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카메론

(제임스 캐머런에서 넘어옴)
아카데미 시상식 감독상
안소니 밍겔라
(잉글리쉬 페이션트)(1997)
제임스 카메론
(타이타닉)(1998)
스티븐 스필버그
(쉰들러 리스트)(1994)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9)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
이름제임스 카메론
JAMES CAMERON
분야영화
입성날짜2009년 12월 18일
위치6712 Hollywood Blvd.


James Francis Cameron
1954년 8월 16일 ~

  • 참고 자료
94.08.24-정성일-제임스 카메론 감독#2
DVD프라임의 특집기사#2

1 개요

흥행의 제왕
전 세계 역대 흥행 영화 1위2위를 만든 영화감독[1]

할리우드 최강의 돈 긁개

새로운 기술을 통해 독자적인 이야기의 경지를 펼쳐 보인 시네아티스트, 그리고 역대 흥행 순위 1, 2위의 영화를 만든 괴물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조지 루카스와 함께 할리우드의 3대 블록버스터 거장으로 불린다.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가 북미에서 특유의 팬덤 및 여러요소에 힘입어 9억불이라도 괴물같은 흥행을 기록했지만 전세계에서 20억불에 그쳐서역대 흥행 3위에 머무는 것을 보았을때 해외 기록이 북미 기록의 세배에 이르는 카메론의 경우 전세계적으로 통하는 흥행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존 포드하워드 혹스처럼 이야기의 깊이를 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기술과 SF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영상에 고전적인 이야기를 합쳐, 자신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하였다.

영화사에서 그의 업적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1991년, 《터미네이터 2》 제작비로 1억 2백만 달러를 기록하며, 할리우드 최초로 억대 제작비 시대를 연 선구자.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올바른 표기는 제임스 프랜시스 캐머런이다. 성씨를 발음에 따라 적으면 '캐머런【kæmərən】'이 되지만, 철자 표기에 이끌려 '카메론'으로 적게 된 것으로 보인다. 반면 같은 성씨를 쓰는 영국의 전 총리 David Cameron은 '데이비드 캐머런'이란 표기가 널리 쓰이고 있다.

1.1 감독 데뷔 이전

캐나다 온타리오 주 생으로 아버지는 전기기술자, 어머니는 화가였다. 17살에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주, 50년대 B급 SF 영화에 빠져 들었고, 어린 시절부터 잡동사니로 로켓, 비행기, 탱크 등을 만들면서 미니어처 제작의 습작기간을 거쳤다.

독서광이었던 캐머런은 특히 자기가 좋아하는 SF물을 탐독하며, 그 시각적 상상력을 표현하는 데 관심을 가졌다. 캐머런은 아버지에게 카메라를 빌려, 16mm 영화 습작과 미니어처를 직접 만들어 특수효과도 실연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을 중퇴한 캐머런은 결혼을 하고, 트럭 운전사나 만화가 어시스턴트 등의 직업을 전전한다. 그러다 《스타워즈》를 보고 엄청난 컬처쇼크를 받고, 일을 그만 두고 본격적으로 영화계에 뛰어들 결심을 굳히게 된다. 그리하여 친구와 함께 만든 단편 습작영화 《제노제네시스》가 좋은 평가를 받아,[2] B급 영화, 저예산 영화를 흥행시켜 수익을 남기는 걸로 유명했던 로저 코먼의 뉴 월드 픽처스에 들어간다.

2 작품 활동

2.1 데뷔 초

로저 코먼의 수하에서 《우주의 7인》(1980)의 미니어처를 제작한 것이 첫 영화 작업. 이 외에도 《뉴욕 탈출》(80)이나 《공포의 혹성》(80)[3] 같은 B급 SF 영화의 디자인과 특수효과에 참여해, 제작자들에게 눈도장을 찍는다.

그리하여 《피라냐 2 Piranha Part Two: The Spawning》(81)로, 염원하던 감독으로 데뷔하게 된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의 인생에 있어서 기억하기 싫은 악몽만 남게 된다. 아니, 월간 《키노》 같은 잡지에서도 유명 감독의 최악 데뷔작으로 손꼽힌다고 썼을 정도였다. 사실상 이탈리아 영화인 이 물건은 제작자 오비디오 G. 아소니티스의 잔머리로 인해, 감독이 확정되지 않던 와중에 제임스 캐머런에게는 명분상 감독 자리만 주었다가 도중에 잘라버렸고, 실제로 그는 제대로 감독을 맡지도 못했다. 결국 캐머런은 몰래 영화 사무실에 잠입해 이 영화의 편집이라도 맞춰놓으려 시도했으나, 이 또한 이탈리아 스태프진들이 도로 원래 편집으로 돌려놓았고, 결국 영화의 최종판은 희대의 괴작이 돼 버리고 말았다.[4] 그리고 가끔씩 자학개그로도 사용한다. 날아다니는 피라냐가 나오는 영화중에서는 최고의 영화라고 (...)

2.2 승승장구

이렇게 무명 시절을 보내던 캐머런은 어느 날 싸구려 호텔에서 고열로 앓아누웠는데, 끔찍한 모습의 기계 인간이 불 속에서 서서히 일어나는 악몽을 꾸었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터미네이터》의 시나리오를 쓰고, 제작자 게일 앤 허드를 찾아가, 《터미네이터》의 속편을 비롯한 모든 권리를 1달러에 넘길 테니, 자신을 감독으로 기용하라고 제안한다.

원래 영화사는 시나리오만 구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대부분의 경우는 시나리오도 잘 안 팔린다. 하지만 워낙 시나리오가 괜찮다 싶을 경우에는,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감독 계약까지 해주는 경우가 있다.[5]

캐머런 감독의 실질적인 감독 데뷔작이자, 미래 사회의 암울한 묵시록이 담긴 SF 액션 영화 《터미네이터》(1984)는 640만 달러라는 비교적 저예산으로 제작되었고, 개봉 직후, '테크 느와르'란 호평과 함께 미국에서만 3840만 달러, 해외에서는 8000만 달러에 달하는 수익을 올려서, 거의 제작비 20배에 육박하는 대성공을 거뒀다. 이때부터 그의 형편이 피기 시작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터미네이터의 성공 후, 캐머런은 《람보 2》(1985)의 각본을 맡은 뒤, 《에일리언 2 Aliens》(1986)의 감독으로 발탁된다. 《람보 2》와 《에일리언 2》는 속편은 성공하기 힘들다는 영화계 속설을 깨부수며 대성공을 거두었고, 계속되는 성공으로 캐머런은 영화사의 돈을 맘대로 쓸 수 있게 된다.

이후 캐머런은 《어비스 The Abyss》(1989), 《터미네이터 2: 심판의 날 Terminator 2: Judgement Day》(1991), 《타이타닉 Titanic》(1997) 등을 감독하며, 새로운 특수 효과를 개발해가면서 시각 세계의 표현 영역을 넓히는 데 주력했다.

바다를 배경으로 과학 기술의 오용이 가져올 위험성을 경고하는 《어비스》는 전작과 달리, 역동적인 액션보다 중년 부부의 헌신적인 사랑과 미지와의 조우를 해저 심연에 펼쳐낸 캐머런의 SF 동화였다. 7000만 달러를 들인 《어비스》는 평은 좋았으나, 대중들이 즐기기엔 다소 심심한 내용이 되었던 데다가, 비슷한 시기에 제임스 캐머런이 심해 소재 영화를 만든다는 소문이 퍼졌다고 한다. 이에 흥행 감독인 그가 만든다니 나도 해보자는 식으로 심해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줄줄이 쏟아졌다. 예를 들어 《레비아탄》, 《딥 식스(DeepStar Six, 1989)》, 《심해 에이리언(Lords of the Deep, 1989)》, 《해저의 암살자(The Evil Below, 1989)》, 《마의 해역(The Rift, 1989)》 등등이다. 이런 이유로 캐머런이 직접 감독한 메이저 영화중에서는 처음으로 아마 마지막이겠지 상업적으로 실패하게 된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개발된 신기술은 이후 《터미네이터 2》에서도 유용하게 활용되었으며, 내용적으로도 《타이타닉》을 비롯한 훗날 캐머런 영화의 원형을 담고 있다. 과학 기술과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적 지지, 희생적인 사랑에 의한 구원의 모티브는 캐머런의 승부수다.

《어비스》에 이어 1억 200만 달러가 투입된 《터미네이터 2: 심판의 날 Terminator 2: Judgement Day》(1991), 1억 2000만 달러의 《트루 라이즈 True Lies》(1994), 급기야 2억 달러 이상의 제작비를 퍼부은 《타이타닉》까지, 캐머런은 할리우드 영화의 제작비 상승을 주도해왔다. 그는 《어비스》의 디지털 특수 효과로 만들어낸 의인화된 캐릭터[6], 몰핑기법으로 창조한 《터미네이터 2》의 T-1000의 변신 장면, 《트루 라이즈》의 1/4을 차지한 구분이 모호한 실사와 컴퓨터 그래픽의 합성 등 불가능해 보이는 표현의 한계에 도전했고, 매번 기록을 경신했다.

또한 그의 영화는 《어비스》를 빼놓고 모두 큰 성공을 거뒀다. 그 자신이 특수 효과 제작자로서 영화계에 뛰어들기도 했던 만큼, 모형 제작의 달인이자 특수 효과 제작자인 스탠 윈스턴과, 특수 효과 전문 업체인 디지털 도메인[7]을 설립하기도 했다.

스티븐 스필버그조지 루카스가 베이비붐 세대의 이상과 현실을 영상으로 옮긴 대표 주자라면, 제임스 캐머런은 그저 SF 액션 영화를 뛰어나게 잘 만드는 감독이라는 ‘부당한’ 평가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특수 효과의 향연과 스펙터클, 멜로 드라마의 문법을 결합한 《타이타닉》은 최고의 테크날러지를 동원해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장인(匠人)의 경지를 보여줬고, 1998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포함한 14개 부분에 노미네이트[8]되어 이 중 11개 부문을 수상하면서 그런 평가를 일축하였다.[9]

특히 타이타닉은 제작비가 당초의 예산을 초과하자, 감독으로서의 보수를 포기하는 것은 물론, 만약 《타이타닉》이 흥행에 실패하면, 《터미네이터 3》를 무보수로 찍어준다는 약속도 하면서 제작에 매달렸다고 한다. 미국 내 수익과 해외 수익을 합쳐, 1년 동안 무려 18억 4000만 달러를 벌어들인 《타이타닉》은 총수익 9억 2000만 달러를 벌어들인 《쥬라기 공원》의 역대 최고 흥행 기록을 무려 2배 이상 깨고, 영화사(映畵史)상 최고의 제작비를 들여 최고의 수익을 올린 전대 미문의 블록버스터가 되었고, 캐머런은 10여 년간, 《쥬라기 공원》, 《스타워즈》, 《E.T.》 등으로 치열하게 역대 박스오피스 1위를 뺏고 빼앗기는 친구끼리 사이 좋은 경쟁을 해 온 조지 루카스스티븐 스필버그를 제치고 새로운 패왕에 등극했다. 심지어 이 기록은 아직까지도 자신의 《아바타》 빼고는 제친 작품이 없다.

정말 당시로서는 엄청난 흥행 기록인데, 일단 15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에 등극한 것은 운이 좋았다고 치더라도, 그 어떤 작품도 넘지 못했던 5억 달러의 경지를 넘어 6억 달러의 경지를 새로 썼다. 물론 후에 만든 《아바타》는 7억 달러의 경지를 다시 썼다. 나는 나만 넘을 수 있지! 또한 《쥬라기 공원》 조차도 근접하기만 했고, 넘지 못하던[10] 월드와이드 10억 달러 흥행의 기록을 최초로 세웠고, 그걸로도 모자라 마구 마구 올라가서 20억 달러에 근접한 18억 달러의 수익을 벌어들였으니, 당시의 《타이타닉》의 흥행 기록은 충공깽.(이후 3D로 재개봉하여 최종적으로 21억 달러의 흥행을 기록했다.) 재개봉해서 3억 달러를 추가로 수익을 내는 것은 카메론에겐 아무것도 아닌 일.

심지어 《타이타닉》 첫 개봉이 지나고 17년 뒤 개봉한 2015년, 엄청난 대박을 터뜨린 《쥬라기 월드》가 전 세계 흥행 기록은 포기하더라도, 북미 기록만이라도 넘어보려고 갖은 용을 썼으나 이 또한 실패했다. 물론 타이타닉의 북미 기록은 쥬라기 월드가 아닌 다른 영화가 깨뜨리게 된다. 이처럼 《타이타닉》이 상상을 뛰어넘는 초대박을 치자, 제작사인 폭스와 파라마운트에서는 캐머런에게 무려 1억 달러(약 1000억 원)의 보너스를 따로 주었다.#

사실 이는 보너스라기보다는 추후에도 우리와 계속 같이 해달라는 의미로 주었다고 보는 게 맞다. 북미 5억 달러를 넘은 작품도 없고 월드와이드 10억 달러를 넘은 작품도 없었는데, 《타이타닉》은 그 기록을 다 깨뜨려서, 북미 6억 달러, 전 세계 18억 달러(한 번 언급했지만 추후 3D 버전으로 재개봉하면서 22억 달러에 육박했다. 재개봉해도 4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위엄을 보라)을 벌었으니, 영화사에서는 당연히 반드시 붙잡고 싶어할 만하다.

하지만 캐머런 감독은 타이타닉에 관한 다큐 또는 잠수함에 심취하여, 이것저것 소소한 다큐들을 내놓는 것 외에는 장장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잠행하였다. 한동안은 엄청난 흥행 신화를 썼기에 언제 다시 메가폰을 잡고 복귀하느냐가 헐리웃의 초미의 관심사였지만, 캐머런은 다큐멘터리 영화들[11], 혹은 영화 제작에 잠깐 참여할 뿐[12] 실질적인 영화감독 복귀는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캐머런이 신작을 만들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이름하여 아바타. 《타이타닉》으로 90년대 후반을 휩쓸었던 제임스 캐머런의 영화감독 복귀작이라는 것에서 아바타의 제작에 대한 일거수일투족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고, 이에 캐머런 감독은 영화사에 남을 영상 혁명을 보여주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곧, 3D 영화라는 점, 20세기 폭스에서 제작비에 관하여 무제한으로 허가해줘서, 제작비가 자그마치 4억 달러에 달한다는 점 등이 알려지면서, 대중들의 반응은 엄청난 기대 혹은 저러다 망하면 어쩌나, 라는 걱정으로 양분되었다.

2009년 12월, 드디어 캐머런의 12년 만의 신작 《아바타》가 개봉하였으며, 초반 로튼토마토 100%를 받고 전야제부터 매우 커다란 열기를 모았다. 그리고 극장 개봉 2개월 만에 결국 12년간 흥행의 아성을 지켜오던 《타이타닉》의 기록을 뛰어넘었다. 끝을 모르는 흥행 기록은 계속되어, 결국 최종 27억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수치의 흥행을 달성했다. 자기 작품의 최고 기록을 자기가 깨는 괴물, 아니, 영화계의 황제. 영화계의 우사인 볼트.[13]

《아바타》의 흥행 2년 후, 제임스 캐머런 제작, 알리스터 그라이슨 감독의 《생텀》이 미국에서 첫 주 2위로 개봉되었지만, 흥행 성적은 944만 달러로 부진했다. 이 영화는 《솔라리스》와 다르게 영화 평이 좋지 않아서[14] 미국 흥행은 2,320만 달러라는 초라한 기록이 나왔지만, 해외 흥행은 조금 잘 나와 전 세계 흥행 1억 800만 달러가 나왔기에 그럭저럭 수익은 올렸다. 참고로 이 영화 제작비는 3000만 달러로 꽤 저렴하게 만든 영화이다. 한국에서는 첫날 관객 수가 4만 5,466명을 동원하여 2위로 데뷔했고[15] 첫 주 관객 수는 총 28만 7,541명을 기록하여 3위로 등극했다.[16] 하지만 그 다음 주에 8위로 급락했으며, 총 관객 수는 46만 명을 기록했다.

단, 《솔라리스》와 《생텀》의 경우 제임스 캐머런은 '제작'을 한 것이고, 영화의 완성도에 대한 책임은 각 감독들에게 있는 것이다. 제임스 캐머런은 감독으로서 망한 것은 《피라냐 2》를 제외하면 없다. 그리고 그 《피라냐 2》조차도 위에 나왔듯이 애송이 감독 시절 10% 정도만 찍다가 제작자의 입김으로 모가지 당해서, 캐머런이 책임질 잘못도 아니다. 물론 흥행으로 치자면 《어비스》가 망하긴 했다. 그러나 어비스는 작품성에 대한 평은 괜찮고, 이후의 작품을 위한 특수 효과 실험이라는 면도 있다. 감독을 맡은 영화는 물론, 제작을 맡은 영화까지 골고루 흥행시키는 스티븐 스필버그에는 못 미친다는 주장도 있다.

3 취향과 성격

이 감독의 작품을 보면 알겠지만,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현대화된 기계문명을 신랄하게 까댄다. 어떻게 보면 테크날러지를 비판하기 위해, 정작 최신의 테크날러지를 아낌없이 퍼부어가며 만든다는 게 참 아이러니. 이 때문인지 가족 구성원 전체가 비건 채식주의자라고 한다. 그리고 감독한 영화 목록들을 보면 알겠지만, 바다우주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의 영화는 유독 푸른 색채가 강하다는 걸 보면 알 수 있듯이 파란색을 좋아한다. 파란색은 우주, 심해, 금속성의 물체를 표현하는 데에 빠져서는 안 될 색이기도 하고, 특수효과를 활용하기 편해서 더욱 선호했다고. 급기야는 등장인물들이 모조리 파란색인 영화가 나오고 말았다. 아이고. TED 강연에서도 자신이 그러한 부분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와 동기를 설명하고 있다. 또한 거대 자본을 가진 대기업들이 악역으로 잘 나오며, 결말에는 좋은 꼴을 못 보여준다는 공통점도 있다.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사이버다인 시스템즈, 아바타 시리즈의 RDA가 대표적이다. 위의 테크날러지 비판처럼, 정작 감독 본인은 영화를 찍기 위해 거액의 제작비를 끌어대는 모습을 보면 이 또한 아이러니.

특히, 《타이타닉》을 촬영할 때 한 자료 조사로 심해 전문가 급의 지식을 갖추게 되었고, 그 지식으로 인해 2010년 발생한 환경 대재앙 딥워터 호라이즌 폭발 사고의 대책회의에 참석하기도 했다. 당시 대책회의는 각 분야 전문가들이 브레인스토밍 차원에서 대책을 논의하던 자리였는데, 캐머런도 여기에 참석한 것. 캐머런은 당시 정부 관계자를 멍청이(moron)이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하였는데, 사태가 진정국면에 들어섰을 때는 '우리가 대책을 건의했는데 정부는 씹었다. 근데 나중에 보니 그 대책을 써먹고 있더라. 우리말을 들었으면 좀 더 빨리 해결되었을 것'이라고 발언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건 캐머런 본인의 이야기고, 딥워터 호라이즌 폭발사고에 대한 공식기록에는 캐머런의 존재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해 두자. 다큐멘터리의 필모그래피에서도 보이듯이, 심해로 가라앉은 나치 독일의 전함 비스마르크의 탐사도 했었고, 비스마르크의 격침에 대한 새로운 사실도 밝혀냈었다. 그 외에도 NASA의 화성 탐사에 자문으로 참가하고 있다.

1인승 잠수함으로 최저 깊이 잠수 신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 결국 1인승 잠수함으로 마리아나 해구 밑바닥까지 내려간 사람이 되었다. #

캐머런은 젊은 시절 부인이었던 한 웨이트리스[17] 외에도 제작자 게일 앤 허드,[18] 여성감독 캐스린 비글로[19], 배우 린다 해밀턴과 결혼 및 이혼을 거듭했다. 현재 부인은 《타이타닉》에 조연으로 얼굴을 비친 배우 수지 에이미스.(로즈의 손녀딸로 잠깐 등장한다) 재미있는 것은 결혼한 상대 모두가 강한 여성들뿐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캐머런 감독의 영화에 나오는 여주인공들도 대개 용감한 여성 혹은 여전사다.[20] 여담이지만, 그가 제작한 작품들을 보면 로맨스물에는 십중팔구 NTR 요소가 들어 있다(…). 제임스 캐머런이 바람나서 별거 및 이혼을 반복했던 경험이 반영된 듯하다. 영화 촬영하다가 눈 맞고 동거하고, 본 부인과 별거하여 이혼하고, 또 다른 여자와 눈 맞고… 왜곡된 성욕...

또한 과거에는 성격이 매우 난폭하기로 유명한 감독이었다.《에일리언 2》를 촬영할때도 초반에 영국 스테프들과 마인드가 맞지 않자 책상을 뒤엎을 정도로 싸웠다는 얘기가 있으며[21] 조명 감독이 실수로 조명을 어둡게 하거나 너무 밝게 해도 "당신은 조명을 맞추는 법을 대체 어디서 배운 거요?"라고 호통을 쳤다고 한다. 물론 이는 그의 완벽주의 성향이 크게 작용한 것이라고 하는데 캐머런 자신이 노력형 천재에 가까운 인물이다 보니, 스태프들의 일처리나 결과물이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그러니 자연 성격이 까칠해지고, 그렇게 가르쳐주고 지시했는데도 저렇게 밖에 못하냐는 식으로 울화통에 가까운 반응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것. 그리고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감독이라는 위치에서, 답답함을 누르며 그들을 계속 보며 이끌려다 보니 저렇게 된 게 아닌가 하는 의견이 많았다고 카더라. 아무튼 그 성격 때문에 촬영장의 스태프들은 그를 촬영장의 폭군, 혹은 촬영장의 조지 S. 패튼 장군이라고 불렀다. 실제로 캐머런은 패튼 장군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막말을 하거나,미국판 이순재 마음에 들지 않는 스태프를 가차 없이 해고해버렸지만 캐머런은 "그래도 나는 패튼 장군처럼 몽둥이로 당신들을 두들겨 패지는 않았소"라고 응수했다.(…)사실 조지 S. 패튼 항목을 들어가보면 알겠지만 이 인간에 비하면 카메론은 그냥 양반이다. 이러한 캐머런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친구들, 아놀드 슈워제네거를 포함해서, 캐머런 사단이라고 일컬어지는 마이클 빈[22], 빌 팩스턴[23], 제넷 골든슈타인,[24] 랜스 핸릭스[25]는 그의 성격 때문에 촬영장에는 늘 긴장감이 감돌았고, 스태프들이 캐머런에 대한 불만과 뒷담화를 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고 말했다.써놓고 보니 거의 다 《에일리언 2》에서 인연이 시작되었다 빌 팩스턴은 《타이타닉》에서 보물 사냥꾼 브롯 러벳의 성격과 선원들을 다루는 방식을 제임스 캐머런의 행동과 대화 방식을 차용해 연기했고, 캐머런도 이러한 그의 연기를 보고 자신과 유사한 점이 많다며 시인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NASA의 과학자들과 함께 심해 탐사를 다녀오면서 성격이 크게 변하게 된다. TED 영상에도 나와 있듯이, 캐머런은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며 함께 일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유대감"을 탐사 과정에서 배웠고, 이를 《아바타》의 제작 과정에 도입해서 매우 좋은 결과를 냈다고 밝혔다. 실제로 《아바타》의 촬영은, 이전까지 캐머런이 찍은 영화들과는 다르게 굉장히 화목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고 한다. 《에일리언 2》에서 출연했던 시고니 위버도 카메론이 순해졌다고 언급할 정도.우리 캐머런이 달라졌어요. 게다가 이런 변화를 겪은 후, 한 성질하기로 유명한 마이클 베이한테도 "성격 죽여도 그렇게 나쁜 게 아니라네.(…)"라고 말해서, 마이클 베이도 캐머런에게 배워서 옛날처럼 사납게 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나온 작품이(...)

4 그 외

TV 시리즈로는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슈퍼솔저를 소재로 한 《다크 엔젤》 시리즈를 만들었다. 제시카 알바가 출연하는 등 나름대로 대작이었는데 반응은 중박 수준. 하지만 시청률이 점점 답이 없는 상태로 내려갔기 때문에 시즌 2로 종료되었다.

아바타》의 성공 이후 후속작 세 편을 더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하여 제작사인 20세기 폭스는 캐머런에게 전권을 위임하였고, 맘대로 찍을 수 있을 때까지 찍어보라고 하였다. 이미 벌어들인 수익이 너무 어마어마하여, 세 작품들 중 한 작품만 건져도 《아바타》 시리즈 전체로는 돈을 벌었으니 이런 허가를 내줄 수밖에…. #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순차적으로 2, 3, 4편이 개봉될 예정이다. 《총몽》 영화화는 《아바타》 시리즈의 제작이 모두 끝날 때까지 보류한다고. # 그러나… 이마저도 1년씩 늦춰져, 2편은 2017년, 3편은 2018년, 4편은 2019년에 개봉한다고 한다. # 으아, 앙대!! 그런데 또 다시 연기되었다. 이번에는 개봉 날짜마저 제대로 잡혀있지 않은 상황(...).

그런데 최근 알려진 소식으로는 《아바타 5》까지 각본이 나와 있다고 한다. # 예정대로 간다면 5편은 2020년 말에 개봉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벌써 신작이 나왔다! 이름은 Laser Cat 5


캐머런 영화를 많이 봤다면 어렵잖게 공감하고 웃을 수 있는 내용이다. 대강 패러디 요소를 집어보자면, 시간이동 후 두 인남캐가 알몸으로 나오는 장면(《터미네이터》 시리즈), 거대 레이저 캣이 나오는 장면부터 쭉 《에일리언》 시리즈의 패러디가 나오고(국장이 사실은 기계였다거나(《에일리언 2》), 시고니 위버가 나온다거나, 사실 시고니 위버에게 레이저 캣이 기생하고 있었다거나(《에일리언 3》), 인남캐 하나가 뜬금없이 높은 곳에서 떨어지더니, 다리불구가 되어서 아바타 기계에 타는 장면은 두말 할 것 없는 《아바타》 패러디. 레이저 캣 둥지를 파괴하고 탈출하는데, 뜬금없이 남아서 현악 4중주를 선보이는 음악가들은 《타이타닉》의 패러디이고, 레이저 캣은 전설의 그 영화 《피라냐 2》의 패러디다.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리부트 3부작이 모두 완결된 뒤에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판권이 2019년에 제임스 캐머런에게 넘어오게 된다.# 이제 터미네이터 프랜차이즈가 엉망으로 망가지는 일이 없는 건가? 판권이 원작자에게서 오랫동안 떠나 있다가 다시 돌아온 걸 보면,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다만 아직 캐머런이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차기작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는 걸로 보아, 캐머런의 터미네이터 후속작은 아직 기대하기 어렵다. 게다가 캐머런의 아바타 5부작 같은 차기작들을 보면 더더욱 어려워 보인다.

5 필모그래피

ㄷㄷ

연도제목활동제작사제작비극장 흥행흥행
2009아바타기획, 제작, 연출, 각본20세기 폭스2억 3700만 달러27억 8800만 달러성공
2002솔라리스제작20세기 폭스4700만 달러3000만 달러실패
1997타이타닉기획, 제작, 연출, 각본20세기 폭스/파라마운트2억 달러21억 8700만 달러성공
1995스트레인지 데이즈제작,각본20세기 폭스/유니버셜 픽쳐스4200만 달러800만 달러실패
1994트루 라이즈제작, 연출, 각본20세기 폭스/유니버셜 픽쳐스1억 달러3억 7880만 달러성공
1991폭풍 속으로제작20세기 폭스2400만 달러8350만 달러성공
1991터미네이터 2: 심판의 날제작, 연출, 각본트리스타 픽쳐스1억 200만 달러5억 1980만 달러성공
1989어비스연출, 각본20세기 폭스7000만 달러9000만 달러실패
1986에일리언 2연출, 각본20세기 폭스1800만 달러1억 8330만 달러성공
1985람보 2각본트리스타 픽쳐스2550만 달러3억 400만 달러성공
1984터미네이터연출, 각본오리온 픽쳐스640만 달러7830만 달러성공
1981피라냐 2연출----

5.1 차기작 목록

세 편 연속으로 제작하며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차례로 개봉할 예정이었으나 개봉 미정상태가 되었다.

원래는 《아바타》의 차기작으로 계획하고 있었으나 연기를 거듭하다가, 결국 로버트 로드리게스가 감독을 맡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캐머런은 제작을 맡게 된다. 기사

  • 《마이크로 결사대》

원래 캐머런이 감독을 맡고 싶어 했지만, 《아바타》 때문에 감독직을 거부하고 제작만 맡게 되었으며, 후임 감독으로는 롤랜드 에머리히가 물망에 올랐지만 영화 《2012》 때문에 역시 거부하였다. 그 다음으로는 폴 그린그래스 감독이 있었으나, 역시 거부하여 최종 감독은 리얼 스틸의 숀 레비, 각본은 《아마겟돈》의 셰인 샐러노로 결정되어 현재 시나리오 작업 중이다.

1980년대에 나온 애니메이션의 원작으로 캐머런이 제작으로 하고 감독으로는 데이비드 핀처, 잭 스나이더, 기예르모 델 토로,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의 고어 버빈스키 등이 내정되어 있지만, 현재 파라마운트 픽처스가 배급을 고려만 하고 있을 뿐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제작이 되지 않고 있다.

  • 《다이브》

프리다이버 프란시스코 페레라스와 잠수 기록 갱신 도중 사망한, 프리다이버 기록을 가진 프랑스 출신의 다이버이자 그의 아내인 오드나 메스트르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으로, 제작 혹은 감독으로 참여할 예정이지만, 다른 영화들에게 밀려 제작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

원래 2002년에 《트루 라이즈》의 속편을 제작하려 했으나, 9.11 테러가 나면서 속편 제작에 차질이 생겼고, 여기에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당선이 되면서 결국 무산되었다. 하지만 2010년에, 캐머런이 《트루 라이즈 TV 시리즈》를 계획 중이며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이 그대로 나올 예정이라고 밝혔으나 이후로는 소식이 없다.

  • 《히로시마 발 마지막 열차》

히로시마 원폭에서 살아남은 생존자 영화를 제작한다고 발표하였고, 실제로 캐머런은 히로시마 원폭의 생존자인 야마구치 쓰토무와 만나서 이야기를 하기도 하였으나, 야마구치가 사망하면서 이 영화 제작도 불투명해졌다.

감독은 기예르모 델 토로, 제작은 제임스 캐머런으로, 톰 크루즈를 주연으로 영화를 진행하려 했지만, 유니버설 픽처스에게 투자를 받지 못하자 제작을 중단했다. 이후 리들리 스콧의 《프로메테우스》가 나오면서 다시 제작을 시작하여 영화화를 진행하고 있다.

캐머런이 그룹 블랙 아이드 피스 다큐멘터리 영화를 3D로 제작한다고 하였으나, 그 이후로 아무런 소식이 없다.

  • 《클레오파트라》

캐머런이 감독을 맡고, 각본은 《포레스트 검프》의 에릭 로스가 담당하여, 안젤리나 졸리의 은퇴작으로 계획하고 있었지만, 캐머런이 《아바타》 속편을 제작하면서 무기한 연기되었다.

  • 《인포메이셔니스트》

2012년에 캐머런이 감독으로 결정되었으나, 현재 캐머런이 《아바타》 속편을 제작 중이기 때문에 촬영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5.2 다큐멘터리 목록

  • 제임스 캐머런의 《최후의 타이타닉》(Titanic: The Final Word with James Cameron, 2012)
  • 《에일리언즈 오브 더 딥》(Aliens of the Deep, 2005)
  • 《심해의 영혼들》(Ghosts of the Abyss, 2003)
  • 비스마르크호의 비밀》(Expedition: Bismarck, 2002)
  1. 3위는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이다.
  2. 공동 감독 및 각본 및 제작을 했던 친구 랜들 프레이크스는 12년 뒤에 영화계에 각본가로 뛰어들었으나, 현재까지 암울한 필모그래피를 남기는 중이다(…).
  3. 시체의 팔에 구더기가 꿈틀거리는 장면이 있었는데, 모형 팔에 전기를 흘려넣어 구더기를 움직이게 해, 제작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한다.
  4. 훗날 로저 코먼에게 왜 망했는지를 물었더니, '식인 피라냐가 물속에서 보이지 않을 때 관객들은 무서운 법인데, 노골적으로 하늘까지 날아다녀서'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사실 영화를 보면 하늘을 날기는커녕 피라냐 인형을 사람들에게 집어던져서 찍었다! 그나마 이후 콜롬비아를 통해 미국의 부가시장에서 출시됐을 때는, 그가 다시 편집을 손대서 출시했다고 한다. 얼마나 한이 맺혔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 더불어 한국 비디오는 물론 해외 비디오(표지에선 《에일리언 2》, 《터미네이터 2》, 《타이타닉》의 감독임을 강조했다) DVD까지 그의 데뷔작이라 강조하면서 팔아먹고 있다. 이제 블루레이까지 나와서 《아바타》를 크게 앞표지에 쓸지도 모른다(…).
  5. 이런 방식을 쓰는 것은 캐머런 뿐만이 아니다. 《터미네이터》 이전에 이런 방식으로 데뷔한 인물들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 바로 실베스터 스탤론이다. 스탤론은 심지어 감독에 주연까지 내놓으라고 했기 때문에 모든 영화사에서 거절당했다. 결국 감독은 포기하고 주연만 맡는 것으로 합의를 봐서 본격적인 영화 제작에 들어가는데, 그 영화가 바로 《록키》다.
  6. 이걸 그리기 위해 탄생한 그래픽 소프트웨어는, 훗날 어도비 사가 사들여 포토샵이라는 이름으로 상품화시켰다.
  7. 현재 《캐리비안의 해적》, 《트론 : 새로운 시작》 등 유명 작품의 VFX를 도맡고 있다.
  8. 나머지 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못된 부문은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각본상이다.
  9. 이때 감독상을 받으며 캐머런이 외친 말이 나는 세상의 왕이다!였다. 정작 이 애드립 대사의 주인공이지만 남우주연상 후보에도 들지 못한 주연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이 말에 이죽거렸다고.
  10. 물론 개봉한 시기 한정. 재개봉 수익까지 합치면 《쥬라기 공원》도 10억 달러를 넘겼다.
  11. 이 시기에 제작한 작품들 중 국내에서 유명한 것은,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의 전함 비스마르크 침몰을 다룬 2002년작 《비스마르크호의 비밀》 정도일 것이다. 이 역시 물 속에 가라앉아 있는 비스마르크 호를 탐사하는 내용.
  12. 《타이타닉》 흥행 이후 5년 만에 캐머런이 제작하고 스티븐 소더버그가 감독한 《솔라리스》가 개봉되었다. 평은 좋은 편이었으나, 흥행 면에서는 미국 첫 주 수익이 7위(675만 달러)라는 초라한 기록을 달성하여, 미국 흥행 수익은 1,497만 달러로 그쳤고, 해외 수익을 합쳐 3,000만 달러로 흥행에 실패(제작비는 4,700만 달러)를 하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첫 주 9위로 데뷔하여 전국 관객 수 2만 명에 그쳤다.
  13. 《타이타닉》이 훗날 21억 달러에 육박하는 흥행을 올렸으나, 이는 《타이타닉》이 3D로 재개봉하면서 올린 수치로, 이 당시만 해도 《아바타》가 유일한 20억 달러 흥행 작품이었다.
  14. 미국은 IMDB 기준으로 솔라리스 6.2, 생텀 5.7이지만, 국내는 네이버 기준으로 《솔라리스》 6.95, 《생텀》 7.18이므로, 국내에서는 《솔라리스》보다 평이 좋다.
  15. 1위는 《조선명탐정》이다.#
  16. 1위는 《조선명탐정》(49만 명), 2위는 《라푼젤》(32만 명)이다.
  17. 캐머런이 만난 가장 착한 여성 그리고 소꿉친구이라고 한다.
  18. 영화 《터미네이터 시리즈》, 《에일리언 2》, 《에이리언 네이션》, 《어비스》 등의 프로듀서를 맡았다.
  19. 재미있게도 201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 작품상 후보로 캐머런의 《아바타》와 《비글로》의 허트 로커가 올랐다! 이 때문에 세간에는 전(前)남편이냐 전(前)부인이냐를 놓고 설왕설래하고 있었는데, 결국 승자는 전(前)부인이 되었다.
  20. 할리우드 영화의 대표적 여전사인 《에일리언 2》의 엘렌 리플리와 《터미네이터의》 사라 코너 모두 제임스 캐머런 영화에 등장한 캐릭터들이다. 이런 유형의 여성들은 자신의 일과 능력에 대해 자부심이 강한 경우가 많다. 뒤집어 말하면 여성판 캐머런인 셈. 그래서 친해지기는 쉬우나, 당연히 가정을 돌보기에는 둘 다 젬병이 되니 결국 이혼하게 된다나? 다만 싸우고 이혼한 게 아니다보니 이혼 후에도 전처들과 사이가 좋은 편이라고 한다.
  21. 영국 스태프들이 카메론에게 하루에 8시간 이상 일하지 않게 해줄 것, 그리고 하루에 두번씩은 티타임을 가지게 해줄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게다가 카메론에 대한 영국 스테프들의 태도도 일반적인 무시에 가까웠다고 하니...
  22. 《터미네이터》에서 카일 리스 역, 《에일리언 2》에서 드웨인 힉스 역
  23. 《에일리언 2》에서 허드슨 일병과 《타이타닉》에서 보물사냥꾼 브록 러벳 역
  24. 《에일리언 2》에서 바스케즈 일병 역
  25. 데뷔작이자 졸작 《피라냐 2》에도 출연했으며, 《터미네이터》에서는 사라 코너 동명이인 살인사건을 조사하는 형사 역을, 《에일리언 2》에서는 사이보그 비숍 역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