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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 잉금님 쥐금님 시절.
SK 와이번스 슼금님 시절.
한화 이글스의 베테랑 포수. 칰금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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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잉미소. 내가 아웃이랬잖아~ 맞지? 맞지?
한화 이글스 No.44 | |
조인성(趙寅成 / In-sung Cho)[1] | |
생년월일 | 1975년 5월 25일 |
출신지 | 서울특별시 강북구[2] |
학력 | 수유초 - 신일중 - 신일고 - 연세대 |
포지션 | 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98년 신인드래프트 1차 지명 (LG 트윈스) |
소속팀 | LG 트윈스(1998~2011) SK 와이번스(2012~2014) 한화 이글스(2014~현재) |
응원가 | LG 시절 입장시: MC 스나이퍼 《민초의 난》 타격시: ABBA 《Dancing Queen 》 SK 시절 입장시: ABBA 《Dancing Queen》[3] 타격시 : → 이선희 - 《아카라카치》[5] 한화 시절(현재) 입장시: Bill Conti - 《Gonna Fly Now》 타격시 : Survivor - 《Eye of the Tiger》[6] |
2010년 한국프로야구 포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 ||||
김상훈(KIA 타이거즈) | → | 조인성(LG 트윈스) | → | 강민호(롯데 자이언츠) |
LG 트윈스 역대 주장 | ||||
이병규 (2004) | → | 조인성 (2005) | → | 서용빈 (2006) |
LG 트윈스 역대 주장 | ||||
이종열 (2007~2008) | → | 조인성 (2009) | → | 박용택 (2010~2011) |
LG 트윈스 등번호 44번 | |||||
오규택(1996~1997)[7] | → | 조인성(1998~2011) | → | 윤요섭(2012~2015) | |
SK 와이번스 등번호 44번 | |||||
박정환(2009~2011)[8] | → | 조인성(2012~2014) | → | 김강석(2014) | |
한화 이글스 등번호 44번 | |||||
권시훈(2013) | → | 조인성(2014~ ) | → | 현역 |
1 선수 설명
앉아쏴의 본좌.
KBO 리그 역대 최초의 100타점 포수[9]
KBO 역대 최고령 선발 포수[10]
하이브리드 바깥양반 잉금앉아쏴
쥐갤한정 인천과 대전의 영원한 프랜차이즈
한화 이글스 소속의 선수로 포지션은 포수. 박경완, 진갑용과 함께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하는 베테랑 포수로 데뷔년도가 1998년이니 2016년 기준으로 대략 19년을 야구선수로 뛰어온 셈이다.
앉아서도 도루를 저지할 수 있는 강견[11][12]과 괜찮은 타격으로 2006년 1회 WBC 대표팀에 발탁되는 등 리그 정상급 포수로 군림했으나,[13] 어깨부상 + 추락하는 팀 성적 등과 더불어 2009년에는 어깨와 타격이 신통치 않아 잉여라고 까였다.
박 모 파워 블로거는 더 이상 앉은 상태에서 도루를 저지할 수 없게 된 이상 부정확한 송구를 유발하는 무리한 자세를 포기해야 한다고 말한 적도 있다. 그러나 젊었을 때만은 못하지만 여전히 조인성은 리그 상위권의 강견을 지녔고, 단순히 도루 저지율만으로는 젊었을 때만 못하지만 조인성이 마스크를 쓸 때 상대팀의 도루 시도 횟수가 8개구단 최소 수준으로 줄어든다는 사실은 그의 강견이 여전히 무시할 수 없음을 나타낸다. 그리고 2014년 시즌을 기준으로 한화에 입단한 이후로도 여전히 앉아쏴를 틈틈히 보여주고 결정적인 순간에 장타력을 과시하는 등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2015년 현재 LG 역대 한시즌 홈런 3위 기록을 가지고 있다.(2010년 28개) 1위는 찰스 스미스,[14] 2위는 이병규.
2 조인성에 대한 비판
2.1 포수 리드 에 대한 비판
벤치에서 내리는 싸인을 따라야 하기에 큰 피해를 본 케이스
야구팬들도 알고 타자들도 아는 바깥쪽 공 리드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고 있으나 과한 경향이 있다. 조바깥 하지만 종속과 마찬가지로 투수 리드는 사실 불분명한 개념이다. 볼배합은 포수독단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고 투수의 기량등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류현진이 잘 던지면 류현진의 공이지 공을 받는 신경현 덕이라 평가하지 않는 것처럼. 어쨌든 이는 사실 90년대의 주축이 됐던 왕년 명가의 쇠락에 대한 팬들의 증오가 금지어가 떠난 후 팀을 이끌어 가야 할 고참급 선수인 조인성에게 물려진 거라 볼 수 있다. FA시즌 이후 갑자기 떨어진 타격감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된다.
조인성의 투수 리드가 문제 있다는 주장은 스탯으로 그 근거를 찾기도 한다. 특히 타 포수와의 포수 방어율(CERA)의 차이가 가히 충격적이라고 할 수 있을 수준. 하지만 역으로 이 CERA를 기준으로 판단해 보면 박경완은 정상호보다 못한 투수리드를 하는 포수가 된다(…).
정작 투수 리드에 대해서는 벤치에서 쭉 지시가 왔었다고 한다. 최소한 지난 3년간 투수 리드 싸인을 벤치에서 고스란히 받아 온 포수가 투수 리드에 대한 비난이 자기한테로만 쏟아지면 마음이 편할래야 편할 수 없을 것이다. 본인도 자신이 낸 싸인이 아니라 벤치에서 싸인을 받으면서 플레이 하는 것이 기분이 과히 좋지 않았던 모양. 차라리 내가 내서 얻어 맞았다면 욕 먹는 게 억울하지나 않을 텐데 하는 심정인듯 하다.
더군다나 LG의 처참한 투수진을 생각해 보면 설령 박경완, 진갑용 등 수준급 포수가 와서 리드한다 해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 프로야구 사구조작이 거론되고부터 이 부분은 재조명되었다 그러나 조인성이 이적한 후 LG는 2013년 정규리그 2위, 최종성적 3위를 차지하는데, 이 때 포수진은 현재윤-최경철-윤요섭으로 이 셋은 조인성보다 뛰어나다고 볼 수 없는 선수들이다. 결국은 조인성의 문제가 아니라 투수진 전체의 문제였던 것인데, 이와는 반대로 조인성이 독박을 쓴 셈.
실제로 조인성의 친구는 "1998년 아시안 게임 우승을 이끌었고 2006년 1회 WBC때는 박찬호와 배터리를 이룬 포수의 기본기가 부족하다면 도대체 국내에 어떤 포수가 있다는 말인가." 하고 한탄했다고.[15] 박동희 기자와의 인터뷰 전문
어찌됐건 전문가들은 앞뒤 사정 무시하고 조인성의 포수 리드 능력애 대해 엄청난 악평을 내렸고, 이 때문에 조바깥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그래서 포수 리딩 능력을 논할 때 주구장창 몸쪽만 요구한 '강몸쪽' 강민호, 한화의 몰락과 더불어 바깥쪽 리드가 문제점으로 드러난 '신바깥' 신경현, 개나소나 다 읽는 볼배합으로 까인 '국민 볼배합' 김상훈과 같이 묶여 도매금으로 까였다.[16]
또한 그가 포수를 맏았던 LG, SK, 한화가 투수들의 상태 자체가 영 좋지 않았던 것도 고려해야 한다. LG는 6668587667 동안 방화신기라고 불릴 만큼 투수진이 약점으로 꼽혔으며, SK는 이만수로 오면서 정대현의 FA이적 등으로 인해 투수진이 한풀 꺾인 상태였고, 현재 한화 또한 살려조, 에스밀 로저스 외엔 상태가 메롱이다.
2.2 고참으로서의 역량
그러나 그 외에도 비판 받을 만한 일이 있는데, 고참으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지 못한다는 것. 특히나 주전 포수로서 투수와의 친화력은 아주 중요한 요소에 속한다. 비단 고참이라서가 아니라 포수의 역량을 결정하는 요소기도 하다는 소리. 조바깥 논쟁때 볼배합으로 조인성을 까지 않던 사람들도 이 문제를 가지고 조인성을 깠다. LG 트윈스 내부의 기강이야 이미 야구 팬들에게는 이미 유명한 일이다. 선배로서 후배들을 잘 이끌어야 하는데...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LG 트윈스의 기강이 표면으로 가시화된 사건으로는 심논개 사건이 있다. 2009년 8월 6일 KIA전, 선발투수인 심수창과 언쟁을 벌이면서 LG팬들을 멘탈붕괴 시켰던 사건이었다. 그 날 공이 좋지 않아 3이닝동안 7실점을 하자 조인성이 심수창에게 나가 무언가 언질을 주었고 그러자 심수창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말다툼이 벌어졌다. 그리고 이 날 7연패를 찍고, 다음날 조인성은 심수창과 같이 2군으로 내려갔다. 이 사건으로 심수창은 심논개라는 닉네임을 얻게 되었으며, 그리고 김태군이 선발 출장한 8월 7일은 무실점으로 승리를 거두며 엘지의 광복절이 되었다. 불암콩콩코믹스에 대차게 깠다. 평소 조인성을 싫어하던 팬들은 최고의 카툰이라는 반응.
하지만 LG구단쪽에서는 조인성을 감싸주는 분위기인데, 심수창 건도 조인성이 너무 착해서 문제라고까지 할 정도. 불암콩콩코믹스에서의 그 조폭포스와는 달리 실제 조인성은 대단히 온화하다고 한다. 그런데 팬들의 이런저런 오해와 팀성적 부진등으로 그 책임을 고스란히 덮어쓴게 문제다. 2009년까지 자기가 사인을 못 내고 벤치사인 받는 역할이었던게 이미 사실로 드러난 얘기고. 그리고 2010년 자기가 사인을 내자마자 35살의 노장에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
이 사건으로 심수창과는 갈라선 게 아니냐는 말도 있지만, LG의 지휘봉을 잡은 박종훈 감독은 조인성과 심수창이 배터리를 이룬다고 천명하였다. 그러나 심수창은 넥센으로 이적하게 되고... 이 시점이 지나, 임찬규와의 해프닝이 생기면서 조인성에 대한 비판과 비난도 커진 상태이다. 그래서 LG가 조인성을 버린 이유가 팬들의 비판과 비난을 의식해서 그랬다는 설이 있지만,[17] 진실이 확인된 바는 없다.[18]
조인성이 리드와 관련하여 욕을 먹는 진짜 이유가 바로 이러한 점이다. 투수들, 특히 심적으로 불안정한 신인 투수들을 다독이기는커녕, 사인대로 던지지 않았다고(자기 사인이든 벤치에서 낸 사인이든) 투수에게 레이저를 날리는 건 예사고, 투수의 입장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볼 사인을 내는 등 투수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모습이 팬들로 하여금 조인성의 리드에 의문을 제기하는 진짜 이유일지도.
3 선수 생활
3.1 1998 ~ 2000년: 장래가 촉망되던 앉아쏴 시절
대학시절 국가대표 포수출신으로, 고려대출신의 라이벌인 진갑용과 쌍벽을 이루는 재목으로 주목을 받았다. 당시 LG트윈스의 주전포수이던 김동수의 팀내 위치를 위협했고, 김정민과의 백업포수 경쟁에서 승리. 그리고 앉은 자세에서 2루로 도루하는 주자를 잡아내는 강견을 자랑하며 일찌감치 주력 포수로 자리잡았다.
이 시절까지만 해도 조인성에 대한 평가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3.2 2001 ~ 2009년: 조잉여로 전락
그러나 조인성이 곧바로 주전이 된 것은 아니라서 2000년에는 김정민과, 2001시즌에는 장재중과 같이 플래툰으로 뛰었고 본격적으로 주전으로 올라선 것은 2002시즌부터였다. 2002~2003시즌에는 투수 리드가 안좋았을지언정 블로킹이나 도루저지에서 강점을 보였고,[19] 하위타선의 뇌관 역할을 잘 수행했다.
그러나 이순철이 부임하면서 슬슬 기대치에 비해서 낮은 타율과 투수 리드면에서 못미치는 성적으로 서서히 2000년대 LG 트윈스의 하락세의 주범으로 찍히기 시작했다. 거기에다가 이전의 김성근 감독 시절, 김성근 감독이 종종 조인성을 지목하면서 투수 리드 등을 좀 더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불만을 표시하는 코멘트들이 기사화되면서 재능과 이름값만 믿고 노력은 안하며 놀기 좋아하는 게으른 선수라는 인식이 심어지게 되었다.
장타력도 2003년에 19홈런을 기록한 후로 하향곡선을 탔고, 그나마 꾸준히 2할 5푼정도는 쳐주던 타격도 FA 이후에는 어깨 부상을 달고 살면서 심각하게 쇠퇴하였다. 실종된 3할 타자와 증발한 타격왕, 실종된 홈런 타자[20] 등을 연상케 만든다. 2007년도의 2할 8푼은 어디로 실종되었는지. 그럼에도 딱히 조인성을 견제할 포수진이 나타나지 않으면서,[21][22] 결국 위에서 서술한대로 LG 팬들로부터 조잉여, 잉여킹 등으로 까이기 시작했으며 그 절정이 위에서 소개한 심논개 사건이다.
3.3 2010 시즌: 잉금님으로 등극
2010시즌 박종훈감독은 LG의 주전 포수는 조인성이 될 거라 하였으며 또 키 플레이어로 조인성을 꼽기도 했고, 투수 리드 관련 사인을 내지 않는다고 했다. 투수 리드에 대한 것도 터치를 하지 않는다고 하니 과연 위의 인터뷰가 구멍막기인지 아니면 그의 본래 역량이 발휘될 것을 예고하는 신호탄일지는 지켜볼 일이었다.
4월 말에 LG의 팀 방어율은 상위권을 마크했으며 대부분의 경기를 조인성이 풀타임으로 출전하였다. 기사에 의하면 조인성 스스로 많은 노력을 한 모양. 후배 투수들과 좀 더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하고 경기 몇시간전이면 언제나 전력분석팀과 만나 그날 상대팀과 타자, 볼배합을 분석했다고 한다. 물론 단번에 성적이 좋아진다는 확신은 내세울 수 없을지라도, 팀내 최고참 중 한명인 조인성이 솔선수범하는 모습만 견지해도 LG의 미래는 훨씬 밝아질 수 있음이 분명했다. 아울러 리그 절반이 지난 후 팀 방어율 리그 꼴찌(5.42)를 달리고 있는 LG 마운드의 상태를 봤을 때 '굳이 이 문제를 조인성의 막장 리드로 보기엔 문제가 있지 않을까?'라는 쉴드가 쳐질 정도로 공격에서 조인성의 활약은 독보적이었다.
2010시즌 그의 최종 성적은 타율 0.317(리그 7위) 출루율 0.374(리그 23위) 장타율 0.558(리그 3위) OPS 0.932(리그 3위) 28홈런(리그 3위) 107타점(리그 3위)!
명실상부 LG 트윈스 타선의 최고 타자로, 빅파이가 망하고 페타신이 떠나간 LG 트윈스에서 없어선 안될 존재가 되어버렸다. 근데 병살타도 19개로 리그 1위. 그래도 이러한 미칠 듯한 활약 덕택에 2010 올스타전 서군 올스타에 당당히 선발되기도 했다. 홈런 개수에서는 진즉에 자신의 커리어 하이를 넘어섰고.
그 외에도
- MBC 청룡, LG 트윈스 한국인 선수 가운데 역대 최다 타점(107타점) 경신.[23] 그리고 2013년 현재까지 LG 트윈스 역대 우타자 타율 2위[24]이자 홈런 개수로는 모든 타자 중 2위.[25]
- 한국 프로야구 포수 한 시즌 최다타점 경신.[29] 아울러 포수 한 시즌 100타점 기록은 한국프로야구 사상 처음이다.
이상의 기록을 달성하였다. 8월 24일 96타점으로 포수 최다타점 신기록을 달성하고 9월 1일 3점포로 포수 최초 100타점을 기록하였다. 포수 최초 3할-30홈런-100타점도 기대되었으나 홈런이 2개 모자라서 아쉽게 실패. 하지만 2010년 골든글러브는 이미 따논 당상. 이렇듯 2010 시즌 조인성은 팬들과 구단의 기대치를 한껏 상회하는 대활약을 펼쳤다. 박종훈 감독, 도대체 잉금님에게 무슨 짓을 한 건지.
근데 묘한 건 이러고도 광저우 아시안게임 대표에는 선발되지 못했다.[30] KBO 잉단폭격 당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괴물같은 활약에 힘입어 2010시즌 올스타전에도 출전. 포수 생명을 걸고 이대호의 도루를 전력을 다해 막아냈다.
마구마구에서의 그의 카드에는 안경을 쓴 모습으로 패치되었다. 인터뷰에서 절박함에 조금이라도 좀 더 타구를 잘 보기 위해 안경을 썼고, 타격쪽이 잘 되자 자신감에 덩달아 수비도 잘 된다고 한다. 잉여타자에서 잉금님으로 별명이 바뀐것도 다 잘되니 그런 별명도 붙은게 아니냐 한다.
그리고 그 활약에 힘입어 포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사실 너무나 당연한 수상으로 여겨졌겠지만 놀랍게도 박경완과 겨우 2표차로 수상에 성공했다. 누군가가 떠오르는건 착각이 아닙니다 그리고 2013년에 재현되고 말았다
하지만 확실히 먹은 돈값을 1년만에 회복할 수는 없는 일. 다음 시즌 조인성의 적정 연봉 인상액에 대한 많은 의견이 오간 가운데 연차를 무시하고 당해 년도 성적만을 잣대로 삼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LG의 新연봉제의 기준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확실히 조인성은 '대폭 인상' 대상자임이 확실해지게 되었다. FA로이드도 그렇고 이 분 타이밍 하나는 잘 잡으시네
우선 7억원(!)선에서 조정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소문에는 실질적으로 원 연봉 4억에 옵션 3억원이라 실질적으론 동결이다는 말도 있었고, 마이너스 옵션 1억 5천이 붙을 것이라는 말도 있었다.
연봉 협상이 늦어지면서 조인성 빼고 전부 LG 선수들은 사이판으로 가버렸다(...). 사이판으로 가기 바로 직전에 아직 연봉 협상이 안됐던 심수창과 봉중근은 구단과 실랑이를 벌인 끝에 계약에 사인을 했지만, 조인성은 협상이 덜 끝나서 사이판에 가지 못했다. 이제는 잘해도 잉여 취급
2011년 1월 11일, 지난해 대비 1억원 오른 연봉 5억원에 옵션 2억원, 총 7억원에 구단과의 연봉협상에 합의하여 12일 전훈지인 사이판으로 출발하였다.
3.4 2011 시즌: 2010년의 활약은 계속 되는가?
해당 항목으로.
3.5 2012 시즌: 14년만의 팀 이적
해당 항목으로.
3.6 2013 시즌
이만수 감독의 신임을 받아 박경완이 1군 엔트리에도 제외되고 변함없이 주전포수 자리를 보게 되었다. 일단 개막 2연전은 백업인 김정훈과 함께 포수진을 책임졌다.
3월 31일 경기에서 잇단 볼넷과 역전으로 이어지자 다음 타석에 들어선 정의윤을 파울이 되어서 공이 떨어졌을 때 밀치는 행동을 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다만 이후 정의윤이 웃음을 참는 듯한 표정을 지었기 때문에 그냥 장난일 수도 있다는 말도 나왔다. 그리고 안타로 2013년 SK 와이번스의 첫 타점을 올렸다.
수비로는 여전히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도루저지의 경우 상대팀의 도루시도 자체를 원천봉쇄하는 면모는 여전했다. 이는 단순히 도루저지율이 좋은 것 이상의 효과를 내주었다고 볼 수 있다. 포수로는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여전히 탄탄한 블로킹 등의 좋은 기본기와 몸관리를 보여주었다.
다만 타격이 예년에 비해 부진했다. 4월 13일까지의 타율은 고작 0.111였으나 점점 타격감이 살아났고 4월 26일 경기에선 대타로 등장하여 좌중간을 완벽하게 가르는 결승 역전 2루타를 작렬하며 팀의 승리를 견인하였다.
그나마도 6월 6일 경기 종료 후 타율은 .216. 노쇠화의 조짐을 보이는 것은 아닌가 의심스럽지만, 여전히 리그 전반적으로 포수가 기근이고 SK 내에서도 경쟁자인 정상호의 동반부진으로 인해 조인성이 계속해서 주전마스크를 썼다.
6월 27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3점 홈런을 날리면서 통산 700타점을 달성했다.
그러나 시즌 후반까지 타격은 부진했고, 정상호가 돌아오자 시즌 끝까지 플래툰으로 기용되었다.
3.7 2014 시즌: 잉여자원에서 칰금님으로
6월 2일 한화 이글스로 트레이드되었다. 해당 항목으로.
3.8 2015 시즌
한화에서 최고참 선수로 활약하게 되었다.
하지만 3월 12일 시범경기에서 오른쪽 종아리 근육이 파열되어 약 3개월간 재활로 인해 경기를 뛸수 없게 되었다. 이후 재활에 성공하여 5월부터 6월까지엔 정범모의 부진으로 재조명받았다.
7월 부터는 볼배합 문제에다 타격부진으로 은퇴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었으나, 8월 들어 허리 부상이 완쾌하면서 타격과 도루저지면에서 월등히 향상된 모습을 보이고 에스밀 로저스의 2연속 완투(1완봉)때 배터리를 이루며 투수 리드 관련 부분에서도 나오는 말이 줄어들고 있다.
3.9 2016 시즌 : 1할타자 조인성
타격, 포수리드, 팀케미스트리 등 모든 부분에서 까이고 있으며, WAR이 -2점대[31]로 향하고 있다.
물론 나이 마흔이 넘어 은퇴가 당연시 되는 포수를 주전으로 쓸 수밖에 없는 것이 한화의 현실이다. 범모 쓸 순 없잖아[32][33]
과거 한화의 안방을 책임진 신경현의 노쇠화와 은퇴 이후로 예전부터 한화는 신인 드래프트때마다 포수 자원을 선택했으나, 기량 부족과 잘못된 육성, 코치진의 무능 등으로 제대로 된 포수를 키워내지 못했다. 조인성만 해도 코치진 김재현, 신경현과 동갑으로 언제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인데도 중용되는 이유 중 하나가 후임 포수들의 기량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 당장 작년만 해도 시즌 초 부상으로 빠지고 정범모가 경기를 지배하자 팬들 모두 조인성의 복귀를 목이 빠져라 기다린 모습과 잉여, 양아들이라 까이는 지금의 모습은 격세지감이라고 밖에 볼 수없다. 또한 차일목, 허도환이라는 대체재가 있음에도 '관록있는 베테랑'이라는 허상에 매달려 적지않은 나이와 피로로 지쳐보이는게 당연해 보이는 조인성을 계속 쓰는 코칭스텝의 문제 또한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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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 ||||||||||||||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장타율 | 출루율 |
1998 | LG 트윈스 | 84 | 134 | .269 | 36 | 8 | 0 | 2 | 15 | 10 | 0 | 3 | .373 | .283 |
1999 | 56 | 142 | .254 | 36 | 6 | 0 | 5 | 22 | 23 | 0 | 7 | .401 | .285 | |
2000 | 100 | 227 | .225 | 51 | 5 | 1 | 5 | 33 | 19 | 2 | 20 | .322 | .282 | |
2001 | 82 | 186 | .253 | 47 | 10 | 0 | 5 | 26 | 19 | 1 | 16 | .387 | .309 | |
2002 | 124 | 362 | .268 | 97 | 21 | 2 | 9 | 48 | 36 | 3 | 19 | .412 | .301 | |
2003 | 132 | 428 | .257 | 110 | 20 | 2 | 19 | 58 | 43 | 0 | 23 | .446 | .292 | |
2004 | 129 | 386 | .254 | 98 | 16 | 0 | 8 | 49 | 40 | 2 | 39 | .358 | .319 | |
2005 | 85 | 201 | .224 | 45 | 11 | 0 | 6 | 34 | 22 | 0 | 18 | .368 | .285 | |
2006 | 112 | 326 | .245 | 80 | 18 | 0 | 10 | 38 | 37 | 0 | 28 | .393 | .303 | |
2007 | 124 | 419 | .282 | 118 | 24 | 0 | 13 | 73 | 44 | 1 | 34 | .432 | .332 | |
2008 | 102 | 330 | .227 | 75 | 18 | 1 | 10 | 49 | 25 | 0 | 18 | .379 | .264 | |
2009 | 95 | 266 | .214 | 57 | 10 | 1 | 14 | 36 | 35 | 0 | 29 | .417 | .290 | |
2010 | 133 | 457 | .317 | 145 (5위) | 24 | 1 | 28 (3위) | 107 (3위) | 69 | 2 | 44 | .558 (3위) | .374 | |
2011 | 117 | 390 | .267 | 104 | 14 | 2 | 15 | 59 | 46 | 2 | 47 | .428 | .345 | |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장타율 | 출루율 |
2012 | SK 와이번스 | 104 | 284 | .271 | 77 | 13 | 0 | 9 | 40 | 32 | 0 | 18 | .412 | .313 |
2013 | 88 | 207 | .213 | 44 | 10 | 0 | 7 | 29 | 16 | 0 | 9 | .362 | .244 | |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장타율 | 출루율 |
2014 | 한화 이글스 | 75 | 164 | .226 | 37 | 7 | 0 | 7 | 34 | 16 | 0 | 16 | .396 | .290 |
2015 | 106 | 276 | .232 | 64 | 11 | 0 | 11 | 44 | 33 | 0 | 22 | .391 | .288 | |
2016 | 76 | 137 | .168 | 23 | 2 | 0 | 3 | 7 | 10 | 0 | 3 | .248 | .186 | |
통산(19시즌) | 1932 | 5322 | .253 | 1344 | 248 | 10 | 186 | 801 | 575 | 13 | 413 | .408 | .304 |
역대수상 | |
연도 | 수상내용 |
2010년 | 골든글러브 포수 부문 수상 |
보유 기록 | |
5삼진 | 한경기 최다 삼진(최정과 공동 보유) |
107타점 | 역대 포수 보유 최다 타점 |
5 별명
잉여, 조바깥 → 잉금(2010) → 잉여 → 솩금, 죄잉여[34](2012) → 바깥甲 → 야구계의 마이클 펠프스 → SK DTD의 원흉[35] → 솩전드[36] → 칰금님
별명은 조잉여(...). 하도 오랫동안 제몫을 못 하다 보니 붙여진 별명. 하지만 주로 알려진 별명은 '조바깥'. 투수에게 죽어라 바깥쪽 공만 요구한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그외에 불암콩콩코믹스의 조인성을 다룬 편 제목인 '바깥양반'도 있다. 이후 열거되는 바깥 리드는 재평가 받게 되는데... 조잉여 이전에 2루견제를 잘해서 붙여진 앉아쏴가 있었다. 조인성의 다음 팬카페 이름이기도 하다.
한화 이적 후 잉금님+칰이라서 칰금님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5.1 2010년: 잉여에서 잉금님으로
2010년 들어 맹활약을 하면서 조잉여에서 진화한 잉금님이라는 별명이 자주 쓰이고 있다. 처음의 잉금님은 잉여 + 금강불괴(...)라는 뜻으로, 승리 기여도가 잉여로운데도 불구하고 부상도 안당해서 주구장창 나온다는 의미로 불렸다. 2010년엔 아주 잘하고 있는지라 미운정이 들었다보니 본래의 의미인 임금님의 의미로 잉금님을 사용한다.
이 때문에 LG 트윈스 갤러리에선 아예 조인성이 뭘 할 때마다 "잉" 자를 접두어나 접미어로 붙여서 단어에 끼워넣기 식으로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 헛스잉 : 조인성이 타석에서 헛스윙을 할 경우
- 타잉거우조 : 조인성이 타석에서 헛스윙 삼진을 당할 경우
- 잉금포 : 승부가 이미 갈린 상황에서 영양가 없는 홈런을 날릴 경우
- 투수릳잉 : 조인성이 투수를 리드 할 경우 (...)
- 잉경 : 조인성이 안경을 쓰고 경기에 나설 경우. 참고로 우연인지는 모르겠으나 조인성이 안경을 착용하고 경기에 나온 이후부터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기에, 소위 드래곤볼 에 나오는 스카우터 기능을 하는 아이템이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이때문에 또 파생된 단어가 잉카우터(...). 실제로는 안경을 쓰면 잘 보이고 피로가 없기 때문에 그런다고.
- 잉타지니 : 조인성이 타격에서 활발한 모습을 보일 경우. 이는 LG 트윈스에서 큰 활약을 보여 페느님이란 별명까지 얻었던 로베르토 페타지니 와 합쳐진 별명.
- 잉딩동 : 샤이니의 링딩동에서 파생. 어이없을때 잉딩돋는다 등으로 사용된다(...).
- 잉수잉계 : 조인성이 엘지 트윈스의 또 다른 포수 김태군이나 심광호와 경기 중 교체되거나 혹은 선발 출전에서 밀리는 경우.
- 레잉저 : 조인성이 인상을 찌푸리는 경우 혹은 멋진 송구로 도루를 시도하던 주자를 잡는 경우.
- 잉랜드슬램 또는 잉루홈런 : 조인성이 만루홈런을 쳤을 때. LG 시절에는 2010년 4월 24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나왔다. 또한 SK 시절에는 2012년 8월 25일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나왔다.
- 살잉미소(줄여서 잉소) 또는 스마잉 : 조인성이 웃을 때. 만루홈런 치고 해맑게 웃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서 붙었다.
이 외에도 갖다 붙이면 별거 다 나온다(…).
잉금님을 넘어서서 이제 기자들이 대놓고 임금님으로 모시고 있다.[37]
5.2 2012 시즌: 바깥甲으로 변신
프로야구 조작 파동에서 LG선수 2명이 혐의를 추궁받자 새롭게 재조명 되고있다. 잉여에서 진정한 잉금님으로 발돋움. 이제까지 바깥리드는 전부 조작을 막기 위함이었다. 엘지 후배들을 조작의 바깥으로 몰아내시려 한 고독한 바깥의 영웅 바깥甲
게다가 2012년 4월 SK의 주전포수로 철벽 마운드를 이끌며 LG에서 까였던 포수리드에 대한 재평가받고 있다. LG의 문제는 잉금님의 포수 리드가 아니라 투수의 기량
참고로 이만수가 좋아하는 선수 중 하나다. 그래서 몇몇 SK팬들은 조인성을 유다 양아들이라고 비하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4년 한화 트레이드 이후 이만수가 특유의 앉아쏴를 못하게 했다는 인터뷰가 올라오자 양아들 드립은 가라 앉았다.
플레이오프 5차전 롯데와의 경기에서는 0:3으로 뒤지던 중 추격을 시작하는 2타점 적시타를 쳐내 역전승에 큰 공헌을 했다. 이후 한국시리즈 진출이 확정되자 10년 만에 한국시리즈를 가는 기쁨에 덩실덩실. 최정: 저 형은 코시 처음 가보나? 그리고 2013년 SK가 망하면서...
6 기타
- 자신의 등번호인 44를 사랑하는 듯 하다. 현역 야구선수를 44세까지 하겠다는 다부진 각오를 피력한 바 있다.
- 외모로는 잘 상상이 안 가지만 어린아이 팬들에게는 다정하다고 한다. 대표적인 예가 임찬규. 임찬규는 초등학생이던 2003년 5월 5일, 조인성에게 싸인을 받고 그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정현욱과 비슷한 케이스? 애들이 공 하나만 달라고 조르면 어디서 하나 구해서 던져주는 일이 많다. 다만 상대편 팀 애들한텐 절대로 안 준다.
- 또 어떤 KIA 타이거즈 갤러리 유저에 의하면 외모만 보면 걸쭉한 사투리가 튀어나올 거 같은데 실제로 입에서 나오는 건 세련된 도시 말투라 위화감이 든다고 한다. 뭐 서울에서 태어나서 서울에서 자랐으니 외모야 어쨌든 서울말을 쓰는 게 당연하겠지만서도.
- 신일중 시절 은사였던 양승호 감독에 의하면 앉아쏴는 조인성이 중학교 당시 워낙 고도비만이라 송구할 때 제대로 일어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가르친 것이라고. 그러나 16년 4월 4일에 방송된 야구의 기술에 따르면, 본인은 어린시절 진기명기라는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앉아쏴를 보고 흉내를 내보다가 가능해져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 현역 야구 선수 중 손꼽히는 노총각이었으나[38] 2012년에 드디어 노총각 탈출! 2012년 12월 2일에 당시 29세 대학원생과 결혼하였다. 그러나 2015년 12월 6일에 재혼을 해 많은 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1, #
- SK에 이적한 이후 응원가의 원곡이 김조한의 You Are My Girl로, 지붕뚫고 하이킥 엔딩 자막에서 논란으로 잘 알려진 카페베네 자막으로 유명한 바로 그 곡이다. 덕분에 응원가가 나올 때마다 병살칠 것 같다며 팬들이 아우성을 쳤다. 병살은 아니지만, 은근 2사 이후에 타석에 들어서는 일이 많았다.
광고소환용원래 조인성은 SK 이적후에도 LG 시절 사용했던 댄싱퀸을 응원가를 그대로 사용하고 싶어서 LG 구단 쪽에 부탁했지만, LG 쪽에선 "너 안줌. 딴 애 줄거다"라며 거절했다. 2013년에도 쓰는 사람이 없어서 조인성이 다시 한 번 문의했지만 LG에서 또 거절했다고. 결국 이 응원가는같은 조씨 포수이자 떡대도 비슷한조윤준이 받았다. LG 팬들도 '응원요정'이라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았던 전 응원단장 강병욱의 걸작이었기에 이 일에 대해선 구단의 편을 들었다. 이에 조인성은 댄싱퀸을 타석 들어갈 때 트는 것으로 대응했다.응원곡으로 못 쓰면 등장곡으로 쓰면 되지! 무서울 정도의 집착일세한화에서는 댄싱퀸을 쓰지 않고 있다.
- 10년 동안 가을 야구 기간에는 등산을 다녔다고 한다.
- 응답하라 1994에서 칠봉이(유연석분)의 안방마님으로 나오는데 응사 제작진이
둘이 무슨 관계인지는 모르겠지만작중 연세대 포수 조인성으로 나오는 배우가 하는 대사와 행동 때문에 야구팬들이 놀라고 있다. 심지어 여기서 조인성은 실명으로 등장한다.
- SK 와이번스로 서로 이적될 시기에 만남
- 지금 현재 임경완이 한화 이글스로 이적하여 재회했을때도 전혀 어색함 없이 자연스러운 대화. 이때 이적할 당시 임경완과 SK 와이번스에서 같이 지냈을 때부터 동갑내기 친구이자, 게다가 같은 동네 아파트에서 함께 지낼정도였으니, 절친 그 이상이었다.#
- 2014년 시즌 중에 출장기회가 급격히 줄어들어 자존심이 상한탓에 결국 트레이드를 요청하였고, 비록 한화이글스로 이적했어도 서로 안부전화까지 연락하면서 지내왔다. 정규시즌 종료후 임경완이 방출소식을 듣자, 친구를 두고 혼자 이적해서 미안한 맘이 들었던지, 현재 부임된 김성근 감독님께 이런저런 사정끝에 결국 임경완을 불러들여 입단테스트를 통과하여 입단하게되었다. 헌데 임경완은 1년도 안 돼서 방출되었다...
- 현역생활이 우리 나이로 42세까지 길어진 덕에, 한화의 일부 코치진과도 친구 사이다. 신경현 배터리 코치라던가 김재현 타격 코치라던가... 심지어 신경현, 김재현 보다는 생일이 더 빠르다.
- 동명이인[39] 배우 조인성과도 친분이 있다는 사실이 2014년 밝혀졌다. 인터뷰 등에서 관련 질문을 받으면 '인성이'라고 호칭하는 것을 봐서는 꽤 친밀한 사이인 듯.
일방적인 친분일 수도 있다배우 조인성은 골수 한화팬으로 알려져 있는데, 2014년 조인성이 한화로 이적하여 조인성 시구 조인성 시포가 현실화될 가능성도 생겼고, 실제로 개인적으로 부탁을 해둔 상태라고 한다. LG에 있을 때도 부탁해 보았는데 한화팬인지라 거절했다고.
- 2014년 8월 18일 배우 조인성은 얼음물 샤워와 기부를 권유했고 다음 날 조인성은 이에 화답하여 경기 전 울산구장에서 얼음물 샤워를 하는 훈훈한 모습을 보여주었다.[40]
뒤의 펠릭스 피에 표정이 압권이다
- 소원대로 2014년 9일 14일 오후 2시부로 조인성-조인성 배터리 특별 이벤트로 열 예정이다.# 그리고 조인성이 한화 올드 유니폼을 입고 시구를 했다.#
시구를 한거냐? 팬미팅을 한거냐?몇몇 투수들보다 더 잘 던지는 것 같은게 안 자랑[41]
- 영화배우 조인성과 시구-시포 이후 서로 뿌듯해진 모습을 담긴 인증샷
결국 소원성취가 이루어진셈해냈다 해냈어
- 2016년 5월 17일 조인성의 끝내기 포일로 패배한 경기에서 투수 박정진, 타자 이승엽의 조합으로 크보 최고령 타석의 나이합계를 124세로 늘리는데 성공하였다.
더 높이려면 타자로 라뱅이 나오면 된다박정진이 은퇴하지 않으면 2017년에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 ↑ 놀랍게도 동명이인 배우와 한자마저 똑같다!
- ↑ 태어날 당시엔 도봉구였다. 도봉구에서 강북구가 분구된 것은 1995년의 일이다.
- ↑ 입장곡으로 틀고 응원가가 나오기 전 잠깐 동안에는 민초의 난까지 튼다.
- ↑ S~K~조인성~ 홈런을 날려버려 하늘 끝까지 S~K 조~인성~ 오~오~오오오오오~ (홈! 런!)
- ↑ SK 이적 후 첫 응원가였지만 호응이 별로였는지 한 달만에 갈려서 기억하는 사람조차 몇 없는 흑역사 응원가가 될 뻔하다가 2014년 시즌 시작 후 카페베네를 밀어내고 부활했다.
- ↑ 등장곡과 응원가 모두 영화 록키 시리즈의 주제가이다. 응원가 가사는 조! 조인성~ 한화의~ 조인성~ 쏴!
- ↑ 현재 히어로즈의 2군 주루코치인 그 분 맞다. 계약금이 1억인데 현실은....신인먹튀.
- ↑ 이전버전에서는 77년생 내야수 박정환이 44번을 달았다고 서술되었으나 박정환은 6번을 달았다. 44번을 단 선수는 동명이인인 89년생 외야수 박정환이다.
- ↑ 두 번째로 기록한 선수는 SK 와이번스의 이재원이나, 이는 지명타자로 출장한 경기도 어느 정도 있는지라 좀 애매하다.
- ↑ 2016년 6월 22일 이후로 출장시 역대 최고령 출장 포수가 된다. 7월 7일 차일목과 교체출장하여 달성.
- ↑ 당시 응원구호 중에는 앉아쏴 조인성이 있었다! 것도 98년 데뷔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생겼다.
- ↑ 이 앉아쏴는 중학교 시절 감독이었던 양승호가 가르쳤다고 한다. 당시 조인성이 비만이어서(...) 어쩔수 없이 앉아쏴를 가르쳤다고 한다.
- ↑ 국가대표 선발 경력을 보자.
- ↑ 다만 이것은 시즌 중 중도퇴출되기 전인 삼성 시절에 친 걸 합친 거다.
- ↑ 실제로 06년 WBC 당시 박찬호는 조인성이 가장 편한 포수라는 발언을 하며 대회 내내 전담포수로 써먹었다.
- ↑ 그리고, 자세히 보면 여기 까이는 선수들 모두 지나치게 까인 경향이 있다.
- ↑ 조인성이 이적 후 잠실 원정경기에 처음 나왔을 때 LG팬들은 그에게 박수가 아니라 야유로 맞아주었다.
물론 이택근에게는 더 큰 야유를 보냈다 - ↑ 오히려 포수 대체자원도 없는 상황에서 조인성을 내친 LG구단은 2013년에 김기태 감독이 현재윤을 트레이드로 영입하기 전까지 2012년 내내 끔찍한 포수난에 시달려야 했다. 팬들 또한 수준 미달의 포수들의 눈이 썩는 플레이를 시즌 내내 봐야 했던 것은 덤.
- ↑ 도루저지율이 2002년에 5할, 2003년에는 김상훈과 같이 미친듯이 주자학살을 벌였고, 조인성의 저지율은 0.541. 김상훈의 저지율은 무려 0.560으로 역대 신기록이었다. 그 당시 도루 1, 2위가 이종범, 박용택이었고 이 둘의 소속팀은 각각 기아와 LG, 즉 김상훈, 조인성이랑 같이 뛰었기 때문에 주자 견제를 거의 안받았다고 할 수 있겠다.
- ↑ 홈런 수가 크게 준 대신 정교함이 상승되긴 하였다. 그리고 2014년 이후 파워까지 되돌아오면서 사기캐가 됐다.
- ↑ 조인성이 주전으로 뛰던 시기에 백업이라고는 김정민이나 최승환밖에 없었다. 김정민은 나름 괜찮았지만 최승환은 2007시즌 내내 백업포수 역할을 전혀 수행하지 못하며 조인성이 혹사당하는 원인을 제공했다.
- ↑ 그나마 2000년대 후반 들어서 김태군이 백업으로 자리잡고 조윤준, 유강남이 등장하긴 했으나 그들이 등장하기 전에 이미 팀을 떠난 뒤였다. 이 중 유강남은 2015시즌에 1군 출장을 자주하면서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2016시즌에 LG의 최고 주전포수로 등극하였다.
- ↑ 이전은 이병규가 1999년 기록한 99타점. 2009년에 페느님이 딱 100타점을 기록한 적이 있긴 하다.
- ↑ 1위는 노찬엽이 1990년에 기록한 0.333.
- ↑ 1위는 이병규의 30홈런(1999). 찰스 스미스도 있긴 하지만 중간에 삼성 라이온즈에서 이적해왔다. 정확히 삼성에서 20개, LG에서 15개를 쳤으므로 제외.
- ↑ MBC 청룡, LG 트윈스 뿐만 아니라 OB 베어스와 두산 베어스, 넥센 히어로즈까지 포함.
- ↑ 이전까지는 김동수가 1992년과 1998년에 20홈런을 기록. 2010년에는 양의지가 20홈런 기록.
- ↑ 1위는 홍성흔이 2004년 기록한 0.329, 다만 홍성흔은 지명타자와 포수를 번갈아 봤다.
- ↑ 이전은 2000년 현대 유니콘스의 박경완의 95타점.
- ↑ 그런데 10년 조인성이 (지명타자 포함이지만) 전경기에 출장했기 때문에 체력적으로는 차라리 다행이라고 볼 수도 있다. 병역이 문제될 나이도 아니고. 다만 본인은 대표팀 탈락이 아쉽다고 한다.
- ↑ WAR -2는 전체 선수 꼴찌를 노려볼법한 성적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2015년 WAR 꼴찌는 -2.19의 박종윤
- ↑ 조인성과 비슷한 나이에 은퇴한 박경완, 진갑용의 사례를 대입하면 쉽다. 포수라는 포지션은 굉장히 육성하기 힘들고, 공수를 겸비한 명포수로 남는 것 또한 힘들다. SK, 삼성팬들의 눈에 후임인 정상호, 이재원, 이지영, 이흥련 등이 전임자만 못해 보였다. 정상호 항목에도 나오지만 구관이 명관이다 라는 말의 피해자라고 나왔을까.
- ↑ 또한 실체가 불분명한 투수 리드, 역대급 통산 성적, 주전포수였다는 이미지 등은 진갑용이나 박경완의 기대가 크기 때문에 기량 저하와 노쇠화가 옴에도 억지로 선수생활을 연장할 수 밖에 없었다.
- ↑ LG 트윈스 갤러리, SK 와이번스 갤러리 한정
- ↑ SK 와이번스 갤러리 한정
- ↑ 솩(SK 와이번스를 비하하는 명칭) + 레전드. FA로 LG를 떠나자 팬들이 영원히 돌아오지 말아라는 의미로 붙인 별명(…). 사실 이는 쥐갤한정이고 SK시절에는 솩빠나 쥐빠나 서로 조인성 데려가라고 아웅다웅했었다(...).
- ↑ 근데 이건 기사에서 잉여라는 의미가 들어간 잉을 쓸 수 없기 때문에 일부러 바꾼 거라고 봐야 한다. 다만 나중엔 잉으로 바꿨다.
- ↑ 류택현(1971년생), 박재홍(1973년생), 강동우(1974년생이나 호적 오류로 실제로는 1975년생)에 이은 노총각이었다.
- ↑ 한자까지 똑같은 완벽한 동명이인이다. 여담으로 같은 팀의 투수 송창식도 가수 송창식과 한자까지 이름이 똑같다.
- ↑ 그리고 다음 주자로 NC 다이노스 이호준, LG 트윈스 이진영 그리고 전현무 아나운서를 지정했다.
- ↑ 이에 허구연의 멘트가 압권인데 "어느 팀이든 볼넷 자꾸 남발하는 투수는 반성해야 겠어요."
- ↑ 셋의 나이를 합치면 121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