리퍼블릭과 계약했다. F-84D는 일단 구조적 문제점 등을 해결하기 위해 주익과 에일러론의 외피를 더 두껍게 설계하였다. 또 연료계통이 당시 신형 제트 연료로 쓰이기 시작한 JP4[6]를 사용하도록 바뀐 한편 겨울에도 작동에 문제 없도록 개선되었다. 랜딩기어의 연결부는 유압식에서 기계식으로 바꿨는데, 이는 랜딩기어의 충격흡수장치(자동차로 치면 스프링 빠진 쇼바)길이를 더 짧게 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엔진은 기존 버전보다 추력이 훨씬 강력한 5천 파운드급 J35A-17D이 탑재되었다. 이 외에도 수직 꼬리날개에 있던 피토튜브(속도 측정 센서)가 기수 앞으로 옮겨졌으며, 기관총 점검용 덮개가 탈착식에서 경첩을 이용하여 여닫는식 바뀌었다. 한편 급한 일정탓에 제대로 테스트도 못하고 달았던 날개 끝 연료탱크가 급기동중 날개를 비틀어버리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뒤늦게 발견, 연료탱크에 작은 삼각형 꼬리를 달아서 이 문제를 해결했다.

그리고 이 F-84D가 미 공군에 인도되기 2달 전, 미 공군은 앞서의 F-84B, C의 실망스러운 성능탓에 F-84D, 나아가 F-84 프로그램 전체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았다. F-84B, C를 도저히 실전에 써먹을 만한 물건이 아니라 평가했기 때문이다. 이미 F-84 계획에 많은 돈을 퍼부었지만, 만약 F-84D까지 상태가 시밤쾅이면 문제가 심각했다. 미 공군은 차라리 F-84D는 그냥 취소시켜버리고 리퍼블릭 보고 더 시간을 들여 성능을 개선한 F-84E나 개발하게 만들까도 생각했으나 이미 F-84D 제작을 위해 계약하고 일부 금액을 지불한 상태여서 이건 이것대로 미 공군이 별로 예산상 이득을 보는 것도 없을 뿐더러, 그렇게 했다가는 리퍼블릭의 재정상태 역시 악화되어 F-84E의 개발마저 차질을 빚을 상황이었다.

결국 미 공군은 F-84D를 F-80 슈팅스타와 비교 평가해보기로 한다. 맞다이 뜨기 물론 두 기종끼리 모의교전을 벌인 것은 아니고 여러 성능을 동일 기준에서 평가한 것이다. 그리고 성능평가 결과 F-84D는 기존 버전에서 일으켰던 많은 문제가 해결되었음은 물론, 일부 성능은 F-80보다 높게 평가 되었다. F-84는 비행거리, 가속력, 운용융통성, 무장 탑재능력, 고고도 상승력, 그리고 수평 비행속도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다만 F-80은 F-84와 비교하여 짧은 이륙거리, 저고도 상승력 및 전반적인 기동성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결과적으로 캐삭빵으로 끝나지 않고 사이좋게 두 기종 다 양산

결과적으로 미 공군은 F-84D를 양산할만 하다 여겼고, F-84D는 154대가 양산되었다.

3.5 F-84E

엔진은 F-84D와 동일한 5천 파운드급 엔진을 사용하였으며 주익 구조물은 급기동 중에도 좀 더 잘 견디도록 더 강화되었다. 더불어 기체 길이가 약30cm가량 더 길어졌는데, 조종석이 너무 비좁았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이 외에 특기할 점으로 APG-30 레이더를 사용하는 A-1 레이더 거리측정식 기총 조준기가 탑재되어 조종사들이 표적을 명중시키기 한결 쉬워졌다.[7][8] 이 외에도 날개 밑 폭탄 탑재소에 추가연료탱크를 더 달 수 있게 개조되었는데, 덕분에 전투행동 반경이 1600km까지 늘어났다.또한 F-84의 고질적인 문제인 긴 이륙거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동체 후방에 로켓부스터(JATO, Jet Assisted Take-Off, 혹은 RATO(Rocket Assisted Take-Off라고도 부른다) 탑재소가 추가되었다.

사실 F-84E의 개발은 1948년에 이미 시작되었으며 이 시점에 이미 새로 개발되던 미공군의 전투기, F-86과 비교하여 여러모로 뒤처지는 점이 많다는 것이 확실시 되었다. 그래서 미 공군은 돈을 조금이라도 아껴볼까 싶어 F-84E를 새로 생산하는 것 보다는 이미 생산된(혹은 생산 예정인) 기존 버전들을 F-84E로 업그레이드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고 돈 쓰기를 망설였다. 하지만 리퍼블릭은 기존 버전을 F-84E 버전으로 개량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작업이고, 향후에 개발/생산 계획도 차질 없다는 것을 어필 하였다. 결국 미 공군은 F-84 시리즈는 그대로 생산하는 한편 F-86은 F-86대로 생산하여 미 공군의 주요 전투기 생산처를 노스아메리칸(F-86)과 리퍼블릭(F-84)로 이원화 하기로 한다. 록히드는? P-80 이후로 F-117 만들기 전까지 전투기 사업에선 손때게 된다.공중전 가능한 전투기까지 치면 F-22나 되어서야..

F-84E는 총 843대가 생산되었다.

3.6 F-84F 썬더스트릭(RF-84F 썬더플래쉬)

리퍼블릭도 F-86을 보고 대세는 후퇴익!...이라는 생각을 안한건 아니었다. 그래서 1949년에 F-84를 마개조하여 후퇴익을 사용한 버전을 만들 계획을 세우긴 했데 워낙 대폭 개조를 하다보니 실제 개발 및 생산은 F-84G보다 늦어졌다.

미 공군은 잘만하면 최대속도는 더 빠르면서 지상공격 능력 역시 기존과 동등, 혹은 그 이상인 전투기를 완전 새로 개발하는 것 보다는 훨씬 싼 값에 얻겠다 싶어 리퍼블릭의 후퇴익 사용 전투기 개발 계획에 찬성하고 돈을 대 주었다.

후퇴익 버전의 시제기는 사업 초반에는 XF-96A라는 새로운 번호를 부여 받았다. 이 후퇴익 썬더제트의 시제기는 F-84E의 마지막 생산분을 유용하기로 했는데 캐노피는 뒤로 밀어 여는 방식으로 변경되고 에어브레이크가 기체 하부에 신설 되었다. 주날개꼬리날개는 완전히 새로 설계 되었는데 모두 후퇴각을 38.5도(날개 앞뒤 방향(시위방향) 1/4 지점 연결선 기준으로 후퇴각 40도)를 갖는, 당시의 구조설계 상으로는 거의 한계에 다다른 후퇴각을 가진 전투기가 되었다. 에어포일(날개 단면 형상)도 고속비행에 맞게 개선되었는데 기존 저속 항공기들은 날개의 가장 두꺼운 지점이 앞에서 25% 지점이었던데 반하여 XF-96A는 45% 지점에 있었으며, 두께비(날개 단면의 앞뒤 길이 대비 두께 비율)도 9%에 불과하여 꽤 얇은 날개모양을 사용했다. 더불어 날개는 3.5도 가량 위로 들린 형태였다. 그리고 고속 비행에 알맞게 엔진 역시 5천2백 파운드 추력을 내는 J35-A-25로 교체되었다.

여러 설계변경이 되었음에도 기존 F-84 시리즈의 생산용 공구 및 치공구(지그)의 공통 비율은 55~60% 정도로 예상되었고, 미 공군은 신형 전투기라는 점 보다는 '싼 값에 기존 전투기를 대폭 개량하였습니다.'라는 점을 어필하기 위해 F-96이라는 이름 대신 F-84라는 이름을 그대로 쓰게 하였다. 다만 이름만이라도 좀 더 새로운 전투기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썬더제트에서 썬더스트릭(Thunder-Streak)으로 바꿨다. 그 결과 XF-96은 F-84F 썬더스트릭이 되었다.

시제기인 YF-84F가 완성디어 1달간 시험을 해본결과, 엔진출력이 너무 약해서 고고도 성능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에 미 공군과 리퍼블릭은 영국제 '사파이어' 제트 엔진의 미국내 면허생산 버전인 커티스 라이트(Curtiss-Wright)사의 J65 엔진을 탑재하기로 하였다. 다만 새 엔진은 기존 엔진보다 크기가 더 컸기에 YF-84F는 기존보다 동체를 위아래로 20cm 가량 더 늘려야 했고 공기흡입구도 전체적으로 타원형 모양으로 더 넓혀야 했다.

그리고 F-84F의 양산에는 여러 문제점이 속출한다. 일단 F-84E의 공구/치공구를 50~60% 재활용 가능할 것이라는 당초 기대와는 달리 설계가 여기저기 변경됨에 따라 실제로 공통 사용 가능한 정도는 15%에 불과하였고 나머지는 전부 새로이 제작해야 했다. 또 F-84F의 주익 뼈대는 알루미늄 합금을 두드려서 단조하는 것이 아니라 압력을 천천히 가하며 단조하는 방식으로 생산해야 했는데, 당시 미국내에 이 단조 작업이 가능한 설비가 3개 밖에 없었을 뿐더러 이 설비는 이미 B-47 폭격기 생산에 우선적으로 쓰이는 상황이었다. 새 엔진 역시 말썽이어서 장착하기로 한 J65-W-1 대신 J65-W-3으로 교체하기로 했는데 이 엔진도 1954년까지는 생산이 안되었다.1951년, 리퍼블릭은 미 공군과 약속한 일정을 못맞출 위기에 놓였다.

일단 리퍼블릭은 F-84F의 설계 일부를 변경하여 F-84E와의 공구/치공구 공통성을 높이는 한편 앞서 미국내 3대 밖에 없던 단조 장비 없이도 제작이 가능하게 하였으나 이 재설계 작업에 몇 개월을 또 까먹었다. 결국 미 공군은 F-84F의 지연되는 일정을 바라만 볼 수 없어 일단 직선익 버전의 F-84G를 우선 생산하도록 하였고, 그 결과 F-84G가 F-84 버전중 가장 많은 수량이 생산되게 된다.

늘어지는 개발 과정에서 이런저런 설계도 변경되다보니 F-84F의 시제기와 양산기는 여러곳이 바뀌었다.

F-84F의 양산기는 뒤로 밀어 여는 캐노피 대신 위로 여는 캐노피로 바뀌었는데, 비상탈출시에는 조종사의 힘으로 이를 열 수 없으므로 경첩부위가 파괴되어 캐노피가 완전히 떨어져 나갔다.이 위로 여는 방식의 캐노피는 기존의 뒤로 미는 방식보다 튼튼하면서도 장착이 쉬웠으며, 또 비행중 밀폐성능 역시 더 좋았다. 한편 캐노피 형상 변경에 맞춰 동체 뒤쪽도 좀 더 솟아 오른 형태가 되었다.

양산 버전의 스피드 브레이크는 날개 뒤쪽 부근 동체 아래에 2개가 달렸는데 어떠한 비행속도에서도 사용이 가능한 덕에 최대속도로 급강하중 브레이크로도 쓸 수 있었다.

날개 앞전에는 슬랫(플랩항목 참조)이 추가되었는데 덕분에 날개 위쪽 공기흐름이 개선되었다. 또 에일러론의 조종력 감소를 위한 조종탭(control tab)이 제거되는 대신 에일러론은 유압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또 후기 양산형은 날개 위에 에일러론과 연동하여 움직이는 스포일러가 추가되어 고속에서의 롤 반응속도가 더 빨라졌다.

하지만 썬더젯은 후퇴익을 사용하면서 뜻하지 않은 문제도 생겼는데, 급기동중 기수가 급격히 들리는 현상이 있었다. 이는 후퇴익의 고질적 문제인 날개끝 실속이라는 문제로, 날개 끝이 날개 뿌리부분보다 먼저 실속에 빠지는 현상이다. 후퇴날개는 날개끝이 날개뿌리보다 상대적으로 더 뒤쪽에 있으므로 이쪽이 먼저 실속에 빠지면 날개 뿌리쪽=날개 앞쪽만 양력을 만들어 기수를 급격히 들어 올려 버린다. F-84F는 이 급격한 기수들림 현상이 발생하면 조종불능에 빠질 뿐더러 재수 없으면 날개가 부러질 지경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여대가 생산된 뒤에야 수평꼬리날개가 전체가 유압으로 움직이는 전가동형 꼬리(All Moving Tail)로 변경되었다. 스핀 회복 특성도 나빴는데 만에하나 스핀에 빠지면 고도를 거의 3km 가까이 잃고서야 회복이 가능했다. 즉 3km보다 낮은 고도에서 스핀에 빠졌다면 비상탈출 외엔 답이 없었다.

미 공군의 전술공군(TAC) 소속 F-84F는 핵폭탄 운용이 가능하였다. 그리고 이 핵폭탄 운용 F-84F는 저고도 핵폭격을 위하여 LABS(Low Altitude Bombing System, 저고도 폭격 시스템)을 탑재했는데 이는 토스 폭격(toss bombing, loft bombing이라고도 함)이 가능케 해주는 시스템이다. 토스 폭격이란 전투기가 표적보다 먼 거리에서 급상승하여 폭탄을 위로 '던지듯이' 투하하는 방식으로, 폭탄이 포물선을 그리며 좀 더 오랜시간 표적을 향해 날아가므로 전투기가 기존 폭격방식 보다 더 먼거리에서 폭탄을 투하하고 핵폭발에 휘말리지 않도록 도망갈 시간을 벌어준다. 다만 이 토스 폭격은 사람의 '감'만으로는 정확히 하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LABS는 정해진 표적 제원등에 맞춰 이를 계산해주는 장치다(비록 아날로그 식이지만).

1955년부터 생산된 F-84F-50은 엔진을 7천2백 파운드급인 J65-W-7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덕분에 상승속도나 최대상승고도가 더 늘었다. 다만 기체구조의 한계상 저고도 최대비행속도는 그대로였다.

최후기 버전은 F-84F-75로 동체 하부에 착륙용 감속낙하산이 탑재되었으며, 먼저 생산된 기체에도 이것이 추가로 장착되었다.

F-84F는 총 2348대가 생산되었으며 이중 1496대는 미공군 용이었다.

한편 F-84F의 기체를 유용하여 사진정찰기인 RF-84F 썬더플래쉬(Thunderflash)가 개발되었다. RF-84F는 외형적으로 F-84F와 크게 다른 점이 있는데, 바로 기수와 날개뿌리 부근이다. 본래 리퍼블릭은 F-84F의 공기흡입구를 기수에 두는 대신 날개 뿌리에 각각 1개씩 두려고 하였고 실제로 F-84F 시제기 2호기는 이 형상으로 제작되었으나 이 공기흡입구는 기존 공기흡입구보다 전체 추력을 떨어트리는 문제가 있었다. 결국 이 설계 방안은 폐기되었으나 미공군이 보기에는 공기흡입구가 없는 '빈 기수'는 카메라를 장착하기에 최적의 위치였다. 결국 기수부에는 6개의 카메라가 탑재되었으며 각각 정면이나 아랫면, 측면, 연속촬영용으로 쓰였다. 하방 카메라 시야는 잠망경을 통하여 조종사가 직접 볼 수 있었다. 또한 야간촬영용으로 섬광탄 투하기가 탑재되었다.

기존 사진정찰기인 RF-80은 비무장형이었던데 반하여 RF-84F는 무장을 하였으며, 날개 뿌리 부근에 총 4개의 기총을 탑재했다.

3.7 F-84G

F-84G는 전투기 중 최초로 공중급유기로부터 공중급유를 받을 수 있는 전투기로서 개발되었다. 이는 F-84 시리즈가 한국전쟁중 실전에서 전투기보다는 전폭기로서의 역할을 주로 맡게 되었다는 점을 반영한 개량이다. 이렇게 공중급유를 받게 되면서 연료계통 역시 설계가 변경되어 한개소의 주유구를 통해 모든 연료탱크를 채울 수 있게 변경되었다(그 이전에 개발된 전투기들은 여기저기 있는 연료탱크에 각각 따로 뚜껑을 따고 연료를 집어 넣어야 했다). 또 늘어난 비행거리/시간 동안 조종사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자동비행 장치도 추가되었다. 엔진은 더 강력한 J35-A-29(5천6백파운드급)로 변경되었으며 조준장치도 더 신형인 A-4로 교체되었다. 더불어 악천후에도 착륙을 돕는 계기비행 착륙용 항법장치가 추가 되었다. 무장탑재는 4천 파운드(약 2톤) 가까이 할 수 있게 되어 명실상부한 전폭기가 되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하지만 실전에서는 써먹어본적 없는) 설계 변경점으로 핵폭탄을 탑재할 수 있게 되었다. F-84G는 덕분에 세계 최초의 핵폭탄 운용이 가능한 단좌형 전폭기라는 타이틀도 얻게 되었다(그 이전까지는 폭격기로만 운용). 물론 F-84F도 앞서 설명한바와 같이 핵폭탄을 운용할 수 있지만 실제 배치는 F-84G가 빨랐던지라.. F-84G 역시 F-84F처럼 저고도 핵폭격을 위하여 LABS가 탑재되었다.

F-84G는 총 3025대(!)가 생산되었으며 이중 789대는 미공군이, 나머지는 NATO 회원중 일부인 21개국 및 유고슬라비아, 이란, 태국 등을 위한 해외인도용이었다.

3.8 XF-84H 썬더스크리치

스크리치(Screech)는 귀에 거슬리는 날카로운 소리를 낸다는 뜻인데, 이는 XF-84H의 심각한 소음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미 해군은 항모에서 캐터펄트(사출장치) 없이 뜨고 내릴 수 있는 전투기 개발에 관심을 갖고 터보프롭을 이용한 단거리 이륙 전투기 개발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3대의 시제기를 만든 시점에서 이 사업에 흥미를 잃고 사업을 취소해버림에 따라 남은 3대는 미 공군이 인도받아 초음속 비행용 프로펠러(!) 연구용으로 사용했다. 처음에는 XF-106이라 명명되었으나 곧 F-84의 개량형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하여 XF-84H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아마도 또 신형 전투기 만드냐라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였던 듯. XF-84H는 F-84F의 기체를 유용, 동체 중심에 5천8백마력짜리 터보프롭 엔진을 탑재하였다. 이 엔진은 조종석 아래를 지나는 긴 구동축으로 기수 앞의 3.7미터짜리 프로펠러를 돌렸다. 한편 터보프롭 엔진의 배기가스로도 일정 수준 추력을 얻을 수 있는 구조였으며, 계획대로라면 여기에 애프터버너(!)까지 추가될 예정이었으나 실제로 사용된 적은 없었다. 한편 꼬리날개는 프로펠러 후류에 의한 난류의 영향을 덜 받도록 T자 모양으로 변경되었다. 더불어 프로펠러 토크에 의해 기체가 프로펠러 회전방향 반대로 돌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동체 등쪽에 작은 돌기(vane)이 추가 되었다.

프로펠러 끝의 상대풍 속도는 프로펠러 자체의 회전속도 + 전진비행속도가 합쳐저 마하 1.18 이상까지 가속되었는데, 일반적으로 이 지경이 되면 프로펠러는 음속 돌파와 충격실속으로 큰 소음과 진동이 생긴다. 그리고 미 공군이 여러가지로 프로펠러 모양을 바꿔가며 실험을 해보았지만 XF-84H도 이 문제는 해결 하지 못했다. 특히 소음문제는 심각했는데, 프로펠러 직경 자체가 워낙 크다보니 심지어 최저출력 속도에서도 날개 끝에서 음속돌파 현상이 생겨 그 결과 엄청나게 큰 소음을 만들어서 지상에서 엔진시동 걸고 준비하는 동안 주변 지상요원들의 불평이 속출함은 물론, 시험비행을 하던 에드워드 공군 기지의 관제탑이 진동에 안전한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다 결국 공항에서 쫓겨나 빈터에서 이륙을 해야 할 정도가 되었다. 40km 밖에서도 소리가 들렸다고 하며 근처의 C-47 수송기에 타고 있던 기장이 기절하고 엔지니어가 발작을 일으킨 사례까지 있다.

게다가 탑재된 엔진 자체도 말썽이어서 엔진 정지사고가 잦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XF-84H에는 엔진정지시 자동으로 기체 바깥으로 튀어나와 유압과 전기를 만드는 RAT(Ram Air Turbine, 맞바람을 이용해 돌아가는 일종의 풍력발전기)이 있어 엔진 정지시에도 활공비행은 가능했다. 문제는 앞서 말한대로 엔진이 자주 말썽을 일으켜 공중서 RAT이 튀어나오고, 그 사이 조종사는 엔진 재시동 절차를 밟는 상황이 속출했다. 한 테스트 파일럿은 1회 비행 후 추가 비행을 거부했으며 다른 파일럿은 11번 비행했는데 개중 10번이 비상착륙이었다.

결국 미 공군도 큰 성과를 얻지 못함에 따라 1956년 프로젝트를 취소 시켰다.

한편 기네스북에 따르면 XF-84H는 단좌, 단발 프로펠러 추진 방식 비행기중 가장 빠른 속도인 마하 0.83(1003km/h)를 기록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단, 본래 설계상으로는 제대로만 된다면 마하 0.9까지 비행가능해야 했다). 다만 정작 미 공군 박물관은 이 항공기의 최대 비행속도를 마하 0.7(840km/h)로 기록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만약 마하 0.7이 맞다면 F8F 베어캣을 속도 경쟁용으로 마개조]한 기체가 세운 850km/h(마하 0.71)이 최고 기록이 된다.

3.9 기타 모델

  • TIP TOW

정식명칭은 MX-1018 계획으로 폭격기에 비하여 항속거리가 짧은 제트전투기가 폭격기를 호위할 방법을 연구하던 중에 나온 방법이다. 폭격기의 주날개 좌우 끝에 전투기를 연결해서 날아가면 전투기는 엔진을 끈채로 대기할 수 있어 연료를 아낄 수 있었고, 적 전투기 발견시 폭격기 날개 끝에 연결된 전투기가 발진하여 공중전을 치른 뒤 되돌아오면 된다는 계획. 폭겨기로는 ETB-29A가 1대, 전투기로는 EF-84B[9]가 2대 투입되었다. 몇 번의 비행 끝에 어느정도 공중에서의 분리/결합에 성공하였고 야간 및 악천후중의 분리/결합을 위하여 자동비행 시스템도 도입되었지만 폭격기가 일으키는 강한 후류 + 폭겨기 날개의 비행중 출렁임은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결국 시험중 EF-84B가 EB-29A와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하는 비극으로 프로젝트가 종료되었다.

  • TOM TOM

TIP TOM과 같은 방식이었으나 사용기종이 폭격기는 JRB-36F였고 전투기는 RF-84F였다. 이것도 후류/날개 출렁임 문제로 어려움을 겪다가 RF-84F가 폭격기의 날개에서 떨어져 나가는 문제가 발생해다. 다행히 항공기들은 무사히 착륙하였으나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하였고, 공중급유 시스템이 개발되어 F-84 시리즈에 적용되기 시작함에 따라 이 프로젝트 역시 취소되었다.

  • FINCON 계획

XF-85 고블린 사업에도 정신 못차린 미 공군이 어떻게든 비슷한 컨셉으로 폭격기에 전투기를 폭탄고에 우겨 넣으려고 만든 게획이다. 다만 전투기를 탑재하는 목적이 적기에 대한 대응이 아니라 핵폭격이라는 점이 달랐다. RB-36을 개조한 GRB-36F 폭격기의 폭탄고에 제트 전폭기를 넣었다가 표적으로부터 좀 멀리 떨어진 지점에서 이를 출격 시키면, 상대적으로 빠르고 민첩한 제트 전폭기가 위험한 표적 지역에 돌입하여 전술핵을 떨어트리고 폭격기로 되돌아 오는 방식이었다.[10] 이론상으로는 제트전폭기를 대륙간 횡단 폭격기에 탑재할 수 있으므로 상대적으로 안전하게 장거리 전술핵폭격이 가능하였다.그러나 프로그램 진행 도중 장거리 전술핵폭격격이 의미가 있는가라는 문제 등이 겹쳐서 전투기 탑재 목적이 핵폭격에서 정찰로 변경되었으며 이에 따라 탑재 제트기도 RF-84F로 변경되었다. 다만 폭격기 폭탄고에 넣기 좋도록 기체 일부가 개조되었고, 이 개조된 RF-84F는 RF-84K로 재명명 되었다. 10대의 GRB-36D와 25대의 RF-84K가 제작되어 전략정찰 부대에 배치되었으나 숙련된 조종사에게도 공중에서 폭격기, 제트 정찰기간의 분리/결합은 살떨리는 일이었기에 임무는 제한적이었다. 결국 얼마 안가 U-2 정찰기가 등장함에 따라 이 위험천만한 프로그램은 취소되었다. 다만 이미 제작된 RF-84K중 일부는 그냥 일선에서 일반 정찰기로 계속 사용하였다.

4 성능 종합평가

직선익과 출력이 딸리는 엔진을 모두 갖춘 초기 제트전투기답게, 전반적으로 속도와 상승력이 모자란데다 선회성능도 시원찮아서 공중전에서는 MiG-15에 비해 불리했지만, 반면에 착륙과 급강하 폭격은 손쉽게 수행할 수 있었으며 기체가 튼튼하고 조준장치에 아날로그 컴퓨터가 탑재되어 지상공격 시 안정적인 사격이 가능했다. 전대의 번개돌이도 그렇고 후대의 멧돼지도 그렇고, 빈약한 상승력과 우수한 하강능력, 훌륭한 지상공격력은 리퍼블릭의 종특인 듯 하다. 근데 어째 F-84는 전대, 후대와 다르게 기체구조가 약해서 고생을...

무장탑재력 역시 F-86보다 뛰어났기에 한국전쟁 당시 전폭기로서 크게 활약했다. 다만 무거운 무게에 비해 약한 엔진추력은 상승력 뿐만 아니라 이륙거리 역시 엄청 늘어나게 만들어 문제였는데, 한국전 당시 더운 여름날 연료와 무장을 만땅으로 채우면 로켓부스터(JATO)를 사용해도 활주거리가 3km에 이르렀다. 이는 현대의 대형 여객기보다도 긴 이륙거리다.

또 엔진이 여러모로 말성을 일으켰는데, 엔진 수명주기가 초기 버전은 매우 짧아 40시간만 비행하면 엔진을 들어내고 싹 재정비(오버홀)을 해야 했다. 덕분에 해외전개시 엔진 부품수급 문제가 심각해졌고, 이는 F-84B, C가 낮은 성능과 더불어 해외 주둔을 못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

F-84 썬더스트릭은 F-86 시리즈보다는 공중전 성능이 떨어지지만 긴 비행가능 거리와 대형무장탑재능력 덕분에 미 공군의 전술항공기 부대 뿐만 아니라 전략항공기 부대도 인도 받아 폭격기 호위기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나 이후 미 전략항공기 부대가 생존성이 높아진 제트폭격기를 운용하기 시작함에 따라 다시 전술 항공기 부대로 이전되었고, 이후 F-100 같은 신형 전투기가 도입됨에 따라 점차 주 방위군 기체로 돌려지다가 퇴역하였다.

5 실전

최초의 실전인 한국전쟁 투입 초기에는 멋모르고 B-29의 호위 임무에 투입되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MiG-15에 맞서기엔 역부족이라는 것을 깨닫고 지상공격 임무로 전환된다. 이후 제공전투는 F-86이 도맡게 된다.

공중전에서는 별 재미를 보지 못했지만[11] 지상공격에서는 큰 활약을 했는데, 미 공군에 따르면 전쟁기간 동안 5만 5천톤 가량의 폭탄과 6천톤 가량의 네이팜을 투하했으며 파괴된 지상 표적의 60% 가량이 F-84에 의해 공격받은 것이다.

F-84는 1952년에 수풍댐을 폭격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다만 댐이 튼튼해서 파괴에는 실패. 일제시대 댐이 튼튼데스네[12]

후퇴익 버전인 F-84F는 생산이 늦어진 탓에 한국 전쟁에는 투입되지 않았으며, 미 공군 소속 F-84F는 실전에 투입될 일은 없었다. 다만 1962년 터키군 F-84F가 쿠르드족을 폭격하다가 실수로 터키 국경을 넘은 2대의 이라크군 소속 IL-28을 격추시킨 기록이 있다.

6 운용국가 / 수량 / 기간

7 기타

  • 오늘의 토막글로 현대 군사무기 문서로는 X-Band 레이더에 뒤이어 두 번째로 선정되었다. 그것도 X-Band 레이더의 바로 다음날. xwing이 혼자 1만자 가까이 내용을 추가하는 하드캐리로 오늘의 토막글 대성공으로 이어지나 싶었으나 안타깝게도 편집완료 시점이 다음날 자정을 넘겨서 8천자 추가로 그쳤다.
  • 날개 끝의 보조 연료탱크가 트레이드마크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탱크를 떼어낸 사진을 보면 약 5초 정도 '이 전투기는 뭐지?'하고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카더라. 뜨끔[* 이건 P-80도 동일하다.
  • 미 공군 특수비행팀인 썬더버드에서 G형이 1953년부터 1955년까지 운영되었고, F형이 뒤이어 1955년부터 1956년까지 운영되었다. 그 외에 1950년부터 1955년까지 미 유럽 공군의 스카이블레이저팀에서 운영되기도 했다.
  • 24만 5천 달러에 판매 중이다.#

8 매체에서

  • 월드 오브 워플레인에서 미국의 2차 다목적 전투기 트리인 썬더볼트 트리의 고티어 제트 전투기로 등장한다. 9티어에 F-84B가 있으며, 10티어에서는 후퇴익 사양인 F-84F가 등장한다.
  • 워썬더에서 미국트리 F-86의 바로 전 제트기로 등장한다.
  1. 기수에 4정, 날개 뿌리에 2정
  2. 현재 에드워드 공군기지로 이름이 바뀐 곳. 그 유명한 51구역에 있는 곳이다.
  3. 더불어 1, 2호기에 엔진이 다른 것이 달린 것은 신형 엔진이 늦게 개발된 탓이었으므로 리퍼블릭 책임도 아니었다.
  4. 아이러니하게도 일반적으로 비슷한 상황에서 다른 항공기들은 기수가 아래로 처지는 현상을 겪는다. 거의 동시기에 개발되고 형상도 비슷비슷했던 P-80도 마하 0.78에서 기수 숙임 문제로 고생했다.
  5. P-47를 의식한 것은 아니고 원래 미국의 항공기 제작사들은 각 제작사별로 군용기 명칭을 붙일때 어느정도 일관된 명칭을 붙인다.
  6. 현재의 JP8은 등유 기반인데 비하여 JP4는 등유휘발유를 5:5로 섞은 연료다.
  7. 기존 조준기는 조종사의 '감'으로 표적의 실제 길이를 예측하여 조준경에 표시되는 도형을 표적 크기에 맞추면 일종의 비례식에 의해 기계적으로 표적과의 거리가 계산되는 방식이었다. 사실 이 계산기도 2차대전중 등장 초기에는 에이스 생성기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혁신적이었지만...
  8. 다만 지금처럼 자동화된 시절도 아니고, 전자부품도 전부 아날로그이던 시절이라 조작과 정비에 문제가 많아서 의외로 일선에서 불평이 좀 있었다. 그런데 이 장비는 F-84 뿐만 아니라 F-86에서도 똑같이 쓰이고 똑같은 문제가 있던터라..
  9. 여기서 E는 전자전기를 뜻하는 임무 부호가 아니라 19552년도 이전에 임시 개조기에 붙이던 약자로 Exempt from modification orders라는 뜻이다.
  10. 단 앞서의 모델별 설명에서 알 수 있듯 F-84E 자체는 핵폭격 능력은 없었다. 그냥 실험에 당장 쓸 기체가 없어 있는대로 쓴 것.
  11. MiG-15 공인격추수 8대, 소련은 F-84 64대를 격추했다고 주장했다.
  12. 수풍댐은 일제시대 때 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