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덴바움 왕조/역대 황제

1 개요

은하영웅전설골덴바움 왕조 은하제국 역대 황제들에 관한 설명을 담은 목록.

몇몇 황제의 일화는 역사상의 실존 인물에서 모티브를 따온 듯하다.

2 특이사항

은하영웅전설 소설 외전 2권 <별을 부수는 자>에서 최초로 공개되었는데, 본편에서 언급된 선대 황제들과 비교할 경우 약간의 괴리가 있다. 작가 다나카 요시키가 외전 2권 부분에서 리스트를 작성하다가 본편에서 언급한 걸 잊은 것으로 추정된다(...).

  • 루트비히 3세 - 본편에서는 카타리네 켓헨 폰 페크니츠는 선제 루트비히 3세의 증손녀라는 언급이 있지만, 정작 외전 2권의 내용에서는 루트비히라는 이름은 3세는커녕 1명도 없다. 더 나중에 나온 애니판에서는 오토프리트 5세로 수정됐다.
  • 게오르크 2세 - 알프레드 폰 란즈베르크 백작의 5대 전 선조가 당시 황제 게오르크 2세의 명을 받고 비밀 통로를 만들었다고 언급되었으나 정작 역대 황제 목록에는 게오르크란 이름조차 없다. 다만 시기적으로 120여년 전후가 되므로, 실제로는 만프레트 1세에서 빌헬름 2세 치세 사이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이제 황자를 잃어버리는 것도 말이 된다

그리고 본편에서도 언급된 일이지만, 신기하게도 막장 황제가 출현한 다음 대에는 바로 명군이나 상식이 있는 황제가 즉위해서 이전 황제의 악행을 수습하는 일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현실세계에서는 막장 황제 다음에도 막장 황제가 즉위하는 바람에 국가를 말아먹는 일이 다수 발생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진짜로 행운이라고 볼 수준이다. 그래서 황제의 권위와 제국 정부의 통치력이 최악 수준으로 떨어지는 일이 드물었고, 민중의 대대적인 봉기가 발생하기 직전에 악정을 철폐하여 민심을 다스리는 과정으로 진행하는 오뚜기 같은 일이 벌어진다. 그렇기에 은하제국은 수백 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수많은 위기를 겪었으나 국가 자체가 붕괴되는 극단적인 상황까지는 치닫지 않았다.

그 외에 선대 황제와 동일한 이름으로 즉위한 황제가 없으면 1세를 붙이지 않는다. 실제 외전 2권에서 프리드리히 4세 황제 재위시절 과거 황제 계보도가 소개될 때 32대 황제의 경우 "에르빈 요제프"로만 기재되어 있었다. 하지만 프리드리히 4세를 이은 인물이 에르빈 요제프 2세로 불렸기 때문에 훗날 기록에서 에르빈 요제프 1세로 수정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 원칙이 100% 지켜진건 아니다. 작가도 실수를 한다[1] 루돌프 대제의 경우엔 루돌프 1세라고 기록되었는데 역시 루돌프 2세라는 후속 황제가 없다(...). 이건 마지막 황제인 카타리네 켓헨 1세도 마찬가지. 수미상관하네요 굳이 합리화 하자면, 로엔그람 왕조가 '은하제국'이라는 국가 체계와 '은하제국 황제'라는 지위를 이어받은 것이므로 로엔그람 왕조에서 세대수를 리셋하지 않고 골덴바움 왕조에 연계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실제로 유럽 국가에서 왕조가 교체되어도 국가가 동일하면 왕명 뒤에 붙는 세대수는 그냥 가산한다. 즉, 로엔그람 왕조에 루돌프 2세, 카타리네 켓헨 2세가 존재하면 이런 호칭이 등장하는 것이 가능하다. 악당과 허수아비가 쓴 이름을 이어받을 바보가 있을까... 억지네

다른 해석으로는 보통 국왕이나 황제의 명칭은 군주 본인의 고유 특권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자기가 그 이름을 처음 쓴 군주라도 일부러 1세를 붙이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요한 바오로 1세후안 카를로스 1세. 이 경우 루돌프는 후계자들이 자기 이름을 대대손손까진 아니라도 이어받길 원했는데 후임 황제들이 알아서 긴(...)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이래도 카타리네 켓헨 1세는 설명이 어렵다.그냥 오류라니까

3 역대 황제

3.1 1대 - 루돌프 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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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덴바움 왕조 은하제국의 개조. 제국력 원년 ~ 42년(우주력 310 ~ 351년, 서기 3110 ~ 3151년) 재위.

다나카 요시키의 연표에는 루돌프 1세라고 기록되었으나, 루돌프 2세는 없는게 함정. 흔히 루돌프 대제(Rudolf the Great)로 불린다. 이 인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루돌프 폰 골덴바움 항목을 참조하기 바란다.

3.2 2대 - 지기스문트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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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돌프의 외손자로 전형적인 전제군주. 처음 즉위시에는 아버지 노이에슈타우펜 공작의 보좌를 받아 말 잘 듣는 "양민"들에게는 선정을 베풀었지만 공화주의자들은 얄짤없이 찍어눌렀다.

은하제국 공화주의자들의 마지막 영광의 시대, 루돌프 사망을 기점으로 제국 전역에서 공화주의자들의 대규모 봉기가 일어났으나[2] 결국 패배, 수억명에서 수십억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죽었다.

3.3 3대 - 리하르트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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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다른 특색이 없던 군주, 정치에 충실하고 여색, 사냥 등의 개인적 취미생활도 즐겼다. 그나마 특색으로 꼽을 만한 점은 60여명의 후궁을 데리고 있던 것, 황비의 성격이 괴팍했던 것 뿐이다. 하지만 60여명의 후궁이나 성격 안좋은 황비도 후대 황제에 비하면 별 것 아니다.

3.4 4대 - 오토프리트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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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제 리하르트 1세가 별 다른 특색이 없었다면 오토프리트 1세는 그야말로 극강의 회색이라 할 만 하다. 별 다른 취미도 없이[3] 오로지 일정에 얽매이며 살다가 일생을 마쳤다. 하루하루 정해진 일정이 그야말로 신성불가침이었는데. 어느 정도였냐면, 어느 날 식사를 마친 황제에게 군 기지에서 대형 폭발사고가 발생하여 1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급박한 보고가 올라오자, "그런 보고를 듣는다는 건 일정에 없었다"는 명언(...)을 남겼다.

게다가 스스로 무언가 하려들질 않는 매우 수동적인 성격이라 측근 에크하르트 자작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 갖은 횡포를 벌이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3.5 5대 - 카스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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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프리트의 무관심속의 에크하르프 자작의 권세는 하루가 다르게 솟아오르며 급기야 제국의 부황제나 다를바 없다는 이야기까지 나왔고 오토프리트 1세가 승하하고 카스퍼가 즉위하자 새로운 황제와 자신의 딸을 혼인시켜 황권을 휘어잡고자 하는 야욕을 드러냈다.

그런데 문제는, 황제 카스퍼는 루돌프 대제가 혐오해마지 않았던 동성애자였다. 더구나 황궁의 카스트라토인 어린 소년인 프로리안에게 마음을 둔지 오래라 자작이 옆에서 무슨 말을 하든, 무슨 행동을 하든 소용 없었고 이에 분노한 에크하르트 자작은 사병을 동원해 황궁을 공격하고 프로리안은 살해하고자 들었다. 하지만 자작의 폭거를 도저히 눈 뜨고 볼 수 없던 리스너 남작이 자작의 음모를 미리 알아채고 황제의 윤허를 받아 황궁에 매복, 자작이 사병들과 궁에 들이닥치자 즉시 제거하였다.[4]

제국을 뒤흔들던 간신이 제거되며 안정을 되찾는가 싶었으나 즉위 약 140일이 된 카스퍼 황제는 퇴위 성명서를 옥좌에 던져놓고 자신의 사랑, 프로리안을 데리고 종적을 감춰버렸다.[5]

사람들의 평가는 "전 황제가 회색의 산문이라면 현 황제는 회색의 운문."

3.6 6대 - 율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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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역사는 커녕 인류 역사에도 유래가 있었는가 싶은(...) 어이없는 황제의 퇴위 선언과 잠적으로 제국이 혼란에 빠지려 들자 중신들이 모여 회의를 거듭한 끝에 당시 70세가 넘어간 율리우스를 황제로 추대하였다.

이런 고령의 인물이 황제가 된 배경은 율리우스 본인에게 있다기 보다는 중신들이 그의 아들인 프란츠 오토를 주목했기 때문이다. [6] 당대 프란츠 오토는 모두가 인정할 정도로 유능한 인물이었고 누가봐도 미래의 훌륭한 황제감이었다. 문제는 전임 황제의 갑작스런 잠적으로 누가 제위를 계승하건 정통성 문제가 불거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율리우스의 나이는 이미 70이 넘어 몇년 내로 사망할 가능성이 높은 노인이었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부계계승을 통해 나이 50줄의 프란츠 오토가 제위를 계승하여 정통성까지 세워줄 수 있었다. 이에 중신들은 프란츠 오토를 바로 추대하지 않고 그의 아버지 율리우스를 황제로 추대하는 꼼수를 부렸다.

율리우스는 즉위 직후 황태자로 서임한 아들 프란츠 오토에게 전권을 일임하였다. 그리고 본인은 궁정에 틀어박혀 적절한 사치와 여색을 즐기며 행복한 노후를 보내는데 집중했다. 중신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프란츠 오토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매우 능숙하게 제국을 이끌어나가며 제국은 또다른 안정기를 맞이했다.

여기까진 좋았는데 율리우스는 골덴바움 황실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장수하면서 몇 년 살지 못할 것이란 중신들의 예상을 처참하게 박살냈다.

황제의 나이가 70에서 80으로, 80에서 90이 되었는데도 죽음을 앞두기는 커녕 무려 5명의 후궁을 거느릴 정도로 활력이 넘쳤고, 사슴갈비를 먹는 모습이 성장기 청소년이 먹는 모습과도 같았다고 할 정도로 왕성한 식욕을 과시했다. 중신들은 자신들의 심각한 계산 착오를 깨닫고 후회하였으나 이 곤란한 상황에 대한 별다른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인류 역사상 가장 나이가 많은 황태자[7]프란츠 오토가 76세로 사망하고 더구나 프란츠 오토의 아들, 즉 율리우스의 손자도 일찍 죽기까지 하자 중신들은 이제 황제가 급사하기를 필사적으로 빌기까지 했다.

이 상황은 갑작스런 황제 시해 사건으로 마감될 수 있었는데 바로 차기 제위계승권자였던 증손자 칼 대공의 소행이었다. 사실 칼 대공은 가만히 있었어도 제위계승을 할 수 있는 신분이었지만 100세도 너끈히 살 것 같은 황제의 모습을 보고는 영원히 죽지 않는 노인네를 제거하지 않으면 자신도 늙어 죽을 때까지 제위를 물려받지 못할 것이란 공포감에 빠져 독살을 감행했던 것이다. [8]
그 결과 율리우스는 향년 9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리고 율리우스 1세는 골덴바움 왕조에서 첫번째로 암살당한 황제로 기록되었다. 이 의외의 사건은 중신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대외적으로 공표된 모습이었고 속으로는 너무 기뻐서 미쳐 날뛸 정도(…)였다고 한다.

정작 사건을 일으킨 칼 대공은 본인의 실수에 발목을 잡혀 제위를 물려받지 못했고, 70년 넘게 정신병원에 수감되었다가 97살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죽었을 땐 황제가 3명(목록 상으로는 5명)이나 재위한 다음이었다고. 다들 왜 이리 오래 살지?

3.7 7대 - 지기스문트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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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황제(痴愚帝, 치우제)라는 별칭이 있다.

엄밀히 말해 정신적으로 큰 하자가 있어 바보 황제라고 불린 것은 아니다. 율리우스를 죽인 칼 공작의 독살을 알아내고는 이 증거면 자신이 황제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 다음에 지기스문트 2세는 칼 공작을 협박하여 목숨을 살려주는 대신 황위 계승권을 넘기라는 뒷거래 끝에 사촌 칼 공작을 대신하여 황위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즉위 과정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한 처리를 빼고는 지기스문트 2세는 무능한 인물이다. 애초에 자신이 황제가 될 꼬투리를 잡는 것 자체도 스스로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그 과정을 좀 더 상세히 서술하자면 아래와 같다.

율리우스 황제가 암살된 후, 선제와 가까이 있음에도 선제가 암살당하는 것을 방지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5명의 총희에게 자결 명령이 내려져 결국 전원 사망하였는데 실제로 이 5명의 총희 중 한 명이 칼 공작의 사주를 받아 율리우스를 암살하였었다. 칼 공작은 마무리를 깔끔하게 하려고 암살의 실행범을 포함한 총희들을 제거하였는데 당연히 이렇게 억울하게 죽을 수는 없었던 암살범이 화장품으로 자신의 팔찌 뒤에 율리우스 암살에 대한 자세한 정황을 써놓았고 이 팔찌는 유품이 되어 친위대 장교로 복무하던 오빠에게 건너가 이 장교는 누이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위해 지기스문트 2세에게 팔찌를 넘겨주었다.

결국 지기스문트 2세가 황위에 오른 것도 칼 공작의 실수만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리고 은하제국을 대차게 말아먹었다.

"모든 국고는 자신과 내 부하들을 위해 써야 한다"고 생각하곤 권신들을 너무 키워 국정을 파탄으로 몰아간 최악의 금치산자로 기록[9]되었으며, 결정적으로 돈을 많이 가졌다는 죄목으로 죄없는 거상들을 체포하고 살해하더니 전 재산을 몰수한 것이 화근이 되어 보다 못한 아들의 손에 패륜 폐위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10][11]

3.8 8대 - 오토프리트 2세

재건 황제(再建帝, 재건제)라는 별칭이 있다.

아버지 지기스문트 2세를 폐위시키고 제위에 오르나, 6년만에 요절했다. 선제가 초토화 시켜놓은 정국을 겨우 수습하는 데만 거의 6년이 걸렸고 이 동안 오토프리트 2세의 생명력이 고갈된 것이 원인이 되어 과로사 하였다.

그러나 선제가 파괴해 놓은 정국을 원상복구시키는 데 성공하여 흔들렸던 제국 정부의 통치력을 다시 재정립한 공은 매우 크다. 지기스문트 2세의 실정이 너무 엄청난지라, 황제와 제국정부의 위엄과 통치력이 개판이 되었으며, 반란이 터지기 직전의 상황에 몰렸기 때문에 조금만 더 선제의 실정이 지속되었으면 제국이 붕괴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던 상황에서 이를 막은 것은 대단한 일이다.

다만, 오토프리트 2세는 선제의 실정을 율리우스 황제 시절 수준으로 회복만 시켰지, 따로 뭔가 개혁을 한 일은 없었다. 그러나 재위기간이 고작 6년인데다가 선제의 뻘짓이 너무 커서 원상복구만 따져도 엄청난 일을 했기 때문에 이런 것까지 따지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3.9 9대 - 아우구스트 1세

'후궁들에게는 범군(凡君), 국사(國事)에 있어서는 명군(明君)'이란 평을 들은 황제.

긴머리 페티시즘을 지닌 황제라 침대에 100명이나 되는 여인의 머리를 묶어놓고 의기양양해 했다고 한다. 덕분에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을 지녀 총애를 받았던 후궁이 있었는데, 알고보니 이 머리카락이 가발이었고 황제를 속이려든 이 불행한 후궁은 추운 겨울날 물 속에 처넣어 얼어죽었다. 또한 경쟁 상대의 머리에 불을 질러 타 죽게 한 후궁까지 있었을 정도. 거기에 총애하던 후궁이 죽자 죽은 후궁의 머리카락을 집어 삼켜 위장에 머리카락이 박히는 바람에 태의들이 뒤집어지기도 했다고...

후궁들에겐 이렇게 막장이었지만 정치는 무척 잘했다고 한다. 따로 언급되지는 않았으나, 오토프리트 2세의 작업을 이어받아 제국의 통치력을 유지, 발전시켰을 가능성이 높다. 명군의 명칭을 얻는 일 자체가 쉬운 것이 아니다.

3.10 10대 - 에리히 1세

별 기록 없음.

3.11 11대 - 리하르트 2세

별 기록 없음.

3.12 12대 - 오토하인츠 1세

마찬 가지로 별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다만 머나먼 옛날에 6대 황제 율리우스를 독살한 칼 공작이 97세로 이때 사망하였다. 수십년 전 황위에 오를 했던 남자를 기억하는 사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고 칼 공작은 제도 인근 정신병원의 한 병실에서 홀로 쓸쓸하게 사망하였다.

3.13 13대 - 리하르트 3세

별 기록 없음.

3.14 14대 - 아우구스트 2세

The Blood-Maker(유혈 황제). 이타카판에서는 유혈제(流血帝)로 번역되었다.
제국력 247 ~ 253년(우주력 556 ~ 562년) 재위.

유혈제라는 별명조차 아까운 제국, 인류 역사상 희대의 살인마. 골덴바움 왕조버전 연산군

치세는 6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혼자서 제국 자체를 완전히 붕괴직전까지 몰아넣었다.

황태자 시절부터 엄청나게 비대한데다 약물 과다사용 및 황음 등으로 자신의 신체를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라서 공중부양 휠체어에 의존했다.[12] 그래서 일반적인 경우라면 아예 황제가 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당연히 선황이 이런 황태자에 실망해서 황태자 자리에서 폐위시킬 것도 고려했다고 하나 형제들도 다 그 밥에 그 나물인지라 못했다고 한다. '형만한 아우 없다'라는 속담을 이상한 쪽으로 증명한 예라고나 할까. 성년이 되기 전에 모든 쾌락을 맛봤다고 할 정도의 인물로, 매우 잔혹하며 무분별한 인물로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마자 남녀노소를 나이대까지 가리지 않고 사람을 기분 내키는 대로 잔혹하게 처형하여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심지어 시체를 벌거벗겨 거리에 내세우기도 했다.

선황의 총희들을 내보내지 않고 자신의 후궁으로 삼아 비난을 받았는데, 즉위 직후 자신의 어머니에게 '선물'이라면서 한 방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방에서 비명이 들린 뒤 황태후가 비명을 지르며 뛰쳐 나왔다. 그 방안에는 수백을 헤아리는 선황의 총희들이 살가죽이 벗겨지는 고문을 받고 죽은 참혹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는 결국 동생 셋을 다 죽이고 그 역적들을 태어나게 한 죄를 물어 자기 어머니에게도 자결을 강요하여 죽였다. 이쯤 되면 개막장을 초월하여 사이코패스다.

게다가 이상한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한 덕분에 최악의 고문기구 중 하나인 '아우구스트의 주사기'라고 불리는, 다이아몬드 주사기로 대상자의 눈동자를 찌르는 잔혹한 고문기구는 이 사람의 작품이라고 한다. 어, 이거?

살인의 미학까지 가진 인물로 결국에는 반란에 의해 폐위된다. 상세하게 설명하자면 폐위되기 직전에 황제의 군대가 패배한 것을 미리 눈치챈 측근인 근위여단장 샴바크 준장의 배신에 의해 암살당한다. 일단 개들에게 먹이를 주던 황제의 등을 샴바크가 밀어버려 자신이 애완동물로 기르던 뿔달린 개의 우리로 떨어져서 잡아먹혔다.[13]

정확히 추산되지 않지만 아우구스트 2세 시기에 살해당한 사람의 숫자가 무려 600만 ~ 2000만. 히틀러 + 스탈린 + 마오쩌둥 그 외에 제국을 떠나 외우주로 피난길에 오른 사람의 수도 수없이 많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은 그 후 인류 역사에 등장하지 않는다. 아마 사르갓소 지대에 들어가거나 피난 중 제국군 함선에 격침된 듯하다.

3.15 15대 - 에리히 2세

The Blood-Stopper(유혈을 멈춘 황제)
이타카판에서는 지혈제(止血帝)로 번역되었다.

아우구스트 2세가 골덴바움 왕조버전 연산군이면 에리히 2세는 골덴바움 왕조버전 중종이다.

아우구스트 2세의 사촌동생으로 본래는 에리히 폰 린다호프 후작이었다. 일찌감치 제도 오딘에서 탈출하여 자신의 영지에 숨어있었기 때문에 아우구스트 2세의 눈길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딘에서 죽일 만한 인물을 싹 죽여서 심심해진 아우구스트 2세가 지방으로 도망친 사촌동생의 존재를 떠올리면서 이 괘씸한 역적을 체포하라는 명이 떨어졌다. 이에 이왕 죽을 바에야 발버둥이라도 쳐보다 죽기로 결심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무엇보다 순순히 끌려가나, 저항하다 붙잡혀서 끌려가나 어차피 황제 앞에 끌려가면 처참하게 고문당하다 죽는다는 결말이 정해져 있었다.

사실 반란을 일으키기로 결정했어도 그의 편을 들어줄 세력이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어차피 이러나 저러나 죽을판인데 뭔들 못해보겠냐는 심정으로 인근 제국군 부대에게 반란 동참을 호소할 때 까지도 확신이 없었기에 만약을 대비하여 자살할 독약까지 준비해둔 상황이었다.

하지만 아우구스트 2세가 일으키는 막장 폭정을 견딜수 없는 사람은 한 둘이 아니었고 누군가가 도화선에 불을 당겨주기만 기다리던 처지였기에 인근 제국군 부대가 에리히의 호소에 응하여 봉기, 근처의 제국군들이 차례로 합류하면서 에리히의 세력이 점차 증가되었다. 특히 콘라드 하인츠 폰 로엔그람을 위시한 3명의 장군이 합류하여 충성을 맹세하고 활약한 덕분에 에리히에게 큰 힘이 실렸다. 그리고 이들 장군들 중에는 아우구스트 2세의 폭정으로 이미 가족들을 잃은 장군도 있었으므로 급조한 반란군의 약점인 정부군에게 내통자가 생기는 일 자체를 방지할 수 있었다.

에리히를 토벌하기 위해 파견된 제국 함대들도 막장 폭군을 위해 싸울 이유 따위는 전혀 없었으므로 에리히의 부대와 마주치면 싸우는 시늉도 안하고 투항하여 합류하다가 아우구스트 2세와 에리히의 최종 결전 장소가 되었던 트라바흐 성역에서는 에리히의 군대가 아우구스트 2세의 토벌군과 맞서 싸워 대승을 거둠으로써 아우구스트 2세의 통치도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됐다. 물론 이 전투에서도 황제군은 제대로 싸우지 않았다. 항복한 병력이 전사자의 약 20배에 달했다.

아우구스트 2세는 결국 심복 샴바크 준장에게 살해당하고, 에리히 2세는 제도 오딘에 입성하여 황제로 즉위했다. 아우구스트 2세는 폭군을 제거한 큰 공로를 세운 샴바크 준장을 치하하며 제국군 대장으로 특진시켰으며, 폭군을 비호했던 죄를 물어 총살형에 처했다.센스 있는 사람이다(…).

이후 아우구스트가 싸놓은 똥을 치우면서 제국과 오딘을 안정화시키는데 전념했다. 사실 그다지 특출난 정치를 한 건 아니지만 선황이 초막장이라 비교우위로 성군이라 불렸다고 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재건 황제(再建帝, 재건제)인 오토프리트 2세와 비슷한 처지다.

3.16 16대 - 프리드리히 1세

별 기록 없음.

3.17 17대 - 레온하르트 1세

별 기록 없음.

3.18 18대 - 프리드리히 2세

별 기록 없음.

3.19 19대 - 레온하르트 2세

치세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직계 아들이 없는 관계로 조카인 프리드리히 3세를 후계로 선언한 후 급사했다. 황후 크리스티네의 강력한 권유로 후계를 세우자마자 급사했기 때문에 황후와 조카간의 불미스러운 관계를 의심한 사람이 많았다고.

3.20 20대 - 프리드리히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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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efeated(패전 황제)
이타카판에서는 '패군제(敗軍帝)'로 번역되었다.

자유행성동맹과 처음으로 접촉하였으며, 병약한 장남 대신 총애하는 삼남 헤르베르트 대공에게 무훈의 금테를 씌워주고 차기 제위계승자로 삼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 아들은 군사적으로 무능력한 주제[14]다곤 성역 회전(제국력 332년, 우주력 641년)에서 제국군을 대차게 말아먹으면서 아버지 얼굴은 물론 제국의 명예에 먹칠을 하였다.

게다가 다곤 성역 회전 직후 제위 계승을 둘러싸고 각종 혼란이 발생했고, 그 이유가 엄밀하게 따져본다면 다곤에서의 패전으로 인한 황제권의 실추였기 때문에 불명예스런 칭호인 패전이 붙는 불상사가 발생하였다.

본인 역시 충성스러운 이복동생 슈테반 폰 바르트바펠 후작의 직언을 무시한 걸 보면 현군이었던 같지는 않다.

제국력 324 ~ 331년(우주력 633 ~ 640년) 재위. 그런데 이렇게 되면 다곤 성역 회전 전 해에 죽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3.21 21대 - 막시밀리안 요제프 1세

프리드리히 3세의 이복형. 그 외 특별한 기록은 없으나 멀쩡히 전 황제의 황태자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갑자기 황위에 오른 걸 보면 그만큼 황실의 상황이 막장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3.22 22대 - 구스타프 1세

The Hundred Day King(백일 황제)
이타카판에서는 '백일제(百日帝)'로 번역되었다.

프리드리히 3세의 장남. 어릴 때부터 몸이 너무 허약해 일반적인 생활조차 힘들 정도라서 기대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겨우 황위에 오르긴 했으나 이복동생인 헤르베르트의 부하에게 독살당한다. 하지만 죽기 전에 자신의 동생이자 프리드리히 3세의 차남이었던 막시밀리안 요제프에게 황위를 물려 주었고 결과적으로 이 판단이 골덴바움 왕조의 수명을 늘려주었다.

3.23 23대 - 막시밀리안 요제프 2세

The Seer, The Rebuilder(혜안의 황제, 재건 황제)
이타카판에서는 '청안제(晴眼帝)'로 번역되었다.

프리드리히 3세의 차남. 재능, 실력 모두 수준 이상이었지만 어머니가 하급귀족 출신이라 지지세력이 없어 즉위 전에는 지방영주로 살고 있었다고 한다. 즉위 후에는 늘 암살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으며 결국 독약을 들이키고 장님이 되었지만 아내 지클린데[15]와 사법상서 오스발트 폰 뮌처의 보좌를 받아 정치를 잘 해서 성군으로 칭송받는다.

그 자신이 장애인이었기 때문에 열악 유전자 배제법 같은 루돌프 대제가 남긴 악법을 사실상 사문화시켰다. 폐지하지 못한 이유는 왕조의 창건자가 정한 법률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당대의 황제라도 이걸 완전히 없앨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림멜스하우젠 자작이 평하기를 "역대 황제 중에서 유일하게 사생아 논란이 없었던 깨끗하신 분."

대략 제국력으로 330년대부터 350년대에 걸쳐 20여년 이상 제위했는데 뮌처의 진언으로 20여년 제위기간 동안 단 1번도 자유행성동맹으로 쳐들어가지 않았다는 글귀가 나온다.

3.24 24대 - 코르넬리아스 1세

이 황제는 막시밀리안 요제프 2세의 사촌동생이면서 양자로 책봉된 인물이었다.

친척형제간에 나이차이가 엄청 많은 모양이다. 안 그러면 아무리 동생이라고 해도 양아들로 입적하지 않을 것이다. 일단은 명군으로 들어갈 소양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의 입맛대로 대신들을 교체하거나 하지 않고 오스발트 폰 뮌처 등 선제가 신임하던 중신들을 그대로 유임시켰으며, 내정을 위한 시책에 있어서도 양아버지이며 친척형이었던 전임자의 노선을 그대로 이어받아 충실하고 탄탄한 치적을 쌓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기이한 취미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제국원수 계급을 남발하는 것이었다. 재위기간 동안 황제가 제국원수 계급을 내린 사람 숫자만 무려 58명에 달할 정도로. 물론 전사자에 대한 포상이나 크나큰 공훈을 세운 지휘관들에게 내린 포상까지 모두 합쳐서 58명이었다면 어느정도 참작이 될 수 있겠지만, 코르넬리아스 1세는 소부대 지휘관이라도 적당한 공적만 있으면 원수계급을 하사했기에 현역원수가 58명에 달했다. 덕분에 "황제가 직접 통솔하는 부대는 원수 2개 소대"라는 비아냥까지 들었으며 '원수양산제(元帥量産帝)'라는 별명까지 생겼다.

이러한 기이한 취미 이외에도 자유행성동맹을 정복하려 시도한 것으로 유명했다. 선황이 워낙 명군이라 선황을 능가하는 공적을 쌓고 싶어했는데 선황이 뮌처의 진언을 듣고 단 1번도 자유행성동맹을 먼저 건드린 적이 없기에 자신이 그걸 이루면 선황을 넘어서리라 봤기 때문이다. 물론 이 때도 사법상서 오스발트 폰 뮌처는 선제 때와 마찬가지로 원정을 통해 국력을 낭비해서는 안된다고 황제에게 간언했으나 좀처럼 말을 들어먹지 않자 결국 빡쳐서 사표를 집어던졌다. 깜짝 놀란 황제는 상급대장이던 뮌처에게 제국원수 칭호를 내리는 것으로 달래려 했으나, 위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워낙 희소가치가 떨어졌고,강직하기로 유명한 뮌처가 그런 명예에 목숨거는 인물은 아니었기에 결국 사퇴를 막지 못했다.

물론 원정 자체가 훗날 동맹이 보여주는 제국령 침공작전급의 무모한 시도 수준은 아니었다. 코르넬리아스 1세는 문무 양면에서 뛰어난 황제였고 원정의 준비에도 소홀함이 없었다. 정벌에 나서기 전에는 동맹에 특사를 파견하여 제국 휘하에 들 것을 요구하는 인내심도 발휘했으며, 자신이 직접 지휘봉을 잡은 제국력 359년(우주력 668년)의 코르넬리아스 1세의 친정 자체는 어느 정도의 희생은 있었으나, 결과적으로는 대성공을 거둬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이 등장하기 전에 은하를 통일한 위대한 정복군주로 이름을 남길 뻔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황제가 황궁을 비운 사이 궁정에서 반란이 일어나는 바람[16]에 이를 진압하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속절없이 털리면서 체면을 구긴 동맹군이 순순히 제국군을 보내줄리 없었고, 또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는 바람에 코르넬리아스 1세의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동맹령으로 밀고 들어가는 동안 20명, 후퇴하여 반란을 진압하는 동안 추가로 15명의 원수가 전사하는 피해를 입었다. 수치상으로 보면 제국원수 35명이 전사할 정도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것으로 보이지만, 상술한 것처럼 소부대 지휘관들이 원수봉을 잡은 사례가 많아서 정말 제국군이 몰살급의 피해를 입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렇다고는 해도 원정 개시에서 반란진압까지 소모된 국력이 워낙 커서 다시는 자유행성동맹 원정을 재개하지 못했다. 이후 자신의 행보를 반성하는 의미에서 더 이상 원수 계급도 수여하지 않았고, 소모된 국력을 회복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정치도 잘했다.

원정 14년 뒤인 제국력 373년(우주력 682년), 페잔 자치령이 창건되었다.(어느 황제 시기라고 명시되지는 않았다.) 이는 원정의 실패를 자인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오토프리트 5세 정도를 제외하면, 제대로 된 황제 노릇을 했던 마지막 명군으로 추정된다. 친정 이후 이제르론 요새 기공까지 100년 사이 11명의 황제가 출연한데다가, 요절과 암살, 제위계승 혼란 등등으로 뭔가 제대로 할 수 있던 인물은 드물었을 것이다.

일본의 은영전 팬덤에선 가모 우지사토가 모델 아니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기이한 취미와 더불어 제법 능력이 있지만 뜻을 다 이루지 못했다는 점에서 좀 닮긴 하다.

3.25 25대 - 만프레트 1세

별 기록 없음.

3.26 26대 - 헬무트

별 기록 없음.

3.27 27대 - 만프레트 2세

The Exiled(망명 황제)
이타카판에서는 '망명제(亡命帝)'로 번역되었다.

어릴 때 암살을 피하기 위해 자유행성동맹에서 자랐으며 그 때문에 열린 사고가 가능한 이른바 깨어 있는 황제였다.[17] 이에 계속되는 전쟁을 종식시키고 자유행성동맹과 대등한 외교관계를 맺으려다가 지구교에 의해 암살당하고 만다. 대외적으로는 지구교의 존재가 그림자 속에 숨어있던 시기였기에 반동파 귀족이 암살한 것으로 공표됐다.

3.28 28대 - 빌헬름 1세

별 기록 없음.

3.29 29대 - 빌헬름 2세

빌헬름 2세에 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지만 이 시기 벌어진 사건으로 인해 나중에 제국귀족들이 단체로 망신당하는 흑역사가 하나 터졌다.

빌헬름 2세는 황후 콘스탄체와의 사이에서 장남 코르넬리아스를 얻었는데, 하필 총희 도로테아와의 사이에서 차남 알베르트를 얻었다. 이 문제로 인해서 황후 콘스탄체가 적잖이 화가 나 있는 상황에서 황제 빌헬름 2세가 병으로 자리보전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리고 절묘하게도 이 시기에 차남 알베르트 대공이 시종무관과 함께 황궁지하로 들어갔다가 실종되는 사건이 터졌다.

당시 황궁 노이에 상수시 지하에는 황제들이 혁명이나 반란을 두려워하면서 탈출을 위한 비밀통로가 여럿 존재했다. 하지만 비밀통로란 특성으로 인해 정보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고, 또한 황제들이 저마다 통로를 뚫는 바람에 대차게 꼬여서 사실상 '미로'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알베르트 대공이 문제의 미로를 탐사하겠다고 나섰다가 졸지에 변을 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황후 콘스탄체가 총희 도로테아와 그 아들 알베르트 대공에게 악의를 품고 있다는 사실로 인해 사건의 내막에 대한 뒷소문이 돌았다.

한 가지 소문은 빌헬름 2세가 죽고 난 이후에 벌어질 최악의 상황을 예견한 도로테아가 믿을 수 있는 무관과 함께 알베르트 대공을 고의로 탈출시켰다는 것이다. 이에 장성하여 잘 지내고 있는 알베르트 황자를 페잔 등지에서 목격했다는 소문도 따라나왔다. 반면 황후 콘스탄체가 호기심 많은 알베르트 대공을 지하미궁 탐사에 나서도록 꼬드려 내려보낸다음 죽도록 내버려뒀다는 것이며, 미궁에서 황후를 저주하는 알베르트 대공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이야기도 나돌았다.

어쨌든 알베르트 대공이 실종된 직후 빌헬름 2세는 병석에서 숨을 거두었고, 코르넬리아스 2세의 즉위가 공표된 이후 알베르트 대공의 어머니 도로테아가 독살의 징후를 보이면서 급사했다. 게다가 빌헬름 2세의 황후 콘스탄체는 정신질환 증세를 보이면서 열병을 앓다가 이상한 소리를 하면서 사망하는 바람에 여러 괴담이 만들어졌다는 언급이 등장한다.

3.30 30대 - 코르넬리아스 2세

선제 빌헬름 2세와 황후 콘스탄체의 아들로 무난히 제위를 물려받아 제국을 다스렸으나 자식복이 없었는지 후사를 얻지 못했다. 이에 황제가 중병에 들어 자리에 눕는 상황이 벌어지자 중신들 사이에서도 누가 후계자가 될 것인지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그런데 자신이 실종된 알베르트 대공임을 주장하는 인물이 등장했다.[18] 워낙 말재간이 뛰어난 인물인데다가, 그럴듯한 증언과 증거물까지 제시하면서 사람들이 진짜 알베르트 대공이 나타났다는 확신을 심어줬다. 게다가 황제도 오랜기간 모후 콘스탄체의 범행을 의심하고 있었기에 동생을 불러 병상에서 눈물 어린 대면식까지 치뤘다. 그러자 귀족들은 이 젊은 인물이 '알베르트 1세'로 즉위할 것이라 예상하고 온갖 아첨을 떨기 시작했다.

하지만 차기 황제 후보 1순위 알베르트 대공은 자신을 모시던 청초한 시녀와 함께 5천만 제국마르크 상당의 보석을 먹튀하고 영원히 자취를 감췄다. [19]대귀족들은 당연히 망연자실, 막대한 재화를 잃어버린 것은 그렇다고 쳐도 미래의 황후를 꿈꾸던 10여명이 넘는 귀족 영애들은 알베르트 대공에게 몸을 바쳐 절반 이상이 '불명예스러운 사생아'를 출산해야만 했다. 알베르트란 이름이 들어간 귀족들은 불쾌한 사기꾼의 이름으로 살아갈 수 없다면서 개명하는 사태까지 이어졌다. 덕분에 이 사건은 평민들이 어리석은 귀족들을 씹을 때 써먹는 단골재료가 됐다.

그런데 큰 의문점은 이 '가짜 알베르트 대공'은 코르넬리아스 2세와 대면하는 등 정말 황위에 오를 수 있는 인물이었는데 어째서 이런 대 사기극을 벌였냐는 것이다. 황제 코르넬리아스 2세는 눈물로 이 '알베르트 대공'을 맞이했고 제국에 내노라할 대귀족들이 흐름을 읽고 발빠르게 아첨하고 나서 병중의 황제가 곧 죽고 옥좌에 앉아 거대한 제국을 통치하는 것이 바로 직전까지 다가왔음에도 돌연 사라진 점을 들어 이 알베르트 대공은 '가짜'가 아니라 '진짜'이며 과거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인하여 제국 체제에 큰 환멸을 느껴 은하제국에 복수를 감행했다는 소문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물론 사건 당사자는 한번 사라진 이후 다시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진실을 알 길이 없다.

3.31 31대 - 오토프리트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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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 시절에 제국재상, 군무상서, 통수본부총장, 우주함대 사령장관을 겸임한 인물이었다. 방금 전엔 직계 자손이 없어서 황태자가 누가 되야하냐 고민했다며? 이는 제국 역사상 최초로 한 사람이 모든 요직을 거머쥔 것으로 황태자란 배경도 어느정도 작용했겠지만 유능하고 인망있었다는 인물평을 고려하면 제국의 사실상 모든 직무를 겸임할 수 있을 정도의 먼치킨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20]

황태자 씩이나 되는 양반이 제국재상을 역임했고, 결국 나중에 제위에 올라 황제가 되는 바람에 예우 차원에서 제국재상이란 직함이 영구봉인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21] 이로 인해 이후 국무상서로 임명된 신하가 제국재상 대리라는 칭호를 부여받고 사실상 제국재상이나 다름없는 업무를 맡게됐다.

하지만 제위에 오른 후에는 황태자 시절의 모습은 사라지고 자기 자신 이외의 모든 사람을 의심하고 적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끊이지 않는 궁정 음모 때문이었는데 이를 빌미로 황후를 4번, 황태자를 5번 교체했고, 나중에는 아예 독살을 우려하며 식사마저 거부하다가 40대 초반에 심신쇠약으로 숨을 거두는 영 좋지 못한 말로를 보여줬다.

3.32 32대 - 에르빈 요제프 1세

별 기록 없음. 다만 에르빈 요제프 2세 즉위 전에는 그냥 에르빈 요제프 황제였다.

3.33 33대 - 오토프리트 4세

The Blackmailer(직역하면 '강도 황제'나 '공갈 황제', 의역하면 향락 황제)
일본어 번역명은 '強精帝(강정제)', 즉 정력이 좋은 황제. 오오, 황제 폐하!

정치, 사냥에도 관심없이 그저 여색만 탐닉한 황제. 후궁만 무려 1천 명이 넘었다고 하며, 결국 기력쇠진으로 어느 후궁의 침대에서 복상사했다. 심지어 황제가 승하할 때까지 승은을 입지 못한 후궁만 5백여 명이나 됐다고 한다.

그만큼 서자와 서녀도 많이 두었는데, 그로 인해 이 시기 대귀족들은 황제의 아들이나 딸과 결혼하거나 또는 사돈관계를 맺어야만 했다. 물론 이는 황제의 강요에 의한 것이었으며, 이를 빌미로 거액의 결혼지참금을 바치게 하여 귀족들을 괴롭혔다. 이 때문에 가문이 망한 경우도 있는데, 작중에서는 황제의 서녀와 3번 결혼하면서 매번 결혼지참금을 바치고 고생만하다 결국 40대에 세상을 떠난 존넨펠스 백작[22]의 사례가 대표적으로 소개되며, 백작의 친구가 "내 친구는 황제에게 재산과 재능과 정력을 빨아먹혀 죽은 거다!!!"며 화를 내다가 군대에서 쫓겨났다고 한다.

3.34 34대 - 오토하인츠 2세

별 기록 없음.

3.35 35대 - 오토프리트 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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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절약정신으로 황실재정을 흑자로 만든 황제. 아예 수전노에 가까웠다고 하는데 이에 반발심리를 지녔던 아드님께서 제위를 계승하자마자 파탄내버렸다. 참고로 황제가 죽을 때 황실 재정의 흑자 규모는 이때까지 쌓아온 제국 재정의 적자를 일시에 메꾸고도 남을 지경이었다고 한다. 아껴야 잘 살지.

그의 시대에는 동맹군의 소위 730년 마피아와의 전쟁(제국력 429 ~ 442, 우주력 738 ~ 751)들이 이어지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아니면 팔란티아 성역 전투의 대패 이후 즉위해 함대 재건을 위해 절약밖에 할 수가 없었던지... 그래도 황제가 그걸 알고 절약하는건 쉽지 않다

한동안 자유행성동맹군의 무덤으로 기록되는 이제르론 요새가 이 시기(제국력 454 ~ 458년, 우주력 763 ~ 767년)에 건설 되었다. 그의 시대 후반의 일이다. 이제르론 요새 건설에 돈이 너무 많이 드는 바람에 황제가 몇 번이나 요새 공사의 중지를 진지하게 검토했다고 한다. 만약에 수전노였던 그가 이제르론 요새의 건설을 중지했더라면, '마술사 양'이 등장하기 전의 자유행성동맹군이제르론 회랑에서 6차례에 걸쳐 시도했으나 결국 동맹군의 참패로 끝난 이제르론 공략전을 벌이지 않아도 됐을지 모른다. 대신에 동맹군이 이제르론 회랑을 타고 제국령을 침공했을지도 모른다.

장남과 삼남이 후계 지위를 다투었으나, 장남은 삼남의 모략으로 인해 처형, 삼남은 자신이 저지른 모략이 부메랑으로 돌아와 우주의 먼지가 되면서 공멸했다. 이로 인해 유능한 모습을 보이긴 커녕 탕아 기질로 인해 황제와 의절직전이라 불릴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아서 어느 누구도 신경쓰지 않던 차남 프리드리히가 제위에 올랐다.

3.36 36대 - 프리드리히 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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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의 골덴바움 왕조 마지막 황제.

제국력 456 ~ 487년, 우주력 765 ~ 796년 재위. 29세에 즉위했다는 기록으로 따지면 452년 혹은 453년에 즉위한 걸로 보이지만, 제3차 티아마트 성역 회전이 그의 즉위 30주년에 일어났다는 기록을 따랐다. 영문판 은하영웅전설 위키백과의 기록에서도 452년을 따르고 있는데, 이러면 이제르론 요새 공사기간과 겹치게 된다. 사실 설정구멍이 한두개입니까

상세한 설명은 해당 항목을 참조하길 바란다.

3.37 37대 - 에르빈 요제프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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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제국 정통정부에 납치된 후 행방이 묘연해진다.
은하제국 공식 역사상으로는 폐제(廢帝)로 기록됐다. 상세한 설명은 해당 항목을 참조하길 바란다.

3.38 38대 - 카타리네 켓헨 1세

카타리네 켓헨 폰 페크니츠. 골덴바움 왕조 마지막 황제이며 유일한 여제(女帝).
공식표기가 카타리네 켓헨 1세지만 최후의 황제인데 왜 1세가 붙었는지... 로엔그람 왕조에 카타리네 켓헨 2세라도 있었나? 결국 작가의 설정오류가 또 드러난 것.

즉위 당시 젖먹이에 불과하였다. 상세한 설명은 해당 항목을 참조하길 바란다.

  1. 문제는 이게 실수를 하는 정도가 아니라, 다나카 요시키는 설정 디테일이 허술한 작가다. 은영전을 꼼꼼히 읽어보면 작가가 한번 써 놓고 까먹어서 다음 부분에서 뒤집어버린 부분이나 내적 정합성을 갖추지 못한 부분이 셀 수도 없이 나온다. 결국 부족한 부분은 독자가 창작하던가 알아서 상상(...) 해야한다.
  2. OVA판 묘사를 보면 봉기 수준이 아니라 내전이다. 오딘의 제국 황궁 코앞까지 진격했던 것으로 보인다.
  3. 황족 귀족들이 많이 즐기는 사냥이건 여색이건 신경쓰지도 않고 심지어 독서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아 평생 스스로 읽은 책이 딱 두 권, <루돌프 폰 골덴바움 언행록>과 <가정의학전서>뿐이었다.
  4. 황궁에 사병을 이끌고 들이닥친 시점에서 영락없는 반역자라 깨끗하게 사살되었다.
  5. 추가로 황궁의 값나가는 재물 일부를 가져갔다(...).
  6. 율리우스의 배경은 작중에서 다루지 않는다. 나이를 감안하면 3대 리하르트 1세나 4대 오트프리트 1세와 같은 항렬 정도로 추측된다.
  7. 다나카 요시키가 이 소설을 쓰던 1980년대라면 이 기록이 나왔을지 모르지만, 사우디아라비아에서 2005년에 81살에 국왕이 된 압둘라 빈 압둘 아지즈 알 사우드(1924~2015)가 있다. 그래도 이 사람은 왕이 되었지만 2012년 현재 왕세제인 나예프 왕자가 78살로 이 기록을 깨며 먼저 죽어버렸다. 후임 왕세제로 압둘라 국왕 사후 왕이 된 살만 국왕도 만 79세에 왕위에 올랐다. 오래오래 장수하세요.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는 부자상속이 아닌 형제상속으로 왕위가 전해지기 때문에 이들은 엄격히 따지면 왕세자가 아니라 왕세제이므로 황태자/왕세자에 국한시킨다면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찰스 왕세자가 곧 이 기록을 깰 가능성이 높지만(찰스 왕세자가 올해로 67살이니, 엘리자베스 2세가 10년만 더살고 찰스가 죽지 않으면 이 기록을 깬다. 여담으로 이렇게 되면 엘리자베스 여왕은 유럽 역사상 최장수 군주가 된다.)
  8. 일반적인 상식으로 생각하면 굉장히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지만 당시 칼 대공의 입장이 서술된 문장을 읽어보면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이 노인은 자신이 태어났을 때부터 노인이었고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노인이 되어 죽을 때까지도 변함없는 노인이었다. 그렇다면 자신 또한 늙어 죽을 때까지는 물론이고 우주가 끝나는 그 날까지 영원할 노인이 아닐까.' 독살 당하기 직전까지도 사냥을 하고, 후궁을 끼고, 고기를 냠냠 드시는 그 모습을 보면 최소한 10년은 더 너끈히 살아있을 법도 하다.
  9. 바이에른의 루드비히 3세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 추정된다.
  10. 장담하는데 이때 아들의 손에 폐위당하지 않고 그대로 수십년을 더 황제의 자리에 있었다면 춘추전국 시대를 불러왔을 황제다. 권신들의 힘이 어찌나 막강해졌는지 훗날 문벌귀족의 최고 가문들은 이때 완성됐다고 보는 시선도 있다.
  11. 거기에다가 사치는 얼마나 심했는지 궁전에다가 자신이 죽은 뒤에도 시중을 들게 할 목적으로 수백개의 황금 미녀상을 세우는 돈지랄을 감행했다. 앞에 서술된 거상들의 처형과 재산 몰수도 이런 사치를 하기 위한 재원 충당이었으나 그런 짓을 하고서도 사치 비용을 감당못하는 막장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12. 프랭크 허버트과학소설 블라디미르 하코넨 남작을 모티브로 한 듯하다.
  13. 을지서적판에서는 칼로 등을 찔려서 떨어진 걸로 나왔다. 서울문화사나 이타카판에선 그냥 밀어죽인 것으로 나온다.
  14. 정치적으로, 즉 귀족계에서 평판은 유능하지만 군사적으론 무능했다. 더불어 성격도 소인배라서 시녀인 지클린데를 꼬시려다가 거절당한 것을 앙심을 품고 "황제가 되면 그년 먼저 매운 맛 좀 보여준다"고 이를 갈았지만 이 패배로 정신병원에 갇혀서 죽을 때까지 못 나온 듯하다.
  15. 시녀였다가 황후가 된 입지전적인 인물. 권총을 차고 그의 시중을 들 정도였다고 한다. 시녀인지 경호원인지 모를 지경이지만 어찌 본다면 싸우는 메이드. 포르투갈의 페드로 왕자와 연인 관계로 유명했던 이네스 드 카스트로에게서 모티브를 얻은 듯하다. 하지만 그녀는 맺어지지 못하고 살해당했다. 성격이 드세고 할 말은 다하던 성격이었던 듯싶다. 소설 외전 1권 <황금의 날개>에 수록된 <다곤 성역 회전기>를 봐도 헤르베르트 대공이 유혹하려다가 단호하게 거부했던 걸 보면. 바로 옆에 막시밀리안 요제프 2세같은 남자가 있는데 헤르베르트 따위가 눈에 차기나 하려나
  16. 이 부분에서 지구교가 간섭했을 가능성도 있다. 뭐 원작에서는 지구교가 들어갔다는 부분이 나오지 않지만 두 세력이 오랫동안 지지고 볶고 하던 기나긴 전쟁에 지구교가 간섭했다는 여러 증거가 나중에 드러났다... 다만, 원작의 내용을 기준으로 본다면 다다다음대 황제인 만프레트 2세의 암살은 전지적 역사가 시점으로 '지구교에 의한 암살' 이라고 명확히 서술된 데 비해, 이 사건에 대해서는 지구교 관련 서술이 전혀 없다. 즉, 반란의 배후에 지구교가 있지 않겠느냐는 추론은 작품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추론이라기보다는 독자의 상상일 뿐이다. 그런데도 지구교가 반란의 배후가 있었다는 주장이 나오는 근거는 작품의 내적 설정 정합성에 따라 '제국과 동맹의 대립을 조장하고 장기화시켜 그 틈에서 세력을 확장시켜 온 것이 지구교였으므로, 이 사건에서도 그런 공작을 벌일 만 하다'는 것 뿐인데... 이 역시 내적 정합성을 기준으로 '아직 동맹이 연약해서 제국과 대등하게 맞설 세력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던 이 시기부터 지구교가 동맹과 제국의 갈등을 통해 세력을 키우는 노선을 취했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는 반론이 가능하다. 즉, 제국의 전면적 침공을 두 차례나 버텨낸 이 대원정 이후부터 동맹이 무시할 수 없는 세력으로 대두하고, 제국 출신 망명자들이 대거 동맹으로 유입되면서 동맹이 본격적으로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하였으며 지구교 역시 이를 통하여 동맹과 제국 사이의 갈등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이후 지구교의 음모 실행에 중요한 창구가 된 페잔 자치령의 창건이 이 시기부터 대략 14년 후로 추정된다는 점 역시 이에 대한 근거가 될 수 있다. 또한, '제국의 역사는 무수한 궁정 쿠데타와 그에 필적하는 지방 반란으로 점철되어왔다'는 것이 작품 내의 직접적인 서술임을 생각한다면, 황제가 직접 대규모의 군대를 이끌고 외부로 원정을 나가면서 발생한 권력 공백 상황에서 제위를 노리는 궁정 반란이 일어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걸 꼭 지구교의 개입이 있었다고 해석할 이유도 없다는 것.
  17. 추정이지만 그는 이때 페잔루트를 통해 동맹에서 자랐을 가능성이 높다.
  18. 러시아의 동란시대에 등장했던 가짜 드미트리에서 모티브를 얻은 듯하다.
  19. 5천만 제국마르크가 어느 정도인지 계산해보면 하급 공무원 키르히아이스의 아버지의 연봉이 약 4만 마르크라는 언급을 기준으로 대략 한화 450억이 넘어간다.
  20. 제위 계승이 다급했던 코르넬리아스 2세가 능력 좋은 종친을 양자삼아 정통성을 몰아준 것으로 추정할 수도 있다.
  21. 당태종 이세민이 즉위하기 전 상서령으로 있었기 때문에 그 뒤로 당나라에서 상서령은 공석이었다. 북쪽 혹부리우스가 죽고 뽀그리우스가 뒤를 이으며 사실상의 주석이지만 주석이 아닌 국방위원장으로 살다 죽었고, 그도 죽은 뒤에 뚱땡이우스가 국방위원장직을 공석으로 만들고 자신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된 걸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22. 무훈을 세워 제국원수 계급까지 올랐다는 서술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