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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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창녕 조씨(昌寧 曺氏)는 경상남도 창녕군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는 조계룡(曺繼龍).

2 역사

창녕 조씨의 시조 조계룡은 신라 제 26대 진평왕의 사위라 전해진다. 조씨 득성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한림학사 이광옥(李光玉)의 딸 예향은 창녕현 고암촌(鼓岩村) 태생으로 그녀가 자라서 혼기에 이르렀을 때 우연히 복중에 병이 생겨 화왕산 용지에 가서 목욕재계하고 기도를 올리니 신기하게 병이 완쾌되었고 몸에는 태기가 있었다. 어느날 밤 꿈에 한 남자가 나타나 "이 아이의 아버지는 용의 아들 옥결이다. 잘 기르면 자라서 경상이 될 것이며 자손만대 번영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사라졌다. 그 후 달이 차서 진평왕 48년에 아들이 태어나니 용모가 준수하고 겨드랑이 밑에 조(曺)자가 붉게 씌여져 있었다. 이것을 본 학사는 이상히 여겨 이 사실을 왕에게 알리자 왕도 신기하게 여기며 성은 조(曺), 이름은 계룡(繼龍), 자는 인경(鱗卿)이라 하사하였다고 한다. 뒤에 진평왕이 부마를 삼음으로써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해지고 벼슬이 보국대장군 상주국대도독 총지휘제군사(輔國大將軍 上柱國大都督 總指揮諸軍事) 금자광록대부 태자태사(金紫光祿大夫 太子太師)에 이르렀다.

조계룡 이후로의 세계는 실전되어 전해지지 않고 신라 말 아간시중을 지낸 조흠의 아들 조겸이 고려 태조의 딸 덕공공주와 혼인하여 태악서승이란 벼슬을 지낸 기록이 있어 조겸을 중시조로 받들고 있다.

그러나 조(曺)씨 성을 가진 인물에 대해서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심지어 필사본 화랑세기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진평왕부마라고 하지만 실제 어떤 공주와 결혼하였는지는 도무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잘 알다시피 진평왕의 딸은 천명공주, 선덕여왕, 선화공주 세 사람이 알려져 있으며, 천명공주김용수에게, 선화공주백제 무왕에게 시집 갔다. 선덕여왕삼국사기에는 남편에 관한 기록이 없지만 삼국유사와 필사본 화랑세기에는 남편이 여럿 있었다고 기록한다. 실제 신라 시대에는 부원군이라는 작호가 없었으며, 조계룡이 받았다는 여러 벼슬 또한 신라 시대에는 찾아보기 힘든 벼슬이다. 그의 외조부 이광옥이 한림학사를 지냈다고 하는데 한림학사 또한 신라 시대에는 없던 관직명이다. 오히려 조계룡이 받은 작위와 벼슬은 모두 고려시대조선시대 삘이 난다. 또 왕건의 딸 중 덕공공주라는 인물도 찾아볼 수 없다(...).

또한 창녕 조씨 족보에 따르면 조계룡으로부터 조겸까지 조계룡-조응신-조수형-조흠-조돈-조겸 겨우 6대만 있다. 진평왕의 재위기(579~632)에서 신라말까지의 시간적 간격은 약 300년 정도인데, 한 세대를 30년으로 계산하면 겨우 180년 밖에 안 되어 신빙성에 크게 의심이 간다.

고려사고려사절요를 찾아봐도 조겸 등의 이름을 찾아보기도 어렵다. 창녕조씨에서 실질적으로 그 존재가 확인되는 인물은 조민수이다. 조민수는 창성부원군이라는 작위를 받은 바 있으며, 이것은 조계룡이 받았다는 작위의 이름과 동일한 것이다.

창녕 조씨조선 시대에 들어서 활발한 활동을 보인다. 세종 시대에 문과에 장원급제한 조상치,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운 조석문, 시인 조신, 조선 중기의 대유학자 조식(曺植) 등의 활동이 그것이다.

3 분파

조씨(曺氏)는 창녕 조씨가 단일본이며, 분파는 약 48여 개에 이른다.

  • 감사공파(監司公派)
  • 상호군공파(上護軍公派)
  • 사의공파(司議公派)
  • 낭장공파(郎將公派)
  • 대사헌공파(大司憲公派)
  • 대호군공파(大護軍公派)
  • 문익공파(文翊公派)
  • 문정공파(文貞公派)
  • 문간공파(文簡公派)
  • 밀직사공파(密直使公派)
  • 병조참의공파(兵曹參議公派)
  • 부사직공파(副司直公派)
  • 사성공파(司成公派)
  • 사정공파(司正公派)
  • 사직공파(司直公派)
  • 수찬공파(修撰公派)
  • 시랑공파(侍郞公派)
  • 시중공파(侍中公派)
  • 양평공파(襄平公派)
  • 장양공파(壯襄公派)
  • 좌시중공파(左侍中公派)
  • 중추공파(中樞公派)
  • 지중추공파(知中樞公派)
  • 진사공파(進士公派)
  • 청구당공파(靑邱堂公派)
  • 창산군파(昌山君派)
  • 충간공파(忠簡公派)
  • 충순위공파(忠順衛公派)
  • 태복경공파(太僕卿公派)
  • 부위공파(副尉公派)
  • 태학사공파(太學士公派)
  • 현감공파(縣監公派)
  • 헌납공파(獻納公派)
  • 시직공파(侍直公派)
  • 승지공파(承旨公派)
  • 지평공파(持平公派)
  • 직장공파(直長公派)
  • 희천공파(熙川公派)
  • 참의공파(參議公派)
  • 부제학공파(副提學公派)
  • 부사공파(府使公派)
  • 충정공파(忠貞公派)
  • 충익공파(忠翼公派)

4 항렬

현재 창녕 조씨의 항렬은 비교적 근래에 만든 것이다. 창녕 조씨는 조선 중기 이후 각 파에서 항렬자를 엄격히 제정하여 사용하다가, 1911년 대동보를 만들 때 전국의 종친들이 모여 각 파에서 사용하는 항렬자를 통일하였다. 조선 중기의 인물인 삼송 형제(松茂, 松鶴, 松君)을 1세로 하여 세대수를 리셋하고 그 22세손을 승(承)자로, 23세손을 병(秉)자로 정한 후 그 이후 세대부터 각 항렬별로 세 자 씩의 돌림자를 정했다. 돌림자의 원칙은 오행(五行)인 목화토금수를 부수로 하는 글자로 정했다. 이렇게 각 세대당 세 자 씩 돌림자를 정한 이유는 같은 이름이 많아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오늘날 활동하는 창녕 조씨의 항렬은 대략 24세에서 26세인데, 오랜 역사와 다르게 대수가 짧게 느껴지는 것은 조선 중기에 세대수를 한 번 리셋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22세 - 承
23세 - 秉
24세 - 煥 燮 烈
25세 - ㅇ* 圭 喜 在 (基)
26세 - * ㅇ 鉉 鎬 鍾
27세 - ㅇ* 永 泳 海 (洙)
28세 - *ㅇ 根 植 穆
29세 - ㅇ* 容 炯 然
30세 - *ㅇ 載 坤 塤
31세 - ㅇ* 鎰 鍵 鏞
32세 - *ㅇ 泰 淳 淵
33세 - ㅇ* 東 相 英
34세 - *ㅇ 燮 烈 杰
35세 - ㅇ* 均 重 垣
36세 - *ㅇ 鎔 鎭 錫
37세 - ㅇ* 潤 準 汶
38세 - *ㅇ 稷 栢 杓
39세 - ㅇ* 熙 煐 螢

5 주요 인물

  • 조식: 호 남명. 조선 중기의 대유학자로, 영남학파의 거두. 주로 실천적 입장에서의 유학을 주장하였으며, 인(仁)을 중시한 퇴계 학파와 달리 의(義)를 중시하여 실제로 그의 제자 중 상당수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싸웠다. 대표적인 인물이 곽재우. 붕당 중 북인의 뿌리로 알려져 있다.

6 집성촌

다분히 옛날 자료..이긴 하지만 창녕 조씨의 집성촌으로 알려진 곳은 대략 다음과 같다.

7 현황

  • 1985년 72,213가구 299,669명
  • 2000년 105,282가구 338,222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