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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년 작품, 이베리아 반도 전쟁 |
1830년, (외젠 들라크루아 작품)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1830년 7월 혁명) |
1 개요
대개의 스팀펑크물은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살아있는 인류가 경험한 가장 오래된 세기이기도 하다.[1]
자유주의와 민족주의를 포함한 수많은 사상이 퍼져나갔으며, 독일과 이탈리아가 통일 국가로 거듭났다. 산업혁명이 본격적인 궤도에 올라 유럽 외의 국가들은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의 가속도가 붙었다.
이 시기는 오랜 시기 유럽의 평화가 지속된 시기였다. 나폴레옹 전쟁이 1815년 끝난 이래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1914년까지, 유럽의 주요전쟁으로 크림 전쟁,보오전쟁,보불전쟁 등 총 44개월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를 "백년 평화"라고 부른다. 이 평화를 지탱시킨 것은 빈 체제, 즉 빈 회의이후 이루어진 독-오-러의 신성동맹이었으며, 이것이 무너지면서 1차대전이 일어났다.
역사가 에릭 홉스봄은 1789년 프랑스 혁명부터 1914년 1차대전까지의 125년을 "장기 19세기"로 규정하고, 1848년 2월 혁명까지를 "혁명의 시대", 그 뒤의 시대를 자본의 시대(1876년까지), 제국의 시대(1914년 1차대전까지)로 구분하였다.
1.1 주요 사건
- 1803년 - 미국이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애나를 구입하였다.
- 1804년 - 프랑스의 카리브해 식민지였던 아이티가 독립했다.
- 1805년 -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영국 해군이 프랑스 해군을 격파하였다.
- 1812년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이 러시아 원정을 감행하였다.
- 1814년 - 빈 회의가 개최되었다.
- 1822년 - 브라질이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했다.
- 1826년 - 세계최초의 철도가 영국에서 부설되었다.
2 유럽
유럽을 싫어하는 사람들조차 인정하는 유럽의 전성기. 유럽이 세계의 주도권을 잡고 각지를 식민지로 삼고 다스린 제국주의 분위기가 고조되는 시대였다. 이 제국주의는 20세기에 두 차례 세계 대전으로 폭발하게 된다. 문화적으로는 낭만주의와 이의 반동인 사실주의, 자연주의가 등장하였다.
한편 헤겔의 시대에 이르러 근대 철학은 원숙기를 맞게 되고,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프리드리히 니체, 쇠렌 키르케고르 등 현대 철학의 선구자들이 등장하였다. 산업 혁명과 공업 발달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사회주의가 보급되었으며, 중반에는 카를 마르크스가 등장하여 이후 한 세기 넘게 세계를 흔드는 공산주의를 정립하였다. 미하일 바쿠닌으로 대표되는 무정부주의 또한 사상의 한 축으로 등장하였다.
한편 학문적으로는 실증주의, 역사주의가 성립하여 각종 인문학에서 한 학문의 종합이 시도되었으며, 2차 산업혁명으로 중화학 공업이 발달하면서 화학, 전자기학, 물리학의 뼈대가 섰다.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을 발표하여 종교계를 뒤흔든다. 빅토르 위고,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레프 톨스토이 등 문학의 거성이 이름을 날리고, 폴 세잔,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 등 인상주의가 유행하면서 미술에서도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영국은 1828년 비국교도(비성공회교도)에 대한 관직 제한법인 심사법을 폐지하고 가톨릭 교도에 대한 차별을 폐지하기 위해 1829년 가톨릭교도 해방법을 제정하였다. 1832년 제 1차 선거법이 제정되어 선거구는 폐지되었으나, 도시의 신흥 상공업자들에게만 선거권이 부여되어 노동자는 선거권 혜택을 받지 못하였다. 이에 차티스트 운동이 일어났다. 1846년에는 곡물법을 1849년에는 항해법을 폐지하여 자유주의 경제 체제를 확립하였다. 그러나 이런 19세기 영국의 대단한 변화는 한국에서는 크게 알려지지 않은 편이다. 유럽 대륙에서는 변방사라는 건가?!
5분사탐-세계사 - 17강 나폴레옹 _#001 |
프랑스는 19세기 초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유럽을 제패하고 자유주의 확산에 기여하였으나 이에 대한 심한 반동을 겪고 부르봉 왕조가 복위하였다. 이후 성립된 빈 체제의 영향을 7월 혁명, 2월 혁명(1848년 혁명)으로 씻어내고 다시 자유주의적인 정부를 수립하였으나 그 뒤 잠시 나폴레옹 3세가 통치하는 제정으로 돌아갔다. 제정은 보불전쟁에서 패하고 붕괴되었고 파리 코뮌이 출현하였으나 이 또한 무너졌다. 그 후 제3공화정이 수립된 프랑스는 식민지 개척에 열을 올리게 된다.
독일은 1848년 혁명이 실패한 이래 프로이센 주도로 자유주의적인 개혁과 관세 동맹, 프랑크푸르트 회의를 통한 평화적 통합을 시도하였으나 오스트리아와 마찰을 피할 수 없었고, 이에 오토 폰 비스마르크의 철혈 정책 주도 하에 오스트리아를 배제한 통일을 이룩했다. 통일된 지 얼마 안 돼서 프랑스를 바르고 이후 영국 및 프랑스와 대립하며 군비 확장에 치중한다.
비엔나 회의 이후 유럽 지도, 1815년 |
이탈리아 역시 적절한 외교와 군사력의 활용으로 통일에 성공하였으며, 서양의 사상적 원숙으로 그리스 또한 많은 지원 속에 독립에 성공한다. 러시아는 오스트리아 등과 함께 빈 체제에 의존하며 남진을 시도하였으나 영국, 프랑스의 훼방과 자체의 후진성으로 실패한다. 이후 봉건 제도 타파와 조직 혁신을 시도하였으나 개혁은 생각만큼 빠르지 못했고, 경과가 시원찮자 민심은 도리어 어지러워져 무정부주의, 사회주의 등이 득세하게 된다.
3 아메리카
신생 국가 미국은 19세기에 발전에 발전을 거듭한다. 이 시대에 서부 개척이 활발하였고 대륙 횡단 철도가 건설되었다. 중간에 남북전쟁을 치르기도 했으나 19세기가 끝날 무렵 미국의 국력은 몰라볼 정도로 신장되었다. 한편 미국은 태평양 지역의 섬과 필리핀을 식민지로 삼았으며, 일본을 개항시켰으나 식민지화 계획이 물 건너 가면서 아시아 지역의 식민지에 대해서는 대개 중재 역을 맡게 된다.
Saylor.org HIST212: "The Spanish-American War and American Imperialism" |
미국은 19세기 초 먼로 독트린을 통해 유럽이 아메리카 대륙에 간섭하지 않도록 선포하는 등 유럽과는 거리를 두었다. 물론 중간에 영국한테 대판 깨지긴 했지만…. 이는 중남미 독립운동을 자극하였으나, 실제로는 아메리카 내가 먹을 테니까 유럽 니들은 잔소리하지 마라!에 가까웠다. 이에 남미에 큰 영향력을 갖고 있던 스페인과 미국-스페인 전쟁을 벌여야 했고 미국이 승리하면서 남미의 종속화가 가속화된다.
한편 먼로 독트린과 나폴레옹 전쟁으로 인한 스페인의 영향력 약화로 산 마르틴과 시몬 볼리바르 등 혁명가가 출현하여 중남미의 여러 국가들이 잇달아 독립하였다. 가장 먼저 독립한 나라가 1804년 아이티. 참고로 브라질은 독립할 당시엔 제정이었다. 한때 남미에도 거대 연합국이 출현할 뻔 했으나 결렬되고 500일 전쟁, 태평양 전쟁 등 각축전이 계속되었다.
4 서아시아
이슬람 세계의 최강자로 군림했던 오스만 제국의 영향력이 급속히 약화되었다.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연패하면서[2] 적지 않은 영토와 이권을 내주고 말았고 그리스를 비롯한 발칸 반도에서는 독립 운동이 일어났으며, 이집트에서도 무함마드 알리가 사실상의 독자정권을 수립하는 등 한 마디로 꿈도 희망도 없는 상태였다. 이에 제국은 탄지마트를 비롯한 근대화 개혁을 추진했고, 1차대전 패망 이후 터키 공화국으로 이어지는 국민 국가 구조가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확립되기 시작했다.
이집트는 총독 무함마드 알리가 와하브 운동 진압 등의 공헌으로 자치권을 획득하고 사실상 독립 상태가 되었으나, 수에즈 운하에 들씌워진 차관으로 보호국으로 전락하였다. 이란의 카자르 왕조 또한 시련을 면치 못했다. 투르코만차이 조약 이후 문호가 열렸고, 담배 등 서양 상품 불매 운동, 입헌 정치의 도입 등이 시도되었으나 영국은 이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이란의 식민지화를 가속화하였다.
5 남아시아와 동남아
반식민지 상태였던 인도를 영국이 완전히 식민지로 만들었고, 무굴 제국의 황위를 빼앗으면서 영국은 제국을 칭하게 된다. 베트남은 선교사 살해를 명분으로 침탈을 본격화한 프랑스의 식민지로 편입되었으며, 미얀마와 말레이시아는 인도에서 세력을 확장하던 영국이 차지하였다. 그나마 라오스, 캄보디아 등 속국을 잘라주고 외교 관계를 적절히 이용하며 개혁에 성공한 태국을 제외한 거의 전역이 식민지화되었다. 프랑스는 베트남의 주도권 문제로 청과 전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6 동아시아
AET PRMY 002819 MANKIND VIG OPIUM IN CHINA EP10 AETN NTSC |
19세기가 시작될 무렵 동아시아는 봉건 체제의 위기를 맞고 있었다. 아편전쟁을 시작으로 동아시아에 대한 서양의 침략이 본격화되었으며, 중국은 전쟁에 연전연패하고 각지에서 반란이 들끓는 등 강대국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물론 중국도 이홍장과 캉유웨이 같은 인물이 개혁을 시도하고 의화단 운동 같은 민중 반란도 일어났으나 모두 실패하고 곳곳이 조차지로 들어가게 된다. 그나마 워낙 국가가 크고 오랜 기간에 걸쳐 수억에 달하는 인구와 거대한 영토 하나를 지배하는 통일 국가가 수천년 전부터 확립되어 있었던 나라라 어떤 국가도 직접 지배는 무리였으므로 식민지나 보호국 처지는 면할 수 있었다.[3]
5분사탐-세계사 - 19강 메이지 유신 _#001 |
당시 에도 막부의 통치기였던 일본은 미국에 의해 개항하게 되고, 내부 분열이 시작된다. 결국 보신전쟁을 거쳐 에도 막부를 무너뜨리고 뒤이어 사이고 다카모리 등이 주도하던 하급 사무라이들 중심의 전통주의 세력도 서남전쟁에서 격파한 뒤 메이지 덴노를 중심으로 한 정부가 수립되었고, 마침 남북전쟁 중이던 미국의 간섭을 피해 근대적 변신에 성공한다. 일본은 정부 주도의 급속한 공업화로 상당한 국력 신장을 이룩했고 19세기 말 청일전쟁에서 승리하였다. 이후 타이완, 오키나와 등을 병합하는 한편 조선에 대한 식민지화도 본격 추진하게 된다.
5분사탐-한국근현대사 - 07강 동학 농민 운동 _#001 |
조선은 1800년 정조가 죽고 세도정치기에 접어들었으며, 민생이 파탄 상태에 이르렀다. 그렇게 반 세기 넘는 시간을 겨우 넘기고 흥선 대원군이 10여 년간 집권하여 서양에 폐쇄적인 반응을 보이며 개혁을 시도하였으나 경복궁 중건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고종은 비교적 유화적인 정책을 폈으나 제국주의에 대한 이해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던 탓에 강화도 조약으로 개항한 뒤 많은 이권을 청일 양국에게 빼앗기며 점점 식민지로 전락하게 된다. 게다가 일본이 필사적으로 서양을 배우는 동안 동도서기론[4] 등이나 제창하며 현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1894년에는 내부 모순의 폭발로 동학농민운동이 있었으나 이는 청일전쟁의 도화선이 되고 말았다. 1894년부터 1896년 초까지 이어진 갑오개혁(+ 을미개혁)으로 근대의 틀은 갖추었으나 너무 급속도로 이루어진 개혁이었기에 혼란은 계속되었다. 1897년에는 대한제국이 수립되어 자주 국가를 표방하였으나 이미 늦었다. 이후 러일전쟁에서도 일본이 승리함에 따라 한민족은 마침내 역사상 처음으로 민족 전체가 식민 지배를 받는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5]
7 연대
8 관련 항목
- ↑ 2016년 10월 기준으로 1899년생 1명, 1900년생 2명이 생존해 있다. 따라서 머지 않아 19세기도 역사서와 유물, 유적으로만 만나볼 수 있는 시대가 될 것이다.
- ↑ 크림 전쟁에서 단 한번 승리했지만, 이마저도 영국, 프랑스 등이 오스만의 편에서 개입해준 덕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지원해준 은혜(?)를 앞세우며 내정에 간섭하여, 오스만 제국은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닌 결과를 맞이했다.
- ↑ 물론 열강이 힘을 합치면 가능했겠지만 그게 가능했으면 1, 2차 세계대전은 없었을 것이다. 열강이 제대로 힘을 합쳐서 전쟁에 임한 건 의화단 전쟁 당시의 개입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 ↑ 조선의 도와 서양의 기술을 접목시키자는 주장인데 말은 좋지만 서양의 기술은 그 자체가 서양의 역사, 그리고 정신을 담고 있었으므로 결국 조선 자체를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하듯이 개조하지 않는 이상은 살아남을 길이 없었다. 참고로 청도 조선과 비슷한 시기 중체서용을 제창했다가 대차게 망했다.
- ↑ 단,러일전쟁과 경술국치는 20세기에 일어난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