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의 역대 대통령
초대
카난 바나나
2대
로버트 무가베
(현직)
짐바브웨의 역대 총리
(초임)초대
로버트 무가베
2대
모건 창기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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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이름Robert Gabriel Mugabe
출생1924년 2월 21일 (93세)
출신 정당짐바브웨 아프리카 민족 연맹 - 애국 전선(1987~)
짐바브웨 아프리카 민족 연맹(1963-1987)
짐바브웨 아프리카 인민 연합(1961-1963)
국민민주당(1960-1961)
임기1987년 12월 31일 ~ 1990년 3월 23일
1990년 3월 23일 ~ 1996년 3월 17일
1996년 3월 17일 ~ 2002년 3월 17일
2002년 3월 17일 ~ 2008년 6월 29일
2008년 6월 29일 ~ 2013년 8월 22일
2013년 8월 22일 ~ 2018년 12월 31일 (예정)
서명128px-Signature_of_Robert_Mugabe_clear.svg.png
종교로마 가톨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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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21일. 89세 생일잔치 당시. 케이크 마시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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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가베의 저택. 무슨 집이 이리 좋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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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이 모습이 2014년의 90살 당시의 모습이었다.인민의 고혈을 쥐어짠 뱀파이어

인자한 흑인 아저씨이자 백인 지배에 저항하던 투사에서 무개념 독재자로 타락한 인물.
이디 아민을 잇는 아프리카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1]
경제도 모르는 무식한 놈이다

1 개요

Robert Gabriel Mugabe, 1924년 2월 21일.이분이 시급하다 생각해보니 카터도 동갑이네

짐바브웨의 정치인으로 전직 총리(1980~1987)이자 제 2대(현직) 대통령(재임 1987.12.31 ~ ).
출생지는 구 남 로디지아 코타마이며, 현재까지 약 28년 9개월 넘게 짐바브웨의 대통령으로 재임 중이다.

짐바브웨의 독재자이자 학살자. 특히 2008년에는 막장 경제정책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크고 아름다운 초인플레이션[2]으로 전 세계에 짐바브웨의 이름이 알려지는데 크게 공헌했다. 경제학적으로도 세계에서 보기 드문 경우 중 하나. 실제로 현존하는 국가 중에서는 가히 최고 수준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사리사욕을 마음껏 채우고 온갖 폭정과 공포정치로 짐바브웨를 세계에서 손꼽히는 최빈국으로 만들었고 이로 인해 오마르 알 바시르, 이사야스 아페워키, 김정일과 같은 지상 최악의 독재자들을 모조리 제치고 당당히 세계 최악의 독재자 1위에 선정되기까지 했다. 현재 짐바브웨가 어느 정도로 가난한가 하면 짐바브웨를 1인당 국민소득 450달러[3], 국민의 80%를 실업자로 만든 것도 모자라서, 선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환자를 2백만이 되도록 방치하여 세계에서 가장 낮은 평균수명을 가지게 만들었다.나라가 이 꼴인데도 개념이 없다.

중국에서 수여하는 제 6회 공자평화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학살을 해서 세상을 조용하게 만드는 게 중국의 평화인가보다

2 사치 행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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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가베의 별장 중 하나 출처
무가베가 사용하는 중국에서 선물로 준 버스라고 쓰고 캠핑카라고 읽는다 출처

무가베는 현재 가장 가난하고 파탄난 짐바브웨를 만들었으며, 국민의 80% 실업자로 만들고 국민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는 마당에도 저 정도로 엄청난 수준의 사치행각을 일삼고 있다.

2008년에 짐바브웨의 수도 하라레 근교 별장이 완공되었는데. 이 별장의 가격은 2600만 달러(한화 약 290억원)로 25개의 욕실을 갖추고 있다. 그는 이 궁전의 인테리어에 수백만 달러를 들였는데, 중동 예술가를 1년간 고용해서 별장 천정을 디자인하고 제작하도록 했다. 웃긴 사실은 짐바브웨 대통령이 받는 연봉이 고작 5만 7000달러(한화 약 6천만원) 밖에 안된다는 점이다. 때문에 저 돈덩어리를 대체 무슨 돈으로 지었냐는 비아냥을 받고 있다. 게다가 이 별장은 그가 대통령이 된 후 3번째 지은 별장이며, 그가 소유하게 된 5번째 별장이다. 2008년 이후에도 이런 식의 별장이 현재 짐바브웨 내에 몇개가 더 있다고 하며 현재도 계속해서 엄청난 수준의 사치를 계속해서 하고 있다.

현재까지도 사치는 쭉 이어지고 있는데 기사에 의하면 무가베는 2011년 상반기 6개월 동안 외국여행에 무려 1천200만 파운드(한화 약 206억원)를 지출했다고 현지 일간지 데일리뉴스가 폭로하기도 했다.

2.1 생일파티

무가베의 사치가 가장 드러나는 부분은 바로 그의 생일파티다. 국민은 쫄쫄 굶는데에도 자기 생일이랍시고 온갖 비싼 음식들을 차리기 위해 국민들을 수탈하여 생일을 연다. 무가베가 얼마나 생각이 없는 사람인가 하면 짐바브웨의 인플레율이 800억%로 최고조에 달했던 2009년에 무가베는 1961년산 볼링어와 모에&샹동 샴페인 2000병, 조니 워커 500병으로 85회 생일 파티를 했다. 그리고 지난 2013년에는 자신의 89번째 생일이랍시고 크고 아름다운 89kg짜리 생일 케이크를 만들어서 생일파티를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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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89kg짜리 케이크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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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크고 아름다운 탑 같은 물체가 바로 케이크다

하지만 더 개념없는 사실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쭉 자신의 생일에 케이크 무게를 맞추어서 만들어왔다는 것. 앞으로도 계속 만들 것이고, 2015년에는 91kg짜리 케이크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흠많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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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개의 케이크들 중 일부

2015년 생일파티에서는 생일 잔치에 코끼리를 비롯해 야생동물을 도축-하여 한 상 가득히 차려 손님 접대에 썼는데, 무가베는 부인과 함께 91개 풍선을 하늘에 날리면서 생일파티를 시작했다. 약 2만 명이 참여한 생일 파티는 빅토리아 폭포 인근의 한 고급 호텔 골프장에서 열렸다. 참여자들은 대통령의 생일을 축하하고 장수를 기원했다. 생일파티에는 캐비아와 고급 위스키와 대형 생일케이크만 7개가 놓였고합쳐서 91kg일려나? 어린 코끼리 1마리, 버팔로 2마리, 흑담비 2마리, 임팔라 5마리가 들어갔다. 이 동물들은 지역 토지 주인이 대통령에게 바친 진상품이었다. 또 40마리, 사자 1마리, 악어 1마리도 선물로 전달됐고 또다른 코끼리는 총살해 빅토리아 폭포 지역 사회에 전달했다, 생일잔치는 7일 동안이나 계속됐는데 이번 잔치에는 약 160만달러(한화 약 18억원)가 들어간 것으로 추산된다.

무가베는 매년 그래 왔듯이 국민들의 자발적인 모금과 기부로 이뤄졌다고 주장했지만 이에 대해 야생동물 보호단체는 비윤리적의 극치라고 비난했다. 야당 관계자들은 생일파티에 쓰인 재정은 공중병원, 지역 학교 복구와 건설에 쓰여야할 것이였다고 맹비난했다.

물론 2016년인 지금은 92kg 중량의 케이크를 만들어서 성대하게 잔치를 해댔다. 92개의 풍선을 하늘에 날리며 시작한 2016년 생일잔치에서 무가베 지지자들은 무가베가 예수만큼 위대한 인물이라는 연설을 해댔다(...) 지지자들은 무가베를 “아프리카의 선지자, 모세”, “친애하는 아버지”, “전하” 등으로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고 공연을 벌였다. 한편 짐바브웨 신문들은 "무가베의 생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일과 같다"고 홍보한 데 이어 지면에서는 "만수무강하시오, 무가베 동지여"라는 기사를 실었다. 또한 "고마워요 밥(무가베), 우리는 1980년 이후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요"라는 헤드라인을 통해 1980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는 데 공을 세운 무가베 대통령을 칭송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한편 무가베는 생일 파티에서 짐바브웨에서 가뭄 때문에 굶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을 해댔는데, 정작 2016년 현재 짐바브웨는 20여년만에 닥쳐온 최악의 가뭄 때문에 짐바브웨 국민 300만명이 식량난을 겪고 있으며, 가축 2만 마리가 아사한 지경에 놓여있는 상황이다. 이에 짐바브웨 야당 정치인 심바 마코니는 현지 언론에 “우리의 친애하는 지도자께서 국민이 배를 곯는 가운데 성대한 생일잔치를 준비하셨다”“이 얼마나 잔인하고 무신경한 처사냐”고 무가베를 비난했다.

3 젊은 시절

이렇게 보면 이디 아민과 같은 무학의 일자무식처럼 보이지만, 무가베는 당시 아프라카인으로서 매우 드물었던 대학 졸업장뿐만 아니라 통신 프로그램이기는 하지만 런던대에서 석사 학위까지 받은 인텔리다.

젊은 시절 때, 로디지아 백인정권에 맞서 짐바브웨의 독립운동에 헌신하였으며 1964년 과격한 행동으로 인하여 넬슨 만델라처럼 10년 동안 감옥에 투옥되어 1974년에 풀려났다. 이후 1980년, 짐바브웨가 독립되고 정식으로 건국되면서 초대 총리를 맡아 실권을 가졌으며, 1987년부터 총리제를 폐지하고 대통령이 되면서 2013년 현재까지 33년간 짐바브웨를 통치하고 있다. 독립 운동가 출신 정치가가 독립 후 신생국가의 지도자가 되면 독재자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 이런 사례는 1945년 이후 건국된 여러 신생 독립 국가들의 초대 지도자들이 이런 성향이 매우 심한데, 단적인 예로는 더 갈것도 없이 한국의 이승만과 북한의 김일성과 싱가포르의 초대 총리 리콴유, 중국마오쩌둥 역시 그랬으며 튀니지의 부르기바도 그렇고 인도네시아의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도 그렇고...제3세계나 신흥 독립국에는 이런 사례가 꽤 많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나[4] [5]

4 대통령 당선 후

4.1 경제 정책

대통령이 된 후 초기 10여년간은 그럭저럭 정상적으로 경제정책을 운용해왔지만 원자재에 국가경제를 많이 의존했던 경제구조탓에 1인당 GDP는 600-1000달러대의 박스권에 머물고 있었고 변변한 경제성장같은건 이룩하지 못했다. 결국 90년대 후반에 외환보유고가 바닥나서 1990년대 말에 한국처럼 IMF에 구제금융을 받게 되고 가뭄으로 인한 농업 생산량 저하, 정부 관리들의 부정부패가 터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무가베의 인기는 바닥으로 떨어질 상황에 처했다. 인기의 반등을 위해 무가베는 독재를 하기 위하여 2000년에 토지개혁으로 소수인 백인 지주들의 농지를 몰수하는 정책을 시행했고 이 일로 인해 영국의 분노를 샀으며 당시 총리였던 토니 블레어가 직접 유감을 표했다. 그러나 무가베는 내정간섭이라며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 이는 영국에 대한 짐바브웨 국민들의 어그로를 끌어올려 무가베의 지지율을 더 높여주는 계기가 되다. 사실 백인 지주들이 식민지 시절 땅을 거저 얻었기에 여태까지 땅을 가진 것 자체에 대해 대다수 민중들의 반발이 엄청났고, 그렇기에 이 조치는 대환영을 받았다.[6]

이에 대하여 영국은 다 그런게 아니라 1960년대에 영국인들이 짐바브웨로 이민가서 농장을 사서 합법적으로 정착한 것까지 압수하고 폭도들이 이러한 농장주를 살해했다고 반론하고 있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백인들끼리 거저 빼앗은 땅 나눠먹기였을 뿐이다. 덕분에 짐바브웨에서 콧방귀도 안뀌고 있다. 결국 비싼 돈주고 농장을 샀던(심지어 일부 백인 이민자는 빚까지 져가며 샀었다.) 백인들은 죄다 거덜났다. 뭐, 여기까지는 어느 정도 이해는 가는 조치이니 그렇다고 치자.

다음으로 무가베가 내놓은 정책은 외국 자본이 소유한 짐바브웨 기업들의 주식 절반을 국가에 양도하라고 지시했다.
만약에 이에 응하지 않으면? 그냥 체포해버렸다. 흠많무.

외국 자본이 짐바브웨 정부의 무리한 요구에 결국 짐바브웨에서 철수 하는 상황이 발생했고 추가로 외국 자본의 투자마저 급감했다. 기업들이 떠나버리자 일반 국민들에게 그 영향이 돌아갔다. 당연히 해당 기업에서 근무 하던 근로자들의 소득이 감소 했고, 기업들이 생산 하던 물자가 시장에 나와 국민들이 소비해야 하는데 기업들이 철수하니 시장에 물자가 없어져버렸다.

이미 무엇인가가 굉장히 심각하게 잘못 돌아가고 있었지만 그래도 권력을 사랑하는 무가베 대통령은 멈추지 않고 더 폭주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물자를 가진 자는 반드시 시장에 물자를 내다 팔라고 지시했다. 안그래도 부족한데 가진 사람들이 억지로 내다 팔아야 했다. 그래서 물자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그 물자가 얼마나 귀한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마어마하게 높은 가격으로 시장에 내놓았다. 여기서부터 하이퍼 인플레이션 징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사망 플래그

국민들은 안그래도 돈이 없는데 물자를 사려고 해도 너무 비싸서 사지 못했다. 그러나 국민을 사랑하는, 정확히는 국민의 인기를 사랑하는 무가베 대통령은 또 역시 이 상황을 두고 볼 수 만은 없었고, 그래서 물자를 내다 팔 때 무조건 싼 가격에 내다 팔도록 했다. 이건 뭐 병신도 아니고 결국 물자를 파는 사람도 망해 버렸다. 기업들이 줄도산 해버린 것.

농업도 망하고, 기업도 망하고,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자본은 해외로 빠져 나가고 하다보니 국가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세수가 부족해졌다. 그래서 결국 마지막 선택으로 당시 짐바브웨의 화폐를 마구 찍어내어 국가 운영에 사용했다. 그리고는 하이퍼 인플레이션으로 망했어요(...).

이리하여 2008년 들어 초인플레이션으로 인한 막장 경제정책[7]으로 인해 그나마 남아있던 지지층도 다 까먹고 오히려 안 좋은 의미로(…) 네임드가 되어 전 세계에 짐바브웨의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이런 탓인지 2008년 대선때는 모건 창기라이에게 1차 선거에서 패배하는 결과가 나왔다.(창기라이 47.9% vs 무가베 43.2%) 이리되자 무가베는 온갖 수단을 사용해 2차 선거를 방해했고 창기라이는 선거 보이콧을 선언해 2차 선거에서 88.5%로 4선에 성공했다. 국제사회가 비판을 퍼붓고 여론이 안좋아지자 결국 무가베는 창기라이와 타협을 시도해 헌법을 개정하여 폐지되었던 총리직을 부활시키고 창기라이를 총리에 앉히는 것으로 사태를 수습했다.

4.2 무자비한 철권통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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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바브웨 주요 야당인사 체포 현황

해외 보도들에 따르면 무가베의 야당 탄압과 언론 탄압 그리고 고문과 폭정은 가히 세계의 독재자 랭킹 TOP10에 들어갈 정도다. 현재 짐바브웨에서는 소년병을 육성하고 있으며, 사람들을 수용하는 강제수용소가 운영되고 있다. 또한 아이들한테 마약까지 먹여서(!) 살인도구로 키우거나, 셀 수 없이 많은 고문실에 수많은 사람들이 끌려가고 있으며, 길가다가 죽을 수도 있을 정도로 경찰과 폭력배들의 폭력이 엄청난 수준이다.

2008년 선거 때에 몇 년 전 언론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사위원회의 일원으로 짐바브웨에 비밀리에 입국한 미국의 칼럼니스트 클레어런스 페이지의 증언에서 이런 사실이 잘 드러난다. 클레어런스 페이지는 짐바브웨경찰에게 체포될까봐 두려워서 밤에 잠을 자지 못했다고 하는데, 왜냐하면 로버트 무가베가 외국 언론인들에게 비자 발급을 중단했기 때문이였다. 비자 발급이 중단된 이후 짐바브웨에서는 무가베를 지지하지 않는 야당인사들, 그리고 일반시민과 언론에 대한 폭력행위가 급격하게 증가했으며, 당시 짐바브웨 시민들은 경찰이나 깡패들의 폭력을 두려워하여 잠을 자는 것조차 두렵다고 할 정도였다고 하며 사망한 짐바브웨인들의 명단은 짐바브웨 사람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고 클리어런스 페이지는 증언했다.

2008년 치뤄진 선거 당시에 짐바브웨에서 폭력으로 사망한 사망자 명단은 무가베에 반대하는 야당이 작성하여 국제 언론매체에 제공했고, 시카고 트리뷴의 아프리카 특파원이 보도했다. 이 보도 내용에 따르면 무가베에 반대했던 한 남자는 자기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던 중 폭력배들에게 구타를 당했으며, 다른 남자는 자기 집 정원을 손질하다가 흑인 폭력배들에게 살해되었다. 이런 식으로 표적으로 찍힌 한 남편에 대한 경고로 부인이 간살되기도 했으며 사람들을 소리소문없이 데리고 가서 무시무시한 고문을 하거나 온갖 협박을 가하기도 하는 등, 여러 방법으로 무가베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탄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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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 받은 피해자의 등 혐짤 주의! 담뱃불로 지져서인지 때려서인지, 하여튼 등에 수많은 화상 자국이 보인다. 놀라운 것은 이게 가장 약한 수준의 사진이다.(...) 짐바브웨의 고문은 엄청난 잔인성으로 악명이 높으며, 잔인성으로 따져도 북한에 절대로 뒤지지 않을 정도의 수준으로 괜히 무가베가 그 김정일을 누르고 세계 독재자 1등으로 꼽힌게 아니다. 고문당한 피해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어떤 짐바브웨인은 경찰이 자신을 고문실에 끌고가서 갈고리에 걸린 채로 며칠 동안을 매달려 있었다는 증언이 있었으며. 갈고리에 입을 걸거나 입을 날카로운 물질을 이용해서 인중이 찢어져버린 사람도 있었으며, 고문관들이 채찍으로 피해자를 무자비하게 후려쳤으며 등과 온몸에 엄청나게 많은 상처가 날 정도로 채찍을 후려쳐서 땅에 피가 철철 흐를 정도가 되어 결국 과다출혈로 숨진 사람이 있었다. 또한 엉덩이를 몽둥이와 여러가지 각목 등을 비롯한 온갖 흉기들로 때려서 그 부위가 피멍이 들었고 후에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그 부위가 완전히 썩어 문드러져서 잘라내야 했던 사람도 있었다. 또한 의도적으로 욕창이 생기게 만들어서 피해자들의 살이 썩어들어가게 만드는 고문, 음식을 주지 않고 굶어 죽게 만들거나, 사람을 산채로(!) 땅에 묻어 죽여버리거나, 극악무도한 물고문, 전기충격을 이용한 고문이나 사람의 살을 조금씩 조금씩 고통스럽게 잘라내서 피해자들에게 강제로 인육을 먹도록 강제한다는 고문 수법이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며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를 구타해서 눈을 멀게 만드는가 하면, 한 여자는 척추와 목뼈에 무자비한 구타를 당해서 뼈가 부러지고 온몸에 피멍이 든 채로 처참하게 사망했다. 짐바브웨에서 고문당한 피해자들의 사진이 궁금하면 zimbabwe torture라고 구글에 쳐보면 나온다. 물론 너무도 잔인해서 웬만한 사람은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니 대단히 주의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모든 고문을 명령하고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는 게 다름아닌 무가베라는 사실이다.

이런 식의 폭력배와 경찰을 이용한 방법으로 2008년 6월 27일에 실시된 대통령선거 결선투표 과정에서는 고작 하루만에 확인된 사람만 80여명 이상이 살해되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실종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고문당하거나 협박 당하는 만행이 벌어졌다, 여러 뉴스들을 보면 무가베 지지자들이 야당 인사들에 대한 공격을 자행해서 163명을 살해하고 5000명을 고문하고 구타하는 탄압을 자행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만행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결국 이러한 독재 정치는 짐바브웨를 파탄시켰다. 짐바브웨는 빵을 수입하기 위해 수백만 달러를 쓰고 있으며, 2008년 당시에는 모든 물자의 물가가 30분마다 올라가며 노동자의 무려 80%가 일자리가 없는 상태가 되었으며 국민들은 너무도 가난해서 짐바브웨에서 편히 잠을 자는 것은 사치라는 말까지 나온다.

3월에 치러진 1차 투표 이후 수도 하라레에서 열릴 예정이던 창기라이 총재의 유세는 무가베 대통령을 지지하는 민병대원 1,000여 명이 쇠파이프와 몽둥이를 휘두르며 방해하는 바람에 무산됐다고 하며 게다가 군 정보기관이 개입하여 주도한 모건 창기라이 암살 음모까지 있었다고 한다. 결국 이러한 이유로, 2008년 선거에서는 무가베의 온갖 부정선거에도 불구하고 야당지도자인 모건 창기라이가 결선투표에서 이길 수 있는 상황이였지만, 모건 창기라이는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가해지는 폭력행위들을 중지시키기 위해 선거에서 기권했다. 게다가 2008년 8월 이후 콜레라가 짐바브웨에 확산되어 3800여명이 숨졌는데 무가베는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고 오로지 선거 테러에만 골몰했다, 그 외에도 죽은 사람을 유권자로 등록해 자기 표로 만들거나 여당을 지지하지 않을 경우 식량배급을 중단하겠다는 협박을 하기도 한다. 그 때 당시 84세였던 무가베는 국민의 생명과 자유는 전혀 신경쓰지도 않고 권력에만 집착하는 미치광이 독재자였다.

현재까지도 별에 별 이유로 사람들이 잡혀들어가는데 예를 들어 이 자료에 의하면 2011년 2월 19일 짐바브웨 수도 하라레에서 국제사회주의조직(ISO)의 모임이 열렸는데, 갑자기 짐바브웨 경찰이 이 모임에 들이닥쳐서 참여자들을 체포했다. 경찰이 참가자들을 잡아간 이유는 이들이 이집트와 튀니지의 혁명에 관해 토론했으며, HIV 활동가이자 국제사회주의조직 회원인 네비게이터 문고니의 사망을 추모하였기 때문이었다. 결국 모임에 참석한 45명이 짐바브웨 감옥에 갇혔고 무자비한 고문을 당했다고 한다, 피고인인 호프웰 검보는 "우리에게 육체적 체벌이 가해졌다. 나는 코가 깨졌다"고 말했으며, "다른 사람들도 때린 도구와 맞은 부위에 따라 다양한 부상을 당했다", "에이즈 감염자를 포함해 우리에 대한 약이나 치료도 차단됐다"고 증언했으며 함께 수감되었던 모임의 참석자 중 하나였던 데이비드 음팟시는 이런 고문으로 인해 사망했다.

영국 BBC방송은 짐바브웨의 마랑게(Marange) 다이아몬드 광산 주변에서 짐바브웨의 군과 경찰이 이른바 '고문 캠프'를 운영하고 있다고 방송했다. BBC 방송은 마랑게 광산지대의 고문캠프 수용 경험자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라면서 방송을 내보냈는데, 수용되었던 피해자는 이곳에서 무자비한 구타와 성폭행은 물론 개에 의한 무자비한 공격까지 자행되고 있다고 증언했다고 한다. 마랑게에 있는'고문 캠프' 운영은 로버트 무가베의 친구가 맡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이 고문 캠프에 수용된 사람들에게 돈이 없는 것을 빤히 알면서도 엄청난 금액의 돈을 요구하거나 광부들에게 채찍질을 포함한 고문 등을 통해사 강제 노동을 강요받고 있다고 한다. 고문으로 인해 한쪽 팔을 못 쓰게 된 한 포로가 증언하기를 "그들이 아침에 40번, 오후에 40번, 저녁에도 40번씩 채찍질했다"고 증언했다. 또 다른 피해자도 "가끔 광부들이 두들겨 맞아서 걷지 못하기도 한다"고 증언했다. BBC 방송은 "우리가 확보한 가장 최근의 희생자는 2월에 발생했고, 고문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고, 또 고문 캠프에 관한 증거를 짐바브웨 정부에 보냈지만 BBC 방송은 정부로부터 아무 말도 들을 수 없었다고 방송을 내보냈다.

게다가 BBC 방송이 방영한 "수용소의 비밀(Secrets of the Camps)"이라는 방송에 의하면 무가베는 지난 2001년 11월 전국에서 납치해온 청소년과 어린이들을 수용한 뒤 고문방법과 살인기술을 훈련시키는 시설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 시설에서는 어린이들을 성폭행하거나 마약에 중독시켜 인지능력을 상실하게 한 만든 뒤 살인기술과 고문방법을 가르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BBC방송은 현재까지 이 시설을 거쳐간 어린이가 모두 5만 명이 넘는다고 밝혔으며, 이것을 거쳐간 아이들은 매우 큰 고통을 겪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살인기술을 배운 대니얼이란 한 소년은 "한 손에 곰인형을 든 채 사람의 목뼈를 부러뜨리는 방법을 배웠다, 다음 단계는 전기고문이고 그 다음 단계는 물고문을 하는 것"이라고 증언했다. 또한 당시 수용소에서 어린이들의 고문희생자가 된 죠셉이 증언하기를 자신과 같은 어린이들이 자신을 기둥에 묶고 자신의 성기에 전기자극을 가했으며 이 고문의 후유증으로 죠셉은 신경계가 마비되고 말았다고 한다, 게다가 2002년에는 짐바브웨 정부가 이 수용소에 지원하는 금액을 2배로 늘렸는데 이렇게 증가한 이유는 수용소의 한 관계자가 한 말에서 알 수 있다. "내년에 총선이 있기 때문에 여당을 지원하는 행동대가 필요하다."

4.3 정적 암살

무가베가 자행하는 정적에 대한 암살은 아주 악명이 자자하다 2014년 3월에는 짐바브웨의 언론인이며 인권운동가인 이타이 자마라가 번호판이 없는 차에 실려서 납치된 이래 행방불명되었는데 사실상 사망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또한 에드워드 친도리 치닝가 전 ZANU PF 광업위원회 의장은 마랑게 다이아몬드 광산과 관련한 부정부패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가 운전을 하던 도중 사망했다.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교통사고지만, 짐바브웨 야당 정치인들은 그가 운전 중에 머리에 총을 맞아 죽었다고 주장했다고 하며, 실제로 친도리 치닝가는 사망한 지 고작 24시간도 안 되서 매장되었으며 부검이 이루어지지도 않고 황급히 매장되었다. 짐바브웨 국회의원인의 크로스는 치닝가가 "그들이 나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으며, 그로부터 10일 후에 사망했다”고 증언했다.

또한 무가베는 자신의 당 내에 있는 핵심 인물들조차도 정권에 위협적이라고 생각하면 인정사정 볼 것도 없이 숙청하고 있다. 솔로몬 무주루는 무가베와 함께 짐바브웨 독립전쟁에서 함께 싸운 전우였지만 2011년 괴한들에게 공격을 받아 사망했는데, 무주루가 자신의 농장에 도착하자 괴한들이 그에게 차에서 내리라고 지시한 뒤 총을 쏴서 사망했다고 한다. 괴한들은 시신을 침대 위에 옮기고 폭발물을 설치한 뒤 집에 불을 지르는 만행까지 저질렀다고 확인되었다. 이후 이뤄진 조사에서 증인들은 무주루의 집에 불이 나기 전 총성을 몇 번 들었다고 증언했지만 짐바브웨 법원은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내렸으며 그의 시신을 찾아달라는 유가족의 요구를 거부했다

4.4 학살

또한 무가베는 집권 초부터 현재까지도 무자비한 학살을 저지르고 있다. 1980년대에 북한군의 지원을 받은 무가베가 이끄는 짐바브웨의 특수부대가 은데벨레 부족 주민 2만 명 가량을 학살했는데 그 이유는 부족 주민들이 무가베의 반대파 지도자를 지지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증언에 의하면 이 지역 사람들은 무시무시한 공포 속에서 무가베와 무가베 당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도록 강요했고 가족과 친구들이 고문당하고 총에 맞는 것을 돕는 것을 강요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게다가 1983년 반정부 시위가 벌어진 마타벨레랜드에서 수천 명의 민간인을 대량학살한 사실이 천주교 위원회(ZCCJP)가 최근 5년동안 1천 명 이상의 학살현장 목격자들을 만나보는 등 치밀한 조사활동을 통해 발간한 보고서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이 사건의 시작은 무가베가 자신의 정적인 은코모를 쿠데타혐의로 체포함으로써 시작됐다. 은코모가 체포되자 은코모의 지지 지역인 마테벨레렌드 주민들은 대규모 시위를 벌였고 이에 무가베는 83년 1월말 제5여단을 파견해서 이 시위를 진압하는 작전을 펼쳤다, 무가베는 이 지역에 통행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고 언론에 대해 대대적 탄압을 실시했다. 제5여단은 촐로초, 루파네, 은카이 등 마테벨레랜드 지역의 주요 도시로 들어가서 2주일만에 무려 2천 명이 넘는 민간인을 학살했다. 학살은 주로 10명 이상의 민간인들을 학교 등의 시설에 한꺼번에 모아서 구덩이를 판 후 민간인들을 산채로 묻어버리거나 민간인들을 교회에 강제로 가둬 불태워 죽이는 방법 등으로 이뤄졌다. 제5여단 대원들은 학살을 저지른 뒤 가족 친척 이웃을 잃은 주민들에게 시체 위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도록 강요했으며, 눈물을 흘리는 주민 또한 사살해서 죽였다고 한다. 심지어 제5여단은 임산부와 생후 4개월된 아이를 죽이기도 했으며 학교에서 수업 중이던 여학생들을 강간하여 임신시키는 미친 짓도 저질렀다고 한다. 또한 이 지역들을 철저히 봉쇄해서 이 지역에 식량이 조금도 들어가지 못하게 했으며, 이에 굶어 죽기 직전까지 간 주민들이 "식량이 없으면 무엇을 먹어야 하냐"라고 물었더니 "당신 동료들의 인육을 먹으라"라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이에 주민들은 풀을 뜯어먹거나 벌레들을 잡아 먹어야 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사망했다.

2000년에 무가베는 자칭 ‘참전군인들’이 백인 농부들의 토지를 폭력으로 강탈한 것을 옹호했으며, 선거가 끝난 후에는 선거 때 자신에게 반대표를 던졌던 도시 빈민을 상대로 이른바 '청소' 작업을 벌였다, 이 이야기가 무슨 소리인가 하면, 수도 하라레 정화를 명분으로 빈민층 밀집 지역의 집을 불도저로 밀어버려서 빈민들의 집을 개발살내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게다가 현재도 자기를 독재자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을 잡아가두는 등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 또한 선거철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되는데 선거 전에는 자신을 찍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지를 알려주기 위해서 학살을 저지르고 선거가 끝난 다음에는 자신을 찍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지를 알러주겠다면서 자신의 반대파들을 학살하고 있다.

4.5 흑인 우월주의와 인종차별

무가베는 흑인 우월주의를 주장했으며 백인에 대한 공공연한 인종차별과 복수를 선동했다. 그리고 앞서서 말했던 백인들의 토지를 빼앗아 흑인들에게 나눠주려고 하자 물론 백인들도 반발하여 민병대를 조직해서 대항했으나 백인들을 강제로 쫒아내기도 하며 집을 불태워서 나가게 만들었고, 심한 경우에는 반항하지도 않는 사람들을 몽둥이로 때려 죽이기도 했다. 무가베는 "아프리카의 자원은 제국주의자, 식민주의자가 아닌 아프리카인들에게 귀속돼야 한다"며 아프리카와 서구 유럽 국가 간 대결 구도를 선동했다. 무가베 정부가 이러한 민병대들의 학살을 방조하면서 1980년대 초반 무가베 집권 후 백인들은 자신의 재산과 농장,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무기를 들고 스스로를 지켜야 했다. 그리하여 백인 민병대와 흑인 경찰과 폭력배 간의 무수히 많은 유혈 사태들이 발생했으며 그 참상은 가히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처참했다. 길가에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 사람들이 널려 있었다고 하며 심하게 부상을 당하거나 총에 맞아 사망한 사람도 헤아리지 못할 수준이었다고 한다. 또한 증언에 의하면 백인들은 수용소로 끌려가서 강제로 노동에 동원되었으며, 호명되는 사람들은 무자비한 채직찔을 당했고 백인 처녀 소녀들은 인종정화를 목표로 일부러 흑인들에게 강간당하여 흑백 혼혈아를 임신 출산시키기도 하였다고 한다.

4.6 동성애 탄압

그래도 백인들에 대한 탄압은 짐바브웨의 역사적 특성과 백인들이 식민지 시절 저지른 짓 때문에 보복적특성이 많이 가미되었다는 점과 대부분의 식민지에서 벗어난 국가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이것만이 문제였다면 이렇게 인간 쓰레기 취급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위에 언급한 온갖 삽질과 인권 침해 외에도 무가베는 동성애성 소수자 혐오자이다. 무가베는 동성애가 ‘비아프리카적’인 현상이며 동성애자들이 개만도 못하다고 주장하면서, 중국은 동성애를 허용하라고 압박하지 않아 중국으로부터 원조를 받는 것이 좋다고 말하기도 했다. 2014년에는 약 1400만 명이나 되는 인구가 살고 있는 짐바브웨에 게이, 레즈비언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고 "동성애자들을 소탕"하고 싶어하는 무가베는 이후 법을 바꿔서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에 대한 법이 더욱 가혹해졌다.[8]

무가베는 2014년 무가베의 외동딸인 보나의 결혼식에서 "나는 우리나라(짐바브웨)에 동성애자 집단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예전에는 몰랐지만, 그저께 그 얘기를 듣게 됐다. 따라서 누가 이 집단에 속하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짐바브웨 동성애자 단체는 대통령으로부터 끊임없이 위협받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수년간 활동을 이어 오고 있지만 무가베는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들의 목을 자를 것이라고 그들을 주기적으로 협박하고 있다. 실제로 짐바브웨의 전직대통령인 캐니언 바나나[9]가 재직 중에 남자직원들과 성적 관계를 가진 혐의로 기소되는 등 동성애자들이 고난을 겪고 있는 중이다.

이런 성격 때문에 나이지리아우간다에서 새로 제정된 반동성애법들에 대해 무가베는 마음에 든다고 말하기도 했다. 무가베는 새로운 반동성애법에 서명한 나이지리아와 우간다 대통령들을 칭찬하면서 "서방은 이것이 인권 침해라고 말한다. 요웨리 무세베니 우간다 대통령이 최근에 한 일 말이다. 남자가 남자와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와 결혼한다면 인권은 보장된다. 하지만 남자가 남자와 결혼한다면 우리는 권리를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그들을 계속 추방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다닌다. 이러한 그의 동성애 탄압과 폭압 정치 때문에 런던에서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1999년 10월 경에 무가베는 비공식적으로 런던을 여행하고 있었는데 영국 외무부가 밝힌 바에 따르면 무가베는 쇼핑을 목적으로 일주일 전쯤에 영국을 방문했다고 한다 말 그대로 국민들이 굶어죽어가던지 말던지 신경도 쓰지 않고 그냥 사치 생활을 하러 갔던 것이다. 그러던 중 1999년 10월 30일 런던의 버킹엄 게이트에 있는 크라우네 프라자 호텔 앞으로 들어오는 무가베의 승용차에 3명의 남자가 갑자기 뛰어들었고, 동성애자단체 회원인 이들 중 2명이 차를 가로막자, 피터 타첼이란 회원이 승용차의 뒷문을 열었다, 승용차 문을 연 피터 타첼은 경호원을 밀치며 무가베의 팔을 잡은 뒤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무가베, 당신을 고문 혐의로 체포한다. 고문은 국제법상 범죄행위다" 이 회원들은 승용차에 뛰어들면서 "무가베, 동성애자를 모욕하지 말라"는 현수막도 들고 있었다. 영국 경찰이 도착하자 타첼은 유엔의 반고문 조약 등을 보여주며 무가베를 체포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경찰은 오히려 타첼과 동료들을 체포해버렸고, 풀려난 무가베는 그날 저녁 귀국해버렸다. 피터 타첼 일행은 “우리는 인권 억압자에 대한 시민의 체포를 연출해 볼 생각이었다"며 무가베가 동성애자에 대한 증오심을 부추겨온 것은 물론, 최근 2명의 언론인을 고문하는 등 인권을 억압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타첼은 "특히 국민들은 굶주리는데 대통령이 가족을 위해 외국에 나와 사치품을 사들이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말하며 무가베를 비판했다.

4.7 2000년대

2005년에 이라크 전쟁을 비롯한 전쟁을 일으키는 조지 부시토니 블레어를 "히틀러무솔리니처럼 무고한 국가를 공격하기 위해 동맹을 결성한 불신성한 사람들이며, 세계 지배를 노리는 파시스트들"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후 2009년 워싱턴 포스트지 주말 매거진 퍼레이드의 전 세계에서 가장 최악의 독재자 부분에서 1위를 기록했다. 본인 스스로도 100세까지 채우고 퇴임하겠다고 선언했다. 흠많무. 다만, 100살이 넘어도 계속 독재자로 남아있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은 자국 화폐를 포기하고 자신의 정적, 그것도 자신이 네 번이나 죽이려고 했던 모건 창기라이와 연정을 선언해 회복중이라고는 하는데 믿을 수가(...)

똑같이 젊은 시절 백인우월주의 정권에 항거하며 남아프리카의 국부로 존경을 받다가 세상을 떠난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과 너무나도 비교된다.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에게 무가베는 오래전 험난한 시절을 겪을 당시 너무나도 뜻이 맞는 동지이자 벗이었기에 현재에 와서 국내외적으로 욕이란 욕은 다먹고 막장 독재자로 깽판치는 무가베를 생전에 너무나도 안타까워했다.

무가베도 자신이 죽으면 권력승계화가 좌절되는 것을 아는 모양인지 적어도 압수한 백인 농장들만이라도 절대로 도로 백인들에게 줄 수 없다면서 소유권한을 이미 여러 이들에게 양도했고, 죽을 경우에도 유언으로 다른 사항도 준비했다고 한다. 이전 짐바브웨 백인 농장들의 독점실태가 워낙 심각했던 탓에 무가베를 쌍욕하는 다수 반대파조차도 지지하는 일이라 설령 무가베가 죽어도 백인들이 돌아온다고 해도 땅을 찾으려면 꽤나 고생할 예정이다. 어쩌면 짐바브웨 국민들에게는 애증의 대상인지도.

2011년, 리비아 내전카다피를 지원하고자 군대를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자국 사정도 워낙 개차반이라 대규모 지원은 어림도 없고 겨우 일부 부대와 군사고문단 수준을 지원했으며 큰 도움이 못된다는 분석이다. 결국 카다피 정권이 무너지고 행방을 알 수 없는 카다피가 짐바브웨로 망명할 예정이라는 기사가 나왔지만 알다시피 카다피는 하수도에 숨어있다가 시민군에게 붙잡혀서 죽었다.

과거 1990년대에는 에티오피아의 전 독재자 멩기스투를 받아주려는 시도도 했었고, 이후 멩기스투는 짐바브웨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다. 무가베가 이렇게 외국의 독재자들을 보호해주고 지원해주는 이유는 딱히 그들을 좋아해서라기 보다는 자기도 언제 그런 꼴을 당할 지 알 수 없어서 보신 차원에서 하는 행동인 게 더 강하다고 볼 수 있다.유유상종

건강상태가 의심스러운데 위키리크스에 따르면, "전립선암에 걸려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라고 주장한다. 매년 1월 눈 검진을 위해 싱가포르를 방문하는 것을 포함, 아시아로 연례적인 휴가를 떠나는 등 건강에 각별히 신경을 쓰는 둣하다.

2013년 7월 31일 대선에서 승리했다. 득표율은 61.9%. 상대후보인 모건 창기라이는 33.9%에 그쳤다. 현재 창기라이는 총리이다. 연정을 구성한 셈이다. 그러나 창기라이의 민주변화운동은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면서 선거결과에 불복을 선언한 상황이다. 그러나 결국 무가베가 몰아붙여서 5선 임기를 시작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5선 임기를 시작한다면 2018년까지 재임할 것이며 이 때 무가베의 나이가 94세. 이에 대선 경쟁자였던 모건 창기라이 등 야당 지도자들은 "야당 우세 지역에서 100만 명이 투표를 하지 못했다"며 "선거 부정행위가 짐바브웨를 심각한 위기로 몰아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무가베는 "선거에 패배하고도 이를 인정하지 않는 정치인들을 쓰레기처럼 처리하겠다"며 "영국이 짐바브웨에 거주하고 있는 백인 소유의 토지 몰수 정책 때문에 나를 축출하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남아공의 유명한 식당 체인인 난도스[10]가 무가베를 주연으로 한 광고를 제작해서 짐바브웨 국민들의 격렬한 항의를 받고 있다. 내용은 카다피, 사담 후세인, 마오쩌둥, 이디 아민, 피터르 빌럼 보타(?!)[11] 같은 좋은 벗(…)을 떠나보내고 홀로 남은 무가베가 쓸쓸히 저녁식사를 준비한다는 가슴이 아리는(…) 내용. 그런데 후세인, 마오 쩌둥, 이디 아민 등이야 다 그렇다 쳐도 피터 보타를 넣은 건 무리수였다는 비판이 많았다고 한다.

무가베가 젊은 시절 정상인이었을때 맞서 싸운 것이 로디지아같은 백인 우월주의자들이었으니 백인 우월주의자 피터 보타가 무가베랑 친구라는 건 영 아니란 것. 그리고 좀더 첨언하자면 무가베는 카다피를 보고 "뇌가 없는 것 처럼 행동한다" 라고 돌직구를 날린 적도 있다. 무가베는 카다피에게 지원을 해주긴 했다만 사이가 좋은 친구까지는 못 되었던 것(...) 차라리 김정일을 넣는 게 더 나았을 것이다. 마침 북한빠였기도 하니(...).

지금도 무가베는 버릇대로 기행을 선보이는데, 2014년 90세 생일을 기념해서는 무려 500만달러짜리 동상을 제작했다. 재밌는 건 이 동상을 제작한 게 다름아닌 북한의 만수대창작사.[12] 더 재밌는 건, 당시 생일파티 당시 "9살 같은 젊음을 느낀다.", "은퇴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2014년 3월에는 4월 EU-AU 정상회담을 앞두고 "부인(그레이스 무가베)을 초청하지 않으면 정상회담을 거부하겠다"고 으름장까지 놓기도 했다. 부인 그레이스는 2002년 야당 탄압, 백인 농부 추방 등으로 인하여 EU 입국이 금지된 상태.[13]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의 회의 참석과 짐바브웨 및 수단의 인권 문제 등을 둘러싸고 긴장이 야기되긴 했지만 어찌어찌 참여는 한 모양.

이 회의에서 무가베 대통령의 인권탄압 문제가 크게 대두되었는데 앙겔라 메르켈 독일총리는 회의 첫날 비공개회의 연설에서 "오늘날의 짐바브웨 상황은 새로운 아프리카의 이미지를 해치고 있다"고 무가베 대통령을 겨냥해 공세를 폈으며 고든 브라운 총리는 '폭정과 인권탄압을 자행하고 있는' 무가베 대통령의 회의 참석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회의에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가재는 게편이라고 타보 음베키남아공 대통령 등 아프리카 지도자들은 무가베를 두둔하고 나섰다. 영국 등 유럽국가들은 짐바브웨의 폭압적 정치와 인권탄압을 비판하면서 붕괴 직전의 경제상황이 무가베 대통령의 실정 탓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아프리카 지도자들은 이를 식민통치했던 영국의 잘못으로 돌리고 있다.

그러던지 말던지 무가베 대통령은 정상회의 연설에서 "유럽은 선거에서의 승자를 싫어한다는 이유만으로 짐바브웨에서 합법적으로 치러지는 선거 결과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잘못이 없다고 말했다.그러라고 뽑아준게 아닐텐데


2015년 2월 4일에는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 열린 아프리카 지도자회의에 참석했다가 하라레 공항에 도착한 뒤 공항에서 넘어졌다고 한다. 목격자들은 무가베가 공항에서 그를 환영하는 지지자들에게 연설한 뒤 연단에서 내려오면서 발을 헛디뎌 곧바로 넘어졌지만 크게 다치지는 않았고 측근들은 재빨리 그를 부축해 리무진에 태웠으며 리무진은 속도를 내며 사라졌다고 전했다. 넘어지는 장면을 찍은 일부 사진기자는 보안요원에 의해 사진을 삭제할 것을 강요당했다. 그런데 이 사진이 꽤나 웃긴지라 해외에서는 mugabe falls down이라고 해서 이 사진들처럼 패러디 되고 있다.

2015년 2월 28일, 91세 생일파티 자리에서 나의 장수비결은 배부를 때까지 먹지 않는 것 이라며 자랑했다. 무가베는 짐바브웨 빅토리아 폭포 주변 고급호텔 골프장에서 열린 대규모 생일파티를 하기 전에 방송 인터뷰 도중에 "나는 잘 먹지만, 내 배를 가득 채우지는 않는다"고 말했다고 남아프리카공화국 뉴스통신 사파(SAPA)가 보도했다.

그는 "당신은 잘 먹어야 한다. 그러나 음식이 당긴다고 배가 찰 때까지 먹지는 마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충고했다. 무가베는 자기 건강을 매우 생각해서 금욕적인 생활을 했고 이 생활 습관은 상당히 유명하다고 한다. 무가베는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오랫동안 산책을 하고 식단에서 고기는 조금만 먹고 야채는 많이 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그의 여동생은 무가베의 장수비결을 술과 담배를 하지 않고 운동을 많이 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아프리카 말라위의 초대 대통령인 헤이스팅스 반다96세까지 집권했다가 물러났다.그나마 물러나서 찬양받는게 함정

미국 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합법화 결정으로 동성애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고 있던 2015년 7월 1일 반 동성애주의자 무가베가 워싱턴에 가서 오바마 대통령에게 청혼하겠다고 빈정댄 사실이 보도되었다, 무가베는 국영라디오와의 인터뷰 도중 "오바마 대통령이 동성결혼을 지지하고 있고 매력적인 용모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결정했다. 필요하다면 워싱턴에 가서 무릎을 꿇고 오바마에게 청혼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지며 "왜 오바마가 남색을 금한 하나님의 명백한 명령을 감히 무시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2016년 7월에는 자신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짐바브웨 참전용사연맹 소속의 여러 독립투사들을 체포하는가 하면, 8월에는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이 끝난 이후 메달을 따지 못했다는 이유로 올림픽에 파견했던 선수단 31명을 전원 체포했다는 나이지리아 매체의 보도에 대해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5 아내 그레이스 무가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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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바브웨판 측천무후. 치마폭 수렴청정

현재 들리는 내용에 의하면 무가베가 가장 신임하는 사람은 바로 아내 그레이스 무가베라고 한다. 2015년 동안 그녀의 정치적 영향력은 계속해서 증가했으며 현재 사실상 짐바브웨를 지배하는 인물이라고 꼽힌다. 그레이스는 짐바브웨 대통령 사무실의 타이피스트였는데 그레이스와 무가베는 불륜 관계가 됐다.(...) 물론 무가베의 첫번째 아내인 샐리가 이들의 불륜을 저지하려 했지만 그녀는 병에 시달려서 몸 상태가 말이 아닌 상태였고, 결국 첫 번째 아내 샐리가 사망하고 1996년 둘은 서로 결혼을 했다. 현재 나이가 약 50살인 그레이스는 짐바브웨의 영부인이자 두 아이의 엄마로써 ZANU PF의 여성연맹을 이끄는 지도자가 되며 당 내에서 정치적 입지를 다져 현재에 이르렀다. 그와 함께 지난해 대학에 입학한지 두 달만에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도저히 믿기가 힘들 정도로 박사 학위를 빨리 딴 것이 의심스럽다고 한다.옐레나 차우셰스쿠?

그녀는 사치스럽기로 악명이 자자하며 쇼핑을 좋아해서 이른바 '구찌 그레이스'로도 불린다. 그레이스는 2014년 초에 딸의 결혼식에 무려 51억7천만 원을 쏟아부어서 수많은 짐바브웨 국민들이 굶어죽어가는데 저렇게 돈을 쓰냐는 비판을 받았다. [14] 또한 성격도 더러워서 2009년 홍콩에서 명품들을 사며 쇼핑을 하다가 자신을 촬영하던 사진기자를 자기 맘에 안 든다고 폭행해서 폭행 혐의로 입건되기도 했다.

한편 영부인 그레이스 무가베는 2015년 11월, "내가 특수 휠체어를 만들어 밀고 다니면서 무가베 대통령의 집권을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무가베 대통령은 2014년 12월 연설에서 “(집권당인) ZANU-PF 반대”라고 외쳐 사실상 판단능력을 상실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레이스 무가베는 2018년 대선에서 ZANU-PF 후보로 나설 것임을 이미 밝힌 바 있는데, 무가베 대통령보다 41살이나 어린 50세의 그레이스 무가베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무가베 대통령만큼 장기집권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창기라이 전 총리는 수렴청정 가능성까지 제기했다. 다만 군부의 수장인 애머슨 음난이 계승을 노리고 있다는 것이 변수.

6 평가

전체적인 평가는 이안 스미스와 그의 로디지아 백인 정권에 맞서 짐바브웨를 해방시킨 주인공으로 독립투사로서의 공은 인정받아야겠지만 이후에는 독재자로 타락한 전형적인 아프리카 초대 대통령들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는 자신의 역량으로 독립을 쟁취하는 등 큰 성과를 이룬 사람들의 공통점이기도 한데 인격적인 문제나 권력욕 때문이 아니라도 '내가 아니면 안된다' 는 생각을 가지고 선거조작 등을 통한 장기집권을 끝없이 추구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사람도 점차 변하게 되며 결국 남는 것은 독재자의 낙인뿐이다. 대표적인 예가 미얀마의 군부독재자 네 윈인데, 미얀마를 아프가니스탄, 짐바브웨, 부룬디 수준의 경제 파탄으로 몰아넣은 장본인으로 아웅산, 우누와 더불어 미얀마 독립투쟁의 핵심인사 중 한 명이었으나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뒤에는 독재자로 변질되었다.

독재자로서의 무가베의 씨앗은 사실 독립 투쟁 시절부터 그 싹수가 보였다. 반 로디지아 정부 투쟁 당시 동맹 관계에 있었던 ZAPU(짐바브웨 아프리카 인민 연맹)와의 연대 또한 필요에 따라 정권 장악에 방해가 된다 싶으면 무자비하게 뒷통수를 쳤고, 결국 지금의 자리는 로디지아 정부-ZANU-ZAPU 3자가 합의한 랭카스터 협정을 명백하게 깨며 친위 쿠데타를 통해 얻은 것이다. 그리고 80년대 전반에 걸쳐 진행된 친위 쿠데타와 후속 작업에서[15] 2만 명 가까운 민간인을 학살했다. 참고로 이 친위 쿠데타와 정적 제거 과정을 주도한 짐바브웨 제5여단을 훈련시켜준 건 다름아닌(...).

무가베 역시 영국 옥스퍼드 대학 출신의 훌륭한 교사이자 백인지배에 맞서 저항한 독립투사였으나 권력을 잡은 이후로부터 점차 타락의 길로 접어들아갔다 할 수 있으며 게다가 경제정책의 실패로 인해 평판은 바닥까지 떨어진 상태. 2016년 현재 무가베의 모습은 자신의 권력만을 위해 온갖 미친 짓을 벌여대는 미치광이 독재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무가베의 경제정책은 그가 얼마나 경제감각이 없는 인간인지를 방증하는 부분으로 짐바브웨의 화폐를 같은 크기, 같은 재질, 같은 두께의 아무것도 인쇄가 안된 종이보다도 그 가치가 떨어지게 만든 주범이다. 때문에 짐바브웨 달러북한 원과 같이 절대로 위조지폐를 만들지 않는 화폐의 양대산맥이었다. 도저히 위조가 불가능할 정도로 정교해서가 아니라 위조지폐를 만드는 노력과 비용이 화폐액면가보다 더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정작 짐바브웨에선 무가베의 정책이 개판이라고 욕할지언정 독재자라고 욕하는 건 현지인들(흑인)에게서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라는 이야기가 인터넷에서 보이고 이 위키에도 그렇게 적혀 있었지만 믿기가 어렵다. 무가베한테 투표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조용히 실종되거나 고문당하는 사회에서 정말로 무가베를 독재자라고 비난할 만한 용자들이 과연 몇명이나 있는지가 의문이다. 다르게 생각하면 북한에 가서 북한 주민들한테 "김정은이 독재자 입니까?"라고 물어서 "김정은은 독재자다"라는 대답이 오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 한 마디로 주민들이 공포에 질려서 말을 대충 흐리거나 말을 하지 않는 것이지 그가 독재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상당히 많다. 대표적으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는 등 무가베에 대한 지지율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고, 30년 넘게 집권하면서 고문당하거나 인권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 상황이며 무가베 정권에 의해서 고문당한 사실을 증언하는 사람들이 바로 짐바브웨인들이다. 한마디로 그가 독재자가 아니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좀 무리가 있다. 오히려 짐바브웨 사람들이 무가베에 대한 비판적인 말조차 꺼릴 정도로 폭압적인 독재정치가 심한 짐바브웨의 모습을 보여주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1. 서방 세계에서 실제로 무가베에게 "아프리카 최악의 독재자"라는 별명을 지었다고 한다.
  2. 포브스 발표로 무려 6.5×10^108 = 6,500만 구골%
  3. 실감이 안 난다면 한달에 약 3만원으로 살아가라는 이야기이다
  4. 무스타파 케말은 50대에 암으로 요절했기 때문에 장기통치를 못했을 뿐, 권력행태를 본다면 독재자 맞다. 손에 진 절대권력을 주로 터키의 근대화에 사용하기는 했지만, 그도 장수했다면 수십년간 종신집권을 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던 사람중의 하나다.(그의 재임시절 터키는 1당 독재였다) 그래도 아타튀르크는 자손을 남기지 않았는데 자손이 있다면 대대로 독재를 이어받을 걸 우려했기 때문.
  5. 조지 워싱턴이라든지 마하트마 간디라든지 독립운동은 아니더라도 사실상 남아프리카 흑인 다수에게 독립운동가나 다름없는 국부 넬슨 만델라가 존경받는 이유 중에 이것도 있다. 정권을 잡고도 흑화하지 않은 몇 안 되는 사례이기 때문.
  6. 60년대 볼리비아의 독재자 바리엔토스도 이런 식으로 체게바라의 볼리비아 혁명플랜을 방어해낸다. 당시 볼리비아 농민들의 입장은 바리엔토스를 지지하는 건 아니였지만 애써 반대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7. 세계 인플레율 1위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1919~1921년 독일이 1조% 였지만 여기는 이미 다른 각주에 있으므로 이하생략
  8. 뭐, 탄압받지 않을려면 방법이 있기는 한다. 바로 남아공으로 가는것인데, 남아공은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동성결혼이 합법화한 국가이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동성애를 배척하지는 않는다. 다만 남아공도 아프리카에서 부유한 나라이기는 하나 실업률이 높아서 짐바브웨 이민자들에 대한 시선이 영 좋지 않다.
  9. 이쪽은 실제 게이이다.
  10. 1987년에 창업한 업체인데 페리페리 치킨으로 유명하다. 영연방 국가를 중심으로 32개국에 진출한 세계구급 기업이지만 이상하게도 한국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11. 아파르트헤이트 후반기때 재직한 남아공의 대통령으로 흑인에 대한 탄압과 인권유린, 인종차별로 악명높은 자였다. 일단 재임초기에는 흑백인종 간의 섹스를 엄금하는 배덕법과 통행법 등을 폐지하고 아시아계와 컬러드에게 투표권을 주어서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폐지하려고 했던듯 했지만 그건 기만이었고 실제로는 국민당의 일당지배체제를 조금이라도 더 연장시키기 위한 꼼수로 흑인들에게 투표권을 주지않고 탄압을 가한건 마찬가지였다.
  12. 김부자 동상 제작으로 50년 노하우를 가진(...) 조직답게 아프리카에 선전용 대형 조형물 제작으로 외화를 벌고 있다
  13. 사실 이 때문에 로버트 무가베도 같이 금지되어 있지만, 정상회담이라 이를 적용하지 않기로 하고 무가베에 한해서만 입국을 허가해준 것이라고 한다.
  14. 더군다나 짐바브웨는 빈곤 때문에 소녀들이 10~15살의 어린 나이로 나이 많은 남자에게 팔려가다시피 하는 조혼 문제도 심각한 나라이다. 같은 나라에서 누군가는 돈 때문에 딸을 파는데 누군가는 딸의 결혼식 때문에 수십 억을 쓰다니 환장할 노릇이다.
  15. 이 정권 장악을 위한 전국 평정 작업을 구쿠라훈디(Gukurahundi), 쇼나어로 '겨를 씻어 내리는 초봄 비'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