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토급 잠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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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기의 미 해군 군함
초계함(PG)이리급
호위함(FF)타코마급
호위구축함(DE)에바츠급, 버클리급, 캐논급, 에드솔급, 루더로우급, 존 C. 버틀러급
구축함(DD)샘슨급, 칼드웰급, 웍스급, 클렘슨급, 계획 1919 향도, 패러것급, 포터급, 마한급, 그리들리급, 배글리급, 소머즈급, 벤험급, 심즈급, 벤슨급, 글리브스급, 플레처급, 알렌 M. 섬너급, 기어링급
잠수함(SS)O급, R급, S급, 바라쿠다급, 아르고노트급, 나왈급, 돌핀급, 카샬롯급, 포퍼즈급, 살몬급, 사르고급, 탬버급, 거급, 마크렐급, 가토급, 발라오급, 텐치급
경순양함(CL)오마하급, 브루클린급, 세인트루이스급, 애틀랜타급, 클리블랜드급, 파고급A, 주노급A, 우스터급A
중순양함(CA)펜사콜라급, 노스햄프턴급, 포틀랜드급, 뉴올리언스급, 위치타급, 볼티모어급, 오리건시티급A, 디모인급A
대형순양함(CB)알래스카급
순양전함(CC)렉싱턴급
전함(BB)와이오밍급, 뉴욕급, 네바다급, 최대 전함, 펜실베이니아급, 뉴멕시코급, 테네시급, 콜로라도급, 사우스다코타급(1920), 노스캐롤라이나급, 사우스다코타급(1939), 아이오와급, 몬태나급
호위항공모함(CVE)롱 아일랜드급, 차져급, 보그급, 생가몬급, 카사블랑카급, 커먼스먼트 베이급
경항공모함(CVL)인디펜던스급, 사이판급
정규항공모함(CV)랭글리, 렉싱턴급, 레인저, 요크타운급, 와스프, 에식스급, 미드웨이급A
어뢰정PT 보트
연습함울버린급, 세이블급
취소선: 계획만 되거나 건조 중 취소, 윗첨자A: 전후 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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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해상자위대 함선
잠수함쿠로시오R, 오야시오#s-2R, 하야시오급R, 나츠시오급R, 오오시오R,
아사시오급R, 우즈시오급R, 유우시오급R, 하루시오급R, 오야시오급, 소류급
경비정유리급R
구잠정카리급R, 카모메급R, 하야부사급R, 우미타카급R, 미즈토리급R
고속정1호형 미사일정R, 하야부사급
초계프리깃쿠스급R
호위구축함아사히급R, 아케보노R, 이카즈치급R, 와카바R,
이스즈급R, 치쿠고급R, 이시카리R, 유우바리급R, 아부쿠마급, (DEX)
호위함아사카제급R, 하루카제급R, 아야나미급R, 무라사메급R, 아리아케급R,
아키즈키급R, 야마구모급R, 타카츠키급R, 미네구모급R, 2,500톤급, 하츠유키급, 아사기리급,
무라사메급, 다카나미급, 아키즈키급, (아사히급)
미사일호위함아마츠카제R, 타치카제급R, 하타카제급, 공고급, 아타고급, (27DDG)
헬리콥터 탑재 호위함하루나급R, 시라네급R, 휴우가급, 이즈모급
상륙정유라급R, 1001호형R, 2001호형R, 3001호형R, 수송정1호형, LCAC 1호형
상륙함오오스미급R, 아츠미급R, 미우라급R, 오오스미급
소해모함나사미R, 미호R, 하야토모R, 하야세R, 우라가급
소해함야에야마급, (아와지급)
소해정야시마급R, 우지시마급R, 아타다급R, 야시로R, 카사도급R, 타카미급R, 하츠시마급R,
소해정1호형R, 우와지마급, 스가시마급, 히라시마급, 에노시마급
소해관제정후쿠에R, 니이지마급R, 이에시마급
구조함치하야(초대)R, 후시미R, 치하야(2대), 치요다
보급함사가미R, 토와다급, 마슈우급
급유함하마나R
해양측정함아카시R, 후타미R, 스마R, 와카사, 니치난, 쇼난
음향측정함히비키, 하리마
쇄빙함시라세급(초대)R, 시라세급(2대), 후지급R
연습함카토리R, 야마구모급T/R, 미네구모급T/R, 야마기리급T, 카시마, 시마유키급T
연습잠수함유우시오급T/R, 하야시오T/R, 후유시오T/R, 아사시오T/R, 오야시오T
※ 윗첨자R: 퇴역 함선
※ 윗첨자T: 기존 함을 연습함으로 전용
취소선: 계획만 되었거나, 취소된 함선
※ (괄호) : 도입 예정 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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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토급 잠수함 7번함 알바코어(SS-218 Albacore), 메어아일랜드 해군 조선소 항내에서 촬영 - 1944년 5월경


1 개요

Gato Class Submarine

대서양에 유보트가 있다면, 태평양에는 가토급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운영된 미 해군의 주력 재래식 잠수함. 가히 미 해군의 숨은 일꾼으로서 통상파괴전, 함대 요격, 초계, 정찰, 구조, 물자 지원, 특수전 등 다양한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일본 제국을 패망에 이르게 하고 미국에게 승리를 가져다 주었으며 전간기 동안 각종 실패를 교훈 삼아 살몬급 잠수함의 건조 이후부터 개념을 확실히 잡아 설계해내 성능, 신뢰성이 우수한 걸작 잠수함으로 손꼽히며 총 77척이라는 많은 수가 건조되어 실전배치, 활약을 했다.

절대 일본 제국 잠수함이 아니다. 미해군 잠수함이다. 가토라는 이름 덕에 일본 잠수함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지만,[1] 엄연한 미국 잠수함이다.[2] Gato는 작은 표범상어라는[3] 뜻인데, 사실 영어가 아니라 스페인어의 고양이를 뜻하는 단어에서 왔다. 이게 왜 작은 표범상어를 뜻하게 된거냐면 표범상어가 영어로 Cat shark이기 때문.

소폭 개량형으로 발라오급 잠수함과 텐치급 잠수함이 있다.

2 제원

가토급 잠수함 2번함, SS-213 그린링(Greenling)
Gato Class Diesel-Electric Submarine
계승 함급거급 잠수함
후계 함급발라오급 잠수함
배수량수상 1,526톤
수중 2,424톤
전장93.57미터(311피트 9인치)
전폭8.31미터(27피트 3인치)
흘수5.2미터(19피트 3인치)
추진체계페어뱅크스-모르스 38D 8-1/8 or
제너럴 모터스 Model 16-248 V-16 or
후벤-오웬스-렌슬러 발전기 구동 디젤엔진 4기,
미 해군 엔진국 개발 UVA-47 126셀 납 축전지 2기,
엘리엇 컴퍼니-제너럴 일렉트릭-엘리스 챠머스
고속모터 4기, 저속모터 2기, 감속 기어, 2축 샤프트
(수상 5,400마력, 수중 2,740마력), 연료 97,140갤런
최대속도수상 20.25노트 (38km/h)
수중 8.75노트 (16km/h)
항속거리10노트 수상항해 기준 11,000노티컬마일(20,000km)
작전기간수상 75일
수중 2노트 잠항 기준 48시간
시험잠항심도91미터
승조원사관 6명
수병 54명(총원 80명 탑승가능)
무장21인치(533mm) 어뢰발사관 전방 6문/후방 4문, 어뢰 24발, 기뢰 40발
3인치 덱건 1문 혹은 4인치 덱건 1문 혹은 5인치 덱건 1~2문
12연장 5인치 로켓 발사기 6기
40mm 70구경장 보포스 단장 대공포 1~2문
20mm FF 오리콘 기관포 1~2문
50구경 M2 중기관총 2정
30구경 M1917 혹은 M1919 기관총 2~6정
전자장비레이더 - SJ 수상 수색레이더, SD 대공경계 레이더, SV 레이더
소나 - QB, QC/JK소나, JP 수중청음기
총 생산량77척
손실20척
퇴역57척
보존6척
운용기간1942년~1972년
운용국가 및 해군미합중국 해군
일본 해상자위대
터키 해군
그리스 해군
브라질 해군
이탈리아 해군

3 설계 과정

가토급 잠수함의 설계를 얻어내기 위해서 전간기 동안 미 해군이 투자해 온 노력과 삽질은 그야말로 장대했는데, 1차 세계대전 이후 미 해군에선 S급 잠수함을 운영하면서 이들 잠수함의 성능에 대해 매우 실망을 하고 있었다.

S급 잠수함 1번함 S-1(SS-105). 최대속도 시험항해 중이다. S급 잠수함은 1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미 해군에서 건조하여 운영한 잠수함이었으나 성능이나 설계 면에서 절대로 좋은 소리가 나올수가 없었을 정도로 한심한 성능을 자랑했는데, 수중저항을 줄이기 위한 설계는 좋았고 수중속도는 빠른 편이었으나 수상속력이 느렸고 배수량 1,062톤이라는 상당한 소형 잠수함임에도 불구하고 잠수완료시간 75초라는 황당한 기록을 소유했는데다 탑재 가능한 어뢰 발수가 적고 전투력 역시도 빈약했던데다 정숙성이 낮았으며 태평양전쟁 발발 당시에는 함령 15년을 넘긴 상당한 구식 잠수함이었다. - 1920년 4월 20일 메사추세츠 주 프로빈스타운 앞바다에서 촬영

S급 잠수함의 실패 이후 미국은 비교적 소형의 잠수함에 대한 건조기술이 부족하다 판단했음은 물론이고 이에 따라 장거리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순양잠수함 계획을 짜게 되어 훨씬 크기를 키운 V보트 프로젝트를 실시했고 그에 따라 바라쿠다급 잠수함과 아예 작정하고 크기를 확 키워보자!는 생각에 1차대전기 U보트의 설계를 확장시켜 만든 아르고노트급 기뢰부설 잠수함과 나왈급 잠수함을 건조하기에 이르렀으나...

바라쿠다급 잠수함 1번함 SS-163(취역 당시엔 V-1, SF-4로 불림) 바라쿠다(Barracuda). S급의 실패 이후 미 해군의 설계실험 목적으로 굉장히 유니크한 설계를 가지고 있으나, 전방/후방 기관실 배치라는 안좋은 쪽으로 유니크한 기관배치와 구상선수 설치라는 괴기한 구조를 가지진 괴작으로 탄생해버렸으며 실제 운영시에도 수상항해를 하든 잠항을 하든 불안정한 안정성과 바닥을 치는 정숙성 등의 단점이 너무 많아 실전에서 도저히 투입시킬 수 없다는 악평을 받았다. - 1934년 7월경 알래스카에서 촬영

나왈급 잠수함 1번함 SS-167(취역 당시에는 V-5, SC-1으로 불림) 나왈(Narwhal). 순양잠수함 계획에 따라 1차 세계대전 당시의 독일 U보트의 설계를 참고로 압도적으로 덩치를 키우고 어뢰탑재량과 화력을 끌어올리며 항속거리를 증가시켰으나 역으로 엄청나게 커진 덩치는 미 해군 잠수함 설계 역사상 최악의 잠수성능을 기록하게 만드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 1929년 12월 17일 포츠머스 해군기지에서 촬영

그나마 바라쿠다급의 경우 S급보다 개미 눈곱만큼이라도 낫다는 평은 들었으나 아르고노트급 기뢰부설 잠수함과 나왈급 잠수함은 취역 이후 안좋은 쪽으로 미해군 기록을 새로이 쓰고 있었고 S급과 이전 V보트들에게서 나왔던 각종 문제점들을 종합해 본 결과로 시험 목적의 잠수함들을 건조하게 된다.

카샬롯급 잠수함 SS-170 카샬롯(Cachalot). 최후의 V보트 프로젝트 함종으로서 이전의 똥망작들에 대한 반성이 많이 반영되었고 설계상 이후 미해군의 함대형 잠수함들의 아버지라 불려도 부족함은 없으나 시험함 성격상 및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산재해 본격적인 실전에서의 활약을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 1934년 7월 9일 포츠머스 해군 기지에서 촬영

시험 목적의 잠수함들인 카샬롯, 포퍼즈급 등을 건조하게 되면서 생기게 된 노하우는 살몬급에서 조금씩 그 결실을 맺기 시작했으며 이보다 모든 면에서 성능이 강화된 사르고급 잠수함을 건조한 이후 미국 특유의 함대형 잠수함 선체 설계는 주욱 이어져 와 후계 함종인 탬버급 잠수함의 설계에 적극적으로 채용이 되었는데, 가토급 잠수함의 기본 설계는 이 탬버급 잠수함을 기반으로 한다. 정확히는 탬버급 잠수함의 3차 개량형에 속하는 잠수함이자 2차 개량형인 거(Gar)급 잠수함의 개량형으로서 계획 되었다. 초기에는 가토급 1번함인 가토부터 6번함 가드피쉬까지 탬버급 잠수함과 동일 함종으로 구분하기도 했었으나 이후 가토급으로 독립적인 함종으로 분리되었다.

이 당시 미 해군에선 국제 정세의 분위기가 심상찮음을 느껴 해군 전력의 대규모 증강계획인 2대양 함대정비계획을 시작했다. 본디 65척의 건조가 결정되었으나 1941년 형식의 함선 2척이 추가 건조되었다. 이후 1942년도에도 4척이 추가 계획되었으며 가토급은 최종적으로 전부 1941년형, 1942년형 이외에도 전시 긴급 추가 예산이 집행되어 총 77척에 이르는 많은 양의 잠수함이 건조되었다.

가토급 잠수함의 건조를 담당한 주요 회사와 조선소는 코네티컷 주의 그로튼에 위치한 일렉트릭 보트(Electric Boat Shipbuilding Company, 현 제너럴 다이나믹스 일렉트릭 보트)사와 메인 주의 씨베이 섬에 위치한 포츠머스 해군 조선소(Portsmouth Navel Shipyard), 캘리포니아 주의 발레요에 위치한 메어아일랜드 해군 조선소(Mare Island Navel Shipyard) 및 위스콘신 주의 매니토웍에 위치한 매니토웍 조선소(Manitowoc Shipbuilding Company)이다.

3.1 선체 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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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토급의 선체는 이 사르고급 잠수함의 기본 레이아웃을 바탕으로 하되 승계 함정인 탬버급 잠수함보다 선체 길이를 1.5m 잡아 늘여 선체가 소폭 커졌다. 주 압력선체는 총 8개 구획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전방 어뢰실, 장교 거주구/전방 배터리 구획, 전투실/무전실/주요 화기 탄약고, 승무원 거주구/후방 배터리 구획, 전방/후방 엔진 구획, 후방 어뢰실로 나뉜다. 독일의 U보트들과 비교해 평균적으로 2~3배에 달하는 배수량과 덩치는 승조원들의 거주성 향상과 장거리 항해능력 등을 동시에 추구하는 데 성공했으며 잠항심도는 14.3mm로 두께가 강화된 압력선체를 바탕으로 기존 탬버급의 시험잠항 심도인 75m에서 증대된 91m까지의 잠항을 보장하나 실전에서는 시험 최대잠항심도인 91m를 넘은 152.4m까지 잠항을 한 기록이 남아있다.

코닝타워 역시도 별개의 압력 선체로 구분되어 설계되어 있는데, 다른 잠수함과 달리 가토급을 포함한 미국 함대형 잠수함들은 별도의 코닝타워 압력선체를 설계에 적용해 코닝타워에 손상을 입어 침수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려는 설계를 꾀했으며 코닝타워 내에 거의 모든 전투체계를 우겨넣어 효율적인 전투를 가능하게 했으며 잠수함이 침몰할 시 이곳을 통해서 탈출을 가능하게 했다. 코닝 타워 내에는 레이더, 소나 콘솔, 공격/관측 잠망경, 타기 등의 장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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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러스트 탱크의 경우 주 밸러스트 탱크 10개, 연료 밸러스트 탱크 6개소가 존재하며 선수 방향과 후미에 주 밸러스트 탱크 1기씩, 선체 양 측면에 8개의 주 밸러스트 탱크와 연료 밸러스트 탱크 6개가 배치되어 있다. 뱃머리에 부력 탱크, 2A-2B와 2C-2D 주 밸러스트 탱크 사이에 네거티브 밸러스트 탱크가 존재하며 선체 중앙부에 Safety Tank가 추가되었다. 연료탱크는 측면에 위치한 밸러스트 탱크보다 안쪽에 위치해 있으며 연료 밸러스트 탱크를 이용한 함의 균형을 잡을수 있게 설계되었으며 네거티브 탱크는 해수를 충수시켜서 추가 중량을 확보하고 세이프티 탱크는 그냥 공기를 채운채로 내버려둬 양의 부력을 만드는 데 사용한다.

밸러스트 탱크 용적
1번 메인 밸러스트 탱크해수 49.17톤
2A, 2B, 2C, 2D번 메인 밸러스트 탱크해수 129.03톤
6A, 6B, 6C, 6D번 메인 밸러스트 탱크해수 141.60톤
7번 메인 밸러스트 탱크해수 39.09톤
전방 트림 탱크해수 24.31톤
1번 예비 밸러스트 탱크해수 30.77톤
2번 예비 밸러스트 탱크해수 30.77톤
후방 트림 탱크해수 19.97톤
세이프티 탱크해수 23.23톤
네거티브 탱크해수 7.51톤
선수 부력 탱크해수 31.69톤
3A, 3B 연료 밸러스트 탱크디젤 19,196갤런
4A, 4B 연료 밸러스트 탱크디젤 24,089갤런
5A, 5B 연료 밸러스트 탱크디젤 19,458갤런

섬프는 윤활유 계통에서 순환이 끝난 윤활유가 모이는 역할을 한다. 섬프 탱크라고도 하는데, 계통을 따라 한바퀴 돈 윤활유가 흘러내려 모인다. 그리고 섬프에서 모이면 다시 계통을 따라 돌고 증발하며 이후 섬프의 윤활유 유준을 보고 윤활유를 보충하는 식으로 운영한다.

주 엔진 섬프 탱크 계통 용적
1번 주 엔진 섬프 탱크382갤런
2번 주 엔진 섬프 탱크382갤런
3번 주 엔진 섬프 탱크382갤런
4번 주 엔진 섬프 탱크382갤런
1번 감속 기어 섬프165갤런
1번 감속 기어 섬프165갤런

청수는 승조원들의 식수, 씻을 물 등을 제공하며 어뢰발사관에 충수와 어뢰 세척을 목적으로 한 청수를 담는 보상탱크가 따로 존재한다. 총 3곳이 존재하는데, 가토급은 전방 어뢰실에 2곳, 후방 어뢰실에 1곳이 존재한다. 일단 청수를 저장했다가 어뢰 발사 시 발사관 내에 충수를 실시하고 어뢰 발사 이후에는 어뢰발사관 내에 들어찬 해수를 보상탱크 내로 배수하고 이후 보상탱크를 완전히 비운 다음 다시 청수를 채우는 식으로 사용한다.

청수 탱크 계통 용적
1번 청수 탱크980갤런
2번 청수 탱크980갤런
3번 청수 탱크973갤런
4번 청수 탱크973갤런
비상용 청수 탱크276갤런
1번 전방 어뢰 보상 탱크138갤런
2번 전방 어뢰 보상 탱크138갤런(양측 총합 276갤런)
전정실 청수 탱크18갤런
모터실 청수 탱크8갤런
후방 어뢰 보상 탱크180갤런

배터리 증류수 탱크 역시 따로 존재하는데, 이론상으로는 본래 절대 증발을 하지 않지만 현실은 지속적으로 증발하기 때문에 이 배터리 증류수 탱크 역시 존재한다. 총 용적은 1,208갤런.

배터리 증류수 탱크 용적
1번 배터리 증류수 탱크152갤런
2번 배터리 증류수 탱크152갤런
3번 배터리 증류수 탱크143갤런
4번 배터리 증류수 탱크157갤런
5번 배터리 증류수 탱크152갤런
6번 배터리 증류수 탱크152갤런
7번 배터리 증류수 탱크157갤런
8번 배터리 증류수 탱크143갤런

내압 위생 탱크는 오물 탱크다. 즉 똥통. 물론 내압식의 설계이기에 가토급 잠수함은 잠수시에도 승조원이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으며 화장실 배관을 잠그고 압축공기를 불어넣어주면 그대로 오물이 선체 외부로 배출된다. [4]

내압 위생 탱크 용적
1번 내압 위생 탱크1.66톤 혹은 434갤런
2번 내압 위생 탱크2.57톤 혹은 673갤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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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수집 탱크는 복수기에서 증발했던 물이 모이는 역할을 하며 팽창탱크는 보일러나 냉각수에서 온도가 올라 끓어오르게 되기에 버퍼 역할을 한다. 청정 연료유 탱크는 해수와 접촉하지 않는 연료유를 저장하는 탱크로 생각하면 편하다. 물론 나중가면 연료 및 무장 소모 등으로 중량보상을 위해 해수를 채우게 되기에 큰 의미는 없다. 또한 연료탱크 용적이 기존 탬버급의 93,993갤런에서 97,140갤런으로 확장되어 최장 75일간 10노트의 속력으로 2만 km를 항해하며 작전을 수행할 수 있었다.

1번 연료탱크11,401갤런
2번 연료탱크13,122갤런
6번 연료탱크15,201갤런
7번 연료탱크10,054갤런
수집 탱크2,993갤런
청수 팽창 탱크2,993갤런
1번 청정 연료유 탱크611갤런
2번 청정 연료유 탱크618갤런
1번 윤활유 탱크1,475갤런
2번 윤활유 탱크924갤런
3번 윤활유 탱크1,073갤런
예비 윤활유 탱크1,201갤런

잠수 완료시간은 확장된 선체를 이용해 밸러스트 탱크의 확장 및 개량및 기관, 어뢰 등의 중량물 배치를 하여 매우 안정된 잠항능력을 바탕으로 유압 구동으로 조작되는 잠항타를 채용하고 혹독한 승무원 훈련을 통해 부상 상태에서 완전 잠항하는데에 최단시간 30~35초를 기록하였으며 부상 상태에서 잠망경 심도까지 잠수하는데에 약 45~50초가 소요되어 2천 4백톤급의 배수량을 가진 잠수함 치고는 상당히 빠른 잠수 완료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이 기록들은 어디까지나 승무원의 훈련 강화와 각종 꼼수[5]들을 통해 시간을 줄여 그 덩치급에서 빨랐단 소리였지 압도적으로 빠른 수준은 아니었고 U보트의 잠항속도와 비교했을때 상당히 느린 편이고, 평균적으로는 완전히 물 속으로 사라지기까지 55초에서 65초정도의 잠수완료시간을 가졌다.

가토급 잠수함의 꽤 괜찮은 잠수완료시간의 비결로는 성능 좋은 밸러스트 탱크와 효율적인 배치, 중량물 분배의 영향도 있으나 자유충수구역 배수구를 덩치에 비해 훤히 뚫어놓은 것도 한 몫 한다. 당시 대부분의 잠수함들이 자유충수구역 배수구를 하나하나 뚫어놓았던 데에 비해 가토급은 선수부에만 단일 배수구로 뚫어놓았고 주요 배수구는 일직선으로 훤히 뚫어버리는 꼼수를 부려놨는데, 이는 밸러스트 탱크에 빠른 시간내에 충수가 가능하게 해주며 여분의 공기가 빠르게 빠져나갈수 있게 도움을 주어 빠른 잠수가 가능케 했다. 이렇게 일직선으로 뚫어버린 충수구의 설계는 이후의 잠수함들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이런 배수구의 설계는 가토급이 최초로 도입한 것은 절대 아니고, 이미 예전부터 일본이나 영국 등에서도 도입을 했던 것들이라 당시 기준으로도 크게 새로울 것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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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타 역시 유압 구동식을 사용해 선회능력이 매우 양호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전방의 잠항타는 유압으로 폴딩이 가능해 전개 및 수납이 가능했다. 이유는 입/출항 및 잠수함 모함 옆에 계류하기 위해서였는데, 입/출항시 홋줄작업 도중 전방 잠항타가 전개된 상태에서 부두시설이나 다른 선박들과 충돌할 경우 파손되는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6]

잠수함이 침몰할 시 승무원들이 비상탈출을 하기 위한 고려도 되었는데, 전방/후방 출입해치 근처에 구조 부이가 1개씩 총 2개가 설치되었고 잠수함이 손상을 입고 침몰하기 시작하면 이 부이가 풀리면서 물 위로 떠오르며, 동시에 승조원들이 해치를 열고 탈출하면 구조부이와 잠수함을 연결하고 있는 부이 와이어를 잡고 물 위로 올라올 수 있도록 배려했다.

가토급 잠수함 20번함 SS-231 해덕(Haddock)의 Mod.1형 함교. 이 형태가 기본적인 형태가 된다. 미 해군에서는 이 함교를 시가(담배)형 함교라고 칭했고 함교에 타기를 비롯한 조타 설비들이 설치되어있어 조타수가 직접 밖을 보면서 조타를 하는 겸 파도를 막아줄수 있게 했으나 상당히 거대하고 견시에 불편한 감이 있었던데다 차후 설명하게 될 문제들로 인해 개량을 거쳐 조타 설비와 파도막이 페이웨어를 철거하고 돌출형 함교로 교체하게 된다.

함교의 기본적 형태는 V-보트에서부터 이어져 오는 시가형 함교가 채택되었지만 크고 불편하다는 평가를 받아 이후 개수를 받게 된다.

3.2 추진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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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너럴 모터스 16-278A V-16 디젤엔진,(하)페어뱅크스-모르스 38D 8-1/8 디젤엔진. 양 엔진 모두 호평을 받아 2차대전기부터 50년대 후반까지 미국 잠수함들의 엔진으로서 채용되었다.

디젤엔진은 제너럴 모터스 사의 16-278 V-16 엔진 혹은 페어뱅크스-모르스 사의 38D 8-1/8 10실린더 2행정 대향 피스톤 엔진을 채택했다.

16-278A V-16 디젤엔진
엔진 회전수750 rpm
실린더 배열V형
실린더 개수16개
보어사이트 및 행정8 3/4 X 10 1/2
시동압축공기
페어뱅크스-모르스 38D 8-1/8 디젤엔진
엔진 회전수760rpm
실린더 배열V형
실린더 개수10개
보어사이트 및 행정8 1⁄8 X 10 1/2
시동압축공기

이 디젤엔진들은 컴팩트하게 정리되어 정비성을 적극적으로 고려한 설계를 적용해 정비하기 편했고 엔진 자체의 신뢰성도 매우 높았다. 또 다른 특징은 디젤엔진이 발전용으로만 이용되는 전기추진이라는 점이었다.

동시기 대부분의 잠수함이 디젤-전기 복합추진, 즉 수상에서는 디젤엔진으로 스크류를 돌리지만 수중에서는 전기 모터로 스크류를 돌리는 방식인 반면 가토급의 경우 스크류는 전기 모터로만 돌리고 수상 항해시 고속 모터 4기로 항해하고 잠수시에는 저속 모터 2기로 전환하며 디젤 엔진은 순전히 발전기를 돌려 배터리를 충전하는 역할만 했다.

이 추진방식은 전기 모터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출력이 약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으나 최대 수상 항해속도 20.25노트, 수중 항해속도 9노트를 발휘해 큰 문제는 없었다. 사실 두가지 추진체계를 이용하느라 기어박스 등의 추진체계가 복잡해져 실질적인 용적이 커질 필요도 없고 관리나 정비도 편리해지는데다 동시에 소음도 줄어드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태평양 전쟁 초창기, 이 두 종류 엔진의 생산 물량이 부족해 일부 함정들은 구식의 후벤-오웬스-웬슬러 사의 디젤엔진을 장착하기도 했다. 이 엔진은 본디 독일 MAN 사의 기술지원을 받아 만든 엔진이나 이미 태평양 전쟁 기준으로 구식화된 엔진이었고 출력이 낮으며 정비하기 까다로웠던데다 캐비테이션으로 인한 진동과 소음이 심해 악평을 얻었다. H.O.R제 엔진을 장착한 가토급들은 이후 오버홀을 거치며 신형 엔진으로 교체된다.

배터리는 사르고급 잠수함부터 사용해오던 126셀의 UVA-47 납 배터리를 사용하여 수중에서 2노트로 잠항할 시 48시간을 잠수할 수 있었다. UVA-47 배터리는 일명 사르고 배터리라 불리면서 도입 이후 미 해군에서 기존의 ULS-37, UHS-39B 배터리보다 내구력, 신뢰성 등에서 많은 개선이 있었기에 호평을 받았고 1950년대까지 미 해군 디젤 잠수함의 배터리로 사용되었다.

3.3 전자장비 및 부수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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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토급 잠수함에 설치된 JK, QC, QB 소나 조작 패널. 총 5개의 유닛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자장비의 수준 역시 높았는데, 선체 하부에 QB, QC/JK 소나를 설치하고 전방 갑판 위에 JP 수중청음기를 장착했다.

전방 어뢰실. 함미 방향으로 바라본 사진이다. 방수문 양 옆에 세워진 실린더는 QB, QC/JK 소나 실린더인데, 이들 소나는 유압 구동으로 해저에 침저하는 등의 상황일 때 수납을 시킬 수 있도록 설계해 의도치 않은 소나의 파손과 무력화를 방지할수 있게하게 설계되었으며 수납 콘솔은 전방 어뢰실에 위치해 있었다.

QB, QC/JK소나 콘솔은 앞서 설명했듯 코닝타워에 설치되어 있으며 음탐을 담당하는 승조원이 2인 1조로 운영했다. JP 수중청음기 콘솔은 전방 어뢰실에 배치되어 있었다. JK소나와 QC소나는 서로 통합되어있는데, JK소나는 액티브 모드와 패시브 모드를 사용할 수 있었고 QC소나는 액티브 핑을 쏘는 용도로 사용되었으며 공격 시 QB소나는 표적을 추적하고 JP 수중청음기는 표적 이외의 적함을 탐지하는 데에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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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3 어뢰 사격통제 기계식 컴퓨터(TDC). 레이더나 잠망경, 소나 등에서 제공받은 정보를 기입하면 자동으로 사격제원(어뢰의 선회 각도와 선회 시기)을 계산해 도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승무원들은 어뢰에 사격제원을 입력하는 방식이었다.

또한 어뢰 사격 통제컴퓨터인 TDC(Torpedo Data Computer)를 설치하여 소나와 레이더, 공격 잠망경과 연동되어 있었으며 이들에게서 제공받은 정보를 바탕으로 사격까지의 걸리는 시간의 단축과 명중률 상승을 동시에 성공시켰다. 아직 무유도 어뢰밖에 쓸 수 없었던 시대에는 적의 예상 경로를 향해 함체를 돌려야 해서 반응 속도가 느릴 수 밖에 없었는데, 전간기 중의 기술 발전으로 TDC의 사격제원을 입력받은 어뢰는 직선 경로에서 벗어나 휘어지면서 어뢰를 유도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내었기에 직접 함체를 돌려야 할 필요성이 줄어들었고, 이런 기술적인 발전은 가토급 잠수함의 반응 속도를 엄청나게 끌어올렸다.

가토급 잠수함의 전투정보실. 사진의 좌측에 있는 것은 잠항타 조작 계통, 가운데의 탁자는 해도대 및 자이로 리피터(자이로식 나침반)이며 조타 설비 우측의 장비는 수심을 측정하기 위한 측심기이다. 잠항타 조작 계통 우측의 콘솔 박스는 크리스마스 트리[7]이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선체의 해치, 밸브등의 개방/폐쇄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장비로서 가토급 잠수함은 밸브, 해치 등의 시설물에 전기 계통 설비를 설치해 승조원들이 직접 개방/폐쇄여부를 보고할 필요 없이 녹등, 적등 등으로 개방/폐쇄여부를 전투정보실 내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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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J 수상 수색 레이더. 탐지거리는 22km에서 전함급의 함선, 12km에서 구축함급의 함정을 탐지해 낼수 있는 수준이었다.


또한 SJ 수상 수색레이더를 장착해 탐색 능력을 높였다. 거기에 조수장비를 설치해 조수능력이 강화되고 2개의 샤워실과 세탁기가 설치되거나 에어컨디셔너, 냉장고 등을 설치하는 등 거주성이 좋아졌다. 에어컨이 별거냐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극히 더운 태평양 지역에서의 작전에는 매우 유용했는데, 태평양 해역에서는 잠항하면 잠수함의 실내온도는 40도가 넘게 올라가는 경우가 많아 승무원들이 느끼는 피로감이 상당했고 함내 온도 상승으로 인해 생기는 응결수 때문에 잠수함 내의 각종 전자장비와 설비들이 고장이 나거나 오작동을 일으킬 가능성이 컸던 것. 이것을 어느정도 억제함과 동시에 승무원에게 그나마 쾌적한 작전환경을 제공하여 얻어지는 작전의 효율성 상승효과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는 어느정도 쓸만한 정도까지의 응결수 억제를 하는데에 그쳤었지, 실제로 승무원들에게 매우 쾌적한 수준까지의 함 내의 온도와 습도 조절을 해내거나 이산화탄소 등을 줄여주는 수준까진 해내지 못 했다. 하지만 없는 것 보단 나은데다가 동시기 일본 해군은 이 에어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냉각팬 소음 문제 등으로 제대로 작동시킬 수가 없어 문자 그대로 잠수함 내부가 찜통이 되곤 했다.

또한 에어컨에서 발생하는 응출수는 잠수함에서 공급받기 어려운 민물 이용을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한다. 가토급에 설치된 샤워실과 세탁기에 필요한 물은 주로 응출수가 이용되었다. 이 덕분에 가토급의 거주성과 복지 수준은 전후 구 일본군 잠수함 승조원이나 독일군 U보트 승조원들이 가토급에 승선한 뒤 호텔이라고까지 표현할 정도로 양호했다.

가토급 잠수함 14번함 세로(Cero)의 20mm 기관포좌에서 음력전화기로 함내 통신중인 세로의 승조원.

가토급 잠수함을 포함한 미 해군 잠수함들은 헤드셋 형태의 음력전화기를 거의 전 구획에 설치하고 있었다. 기존의 함내방송/전성관을 통한 함내통신수단의 경우, 가까운 거리의 경우에는 큰 불편함은 없으나 거리가 멀어질 경우 그만큼 소리도 잘 안들리고 승조원들도 큰소리로 외쳐야 하거나 아예 전령수를 보내서 보고를 하는 등 신속하고 정확한 보고 및 전파가 힘들다고 판단해 아예 잠수함 내의 모든 구획에 음력전화망 라인을 가설했다. 음력전화기는 잠수함이 완전히 동력을 잃고 정전이 일어나도 A사이즈 건전지를 이용하기에 라인만 살아있다면 사용 가능한데다 설령 끊긴다 하더라도 전기 직별 승조원들이 새로 가설할 수 있었으며 부가적으로 잠수함에서 발생하는 소음 자체를 많이 줄이기에 음탐 직별 승조원들은 소음 방해없이 좀 더 원할하게 소나를 다룰 수 있었다.[9]

3.4 무장체계

주요 무장인 어뢰발사관은 탬버급과 같은 선수 6문, 선미 4문 총 10문을 장비했으며 어뢰탑재량 24발, 기뢰탑재량 40기로 탬버급과 동일하며 사용 어뢰는 Mark.14 어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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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14 어뢰. 매우 실망스러운 물건이었고 태평양 전쟁 초창기 미국 잠수함 함대의 골칫거리로 전락한다. 차후 서술.[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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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토급 잠수함 25번함 SS-236 실버사이즈(Silversides)의 3인치 50구경장 Mark.17 덱건. 일본 해군의 피켓 보트를 향해 사격 중인 장면이다. 이 덱건은 기존 수상함에 장착되던 Mark.10 함포의 잠수함용으로 개량된 물건이나 매우 약한 화력 때문에 승조원들에게 악평을 얻었다. - 1942년 10월 14일 촬영

덱건은 기본 사양으로 3인치 50구경장 Mark.17 덱건을 채택하였다. 이 덱건은 전체 무게 4.2톤, 360도 전방향 회전이 가능하며 양용포를 기반으로 만들었기에 부앙각은 최저 -15도, 최대 85도이다. 강선은 26조 우선에 분당 발사속도 최대 15~20발을 기록했으며 5.9kg의 철갑탄, 고폭탄, 대공포탄, 조명탄을 초속 823m의 속력으로 고각 2.0도 기준 2,740m, 4.3도 기준 4,150m, 43도 기준 13,350m 까지 쏴 날릴수 있었다. 포탄은 전정실 아랫층의 탄약고에서 보관하는데, 갑판으로 포탄을 올려주는 탄약 이송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일일히 포탄을 직접 갑판까지 도수운반해서 장전할 필요 없이 그대로 엘리베이터로 올라온 포탄을 꺼내 사격할 수 있게 배려되었다.

또한 근접해오는 소형 선박이나 항공기에 대한 대응을 위해 기본으로 50구경의 M2 중기관총 2정과 30구경장 M1917 기관총이나 M1919 기관총이 2정 설치되었다.

가토급의 무장능력은 동시기 일본의 이호급 잠수함들이나 독일의 U보트와는 비교를 거부하는 중무장으로서 이러고도 여유가 남아서 차후에 추가무장을 장착하고 돌아다녔다.

4 개량 및 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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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군은 가토급 잠수함을 건조할 시 추가 무장을 장착하거나 건조 중 자체적인 개량을 하지 않도록 규정했는데 추가 개량등으로 인해서 잠수함의 인도 및 실전배치일이 지연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일선에서의 경험 및 건의에 따라 성능에 직접적인 영향이 없는 장비나 시설물들은 과감하게 철거를 하거나 오히려 추가 무장을 장착하는 등의 개량이 상당히 많이 실시되었다.

코닝타워의 경우 디자인의 대대적인 수정이 이루어졌고 조선소들및 년도에 따라 디자인의 차이가 있는데, Mod. 2A부터 Mod.3A, Mod.4A마다 디자인들이 각기 다 다르고, 각 함마다 승조원들의 요구사항이 전부 다 다르기 때문에 세부적인 형상까지 놓고 보면 통일성 자체가 존재하질 않았다. 덱건이나 대공포, 기관포 등의 주요 탄환을 바로 꺼내서 사용할 수 있도록 코닝타워의 전-후방에는 준비탄 적재함[11]이 설치되어 있으며 나머지 포탄 및 소화기들은 무전실 바로 아랫층의 탄약고에서 보관하는데, M2 중기관총이나 M1917, M1919같은 거치식 기관총의 경우 급히 꺼내쓰기 위해서 코닝타워 내의 전투실에 따로 비치하기도 했다.

가토급 6번함 SS-217 가드피쉬(Guardfish). Mod.1A형 코닝타워가 적용된 최초의 가토급 잠수함으로서 전체적 실루엣은 기존 Mod.1형 코닝타워(시가형 코닝타워)와 유사하지만 전방 항해함교의 길이가 단축된것이 특징이다. 기존의 코닝타워는 자유충수 시간이 너무 늦고 쓸데없는 공간만 늘린다는 건의가 반영된 결과물.

가토급 27번함 SS-238 와후(Wahoo)의 Mod.2 버전 코닝타워. 일종의 과도기형으로서 메어아일랜드에서 주로 설계되었으며 후부가 뾰족하게 각이 진 형태와 페이웨어 및 함교 조타설비는 그대로 유지하나 함교 후부의 높이를 낮춘 뒤 기관총좌를 신설한 것이 특징. 1942년기부터 1943년기까지 꽤 많은 미국 잠수함들이 이 함교의 형태를 지녔는데, 4개의 조선소들 중 태평양에서 가장 가깝다는 위치 덕분에 메어아일랜드 조선소에서 오버홀 공사를 많이 받았기 때문이며 3개의 디자인 중 수중저항이 가장 덜했기 때문이다. 이 형식은 1942년 5월경부터 설계가 되었다.

가토급 55번함 SS-266 포기(Pogy). Mod.2A형 코닝타워가 적용된 모습이다. 차이점은 기존의 일체형 잠망경 마스트가 신형의 사다리형 마스트로 교체된 것이 차이점.

가토급 46번함 SS-257 하더(Harder)의 Mod.3 코닝타워. 1943년 중반부터 도입된 신형 코닝타워로서 조타설비 및 페이웨어가 완벽하게 삭제되고 전방 기관총좌가 신설된것이 특징이다. 이 함교는 기존 과도기형 함교에 비해 상당한 호평을 받았고 잠수함의 수상전투 시 화력이 강화되었으며 자유충수시의 시간 역시도 대폭 단축되어 잠수완료시간의 개선에도 도움을 주었다.

가토급 43번함 SS-254 거나드(Gurnard)의 Mod.3A형 코닝타워. 잠망경 마스트와 함교 후방에 SD/SV레이더 마스트가 따로 설치된 것이 주요 개량점. 해당 함은 신형의 SV 대공레이더를 장착하고 있다.

가토급 22번함 SS-233 헤링(Herring)의 Mod.3 롱 브릿지형 코닝타워. 기존의 Mod.3형에 비해 함교 견시대와 파도막이의 길이가 길어진 것이 특징. 약 5척의 가토급이 이 롱 브릿지형 함교를 채택했다.

가토급 39번함 SS-250 플라이어(Flier)의 Mod.4형 코닝타워. 기존 Mod.3형 코닝타워의 항해함교 높이가 높고 여전히 코닝타워 구조물의 크기가 크다는 건의를 받아들여 상부 견시대를 지지하는 3개의 I-빔을 노출시키고 항해 노천함교의 높이를 포좌의 높이와 동일하게 맞춰 적용했다.

가토급 36번함 SS-247 데이스(Dace)의 Mod.4A형 코닝타워. Mod.3A형 코닝타워의 개량점과 동일하게 기존 잠망경 마스트와 함교 뒤에 SD/SV레이더 마스트를 새로 만들었다.

함교의 세부 구조도 전훈에 의해 지속해서 개량이 되었다. 이때도 잠망경 지지대나 견시대의 디자인, 예비탄 적재함 갯수와 위치, 레이더 역탐 안테나, 점프 케이블 마스트 등 승조원들의 요구에 따라 각자 다 다르다.

전쟁 중에 레이더 역시 개수를 받아 잠수함 전용의 신형 SD 대공 경고 레이더가 추가 탑재되었고, 잠망경처럼 물 밖으로 레이더만 내놓고 경계임무를 하거나 적을 찾아낼 수 있도록 했다. 레이더의 위치도 수시로 바뀌었는데, 잠망경 마스트 뒤에 따로 레이더 마스트를 설치해 여기에 SD레이더를 붙여놓는 경우도 있었고 1945년기에 신형 SV 대공 수색 레이더를 장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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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토급 잠수함에 설치된 SD 대공경계 레이더와 SJ 수상 수색 레이더. SD 레이더는 최대 37km에서 폭격기나 대잠초계기 수준의 반사값을 가진 물체를 탐지해 내 적 항공기에 대한 조기 탐지 및 경고를 할 수 있었다. 콘솔 모니터는 A디스플레이를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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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방 레이더 마스트에 설치된 SV 대공 수색 레이더(동그라미 안). 이 레이더는 최대 12km, 고도 9100m에서 비행중인 폭격기를 탐지 가능하며 19km, 고도 3000m에서 적 전투기를 탐지, 20km에서 전함급의 수상함, 12km 이내에서 부상 중인 적 잠수함을 탐지할 수 있었다.

덱건은 취역 초엔 탬버급이나 그 이전 함급과 마찬가지로 3인치 50 구경장 덱건을 장비하고 취역했으나 이 덱건은 눈물 나는 화력과 성능 때문에 콩알탄 혹은 장난감 대포 같은 비하적인 별명이 붙었고 결국 구식 S급 잠수함 등에 탑재되어있던 4인치 덱건으로 교체했다.

가토급 잠수함 12번함 SS-225 세로(Cero)의 4인치 50구경장 Mark.9 덱건. 무게 2,470kg, 강선 25조 우선, 고각은 -15~25도이며 14.97kg의 철갑탄, 고폭탄을 초속 884m의 속력으로 고각 0.3도 기준 910m, 0.7도 기준 1,830m, 1.3도 기준 2,740m, 1.8도 3,660m, 20도 기준 14,560m까지 사격이 가능했다. 최대 사격속도는 분당 8~9발.

그러나 이 4인치 덱건도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책으로 장착한 것 뿐이었고 비좁은 잠수함의 갑판 위에서 사용하기에는 불편하기 짝이 없었으며 상당한 구식이었으므로 차후 훨씬 개량되고 조작이 편해진 5인치 25구경장 덱건으로 교체된다. 평균적으로는 1문 장착이 기본이나 함장 이하 승조원들의 전훈 및 취향에 따라 2문까지 탑재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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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인치 25구경장 Mark.17 덱건. 대공포를 기반으로 한 설계를 바탕으로 잠수함의 갑판에서 사용하기 편리해진 것이 특징. 총 무게 1,937kg, 강선 25조 우선, 고각은 최소 0~85도이며 23.7kg의 고폭탄 및 VT신관 장착 대공포탄을 초속 657m로 고각 40도 기준 12,980m, 최대사거리 13,259m, 85도 대공 사격시 8,352m까지 쏴 날릴수 있었다. 최대 발사속도는 분당 10~15발.

물론 덱건의 설치 위치도 제각각이었다. 본래 설치 위치인 함교 후방에 설치한 경우도 있지만 적을 추격하기 위해서 덱건을 함교 바로 앞에 설치하여 신속하게 포격을 하기 위한 배려를 하기도 했으며 전쟁 기간 중 적 항공기에 대한 대응력을 높이기 위해 40밀리 보포스포를 장착하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5인치 덱건 2문과 40밀리 보포스포를 앞뒤로 장착해버려 사실상 일본군의 해방함과도 맞짱 떠볼법한 무장을 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전쟁 말기에는 5인치 로켓탄을 단 잠수함도 등장했다. 하지만 이런 개량들은 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군 수상함 및 수송선단 전력이 씨가 말라버려 많이 쓰이지 못했다.

5인치 25구경장 Mark.17 덱건을 앞뒤로 장착한 가토급 잠수함 45번함 SS-256 헤이크(Hake) - 1945년 5월 29일 메어아일랜드 해군기지에서 촬영

기관총도 애초엔 12.7밀리 M2 중기관총 및 7.62밀리 M1917 혹은 M1919 기관총을 탑재했는데 이것도 점차 스위스 엘리콘사의 FF 20밀리 기관포로 교체되었다. 하지만 이것도 섭섭했던지 추가 기관총을 탑재하는 사례도 많았다. 특히나 기관총은 딱히 정해진 장착수량이 없고 규정이 느슨해서 장착 수량이 함장 취향에 따라 제멋대로인 경우가 많았고 심할경우 빨리 꺼내서 거치하기 위해 코닝타워나 해치 주위에 시건장치를 따로 만들어놓고 필요할 때 꺼내쓰기도 했다.

가토급 잠수함 41번함 SS-252 가빌란(Gabilan)의 갑판에 임의로 설치된 M2 중기관총과 거치대. 일본 목재 범선을 향해 사격 중인 장면이다. - 촬영일자 미상

위의 사례들처럼 일부 무장들이 개량된 가토급들은 잠수포함 등의 별명이 붙는 경우도 허다했고 웬만한 일본 해군 수상함보다 더 좋은 대공능력을 자랑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봤을 땐 이득.

또항 잠수완료시간 개선을 위한 자유충수구역 배수구를 추가로 더 뚫는 개량도 실시되었는데, 흘수선을 따라 일렬로 배치된 형태의 배수구는 해군 조선소, 함의 측면 벌지를 따라 곡선으로 뚫려있는 배수구는 일렉트릭 보트에서 개조된 형식이다.

5 문제점

가토급은 의외로 문제점이 많이 묻히는 잠수함이기도 하다.

우선 큰 덩치로 인해 타국의 1천톤급 이하의 잠수함과 비교했을때 떨어지는 기동력과 잠수시간이 문제였다. 태평양에서 주로 활동하는 환경 특성상 긴 항속거리와 큰 선체를 가지지 않으면 전체적인 초계작전에 지장이 있을 우려가 매우 커 선체의 대형화는 어쩔 수 없는 필연적인 요소였다.

잠수시간이 느린 이유 중 가장 대표적인 원인은 선체 크기 자체에서 오는 부력 때문인데, 가토급은 당시 기준으로도 제법 큼직큼직한 대형 잠수함이기에 그 크기에 따라 부력도 상당했다. 즉 이런 큰 잠수함을 잠수를 하게 하려면 그만큼 밸러스트 탱크에 들어가야 할 해수의 양도 필연적으로 늘어난다는 이야기고 이에 따라 밸러스트 탱크 의 용적도 커지는데, 이 때문에 그만큼 해수가 충수완료되는 시간이 늦는다는 것이다.

물론 가토급 자체의 부력유지능력은 동급 잠수함들 중에서도 매우 안정적이라 급속잠항능력은 훈련으로 부족한 점을 보충하여 완전히 물속으로 사라지는데에 30초가 소요되어 큰 덩치에도 불구하고 매우 민첩한 수준이었다.[12] 하지만 이 30여초의 기록은 어디까지나 훈련강화와 각종 꼼수들을 이용해 최대한 시간을 단축해낸 결과물이지 평소대로라면 가토급의 잠수완료시간은 50초에서 55초 정도로 정말 턱없이 느리고, 1천톤급 이하의 독일 VIIC형 유보트의 경우 평균 25초의 잠수완료시간을 가져 상당한 격차를 보인다.

다만 독일 잠수함의 잠항속도가 빨랐던 것은 전쟁에 돌입하는 시점에서 당장 쓸 수 있는 잠수함이 상대적으로 소형으로 최소한의 대양작전능력만을 가졌던 700톤급의 VII형 이었던 이유가 컸고[13] 작전반경이 북대서양 전역으로 확대 되면서 독일 잠수함대의 신형 잠수함들도 대형화 되면서 잠항속도는 크게 나아질 게 없게 된다.

속력 자체는 타국 잠수함과 별 차이 없거나 오히려 빠른 구석도 있었지만 세부적인 기동력은 1천톤급 이하의 적국 잠수함인 U보트에 비해 턱없이 느렸다. U보트조차도 2차대전기 잠수함들 중 가장 빠른 잠항속도와 평균 250~270에 달하는 잠항심도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허무하게 격침당하거나 손상을 입은 경우가 많았는데, 이보다 훨씬 느린 가토급이 문제가 없을리가 만무하다.

두번째로, 잠항심도가 깊지 않았다. 가토급의 시험항해 최대 잠항기록인 90m는 폭뢰공격에 대해 생존율이 턱없이 낮은 심도였다. 물론 실제 최대 기록은 퍼퍼의 152.4m 잠항 기록이 최대였으나 그래봐야 오십보백보였고 이 수심까지 폭뢰가 내려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동시기 이와 비슷하거나 한참 모자라는 일본 해군 잠수함들이 무슨 일을 당했는지 생각해보면 이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시험잠항 당시 90m를 잠수했던 잠수함이 왜 120m까지 잠수하고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버티고 152m까지 내려가고도 버티느냐 라는 의문점을 가질 수 있는데, 이유는 안전상의 문제와 확정된 안전심도라는 기준 자체가 당시 각국 잠수함들마다 상이하게 달랐다는 것이다.

가토급은 설계 이전부터 이전 함급인 거급 잠수함의 시험잠항기록인 75m에서 늘어난 90m에서의 선체에 아무 이상이 없는 수준의 압력선체 강도를 미 해군 함선국 등에서 작전요구성능으로서 요구받았고, 이에 따라 초도함인 가토급의 첫 시험잠항 당시 90m까지 잠수한 후 선체에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 더 이상 잠수해볼 생각 자체를 하질 않았다.[14]

이유는 단순한데, 설계 목적을 달성했으면 그 이상의 과욕을 부르다가 사고가 발생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당장 초도함인 가토의 진수식이 1941년 8월 20일인데, 이미 유럽은 전쟁 중이고 미국도 언제 전쟁에 휘말릴지 알수 없던데다 경제 대공황의 여파가 아직도 남아있어 예산은 한계가 있는데 시험 중에 선체 한계를 넘어 압착으로 인해 함선이 손상을 입거나 심할경우 아예 손실할수도 있는 상황이니 인명피해는 고사하고 부담이 컸었던 상황이다. 즉 가토급은 실제 선체 한계를 최대까지 시험해보질 않고 요구성능만 충족시키고 그대로 취역한 것인데, 이게 어떤의미에서는 장점으로 승화된다.

또한 요즘 같은 시대에는 시뮬레이터를 이용해 굳이 잠수하지 않고도 압착심도를 알아낼 방법이 존재하나 당시에 그런게 있을턱이 만무하고 실제 압력선체의 한계를 알아보려면 직접 잠수해보는 수밖에 없었는데 누가 이런 일에 제대로 자원하겠는가? 실제로도 선체한계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시험잠항을 시도했다가 사고를 당하고 해군에 함선이 인도되는 날짜가 늘어나거나, 심하면 영영 잠수함까지 잃어버리는 사태가 벌어진 적이 있었기 때문에 조심할 수밖에 없었기에 2차대전 시기의 잠수함들은 정확한 압착심도를 알기 힘들다.

하지만 저런 이유들을 따져놓고서라도 실제 가토급의 압착심도는 최소 152m 정도로 추정되는데, 실제로 1943년 10월 9일, 가토급 잠수함 57번함인 SS-268 퍼퍼(Puffer)가 마카사르 해협 1°-08'N 119°-31'E 해역에서 152.4m 잠항을 한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1943년 9월 7일 첫 초계에 나선 퍼퍼는 10월 9일, 마카사르 에서 7,508톤급 급유함 쿠마가와 마루에 어뢰공격을 감행해 손상을 입히는데 성공하나 근처에 있던 치도리급 어뢰정에게 발각당해서 총 47발의 폭뢰공격을 받으며 잠수해서 피해다니게 된다.

이 폭뢰공격으로 퍼퍼는 공기 순환 벤트 가스켓이 박살나고, 전 구획에서 침수가 진행되면서 주요 출입 해치들과 코닝 타워 도어 등은 모조리 침수가 발생하고 허용 가능한 해수 유입량이 초과하자 부력을 잃으면서 조금씩 가라앉게 되고 퍼퍼는 가라앉지 않으려고 네거티브 세이프티 탱크, 예비 밸러스트 탱크, 트림 탱크에 압축공기를 불어넣고 잠항타를 이용해 선수를 12도 정도 들어올리면서 최대한 심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으나 함은 계속 가라앉으면서 어느새 152.4m까지 내려간 뒤에 겨우겨우 멈추면서 심도 152.4m를 유지하게 된다.

이때 문제가 생겼는데, 허용 이상의 수압이 가해지면서 침수가 심하게 진행됐고 수압 때문에 잠항타, 트림 펌프, 압축공기 뱅크 등이 유격이 줄어들면서 마찰로 심각한 소음을 일으켰고 잠타, 방향타, 프로펠러 구동축 등이 제대로 작동하질 않았으며 더군다나 엔진실 등의 선체 후방은 섭씨 48도까지 실내온도가 치솟아버렸다.[15]

퍼퍼는 공격을 겨우 피해서 잠수한지 38시간만에 다시 물 밖으로 부상할 수 있었고, 응급수리를 마친 후 초계임무를 종료하고 10월 24일, 호주의 프레멘틀 항으로 복귀하는 데에 성공하며 본의 아니게 가토급 잠수함의 최고 잠수심도 기록을 남겼다.

요컨대,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잠수가능 심도가 아주 뒤떨어지지는 않는 셈이다.

하지만 아무리 이전 함급들보다 압력선체 두께가 14.3mm로 강화되고 실제 압착심도가 훨씬 낮을 것이라 추정해도, 실전에서는 90m가 어떻건 152m가 어떻건 폭뢰에 의해 피해를 입는건 매한가지인지라 미 해군에서는 가토급의 잠항심도에서도 불만족을 표했고 결국 가토급 자체의 개량을 가하기보단 압력선체 두께가 22mm로 강화되고 강도가 좋아진 압력선체 강재를 통해 시험 잠항심도 120m, 전쟁 말기 개량으로 180m까지 개선하고 실전 최고 기록 183m를 기록하는 발라오급 잠수함을 건조하며 해결을 보려 했다.

함교구조물도 문제가 있었는데, 아무리 빨리 잠항해도 큰 함교구조물 때문에 함저에 충돌해 손상을 입거나 부상한 상태에서도 함교에 집중 공격을 당할 수 있었다. 애당초 선체는 대부분이 물에 잠겨있기 때문에 명중탄을 내기가 어렵고, 상대적으로 명중탄을 내기 쉬운곳이 함교구조물이기에 실전에서도 가토급의 손상 기록을 보면, 꽤 많은 확률로 함교에 데미지를 입은 사례가 꽤 많았다. 그나마 가토급은 U보트랑은 달리 코닝 타워 내의 전투실은 함체의 압력선체와는 별개의 압력선체로 구분되어 설계되어 있었기에 코닝 타워의 피격으로 침수가 진행되더라도 코닝 타워와 전정실 사이의 해치를 닫아 폐쇄하는 것만으로 침수를 억제할수는 있지만, 문제는 앞서 설명했듯이 당시 미국 잠수함들은 코닝타워 내에 전투체계가 대부분 집중되어 있었고 여기에 한방 제대로 맞으면 순식간에 전투력이 급감하고 지휘체계가 마비된다. 또한 후방에 공기순환 벤트 트렁크가 존재했기에 함교가 피격당하면 이 벤트가 손상되어 기관, 배터리 충전 등에 문제가 생길 위험이 높았고 실제로도 이 벤트의 파손비율도 꽤 높았다. 물론 이런 설계는 다른 나라 잠수함들도 마찬가지인지라 문제라면 문제지만 수중저항 등의 문제 때문에 달리 방법도 없으니 가토급만의 문제는 아니다.

또한 가토급을 포함한 초창기 미해군 잠수함들의 시가형 함교의 경우 타기를 포함한 각종 조타설비들, 즉 조타실이 추가로 설치되어 있었다. 사실 초창기 가토급의 타기는 총 3곳인데, 바로 압력 선체 내의 전정실에 하나, 코닝타워 내에 한곳 더, 그리고 노천함교 한 곳의 다소 해괴해보이기까지 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런 구조를 가진 이유는 수상함과 유사한 설계를 적용해 수상항해시에도 이를 적용해보겠다는 과도기적 목적이 강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페이웨어와 현창(윈도우)의 설치목적은 함교에서 조타수가 직접 조타륜을 잡고 항해를 하는것과 동시에 견시수들이 파도에 젖지 말라고 설치한 일종의 배려였으나 이게 실전에서 방해가 됐다.[16]

아무리 파도로 인한 불편함 개선을 위해서라곤 하지만 파도가 치나 안치나 현창 자체가 작은 편이라 시야 자체가 좁은 것은 고사하고 페이웨어 시설물 크기 자체가 상당했기 때문에 견시수와 당직사관도 불편한데다, 이곳은 압력선체 내부가 아니라 바깥이고 잠수하면 물에 잠기기 때문에 에어컨이 없다. 이게 웬 대수냐 하겠지만, 실제로 전쟁 초기 미해군 함대형 잠수함에서 근무한 잠수함의 조타수들은 덥고 습하기 때문에 피로감이 누적되어서 여기에서 조타기를 잡는것을 정말 싫어했다. "차라리 아예 밖을 못본다 하더라도 음력전화기나 직접 음성으로 조타 지시 받으면서 코닝타워 내부나 주 압력선체의 전정실 내에서 에어컨 바람 쐬면서 조타기 잡는게 훨씬 낫지 여긴 진짜 짠내나고 덥다"는 것. 물론 이건 굳이 조타수 뿐만 아니라 견시수와 당직사관도 마찬가지.

무엇보다도 폭뢰공격을 받으면 현창은 모조리 깨져나가고 함교구조물에 손상을 입어 부상을 하고 해치를 열어보면 함교는 유리와 함교구조물 파편으로 아수라장이 되어 일선 승조원들의 불만을 샀다. 물론 함교의 조타 설비들이 박살이 나버리는 것은 덤.

결국 실전 몇번 경험한 함장과 승무원들의 적극적 건의와 괜시리 늘어나기만 하는 정비요소, 굳이 필요하지 않은 사치다 라는 이유 하에 결국 전방의 페이웨어를 삭제하고 코닝 타워의 단순화 및 축소, 기존 함교의 조타실 철거로 대처했으나 함교 체적의 전체적인 축소에는 한계가 있었다. 특히 잠망경/레이더 마스트의 크기가 상당히 크기 때문에 U보트랑은 달리 사각이 상당히 많다는 점이 문제가 되었다. 그런데 이건 다른 국가 해군 잠수함들을 살펴보면 함교구조물이 큰 경우가 있어 가토급만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또한 H.O.R 엔진을 임시로 채택한 잠수함들은 정숙성이 굉장히 떨어져서 쉽게 탐지당하기 마련이었고, 엔진 자체도 구식 설계인데다 정비성까지 떨어지기 때문에 악평을 얻었다. 이 문제의 경우 신형 엔진들이 생산 완료가 될 경우 작전 종료후 복귀시에 오버홀 작업을 거치며 엔진을 뜯어다 새로 갈아버리는 것으로 해결했다.

전쟁 말기즈음되면 평균적인 무장의 수준을 넘어, 어찌보면 과하다시피한 무장들을 장착했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수중저항을 만들어내 수중에서의 속력 등이 오히려 떨어지는 상황도 생겼다. 하지만 당장 승무원들은 이것이 크게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원인은 전쟁 말기즈음 되면 제대로 된 화력을 가진 일본 해군 군함들이 씨가 말라버리는 상황이었고 전쟁 말기 표적의 대다수는 피켓 임무를 수행하는 소형 보트나 어선, 목재 범선 등의 무장이 매우 빈약한 선박들이 주가 되다보니 잠항성능의 감소를 감안하더라도 화력 강화를 하게 된 경우이다.

하지만 이런 단점들은 가토급이 제대로 된 대잠전력을 상대해본 적이 없었고 손실률이 높지 않아 상당히 묻히게 된다. 잠항성능의 경우 주적인 일본군의 해대형 잠수함들이 긴급잠항 81초, 순잠형 잠수함들이 최단 70초에 최장 91[17]라는 문제 있는 잠항능력을 기록하며 상대가 가진 단점이 워낙 독보적인데다가 설령 잠항속도가 늦는다고 해도 레이더의 버프 덕에 적을 탐지하자마자 잠수해버려 긴급잠항의 단점은 묻혀버렸고 잠항심도 역시 기존의 잠항심도보다 더 깊게 잠항할 수 있고 일본군의 대다수의 잠수함들보다 깊게 내려갔으며 조타성능도 일본잠수함들에 비해 우월한 편이라 모조리 묻혔다. 거기에 일본군 대잠 전력은 전쟁 기간동안 수도 없는 허위 격침보고와 장대한 삽질로 가토급을 포함한 미 해군 잠수함대에 타격을 주기 힘들어 기존의 단점들은 더 묻혔다. 일본 해군의 한심한 대잠 전력 덕분에 활약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을 지경.

만약 일본 해군이 대서양 전쟁 후기, 한때 대서양의 늑대라고 불렸던 U보트를 동네 똥개 수준으로 만들어버린 미 해군이나 영국 해군 수준의 대잠 역량을 갖추고 있었다면 가토급의 손실률은 높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물론 당시의 영국이나 미 해군 수준의 대잠능력을 당시의 가잠함 수준의 잠수함 기술만 가지고 극복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 이라는 점을 고려할 필요는 있다[18].

무엇보다 가토급 잠수함이 가지고 있는 최악의 문제점은 다름아닌 어뢰였다. 이는 가토급만이 가진 문제는 아니고, 미국 잠수함들이 가진 공통적인 문제였으며 잠수함 자체의 기계적 결함이나 성능 부족 등의 문제는 문제같이 보이지 않을 정도라 매우 심각했다.

이 부분은 어뢰 스캔들 항목을 참조하기 바란다.

6 실전

The Grey Wolves Of Pacific
태평양의 회색빛 늑대

총 77척의 가토급 잠수함이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실전 배치되어 주로 태평양 해역에서 활동했다.

6.1 대서양 전투

태평양 전쟁 발발 후, 6척의 가토급 잠수함은 태평양이 아닌 대서양에 파견되어 작전을 수행했다.

이들의 주 임무는 미국 동부 해안에 출몰하는 유보트의 경계였고 횃불 작전에 동원되어 북아프리카 북서쪽 해역이나 비스케이만 일대에서 상륙작전 지원 임무에 투입되었지만 전과 자체는 미미한 편이어서 43년기에 전 함정은 태평양 전선으로 전장을 옮기게 된다.

6.2 태평양전쟁 초반

전쟁 초반부터 1943년 중반까지는 신형 어뢰인 Mark.14의 오작동과 불발, 당시로서는 원할하게 할수 없었던 공격 전술로 전과가 상당히 미미하다 못해 한심했다. 진주만 공습 이후, 전함 전력이 큰 피해를 입었고 즉각적인 보복을 할 수 있는 무기체계는 잠수함이 거의 유일했던 미 해군 입장에서는 매우 답답한 상황.

가토급 72번함 SS-283 티노사(Tinosa), 메어 아일랜드 조선소에서 촬영 - 1942년 8월 7일
72번함 SS-283 티노사(Tinosa) -
로렌스 다스핏 소령이 지휘하는 티노사는 3번째 초계 중인 1943년 7월 24일 트럭섬 인근 해역에서 19,000톤급 일본 유조선 제3 토난 마루를 포착했다. 느리고 호위 전력도 없는데다가 크고 흘수도 깊고 넓직한 유조선은 아주 휼륭한 표적이었지만 근거리로 접근하여 어뢰를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무려 13발이나 발사하여 명중시켰는데도 불구하고 단 한발도 폭발하지 않았으며 나중에 포착한 구축함에게도 어뢰 2발을 명중시켰는데도 2발 모두 불발이 발생하고 말았다. 다스핏 소령은 격노하면서 항해일지에 "No Effect", 즉, 터지지 않았다고 거의 휘갈기듯 기록했고 증거물로서 어뢰 1발만을 남기고 모든 어뢰를 소진 후 모항인 진주만으로 귀환한 뒤 곧바로 록우드 제독에게 항의를 했다.
26번함 SS-237 트리거(Trigger) -
로이 벤슨 소령이 지휘하는 트리거는 1943년 6월 10일 미타케 섬 인근 해역에서 일본 항공모함 히요를 포착하였고 6발의 어뢰를 발사해 전탄 명중시켰으나 단 한발도 폭발하지 않았다. 초계임무 종료 이후 모항인 진주만으로 복귀한 트리거의 함장 로이 벤슨 소령은 당당하게 히요를 격침시켰다고 보고했으나 록우드 제독은 통신 감청 등으로 히요는 격침당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고 히요 격침 보고를 제외했다.

이런 사례들은 상당히 많아 미 해군 잠수함대의 발목을 잡아댔다. 실제로 진주만 기습 이후 2척의 잠수함이 출항해 작전을 개시했는데도 불구하고 1942년까지 얻어낸 전과는 꼴랑 수송선 3척 격침 기록이 전부였을 정도.

하지만 그럼에도 예외는 얼마든지 있어서 활약을 한 잠수함도 있었다.

4번함 SS-215 그라울러(Growler) -
하워드 길모어 소령이 지휘하는 그라울러는 1942년 6월 20일 첫 초계에 나서 7월 5일 새벽 경 키스카 제도 인근 해역에서 제18구축대의 아사시오급 구축함 아라레, 카스미, 카게로급 구축함 시라누이, 카게로와 치토세급 수상기모함 치요다, 특설 수송함 아르헨티나 마루 호를 포착했다.

곧이어 그라울러는 어뢰 공격을 개시, 아라레는 침몰해버렸고 시라누이는 기관실에 정통으로 어뢰를 명중당해 항해불능 상태에 빠지고 함교가 절단되는 큰 피해를 입었으며 카스미는 함수가 절단되고 침수와 화재로 인해 대파되었다.

이 맹공에서 겨우 살아남은 시라누이와 카스미는 완전히 수리하는 데에 거의 1년의 시간을 소모했고 18 구축대의 지휘관은 책임을 물어 할복자살을 했으며 부대는 완전 풍비박산 나서 해체되었다. 이 전투로부터 한달 뒤인 8월 25일 그라울러는 일본 육군 수송선 센요 마루를 침몰시키고 6일 뒤인 8월 31일 수송선 에이후쿠 마루를 격침시키기에 이르렀다.

이후 개량을 거쳐 적절한 신뢰성을 가진 어뢰는 물론이고 독일의 G7e 어뢰에 이은 두 번째의 잠수함 발사 어뢰인 Mark.27 음향유도어뢰를 사용하는 등 그야말로 가공할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6.3 태평양전쟁 중-후반

Hit'em Harder! (더 강하게 몰아붙여라!) - 가토급 잠수함 46번함 SS-257 하더(Harder)의 구호. 함명을 이용한 언어유희.

일본군의 폭뢰공격을 받는 가토급 잠수함 6번함 SS-217 가드피쉬(Guardfish)의 기록화 - 미 해군 기록화가 프레드릭 프리먼 소령 작품

태평양 전쟁 중-후기에 들어서자마자 일본 해군, 특히 수송선단에게 있어 가토급 잠수함은 저승사자나 다름없는 존재였는데, 개량형인 발라오급 잠수함과 더불어 일본 전체 수송선단의 63%에 달하는 숫자의 배들을 침몰시키거나 손상을 입혀 U보트와 마찬가지로 잠수함의 위력을 아주 잘 보여준 예로 꼽힌다.[19] 활동 해역은 주로 필리핀 일대, 북태평양, 남서태평양 해역 거의 전체, 동중국해, 일본 근해와 한반도 주위의 황해, 남해, 동해 등지에서 작전을 수행했으며 평소에는 단함 혼자서 초계 작전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음은 특이 단함 작전 사례.

27번함 SS-238 와후(Wahoo) -
두들리 모튼 소령이 지휘하는 와후는 마지막 순찰 중이었던 1943년 10월경 동해로 이동해 일본과 식민지였던 조선 간의 수송선을 끊을 목적으로 수송선과 정기 여객선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다녔고 끝내 10월 5일 부산으로 향하던 부관여객선 콘론 마루를 침몰시키고 말았다.

이 공격으로 승객 585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고 일본 의회 중의원 두명이 이 배에 탑승했다가 사망하는 등 당시 이 공격은 일본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었고 미국 잠수함에 의한 최초의 여객선 공격사례로서 미국 본토에도 알려지게 되었다. 이 사건 이후 일본은 일시적으로 일본-조선 간의 부관선 운행을 중지시키는등의 해프닝이 벌어졌다.

이전부터 와후는 한반도 주위를 어슬렁대며 적지 않은 전과를 얻어냈고 두들리 모튼 함장은 무전으로 "이제 JAP들은 황해에서 잠수함 때문에 고민할 것"이라는 교신을 보내기도 했다. [20]

31번함 SS-242 블루길(Bluegill)의 뇌격으로 발레라 곶의 암초에 좌초된 일본 육군 유조선 호난 마루. - 1945년 4월 5일 촬영
31번함 SS-242 블루길(Bluegill) -
에릭 발 중령이 지휘하는 블루길은 다섯번째 초계인 1945년 3월 28일경 프랑스-인도차이나 반도의 발레라 곶에서 일본 육군 유조선 호난 마루를 포착, 어뢰공격을 개시해 명중시켰으나 호난 마루의 승무원들은 배를 해안가로 돌진시켜 좌초해버리고 배를 버린 뒤 도주했다. 이후 4월 5일 다시금 좌초된 채 버려진 호난 마루를 발견한 블루길의 승조원들은 일본군이 인양하여 재사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좌초한 호난 마루에 승선한 뒤, 불을 지르고 폭약을 설치해 폭파시켜 호난 마루를 파괴했다.

이후 1943년기부터 U보트와 유사한 늑대 떼 작전을 구사하기도 했는데 미국 해군 잠수함대가 최초로 감행한 울프팩은 1943년 8월 1일, 미드웨이 일대를 바탕으로 가토급 잠수함 14번함 SS-225 세로(Cero)와 24번함 SS-235 샤드(Shad), 거급 잠수함 3번함 SS-208 그레이백(Grayback) 3척으로 기록된다.

주요 목표는 일본의 각 식민지에서 들여오는 자원, 특히 석유를 수송하던 유조선들 및 일본 본토에서 태평양 지역으로 파견되는 병력 수송선들이 주요 타겟이 되었으며 사르고급, 발라오급 등의 주력 잠수함들과의 늑대 떼 작전 등으로 괴멸적인 피해를 입혀 일부 수송선단의 경우 수송작전 와중에 공격을 받아 평균 2000명에서 히-71선단의 예처럼 수송선 및 해군 승무원들 포함 파견 병력의 사망자들만 7천명에서 거의 8천명에 육박하는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사례도 상당히 많았다. 다음은 일본 수송선단 역사상 미국 잠수함들의 늑대 떼 작전중 가장 막심한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되는 히-71선단의 사례.

가토급 잠수함 11번함 SS-222 블루피쉬(Bluefish), 44번함 SS-255 해도(Haddo), 46번함 SS-257 하더(Harder), 58번함 SS-269 래셔(Rasher) -

일본의 히(ヒ)선단은 일본 본토에서부터 동남아시아 지역까지 일본 육군 병력들의 파견과 상륙 및 물자 보급과 동시에 동남아 지역에서 생산되는 석유를 본국으로 수송하는 임무를 맡은 수송선단의 일련 명칭으로서 히-71선단은 1944년 8월 10일 일본 관동군 제26보병사단을 승선시켜 필리핀의 마닐라에 상륙시키기 위해 출항했다. 당시 필리핀에서는 미군의 대대적인 필리핀 탈환을 위한 상륙작전이 벌어지고 있었고 이에 맞서 필리핀에 대한 병력 파견이 절실해졌다.

하지만 항해 8일째인 1944년 8월 18일경 동중국해 인근 해역에 도달한 히-71선단은 가토급 잠수함 블루피쉬, 해도, 하더, 래셔, 레이튼과 발라오급 잠수함 스페이드피쉬, 피쿠다, 레드피쉬 등으로 구성된 총 9척 규모의 미국 잠수함 울프팩 패거리들에게 포착되었고 마닐라에 도착할때까지 히-71 선단은 지옥을 맛보게 된다.

1944년 8월 17일 히-71선단을 최초로 발견한 발라오급 잠수함 레드피쉬는 근 하루동안 이들을 추적하며 적절한 공격위치를 점하기 위해 기동을 시작했고, 보퍼트 풍력 12레벨 수준의 태풍으로 인해 선단의 속력이 느려지던 도중이었던 8월 18일 아침 5시 24분경 유조선 에이요 마루를 향해 어뢰를 발사하여 명중, 손상을 입혔다.

갑작스런 잠수함의 공격에 깜짝 놀란 구축함 아사카제와 유우나기는 긴급히 에이요 마루를 지원했으며 에이요 마루와 아사카제, 유우나기는 선단에서 이탈해 대만의 가오슝으로 이동했으며 히-71선단의 상선과 군함들은 일제히 나뉘어져 일정 거리 유지하에 따로따로 항해를 하기 시작했다. 동시간, 발라오급 잠수함 스페이드피쉬와 피쿠다는 지독한 파도 높이와 제한되는 시야 등의 문제로 히-71선단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헨리 G. 먼슨 소령이 지휘하는 가토급 잠수함 58번함 SS-269 래셔(Rasher)는 히-71선단을 호위하는 항모 타이요에서 파도와 바람이 덜한 틈을 타 출격하여 초계비행을 수행중인 97식 함상공격기 9기를 발견, 근처에 선단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수색을 시작했다.

> "달빛 한점 없는 칠흙같은 밤이며 해상 기상상태가 매우 불량하고 엄청나게 많은 비가 내리고 있음. 판단컨대 야간 공격을 감행하기 가장 이상적인 조건으로 생각됨." - 헨리 G. 먼슨 소령, 래셔의 전투보고서 중

밤 8시 2분경, 래셔는 레이더로 15,000야드 거리에서 13척의 수송선, 6척의 호위함으로 구성된 히-71 수송선단을 포착, 12노트의 속력으로 이동 중인 선단에게 근 2,800야드까지 긴급 부상하여 접근, 많은 비가 쏟아지고 파고가 높아진 밤 9시 18분경 래셔는 후방 7,8번 어뢰 발사관에 충수를 실시하고 발사관을 개방한 후 좌현으로 급선회, 9시 22분경에 9,845톤급의 유조선 테이요 마루를 향해 후방 어뢰발사관에서 어뢰 2발을 발사하여 전탄 명중을 시켰으며 테이요 마루는 수송 중이던 기름이 대폭발을 일으키며 고도 1000야드까지 버섯구름이 피어올랐고 엄청난 화염 때문에 주변이 순식간에 밝아졌으며 일부 선체 파편은 고도 500야드까지 날아오르며 완전히 박살이 난 테이요 마루는 순식간에 가라앉고 말았다. 사망자 99명.

어뢰를 발사한 래셔는 긴급 잠항을 했으며 기습적인 공격에 놀란 일본 해방함들과 구축함들은 래셔가 있을만한 곳에 견제성으로 폭뢰를 마구잡이로 투하하고 기관포와 기관총을 난사하며 대응했지만 래셔는 이를 유유히 회피한 후, 2차 긴급부상하여 밤 11시 10분경 수송선단과의 3,000야드 거리에서 17,537톤급 병력수송선 테이아 마루를 향해 전방 어뢰발사관에서 어뢰 6발을 토해냈다.

곧이어 테이아 마루에 3발의 어뢰가 명중했으며 테이아 마루는 침몰, 승무원 포함 관동군 제26사단 병력 2,665명이 배와 함께 운명을 맞이했다. 이 사망자들 중 일부는 침몰하는 배에서 탈출했음에도 불구하고 험악한 파도와 바람 등으로 인해 익사하거나 표류를 하다 죽어갔으며 우천으로 인해 시야가 많이 제한되어 제대로 구조를 받을 수 없었다.[21]

어뢰 3발을 명중시킨 래셔는 침착하게 급선회하여 11시 14분경 후방 어뢰발사관에서 어뢰 4발을 발사, 3,500야드 거리에 있던 호위 항공모함 타이요에 3발을 명중시켰으며 타이요는 연료 탱크가 유폭을 일으키며 가라앉았으며 승무원 및 항공요원 포함 747명이 전사했다.

래셔는 다시 신속히 잠항하여 어뢰를 재장전하며 다른 선박을 노리던 중, 다른 일본 배들 2척에게서 거대한 물기둥이 일어나고 동시에 해방함 한 척이 긴급히 속도를 올리는 광경을 목격했다.

이 폭발을 일으킨 범인은 찰스 M. 헨더슨 소령이 지휘하는 가토급 잠수함 11번함 SS-222 블루피쉬(Bluefish)였는데, 블루피쉬는 히-71선단에 근접하여 새벽 3시 20분경 어뢰 5발을 발사, 수송선 아와 마루와 급유함 하야스이에 각각 2발을 명중시켰으며 아와 마루는 간신히 침몰을 면했으나 하야스이는 선미부터 잠기기 시작하며 끝내 침몰했다.


가토급 잠수함 11번함 SS-222 블루피쉬(Bluefish)의 잠망경으로 촬영한 침몰해가는 일본 해군 급유함 하야스이 - 1944년 8월 19일 촬영

재장전을 끝낸 래셔는 2,000야드 거리에 있는 화물선 에이신 마루를 향해 전방 어뢰발사관에서 4발의 어뢰를 발사, 그중 3발이 명중하여 에이신 마루는 싣고 있던 탄약들이 일제히 유폭하며 산산조각이 나 침몰했다. 이 폭발의 충격은 실로 어마어마하여 래셔의 승무원들이 폭발의 충격을 직접 몸으로 느꼈을 정도.

다시 우현으로 급선회한 래셔는 후방 어뢰발사관에서 어뢰 2발을 발사해 7,184톤급 무장 병력수송선 노시로 마루에 1발을 명중시켜 손상을 입혔다. 침수로 인해 속력이 5노트까지 떨어진 노시로 마루는 공격을 피하기 위해 끈질기게 도망을 쳤으며 곧이어 해방함 에토로후가 래셔를 추적했지만 래셔는 유유히 도망치고 말았다.

그 시각, 발라오급 잠수함 스페이드피쉬와 레드피쉬 역시 이 난리판국에 뛰어들며 공격을 개시, 스페이드피쉬는 9,589톤급 상륙함 타마츠 마루에 어뢰공격을 가해 격침시켰으며 승무원 포함 제26사단 병력 4,406명에서 4,755명이 눈 깜짝할 새에 증발해버렸다. 다른 잠수함들도 남은 수송선들에 대한 공격을 시도했으나 대부분은 실패했고 어뢰로 인해 손상을 입은 아와 마루와 노시로 마루는 침몰하지 않기 위해 육지로 돌진해 좌초를 시도했으며 다른 상선과 군함들은 생존자들을 구조 후 미국 잠수함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신속하게 남하했다.

하지만 히-71에 대한 공격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히-71선단은 힘겹게 8월 22일경 산 페르난도 해에서 집결하여 24일 마닐라에 도착하는데에 성공했으나 대잠 해방함과 구축함들은 체스터 W. 니미츠 주니어 소령이 지휘하는 가토급 잠수함 44번함 SS-255 해도(Haddo)와 새뮤얼 데이빗 딜레이 소령이 지휘하는 46번함 SS-257 하더(Harder)와 접촉, 교전에 들어갔다.

하지만 하더는 새벽 4시 56분경 침착하게 어뢰를 발사하여 대잠 해방함 마츠와와 히부리, 사도에 어뢰를 명중시켜 대파시켰으며 곧이어 하더는 확인사살을 위해 어뢰를 추가로 발사, 6시 49분경 마츠와를 침몰시켰으며 사도 역시 해도의 확신사살 어뢰공격을 받아 7시 20분경 가라앉고 말았다. 남은 히부리 역시 하더가 마무리를 지어버리며 7시 55분경 격침시키는데에 성공했다.

8월 21일경, 가오슝에서 다른 유조선인 제2 하코 마루와 니요 마루를 호위하던 구축함 아사카제와 유우나기 역시 히-71선단에 합류하기 위해 마닐라로 이동하던 도중인 8월 22일 저녁 2시 44분경 발라오급 잠수함 스페이드피쉬, 피쿠다와 조우했고 스페이드피쉬는 어뢰를 발사하여 10,023톤급 유조선 제2 하코 마루에 큰 손상을 입혔으며 제2 하코 마루는 파살렝 만에 좌초된 후 9월 18일 파도에 의해 손상을 입어 파괴되고 만다.

한편 다른 유조선인 니요 마루를 호위중이던 아사카제는 8월 23일 가토급 잠수함 헤이크, 해도, 하더와 조우하게 되었고 아사카제는 해도가 쏜 어뢰 1발에 맞아 빌빌대던 도중 야밤에 침몰하고 만다. 하지만 다음날인 24일 하더는 대잠 호위함 CD-22의 폭뢰공격으로 손상을 입고 수중에서 부력을 회복하지 못해 침몰, 함장인 새뮤얼 딜레이 소령 포함 승무원 80명이 전사했다. 일본 구축함과 대잠 해방함들의 천적으로 악명을 떨치던 잠수함의 비극적인 최후였다.

다음날인 8월 25일, 구축함 유우나기 역시 해도의 어뢰 공격으로 인해 침몰해버렸으며 겨우 남은 히-71선단은 석유 수송임무에 투입하기 위해 싱가포르를 향해 닻을 올렸으며 9월 1일경 싱가포르에 도착하는데에 성공한다.

이 울프팩 작전으로 미국은 단 1척의 잠수함과 80명의 잠수함 승조원을 잃었지만 일본은 3척의 해방함, 2척의 구축함, 1척의 호위항공모함과 1척의 급유함, 2척의 유조선, 1척의 화물선, 1척의 상륙함, 1척의 병력수송선과 8천여명의 승무원 및 육군 병력, 막대한 물자와 유류를 홀랑 말아먹으며 수송작전은 사실상의 대 실패로 끝나버렸고 단순 사망자 교환비만 100:1이라는 무시무시한 기록을 남겼다.

이렇게 수송 도중에 공격을 받아 제대로 싸워보기도 전에 부대 건재조차도 유지 못하는 일본군 부대들은 안 그래도 미군의 화력에 압도되는 마당에 병력조차 적어 찬란하게 옥쇄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지상군의 작전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는 셈.

뉴기니 근처 해역에서 일본 수송선 제3 오키노마야 마루를 덱건 사격으로 침몰시키는 네임쉽 SS-212 가토(Gato)의 실화를 바탕으로 그린 그림. - 1944년 3월 12일, 01°15'S, 133°20'E

거기에 미친 것 같은 무장능력을 바탕으로 웬만한 소형 선박들은 덱건이나 기관총만으로도 상대할 지경이었으며 가끔 일본 수송선들에 대해서도 덱건을 쏴대는 등의 공격을 가하기도 했다. 특히 잠수함 잡겠다고 멋모르고 달려드는 배들이 주로 당했다.

수송선단을 노리는 통상파괴전뿐만 아니라 일본 해군 군함들에 대한 공격도 서슴없었으며 이에 상당한 전과를 얻어냈다. 그 중 일본 해군의 주력 항공모함 중 4척 격침이 가토급 잠수함의 작품. 당장 태평양 전쟁 쪽으로 관심 있는 사람들 중 알 사람은 알 만한 유명한 일본 군함들이 가토급 잠수함에게 사냥당했다. 좀 더 하자면, 전함 빼고 안 가라앉혀본 군함이 없다. 한 술 더 뜨면, 안 건드려본 배가 없다.

단함 순찰이나 늑대 떼 작전중이 아니더라도, 함대전에 참가하여 정찰 및 적 함대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을 가한 사례도 다수인데, 가토급 잠수함 4번함 알바코어와 33번함 카발라는 필리핀 해 해전 중 일본 해군의 정규 항공모함 두 척을 격침시키는 엄청난 전과를 기록했다. 가뜩이나 공중전에서 압도적인 스코어를 기록하며 우주 너머로 날아가고 있던 일본군에게 있어 지옥과도 같았던 순간을 장식해냈다.

필리핀 해 해전 중 SS-218 알바코어의 잠망경을 통해 촬영한 일본 항공모함 다이호의 사진. - 1944년 6월 19일
4번함 SS-218 알바코어(Albacore) -

필리핀 해 해전 도중 알바코어는 필리핀 해 해전이 한창인 1944년 6월 15일 일본 함대를 감시하는 4척의 잠수함 중 한 척으로서 파견되어 근 50km의 해역을 할당받아 감시임무를 수행하였고 1944년 6월 19일 작전 도중 일본 함재기들의 활동이 활발한 해역을 확인, 추적 결과 일본의 장갑 항공모함 다이호를 발견하였다.

함장인 제임스 블렌차드 중령은 다이호에서부터 4천 8백미터까지 접근, 어뢰를 발사하려고 했으나 TDC가 갑자기 고장을 일으켜 하는 수 없이 잠망경을 보며 순전한 감만으로 조준, 어뢰 6발을 발사했다. 이중 4발은 빗나갔고 2발은 정확하게 다이호를 향하고 있었으나 다이호에서 막 이륙하던 고마쓰 상사의 제로센이 이 어뢰의 항적을 발견, 자발적으로 어뢰를 막기위해 기체를 어뢰와 충돌시켰다.

기적적으로 고마쓰 상사의 희생 덕에 어뢰 1발은 막을수 있었으나 결국 한발의 어뢰가 명중, 항공기 엘리베이터가 파손되고 연료 탱크가 손상을 입어 함재기용 항공유와 다이호의 연료용 석유가 새어나오기 시작했다.[22] 처음에는 그렇게까지 대수롭지는 않은 피해였다고 여겨졌으나, 이 새어나온 항공유와 연료유의 휘발성분은 기화되어 항공기 격납고 내로 흘러들어오기 시작했고 다이호의 보수반은 이를 인식해 급히 환기장비를 가동하였다. 그러나 좀처럼 유증기는 빠져나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으며 결국 버티지 못한 보수반은 함내 전체에 유증기를 퍼뜨린 후 함의 전 환풍장비를 다 동원해 내보내는 바보짓을 저질렀다. 이 유증기는 배 곳곳에 퍼지게 되었고 일시적으로 발생한 스파크로 인해 인화, 대폭발을 일으키며 오후 5시 28분경 다이호는 처참하게 침몰하게 된다. 일본 해군 항공모함들 중 최고의 중장갑을 자랑하는 최신 항공모함의 비참한 최후였다.

제임스 블렌차드 중령은 처음에는 다이호에 대한 격침을 확신하지 못해 "손상 예상됨"이라고 항해일지에 기록했으나, 필리핀 해 해전이 종료된 이후 일본군 포로의 증언으로 다이호가 침몰했음을 확인한 미 해군은 알바코어의 항해일지를 주목, 알바코어가 다이호를 격침시켰음을 확인했다. 제임스 블렌차드 중령은 이 거대한 배를 박살낸 전과를 인정받아서 뒤늦었지만 성대한 축하식과 함께 해군 수훈십자장을 수여받게 된다.
33번함 SS-244 카발라(Cavalla) -

허만 코슬러 소령이 지휘하는 카발라는 첫 초계임무부터 대전과를 기록했다. 필리핀 해 해전 중인 1944년 6월 19일 카발라는 초계임무 도중 항공모함 쇼카쿠를 포착했다. 하지만 코슬러 소령은 이것이 일본 항공모함인지에 대한 확신을 할 수 없어 최대한 근접하여 관측을 한 뒤, 잠망경을 통해 일장기가 걸려있음을 확인한 뒤 어뢰 6발을 발사했으나 카발라의 잠망경을 발견한 일본 구축함 우라카제의 견시에 발각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카발라는 우라카제와 거의 충돌하기 일보직전까지 배짱으로 버티며 어뢰를 끝까지 조준하고 있었다. 5번째 어뢰가 발사된 뒤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던 카발라는 결국 긴급 잠항을 했고 마지막 1발은 긴급잠항으로 인해 함수가 기울어진 상태에서 발사되어 빗나갈 수밖에 없었다.

카발라가 배짱으로 발사한 어뢰 중 약 3발에서 4발의 어뢰가 순식간에 쇼카쿠에게 명중되었고 탄약 유폭 등으로 화재가 발생하였으며 쇼카쿠의 보수반의 노력 덕에 사태가 진정되는 듯 보였으나 전기계통이 마비되어 함을 살릴 수 없었고 결국 쇼가쿠는 침몰하고 말았다.

동시에 카발라도 우라카제의 폭뢰공격에 시달리게 되었고 시험잠항심도인 90미터를 넘어 120미터까지 잠항을 하며 함수를 살짝 든 상태의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하는 동시에 소음과 공기방울이 생기지 않는 한도 내에서 속력을 내며 질기게 버텼고 경미한 침수 피해만 입은 채 카발라는 성공적으로 탈출하게 된다.

허만 코슬러 소령은 자신이 행한 공격으로 일본 항공모함을 격침시켰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었고 곧 미 해군 정보부에서 카발라가 쇼카쿠를 격침시켰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또한 레이테 만 해전의 전초전에서 가토급 잠수함 두 척의 합동 공격으로 일본 수상함 전력의 핵심이었던 중순양함에 대한 격침/피해 전과를 얻어내기도 했다.

16번함 SS-227 다터(Darter), 36번함 SS-247 데이스(Dace) -

데이빗 맥클린툭 중령이 지휘하는 다터와 블레이든 클라겟 소령이 지휘하는 데이스 2척은 1944년 10월 20일 초계임무를 할당받아 작전 도중인 10월 23일 밤 0시 16분경 팔라완 섬 인근에서 레이테 만으로 향하는 구리다 함대를 포착, 이 두 척의 잠수함은 추적을 개시했고 해상박명초 시간대인 5시경, 일본 함대의 바로 앞에서 긴급 부상한 다터는 첫번째 표적으로 구리다 함대의 기함타카오급 중순양함 아타고를 향해 어뢰 6발을 발사하였고 그중 4발이 아타고에 명중했으며 아타고는 순식간에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워낙 순식간에 가라앉아버려 당시 아타고에 승선해있던 함대 지휘관 구리다 제독은 구명보트에 타지도 못하고 한동안 물 위에서 표류를 하고 있었을 지경.

이후 다터는 신속하게 급변침, 후방 어뢰발사관에서 어뢰 4발을 다음 목표인 중순양함 타카오를 향해 발사하였다. 이 중 2발이 명중하면서 타카오는 심각한 손상을 입어 전열에서 이탈해 브루나이로 향하게 된다.

곧이어 싸움판에 뛰어든 데이스는 아침 6시경 중순양함 마야를 향해 어뢰 4발을 발사하였고 전탄 명중을 시켜 마야 역시 아타고와 함께 바닷속으로 침몰하고 말았다. 이때 마야에 탑승했다가 전사한 승무원 중에는 러일전쟁의 영웅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의 손자도 있었다.

이후 다터는 남은 일본 군함들을 추격하던 도중 24일 새벽 팔라완 섬 인근의 봄베이 암초에 걸려 좌초되었고 함장 포함 전 승조원은 데이스에게 무사히 구조되어 탈출할 수 있었다. 레이테 만 해전이 시작되기 직전에 벌어진 일이었고 어쩌면 일본 해군의 패배를 암시하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23]

좌초한 다터와 승조원들을 구조 중인 데이스를 그린 그림. - 1944년 10월 24일

좌초된 채 방치된 다터. - 1952년경 촬영

가토급 잠수함의 공격은 이런 주력함들에 대한 공격 외에도 잠수함의 천적이라는 대잠 해방함들과 구축함에게도 가해졌는데, 이는 일본 해군의 낙후된 대잠 전력과 대잠작전에 대한 낮은 인식, 갈수록 정상적인 표적을 찾기힘들어 뭐라도 잡고보자는 미 해군 잠수함 함장 및 승조원들의 욕심까지 겹쳐 잠수함에게 역으로 당해버리는 구축함과 해방함이라는 기괴한 기록을 만들고 말았다. 실제로 가토급 잠수함과 일본 구축함, 대잠 해방함과의 교환비는 가토급 잠수함이 우위에 있는 상황이었다.

46번함 SS-257 하더(Harder) -

새뮤얼 딜레이 소령이 지휘하는 하더는 5번째 초계가 자신의 악명을 떨치게 되는 최고의 기간중 하나였다.

5월 26일 모항인 프레멘틀에서 출항한 하더는 6월 6일 일본군의 수송선단을 포착했으나, 수송선 대신 구축함인 미나즈키를 노렸고 곧 미나즈키는 하더의 어뢰공격으로 침몰하게 된다. 다음날 같은 임무를 수행중이던 구축함 하야나미 역시 가라앉혀버리고 이틀 뒤인 9일 대잠작전을 수행중이던 구축함 타니카제를 침몰시키기에 이르렀다. 6번째 초계 중이었던 22일에는 히-71선단을 호위하던 대잠 해방함 마츠와와 히부리와의 교전에서도 당당하게 이 2척의 대잠 해방함을 격침시켜버렸다. 이 활약으로 인해 셀레베스 해 일대에 전개되어있던 일본군의 대잠초계전력과 호위전력에 심각한 구멍이 뚫리고 말았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가토급은 이런 군함에 대한 공격으로 구축함급 이상의 함정에 대한 전과만 총 22척에 달한다.

함대전에서도 정찰 및 지원 임무를 톡톡히 해냈는데, 필리핀 해 해전에서는 곳곳에 매복해 있던 가토급 잠수함들 때문에 거의 실시간으로 일본 함대의 위치가 보고되는 수준이었고 심지어 일부 가토급들은 기습적인 게릴라식 공격을 가해 일본 함대의 신경을 박박 긁었다. 이하는 상세.

12번함 SS-223 본피쉬(Bonefish), 43번함 SS- 254 거나드(Gurnard), 49번함 SS-260 라폰(Rapon), 57번함 SS-268 퍼퍼(Puffer), 61번함 SS-271 레이(Ray) -

1944년 5월 11일, 미 해군은 암호 해독을 통해 일본 해군 제1 기동함대의 움직임을 포착하여 제7함대 소속 잠수함들과 제17 기동부대 소속의 잠수함 33척을 타위타위 일대 해역에 파견하여 일본 함대의 동향을 감시하게 했으며 49번함 라폰이 일본 함대와의 첫 접촉을 시작했다.

여기에 파견된 가토급 잠수함들 중 한 척인 라폰은 5월 13일 일본 해군의 함대를 발견, 공격을 시도하기 위해 접근했으나 실패하고 대신 이 접촉사실을 무전으로 보고했다.

그 다음 타자는 12번함 본피쉬였고 비록 라폰이 접촉한 주력 함대는 아니었으나 5월 14일 수송선단을 포착, 어뢰공격을 실시하였고 구축함 이나즈마가 본피쉬가 쏜 어뢰에 피격, 침몰했다.

그 시간, 61번함 레이가 일본 함대를 포착하여 추격을 개시하였고 다음날인 5월 15일, 본피쉬는 라폰이 접촉했던 일본 함대를 발견하는데에 성공했고 보고를 한 후 공격을 시도하려 했으나 어뢰 문제로 인해 공격을 하지 못하고 통신 주파수가 발각되어 일본 구축함들의 추격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레이는 같은 함대를 포착하여 공격을 개시하려 했으나 어뢰 유효사정거리 내로 진입을 하는 데에 실패했다.

18일, 거나드는 일본 함대에서 떨어져나온 전함과 구축함으로 구성된 일본 함대를 포착하여 공격을 시도했지만 이 역시도 어뢰가 빗나가면서 실패하게 된다. 이후 22일, 본피쉬와 임무교대를 위해 달려온 퍼퍼 역시 라폰이 최초로 접촉한 함대와 조우, 어뢰공격을 개시했으나 모두 빗나가고 말았다.

비록 이들이 실시한 공격은 대부분 실패했지만 잊을만 하면 기습적으로 공격을 개시해서 신경을 박박 긁었고 사실상 실시간으로 일본 함대의 위치를 상부에 보고를 해 버린 것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 잠수함의 활약으로 당시 일본 제1 기동함대의 함재기 조종사 훈련이 물 건너가버렸다는 것.[24][25]

또한, 태평양에 있는 각종 섬에 대한 지상군 및 게릴라들에 대한 물자 지원, 불시착하거나 추락한 항공기에서 탈출한 조종사들을 구조하는 임무 등에서도 맹활약했다. 꼴랑 조종사나 항공승무원 구조하는게 뭐 대수냐 하겠지만, 교육하는 데에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귀중한 인력인 파일럿을 구조 잘 하는것만으로도 인원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방법중 하나다. 대표적인 파일럿 구조 사례로 전 미국 대통령인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가 19번함 핀백(Finback)에게 구조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19번함 SS-230 핀백(Finback)에게 구조되고 있는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중위. - 1944년 9월 2일 촬영
19번함 SS-230 핀백(Finback) -

1944년 9월 2일, 당시 항공모함 샌 재신토의 VT-51(제 51뇌격대)소속 TBF 어벤저 뇌격기 조종사였던 부시 중위는 오가사와라 제도 폭격작전에 투입되었는데 치치지마 8천피트 상공에서 폭탄을 투하하던 도중 일본군의 대공포에 정통으로 맞아 버렸고 부시의 어벤저 뇌격기 "바버라"는 추락하게 되었다.

그러나 어벤져 뇌격기가 추락하기 전에 부시 중위는 간신히 낙하산을 펼쳐서 탈출할 수 있었고 구명정은 상당히 먼 곳에 있었지만 미군기가 강하하고 상승하는 행동을 반복하면서 정확한 구명정의 위치를 낙하산으로 탈출한 자들에게 알려주었고 덕분에 부시 중위는 간신히 헤엄쳐서 구명정에 도착할 수 있었다. 부시 중위는 약 2~3시간 정도 치치시마 앞바다에서 표류하다가 그 후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서 구명정이 치치시마 쪽으로 흘러가던 도중 19번함 핀백이 부시 중위를 구조했다.[26]

또한 침몰하는 일본군 선박에서 탈출한 연합군 포로의 구출작전에도 동원되었으며 조난자가 발생하거나 연합군 소속 함정이 피해를 입어 좌초하거나 침몰을 한 경우에도 구조작전에 투입되어 활약했다. 아래는 13번함 SS-224 코드(Cod)의 네덜란드 해군 잠수함 O-19 승무원들의 구조 동영상.

13번함 SS-224 코드(Cod) -

에드윈 M. 웨스트브룩 소령이 지휘하는 코드는 1945년 7월 8일, 난샤 제도 인근의 얕은 여울에 좌초한 네덜란드 해군 잠수함 O-19[27]의 구조신호를 받고 동년 동월 10일, 해당 해역에 도착하여 O-19의 예인 작업을 실시했으나 예인 와이어가 끊어지면서 구난작업은 실패했다. 결국 O-19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는데, 네덜란드 해군 잠수함 승무원 전원을 퇴함시켜 코드에 옮겨 태웠으며 해당 잠수함은 일본군이 인양해 사용할 수 없도록 함내에 폭약을 설치한 뒤 5인치 덱건과 어뢰 사격으로 파괴시켰다.

일부 배들은 덱건이나 로켓탄 등의 무장으로 일본군의 주요 거점에 포격을 가하는 등 테러 공격을 가하기도 했으며 일부 가토급 잠수함은 아예 일본 본토에 상륙해서 폭탄 공격을 하는 등의 특수전 임무도 기꺼이 수행해 내 잠수함의 범용성을 뽐내고 특수전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에도 공헌했다. 다음은 실제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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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토급 잠수함 9번함 SS-220 바브(Barb)의 12번째 초계 기록. 그야말로 깽판이 따로 없다.
9번함 SS-220 바브(Barb) -

유진 플럭키 소령이 지휘하는 바브는 1945년 6월 12번째 순찰기에 잠수함을 이용한 포격과 로켓 공격, 특수전을 실행해 성과를 거둔 예로 꼽힌다.

1945년 7월 2일 해상박명초 시간대인 오전 5시경 사할린 카이효 섬의 서쪽 해상에서 부상, 오전 10시부터 카이효 섬에 있던 등대, 물자창고, 레이더 기지, 감시초소를 5인치 덱건과 40밀리 보포스 등으로 포격을 하여 단 하나도 남김없이 파괴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3일뒤인 7월 5일에는 사할린 남쪽의 아니바 만에 잠입하여 정박중이던 수송선 제11 삿포로마루를 격침시키고 22일 야간에는 승조원 8명을 고무보트로 상륙시켜 철로에 폭약을 설치한 후, 기차가 접근해 올때 폭파시켜버리는 미해군 역사상 유례없는 작전을 감행했으며 이 사보타주로 약 150여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측되며 16량으로 편성된 기차를 탈선시켜 파괴하는데에 성공했다.

25일 자정에는 시로토루 마을에 로켓탄 사격을 퍼부었으며 해가 뜨자마자 인근의 츠리에 마을 항구 앞에서 부상하여 오전동안 항구 내의 선박들과 건물들에 대한 로켓 사격을 감행해 어선 4척과 연락선 1척을 가라앉히며 항구 시설과 마을에 피해를 입혔다. 이 전공들로 말미암아 함장 유진 플럭키는 의회 명예훈장을 수여받았다.

전쟁 말기에는 더 가라앉힐 상대가 없어 목재 선박들이나 범선, 어선들에 대한 공격도 가할 정도였으며 이들을 침몰시키는데에 쓰는 어뢰가 아깝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심지어 어뢰가 아깝다는 이유로 부상해서 덱건이나 보포스포, 오리콘 기관포, 기관총 등으로 직접 공격을 해버리는 사례도 늘어났고 소형선박의 경우 이조차도 아깝다며 들이받아버려 침몰시키는 일까지 벌어졌다.

거기에 일본의 거의 전 해역에 기뢰를 도배해 보급선을 원천 봉쇄하는 데에도 큰 공헌을 했으며 그나마도 유일하게 남아있던 조선/만주국-일본 간의 수송 라인을 끊어버렸는데, 일본은 이때의 뼈아픈 경험 때문에 미국 잠수함과 기뢰에 그야말로 학을 떼다시피 했다. 45년도 일본의 거의 모든 해안에는 물에 퉁퉁 불은 시체가 떠밀려왔다는 괴담을 만들고 근 최근까지도 이 기뢰들이 발견될 정도이며 현 해상자위대가 가공할 대잠수함 전력과 기뢰전 능력을 갖추게 하는 원인 중 하나를 제공하기도 했다.[28]

반면, 이렇다 할 활약도 하지 못하고 가라앉아버린 가토급 잠수함도 있으며 코비나, 도라도, 골렛 3척이다.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가토급은 총 20척이 일본군의 공격이나 사고로 침몰했으며 살아남은 가토급 잠수함들은 한창 일본을 굶겨죽이던 도중 종전을 맞게 된다.

7 전후 활동과 GUPPY 개량

2차대전 종전 후 대다수의 가토급들은 퇴역 후 훈련함이나 사격연습용 표적함으로 임무가 전환되거나 해체되었다. 일부 함선은 실험 잠수함으로 개장되어 미사일 등의 신기술 테스트베드가 되기도 했으며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냉전기에 접어들자 일부 가토급 잠수함들은 구피(GUPPY - Greater Underwater Propulsion Power Program)프로젝트에 따라 개량되고 기관총 및 덱건이 철거되는 등 수중저항을 일으킬 만한 요소들을 제거한 뒤 미사일 발사 잠수함, 급유 잠수함 등으로 개조되었다.

이 구피 프로젝트는 2차 세계대전 말기에 나포된 독일 XXI형 유보트 U-2513, U-3008의 테스트 결과에 영향을 받아 수중항해속도 강화, 잠항시간 증대, 배터리 지속시간 증대, 스노클 설치, 사격통제 시스템의 개량을 위한 프로젝트로 1947년부터 총 3척의 가토급 잠수함이 해당 프로젝트에 동원되어 개량되었고 그 테스트 결과를 바탕으로 총 17척이 개량을 받았다.

구피1은 이들 21형 U보트의 실험결과를 바탕으로 개량된 프로토타입으로서 아직 잠망경 스노클 마스트의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아 레이더만 수납이 되었으며 축전기 셀을 일렉트릭 보트 모델로 개량되며 축전기는 80기가 증가했다. 스노클 관련으로 무게 증가가 없었기 때문에 속력 자체는 여타 구피 개장형들보다 가장 빨랐으며 구피2형은 함수 아래에 독일 U보트의 영향을 많이 받은 말발굽 배열식 어레이 소나가 추가되었으며 축전지와 스노클이 훨씬 증설되며 별도의 음탐실이 설치된다. 구피1A형의 경우 이탈리아 등의 타국에 수출하기 위한 염가형으로서 개장되었으나 여타 구피 개량형들이 하도 비싸다보니 미 해군에서도 즐겨 사용하게된다. 구피3은 수동 측거 소나를 장착하고 함교의 구조물을 늘리며 소나의 성능을 개량해 70년대 당시의 전황에 맞는 작전능력을 얻는 것이 목표였다.

2차대전 후 수중저항을 줄인 유선형 함교를 설치한 33번함 AGSS-244 카발라(Cavalla). 주로 이런 함교들을 '세일'형 함교라고 부른다. - 1953년 9월 1일

기존의 요철형 함교는 철거되고 수중저항을 줄인 세일(Sail)형 함교가 새로 설치되었는데, 스노클 및 레이더, 잠망경 등의 장비들을 함교 내에 완전 수납을 할수 있게 설계한 것이 특징이다. 기본적으로 후방 마스트 수납부가 존재하는것이 특징이나 일렉트릭 보트사의 개량형은 후방이 각이 져 있으며 해군 공창 개량형은 대체적으로 유선형으로 동글동글하게 다듬어져 있다.

SSM-N-8 레굴러스 순항미사일을 발사하는 70번함 SSG-281 터니(Tunny). - 1958년 경

1척의 잠수함은 레굴러스 미사일 발사 플랫폼으로 개장되었는데, 레굴러스 순항미사일은 함교 후방에 미사일 보관 캐니스터와 발사기가 설치되어 운영되었다. 이후 이 캐니스터는 UDT나 네이비 씰 등의 특수부대들이 해안침투작전을 수행하거나 수송작전을 수행할 때에도 용이하게 사용된다.

냉전기에 접어들며 가토급 잠수함들에는 임무가 구분되는 형태로 개장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헌터-킬러, 즉 현대의 의미로 치면 공격 잠수함의 임무를 띈 잠수함들이 등장하게 된다. 원인은 구 소련이 나치 독일의 XXI형 유보트를 역설계하여 만들어낸 위스키급 잠수함의 존재 때문이었는데, 전쟁 발발 시 이들 잠수함을 조기에 발견, 격멸하기 위한 임무가 부여되어 수중잠항능력과 소나의 성능을 강화시킨 7척의 가토급들을 투입하기 시작한다. 헌터 킬러 잠수함들은 기존처럼 청음기를 돌리는 것이 아닌 원통형 소나를 장착했는데, 이는 독일 U보트가 본의 아니게 미국에게 준 선물.

주요 개량점은 선수부에 소나를 설치함과 동시에 전방 어뢰발사관 2문과 전방 디젤엔진 철거 등이 있다. 하지만 텐치급의 후계함인 바라쿠다급 디젤잠수함의 등장으로 인해 제법 빠르게 퇴역하게 되나 이들에게 가해진 개량들은 이후 잠수함 설계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항공 통제 전자장비와 레이더를 장착한 SSR-272 레드핀(Redfin). - 1953~1957년경 촬영

또한 레이더 피켓 임무를 수행하게 되는 잠수함들도 등장. 그 근원은 2차세계대전기 레이더 피켓을 이용한 조기경보체계의 유용함에 눈을 뜨게 된 것이 그 이유고 이걸 잠수함에도 적용을 해보자는 생각에서 나오게 된 것. 이에따라 6척의 가토급들이 개조되었으며 초기에는 원/상사 침실을 개조하여 CIC를 임의로 설치했으며 두번째 개장때는 SV-2 레이더와 SR-2 레이더를 장착하고 후방 어뢰실 앞의 배터리실과 창고에 CIC를 설치, 후기에는 아예 1,2번 엔진을 재거해버리고 거기에 CIC를 설치했다. 하지만 미 해군 내에서의 운용 평가결과는 매우 좋지 않았는데, 엔진 제거의 영향 때문에 후기 개량형들의 속도가 너무 느려 함대를 따라갈 수 없었던 것. 이 때문에 1958년기에 항공 통제장비들을 철거하게 된다.

유류 수송을 위해서 개장된 가토급도 있으며 목적은 상륙지점 등의 거점에 유류 수송 및 화물 수송을 하기 위한 것으로 1척이 개조되었다. 주로 외부 선체에 연료탱크를 설치한것이 개량의 특이점. 하지만 이 역시 1회정도 테스트 후 바로 포기하게 되는데, 첫 실험에서 타 선박에 대한 급유작업이 12시간이 걸려버려 미 해군에서는 이건 안되겠다 싶어 한방에 포기하고 만다.

어찌보면 돈많은 미 해군의 삽질처럼 보이지만, 구피 개량형 가토급들은 본격적인 원자력 잠수함의 등장 전까지 공백을 메워줄 땜빵의 성향이 강했으며 남아도는 함정들을 이용해 각종 실험적인 요소들을 마구마구 집어넣어 테스트를 해보고 실험결과를 반영해 차후 미 해군 잠수함의 기술 발전 및 전략/전술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당장 캐니스터 사용 수송임무는 UDT나 SEAL등의 특수부대를 수중 잠입시키는 데에 잘만 사용되는 중이고 원통형 소나나 순항미사일 발사 개념은 굳이 더 설명이 필요할까?

일부 잠수함은 베트남 전쟁에 참여하기도 했는데, 30번함 SSK-241 배셔(Bashaw)는 1964년 베트남 전쟁에 참여하여 총 3회의 순찰임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가토급 잠수함 중 일부 함선들은 해외에 팔려가거나 공여되어 제2의 함생을 살았는데, 그리스 해군, 이탈리아 해군, 일본 해상자위대, 브라질 해군, 터키 해군에 도입되었다.

잭과 라폰은 각각 암피르피티, 포세이돈으로 개명되어 그리스 해군에 도입되었으며 바브는 이탈리아 해군에 양도되어 엔리코 타쫄리로 개명 후 활동했으며 데이스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로 개명되었다. 또한 밍고는 일본 해상자위대에 도입되어 쿠로시오로 개명되어 활동했고 무스컬런지와 패들은 브라질 해군에 도입, 휴마니타와 리아츄엘로로 개명. 귀타로와 해머헤드는 터키 해군 소속으로 프리베제와 세르베로 개명되어 제2의 함생을 살다 퇴역, 해체되거나 표적함으로서 함생을 마쳤다.

현재 보존되어있는 가토급 잠수함은 총 6척으로, 코드, 드럼, 실버사이즈, 카발라, 코비아, 크로커이다.

8 유명한 자매함


4번함 SS-215 그라울러(Growler)
1941년 11월 2일 진수, 1942년 3월 20일 실전배치. 총 격침수 10척. 태평양전쟁 초창기부터 일본 해군과 치열한 혈투를 벌이며 폭뢰공격과 충각공격 등을 당하면서도 꿋꿋하게 싸워 전공을 세운, 파란만장한 함생을 살아간 잠수함. 결국 1944년 11월 8일 일본 시라츠유급 구축함 시구레, 대잠 해방함 치부리와 제2해방함 CD-19의 폭뢰공격으로 침몰했다. 하지만 침몰하기 전까지 근처 잠수함들에게 전장 상황과 표적을 알려주고[29] 가라앉아버려 침몰하면서까지 일본 해군을 괴롭힌 잠수함. 이보다 1년 전에는 초대 함장 하워드 길모어 소령이 배터리 충전 중에 기습을 당해 부상을 입었는데 자신을 함내로 옮기다가 잠항이 늦어진다는 우려에 자신을 밖에 내버려두고 잠항할 것을 명령하고 끝내 실종되었던 일이 있다. 그 희생정신을 기려 명예 훈장을 추서받았다. 현재 뉴욕시 허드슨 강쪽 선착장에 USS Intrepid 항공모함 박물관과 함께 전시되어있는 SSG-577 그라울러는 바로 이 함의 이름을 따서 냉전시대에 운용된 그레이백급 순양미사일 잠수함이다.


7번함 SS-218 알바코어(Albacore)
1942년 2월 17일 진수 후 1942년 6월 1일 실전 배치. 총 격침수 10척. 필리핀 해 해전에서 항공모함 다이호를 침몰시킨 주인공. 이 외에도 텐류급 경순양함 텐류, 후부키급 구축함 사자나미아사시오급 구축함 오오시오를 침몰시켜 유명해진 잠수함. 이후 1944년 11월 7일 훗카이도 인근 해안에서 기뢰에 의해 침몰한다. 그런데 당시 근방에 일본군 기뢰부설함이 활동중이었기에 이 함선을 노리다 가라앉은 것이라는 말도 있다.


9번함 SS-220 바브(Barb)
1942년 2월 4일 진수, 1942년 7월 8일 실전 배치. 총 20척 격침의 상위권에 속하는 에이스이자 미국 잠수함들 중 최고의 임팩트 파이터. 남들은 전쟁하는데 자기 혼자서 액션영화 찍은 잠수함. 특이사항으로 경항공모함 운요를 격침시킨 전과가 있으며 일본군 수송선 4척을 하루만에 격침시키고 추가로 1척을 손상을 입혀 가장 빠른 시간내에 최대의 피해를 입히기도 했으며 기뢰와 대잠 장애물이 쫙 깔린 항구에 잡입해서 수송선 1척을 격침시키고 돌아오거나 한바탕 수송선단을 헤집어놓고 최고속도를 넘은 23노트의 속력으로 부상한 상태로 도망치는 등의 일화를 만들었으며 사할린 섬 주둔 일본군에게 덱건과 로켓탄 사격을 가하거나 앞서 전술한 일본 본토 상륙후 특수전 임무를 수행한 주인공. 함장인 유진 B. 플럭키 소령 이하 승조원들이 일본 본토에 상륙해 철도에 폭탄을 설치하고 수송을 하고 있던 열차를 터트려 파괴한 전과가 그것. 1946년 퇴역후 1954년에 이탈리아 해군에 양도되어 엔리코 타쫄리로 개명 후 이탈리아 해군에서 제2의 함생을 살다 1972년 퇴역 후 해체.[30]


25번함 SS-236 실버사이즈(Silversides)
1941년 8월 26일 진수, 1941년 12월 15일 실전 배치. 가토급들 중 1위에 빛나는 27척의 격침수량을 기록한 톱 에이스. 1946년 4월 17일 퇴역후 현재 미시간 주의 머스키건 실버사이즈 잠수함 박물관에서 박물관 함선으로 보존 전시 중. 주소 Beach Lake Road (1346 Bluff St.)


33번함 SS-244 카발라(Cavalla)
1943년 11월 14일 진수, 1944년 2월 29일 실전 배치. 비록 4척을 격침시켜 소소해보이지만 그 격침전과 중 한 척이 일본 해군 역전의 항공모함 쇼카쿠다. 필리핀 해 해전 참고. 구축함 시모즈키 격침 전과도 같이 가지고 있다. 1946년 퇴역 후 현재 텍사스 주 갤버스턴의 씨울프 공원에서 박물관 함선으로 보존 처리중. 관심있는 위키러들은 가볼수 있으면 가 보자. 주소 Pelican Island via Seawolf Parkway (51st St.) 성인기준 관람료 4달러.


38번함 SS-249 플래셔(Flasher)
1943년 6월 20일 진수, 1943년 9월 25일 실전 배치. 총 격침톤수 10만 6667톤 기록으로 연합국 잠수함 중 단연 1위의 격침기록 소유 잠수함.[31] 1946년 3월 16일 예비역 전환 후 1959년 6월 1일 제적되어 1963년 6월 8일 해체되었고 현재 함교만이 코네티컷 주의 그로튼에서 기념물로 전시 중.


46번함 SS-257 하더(Harder)
1942년 8월 19일 진수, 1942년 12월 2일 실전 배치. 이 잠수함도 총 격침수 18척의 당당한 에이스. 특이사항으로 이카즈치, 하야나미, 미나즈키, 타니카제, 마츠와 같은 구축함을 많이 사냥한 구축함 킬러로 악명을 떨치던 잠수함. 구축함뿐만 아니라 대잠 해방함 등도 어줍잖게 덤비다가 이 잠수함에게 격침당하거나 관광당했고 하도 심하게 당해서 한때 일본군의 대잠초계전력에 큰 구멍이 생겼을 정도로 맹활약한 잠수함. 안타깝게도 일본 수송선단 히-71을 공격하기 위해 다른 잠수함들과 울프팩 작전을 하던 도중 1944년 8월 24일 남중국해에서 일본 제2해방함(호위 대잠함) CD-22의 폭뢰 공격으로 수중에서 부력을 회복하지 못해 침몰, 함장 포함 승무원 전원이 전사했다.


58번함 SS-269 래셔(Rasher)
1942년 12월 20일 진수, 1943년 6월 8일 실전 배치. 총 18척 격침에 격침톤수 10만 231톤의 무시무시한 기록을 달성했으며 경항공모함 다이요의 최후를 장식한 잠수함이기도 하다. 1946년 퇴역 후 1971년 스크랩 처리.

9 자매함 목록 및 전과

가토급 잠수함/자매함 목록 및 전과 참고.

10 여담

웬만한 미국 잠수함들도 거의 그랬지만, 가토급 잠수함 역시도 아이스크림 제조기가 함 내에 있었다. 이는 잠수함대 사령관 록우드 제독의 특별조치였는데, 열악한 잠수함 근무환경을 참작하여 조금이라도 더 좋은 거주성과 근무환경을 잠수함 승조원들에게 제공하기 위한 조치였다. 심지어 이 아이스크림 제조기가 없거나 고장난 배들에게는 출항금지명령까지 내릴 정도.

퇴역 후 다른 해군 전투함과 마찬가지로 각종 신무기의 테스트 및 훈련용 표적함으로 쓰이다가 최종적으로 6척이 남아 미국 전역에 전시되어 있다. 목록은 다음과 같다.

  • SS-244 USS 카발라(Cavalla): 텍사스 갈베스톤(Galveston)의 시울프 공원(Seawolf Park)[32]에 전시되어 있다.
  • SS-245 USS 코비아(Cobia): 위스콘신 해양 박물관(Wisconsin Maritime Museum)에 전시되어 있다.
  • SS-228 USS 드럼(Drum)[33]: 앨라배마 모빌(Mobile)에 있는, 전함 기념 공원(Battleship Memorial Park)[34]에 전시되어 있다. 원래는 정박된 형태로 전시되어 있었는데 1998년 허리케인 때문에 손상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수리 후 지상으로 끌어올려서 전시되고 있다.
  • SS-224 USS 코드(Cod): 오하이오 클리블랜드(Cleveland)의 North Coast Harbor에 전시되어 있다. 해안에 정박된 형태로 전시되어 있고, 관람을 위한 아무런 개조 없이 원형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이 때문에 관람을 하려면 관람객이 해치로 들어가서 사다리를 오르락 내리락 해야 한다.
  • SS-246 USS 크로커(Croaker): 뉴욕 주 버팔로에 있는 Buffalo and Erie County Naval & Military Park에 전시되어 있다.
  • SS-236 USS 실버사이즈(Silversides): 미시간 Muskegon에 있는 Great Lakes Naval Memorial & Museum에 전시되어 있다.

상당한 활약을 한 잠수함답게 미 의회 명예 훈장을 수여받은 잠수함장이 3명이나 된다.

4번함 SS-215 그라울러(Growler) - 하워드 월터 길모어 소령

1902년 9월 29일 앨라배마 주 셀튼 출생. 1920년 11월 15일 미 해군에서 수병으로 입대. 이후 1922년 장교로 임관하여 뉴멕시코급 전함 BB-41 미시시피(Mississippi)에서 근무한 뒤 1930년 잠수함 교육을 이수받은 후 포퍼즈급 잠수함 SS-174 샤크(Shark)에서 첫 잠수함 근무를 한 이후 1942년 3월 20일 가토급 잠수함 4번함 SS-215 그라울러(Growler)의 초대 함장으로 부임, 전설을 만들고 그라울러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 1943년 2월 7일 새벽 배터리 충전중 일본군 급양함 하야사키의 기습공격을 받아 장교 1명과 수병 1명이 사망하고 함장인 길모어 소령 본인도 부상을 당했으나 자신의 부상때문에 긴급잠항이 늦어져 침몰할 것이란 판단 하에 부상당한 자신을 견시대에 내버려두고 잠수하라고 명령("Take Her Down!"), 스스로 희생해서 자신의 잠수함인 그라울러와 승조원들을 생환할 수 있게 한 희생정신을 기려 사후 추서. 향년 40세.

9번함 SS-220 바브(Barb) - 유진 베넷 '럭키' 플럭키 소령

1913년 10월 5일 워싱턴 D.C. 출생. 1931년 애나폴리스 입학 후 장교로 임관한 뒤 네바다급 전함 BB-36 네바다(Nevada)와 클렘슨급 구축함 DD-223 맥코믹(McCormick)에서 근무한 뒤 S급 잠수함 S-42에서 첫 잠수함 근무를 시작으로 바라쿠다급 잠수함 SS-165 보니타(Bonita)를 거쳐 애나폴리스로 다시 돌아와 엔지니어링 교육 이수 후 1944년 4월 25일 가토급 잠수함 9번함 SS-220 바브(Barb)의 4대 함장으로 부임하여 바브의 최고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전후 발라오급 잠수함 SS-352 하프빅(Harfbeak), 플루톤급 잠수모함 AS-12 스페리의 함장을 역임한 후 제7 잠수함전대 사령관, 합동 사령부, 조사 위원, 태평양 잠수함대 사령관, 해군 정보부, 포르투갈 해군 고문관 등을 역임한 후 1972년 퇴역, 자서전을 집필한 후 여생을 살다 93세의 나이로 2007년 7월 28일 사망.


- 1945년 7월 22일 사할린 섬에 상륙하여 철도와 기차를 폭파시키는, 해군 역사상 유례없는 대담한 작전을 수행해 성공시켜 수여받음.

46번함 SS-257 하더(Harder) - 새뮤얼 데이빗 딜레이 소령

1906년 9월 13일 텍사스 주 댈러스 출생. 1930년 애나폴리스 입학 후 네바다급 전함 BB-36 네바다(Nevada)에서 첫 근무 후 윌크스급 구축함 DD-113 랫번(Rathburne)에서 근무한 뒤 S급 잠수함 S-34에서 첫 잠수함 커리어를 쌓으며 S-24, 나왈급 잠수함 SS-168 노틸러스(Nautilus), 바라쿠다급 잠수함 SS-164 배스(Bass)를 거쳐 해군 항공대 배치 후, 클렘슨급 구축함 DD-245 루벤 제임스(Reuben James)로 배치, S급 잠수함 S-20을 거쳐 1942년 12월 2일 가토급 잠수함 46번함 SS-257 하더(Harder)의 초대함장으로 부임하여 구축함 킬러로서 악명을 떨치게 된다.[35] 이후 1944년 8월 24일 울프팩 작전 도중 일본군의 폭뢰공격으로 자신의 잠수함인 하더와 함께 가라앉으며 생을 마감했다. 향년 37세.


- 1944년 5월 26일부터 7월 3일까지 일본군의 구축함들을 사냥하여 일본군의 마리아나 일대의 작전 계획을 틀어지게 만든 것과 대잠 호위전력에 큰 피해를 입힌 전과를 올려 수여받음.

27번함 SS-238 와후(Wahoo)는 학살 혐의[36]가 있는 것으로도 알려져있다.

두들리 모튼 중령이 지휘하는 와후는 1월 26일 수송선 부요 마루 및 기타 2척의 선박을 어뢰공격으로 격침시켰는데 구명보트를 타고 탈출한 승무원들을 덱건과 기관총을 동원해 전원 살해한 것. 당시 부함장이던 리처드 H. 오케인 대위는 유조선에서 탈출한 승무원들에게 정선명령을 내렸지만 이에 따르지 않아 발포한 것이라고 했지만 이 일로 와후는 전공을 세워도 명예훈장만은 주어질 기회가 없었으나 오케인 대위는 이후 명예 훈장을 수여받게 된다.

학살당한 사람들 중에는 당시 부요 마루[37]에 타고있던 1,126명 의 승선인원 중 87명의 일본 승무원 외에 인도군 제16 펀잡 연대 2대대 소속의 포로 195명도 있었고 이들 역시 전원 사망하고 말았다.

오케인 대위의 정선명령을 따르지 않아 총격을 명령한 것이 사실이라 해도 보트에 타고있던 사람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던 점에서 이는 명백히 살해의도가 있었다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있으며 또한 사격명령을 내린 사람이 리처드 오케인 대위가 아닌 함장 두들리 모튼 소령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 일은 현재까지도 정확한 당시 일을 알수가 없는데, 와후는 1943년 10월 11일 일본군의 대잠 작전에 의해 침몰해 함장 포함 승무원 전원이 사망했기에 이후 당사자들에게 정확한 증언을 들을 수가 없었으며 주범으로 추정되는 부함장인 리처드 오케인 대위는 1943년 7월 경, 발라오급 잠수함 탱(Tang)의 함장으로 부임한 이후 이 일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았다.

건조 과정에서 일화가 있는데, 태평양전쟁이 발발하고 예산 집행 이후 미 해군에서는 일렉트릭 보트 사와 메어 아일랜드, 포츠머스 해군 조선소에서 대규모의 가토급 잠수함 건조발주를 실시했으나, 만들어야 되는 배는 많은데 이미 대규모 조선소들은 문자그대로 포화 상태였기 때문에 해군 당국은 상당한 골머리를 앓게 된다.

이때 한 젊은 해군 장교가 "우리 삼촌이 오대호에 대규모 조선소를 운영하고 있는데 거기를 활용을 해 달라"고 해군 함선국에 신고를 했다. 처음에는 농담처럼 받아들여졌으나 실제로 해군에서 인원을 파견해 본 결과, 협의 끝에 매우 빠른 시간 내에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진행되어 곧바로 강재 절단 및 가토급 잠수함의 건조에 돌입하게 되는데 이 조선소가 바로 매니토웍 조선소(Manitowoc Shipbuilding Company)였다.[38] 이 조선소에서만 총 14척의 가토급 잠수함이 건조되었으며, 완공된 잠수함들은 세인트 로렌스 강을 따라 대서양으로 향하고 다시 태평양함대에 배속이 되었다. 당시에는 매니토웍 조선소에서는 군함, 특히 잠수함을 건조해본 사례가 없었지만 일렉트릭 보트 사의 설계를 이용하였고 곧 경험 문제는 금방 해결된다. 조선소 측도 일거리가 생기고 해군 측에서도 함선의 수요량과 수리소요를 충족한 윈윈의 사례.

11 평가

가토급 잠수함을 포함한 미 해군 잠수함들이 이런 빛나는 활약을 하게 된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일단 해군의 높으신 분들이 잠수함대에 대한 관심이 지극했다.

당장 체스터 니미츠 제독부터 일찍이 잠수함에 관심이 많았다. 물론 이는 니미츠 제독의 아들인 체스터 니미츠 주니어가 가토급 잠수함 44번함 해도(Haddo)의 함장을 맡았던 것도 있지만 자신도 잠수함대 건설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잠수함에 디젤엔진을 적용시키기도 하고 잠수함 승무원으로 근무하기도 하면서 니미츠는 다른 연합군 장성들과는 달리 2차 대전 발발 직전에도 잠수함에 대해 그다지 나쁘지 않은 생각을 가졌으며, 태평양 함대 사령관 취임식 역시 사르고급 잠수함인 그레일링의 갑판에서 이루어졌다.

니미츠 본인이 잠수함 부대 출신이라 원하기도 했지만, 니미츠의 잠수함대 애호와는 별개로 취임식을 거행할 만한 대형 수상함정이 전무했다는 사정도 있고, 무엇보다도 취임식을 치른 진주만의 잠수함 도크는 연료 저장시설과 함께 진주만에서 타격을 입지 않은 한손에 꼽히는 해군 시설 중 하나였다. 물론 잠수함 부대의 사기진작 목적도 있었다. 참고로 취임식을 치뤘던 진주만 잠수함 도크는 니미츠가 초급장교 시절에 건설 감독을 맡았던 시설이다.

이런 바탕에 잠수함대 사령관으로 찰스 록우드라는 희대의 잠수함 덕후까지 등장하면서 아이스크림 제조기 외에도 작전 중에도 충분히 신선한 식재료를 보급해주었으며 작전을 마치고 돌아온 잠수함 승조원들에게 상당한 휴가와 숙박을 할 호텔, 고급 휴양지를 제공하며 좋은 대우를 해 주었다. 가토급 잠수함을 포함한 미국 잠수함대는 이런 빠방한 뒷배경을 바탕으로 좋은 대우를 받으며 작전을 할 수 있었다.

또한 잠수함의 사용 용도에 제한을 두지 않았는데 통상파괴전을 주 목적으로 하던 독일의 U보트나 잠수함 자체를 어뢰정의 파생형 취급을 하던 일본 해군 잠수함들과는 다르게 가토급 잠수함들은 기존의 고정관념을 버려 상부의 큰 제한 없이 마음껏 작전을 수행할 수 있었다. 즉, 발상부터가 남달랐다는 이야기. 이를 바탕으로 추락하거나 불시착한 파일럿이나 침몰한 선박의 승조원 구조부터 각 섬의 게릴라들에 대한 물자 지원, 스파이 잠입, 해역 감시 등의 임무에 적시적소에 배치되어 매우 효율적인 작전이 가능했다. 거기에 함장들과 승조원들의 적극성까지 더해져 타국 잠수함들로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지상 포격지원이나 포로 구출작전, 사보타주 등의 대담한 작전들이 수행되었고 이 역시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일본군의 통신을 감청하면서 조기에 적절한 해역에 배치되어 있었던 것도 이유가 크다. 록우드 제독은 통신 감청이 잠수함 작전의 성공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러한 정보가 없었다면 보다 많은 잠수함이 필요했을 것이며 넓은 태평양 지역을 커버하지 못했을 것이고 적의 기뢰원에 대한 정보가 완벽했기 때문에 적이 부설한 기뢰원은 이걸 부설한 일본군보다 빠르게 숙지했으며 일본 군함은 좁은 수로를 항해하지 않으면 안되었기에 포착과 공격이 쉬웠다고 발언했다. 실제로도 미 해군이 2차대전기 투입했던 총 298척의 잠수함들은 태평양 전역의 규모상으로도, 미 해군이라는 집단의 규모를 고려하더라도 보유척수가 매우 적은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위에서 설명했듯이 통신 감청 및 암호 해독으로 일본 해군과 수송선단의 이동 루트 등을 제법 정확히 판단하고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며, 이에 따라 적의 규모에 맞게 적절하게 잠수함들을 투입해 교전을 벌일 수 있었기에 가토급 잠수함을 포함한 미 해군 잠수함대는 타국 잠수함들에 비해 상당히 여유있는 작전을 펼칠 수 있었다.

일본 해군의 대잠 역량이 한심했던 것도 한술 더 떴는데, 일찍이 설명했듯 가토급 잠수함은 그리 깊이 잠항할 수 있는 잠수함도 아니었거니와 잠항해봐야 들어갈 곳이 뻔했다는 단점이 명확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주력 소나인 93식 소나는 황기 2493년, 즉 1933년도에 실전배치된 소나였고 당시 기준으로서는 상당히 양호한 성능을 가진 소나였으나 이미 태평양전쟁 발발 당시에는 오래된 구식 소나였기에 정숙성에서 많은 개선이 이루어진 미 해군 잠수함들을 정확하게 포착할 수 없었고, 개량형인 3식 소나 역시도 성능 자체는 양호했으나 실전배치는 1943년이었기에 개발이 너무 늦었던데다 극히 일부 함선들에나 탑재를 했을 정도였다.

거기에 일본의 주요 대잠작전을 담당하게 될 구축함들 중 일부 함정들은 소나조차도 탑재하질 못했고 미 잠수함의 잠망경을 포착할 경우 이를 들이받으려 돌진하거나 예상 위치에 폭뢰를 투하하는 것 외에는 크게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고, 이 돌진 와중에 어뢰를 맞으면서 피해가 발생한 사례가 다수였고 심지어 아예 포착조차도 못하고 피해를 입은 사례가 많았다.

항공전력 역시도 마찬가지였는데, 가토급 잠수함은 못해도 1기의 레이더, 평균 2기의 레이더와 레이더 역탐지를 위한 역탐을 장착했기 때문에 대잠초계 임무를 수행중인 항공기들을 선제포착하고 미리 잠수를 해버리는 경우가 많았기에 항공전력 역시도 미 해군 잠수함대에 그리 큰 피해를 주지는 못했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가토급 잠수함은 통상파괴전을 집중적으로 수행하던 U보트들보다도 더 다양한 임무를 수행했고 우수한 범용성과 높은 전투력으로 일본군에게 다대한 피해를 입혔으며, 일본을 굶겨 끝끝내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는 데에 큰 공을 세웠다.

무엇보다, 현대 미 해군 잠수함들이 하는 임무의 기반을 가토급 잠수함이 상당수 다져놓은지라 가토급 잠수함에 대한 평가는 현재 매우 드높으며 이들이 이룩한 전략/전술, 기술적 성과는 고평가가 아깝지 않다.

12 등장 매체

  • 제2차 세계대전 해상전 게임 네이비필드에서 미 해군 잠수함 트리의 5차 잠수함으로 등장. 우월한 어뢰발사관을 이용한 전후방 화력구사가 가능하나 미국 잠수함트리 특유의 어뢰불발율은 그저 안습. 하지만 이전 잠수함들보다 확실히 살만해져 숨통이 트인다는게 평.
  • 제2차 세계대전 배경의 해상전 슈팅/전략 게임 배틀스테이션 시리즈의 두번째 작품인 배틀스테이션 퍼시픽에서 등장. 우월한 어뢰 화력을 발휘해 기본 함종인 나왈급 잠수함의 싸다구를 후린다.
  • 잠수함 시뮬레이션의 대부 '사일런트 헌터' 시리즈의 4번째 작품인 '울브즈 오브 더 퍼시픽'에서도 등장. 겁나게 세다. 살몬급이나 탬버급이랑은 비교자체를 불허하는 강력한 무장과 풍부한 연료, 배터리, 산소량과 더불어 수상레이더의 특권 덕분에 천국을 맛볼 수가 있다.
  • 스티븐 시걸 주연의 영화 언더 시즈에서 미주리의 핵탄두를 빼돌리기 위해 스트라닉스의 부하들이 타고 오는 잠수함으로 등장. 인공기가 그려져 있는데, 북한의 소행으로 꾸미기 위한 속셈. 결국 주인공인 케이스 라이백과 동료들이 미주리의 3번 16인치 주포 사격을 가해 이 잠수함을 가라앉혀버린다. 출연한 잠수함은 17번함 SS-228 드럼(Drum).
  • 잠수함 공포영화 빌로우(Below)에서 주인공 잠수함이자 귀신들린 잠수함 타이거 샤크(Tiger Shark)로도 등장한다. 해당 출연 잠수함은 25번함 SS-236 실버사이즈(Silversides).
  • 모바일 게임 전함소녀에서 알바코어가 5성급 잠수함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게임 특성상 잠수함은 잘 쓰이지 않아 관상용으로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 알바코어는 다이호를 어뢰로 유폭사 시킨거 때문에 암살자로 묘사되기도 한다.
  • 모바일 게임 워쉽배틀:2차세계대전에서 성능이 괜찮은 잠수함으로 나온다.

13 참고

[1]
[2]
[3]
[4]

[5]
  1. 일본인 성씨 중에 가토가 있다. 유명인으로는 가토 기요마사... 다만 이쪽은 로마자로 쓰면 Gato가 아니라 Kato이다.
  2. 이 오해는 Gato를 가토로 번역해 놓은 탓도 있다. 정확한 미국식 발음은 '게이토'로 가토가 아니다.
  3. 미군 잠수함에는 바다생물들의 이름이 많이 붙는다. 유명한 노틸러스함도 앵무조개라는 뜻. 근래의 시울프급도 마찬가지.
  4. 다만 실제 승조원들은 오물배출 작업을 극히 싫어했는데, 오물을 배출할 경우 잠수함 내에 똥냄새가 진동을 하기 때문이었다.
  5. 대표적인 꼼수로, 함교에서 견시수와 당직사관이 철수하고 함 내로 들어갈때 일일히 사다리 밟아서 내려가는것이 아닌 해치 입구에 있는 로프만 잡고 해치 안으로 뛰어내리거나, 해치를 다 닫기도 전에 충수를 실시하고, 남아도는 잉여 병력들을 함수 방향으로 뛰어가게 하거나 해치를 그냥 닫아만 둔 상태에서 잠수를 해버리는 것 등이 있다. 물론 저런 긴급잠항 훈련 도중 다친 사례도 제법 되었고, 보통 당시 잠수함들의 해치는 2가지의 잠금장치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충수가 진행되면서 잠수를 시작하게 되면 해치에 묶여 있는 로프를 잡아당겨서 해치를 대충 닫아둔다. 이럴 경우 1차 잠금장치가 잠기는 소리를 내면서 해치가 닫히는데, 이상태에서는 완전히 폐쇄가 되질 않기에 잠수가 완료되면 해수가 줄줄 새어나오게 된다. 이 상태에서 승조원들이 2차 잠금 핸들을 돌려서 확실하게 폐쇄를 해주면서 긴급잠항이 완료된다. 이런 다소 무식하기까지한 훈련들은 각국 해군에서 자주 시행했던 훈련들이라 크게 새로울 것은 없는 것. 여담으로 긴급잠항 시 어떻게 뛰어내리는지는 영화 "패티코트 대작전"의 후반부에 아주 잘 나와있다. 함장이 로프를 잡고 뛰어내리는 동시에 해치를 닫고 엉덩방아를 찧는 모습을 볼 수 있다.
  6. 일례로, U보트의 경우 전방 잠항타가 흘수선하에 있어서 보이질 않는 문제와 더불어 폴딩이 불가능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실제로도 전방 잠항타의 파손 사례가 매우 많았고 일본 역시 미국과 비슷한 개념으로 아예 잠항타를 외부선체 안으로 완전히 밀어넣는 구조를 채택했다.
  7. 크리스마스 트리 라는 명칭이 붙은 이유는 빨간불, 녹색불이 들어오는 것이 마치 크리스마스 트리를 연상케 한다고 해서 붙은 명칭이다.
  8. 원리는 간단한데, 해치나 밸브에 스위치를 심어두는 것이다. 해치나 밸브 등이 닫히면 전류가 통해서 스위치가 작동하여 녹등이 켜지고, 개방될 경우 전류가 차단되면서 적등이 켜지는 것이다.
  9. 흔히 하는 착각으로 사람의 음성이 적함의 소나에도 잡혀서 들킬수도 있다는 착각을 자주 하는데, 선체가 소음을 1차적으로 걸러내기에 안들린다. 하지만 아군 음탐사들에게 소음으로 방해를 줄 여지가 많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잠수함 내에서 큰소리를 내는건 그리 좋은 행위는 아니다.
  10. 아래로 가서 이 어뢰의 심각성을 직접 보기 싫으신 분들을 위해 요약해서 설명하면 배를 잡으라고 만들어진 어뢰가 배보다 훨씬 아래를 지나가버리며, 도리어 부메랑마냥 자기를 발사한 배를 때리기도 한다. 자세한 내용은 어뢰 스캔들 문서로 가서 보면 나온다.
  11. 물론 준비탄 말고도 M1 톰슨 기관단총 등의 소화기들을 넣어놓는 경우도 많았다.
  12. 잠망경 심도까지 잠수 기준으로 독일 잠수함 중 1,200톤급이 약 45초, 1,600톤급이 약 60초.
  13. 독일 잠수함대의 문제점은 1차대전 당시의 유럽 근해에서의 잠수함전을 치뤘던 경험을 바탕으로 소형 잠수함 위주로 함대를 구성했다는 것인데 이러한 유럽권역 위주의 잠수함대의 구성은 전쟁이 장기화되고 대양작전능력이 필요하게 되자 바로 곤경에 처하게 된다. 당장 미국 동부 근해까지 작전반경을 확보할 수 있는 U보드는 IX급에 한정되 있었고 중부대서양에서의 작전 조차도 버거운 나머지 보급전용 잠수함에 의지해야 했던 상황이었다.
  14. 물론 소련이나 일본의 사정보단 훨씬 낫다. 소련의 데카브리스트급 잠수함이나 프라브다급 잠수함, 카츄샤급 잠수함, 일본의 일부 순잠형, 해대형의 경우 실제로 작전요구성능대로 잠수를 했다가 응결수가 맺어서 떨어지는줄 알았는데 이 응결수(물론 응결수가 아니라 해수다.)에서 짠맛이 난다던가, 심하면 접합부에서 누수가 관찰되고 압력선체 강판이 이탈되는 사고가 벌어지고 용접 불량 등으로 인해서 용접선이 수압 때문에 누락이 되어버리거나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리벳이 뜯겨져나가는 등의 문제가 생긴 것인데, 일본과 소련에서 이런 사고가 자주 발생한 이유는 용접 기술 부족의 원인이 크다.
  15. 원인은 앞서 말했듯이 공기 순환 벤트가 작살나버리고 부상 이후 디젤엔진을 돌려야 하는것 때문에 예열중인 상태인데다 각종 펌프들도 돌아가고, 전원변환기도 돌아가는 등 워낙 돌아가는게 많은데다 압력선체의 손상으로 인해 압력차로 온도가 올라갔으며 침수로 인한 압력 상승에 따른 함내 공기의 단열압축 현상 때문에 함내온도가 극심하게 치솟은것으로 추정된다.
  16. 이 설계는 굳이 미국 잠수함뿐만 아니라 일본 잠수함이나 소련 잠수함에서도 자주 볼수 있는데, 일본 역시도 미국과 같은 생각을 하고 이 설계를 적용했었고 소련의 경우에는 "페이웨어 없어도 파도 좀 맞아주고 말지" 라는 말이 아무래도 안 통했기에 꽤 많은 소련 잠수함들이 페이웨어를 설치했다.
  17. 이 실험결과는 전후 미 해군에서 노획한 일본 잠수함에 대한 시험운항 결과이다. 다만 센토쿠급이 긴급잠항 60초에 순잠 을형역시도 최대한 단축할 경우 37초까지도 가능했다.
  18. 실제로도 독일의 잠수함 개발 방향은 단순히 잠항심도나 잠항속도를 빠르게 하는 데 있지 않았고 스노클이나 발터기관, 수중항주 위주의 선체 등 가잠함이라는 제약을 극복하는 데 집중되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19. 이때 일본군 잠수함들은 대본영이 제시한 어뢰 쿼터 때문에 연합군 전투함 때려잡으려다가 망하고 있었다.
  20. 문제는 이 교신인데, 이 과도한 자신감은 모튼 소령과 와후의 승조원 전원의 목숨을 앗아가고 말았다. 와후의 동해상 작전 전개로 인해 2척의 선박을 손실하고 국회의원 2명이 사망한 사건이 터지자 일본군은 저 교신내용을 감청하고 위치를 파악한 다음 1943년 10월 10일경 일본 본토 소우야 해협에서 와후를 찾아내 대대적인 대잠작전을 펼치게 되는데, 일본 해군의 대잠함들과 오오미나토 항공대는 근 16시간동안 맹추격을 하며 106발의 폭뢰와 폭탄을 던져 와후를 침몰시키고 말았다. 직접적인 침몰 원인은 함교에 항공폭탄이 정확히 명중한 것으로 추정. 당시 미 해군 잠수함대(COMSUBPAC)에선 적지않은 충격을 받았고 와후가 저런 최후를 맞이한 원인을 조사하기 시작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아군의 지원을 받을수가 없을 정도의 일본의 안방이었던 일본 근해나 한반도 일대에서 설치고 다닌건 전략적으로 봤을때도 결코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고 생각했으며 상대적으로 동남아시아-일본 본토와 비교했을때 물자 운송의 중요성이 더 높았던 것도 아니었기에 결국 거기까지 들어갈 필요가 없다 라는 판단하에 1945년 6월까지 미 해군 잠수함대는 동해까지 잠수함을 투입하지 않았다. 또한 일본 본토랑 조선에서 작전하고 있는 잠수함이 평문으로 저따위의 교신이나 보내고 있는것도 어찌보면 한심하지만 일본군의 도청 위협에 대해서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단독 작전시 통신은 필요한것이 아니면 자제하고 한다 하더라도 통신 중계 등등의 각종 코렁코렁한 꼼수들을 동원해 최대한 위치가 발각되는 것을 억제하려 노력하고, 보고는 복귀후 돌아와서 보고서로 작성해서 보고할것을 지시하게 되었다.
  21. 당시 래셔의 전투보고서에 따르면 어뢰 명중확인 후 테이아 마루에서 화염과 연기, 다수의 약한 불빛들을 잠망경으로 포착했다고 기록했는데 이 불빛들은 구명정의 불빛으로 추정된다.
  22. 이 기름들이 정제가 제대로 된 기름이라면 가솔린인 항공유는 몰라도 중유인 선박용 연료유는 불이 안붙거나, 적어도 늦게 붙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당시 일본 해군이 연료로 사용하던 타라칸 유전의 원유가 별다른 정제 없이도 불이 잘 붙었다는 거. 정유시설이 부족하던 일본 해군은 옳다꾸나 하고 이 원유를 거의 정제하지도 않고 그대로 연료로 썼고, 당연히 이 기름에는 가스 및 가솔린 등 휘발성분이 대량으로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1차적으로 함재기용 연료유인 휘발유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의 기세로 퍼져서 기화하고 있었다.
  23. 여담으로 좌초한 다터는 본디 승무원들이 폭약으로 폭파시키려 했으나 실패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데이스의 처분사격과 일본군 항공기들의 공격으로 파괴되었고 근 최근까지 그 지점에 잔해가 남아있었다.
  24. 이 감시망을 구성하기 직전 일본 해군 역시 잠수함으로 감시망을 구성해 미국 함대를 포착하고자 했으나 오히려 엄청난 손실을 입었으며 필리핀 해 해전 내내 일본 잠수함들이 힘을 못 쓰던 것을 생각해보면 상당히 선방을 한 셈. 당시 일본군 잠수함들은 일정 해역에 산개선을 편성해 잠수함들을 1열 종대로 쭈욱 늘려놓는 방법을 선호했는데, 이는 적 함대를 상대할 때에 잠수함 전력을 함대 공격에 집중하기 위한 선택이었으나 암호가 뚫리고 잠수함 한척의 위치가 파악되면 다른 잠수함들의 위치까지 손쉽게 발각당하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이후 일본군은 이 문제를 개선한답시고 산개면 전술을 세우게 되는데 당시 일본 잠수함 함장들의 평은 "산개선이나 산개면이나 그게 그거"였다고 회고했다.
  25. 일본 해군이 왜 항공대 조종사 훈련을 하려고 했는지도 중요한데, 필리핀 해 해전 직전까지의 미드웨이 해전, 과달카날 전투를 이은 라바울 항공전 등을 거치면서 베테랑 조종사들이 거의 갈려 나가서다. 결국 항공모함 항공대 경험이 있는 수병들을 다 긁어모아서 중대장급의 계급까지 주고 들어가야 했는데 이들 역시 필리핀 해 해전에서 갈려나간다. 결국 일본 해군의 배태랑 조종사들은 필리핀 해 해전이라는 한 번의 전투로 거의 몰살당한 것.
  26. 그때 다른 파일럿들은 끔찍한 일을 겪고 말았다. 이 일로 인해 부시는 공적으로는 몰라도 사적으로는 일본을 굉장히 증오했다.
  27. 이 잠수함은 1936년경 건조된 잠수함으로서 21형 유보트보다 훨씬 먼저 스노클을 장착한 잠수함이었는데, 이 배는 좌초되기 전까지 총 6척의 일본 선박을 격침시키기도 했다.
  28. 사실 일본이 호되게 당한 적이 있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아무래도 현재 해상자위대가 미태평양함대의 보조함대 역할을 하기 때문인 것이 더 타당한 이유이다.
  29. 이 교신을 바탕으로 발라오급 잠수함 SS-365 하드헤드가 표적인 특무수송선 만에이 마루를 격침시킨다.
  30. 해체 소식을 뒤늦게 들은 유진 플럭키 제독과 바브의 승조원들은 '해체된다는 소리를 들었다면 돈을 투자해서라도 사왔을 것이다' 라면서 안타까움을 표했다고 한다.
  31. 영국 해군의 1위는 U급 잠수함 10번함 HMS 업홀더(Upholder)의 9만 3천 31톤, 소련 해군의 1위는 S급 잠수함 13번함 S-13의 4만 4천 138톤이다.
  32. Sargo급 잠수함인 USS Seawolf (SS-197)도 전시되어 있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현존하는 시울프급과는 관계 없다.
  33. 2차 세계대전 때 미군이 만든 해상 요새인 드럼 요새가 군함과 흡사하게 생겨서 USS Drum이라는 농담이 있었는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34. 메인 전시물이 BB-60 앨라배마함이라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35. 후부키급 구축함 이카즈치호를 격침시킨뒤 올린 보고에서 Expended four torpedoes and one Jap destroyer!(어뢰 4발과 쪽발이 구축함 한척을 소모했습니다!)라는 보고를 올린것으로도 유명하다.
  36. 사실 이런 구명정에 탑승하고 있거나 표류하고 있는 일본군에 대한 공격은 자주 있는 일이었다고 잠수함대 사령관인 록우드 제독이 회고하기도 했다. 참고.
  37. 당시 이런 포로수송을 담당하던 일본 포로수송선에 대해 연합군은 지옥선(Hell Ship)이라고 불렀다. 왜인지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38. 실제로 매니토웍 조선소의 대표이사가 그 해군 장교의 진짜 삼촌이었다. 또한 매니토웍 조선소는 현재까지도 미국에서 알아주는 조선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