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세습

1 개요

자신의 권력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데에 성공한 독재자들을 뜻하는 말이다.

독재자와 전제군주가 구분되는 가장 큰 차이는 국가가 공화국이냐 군주국이냐의 차이이다. 군주국은 권력의 세습을 인정하고, 권력자와 얼마나 가까운 가족이느냐에 따라 정통성이 달라질 정도로 혈통에 의한 세습을 중시하는 국가 체제이다. 그러나 공화국은 그런 세습 권력자인 왕을 인정하지 않는 국가체제이고, 정통성도 혈통에 있지 않다. 그렇기에 공화국의 절대 권력자인 독재자는 국가 체제를 부정하는 혈통에 의한 세습을 할 수 없는 게 군주와 가장 다른 점이다. 인류 역사상 그 누구보다 더 강한 권력을 가졌던 스탈린도 자기 자식에게 권력을 물려주지 못했다.[1]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원리 원칙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공화국의 절대권력자인 독재자들이 자기 국가의 규칙을 깨고 가족에게 권력을 물려주는 경우는 꽤 많다. 당장 공화국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로마에서부터 세습 독재자가 나타났고, 그들은 유럽 최초의 황제가 되었다. 이는 오늘날에도 다르지 않다. 요즘 시대에서 가장 유명한 예시는 아무래도 북한의 3대 세습이 있다.

2 세습의 어려움

독재자가 자신의 절대 권력을 가족에게 물려주는 것은 전제군주정보다 엄청나게 어렵다. 역사상 수백년을 넘어가는 왕조가 수두룩하지만 삼대이상의 권력 세습에 성공한 독재자는 손에 꼽는 것이 그 증거이다.[2] 이는 권력의 세습을 위해 국가체제가 형성된 군주정과 권력의 세습을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공화국의 시스템상의 차이 때문이다. 독재자가 권력을 세습하기 어려운 조건들은 다음과 같다.

2.1 후계자 문제

이 점은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문제이다. 독재자의 권력을 받고 싶어하는 가족이 존재하고, 독재자가 그 사람에게 권력을 물려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어야만 세습의 첫 번째 조건이 이루어진다.

스페인의 프랑코는 이 기본적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해서 자신의 사후 스페인이 민주주의로 되돌아 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프랑코에게는 딸만 있었고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프랑코의 기준으로는 권력을 물려줄 자식이 없는 셈이었고, 카를로스 국왕을 자신의 아들처럼 여겼기에 권력 세습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 만약 스페인이 프랑코의 왕국이면, 합스부르크의 마리아 테레지아처럼 딸에게 물려주든가, 조선의 철종처럼 프랑코의 먼 남자 친척이라도 데리고 와서 왕좌를 물려줄 것이다. 프랑코가 군주정을 부활시키긴 했지만 프랑코 본인은 왕이 아닌 섭정의 자격으로 통치를 했기 때문에 원칙상 프랑코의 자리를 세습시킬 수 없어서 그런 무리를 하기 힘들다. 따라서 후계자의 존재 자체가 제일 근본적인 조건이다.

터키의 아타튀르크도 이 예시에 포함된다. 이쪽은 반대로 자신의 명성을 배경 삼아 자식들이 대대로 대통령을 하는 것을 경계해 일부러 자식을 보지 않았다. 터키의 헌법에서 아타튀르크를 모욕하는 것을 처벌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명망이 있는 독재자이기에 충분히 가능한 얘기이다. 비록 자신의 가정 사정상 자식을 갖지 못했을 뿐이라는 의견도 있으나, 아타튀르크의 경우는 독재자의 가족이 상대적으로 쉽게 권력을 차지할 수 있다는 것과 동시에 그 권력을 차지할 가족이 반드시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예이다.

2.2 독재에 협력하는 엘리트들의 반발

장징궈처럼 권력 세습을 위해 독재 정권의 실력자들이 자신의 자리를 비워줄 정도로 스스로 도와주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그 실력자들도 사람인지라 권력을 차지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다. 아니 엄청나게 있다고 보면 된다. 10.26 사건에서부터 12.12 군사반란까지 독재자핵심 측권층들이 독재자의 자리를 탐나 암살을 벌이고 쿠데타를 하는 것은 이 권력욕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3]

이 실력자들은 독재자한테는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충성을 바친다. 하지만 그 가족들에게도 충성을 바치는 것은 다른 얘기이다. 독재가 이루어지기 위해 필요한 힘과 정통성을 그 가족이 그대로 세습할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그 엘리트들이 바로 힘과 정통성을 지지해주는 사람들인데, 자신들도 독재를 하고 싶어하거나 세습을 싫어하기 때문에 이를 반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북한을 제외하는 공산국가들이 그 예이다. 공산주의 국가들은 공산당이 모든 권력을 차지하는 레닌식 인민민주주의를 체택하고 있다. 대숙청 이후의 스탈린문화대혁명 때의 마오쩌둥처럼 한 사람이 모든 권력을 독차지한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공산국가의 권력은 그 당의 엘리트끼리 어느 정도 분산되어 있다. 그렇기에 비록 독재를 하지만 당의 모든 의견을 무시하고 권력을 휘두르기 어렵고, 세습의 경우도 말할 것이 없다.

이런 엘리트들의 반발을 이겨낼 만큼 독재자가 권력을 강하게 차지하고, 후계자도 어느정도 자신의 기반을 만드는 조건을 충족해야 가능하다. 전자의 예시로는 8월 종파사건 이후 반대파가 전혀 없는 김일성을 들 수 있다. 후자의 예시로는 거의 철들때부터 권력투쟁에 참가하고 김일성 말년에는 김일성을 허수아비로 만들 정도로 권력을 장악하는 데에 성공한 김정일을 들 수 있다.

2.3 혁명전쟁

아무리 독재정권 내에서 세습을 인정받는 다고 해도, 국민들과 다른 국가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권력을 세습한다고 해도 그 권력을 잃으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 실제로 가족에게 권력을 물려줄 생각을 가진 독재자들의 상당수가 외부의 요소에 의해 권력을 잃어 이를 이루지 못한 것이 그 증거이다.

국민들의 민주혁명으로 세습을 이루지 못한 가장 좋은 예시는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이다. 북한의 세습을 욕한 다른 공산주의 국가들과 달리 이를 부럽게 여기고 벤치마킹해서 권력을 세습할려고 했다. 하지만 공산진영의 붕괴와 차우셰스쿠의 독재 권력에 질린 루마니아 국민들의 혁명에 이기지 못하고 결국 권력 세습은 커녕 총살당해버렸다. 단지 권력 세습 시도 때문에 차우셰스쿠가 권력을 잃은 것이 아니지만 국민들의 민주 혁명이 세습을 막은 좋은 예시이다.

외부 국가 때문에 세습에 실패한 경우는 무아마르 알 카다피사담 후세인을 들 수 있다. 두 권력자들 모두 권력 세습에 열정적인 자식들을 가지고 있고, 반대파가 없는 절대권력을 누리고 있기에 시리아의 아사드 부자처럼 권력 세습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은 국가들이다. 하지만 이들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벌인 이라크 전쟁리비아 전쟁에 패배해 권력과 일가족의 목숨도 잃어버렸다. [4]

국민들과 외부 국가의 비판을 피하기 위해 후계자에게 바로 물려주지 않고 징검다리를 위한 허수아비를 세우는 방식을 취하는 독재자들도 있다. 이렇게하면 겉보기상으로는 권력 세습이 아니고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대놓고 세습을 이루는 것보다 어그로를 덜 끈다. 실제로 대만과 싱가포르는 이런 방식으로 취했고, 이들 독재 권력은 다른 독재자들보다 상대적으로 욕을 덜 먹는다.[5]

3 실존하는/실존했던 세습 독재자들

이 리스트에는 독재 국가 내에서 권력을 세습한 독재자들이 기술된다. 독재자 문서의 독재자 기준을 만족하는 경우의 독재자만을 기술한다. 미국조지 부시 부자처럼 민주주의 국가 내에서 민주주의 절차로 두 명 이상의 가족이 권력을 차지한 경우는 포함되지 않는다. 또한 인도네시아수카르노 부녀나 대한민국박정희 - 박근혜 부녀처럼 부모가 독재자라도 자식이 민주주의 절차로 민주 국가의 권력을 차지한 경우, 자식과 부모가 모두 독재자지만 자식이 세습으로 최고권력자에 오르지 않은 경우[6]는 배제한다. 중화민국장제스-장징궈처럼 중간다리를 놓아 세습을 한 경우에는 포함된다. 전제 왕국처럼 원칙상 권력의 세습이 허용되는 국가는 포함되지 않고, 영국의 호국경처럼 전근대 국가라도 권력의 세습이 이루어지면 안 되는 공화국의 경우는 포함된다.

3.1 아시아

최충헌(고려 최 씨 정권 최고 권력자, 증조부)-최우(고려 최 씨 정권 최고 권력자, 할아버지)-최항(고려 최 씨 정권 최고 권력자, 아버지)-최의(고려 최 씨 정권 최고 권력자, 증손자)
고려 무신정권의 독재자 가문으로 1196년에 최충헌이 이의민을 제거하고 집권한 이래로 1258년에 최의가 김준에 의해 제거될 때까지 무려 4대 62년 동안 고려의 정권을 틀어쥐고 좌지우지했다. 사실상 아래 북한 김 씨 정권의 프로토 타입이라 봐도 무방하다.
김일성(북한의 최고 권력자, 할아버지)-김정일(북한의 최고 권력자, 아버지)-김정은(북한의 최고 권력자, 손자)
니카라과의 소모사 가문과 더불어 3대 세습에 성공한 이 분야의 톱이다. 주체사상을 통해 혈통에 의한 계승을 정당화하고, 8월 종파 사건 이후 도전자가 없는 한 마디로 이 부분의 모범이다(...). 지금은 공화국이 아닌 전제군주정이라고 보아야 맞을 정도이다.
장제스(총통,아버지)-장징궈(총통,아들)
장징궈는 다른 세습 독재자들처럼 독재 권력을 물려 받았으나, 자신의 대에서 계엄령을 끝내고 독재를 종식하는 독특한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한국의 과 폴란드의 자유노조처럼 뚜렷한 조직적 야권의 압력이 있어서 권력을 포기한 것도 아니다. 이러한 행동은 상임이사국 자리를 대만한테서 빼앗고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에 기초한 경제발전을 하는 중국에 대항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만약 민주화를 하지 않았으면 경제력도 중국에 못 미치는 대만이 중국에 흡수되어도 대항할 논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 결과 자신의 아버지인 장제스의 국민당 독재를 끝내버리게 되었다.
  • 봉천군벌
장쭤린(만주의 군벌, 아버지)-장쉐량(만주의 군벌, 아들)
리콴유(총리, 아버지)-리셴룽(총리, 아들)
하페즈 알 아사드(대통령, 아버지)-바샤르 알 아사드(대통령, 아들)
헤이다르 알리예프(대통령, 아버지) - 일함 알리예프(대통령, 아들)

3.2 유럽

율리우스 카이사르(양아버지)-아우구스투스(양아들)[7]
메디치 가문
올리버 크롬웰(호국경, 아버지)-리처드 크롬웰(호국경, 아들)

3.3 아메리카

라파엘 트루히요(대통령, 형)-헥토르 트루히요(대통령, 남동생)
프랑수아 뒤발리에(대통령, 아버지)-장 클로드 뒤발리에(대통령, 아들)
피델 카스트로(국가평의회 의장, 형)-라울 카스트로(국가평의회 의장,남동생)
라울 카스트로는 피델과 함께 쿠바 혁명에 기여했기 때문에 체 게베라 생전에는 서열 3위, 사후 2위 였으므로 그저 세습이라고 보긴 어렵다.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가르시아(대통령, 루이스 소모사 데바일레와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데바일레의 아버지)-루이스 소모사 데바일레(대통령,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데바일레의 형)-아나스타시오 소모사 데바일레(대통령)

3.4 아프리카

프란시스코 응게마(대통령, 삼촌)-테오도로 오비앙 응게마 음바소고(대통령, 조카)

4 시도가 있었지만 실패한 경우

사담 후세인-우다이 후세인: 우다이가 너무 망나니라서 갖은 행패를 부리다 사담 후세인이 총애하던 측근 카멜 한나를 때려죽이고 원한을 품은 자들에게 암살 시도를 당해 장애인이 된 통에 후계선상에서 제외되었다.
사담 후세인-쿠사이 후세인: 이라크 전쟁으로 후세인 정권이 몰락하며 실패.
무아마르 카다피-사이프 알 이슬람 카다피: 리비아 혁명으로 카다피 정권이 붕괴되어 실패. 여기에 서방의 개입도 주효.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니쿠 차우셰스쿠: 루마니아 혁명으로 차우셰스쿠 정권이 몰락하며 실패.

5 의심받는 경우

알략산드르 루카셴카-니콜라이 루카셴카: 자신의 어린 아들을 공식석상에 자꾸 대동하여 후계자로 키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고 있다.
마오쩌둥-마오안잉: 마오안잉이 6.25전쟁 중 전사하지만 않았어도 후계자가 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6 가공의 공화국 내의 정치 명문가

6.1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

지온 공국 : 자비 가문과 다이쿤 가문[8]

6.2 트로피코

트로피코

6.3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문명이나 Crusader Kings 2와 같은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공화국으로 플레이할 수 있는데, 국가 원수가 죽어도 플레이어가 계속 조종하는 캐릭터로 바뀔 뿐이다. 공화제의 탈을 쓴 빅 브라더 정치이다.

7 참고사항

  1. 물론 가족들에게도 냉담하게 대한 스탈린을 보았을 때, 안 했다라고 보는 것이 맞다.
  2. 애초에 북한이 독특한 국가인 것이다. 한세대만 넘기면 백년이 된다.
  3. 김재규가 박정희 암살을 벌인 이유는 지금도 불명이다. 하지만 이 암살의 주 근원 중 하나를 차지철과 권력 다툼으로 보는 설이 있을 정도로, 이 사건은 독재 정권의 실력자들이 얼마나 권력욕을 가지고 있는 것을 잘 보여준다.
  4. 그리고 독재자 킬러, 지미 카터에 의해 죽은 독재자들을 포함하면 그 수는…
  5. 물론 이들 국가는 세계의 여론을 주도하는 친서방 세력이며, 대만은 장징궈 이후 실질적 민주주의를, 싱가포르는 겉보기 상으로는 민주주의를 취했기에 그런 면도 있다.
  6. 말레이시아의 압둘 라작나집 라작의 경우가 해당된다. 나집 라작은 압둘 라작의 아들로 총리까지 지낸 압둘 라작의 후광을 얻어 정치적으로 클 수 있었지만 압둘 라작의 총리 사임과 나집 라작의 총리 취임 사이에 약 30여 년의 긴 세월이 있었으며 그 동안 허수아비를 세워놓은 것도 아니다.
  7. 아우구스투스는 권력을 쟁취한 감이 크다.
  8. 서브컬쳐에서 세습 독재자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다. 우주세기는 사실상 이 두 가문의 연대기라고 볼 수 있을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