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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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사고 요약도
발생일1987년 11월 29일
유형폭탄테러
발생 위치미얀마 근해, 안다만 해역 부근
탑승인원승객 : 95명
승무원 : 20명
사망자
전원 사망
(115명 사망)
생존자승객 : -
승무원 : -
기종Boeing 707-3B5C[1]
항공사대한항공
기체 등록번호HL7406
출발지바그다드 국제공항
도착지김포 국제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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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 마유미에 나온 폭파 재현 사진. 기종은 보잉이 협조를 거부해서 에어버스 A300기가 쓰였다.90년꺼 치고는 꽤 고퀄이군.

1 개요

1987년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출발한 대한항공 여객기가 인도양 상공에서 실종된 사건. KAL기 (폭파)사건이라고 하면 보통 이 사건을 의미한다. 사건 당시 대한민국 정부는 '북한지령에 의한 공중폭발'로 결론짓고 사건조사를 마쳤다. 이후 참여정부의 과거사 위원회도 동일한 결론을 내렸으며 사망자 시신 미발견 등의 아직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있고 국가안전기획부가 대선을 앞두고 특정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잘못된 일을 저지른 것은 있지만, 북한 공작원 김현희가 지령을 받아 액체폭탄으로 비행기를 폭파한 것 자체는 100% 사실이며 절대로 조작 사건이 아니다.

다시 설명하자면, 국가안전기획부없는 사건을 조작하였거나 자작극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진짜 북한이 저지른 사건을 안기부 입맛에 맞게 여론을 조작한 것이다.

2 사고 발생

1987년 11월 29일, 이라크 바그다드 국제공항을 이륙한 대한항공보잉 707 기종의 KE858편(HL7406)[2]UAE아부다비 국제공항을 거쳐 서울로 오기 전의 마지막 중간 기착지인 방콕 돈므앙 국제공항으로 비행하던 도중, 인도양 상공에서 교신이 두절되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 초기에는 단순 기체 고장 및 돌풍같은 갑작스런 기상 악화 가능성이 제기되었는데, 특히 이 중에 기체 고장의 가능성은 없었던 건 아니었다. 사실 사고기인 HL7406은 1987년 9월 2일 랜딩 기어 앞바퀴가 나오지 않아 비상 동체착륙을 하는 등의 기체 결함으로 인한 사고 전력이 있었고, 수리한 후 첫 출항하여 김포국제공항으로 귀국하는 항공편이 바로 858편이었다. 그래서인지 사고기의 고장 전력은 폭파 사건 음모론의 중요한 정황 증거로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보통 주변 공항 관제탑이나 공용 통신망으로 구조요청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라 여러모로 의아한 사건이었기에 이 상황에서 가장 합리적인 판단은 테러에 의한 공중폭발. 물론 TWA 800편 추락 사고처럼 전기 합선 등의 원인으로 폭발하는 것이 있을 수 있지만, 폭탄처럼 갑자기 뻥! 하는건 힘들다.

3 범인 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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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전날대한민국에 도착한 김현희. 자살을 막기 위해 재갈을 물리고 그위에 테이프를 붙여 놓은 상태.[3]

조사 과정에서, 중간 기항지였던 아부다비 국제공항에서 내린 일본인 남녀승객 2명이 있다는 첩보가 들어왔고,[4] 즉시 이들이 검거되었다. 검거된 남성의 신원은 하치야 신이치(본명:김승일), 여성은 하치야 마유미였다. 이들은 부녀지간으로 위장하고 있었는데 검거 후 청산가리 앰플을 깨물어 자살을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남자는 사망했으나 여자는 앰플을 깨물기는 했지만 재빨리 빼앗기는 바람에 자살에 실패했다.[5]

처음에는 두 사람이 위조된 일본 여권을 사용했기 때문에 일본으로 송환되어 조사를 받을 예정이었으나 대한민국 정부에서 청산가리 앰플을 깨물어 자살하는 것은 북한의 수법이라는 주장을 제기하여[6] 하치야 마유미를 최대한 빨리 국내로 압송할 수 있었다. 사건 수사를 담당한 안기부1988 서울 올림픽 방해를 위한 북한의 테러로 결론짓고, 추가 조사를 벌여 하치야 마유미로부터 본명은 김현희이며 북한 조선노동당 대외정보조사부공작원으로서 지령을 받고 대한항공 858기를 폭파했다는 자백을 받아내었다. 또한 헝가리, 오스트리아를 비롯하여 김현희가 대한항공 858편에 잠입하기 위해 경유한 나라들에서 정보를 받은 결과 북한의 중앙통신의 베오그라드 지부에서 김현희를 목격한 정보도 확인했다.

수법은 시한폭탄과 액체 폭발물을 승무원들이 발견하기 어려운 곳에 몰래 두고 중간에 내리는 수법을 사용했다. 그리고 이들이 내린 이후 해당 비행기는 시한폭탄에 맞춰진 시간에 도달한 인도양 상공에서 폭파했다.

여담으로 북한에 남아 있던 김현희의 가족들은 김현희가 자살에 실패하자 김정일의 지시로 모두 요덕 수용소로 보내졌다고 한다. 이는 1995년 성혜랑[7] 씨가 아들 이한영[8] 씨 와의 전화 통화에서 얘기했던 내용이라고 한다. 흠좀무. 당시 신문 기사 또한 김정일은 자살에 실패하고 남한 당국에 붙잡힌 김현희 소식을 듣고 "녀자는 요물이다(...)"'는 독설과 함께 김현희가 속해 있던 대외정보조사부(35호실)에서 여성 공작원들을 모두 방출하는 조치를 취했다고 한다. 작전 실패를 여성탓으로 떠넘기는 부칸 클라스

이 사건으로 미국북한을 테러 지원국으로 규정했고 김현희는 사형 판결을 받았으나, 추후 음모론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막고자 일종의 살아 있는 증거로 남겨 두려는 목적, 그리고 무엇보다 북한과 관련된 정보를 조금이라도 김현희로부터 더 캐내야 하는 차원에서 노태우 당시 대통령의 재량으로 전격 사면을 받았으며, 이후 본인의 회고록을 저술하기도 하고 가끔씩 안보 강연에서 모습을 나타내는 등 안기부(현 국가정보원)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 가고 있다.[9] 그리고 2013년 1월 15일에는 MBC에도 출연했다. 당시 방송분의 일부[10]

이 사건 후, 수뇌부에서 특전사 707특임대를 북한에 침투시켜서 북한의 핵심 표적에 대해 응징하는 보복작전을 계획했었다다. 하지만 결국 작전계획이 실제로 실시되진 못했다.

4 테러의 목적은?

학계의 의견은 확고하다. 정설은 서울 올림픽를 방해하기 위한 테러라는 것이다. 당시에 확증은 없었지만 사건 발생 1년 전인 1986년에 발생한 김포국제공항 폭탄 테러1986 서울 아시안 게임을 방해하기 위한[11] 북한의 소행으로 잠정 결론이 내려진 상황이었고, 서울 올림픽 유치 직후부터 북한은 올림픽 경기 일부를 할당해달라는 개드립을 치고 있었으니 말 다했다. 게다가 우연하게도, 858기는 폭파 당시 올림픽 특수 도장을 하고 있었다.[12]

특히 1980 모스크바 올림픽에는 자유 진영이 참가하지 않았고, 1984 LA 올림픽에는 공산 진영보이콧해 반쪽 대회로 전락해 버렸다. 1988 서울 올림픽북한의 우방국이었던 중국소련[13]이 참가하기로 결정하면서 다급했던 북한은 공산 진영의 참가를 막기 위해 테러를 감행한 것으로 추측된다.

5 음모론

딴지일보 기사로도 다뤄진 적 있으며, 가톨릭 뉴스에서는 안기부 소행이란 제목으로 기사[14]가 다뤄지기도 했다.

하필이면 대선 직전의 민감한 시기에 터진 테러라서, 여당의 승리를 위한 한국의 자작극이라는 음모론이 많이 퍼졌다. 실제 선거 승리를 위해 자작테러를 벌이는 짓은 여러 나라에서 수많은 사례가 목격되고 있으니 가능성 자체야 충분하지만, 범인이 잡히고 자백했는데 무리한 억측이다. 아니, 정말로 안기부가 폭탄을 실었다면 이것은 대통령 탄핵 등 심각한 사태로 나아가도 정당성이 있을 정도로 심각한 행위다.

초기 음모론은 단순 사고로 실종된 대한항공기를 남한 정부에서 북한의 소행으로 밀었다…는 단순한 이야기였는데, 점차 음모론이 정교해져서 사실은 남한에서 일부러 폭파시켰다로 확대되었다. 김정일이 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북한이 노동자를 살해하는 테러를 하는가이다? 그런데 김정일이 안 하면 전두환은 할 수 있을까?

실제로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에서 새롭게 조사에 착수했을때 이런 류의 음모론 불쏘시개소설이 난무했는데. 실제로 이 음모론을 밝히려고 직장까지도 포기하고 전 재산 날리신 분도 있다. 국민의 정부 당시 월간 인물과 사상에 글 올린 전직 공무원 아저씨 등, 참고로 일부 유족들은 지금도 김현희를 자신에게 직접 넘기면 진상을 밝히겠다라고 한다. 코렁탕? 그런데 이 유족들 앞에 나타난 이철승이 대놓고 빨갱이 드립을 날리다가 스스로 욕처먹을 일거리만 늘려버린 적이 있다.

음모론의 핵심은 대한항공 858기의 탑승자 시신이 한 구도 발견되지 않았고, 블랙박스도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중폭발한 항공기에서 시신이 온전히 남아있을 확률이 더 낮다. 폭발과 동시에 사라져 시신 흔적조차 찾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범인 당사자의 증언으론 컴포지트 250그램이라 했는데, 사실 이 250g이 문제가 되는 것은 폭파효과가 아니라 은닉 수단이었다. 이 폭파과정에서 언급된 양은 C4 350g을 파나소닉 휴대용 라디오에 숨기고, 액체폭탄인 PLX 700cc는 술로 위장했다고 언급을 했다. 그런데 C4 350g이면 파나소닉 라디오의 내부를 텅비워야 간신히 들어갔는데, 김현희는 라디오가 정상작동했다고 증언한 것이다. 그래서 C4 350g 설이 파기되고 250g으로 줄어들어서 다시 발표되었다. 나중에 이 분량이 안기부 추정치로 드러나기도 했는데 정형근 당시 수사본부장에 의하면, 김현희에게 들은 것은 라디오에 고체폭약을, 그리고 술병에 액체폭약을 넣었다라는 것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발언을 듣고 그럼 고체는 C4이고 액체는 PLX로 결정짓고, 이정도 폭발이 되려면 얼마나 필요한가를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추정해서 용량을 발표했다는 것이다. 즉, 비행기가 터질만한 용량을 설정한 것이 초기의 350g, 700cc였다는 것이고, 350g이 라디오에 은닉이 불가능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라디오가 정상작동하는 범위내에서 최대한의 용량이 250g이 다시 설정된 것이다.

이 폭약량의 변화에 대해서는 이후 청문회에서 다시 언급할 정도로 논란의 핵심에 서 있었다. 이 정도 폭약으로 구조신호조차 발신 못하고 여객기가 완파될 수 있냐는 사람도 있는데 250g이면 절대 적은양이 아니다. 저런 고성능 폭약은 자신 무게의 1000배를 날려버릴만한 위력을 갖고있다. 게다가 근본적으로 용량 틀린것을 따지고 든다고 해서 음모론이 사실로 성립되는 것도 아닌것이, 특히 순항중인 항공기의 내부폭발은 상당히 치명적이다. 기내 기압이 외부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순항중인 항공기의 특성상 폭발이 이루어져 부분적으로 파손이 되었다고 해도 지상에서의 파손 효과만을 생각하고 달려들면 오산이기 때문이다.[15] 사고기는 사고 직전까지 순항고도에서 순항중이었으며, 항공기 순항고도에서의 기압은 지상에서의 25% 수준이기 때문에 승객들의 불편함을 줄이고자 여압장치를 이용해 순항하는 항공기 내부의 기압은 지상에서의 기압을 유지한다. 이는 다시 말해서 항공기 외부와 내부의 기압차가 4배 가까이 되는 상황으로, 즉 풍선을 불어 놓은 것과 같은 상황이고, 풍선이 바늘찌르기만 해도 터지는 것처럼 동체의 어느 부분에 조그마한 균열이나 구멍만 생겨도 상당히 치명적인 파괴력을 가지고 온다. 이런 상황에서 취약부인 동체에 단순한 균열도 아니고 강력한 폭발력을 가진 폭약으로 동체 일부를 파괴 한 상황이라면 실질적인 파괴효과는 더더욱 끔찍한 수준일 것이다. 팬암 103편 폭파 사건[16]에 쓰인 폭약도 약 340~450g 정도다. 이 폭약이 858편의 기종인 707 보다 훨씬 큰 초대형기인 747에 0.5m나 되는 구멍을 뚫었고 그 결과는 858편과 마찬가지로 구조신호도 없이 추락해서 전원 사망했다. 지상실험에서 100g(이정도면 웬만한 수류탄보다도 적은 양이다. 즉 겨우 박카스병 하나 정도의 분량.)의 플라스틱 폭약으로도 767이상의 광동체에 큰 구멍을 뚫었을 정도인데, 순항고도에서의 기압차로 인한 효과까지 감안한다면 그 파괴력은 엄청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폭파지점에서 좀 먼 곳의 승객은 시신이 온전할 가능성은 있지만, 폭발지점은 뱅골만 한복판으로 한국의 서해, 동해, 남해 면적을 합친 거보다 더 넓은 바다에서, 게다가 정확히 어디서 폭파되었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시신을 1구라도 찾으면 그게 더 용하다. 블랙박스 역시 마찬가지. 처음에는 태국-버마[17] 국경 카렌족 (람보4의 그 카렌족이 맞다.)의 추락 목격 신고에 따라 육지 수색에만 전념하느라 7일을 허비했다. 이후 생각을 바꿔 해상수색으로 전환하지만 3일만에 포기한다. 이유는 수심이 너무 깊고 유속이 빨라 정확한 위치를 추정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블랙박스를 찾기가 어렵고 상어 등에 의해 이미 훼손되었을 테니[18] 시신을 찾을 가능성도 거의 없을 거라서.[19][20] 물론 이 시기에 조사 내용들은 아직 노태우 씨도 대통령이 되기 전의 정부에서 한 내용이라 100%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점이 있긴 하지만...겨우 불확실한 제보로 정글을 해맨 것은 역시 이해하기 힘들다.[21] 또한 합동조사단에는 항공기 사고 조사를 담당하는 교통국의 직원들은 없었다.[22] 진실이 무엇이든 처음부터 결론을 내리고 수사한 것이라는 의심은 나올 수 있다.

또한 문제가 되었던 것이 유류물이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비행기 폭파는 확실했고, 김현희도 잡아놨는데 폭파된 비행기의 파편이 발견되지 않으니 증거가 없었던 것이다. 대통령선거가 코 앞으로 다가오고 있는 상황에서 민정당의 똥줄이 타들어가는 상황, 이 때 증거물 2가지가 발견되는데 이건 천안함 1번 어뢰는 저리가라 할 정도로 논란을 일으켰다.

첫번째는 한국 배 다곤 1호[23]에서 발견한 구명보트였다. 여기서 발견한 배의 국적을 왜 강조하느냐면 당시 버마정부는 사고해역에 선박 1400여쳑, 쾌속정 4척, 전투기 28대, 민간 비행기 8대, 경비행기 1대를 동원해서 수색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발견한 것은 대한민국 선박, 그것도 화물선이었으니...
당시 가장 유력한 유류품이라고 발견된 이 노란색 구명보트는 인조피혁으로 제조된 것이었는데 개어진 형태였으며 내부의 49가지 물품도 멀쩡하게 발견되었으나 공중폭발시의 파편이 공기압축펌프만 파손시킨 상태였다. 당시 유일한 증거품으로 제시된 이 구명보트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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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두번째 유류품은 사건 이후 2년 이 지난 상황에서 발견되었다. 이번 발견품은 기체 파편. 가장 발견확률이 낮은 기체 파편, 그것도 정확하게 증거가 되는 자료만 딱 발견된 것이다. 일본 아사히 TV에서 미국 MIT 대학 항국우주학과 존 한스만 박사는 이 파편에 대해서 폭발로 인한 것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했다. 그리고 이 자료는 서둘러 폐기해버려서 또 한 번 의구심을 모았다.

이 모든 음모론의 중심에는 김현희 본인에 있었다. 김현희는 정말 그 철저하게 훈련받는 북한공작원 맞나 싶을 정도로 말이 오락가락하였고, 행적에 의문이 많았다. 앞서 언급한 폭탄양에 대해서도 김현희의 입에서 나왔고, 김현희가 증언한 사소한 개인사는 모조리 거짓으로 밝혀졌다. 조작할 필요가 없는 부분이 거짓으로 밝혀지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예를 들어서 북한내 주소를 평양시 문수구 문수동이라고 했는데, 평양에는 문수구역이나 문수구, 문수동이 없었다. 부친의 직업을 앙골라 주재 북한무역대표부 수산대표라고 밝혔는데, 이 역시 북한에 없는 직책이었다. 가장 압권이 김현희 사진조작 사건이었다. 김현희가 북한 공작원이라는 주장의 핵심은 북한에서 찍은 사진에 김현희가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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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증거로 나온 것이 사진 3장이고, 김현희는 자신이 4번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북한 출신인 정희선이 4번은 자신이고 3번은 김송희라고 밝히면서 거짓이 증명되어 버렸다. 이 후 이 사진 3가지는 변조다 아니다, 누가 누구다 하고 말이 엄청나게 많았다. 현재는 김현희는 3번으로 추정되면서 김현희가 북한에 있었던 것은 맞는 것 같다라는 중간결론이 나왔다. 다만, 당시 꽃을 받은 인물이 왜 이동복이었다가 장기영으로 바뀌어서 알려졌으며, 김현희는 왜 자기를 잘못 지목했는지[24], 그리고 진짜 저 3번째가 김현희가 맞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는 결론이 나왔다[25]

그러나 한국의 자작극이라면 미국이 그렇게 쉽게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선정했을까? 당장 참여정부 시절에 국정원 과거사 진실위원회 조사결과 정치적으로 이용되긴 했지만 테러는 맞음라는 결론이 나왔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북한이 실수로나마 이 사건을 일으켰음을 시인했다고 한다. 내용인즉슨 북한의 리근 외무성 미국 국장이 우리측관계자와 사석에서 대화중에 "우리는 KAL기 폭파사건 이후로 테러는 하지 않았다."라고 발언했다는것인데 그럼 KAL기 폭파사건은 했다는 거 아냐? 그리고 리 국장은 평양끌려가서 코로 냉면을 원샷했겠지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 당시 고인드립 만평으로 물의를 빚었던 백무현 화백의 만화 전두환에서는 정권을 까기에 급급한 나머지 이 음모론을 완전히 역사적 사실인 마냥 그려놓고 정작 테러 혐의와 관련해서는 아무 언급도 없는 무책임함을 보였다. 그것도 버튼 한번 누르니 원격으로 비행기가 폭발하는 완전 만화 같은 전개(…).[26][27] 만화 같으니 만화

사실 이 음모론이 긴 생명력을 오랜 기간 유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때마침 수지 김 간첩 조작 사건의 진실이 폭로되어 국정원의 신뢰도가 바닥을 기었던 것도 한 몫을 했다.[28]

그러나! "무지개 공작"이라는 것이 있었던건 사실이다. 북한의 소행인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적극 활용하자라는 기획이 있었던것. 그것으로 김현희를 대선 직전에 송환시킴으로서 불리한 대선형국을 뒤집었다는 것이다.[29] 이는 국정원 진실조사 위원회의 재조사에서도 사실로 확인 되었다.

또한 이 사건을 추적한 일본 기자를 아무런 설명도 없이 한국 입국을 막아버린 것도 음모론을 부채질했다는 지적이 있다. 그리고 김현희가 어린시절 화동을 했다라고 했다가 논란을 일으킨 사진에 대해서 나중에서야 실수라고 번복했기에 음모론을 정부가 더 만들었다는 지적이 많다.

또한 김현희가 결혼한 상대가 사건 당시의 수사관 인것과, 항공기 폭파사건을 일으킨게 사실이라면 왜 사형 당하지 않았냐는 것, 그리고 그 당시 땡전뉴스이던 언론들이 김현희에게 묘하게 호의적이었다는 것도 있다.

하지만 당시 사건 담당 공안검사였던 이상형 변호사의 이야기에 따르면 철저한 증거주의 및 논리에 입각하여 김현희의 선고가 이루어 진 것이며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고 재판에서만 공개된 확실한 증거들은 훨씬 많다고 주장하였다. 특히 사진의 경우 문제가 있었던건 맞지만 곧바로 제대로 된 다른 사진이 확보되어 실제 증거 확보에 문제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음모론에서 자꾸 물고 늘어지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으며, 김현희 압송 시점 또한 대선을 하루 앞둔 것은 바레인 당국에서 압송 허가를 내 줬을때 시점이 하필이면 그때였고, 가뜩이나 어렵게 이뤄낸 허가인데 압송을 곧바로 진행하지 않았다간 기회가 사라질 수도 있다 보니 국내 일정과는 관계없이 가능한대로 당장 데려오는 것이 불가피 했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김현희를 압송해서 국내 공항에 도착하는 장면을 그것도 선거 전 날에 공개적으로 생중계한 것을 볼때 이 부분은 대통령 선거를 의식한 작전이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리고 사형당할 김현희가 갑작스레 사면된 이유는 그녀 자체를 살아있는 증거로 남기고자 했던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결단 때문이다. 김현희가 재판 받을 당시에 이미 안기부 측에서 일본 조총련과 연계된 좌파 운동권 계열을 중심으로 김현희는 가짜라는 내용을 필두로 하는 이 사건의 음모론이 시작되는 것을 감지했었으며, 이를 보고 받은 당시 대통령인 노태우는 추후 음모론으로 인한 사회혼란을 막고자 대통령의 재량으로 김현희를 사면시켜 안기부의 보호를 받으며 안보강연 등의 활동으로 살아가게 만든 것이다. 만약 정말 안기부가 그녀를 이용해서 조작을 했다고 친다면 차라리 사형집행을 서둘러 하여 영원히 입막음 하는게 훨씬 더 완벽했다.[30]괜히 살려뒀다가 그녀가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언제 다시 딴소리를 할 지 알 수 없는 노릇 아닌가(...) 만약 당시 김현희가 곧바로 사형되었다면 음모론은 그녀를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식으로 변형되어 퍼졌을텐데, 오히려 이건 정말 음모론 중에서도 탄탄한 기초가 되기 때문에, 실체적 진실을 알지못하는 미궁으로 빠지고 북한의 테러라고 믿는 쪽과 안기부의 조작이라고 믿는 쪽이 극심한 대립을 하며 사회 혼란만 가중 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이런 혼란 때문에 시간이 지남에도 사건이 더더욱 입에 오르내리며 유가족들은 더더욱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야 했을 것이다. 물론 살아있는 증거로 남기고 싶었다면 굳이 사면이 아니더라도 특별감형으로 죄에 대한 대가는 치르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음모론과는 별개로 '김현희 덕에 선거에서 이겼으니 고마워서 사면해준 것'이라고 비꼬는 의견도 있긴하다. 하지만 그런 측면 보다는 당시 상황에 있어서 어쩔 수 없는 불가피성이 작용했음을 감안하는 편이 좋다. 사면 과정과 관련된 기록을 보면 김현희의 감형안도 거론되긴 했었으나 수감 중 심경의 변화가 생길 수 있고 관리가 어려우며 감형 후 다시 사면하는 것은 부담스럽다는 세 가지 이유로 사면이 되었다고 한다.[31]

어쨌든 결론적으로 사건은 조작되지 않았지만 당시 안기부가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불필요한 행동을 한 게 음모론을 부채질했다고 볼수 있을듯 하다.

노무현 정권 때 이미 '북한의 테러'라고 결론이 났기에 현재는 정부의 음모론 같은걸 믿는 사람은 진보진영 일부를 제외하고 거의 없다 자주민보, 미디어오늘 같은데나 음모론이 나오긴 하나 믿는 사람은 없다. #

하지만 무고한 민간인들을 대량 살상한 테러범인데도 혼자 살아남아 반공의 투사이자 아이콘마냥 활동하는 김현희의 행동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사람은 많다. 김현희가 언급되면 사람을 그리 죽여놓고 정권의 비호하에 살아났으면 조용히 있으라는 말이나 리플이 수시로 나오는데, 어찌보면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녀가 큰 죄를 저질렀음에도 살아남아서 얼굴을 내밀면서 욕을 먹는 것이 바로 평생의 업보이자 죄값을 치루는 셈이다. 이런 비난의 여론도 다 업고 가면서도 그녀는 유족들에게 끊임없는 사죄를 하며 자신의 죄값을 치루는 행보를 이어왔으며,[32] 특히 2000년대 초중반 음모론으로 인해 고통스러운 삶[33]까지 보내다 보니 얼마든지 자살을 생각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그러지 않았고, 이후 외부와의 접촉을 재기하고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이 끝까지 살아남아 있는것이야 말로 자신의 죄값을 치루고 유족들을 위한 길이라 생각한다는 신념을 밝히기도 했다. 다만 아래 링크된 월간조선의 기사에서 보이듯, 엄연한 가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참여 정부 등의 피해자인 것처럼 묘사하는 것에 대해서는 대체로 여론의 반감이 심한 편이다. 그리고 언론에 나타나서 국민과 유가족의 어그로를 끌지 말고 조용히 지내는 것이 진정한 사죄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 듯.

이승복 어린이 사건의 경우도 이 KAL 858 사건과 상당히 흡사하다. 세세한 음모론에, 심지어 사건 자체에 대한 조작설이 난무하였으나 두 사건 모두 북한의 소행임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음모론을 제기하며 김현희가 가짜라고 주장했던 사람들 중에 심재환 변호사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이정희통합진보당 대표의 남편이다. 김현희도 이를 잘 알고 있는지 MBC에 출연했을 때 언급하기도 했다.

6 미디어

신상옥 감독이 부인 최은희 씨와 함께 납북되었다가 탈북에 성공하고 미국으로 망명한 후 대한민국 정부의 요청으로 만든 반공 영화가 바로 마유미(영화)이다. 영화 만추에서 현빈의 애인 아줌마로 나오는 김서라[34]가 주연을 맡았고 북한의 공작, 선량한 여러 근로자들이 대한항공기를 탑승하기까지의 여정을 다루고 일본과 합작으로 특촬(…) 기술로 나름대로 재현했다. 무엇보다 김서라김현희와 비슷하게 생겨서 캐스팅했다고 한다. 보잉의 거부로 영화에서는 실제로 폭파된 비행기와 기종이 다른 비행기가 나왔다. 무엇보다도 사람이 공중으로 빨려 날라가는 장면 묘사[35]로 유가족들에게 욕을 무진장 먹었다.[36]

1988년 5월 5일 어린이날에 첫 방영된 KBS판 애니메이션 아기공룡 둘리 시즌 2에서도 이 사건을 주제로 반공물 에피소드를 다루기도 한다. 둘리가 도우너를 끌어들여 우리나라 여객기를 폭파시킨 나쁜놈들을 혼내주러 북한으로 쳐들어가기 위해 뻘짓을 하는 내용이며, 실제론 휴전선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 온갖 사고만 치며 고길동등골 브레이커로 활약하지만, 얼떨결에 한강잠수정으로 침투하여 KAL기를 한 대 더 까부수려던 무장공비 2명과 마주쳤고 도우너가 이들을 떡실신 시키며 자진 항복하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이들을 검거하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원작은 좀 다르게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을 배경으로 깔고 있고, 대상도 북한이 아닌 소련이다. 이건 원작에서 이 에피소드가 연재된 시점이 1983년이기 때문이다.

일본인 납치 문제와 연계되는 일이라 일본에서 극화가 꽤 많이 되었다. 신상옥 감독의 영화보다 오히려 연출력과 고증은 일본 TV 드라마가 낫다는 평.

2015년 기준 최근 연재중인 강풀무빙16화 프리퀄에서 구체적 언급은 없지만 이 사고로 추정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고증오류로 극중 나오는 대한항공기는 구도색을 하고 있다.[37]

김현희 자신은 "이제 여자가 되고 싶어요"(1991년-고려원)라는 회고록을 남겼는데[38] 제법 볼만하다. 1급 간첩의 확보가 얼마나 방대한 대북 정보를 알려주는지 여실히 알려주는 책으로,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도 북한 사회에 대해 알고 싶다면 한번쯤 읽어볼만 하다. 2권으로 나뉘어 있는데 1권 내 영혼의 눈물은 동유럽지역을 돌고 돌아 잠행 하다가 858편을 폭파시킨 이야기이다. 음모론에서는 이 책에서 나오는 동유럽 지역명이나 호텔명등 대부분이 실제 존재하지 않는 가짜 지역이라고 한다. 설마 본인이 직접 썼겠나. 잘해야 본인이 뼈대만 구술하고 상세는 대필 작가가 지어냈으니 그렇겠지 딴지일보에서 주로 나오는 논리이기도 하다.
2권 꿈꾸는 허수아비에서는 김현희의 어린시절 이야기인데 꽤 부유한집에서 잘살았다는 내용이다. 중요한 관건은 잘사는 집이니 어렸을 때 뽑혀서 위에서도 나오는 화동으로 남한측 대표에서 꽃을 전달 했다는 것인데 이것도 진실 공방이 있다. 책의 내용은 매우 흥미진진하고 재미 있다. 특히 기존의 어렵게 살던 탈북자가 북한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고 탈북했다는 내용 대신, 부유층이며 부러움 하나도 없이 행복했던 이가 간첩이 되어 가는 과정이 자세히 나와 있다.

회고록이 나오기 전인 1988년 덕문출판사에서 강인철씨가 쓴 "언니 미안해"라는 소설 형식의 책이 나왔다. 이 '언니 미안해'라는 말은 김현희가 안기부 여성 조사관과 며칠을 같이 지내는 동안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을 때 맨 처음으로 했던 말로 알려져 있다. 근데 꽤 골때리는 것이, 계몽사에서 이 책을 좀 간략하게 다듬어서 동명의 동화책을 냈다. 내용은 어느 국민학생 여자아이들이 마유미, 즉 김현희에게 편지를 썼고, 안기부가 이들에게 김현희와의 데이트를 주선해주는 댓가로 담임선생을 통해 반공동화책을 내줄 것을 요구, 그림자의 감시 속에 김현희와 아이들이 서울시내를 돌아다니면서 김현희의 인생역정을 듣는다는 꽤나 흠좀무한 내용. 김현희의 출생, 성장과정, 공작원 교육, 김정일에 의한 858기 폭파 작전 입안과 실행 등이 제법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다.[39] 헤어질 때 아이들이 마유미에게 앞으로 어떻게 되는지 물어보자 마유미는 대통령 특사 외에는 살아날 길이 없다고 담담히 대답하는 장면이 클라이막스. 다행히 살아남았다는 설명으로 끝난다. 다시 말하지만 이거 동화책이다! 몰라 뭐야 이거 무서워 하긴 계몽사의 이 창작동화집 중에는 영덕-강구 전투중에 수류탄으로 전차를 때려부순 이명수 상사를 다룬 이야기도 있다.(...)

인간 김현희에 대한 탐구서로는 조갑제의 인터뷰가 있다. 그리고 최근에도 월간조선은 김현희에 대한 기사를 자주 싣고 있다. #

뉴스Y가 2014년 8월 발생한 말레이시아항공 370편 추락사고와 관련해서 전문가랍시고 김현희를 패널로 초대해서 많은 비난을 받았다.전문가가 아닌건 아니지만...
뉴스Y뿐만 아니라 종편 등 일부 미디어는 그녀를 노출시켜 노이즈 마케팅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항공기 폭파사건의 유족들에게 범인의 얼굴을 이렇게 당당히 노출시키고 115명이 죽은 사건의 범인을 다시 쳐다보게 하여 유족들의 가슴에 다시 한번 못을 박는 짓이다.

7 관련항목

  1. 대한항공이 보잉에 첫 발주한 기체. 이전에 운용한 707기는 다 리스받은 것이거나 중고를 사들인 것이었다. 대한항공에서 운용한 수많은 707기 중 이 기종만 707-3B5라 불리는 이유다.
  2. 이 기체는 대한항공 측에서도 상당히 의미가 있는데, 우선 보잉에 직접 주문하여 인도받은 첫 번째 기체이다. 또, 이걸로 KE001/002편(서울-도쿄-호놀룰루-LA)을 처음 뚫었다. 절대 HL7463 기체가 맨 처음 뚫은 게 아니다 또한 1981년까지 대한민국 대통령 전용기의 역할도 한 적이 있었다. 1990년대까지 살아 있었다면, 충분히 정석비행장에 전시되고도 남았을 기체다.
  3. 여담으로 압송되는 김현희의 모습은 꽤나 큰 파장을 일으켰다. 수백명을 살해한 공작원이라길래 험상궂은 인상을 기대했던 국민들은 의외로 곱상한 김현희의 모습에 놀라 "죽이긴 아깝다."란 반응을 보였다 민간인 수백명이 죽었는데 얼굴 좀 반반하다고 죽이긴 아깝다니... 김현희는 북한같으면 요물이라고 더 잔혹하게 죽였을 것이라며 이 때의 반응에 상당히 의아해했다.
  4. 어떤 음모론에선 중간 기착지에서 여객기에 타고 있던 한국의 고위 공직자들이 우르르 내렸다고도 하는데 확인된 사실은 아니라고 한다.
  5. 청산가리라는 네임드급 맹독성 물질을 바로 뺏기긴 했다지만 살아남은 게 용하다. 아예 섭취조차 못했거나 했어도 치사량에 훨씬 못 미치는 양이었나보다. 다만 떠도는 카더라에는 3일간 혼수상태에 빠졌었다는 얘기가 있고 담당 의사가 쟤 쇼하는 거야라고 슬쩍 흘렸다는 음모론도 있지만 어쨌든 그녀는 사지멀쩡하게 자살에 실패했다.
  6. 게다가 하치야 신이치, 즉 김승일의 허파에 박혀있던 2밀리리터 짜리 유리 파편은 1974년 다대포에 침투했다가 자결한 북한 공작원들의 부검에서 나온 청산가리 앰플의 파편과 동일한 것으로 밝혀졌고 그의 치아는 북한에서만 쓰는 방식인 납으로 이를 땜한 흔적이 확인되었다. 그런데도 음모론자들은 1972년에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이 김일성을 만나기 위해 북한을 방문했을 때도 청산가리 앰플을 소지한 적이 있는데 청산가리 앰플이 뭐가 북한의 수법이냐고 주장했다.
  7. 김정일의 전처이자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의 어머니인 성혜림 씨의 언니
  8. 김정일의 전처인 성혜림 씨의 언니 성혜랑 씨의 아들이므로 김정일의 처조카였다. 남한에 귀순했지만 1997년 북한 공작원에 의해 피살되었다.
  9. 김현희는 특히 TV조선에 자주 출연하고 있다. #
  10. 인세 8억 5천만원을 유족들에게 내놓으며, 용서를 빌었다는 기사. #
  11. 폭탄 테러 발생일이 아시안 게임 개최일로부터 불과 1주일 전이었다.
  12. 이런데도 출신 성분이 의심되는 음모론자들은 당시 남한과 북한은 올림픽 개최에 굉장히 서로 협조적이었다며, 북한이 올림픽 개최에 훼방놓을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억지일 뿐
  13. 참고로 소련은 88올림픽에 출전해서 남자 축구 등의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14. 하지만, 결론을 내리진 않아 음모론을 다루는 수준에 가깝다.
  15. 미국의 도시전설 고증 프로그램인 '호기심해결사' 시즌1의 한 에피소드에서는 단 6g의 고체 폭약 만으로도 폭약이 부착된 동체의 좌측과 상단이 완전히 날아간다. 폭약이 설치된 앞 좌석은 아에 좌석이 통째로 분리되어 뒷좌석 위로 올라가있다.
  16. 일명 로커비 폭탄테러
  17. 가장 걸작인 음모론은 이 사건이 있기 전에 버마 지도자를 전두환 정부가 국빈 초청했고 당시 한국도 겁나게 가난한데 버마에 파격적인 경제적 지원을 했다는 것, 그리고 그 이후 버마 근처에서 이런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에서 당시 서로 군인 독재 정부가 들어선 한국과 버마가 뭔가 샤바샤바를 하지 않았냐는 음모론 오브 음모론을 펼치기도 하지만, 이건 거의 2차 창작 수준의 헛소리라...
  18. 이 말을 한 말이 누구냐면 안기부 수사단장 정형근이다. 더구나 이 표현이 너무 과장이 심했다. 수심 2000~3000m, 물살이 초속 300m, 상어가 득시글 거린다.라고 주장했다.
  19. 2,3km정도 되는 수심에서도 블랙박스가 발견된 사례가 있긴 하다. 심해잠수정으로 엄청난 비용을 써가며 그마저도 포기 직전에 겨우 발견한 거지만... 문제는 그 경우는 최종 추락지점을 어느정도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위치를 확정할 수 없는 상태에서는 애초에 무리다.
  20. 여담으로 2004년 일본 아사히TV에서는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수심 70m(북위14도 45분, 동경 95도 38분), 물살 전혀 안 빠르고, 상어는 보이지도 않는다. 라고 결론을 내렸다. 정형근의 주장과는 너무나도 달라서 이후 음모론은 더욱 거세졌다. 애초에 문제가 지역인 안다만 해의 평균 수심은 870m에 불과.
  21. 다만 초기에 잔해로 추정되는 흔적을 발견했다는 기사가 있다. 이게 다른 미상의 추락기체의 잔해인지 그냥 설레발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초동대응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은 있다. 참고로 이는 국내 뿐 아니라 뉴욕 타임즈 같은 외국 언론에도 분명히 나오고 이를 발표한건 한국이 아니라 태국이다. 그리고 애초 어디 추락했는지 모르는 상태인데 목격자 진술을 '불확실하다'라고 말해봤자...
  22. 음모론일 수도 있으니 출처 확인 요망
  23. 그것도 한국 해양공사 소속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24. 김현희의 주장으로는 자신이 4번째로 꽃을 주기로 했다는 것만 강박이 되어서 자기 얼굴 지목을 잘못했다고 해명했다.
  25. kAL기 폭파사고 진실위원회 조사결과에서 가장 많은 의혹이 지목된 부분은 정치적 이용 논란과 함께 이 어설픈 북한 첩보원 김현희였다. 모든 행적과 언동에 논란이 일었던 것이다.
  26. 이 부분이 참으로 걸작인게 여당의 지지율이 야당에 뒤진다는 소식을 들은 전두환이 기다렸다는듯이 허겁지겁 달려가 버튼을 눌렀더니 KAL 858이 터진다(...)버스터콜
  27. 더더욱 가관인것은 KAL 007편 격추사건도 마치 미국의 음모인양 묘사했다는거다 KAL 858이야 그러려니 한다지만 KAL007의 경우 빼도박도 못하는 소련잘못이다
  28. 유명한 양치기 소년이야기를 상기해 보자. 계속 거짓말만 하니 마지막엔 진짜 늑대가 왔는데도 마을 사람들이 시큰둥했던 것처럼...
  29. 1987년 대선에서 김현희가 도착하기 전까지는 김영삼이 선두였다고 한다. 이는 2007년 공개된 미국 비밀문서에서 확인된 내용이다. 출처는 월간중앙 2010년 11월호 강준식의 대통령 열전
  30. 수지 김 사건 또한 기본적으로 피해 당사자인 김옥분이 사건 당시 이미 윤태식에 의해 살해 되어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고 국내에서 접근이 어려운 해외에서 발생한 사건인데다 오로지 윤태식의 진술만으로 증거가 시작되기 때문에 조작이 쉽게 가능했던 것이다.
  31. 김영삼이 암살되고 학생시위와 쿠데타로 전두환이 물러가는 80년대 후반을 그린 10월의 폭풍이라는 대체역사소설에서는 이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지만 벌어지기 직전에 공작원이 자살하는 바람에 그때까지도 안기부의 조작이다. 아니면 북한의 실패한 테러음모였다는 설이 대립하는 것으로 나온다. 딱 이런 스토리를 가정한 이야기
  32. 행보들 중에 과거 자신의 자서전을 쓴 것 자체로 비난을 할지 모르지만 애초에 판매수익금을 유족들에게 기부할 정도로 개인의 이익과는 거리가 먼 행보였다.
  33. 음모론이 활기를 치던 노무현 정권 때 PD수첩에서는 어떻게 알아냈는지 그녀가 사는 곳의 집주소까지 알아내서 일가족이 졸지에 피난민 신세가 되었다고 김현희 본인이 주장하기도 했다.
  34. 당시 김서라가 스포츠서울에서 말하길 극장으로 친구와 같이 보러갔다가 어느 아저씨가 마구 욕하면서 나오다가 친구와 언쟁이 벌어졌는데, 이 사람은 바로 이 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유족이었다고 하여 김서라와 친구는 아무 말도 못하고 허겁지겁 나왔다고 한다. 김서라는 사건 당시 9시 뉴스 등에 나와서 김현희와 머리모양이며 표정을 비슷하게 꾸미고 앉아 게스트 비슷하게 출연하기도 했다. 시켜서 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닮은꼴치고는 충공깽. 테러리스트 닮은꼴로 데뷔한 한국 최초의 연예인일듯. 2015년 현재도 활발하게 연기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35. 그냥 날아가는 것도 아니고 비명을 지르고(비행기 뻥뻥 터지는 소리 빼곤 죄다 비명소리만 나온다) 어떤 사람은 팔이 찢어지고 눈알이 튀어나오고 불타는 기내에서 비명을 지르는 모습 등 적나라한 표현이 다 나온다(...).
  36. 신 감독 자신은 북한에 간 후에 북한 영화발전에 상당히 기여한 공로…때문에 남한으로 귀국이 어려웠고 위장 귀순이라는 비난까지 받을 정도여서 결국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이후 대한민국에 귀국했다. 마유미는 사실 신 감독이 자신의 충성심을 알리고자만든 작품이다. 마유미 이후에 충성심을 검증받은 신감독이 만든 작품이 바로 군사정변으로 대통령이 된 장군이 자기 부하인 정보부장을 지하실에서 총으로 처형하는 내용의 증발이다. 이 작품으로 무진장 비난을 받았다
  37. 1984년 CI 변경과 함께 현재의 하늘색 도색으로 변경.
  38. 사실은 김현희가 직접 쓴 책은 아니고 소설가 노수민 씨가 대필한 것이라고 한다. 관련 기사
  39. 다만 아버지의 직업이 앙골라 대사로 서술되는 등 어린이들이 대강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어레인지 된 부분은 있다. 어린이들이 그걸 이해한다고? 남북회담에서 꽃둥이로 나왔다는 주장도 그대로 차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