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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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마태복음 21장 13절, 개역개정성경.

1 타락한 먹사들

개신교의 이미지를 나락으로 만들고 있는 가장 큰 근원

목사들의 인원은 개신교에서는 매우 많기 때문에, 모든 목사들이 다 타락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목사라는 직분 자체가 십계명을 포함해서 성경의 율법대로 살아야 한다. 그런 위치에 있어야 할 목사가 범죄를 저지르면 당연히 화제가 된다. 최근에는 사망까지 하게 만드는 목사들이 보이면서 개신교 목사들의 권위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신자 수가 개신교>>천주교 였던 과거와는 달리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신자 수의 격차가 점점 줄고 천주교인이 증가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목사들이 타락하고 개신교의 위신을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1990년도까지만 해도 이런 문제점이 어느 정도 가려졌지만 2000년대 들어서 점점 드러나고 있다. 아래 열거된 문제점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개독교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은 앞으로도 점점 증가할것이다.

2 목회(강연)에서의 거짓말

목회는 목사가 교회 생활을 하는 거의 모든 것을 칭하는 말이다. 문제는 여기서 정직하지 않게 목회하는 목사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이다.

물론 목사들이 다 먹사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들어봤을 대형 교회의 목사들도 불륜, 횡령, 고인드립 따위의 부도덕한, 심지어 범죄행위를 하는 판국이니 일부라는 말의 신빙성이 심히 의심될 수밖에 없다.

몇몇 개혁, 급진적 목사들을 빼고 나면 거의 모든 한국의 개신교성경을 권위로 삼고 십일조를 하고 주일을 지키며 예배를 드린다. 개신교의 공통된 사항이다. 대부분의 정상적인 4년제 신학대학을 졸업하고서 목사 코스를 밟은 사람이라면 성경의 형성과정을 배우며 십일조에 대해서도 충분히 배운다.

신학교에선 성경이 완벽하지 않고 수많은 고침이 있었으며 유대신앙에 의해서 과장되었음을 분명히 배운다(물론 보수적 신학교들에서는 아니다). 그런 목사들이 정작 설교 시간에는 성서무오설[1]을 주장한다는 것은 참 의미심장하다.

몇몇 목사들의 경우 1:1로 면담했을 때는 성서무오설이 거짓이라는 것을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다만 청중들의 신앙심 고취와 교회 조직의 유지를 위해서 성서무오설만큼 권위를 줄 수 있는 방법이 없기에 사용한다고 이야기한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교인이 안 모인다. 결국 교인들 스스로가 이런 설교를 더 선호한다는 것(이러지 않은 종교가 얼마냐 있겠냐면서 이 글을 삭제하지 않았으면 한다). 덧붙이자면 문제의 원인은 교인 자체보다는 대형교회 신드롬이다. 대형교회 자체는 나쁘지 않다. 다만 자본주의와 결탁한 대형교회는 좋지 않다. 그럼에도 상당수의 교회들은 이러한 대형교회가 되길 바란다. 실질적으로는 목사의 생계가 교회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십일조 역시 매한가지이다. 종교학을 배우면서 '성직자 사례비' 와 '십일조' 에 관한 점들을 배운다. 십일조는 이미 2000년 전에 폐지되었다는 것과 이미 성경에서도 '예수님의 죽음과 함께 유대인들에게 속했던 모든 절기법과 사회법과 종교법이 십자가에 못 박히고 장사되었다' 고 한 것 역시 배웠다. 그러나 한국의 개신교 특성상 십일조 없이는 교회 유지가 불가능하기에 배운 것과 다르게 십일조야말로 복의 통로, 신자의 지표라고 하면서 강권한다. 십일조를 내지 않으면 대부분의 교회 활동에서 밀려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는 예수교는 구약의 율법까지만 믿는 유대교가 아닌데, 어째서인지 돈 걷을 때는 유대교가 된다.

가난한 신자들의 경우 주보에 게시되는 십일조 납부자와 금액을 보고 쪽팔린 나머지 교회를 멀리하기도 한다. 십일조를 많이 해야 참 신자로 대접받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 그런데 초대교회의 사도 바오로는 정작 이런 행태를 고린토1서에서 깠다. 십일조라도 안 걷으면 빈털터리가 되니까.

일단, 대부분의 교회법과 교단 내 규칙의 경우, 정확하게는 십일조를 포함한 교회 헌금의 사용처를 분명하게 목회자들의 사례비와 사빈세(지역 사회에 기부하거나, 어려운 이웃을 돕는데 쓸 돈), 선교비(재정 상황이 어려운 선교사-개척교회를 돕는 비용), 기타재정(교회 시설 관리비용,장비 관리 비용 등)으로 확실하게 구분해 놓고 있다.[2]

그러나 정작 현실은 사빈세 개념은 희박한 편은 맞고, 목회자들의 사례금도 교회법에 따라 제대로 나눠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제대로 나눠지는게 맞다면 원래는 박봉에 시달리는 목사매월 적자의 개척교회는 발생하지 않는 게 정답이다.

간단하게 얘기하면, 세속화 사유화 권력화된 한국 개신교회는 성경의 말을 돈이 되는 것, 신도를 모을수 있는 것만 강조하여 아전인수로 해석하고, 그 외의 것은 생략하거나 왜곡하거나 안 가르치는 방법을 쓴다는 것이다.

설교(예배)에서도 실로 수많은 문제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일화 돌려쓰기이다. 물론 같은 종교를 믿으면서 같은 내용을 말할 수도 있지만, 예배용 CD와 원고를 돈을 주고 사서 쓰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속칭 인스턴트 설교 및 캔 설교라 불리울 정도로 심각한 몇몇 예배 프로그램들의 경우 회원가입시 전화통화를 통해서 무슨 교회의 어느 목사인지를 확인한 후 회원등록이 되며, 이 회원 아이디 없이는 사용할 수 없는 방식을 쓰는 경우도 있다.

요즘 신학교에서 연설법과 화술, 강연법 등을 주로 가르치는 데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사실 부흥회 강사 몇 번만 만나보면 일화 돌려쓰기는 정말 바로 티난다. 거기다 인터넷에 검색만 해도… 이럴 바에야 차라리 성경 강해설교를 하는 것이 훨씬 낫다. 이 돌려쓰기의 결과 결국 신학대 논문 표절논란이 터져버렸다.

3 수많은 개독들의 발생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수많은 개독교 신자들의 발생은 기본적으로 목사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목사들이 목회를 하면서 종교의 상대성이나 상대 종교에 대한 존중,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인간적·인격적인 도리를 말하고 가르치고 대우했다면 대한민국에서 개신교개독교로 인식되었을 수 있을까.

편집적, 집착적인 전도를 하는 교인들을 말리기는커녕 그 어떠한 고난과 역경에도 굴하지 말고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조장하는 곳도 있다. 심지어 예수쟁이란 말이 자신에게는 칭찬의 의미로 들린다는 주장을 하는 목사도 있는 판.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만 끌여들여 오면 전도왕. 부장 등 감투를 씌워주고 반면 많은 사람보다는 특정인을 사랑과 관심으로 지그시 전도하면 전도 성적이 좋지 못하다고 평가하기 일쑤인 게 목사들이다.

많은 경우 목사들이 설교 도중 혹은 전에 다른 종교들에 대하여 왜곡되거나 지어낸 내용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동남아 지역에서 활동 중인 목사들은 이슬람교를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행동을 서슴치 않는다. 설교 내용에 '이슬람에는 구원이 없으며 그 사람들은 무조건 지옥행' 이라는 말을 서슴치 않고 쓰는 경우도 많다. 이런 행동들에 당국 이슬람 지도자들이 항의를 한 경우도 있으나 사과나 재발방지조치 따위가 제대로 이루어진 적은 없다. 주요 이슬람 국가에서 인력과 예산이 남아돌아서 개신교 관련 인물을 체크하여 입국을 막거나 마크하는 게 아니다.

우스운 건 이래놓고 한국 목사들은 이슬람인이 한국에 오면 이슬람교를 선교한다고 날뛰는 점이다. 아랍 정보통 목사인 김동문 목사의 글을 보면 터키에서 이슬람 선교를 위하여 한국에 선교사를 보낸다 뭐다 난리를 친 적이 있었다. 그런데 터키 항목을 봐도 터키는 정교분리국가이며 무슬림도 한국처럼 선교질하다간 이슬람 광신자로 정치수용소에 가둬버리는 나라.

자세히 조사하니 드러난 사실은 터키 대사관 직원 2명이 교체된 것 뿐이었다. 그럼에도 이걸 계기로 한국 개신교 선교를 더 하고 터키에 선교질하자는 교회들의 병크와 왜곡은 계속되었다고 한탄했다.

더욱 한심한 것은 교인들이 개인적으로 깊게 신학을 공부하는 것을 오히려 말리는 목사들이 있다는 것이다. 선생님/교수님&제자의 관계로 대입하여 생각해보자. 이게 말이 되는가? 이게 다 자기들이 한 거짓말과 억지논리가 논파당할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이것을 개신교 내부의 반지성주의라고 평할 수도 있다.[3]

신학적으로, 신앙적으로 깊게 파고들어가서 목사 자신들이 교인들에게 비판을 받을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벌이는 짓이라 할 수 있다. 신학적, 신앙적으로 흠 없을 종교인들이 몇이나 될 지 생각해보자. 인간인 이상 불완전한 것은 어쩔 수 없으나 이 불완전성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보완하느냐가 핵심 아닌가. 천주교, 불교 등에서는 이를 위해 끝없이 고민하고 연구하고 토론하기를 반복한다. 이건 종교의 ABC나 다름이 없다.

땅밟기는 '목회자 모임' 에서 소개된 것으로 타 종교와의 대립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타 종교의 지역에 들어가서 전도나 기도회 등을 하곤 한다. 대립하는 이유는 영적 전사를 양성하기 위해서. 이슬람 국가 등 해외 선교는 지나치게 돈이 많이 들어 일반 성도들까지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기 때문에 국내의 타 종교건물들에 일반 성도들이 대항의식을 하게 함으로써 타 종교를 적으로 인식하게 하여 내적인 분란을 예방하기 위한 방법으로 구상된 것이다. 타 종교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자기 종교의 내부적인 문제에 신경을 쓰기 힘들다.

'목회자 모임' 은 목사들의 모임인데 목사들과 그 부인(사모)들이 출석자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여기서 별별 더러운 꼴을 다 보게 되는데 헌금 많이 받는 법, 교인 끌어들이는 법, 목사의 방침에 이의를 제기하는 소위 '문제 일으킬 교인' 알아보는 법, 각종 사고시 대처 방법[4], 특정 전도사, 부흥사의 능력[5], 심지어 목사 부흥사 연기자가 짜고 치는 교회를 대상으로 한 사기에 가까운 스토리[6]까지 있는걸 보면 정말 답이 없다.

4 개척

목사 안수를 받은 후 진로는 보통 3가지로 나누어진다. 기성 교회에 청빙되어 담임목사직을 행하는 경우와 자기가 교회를 새로 세우는 개척이라는 경우. 그리고 기성교회에 부목사로 들어가는 경우.[7]

그런데 기성 교회에서 외부의 목사를 청빙하는 경우는 역사와 규모가 대단히 오래되고 크거나 전임 목사가 퇴임, 사망(소천), 축출되는 경우가 아닌 한 공석이 잘 나지 않는다. 따라서 그 수가 너무 적다 보니 매년 쏟아져 나오는 목사들의 숫자를 감당할 수가 없다.

그럼 남은 길은 개척이다. 개척을 준비하는 목사들의 꿈은 개척교회를 세워 자신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 정석과 같겠지만, 때론 벤처기업을 대기업으로 성장시키는 것같은 불손한 사상을 가지고 뛰어드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에도 신학교 졸업 후 즉시 개척에 뛰어드는 경우와 월급목사로 몇 년을 지내 사재를 모아서 개척에 뛰어드는 경우가 있다.

후자의 경우는 목회를 할 때 미리 자기가 개척할 것을 생각하고 주변의 관계를 잘 만들어놓고 후원자도 만들어놓으면 좋으나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다. 월급 목사로서 일하다 권력 싸움에서 밀려나 어쩔 수 없이 개척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철판 깔고 전 교회 교인들을 확 빼와서 개척교회를 만들어 내는 목사들도 있고. 물론, 교회를 개척한다면 전 교회의 교인들과 연락을 하는 것은 이런 경우가 흔치 않게 있어서 매우 욕을 먹는다.

보통 초기 자본금을 대출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후원을 받아서 시작하는데 이는 시작부터 큰 짐이 된다. 현재 개신교인들이 감소하는 추세에 비해 교회는 난립하고 있고 목사 배출 수는 계속 늘어만 간다. 이런 상황인데 개척을 하는 것 자체가 모든 문제의 시발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초기 재정을 주변의 후원금이나 대출금으로 시작하다 보니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주변에 널리고 널린 것이 교회다. 서울 시내에 교회로 지도검색을 해보면 징그럽게 많이 난립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대개 개척교회는 교세가 엄청 작다 못해 교인이 10명 안팎인 곳도 비일비재하다. (엄청나게 적으면 4~5명끼리도 한다.)

기에다 대형교회의 화려한 건물과 많은 프로그램들에 밀릴 수밖에 없고 이러다 보니 기껏 모아둔 교인들도 교인 수평이동이라는 현상에 쓸려나가 버리기 일쑤이다. 1달에 1명씩 새 교인이 들어오는데 누적 교인의 수는 10~15명을 사이에 두고 왔다갔다하며 몇 년을 보내는 경우도 있다. 즉 교인이 들어오긴 하는데 쌓이질 않는 것.

이러면서 몇 년을 보낼 경우 초기 후원금은 끊어지고 대출 이자는 쌓여가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결국은 근성으로 끝까지 버티는 경우와 결국 교회를 매각하고 목회를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 또는 마지막으로 성장주의, 기복주의 설교로 사람들을 모으고 이 모은 교인들을 모아서 모두 대출해 교회 건물을 건축하고 올인러시도 또 하나의 선택지이다.

이에 반하여 개혁적 성향을 가진 목사들은 아예 '개척' 이라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소위 예배당 없는 교회라든가 하나의 예배당을 여러 교회가 돌려 쓰는 식이다.[8] 즉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펼치는 일에만 집중하는 것이 곧 예수의 가르침이라 믿기 때문이다. 이런 분들은 보통 사회적으로 직업을 따로 가지고 목사 직책을 겸직하고 있다. 즉 호구지책으로 교회를 하지 않는 것이다. 이쪽은 직업이 따로 있는 만큼 철저히 무보수이다.

결국 일할 교회가 없어서 신학대학원 졸업 후에 무임 목사가 되어 목사를 그만두는[9] 사람도 많다. 이경우 딱히 전공을 내세워 할만한 일이 없다 보니 목사를 그만두고 보험설계사, 택시기사, 운송업 등을 주로 한다고 한다. 오죽하면 많은 목회자들의 자조성 드립, 특히 대학 선교단체 간사님들이 이런 드립을 많이 하신다. 간사가 되면 테크트리가, 간사 → 목사/간사 → 종신간사/간사 → 보험/택시/치킨집 이렇게 테크트리가 나뉜다고.

5 대형교회의 독점

목사 개인의 카리스마에 의지해서 신자들이 몰리는 경향이 있어서 대형교회가 하나 생기면 주변 중소 교회 수십 곳이 가난해진다.

한국 신자들은 큰 교회로 몰리는 경향이 강하기에 이런 성향은 심해진다. 목사들의 평균적인 퀄리티가 저질인 것도 이 경향을 부추긴다. 개신교는 신자들이 교회를 고를 수 있다는 걸 생각해 보자. 멀리 이사 온 개신교 신자 A가 교회를 다니기는 해야겠는데, 우리 집 앞에 있는 작은 교회가 정줄 놓은 이상한 목사가 시무하고 있거나 신천지에 먹힌 교회가 아니라는 걸 어떻게 아나? 그리고 그런 교회 한 번 나갔다가 나중에 안 나가면, 동네에서 얼굴 마주칠 때 피곤해진다. 여러 모로 대형교회가 검증되고 안전한 선택.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경우 교인 수만 따지면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다. 교인 수만 80만 명. 2013년 들어 서초동 사랑의교회가 우리나라에서 규모면에서 최대의 교회 건물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은 건물 자체만 봤을 때의 얘기. 대지면적이나 본당 좌석수만 보면 연세중앙교회가 압도적으로 크다.

이런 목사를 까는 자들은 이들을 먹사라고 칭한다. 돈만 처먹는다고. 평일 골프장에 가면 목사들끼리 라운딩하는 것도 심심찮게 보인다.

6 조직적인 통제 불가능

앞서 설명한 우리나라 개신교의 기복의식+목사제일주의과 함께 한국 개신교의 수많은 병크를 쏟아내는 또 다른 원인이다. 즉 중앙이 없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점조직으로 돌아가다 보니 통제와 제재, 체계적 관리가 전혀 안되는 것이다.

특히 사람이 많이 몰리고 헌금이 많이 걷히는 대형 교회는 태생적으로 화근을 안고 있는 셈이다. 자식에게 교회 세습까지 넘어가면 그 극한에 이른다고 할 수 있다.

종교적 문제와 무관한 분쟁도 자주 벌어진다. 교회나 종파간의 주도권 다툼이나 신자의 소유권 다툼, 교회 내의 권력타툼과 같은 문제가 불거지는 경우를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이 경우 특별한 논박이나 설명도 없이 그냥 덮어놓고 상대를 이단이라 매도하는 경우 역시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이단관리 위원회에 뇌물을 먹여서 상대를 이단으로 몰아가다 고발된 사례 역시 있다. 심지어는 한 교회 내의 목사들끼리도 상호비방 폭로전이나 이전투구가 벌어지기도 한다.

7 자율정화능력이 없다

이미 사고를 친 목사가 아무렇지 않게 계속 목사로써 직분을 유지하고 또다시 사고를 친다는 것이다.
옆 교단에서 쫓겨난 목사에 대한 그 어떠한 검증 없이, 단지 자격만 되면 교단의 목사로 가입시켜주는 사례까지 발생했다. 2011년 8월 27일 그것이 알고 싶다에 나온 김 베드로 목사 사건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는 이미 오래 전 대한예수교장로회 모 교단에서 면직되었다. 정확한 사유는 불명이지만, 당시 그가 목회하던 예배당에서 성추행을 했다는 예배당 장로의 말이 전해진다. 그러나 '정통' 을 부르짖으며 분열에 분열을 거듭한 장로교단은 굉장히 많았으며, 각 교단들은 서로를 통제할 어떠한 협의체조차 없었다.
김 베드로 목사는 단지 자격요건을 갖췄다는 이유로 그 어떠한 심사도 거치지 않고 다시 기성교단 목사로 변신할 수 있었고, 이로 인해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러면서 그들은 오히려 방송국 측에 자신들의 교단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방송 측은 당연히 공개해버렸다. 사회자 김상중은 이렇게 난립한 교단과 그에 따른 목사들을 제대로 통제할 수 없는 그 구조적인 문제들을 신랄하게 깠다.

물론 이렇게 걸러냈는데도 국내 외에서 사고 치는 신부들이 있기는 있다. 하지만 앞서 수없이 언급된 개신교의 느슨한 통제에 비하면 계서제적 조직을 지닌 가톨릭의 처벌은 그야말로 추상 같다. 일단 면직은 기본이요, 교회법에 명시된 '위급상황' 이 아닌 한 성직자로서의 모든 신분과 권한이 반드시 박탈당한다. 처벌 또한 세속의 법정에서 받는 처벌은 물론 교회법에 명시된 처벌까지 모두 받는다. 문제를 일으킨 사제가 죄값을 치르기 전에 사목현장에 투입되는 것을 철저히 막고 있는 것이다.

소위 '마리아의 구원방주' 처럼 교황청의 처분에도 굴하지 않는 사제들이 있긴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 파문 등 강력한 행정적 제재는 물론 교회 차원에서 이들은 가톨릭의 일원이 아니라는 것을 명백하게 강조하며, 이들에 대한 구체적인 사목 대책을 지속적으로 내놓아 기존 조직과 확실하게 격리시킨다. 해당 항목 참조. 이들이 자신들의 신분을 속이고 다시 들어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이런 문제자들은 정교회성공회처럼 보편교회를 추구하는 다른 교회 공동체에도 통지하여 그쪽에서도 절대 받아들여지지 않도록 조치한다.

8 목사의 개인적 권위

서울시 마포구 H교회에서는 H목사가 은퇴 퇴직금과 예우금으로 약 18억 원을 받았다. 문제는 이 교회의 1년 예산이 14억 원이었다는 것 1년 예산을 모조리 은퇴하는 목사에게 가져다 바친 셈. H 목사는 재임 기간 중에도 두 자녀의 미국 유학 자금을 포함한 교육비 전체를 교회 헌금에서 사용했고, 차량 유지비, 아파트 관리비, 심지어는 목사 부부의 해외여행 경비까지 교회 헌금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거기에 노회장을 겸직하여 대외 활동비마저 따로 받았다.

게다가 월급이나 생활보장 외에도 교회연간예산의 몇 퍼센트 이상이 목사에게 유용금으로 배분하기도 한다.

교회가 어느 정도 잘 자리잡고, 건물도 하나쯤 올릴 때가 될 크기가 되면, 목사가 부목사들을 전담비서로 부리면서 전용실에서 회장처럼 행동하는 걸 보게 된다. 그리고 기업식 서열 문화가 자리잡는다. 이렇게 장로와 목사의 권력 균형을 유지하는 교회가 몇 없는데, 목사가 너무 강해도 폐단이 생기지만 장로가 너무 세면 목사가 1년도 못 있어서 축출당하는 경우도 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J교회의 J목사는 담임 목사가 직접 자금을 집행해서 자신의 월급을 월 1,700만 원(기본급), 특별 집회시에는 자기 교회에서 자기가 집회를 인도하고 1,000만 원의 강사료를 받고 설교시마다 100만 원의 설교비를 받아왔다. 활동비, 판공비, 도서비 등은 모두 제외했는데 이 정도다. 심지어 이 교회는 교회 명의로 빚이 260억에 달한다.

그야말로 교회는 망하더라도 목사는 돈방석에 앉는 상황인 것이다. 물론 일이 이 지경까지 되어도 교회의 수익구조에 대한 투명도는 참 어려운 과제다.

9 신학과 실제 예배의 차이

이미 예전부터 지적되어 오던 기복주의적 신앙에 대한 이야기다.

흔히들 신학에서 배운 것과 실제 교회 생활은 차이점이 많다고들 이야기한다. 이는 실제적인 차이라기보다는 필요에 의하여 차이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교육과 목회자 세미나에서 분명히 배척되는 기복주의적 신앙이 실제 목사들의 설교에서 항상 들어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것이 잘 통하는 메뉴이고 이는 교회 확장과 목회 성공이라는 미명하에 묵인되기 때문이다.

10 목사의 공급 과잉

큰 문제의 또 다른 씨앗이 되고 있는 점은 목사 적체 현상이다.

이미 목사의 '수요'는 이제 예전에 가뿐히 가득 찼다. 그러나 각 교파/교단마다 많은 목사를 배출할수록 교인이 늘어나니 서로서로 닥치고 신학교를 만들고 목사와 전도사를 뽑아내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예장합동 신학교인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매년 4~500명 정도의 전도사 및 목사 안수자가 쏟아져 나온다. 통합 측인 장로회신학대학교도 비슷한 수준이고 감리교감리교신학대학교도 통상 300명 정도 된다. 정규 4년제 신학대학 중에서도 메이저급 3곳만 합쳐도 1,000명이 넘어가는데 실제로 정규 4년제 신학대학은 그 몇 배가 되며, 비인가 신학교 및 군소 신학교까지 생각하면 매년 수천 명 단위의 목사/전도사가 쏟아져 나오는 셈이다.

이는 가톨릭과 무척 대비되는 점이다. 최초의 한국인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1845년에 사제서품을 받았는데, 5,000번째 한국인 사제가 서품을 받은 것은 2009년의 일이었다(천주교 서울대교구 손호빈 디오니시오 신부). 2015년 현재 서품을 받은 한국인 신부의 수는 5,700여 명을 조금 넘는다. 그러니까, 170년에 5,700여 명이다.

대형 교회의 경우 목사·부목사·보조목사 할 것 없이 인원이 다 차서 더 이상 받기도 힘든 실정이다. 예를 들어 2000년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부산광역시개신교 교직자는 약 4천 명에 달하고 있다.

전국적으로는 목사가 21만 명(2007년)이 넘는다. 그러나 교회는 약 6만 개 정도이니 상당수 목사는 니트가 되는 게 현실이다. 대형 교회의 월급쟁이 (부)목사로 풀칠할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수도권 시가지에 단독 교회건물[10]을 보유한 담임목사는 신규 목사로서는 언감생심 급의 로망이 되어버렸다.

실제로 몇몇 개신교 책자에서도 이걸 우려하여 몇몇 사례를 보여주는데, 어떤 서울 교회의 집사가 운영하는 공장에 그 교회 목사가 4명이나 일하고 있는 사례가 있다고 한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일할 수 있는 목사는 상당히 나은 셈이다.

소규모 개척교회야 목사 하나 있으면 끝나는 판이다. 아예 부목사를 오라고 할 건덕지도 없는 판. 즉 신학교를 졸업하면 닥치고 교회 개척에 뛰어들어야 할 판이니, 교인 수평이동을 노리고 타 교회를 비방하거나 이단적 행위마저도 불사하며 교인들을 빼앗아 오는 실정이다. 그러니 신학교를 막 졸업하면 교회 개척보다는 큰 교회의 부목사로 들어가는 게 더 좋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11 마귀 사탄드립

종교인이든 아니든 결국에는 모두 사람이기에 실수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이런 실수에 대한 비판을 겸허히 수렴하고 그런 문제가 되는 행위를 고치려 노력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돈에 팔린 종교인(人) '먹사'는 자신에 대한 비판을 허용하지 않을 뿐더러, 자신에게 향한 비판을 교묘하게 '하나님에 대한 비난'으로 포장해 전가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먹사들은 성경의 내용을 자기 입맛대로 발췌하거나, 뒤튼 형태의 '어긋난 근본주의, 경전주의'를 주장하곤 한다.

일례로 레이디 가가 내한 반대 사건에서 모 목사가 '동성애자는 돌로 쳐죽이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라고 말을 하는데 이 구절은 레위기의 구절이다.

(레위기 20:13) 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그런데 이 구절을 봐도 웃긴게, '동침'이라는 말이 있다는 것으로 동성애자라고 해서 딱히 서로 성행위를 하는 것도 아니다. 즉 성경 무오설에 의거하면 오히려 '동침을 하지 않는 동성애자'는 벌을 받을 이유가 없는 셈.
그런데 정작 예수간음한 여인과 예수에서 비록 죄를 진 자일지라도 함부로 남을 처벌하려 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였다.[11]

또한 예수의 성전 정화역시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예수는 교회의 거대화와 부패를 가장 우려하고 혐오했던 사람이다. 교회에 ATM기를 두고 청년단을 이용해 과잉선교를 하며 헌금을 강요하고, 엄연한 유부녀인 여신도나 심지어 미성년자를 간음하고, 사사로이 교인의 재산[12]인 교회를 자식에게 물려주고 하는 일, 즉 '성전의 타락화' 자체가 진정한 근본주의에선 나올 수 없는 작태다. 이는 심지어 레위기와 같은 구약에서 나오는 십계명조차 어기는 행위.

아무튼 그래서 이들의 무리한 주장에 대해 다른 이들이 이에 대해 비판하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공격하는 것!'이라며 논지를 흐린다. 문제는 정작 예수는 "비판을 하는 자는 비판을 당연히 받는다"고 언급하였다는 점이다.[13] 즉 자신이 누군가에게 비판이나 모욕을 했으면 그에 대한 반동을 겸허히 받는 것이 성경 무오론에 의거한 경전주의에서는 오히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걸 교묘히 신성모독이니, 현대에 맞추어 재해석해야 한다느니 하며 인지부조화를 일으키고, 적그리스도적 행태를 태연히 하고 있다. 성서무오설, 근본주의를 밀거면 정말 제대로 밀든지 해야 하는데 그건 싫고 지네 좋은거만 뽑아 쓰려 하니 당연히 모순이 생긴다. 자신들이 부족해서 가진 편견을 성경에 근거해 정당성을 얻으려는셈. 그런데 이거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뜻대로 왜곡하는거니 배교자이자 적그리스도 맞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이들은 자신에게 오는 정당한 비판을 '마귀, 사탄의 시험'이라고 일축시키며 자신을 합리화한다. 심지어는 자기가 사탄의 도전을 받았다고 마태복음의 구절을 인용하기도 한다![14] 진짜 제정신인가? 자신의 말에 비판적인 사람은 다 적그리스도요 사탄이요 마귀이고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존재라는 것.

참고로 이런 마귀, 사탄드립은 돈 문제를 가지고 먹사, 개신교인과 싸울 때 제일 흔히 들을 수 있다. 특히 장례식과 유산 분배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비 개신교인과 개신교인이 형제자매일 경우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통적으로 장례식에 오는 조문객들은 직위고하 불문하고 어린이가 아닌 한 거의 무조건 부조를 낸다. 그러나 오히려 목사들은 장례식에서 기도를 한 후 돈을 받아간다. 실제 장례 집전에서 종교인이 수고비를 받는 경우는 세계 어디에나 있지만[15] 문제는, 한국은 장례식에 오는 조문객이 오히려 돈을 주는 입장이라는 것. 때문에 '장례식에서 돈벌이냐?'라며 다른 비 개신교인 가족들의 눈총을 받기 십상이다.

보통은 그냥 고인 가시는 길에 언성 높이기 싫기도 하고, 고인이 믿는 종교인의 축복을 받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 좋게 좋게 넘어가곤 한다. 하지만 문제는, 고인이 생전에 가 보지도 않은 교회의 먹사들까지 와서 앉아서 다른 가족들에게는 제대로 인사도 안 하고 기도 몇 분 하고 돈을 받아간다거나, 아니면 고인이 개신교 신자도 아닌데 가족 중 개신교인인 사람이 목사들을 불러와 기도를 부탁하고는 돈을 집어준다는 것이다.[16] 이쯤 되면 비 개신교인 가족의 뚜껑이 열린다. 그래서 이게 무슨 짓이냐고 따지면 '마귀, 사탄, 고인모독 ' 따위로 몰아붙인다. 답이 없다.

12 목사는 '성직자' 인가?

상위 항목의 초반부에서 말한 대로 개신교는 '만민사제주의' 를 따른다. 성공회를 제외하고는[17] 사제(priest)를 인정치 않고 모든 신자들의 평등을 내세우면서 목사를 그들의 목회자로 내세웠기에 엄밀히 말하면 목사는 성직자가 아닌 평신도이다.[18] 목사의 '정의' 자체가 그렇다.[19]

물론 목사와 평신도를 구분하는 말이 있긴 있다. (servant). 즉 평신도보다 아래에서 섬기는 직업.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통 교단의 신학생이나 목회자들이 자기들을 성직자라고 이야기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자신이 몸 담는 종교의 기본 원리조차 망각한 것이니 착각도 이만한 착각이 없다. 오히려 주의 종을 대적하면 벌 받는다고 하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신앙의 영역이니 알아서 판단하자. 다만 저걸 남용하는 것 자체가 이미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일단 성경에선 권위와 위치는 하나님의 섭리 하에 주어진 것이니 종교적 의미로는 평등한 사이일지라도 연로자와 권위자를 존중하라고 가르치며, 교회 내 각 지체들이 맡는 부위가 다르고 그 중 말씀 즉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의 역할도 언급하고 있다. 이들에겐 곱절의 공경을 하라는 말이 있으며 예수를 대목자로, 성경을 가르치는 이들을 그 휘하의 작은 목자들로 비유한다. 바울 사도가 구약의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는 걸 언급하고 자신은 신령한 일을 가르치는 자로서 상응하는 보수를 받을 권리가 있으나 기꺼이 그것을 포기한다는 말이 있으니, 성경을 가르치고 신도들을 이끄는 역할을 하는 목사라는 자리가 완전히 허황된 것은 아니다. 당연히 이건 목자가 아닌 휘하 신도들에 대한 가르침이고, 목사들에게 이 위치를 이용해 군림하라고는 적혀 있지 않다. 가장 큰 자가 되려면 가장 마지막이 되어 섬기라고는 되어 있다.

신학교 내에서의 서열놀음도 있다. 부모님이 대형교회 목사면 '왕족', '성골' 로 불리우며 이들에게 잘 보여서 부목사 자리라도 얻으려 하고 대형교회 장로나 자립교회[20] 목사 아들이면 '진골', 소형교회[21]나 비목사 가족 출신이면 그저 '하층민' 일 뿐이다. 게다가 비신자 집안이나 개신교에서 나와서 다른 종교 믿는 가정이라면? 전자는 불가촉천민, 후자는 그냥 역적의 집안이다. 카스트 제도냐 분명히 신학에 관해 배우는 곳인데 정말로 철저하게 세속적이다. 구약시대의 제사장만도 못한 이 꼴을 예수가 보면 뭐라 할까?

이러면 문제는 목사의 가족들이다. 목사의 아내는 아르바이트, 식당일, 장사 등 닥치는 대로 일하며 고생하는데 정작 남편인 목사는 자기가 성직자라며 탱자탱자 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개척 교회에서 생각보다 자주 있는 일로서 심지어 이런 부끄럽고 답답한 내용이 다른 곳도 아닌 교회 뉴스에서 보도된다.

13 해결 방안?

13.1 세금을 부과해보자?

목사의 횡포가 특히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는 부분이 금전 문제이다보니 전체적으로 보면 빈곤하기 짝이 없는 직업군임에도 불구하고 목사들의 행패로 인해 목사나 사제 등 종교인 전체에게 세금을 부과하자는 주장이 늘고 있다. 대부분의 가난한 목사들은 종교인 과세에 대하여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들의 소득이 면세점 이하이기 때문에 소득세 몇 만원 아까워 양심을 팔 필요도 없고 오히려 떳떳하게 과세를 주장해야 한다. 세금 문제는 몇 백만 원~몇 천만 원 월급 받으면서 세금 한 푼 안 내는 자들이 극구 반대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종교인 과세는 잘만 하면 다수의 빈곤한 목사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몇몇 국가에서는 종교세를 거두고 혹은 신자들이 헌금 대신 종교세를 내고 그 돈으로 교회를 지원해준다. 한국에서 이렇게 한다면 대형 교회 목사에게는 많은 세금이 부과되고 영세한 목사에게는 지원을 늘려주는 방향으로 유도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헌법에 명시된 정교분리의 원칙에 명백히 위반한다. 그리고 사회 통념상 종교인을 완전한 '사업자' 로 볼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도 남아있다. 무엇보다도 앞서 수도 없이 열거된 문제들이 모두 해결되어 투명해지기 전에는 어림 반 푼 어치도 없는 소리다. 목사들이 실질적인 자영업자로서 비지니스 개념을 종교에 도입했는데도 말이다.괜히 (주)예수라고 비아냥당하는 것이 아니다.

참고로 2013년 종교인에게 과세를 물리려는 정책은 백지화되었다. 다만 이 정책은 현실성이 없기는 했다. 이렇게 될 경우 목회자들에게 돈을 지불하는 것은 정부인데, 당연히 정부는 목회자들이 과잉공급(...)되는 사태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목사공급을 줄이거나, 자격을 까다롭게 하는 식의 조치를 취하게 될텐데, 이렇게 될 경우 시각에 따라서는 "정부가 종교에 관여한다"고 해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국과 바티칸의 관계에서 보듯이, 이는 좋은 선택이 아니다.

그리고 2014년 다시 이 의견이 등장하게 되었고 국회에서 종교인들과 협의중이다.

그리고 2016년 종교인 과세에 대한 소득세법 개정안이 통과, 2년간의 유예기간을 두고 2018년 1월 1일부터 시행되도록 예정되었다. 다만 위처럼 종교세가 아닌 개인 소득세를 부과하는 방식이다. 기존 소득세법에서는 종교인의 소득을 기타소득 중 사례금으로 본다는 규정이 있었으나, 시행이 계속 유예되는 바람에 종교인마다 과세 여부 및 신고방법이 달랐다. 즉, 거의 세금을 종교인의 양심에 맡겨둔 것. 이에 종교인 소득에 대한 과세근거를 마련하여 개정한 것이다. 거기에다 교회 건물, 토지는 비사업용으로 세금을 안 내도 된다. [22]

실제로 교회에서는 교인들에게 연말정산용으로 기부금 영수증을 발급하고 있는데, 장작 교회 자신은 세금을 안 내고 있다. 이는 법리상으로 맞지 않는 일이다. 세무 당국에서는 이 신자들의 연말정산 종교기부금 영수증으로 역추적하여 교회의 헌금 수입을 파악할수 있지만, 일부에 불과하다. 십일조 통장이나 건립 헌금은 종교 기부금 내역에 들어 있으나, 수시로 내는 특별 헌금, 특별 기부금은 소득공제영수증을 안 내어 주고, 목사에게 개인적으로 주는 돈 또한 아무 자료가 없기 때문이다.

참고적으로, 성경에는 "가이사(로마)에게 낼 것은, 가이사에게 내고, 하나님에게 낼 것은 하나님에게 내라"고 예수가 언급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로마에게 낼 돈이 세금 말고 무엇이 있겠는가? 또한, 예수 본인도 물고기 입에서지갑? 동전 두 닢을 꺼내 자신과 제자들의 세금을 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13.2 중앙집권제도를 도입해보자?

현재의 개신교는 장로교 따로 감리교 따로 침례교 따로인 데다가 그것도 모자라 각 교회마다 담임목사가 있는데 경쟁적으로 신도들을 영입하려고만 하며 각각 독립된 개체로서 활동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교황이 전세계의 모(母)종교를 통제하는 가톨릭과는 달리 개신교는 완전히 군웅할거이다.[23] 그런데 그게 좀 심각한게 목사가 아예 사이비 종교의 교주급으로 변질하는 경향마저 있다는 게 문제다.

이러한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개신교도 가톨릭과 동일하게 총당회장을 선출해서 그 단 한명뿐인 총당회장에게 교황 수준의 권한을 줘서 전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개신교를 전체 통제하게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가톨릭의 인사구조를 그대로 본받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생기는 장점이 바로 교회의 군웅할거화를 막을 수 있고 모든 교회들이 중앙 총당회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게 되어 작은 교회에는 좀더 많은 지원을 하게 해 주고 큰 교회는 그만큼 봉사와 헌신을 할 임무가 주어지게 된다. 그러면 더 이상 목사들이 비지니스를 하지 않아도 된다.

거기에 목사 및 장로의 권한도 좀 줄일 수 있어서 교회 내에서의 전횡을 막을 수 있게 된다. 물론 총 당회장의 경우는 임기제로 평신도들의 투표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전제하에서 중앙집권화를 꾀해야 할 것이다.

다만 이것도 개혁주의나 개교회주의가 핵심 가치인 대한민국의 대다수 교단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문제가 있고, 근본주의 계열 교단들은 반(反)에큐메니즘 성향[24]이 강하기 때문에 개신교 교단들이 제대로 연합하는 것에 대한 현실적인 장벽이 너무나 크다. 쉽게 생각해도, 같은 교단이라 해도 대형 교회가 스스로 피땀흘려 만들어 놓은 현재의 재산과 기득권을 군소 영세 교회를 위해 내려 놓을 리가 없다.

애시당초 개신교라는 개념이 하나로 뭉뚱그리기가 어렵고, '견해가 다를 경우 새 분파를 차려 나가는 것'이 개혁교회의 생명력(아이러니하지만)이자 정체성이기 때문에 중앙집권제도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 중앙집권적 교회론 자체가 개신교(특히 개혁주의 계열)의 정체성 근간을 뒤흔드는 문제라는 얘기.[25] 최악의 경우엔 정치목사가 총당회장 자리에 군림하는 사태가 생길 수 있다.

실제로 19세기 스코틀랜드와 네덜란드 칼뱅교가 이 제도를 도입하려다가 실패한 선례가 이미 있었다.

13.3 교인들의 의식 개혁

"모든 국가는 그에 걸맞은 정부를 가진다."[26]

- 조셉 드 메스트르 (Joseph de Maistre)

"교회의 미래는 성경을 아는 평신도들의 등장에 달려 있다."

- 에라스무스, 《그리스도의 군사들에게 주는 안내서》, 1503

여태까지 항목을 읽어왔다면 목사가 타락한 것은 전적으로 목사만의 순수한 악 때문인 양 생각할 수 있겠으나 사실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다. 바로 목사를 따르는 교인들이다.

사실 목사 개인의 스펙을 따져보면 딱히 횡포를 부릴 수 있을 만한 능력을 찾을 수 없다. 대기업 회장처럼 돈이 많기나 한가, 아니면 정부 권력이 뒤를 봐주고 있기나 한가? 군사정권 시절에 일부 목사들이 정부와 결탁했던 시절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엄연히 정부와 교회가 분리되어 있다. 문민정부 이후로 개신교인 대통령이 당선되는 일이 있어왔으나 어디까지나 국정 수행에 대통령 개인의 종교적 가치관이 개입할 수 있을 여지가 있다는 것이지 군사정권 때처럼 무제한적으로 자기 패거리들 챙겨주는 식으로 행동하는 건 불가능하다.(근데 메가바이트는… 읍읍) 따라서 지금 목사들의 횡포가 가능한 것은, 전부 개신교인들이 목사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하고, 목사를 하나님처럼 신격화하고 숭배함으로써 권력을 만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태조 키밀썽, 핵종 뽀그리우스, 돈종하고 같은데 북한 비방을 쟤네들도 하는게 아이러니

게다가 그 충성이란 것도 독재정권하의 총칼로 강요된 충성이 아니라 교인들의 자발적인 충성이란 게 문제다. 중세 유럽도 아니고 지금은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고 사회 생활이 모두 끝장나는 시대가 아니다. 교회에 나가서 헌금 바치고 목사에게 아멘 아멘 하는 것은 순전히 교인들의 자기 판단에 의한 것이다. 목사가 자기 생각을 교인들에게 주입시키는 것을 두고 보통 세뇌라고들 비판하지만 엄밀히 말해 범죄 조직스러운 사이비 종교나 다단계 업체에서 하는 세뇌와는 다르다. 외부의 강요 없이 자기가 직접 현장에 찾아가 스스로 목사의 가치관에 동화되는 식이기 때문이다.

역사상 중세 종교의 권위가 급속도로 몰락하게 된 것은 세속군주들의 반발과 르네상스를 거쳐 인본주의, 이성주의를 무기로 하여 단단히 무장한 과학자, 사상가, 철학가의 등장 그리고 썩어버린 종교계의 자정을 요구하는 신학자들의 등장 때문이었다.[27] 이들은 속세권력, 합리주의 등을 통해 과거 종교집단의 권위와 종교를 이용한 비이성의 조장, 십자군 전쟁으로 대표되는 잔인성, 면벌부와 성직의 매매로 대표되는 타락상을 말 그대로 '가루가 되도록' 공격하였고 그 결과 구교와 신교의 전쟁이 벌어지는 등 심각한 충돌사태가 벌어지며 마침내, 종교의 광풍이 몰아치던 시대끝장나버리고 만다. 즉 목사의 횡포와 타락을 방지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목사의 잘못을 교인들이 비판하면 그 목사는 꼼짝 못하고 교인들을 따를 수밖에 없다. 모든 권력의 원천이 교인들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며 이것의 가능성은 상술한 것처럼 '실제 역사가 증명한다'.

그럼에도 오늘날 타락한 목사들이 끊임없이 언론 지면상에 오르내리는 이유는 교인들이 스스로 비판 의식을 제거한 채 목사에게 맹종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28] 그러나 진정으로 그리스도교 가치관에 입각한다면 목사는 당연히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만 한다. 가톨릭에서 빠져나간 개신교의 핵심 자체가 분리, 개혁인데 어떻게 그리스도교 가치관에 입각하는 것이 목사에 대한 맹종으로 이어진단 말인가. 하지만 개신교의 정체성을 떠나서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고 교인들이 어디까지나 '스스로 원해서' 노예가 되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교인들의 의식 전환에 따른 교회 개혁은 요원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어차피 개신교 교리상 종말이 다가오면 극단적 세대주의의 강림 먹사와 그 추종자는 늘어나게 되어있다. 솔직히 돈이 거저 들어오는데 안 늘어날리 없다 그저 신도 자신이 먹사와 추종자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수 밖에 없다.

14 관련항목

  1. 복음주의 신학교에서는 여전히 성서무오설을 가르치며 무오설의 지지자도 적지 않다. 오해 없기 바람. 성서무류설/성서불오설(중요한 부분은 문제 없다)까지는 복음주의의 입장으로 인정된다. 그리고 성서무오설 역시 장점이 있어 복음주의에서 단칼에 잘라버리기는 곤란한 측면이 있다.
  2. 이 구분이 실제로 성경에서 확실하게 구분되고 있다. 레위기/신명기/느헤미야/사도행전 초반부를 참고하면 쉽게 알 수 있으니 참고.
  3. 이런 반지성주의는 사이비종교 신천지가 교세를 넓히는 토양이 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왜곡된 형태일지언정 신천지의 성경 해석에 대한 강조가 교인들의 성경 공부에 대한 열망을 일정 정도 해소해주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4. 목사가 공금을 횡령했을 때 성도들을 달랠 멘트, 법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등
  5. 영적인 능력이 아닌 특정 부흥사의 멘트 능력과 사람 끌어들이는 정도.
  6. 특정 시기에 미리 돈을 받고 온 연기자가 교회에 등록한다.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하지만 경제적 고난이 뒤따른다. 많은 고난에도 불구하고 그는 열심히 교회 활동을 하지만 병까지 들고 이때 교회 행사로 부흥회가 열려서 그는 많은 재산을 헌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병이 나았으며 힘들었던 경제적 고통까지 정말 하나님의 도우심에 가까운 상황으로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사업은 더 번창했고 그는 이제 사업적인 이유로 국외 출국하고 웃는 얼굴로 교회를 떠나는 스토리. 문제는 그에게는 경제적인 고통이 없었으며 병도 가짜로 들었다는 것. 그가 헌납한 재산은 목사의 주머니에서 나와 목사에게로 다시 돌아간다. 목사와 부흥사와 연기자가 교인들을 상대로 하나의 드라마를 찍는 거다. 여기에 감동한 교인들은 "오오!" 하면서… 스토리의 바리에이션은 무궁무진하다. 예컨대 일부러 귀신들린 연기를 하면서 예배 중에 발광하고 목사가 "주님의 이름으로 물러갈지어다!" 하면 으악 하고 쓰러진 뒤 실려나간다 → 나중에 정상으로 되돌아오는 척을 한다. 오오! 우리 목사님!! 영적 능력 최고!!!
  7. 다만 이 경우도 최종 목표는 개척이다.
  8. 미션스쿨강당을 예배당으로 사용하는 교회도 존재한다.
  9. 목회를 하지 않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목사로서의 자격이 소멸된다!
  10. 상가에 입점하는 형태가 아닌 단독 예배당 건물로 들어선.
  11. (요한 복음서 8:7)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 요한복음. 이는 인간의 죄에 관해서 오직 창조주인 아버지 하나님만이 진정으로 판단하고(그리스도교 교리에서 하나님은 죄없는 지고한 존재이므로) 심판을 내릴 수 있다는 말로도 해석할 수 있다.
  12. 교리로 따지면 신성한 하나님의 재산이자 '하나님 아버지의 집'
  13. (마 7:1~2)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 마태복음. 즉 먹사들의 되도 않는 행태와 비판은 이미 그네들이 좋아하는 성경에서 그것도 예수 본인이 욕을 먹을 것이라고 언급한 셈이다.
  14. (마 4:1~1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 마태복음
  15. 일례로 일본의 불교 스님들만 해도 장례식에서 경을 읊어주고 돈을 받아간다. 맨발의 겐에서도 주인공 나카오카 겐이 경을 읊어주고 돈을 버는 장면이 나온다.
  16. 심지어 주선하는 자기가 부담하는 게 아니라, 다른 가족들에게 기도비를 부담시킨다! 부담을 안 시켰다면 나중에 부조금 정산할 때 확인해 봐라. 100% 장례비 명목으로 기도비가 빠져있을 것이다.
  17. 성공회는 천주교처럼 주교>신부>부제의 성직 제도를 갖추고 있다. 다만 평신도와 사제 간의 관계에서 성공회가 천주교에 비해 덜 권위적이긴 하다.
  18. 성직자 계층을 인정하는 성공회, 북유럽 루터교회 신부와 달리 개신교 목사는 성공회나 천주교로 옮겨도 사제 서품을 바로 받을 수 없다. 다른 천주교 평신도처럼 처음부터 사제 양성 과정을 수 년 간 밟아야 한다.
  19. 농담반 진담반으로 만민사제주의 원칙이 제대로 지켜질 경우 오히려 사제급으로 치켜세워줘야 하는 건 주일학교 교사/주일학교 담당 목회자(목사/전도사)라는 이야기가 있다. (실제로 이쪽이 제일 최전선에서 사역을 제일 많이 하는 쪽이기도 하고.)
  20. 대도시 지역에 단독 건물을 갖추고 개척한 중견교회
  21. 시골의 허름한 개척교회나 아니면 도시 지역의 상가 건물에 월세 내고 입주한 교회.
  22. 국내 개신 교회 면세의 기원은 일제시대 때 협력의 댓가로 개신교 등 여러 종교 교단의 세금을 빼 주었고, 친일파를 중용했고 본인이 개신교 장로인 이승만 정권이 들어서며 쭉 이어진 거리는 설이 있다.
  23. 개신교 교단 중에서 그나마 중앙집권적 통제가 이루어지는 곳이 성공회인데, 그것도 가톨릭에 비해서는 통제력이 약한 편이다. 최근 성공회는 동성결혼, 동성애자 사제, 여성 사제 문제를 둘러싸고 내부 잡음이 나오는 상황.
  24. 로마 가톨릭이나 성공회와 같은 비(非)개혁주의 계열 개신교 교단과 손 잡는 것을 불순시한다든지...
  25. 반에큐메니컬 계열 개신교 교단에서 로마 가톨릭을 비판하는 근거 중 하나가 로마 가톨릭의 중앙집권적 교회론이 비성경적이라는 주장이다.
  26. 이 인용문은 나무위키의 '정부' 문서에서 가져온 것이다. 왜 정부에 관련된 금언을 가져왔냐는 의문을 가질 수 있겠지만, 목사, 더 나아가 교회로 대표되는 종교집단의 타락은 이 인용문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27. 물론 이들이 완전히 도덕적으로 '깨끗한' 존재들이었다는 것은 아니다. 특히 세속군주들의 경우 교권의 간섭에서 자신들의 권력,이익을 독립, 독점, 공고화하려고 이런 교권을 무효화하려는 행동을 했다.
  28. 교회에서 투표했을 때 90% 이하로 찬성 나오는 경우가 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