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인

본명엄홍식(嚴弘植)[1]
출생1986년 10월 6일, 대구광역시
성좌/지지천칭자리 / 호랑이띠
신체179cm, 71kg[2], A형
가족1남 2녀 중 셋째
학력대구 남덕초등학교
대구 상인중학교
경북예술고등학교 서양화과
서울미술고등학교(중퇴)
건국대학교 예술학부
데뷔2003년 농심 '쫄쫄면' 광고
소속UAA
SNS미니홈피,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
송강호
(2014)
유아인
(2015)
백상예술대상 TV 남자 최우수연기상
이성민
(2015)
유아인
(2016)
춘사영화상 남우주연상
하정우
(2015)
유아인
(2016)

1 개요

유아인은 배역을 감당하는 배우가 아니라 배역으로 자신을 창조해가는 배우다. 자기로써 배역을 소화한다기보다 배역으로써 자기를 살찌워간다. 본래 배우는 해석자다. 배우는 자신의 지성과 감성, 경험과 신체로써 영화의 인물을, 장면을, 스토리를 해석하여 체화하는 ‘해석 창작자’다.(그런 의미에서 배우는 일종의 ’비평 주체’다.) 그런데 배우 유아인은 자기의 감각과 경험을 가지고 대상을 해석, 창작하는 사이에, 그 과정을 통해 만난 새로운 감각과 경험을 다시 자기에게로 가져오는 듯하다. 자기를 인물로 만드는 동시에 인물을 자기로 흡수해버리는 것 같다. 그의 연기가 궁극적으로 해석하고 창조한 것은 배역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그는 연기보다, 삶에 더 뛰어나다.

삶에 뛰어나다니, 이게 가능한 말인가. 무엇이 뛰어난 삶인가. 한 인터뷰에서 유아인은 “이 순간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일 뿐, 사실 난 다 잘 모르겠고, 혼란스러움을 온전히 노출하는 것 말고는 어떠한 정답도 결론도 이야기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그럼에도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건 이 혼란스러운 상태를 유지하며 살고 있다는 것”, “끊임없이 찾고, 구하고, 괴로워하면서 살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에게 삶의 능력은 결론을 내리고 혼란을 없애는 기술이 아니다. 오히려 혼란을 지속하려는 용기로써 그는 결론 없는 자기 삶의 주인이 된다. 이것이 그가 “자기를 부정하면서 자기의 세상을 만들어” 가는 방식이다.

본연의 자기를 유지하면서 다른 삶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삶을 자기 본연의 것으로 살려내는 일, (‘본연’이란 원래의 모양이 아니라 항상 변화 가능한 움직임일 것이다), 이것이 배우 유아인의 연기이자 삶이다. 그는 자기 본연을 잘 드러내는 편인데, 그의 말에선 연기 뒤의 삶이 읽히고, 그의 연기에선 배역 너머 배우가 보이는 까닭이겠다. 그는 간혹, 연기와 삶 모두에 대해 지나치리만큼 진지하단 소리를 듣는다. 당연하다, 진부해지지 않으려면 진지해져야 한다. 고색창연하게도 ‘청춘의 아이콘’이라 불릴 때도 많다. 괜찮다, 그는 여전히 자기 창조 중에 있고, ‘대변하는’ 배우의 역할도 잘 알고 있으니까. ‘아인시대’라니 좀 호들갑스럽게도 들리지만, 좋다, 유아인이 대세라면 청년이 대세인 것이다. 반갑다, 이런 대세, 어쩌면 세대. 오랜만에 청춘이 대세다. 아님 대세니까 청춘인가.

―백지은 문학평론가, <사람과 글> 통권 54호 「이런 대세 혹은 세대 - ‘아인시대’」

대한민국배우. 1986년생으로 본명은 엄홍식이다. 대구에서 1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고등학교 때 서양화를 전공했으나 자퇴했고, 후에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2004년 드라마 《반올림》으로 인상적인 데뷔를 치르며 인기를 얻었으나, 고향 대구로 내려가 잠적하기도 했다. 이후 독립영화를 비롯한 여러 작품에 출연하며 신인으로서 인지도를 쌓다가 2010년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과 2011년 영화 《완득이》를 통해 블루칩(혹은 주목받는 20대 남자배우)으로 떠올랐다. 이어진 작품들에서 연기 호평에 비해 흥행에는 아쉬움을 남기다가, 2014년 《밀회》를 시작으로 2015년 《베테랑》 《사도》 《육룡이 나르샤》로 자신의 대표작을 연이어 추가하면서 대세 배우로 떠올랐다. 젊은 배우로서 연기력까지 인정받으며 탄탄대로를 걷고 있다.

2 연기 활동

2.1 데뷔-2005년

경북예고 재학 시절 교문 앞 캐스팅을 당한 후 상경했다. 이후 서울미고로 전학했으나 곧이어 자퇴했다.(이런 이력이 특이하다고 생각했는지 신인 시절 인터뷰를 보면 기자가 자퇴 이유에 대해 항상 물어본다.) 유아인은 자퇴 이유에 대해 “학교는 내 인생에 별 의미를 주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 2011년 《완득이》 제작보고회에서 자신의 학창시절에 대해 “선생님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회의적인 학생이었다”며 “고등학생들이 스트레스 풀 데가 없다. 억눌린 스트레스가 자퇴로까지 이어진 것 같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2003년 라면 광고로 데뷔했다. 쫄쫄면 먹는 아기 유아인을 보자 두산 베어스의 숨겨진 선발투수도 볼 수 있다 데뷔 전에는 솔로 아이돌 가수로 데뷔하기 위해 보컬 트레이닝을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재능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가수 준비를 그만뒀다. 그래, 노래는 웬만하면 하지 말자

2003년 10월 《반올림》 오디션을 봤으나 낙방했다. 하지만 다시 기회를 얻어 단발성으로 출연했는데 반응이 좋자 고정 캐릭터로 투입됐다. 그리하여 2004년 1월부터 KBS 성장드라마 《반올림》에 주인공 이옥림과 사귀는 미술 전공 고등학생 유아인 역할로 출연하기 시작하여 연기자로 정식 데뷔했다. 종영 직후에는 팬카페 회원 수만 15만 명에 육박하는 등 샤방샤방한 미모와 시크한 캐릭터로 청소년들 사이에서 ‘아인 오빠’ 열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중딩 옥림이에게 ‘나 이제 너 안 보고도 그릴 수 있어’라고 작업 멘트 날리는 고딩이라니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교복 CF 등 다수의 광고 모델로 활동했고 뮤직비디오와 단막극 등에 출연했다.

전설의 아인 오빠

그러나 이후에 웬일인지 고향인 대구로 내려가 연기 활동을 잠시 접는다. 사실 유아인은 연기에 대한 제대로 된 생각도 없이 무작정 연예인이 되고 싶었다고. 그러나 《반올림》을 끝낸 후 갑작스럽게 찾아온 인기에 “내가 원했던 것인지 고민되고 혼란스러웠다”며 일부러 작정하고 공백기를 가졌다고 밝혔다. 게다가 “많은 기회와 유혹이 있었다. 제 마음대로 선택하지 못하고 옳다는 걸 거스르고 옳지 않은 걸 해야 한다는 게 견디지 못할 만큼 힘들었다”고 인터뷰한 것을 보아 연예계 시스템에 대해 고민이 많았던 듯. 그러나 공백기 동안 “남들에게 비춰지는 내가 아닌 진정 나를 위하는 게 무엇인지, 배우 유아인의 길은 어떤 것일까를 고민”할 수 있었고, “앞으로의 그림을 차근차근 그리며 ‘사람’에 대한 생각”을 오래 할 수 있었다. 나중에 유아인은 자신의 에세이에서 잠적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내가 과연 배우로 살 수 있을까? 《반올림》 오디션을 보면서도,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연예계나 연기에 대해 아무런 지식도 없이 덜컥 오디션에 합격해서 배우로 살게 된 것이다. 일이나 사회생활에 대해 무지한 채, 인간으로서의 정체성 또한 무지한 채, 인간으로의 정체성 또한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1년 간 《반올림》에 출연했다. 그 후 나는 쉬기로 했다. 스스로의 내면을 깊게 들여다 볼 시간이 필요했다. 많은 생각 속에서 연기를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연기에 열정을 갖기 시작한 나를 발견했다.

―잡지 <인스타일> 2011년 7월호 「유아인의 배우 1막 1장」

2.2 2006년-2009년

활동을 재개하면서 2006년 노동석 감독의 독립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에 출연한다.(영화로 첫 작품이지만 개봉은 《좋지 아니한가》보다 늦었다.) 노동석 감독은 인터뷰에서 유아인의 캐스팅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른 배우들에게 종대 캐릭터에 대해 물어보면 보통 ‘어떤 옷을 입을 것 같고 무슨 머리 스타일에 이런 성격일 것 같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아인이는 창밖을 한참 바라보더니 살짝 울컥하면서 ‘슬프죠’ 한마디를 하는 거다. 그 순간 ‘종대는 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유아인은 이 영화에 대해 데뷔작으로서 애착을 종종 드러내는데, 2007년 기자간담회에서 “배우라는 앞날에 대한 꿈을 꾸고 그림을 그렸다면 그 그림 속에 꼭 있어야 할 영화”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특히 영화 속 대사 ‘훌륭한 소년이 될 거예요?’는 배우 유아인을 구성하는 ‘소년성’을 설명할 때 기원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개봉 이후 10차례가 넘는 GV를 통해 관객들을 만나기도 했다.[3]

이후에는 정윤철 감독의 《좋지 아니한가》에 출연한다. 원래 《말아톤》 오디션을 봤었는데 스케쥴이 맞지 않아 출연하지 못했다. 정윤철 감독은 꽤나 아쉬웠는지, 다음 작품인 《좋지 아니한가》에 유아인을 캐스팅한다. 이렇게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의 우울한 청춘 종대 역과, 《좋지 아니한가》의 4차원 아들 심용태 역으로 좋은 연기를 선보이며 기존의 아이돌스러운 이미지를 벗고 부산영평상과 평택피어선영화제에서 신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08년 드라마 《최강칠우》에서 흑산 역을 맡아 양반집 자제와 냉혹한 자객을 오가는 연기를 펼쳐 호평을 받았다. 드라마 종방 기념 팬미팅에서는 “선배분들과 가까울 수 있는 기회가 많았으면 좋았을걸 하는 아쉬움이 있다. 특히 선배님들과 싸우는 게 가장 힘들었다. 촬영을 마친 지금 기분은 시원하고 가벼운 느낌이다”며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같은 해 개봉한 영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에서 전직 복서[4]인 파티시에 견습생 양기범 역을 잘 소화했다. 본인의 분량에 대해 아쉬움은 없느냐는 질문에 “맛있는 영화에 적당량의 재료로 쓰였다고 생각해요”라며 대인배적 마인드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 영화로 제11회 디렉터스컷 시상식에서 올해의 남자신인연기자상을 수상했다.

2009년에는 일본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결혼 못하는 남자》에서 건축사 사무소에서 일하는 박현규 역을 맡았다. 유아인의 필모에서 흔치 않은(!) 밝고 평범한 캐릭터다. 같은 해 장나라가 출연하여 화제가 된 영화 《하늘과 바다》에서는 피자 배달부 진구 역을 맡기도 했다.

2.3 2010년-2013년

데뷔 이후 꾸준히 드라마나 영화를 찍어왔고, 연기도 상당히 안정적인 편이었는데 이상하리만치 포텐이 안 터졌다.[5] 그러다 2010년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의 걸오 문재신 역으로 캐스팅되었다. 사실 캐스팅 되었을 당시 기존의 꽃미남 이미지가 원작의 거친 ‘걸오’와 어울리지 않는다며 원작 팬들에게 폭풍 디스상남자 걸오가 두부상이라니!를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드라마가 시작하고 뚜껑이 열리니 가히 서브 남주의 반란을 일으키며 시청자를 걸오앓이로 몰아넣었다.

이렇게 커리어적으로도 《반올림》 이후로 드디어 제대로 된 대표작이 나왔다. 유아인 역시도 작품 선택의 폭이 넓어져서 “배우로서 살아나가는데 큰 힘이 될 것 같다”고 밝혔다. 또한 걸오가 홍벽서[6]로서 사회에 대해 많은 말들을 해줘서 좋았으며, 아웃사이더로 살아가는 걸오의 마음이 궁금했고 자신의 모습과 닮아 있어서 연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 인터뷰에서는 다소 늦게 대표작을 만난 아쉬움이 없느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8년 됐다는 얘기할 때마다 창피하고 끔찍해요.(웃음) 주변에서 아쉬워하는 분들도 많고요. 하지만 뭐 그래도 전 굉장히 만족하면서 여기까지 왔어요. 건방져 보이겠지만 24살, 이제 뭔가 펼치기 위해 그간 남부러울 것 없는 커리어를 쌓아왔다고 생각해요. 매니저 말을 들었으면 더 돈도 많이 벌고 더 빨리 인기를 얻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제 나름대로는 그런 부분은 포기하고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작품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걸오도 만날 수 있었던 것 같고요.

―2010년 10월 13일 ‘연합뉴스’ 인터뷰

2011년 영화 《완득이》의 주인공 얌마 도완득 역을 연기해 미친 싱크로율을 선보였다. 김윤석과의 앙상블 역시 호평을 받으며 당해 슬리퍼 히트작으로서 전국 관객 531만 명을 동원하고 제3회 올해의 영화상에서 올해의 발견상을 수상했다. 《성균관 스캔들》에 이어 영화에서도 대표작을 만든 셈. 영화 개봉 후 무대 인사에서 500만 관객이 돌파하면 노래를 부르겠다는 공약을 했는데,[7] 본인의 트위터에 노래 동영상을 올리면서 공약을 실천하기도 했다. 굳이 찾아보진 말자. 노래는 넣어둬 넣어둬 후에 이한 감독은 GV에서 말하기를, 오디션을 볼 때 유아인이 세 가지 버전의 완득이를 준비해 왔다고. 당시 유아인은 긴장을 많이 한 듯 보였고, 감독은 세 가지 버전 모두 맘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유아인이 다시 준비해 온 것을 보니 이전보다 나아져서 캐스팅했다. 그러나 막상 유아인은 야구공을 던져본 적도 축구를 해본 적도 없고, 발차기를 시켰더니 발이 허리까지 밖에 올라오지 않아 걱정이었다고 한다. 이에 유아인은 아침 8시부터 해 질 녘까지 킥복싱 훈련을 받아 머리 위까지 발차기를 하는 등 발전된 모습을 보여, 감독의 걱정을 타파했다고. 조태오의 이종격투기 기초 실력은 여기서 쌓은 듯 개봉 즈음에는 영화잡지에 에세이를 기고하면서 걸오앓이로 유명세를 탄 소회와 《완득이》를 차기작으로 선택한 이유를 밝히기도 했는데, 특기할 만한 문단은 다음과 같다.

나는 정확히 내가 겪은 시간과 경험만큼만, 생경하게 찾아온 인기를 이해하고 또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만큼 닳은 채로 ‘완득이’를 만났다. 영화다. 그것도 열일곱 살 소년이란다. 기껏 성인 연기자의 타이틀을 달았는데, 이 아이는 처음 연기를 시작하며 맡았던 드라마 《반올림》의 ‘아인 오빠’보다 더 어린 친구다. 배우의 운명은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정의되고 또 그렇게 흘러가는가 보다. 나는 아역 이미지를 벗지 못한 풋내기 배우였고, 미디어는 ‘걸오’ 캐릭터야 말로 성인 연기자로의 진정한 발돋움이니 뭐니 하는 식상한 말들로 내 운명을 이끌어 가고 있었다. 어쩌면 《완득이》는 당시 나를 향한 눈들의 기대와 예상을 배신하면서, 동시에 내가 그것들을 떨쳐내고 초연해지도록 돕는 필연적인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겐 그런 상태가 절실했다.

―잡지 <무비위크> 496호 「유아인 완득이를 만나다 1」

2012년 드라마 《패션왕》에서 주인공 강영걸 역으로 출연했다. 성공에 집착하여 비겁하지만 인간미 넘치는 불운의 캐릭터를 잘 표현했다는 평을 얻었다. 패션을 모티브로 젊은이들의 성공과 사랑을 그리는 줄거리와 주목받는 캐스팅[8]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초반에 비해 개연성이 떨어지는 전개가 이어지다 충격적인 결말로 막을 내렸다. 충격적인 결말 하면 《지붕 뚫고 하이킥》, 《빅》과 함께 빠지지 않고 회자되는 드라마 유아인은 이미 엔딩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촬영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내러티브와 캐릭터가 잘 섞이지 못해서 아쉬웠고, 시청자 반응을 흡수하는 것과 뚝심있게 밀고 나가는 것의 균형을 맞추지 못해 시청률 반등의 기회를 놓친 것 같다고 자평했다. 또한 현실적인 캐릭터가 시청자들에게 색다른 인상을 주기도 했지만, 찌질하고 허세적이라는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이에 대해 유아인은 본인의 캐릭터가 멋있는 척 안 해서 좋았고, 판타지에서 벗어난 인물이라 신선했다고 밝혔다.[9] 허세적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힘이 잔뜩 들어간 연기를 의도했지만, 시청자들이 보고 싶지 않은 부분까지 매력 있게 연기하지 못해 아쉬웠다고 말하기도. 덧붙여, 본 문단에 링크된 텐아시아 인터뷰의 무삭제판에서 대본상 이야기의 흐름이 이해하기 어려울 때 유아인이 신세경에게 했다는 말이 걸작이다.

이게 우리의, 배우의 운명이야. 우리는 주어진 것들을 어떻게든 이해해내는 수밖에 없어.

2013년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 숙종으로 출연했다. 새로운 장옥정을 보여주려고 야심 차게 기획되었지만 착한 장옥정에 대한 시청자의 반응은 그리 열광적이지 않았고 역사고증에 관해 많은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남자인 동시에 왕권 강화를 최우선 목표로 삼고 카리스마를 내뿜는 정치 10단의 절대군주를 표현하는 유아인의 섹시 왕 숙종 연기는 호평받았다. 드라마 초․중반부 김태희와 일명 ‘순정커플’의 로설스러운 달달한 애정씬을 선보여 시청자들을 설레게 하기도. 드라마보다 촬영 메이킹을 보면 망붕이 생성된다는 카더라 같은 해 10월에는 영화 《깡철이》가 개봉했다. 처음에 유아인은 영화의 제목이 《완득이》와 비슷해 시나리오를 읽어 보지도 않았지만, 《완득이》보다 훨씬 더 인물의 내밀한 세계로 들어가는 영화이기 때문에 선택했다고 밝혔다. 특히 본인의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은 순수한 마음이 컸다고 한다. 선배 김해숙과 엄마와 아들로 만나 훌륭한 앙상블을 이뤘고 강도 높은 액션과 감성 연기를 동시에 보여줬다는 평가를 얻었다. 전국 관객은 120만 명 정도. 여담으로 김해숙은 유아인에 대해 공공연히 애정을 드러냈는데, 유아인이 김해숙의 생일에 자필 카드와 함께 선물을 사줬고 사석에서도 엄마라고 부른다고 한다.

2.4 2014년 이후

유아인은 동년배 배우 중에서도 손꼽히는 연기를 선보이면서 독보적인 이미지를 구축해 20대 대표 배우로서 인정받았다. 그러나 흥행 면에서는 다소 주춤한 것이 사실이었다. 2013년 10월 ‘아이즈(ize)’와의 인터뷰에서 “생각해보면 내 흥행력에 비해 나는 너무 큰 영광을 누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같은 해 5월 잡지 <Geek>과의 인터뷰에서는 20대가 끝으로 가고 있는데(당시 한국 나이로 28세), 자신의 20대를 대표할 만한 작품을 만나지 못한 것 같아 갈증이 난다고 밝혔다. 유아인은 이 시기 고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인터뷰했다.

내가 나한테 질렸다. 관객들도 나한테 질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많은 작품을 한 건 아니지만 아무리 다른 작품을 하려고 해도 자꾸 내가 좋아하는 걸 하게 됐고, 그런 내 자신에 질렸다. 단순히 캐릭터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연기 스타일이 일관성이 생긴 것 같았다. 뭔가 변화가 필요했다.

―2015년 8월 3일 ‘일간스포츠’ 인터뷰

내 스스로 관객 입장에서 유아인을 바라봤을 때 지루한 면이 없지 않았다. 예전에는 ‘당신들이 좋다고 해도 내가 좋아하는 거 할 거야’라는 입장이었다면 지금은 ‘그게 좋다면 한번 해볼까’ 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웃음) 나 혼자만의 예술이나 놀이가 아니니까.

―잡지 <맥스무비> 2015년 9월호

2014년 2월에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에서 더빙을 맡았다. 장형윤 감독이 말한 바로는, 먼저 정유미에게 시나리오를 건넸는데 놀랍게도[10] 수락을 했고, 정유미가 다시 유아인을 추천했다고 한다. 연예인이 더빙했다는 사실에 성우 팬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장형윤 감독은 본래 비전문 성우를 자주 기용했으며 배우들이 거의 노개런티 다양성 영화에 참여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유아인 본인도 언론시사회에서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애니메이션과 우리나라 영화의 다양성을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는 감독님에게 조금이나마 도움됐으면 하는 생각에서 참여하게 됐다”면서 참가 자체에 의미를 두기도 했다.

같은 해 3월에는 《우아한 거짓말》에 추상박 역할로 출연하여 극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백문이 불여일견. 사진을 보자. 대충 아래의 모습으로 영화 내내 등장한다.

흔한 공무원 준비생의 비주얼. 균형미 있는 헤어 스타일.
대략 600년 전에도 비슷한 걸 본 것 같은데.. 커피 맛있네요... 맥심?

2014년 드라마 《밀회》에 남자주인공 이선재 역으로 출연하였는데 상대 여배우 김희애와는 무려 19살 차이가 나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캐스팅 당시 유아인은 영화 《베테랑》에 이미 캐스팅된 상태였고, 미국에 체류 중이었다. 유아인이 해외에 있었기 때문에 제작진 측에서 연락이 잘 닿지 않자, 김희애가 직접 유아인에게 연락했다고 한다. 유아인은 천재 피아니스트 캐릭터를 위해 피아니스트의 영상들을 참고하며 실제로 타건했다.[11] 함께 출연했던 배우 윤복인이 말한 바로는, 실제로 타건하되 피아노 울림판을 수건으로 막아 놓아 연주 소리가 나지 않도록 한 후 촬영했다고 한다.#인터뷰 기사. 건반을 두드리며 연주하는 연기는 실제 유아인이 직접 하고, 그 위에 대역인 전문 피아니스트의 연주 소리를 입히는 방식이다.#기사.

완득이》 이후 흥행 면에선 크게 터트리진 못했는데 종편으로는 상당히 높은 5%대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방영 내내 VOD 다운로드 순위 1위를 기록했으며, 일본과 중국 등에 방영되어 호평을 받았다.이거 특급칭찬이야 드라마 자체의 완성도도 높았지만 극 중 순수하면서도 돌직구 발언을 하는 이선재 캐릭터를 완벽히 소화하며 연기력을 또 한 번 인정받아 대표작을 추가했다. 배선영 칼럼니스트는 정제되지 않은 발언들 탓에 그간 유아인에 대한 평가가 호불호로 나뉘었었으나, 《밀회》를 통해 그가 아주 귀중한 배우라는 것을 증명했다고 평가했다.

유아인 본인도 《밀회》에 대한 애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편이다. 드라마 종방 이후 이례적으로 자신의 페이스북에 긴 소감문을 남기기도 했다.(전문은 여기에서 확인.) 방영 전 인터뷰에서는 순수하고도 평범하지 않은 스무 살[12]인데다, 예술적인 캐릭터이기 때문에 그간의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인터뷰 기사. 제작발표회에서 한 발언을 덧붙인다면, 그간 반항기 어린 인물들을 연기하느라 각목을 들거나 복싱을 했는데, 섬세하게 음악을 표현하는 연기를 해서 예술적으로 큰 쾌감을 얻었다는 것이다. 방영 후 잡지 <더블유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는 “《완득이》 이후로 한동안 더 나아가지 못하고 맴도는 느낌이었는데 《밀회》를 통해 한 발짝을 떼게 된 것 같다”고 표현하기도.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 오픈토크에서는 이선재가장 좋아하는 본인의 캐릭터로 꼽기도 했다.

드라마 《밀회》가 끝나기가 무섭게 두 편의 영화를 찍었다. 먼저 2014년 3월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이 크랭크인했고, 안하무인 재벌 3세 조태오 역을 맡아 처음으로 악역에 도전했다. 유아인은 《밀회》 촬영 전 이미 《베테랑》에 캐스팅된 상태였다. 하지만 제작사에 《밀회》에 반드시 출연하고 싶다며 양해를 구했고, 《밀회》 후반부와 《베테랑》 초반의 촬영을 동시에 소화했다.[13] 제작사 측은 유아인을 위해 스케줄 상 액션이나 어려운 장면의 촬영은 뒤로 미루는 등 배려를 해줬다.#인터뷰 기사. 후에 홍보 인터뷰에서 선한 인물과 악한 인물을 동시에 연기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냐는 질문에 “처음엔 덜컹덜컹했다. 숨기려고 많이 애썼다. 집중 못 해서 어설프게 연기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안 됐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했다”고 털어놨다. 또한 “선재를 연기할 때는 굉장히 편했다. 늘 해오던, 좋아하는 연기 스타일이었다. 반면 조태오는 너무 어려웠다. 첫 악역 도전이지 않았나. 치밀하고 세밀하게 접근했다”고 말했다.

류승완 감독은 유아인이 2013년 《깡철이》 홍보 차 부산국제영화제에 찾았을 때 《베테랑》의 시나리오를 건넸다. 당시 조태오의 캐스팅은 쉽지 않았다고. 류승완 감독은 “배우들이 광고에도 나와야 하고 이미지 신경을 많이 써야 하니깐 섭외가 쉽지 않더라”며 “실제 몇몇 배우에게 보내고 바로 거절당했다”고 회상했다. 와중에 부산국제영화제 사석에서 유아인을 만났던 것. 유아인은 영화에 관심을 보였고, 류승완 감독에게 소속사가 아닌 자신의 개인 이메일로 시나리오를 보내달라고 했다. 그러나 처음 받은 시나리오에는 조태오에 대한 설명이 장황하게 적혀있었고, 유아인은 설명을 다 빼고 더 시원하게 나쁜놈으로 그려달라고 했다. 류승완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영화 얘기를 했는데 관심 있어 했죠. 시나리오를 보냈고, 바로 연락을 받았어요. 아인이가 ‘감독님, 이 인물 설명이 너무 많아요. 그냥 나쁜 놈 아니에요?’라고 했죠. ‘그거야, 네가 거절할까 봐 설명을 완전 많이 붙여넣은 거지!’라며 쾌재를 불렀어요.(웃음)”

사실 유아인은 평소만큼 자신 있지는 않았지만, 본인의 스타일로 악역을 풀어내려고 노력했다. 본인 내면에 있는 천진함과 소년스러움을 활용하여 나쁜 짓을 해도 흡사 아이가 벌레 괴롭히듯이 표현하고자 했다고. 조태오의 의상과 관련해 직접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으며, 날 선 느낌을 원한 감독의 생각과는 다르게 오히려 5kg을 찌우기도 했다. 영화 후반 명동 싸움씬을 촬영할 때는 어깨근육이 파열되기도 했다. 어쨌든 이렇게 고생한 덕인지, 2015년 8월 5일 개봉[14]한 《베테랑》은 8월 29일 천만 관객을 돌파했고, 최종적으로 1,300만 이상의 관객을 모으면서 2015년 개봉한 영화 중 흥행 순위 1위에 랭크됐다.

2014년 7월 《베테랑》의 촬영이 끝나기가 무섭게 영화 《사도》가 크랭크인했다. 2014년 5월, 영화 《사도》의 출연확정 기사가 떴는데 그야말로 ㅎㄷㄷ한 라인업으로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15] 유아인은 사도세자 역으로 10대 중반부터 뒤주에서 생을 마감 할 때까지 연기했다. 촬영 중 머리를 박는 장면이 있는데 실제로 돌에 박았고 그때 머리가 깨지고 진짜 피를 흘리면서 부상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언론시사회에서 “육체적 고통보다는 감정적인 연기가 더 힘들었다”고 말하면서 인물이 느끼는 외로움과 운명을 거역하고 광인으로 변하는 모습을 적절하게 연기하는 데 많이 애를 썼다고 털어놨다. 《사도》는 2014년 10월 크랭크업했다.

영화 《베테랑》이 천만 관객을 돌파하고 조태오 캐릭터로 연기력과 대중성을 동시에 인정받고 있던 2015년 9월 16일 《사도》가 개봉했다. 영화 공개 후 평단과 기자들 사이에서 호평을 받았고, 전국 관객 620만을 넘기며 2015년 개봉한 한국영화 흥행 4위에 올랐다.[16] 사실 작품이 연달아 공개되었고 안하무인 악역 캐릭터의 임팩트가 커서 관객의 몰입을 방해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었으나, 오히려 두 영화에서 모두 훌륭한 연기력을 선보이면서 연기 잘하는 젊은 배우로 대중들에게 각인되었다.

유아인은 《사도》에서 연기할 수 있었던 것이 영광스럽다고 표현한 바 있다. 젊은 배우가 좋은 배역을 만나는 게 쉽지 않은데, 깊은 감정을 연기할 수 있어서 행운이었다고. 심지어 2015년 홍보인터뷰에서, 《사도》의 개봉을 손꼽아 기다려왔으며 ‘12년간 준비했다’고 말할 정도로 조금씩 추구해왔고 걸어왔던 길의 정점이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다른 인터뷰를 인용하자면, 연기하면서 보여줄 수 있는 감정의 진폭이 큰 데다, 불안하고 어두운 청춘 캐릭터를 표현하기 좋아했던 유아인으로서 20대 마지막(촬영 당시 한국 나이로 29세)에 만날 수 있었던 정점의 캐릭터이기 때문에 ‘베스트 오브 베스트’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사도는 제가 해왔던 그리고 그리고자 했던 인물의 끝판왕이에요. 정점에 있는 작품이죠. 톤도, 사도라는 인물에 대한 성질도 그래요. 불안한 청춘, 반항아 그런 모든 것들의 집약체 같은 인물이에요.

―2015년 9월 10일 ‘마이데일리’ 인터뷰

2015년은 유아인에게 상당히 고무적인 해였다. 동년배 연기자 중에선 연기력으로 상위권을 인정받으며 드라마와 영화에서 상당히 괜찮은 필모를 쌓아가고 있었다. 이러던 중 《베테랑》에서 동년배 남배우들 가운데 손꼽히는 악역 연기를 선보여 연기파 배우라는 인식을 대중들에게 확실히 인식시켰다. 사실, 유아인 정도의, 이미 남주인공급으로 올라선 젊은 배우가 악역을 자처하는 경우도 많지 않기도 하고.[17][18][19] 연이어 개봉한 정통사극 《사도》에서도 비극적 인물의 어둡고 깊은 감정을 잘 보여줬을 뿐 아니라 흥행에도 성공해, 대중들로부터 믿음직한 배우로 자리매김했고 최고의 대세 배우로 떠오르며 전성기를 맞았다.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아인시대’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특히 《사도》를 통해 제36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20]을 거머쥐고 한국갤럽에서 조사한 ‘2015년을 빛낸 영화배우’ 1위[21]에 오르는 등 커리어적으로 큰 성과를 이뤄냈다. 2015년 12월 이승한 칼럼니스트는 《밀회》를 지나 《베테랑》과 《사도》에 도달한 지점이 유아인의 “필모그래피에서 의미심장한 방점이다”면서 유아인은 “필모그래피 내내 이젠 말라붙어버린 ‘청춘’이란 단어에 생기를 불어넣고 단어의 평면에 깊이를 더해 ‘지금 여기’의 청춘의 얼굴을 입체감 있게 그려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기사. 같은 해 10월 정시우 기자는 “겸손이 미덕으로 평가받는 쇼비지니스 세계에서 그의 행보는 위험한 구석이 있었고, 실제로 그가 내뱉은 말들은 누군가에게 ‘허세’로 평가받기도 했다”면서 《밀회》부터 시작돼 2015년을 거친 유아인의 행보는 “그가 단순히 슈퍼스타에 등극했다는 면보다, 그의 재능과 취향이 보다 넓게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평했다.#기사.

그 유아인의 소년성에 대해 얘기할 때 모두가 기억하는 장면, 데뷔작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에서 그가 마지막에 꼬마로부터 받아든 질문 “훌륭한 소년이 될 거예요?”로부터 10년을 충실히 채워왔다. 진정 그의 다음이 기다려진다.

―주성철 편집장, <씨네21> 1022호 에디토리얼 「유아인 다시 보기」

선명하게 나라는 사람과 나라는 배우를 보여주고 싶다는 강박이 작용했다.《밀회》가 아주 컸다. 《밀회》가 없었다면《베테랑》도 《사도》도 그렇게 행복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밀회》는 장르로, 선 굵은 캐릭터로 넘어가는데 거부감이 덜했던 작품이다. 《밀회》로 시작해 《베테랑》과 《사도》로 이어졌던 것 같다.

―2015년 10월 8일 ‘노컷뉴스’ 인터뷰

사실 유아인은 위의 인터뷰를 통해 밝혔듯, “그간 임팩트 있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는 강박”이 있었기 때문에 《밀회》를 시작으로 《베테랑》과 《사도》를 선택했다. 주간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는 20대의 마지막 한 해에 찍은 세 작품에 대해서 “이십 대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이 있지만 그 안에서 얻은 최대치의 행운이 이번 작품들인 것 같다”고 말했다. 《밀회》의 이선재가 유아인이 가진 소년성의 엑기스였고 《사도》의 사도세자가 유아인이 추구했던 연기 선상의 끝이라면, 《베테랑》의 조태오는 유아인에게 있어 “번외편 같은 인물”이다. 특히 많은 관객들이 《베테랑》을 사랑한 덕분에 본인의 연기 스펙트럼이 넓어진 것을 “다리를 조금 옆으로 찢을 수 있는 배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2015년 7월에 영화 《좋아해줘》가 크랭크인 했고 8월부터는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촬영에 돌입했다.[22] 영화 《좋아해줘》는 같은 해 10월에 크랭크업했고, 2016년 2월 17일에 개봉했다.[23] 영화에서 유아인은 연예인병에 걸린 우주대스타 노진우를 연기했다. 옴니버스식 로맨틱 코미디물로 유아인이 로코라니! 까칠한 드라마 작가로 분한 이미연과 커플을 이룬다.이쯤되면 연상녀 전문 남배우인 듯 유아인에게는 10대에 데뷔한 이후 첫 로맨스물이다. 본인도 이런 사실이 놀랍다고. 하지만 로코에 대한 갈증만 더 키웠다는 카더라. 아무리 옴니버스 형식이라지만 분량이...[24] 2월 26일 GV에서 한 말에 따르면, 주변을 의식하는 연예인 캐릭터를 위해 스타일리스트와 함께 직접 의상을 골랐고, 영화 속의 의상이 100% 본인 옷이라고 한다.

2015년 10월부터는 SBS의 무려 50부작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가 방영됐다. 이 드라마는 2011년 방영되었던 《뿌리깊은 나무》의 프리퀄로 유아인은 여기서 역사급 반항아 이방원 역을 맡았다.[25] 드라마 《패션왕》에서 호흡을 맞췄던 신세경과 재회했고 김명민, 천호진을 비롯해 변요한, 윤균상 등과 함께 열연했다.[26] 본편 전에 방영된 스페셜 방송에서 유아인은 차기작으로 50부작을 선택했다고 하면 선배들과 스태프들이 “왜?”라고 물었는데, “이방원 역이에요”라고 하면 “네가 할 만한 이유가 있구나”라고 반응했다고 전했다. 《육룡이 나르샤》는 6개월간 50부 연속 1위의 시청률을 유지하며 2016년 3월 22일 대장정을 마쳤다. 유아인은 순수하면서도 혈기 넘치는 소년 이방원의 모습부터 욕망과 광기를 폭발시키며 왕위에 오르지만 권력 투쟁 속에서 혼란과 좌절을 겪으며 고뇌하는 이방원의 모습까지 선과 악으로 단정할 수 없는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연기하며 유아인만의 새로운 이방원을 창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유아인은 종영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이방원을 연기하는 데 가장 많은 시간 동안 공을 들였고 연기적으로 다채롭게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에 “작품을 찍으면서 성장하는 것을 느낀 신선한 경험이자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밝혔다.

3 작가 유아인?

3.1 글쓰기 활동

2006년부터 쭉 미니홈피 게시판에 본인이 쓴 글을 게시하고 있다. 수필 같은 산문을 담백하게 잘 쓰고, 시의 경우에는 김경주 같은 젊은 시인 느낌이 나기도 한다. 배우로서보다 오히려 글 쓰는 것으로 소통한 적이 많았다고 하는 등 꽤 애착을 가지고 있다. 글쓰기를 취미라고 할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지도 않고, 가끔은 글 쓰는 사람의 직업의식을 느끼기도 한다고. 이에 따라 팬들이 작가나 시인으로 부른다. 실제로 ‘연기하는 유아인’에 반했다가 ‘글 쓰는 엄홍식’으로 출구 봉쇄된 팬들도 부지기수. 그러나 현재는 미니홈피 게시판이 닫혀서 글을 볼 수가 없다.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미니홈피 시절 다수의 시와 수필을 볼 수 있으니 관심 있는 사람들은 ‘엄홍식 작은집’ ‘유아인 작은집’으로 검색을 해보도록 하자. 인터넷 커뮤니티에 종종 올라오는 유아인의 글 모음은 대부분 미니홈피 활동 시절(2006년~2011년)의 글들이다.

  • 2009년 <야심만만2>에 출연하여 즉흥적으로 시를 쓴 후 낭독하기도 했다. 고화질 영상을 원한다면 여기로.
  • 2016년 시 전문 월간지 <시(詩, see)> 1월호에서 유아인이 시를 즐겨 쓴다는 사실을 특집기사로 실었다. 해당 월간지에 실린 유아인의 2개의 시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 유아인이 편의점과 관련된 일화를 쓴 수필의 만화 버전이 있다. 궁금하면 이 블로그에서 감상.
  • 초등학교 6학년 때 썼다는 시가 커뮤니티에 공개되기도 했다. 학교 문집에 실려 있다고 한다.

다만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트위터의 트윗들이 더 많이 화제가 된 편이다. 유아인은 2015년 7월 언론인터뷰에서 “트위터 글은 특히 모나게 쓴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유아인은 <씨네21>에 영화 《클로저》 감상문이나 잡지 <인스타일>과 <무비위크> 등에 본인의 에세이를 기고한 적이 있다. 특히 2012년 10월부터 2013년 3월까지 잡지 <데이즈드&컨퓨즈드(Dazed&Confused)>에 6개월간 칼럼을 기고했다. 넷상에서 종종 게시되는 「공짜, 엄마」 혹은 「인디라는 껍질」 등의 칼럼은 이 시기에 쓴 글이다. 현재는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크루이자 브랜드 잡지 <톰 페이퍼(Tom Paper)>의 편집장으로서 쓴 인트로(intro)를 통해 유아인의 글을 읽을 수 있다.

음악가의 본질은 음악에 있고, 배우의 본질은 연기와 작품이며, 작품은 곧 작가와 감독의 본질이기도 하다. 그들은 자본의 논리에 매몰되어 본질을 잃지 않는 한 충분히 창조적인 채로 어디에라도 존재할 수 있다. 미디어의 순기능을 적절히 이용하고 본질을 잃지 않는 영민한 아티스트의 출현은 지극히 반길만한 일이다. 인디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대중은 보다 유연해졌다. 만일 우리의 기대가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마라톤을 완주하는 판자촌의 영웅을 향하는 것이라면, 거기에 인디는 없다.

―잡지 <데이즈드&컨퓨즈드> 2012년 12월호 「인디라는 껍질」 중에서

내 친구의 외상 장부에 내게 얼마짜리 밥을 몇 번 샀는지 따위의 기록은 없었으면 좋겠다. 내가 준 생일 선물이 숫자로 환산되어 응당한 대가로 돌아오지 않아도 서운치 않았으면 좋겠고, 지인의 결혼식에 낸 축의금의 숫자가 내 마음의 크기를 대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혹여나 내가 낸 10만원짜리 봉투가 마이너스로 돌아오더라도 괘씸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친과 사별한 또 다른 친구가 장례식에 오지 않은 지인들을 일일이 데스 노트에 적으며 자신이 그들에게 준 것들을 세고는 배신감에 치를 떨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은 내게 반쯤 얹혀사는 친구가 그 어떤 부채 의식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친구는 10평 오피스텔로부터 도망갔던 투룸 집 안방의 주인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전쟁 같은 세상 속에서 절실한 동지애 이상의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정도는 어수룩한 낭만을 품는다.

―잡지 <데이즈드&컨퓨즈드> 2013년 2월호 「공짜, 엄마」 중에서

이렇다 보니 책을 내자는 구체적인 제안이 생각보다 많다고 한다. 베스트셀러 출판사가 뽑은 저자로 삼고 싶은 스타에 꼽히기도 했다. 글에 욕심이 많지만(잡지 <인스타일> 2011년 BIFF 특별호) 이러한 제안들을 정중히 거절했다. 책을 내고 싶지만 아주 개인적인 작업으로 처음 선을 보이고 싶고(주간지 <하이컷> 74호) ‘유아인이 했다’는 이유로 폄하하거나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많을 수 있으므로 굳이 본인의 이름을 걸고 할 필요가 없다고(2013년 10월 ‘스포츠경향’ 인터뷰) 생각하기 때문이다.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 오픈토크에서는 책을 낼 계획이 없느냐는 질문에 시집을 내고 싶지만 다른 이름으로 내고 싶다고 대답했다. 2016년 팬들과 함께한 《좋아해줘》 상영 후 GV에서 말하기를, 전업 작가들과 함께 서점에 자신의 책이 꽂힐 만큼의 염치가 아직 생기지 않았다고. 그러나 출간에 대해 늘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으며, 스스로도 만족할 만한 수준의 글이 나오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글을 자주 쓸 뿐만 아니라 시를 자주 읽으며, SNS를 통해 종종 본인이 읽은 시집을 추천한다. 본인의 서른 살 생일에는 심보선의 시를 올리기도 했다.[27] 2011년 ‘텐아시아’와의 인터뷰에서 시를 읽으면서 무엇을 얻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일종의 이미지 트레이닝일 수도 있다. 시는 짧은 글이고, 그래서 빨리 읽을 수 있다는 게 아니라 그 짧은 텍스트 안에서 소설만큼의 혹은 그 이상의 텍스트를 읽어내고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나 역시 시를 쓰고 시를 읽는 사람이라는 게 연기하는 데 굉장히 큰 도움을 준다.”

3.2 SNS 활동과 관련 논란

자신의 SNS를 통해 소신 발언을 하기도 한다. 화제가 됐던 일 중 하나가 2009년 영화 《하늘과 바다》의 제작자 주호성의 월권 문제 발언. 당시 《하늘과 바다》는 개봉도 하기 전 대종상 후보에 올라 논란이 일어난 상태였다. 또한 영화의 제작자 주호성은 “영화가 개봉하자, 일부 언론의 흔들기와 포스터조차 부착하지 않은 극장도 많은 가운데, 극심한 교차 상영이 전국적으로 실행됐다. 그것을 흥행부진으로 보도하며 흔들었던 언론의 악순환에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면서 개봉 12일 만에 영화를 전면 회수했다. 이에 유아인은 주호성이 월권을 행사했다고 주장한 글을 미니홈피에 게재했다. 현장에서 주호성이 직접 메가폰을 잡은 일이 많았고, 흥행 실패 이유를 교차상영으로 돌려 관객의 평가를 겸허히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비판한 것. #기사 유아인은 이 글을 올렸다가 삭제했으나 인터넷 상에서 화제가 되면서 언론에 보도됐다. 이에 주호성은 “촬영상 제작자로서의 요구사항을 감독에게 의논하여 진행시켰으며, 독선적이거나 월권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면서 월권 행사에 대해 전면 반박했다.[28] 그러자 유아인은 “제가 언급한 사실 그 자체에 대해서는 추호의 부끄러움이 없으며 번복도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미니홈피의 글을 복구했다. 당시 유아인은 경솔한 행동을 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인지도가 낮은 신인 배우로서 상당히 용기 있는 발언을 했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줬다는 평이다. 더불어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주호성의 해명 전문 중 “신고해서 오히려 더 늦게 받은 모양이 되었었죠”라며 임금 체불을 신고한 스태프를 저격한 내용이다. 유아인의 글에서도 “투자상의 문제와 일부 스태프 교체, 촬영 종료 후 임금 체납까지 제작 과정부터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는 내용이 있는데, 유아인과 주호성의 설전을 계기로 영화계의 고질적인 문제점인 스태프 임금 체불 문제까지 수면 위에 드러난 셈이다.

2010년 이후부터는 트위터를 애용하는데, 의미심장한 멘션을 꽤 남긴다. 할 말은 하고 살자는 성격인지, 사회 비판적인 내용도 자주 올렸다. 미니홈피나 트위터에 올리는 글로 보아 정치적으로 진보주의, 자유주의 성향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 2012년 대선을 전후해서 안철수 후보 사퇴 관련 글을 남긴 적도 있었고 진보우월주의가 있었다는 글을 쓰기도 했다. MBC에서 방영한 타블로 스페셜에 대한 감상이나 레이디 가가 내한공연과 참정권 관련 트윗은 SNS를 잘 활용한 예로, 이를 통해 ‘소신남’ 혹은 ‘개념 연예인’으로 꼽히기도 했다.[29]

다만 이런 SNS 활동이 으레 그렇듯 몇몇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로 역사 왜곡 문제로 줄곧 비판을 샀던 출연작 《장옥정, 사랑에 살다》가 종영한 후, 이에 대한 취중 트윗을 날려 논란을 일으켰다. 주요 골자는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역사의 재해석으로 봐달라’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논란이 되었던 문구는 “다 보고있는 앞에서도 날조하고 어제의 사실인데도 부정하고 어느 백성도 모르게 잘난 지들끼리 한문 텍스트로 기록한. 그것이 역사가 아닌가”라는 부분인데, 괜히 쓸데없는 사족을 붙여 그 사족이 자신이 의도하고자 한 본의를 덮어버린 꼴이 됐다. 본인은 마지막으로 “한겨레와 조선일보 중 우리는 무엇을 진실의 역사로 기억할까. 나는 모릅니다. 뭐가 진실인지. 그저 역사의 기록에 대해 그 정도의 여지는 열어두자는 말에. 조선왕조실록 폄하라니. 대단한 난독증. 좋은 것은 나쁜 걸로 나쁜 것은 더 나쁜 걸로.”라고 덧붙였다. 이는 실록을 폄하했다는 의견에 대한 반박인 듯하다.

이렇다 보니 유아인의 활발한 SNS 활동에 대한 대중들의 호불호가 극심하게 갈린다. 특유의 만연체와 사족이 붙은 말투 역시 호오가 많이 갈린다.[30] 혹자는 그의 만연체를 두고 엄마가 치킨 안 사준 걸 쓸데없이 어려운 어휘들을 선택해 열 줄로 잔뜩 늘려 징징거리는 것 같다고 하기도.(...) 물론 개인의 문체에 대해 타인이 왈가왈부할 건 아니지만 공연한 사족들로 곤욕을 치른 게 여러 번이라 비판을 많이 받는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유아인의 글이 모두 가독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며, 본인의 생각을 솔직하게 날것 그대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호감 어린 반응 역시 많다. 이처럼 유아인의 SNS 활동은 후술한 것처럼 그의 이미지 형성에 여러모로 많은 영향을 줬다. 하지만 유아인의 글이 항상 ‘난해하다’라는 프레임으로 가둬지거나, 개인적 성격까지도 궁예당하며 선입견이 씌워지는 경우도 많아 이로 인한 위험 역시 큰 셈이다.

유아인 스스로도 이러한 호불호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하다. 한 인터뷰에서 “이슈메이커였다.(웃음) 헛소리도 잘 하고 그랬다. 후회하진 않는다. 그런데 칼이 좀 둔탁했다. 하긴 애가 하는 말이 뭐 칼 씩이나 되나”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거침없이 발언하는 편은 아니라고 한다. 말 한 마디 하고 나면 밤에 잠을 못 잘 정도로 신경 쓰고 걱정을 한다. 2012년 인터뷰에서는 “사실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고 밝혔는데, 그럼에도 계속 발언을 한 이유에 대해 “사실 구설수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조용히 있는 게 최고다. 그러나 그게 옳은 건가 싶다”고 말했다. 투박하더라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싶고, 배우로서 두렵지만 용기를 내보는 것이라고.

2014년 2월 18일에는 유아인이 최진혁, 슈퍼주니어 성민, 초신성 성제 등 7명과 함께 제47차 서울경찰홍보단의 오디션에 합격했다는 기사가 발표되었는데, 연예병사가 폐지되니 경찰홍보단으로 빠지는 것이 아니냐는 부정적인 여론이 많았다. 특히 평소 트윗으로 개념 발언을 많이 한 유아인이 다른 7명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집중적으로 욕세례를 받았다. 그러자 3월 6일 트위터에 ‘다이다이 함 뜨까?’라며 악플러들을 도발했고, 경찰을 홍보하겠다는 것과 대치되는 경솔한 행동이라고 비난받았다. 사실 당시 일정 수위가 넘은 악플들이 많았는데, 특히 유아인의 가족까지 언급하는 등 패드립도 넘쳐난 데다가, 그 내용을 유아인의 트위터에 직멘으로 날리는 등 상황이 심각했다. 연예인이라고 악플을 다 참아낼 수는 없을 정도. 이후 최종 면접에서 탈락했다는 기사가 있었지만,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에 본인이 스스로 면접을 포기했다고 정정했다.

2014년 중반 이후로는 트위터 대신 인스타그램 업데이트에 주력하고 있다. 영화나 노래, 책 등을 추천하거나 일상 사진을 게시하면서 활동하는 중. 의외로 본인의 셀카를 올리는 경우는 적다. 한 인터뷰에서 SNS 활동이 뜸해진 이유에 대해 물어봤는데, “요즘은 날카롭게 칼을 갈고 있다. 어느 정도 조심을 해야할 것 같다. 누가 나한테 철들어서 SNS 안 하는 거냐고 하던데, 그런건지 싶기도 하고. 하고 싶은 말은 다른 방식으로 글을 쓰려고 한다”고 대답했다. 그러다가 2015 대종상 시상식 논란 때 오랜만에 트위터에 “꼰대의 품격”이라는 멘션을 남겼는데, 트위터리안 유아인이 돌아왔다며 이번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에 동의했다.

2016년 3월 인터뷰에서는 SNS를 자제하는 것에 관해 자세하게 밝히기도 했다. 특히 정치적 견해를 밝히며 글을 썼던 당시 심경에 대해 묻자 “그냥 별거 없이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다”고 대답하면서도 “지난 3년간 정치적인 SNS를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정치 참여에 관한 질문에는 “개인의 영달을 위해 살아가기에 정치는 가장 중요하다. 우리는 어떤 정치인을 선택할지, 어떤 세상에서 살아가야 할지를 선택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투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히면서도 “정치 발언은 일단 이 정도만 얘기하고 싶다”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또한, SNS 발언을 줄인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요즘 내가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것이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그리고 타인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오해가 만들어지고, 그것을 해명하는 것도 내 책임이라 생각한다. 과거와 달리 효과적인 방법으로 최대치의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이 지금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거침없음이라고 생각한다. 최대한 솔직하고 진솔하게 얘기하지만 불필요한 오해나 잡음은 최소화 하고 싶다. 그렇게 많이 이해받고 사랑받고 싶다. 그러니 조심하게 되더라. 그것이 스스로에 대한 책임이자, 날 사랑해주시는 분들에 대한 내 책임이기도 하다.

―2016년 3월 23일 기자간담회 중에서

4 스튜디오 콘크리트

스튜디오 콘크리트는 20대에 꼭 이루리라 다짐 했던 저의 숙원 사업이었어요. 이런 작업을 통해 예술에 대한 높은 인식의 벽을 허물고 싶었죠. 다가올 저의 30대는 스튜디오 콘크리트와 함께일 거예요.

―잡지 <그라치아(Grazia)> 2014년 12월 제2호

2014년 11월 21일 ‘스튜디오 콘크리트’라는 아티스트 그룹을 결성했다.#웹사이트 #인스타그램 #론칭파티 모습. 유아인 본인은 대표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브랜드 잡지 <톰 페이퍼(Tom Paper)>의 편집장으로 활동 중이다. 스튜디오 콘크리트는 브랜드 잡지의 발간을 시작으로 아티스트들의 전시회를 비롯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갤러리, 라이브러리, 아틀리에 및 숍과 카페가 복합된 오픈형 종합 창작 스튜디오도 열었다.[31] 유아인은 공동 대표인 차혜영, 아티스트 권철화, 김재훈, 권바다, 큐레이터 김지은, 에디토리얼 디렉터 박노섭과 머리를 맞대 이 공간을 만들었다. 평소 친한 친구 사이였던 이들은 어느 날 술자리에서 함께 뭉치면 무언가 할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을 얻었고, 6개월간의 회의를 거쳐 북한남 삼거리에 공간을 마련했다.

유아인과 스튜디오 콘크리트 크루들[32]

유아인은 스튜디오 창립 배경에 대해 “크루들이 다 제 친구들이지만 전 그들의 작품에 감동을 받았고 인간성에 감동받았거든요. 이 보석 같은 친구들을 세상에 더 널리 알리고 싶었어요. 우리가 아이돌은 아니지만 그룹으로 뭉쳐보면 어떨까 싶었던 거죠(웃음). 혼자서는 발을 뻗기도, 몸을 누이기도 힘든 세상이지만 뭉치면 뭔가 해낼 수 있지 않을까, 힘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라고 답했다.

앞으로 스튜디오 콘크리트가 하고자 하는 일은 대중과 예술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것. 유아인은 “제가 생각하는 예술은 하는 게 아니고 발견에 가깝거든요. 대중의 입장에서 보면 예술품을 구매하는 일은 내 주변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거기에 프레임을 씌우고 무엇을 예술이라고 부를 것인가를 결정하는 행위인 것 같아요”라며 “엽서 하나를 사서 침대 머리맡에 붙이든 마음에 드는 잡지 페이지를 찍어서 책상 옆에 붙이든, 그로 인해 아무것도 아니었던 평면에 깊이가 생기잖아요. 저는 특정한 어떤 걸 팔고 싶다기보다 그런 행위에 동참하고 싶은 거예요. 사람들이 예술이라는 개념을 쉽게 느끼게 하는 것이 지금 저의 가장 큰 숙제이자 과제인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또한, 대중예술인으로서 자신의 유명세를 순수아티스트들의 활동 저변을 넓히는 데 활용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스튜디오 콘크리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인터뷰(<그라치아> 2015년 5월 제2호)를 보면 알 수 있다. 관심 있다면 소속 아티스트들을 소개하는 다음 두 개의 잡지 기사를 읽어봐도 좋을 듯. #기사1 #기사2

스튜디오 콘크리트는 소속 작가들뿐만 아니라 외부 작가들의 개인전 및 협업전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또한, 내부 프로젝트를 비롯해 사회 환원 사업, 영리 기업과의 협력 사업을 병행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Series 1 to 10’ 캠페인이나 자선 바자회, 럭키슈에뜨 룩북 제작, <톰 페이퍼> 발간, YG Stage 기획 화보 디렉팅, <보그> 20주년 발렌시아가 게릴라 전시회 등등. 2016년 5월에는 출범 1주년을 맞아 그간의 활동들을 선보이는 전시회를 마련했다. 전시회에서 유아인이 대표이자 친구로서 크루들에게 남긴 편지글이 공개되기도 했는데, 스튜디오의 설립 의도와 방향을 엿볼 수 있다.#편지1, #편지2, #편지3. 이밖에도 국제아트페어 ‘2016 아트부산’ 참여,[33], 사이키델릭(psychedelic)이나 자연을 주제로 하는 기획전, 2015년 11월 파리 테러 때 ‘Peace for Paris’ 이미지를 만들어 유명한 그래픽 디자이너 장 줄리앙(Jean Jullien)의 내한 전시 등을 진행하면서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2016년 10월에는 새로운 아트 레이블 ‘씨씨알티 에어로스페이스(CCRT Aerospace)’를 선보였다. 메인 컨셉은 우주이며 미술, 퍼포먼스, 음악, 패션 등의 다양한 예술 활동을 스토리 형식으로 보여줄 예정이다. 유아인은 총괄 기획을 맡았으며 스튜디오 콘크리트 크루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들도 참여한다.#자세한 설명.

5 이미지

필모그래피를 보면 초기작부터 불우하고 반항적인 인물을 자주 연기했다. 이러한 이유로 ‘반항아’라는 단어가 유아인의 수식어로 자주 인용된다. 개인적으로도 “유독 성장통을 심하게 겪었고 사회에 불만도 많았다”고. 사실 유아인은 그간 맡은 반항아 캐릭터들이 이미지만 거칠 뿐 오히려 현실 순응적이었다며, 《사도》의 사도세자 역할이 진짜 반항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본인의 캐릭터에 있어서 정점이라고 밝힌 바 있다. 2011년 《완득이》 언론시사회에서 반항아 캐릭터를 연달아 연기한 것에 대해 “내가 맡았던 캐릭터가 공통적으로 반항아이거나 사회에 불만을 품고 있는 인물, 부모에 반기를 드는 역할, 불우한 환경에 있거나 가슴 속에 응어리가 한가득 있는 캐릭터였다”며 “내가 생각하는 현실이 그것이고 내가 그 시기에 놓여 있다. 아직 매끈하게 세상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 인물들에 관심을 쏟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15년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는 “기존 질서의 의문을 던지는 게 반항아의 역할”이라고 말하기도. 이러한 이미지 덕인지 이준익 감독은 《사도》의 제작기 영상에서 유아인에게 존재하는 반골 기질이 사랑스러워 캐스팅했다고 밝혔다.

반항아의 연장선으로 아웃사이더의 이미지 역시 강했다. 학교를 자퇴하는 등 제도권에 어울리지 못했던 유아인의 개인적인 경험도 얹어준 듯. 특히 커리어적으로 성공을 거두기 전에는 비주류적 느낌도 존재했다. 그러나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이후 주류로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시작했고, 전에는 아웃사이더 밖에 할 수 없는 아웃사이더였다면 이후에는 안과 밖을 오갈 수 있는 아웃사이더가 되었다고.#인터뷰 기사. 2015년에는 “욕심도 나고 잘 됐으면 좋겠고 인정도 받고 싶다. 반항심이었을까. 예전의 내가 동네 돌아다니는 개처럼 어슬렁어슬렁하며 '나를 어루만져주든 밥을 주든 마음대로 해, 흥' 하는 스타일이었다면, 요즘엔 ‘쓰담쓰담 해줘’하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이러한 점들이 유아인을 또래 배우들과 구분 짓게 한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은 사실. 그래서 독보적 이미지를 구축한 것 아니었느냐는 질문에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독보적인 척 한 거지(웃음). 난 늘 아웃사이더였다. 다른 또래 배우들을 보면 참 친근하고 예쁜데 나는 왜 이렇게 모났나 싶었다. 남들하고 같이 있으면 3등도 못할 것 같으니까 내 운동장에서 나 혼자 달려서 1등 하겠다는 야심으로 살았다.

―잡지 <매거진 M> 124호

불안한 청춘과 소년성 역시 배우 유아인을 구성하는 이미지 중 하나다. 스스로도 청춘물에 대한 갈증이 크다고. 2007년에는 “규정지어지지 않고, 안정되지 않으려 노력하고, 어찌 보면 위태로운” 청춘의 이미지가 좋다고 인터뷰했다. 또한, 청춘의 얼굴로 동시대 청춘을 대변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고 한다. 스스로 ‘번외편’이라고 밝힌 조태오에 소년성을 부여하고 사도세자 역할 역시 청춘 캐릭터로 접근하는 등 모든 캐릭터를 소년스럽게 해석하는 면이 있다.[34](백은하 기자와의 <무비스타 소셜 클럽> ‘스타 프리뷰’ 인터뷰) 강유정 평론가는 “유아인이 돋보이는 작품들에선 언제나 소년이 공존한다”면서 유아인의 매력은 어른과 아이가 공존하는 “애매성과 양가성에서 비롯된다”고 분석했다. 김선영 칼럼니스트는 “어딘가에 갇히고 붙박인 모습은 유아인의 청춘들을 지배해 온 대표적 이미지”라고 분석했다. 이어서 “구속하고 억압하는 세상에 대해 질문하고 답을 찾는 태도는 ‘소년성’의 핵심”이라면서 “유아인의 배우로서 성장은 이 청춘 성장물이 사라진 시대, 정확히는 젊은이들의 성장이 불가능해진 시대에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유아인의 인물들이 그 불가능성에 좌절하면서도 기어코 온몸으로 맞서는 소년들이기 때문이다”라고 평했다.#기사

호불호가 갈린다는 이미지 역시 존재한다. 유아인 본인도 몇몇 사람들이 자신을 ‘회전문’[35]이라 부르는 것을 안다고. 주관이 뚜렷하고 솔직하지만 까칠하고 허세 부린다는 이미지는 다소 거침없는 SNS의 멘트들로 인한 영향이 큰 듯. 이은주 기자가 “SNS에서 정치·사회 문제에 대한 거침없는 발언이 때론 그를 곤경에 빠트리기도 했지만 기획사에 틀에 갇히지 않고 자기주장이 확실한 ‘날 것’ 그대로의 이미지는 결과적으로 그에게 플러스로 작용했다”고 얘기하듯#기사 유아인의 SNS 활동은 그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반면에 최재욱 평론가가 지적하듯 “종종 SNS상에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지나칠 정도로 여과 없이 드러내는 화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그가 스타 의식이 넘치고 버릇없고 거만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최 평론가가 이어서 얘기하듯이 유아인은 다소 자아가 강하고 고집 있으며 약간의 ‘똘끼’도 남아 있으나, 예의 바르고 친절하며 남을 배려할 줄 안다고 한다. 대중에게 “접근하는 방식이 다른 이들과 약간 차이가 있고 투박할 따름”일 뿐 유아인은 “좌충우돌하면서도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성장해왔다는 것이 요지다.#기사

이렇듯 유독 선입견이 많은 편이다. 2014년 잡지 <엘르> 인터뷰에서 “나에 대한 소스를 많이 제공하다 보니 세간의 잣대가 생긴 것 같다”고 선입견이 생긴 이유를 스스로 말한 적도 있다. 자신감이 넘쳐 보인다는 시선에는 “진짜 자신 없다. 뭐가 맞는 말인지, 또 정답은 무엇인지 모른다. 그저 내가 보는 것, 아는 것, 해석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내 일이고 생각하고 표현할 뿐”이라고 말하기도. 또한 “그냥 나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니까” 대중들에게 자신이 “별난 아이로 비치는 것 같다”고 인터뷰한 적도 있다.

함께 작업한 사람들에 의하면, 조용한 편이고 세심하다. 하지만 애교는 타고난 듯? 끼부림도 낭낭하다. 배우 송강호는 유아인이 성격적으로 낯을 많이 가린다고 인터뷰했다. 《밀회》를 연출한 안판석 PD는 “자기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자기 머리로 사고하고 자기 입으로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아주 섬세하고 맑은 영혼인데 까칠하다거나 튄다는 얘기도 더러 듣죠”라며 유아인이 예민하고 섬세한 타입이라고 말했다.#인터뷰 기사 까칠하고 당돌하다는 선입견은 다소 확고한 주관에 기인한 듯. 이와 관련해 이한 감독은 유아인을 “따뜻한 마음이 있는 착한 배우”라고 하면서 “일에 있어서 자기의 좋고 싫음을 명확하게 얘기 하는 게 아직은 나이가 젊은 연기자다 보니 까칠하게 비춰질 수 있었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인터뷰. 함께 호흡을 맞췄던 신세경은 유아인이 “앞뒤가 같은 스타일”이라며(2014년 연예가중계), 자기주관이 뚜렷하고 의견을 분명하게 표현할 줄 알아서 부럽다고 말했다(2015년 <나일론> 인터뷰). 한편, 류승완 감독과 배우 김윤석을 비롯한 이들의 유아인에 대한 공통적인 표현은 ‘영민하고 영리한 배우’이다.

또한 일부 SNS와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영향으로 인해 무서운 성격의 소유자로 오해받지만, 실제로는 친절하고 매너가 좋다고 한다.#1 #2 #3. 팬서비스도 확실하게 하는 편이다.[36] 게다가 팬들 조련이 수준급 #영상1 #영상2. #영상3. 지인들에게 자주 손편지나 카드를 써주기도 하며, 기자들에 의하면 솔직하고 배려심이 있다고.#1 #2.성균관 스캔들》의 김원석 감독은 유아인이 섬세하고 자상하다며 일화를 공개했다. 촬영 중간 졸고 있었던 김원석 감독에게 유아인이 큰 종이에 편지를 써서 햇빛을 가려줬는데 ‘감독님의 피곤한 모습에 마음이 아프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인터뷰 기사. 이렇게 이중적 이미지의 공존으로 인해 선배에게 애교부리거나 들이대는 영상 등의 갭모에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유아인은 사람마다 평가가 확연히 다른 연예인으로 이미지가 형성되는 것이 오히려 흥미롭고,(2011년 <인스타일> 7월호) 대중들의 오해를 줄여 가며 성장하고 싶다고 밝혔다.(2013년 10월 ‘아시아경제’ 인터뷰) 배우로서 사랑받고 싶으면서도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행동만 하지 않는 질문에 대해서는, “최대한 나인 채로” 사랑받고 싶고,(2013년 10월 ‘아이즈’ 인터뷰) 칭찬과 욕을 동시에 들어도 흥미로운 배우, 재미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2013년 10월 ‘텐아시아’ 인터뷰)

저에게 ‘지 마음대로 하는 이미지’가 어느 정도 있다는 건 알고 있어요. (중략) 제가 인간적인 모습에 있어서도 거침없는 이미지가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중략) 누가 봐도 다 해석이 다르고, 정답이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심판대에 올라가는 직업이지만 심판되기 싫었고, 어디에도 규정되고 싶지 않다는 욕망을 갖고 살았어요. ‘어디까지 갈까, 어떤 연기까지 할 수 있을까’ 싶은 욕망이 강박으로 변하고 거기에 혼란스러움이 더해져서 지금의 제가 된 것 같아요.

―2015년 9월 30일 ‘스포츠경향’ 인터뷰

어떤 식의 대중적인 평가를 받는지도 알고 있고, 굉장히 호불호가 나뉘는 배우라는 것도 알고 있어요. 어떨 때 사람들이 유아인이라는 배우를 혼란스러워 하고 어떨 때 박수치고 어떨 때 야유를 보내는지 알고 있어요. (중략) 제가 하는 모든 행동들, 모든 말들이 ‘나를 예뻐해주세요’는 아니에요. 알면서도 모난 내 구석을 드러낼 때도 있고 조금 오그라들고 느끼할 거 알면서도 뭔가 새로운 걸 시도해볼 때도 있고. 그런 게 재밌지 않아요?

―2016년 2월 16일 네이버 V무비채널 ‘배우를 만나다’ 인터뷰

유아인은 인터넷에서 가난미가 있는 배우로 꼽히기도 했었다.하지만 조태오로 단숨에 상위 0.1%로. 게다가 사극에선 왕족을 3번이나 했다. 본인 스스로도 소외된 인물을 연기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또한 비극적인 스토리를 좋아하고 비극을 연기하는 데 매력을 느낀다고 종종 밝혀왔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필모 상 대부분의 작품들이 무거운 편이고 극 중 캐릭터는 짠내나는힘든 상황에 처해 있는 경우가 많다.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의 이방원은 사이다 드링킹이 가능한 최종 승리자이지만 마지막에는 하루하루 설레고 하루하루 두렵고 하루하루 외로운 군주로 남았다. 데뷔작 《반올림》의 아인 오빠 역시 사랑에 있어서는 새드엔딩을 맞았는데, 이러한 여파인지 이후의 작품들에서도 사랑의 결실을 보기가 힘들었다. 짝사랑으로 끝나거나, 불륜처럼 파국이 예상되거나, 쌍방으로 사랑해도 어느 한쪽이 죽었다.(...) 고아이거나 결손 가정에서 자란 경우도 많았고, 선악의 구분이 없거나 광인으로 변하는 등 절대 평범하지 않은 캐릭터들을 맡아 왔다.[37]

이처럼 나름 또래 배우들과 구분되는 필모를 쌓아온 편. 특히 트렌디한 작품 없이 아역부터 차근차근 밟아 올라오면서 인기를 얻은 점이 인상깊다. 유아인은 마이너적인 것이 본인의 근본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마이너 감성으로 메이저 배우가 됐다는 점 자체로 자신만의 영역을 확고하게 구축하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의 행보가 먼 길로 돌아가는 모양새로 보인 것도 사실이다. 본인 말대로 널뛰기하고 싶어하는 배우이며 하나의 장르에 갇히고 싶지 않은 것을 목표로 잡았기 때문인 듯하다.

게다가 연기 외적인 활동들이 상당수 배우 유아인의 이미지와 혼합되거나 작품 속 캐릭터를 통해 구축한 판타지를 희석시켜 버리기도 했다. 김혜리 기자는 2011년 씨네21 토크쇼에서 이러한 선택이 수반한 위험[38]을 지적했는데, 유아인 본인이 궁극적으로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유아인은 규정할 수 없고 뭐든 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김혜리 기자는 <씨네21> 기사에서 이러한 유아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하기도 했다.

표현과 삶이 동의어인 세대의 아이인 유아인은, 트위터와 미니홈피를 통해 들끓는 자신의 현재를 세상과 교신하며 청춘을 종단하는 전례없는 유형의 스타다. (중략) 21세기 배우 유아인은 일방적으로 팬들이 그를 상상하고 욕망을 투사하도록 도무지 내버려두질 않는다. 뜻대로 알맹이를 채울 수 있는 이미지만 주는 게 아니라, 생각과 감정까지 바삐 타전한다. “너의 스타인 나는 이런 사람이니, 함께할 수 있는 한 잘해보자”라고 말을 건다.

―김혜리 기자, #출처.

그러나 위와 같은 이유 등으로 대중들에게 호불호가 갈리는 배우로 많이 알려져 왔다. 이는 팬들에게는 매력적인 부분이나, 자칫 대중들이 유아인의 취향과 본질을 받아들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그럼에도 최근 작품들을 통해 유아인이 대중과의 친밀도가 높아진 것은 고무적이다. 배우 김윤석이 “아인이는 더디게 발을 내딛을지언정 엘리베이터를 안 탈 것 같아요”라고 말한 것처럼, 유아인 특유의 영역과 대중성이 더딜지라도 함께 확장하여 본인의 목표처럼 대중에게 혼란을 주면서 흥미로운 배우가 될 수 있을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을 듯.

유아인 본인도 한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관종으로서 세상 한복판에 살아가는 사람”[39]으로 지칭했는데, 배우로서 대중들을 향해 표현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하는 배우라는 일은 ‘멋있는 척’ 하는 일이 아니다. 나도 과거에는 더 유명해지고 싶고 더 인기를 갖고 싶고 그랬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연기라는 본질에 충실하고 싶다. 스스로도 만족하고, 대중에게도 만족을 줄 수 있게 말이다. 내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잘못하는 순간도 있겠지만 충분히 반성하고 느끼며 살아가도록 하겠다. 거기에 자연스럽게 따라갈 생각이다. 나는 배우로서 계속 인물을 창조할 것이고, 내가 해석한 세상을 표현할 것이다. 그 일이 재미있다.”

6 기타

6.1 외모

얼굴이 선행이고, 몸이 구원이죠. ― 도해강 (애인있어요 50회)
유재석, 하하, 조세호, 변진섭, 지석진, 이천수와 같은 과

아역으로 데뷔했고 동안인 데다가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출연 당시 배우들이 전부 모델 출신으로 길쭉길쭉했던 탓에 키가 단신 아니냐는 선입견이 있다. 초창기에 호리호리하니 마른 체격도 한몫한 듯. 하지만 영화 《깡철이》 홍보 시 출연했던 <연예가중계>에서 179cm라고 본인이 언급했을 정도로 꽤 장신이다.프로필 상 키가 181cm인 건 그냥 넘어가자 실제 《성균관 스캔들》에 출연한 남자 주연 3인방 중에 가장 크다.

몸무게의 경우, 사실 데뷔 초 늘씬하고 혹은 마른 이미지의 배우였으나 2013년 이후로는 일부러 살을 찌워 70kg대를 유지하고 있다. 2014년에 한 인터뷰를 인용하자면, “요즘 트렌드는 약간 마른 듯한 몸매인 것을 알지만 내가 맡게 될 배역들을 생각하면 좀 더 남성적인 이미지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해서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밤샘 촬영을 몇 번 하고 나면 다시 금세 살이 빠지는 데다, 평소에도 살이 정말 안 찌는 체질이라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고. 이러한 노력 덕인지 살을 불린 후의 작품들 속에서는 체격이 제법 커진 모습으로 나왔다. 그러나 2015년 후반부터 《육룡이 나르샤》 촬영을 비롯해 작품의 잇따른 개봉과 스케줄 소화로 인해 현재는 살이 쭉 빠져서 다시 마른 몸매로 돌아왔다.

피부가 검은 편이라 ‘맥반석 계란’ 이라는 별명을 보유하고 있다.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을 찍으면서 태닝을 해서 피부를 검게 태웠지만 복구가 안 된다고. 2015년 《베테랑》 미디어데이에서, 재벌 3세 역할을 맡다 보니 피부에도 신경이 쓰였건만 “계속 검다. 돌아오질 않는다. 하얗게 나왔으면 어땠을까 생각했는데 그러진 않았다”며 나름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동안으로 유명하다. 고등학생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어린 외모이지만 2016년 현재 나이가 한국 나이로 31세다.하지만 마흔 넘는 나이가 숫자에 불과한 닮은꼴 형이 존재하는 건 덤.[40] 어려 보이는 외모가 콤플렉스기도 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동안이라는 사실이 마냥 좋다고 한다.

한국 나이 서른하나의 얼굴 어이가 없네

데뷔 초창기 앞머리가 눈을 덮는 상당히 긴 머리 스타일도 선보였으나, 이후 줄곧 짧은 머리 스타일을 고수했다. 팬들이 머리 길러달라, 앞머리 내려달라 죽어라 요청하면 유아인은 죽어라 짧게 자르곤 했다. 종종 피스(부분가발)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반삭에 가까운 짧은 머리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앞머리를 올려 고정하거나 포마드 스타일을 유지하기도. 하지만 2015년 해운대 BIFF 빌리지 무대 인사에서 앞머리를 내리고 잠깐 등장하더니, 2016년 초부터는 줄곧 앞머리를 내리고 나와 얼빠팬들에게 심한 기쁨을 안겨주었다는 후문. 그래서인지 팬들 사이에서는 유아인이 행사에 참석할 때 앞머리를 내릴지가 최대의 관심사다.

2015년 4월 팬사인회 때의 모습(左)과 같은 해 10월 부산국제영화제 야외무대인사 때의 모습(右)

외모에 대한 망언을 내뱉은 전적이 있다. 2013년 <섹션TV 연예통신> 인터뷰에서는 화보 촬영할 때 가장 아쉬운 점이 뭐냐는 질문에 본인의 얼굴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인터뷰에서는 “나는 내가 충분히 잘생기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면서 “배우 하기 좋게 평범한 얼굴”이라고 자평했다. 2015년에는 “거부감이 드는 외모는 아니지만 여타 배우들처럼 잘생긴 외모는 아닌 것 같다”라며 자신이 명확하게 생기지 않았다(...)라는 망언을 일삼았다.[41]

또한, 위 사진에서 보듯이 목 앞부분에 있는 점 두 개가 확연하게 눈에 띈다. 팬들은 이를 ‘유아인 정품(..) 인증 마크’라고 부르고 있으며, 혹여라도 화보 등에서 포토샵으로 인해 이 두 개의 점이 보이지 않으면 정품 확인이 어렵다며 아쉬워한다. 이 밖에도 손이 작고 손가락이 짧아서 ‘짧뚱손’이라는 별명도 보유하고 있다. 본인이 가장 자랑할 만한 신체 부위가 엉덩이라고 밝혔는데, 《베테랑》 무비토크와 DVD 코멘터리에서 장윤주가 이를 언급하기도 했다. 자타공인인 듯? 웃는 모습이 개죽이와 매우 닮았다는 평가도 있는데 증거는 각자 찾도록 하자.

6.2 기부

2013년 1월 유아인이 아름다운 재단에 7,700만 원을 기부했다. 보육시설 아동들의 급식비 인상을 위한 ‘나는 반대합니다 시즌2’ 캠페인에 참여한 것. 캠페인의 목표액에서 1%를 남겨두고 기부했는데, 이는 사람들의 관심을 촉구하여 더 많은 기부 참여를 끌어내기 위함이었다. 아름다운 재단을 이를 두고 ‘채움을 위한 비움’으로 표현했으며, 실제로 다른 사람들의 참여로 목표액을 100% 달성했다. 또한 기부와 동시에 아름다운 재단에 보낸 이메일의 전문이 공개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유명인은 기부를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보람을 느끼고 그 일을 널리 알려 더 많은 사람들이 뜻 깊은 일에 동참하게 하는 시너지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선진 기부 문화이고, 좋은 뜻을 가지고도 주저했던 저와 같은 많은 분들이 이제는 주저 없이 그러한 기부 문화를 만드는 일에 동참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미 좋은 일에 앞장서신 선배님들의 발꿈치에라도 따라가고자 애쓰는 저처럼 많은 분들이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선의를 가지고 행동하건 행동함으로써 선의를 갖게 되건 기부라는 행동은 그 자체로 사회의 음지를 밝히는 등불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아름다운 재단이 공개한 유아인의 이메일 중에서, 전문은 여기에서 확인

2014년 1월에는 ‘러브 시티’ 티셔츠의 수익금을 기부하면서 아름다운 재단에 뉴키즈유아인기금을 조성했다. 유아인과 브랜드 노앙(NOHANT)이 론칭한 서브 레이블 뉴키즈노앙(newkidz nohant)은 수익금의 일부를 기부하는 ‘From new kidz to new kids’ 캠페인을 벌였는데, 소외계층 아동청소년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을 약속하며 기금을 조성한 것. 뉴키즈유아인기금은 문화 소외 지역의 아동청소년들에게 다양한 체험기회를 제공하는 ‘아동청소년문화체험지원사업’과 아동양육시설에서 생활하거나 퇴소한 후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의 학비와 학업보조비를 지원하는 ‘아동양육시설퇴소거주대학생 교육비 지원사업’에 기부금을 사용한다. 유아인은 기금을 개설하는 취지를 설명하는 글을 썼는데, 그의 팬들 역시 이러한 뜻에 맞춰 해당 기금에 지속적으로 기부를 하고 있다.

삶의 가치를 스스로 깨우치며 실현케 하는 참 된 교육의 장으로 아이들을 인도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저마다 다른 개성과 특성을 가진 소중한 우리 아이들. 하지만 너무 일찍 불편한 현실을 불행으로 짊어진 우리 아이들이 자신의 소중함을 발견하고, 미래에 대한 꿈을 꾸며 ‘특별한 아이들’로 성장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유아인의 뉴키즈유아인기금 개설 취지 중에서, 전문은 여기에서 확인

2014년 8월 가수 백지영으로부터 아이스 버킷 챌린지 다음 주자로 지목받았는데, 당시의 아이스 버킷 챌린지 열풍은 놀이와 자기과시의 수단으로 변질됐다는 비판의 시각도 많았다. 이에 유아인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캠페인을 너무 꼬아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글을 올리면서, 분장을 한 채로 영화 촬영 중인 관계로(당시 《사도》를 촬영 중이었다) 챌린지 대신 승일희망재단에 기부한다고 밝혔다.

2015년 5월 어린이날을 맞아 스튜디오 콘크리트 차원에서 자선바자회를 열었다. 유아인은 바자회에 개인 소장품을 내놓았는데, 구매자들에게 설명하면서 사이즈를 체크하며 직접 옷도 대주었다고. 바자회의 수익금과 수익금의 5배수가 되는 금액을 유아인이 추가 기부하여 기부금을 마련하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기부금 중 50%는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에 기부되고 나머지 50%는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어린이․청소년 예술교육지원사업처 설립을 위해 사용됐다.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에 기부하여 환아들의 수술비가 지원된 사실은 10월 14일 언론을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기사를 보면 DC 유아인갤러리가 해당 재단에 지속적으로 후원한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유아인이 이런 팬들의 뜻에 동참해 후원했다고 한다. 2016년 어린이날에도 자선바자회를 열었다. 유아인은 바자회에서 구입품을 포장해주고 직접 계산도 해줬다는 후문.

6.3 디자인 협업

자타공인 패셔니스타로 유명하다.가끔 너무 실험적이긴 하다만... 함께한 스타일리스트들에 따르면, 패션 지식이 남다르고 핏을 스스로 잡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리얼리티 프로그램 <론치 마이 라이프>를 촬영하면서 본인이 모델로 활동한 잭앤질(Jack&Jill)과 헤지스(HAZZYS)와의 콜라보레이션 작업 과정을 공개하기도 했다.

특히 디자인에도 직접 참여하는 열성을 보이기도. 2014년에는 지인 노앙(Nohant)과 협업하여 해당 브랜드의 서브 레이블 뉴키즈노앙(newkidz nohant)을 론칭했다. 협업 아티스트로서 한글과 영문의 조합을 통해 6개 도시의 이름을 나열한 ‘러브 시티’ 티셔츠를 출시해 화제를 모았다.#작업과정. 이듬해에는 해당 수익금을 기부하여 아름다운 재단에 기금을 조성하기도 했다. 2015년에는 스튜디오 콘크리트 크루들과 함께 톰 그레이하운드(Tom Greyhound)를 통해 ‘SERIES 1 TO 10’ 티셔츠를 선보였다.

러브 시티 티셔츠Series 1 to 10 티셔츠

유아인은 ‘스포츠서울’과의 인터뷰에서 콜라보레이션에 대해 “이름만 빌려준다거나 그럴듯하고 그저 예쁜 옷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고 재미있는 작업을 경험하고 싶었다”면서 참여 이유를 밝혔고, “저와 저의 친구들이 만든 옷을 패션 그 자체로 즐겨주시고, 의미 있는 일을 함께 만들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같은 인터뷰에서 패션에 관한 소신을 묻는 질문에 “패션에 접근하는 자신만의 ‘자세’를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스스로의 만족과 개성 표현을 위해 패션을 과감하게 즐기고, 때로는 패션이 갖는 언어적 기능을 영악하게 이용할 줄 알아야 진정한 멋쟁이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인터뷰.

6.4 동성애자설

항간에는 유아인이 동성애자라는 루머가 떠돌고 있다. 그 발단은 수 년 전 미니홈피에 게시한 한 셀카. 그저 립밤을 바르고 있다는 것 외엔 특별할 것 없는 이 사진이 화근이 된 것은 찍힌 장소가 게이바라는 뜬소문이 퍼지고 난 뒤였다. 사진 배경의 소파가 이태원의 유명 게이바에 있는 물건이라는 것. 물론 해당 업소에서 소파를 주문 제작했을 리도 없고 공산품이야 어디서든 사서 쓸 수 있으니 이것만 보고 유아인이 동성애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날 이후 유아인에게 남자친구가 있다거나 게이바에서 유아인을 목격했다는 등 출처를 알 수 없는 증언이 이어졌고[42] 마침내 ‘유아인 = 게이’라는 등식을 마치 기정사실인 양 취급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물론 누구를 동성애자라고 지칭하는 게 욕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개인의 성적 지향은 사생활에 속하므로 언론이나 대중이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다. 게다가 루머를 빌미 삼아 특정인을 성적 대상화 하거나 악질적으로 비하하는 등의 행위는 장난이라고 웃어넘기기엔 너무 과하다. 최근에는 정도가 심해져 유아인이 또래 남자배우를 언급하기만 해도 혹시 따먹으려는 거 아니냐, 잘생긴 게이 커플링은 역시 보기 좋다며 시시덕거리는 수준에 이르렀다. 포털이나 커뮤니티 게시글에는 ‘그러나 그는..’ 혹은 ‘but he is..’ 등등 조롱하는 댓글들이 수두룩 달리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유아인 본인이 직접 나서서 힘들었던 심경을 토로했다.(본래 2008년 <씨네21> 678호의 인터뷰가 원문이나, 2015년 언론사들이 어뷰징 기사를 써대면서 널리 퍼졌다.) 그동안 스트레스를 크게 받고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당연히 이런 루머가 떠돌면 자신뿐만 아니라 해당 소속사나 주변인들에게도 상당한 피해를 주기 때문에 명백히 명예훼손에 가깝다. 안타까운 것은 상기의 인터뷰에서 본인의 입장을 표명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부인한 건 아니니 분명 게이인 게 틀림없다’며 어그로를 시전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 사실 공식매체에서 난 게이가 아닌데 억울하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힘든 것이 자칫 호모포비아적 발언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해당 인터뷰에서 유아인이 자신의 성적지향을 직접 밝힌 것은 아니지만 자신과 해당 소속사 관계자들까지 막대한 피해가 가는 건 분명하므로 명백히 불쾌감을 표시한 만큼 게이 드립은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심하면 명예훼손으로 고소까지 불가피해진다. 또한 이러한 경우는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고발도 가능한 사안이다.

7 출연작

7.1 드라마

드라마 출연 목록
2004[43]-2005
KBS 《반올림
유아인 역
2004
KBS 《4월의 키스》
어린 강재섭 역
2005
KBS 드라마시티 《시은&수하》
이민석 역
2008
KBS 《최강칠우
흑산/김혁 역
2009
KBS 《결혼 못하는 남자
박현규 역
2010
KBS 《성균관 스캔들
걸오 문재신 역
2012
SBS 《패션왕
강영걸 역
2013
SBS 《장옥정, 사랑에 살다
숙종 이순 역
2014
JTBC 《밀회
이선재
2015-2016
SBS 《육룡이 나르샤
이방원
단역 및 특별출연
2003SBS똑바로 살아라미팅남2164회 단역
2014KBS연애의 발견공방 손님16회 특별출연
2016KBS태양의 후예은행원 엄홍식13회 특별출연

7.2 영화

영화 출연 목록
2007 《좋지 아니한가》
심용태 역
2007[44]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전종대 역
2008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양기범 역
2009 《하늘과 바다》
진구 역
2011 《완득이
도완득 역
2013 《깡철이》
강철 역
2014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
고경천(얼룩소) 역
2014 《우아한 거짓말
추상박 역
2015 《베테랑
조태오 역
2015 《사도
사도세자
2016 《좋아해줘
노진우 역

7.3 기타 출연작

  • 2004년 뮤직비디오 <발자국> (T.O)
  • 2005년 KBS 《반올림》 스페셜 <Good Bye 반올림>
  • 2011년 리얼리티예능 Mnet <유아인의 론치 마이 라이프>
  • 2012년 뮤직비디오 <Only One> (보아)
  • 2014년 다큐멘터리 광주KBS[45] <다문화20년 청소년보고서 – 날고싶은 완득이> 내레이션
  • 2015년 SBS 《육룡이 나르샤》 스페셜 <육룡은 누구인가>
  • 2016년 브이앱 《좋아해줘》 GV[46]
  • 2016년 아트필름 <ㅎㅎㅎ (흥부야)> with DJ 페기 굴드(Peggy Gould)
  • 2016년 채널콘크리트 Psychedelic Infinity 아티스트 토크[47]

7.4 예능/라디오 게스트

  • 2005년 KBS <스펀지> 68회 게스트
  • 2008년 MBC FM4U <이주연의 영화음악> 게스트
  • 2008년 MBC <놀러와> 219회 게스트
  • 2009년 SBS <야심만만2 - 예능선수촌> 25회 게스트
  • 2011년 SBS 파워FM <최화정의 파워타임> 게스트
  • 2011년 YTN 라디오 <뉴스! 정면승부> 게스트
  • 2013년 SBS 파워FM <공형진의 씨네타운> 게스트[48]
  • 2013년 SBS <런닝맨> 164회 게스트

8 트리비아

  • ‘유아인’이라는 예명에 대해서는 Ain ‘eins(하나)라는 독일어에서 따왔다’, ‘YOU ARE IN(…)이다’[49] 등 여러 낭설이 있으나 낭설일 뿐이다. 사실 《반올림》 이전에 찍은 광고에서도 ‘유아인’이라는 이름을 사용했었는데, 본인 인터뷰에 의하면 ‘엄홍식’은 조금 구수한 어감이라 사용하기 그렇다며 매니저가 어감이 예쁜 이름을 여러 개 지어놓고 같이 고른 이름이 ‘유아인’이었다고 한다. 당시 후보로 올라온 예명에는 ‘마로’도 있었다고.(...) 스스로는 유아인이라는 이름이 너무 뻔한 거짓말 같아서 싫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몇몇 팬들은 본명에서 따온 어몽시기, 몽식이라는 애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 무대 울렁증이 심하다. 그래서 시상식 등의 행사에 참석할 때는 청심환을 복용한다. 사실 예능에 나올 때도 먹는다. 시사회 전에도 먹는다. 무대 인사 전에도 먹는다. 심지어 팬들만 모인 행사에서도 먹는다. 아무 때나 다 먹는 건 아니겠지. 부작용을 조심하자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 수상소감에서는 청심환을 먹고 왔다고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 긴장하면 귀를 만지는 습관이 있다. 왼쪽 오른쪽 가리지 않는다. 극도로 긴장하면 귀를 거의 뜯는(!) 수준.
  • 성균관 스캔들》로 송중기와 함께 베스트커플상을 수상해 화제가 되었다. 원래 후보에도 없었지만 인기에 힘입어 후보에 합류하였고 투표수 1위의 위엄을 달성했다. 이로써 보수적인 KBS사에서 최초로 동성 베스트커플상을 수상했다.
  • 2015년 SBS 연기대상에서 《육룡이 나르샤》로 장편드라마 부문 남자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그런데 별안간 2016년 첫날부터 유아인의 수상소감이 큰 화제가 됐다.[50] 신선하고 멋있었다며 수상소감으로 사람 홀린다던 호감 어린 반응이 다수였으나 오글거리고 조태오 같다 연기하는 것 같다는 반응 역시 많았다. 어쨌든 여러모로 인상 깊은 수상소감이었던 것은 사실. 하지만 일부 SNS에서 조롱을 위한 패러디물을 만들거나 약을 한 것 같다 등등 도가 넘는 인신공격성의 발언을 했고, 심지어 루머를 언급하면서 방송에서 커밍아웃한 것이라고 퍼트리는 어그로들도 출몰했다. 이렇다 보니 무대 울렁증에 떨면서도 소감을 전하는 한 배우의 진심을 매도한 것이라며 불편해하는 반응 역시 만만치 않았다. 유아인 본인도 이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1월 27일 제7회 올해의 영화상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할 때 마이크 앞에 서는 것이 “돌겠어요”라며 “별의별 소리를 다 들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어쩌면 해탈한 것일 수도.
  • 2015년 청룡영화상 수상소감에 대해 본인은 “멍청하게 한 것 같다”, “뼛속까지 촌놈인 것 같다”, “머리를 콩콩 박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전술한 것처럼, 다른 시상식에서도 수상소감이 계속 화제가 되자 2016년 춘사영화상에서는 “무슨 말을 해야 하나 혼란스럽다”고 하거나 같은 해 백상예술대상에서는 “제가 수상소감하면 논란이 되는 것을 알고 있어요”라고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시상식 백스테이지에서는 “전 왜 맨날 수상소감을 이렇게 할까요”라고 농담처럼 말하기도.
  • <유아인의 론치 마이 라이프>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출연. 엠넷 꺼져 까칠한 모습이 방송되어 화제를 모았고, 홍콩 재벌 여자에게 태도를 지적하는 영상이 넷상에 돌아다니며 꾸준히 회자되고 있다. 때문에 유아인 출구 방송으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팬들 사이에선 프로그램을 끝까지 다 보면(총 4부작이다) 오히려 출구가 봉쇄된다는 입구 방송으로 불리기도 한다. 어쨌든 호불호가 갈리는 방송인 셈. 이에 대해 유아인은 한 잡지사와의 인터뷰에서 본인의 이미지를 깨고 싶었고, 욕먹을 거라 예상했다고 한다. 또한 “방송을 보면서 ‘유아인 싸가지 없어’, ‘개념 없어’, ‘성격 참 더럽다’고 하는 분들도 계시고 반대로 ‘아 진짜 시원해’, ‘솔직하다’고 해주는 분들도 있더라. 그 자체가 재미있다”고 말했다. 덧붙여 “남자 배우는 항상 멋있고 착하기만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지 않나. 배우이기 때문에 가져야 할 무게감이 있고, 진중함을 잃어선 안 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무겁고 심각하고 우울하면서도 너무 밝고 어리고 재미있고 유치하기도 하다. 그런 것들이 한 사람 속에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사람은 누구나 그렇지 않나”라고 말하면서 시청자들이 일부 오해할 수 있음에도 “나 또한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2016년 인터뷰에서는 “《성균관 스캔들》 이후 하도 나를 멋있게 봐 주셔서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그 이미지를 깨려고 했다”고 밝히기도.
  • 시상식에서 걸그룹의 무대를 보며 가사를 따라 부르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화제가 됐다. 이후 아닌 척 하며 급하게 물 마시는 모습이 포인트.
  • 2015년 9월 15일 오후 진행된 ‘뉴스1스타’와 인터뷰에서 아역 배우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연기하는 게 안타깝다는 발언을 했다.#기사.
  • 대구 출신이지만 현재 사투리 억양이 거의 없는 편이다. 하지만 깨알같이 사투리를 시전하는 경우가 꽤 있다. 2008년 <한밤의 TV연예> 인터뷰, 2011년 <섹션TV 연예통신> 인터뷰와 <론치 마이 라이프>,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 오픈토크, 2016년 《좋아해줘》 무비토크 라이브 등등. 팬들은 사투리 쓰는 유아인이 귀엽다며 무대 인사나 GV에서 사투리로 말해달라며 조른다(!) 고향인 대구에서 무대 인사를 할 경우에 유독 요청이 폭발하는 듯. 영화 《깡철이》에서는 사투리 쓰는 유아인을 원 없이 볼 수 있다. 그러나 2013년 인터뷰에서 밝히기를, 대구 사투리와 부산 사투리가 미묘하게 달라서 촬영할 때 어려웠다고 한다. 참고로 이 영상을 보자. 그런데 본인도 헷갈리는 듯? GV에서 질문하는 관객의 억양에 맞춰 따라서 사투리하는 모습도 있다.
  • 인터뷰 장인으로 손꼽힌다. 기자들이 곤란한 질문을 하는 경우에도 노코멘트로 넘기지 않고, 답변할 때마다 솔직하고 길게 얘기해준다고. 인터뷰마다 다른 대답을 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기자들이 선호하는 배우 중에 하나다.
  • 단것을 좋아한다. 아이스크림, 빙수, 초콜릿, 하리보 젤리 등. 특히 목격담이나 팬들의 후기를 보면 커피 대신 시그니처초코, 초코라떼, 핫초코, 아이스초코를 즐겨 마신다고 한다. 각설탕을 통째로 먹기도 하며, 아이스초코에 휘핑을 올려 먹는다.
  • 요리를 좋아하고 잘한다고(!) 밝혔다. 자신 있는 요리는 백숙, 갈비찜, 보쌈 등등. 배달을 시켜도 본인이 뭔가를 더 첨가해서 먹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어디까지나 그의 말일 뿐 ‘궁상 종결자’[51]로 등극한 사진 때문에 쉽게 수긍할 수 없었다. 보여줬어야 말이지 그러나 2013년 9월 22일 SBS 예능 <런닝맨>에 게스트로 출연하면서 대구식 갈비찜을 능숙하게 만드는 모습을 보여줘 요섹남(요리하는 섹시한 남자)의 면모를 증명했다. 2015년 9월에는 조선희 포토그래퍼가 인스타그램에 전복 손질을 하는 유아인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공개하였고, 2015년 <보그> 10월호 「유아인의 끝없는 절정」 에도 현장에서 진귀한 이 광경을 지켜본 인터뷰어가 재차 언급하여 요리 고수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 애완식물에게 ‘밥(Bob)’이란 이름을 붙여줬다. 2016년 5월 유아인은 식물에 생긴 흰솜깍지벌레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팬들은 벌레 이름을 어떻게 알았는지, 왜 갑자기 벌레 사진을 올리는 지 궁금하게 여겼다. 이후 인스타그램 업뎃도 뜸해지자 벌레라도 올려달라며 떡밥을 갈구하기도 했다만... 그러다가 2016년 9월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기획전 ‘They Live’의 서문으로 쓴 글에서 사진의 전말이 밝혀졌다. 자마이카 나무에게 이름을 불러주고 인사를 나누는 등 시간을 보내다가 벌레가 생긴 것. 글을 읽은 팬들은 유아인이 애완식물을 키운다는 사실에 귀여움을 느껴 심지어 벌레도 귀엽다고.. 본인들의 식물에도 ‘밥(Bob)’이라고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 드라마 《태왕사신기》에 담덕(배용준) 아역으로 박민지, 안용준 등과 함께 캐스팅된 적 있다. 역할을 위해 승마 연습을 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는데, 대본이 수정되면서 자연스레 하차했다. 어쨌든 이때 쌓아둔 승마 실력을 다른 사극에서 유용하게 써먹기도. 역시 사람은 뭐든 배워두는 것이 장땡
  • 2012년 SBS 《패션왕》 촬영을 위해 뒤늦게 운전면허를 취득했다. 《패션왕》 중반, 도로에서 자동차를 운전하는 풀샷 촬영이 있었는데 초보 운전자 유아인은 바짝 긴장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다리가 풀려 스태프들이 겁쟁이라며 놀렸고, 촬영 후반에는 고가의 외제 스포츠카 운전대를 잡은 유아인의 어설픈 주차 실력에 스태프들의 간담이 내려앉을 뻔했다는 후문이다. 후에 MBC <섹션TV 연예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유아인은 “거칠게 운전하고 있다”고 호언을 하는데... 그땐 그랬지
  • 상대 여배우와 촬영 전 포옹을 연습하는 씬이 움짤로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처음에는 특별할 게 없는 움짤이었으나, 한 네티즌의 드립으로 ‘술 취한 여친이 안기니까 주위 사람들에게 “얘 술 얼마나 마셨어?”라고 물어보는 남친 짤’로 알려지게 됐다.
  • 그동안 출연한 사극으로 인해 여러 개의 배우개그가 가능하다. 《육룡이 나르샤》의 이방원세종 이도(《뿌리깊은 나무》의 송중기)의 아버지다. 이로부터 약 300년 후 후손인 숙종 이순으로 태어나고(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 그의 손자인 사도세자는 할아버지를 완벽하게 닮은 얼굴을 가졌다.(영화 《사도》) 유아인이 송강호를 낳고, 송강호가 유아인을 낳았다.[52] 다시 그의 아들 정조사도세자의 죽음과 관련된 금등지사를 찾는 미션을 걸오 문재신과 여림 구용하(송중기)를 비롯한 잘금 4인방에게 맡긴다.(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영화 《좋지 아니한가》에서는 전생에 왕이였다고 굳게 믿는 고등학생을 연기하기도 했다. 여담으로, 같은 시기에 《육룡이 나르샤》와 《장영실》에 모두 이방원이 등장하는데, 사극이라 촬영장이 비슷해서인지 이방원의 청년기와 장년기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진기한 투샷이 만들어졌다.
  • 본인 내면의 다양한 성분들을 수면 아래 두었다가 재조합하여 수면 위로 꺼내는 것이 연기 방식이라고 한다. 본인에 의하면, 아직 완전히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할 내공이 부족해 자기 안에서 무언가를 꺼낸 후 살을 붙이는 과정을 겪기 때문이라고. 2016년 <홍콩 엘르맨> 5월호 인터뷰에 따르면, 본인에게 연기는 컨트롤 스위치나 피아노 건반 같은 것이라고 한다. 불빛은 본래 존재하지만 스위치를 누르면 들어오고, 건반 역시 눌러야 그에 맞는 소리를 내는 것이 본인의 연기 방식과 닮았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자신 안에 이미 모든 감정과 해석들이 정리되어 있고, “필요할 때 절절히 끄집어낸다”는 것.[53]
  • 가수 김윤아의 팬으로서 신곡인 ‘키리에’를 미리 들었다고 한다. 김윤아는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해 유아인과의 일화를 말하기도 했는데, 가사를 은유와 비유를 사용해 쓰지 않고 왜 직접적으로 고통을 표현했는지 질문한 점이 인상 깊었다고 한다.#기사.
  • 인디밴드 몽구스와 친분이 있다. 특히 드러머 링구(레오폰)와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에서 친구 사이로 연기한 인연이 있다. 유아인은 몽구스의 앨범 추천사를 쓰거나 라디오 <최화정의 파워타임>에 출연하여 몽구스의 ‘Cosmic Dancer’를 신청곡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 유아인의 《태양의 후예》 카메오 출연은 같은 소속사 식구 송혜교의 촬영장 생일파티에 참석하면서 이뤄졌다. 주변인들이 “나와야지?”라고 농담처럼 말했는데 유아인이 스태프들에게 “나와야죠”라고 답해 캐스팅되었다고 한다. 2015년 12월 유아인은 SBS 《육룡이 나르샤》 촬영 등으로 바쁜 와중에도 카메오 촬영에 참여했다. 《태양의 후예》 제작진은 2016년 2월 26일부터 유아인의 카메오 출연을 수시로 홍보하여 화제를 모았으나, 4월 6일 13회에 은행원으로 42초 등장했다. 후반부에 나올 카메오를 초반부터 알려주는(...) 바람에, 3월 아시안 필름 어워즈(AFA)에 수상자로 참석한 유아인이 사전 기자회견에서 별 상관없는 《태양의 후예》 질문을 연달아 받기도. 유아인이 《육룡이 나르샤》 종영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질문 10개 중에 8개가 ‘태후’(《태양의 후예》) 질문이었다”며 “표정 관리 하느라 힘들었다”고 웃으며 고백했다. 기자님들아 매너 좀 《태양의 후예》의 김시형 촬영 감독은 유아인의 카메오 출연 장면에 대해 “30분 정도 촬영했던 것 같다. NG도 거의 없었다. 유아인 씨가 등장하니 은행의 업무가 마비됐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
유아인 본인도 호소한 띄어쓰기의 중요성.
수정판도 나왔다.
유아인이(가) 이 사진을 좋아합니다.
  • 건국대학교 예술학부 소속이다. 현재는 미등록 제적상태.

9 수상 내역

연도시상식부문작품
2007대학생이 뽑은 신인배우상5월의 신인배우상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제8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신인남우상
제3회 평택 피어선영화제남자신인상
2008제11회 디렉터스 컷 시상식올해의 남자신인연기자상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2010제5회 에이 어워즈(A-Awards)스타일 부문
KBS 연기대상베스트커플상성균관 스캔들
2011제5회 Mnet 20's ChoiceHot 20’s Voice상
제4회 스타일 아이콘 어워즈(SIA)스타일 아이콘 본상
2012제3회 올해의 영화상올해의 발견상완득이
2013환경재단 ‘세상을 밝게 만든 사람들’방송/연예 부문
2015제3회 마리끌레르 아시아스타어워즈아시아스타상
제15회 대한민국청소년영화제인기영화인 남자배우부문베테랑》 《사도
제36회 청룡영화상남우주연상사도
제10회 에이 어워즈(A-Awards)스타일 부문
셀럽스픽 패셔니스타 어워즈영화패션 부문베테랑
제5회 아름다운예술인상영화예술인상베테랑》 《사도
제4회 CFDK 어워드올해의 패션아이콘상
한국영화배우협회 스타의 밤
대한민국 톱스타상 시상식
대한민국 톱스타상베테랑》 《사도
SBS 연기대상장편드라마 부문 남자최우수연기상육룡이 나르샤
베스트커플상
10대 스타상
2016제7회 올해의 영화상남우주연상사도
제11회 맥스무비 최고의 영화상최고의 남자배우상베테랑
제8회 스타일 아이콘 아시아(SIA)스타일 아이콘 본상
제10회 아시안 필름 어워드(AFA)넥스트 제너레이션상
제21회 춘사영화상남우주연상사도
제36회 황금촬영상최우수 남우주연상베테랑
제52회 백상예술대상TV부문 남자최우수연기상육룡이 나르샤
제7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국무총리 표창
제16회 대한민국 청소년영화제인기영화인 남자배우부문
  1. 영월 엄씨 32세손 '植'자 항렬이다.
  2. 2013년 KBS 연예가 중계 인터뷰 중 본인의 프로필을 고쳐 적었다.
  3. 당시 GV의 특별게스트로 류승완 감독도 있었다. 후에 류승완 감독은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에서 유아인을 처음 보고 인상 깊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사람 인연은 어떻게 풀릴지 모른다.
  4. 최연소 웰터급 동양챔피언이다. 별명이 무려 링의 아이돌이자, 냉혈 꽃사슴(...)이었다.
  5. 이와 관련, <한밤의 TV연예> 인터뷰에서 몇 년간 매해 기대주로만 꼽혀왔다는 자조 섞인 혹은 겸양의 말을 하기도 했다.
  6. 홍벽서는 문제만 제기할 뿐 대응책은 제시하지 못한다는 지적에 “그게 청춘이잖아요.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다 보면 해답에 접근하겠죠”라는 대답을 했다.
  7. 100% 자발적인 것은 아니었고, 김윤석이 유아인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시키자 공약으로 말한 것. 당시 정말 500만을 넘길 줄 몰랐다는 후문.
  8. 20대 대표 배우로 떠오른 유아인을 비롯하여 당시 충무로 괴물 신인 이제훈, 《지붕 뚫고 하이킥》과 《뿌리깊은 나무》의 차기작으로 선택한 신세경, 첫 정극에 도전한 소녀시대 권유리는 흔한 라인업이 아니다.
  9. 그럼에도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지 못해 아쉬웠다고 한 인터뷰에서 말한 적이 있다. 그래서 본인도 소위 ‘백마 탄 왕자’ 역을 해낼 수 있다는 호기로 《장옥정, 사랑에 살다》를 선택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10. 장형윤 감독은 팬으로서 정유미에게 시나리오를 건넸지만, 유명한 배우이기 때문에 답변이 올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다.
  11. 피아노를 연주할 때의 표정은 피아니스트 임동혁의 동영상을 참고한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있었다.
  12. 극 중 이선재는 94년생이다.86년생이 94년생을 연기하다니
  13. 류승완 감독은 라디오 <두시의 데이트>에 출연하여, 이와 관련해 재밌는 에피소드가 탄생했다고 얘기했다. 법원 앞에서 조태오가 수의를 입은 장면을 촬영했었는데, 지나가는 아주머니들이 ‘선재가 드디어 간통으로 잡혀들어가는구나’라고 말했다고. 그래서 항간에는 《밀회》의 결말로 선재와 혜원이 간통죄로 구속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14. 2014년 하반기 개봉을 준비했으나 영화의 높은 완성도로 인해 CJ E&M이 2015년 텐트폴(흥행을 기대하는 영화)로 미뤘다. 2015년 4월 23일에 개봉한 《어벤져스》의 상영기간과 겹치는 5월 14일 개봉을 발표했었던 바 있지만 《미션 임파서블》의 개봉일이 확정되면서 《베테랑》의 개봉일도 그와 비슷한 시기인 8월 개봉을 확정지었다. 어쨌거나 블록버스터 외화들이 개봉하는 시기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시기를 노린다는 부분에서 영화의 완성도에 관한 자신감이 대단함을 엿볼 수 있었다.
  15. 감독은 《왕의 남자》의 이준익, 국민배우 송강호, 유아인, 국민 여동생 문근영, 김해숙 등등.
  16. 2014년 12월에 개봉한 《국제시장》을 포함하면 5위
  17. 다른 말로, 그만큼 연기에 진지하다는 말도 되고 실제로 대중들에게 그것이 어필된 것으로 보인다.
  18. 설령 배우 스스로가 원한다 해도 소속사에서 만류하는 경우도 많다. 작품 속 역할의 이미지로 인해 CF 등을 찍는데 차질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류승완 감독은 <영화는 수다다>에 출연하여 “복덩어리가 굴러들어온 것 같았다”고 말했다. 다른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에는, 보통 배우들은 악역을 연기할 경우 해당 캐릭터가 악해야 할 정당한 이유를 부여해 달라고 요구하는데, 유아인은 오히려 “그냥 나쁜 놈이면 안돼요? 뭐가 이렇게 구구절절해”라고 말해 고마웠다는 말도 전했다.
  19. 현재 중국의 한류영향으로 배우들의 이미지 관리가 매우 강해졌다.
  20. 유아인은 만으로20대 나이에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세 번째 배우이며, 1980년대 이후에 태어난 남배우들 중 첫 번째 수상자다. 그만큼 젊은 배우가 송강호, 황정민 등 쟁쟁한 선배들과 함께 겨뤄 수상했다는 것이 상당히 인상 깊은 점이다.
  21. 같은 기간 동일한 기관에서 조사한 ‘2015년을 빛낸 탤런트’에는 4위에 올랐다. <씨네21>이 선정한 올해의 배우로도 선정됐으며, 이듬해 <포브스코리아>가 선정한 파워 셀러브리티에 전체 2위, 배우 중에서는 1위에 랭크됐다. 여담으로 경제주간지 <매경이코노미>에서는 유아인을 2015년 10대 히트상품(...)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22. 이 시기부터 유아인은 영화 《베테랑》과 《사도》의 홍보, 영화 《좋아해줘》의 촬영과 홍보,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의 촬영을 동시에 소화했다. 틈틈이 광고도 찍었다.하루가 48시간인 듯 덕분에 떡밥은 넘쳐났다.
  23. 제목을 정하는 데 우여곡절이 있었다. 본래 ‘해피 페이스북’이었으나 실제 회사명과 같기 때문에 법적 소송의 위험이 있어서 ‘해피 로그인’으로 바꿨다가 최종적으로 ‘좋아해줘’로 확정했다.
  24. 분량을 비롯 여러 아쉬움이 있으나, 팬덤 내에서는 영화를 입대 전 팬들에게 주는 깜짝 선물로 이해하는 경향이 크다.
  25. 《뿌리깊은 나무》에서 이방원이 “감당할 수 있겠느냐”라는 말을 해서 21세기에 이방원이 조태오로 태어난 것 아니냐는 배우개그가 나왔다.
  26. 50부작 사극인지라 이 밖에도 많은 배우들이 출연한다. 특히 조연과 특별출연에도 인지도 있는 연극 및 뮤지컬 배우들이 등장해 눈길을 끈다.
  27.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에 수록된 「청춘」을 올렸다. 나중에 이 사실이 <비밀독서단>에 소개되기도 했다.
  28. 논란 이후 주호성이 명예훼손으로 법적 조치할 것으로 보도되기도 했으나, 사실 무근으로 밝혀졌다.
  29.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연예인이 개인적인 주관을 밝히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며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30. 좋은 글은 간단명료하다. 쓰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기에 표현의 군더더기가 없기 때문이다. 글의 주제가 뭔지 파악하기 어렵고 사족이 많을수록, 글쓴이 스스로 그 주제에 대해 명확히 모르거나 자신의 생각에 확신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31. 동명의 스튜디오는 2015년 5월 1일에 열었다. 내부에 카페가 있어서인지 SNS를 통해 ‘유아인 카페’로 많이 알려져 있다. 현재는 갤러리 공간을 확대하고, 사무실과 아틀리에는 다른 공간으로 독립했다.
  32. 정확히는 창립 멤버들이다. 현재는 인원 구성이 달라졌다.
  33. 설립 5년 미만이나 아트부산에 처음 참가하는 화랑에 제공되며 40세 미만 작가의 개인전을 지원하는 S부스 섹션에 참가했다.
  34. 영화 데뷔작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에 대한 언급과 함께 소년성을 자주 언급한다. 영화 속 대사처럼 ‘훌륭한 소년’이 되고 싶다고. 다른 인터뷰에서는 소년성을 끊임없이 부여하고, 소년성을 다양하게 변주하며 연기하고 싶다고 밝혔다.
  35. 호감과 불호가 반복된다는 의미다.
  36. 정작 본인은 무뚝뚝한 성격이라 팬서비스가 다채롭지 않다면서, 팬들을 “의리와 우정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지칭하고 “나도 팬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한 적도 있다.#인터뷰.
  37. 지금은 편집됐지만, 이전 위키 문서에는 유아인에 대해 ‘미친놈 연기는 누구보다 잘한다.’라는 문장이 쓰여 있었다.
  38. 유아인이라는 사람에 대한 논의가 많아지고 이미지가 강렬해지면 그것이 스크린 안으로 치고 들어올 수 있다는 것.
  39. 배우로서 세상의 시선을 기꺼이 받는다는 뜻.
  40. 김호진은 유아인 닮은꼴에 대해 요즘 제일 핫한 친구들이 본인과 닮았다는 것에 굉장한 자부심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41. 사실 이 발언들의 요지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유행을 타는 얼굴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유아인은 연예계에서 손꼽히는 정석 미남이라기보다, 트렌디한 외모를 지닌 남자배우에 가깝다.
  42. 예시로, 한 네티즌이 ‘지금 유아인이 이태원 게이바에 있다’며 글을 퍼뜨렸는데 당시 유아인은 화보 촬영을 위해 해외에 체류 중이었다.
  43. 2003년부터 방영된 작품이지만, 유아인은 2004년 1월부터 출연했다.
  44. 유아인의 실질적 영화 데뷔작이다. 《좋지 아니한가》보다 먼저 촬영했다. 유아인 본인이 스크린으로 처음 본(2006년 제11회 부산국제영화제를 말함) 자기의 영화라고. 하지만 정식 개봉은 3월에 개봉한 《좋지 아니한가》보다 2개월 늦은 5월에 했다.
  45. 2015년 2월에 네트워크특선으로 전국 KBS에 방송되기도 했다.
  46. 팬들과 함께한 행사로, 무료 영화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를 생중계했다.
  47.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기획전 ‘Psychedelic Infinity: 무한세계’에 참여한 작가들과 예술과 전시에 관해 대화한 온라인 방송이다. 실험방송을 표방하여 자유로운 형식과 방식으로 진행됐다.
  48. 당시 DJ는 민규동 감독이 임시로 맡았다.
  49. 넷마블의 게임 KON의 광고에 이렇게 쓰인 바 있다.
  50. 현재까지 네이버 TV캐스트의 수상소감 동영상이 130만뷰를 넘어섰다
  51. 2011년 새해맞이 인사와 함께 컵라면을 먹는 소탈한 모습을 공개해 ‘궁상 종결자’로 등극한 적 있다. 잭앤질 화보촬영 에피소드에 따르면, 유아인이 다 식어버린 먹다 남은 컵라면을 먹자 조선희 포토그래퍼가 “이 친구 참... 가리는 것도 없다”며 그의 털털함에 놀라워 했다는 후문이다.
  52. 심지어 영화 《사도》에서는 사도세자가 종묘에 있는 숙종의 신주 앞에서 영조와 대화하는 장면도 있다.
  53. 해당 인터뷰는 중국어-영어-한국어 삼중역을 거친터라, 의미가 불충분하게 전달될 수도 있다는 점을 유의하면 좋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