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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의 이름

여성 이름. 영희와 더불어 교과서나 각종 문헌에서 여성을 대표할 정도로 20세기 중반까지는 널리 쓰였지만 그 후로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2

순수하다는 의미. 식품이나 화장품등의 제품 광고에 잘 쓰인다.(ex 순후추) '순 억지' 나 '순 거짓말' 처럼 부정적인 의미에도 쓰인다.

3

열흘을 뜻한다. 보통 한 달을 열흘씩 세 개의 단위로 나누어 상순[1], 중순, 하순으로 나누어 사용한다. 잘 사용되지는 않지만 닷새를 뜻하는 후(候)라는 단어도 있다.

4 舜. 중국의 전설적인 왕.

순(삼황오제) 문서로.

5 . 유비트 코피어스의 수록곡

6 순나라

6.1

춘추시대의 소국으로 주나라 문왕의 서자가 봉해졌다고 하며 작위후작이었다. 그러나 (晉) 옆에 있어서 위태롭다가 결국 진나라 무공[2]의 공격을 받아 멸망했다.

6.2

중국의 역사
中國史
기원전 1600 ~ 기원전 206기원전 206 ~ 907년
907년 ~ 1644년1616년 ~ 현재
중국의 역사 907년 ~ 1644년
907 ~ 1279오대십국(五代十國)카라 키탄/대거란, 대요(大契丹, 大遼)
당항(黨項)
송(宋)
,대리국(大理國),
북송(北宋)백고대하/서하(西夏)
남송(南宋)안춘 구룬/대금(大金)
1270 ~ 1368다이 온 예케 몽골 울루스/대원(大元)
1368 ~ 1644대명(大明)
,남명(南明), ,대순(大順), ,대서(大西), ,명정(明鄭),
중국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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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
大順
존속기간1644년 ~ 1645년
표어
국가
위치
수도서안부(1644.2.8 ~ 1644.3.17)
베이징(1644.3.17 ~ 1645.6.5)
정치체제전제군주제
국가원수황제
언어중국어
민족한족
종교유교, 불교, 도교
주요사건1644.2.8 건국
1644.3.17 북경 점령, 명나라 멸망
1644.4.29 이자성 황제로 즉위
1645.6.5 이자성 사망, 멸망
연호영창(永昌)
통화
성립 이전명나라
멸망 이후청나라
대순의 역대 황제
건국초대 영창제(永昌帝) 이자성멸망

이자성의 난을 주도한 명나라의 농민반란군 이자성이 세운 나라이다. 명나라가 만주 등지에서 새로 일어난 청나라와의 전쟁에 전력하는 사이, 이자성은 힘을 길러 낙양 등 화북 지방을 점령해 나갔고, 마침내 1644년 2월 서안[3]에서 왕으로 즉위하고 대순(大順)이라는 정권을 세우기에 이른다.
파죽지세로 진격하여 같은 해 3월 17일 북경을 함락시키고 명나라 마지막 황제인 숭정제는 자살하여 명은 사실상 멸망했다. 그러나, 북경에 들어간 뒤부터 병사들의 기강이 풀어져 닥치는 대로 약탈을 일삼아 민심을 잃었다.

그리고 얼마 후, 청군을 막는 최전방 요새인 산해관을 지키고 있던 장수 오삼계는 청의 실력자 도르곤에게 항복하여 청군과 함께 이자성을 공격하려 내려왔다. 이 때, 오삼계가 거느리고 있던 부대는 명나라에서 최고의 정예 병력. 일편석에서 벌어진 오삼계+청군과의 일전에서 이제까지 무적의 위세를 자랑하던 이자성의 대순군은 철저하게 참패했고, 이자성은 북경으로 돌아와 성 안에 남아 있는 황금을 모두 긁어 모아서 떠났다. 도망치기 전에 칭제를 해 황제가 되었지만, 이미 패하고 있는데 의미없는 짓이나 다름없었다.
달아나는 사이, 그를 따르던 부하들도 대부분 뿔뿔이 흩어졌고, 이자성은 구궁산(九宮山)에서 최후를 맞는다. 자살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농민들에게 피살당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1645년 6월, 그의 나이 40세였다.

중국사에서 흑역사 취급받는 나라이지만 어쨌든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잠시나마 수도인 북경을 점령했으므로 명나라와 청나라 사이에 존재했던 중원의 정식 왕조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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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한국의 성씨

한국의 성씨
· · · · · 강전 · · · · · · · · · · · · · · · · · · · ·
· · · 남궁 · · · · ·
· · · · · 독고 · · · 동방 ·
·
· · 망절 · · · · · · · · · ·
· · · · · · · · · · · ·
· 사공 · · · · 서문 · · · 선우 · · · · · 소봉 · · · · · · · · ·
· · · · · · 어금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장곡#s-2 · · · · · · 제갈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황목 · 황보 · ·

총 4가지가 있으며 다 합쳐도 넉넉잡아 2천명이 안되기 때문에 굉장히 유니크한 성씨이다.

7.1

시조는 순경진.본관은 홍산,임천,창원,연곡 4곳으로 전해지나 현재 홍산본이 순씨 인구의 80%가 넘는 비율을 차지하기 때문에 사실상 홍산 단본으로 보는 분위기이다.

주나라 문왕의 아들중 한명이 순후(荀侯)에 봉해지자 그 후손이 자신들의 성을 순으로 삼은게 그 시초. 삼국지 덕후들에겐 의외로 익숙한 성씨일텐데, 바로 순욱순유가 이 성씨이기 때문. 즉 이런 성이 있다는건 아는데 그 성이 한국에도 있다는건 잘 모른다(...)

현재 대한민국의 순씨가 한반도로 이주한 시기 및 경위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대략 신라말~고려초 정도로 추측 가능하다. 시조 순경진은 고려 목종때 진사를 지냈다. 그러다가 현종때 순응이 왕의 이름(詢,물을 순)과 발음이 같다 하여 성을 손으로 고쳤고, 이것이 일직손씨(안동손씨)의 기원이 되었다. 목종의 다음 왕이 현종이니 거의 고려에 정착하자마자 성씨를 고친 셈이다. 아마도 일족 전체가 성을 고쳤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일부 거부했거나 현종이 죽은 후 다시 순씨로 돌아온 사람들이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는듯.

조선 세조때 순한양이 충청도 홍산현(현 부여군 홍산면 및 그 일대)에 정착하여 관향으로 삼았다. 그 후 조선 선조때 몇몇 일족이 이몽학의 난에 가담했다가 일족 전체가 역적으로 몰려 참살되거나 성을 고치는 참사가 일어나며 크게 쇠락했다. 2000년 통계청 조사 결과 1,017명 308가구로 집계되었다.

7.2

시조 미상.본관은 임천.

1930년 일제의 국세조사때 처음 나타났으며 익산에 두 가구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 외 사항은 미상.

2000년 통계청 조사 결과 121명 40가구로 집계되었다.

7.3

시조 미상.본관은 파주,임천,순흥

요순시대 순임금의 바로 그 순이다.(애초에 한자 이름 자체가 순임금 순)

마찬가지로 1930년 일제의 국세조사때 처음 나타났으나 1924년 간행된 <조선씨족통보>에 중국 허둥(河東,산시성(산서성) 남서부)지방에서 건너왔다고 기록되었으니 최소한 그 이전에 한반도로 이주한건 확실해 보인다. 당시 중국도 보통 난리통이 아니였으니...

2000년 통계청 조사 결과 120명 40가구로 집계되었다.

7.4

시조 미상. 본관 없음

역시 1930년 일제의 국세조사때 처음 나타났다.

2000년 통계청 조사결과 38명 9가구로 집계되었다.
  1. 초순이라고도 한다.
  2. 정확히는 곡옥 무공
  3. 의 수도인 장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