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자동차

(새한자동차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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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과거 대한민국에 '존재했었던' 대우그룹 산하의 자동차 회사. 현재는 승용, RV의 한국GM, 버스의 자일대우버스, 트럭의 타타대우상용차 세 회사로 분할, 타 회사에 인수되었다.

2 역사

일단 모체는 밑에서 서술할 신진공업이며, 신진공업이 인수한 새나라자동차의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면 국내최초의 자동차[1]시발을 생산한 국제차량제작소를 부도시켜[2] 초기 자동차 사업을 후퇴시킨 회사이다.[3]

2.1 신진공업, 새나라자동차 시절

1955년 부산 전포동에서 김창원, 김제원[4] 형제에 의해 신진공업으로 시작해 미군으로 부터 불하받은 폐차 새시를 이용해 버스를 만들면서 버스 생산 권한을 획득하고 사세를 키웠으며, 1962년에 국내최초의 25인승 마이크로 버스를 제작해(어찌보면 레스타의 조상이라고 할수있다) 2천대의 판매고를 자랑하면서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다. 이후 1963년에 재생부품을 이용해 만든 승용차인 신성호를 생산함으로서 당시 승용차 제작 권한까지 획득했다.

1965년에 부도가 난 새나라자동차의 부평공장을 인수했으며, 토요타와 기술 제휴를 맺고 코로나, 크라운 등의 승용차를 생산하면서 돈을 제대로 쓸어담았다. 그런데 토요타가 저우 4원칙[5]에 의해 뒤통수를 때리고 철수해버렸다.(...)[6]

2.2 GMK 시절

마음이 급해진 신진자동차는 1972년에 미국의 GM과 자본금 180억 원을 50:50으로 공동 출자해 종합자동차 제너럴모터스코리아자동차(GMK, 지엠코리아)를 설립했는데,[7] 이것이 대우자동차의 전신이다.[8] 즉 사실은 시작부터 GM 측이었다.(…) 하지만 이전에 라이센스 생산을 하던 도요타 차량과 달리 이 시절에 라이센스 생산한 GM계열 차량들은 국내 실정에 잘 맞지 않다보니[9] 결국 업계 선두를 현대에 내줄수밖에 없었고, 결국 신진그룹의 몰락에 헤드샷을 날리고 만다.

2.3 새한자동차 시절

이렇게 몰락한 신진은 결국 부도가 나고 말았고, 1976년에 산업은행 관리체제에 들어가고 만다. 이때 이름을 새한자동차로 바꾸게 된다. 1978년에 대우그룹에 인수되었다. 인수된 이후 기존에 판매가 잘되던 레코드 1900을 레코드 로얄로 바꾸어 판매했고, 시보레 1700의 후속으로 계속 시도해왔으나 불발되었던 새한 제미니를 출시하게 되었다. 하지만 제미니 역시 포니를 이길수는 없었다. 이후 1982년에 새한 맵시로 바뀌어 출시하게 된다. 반면 레코드는 승승장구해서, 1970년대 후반 중형차 시장을 장악했다. 이후 1980년 로얄살롱을 내놓게 되는데, 운 좋게도 2차 오일 쇼크가 터지면서 장관급 관료의 관용차를 4기통으로 제한하면서 6기통 경쟁자를 크게 앞지를수 있었다. 이렇게 소형차 시장에서 약세, 중형차 시장에서 강세를 보였고 버스 부문에서는 희대의 명작인 BF101을 출시해서 전국 어디든지 BF101이 안돌아다니는곳이 없었다. 그러다가 1983년에 대우자동차로 사명을 바꾸게 된다.

2.4 대우자동차로의 전환


대우그룹 시절 막바지인 1997년 초 대우자동차 기업 홍보 및 당시 신모델이었던 누비라 광고 영상. 22분 42초경부터 나오는 BGM은 잘 들으면 지금은 없어진 토요특집 모닝와이드 오프닝 BGM이다

신진그룹이 몰락하면서 산업은행이 1976년에 한국 측 지분을 넘겨받아 새한자동차가 되었다가 1978년에 대우그룹이 산업은행의 지분을 인수하면서 1983년에 상호를 대우자동차로 바꾸게 된다. 물론 상호를 대우자동차로 바꾸었지만 GM의 지분은 그대로여서[10] 대우자동차 시절에도 GM 계열의 차량을 배지 엔지니어링으로 생산했었다.(대표적으로 르망이 있다.) GM 지분을 대우그룹이 전부 인수한 것은 1992년의 일이다. 그리고 10년 후에는 다시 GM에게로 키워서 잡아먹는다의 대표적인 사례

1990년대까지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와 함께 국내 3대 자동차 메이커였으며, 특히 냉전 종식 후 시장경제 체제로 진입하기 시작한 동구권 국가들을 중심으로 폴란드의 대표적인 자동차 회사인 FSO 등을 인수하거나 해외 현지 공장들을 설립하고, 영국, 독일 등 자동차 선진국에서는 연구개발을 위한 시설과 인력을 적극 유치하는 등 해외진출에 있어서 상당히 공격적인 행보를 보였고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로얄 시리즈가 중형차 시장에서 독보적인 존재였으며[11] 그후 내놓은 르망, 에스페로 등도 나름 히트를 치는등 대우차의 리즈시절이었다.

대우차가 경쟁 회사들과 차별되는 특징은 스타트는 굼뜬데 고속은 좋다, 묵직하면서도 편안한 승차감, 에어컨, 카오디오 등의 성능이 다른 회사들보다 더 좋고 트렁크의 면적도 가장 넓었다는 것 등이다. 다른차 메이커에 비해 차 무게도 좀 나가게 만들었다고 하더라...

또한 PC통신이 활발했던 1994년에는 하이텔에 동종기업 최초의 텔넷 게시판인 오토컴을 설립해 국내 초창기 자동차 커뮤니티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받았다. 이때는 대우차 빠들이 지금보다 충성심도 강하고 워낙 인터넷 매너를 지키던 시기라, 대우차를 타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왔었다. 오토컴은 자동차 커뮤니티 계의 칭기즈 칸이라 불리며 엄청난 활동량을 선보였으나 그 이후의 후발주자 커뮤니티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서 입지를 어느 정도 잃었고 무엇보다 1996년에 대우자동차 공식 홈페이지가 개설되고 본격 팀킬 민간인이 관리하기 시작, 결정적인 타격을 입고 2002년 1월에 폐쇄된다. 오토컴의 많은 자료들은 대우자동차 르망/씨에로/넥시아 동호회인 LCN이 가져가 사이트 설립과 함께 백업해 놓았으니 참조하자.

2.4.1 대우국민차

대우의 경차는 여기서 생산했었다. 원래 대우조선공업(현 대우조선해양) 자동차사업부[12]의 명칭이었다. 1991년부터 티코, 다마스, 라보를 생산했다. 그러다가 1999년 3월에 대우차에 흡수합병되었다. 그리고 기존에 있던 모델들은 모두 대우차 모델이 되었으며, 그 중 티코는 몆년 지나지 않아 단종되었다.

2.4.2 하락세의 시작 - 내려갈 별은 내려간다

하지만 로얄 시리즈가 쏘나타에게 중형차 1위 자리를 내주면서[13] 내수 시장에서 현대에게 점차 밀리기 시작한데다[14] 대우그룹이 공격적인 해외진출에 비해 내실이 부족한 탓에 IMF 크리에 집중포화를 맞고서도 구조조정은 안하고 1998년에 쌍용자동차를 인수[15][16]하는 뻘짓을 하다가 1999년에 대우그룹이 전격 해체되면서#, 법정관리에 들어가 인수기업을 찾아다녀야 하는 흑역사를 맞이한다. 2000년 겨울에는 무려 1750명의 근로자가 정리해고되었고, 이에 반대하는 파업을 주동한 노조위원장은 부평구 산곡동 성당에 1년동안이나 갇혀 있다가 다시 감옥에 수감되기도 했다. 영화 부러진 화살에서 당시의 노동자들에 대한 폭력진압 영상이 나온다. 대우차 공동투쟁본부 홈페이지

또한 이 당시 GM의 행보를 아니꼽게 바라보았던 포드가 동, 서유럽시장에서 GM계열 차량들을 압살하다시피 하고있는 대우차를 눈여겨보며 인수인계를 고려했으나, 부채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2001년에 인수를 포기하고, 대우차는 결국 2002년부로 다시 GM 산하로 돌아가게 되었다.

2.5 GM으로의 복귀

결국 2002년에 승용차 부문은 GM이 인수해서 GM대우(현 한국GM)이, 버스는 영안모자에서 인수해서 자일대우버스가, 트럭은 인도의 타타그룹[17]이 인수해서 타타대우상용차가 되었다. 이때 부평공장은 GM이 인수를 보류하는 바람에 대우인천자동차라는 별도 법인으로 한동안 운영되다가[18] 2005년 10월에야 GM대우에 통합되기도 했다.

이렇게 쪼개진 회사들의 차량을 '대우자동차판매'라는 곳에서 팔았었다. 2010년에 대우자동차판매는 워크아웃에 들어갔으며, 워크아웃 직전 한국GM과 타타대우상용차는 대우자동차판매와 결별했다. 후에 건설부문은 대우산업개발로 분리되었고, 나머지는 자일자동차판매로 재편되었다. 차 파는 회사가 차 열심히 팔 생각은 안하고 아파트나 짓고 있으니 믿음이 안가는게 당연하다.

더불어 씨에로를 만들던 우즈베키스탄 공장은 대우그룹 해체 뒤에 우즈베키스탄에서 국유화를 한 상태다.[19] 2016년 현재 우즈대우(UZ-DAEWOO)는 라본(RAVON)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수출시장에서 겪었던 굴욕은 나열하기가 눈물날 정도. 미국 시장에서는 누비라 하나에 수천 달러의 현금 할인과 40인치 PDP TV를 묶어 팔았고, 유럽 시장에서는 1년치 보험료와 핸드폰까지 무료로 묶어 팔았으나 결과는 참담한 실패. 탑기어에서는 마티즈의 리뷰를 거부하기까지 했다. 트랙을 돌다가 나자빠져서 이딴 기본이 안된 차에는 점수를 줄수가 없다고(...)[20] 지금도 미국, 유럽에서 역사상 최악의 차 순위를 꼽을때 대우차들이 하나둘씩 꼭 꼽힌다.Diewoo 다만 동유럽이나 남미, 중앙아시아 등지에서는 우즈베키스탄의 우즈-대우 등에서 생산한 티코, 씨에로 등의 차량이 불티나게 팔렸으며 해당 국가에서 국민차라고까지 불리기도 했다.

3 생산차량

대우차 분할 이후에 생산된 차량들도 여기에 써주십시오.

3.1 승용차, SUV, RV, 승합차, 경상용차

3.2 버스, 트럭

추가바람.

3.3 해외도피생존생산 차량

3.3.1 라본(RAVON, 구 우즈대우아프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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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본 넥시아.잠깐만 차명이 바뀐거 같은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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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본 젠트라. 잠깐만 차명이 바뀐거 같은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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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본 마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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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본 R2.(!!!)

3.3.2 쉐보레 이집트(대우자동차 구 이집트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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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보레 라노스.

3.3.3 우크라이나 ZA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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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즈 센스, 센스 판넬 밴.아들뻘 젠트라와 함께 아직 현역으로 뛰는 아버지 라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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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즈 비다.

3.3.4 그 외방계후손 혹은 괴수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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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보레 옵트라. 중국, 이집트에 판매되며,[23] 디자인이나 엔진만 바뀌었지 설계나 일부는 아직도 라세티를 계승했다. 사실상 대규모 페이스리프트를 거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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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보레 캡티바 스포츠. 미국에서 특수목적 및 관공서용으로 현재까지 판매되고 있다.
  1. 엄격하게 보면 영운기지만 넘어가자.
  2. 몇몇 곳에서는 국제차량제작소까지 포함시켜 시발까지 대우차로 포함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지금은 사라진 디씨인사이드의 자동차 전문 자매사이트였던 카 디시인사이드와 이곳이 그렇게 분류한다.
  3. 시발택시는 국제차량제작소가 제작했다. 당시 새나라자동차에서 새나라를 들어오면서 완전히 몰락했다. 자세한 것은 시발택시 문서를 참조.
  4. 이후 김제원은 국회의원을 지냈다.
  5. 당시 중국 총리인 저우언라이가 일본 경제사절단과의 회담에서 밝힌 것으로, 한국 및 대만과 거래하는 상사, 베트남 전쟁에 무기를 공급한 기업, 미국계 기업의 일본 자회사들과는 무역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6. 그러나 중국에는 이미 폭스바겐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던 데다가 반일 정서까지 겹쳐 토요타는 중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7. 적어도 이때와 현재의 차이는, 이때는 신진자동차쪽 주식이 50% 있었다는 것이다. 당연히 지금은 그런 거 없다.
  8. 그리고 이때는 신진자동차말고 신진지프자동차가 있었는데 이쪽은 미국 AMC와 신진이 제휴해서 설립한 회사다. 이후 AMC가 철수한 후 신진자동차, 거화를 거쳐 쌍용자동차가 되었다. 사실 김우중이 무리하게 쌍용차인수를 감행한 것은 형제를 되찾기 위해서였다.
  9. 대표적으로 1972년에 출시한 시보레 1700(당시 명칭으로 절대 쉐보레가 아니다)은 경쟁 모델에 비해 연비가 매우 좋지 않았고, 포장도로용으로 설계되어 당시 국내 상황과 맞지 않았다.
  10. 이것 때문에 제5공화국시절에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가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현대양행(중공업)을 대우로, 대우자동차를 현대로 넘기는 소위 빅딜을 시도했으나 GM이 거절해서 결국 현대양행은 공기업인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이 되었고 대우자동차는 그대로 대우그룹에 남았다. 생전 고 정주영 현대회장은 이 사건을 무척이나 분하게 생각했다고 전해진다.
  11. 당시 장관 관용차가 로얄 살롱이었다.
  12. 현 한국GM 창원공장.
  13. 로얄 시리즈는 1991년 9월에 단종되고 프린스가 나왔지만 결국 쏘나타를 따라잡지는 못했다.
  14. 이렇게 된데에는 대우차 자체의 문제도 있지만 GM의 문제도 있다. 즉, 50% 지분을 가진 GM의 입김이 작용해 고유모델 개발보다는 GM의 글로벌 차량을 배지 엔지니어링으로 주로 생산함에 따라 차량 자체의 성능은 나무랄데 없지만 국내시장의 니즈와는 뭔가 좀 안맞는 차량을 출시한 것이 국내시장에서 외면당하게 된 이유. 이 상황을 극복하고자 1992년에 GM 지분을 대우가 인수하고 해외 엔지니어링 기업을 인수해 고유모델 개발에 힘썼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15. 쌍용차가 잠깐 대우 엠블럼으로 나온적이 있는데 이는 쌍용 인수로 풀라인업을 갖추고 싶던 대우차의 욕심이 빚어낸 흑역사다. 그리고 이 때문에 개발단계였던 모델들이 줄줄이 개발중단되었다.
  16. 이때 대우차가 개발을 시도하던 모덜들로는 쉬라츠, P-100, 스포츠 로드스터인 마야(1999년 서울 모터쇼에서 프로토타입(컨셉트카)가 공개되었다.)가 있으며, 또한 포니 픽업이 단종된 이후 맥이 끊겼던 국내 승용픽업 시장을 부활시키기 위해 폴란드 현지공장의 생산모델인 폴로네즈 플러스의 안전설계와 배기기준을 업그레이드 해 베타테스트를 했고, 스타렉스급 RV 차량인 루빌론을 국내에 3대 가져와 테스트하는 등 다인화를 시도하려고 했다. 물론 부채때문에 이 모든것들은 허사로 돌아가지만(...) 한가지 희망은 있었다. 렉스턴 같은 경우는 프로젝트가 쌍용차로 이원되어 재개발이 되었고,다행스럽게 2001년에 출시되었다.
  17. 인도 최대의 기업 중 하나이며, 현재 영국의 자동차 브랜드 재규어랜드로버를 포드로부터 인수했다.
  18. 차량, 엔진 등을 GM대우에 납품하는 형태로 운영되었다.
  19. 씨에로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지금도 생산되고 있다고 한다지만 사명이 바뀐 현재는 젠트라를 넥시아로 판매하고있다.(하단사진 참조)
  20. 한가지 변을 하자면 마티즈 같은 경우 이미 디자인이 만들어진 상태에서 차를 만든 경우이고 아시아국가의 좁은 경차조건에서 최대한의 공간을 뽑다보니 다마스나 레이처럼 무게중심이 지나치게 높아진 감도 있다. 실제로 닛산 큐브같은 경우 탑기어 코리아에서 트랙을 돌다가 전복될뻔 했다.
  21. 출시가 취소된 4,000cc급 차량이다.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를 참조.
  22. 새한자동차 시절부터 생산된 트럭으로 1981년에 자동사산업합리화조치로 단종되었다가 1986년에 해제되면서 엘프2라는 이름으로 생산을 재개했다. 그리고 1986년부터는 2.75톤 모델로 출시되어 경쟁 모델보다 짐을 많이 실을수 있었으나 엔진 마력수는 같은데 그놈의 연비가 발목을 잡아서 시장에서 쪽박을 차고 1992년에 단종되었다. 현재 한국에 몇대가 남아 있는지도 불투명한 상황. 그래도 1979년~1981년에 생산된 차량은 오히려 타이탄을 꽤 위협할 정도로 많이 팔렸다. 물론 40년이 다 지난 지금은 남아있을리가 만무하지만...
  23. 인도는 동유럽과 같이 구형 모델이 아직 팔린다.