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이 새벽 작전

1 개요

국제 사회에 의한 UN 안전보장이사회의 승인을 얻은 리비아의 상황에 대한 군사 개입. 작전명인 '오디세이 새벽(Odyssey Dawn)'은 지중해 부근에서 이뤄진 점을 감안해 고대 장편 서사시 오디세이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오디세이 새벽'이라는 이름은 미군에 한정된 것으로서 각국별로 작전명이 다르다. 미국의 '오디세이 새벽'의 경우는 아프리카사령부(ARFICOM)에 배정된 작전명 알파벳은 JS-JZ, NS-NZ, OA-OF인데 이중에서 J와 N의 경우는 최근에 썼다. O로 시작하는 단어 중 유일하게 쓸 만한 Odyssey를 정한 다음 그에 맞는 Dawn(새벽)을 착안한 것이다. 캐나다군의 '모바일'은 Mediterrannean(지중해)에서 행해지는 작전이기에 M의 작전명 알파벳을 선택하였고 이중언어국가인 캐나다의 특성상 영어와 프랑스어에서 같은 철자를 쓰는 단어인 Mobile을 선택하였다. 영국군의 '엘라미'는 아예 컴퓨터 무작위 생성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프랑스군하르마탄(Harmattan)은 의미를 담아 지은 것으로서 12월부터 3월까지 사하라 사막에 북쪽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을 의미한다. 즉 공습을 자연 현상에 빗댄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 프랑스 외에는 독립적으로 항목을 작성하기엔 미비한 수준이며 어차피 연합해서 똑같은 전쟁을 치르고 있으므로 여기서는 오디세이 새벽 작전으로 통일한다.

이후 NATO가 리비아에 대한 작전에 전면에 나선 시점에서 작전명이 통합된 보호자(Operation Unified Protector)로 바뀌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카다피철저피 대패당했으며, 영혼까지 사라져버린 사건이었다.

2 배경

2010-2011 아랍권 민주화 운동2011 리비아 민주화 운동 항목 참조.

리비아 민주화 운동이 사실상 내전으로 치달으면서, 초기에는 시민군이 동부 지역을 장악하고 수도 트리폴리까지 파죽지세로 진격할 기세를 보였으나, 제대로 된 전력도 없는 소규모 탈영병들과 자원병 중심의 시민군이 리비아군을 상대할 수 없었다. 물론 리비아군도 그다지 수준이 높은 건 아니지만 적어도 명색이 정규 군대인지라, 특히 시민군에는 공군 전력이 거의 없었던 것이 전세가 뒤집힌 큰 이유이다.

한때는 무아마르 알 카다피에게 권좌를 떠나면 망명을 허용하겠다며 호기롭게 최후 통첩을 날리던 시민군이 오히려 각지에서 패퇴, 거점인 벵가지가 위협 받는 상황에 직면했다. 더군다나 3월 11일 일본에서 도호쿠 대지진이 발생하고 뒤이어 어느 원전이 터질랑 말랑하자 세계의 관심이 모조리 일본으로 쏠렸다.

이에 크게 고무된 카다피는 세계의 이목이 일본으로 쏠린 틈을 타 잽싸게 시민군을 격파하고 내전을 끝내자는 생각으로 공세를 강화했다. 이에 도호쿠 대지진 와중인 3월 17일 UN 안전보장이사회가 10개국의 찬성, 5개국의 기권으로 리비아 상공에 비행 금지 구역(No-Fly Zone)을 설정하자 카다피는 잠시 꼬리를 내리며 정전을 선언했으나 그 다음날 바로 뒤통수를 때리며 '반란군이 먼저 정전을 파기했다'는 것을 명분삼아서 벵가지 공격을 재개했지만 증거가 없다.

정전을 선언해놓고도 제멋대로 파기하고 공격을 재개하고 게다가 대규모 민간인 학살까지 우려되자 마침내 빡친 열 받은 미국에서 지상군 배치 없는 무력개입[1]을 골자로 하는 안보리 결의안[2]을 내놓기에 이르고 중국과 러시아의 이례적인 기권[3] 아래 압도적인 찬성표로 통과된다. 미국은 아랍 국가와의 또 다른 전쟁을 벌인다는 부담감에 무력 개입에 신중한 입장이었으나 타 아랍 국가들이 먼저 자체적으로 비행 금지 구역 설정 움직임을 보이는 등의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시민군 최후 보루인 벵가지까지 쓸려나갈 상황이 되자 적극 개입 입장으로 선회하였다. 그 이전부터 적극 개입을 외치던 프랑스, 그리고 전통적인 미국의 동맹국 영국과 기타 유럽 국가들도 참전을 약속했다.

프랑스 전투기가 19일 오후 벵가지의 리비아군 탱크를 향해 조준 사격을 하면서 시작된 다국적군의 공격에는 3대의 미국 잠수함과 25척의 서방 연합군 함정이 작전에 참여했다. 이와 더불어 함께 이루어진 다국적군의 공습으로 적어도 민간인만 48명이 숨지고 150명이 부상당했다고 리비아 정부 측은 주장했는데, 이것은 카다피 측의 주장으로 아직 연합군 측은 발표하지 않았다.

3 병력 전개

비행 금지 구역 선포 직후 각국은 동원 가능한 항공 전력을 이탈리아 남부로 집중시키기 시작했다.[4]

리비아의 미사일은 사정거리가 시칠리아 섬에 닿지 않는다고 한다.

3.1 미국

미국은 지중해를 담당하는 제 6함대를 일선에 배치했다.

  • LCC/JCC 20 Mount Whitney 블루릿지급 6함대 기함
  • LHD 3 Kearsarge 와스프급 강습상륙함
  • LPD 15 Ponce 오스틴급 상륙지원함
  • DDG 52 Barry 알레이버크급 구축함 플라이트1
  • DDG 55 Stout 위와 동형
  • SSN 719 Providence 로스엔젤레스급 핵추진 공격잠수함 플라이트 2 - 순항미사일 발사용 VLS를 장비하고 있다.
  • SSGN 728 Florida 오하이오급 핵추진 유도탄 잠수함 - 본래 SSBN인 오하이오급 일부를 순항미사일 발사 원잠으로 개조했다.
  • SSN 756 Scranton 로스엔젤레스급 핵추진 공격잠수함

본격적인 항모전단은 아니지만 토마호크 공격능력이 있는 군함만 5척 이상, 거기에 해병항공대를 전개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춘 상황이었다.

항모가 없긴 하지만 영국내 공군 기지와 이탈리아 북부 베네토 주에 위치한 아비아노 공군 기지에 다수의 F-15, F-16 전투기가 배치되었으며 카더라 통신으로 F-22가 초계 활동 중이라는 말도 있었지만 사실 투입은 되지 않았다. 기타 그라울러U-2 정찰기도 가세했으며 키어사지의 미해병항공대 소속 해리어 전투기도 투입 가능하다.

미국 본토에선 B-2 폭격기들이 대기, 언제든지 작전 투입이 가능한 상태이다. 작전시작 이후에는 프레데터 드론 또한 다수 투입되었다.

3.2 프랑스

아프리카의 군사 개입에 가장 적극적인 프랑스는 역시 다수의 전투기를 자국의 코르시카 기지와 우방국인 아프리카 차드의 기지에 전개시켰다. 라팔미라지 20여 기와 공중급유기, 조기경보기를 배치했으며 해상에는 구축함과 프리깃 각 1척이 미해군과 공동 작전 중이다.

그리고 미국을 제외하면 가장 큰 원자력 항공 모함인 샤를 드 골을 급파했다. 드 골에는 라팔 함재형 다수가 탑재되어 있다.

3.3 기타

영국은 트라팔가급 공격원잠 HMS 트라이엄프와 2척의 프리깃, 그리고 유로파이터 전투기와 토네이도 전폭기 10여 기를 보냈다. 영국군의 요즘 사정이 워낙 안 좋아서 이 정도면 엄청난 수준이다. 중국 환구시보와 이슬람권 IRNA에서는 영국군이 SAS를 동원한 것을 발견했다고 하였으나 아직은 추측. 뮌헨의 지방 신문에서는 리비아 공격 전에 이미 SAS가 현지에서 대기 중이라고 말했는데 확신할 수 없다.

캐나다는 CC-177 대형 전략 수송기 2기로 병력 및 장비를 지원하고 CF-18 전투기 6기와 CH-124 시킹 대잠헬기 1기, 프리깃 1척을 보냈다.

덴마크는 F-16 전투기 6기를, 벨기에는 F-16 전투기 4기와 프리깃 1척을 보내기로 했으며 카타르도 전투기 4기를 보내기로 했다. 그 외에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UAE도 곧 참전 전력을 확정할 준비를 하고 있다.

AFP에 따르면 노르웨이도 전투기 6기를 지원하였으나 다국적군을 지휘하는 나라가 불명확한 한은 작전에 투입하지 않겠다고 한다.

4 개전

4.1 3월 20일

현지 시각 3월 19일 21시를 기해 해상에서 대기 중이던 미영 연합 함대가 도합 124기의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공격을 퍼부었다.# 단 한 번의 공격에 100기가 넘는 순항미사일 공격이 이뤄지는 것은 매우 보기 드문 일로 걸프 전쟁이나 이라크 전쟁 때도 한 번에 100기 이상의 순항미사일 공격은 없었다. 이 강력한 토마호크 공격으로 리비아의 방공망은 말 그대로 소멸했다고 미군은 자체 평가중이다.

미 본토에서 발진한 3기의 B-2 폭격기들은 리비아군의 주요 공군 기지에 융단 폭격을 감행, 활주로를 철저하게 파괴시켰다. 동 시각 해병항공대의 해리어와 공군의 F-15, F-16 전투기들은 이동 중이던 리비아 지상군을 포착, 공습을 단행했다.

프랑스의 라팔, 미라지 전투기들은 벵가지로 이동 중이던 리비아 지상군을 포착, 공습을 단행하여 전차 등 장갑차량 다수와 트럭을 파괴하고 부대를 와해시켰다.

영국토네이도는 영국 본토의 노퍽에서 출격하여 트리폴리 등 주요 목표물을 스톰 쉐도우를 이용하여 폭격하였는데 이는 4,800Km 왕복 8시간이 걸리는 거리로 포클랜드 전쟁 이후 가장 먼 거리로의 출격이라고 한다.

카다피는 제국주의자들의 '십자군 원정'이라면서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확실히 이를 의식했는지 오바마 대통령은 육군의 개입은 없을 것이라고 성명을 발표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환영과 지지의 뜻을 보냈다. 리비아 총리가 공습을 막아달라며 전화를 했지만 UN 사무총장은 '내가 전화를 받을 때 리비아에서는 공습이 벌어지고 있었다'라면서 시크하게 무시했다. 아니 격분했다. 참고로 저 총리가 리비아는 평화적인 상황이라면서 대놓고 거짓말을 했다. 사실 공습이 임박하자 카다피 측이 일방적으로 전투 중지를 선언한 참이라 뭐 틀린 말은 아니다만.

4.2 3월 21일

다국적군의 2차 공습으로 수도 트리폴리의 카다피 관저와 리비아군 일부 시설이 파괴되었다.# 사실상 방공망이 소멸하고 때릴 만한 타겟도 없어지면서 2일차부터는 공습이 매우 약화되었다. 아랍 국가 중에서는 최초로 카타르가 전폭기 4대를 공습에 참여시킬 예정이라고 밝혔으며 덴마크 또한 10대의 공군기로 작전에 참여하였다.

4.3 3월 22일

다국적군의 3차 공습이 시작되었고 비행 금지 구역이 수도 트리폴리 바깥까지 확대되었다. 카다피 관저가 파괴됨에 따라 카다피의 고향인 수르트를 주요 타격 대상으로 삼고 있다. 미국, 영국, 프랑스가 정찰을 돌며 각각 독립적인 작전을 수행 중이다.

한편 카다피의 아들 카미스가 연합군의 폭격 & 혹은 시민군으로 전향한 리비아 조종사의 가미카제로 화상을 입은 뒤 사망했다는 등의 루머도 퍼지고 있으며 현재 카다피의 행방은 알 수 없다고 한다.

리비아군은 벵가지에 대한 공세를 포기하고 서부의 미스라타 지역에 있는 시민군들을 공격하고 있으나 이 또한 다국적군의 공습으로 저지되고 있다.

다국적군의 공습에 대해 윗동네는 반인륜적인 범죄라며 비난하고 있다.

미군 F-15 1기가 추락하였으며 조종사 1명은 구출되었고 나머지 1명도 무사히 구출되었다는 미국 측 발표가 있었다. 정부군에 의해 격추되었다는 정황은 없다는 발표도 이어졌다. 이로써 이번 작전들어 최초의 다국적군 피해 사례가 될 듯 하다. 이후 조사에 따르면 F-15E가 폭격 후 선회하다 플랫스핀에 빠졌으며 당시 연료 탱크의 문제로 한쪽이 지나치게 무거워져 있던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자세한 내용은 F-15/실전 기록의 해당 항목 참조. BBC

CNN에 따르면 추락 시 비상 착륙했던 조종사 2명은 현지인들의 환영을 받았다고 한다. 이 지역은 벵가지 인근 지역인데 이를 바탕으로 동부 지역 주민들의 연합군 개입 환영 분위기를 실감할 수 있다.#

#문제는 구출 과정에서 몰려오는 시민들을 적으로 오인해 구조 헬기가 사격. 어린이를 포함한 6명이 부상당했다는 것. 블랙 호크 다운같은 경험이 있는 미국으로서는, 게다가 군인과 시민군과 시민이 구분이 가지 않는 현지 상황을 보면 몰려오는 주민들을 지레 겁먹은 구조팀이 폭도로 오인 사격했을 가능성이 있다. 각종 보도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시민군은 그냥 사복과 군복이 뒤섞인 복장에 딱히 표식도 없다. 게다가 이유 없이 허공에 소총을 난사하는 건 기본이고 무반동포를 쏘는데 주변에서 사복 입은 사람들이 어슬렁거리다 발사하니까 막 환호하고 난리가 난다. 이후 총격이 아니라 AV-8 해리어가 투하한 폭격에 의한 민간인 부상 사고라고 정정되었다.

#기사를 보면 양목장에 부상을 입고 숨어있는 미군 조종사를 구출하기 위해 투입된 해병대원들이 총을 쏘았다고 한다. 위에 말한 이유로 미군이 긴장했거나 언어소통 문제에 의한 오인 사격일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카다피 측은 이에 대한 반격으로 탱크 40대를 동원해 미스라타를 공격하고 있다. 하지만 미군은 시민군의 지상전 지원은 개입 내용에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행방이 묘연했던 카다피는 이 날 다시 방송에 모습을 드러내 자신의 건재를 과시하며 결사 항전할 뜻을 밝혔다. 카다피의 발표 후 연합군은 다시 리비아에 공습을 가했다.

4.4 3월 24일

연합군은 24일 비행 금지 조치를 위반한 리비아의 군용기를 처음으로 격추했다. 라팔이 드디어 첫 실전으로 전투기를 격추한 것이다! 격추된 기종은 훈련기 겸 지상 공격기로 쓰는 G-2/Galeb. 라팔이 공군 기지를 공격하러 간 사이 마침 착륙하고 있던 G-2를 덮쳤던 것이다.

카다피 측으로선 전투기든 수송기든 띄울 수 없는 상황. 사르코지 대통령은 "카다피의 처분은 리비아 국민들에게 맡긴다"는 입장을 밝혔다.

4.5 3월 25일

계속 되는 공습에 카다피가 군사 개입에 부정적이던 브릭스 4개국에 다국적군과의 중재를 요청하였다. 카다피 항목에서 보면 알겠지만 카다피의 연설은 길고 장황하고 내용은 하나도 없는 따분하고 짜증나는 연설로 악명이 높다. 공습 시작 후 카다피의 가장 최근 연설 시간이 그답지 않게 고작 3분이었음을 보면 급하긴 급한 모양. 측근들을 통해 다국적군에게 안전한 망명을 요청했다는 말이 돌 정도이다.

그러나 카다피의 이런 주장에 대해 다국적군이나 유엔에서는 반신반의하거나 신뢰를 가지고 있지 않다. 반기문 유엔 총장은 "휴전을 협상하자면서 시민군이 점령한 도시를 공격하는 행위를 보면 그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일침을 가했다. 다국적군도 그동안 카다피가 해온 언플 때문에 믿지는 않는 모양. 일단 이와는 별개로 반 총장은 아디스아바바에서 시민군과 카다피의 대표들과 아프리카 연합 인물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한편 다국적군은 핵심 세력인 미국, 영국, 프랑스의 외부, 내부 문제로 인해 여러가지로 정신 없고 어수선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어찌어찌 협의에 들어가 터키의 동의를 얻어내는 데 성공해 나토가 비행 금지 구역 설정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으며 향후 작전권까지 전부 넘길 예정이라고 한다. 그 외에 아랍 에미리트가 리비아 군사 개입에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가 갑자기 취소했다. 옆에 붙은 바레인의 시위 문제 때문인 듯.

한편 계속 되는 공습으로 방공망이 파괴된 것은 물론 리비아 육군 전력도 지속적인 공습과 폭격을 받고 있어 무력화되어가고 있다. 카다피는 지지자들을 인간 방패로 사용해 민간인 피해로 여론이 악화될 것을 우려하는 다국적군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며 버티고 있다.

다국적군의 이어지는 6차 공세에 힘입어 반카다피 세력이 미스라타를 재탈환했다.#

이어서 지붕 위에 숨어있던 카다피군의 저격수 30여명을 잡았다고 발표했다. 제1차 세계 대전 때부터 적에게 잡힌 저격수는 하나같이 끔찍한 결과를 맞게 되는 것을 보면 이 30명도 아마 멀쩡히 살아서 돌아가긴 힘들 것이다. 카다피군이 벵가지 주변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연합군이 하루종일 공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카다피군은 바깥쪽으로 다 나간 상태이며 시민군은 곧 몰타->미스라타, 벵가지를 잇는 보급로가 생겨 다국적군의 적극적인 지원을 얻을 수 있다고 발표했다.

정부군 내에서도 요동이 심한지 정부군 전차 14대가 시민군 측에게 넘어갔다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해도 시민군은 현재 많아봐야 100여 대의 기갑차량밖에 없는 듯하다.

4.6 3월 26일

연합군의 7차 공세에 처음으로 아랍권 국가인 카타르가 전투기 2대를 참여시켰다.#

이어 UAEF-16을 포함한 전폭기를 준비시켜 곧 다국적군의 공습에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군의 전폭기가 아즈다비야에 짱박혀있던 야포와 전차를 박살내자 시민군이 이에 다시 아즈다비야를 탈환했다. CNN의 매력적인 현지 파견 여기자 Arwa Damon은 연합군의 도움 없이는 아즈다비아를 탈환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상대적으로 카다피군이 공군이 없으니 힘을 못 쓰는 데다가 보급도 힘들어서 점점 트리폴리 쪽으로 후퇴하는 듯 싶다.

현재 다국적군은 트리폴리와 같은 도시에 대한 폭격보다는 도시 외곽에 주둔하고 있는 리비아군에 대한 공습으로 목표를 변경하였으며 해상 보급 차단과 같이 카다피군의 군사역량을 고갈시키는 방향으로 수정하였다. 지상전은 시민군에게 맡기는 상황이며 이는 이라크전의 재림을 막고자 하는 미국과 NATO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이며 외국군을 리비아 국내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다는 시민군의 요구사항을 감안한 것이기도 하다.

4.7 3월 27일

이날 다국적군의 모든 지휘권이 나토에게 이양되었다.

다국적군 중 가장 열심이라 할 수 있는 프랑스군은 미스라타의 카다피군 가레브 전투기 5대와 MI-35 헬리콥터 2대 등을 파괴했다고 밝혔으며 영국군도 아즈다비아와 미스라타에서 카다피군의 장갑차 5대를 격파했다고 밝혔다.

시민군은 다국적군의 지원에 힘을 받아 다시 서쪽으로 진격하고 있다.# 아즈다비아를 탈환한데 이어 석유 수출항 브레가를 탈환했다는 소식이 알 자지라를 통해 들어왔다. 시민군은 아즈다비아를 탈환하는 과정에서 다수의 카다피군 장병들을 포로로 붙잡았으며 포로가 된 장병 중에는 카다피군 서열 3위 빌가심 알-갈가 장군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스라타는 시민군에 재탈환되었지만 카다피군은 어떻게든 미스라타를 되찾으려고 민간인 거주 구역 가릴 것 없이 무차별로 미스라타에 포격을 퍼붓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리고 이와중에 트리폴리로의 길목에 있는 시르테가 미스라타와 함께 중요한 전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태어나선 안됐을 카다피의 고향이라는 점과 위에 서술했듯 트리폴리로의 길목에 위치했기 때문. 그래서 벌써부터 여기서 카다피 측이 소년병까지 동원해 방어 준비 중이라는 듯...이건 뭐 개XX도 아니고(...) 이제 이곳에서 곧 벌어질 전투의 결과가 이후 향방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듯하다.

4.8 3월 28일

미국은 나토에게 작전권을 넘긴 이후 리비아 카다피군이 더 이상 위협적이지 않다고 판단하고 해군 전력을 일부 철수시켰다. 카다피는 트리폴리에서 차를 타고 지지자들과 행진을 가졌으나 정작 카다피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언제 죽을 지 모르는데 겁나긴 하겠지 [5]

시민군은 미스라타를 완전 탈환한 데 이어 28일 시르테를 점령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로이터 통신은 아직 확실하지 않은 정보라고 보도하고 있어 좀 더 추이를 기다려봐야 할 것 같다.

다른 보도에선 시르테를 배수의 진을 치고 정부군이 지키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육상 장비에서 열세인 시민군이 불리한 상황이라며 이들의 장비 지원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고 한다. 솔직히 이들은 대다수가 보병 위주에 총과 로켓포 수준이라 아직도 전차 및 장비가 많은 정부군에겐 다소 불리한 것도 사실.

한국으로서 신경 쓰이는 사건이 일어났다. 리비아 정부군이 퇴각하면서 챙겨가지 못한 무기들 중에 북한제 무기가 발견된 것이다. 중요한 점은 무기가 들어 있던 나무 상자에는 영어로 된 북한의 나라명이 선명하고 불도저 부품이라고 쓰여있지만 안에 로켓이 들어있었다. 로켓을 팔에 장착한 불도저. 그거슨 궁극의 테크니컬. 북한이 건설 장비로 위장해서 수출한 무기로 추측된다. 대공용으로 쓰이는 중기관총에서는 64년식 기관총이라는 글자까지 적혀있는 걸 보면 두말할 나위 없다.

4.9 3월 30일

시민군과 카다피군이 서로 대치 상태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카다피 측에 뼈 아픈 사건이 터졌다. 무사 이브라힘 외무장관이 사퇴한 후 영국으로 망명한 것. 한편 우간다에서는 카다피가 망명할 경우 자국이 카다피를 받아들이겠다고 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카다피는 전 니카라과 외무장관인 미겔 데스코토에게 리비아 유엔 대사 자리를 맡겼다.

오바마 대통령은 카다피와 관련되어 있는 기업들에도 추가적인 제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언론들에 의하면 이미 시민군들을 지원하기 위한 비밀 작전이 승인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이 리비아를 위해 구체적인 독트린을 제시하지 못했다며 미 의회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의 리더십을 의심하고 있다고 한다.

한편 연합군은 계속해서 무력 행사를 하면서 카다피에게 안전한 망명을 보장하는 당근과 채찍 전략을 취하고 있다. 사실 연합국들의 상태도 좋은 건 아니고[6] 아랍 국가들의 눈치도 있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발을 빼야 하는 처지이다.

4.10 4월 1일

전쟁이 점점 한계로 치닫고 있다. 리비아 자국 내에서도 군인들의 탈영이 잦아지고 있다. 생각보다 내전이 장기화되고 있고 경제 활동도 침체되면서 군인들의 임금이 체불되자 탈영이 잦아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카다피도 군인들을 모집해 최전선에 보내고 있다. NATO가 이끄는 다국적군은 비행 금지 구역을 감시하고 있지만 이전에 비해 출격 횟수가 줄어들었다. 하지만 출격 횟수가 줄어도 여전히 리비아가 전투기를 못 띄우는 건 마찬가지.

카다피가 육군만으로 재반격에 나서면서 아즈다비야 인근에서 다시 교전이 벌어지고 있다. 다국적군의 지원도 조금씩 줄어들면서 시민군도 힘들어하지만 어차피 카다피 쪽도 상태가 영 좋지 못해서 그리 큰 위협은 되지 못한다.

이런 가운데 시민군에서 조건부 휴전을 제의했으나 카다피는 거부했다고 한다.

4.11 4월 3일

영국이 보급과 치료 등을 목적으로 리비아에 해병대원 600여명을 파견할 것이라 한다.#

한편 다국적군은 몰타와 이탈리아를 통해 리비아 동부와 미스라타에 꾸준히 물자를 보급하고 있으며 이집트에서도 RPG-7을 리비아 시민군에 팔고 있다고 한다. 또한 일부 미군과 이집트군이 리비아 시민군에게 사격 훈련 등을 시키고 있다고 한다.

미군 전폭기들이 하나둘씩 작전에서 빠지자 NATO에서 이 공백을 채우기 위해 영국, 프랑스 등에게 작전에 투입하는 전폭기 대수를 늘려줄 것을 요청했다.

스웨덴은 의회가 4월 1일 리비아 공습 지원을 승인함에 따라 48년만에 해외 파병에 나서게 되었다. 3개월간 파병될 전력은 125명이 참가하며 JAS39 8대와 장비, 지원 병력을 실은 C-130 수송기 1대를 파병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펜 3대는 2일 오후 4시에 도착하였고 3일 5대가 도착하였다. 이번 공습을 통해 처음으로 실전에 투입되는 그리펜은 지상 공격이 아닌 비행 금지 구역을 지키는데 주력하고 본격적인 작전은 다음 주에나 가능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칠리아에 위치한 시고넬라(Sigonella) 기지에 전개된 스웨덴의 그리펜 전투기는 연료가 없어 출격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미해병대 지원 기지라서 항공모함에서 운용시 안전을 위해 발화점이 높은 해군용 JP5 항공유를 사용하는데 그리펜은 민간 항공기용이자 공군용인 Jet A1을 사용하기에 항공유가 확보되어야만 출격이 가능하다고 한다.

4.12 4월 5일

시민군의 무기 부족이 상당히 심각한 상황인 듯.
항공기용 UB32A 57mm 로켓 포드를 픽업트럭에 지지대 대충 뚝딱뚝딱 해서 재활용. 도요타 픽업 트럭은 이제 기갑차량으로 분류 GLA 돋네.

실제로 시민 정부 측에서 무기 구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석유 수출에 나섰다.

4.13 4월 11일

나토의 연이은 오폭 등으로 인한 시민군과의 불협화음[7]과 벵가지 임시 정부의 석유 수출이 카다피군의 공격으로 다시 중단되는 등 여러 곡절을 겪고 있다. 시민군은 브레가가 다시 카다피군에게 탈환당해 수출로가 막힌 상황이며 카다피군의 탱크 부대가 아즈다비아로 진군하려 해 나토가 공습을 실시하고 있다. 마스라타에서도 전투가 벌어졌지만 시민군이 격전 끝에 사수에 성공하였다.

카다피 정부는 새로운 정부 건설을 위한 헌법을 제정해 새로운 세속 국가로 다시 탄생할 것을 천명하였다. 한편 AU는 카다피와 만나 AU의 중재안을 받아 들여 곧 있으면 휴전이 발효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중재안의 구체적인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다. 이들은 벵가지의 임시 정부와도 만나 해당 중재안을 제의할 것이며 카다피가 중재안을 이행하기 위해 나토가 잠시 공습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한편 카다피군이 민간인들을 고의로 저격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논란이 일고 있으며 용병들이 동원되어 인권 침해를 벌이고 있는 것에 대해 유엔이 진상 조사를 위해 조사단을 파견할 것이라고 밝혔다. EU는 9일 유엔에게 시민군에 인도적 지원을 하기 위해 군사력을 지원할 것이며 유엔이 이를 요청해달라는 주문을 했다.

4.14 4월 22일

유럽의 징징 요청에 의해 결국 미국이 다시 개입했다. 미국: "늬들 참, 이 몸이 꼭 나서야 되냐!" 단 유인기는 제외하고 무인기로만 공습을 한다고 발표. 오오 천조국 오오##

메케인 등은 미국이 시민군을 공식 정부로 인정해야 한다고 오바마 행정부에게 요구하고 있다.

4.15 4월 23일

처절한 전투 끝에 마스라타를 포위하던 카다피 군이 공격을 포기하고 퇴각하기 시작했다. 다만 외각 지역에서는 다련장로켓 등을 이용한 포격이 이뤄지고 있는 듯.

4.16 4월 29일

시민군이 카다피군에게 쫓겨서 튀니지 국경을 넘어 도망친 일이 생겼다. 카다피군은 튀니지로 도망친 시민군을 쫓아서 국경을 넘어섰고 튀니지군이 막아서자 카다피군과 튀니지군 사이에 교전이 일어났다. 이러다가 튀니지군이 본격적으로 참전할 기세

그리고 미스라타에서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 소속 함정이 기뢰를 설치하던 선박들을 나포하고 물 위에 떠다니는 기뢰를 제거했다고 한다. 나토군 소속 롭 웨이힐 준장은 "카다피 추종 세력이 무차별적으로 미스라타항 해상에 기뢰를 설치해온 것으로 보인다"며 "미스라타항에 구호품을 전달하는 구호선을 노린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4.17 4월 30일

카다피의 관저가 공습 당해 아들과 손자가 사망했다고 알려졌다. 카다피는 목숨을 건졌다.

4.18 5월 11일

카다피가 12명 이상의 부족 대표와 만나 포옹을 하고 자신이 건재함을 발표하였다. 이는 트리폴리의 관저가 공습을 당한 후 처음 있는 공식 발표였다. 그런데 그 다음날...

4.19 5월 12일

나토는 카다피가 자신이 건재함을 발표하는 방송이 나간 뒤 몇 시간 뒤인 12일 오전에 카다피의 관저인 바브 알아지지야를 폭격하였다.

또한 이 날 리비아 과도국민위원회는 카다피 군에 맞서기 위해 추가적인 무기 지원이 필요하다고 발표하였다.

4.20 5월 13일

리비아 소재 북한 대사관이 나토군의 공습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묘한 기분이 드는군 야 신난다?

4.21 5월 17일

리비아 국영 석유 회사 사장을 겸임하고 있는 슈크리 가넴 석유장관이 튀니지로 튀었다는(망명하였다는) 튀니지 발 뉴스가 났다. 리비아 카다피 측은 외교 임무를 수행하고 있을 뿐이라며 부인했다.#

4.22 5월 18일

튀니지-리비아 국경에 리비아 군의 로켓 공격이 계속되자 튀니지 정부는 적대적 행동을 계속한다면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에 회부하겠다는 선언을 했다.#

4.23 5월 19일

로이터 통신에서 튀니지 보안 당국에 따르면 카다피의 부인 사피아와 딸 아이샤가 리비아를 떠나 망명했다는 소식을 보도했다.

4.24 5월 20일

나토는 밤 동안 트리폴리, 시르테, 알쿰스 등의 항구에 정박 중이던 리비아 군함을 나토 군이 공습하였다고 발표했다. 리비아의 해군 사용이 늘어남에 따라 해상에 있는 나토군과 민간인 선박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발표.##

4월에 있었던 기뢰 매설 작전을 미연에 무력화하기 위한 조치로 생각된다.

4.25 5월 23일

각국에서 벵가지 시민군 정부를 정식으로 인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재정 지원을 하고 있다.

EU가 벵가지에 연락 사무소를 개설했다.# EU는 또한 3천억원을 시민군 정부에 추가 지원하기로 결의했다.

폴란드는 이미 한 주 전에 라도스와프 시코르스키 외무장관이 벵가지를 방문하고 과도 정부 수립을 돕겠다는 선언을 하였다.#

러시아 외무장관도 시민군 대표를 면담했다.#

영국프랑스공격헬기를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영국은 아파치 12대, 프랑스는 타이거가젤 기종이라 한다.#

4.26 5월 24일

미국이 시민군을 사실상 공식 정부로 인정했다. 워싱턴에 있는 카다피 측 공관을 폐쇄 조치하고 대신 시민군과의 연락 사무소를 개설했다. 그리고 5천 350만 달러 상당의 구호물자와 2천 500달러 상당의 비살상 군사 장비를 제공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4.27 5월 27일

EU 대사와 베네룩스 3국 대사를 겸임해오던 아메드 하디 하데이바가 사임을 발표하고 더 이상 리비아 정부가 아니라 리비아 국민을 대표하겠다고 선언하며 시민군에 합류했다.#

4.28 5월 31일

장성 5명을 포함한 8명의 리비아군 장교들이 이탈리아 로마에서 기자 회견을 열고 이미 100명 이상의 리비아군 장교가 탈출했다는 발표를 하였다.#

이탈리아가 시민군의 중심지인 벵가지에 영사관을 세우고 재정과 금융 지원을 약속했다.#

리비아 시민군은 카다피의 어용 스피커에 불과한 국영 TV에 맞서 위성 방송을 출범시켰다. 방송국 이름은 리비아의 자유라는 뜻에서 "리비아 알후라"이며 본부는 벵가지이다. 설립자 가운데 주하이르 알바라시는 시민 봉기가 벌어진 직후부터 인터넷 비디오 사이트를 만들어 시민군을 취재하고 동영상을 인터넷에 배포하여 실체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던 사람이다.#

4.29 6월 1일

나토는 이 날 작전 시한을 90일 연장하였다.

4.30 6월 4일

나토는 이 날 처음으로 리비아에 공격 헬기를 동원한 공습을 실시했다.

4.31 6월 10일

미국은 리비아 시민군의 모임인 '과도국가위원회(TNC)'를 리비아의 '유일하고 합법적인 대표자(the legitimate interlocutor)'로 인정하였다.#

4.32 6월 20일

존 매케인은 오바마가 리비아에 개입한 것은 옳은 일이며 그의 결정에 찬성한다는 뜻을 밝혔다.#

미스라타의 철강 회사가 카다피를 물리치려고 로켓을 비롯한 중화기를 만들고 있다.#

4.33 7월 7일

리비아 시민군이 트리폴리에서 100km 떨어진 소도시까지 진출했다.# 패트릭 랭이 지적한 대로 리비아 정부는 모래성처럼 조금씩 조금씩 부스러져 무너져 가고 있는 듯.

한편 미 하원은 리비아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지원을 막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하원은 이러면서 동시에 리비아를 공습하는 나토에 대한 지원을 허가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터라 오바마 대통령의 행정부와 전쟁 주도권을 놓고 다투는 상황으로 보인다. 물론 하원 결의만으론 안되고 상원과 대통령이 거부하면 소용 없긴 하지만 미국 내에서 리비아 개입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이 아직 크다는 건 확실하다.

또한 이슬람의 라마단 기간이 슬슬 다가오고 있기 때문에 리비아의 상황이 라마단 이전까지 마무리되지 않으면 나토는 그때도 계속 군사 개입을 해야 할 것인지 고심하고 있다.

한편 카다피는 퇴진은 없다며 끝까지 버티고 있다. 아예 유럽에 보복 테러를 하겠다고 공언하고 다닐 정도. 물론 나토 공습과 시민군의 경험치 상승으로 점점 분위기가 그런 거 없다로 변해가고 있지만...

한편 유엔은 리비아 난민 구호 활동을 위해 경제 제제 수위를 낮출 계획이다.

4.34 8월 18일

리비아 시민군이 트리폴리 외곽과 카다피 고향 시르테 사이 마을을 점령하면서 트리폴리의 보급로를 차단하였다. 또한 자위야에 위치한 정유 시설을 장악하였으며 자위야를 점령하면서 리비아 보안군사령관을 붙잡았다.

4.35 8월 21일

리비아 시민군이 봉기 몇 개월 만에 이제 카다피 레이드 트리폴리를 점령하기 위한 진격을 개시했다. 트리폴리 동쪽 30km에 위치한 타주라 지역을 장악하고 계속 나아가고 있다는 듯.# 나토도 폭격으로 지원을 계속하는 상황이라 이제 카다피군이 점점 몰려가는 양상이 계속 되고 있다. 외신의 견해는 이번이 시민군과 카다피의 마지막 결전이 될 것이란 관측이 중론. 이런 상황에서 트리폴리 내에서도 反카다피 봉기가 다시 일어났다.# 곧 어떤 독재자의 전철을 밟을 트리폴리에서 꼼짝없이 결전을 치루게 된 카다피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언플을 멈추지 않고 있다. 시민군은 고 프랑스는 석유나 빼앗는 약탈자라고 깠다. 네가 미쳤구나

4.36 8월 22일

알 자지라 방송에 따르면 시민군이 차남으로 카다피 정권의 주요 인물이었던 사이프 알-이슬람과 이탈리아에서 프로 축구 선수 생활을 한 것으로 유명한 삼남 알-사디를 체포하였다고 발표했다. 또한 카다피의 장남 모하메드는 교전 중에 항복하였다고 한다.

트리폴리 진격 작전인 인어의 새벽 작전은 트리폴리 내의 반카다피 세력, 시민군, 그리고 나토군의 협력 하에 이뤄졌다고 한다.

트리폴리의 중심부이자 카다피 정권의 상징인 녹색 광장에서는 수많은 시민과 시민군이 모여들어 곱슬머리 끝장났다를 외치며 기뻐했다고 한다.

그러나 카다피군의 반격도 있어서 시르테 인근에서 스커드 미사일이 발사되어 미군 전투기가 이를 요격하기도 하였다.#

4.37 8월 23일

카다피군이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다. 시민군 측의 승기가 확실시 되고있지만 알-아지지아 요새 인근에서는 여전히 교전이 벌어지고 있으며 체포되었다던 카다피의 차남은 건재를 과시했다. 한창 저물어가는 리비아 내전에 끝에 튀어나온 식스 센스 급의 반전(...) 차남 사이프는 자신이 체포됐다는 거짓을 반박하기 위해서 나왔다고 하였으며 '서구가 첨단기술을 이용해 통신망을 교란시키고 리비아인들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고 하였으며 기자 3명을 방탄차에 태우고 알-아지지아의 자기 아버지 카다피의 관저까지 태우고 가는 기행 일(...)을 저질렀다.#

설상가상으로 체포되었던 장남이 탈출했다는 정보도 확인하면서 시민군의 신뢰와 사기를 깎아먹었다.

한편 아직 내전이 종결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벌써 각국에서는 시민군의 승리 뒤에 리비아에서 각종 사업 및 유전 등의 이익을 차지하기 위한 계산에 골몰하고 있다. 에라이...# 서방 쪽이 대체로 환호성에 빠진 반면 시민군을 디스했었거나 카다피에 크든 적든 암묵적 지지를 보냈었던 중국, 러시아, 브라질 쪽에서는 배가 너무 아픈지 땅을 치고 후회 중이라고...줄 좀 잘 서지 그랬어요 우리나라는 다행히도 카다피 시절에 체결했던 계약을 시민군 측의 과도 위원회가 인정하여서 손해를 보지 않아도 된다고...올레!

여하튼 맨 위의 어이없는 반전에도 불구하고 내전의 전세는 크게 기울었으며 잔존한 카다피군이 기세를 탄 시민군에 맞서서 전세를 뒤집기는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4.38 8월 24일

마침내 알-아지지아 요새가 기어이 리비아 시민군에 의해 함락되었다. 이로서 트리폴리는 완전히 시민군의 수중에 들어갔다.#

나토와 시민군의 긴밀한 다굴 협력으로 공중, 지상에서 더는 버티지 못한 카다피군을 누르고 요새에 진입, 점령에 성공했다. 공성전 돋네 숨어있을 거라 추측되었던 카다피는 발견되지 않았으며 그와 그 가족들은 요새 지하에 잘 구축된 지하 통로망으로 탈출했을 것이라고 추측되고 있다. 요새 내에 있던 황금 카다피 동상은 끌어내려진 독재자들의 동상이 그랬던 것처럼 파괴를 당하는 굴욕을 겪었다. # 정ㅋ벅ㅋ

그러나 아직 카다피가 붙잡히지 않고 시민군도 카다피가 붙잡히지 않는 한 아직 끝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카다피군은 시르테로 후퇴하였고 당초의 예상과 달리 마지막 결전은 시르테에서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트리폴리에서 어떤 독재자몰락 리인액트에 실패한 카다피는 라디오 방송에서 "요새에서 철수한 것은 전술적 이동이였을 뿐이다"라고 밝혔으며 "나토군과 싸워서 '순교'하겠다"라 개소리를 밝혔다. 아직 카다피의 행방은 묘연하지만 정황상으로 볼 때 아마도 시르테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항전을 벌일 것이라 추측되고 있다.

리비아 시민군도 속속들이 시르테 근처로 집결하고 있으며 시민군 측의 이브라힘 다바시 유엔주재 대사는 23일 "시민군은 48시간 안에 시르테를 장악할 것이며 72시간 후에 리비아 전역이 시민군 수중에 들어올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이제 결전은 시르테에서 벌어질 것이다. 이제 막장 벼랑 끝에 몰린 카다피군이 시르테에서 항전을 시도하는 것은 물론 스커드 미사일로 막나가는 공격을 할 공산이 높으며 내전이 조금 더 장기화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트리폴리까지 잃었고 심대한 타격을 받은 카다피군이 나토군의 지원을 받는 시민군을 상대로 오래 버틸 수는 없을 것이다.

4.39 9월 3일

한국계 미국인 UCLA의 대학생 한 명이 방학을 맞아 리비아에서 시민군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참고로 이 대학생은 방학 동안 잠시 시민군과 있다가 무사히 귀국했다.

4.40 9월 17일

리비아 시민군이 정식으로 UN 회원국 자격을 얻었다.#

5 유럽 군사력의 약화?

미국이 나토에게 작전권을 넘긴 후 조기경보기 등의 지원 임무만 남기고 항공 전력을 철수시키면서 리비아 공습은 유럽 국가들이 담당하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유럽 공군만으로 공습을 하게 되면서 문제들이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다.

가장 큰 문제는 미국이 빠지니깐 다른 아랍권 국가들의 공군력까지 동원했는데도 미국이 공습에 참여했을 때보다 화력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공습 초기에는 무서워서 벌벌 떨며 어딘가에 숨어있던 카다피가 트리폴리 시내에서 카퍼레이드를 할 정도로 효과가 약해진 것이다. 또다른 심각한 문제는 공군의 비축 물자 부족이다. 비록 미국이 공중 급유를 지원해주고 있기는 하나 탄약의 부족도 슬슬 심각해지고 있다. 이탈리아는 공군 기지 제공만으로도 할 일을 다했다는 입장에 이쪽도 집안 단속하느라 바빠서(...)

유럽이 미국보다 리비아에 더 관여하는 이유는 현재 리비아에서 생산되고 있는 석유의 주 소비 지역이 유럽 지역이라는 것이다. 현재 리비아는 경질유 위주의 원유가 생산되는 지역이며 따라서 이를 소비하는 유럽 지역의 경우 탈황 설비를 갖추지 않은 정유 시설이 대부분이다. 반면에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나 걸프 인근 국가에서 채굴되는 원유를 주로 소비하는데 이 지역에서 채굴되는 원유는 탈황 시설이 필요하다. 유럽은 수입 비율이 낮은 편.

따라서 리비아가 유럽 지역으로의 원유 수출을 차단하게 된다면 당장 경제 상황에 막대한 타격이 불가피하게 되고 대체재인 결프만 원유를 공급해준다고 해도 탈황 설비가 없는 정유 시설만 보유하는 유럽으로서는 미국의 입만 바라봐야한다는 처지로 전락하는 것이다.

특히 프랑스가 앞장 서서 리비아 공습에 참여한 이유도 리비아에서 가장 원유 수입 비율이 높은 나라였기 때문이다. 미국은 리비아의 원유 수입 비율의 5% 정도만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은 편이다.

결국 유럽에서는 다시 미국이 공습에 참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니들이 일 저질른 거 그 정도 도와줬음 됐지 또 뭘 어쩌라고?'라는 입장이라 어려울 것 같다. 덕분에 유럽(특히 프랑스랑 영국)은 미국 도움 없이는 자기네 구역에서도 쩔쩔 맨다는 추태만 보여주고 있어 이미지에 제대로 먹칠을 했다.

직접 공습 외에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의 주도로 시민군에 군사 고문단과 연락 장교가 파견되었다. 이들이 시민군의 훈련을 도와주었다고 한다.

다만 미군은 그다지 관심이 없어서 그런지 이번 폭격에서는 20% 남짓의 활약에 머물렀으며 가장 많은 활약을 한 것은 프랑스군이었다고 한다. 폭격량의 33%를 프랑스 공/해군이 차지했다고.

6 특이점 및 반응

이번 작전은 UN이 최초로 내전에서 어느 한쪽을 편들어 무력 개입을 하는 경우이다. 그동안 UN이 양측을 중재하기 위해 내전이 난 나라에 개입하여 감시하거나 어느 일국의 침략 전쟁에 맞서서 다른 한쪽을 도와주러 참전한 경우는 있지만 내전에서 어느 한쪽을 위해 개입하는 것은 최초. 리비아의 대규모 민간인 학살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그러나 요즘 서방 국가들이 다 상태가 영 아닌지라(...) 무력 개입은 항공 전역에 한정되고 있다. 사실 주권 침해 논란과 전상자 발생의 부담이 있는 만큼 육군을 투입하면 더 골치 아파지는 측면도 있다. 그랬다간 이라크전 시즌 2 혹은 베트남 전쟁 시즌 3 1999년 유고슬라비아 공습 당시보다 더한 것이 그때는 특수 부대가 한정적으로나마 지상전을 펼쳤으나 현재 리비아 공습은 그런 것조차도 없다. 다만 1999년의 Operation Alied Force에서도 지상 전역에서 특수 부대의 역할은 사실상 전방 통제에 가까웠고 지상 작전은 KLA(코소보해방군)에 의해 펼쳐졌기 때문에 그렇게 큰 차이는 없다고 봐도 좋을 듯. 동원 항공기 수는 1999년보다 적지만 기상이나 지형적 조건은 오히려 유고의 그것보다 항공전에 유리하고 10여년간의 표적 획득 및 정밀 타격 기술의 발달을 생각하면 항공 전역의 효과 자체는 코소보 때보다 나을 수도 있다.

아랍 국가에 대한 서방 세계의 무력 개입임에도 아랍 국가들의 적극적 지지를 얻는 특이 케이스.1990년 이라크쿠웨이트를 침략한 걸프 전쟁 외에는 서방 세계의 아랍에 대한 무력 개입은 아랍 국가들로부터 전혀 지지를 받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상하다 싶지만 카다피가 하도 깽판을 친지라...

아랍 연맹은 오히려 나서기를 주저하는 서방 세계에게 비행 금지 구역을 설정하라고 앞장 서서 요구하며 리비아를 아랍 연맹에서 축출시켰다. 카다피는 지가 아랍 연맹의 수장이 된다고 으스대면서 사우디아라비아를 필두로 한 동맹 수장국들에게 단단히 미운 털 박혔던 인물이다. 사우디 국왕에게 미국의 개라고 대놓고 욕하던 양반였으니. 단지 외교적으로만 사이가 안 좋은 게 아니고 국민들도 리비아(정확히는 카다피)를 싫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아마르 알 카다피 항목의 젱가젱가송 역시 이스라엘 사람이 만든 영상인데도 아랍권 사람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다.

그러나 막상 공습이 시작되자 아랍 연맹 의장은 지금 리비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습은 비행 금지 구역 설정의 목적과 다르며 시민을 보호하는 것을 원했지 더 많은 시민을 폭격하는 것은 아니었다며 이상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또한 러시아, 중국과 더불어 아프리카 연맹 역시 이 공습에 반대하고 있는 중. BBC

이 밖에도 베네수엘라 같이 우호국...도 있거니와 그 밖에 옹호까진 아니라도 이득을 따지면서 반대하는 러시아나 중국 같은 나라도 있다. 게다가 군대를 보내줘서 돕던 로버트 무가베도 연합군에겐 맞서기 어려울 테니.

1994년 르완다에서의 50만 학살 이후 국가에 의한 반인권 범죄 발생시 국제 사회 역할에 대한 성찰로 2005년 세계정상회의에서 채택된 결의안에 국가의 국민보호책임(Responsibility to protect)이 포함되었다. 결의안의 138 문단에는 각국이 자신의 국민에 대해 집단 학살, 전쟁 범죄, 인종 청소,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 보호해야 하는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만약 리비아에 국제 사회가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시민군의 거점 도시인 벵가지는 제 2의 스레브레니차[8]가 되었을 것이다. 시위 극초기에 이미 실탄 사용이 시작되었고 초기에 중화기와 군용기를 사용한 폭격으로 진압을 했는데 벵가지를 차지하고 나면 과연 평화적으로 사건을 마무리할까? 지극히 자명한 문제다.

민간인에 대한 무력을 사용하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질렀다는 점에는 의문점이 없는 상황이며 이는 무기 금수와 주요 인사들에 대한 여행 금지 및 자산 동결, ICC 조사 회부 등을 규정한 안보리 결의안 1970이 안보리 구성국 전원[9]의 찬성을 얻음으로서 국제 사회의 동의를 확인했다. 비행 금지 구역을 결의안 안보리 결의안 1973은 중국, 러시아, 브라질, 독일, 인도가 기권을 하였으나 국제 사회의 개입의 정도에 대한 이견차일 뿐이지 반인륜적 범죄가 아니라는 의견이 아니다.

한쪽에서는 내전에 가까운 상황이지만 독립을 선언한 것도 아니고 한 나라의 시민군을 그 나라(비록 잔혹하게지만)가 제압하는 것에 다른 나라가 끼어드는 것은명백한 주권침해로 명분이 서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리비아와 비슷하게 국민 탄압이 벌어지고 있는 바레인과 예멘에도 군 투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10]과 비행 금지 구역이 설정된 이라크에서도 크게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점을 보면 분명 이해 관계가 얽힌 자의적인 해석이라는 비판과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는 있다. 그러나 리비아의 경우 시위 첫 주에 천 단위의 사망자가 나왔던 것에 반해 바레인과 예멘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으며 폭력적인 진압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속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리비아와 같은 상황으로 묶기에는 카다피가 너무 막장이다.

독일의 경우에는 비행 금지 구역 설정에 대해 "나중에는 아예 육상 이동 금지 구역 만들고 감시를 위해 육상군을 투입할 것인가?"라는 비판도 할 정도. 또한 여지껏 서방이 개입해서 세워진 정부가 이슬람권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점은 분명 이 작전의 앞날을 어둡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그리고 주권 국가가 국민의 주권, 인권 등을 침해했을 때 국제 기구는 주권을 제약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으나 이전에는 외교적, 경제적 제재가 최대 한계였던 점을 생각하면 오디세이 새벽 작전과 같은 군사적 개입은 유래가 없을 정도로 강력한 주권 제재이다. 다르게 말하면 '국민의 주권을 침해하는 국가는 언제고 무력 개입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염통 쫄깃해질 나라들이 한둘이 아닐 듯 그러나 군사적 제재는 아직 선례가 없고 나중에 처리해야 할 문제도 이전의 제재들에 비교하면 많을 것이 분명하며[11] 국민 주권 개념도 지금은 카다피가 너무 막장이라 아무 문제 없어 보이지만 지켜야 할 국민의 주권이나 인권은 어디까지이며 어느 정도 선에서야 침해가 되는 것인가가 애매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나라마다 해석이 다른 주관적인 개념이기 때문에[12] 골치가 아프게 될 듯. 이는 '국민 보호 의무'의 위반으로 인해 주권 국가에 국제 사회가 개입하는 첫 사례이기 때문에 더욱 그런 상황.

또한 연합군의 개입도 앞으로 지속될지 여부는 불확실하다. 프랑스는 사르코지 대통령이 정치적 생명을 걸 정도로 매달려 있고 정국의 주도권을 잡길 원하고 있으며 미국은 골치 아픈 리비아 문제에서 발을 빼고 싶어하며 미 의회에서도 "의회의 권한을 무시하고 군사 개입을 한 오바마는 탄핵받아야 한다"는 의견이 민주당에서 나오고 있고 공화당은 "왜 좀 더 강력한 제제를 취하지 않느냐"며 오바마 대통령을 공격하고 있는 상황. 뭐 어쩌라는 거야 게다가 미영프 3국의 전략적 목표가 명확하지가 않다. 지상군을 투입해야 하느냐 마느냐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고 공습의 목표가 카다피 제거인지 민간인 보호인지도 확실하지가 않아 불협화음이 나오고 있다. 또한 나토에게 작전권이 넘어가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나토를 미국의 시다바리라 생각해서(...) 싫어하고 독일과 터키는 개입에 반대하는 입장이어서 협상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인 거 같다?

게다가 서구의 기독교적 이미지까지 연관되면서 불쾌한 반응을 보이는 현지인도 보이는 탓에 미국은 나토 소속으로 유일한 이슬람권 군사 강국인 터키군의 지지를 얻어내는 데 큰 힘을 쏟아야 했다. 미군 장성이 터키군을 방문하여 설득하고자 할 정도로 꽤 신경 쓰는데 터키도 북아프리카에서 영향력도 가지고 싶어하지만 과거 오스만 제국 시절 아랍권을 지배하던 역사가 부정적으로 인식되어 이라크 전쟁 당시 아랍권의 반발[13]을 부른 바가 있기 때문에 신중한 입장이다.

이 작전이 개시된 후 시리아에서 다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시리아의 경우에는 하마시 전투에서 무자비한 정부군의 진압과 나치 독일 출신들에게서 얻어온 노하우로 정치 경찰들이 철저한 감시, 통제를 하고 있어 중동 전문가들이 시위가 일어나기 가장 어려운 지역이라고 1순위로 꼽았던 지역인데 이 작전이 개시된 이후 시리아 정부가 쉽게 무력 진압을 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시위대가 자신감을 얻은 것으로 여겨진다. 미국은 공식적으로는 시리아의 군사 개입은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지만 클린턴 국무장관은 안보리 협의만 있으면 비행 금지 구역 설정과 같은 군사 개입을 할 수도 있다고 밝혔기 때문에 시리아 정부로서도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리비아와 달리 시리아에 대한 무력 개입도 어렵다. 비행 금지 구역이야 그렇다 쳐도 리비아와 달리 시리아는 아사드 일가를 비롯한 정권에 지지자가 많으며 그동안 무슬림 형제단과 같은 과격 세력이 아닌 이들의 반정부 시위가 그다지 없었던 점을 봐도 그렇고 또한 아사드 일가가 무너지면 이슬람 다수로서 그동안 아사드 정권 하에서 평화롭게 공존하던 기독교(인구의 25~30%에 이른다.) 및 소수 종교 및 알라위를 비롯한 소수 이슬람 종파들에 대한 내전이 벌어질 건 이미 뻔하다. 이라크가 이미 그런 걸 확실하게 보여줬다.[14] 때문에 리비아와 달리 시리아의 무력 개입은 되려 종교적 내전에 다국적군에 대한 여러 종교적 민병대의 공격 및 분노로 이어질 수 있기에 신중하게 태도를 취해야 한다.

7 관련항목

  1. 사실 이 시점은 리비아에 거주하는 미국인들이 탄 선박이 리비아를 출발했다는 보고를 받은 이후라고 한다.
  2. 이와는 별도로 미국은 리비아에 대한 경제 제재를 시도하여 320억 달러가 넘는 미국 내 리비아 자금을 동결시켜버리기도 하였다. 참고로 2010년의 리비아 국내 총생산(GDP)은 자료마다 다르지만 약 890억~961억 달러 정도로 알려져 있다.
  3. 중국과 러시아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거부권을 가지고 있다. 안보리는 나머지 모든 국가가 찬성하더라도 상임이사국 1개 나라가 거부권 행사하면 쿨하게 부결시키는 체제다. 다만 이 상임이사국으로서 어떤 문제 결정에 권리를 갖고 참가한다는 것 자체가 외교적으로 영향을 발휘하므로 기권을 한 것으로 보인다. 찬성을 하면 굴복한 것으로 보이고 반대를 하면...
  4. 이탈리아는 비행 금지 구역 선포 직후 자국의 공군 기지를 개방하겠다고 약속했다.
  5. 가도행진 중일 때 육안으로는 확인도 안되는 고도에서 UAV매의 눈으로 지켜보다가 언제라도 카다피(자신)을 발견하자마자 헬파이어 미사일 같은걸 떨궈서 암살할 수도 있음을 상상해보자. 어딜봐서 암살인데?
  6. 특히 미국은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문제 해결이 더 중요한 문제다.
  7. 실수를 인정하긴 했으나 공식적인 사과는 하지 않았으며 나토로 지휘권이 넘어간 후 전보다 공습이 늦어지고 정밀도가 떨어지면서 시민군의 불만을 사고 있다.
  8. 1995년 보스니아 내전 중에 보스니아계 8,000여명이 인종 청소를 이유로 세르비아계 군대에 의해 학살된 사건. UN 안보리는 스레브레니차를 보호 안전 지역으로 선포를 했고 상황 당시에 현지엔 네덜란드 평화군이 있었지만 학살을 막지 못했다.
  9.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브라질, 콜롬비아, 독일, 가봉, 인도, 레바논, 나이지리아, 포르투갈, 남아공
  10. 예멘의 경우에는 시위대에 독가스까지 뿌렸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고 바레인은 아예 자국민 진압해달라고 사우디군을 끌어들인 상황이다.
  11. 모든 국가들이 가장 싫어하는 최악의 상황이 바로 전쟁이다. 그래서 무력 개입은 정말 더 이상 방법이 없거나 물러설 수 없는 최악의 상황에서만 벌어지게 된다.
  12. 안보리 5개국의 성향 차이만 봐도 뭐 금방 답이 나오는 문제.
  13. 친미 이라크 정부 수반들까지 터키군이 참전하면 저항 세력과 손 잡고 터키 놈들에게 맞서겠다고 이를 갈아서 터키군의 참전을 권유하려던 조지 워커 부시가 물러서게 할 정도였다. 과거 터키가 이라크를 지배한 역사도 있거니와 이스라엘과 군사적 동맹을 맺은 터키에 대하여 아랍 동맹이 이를 엄청 가는 점도 있다. 터키는 민족부터가 아랍인과 다르고 같은 거라곤 이슬람교 뿐이며 1차 대전 중 오스만 투르크가 아랍 민족을 워낙 잔혹하게 탄압했기에 터키인들은 아랍인들을 아랫것 보듯이 대하고 아랍인들은 터키인들을 잔인한 제국주의자로 보는 정서가 광범위하다.
  14. 독재자인 사담 후세인도 적어도 이전부터 살아오던 소수 종교들에 대한 공존을 허락하여 이들에 대한 테러는 무력으로 응징하였으나 이라크 전쟁으로 후세인 정권이 무너지면서 미국은 이들 소수 종교에 대한 아무런 보호책을 취하지 않아 온갖 테러와 공격에 시달리고 있다. 이미 이라크에 살던 20만 이상의 기독교인이 바로 시리아로 와서 난민으로 살아갈 지경이며 이들을 바라보는 시리아 내 수백여만 기독교인들은 아사드가 무너지면 저것이 바로 자신들의 미래라고 여겨서 아예 자치적인 민병대(물론 아사드의 허락 아래)를 갖춰서 아사드를 지지할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